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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결이라는 이름의 용광로: 중국의 민족단결진보촉진법의 정치적 함의(이상수, 초빙연구위원) [출처: 통일뉴스]
날짜
2026-06-30
조회수
17
2026년 3월, 베이징 인민대회당의 거대한 전광판에 기이한 숫자가 새겨졌다. 찬성 2,756표, 반대 3표, 기권 3표. 이 압도적이다 못해 비현실적인 역학 구도는 단순한 표결 결과가 아니다. 소수라는 존재 자체를 기어이 지워내겠다는 중국공산당의 단호한 헤게모니적 선언이다. 단 세 표의 반대 의견은 역설적으로 이 거대한 강제 동화주의 기획에 어떠한 이견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지배 권력의 위압적인 엄포에 가깝다. 이 차가운 규율의 연극이 마침내 법이라는 이름의 정교한 규제로 완성된다. 2026년 7월 1일부로 효력을 발휘하는 중화인민공화국 「민족단결진보촉진법」이 그것이다.

법은 때로 정의의 선봉에 서지 않는다. 이미 변방의 밑바닥에서 진행 중이던 물리적 폭력을 사후에 세련된 법적 외피로 포장하여 정당화하는 것, 그것이 권력이 규범을 다루는 가장 오래된 기만 전술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법률의 공포는 새로운 정책 기조의 서막이 아니다. 시진핑 집권기 내내 신장, 티베트, 내몽골 등 변방 자치령에서 가혹하게 실험되고 축적되었던 강제 동화 정책의 최종 결산이자, 이를 되돌릴 수 없는 국가 최고 규범의 지위로 격상시키는 종지부다.

이 법안 전체를 관통하며 집요하게 88번이나 반복되는 '중화민족'이라는 단어의 빈도수는 소수민족의 역사와 문화적 고유 정체성을 완전히 해체하고 한족 중심의 단일한 이데올로기적 균질성을 강제하겠다는 거대 서사적 야심을 투명하게 드러낸다.

중국이 법문(法文)에서 말하는 '민족단결'은 공존과 무관하다. 카네기멜런대 벤노 와이너 교수가 지적했듯, 이 법은 "차이를 제거함으로써 이뤄지는 동일성에 기반한 통합"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의미한다. 다원성이 국가의 자산이 아니라 안보의 잠재적 위협으로 재규정되는 순간, 소수민족의 자치권은 보장받아야 할 권리가 아니라 철저히 통제되어야 할 관리 대상으로 전락한다.

특히 법 제15조는 모든 교육기관이 표준 중국어인 '보통화(普通話)'를 기본 교육 언어로 사용하고, 유아 단계에서부터 이를 강제하도록 명시했다. 재한 조선족을 포함한 55개 소수민족 전체에 예외 없이 적용되는 법이다. 언어는 단순히 소통의 도구가 아니다. 한 집단이 세계를 인식하고 기억을 저장하는 영혼의 그릇이다. 언어 교육의 국가 통일화는 소수민족의 내면적 인식 체계에 대한 국가의 개입이며, 그 파괴적 파장은 한 세대 뒤 정체성이 해체될 때야 비로소 온전히 드러날 것이다. 서방과 인권단체가 이를 티베트 기숙학교나 신장 지역 노동 이동의 '자발성'을 가장한 강제동화·언어소멸 정책으로 비판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일각에서는 해당 법이 시진핑 집권 이후 추진된 '2세대 민족 정책'의 공식 법제화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핵심은 과거 10여 년간의 강제 통합 실천을 법률화하여 정책 방향을 돌이킬 수 없게 만들었다는 점에 있다. 정책은 정세에 따라 바뀔 수 있지만 법은 무서운 관성을 가진다. 권위주의 체제에서 굳어진 법제화된 통제 메커니즘은 차기 후임자들의 손발까지 묶어버린다.

이 법에서 가장 섬뜩한 조항은 오히려 국경 밖을 정조준하고 있다. 제21조에서 대만 동포의 ‘중화인민’ 정체성을 강화하고 양안 통합을 추진하도록 명시한 데 이어, 제63조는 국경 밖의 조직이나 개인이 국가 단결을 저해하거나 분열을 조장하는 행위에 가담할 경우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역외 적용 조항'을 담았다. 표면적으로는 분리주의를 방지하려는 조치처럼 보이지만, 문제는 '민족단결 훼손'의 경계가 지극히 자의적이라는 점이다. 대만 안보 관계자들이 경고하듯, 신장이나 티베트의 인권 상황에 대한 학술적 토론조차 중국 기준에서는 반국가 행위로 간주될 가능성이 열려 있다.

기준이 모호할수록 공포는 극대화된다. 실제 처벌 여부보다 '처벌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 자체가 행동을 옥죈다. 이른바 '냉각 효과(chilling effect)'다. 학자가 논문 주제를 피하고, 언론인이 취재를 포기하며, 활동가가 발언을 삼가는 현상은 물리적 강압 없이도 통제의 효과를 거둔다. 왕잔시 대만 국방안전연구원 부연구원은 중국이 '중화민족'의 범위를 자의적으로 규정해 해외 화교 커뮤니티를 친중 세력으로 포섭하는 법적 근거로 이 법을 활용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는 전 세계 디아스포라를 동원 가능한 정치 자산으로 삼으려는 전략이다.

근대 주권 평등의 원칙에 기반한 국제 사법 질서는 일국의 사법권이 자국 영토 내에서만 행사된다는 전제 위에 서 있다. 중국은 지금 법률의 언어로 그 문명사적 전제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그리고 이 도전이 법률적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시적인 군사적 도발보다 국제 사회에 훨씬 더 깊고 지속적인 위협이 될 것이다. 이 법은 결코 먼 나라의 유희가 아니라 이미 손바닥 위에 있는 뜨거운 감자이다.

당장 한반도와 국경을 맞댄 연변 조선족 자치주의 숨통을 조여온다. 이른바 '보통화(국가공용어)' 교육 의무화라는 행정적 외피는 실상 자치주 내 한글 교육을 제도적으로 고사시키는 질식사 정책에 가깝다. 단순한 교과과정의 미세조정이 아니다. 수십 년간 한반도와 재중동포 사회를 이어온 실핏줄 같은 문화적 연결고리가 불과 한 세대 만에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끊어질 수 있다는 경고다.

위협은 영토적 경계선마저 가볍게 넘어선다. 이 법의 가장 치명적인 발톱은 바로 '역외 적용'에 숨어 있다. 우리 영토 안에서 행해진 정당한 비판과 학술적 분석조차 베이징의 심기를 거스르는 순간 자의적 사법권의 표적이 된다. 중국과의 광범위한 인적·물적 교류를 배제하고 살 수 없는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베이징이나 상하이의 공항 환승 구역조차 잠재적 억류 공간이 될 수 있다는 공포는 기업인, 학자, 언론인들의 입과 발을 묶는 실존적 제약으로 작동할 수 있다.

국가 주권이라는 편리한 방패 뒤에 숨어 벌어지는 베이징의 법적 공세에 맞서기 위해서, 우리에게는 정교한 '삼각 방어막'이 요구된다.

가장 시급한 조치는 첫째, 중국의 자의적인 역외 사법권 오남용을 감시할 투명한 추적망 구축이다. 외교부와 법무부 주도로 사법권 침해 동향을 실시간으로 기록하고 데이터화하는 상시 모니터링 체계를 가동해야 한다. 기록되지 않는 위협에는 대응할 수 없다.

둘째, 현장의 안전을 보장할 실제적인 행동 가이드라인이 비즈니스 일선에 배포되어야 한다. 중국을 오가는 국민과 기업들이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도록, 세분화된 법률적 리스크 시나리오와 외교적 조력 매뉴얼을 쥐여주는 것은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다.

셋째, 국내 체류 조선족 사회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전환이 필요하다. 그간 우리는 이들을 단순한 이념적 포섭의 대상이나 값싼 노동력의 원천으로만 다루지 않았던가. 이제는 법무부와 행정안전부가 주도해 정책 패러다임을 완전히 전환해야 한다. 이들을 동화나 배제의 논리로 규정하기보다, 대한민국이 수호하는 자유민주주의적 가치와 인권을 공유하는 건강한 공동체의 일원으로 끌어안는 포용력이 필요하다. 우리가 이 연대의 끈을 먼저 놓아버린다면, 그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결국 베이징의 거대한 전체주의적 지배 서사뿐이다.

이 세 갈래의 해법은 분절된 개별 과제가 아니다. '중국의 법적 팽창주의'라는 거대한 거품에 맞서 영토 주권과 개인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유기적으로 맞물려 작동하는 연계형 방어막이다.

중국 당국은 본 입법을 두고 주권 국가의 정상적인 법제화 과정이라 강변할 것이지만 문제는 그 결속의 문법에 내포된 전체주의적 강압성이다. 획일화를 향한 제국의 질주가 시작된 지금, 우리에게 남겨진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역사는 강제적 동질화가 결코 내부의 영속적인 안정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반복해서 증언해왔다. 억압된 정체성은 소멸하지 않는다. 잠복할 뿐이다. 그리고 억눌린 압력만큼 훗날 체제를 뒤흔들 더 강력한 분열의 에너지를 축적한다.

시진핑 체제가 '민족단결'의 이름으로 추구하는 것이 진정한 내적 통합인지, 아니면 단지 통제의 외양을 강제하는 전체주의적 억압인지는 법 조문이 아니라 7월 1일 이후 전개될 집행의 양태가 말해줄 것이다. 따라서 어설픈 관망은 결국 전체주의적 강압에 대한 묵인이자 동조이기 때문에 국제사회와 한국은 중국이 축적해갈 법집행의 실례들을 예의주시해야 할 때이다.

출처 : 통일뉴스(http://www.tongil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