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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 개의 아시아(A Tale of Two Asias)
    저자
    Evan FEIGENBAUM(Carnegie Endowment for International Peace), Robert A. Manning(Atlantic Council )
    발간호
    2012-32
      ‘아시아의 세기’에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최근 몇 달 동안에, 양립 불가능한 아시아의 두 모습이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지킬박사’라고 할 수 있는 ‘경제적 아시아’는 역동적이고 통합된 지역으로서 전체 무역량의 53%가 지역 내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미화 19조 달러 규모의 지역경제규모를 갖춘 세계성장의 엔진으로 성장하였다. 진정한 ‘하이드씨’라고 할 만한 ‘안보적 아시아’는, 민족주의와 실지 회복주의(irredentism)에 쉽게 빠지는, 의심 많은 강국들이 작은 바위와 사주를 둘러싼 영토분쟁을 격화시키고 무력 분쟁을 준비하는, 문제 지역이다.   오늘날 아시아에서 경제와 안보는 더 이상 평행선을 달리지 않으며, 실제로는 거의 완전히 충돌하고 있다. 경제 영역에서 아시아의 국가들은 무역, 투자, 시장에 있어서 중국, 그리고 서로에게 최근 점점 더 의존하고 있다. 이러한 지역적 경제통합의 경향은 유럽의 긴축과 미국의 저성장으로 인해 지난 4년 넘게 더 강화되어 왔다. 하지만, 동일한 국가들은 이젠 민족주의적 언사를 주고받으며, 해군력을 구축하고, 신무기와 힘의 투사능력을 갖추고 있다. 중국을 제외하고, 모든 아시아 주요국들은 자신의 경제가 아시아의 내부로 점차 통합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안보를 위해서는 태평양을 건너 미국을 향해 단단히 고정하고 있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경제적 아시아’와 ‘안보적 아시아’는 점점 더 화해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1997-98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십오 년 동안은 경제적 아시아가 경쟁에서 승리했지만, 이젠 안보적 아시아가 그러한 최근의 경향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정말로, 경제적 아시아의 성장은 매우 강력해서 이 지역에서의 미국의 오랜 역할에 대해서조차 도전을 해왔다. 아시아 역내 무역과 투자는 냉전의 종식과 함께 급증하였으나, 아시아의 경제 정치적 연계망의 성장은, 미국이 특히 동남아에서 오만하고 냉담한 모습으로 보였던 1997~98 금융위기로 인해 특별히 강화되었다. 그 후 수 년 동안, 특혜무역협정과 지역적 기반의 규정과 규범 및 미국의 개입 없이 만들어진 기구들이 생겨났다. 이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미국의 지위를 떨어뜨릴 위협이 되었다.   하지만, 지난 2년 동안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의 바위들과 작은 섬들을 둘러싼 민족주의적 구호들이 지속되면서, 안보적 아시아가 다시금 포효하기 시작했다. 19세기와 20세기에 난무하고 경쟁을 벌였던 민족주의는 당시 동결된 것처럼 보였던 병적인 모습들이 분쟁 재개의 망령을 불러일으키면서, 다시금 표면으로 나오고 있다. 중국과 일본, 인도, 한국 및 대만의 방위비는 과거 10년간 두 배로 늘어나, 작년에는 미화 2240억불에 이르렀다. 아시아인들은 범아시아적 정체성을 계발하고 세계체제에서 집단적 영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수십 년 동안 노력해 왔다. 하지만 경제적 통합은 지금까지 태평양에서 집단 또는 협업 안보의 기반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대신, 세계의 경제중력의 새로운 중심은 취약해 보이고, 갈등을 겪고 있는 것 같다. 아시아 지역을 쇠락하던 과거로부터 끌어내기 시작한 경제적 이익을 ‘안보적 아시아’가 정말로 압도하거나 심지어는 파괴할 수도 있을까?   일부 사람들은 이는 일시적인 현상이며, 아시아의 정치가들이 국내적으로 취약한 시기에 지지를 얻기 위한 의도적인 계략이라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최근의 전개상황을 국내정치의 산물이라고 일축하는 것은 지나친 것이다. 그들 중에서, 중국과 일본, 한국, 베트남은 국내 경제적 혹은 정치적 발전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 맞다. 하지만 대중적인 맹목적 애국주의가 사면초가에 빠진 아시아의 정치가들에게 유용한 전술인 것은 맞지만, 이러한 전술은 중대한 비용과 지속적인 피해를 초래할 것이다. 또한, 이러한 열정은 쉽게 켜졌다가 꺼지는 것이 아니다.   최근 중국에서 벌어진 일들을 보면, 시위자들이 올 가을에 수십 개의 도시에서 가두시위를 벌였는데, 일본인 사업장들이 공격을 당했으며, 수천의 중일 항공편이 취소되었고, 혼다 토요다 파나소닉을 비롯한 유명 일본 브랜드들이 공장을 폐쇄하였다.   한국과 일본은 훨씬 더 작은 바위섬을 두고 민족주의적 비난을 주고받았다. 왕성한 무역관계 및 북한 위협에 대한 대응이라는 강력한 공동의 이해관계에도 불구하고, 이 두 나라는 평양으로부터의 공동 위협에 직면하여 협력을 증진시키기 위한 간단한 정보공유협정조차도 체결할 수 없었다.   이러한 상황전개들을 보면, 아시아의 최근의 진화에 관하여 써진 많은 것들과 들어맞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일본의 전략은 주로 현실 정치적 본능, 특히 강력해지는 중국의 힘에 균형을 맞추려는 열망에 따라 동기부여가 된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이것이 맞는다면, 도쿄가 한국과 벌이는 곪아터진 입씨름을 이해하기 어렵다. 더욱이, 도쿄는 오랫동안 ‘경제적 아시아’의 모범이었으며, 보다 커다란 지역적 경제통합을 추구하는 배후의 원동력이었다. 전후 일본은 튼튼한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강력한 환태평양 정체성을 갖고 있으며, 특히 아시아의 통화 통합과 관련하여 범아시아라는 지역적 아이디어와 이념들을 다양하게 배양해왔다. 놀랍게도, 분쟁 도서를 둘러싼 올 가을의 긴박한 지정학적 드라마의 와중에도, 베이징과 도쿄, 서울간의 3개국 자유무역협정(FTA)에 관한 협상은 이어졌으며, 남중국해에서 적대적인 목소리가 큰 3개국(중국, 베트남, 필리핀)을 포함한 “ASEAN + 3”은 치앙마이계획(Chiang Mai Initiative)을 미화 2400억불 규모로 두 배로 강화한다는 약속을 발표하였다.   따라서 최근 ‘경제적 아시아’와 ‘안보적 아시아’간의 밀고 당기기는 많은 중요한 쟁점들을 제기하고 있다. 먼저, 아시아의 주요 다자기구들은 실제 문제해결과는 거의 무관하다는 것을 보여 왔다. 범아시아지역주의는 아시아의 민족주의적 마귀들을 진압하는데 실패했으며, 미국을 수반한 것들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기존 기구들은 최근의 혼란기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ASEAN의 결속은 2012년 7월에 프놈펜 회담에서 무너졌는데, 베이징과 얼마나 예리하게 대치할 것인가를 두고 캄보디아 의장이 베트남 및 필리핀과 언쟁을 벌였다. 새로운 동아시아정상회담(EAS)은 연례회의들 사이에 아무런 회담의제도 정하지 못했다. 아세안지역포럼(ARF)은 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안보포럼임에도 불구하고 이와 마찬가지로 비방과 맞대응의 무대가 되어 버렸다.   아시아의 지역적 기구들을 다시 논의하는 것은 미국의 입장을 지지하면서도 실제 문제들을 더 잘 다룰 수 있는 장치를 만드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타성과 ‘절차 중심적’ 의례는 지역 회의들을 계속 지배하고 있다. 외교관들은 단골고객 우대 마일리지를 쌓지만, 그게 거의 전부이다. 확실히, 각국 정상들이 주기적으로 만난다면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다음 동아시아정상회담(EAS)에서 우선순위 문제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미국을 포함하여 마음이 맞는 일군의 나라들이 평범하지만 실질적인 운영상 의제를 숙고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그런 다음에, 쟁점에 따라서는, 지도자들이 ARF나 APEC 포럼 혹은 다른 유관 기관이 실제 후속조치를 하도록 요청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는 지역적 기구들에게 더 많은 타당성을 부여하고, 그들 간에 더 많은 연결성을 제공하기 시작할 것이다.   두 번째 쟁점은 아시아에서의 미국의 역할과 관련이 있다. 지역경제가 점차 범아시아적으로 되어가면서 미국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줄어들었지만, 아시아의 안보 제공자로서의 미국의 역할은 오히려 강화되어 왔다. 현재 워싱턴은 두 가지 전략적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 첫째, ‘안보적 아시아’의 승리는 미국의 중심적 위치를 보장하기 때문에 미국에 유리할 것이다. 결국 워싱턴은 아시아의 핵심적인 전략적 균형자이며, 중국 해군력과 투사능력의 성장이라는 환경으로 인해 점점 더 그렇게 되고 있다. 그렇다면 딜레마는, 안보 지배적 아시아가 동시에 훨씬 더 불안한 지역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높은 변동성과 불안정성은 바로 정확히 지난 이십년 동안 미국이 피하려고 노력해온 것이다.   두 번째 딜레마는, 미국은 안정적이고 역동적인 환태평양지대(Pacific Rim)를 오랫동안 추구해 왔는데, 이런 의미에서는 ‘경제적 아시아’의 승리가 필요하다. 하지만 경제적으로는 아시아가 점차 범아시아적으로 되어가고 있는데, 이는 무역과 투자 패턴들이 아시아 역내의 경제 금융 통합을 더 많이 반영하게 되어 미국의 중심적 위치가 실제로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시아에 있어서 미국의 경제적 관여는 절대적 관점에서 보면 성장하고 있지만, 상대적 관점에서 보면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대응은 매우 부적절했다. 지금까지, 워싱턴은 경제적재균형을 배제하고 주로 안보의 ‘재균형’에만 초점을 맞춰왔다. 이 영역에서 미국의 역할이 약화되어 가는 동안에, 아시아인들은 서로에게 더 많은 경제적 공공재를 제공하고 있다. 현재의 경향이 지속된다면, 미국은 계속해서 위축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미국은 이 지역에서 경제적 승부를 되살려야 할 필요가 있다. 이는 미국의 경제와 재정적 근간에 대한 재활성화를 필요로 한다. 어떠한 요인보다도, 바로 이것들이 미국이 아시아에서 오랫동안 저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역사가 보여주듯이, 아시아가 지킬박사의 긍정적인 길로 한층 더 나아가다 보면, 위기 또는 게임을 바꾸는 중대변화가 뒤따를 수도 있다. 중국이 경제재균형의 노력을 제대로 못한다면, 중국이 현재 중진국의 함정에 빠지고 있는데, 장차 정치적 안정성이 위태로워 질 수도 있다는 불안이 커질 것이다. 이는 중국에서의 급격한 하락을 피하려는 공동의 이해를 통해 아시아인들을 화합하게 할 수도 있다. 이와 유사하게, 북한의 갑작스런 붕괴는 아시아 전체를 위협할 수 있는데, 이는 경각심을 일깨우는 위기를 촉발시켜서 불안한 동북아사람들로 하여금 함께 노력하여 재통일 한국으로의 이행을 관리하도록 이끌어 낼 수도 있다.   하지만 지킬박사는 힘겨운 싸움을 직면하고 있다. 그러한 극적인 각본 하에서 조차도, 민족주의적 반응들이 생겨나서 하이드씨의 승리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Evan Feigenbaum은 카네기 국제평화기금 산하 아시아프로그램의 비상임 선임연구원.Robert A. Manning은 대서양위원회의 선임연구원.
  • 오바마 대통령 미얀마 방문의 함의
    저자
    장준영(한국외대 동남아연구소)
    발간호
    2012-31
     미얀마나잉앙, 밍글라바!(안녕하세요 미얀마!).     미국 대통령으로서 최초로 미얀마를 방문한 오바마 대통령이 양공대학교에서 행한 연설의 첫 마디이다. 일상화된 외교적 관례로서, 또한 청중의 관심을 유발하기 위한 노련한 전략으로서 행한 그의 짧은 현지어는 지난 20년 이상 유지된 미국의 대 미얀마정책이 함축되어 있다. 비록 외교적 예우 차원에서 ‘미얀마’라는 국명을 사용했고, ‘버마’가 이 나라의 공식적인 국호라는 미국정부의 입장도 재확인되었지만 호칭의 이면에는 미국의 적지 않은 외교전략이 자리한다.    30분 남짓한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은 미얀마의 현실과 발전방향에 대한 미국식의 이해와 제안, 오바마 2기 행정부의 대외정책, 미얀마의 개혁개방이 북한에 주는 교훈 등 실로 다양한 내용이 포함되었다. 또한 떼잉쎄인 대통령, 아웅산수찌와의 회담 등 6시간이란 짧은 일정에도 불구하고 오바마 대통령의 미얀마 방문은 양국에게 많은 과제를 남겼다.   미얀마 방문의 일차적인 목적은 제재와 개입이라는 오바마 1기 행정부의 대 미얀마정책을 재확인하고, 정상화된 양국관계를 담보로 미국이 미얀마의 추가 개혁에 개입을 하려는 입장이 분명했다. 미얀마는 미국의 의도를 정확히 이해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방문에 즈음하여 총 452명의 재소자를 석방했는데, 미국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정치범은 66명이 포함되었다. 여카잉주 로힝자족(Rohingya)족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미얀마 정부는 전향적 자세를 선언했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전격 수용하겠다고 발표했다. 미국도 대통령령이나 대통령포고령으로 제정된 대 미얀마 경제제재를 완화하거나 완전히 철회했고, 금번 오바마 대통령의 방문을 계기로 보석류를 제외한 모든 미얀마산 제품의 수입금지법령을 철회했다. 미국국제개발처(USAID)가 중심이 되어 인도적 지원과 교육기회 확대, 민주적 시민사회의 성장을 위해 2년(2012-2013)에 걸쳐 1억7천만 달러를 투입할 계획이다. “정치는 정치인들만의 몫이 아닌 모든 국민의 것”이라는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처럼 미국은 미얀마 저변에 침투한 군부권위주의에 대한 두려움을 종식시키는데 물리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정신적 지원까지 아끼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미얀마 입장에서 지속가능한 개혁개방 환경 구축과 중국에 편중된 정치 및 경제구조의 정상화를 단 번에 해소하기 위한 유일한 해법은 미국의 제재 해제이다. 이에 반해 2011년 11월, 아시아 중시정책(pivot to Asia)을 선언한 미국은 오바마 2기 행정부의 출범과 함께 외교역량을 동아시아로 집중하기 위해 미얀마의 가치를 정확히 인식했고, 미얀마 방문을 아시아로 향하는 외교정책의 서막으로 규정했다. 이제 양국은 상보적인 이익 공유체제의 구도 하에서 서로를 지렛대로 설정하여 자국의 가치와 외교전략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아시아 외교복귀는 미얀마의 개혁개방과 개연성이 적지 않다. 양국은 부시(G. W. Bush)정권 말기인 2007년 중국에서 비밀회담을 시작으로 관계 개선에 들어갔고, 2008년 오바마 행정부가 대외 강경노선을 선회하면서 해빙가능성이 열렸다. 미국은 특사를 지명하여 신정부 출범 이후 미얀마의 개혁개방에 동조, 압박, 제안, 격려 등 다양한 외교전략을 구사했고, 1년 전 힐러리 클린턴 장관이 미얀마를 전격 방문하여 양국 관계의 정상화를 위한 방점을 찍었다. 그녀의 방문이 있기 열흘 전 미국은 스스로를 “태평양국가”라고 선언하여 아시아 외교 복귀를 공식화했다.   미국이 아시아를 택한 이유는 명확하다. 동아시아, 특히 동남아에서 확대된 중국의 영향력을 상쇄시키고 미국 중심의 일국 패권주의를 완성하려는 의도이다. 미국은 국제질서의 평화와 공존을 지향하지만 헨리 키신저(Henry Kissinger) 전 국무장관의 지적대로 중국과의 평화적 경쟁 환경이 구축되지 않는다면 군사적 대립과 같은 긴장관계는 불가피하다.   이에 반해 중국은 6대 아시아 전략을 설정하고, 체제 안정에 기여하는 경제발전을 바탕으로 영향력 있는 아시아 강대국으로서의 위상을 강화하고자 한다. 2020년에 즈음하여 중국의 국내총생산이 미국을 추월하고, 중국의 군비 예산도 미국과 동등해질 전망이다. 나아가 중국은 서태평양지역에 집중하여 군비를 확충하고 있다.   중국으로 인한 미국의 위기감은 미얀마에서 증폭된다. 호주 다윈을 거점으로 필리핀-태국-인도에 이르는 미국의 안보벨트는 중국 봉쇄전략으로 구체화되지만 미얀마가 이 벨트에 참가하지 않는 이상 성공가능성을 보장할 수 없다. 중국은 인도를 포위하고 중동에서부터 남중국해에 이르는 전략적 해로를 완성하는 차원에서 파키스탄 과다르(Gwadar)에서 미얀마 싯뜨웨(Sittwe)에 이르는 ‘진주목걸이전략’을 구체화했다. 여기서 싯뜨웨는 2013년부터 중국으로 수출될 미얀마산 천연가스와 함께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수송되는 원유의 중간기착지이자 1990년대 이후 중국이 현대화한 미얀마의 해군기지 세 곳 중 하나이다.   제18차 당대회에서 중국 공산당의 화두는 ‘해양굴기’(海洋屈起)였다. 남사군도와 센카쿠열도 영유권을 분쟁화하는데 성공했지만 남서쪽으로 ‘막힌’ 중국의 유일한 대안은 미얀마의 활용이다. 1988년 미얀마에 군부정권이 재차 들어섰을 때 중국은 가장 먼저 체제를 인정했고, 서방의 대 미얀마 압력정책이 시작되자 중국은 ‘혈맹관계’를 강조하며 미얀마에 대한 후견자 역할을 자처했다. 그러나 2007년 이후 미얀마에서 발생한 정치적 위기에 중국이 미온적 입장을 보이면서 군 수뇌부의 대 중국관은 변화했고, 2011년 신정부 출범과 함께 미얀마는 비동맹중립노선의 기조 위에 헤징전략을 선택했다. 미얀마를 둘러싼 지역 환경의 높은 불확실성과 고위험에 대비하여 상호 대응효과를 생산하는 유연한 균형 접근을 지지한 것이다.   미얀마 외교정책의 재편 가운데 벌어진 틈 속으로 들어간 미국은 중국에게 정면 도전했다. 미국은 중국만큼이나 미얀마의 미래를 저당 잡을 강력한 무기가 있고, 이에 미얀마도 미국의 지지와 후원이 없을 경우 국내적 개혁뿐만 아니라 외교정책의 변화에도 제동이 걸린다. 즉 미국은 미얀마에 대한 제제를 유지하며 미얀마와의 관계에서 주도권을 잡고, 동시에 미얀마 투자를 숙고하는 국가들에게 잠재적 위험성을 일깨워 미얀마의 개방 환경을 지연시킬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미얀마 방문은 변죽을 울리기보다 중국의 영향력이 강한 국가에서 중국을 직접적으로 견제하는 초강수를 둔 것으로 해석된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얀마에서 일어나고 있는 작금의 변화는 “먼 여행”(long journey)의 첫 단계로 규정하고, 미국식 민주주의와 인권개념의 확산과 발전이 달성되지 않으면 국가 긍정적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며 미얀마 지도부와 국민들에게 경각심을 유발했다. 이러한 과제가 “태평양국가”로서 미국에게 부여된 아시아 임무라며 미국의 외교정책을 은유적으로 미화했다.   미얀마의 개혁개방이 지속되는 환경 하에서 이제 미국은 미얀마에 대한 유화적인 입장을 강화하면서 미얀마를 지렛대로 활용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중국을 견제하는 아시아 외교전략 중 하나로 미얀마와의 군사협력에 주력할 것이며, 이런 정황은 여러 차례 포착되었다. 먼저 2011년 11월, 데릭 미첼(Derek Mitchell), 당시 미국 특사(현 미얀마 주재 미국대사)는 미얀마 군총사령관과 군사협력에 관한 회동을 실시했고, 금년 10월에도 프란시스 워친스키(Francis Wiercinski) 태평양사령관을 필두로 22명의 군부를 포함한 30명의 대표단이 미얀마를 방문했다. 이 방문 이후 미얀마 군부는 코브라 골드(Cobra Gold) 군사훈련의 참관자격을 얻었다. 또한 지난 9월 미얀마 대통령과 아웅산수찌의 미국 방문 직전,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는 한 편의 보고서를 통해 미얀마 신진 장교에 대한 군사훈련 및 교육지원, 소수종족 문제 해결을 위한 양국의 공동 군사훈련을 제안했고, 향후 샹그릴라회담과 아세안 국방장관 회담에 미국의 개입 필요성을 강조했다. 미국은 1970년대 아편생산을 퇴치한다는 명분으로 중국과 인접한 미얀마 동북부 지역에 헬기와 정찰기 등 군 장비를 지원했으며, 아직까지 이 지역의 분쟁이 해결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즉 미얀마의 내전종식과 국민화해를 기치로 중국과 인접한 지역에 미군을 진출시키거나 미얀마 군부의 역량 강화에 미군이 직접 참여함으로써 미얀마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한다. 이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경우 중국은 직접적인 안보딜레마에 봉착할 것이다.   미얀마는 중국에 의존하려는 관행을 포기했지만 외교정책의 우선 대상국으로서 중국의 가치를 평가절하하지 않는다. 양국은 전략적 동반자관계로서, 미얀마 외교정책에 있어서 중국은 절대 가치의 대상국이며, 중국이 해체되지 않는 이상 이 기조의 변화 가능성은 매우 낮다. 미얀마의 국익 추구 전략이 기존의 편승에서 주도적 개입으로 전환되었기 때문에 미얀마에게 있어서 미국도 불확실한 지역 환경의 중요한 행위자로 간주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헌법에 명시된 외국군의 주둔, 군사동맹 체결 금지 등의 조항을 미국에 한해서 예외로 설정할 가치가 없다.   다만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가 미국이고, 미국과의 관계 증진을 통해 얻는 미얀마의 반사이익은 극대화될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므로 미얀마는 오바마 2기의 대외정책에 동조하기보다 역시 미국을 지렛대로 활용하여 중국의 영향력 상쇄와 자국의 지속적인 정치 및 경제발전 환경 구축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미얀마를 매개로하여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이 심화될 것으로 관측하지만, 미얀마는 두 강대국의 관계에서 상수가 아니라 가장 중요한 변수이다. 아시아를 둔 두 국가의 경쟁이 어느 쪽으로 무게중심이 실린다면 그 일차적 원인은 미얀마를 중심으로 살펴야 할 것이다.     “쩨주띤바데”(감사합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 짧은 인사말로 청중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러나 현실화된 중국과의 총성 없는 대립구도에서 종국에는 승리를 도모한 미국이 미얀마 국민들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되었으면 하는 오바마의 간절한 바람일지도 모른다. 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現 한국외국어대학교 동남아연구소 책임연구원.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미얀마 군부의 정권유지 전략에 대한 연구로 국제관계학 박사학위를 취득함(2009). 미얀마 정치변동과 국가-사회관계, 동남아 국제관계 등에 관한 다수의 논문과 저서가 있음.
  • UN 안보리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
    저자
    홍미정(단국대학교 GCC 국가 연구소)
    발간호
    2012-30
      1967년 이후 2012년 현재까지 UN 안보리에서 가장 빈번하게 논의된 중동문제는 1967년 전쟁이 유발한 분쟁에 대한 평화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 분쟁과 관련하여 현재까지 50번 이상의 UN 안보리 결의가 채택되고, 분쟁 당사자들은 협상을 계속해 왔으나 해결 전망은 매우 불투명하다.   1967년 이스라엘이 일방적으로 승리한 전쟁을 통해서, 이스라엘은 요르단으로부터 동예루살렘을 포함한 서안을, 이집트로부터 가자와 시나이, 시리아로터 골란 고원을 빼앗았다. 2012년 현재까지 국제적인 합의를 도출하지 못한 상태로, 이스라엘이 동예루살렘을 포함한 서안과 가자 그리고 골란 고원을 점령하고 있는 것은 국제법 위반이며, 이 지역 불안정성의 중요한 원인이다.   이 분쟁에 대해서 UN 안보리가 중동에서 정당하고 지속적인 평화를 수립하기 위한 것이라고 제시한 최초의 평화적 해결책은 1967년 11월 22일 242호 결의이다. [UN 안보리 결의 242호] ○ 최근의 분쟁에서 점령한 영토로부터 이스라엘 무장 병력의 철수○ 교전 주장과 교전 상태 중지. 이 지역에 있는 모든 국가의 주권과 영토 보전, 정치적 독립 인정과 존중. 그리고 위협이나 무력 행위가 없는 안전하고 인정된 경계 내에서 평화롭게 살 권리 존중과 확인○ 국제 수로에서의 자유로운 항해 보장○ 난민 문제의 공정한 해결○ 비무장 지대 수립 등을 포함하는 조치들을 통해서 이 지역에 있는 모든 국가의 영토에 대한 불가침성과 정치적 독립 보장  현재까지 이 분쟁에 대하여 채택된 UN 안보리 결의들과 분쟁 당사자들 사이에서 체결된 협정들은 모두 242호가 분쟁 해결의 토대라고 강조하고 있다. 현재 분쟁 당사자들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인들도 안보리 결의 242호가 분쟁 해결의 기초라는 사실에 합의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쟁은 계속되고 있다.   이스라엘/이집트, 이스라엘/요르단 국경 획정 협정   중동 최초의 평화 협정이라고 불리며,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이 중재한 이스라엘-이집트의 캠프데이비드 협정(1978년 9월 17일)과 국경획정 협정(1979년 3월 26일)은 모두 UN 안보리 결의 242호(1967년 11월 22일)에 토대를 둔다고 밝히고 있다. 1979년 국경 획정 협정을 통해서 이스라엘은 시나이 반도를 이집트에게 반환하였고, 이집트는 가자를 이스라엘 영역으로 인정하였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중재한 이스라엘-요르단 국경획정 협정(1994년 10월 26일)도 UN 안보리 결의 242호에 기반을 둔다고 밝힌다. 이 협정에서 요르단은 동예루살렘을 포함한 서안을 이스라엘 영역으로 인정하였다.   결국, 미국이 중재하는 두 협상을 통해서 이스라엘/이집트, 이스라엘/요르단은 242호에 토대를 두고 국경을 획정함으로써 영토 분쟁을 해결하였다. 이스라엘은 협상을 통해서 이집트로부터 가자에 대한 영유권을, 요르단으로부터는 동예루살렘을 포함하는 서안에 대한 영유권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국제법상으로 동예루살렘과 서안, 가자는 여전히 불법적인 이스라엘의 점령지이며, 이곳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은 독립국가 건설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UN 결의와 팔레스타인 국가   1974년 11월 22일 UN 총회결의 3237호는 PLO(팔레스타인 해방기구)에게 UN 총회의에서 ‘옵서버의 지위’를 부여했다. 1988년 11월 15일 PLO가 알제에서 ‘예루살렘을 수도로 하는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 선언을 하였다. 1개월 후 12월 15일 UN 총회는 ‘팔레스타인 국가 선언(the proclamation of the State of Palestine)을 인정’하는 결의(G.A. Res. 43/177)를 채택하였다. 이 결의는 UN의 장에서 ‘Palestine’라는 호칭이 ‘PLO’를 대체하도록 결정하고, UN 사무총장에게 이 결의를 실행시키기 위한 조치를 취하도록 요구하였다. 이로써 UN 총회결의에서 팔레스타인은 ‘국가로서의 지위’를 명시적으로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UN 안보리 결의들에도 ‘팔레스타인 국가’는 존재한다. 2000년 9월 이후 발생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비극적인 폭력 사태를 해결하기 위하여 2002년 3월 12일 안보리 결의 1397호는 확실하고 승인된 경계 안에서 병존하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라는 두 국가(two States, Israel and Palestine)라는 전망’을 확인하면서 ‘보편적으로 수용되는 국제적인 인도주의 법’을 존중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이와 유사한 내용으로 UN 안보리는 2002년에만 1402호, 1403호, 1405호, 1435호 등 5회에 걸쳐 재차 결의하였다.   2003년 11월 19일 UN 안보리 결의 1515호는 “UN, EU, 미국, 러시아가 후원하며,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 대한 영구적인 두 국가 해결책(a Permanent Two-State Solution)으로 이끄는 로드맵을 지지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 로드맵은 2002년 6월 미국 대통령 조지 부시가 “독립적이고, 민주적이며, 생존 가능한 팔레스타인 국가 창설”을 제시하면서 구상된 것이다.   2008년 12월 16일 UN 안보리 결의 1850호는 “확실하고 승인된 경계를 갖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라는 두 민주 국가들(two democratic States, Israel and Palestine)이라는 전망”을 재차 강조한다. 2009년 1월 8일에 이스라엘의 가자 공격과 관련하여 채택된 UN 안보리 결의 1860호는 242호, 338호, 1397호, 1515호, 1850호를 명시적으로 재확인하면서, “가자는 1967년에 점령된 영토의 분명한 일부이며, 팔레스타인 국가(the Palestinian State)의 영역이 될 것이다”라고 강조한다.   바람직한 UN의 역할   UN 안보리 결의들에서 볼 때, 팔레스타인은 영토 없이 문서상으로만 존재하는 국가의 지위를 이미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이제 안보리 결의 사항들을 실천하기 위해서 UN을 비롯한 국제 사회가 논의해야할 사안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국경을 합리적으로 획정하는 문제로 보인다.   최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꺼내 든 ‘UN 옵저버 국가’ 지위획득 논의는 분쟁해결에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중요한 쟁점을 가리는 역할을 한다. UN이 팔레스타인에 ‘UN 옵저버 국가’ 지위를 부여할 것인가를 논의하기보다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국경 획정’이라는 현실적이고 분명한 논의를 하는 것이 당면한 분쟁을 합리적으로 해결하고 중동 평화로 가는 지름길이다. 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기획: 편집: 現 단국대학교 GCC 국가 연구소 연구교수. 경희대학교 사학과에서 중동 현대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건국대학교 중동연구소 연구교수를 역임. 울지마 팔레스타인(공저)를 비롯하여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문제에 관한 다수의 저서와 논문이 있음.
  • 아랍에미리트에 부는 한류 열풍
    저자
    Christopher BROWN(Zayed University, UAE)
    발간호
    2012-29
     처음에는 한국이 아랍에미리트의 사랑을 받는다는 말이 특이하고 우발적인 것처럼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의심할 여지없이, 아랍에미리트의 젊은 세대들, 특히 대학생들은 한국의 모든 것에 완전히 사로잡혀 있다. 말이 되는 것이, 보다 면밀히 살펴보면, 경제, 사회, 문화적 유사점들의 토대가 견고하여 향후 십 년간은 두 나라와 국민들 사이의 관계가 증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대통령 산하 국가브랜드위원회는 아마도 한국을 알리는 가장 의례적이고 공식적인 기획자이며, 매우 성공적이라는 것을 입증해왔다. 2009년에 시작된 표면상의 전략적 목표들은 다문화주의를 수용하고, 지구시민의식을 고취시키며, 기술과 통상을 촉진시키고, 문화와 관광을 장려하는 것이었다. 한국을 알리는 플랫폼으로서, 위원회는 여러 대사관과 행정부처, 재단, 다른 기관들과 함께 끊임없이 연줄을 만들고 “한류”의 확산을 장려해왔다.  하지만 이러한 공식적인 노력의 이전부터, 진보적인 TV 경영자들은 아랍시장에서 한국드라마의 대중성과 잠재력을 인식하였다. 2007년에는 이미 아랍어로 녹음된 대장금이 두바이에서 방송되었다. 이러한 한국 TV쇼에 대한 노출로 인해 한국문화의 단면을 접할 통로가 생겼기 때문에 한국문화에 친숙해질 토대가 마련되었다. 마찬가지로, 삼성, LG, 현대, 기아 등을 포함한 주요 기업들의 마케팅은 한국 상품을 고품질, 돈 값어치, 신뢰성과 결부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 과정에서 이러한 속성들은 상품뿐만이 아니라 한국이라는 브랜드와도 결부되었다.  이 곳, 자이드대학교(두바이와 아부다비, 아랍에미리트)에서, 우리는 학생들 사이에서 한국의 문화, 예술, 언어에 대한 상당한 관심을 보아왔다. 한국의 문화체육관광부가 아낌없이 지원하는 자이드대학교 킹세종연구소를 통해, 수백 명의 학생들이 한국어 수업을 듣고 한국에서 하는 현장학습에 참여하였다. 자이드대학교의 한국클럽과 아랍에미리트 전역의 다양한 기관들과 친선협회에는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 왔는데, 이것들은 영화에서 K팝에 이르기까지, 태권도에서 한국요리에 이르기까지, 한국 문화의 다양한 측면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공유할 기회를 제공한다.  “강남 마니아”가 나오기 훨씬 이전부터 한국의 세계적 브랜드는 확실히 상승세였다. 싸이의 히트곡은 가장 최근에, 아마도 가장 광범위하게, 이러한 추세가 반복된 것일 뿐이다. 소비지상주의와 호사스러운 생활에 대하여 가벼운 풍자를 하고 있는 ‘강남스타일’은 이와 동시에 터무니없이 상업적이고, 그러한 과잉이 바람직하다고 찬양하는 생활방식을 조롱하고 있다. 윌리엄 페섹이 언급한 대로, “한국인들은 국내총생산(GDP)의 증가가 반드시 이에 상응하는 국가총행복지수를 초래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 가고 있다.” 이렇게 뒤섞인 메시지는, 국가의 방대한 부를 엄청나게 향유하고 있지만 과도한 소비지상주의의 지속가능성과 타당성에 회의를 품기 시작한 아랍에미리트의 젊은이들에게 의심할 여지없이, 아마도 잠재의식적으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한국인들은 세계적 영향력을 지닌 지역강국으로서의 위상을 계속해서 높여가고 있으며, 이로 인해 수 세기 동안 한국인들을 충족시켜온 전통과 양식들이 위험에 처해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랍에미리트도 유사한 역할을 성급하게 추진해 오면서, 한국과 같이 자신의 독특한 정체성과 유산의 상실을 우려하고 있다. 한국어와 아랍어는 모두 각자의 문화에 있어서 불가분의 요소이지만, 통상과 교육, 대중문화의 영역에서 영어의 사용이 증가함에 따라 도전을 받고 있다. 지구화된 사회에서 국가의 정체성과 전통주의를 위한 투쟁은 진짜 현실이며, 두 나라간 유사점 중의 하나라고 하겠다.  한국에 대한 아랍에미리트 학생들의 집착을 이해하려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몇 가지 동인을 들 수 있다. 두 나라간의 경제적 통상관계는 확실히 상호작용을 받쳐주는 토대이다. 한국전력공사(KEPCO)가 건설계약을 맺은 핵 원자로이든, 아랍에미리트소재 한국기업들에 의해 발생한 상당수의 판매 분야이든, 석유나 가스 산업이든지간에, 젊은이들은 항상 최고의 직장을 잡기 위한 경쟁에서 자신을 다른 졸업생로부터 차별화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한다. 당연하게도, 학생들은 주요 통상 파트너의 언어와 문화에 대한 관심을 보일 수 있다면 구직시장에서 유리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는 학생들의 관심이 오로지 금전적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이다. 선택이 가능한 많은 문화 중에서, 한국문화에는 아랍에미리트의 젊은이들에게 강력하게 반향을 일으키는 무언가가 있다. 아마도 그것은 한국과 아랍에미리트 사회에서 공히 떼려야 뗄 수 없는 가족과 연장자의 중요성일 수도 있다. 또는 두 나라 모두 지난 오십년 동안 사회경제적 지위가 상승된 속도가 극도로 빨랐다는 점일 수도 있다. 두 문화에서 깊은 역사를 갖고 있는 다도, 서예, 직물공예, 도예와 같은 전통과 전통예술에 대한 존중일 수도 있다. 또 한편으로는, 현 세계 속에 자신의 정체성을 투영할 수 있는 토속적 대중문화를 만들어 내려는 열망일 수도 있다. 십중팔구는 이 모든 공감적 요소들이 아랍에미리트와 한국문화 간의 접근성과 유사성에 기여하고 있다.  청소년들이 이끄는 친선교류에 있어서 가장 전도유망한 측면 중의 하나는, 인간적 상호작용이 문화적 이해의 열쇠라는 것을 학생들이 직감적으로 알고 있다는 점이다. 그 결과, 아랍에미리트 학생들은 문화와 언어를 더욱 깊이 이해하고 친구를 만들기 위해 한국에서 시간을 보내려고 아우성을 치고 있다. 수십 명의 아랍에미리트 학생들이 2012 여수세계박람회의 아랍에미리트 전시관에서 안내 자원봉사를 하였다. 이와 유사하게, 자이드대학교에서 한국 학생의 방문을 유치하거나, 연례 아부다비 한국영화제를 개최할 때면, 학생들은 개인 대 개인(P2P) 접촉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의 상호작용은 매우 소중하며, 틀림없이 더욱 커다란 사회문화적 이해로 이어질 것이다. 아랍에미리트와 한국정부가 관광산업을 경제적 대들보로 만들려는 야심찬 계획을 갖고 있으므로, 두 나라간의 이동과 여행의 기회는 충분해질 것이다.  아랍에미리트와 한국은 타고난 친구이며, 서로에게 배울 점이 많다. 최상위의 정부수준으로부터 가장 일반적인 문화유산의 교류에 이르기까지, 두 나라의 양자관계에는 엄청난 장래성이 있다. 한류가 아라비아만의 따뜻한 해역으로 밀려들고 있으며, 지역주민들은 이를 온전히 인정하고 있다.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現 Zayed University의 국제프로그램 및 해외연구 디렉터. Zayed University의 인문학 부교수와 영국 Durham University의 명예연구원을 역임. 2000년부터 아부다비에 거주.
  • Affinities between the ROK and the UAE
    저자
    Christopher BROWN(Zayed University, UAE)
    발간호
    2012-28
      At first glance, describing the Republic of Korea as the darling of the United Arab Emirates may seem bizarre and random. But there can be no doubt that the younger generation of UAE citizens particularly university students are absolutely smitten with all things Korean. It makes sense: closer analysis reveals a solid foundation of economic, social, and cultural affinities that suggest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two nations, and their peoples, will only increase in the coming decade.  The Presidential Council on National Branding is perhaps the most formal and official promoter of Korea, and it has proven to be very successful. The ostensible goals of the strategy, launched in 2009, are to embrace multiculturalism, to promote global citizenship, to promote technology and commerce, and to encourage culture and tourism. As a platform from which to promote Korea, the Council, alongside the Embassies and a host of Ministries, Foundations, and other organizations have been tireless in making connections and encouraging the spread of the “Korean wave.”  But even before these formal efforts, forward thinking TV executives recognized the popularity and potential of Korean dramas for the Arabic market. As early as 2007 Arabic-dubbed episodes of Dae Jang Geum were being aired out of Dubai. Exposure to Korean television shows like this set the stage for familiarity by creating a channel of access to an aspect of Korean culture. Similarly, marketing efforts by major companies including Samsung, LG, Hyundai, Kia, and others strove to associate Korean products with high quality, value for money, and reliability. In so doing, these attributes became associated not only with the products, but with the brand of Korea.  Here at Zayed University (Dubai and Abu Dhabi, UAE), we have witnessed amongst students a massive interest in Korean culture, arts, and language. Through the ZU King Sejong Institute, generously supported by the Korean Ministry of Culture, Sports, and Tourism, hundreds of students have participated in Korean language courses and participated in study trips to South Korea. Even greater numbers have joined the University’s Korea Club, and various other organizations and friendship societies across the UAE, that afford an opportunity to share their interest in various aspects of Korean culture, from films to K pop, from Tae Kwan Do to Korean cuisine.  Well before “Gangnam mania” the South Korean global brand was clearly on the rise. Psy’s hit song is only the latest and perhaps most widespread iteration of this trend. As a gentle satire of consumerism and luxurious living, Gangnam Style simultaneously pokes fun at a lifestyle that is crassly commercial and that celebrates the desirability of such excesses. As William Pesek notes, “Koreans are coming to the realisation that GDP gains do not necessarily result in commensurate gross domestic happiness.”  Doubtless, perhaps subconsciously, this mixed message resonates with young Emiratis who overwhelmingly benefit from their nation’s vast wealth, but who also are beginning to question the sustainability and desirability of hyper-consumerism.  South Koreans are still growing into their status as a regional powerhouse with global influence at risk are the traditions and patterns that have served them well over centuries. Similarly, the UAE has launched headlong into a similar role, with the same concerns over losing their unique identity and dismissing their heritage. Both the Korean and Arabic languages are inextricable components of their respective cultures, but both are being challenged by the increasing use of English in commerce, in education, and in popular culture. Such struggles for national identity and traditionalism in a globalized society are very real and amount to another of the affinities between the two nations.  In trying to understand UAE-students’ obsession with South Korea, there are several generally accepted drivers. Surely the economic and commercial relationship between these two nations is the foundation upon which interaction rests. Whether it be the nuclear reactors that KEPCO has been contracted to build, the strong sales numbers generated by Korean firms in the UAE, or the oil and gas industry, young people are always seeking ways to differentiate themselves from other graduates in the competition for the best jobs. Rightly, students know that if they can demonstrate an interest in a key commercial partner’s language and culture, they give themselves an advantage in the job market.  This is not to say that students’ interest is purely mercenaryfar from it. Rather, of all the many possible cultures to choose from, there is something about South Korean culture that resonates strongly with young people in the UAE. Perhaps it is the shared importance of family and elders that is an inextricable part of both Korean and Emirati societies. Or maybe it is extreme swiftness with which both nations have risen in social and economic status over the past fifty years. It may be respect for tradition and the traditional arts, like tea ceremonies or calligraphy or textile weaving or pottery, all of which have deep histories in both cultures. Then again, it may be the desire to invent an indigenous popular culture that will project their identity into the contemporary world. In all likelihood, all of these shared elements contribute to the accessibility and affinity between Emirati and South Korean cultures.  One of the most promising aspects of youth-driven national friendships is that students intuitively know that human interaction is the key to cultural understanding. As a result, UAE students are clamoring to spend time in Korea to further understand the culture and language, and to make friends. Dozens of UAE students volunteered to spend time as greeters at the UAE pavilion at the World Expo 2012 in Yeosu. Similarly, when at Zayed University we host visitors from South Korea, or when we produce the annual Abu Dhabi Korean Film Festival, the students insist upon peer-to-peer contact. Such interactions are invaluable and will no doubt lead to greater social and cultural understanding. Given that both the UAE and ROK governments have ambitious plans for tourism to serve as an economic pillar, there will be ample opportunities for mobility and travel between the two nations.  The UAE and the ROK are natural friends, with much to learn from each other. From the highest levels of government to the most casual exchange of cultural output, bilateral relations between our nations have enormous promise. The Korean wave has rolled into the Arabian Gulf’s warm waters, and the local population fully approves.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기획:편집:* Dr. Christopher K. Brown serves as Director of International Programs & Study Abroad at Zayed University. He is also Associate Professor of Humanities at ZU and an Honorary Fellow at Durham University (UK). Dr. Brown has lived in Abu Dhabi since 2000.
  • Recent US Government Assistance in Southeast Asia
    저자
    Michael ARDOVINO(USAID Knowledge Services Center)
    발간호
    2012-27
      The US Government administers foreign assistance to every country in Southeast Asia, even those that have had long-term isolationist and even hostile governments.1) USAID has or has had a presence in Malaysia, Laos, Cambodia, the Philippines, Vietnam, Indonesia and Thailand and has recently reopened the mission to Burma. 2) Indonesia   In 2010, the only country in Southeast Asia to receive more than $300 million in economic assistance was Indonesia. 3) The USAID-funded Partnership for Economic Growth (PEG) project was an effort to fiscally decentralize subnational governments in Indonesia. Such development activities are not unusual in post-authoritarian or even authoritarian societies such as the Philippines and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By emphasizing local and regional governments’ abilities to carry out fiscal responsibilities, efficiency gains emerge and local governments control more revenue.4)   Another project, the Local Governance Support Program, which concluded in 2009, attempted to integrate civil society, governance, and local public administration subsectors. 5) Cambodia  USAID began human rights programs in Cambodia in the early 1990s, a country still recovering from political violence by an extremist regime (the Khmer Rouge) and occupation by a foreign country in Vietnam. 6) Taking this history into account, USAID project officers designed the Cambodian Program on Rights and Justice (PRAJ) to increase human rights advocacy, direct legal representation and professional development for lawyers and magistrates as well government judicial institutions like Ministry of Justice and Ministry of Interior. 7) A typical strategy for USAID in implementing such a program is partnering with existing local non-governmental organizations (NGOs), in this instance, public service, human rights and legal aid organizations. 8) Local NGOs sitting in civil society and outside the state are frequently brought to bear as effective development implementers when a country’s government is too weak or corrupt to function as a partner.   The US Government and USAID in particular have a strong and successful track record in assisting developing countries in East Asia in reforming their respective economies and political systems. In Southeast Asia, USAID is now applying the lessons learned and best practices from years of work in South Korea, Taiwan and even Japan. This way, Asia can not only accelerate its growth and status as one of the most vibrant and important parts of the world but it can help other less fortunate regions of the world to do so as well. _____1) USAID has administered limited education and health programs to refugees on the Thailand/Burma border, and disaster assistance. See Richard Kraft. 2004. Thailand/Burma health and education activities review: Education sector final report..2) See “USAID Swears in First Mission Director to Burma in 24 Years”. USAID Official Blog. September 5, 2012.3) See “USAID Overseas Loans and Grants Foreign Assistance Fast Facts. 2010”.4) Trujillo, Horatio R. 2000. Local government revenue strategies: Recognizing pitfalls in the intergovernmental fiscal reform experiences of China and the Philippines. P. 7.5) Local governance support program (LGSP): final project report. 2009. USAID.6) Evaluation of the Program on Rights and Justice (PRAJ): Final Report. 2008. USAID. P. 64.7) Ibid. P. 4.8) Ibid. P. 8. 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Michael ARDOVINO is the Senior Researcher on Democracy and Governance at the United States Agency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s Knowledge Services Center in Washington D.C. He studied political science at the University of Texas at Austin, the University of North Texas and the Catholic University of America. He has published in such journals as Comparative Strategy, The Journal of Slavic Military Studies and Demokratizatsiya: The Journal of Post-Soviet Democratization. His dissertation research focused on European accession and popular support for political and economic integration.
  • Training the Tigers for the Jungle
    저자
    Michael ARDOVINO(USAID Knowledge Services Center)
    발간호
    2012-26
      Historically, the United States Government has provided foreign assistance to countries in East and Southeast Asia via several Departments including State, Defense, Agriculture and Treasury. However, the United State Agency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 (USAID) disburses more economic assistance as an individual organization yearly than any other government entity.1) USAID formed in 1961 as a result of the US Foreign Assistance Act and became the first organization whose primary emphasis was on long-range economic and social development assistance to foreign countries.2)   Economic assistance became a foundation for American foreign policy during the earliest years of the Cold War and an artifact of the Marshall Plan, itself an effort to stabilize Western Europe after the destruction of World War II. By the 1970s, funds sent to Europe, Latin America, Asia and Africa primarily consisted of food and nutrition, population planning, health and education and human resources development programs.3) The 1980s saw a shift to an emphasis on export-oriented production and trade projects to stabilize currencies and financial systems, and an overall view that market-based principles are most effective in driving development. The 1990s initiated a country sustainable development approach that encouraged a recipient initiative to increase quality of life, a broad policy that also used local organizations to administer some activities.4)   US foreign policy bodies, including USAID, did not specifically pursue development programs and activities focusing on democratization, governance, rule of law or human rights protection on a large scale until after 1989 when a global shift away from authoritarianism started in Eastern Europe.5) When democracy-governance (DG) programs did begin, priorities and much funding went to former Warsaw Pact countries in Europe, Latin America and sub-Saharan Africa. Earlier DG programs in Asia, the glaring example being public safety and security sector programs in South Vietnam, achieved notoriety in the eyes of the American public and among lawmakers, for this association with heavy-handed political repression and torture by host governments receiving funds.6)     US Government Assistance in East Asia: A Model of Success?   The United States’ first critical humanitarian and security presence in Asia was in Japan and Korea, initiated by the San Francisco Treaty in 1951, an agreement that would bring Tokyo into America’s military and economic umbrella of support.7) Subsequently, Japan’s “development state” led by the Ministry of Trade and Industry (MITI) promoted technology transfer and available investment capital within the US-led global trading system,8) resulting in Japan’s “economic miracle” by the early 1960s. South Korea, Taiwan, Singapore and Hong Kong followed similar paths to economic development in the 1970s, making Japan a role-model for East Asian governments.9)     South Korea   American economic assistance to Seoul started in 1952 in a post-conflict context with an influx of medical professionals and researchers into the peninsula,10) eventually leading to specialized development activities such as the Korea Health Demonstration Project from 1975-1980.11) Other non-health sector projects in economic growth, agriculture, infrastructure and education contributed to a new cadre of educated experts12), new institutions, laws, and procedures to promote South Korean exports13), critical land reform and food aid14), and infrastructure investment and technical assistance to build railways, ports and power systems for investment in long term growth and prosperity.15) South Korea graduated from USAID’s development assistance in 1980 16) as perhaps the preeminent development success story of the post-World War II era17) with its eventual successful economic, financial and later political transition. South Korea would become an aid donor rather than a continuing aid recipient.18)     People’s Republic of China (PRC)   US government funding of rule of law projects in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has included several different agencies. The State Department’s Democracy, Rule of Law and Labor (DRL) Bureau spend the largest sums, including $2 million allocated in 2008, for law and judicial support programs along with NGO organizations.19) Since 1999, USAID and State have collaborated on $12 million of legal training programs using American law schools as implementing partners. The US Congress funded National Endowment of Democracy (NED) spent nearly $20 million in the 1990s through its grant-making program and core institutes to assist rule of law, promote the rights of workers and women, and strengthen village elections in China, while assisting in the development of Tibetan communities.20)   A specific example of a USAID program in China emphasizing rule of law was Temple University’s Master of Laws program, an effort to train Chinese judges, prosecutors and other legal officials in American and other international legal principles. The program also emphasized human rights protection by providing educational opportunities to ethnic minority (non-Han) students, including Tibetans, to assist in the advancement of disadvantaged groups there.21)   _____1) USAID Overseas Loans and Grants Foreign Assistance Fast Facts. 2010. USAID disbursed roughly $10.5 billion, the Department of State $9.4 billion, and the Department of Agriculture $2.6 billion.2) “USAID history” from the official USAID Website.3) Ibid.4) Ibid.5) Carothers, Thomas. 1999. Aiding Democracy Abroad: The Learning Curve. Washington DC. Carnegie Endowment for Peace P. 6.6) Carothers. P. 367) “Korean War and Japan’s Recovery”. US Department of State Office of the Historian website.8) Johnson, Chalmers. 1982. MITI and the Japanese Miracle: The Growth of Industrial Policy, 1925-1975.: Palo Alto Stanford University Press. P.15.9) See James Fallows. 1994. Looking at the Sun: The Rise of the New East Asian Economic and Political System. New York: Pantheon Books.10) South Korea: From Aid Recipient to Donor. USAID.11) Dunlop, David W., Oldwine, Eilene B., et al. 1982. Korea health demonstration project. . AID project impact evaluation report number 36. USAID.12) The Role of Foreign AID in Development: South Korea and the Philippines. 1997. Congressional Budget Office.13) Ibid.14) Ibid.15) Ibid.16) “Celebrating USAID’s Role in South Korea’s ‘Graduation’ 2011.” USAID blog.17) The Role of Foreign AID in Development: South Korea and the Philippines. 1997. Congressional Budget Office.18) See “Korea, new role model for development assistance, Apr 16, 2012. Korea.net.”19) Lund, Thomas. 2008. U.S.-Funded Assistance Programs in China. Congressional Research Service. P. 2 of PDF.20) Lund. P 6 of PDF21) Reinstein, Robert J. 2004. Final report: Rule of law projects in China GDG-A-00-01-00020-00, September 25, 2001-August 31, 2004. Temple University, USAID. Bureau for Economic Growth, Agriculture and Trade. Office of Education. P. 14. 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Michael ARDOVINO is the Senior Researcher on Democracy and Governance at the United States Agency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s Knowledge Services Center in Washington D.C. He studied political science at the University of Texas at Austin, the University of North Texas and the Catholic University of America. He has published in such journals as Comparative Strategy, The Journal of Slavic Military Studies and Demokratizatsiya: The Journal of Post-Soviet Democratization. His dissertation research focused on European accession and popular support for political and economic integration.
  •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을 통해 본 원자력 외교의 바람직한 방향
    저자
    전재성(서울대학교)
    발간호
    2012-25
    ​I. 한미원자력협정 개정 경과  한국은 2014년 ‘원자력의 민간 이용에 관한 협력을 위한 협정(이하 한·미 원자력 협정)’의 개정을 앞두고 있다. 이 협정은 1956년 한·미 간 ‘원자력의 비군사적 사용에 관한 협력협정’ 체결에서 시작되었지만, 1974년에 현행 협정으로 대체되었고, 2014년 3월 만료를 앞두고 있다.  한미 양국은 협정의 연장과 새로운 내용의 확정을 위해 2010년부터 협상을 벌여오고 있다. 최근 양국 간 미사일 협정 개정에 관한 협상이 타결되면서 한미원자력협정을 둘러싼 본격적 협상의 향방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협정의 개정은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뿐 아니라 비확산을 위한 양국의 노력과 연결되어 있으므로 전반적인 한미관계, 한미동맹의 미래비전과 전반적으로 관계되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2012년 11월의 미국 대통령 선거, 12월 한국의 대통령 선거 이후 새롭게 출범하는 양국 간의 전체적인 한미관계 역시 한미원자력협정 개정 방향에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II.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을 둘러싼 문제들  원자력의 이용과 핵무기를 둘러싼 안보정책을 둘러싸고 그간 한국에서는 일관된 종합적 정책을 도출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어온 것이 사실이다. 우선 안보의 문제가 있다. 냉전 종식과 더불어 한반도 평화에 대한 많은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1993년 북핵위기가 발생하고 이후 북한은 플루토늄을 이용한 핵탄두 개발에 성공했고 현재 우라늄 농축에 의한 핵무기 개발을 해온 것으로 알려지면서 안보의 문제가 부각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은 미국의 확대억지에 의해 북한의 핵공격을 억지해오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미사일 사정거리가 미본토에 이를 경우 미국의 대한국 핵억지 공약이 약화될 가능성, 한미관계의 악화로 확대억지의 공약이 약화될 가능성, 북한의 핵개발 및 실질적인 대남 핵공격 위협이 가속화될 가능성 때문에 한국 내 자체 핵무기 개발에 대한 여론이 간헐적으로 고개를 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의 비확산 의지에 대한 미국과 세계의 의심은 가중되어 왔다.  둘째, 한국 내 원자력 기술 개발과 상업적 이용의 경향과 비확산 노력이 절절히 결합되지 못한 문제가 있다. 한국의 원자력계는 눈부신 발전을 계속하여 세계 수준의 원자력 기술 강국이 되었고 마침내 원자로 수출국이 되었다. 현재에도 한국 원자력계는 파이로프로세싱 등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여 확산방지력을 가진 원자력 기술을 개발하려 하고 있다. 또한 원자력의 상업적 이익을 위한 다양한 경제행위자들은 이익 극대화를 위해 시장논리에 따라 움직여왔다. 문제는 이러한 기술 개발과 상업적 노력이 적절한 비확산 정책의 강화와 연결되어 오지 못했다는 것이다. 원자력 기술 개발과 비확산을 위한 정책적 결의가 국가 차원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한국의 원자력 기술 개발에서 비롯될 수 있는 확산가능성에 대한 의심을 완전히 불식시킬 수 있는 것이다.  셋째, 원자력 개발과 비확산을 둘러싼 국내 정치세력과 여론들의 분열양상을 들 수 있다. 향후 한국의 원자력 및 안보 방향에 대한 견해는 크게 넷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핵주권론, 핵비확산론, 탈핵론, 핵실용론 등이 그것이다. ‘핵주권론’은 원자력의 이용 확대를 선호하고, 특히 농축재처리를 포함한 핵연료주기 능력의 즉각적인 도입을 주장하는 입장이다. 핵주권론을 다시 양분하면, 미래 핵무장을 염두에 두고 핵잠재력의 확보를 위해 농축재처리 도입을 주장하는 입장과 핵무장을 거부하면서 원자력을 위해 독자적이며 즉각적인 농축재처리 역량을 확보하자는 주장이 있다. 반핵주기론은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수용하면서도 한미동맹의 중요성, 원자력 연료 공급 시장의 안정성, 국제비확산레짐의 유지 필요성, 북한 비핵화를 위한 완전한 입지 확보 등을 이유로 핵주기에 대한 요구 자체를 포기하는 입장이다. 탈핵, 반핵론은 환경적 관점에 따라 원자력의 이용을 거부하며, 진보적 반전평화 신념에 따라 농축재처리 활동도 거부하는 입장이다. 핵실용론은 핵무기 개발을 포기한 NPT에 따라 핵무장을 철저히 반대하지만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적극 지지하며, 이를 위해 실용적, 탈정치적 고려에서 핵연료주기능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중도적 입장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은 농축, 재처리를 불허함은 물론, 파이로프로세싱 등의 기술 개발에 대해서도 매우 소극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양자협력 속에서도 다자적, 지구적 원칙을 견지하여 최대한 예외를 허용하려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엄격한 비확산의 원칙을 견지하려 하고 있고, 농축, 재처리 등이 경제적으로도 전혀 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으며,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한국이 더욱 비확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보고 있으며, 또한 동북아 안보정세 속에서 핵무기 경쟁 가능성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면서 협상에 임해왔다. 과연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한국이 어떠한 원칙을 가지고 협상에 임해야 할 것인가가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III. 향후 고려사항  원자력과 안보에 관해 한국이 추구해야 할 목적은 단기적으로는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을 원활히 마무리 짓고, 중장기적으로는 원자력의 안전하고 평화적인 이용과 한반도 안보, 그리고 지구적 확산방지레짐에 대한 기여 등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다음의 요소들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첫째, 원자력과 한반도 안보를 둘러싼 각 정책결정 그룹들 간의 상호 이해와 평시 협력, 협상을 앞둔 전략적 협의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현재까지 한국은 원자력계의 기술 발전, 상업적 이익확보를 위한 치열한 경쟁, 그리고 한국의 안보를 위한 외교와 국방 분야의 노력이 각각 이루어져왔고 이들 분야 간 긴밀한 협력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한반도비핵화선언 관련해서도 사후에 각 분야들 간의 협의 부족이 계속 문제로 지적되어 왔다. 단기적으로는 한미원자력 협정 개정, 장기적으로는 한국의 에너지 및 안보정책을 위해 모든 관련 분야들 간의 긴밀한 협의가 필요하다.  둘째, 한국의 중장기 외교전략 개념이 선행되어야 한다. 현재 한국은 약소국에서 중견국으로 국력이 향상되고 선진국 진입을 바라보고 있다. 점차 치열해지는 동북아 세력전이와 지구적 거버넌스 변화 속에서 한국은 새로운 외교대전략을 설정해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보편적 이익에 기여하면서 한국의 국익을 증진하는 중견국 외교를 지향하는 것이 필요하다. 원자력 분야에서는 다른 어느 국가들보다 비확산이라는 가치를 견고히 하고 이를 위한 국내체제를 정비하는 것은 물론 지구적 비확산 체제를 위해서 앞장서서 노력할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중견국 지위와 소프트 파워가 증진되고 북한에 대해서도 비핵화 요구를 가중할 수 있다.  셋째, 다양한 목적들 간의 전략적 관계 설정과 실행계획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향후 10년 이상의 기간을 설정하고 한편으로는 중견국 비확산 모범국가가 되는 한편, 이 과정에서 외부의 의심 없이 보다 적극적인 원자력 발전을 도모하는 방향을 찾아야 할 것이다. 비확산의 규범 위에서 북한의 비핵화를 추진하면서 동북아에서 미국의 적극적인 안보노력을 보장받고, 한국의 안보를 견고히 하는 동시에 동북아의 핵경쟁을 방지하는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이들 목표들은 상충되는 부분도 없지 않지만 이들 간의 관계 설정을 치밀하게 함으로써 다양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現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 후, 미 노스웨스턴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함. 주요 연구 분야는 국제관계사 및 국제정치이론이고, 주요논저로는 『한국의 스마트 파워 외교전략』및 “유럽의 국제정치적 근대 출현에 관한 이론적 연구: 중첩과 복합의 거시이행” 등이 있음.
  • The Eurozone Crisis and Challenges to East Asia’s Growth and Integration
    저자
    LEE Jong-Wha(Office of the President, Republic of Korea)
    발간호
    2012-24
      The lingering problems of fiscal and financial weaknesses are devastating the Eurozone economies. Countries in the Euro region must take more decisive and comprehensive actions to address financial instability, weak growth and persistently high unemployment.   The Eurozone countries have sufficient resources and capacities to solve their own problems and to restore confidence and growth. The priority must be placed on adoption and implementation of growth-enhancing policies, structural reform and financial stability measures, while promoting fiscal responsibility.   Weak economies in southern Europe must implement structural reforms including financial restructuring and labor market reform. The timing and speed of fiscal consolidation is important. A country-specific, gradual fiscal adjustment in the short-term with a credible mid-term debt reduction plan is preferred. To facilitate intra-Euro area adjustment, reforms to strengthen competitiveness in deficit countries can go together with promotion of demand and growth in surplus countries.     An immediate resolution of the Eurozone crisis is unlikely due to continuing economic deterioration and institutional and structural limitations in the Euro area. Europe will likely continue to strive to muddle through existing risks. Political leaders know that the costs of breaking the Eurozone apart are very high and also maintaining the currency is important to Europe not only for economic but political reasons. The Eurozone will continue its efforts to move towards a more integrated financial and fiscal architecture for a well-functioning monetary union. In the long-term, this crisis can be an opportunity to strengthen European integration.  With deteriorating growth prospects in the Euro area, the world economy encounters significant uncertainties and downside risks. East Asian countries should be proud of the resilience of their economies. But, they cannot be complacent. The global financial crisis exposed weaknesses in emerging economies through financial and trade linkages. East Asian emerging economies still depend heavily on markets in North America and Europe, remaining vulnerable to external shocks.  The financial deleveraging and stagnation in the real sector of the Euro area are taking a toll on the emerging and developing economies in East Asia through negative spillovers from trade and financial transmission channels. China’s GDP growth rate in the second quarter of 2012 averaged 7.6%, reflecting a significant slowdown. The growth slowdown in China incurs significant repercussions on East Asian economies, given a close link through production and trade networks.   In the face of risks and uncertainties, East Asian economies must pursue the right policies to improve resilience and sustain growth. They should use a judicious mix of policies that improve financial system resilience, promote effective macroeconomic management, and continue reforms to rebalance sources of growth. With preemptive policies and improved capacity, East Asian countries can minimize the likelihood and adverse effects of crises.   Regional and global cooperation must be enhanced. At a time of great interdependence, the global community can benefit tremendously from close cooperation. Greater global integration requires closer policy cooperation at the global level, including those at the G20 and the IMF, to respond more effectively to shocks and crises in global markets.   Economic integration and cooperation within East Asia have deepened for the last 30 years. East Asia’s strong growth has been associated with increased trade and production linkages with regional markets. Intra-regional trade within East Asia now accounts for more than half of its total trade.     On the financial side, the degree of integration of financial markets of East Asian economies also increased substantially. Yet, the extent of regional financial integration remains limited, falling behind that of integration with global financial markets as well as that of real-side integration with regional trading partners.    Monetary cooperation in Asia remains weak as well. Formal regional institutions are underdeveloped in the region, especially when compared to those of Europe. A key regional initiative is the ASEAN plus three’s multilateralized reserve pool of USD 240 billion, which can provide short-term liquidity to members when needed.   Moving towards a pegged exchange rate system in East Asia is likely to require a lengthy period of preparation and negotiation for necessary institutional arrangements in the region. A currency in East Asia is quite unlikely in the immediate future. East Asia does not appear to have very favorable economic and political conditions for a currency union, especially when compared with the Eurozone.   But, the prospect for an East Asian currency will hinge on future developments of economic and political conditions, rather than current environments. However it develops, China?and the renminbi?will play a major role in any new East Asian currency arrangement.   Fortunately East Asia can learn from Europe. Europe’s integration process over half a century and the current crisis suggest that preconditions and institutional frameworks are important for a successful integration.   Korea will continue our contributions to promoting regional and international cooperation by actively participating in various regional, trans-regional and global institutions including the Korea-China-Japan summit, ASEAN+3, ASEM and the G20. The success of the G20 Seoul Summit implies that an emerging economy like Korea can play a global role as a rule-maker and bridge-builder in a new global governance system.  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Dr. LEE Jong-Wha is Senior Advisor to the President for International Economy and G-20 Sherpa in the Republic of Korea. He is also professor in the economics department of Korea University and currently on leave. He worked as Economist at the International Monetary Fund and taught at Harvard University and Australian National University. He has published numerous books and reviewed journal articles in English and Korean, especially on topics relating to human capital, growth, financial crisis, and economic integration. He obtained his Ph.D. and Master’s degree in Economics from Harvard University, and his Master’s and Bachelor degrees in Economics from Korea University in Seoul.
  • 중국의 민족주의, 과연 실재하는가?
    저자
    Neil J. DIAMANT(Dickinson College)
    발간호
    2012-23
      조어도를 둘러싸고, 중국어선 선장이 일본 해안경비대에 체포되어 터진 분규는 오랫동안 사용되어 온 각본에 따라 진행되었다. 중국에서는 국제적 사건들이 예컨대 일본의 교과서 편찬이나 중국대사관의 폭격, 또는 프랑스에서의 친티벳 시위나 축구경기를 둘러싼 논란은 빠르게 항의시위로 이어지며, 이들은 곧 ‘민족주의적’으로 규정된다.   국제 언론은 구호를 외치고 깃발을 흔들면서 감히 중국을 공격한 자들에게 불매와 복수를 다짐하는 격노한 시민들에 대하여 꼬박꼬박 보도한다. (2010년 9월 19일자 뉴욕타임즈 기사는 국기문신을 하고 가슴을 드러낸 호전적인 남자 사진을 게재하고 있다.) 정부 대변인들은 전 세계에 ‘중국인민의 감정’이 상처를 입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약 일주일 정도 지나면 시위자들은 사라지고, 이슬람 탁발수도승의 승무(whirling dervish)처럼 솟구치던 격노함을 초래했던 원인은 가벼운 미풍으로 바뀐다. 중국 ‘민족주의자’의 엄포에도 불구하고, 친티벳 시위 이후에 프랑스 제품과 상점은 불매되지 않았으며, 일제 자동차와 전자 제품은 여전히 선망되며, 미국의 정책과 행동에 대한 불만 때문에 미국 대학에 대한 지원이 줄지는 않았다. 이 시대 중국의 모습을 보면, 경제적 사욕이 당대의 모든 ‘이념’을 이긴다는 데에 도박사가 돈을 걸면 절대로 잃지 않을 것 같다.   필자가 이런 문제들을 제기한 이유는, 중국 내의 정서와 이념을?그것이 민족주의이건 마르크스주의이건?어떻게 경험적으로 평가해야 하는가라는 보다 큰 문제에 대하여 논의하기 위해서이다. 개혁기에는 ‘민족주의’가 중국의 지배적인 이념으로서 마르크시즘-레닌주의-모택동사상을 대체했다는 관념이 널리 수용되어 있다는 점을 볼 때, 지금이 바로 이에 관해 생각해볼 특히 적절한 때라고 할 것이다.     무엇을 증거로 보아야 하는가?   정부가 “애국 교육”을 촉진시켜온 것은 사실이지만, 우연치 않게 1989년 정당성 위기 이후에 시작된 이 캠페인이 효과가 있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달리 말하면 부패와 교육제도, 만연한 물질주의에 대하여 매우 냉소적인 사람들이 애국 교육을 통해서 그들의 불신을 유보하고 “애국자”가 된다는 것이 분명하지 않다. 그렇다면 현란한 길거리 시위를 벌이고 구호를 외치고, 웹에 감점을 분출하거나 해외 웹사이트를 해킹하던 그 모든 ‘민족주의자’들은 뭐란 말인가? 그들은 전체적으로는 중국인구의 극히 일부이며, 따라서 중국국민을 대표하지 않는다. 미국의 ‘티 파티’ 운동이 극적인 것을 보여주는 데는 특출하지만, ‘미국인들’이 정부에 대한 ‘티 파티’ 운동의 정서를 공유한다고 결론을 내릴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필자는 중국이건 다른 나라이건 애국주의에 대한 보다 정확한 척도로서 장기적 행태와 노력을 분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제안을 하고 싶다. 중국인들이 경제적 민족주의자인가? 만약 ‘X’국가?미국, 일본, 프랑스 중 선택하라?에 대한 불매 요구 및 분노의 성명을 척도로 본다면 그렇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희생을 요하는 불매운동의 지속을 척도로 본다면 꼭 그렇지는 않다. 중국에서 만들어졌다는 이유로 중국 소비자들이 “중국제” 상품을 선호하며 중국의 근로자들을 지지한다는 증거는 없다.   이 점은 과거나 현재의 군사적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한국전쟁동안 중국정부는 전쟁에 대한 지원을 동원하기 위하여 ‘항미원조’라는 선전 캠페인을 벌였다. 관영 언론은 당연히 항미원조 지지시위, 군대를 위해 총알을 구입할 돈을 기부하는 시민 등과 같이, ‘고양된 민족주의’의 증거를 제시했다. 서방의 많은 분석가들이 중국인들이 전쟁을 지원했다는 결론을 내렸으며, 따라서 전쟁이 높은 대가와 교착상태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정당성을 강화하였다고 분석하였다.   하지만 학생, 공무원, 언론처럼 쉽게 동원 가능한 인구로부터 다른 집단으로 시선을 돌리면 어떻게 될까? 신문이나 보도영상과는 달리 기록보관소의 자료들을 보면, 상하이의 많은 일반 시민들은 한국전쟁에 반대하고 전쟁의 목표를 혼동했으며 미국의 높은 생활수준에 감탄하였다. 또한 이들 자료들에 의하면, 많은 사람들이 기부를 안 할 때 따를 보복의 두려움 때문에 전쟁에 돈을 기부했으며, 농민들은 종종 강제징집 되었고 모병장교들은 거짓말로 병사를 모집했다. 지주들과 기타 “계급의 적”들이 중국공산당을 위한 전쟁의 최전선에 보내졌다. 병사들이 전쟁에서 돌아왔을 때, 그들의 고용주나 동료 시민으로부터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했다. 정부의 선전에 가장 노출이 많이 되었던 도시에 거주하는 고용주나 동료시민 들조차도 전쟁에서 돌아온 병사들을 홀대하였다.   똑같은 슬픈 이야기가 1979년 베트남과의 짧은 전쟁 이후에도 반복되었다. 베트남에 대한 언론의 야단법석과 격노의 표출이 있었지만, 기록보관소의 문서들을 보면 참전용사들이 더 나은 일자리를 찾을 때 애국자적 신분의 혜택을 받는 데에는 어려움을 겪었다. 군인의 부인들도 역시 그들의 신분을 쉽게 활용할 수 없었다. 도시 청년들이 군복을 입고 전국을 활보했던 문화혁명 시기에, 상하이 대법원의 조사를 보면 진짜 병사의 부인들이 강간을 당하고 이를 복수하기 위해 탈영한 병사들에 관한 사건이 수십 건 있다. 사실 중국 정치에 있어서 기록보관소 자료의 검증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는 일반적인 통념은 거의 없다.   민족주의는 서구의 분석가들이 사용하기에 편리한 개념이다. 민족주의는 서구인들이 자신의 역사를 이해하는 방식과 잘 ‘부합’하며, 다양한 시위를 잘 설명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민족주의 및 마르크시즘, 심지어는 일본에 대한 분노도 그것이 수백만의 농민들을 움직여서 중국공산당이 권력을 장악하는 것을 지원하게 만들었다는 기록상의 증거는 거의 없다. 민족주의는 문화혁명의 유혈을 막지 못했으며, 전시나 평화의 시기에 나라에 봉사한 사람들을 더 잘 대접하는 데에 기여하지도 않았다. 당분간, 그리고 더 많은 기록물이 공개될 때까지는, 우리는 얼마나 많은 작금의 ‘민족주의자’ 또는 ‘애국적 해커’들이 정부에 의해 고용되었는지, 혹은 당의 지휘를 받고 있는지를 알 수 없다.   당분간 장기적 관점을 택하여 질문을 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민족주의적 언설과 온라인 채팅이 유의미하고 장기적인 행동을 초래하는가? 그리고 그것들이 정말 진실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가? 실제 행위에 기반을 둔 증거가 기자들에게 들려준 연설과 논평에 기반을 둔 증거와 맞아 떨어지는가? 우리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모든 것에 있어서 그러하듯이, 입증을 하려면 자료가 있어야 한다. * 이 글의 원본 (“China’s Nationalism?”)은 East Asia Forum에 게재되었던 것으로, East Asia Forum과 제주평화연구원의 협약 하에 국문으로 번역하여 배포합니다.  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現 미국 펜실베니아 주 디킨슨 대학 아시아 법과 사회 전공 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