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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렉스 사건과 동아시아 국제관계
    저자
    Bernard Fook Weng Loo (싱가포르 난양기술대학교 라자라트남국제학대학원 부교수)
    발간호
    2016-48
      2016년 11월 23일, 홍콩세관당국은 콰이충 컨테이너 터미널에서 일상적인 검열 이후 싱가포르군(SAF)의 테렉스 보병수송용 장갑차(ICV) 9대를 압수했다. 압수된 테렉스 장갑차들은 대만에서 싱가포르군이 실시한 정기군사훈련에 참가한 후 대만의 남부도시 가오슝에서 싱가포르로 해상운송 중이었다. 이 사건의 배경에는 중국과 싱가포르의 냉랭한 관계가 있다. 중국-싱가포르 관계의 후퇴는 남중국해 분쟁과 관련하여 1982년 유엔 해양법협약 제7부속서에 따라 설립된 중재재판소의 2016년 7월 12일 자 판결에 대한 싱가포르의 반응에서 비롯되었는데, 중국은 싱가포르의 반응을 반(反)중국적 입장으로 받아들였다. 미국은 항행자유작전(FONOP)을 여러 차례 실시했는데, 싱가포르군 공군기지에서 P-8 초계기가 몇차례 이륙했었다는 점은 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중국-싱가포르 관계는 9월에 더욱 악화되었다. 스탠리 로(Stanley Loh) 주중 싱가포르대사는 중국 글로벌 타임즈의 편집자들에게 보낸 9월 26일자 공개서한을 통해 9월 초에 열린 비동맹운동정상회의에 참가한 싱가포르 대표단이 남중국해와 중재재판소 판결 문제를 제기했다는 내용을 주장한 중국 글로벌 타임즈의 보고서를 반박하였다. 또 다른 근본적인 문제는 대만과의 비공식적 관계와 대만 내 싱가포르군의 군사훈련시설 유지이다. 과거에 중국은 이러한 비공식적 관계에 대하여 의도적으로 침묵을 지켜왔다. 하지만 싱가포르가 거절했던 하이난 군사훈련시설 사용 제안과 같이 싱가포르가 대만과의 관계를 “끊도록 하려는” 중국의 시도는 계속되었다. 싱가포르의 반응 싱가포르는 중국-싱가포르 관계의 냉각에 관하여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고, 반응을 자제하고 있다. 비비안 발라크리샤난(Vivian Balakrishnan) 외무장관은 “싱가포르는 중국과의 장기적이고 다면적인 관계를 해치는 어떠한 것도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더 나아가 그는 1월 28일 스트레이츠 타임즈의 글로벌 아웃룩 포럼에서 “그것은 전략상 중요한 사건이 아니므로,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라고 언급하였다. 응엥헨(Ng Eng Hen) 국방장관은 싱가포르가 하나의 중국 원칙을 잘 지키고 있다고 반복하면서, 홍콩세관 당국이 화물을 검색한 이유에 대해 공개적으로 억측하지 않도록 조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소 강경하게 싱가포르가 “자산을 되찾기 위해 모든 권리를 행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은 더욱 강경해지는가? 이 사건을 중국이 동아시아에 있어서 더욱 강경한 입장을 채택하고 있다는 또 다른 증거라고 보는 것은 분명 솔깃한 일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적어도 양면이 존재한다. 12월 6일 자 스트레이츠 타임즈 기고문에서 안젤라 포(Angela Poh)와 창준얀(Chang Jun Yan)은 중국의 동기에 대하여 지나친 추론을 삼가도록 주의를 촉구했다. 그들의 주장처럼 홍콩세관 당국의 싱가포르군 차량 압수로 이어진 것은 결국엔 단순한 행정상의 착오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응 국방장관도 이 사건의 초기 대응시 사건의 이유에 대해 추측을 하지 않을 것을 충고하였다. 더욱이, 테렉스 보병수송장갑차의 압수는 전례가 없는 것이 아니다. 2010년 홍콩세관은 사우디아라비아 국방박람회에 참가 이후 한국으로 회송 중이던 한국의 K-21 경전차를 압수했는데, 그 이유는 명백하게 운송회사가 전략물자에 적합한 수출입 허가를 제출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였다. 2000년 중국항공산업 서플라이 &; 마케팅사의 발주로 톈진으로 향하던 소련제 병력수송장갑차 5대가 압수되었다. 하지만 중국의 의도에 대해 이렇게 조심스러운 해석은 정치적으로나 전략적으로 아무리 훌륭하다고 해도 직관에 반할 수 있다. 우선, 싱가포르가 대만에서 홍콩을 통과하여 싱가포르로 군사 물자를 이송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런 선례가 없었다. 이 사건과 중국-싱가포르 관계 악화가 동시에 발생한 것은 단순한 우연의 일치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이 둘은 관련이 있을 수도 있다. 더욱이, 글을 쓰는 당시 중국 외교부나 홍콩세관은 압수에 관한 어떤 명백한 사유를 제시하지 않았다. 정말로 행정상의 착오였다면 이에 관해 빠르고 분명하게 의사소통이 이루어져야 했고, 운송회사가 착오를 바로잡는데 필요한 조처를 했어야 하며, 화물이 싱가포르로 향하고 있어야 했다. 이제까지 어떤 명백한 이유를 밝히고 있지 않다는 점은 “행정상 착오”라는 주장을 약화시키고 있다. 2016년 동아시아에서의 중국의 행태는 무엇보다도 한국의 사드 배치에 대한 성난 반응과 남중국해에 인공섬 구축 등 중국이 지역 문제에 있어서 보다 강경해지고 있다는 결론을 피하기 어렵다. 동아시아의 선택 이것이 사실이라면, 동아시아는 멜로스 대화(Melian Dialogue)의 문턱에 들어온 걸까? 그렇다면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의 선택은 무엇인가?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취임이 다가오면서 동아시아에 널리 퍼진 관심사는 미국이 지역안보에 어쨋든 덜 관여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트럼프는 유럽과 아시아의 미동맹국가들이 안보에 대해 무임승차를 하고 있으며, 미국은 지역 동맹국들이 자신의 안보를 지키기 위한 충분한 자원을 쓰지 않아도 미국이 유럽과 아시아의 안보를 보장해왔다고 때때로 주장해왔다.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철수한다면, 이는 더욱 강력해지고 있는 중국이 분명히 들어오게 될 잠재적 진공상태를 만들게 된다. 두테르테 정부 하의 필리핀과 같은 몇몇 나라에서는 이는 환영받을 가능성이 있는 변화이다. 하지만 미국의 전통적인 아시아 동맹국에 속하는 일본과 한국에는 동아시아가 미국의 대항력 없이 중국에 지배되는 것은 부정적일 수 있는 변화이다. 동아시아의 안보가 미국과 중국 양국을 포함한 지역체제에 의해 가장 잘 보장된다고 믿는 나라들 중 싱가포르는 가장 대표적인 국가이다. 중국이 지배하는 동아시아는 긍정적인 변화가 아니다. 그렇지만 이들 국가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도날드 트럼프는 일본이 핵무기보유국이 될 수도 있다고 제안했었다. 일본과 동아시아의 다른 국가들에게 이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선택이다. 그러나 미국이 철수한다면, 일본은 기존의 평화적 핵에너지 프로그램을 핵무기 프로그램으로 전환하는 것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적어도 이 문제에 관한 한 일본과 그리고 한국은 트럼프 행정부에 지역안보협력에 따르는 부담을 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만 할 것이다. 이는 트럼프가 아시아 안보 협력에 계속 참여하도록 설득하는데 충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싱가포르와 같은 국가들에게는 선택이 훨씬 더 제한되어 있다. 싱가포르는 항상 국제법을 강조하는 자세를 취해왔으며, 이는 모든 관련 국가들이 사안에 관한 국제법을 존중해야 한다는 남중국해 판결에서도 동일하였다. 그러나 중국이 중국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고, 동아시아 국가들이 고통을 겪게 될 수 있는 아시아의 멜로스 대화를 진행할 경우, 국제법은 별다른 위안을 제공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現 싱가포르 난양기술대학교 라자라트남국제학대학원의 부교수 및 전략연구 석사프로그램의 코디네이터.
  • Cooperation’s Next Frontier: Marine Environment in the South China Sea
    저자
    Aries A. Arugay (The University of the Philippines in Diliman / Jeju Peace Institute)
    발간호
    2016-47
      “Who will speak for the fish?” This was a rhetorical question asked during an Asia-Pacific track-two security dialogue in Kuala Lumpur last year. In recent years, government officials and scholars have engaged in heated debates over territorial disputes in the South China Sea (SCS). Despite the intense conflict between littoral states, there has been no strong disagreement regarding the ongoing destruction of the SCS marine environment due to natural and man-made factors. The lack of a comprehensive framework for cooperation is the biggest challenge for preserving the SCS marine environment. This is compounded by an atmosphere of strategic distrust as well as the fact that it has become an arena for major power competition. The sheer scale and complexity of the environmental issues demand a sense of urgency and the political will to shelve disputes in order to implement stop-gap measures and undertake marine preservation projects. An approach that incorporates an appreciation of the marine environment as a vulnerable area for human security is necessary for pursuing cooperation among states around the South China Sea. Collective Action Problem The significance of preserving the SCS marine ecosystem cannot be overemphasized. It distinguishes itself as a center of global marine biodiversity. Almost 120 million people living on its coasts depend on its rich marine resources for their livelihood. It is also a global maritime corridor given the sheer traffic of sea vessels that annually pass through it. To complicate things further, it is also a hotspot for maritime piracy and other transnational crime. Even with all these interlocking security issues, the imperatives for regional cooperation do not clearly impose themselves on the states surrounding the SCS. Marine scientists have already raised numerous alarms on the destruction of the SCS, particularly its coral reefs. One-fifth of its reefs are already destroyed while another fifth is under threat. Overfishing prompted by increasing demand for seafood is taking a toll on fish stocks. The recent arbitral ruling on the case filed by the Philippines against China reinforced the extent of marine destruction in the SCS. However, the ruling pinned the blame solely on China’s land reclamation activities in the Spratly Islands and its complicity in allowing its fishermen to harvest endangered marine species. While these actions are supported by facts, other states have also contributed to the ecological destruction. It is fair to say that all the states concerned have failed to fulfill their obligations to protect and preserve a rare and fragile marine ecosystem within a semi-enclosed sea. The lack of serious cooperation at the state level has not prevented initiatives from nongovernmental organizations, scientists, and researchers such as the Coral Triangle Initiative and PEMSEA (Partnerships in Environmental Management in East Asian Seas). These groups have made strides in promoting collaborative research and finding innovative solutions to environmental problems in the SCS. But without the support of governments, their impact will be limited as most of their recommendations have yet to be implemented as official policy. The most critical policy agenda is a comprehensive regional framework for cooperation aimed at protecting the SCS marine environment. What exists are disparate efforts either between neighboring countries or within Southeast Asia. There is little doubt that this lack of cooperation mostly stems from the ongoing territorial and maritime disputes between claimant states. While China and South Korea have successfully cooperated to protect the marine environment in the Yellow Sea, for example, a similar joint endeavor remains a distant goal in the SCS. Bilateral Cooperation Frameworks: Marine Protected Areas Along the fringes of this year’s 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APEC) leaders meeting, Philippine President Rodrigo Duterte announced a unilateral no-fishing zone in the internal lagoon of Scarborough Shoal. The lagoon is a fish-spawning area and is critical to preserving the marine ecosystem and allowing fish stocks to replenish. Future steps could include making the shoal a marine protected area (MPA), which could protect existing coral reefs and endangered marine life. This step would also likely prevent further land reclamation since the area would be a marine sanctuary. The Chinese government seemed open to Duterte’s no-fishing zone idea and has not vehemently opposed it despite China’s stringent sovereignty claims in the area. Experts have expressed apprehension and skepticism with Duterte’s proposal. They argued that it is a stop-gap measure that might be detrimental to the Philippines’ territorial claims in Scarborough Shoal. Many also see it as a form of appeasement given the Philippines’ attempt to rekindle relations with China. The lack of strategic trust underpins these pessimistic interpretations. But could China’s openness and its plan to offer a bilateral fishing deal with the Philippines be preliminary steps toward a latent compliance to the arbitral award of the tribunal? Will small states like the Philippines provide China the necessary space to save face given the arbitral ruling? Making the Scarborough Shoal a MPA under the joint protection of China and the Philippines could provide a model of marine environment cooperation in the SCS. This measure is in line with the concept of stewardship established by diplomats and security specialists. Cooperation on “softer” security issues such as marine protection can lead to mutual confidence required in cooperative security arrangements. Role of Track-Two Diplomacy There is still a lot of effort needed to build confidence regarding issues on the SCS. This is where track-two diplomacy can become a catalyst for new ideas and knowledge to facilitate cooperation. For example, a study group on marine environment cooperation of the Council for Security Cooperation in the Asia-Pacific has gathered marine scientists, security experts, diplomats, and other stakeholders to develop innovative solutions and actionable policy recommendations. A new network of think-tanks between China and ASEAN countries aims to promote joint research on the South China Sea. These initiatives seek to bridge the often separate worlds of science and policy. However, the success of these initiatives and their impact on official policy depend on the de-escalation of the political tensions in the SCS. It is also dependent on the ability of powers, big or small, to exercise mutual restraint and exhibit trustworthy behavior. Only then can they credibly speak not only for their people but also for the fish and the marine ecosystem in the South China Sea. Aries A. Arugay is currently a visiting fellow at the Jeju Peace Institute. He is Associate Professor of Political Science at the University of the Philippines in Diliman and Executive Director of the Institute for Strategic and Development Studies in Manila.
  • The Terrex Incident: Is an Asian Melian Dialogue in the Offing?
    저자
    Bernard Fook Weng Loo (Nanyang Technological University)
    발간호
    2016-46
      On 23 November 2016, Hong Kong’s Customs authorities at Kwai Chung Container Terminal impounded nine Singapore Armed Forces (SAF) Terrex infantry carrier vehicles (ICV), after what appears to have been a routine inspection. The Terrex ICVs were being shipped from the southern Taiwan city of Kaohsiung to Singapore, having taken part in routine training exercises that the SAF conducts in Taiwan. This incident occurred against a backdrop of frosty relations between China and Singapore. This dip in the China-Singapore relationship started with Singapore’s response to the 12 July 2016 ruling by the Arbitral Tribunal constituted under Annex VII to the 1982 United Nations Convention on the Law of the Sea on the South China Sea dispute; China interpreted Singapore’s response as an anti-China stance. It did not help that the United States has conducted a number of freedom of navigation operations (FONOP), in some cases involving P-8 aircraft that had taken off from SAF air bases. The relationship further soured in September, when Singapore’s Ambassador to China, Stanley Loh, issued an open letter on 26 September to the editors of China’s Global Times newspapers, rebutting a Global Times report alleging that the Singapore delegation to the Non-Aligned Movement Summit meeting earlier that month had raised the issues of the South China Sea and the Arbitral Tribunal’s ruling. An underlying issue is also Singapore’s unofficial relationship with Taiwan, and the SAF’s maintenance of training facilities in Taiwan. In the past, China had maintained a studied silence with regard to this unofficial relationship. That did not stop China from attempting to “wean” Singapore off this relationship, such as an offer to Singapore of access to training facilities in Hainan, which Singapore had refused. Singapore’s Response Singapore’s responses have been restrained. No mention has been made about the cooling in China-Singapore relations. Foreign Minister Vivian Balakrishnan asserted that “Singapore will not allow any single issue to hijack its longstanding, multifaceted relationship with China.” At the Straits Times Global Outlook Forum on 29 November, he further stated, “It’s not a strategic incident; I don’t lose any sleep over it.” Defence Minister Ng Eng Hen reiterated Singapore’s commitment to the One China policy; he was also careful to not speculate, at least publicly, on the reasons for Hong Kong’s Customs authorities to inspect the cargo. Nevertheless, his response can be seen as somewhat more muscular, when he stated that Singapore will “exercise our full rights in recovering our assets.” Is China Becoming More Muscular? It is certainly tempting to see this incident as further evidence of China adopting a more muscular stance with regards to East Asia. However, there are, as always, at least two sides to this. Writing for The Straits Times on 6 December, Angela Poh and Chang Jun Yan have advocated caution against inferring too much into China’s motives. After all, as they argue, it could have been a simple administrative error that led to the SAF vehicles being impounded by Hong Kong’s Customs authorities. In his initial reaction to the incident, Defence Minister Ng also counselled against speculating as to the reasons for this incident. Furthermore, the impoundment of the Terrex ICVs is not unprecedented. In 2010, Hong Kong Customs impounded a South Korean K-21 light tank that was being shipped back to South Korea after being part of a defence exhibition in Saudi Arabia; apparently, the shipping company had failed to file the proper import and export licenses for strategic materials. In 2000, five Soviet-made armoured personnel carriers ordered by China Aviation Industry Supply and Marketing and bound for Tianjin were impounded. However, such a cautious interpretation of China’s intentions, however politically and strategically admirable, may be counter-intuitive. To begin with, this is not the first time Singapore had shipped military cargo from Taiwan to Singapore through Hong Kong. Up to this point, there had been no prior incident. The conjunction between this event and the backdrop of souring China-Singapore relations might plausibly be mere coincidence; however, the two could also be connected. Furthermore, at the point of writing, no explicit reasons for the impoundment have been forwarded by either China’s Foreign Ministry or Hong Kong Customs. If it was indeed an administrative error, this could have been quickly and clearly communicated, the shipping company could have taken the necessary steps to correct the error, and the cargo could have been on its way to Singapore. The fact that no explicit reasons have been forwarded thus far therefore undermines the “administrative error” argument. Seen in the light of Chinese behaviour in East Asia in 2016 – its angry responses to the South Korean deployment of THAAD, its construction of artificial islands in the South China Sea, amongst others – it is indeed difficult to escape the conclusion that China is becoming more muscular in regional affairs. Options for East Asia If this is indeed true, is East Asia on the cusp of a Melian Dialogue? If so, then what options do other countries in East Asia have? A widespread concern in East Asia is the prospect, however likely, of the United States becoming less involved in regional security, with the looming inauguration of Donald Trump as the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 Trump, after all, had on occasions alleged that the United States’ allies in Europe and Asia had been enjoying a free ride, that the United States had underwritten security in Europe and Asia without its regional allies committing sufficient resources to ensure their own security. If the United States does disengage from East Asia, this then creates a potential vacuum into which an increasingly powerful China will surely step. For some countries – such as the Philippines under the Duterte administration – this is a potentially welcome development. However, for the United States’ traditional allies in Asia – Japan and South Korea in particular – an East Asia dominated by China without the countervailing influence of the United States is surely a potentially negative development. For countries who believe that East Asian security is best guaranteed by an infrastructure that includes both the United States and China – and Singapore is paramount amongst such countries – a China-dominant East Asia is also not a positive development. But what can such countries do? Donald Trump had suggested – whether serious or otherwise – that Japan might become a nuclear weapon state. For Japan and the rest of East Asia, this is an unpalatable option. But if the United States disengages, Japan may have no choice but to transform its existing peaceful nuclear energy programme into a weapons programme. If nothing else, Japan – and South Korea, for that matter – will have to demonstrate to the Trump administration that it bears a concomitant burden to regional security efforts. This may be sufficient in persuading Trump to remain engaged in Asian security efforts. For countries like Singapore, however, the options are rather more limited. Singapore, specifically, has always adopted a posture that emphasizes international law; this was precisely its response to the South China Sea ruling, that all states involved had to respect international law on the issue. International law, however, provides scant comfort in the event that China exercises an Asian Melian Dialogue, where China will do what it wants, and the rest of East Asia will suffer what it must. Bernard F.W. Loo is an Associate Professor at the S. Rajaratnam School of International Studies, Nanyang Technological University, Singapore. He is concurrently the Coordinator of the Master of Science (Strategic Studies) degree programme. Tag
  •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와 평화: 평화의 2030 아젠다 포함 과정에서의 논쟁과 그 의미
    저자
    손혁상 (경희대학교 공공대학원장 / 국제개발협력센터장)
    발간호
    2016-45
      2015년 9월 UN총회에서 193개국이 합의한 2030 개발의제인 ‘지속가능발전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SDGs)’는 2030년까지 15년간 국제사회가 지향하는 발전이정표라고 할 수 있다. 지속가능발전목표는 사람, 번영, 지구, 평화, 파트너십의 5P(peace, prosperity, planet, peace, partnership) 구성요소에 기반을 두어 17개의 목표와 169개의 세부목표를 제시하였다. SDGs는 2001년부터 2015년까지 개발과 관련된 글로벌 규범의 기준이 되었던 새천년개발목표(Millennium Development Goals, MDGs)를 대체하는 과정에서 아직 달성되지 않은 MDGs 목표를 계속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과 새로운 대안적 목표를 제시해야 한다는 주장 간의 차이를 넘어 결국 사회개발 중심의 MDGs를 계승하면서 새롭게 경제발전, 불평등, 지속가능한 환경과 평화 아젠다 등을 포함하였다. SDGs의 목표가 포괄적이고 변혁적임에도 불구하고, 일부에서는 목표와 세부시행과제가 지나치게 많고 230개의 측정지표까지 고려하면 개별 국가가 이 모두를 이행하기에는 비현실적이라는 비판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개도국과 선진국, 시민사회, 국제기구 등의 개발주체들은 현재 인류가 당면하고 있는 복합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포괄적 접근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평화가 독립적인 목표(SDGs의 16번째)의 범분야 이슈로 포함되었다는 점이다. SDGs의 16번째 목표는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평화롭고 포용적인 사회를 증진하고 모두가 정의에 접근할 수 있게 하며, 효과적, 책무적, 포용적 제도를 구축한다”이다. Post 2015 개발아젠다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2012년에만 해도 UN의 정치적 현실을 고려할 때 평화가 글로벌 발전 아젠다에 포함될 거라고 예상하기 어려웠고, 이후의 협상과정에서도 가장 논쟁적인 이슈이기도 했다. 평화의 2030 개발 아젠다 포함에 대한 논쟁 평화, 거버넌스, 정의를 post-2015 아젠다에 포함할 것인가, 포함한다면 어떠한 비중과 방법으로 할 것이냐는 문제는 드래프트 작성을 담당한 공개작업반(Open Working Group)의 논의과정에서 가장 논쟁적인 이슈였다. 평화와 관련된 핵심 쟁점은 많았지만 일부 국가가 제기한 내용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평화를 포함하면 개발아젠다가 ‘안보화’할 우려가 있다. 둘째, 평화는 post-2015 논의과정에서 범주를 제시한 ‘Rio+20 아젠다’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셋째, 개발은 평화를 가져오지만, 평화는 개발을 가져올 수 없다. 이와 더불어 해결해야 할 과제 중의 하나는 불법자금흐름이나 무기거래와 같은 초국가적 분쟁요인을 과연 선진국들이 논의할 준비가 되어 있느냐 하는 점이다. 공개적으로는 평화가 포함되는 것을 찬성하면서도 개별 국가의 국익을 포기할 의향이 있는가 하는 점은 불투명하였다. 브라질과 니카라과를 비롯한 일부 국가들은 만약 post-2015 아젠다에 평화조항이 들어간다면, 개발 프레임워크가 전반적으로 ‘안보화’할 위험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 주장에 따르면 개발원조가 사람들의 복지와 발전에 쓰이기보다는 특정 국가의 안보 아젠다를 실현하는데 사용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 대해 평화이슈 옹호 측은 목표의 성격을 사람들의 안전에 초점을 두면서 반대 측을 설득하였다. 즉 개발 아젠다나 개발원조의 ‘안보화’ 우려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빈곤감소와 지속가능발전을 위해서는 평화와 안정유지가 불가결한 요소라는 점을 강조하였던 것이다. 구체적으로 국가안보나 국제평화나 안보 이슈는 의도적으로 다루지 않고, 평화 관련 세부목표의 성격을 사람들로 하여금 폭력과 불안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방향으로 제한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평화 관련 목표가 주권침해의 가능성을 가질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는 post-2015 아젠다가 강제성이 없는 국제규범이니만큼 이를 통해 군사개입에 대한 어떠한 법적 기반을 제공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Post-2015 개발 아젠다에 대해 UN논의의 출발점이 되는 ‘Rio+20’이 사회, 경제 발전 및 환경보호를 세 축으로 하고 있으므로 평화를 포함할 의무가 없다는 주장에 대해서 평화옹호자들은 평화증진이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Rio+20’ 아젠다에 기초하면서 동시에 더욱 강화될 것이라는 대응논리를 전개했다. 실제로 1992년 리오선언 제22원칙은 “평화, 개발, 환경보호는 상호의존적이고 불가분의의 관계”라고 밝히고 있다. 또한 ‘Rio+20’이 2030 개발 아젠다 논의의 중요한 출발점인 것은 사실이지만 어느 조항에도 사회, 경제 발전 및 환경보호 아젠다만을 다뤄야 한다는 지침은 없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국제사회의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는 점을 주장했다. 결국 ‘Rio+20’ 아젠다 역시 폭력적 갈등과 불안정을 감소시키지 않고는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는 점을 담고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게 되었다. 평화 이슈 배제를 주장하는 측은 평화와 개발이 일방적 관계를 가진다는 입장이었다. 즉 평화, 안보와 개발이 상호연관성을 가지고 있지만, 분쟁과 불안정의 주원인은 빈곤과 불평등이며, 저개발, 빈곤과 불평등을 post-2015 아젠다의 우선순위에 두고 이행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분쟁이 감소하고 평화가 확보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평화 이슈 포함을 주장하는 측은 불안정과 부패가 있고 또 비포용적 사회에서도 경제발전이 가능한 건 사실이지만, 동시에 이러한 발전은 장기간 지속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또한 내부 갈등요인을 도외시하는 개발프로그램은 실제로 갈등요인을 악화시킬 수 있으며, 폭력이 통제되지 않는 사회에서는 개발목표를 달성하기가 훨씬 어렵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개발과 평화의 관계는 역사적 사실에 입각해서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개발과 평화의 상관관계 개발과 평화의 관계는 현재 전 세계적 폭력과 분쟁 현황을 살펴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통계적으로 절대빈곤은 분쟁의 위험이 높은 지역에 더욱 집중되어 있다. 2005년에는 절대빈곤 상태에 있는 세계인구의 20%가 분쟁지역이나 취약국가에 살고 있었다. 그러나 2015년에는 이 비율이 43%까지 증가했으며, 최상의 시나리오를 가정하더라도 2030년에는 63%까지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 절대빈곤상태가 집중된 지역에서는 분쟁과 불안정이 절대빈곤을 탈출하기 어렵게 할 것이라는 것은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최근에는 전쟁을 포함한 군사적 분쟁이 급격하게 증가하였다. 특히 2014년은 1989년 이래 분쟁으로 인한 사상자가 가장 많은 해였다. 이 중 시리아 내전의 사상자가 가장 많지만, 다른 지역에서도 무력분쟁으로 인한 사상자 수가 늘어났다. ‘웁살라 갈등데이터 프로그램(Uppsala Conflict Data Program)’은 “2013년에 가장 사상자가 많았던 10개의 분쟁사례 중에 8개가 2014년 더욱 폭력화”되었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또한, 세계인구 중 122명 당 한 명은 난민, 강제이주자, 또는 망명을 신청하였는데 이는 분쟁과 폭력문제 해결 없이는 개발의 성과를 성취하기 어렵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평화가 SDGs에 포함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리는 단순하지 않다. 절대빈곤인구를 반으로 감소시키자는 MDGs의 첫 번째 목표는 중국과 인도의 경제성장에 힘입어 목표연도인 2015년에 달성되었다. 그러나 2030년까지 절대빈곤을 포함한 모든 형태의 빈곤을 지구상에서 종식시키자는 SDGs의 첫 번째 목표는 분쟁문제 해결 없이는 불가능하므로 SDGs에서 개발과 평화는 불가분의 관계를 가진다고 보는 것이다. 이는 2030년까지 전 세계 절대빈곤인구의 75%가 분쟁이 심한 국가에 거주할 것으로 예측한 연구결과에서도 뒷받침된다. 또한, 무력분쟁과 불안정이 MDGs 달성의 장애 요인으로 작용한 경험도 평화가 개발 아젠다에 있어 우선순위를 가지게 하는 이유가 되었다. 1981년부터 2005년까지 심각한 폭력사태를 경험한 국가는 폭력사태를 경험하지 않은 국가보다 빈곤율이 21% 높다는 연구가 있으며, 2015년에 MDGs 8개 목표 중 단 한 개도 달성하지 못한 일곱 개 국가는 모두 심각한 폭력사태에 영향을 받았다. 개발에서 평화의 중요성은 자원의 효과적 사용 측면에서도 강조된다. 2012년에만 폭력사태에 대응하는 비용이 미화로 약 9조 5천억 달러에 달했다. 2014년에는 전 세계적으로 보면, 공적개발원조(ODA)로 미화 1달러가 사용될 때 국방비는 13달러가 지출되었다. 더불어 폭력에 따른 비용은 단지 개도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선진국에도 해당되며 전 세계적으로 50만 명이 넘는 인구가 매년 폭력에 희생되어 사망하고 있다. 예컨대, 2011년에는 영국에서 일어난 폭동으로 약 3억 파운드에 달하는 손실과 복구비용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이는 평화와 개발의 연계목표가 더 이상 개도국만의 과제가 아니라 모든 개별국가들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된다는 점을 시사한다. 나가며 SDGs는 그동안 개발과 평화의 관계에서 경제적 성장과 불평등 해소가 비폭력과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주류적 개발담론에 대하여, 그 반대의 인과관계도 가능할 뿐만 아니라 평화 없이는 경제발전과 사회발전, 지속가능한 환경이 유지될 수 없다는 점을 국제사회가 합의한 전환적 계기였다. SDGs가 지나치게 많은 목표와 세부이행과제로 실현가능성이 낮거나 개별 국가들이 선택적으로 목표를 우선순위화해서 실행할 것이라고 비판받고 있지만, 향후 15년간 지구적 빈곤과 사회, 경제, 환경 문제해결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는 없다. 특히 거버넌스 및 정의와 연계하여 평화이슈가 포함된 것은 한국사회가 가지고 있는 민주주의 심화 과제 같은 국내 정책과도 연결된다. 향후 비폭력, 안정과 평화를 위한 노력이 지구적 빈곤문제 해결에 효과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국내 차원의 심층연구를 기대해 본다. 現 경희대 공공대학원 원장 및 국제개발협력연구센터 센터장. 현재 한국국제개발협력학회장과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외교부 정책자문위원과 한국국제협력단 비상근이사 및 총리실 국제개발협력위원회 민간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음.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미 펜실베이니아대학 정치학과 석사 졸업 및 박사과정 수료 후 경희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음. 주요 연구분야는 국제개발 분야를 중심으로 ODA 정책, 개발 파트너십, 개발 NGO 등 임. 주요 저서와 역서로는 『시민사회와 국제개발협력(2015)』(저서), 『구성주의 이론과 국제관계 연구 전략(2011)』(공역) 등이 있음.
  • 미국 대선의 결과와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
    저자
    이성우 (제주평화연구원 분쟁해결연구부장)
    발간호
    2016-44
      미국 대통령 선거가 예상을 깨고 트럼프 후보가 당선됨에 따라 단기적으로 미국의 국내정치는 물론 국제금융시장과 국제정치에 큰 파장이 일어났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거대한 변화의 파고가 계속 몰려올 것이라는 예상이 미디어 보도의 주를 이루고 있다. 미국의 대선 결과로 국제질서의 변화가 예상되고 있는 가운데 국내에서는 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정치적 혼란 상태에서 대미외교에 적절하게 대응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의 아베 총리는 기민하게 트럼프 당선자를 만났다. 그리고 그는 1987년 뉴욕타임지에 기고된 미국의 대일본 방위제공에 관한 비판적 의견에 대해 선제적으로 미일 동맹을 강화하는 대안을 마련하면서, 대중국 견제를 강화하는 미국의 동아시아 안보정책과 일본의 국익을 조화시키는 방안을 모색하는 기회로 활용하고자 했다. 미국의 대선 기간 동안 민주당과 공화당 후보의 차이가 어느 때보다 극단적인 것처럼 보였던 점은 클린턴 후보가 보여준 왼쪽으로 쏠리는 경향보다 트럼프 후보가 보여준 오른쪽으로의 이동이 더 현저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변화에 대한 우려는 선거운동 기간에 트럼프와 클린턴이 보여준 정책의 차별성에 기인한다. 클린턴의 주요 정책들은 당선 초기 이스라엘 보다 이집트를 먼저 방문하는 등 파격적인 행보를 보여 왔던 오바마 정부의 정책을 주로 계승하고 있고, 친동성애, 친무슬림 및 친중동정책과 이스라엘 및 기독교와 거리유지, 낙태찬성, 친세계정부주의 및 친북미연합을 중심으로 한 국제주의를 선호한다. 이에 반해서 트럼프는 반동성애, 반무슬림 및 반중동정책 및 친이스라엘과 친기독교, 낙태반대, 반세계정부 및 반북미연합을 중심으로 한 경제적 고립주의를 주요 특징으로 한다. 클린턴은 사회적 진보주의 및 대외정책에서도 자유주의 및 세계주의의 경향을 보이지만, 트럼프는 사회적 보수주의 및 대외정책에 서 고립주의의 경향을 드러낸다. 국내외 정책에 대한 트럼프와 클린턴의 대비는 선거 막바지 여론조사에서 클린턴이 우세한 것으로 나오자, 수세라고 판단한 트럼프 후보가 지지세력 결집을 위해서 우파적 노선을 좀 더 명확하게 함으로써 미국 국내여론은 물론 한국의 여론에까지 부정적 인상을 확대시켰다. 트럼프 후보의 당선이 확정되고 한 달이 채 안된 지금, 네오콘의 주요 인물이 인수위원회에 발탁된 점은 인수위원회가 선거 당시 주장했던 강경한 고립주의 정책을 위해 서서히 선회하는 것을 보여준다. 첫째, 군사적 고립주의에 근거한 미국의 역할 축소는 사실상 없던 일이 되었다. 트럼프는 후보 시절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에 대해서 그 점은 한국과 일본이 선택할 일이라며 사실상 불간섭원칙을 주장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 발언은 잘못되었다가 아니라 그런 발언을 한 사실이 없다고 언급한다. 즉 미국이 동아시아는 물론 세계질서를 위해 패권국으로의 역할을 계속 수행할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둘째, 경제정책 측면에서 고립주의의 선택으로 미국 제조업 부흥을 위해 해외에 유지하고 있는 공장을 국내로 다시 들여올 것이라는 주장에서 보듯이, 미국의 경제민족주의는 여전히 후보 시절의 기조가 상당히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가 주장했던 만큼 강력하게 자유주의적 경제를 후퇴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미국의 자본권력을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으로 나누어 금융자본의 시대는 지나가고 산업자본의 시대가 도래하여 국내적으로 정치-경제 질서가 새롭게 등장할 것처럼 주장한다. 그러나 미국의 현실 정치에 있어서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이 적대적인 관계 혹은 정치권력이 자본권력의 이익을 침해하여 그 대가로 노동자의 이익을 보호할 가능성은 사실상 낮다. 나아가서 부동산 재벌 출신인 트럼프 대통령이 노동자를 위해서 산업자본 혹은 금융자본이 자본권력의 이익을 침해하는 변화를 주도할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거의 없다. 셋째, 미중 관계에 있어서 군사적 측면의 대중국 봉쇄전략인 아시아로의 회귀(Pivot of Asia)에는 큰 변화가 적을 것으로 생각된다. 트럼프는 후보 시절 남중국해 문제에 대하여 당사국들이 알아서 할 일이지 미국이 상관할 바가 아니라고 호기롭게 주장했지만, 군사적 확대전략이 미국의 경제적 이익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안다면 고립주의를 택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미국은 중국과의 경제관계의 재설정을 위해서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다. 중국에 제공하던 수출시장의 지위를 축소하고, 미국 상품의 대중국 수출의 가능성을 확대함으로써 미국의 경제적 이익을 확대하기 위한 양국 간 경제관계의 설정이 예상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트럼프 취임 즉시 TPP를 철회하겠다는 주장은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무역적자를 개선하여 미국의 이익을 확보하겠다는 점이 핵심일 것이다. 넷째, 북한 핵문제에 대한 비핵화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수 있다. 트럼프가 김정은을 미치광이 또는 천재라는 언급한 것은 외교정책적 고려가 없는 즉흥적인 반응이라는 점에서 정책적 의미가 있지는 않다. 트럼프가 사업가라는 측면에서 미국이 현재 추진하는 북미 간의 민간 접촉을 보면, 오바마 행정부에서 유지해온 전략적 인내를 종식하려는 동기가 충분히 존재한다. 그리고 북한도 국제사회로부터 경제제재에서 오는 정치적 및 경제적 부담을 해소하기 위해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서려는 동기가 있으므로, 비핵화를 포함하는 한반도의 고착상황이 개선될 돌파구가 기대된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대외정책은 대통령 한 사람에 의해서 급격한 변화가 나타나지 않는다. 8년 전 미국 최초로 흑인 대통령이 탄생했을 때, 인류는 전 세계의 획기적 전환을 기대했다. 노벨상 위원회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핵 없는 세계를 달성할 것을 전제로 미리 노벨평화상을 수여했다. 지금 돌아보면 미국은 비핵화를 위해 어느 정도 노력은 기울였지만, 현존하는 국제질서를 극적으로 전환했다고 할 만큼의 평화로운 전환은 일어나지 않았다. 같은 맥락에서 인종차별, 성차별, 그리고 군사도발에 대한 가능성 시사와 같은 무모한 발언을 쏟아내던 트럼프 당선자도 대통령에 취임하면 미국 정치제도의 틀 안에서 미국의 국익을 위해서 정책결정을 할 것이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는 전 세계를 불확실성으로 내몰고 있다고 하지만, 변화에 따른 불확실성은 불안요인일 수도 있지만 하나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따라서 한국은 외교안보정책 측면에서 미국의 정책 전환으로 인해 발생하는 원심력과 함께 전통적인 미국외교정책의 구심력을 파악하여 한반도 문제에서 비핵화와 평화를 달성하기 위한 전환점으로 미국을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現 제주평화연구원 분쟁해결연구부장. 단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후 2004년 미국 University of North Texas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음. 단국대학교 분쟁해결연구센터에서 연구위원으로 활동하며 “한국의 공공분쟁 사례연구”를 주제로 대한민국 학술진흥재단 중점연구소 연구과제를 수행하였음. 학술활동으로는 미국국제정치학회가 주관하는 International Studies Quarterly의 Referee로 활동한 바 있음. 저서로는 『2011 한국인의 평화관: 통일정책과 여론 』 및 『2010 한국인의 평화관: 외교정책과 여론』 등이 있음.
  • 백두산 화산 분화 가능성과 동북아 국제협력
    저자
    정기웅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연구센터)
    발간호
    2016-43
      백두산 화산 분화 가능성 2016년 9월 경주를 강타한 규모(MI) 5.8의 지진과 그 지진으로 인해 피해를 겪은 경주의 모습은 한반도에 발생 가능한 자연재해에 대한 경각심을 다시 한 번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경주의 지진은 태풍과 홍수 이외의 요인으로 인한 재해에 대해 사실상 무관심한 상태였던 우리에게 그 관심의 폭을 넓힐 필요성이 있음을 상기시켰다. 백두산 화산 분화의 문제는 이의 연장선상에 있다. 백두산 화산 분화가 국내여론의 관심을 받게 된 것은 2010년 아이슬란드 화산이 폭발한 이후이다. 아이슬란드 화산 폭발 이후 일부에 의해 제기된 백두산 화산 분화 임박설에 대해 학계와 대중의 관심이 집중되었고, 이와 관련된 일련의 논쟁과 더불어 화산 분화로 인한 발생 가능한 재해에 대한 우려 또한 높아졌다. 그러나 가까운 시일 내에 화산 분화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주장이 잇따르면서 화산 분화에 의한 재해설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듯하였지만, 이때 갖게 된 경각심은 백두산 화산 분화 가능성에 대한 연구를 지속하여야 한다는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불러일으켰다. 백두산은 지리적으로 북위 41° 01´, 동경 128° 05´에 위치해 있다. 해발고도는 2,750m로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산인 동시에 민족의 영산으로서 신성시됐다. 기록에 남아있는 백두산 분화는 939년, 946년, 947년, 1014년, 1016년, 1017년, 1018년, 1019년, 1124년, 1199년, 1200년, 1201년, 1265년, 1373년, 1401년, 1403년, 1405년, 1573년, 1597년, 1654년, 1668년, 1673년, 1702년, 1898년, 1903년, 1925년 등에 이루어졌다(윤성효 2013). 화산 분화의 규모는 별개로 하더라도 분화와 분화 사이의 시간적 간극만을 고려한다면, 10세기 이후 매 세기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분화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중국과 일본의 전문가들에 의하여 2000년 이후 미소지진이 잦아지고, 정밀 측량에서 백두산의 높이가 증가하였으며, 이와 더불어 마그마의 화학적 성분이 분화에 접근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특히 일본 도호쿠(東北)대학 명예교수(화산학)인 다니구치 히로마쓰(谷口宏充)는 2012년 5월 日本地球惑星科学連合 학술회의에서 연구발표(日本の巨大地震と白頭山噴火活動との時代的相関)를 통해 2011년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의 지각판 운동 영향으로 백두산 화산이 분화할 가능성은 2019년까지 68%, 2032년까지 99%의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국내에서 일부 연구자는 백두산 화산 분화 가능성에 대해 “규모의 문제일 뿐 2035년 이내에 분화할 가능성이 높다”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백두산 화산 분화를 예측하고 전조현상 관측과 대응방안 마련을 위한 연구 또한 진행되고 있다(윤성민·오창환 2014, 8). 많은 이들은 백두산을 휴화산으로 기억하고 있지만, 현재의 상태에서 백두산은 활화산으로 분류된다. 또한 역사의 기록이 보여주듯이 백두산은 여러 차례 분화한 바 있고, 가까운 시일 내에 또 다시 분화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현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백두산 화산 분화 가능성 유무에 대한 논쟁이 아니라, 화산 분화를 기정사실로 전제하고(물론 그 시기와 규모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지만) 화산 분화가 발생하였을 경우 초래될 수 있는 정치·사회·경제적 파장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는 것이다. 백두산 화산 분화로 인한 재해의 규모 예측 백두산 화산 분화가 초래할 수 있는 피해에 관해 진행된 연구 중 가장 주목받은 것은 2015년 발표된 부산대 지구과학교육과 윤성효 교수팀의 연구이다. 윤 교수팀이 발표한 국민안전처 연구용역(‘화산재해 피해예측 기술개발’) 결과에 따르면 폭발지수(VEI) 8단계 중 5단계 이상의 폭발이 발생하고 북동풍이 분다고 전제할 경우, 백두산 분화로 인한 ‘농작물 피해 4조 5189억, 제주공항을 제외하고 모든 공항이 최장 39시간 이상 폐쇄되어 이로 인한 피해액 611억, 화산폭발로 인한 지진의 영향으로 서울과 부산 등 한국 주요 대도시에 있는 10층 이상 건물 유리창과 외벽 등이 파괴됐을 때 발생하는 간접적 피해 등을 합하면 직간접 피해액의 합계가 총 11조 1,895억 원에 달할 것’이라고 예측하였다. 반면 4단계 이하의 폭발일 경우, 북한 지역에 극심한 피해가 발생하는 데 비해 남한 지역은 별다른 피해가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윤 교수팀의 발표는 국내외 언론에 대대적으로 소개되면서 커다란 사회적 반향을 초래하였고, 예측의 정확성 및 현실성 여부를 둘러싼 논쟁으로도 이어진 바 있다. 화산 분화 시 직접적인 화산 재해는 크게 화쇄류와 화산 이류 및 홍수, 화산재, 쓰나미 등이 있다. 그러나 폭발의 강도, 화산 분화의 종류, 바람·습도·온도와 같은 기후적 조건, 계절적 요인, 2차 피해의 범위에 대한 규정 등에 따라 매우 복잡하고도 다양한 결과가 산출될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이 예측 가능한 피해 중 백두산 화산이 분화하였을 경우, 한국에서 가장 가능성 있는 직접적 피해는 화산재로 인한 피해일 것이라는 예측이 일반적이다. 사실 백두산 화산 분화와 같은 자연재난으로 인한 재해의 발생은 완벽한 예방이 불가능하다. 화산 분화뿐만 아니라 지진, 해일, 태풍 등의 자연재난의 경우에도 현재의 과학기술로써 재난 자체를 없애는 것은 물론 그 정확한 예측은 불가능하다. 단지 우리는 그것이 초래하는 파괴의 효과를 감소시키거나 그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다. 21세기에 들어서도 자연재난과 이로 인한 재해는 예측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지만, 동시에 국경을 초월한 국제적 문제로 취급되기도 한다. 즉, 넓은 의미에서 비전통 안보의 한 분야인 인간 안보의 개념에서 접근되기도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백두산 화산 분화는 그것을 어떻게 프레이밍(framing) 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와 대응책 및 해결방안이 달라질 것이다. 특히 백두산 화산 분화의 문제를 자연재난으로 인한 물리·경제적 피해의 측면에서 접근할 것인지, 아니면 그에 따른 정치·사회적 문제까지를 염두에 둘 것인지에 따라 그 대응 범위와 대응 주체의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결국,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백두산 화산 분화가 가져올 정치·사회·경제적 파급효과이지만, 현재 상황에서 더 우려스러운 것은 백두산 화산 분화의 정치·사회적 파장에 대한 연구, 특히 국제적 관점에서의 연구 및 대비가 매우 드물다는 것이다. 국제협력의 필요성 백두산은 이 땅 한반도에 존재하고 있지만, 남쪽에 있지 않고 북쪽에 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북한의 관할구역에 속한다. 그마저도 온전히 북한의 영토가 아니라 중국이 그 소유권 중 일부를 갖고 있다. 또한, 화산 분화 시 그에 따른 재난·재해의 파급효과는 북한만이 아니라 주변 여러 국가에까지 미칠 것이므로 그 관할권과 문제 해결의 주체를 쉽게 확정 지을 수 없는 매우 복잡한 국제적 문제로 간주된다. 따라서 백두산 화산 분화 시 화쇄류의 직접적 피해를 받는 북한지역뿐만 아니라 이차적 피해의 영향권에 속하는 남한, 중국, 일본, 러시아 등도 고려의 대상에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두산 화산 분화 시 피해 예상국의 협조 및 대비 태세는 전무하거나 매우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 백두산 화산 분화가 미치는 피해가 강력하고 광범위하다고 전제할 때, 우리의 관심은 세 가지 측면에 초점을 둘 수 있다. 첫째, 백두산 화산 분화 자체로 인한 직접적 피해로서 화쇄류와 화산 이류 및 홍수 등에 의한 피해 둘째, 백두산 화산 분화가 일으키는 간접적 피해로서 화산재 분출로 인한 교통·통신망의 마비, 농작물 피해 및 산업단지 피해와 같은 경제적 피해 셋째, 백두산 화산 분화로 인한 직·간접 피해의 규모가 광범위하고 지속적으로 진행됨으로써 주변국의 통치상황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 그중에서도 최악의 시나리오는 북한 내부에 급변사태가 초래되는 경우 등이다. 이는 백두산 화산 분화와 그 파급효과를 단순한 자연재난과 재해의 문제로만 취급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북한에서 급변사태의 발생은 동북아 지역의 안보구도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바, 동북아의 주요한 행위자 중 하나인 미국 또한 이 문제에 반드시 개입하고자 할 것이 예측된다. 결국, 백두산 화산 분화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북아 수준에서의 국제적 협력을 해야 함이 명확해진다. 북한의 취약한 방재 시스템 국제적 협력의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현재 상황에서 동북아 수준에서의 재난 대비 협력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특히 핵개발로 인한 북한의 폐쇄지향과 비협조는 국제적 협력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백두산과 관련하여 상황을 더욱 우려스럽게 하는 것은 북한의 재난 대비 태세가 매우 취약하다는 것이다. 국제적십자사(International Federation of Red Cross and Red Crescent Societies)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 1995년에서 2014년에 사이 자연재해로 인한 전 세계의 사망자 수는 2백여만 명이었으며, 이 중 북한에서 발생한 사망자의 수는 60여만 명에 달함으로써 전체의 30%를 차지한다. 이 시기가 북한이 소위 고난의 행군이라고 일컫는 특별한 어려움을 겪은 기간과 겹친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자연재난과 이로 인한 재해에 대처하는 북한의 준비가 충분치 않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백두산 분화가 발생한다면 북한의 피해는 자칫 궤멸적일 수 있다. 백두산과 관련한 남북 간 접촉은 이루어지기는 하였으나 그 결과는 없다. 2007년 12월 개성에서 개최된 남북보건환경회담에서 북한은 남한 정부에 지진계 설치와 백두산 화산 공동연구 추진을 요청하였다. 당시 북한은 일본에도 도움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요청에 대해 한국은 두 차례의 비공개회의 개최 후 지진계 설치 요청을 수락했으나, 이후 남북관계 경색으로 무산되었다. 백두산 문제와 관련하여 남북의 접촉은 2011년 3월 다시 이루어졌다. 이때 남측은 북측에 백두산 내부 마그마 움직임에 대한 공동연구를 제의하였고, 남북학술토론회 개최에 합의하였다. 그러나 이는 핵실험 지진파까지 감지하는 지진계 설치로 인하여 남한에 군사정보가 넘어갈 것을 우려한 북측에 의해 결국 무산되었고, 이후 백두산 문제를 포함하여 어떠한 분야에서도 남북한 간에 환경 및 자연재난과 관련한 협의가 이루어진 바 없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하여 백두산 화산 분화에 대비하기 위한 국제적 협력체의 출범은 고사하고, 백두산 화산 분화 가능성 연구를 위한 최소한의 과학적 협조마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자연재해 대비를 위한 동북아 국제협의체 출범 필요 백두산 분화는 직간접적 영향권에 들어 있는 한국, 일본, 러시아, 그리고 지역 이해관계자로서의 미국을 비롯한 여타의 많은 나라의 문제로 인식되어야 한다. 백두산 분화에 대한 대비책은 기본적으로 한국에 발생할 수 있는 물리적·비물리적 피해에 대한 대비를 포함하여 주변국들과의 공조 및 협조체제 구축까지 염두에 두고 수립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화산 분화로 촉발될 수 있는 북한의 급변사태 가능성까지 고려했을 때, 백두산 영토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중국과의 공조는 사전에 매우 세밀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조율과 대비를 할 필요가 있다. 또한, 화산 분화로 인한 주변국 피해는 직접적이라기보다는 항공운송수단 불통과 화산재 피해 등의 간접적 피해에 그칠 가능성이 클 것이다. 하지만 재해로 인하여 한반도에 예기치 않은 상황이 발생할 경우, 동북아 지역 안보와 직결될 것이기 때문에 이해관계 국가들과의 관계 설정을 어떻게 해 나갈 것인지에 대해 치밀한 대비가 필요하다. 물론 백두산 분화는 그 현시적 위협이 강하지 않고, 상황 발생 시 피해 환경은 결정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고, 상황에 따라 동북아의 세력균형과 안보환경에 심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그리고 그에 따른 국내·국제 정치적 환경이 변화할 상황에서는 모두의 이해관계가 다를 수밖에 없고, 이러한 상황에서 협력적 합의를 도출해내는 것은 매우 지난한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 아쉬운 것은 백두산 분화와 관련한 현재의 연구는 자연재난과 재해에 대한 대비와 대응전략 수립에 맞춰져 있으며, 정치·사회적 맥락에서의 접근과 국제협력의 문제는 제외되어 있다는 점이다. 2016년 늦여름 발생한 자연재해에 대한 북한의 협조요청과 국제사회의 거부는 북한과의 협력이 절대 쉽지 않을 것임을 다시 한 번 보여주었다. 2016년 8월 29일부터 9월 2일 사이 함경북도를 휩쓴 수해로 인해 수백 명의 사상자와 7만여 명의 피해자가 발생하였다. 그리고 북한은 국제사회의 지원을 요청하였지만, 9월 9일 5차 핵실험으로 인하여 한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반응은 냉랭하기만 하였다. 현재 경색된 남북관계 하에서 북한과의 협력 가능성은 점점 요원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색국면이 언제까지나 지속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다. 북한의 자연재난에 대한 인도적 협조와 도움은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어나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화산 분화 문제의 당사국은 남북한에 국한되지 않고 동북아 각국을 아우르는바, 일본·중국·러시아가 일정한 역할을 담당하여 당사국들의 협의체가 조직되면, 장기적으로 유명무실해진 6자회담을 대체하는 핵문제 해결의 새로운 실마리가 될 수도 있으리라는 희망적 예측이 또한 가능하다. 결론적으로, 관련 국가들의 참여하에 가능한 모든 경우에 대비한 시나리오의 상정과 그에 조응하는 행동계획(Action Plan)의 수립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이를 총합적으로 조정하고 통제할 수 있는 위기관리 컨트롤 타워(Crisis Management Control Tower)를 구축할 필요가 있음이 더욱 명확해진다. 이는 한반도에서의 재해에 대한 사전 대비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공동선 증진을 위한 선의적(善意的) 접근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자연재해 피해 감소를 위한 대비책 수립과 국제협력의 경험은 유사한 자연재해가 발생했거나 발생 가능한 타국에의 경험전수로도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現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연구센터 책임연구원,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 주요 관심분야는 국제협력/협상, 스포츠 정치/외교, 공공외교/ODA, 통일 남북관계 등임, 최근 연구로 "한국-쿠바 국교정상화에 관한 소고: 양면게임의 논리와 상승적 연계의 모색", "백두산 화산재해와 북한 급변사태에 관한 소고: 주변국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Why Japan and Russia have failed to solve the territorial dispute: the 1956 Joint Declaration and the mechanism of political coherence" 등이 있음.
  • 일대일로(一帶一路)의 지전략적 실체: 교통 운송 인프라 건설 중심으로
    저자
    김송죽 (이화여자대학교)
    발간호
    2016-42
      1. 일대일로 전략과 AIIB 제도의 공통분모: ‘교통 운송 인프라 건설’ 올해 3월 중국의 양회에서는 1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핵심 과제인 지역경제 발전에 대한 실천 방안으로 '일대일로' 전략을 추진시켰다. 일대일로(一帶一路: One Belt, One Road)는 중앙 및 서부 아시아를 통해 중국과 유럽을 연결하는 '실크로드 경제 벨트(일대)'와 중국, 동남아, 중동·아프리카 및 유럽을 연결하는 '21세기 해상 실크로드(일로)'를 지칭한다. 한마디로, 육상과 해상 실크로드 선상에 있는 국가들을 철도, 도로 등의 육로와 항만을 이용하여 해로를 연결하는 것이다. 이 일대일로 전략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경제적 제도인 AIIB(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를 설립했다. 일대일로의 목표는 과거 융성했던 유라시아의 육상 및 해상 무역로를 중국을 중심으로 재건하는 것이다. 해당 지역의 인프라 개발 및 무역 활성화를 추구하며, 중앙아·동남아 등 국가 및 지역 경제협력을 강화할 뿐만 아니라 중국의 정치경제적·사회문화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이다. 또한, 2049년 완공을 목표로 하는 중앙 및 서부 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를 고속철도로 연결하는 이 전략구상은 2049년 건국 100주년을 향한 중국의 현대판 대장정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아시아의 성장 동력과 유럽의 시장 및 기술을 결합하여 하나의 유라시아경제권으로 통합하고 중국을 기점으로 약 65개국, 44억 명(세계 63%) 연결, 경제 규모 21조 달러(2경 3천조 원)로 세계 GDP의 60%, 수출의 24%를 올리겠다는 것이다. 일대일로가 어떻게 구상되고 구체화되었는지를 살펴보자면, 2013년 9월 중국 시진핑 주석이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에서 ‘실크로드 경제 벨트’ 건설과 같은 해 10월, 동남아의 인도네시아에서 ‘21세기 해상 실크로드’ 건설과 AIIB 설립을 ASEAN 국가들과 함께 추진할 것을 제안한 것에서 비롯된다. 2015년 2월 ‘일대일로 건설공작영도소조’ 설치와 더불어 국유기업·연구기관·대학 등을 연계하는 일대일로의 정책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이어 5월에는 일대일로 영도소조 조장인 장가오리(張高麗)가 6대 경제회랑(①중국-몽골-러시아 회랑, ②TCR 회랑, ③중국-중앙아시아-서아시아 회랑, ④중국-인도차이나 회랑, ⑤중국-파키스탄 회랑, ⑥방글라데시-중국-인도-미얀마 회랑)을 발표하였다. 또한 2015년 12월 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 등 서유럽 국가들이 가입한 가운데 57개국을 회원으로 하는 AIIB를 설립하였다. 그리고 2016년 3월 3일 개막된 양회에서 일대일로 계획을 공식적으로 추진하였다. 일대일로의 현황을 보면 육상의 일대 3개, 해상의 일로 2개로, 총 5개의 노선을 가진다. 인프라 건설은 특히 철도와 도로의 육상노선 건설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 왜냐하면, 육상노선인 일대(One Belt)는 해상노선의 일로에 비해 인프라로 연결하였을 때, 지역개발 및 산업연관 파급효과와 경제적 이익이 크고, 노선상의 국가들과의 정치적 관계 또한 상대적으로 평화협력적이고 상호우호적이기 때문이다. 한편, 해상노선인 일로(One Road)는 거점 항구들을 연결하는 방식인데 항만 건설, 항로 연결, 통관절차 통일 등 소프트웨어 연결 측면이 강하다. 해상교역의 독립성과 물류서비스의 효율화를 확보하려면 무엇보다 항만운영권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중국은 이미 파키스탄,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그리스, 예멘, 탄자니아 등 일부 항구에 투자하여 운영권을 확보하였다. 최근 일대의 육상노선으로서 태국에 총 867km에 달하는 철도 네트워크를 건설하고 쌀 2백만 톤을 수입하기로 합의했다. 앙골라를 관통하는 철도를 최근 완료하였고, 현재는 나이로비 노선을 건설 중으로 조만간 아프리칸 드림이 실현될 수도 있다고 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한편 중국 내에서 일대일로에 해당하는 핵심 지역의 16개 성은 주로 서부 지역에 위치한다. 왜냐하면 동부 연안 지역보다 서부 지역은 사회경제적으로 낙후되었고, 주변국이라 불리는 14개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기 때문이다. 육상 실크로드는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 출발해 칭하이성, 산시성, 네이멍구자치구를 거쳐 지린성, 헤이룽장성까지 이어진다. 해상 실크로드는 장쑤성, 저장성, 푸젠성, 광동성, 하이난성 등 동부 연안의 5개 행정구역을 포함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의 적극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AIIB는 2016년 4월 초 인프라 건설 사업들을 발주하였다. 최초 사업들은 파키스탄, 타지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중국의 접경국 위주로 발주되었고, 이어 2016년 9월 8개 인프라 개발 프로젝트에서는 인도,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미얀마 등 역시 중국의 우방국이자 접경국이 선정되었다. 현재 중국은 접경국과의 교통 운송 인프라 및 일대일로 현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중국을 기점으로 하는 중국 발(發) 국제철도, 총 16개가 확충되고 있는 중이다. 동북아시아의 북한 4개, 러시아 1개, 몽골 2개의 노선,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 4개, 서남아시아의 파키스탄 1개의 노선 및 동남아시아의 미얀마 1개, 라오스 1개, 베트남 2개의 노선이 이에 해당한다. 국제고속도로는 북한 5개, 러시아 3개, 몽골 1개, 카자흐스탄 2개, 타지키스탄 1개, 파키스탄 1개, 미얀마 1개, 라오스 1개, 베트남 2개이다. 국제 송유관 및 가스관은 석유, 가스 등 천연자원 부국이자 접경국인 카자흐스탄, 러시아, 미얀마 3국과 개통하여 운행 중이다. 또한, 중국-파키스탄 송유관, 중국-인도-이란 송유관, 제2차 중국-카자흐스탄 송유관 건설도 추진 중이다. 2. 일대일로의 지전략적 효과와 특징 시진핑 정부(2012~2022)의 일대일로 전략과 AIIB 제도의 공통분모이자 핵심 사업은 철도, 도로, 항만 등의 인프라 건설이다. 이것을 중국이 주도하여 중앙아-동남아-아프리카 등 상대적으로 발달이 덜 된 국가에 대외원조 및 투자 방식으로 건설해 줌으로써, 개도국들의 경제를 부흥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은 왜 일대일로의 핵심 사업을 교통 운송 인프라 건설로 규정하고, 관련국들과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인가? 이러한 교통 운송 인프라 건설은 지전략적(geo-strategic) 의미와 효과를 지닌다. 여기서 ‘지전략’이란 지리전략적의 줄임말이다. 즉, 어떠한 전략 및 계획을 구상할 때 ‘지리적 위치와 이점’을 강조하여, 한 지점에서 점-선-면으로 확장되는 정치·경제·사회·문화 등의 효과와 의미를 염두에 두고 판을 짜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지전략적인 개념은 지경학적(geo-political), 지정학적(geo-economic), 지문화적(geo-cultural) 측면을 모두 포함하고 있으므로 복합적이고, 다면적인 선상에서 그 실체를 분석해야 한다. 교통 운송 인프라 구축 사례를 통해 일대일로의 지전략적 효과와 함의, 그 실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일대일로는 단순한 교통 운송로 건설이 아닌 ‘공간지배 차원’의 전략이다. 중국은 이미 후진타오 체제(2002~2012)부터 카자흐스탄, 러시아, 미얀마 등의 접경국과 국제 송유관과 가스관을 개통하여 운행 중이고 카자흐스탄, 몽골, 북한, 러시아 등에 도로와 철도를 건설하였다. 그러나 현(現) 시진핑 체제는 이 접경국들을 중심으로 주변국 및 유럽까지 확장하여 교통 운송 인프라 건설에 필요한 자금과 투자를 AIIB를 통해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즉, 기존에는 에너지 및 천연자원 운송을 쉽게 하기 위한 경제적 이익의 수단으로 인프라를 건설했다면, 이제는 중국이 유라시아의 교통 운송 허브가 됨으로써 정치경제적, 사회문화적으로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 ‘공간지배전략 차원’으로 그 의미가 확대되었다는 뜻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일대일로는 인프라 구축이라는 경제협력을 기반으로 정치외교 영향력을 강화하여 중국의 주변국을 흡수하기 위한 전략이다. 다음으로 일대일로는 시진핑 체제의 획기적인 대외전략이 아니다는 점이다. 다만 21세기 초 후진타오 정부 때부터 진행되어오던 인프라 건설이 재확대 및 재조명되어, 중국의 세계관과 신(新)중화질서를 국제사회에 본격적으로 가시화한 것뿐이다. 이미 진행됐던 인프라 구축 프로젝트를 더욱 강화하고 구체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둘째, 일대일로는 중국 국내에서 지역 간-도농 간-산업 간의 사회경제적 격차와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변경지역 개발 및 지역 균형발전 전략이다. 일대일로는 중국 중서부에 대한 개방과 개발을 기반으로 한다. 2000년 초반 후진타오 정부가 추진해 온 서부대개발, 동북진흥전략 등의 변경지역개발 정책의 중점사업도 역시 사회경제적 네트워크를 활성화 시키는 데 있어 기본적인 토대가 되는 교통 운송 인프라망 구축이었다. 이것은 시진핑 정부에서도 지속적인 국가의 핵심사업으로 계속 확충 및 확장 중이다. 왜냐하면 선부론(先富論, Getting Rich First)에 입각해 눈부신 경제발전과 현대화를 이룬 동부 연안 지역과 달리, 열악한 자연환경과 노후된 산업기반시설로 사회경제적으로 낙후된 동북-서북-서남 지역은 안정적인 사회통합과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중국 정부의 백년대계(百年大計) 핵심과제이기 때문이다. 현재 육상의 실크로드 경제벨트와 연결지어 앞으로 경제 자원은 주로 충칭, 청두, 시안 등의 선도도시에 더욱 빠르게 집적될 것으로 보인다. 셋째, 일대일로는 중국의 산업구조 조정 및 새로운 경제성장 동력의 창출을 위한 전략이다. 중속 성장이라 불리는 신창타이(新常態, New Normal) 시대를 맞고 있는 중국의 지속되는 디플레이션 압력의 원인은 과잉생산능력과 설비문제이다. 이 과잉생산능력은 철강, 시멘트, 건자재 등 인프라 관련 산업에서 특히 심각하다. 왜냐하면, 중국은 인프라 투자 위주로 성장을 해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은 일대일로를 통하여 신흥국 및 해외에 철도, 발전소, 통신 등의 기술과 투자를 하여 중국 내의 잉여 생산력과 과잉설비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약 30년간 유지해왔던 중국의 2차 산업구조를 주변의 개도국으로 이전시키고, 중국은 전면적으로 3차 서비스 산업구조 모델로 전환하겠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측면에서 일대일로는 국제사회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는데 즉, 중국 내부의 경제적 문제를 외부로 전가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과 신(新) 식민주의적 방식으로 자원과 시장을 확보하려는 한다는 점이다. 넷째, 일대일로는 조선족, 위구르족, 몽골족 등 소수민족의 정치사회적 안정과 통합 전략이다. 한족과 55개 소수민족으로 이루어진 중국은 민족분열을 경계하고 ‘하나의 중국원칙’을 고수한다. 연변조선족자치구와 네이멍구자치구, 신장위구르자치구 등 중국 소수민족들이 분포한 변경지역에는 인종, 언어, 종교적으로 그들의 뿌리가 되는 접경국인 북한, 몽골, 카자흐스탄 등이 있다. 중국 정부는 조선족과 북한을 연계하기 위해 철도, 도로, 항만을 근간으로 하는 ‘육로·항만·구역 일체화’ 건설을 이미 창지투개발, GTI(대두만강지역협력), 훈춘경제합작구, 동변도철도 복원 등으로 추진해 왔다. 마찬가지로 위구르족과 카자흐스탄을 연계하기 위하여 신장위구르자치구에 송유관·가스관 건설, 변경경제합작구, 수출가공구, 초국경공업구 건설 등 산업 기반시설을 확충 중이다. 이를 통해 대내적으로는 민족단결, 주권과 영토보존, 하나의 중국 원칙 등 내부통합과 체제안정을 실현하고, 대외적으로는 북한 및 한반도 그리고 카자흐스탄 및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내정간섭을 일으키는 잠재적 위협요소를 제거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다섯째, 일대일로는 ‘중국의 꿈(中國夢)’이라는 수사를 통해 중화민족의 부흥과 실크로드의 역사적 의미를 복원함으로써 중국문화와 정신적 가치를 전파하고자 하는 전략이다. 이것은 일대(一帶, One Belt)가 당나라의 비단길, 일로(一路, One Road)는 명나라의 바닷길을 차용한 것에서 알 수 있는데, 과거의 화려하고 번영했던 중국의 황금시대를 되찾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즉, 시진핑 정부는 21세기 신(新)중화질서와 중국의 세계관, 문화적 가치를 보급함으로써 중국공산당 지배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대외적으로는 국가 이미지를 높이려는 것이다. 일대일로 관련 각 지역의 에서 나타난 가장 뚜렷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지방외교 분야인데 인문유대, 국제교류 기제 마련, 비지니스·문화·관광 국제교류와 관련 핵심 내용을 보다 구체화하였다는 점이다. 여섯째, 일대일로는 국제금융의 위상 강화와 세계경제질서의 주도권 확대 전략이다. 중국은 교통 운송 인프라 건설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중국은 4조 달러에 달하는 외환 보유액과 AIIB, 실크로드 기금 등의 금융기구를 운용하면서 관련국들에 대한 위안화 금융거래를 확장할 것이다. 이 말은 곧 기축통화인 미국의 달러를 중국의 위안화로 대체하고, 금융 대국으로 부상하여 미국 주도의 IMF(국제통화기금)와 WB(세계은행), ADB(아시아개발은행) 등을 재편하겠다는 의미이다. 중국은 주요 신흥국 및 개도국에 대해 인프라 건설의 경제적인 지원을 통해서 중국 주도의 경제협력체를 확립하고 위안화의 국제화, 과도한 보유 외환의 문제 해결, 국제금융기구 재편 등으로 중국 주도의 메가 경제권을 형성하겠다는 것이다. 일곱째, 일대일로는 지역 및 세계패권 경쟁에서 우위 선점과 주변 안보 전략이다. 중국은 지역적 차원에서 중앙아시아에서 ‘러시아’와 서남아시아에서 ‘인도’와 동남아 및 아태지역에서 ‘미국’과 지역 패권을 선점하기 위한 경쟁을 하고 있다. 또한 지구적 차원에서 미국과 함께 세계의 G2인 중국은 앞으로 미국과 국제정치경제질서 재편을 두고 경쟁이 불가피하다. 교통운송 인프라 구축은 주로 영토, 민족, 테러, 종교 등 접경안보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중국의 접경지역을 핵심 대상으로 하고 있다. 과거 구소련의 영토였던 ~스탄이라 불리는 중앙아시아의 국가들을 둘러싸고, 중국의 서진 정책과 러시아의 남하 정책의 경쟁은 불가피한 상태다. 파키스탄,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등 서아시아의 국가들과 인도양의 해로를 놓고 인도와의 경쟁도 잠재하고 있다. 또한, 동북아-동남아는 물론 지구적 차원에서 중국의 신형대국관계와 미국의 아시아 회귀 및 재균형 정책의 대결, 대륙 세력인 팍스시니카와 해양 세력인 팍스아메리카의 대결, 미국 주도의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와 중국 주도의 RECP(동아시아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AIIB의 대결 등이 예상된다. 2009년 미국이 아시아 회귀 및 재균형 전략을 추진한 이후, 중국은 지속적으로 아태 지역에 군사력과 정치적 영향력을 강화하고 군사·경제적으로 자신을 견제하면서 압박하고 있다고 인식한다. 그래서 중국 입장에서 중앙아-동남아, 중동-아프리카, 유럽의 국가에 대한 정치경제적 선점과 포섭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중국은 유라시아 대륙에 국제인프라를 건설함으로써 관련국과 우의를 다지면서 미국을 우회, 견제 및 고립하기 위한 전략으로 자신의 영향력을 강화하고자 하는 것이다. 영국, 독일, 이탈리아, 한국 등 미국의 우방국이 대거 참여한 일대일로 전략과 AIIB 제도는 중국의 힘을 실어주는 데 더욱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보여진다. 이처럼 일대일로는 중국의 자원 확보, 소수민족의 안정화, 과잉설비문제 및 잉여생산능력 해소, 새로운 경제성장 동력 창출, 지역균형발전, 중국 주도의 메가 경제권 형성, 위안화의 국제화 추진, 주변 안보, 미국 견제, 21세기 신(新)중화질서 구축, 시진핑 체제의 중국외교 변화와 중국의 세계관, 과잉된 보유 외환 문제 해결, 세계경제질서 주도 등 정치·경제·군사·안보의 전략적 연계이다. 1978년 개혁개방, 2001년 WTO 가입에 이어 사실상 ‘3차 대외개방’이라고 볼 수 있는 일대일로는 중국 중심의 경제협력 유도를 매개로 하여 경제발전, 사회통합, 주변 안보, 통치안정 등 중국의 대내외적 목표들이 복합적으로 반영된 ‘국가대전략’인 것이다. 現 이화여자대학교 이화사회과학원 상임연구위원. 이화여자대학교 지역연구협동과정에서 아시아-중국 전공으로 석사 및 박사 취득. 2013년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HK연구교수 역임. 주요관심분야는 국제정치경제 및 중국의 주변국 전략, 에너지 외교, 인프라(도로·철도·송유관 등) 건설 등임. 최근 연구로 ‘중국 국제송유관 건설의 정치경제: 중국-카자흐스탄 송유관(2006·2009) 건설을 중심으로’, ‘중국 동북지역 고속도로망 확충의 특징과 국가전략’, ‘부시정부 시기 석유자원이 해외주둔 미군 재배치(GPR)에 미치는 영향’, ‘중국 도시상업은행의 시장자유화로의 이행’ 등이 있음.
  • Duterte’s Pivot to China: Realities and Interests
    저자
    Aries A. Arugay (The University of the Philippines in Diliman / Jeju Peace Institute)
    발간호
    2016-41
      The world paid attention to the highly anticipated visit of Philippine President Rodrigo Duterte to China for many reasons. It was seen as the ultimate gesture of revitalized relations between the two neighbors after years of animosity due to territorial disputes in the South China Sea. However, the trip became less about rekindling ties with China, and more about how the Philippines is breaking away from the United States. Observers have interpreted Duterte’s first trip outside Southeast Asia as an attempt to seek new big power allies given his contempt for the United States and Europe. The official state visit occurred a few months after the historic arbitral ruling on the South China Sea that China refused to acknowledge and many have found it surprising that the already uncertain strategic regional environment can be further complicated by a small state like the Philippines. By engaging China, Duterte seeks to tread a different path from previous governments toward a more independent foreign policy. The controversial leader believes that the close relationship with the US did not serve the national interest given its lack of credible commitment to defend the Philippines against foreign invasion. Though an independent foreign policy is a laudable goal, there is skepticism toward the move to attach the country to the region’s hegemon. Some fear that the president will abandon Scarborough Shoal in exchange for economic deals or reinstated fishing rights for Filipinos. As top diplomat, Duterte can craft foreign policy in broad strokes. However, any major revisions to the status quo cannot be single-handedly altered even by a very popular president. Implementing sweeping changes is unsustainable given the country’s weak bureaucracy and elite-captured institutions. Philippine strategic interests are also not served by complete trust in China given its past actions. The key is to make a sober and wise distinction between Duterte’s off-the-cuff remarks and his government’s subsequent policy actions. The Philippines-China Spring Chinese President Xi Jinping described Duterte’s visit as springtime after a winter of mutual discontent. Their joint statement sought to continue stalled cooperative ventures and embark on new ones ranging from intelligence sharing to combat illegal drugs to public infrastructure, agriculture, and people-to-people exchange. The Philippine president left China with reportedly US$ 24 billion worth of deals, loans and aid. As expected, Duterte’s fiery rhetoric trumped the economic outcome of the trip. He praised China’s generosity, identified with its ideological slant and promised to pursue a joint alliance with other countries. In that same vein, however, he announced his economic and military “separation” from the US. After those remarks, the trip became less about rekindling ties with China more about how the Philippines is breaking away from its big brother, the US. The symbolism was too good not to be noticed: a US ex-colony and most trusted ally blessed with a geographic strategic advantage is now embracing the US’s fiercest rival. Philippines-US relations: It’s complicated The Philippine president eventually clarified he will not sever ties nor abrogate treaties with the US. Unlike other populist leaders, Duterte was also quick to recognize the limits of presidential power and the legal constraints of negotiating territorial claims. The US reaction to Duterte’s remarks displayed a modicum of patience and sobriety. As a country whose political institutions were fashioned in their image, the US knows the Philippines better than any other country. It knows that this attempt to deviate cannot be maintained in the long run. The highly personalized nature of Philippine politics, an American colonial legacy, prevents this stance from being sustained. The US can also rest on the fact that it has inculcated shared values and interests among the Filipino elites and masses for decades that are now so robust that no leader, however popular, can dismantle or erode. Duterte, however, is tapping into a sensitive sentiment shared by many Filipinos. While they are the most pro-American public in the world, it should not be taken as blind loyalty. Colonial atrocities remain imprinted into the Filipino collective consciousness. Duterte is the not the first Philippine president who is standing up against the US, nor will he be the last. Though the US tolerates Duterte’s antics, it does not mean that it will just allow the Philippines to get away with it. Historically, the Philippines has paid a high price every time it veers away from the US as seen when the country refused to renew the military bases agreement and when it pulled out its contingent in the US-led coalition against Iraq in 2004. It will just depend how far-reaching these repercussions are to the country’s interests. Credibility costs In the meantime, there are already costs to Duterte’s pronouncements in the form of the diminished ability of the Philippines to make credible commitments abroad. Critics wasted no time highlighting his incompetence in foreign affairs while supporters say that he is drawing from a strategic playbook he alone is privy to. While pundits debate this, other states are taking note of Duterte’s words and actions. Foreign policy requires a level of consistency that reduces significant risks. While countries may benefit from the less conservative foreign policy stance of the maverick president, high payoffs are often canceled by higher risks. So far, Duterte’s popularity at home means he does pay the audience costs related to his controversial statements. However, domestic politics can quickly change for the worse given that the political elites he displaced are wasting no time antagonizing his government. More tempered Chinese officials acknowledge that things may completely change, resulting in foreign policy reversals; politics rarely stops at the water’s edge in the Philippines. Duterte’s attempt to pursue an independent foreign policy is desirable and should be supported. Realizing this vision does not mean substituting one major power for another but rather in adopting careful policies guided by the idea that ‘whether the elephants fight or make love, the grass will still suffer’. Aries A. Arugay is associate professor of political science at the University of the Philippines in Diliman and executive director of the Manila-based Institute for Strategic and Development Studies, Inc. He is also currently a visiting fellow of the Jeju Peace Institute in South Korea. @ariesarugay * This article first appeared in the Australian Outlook of the Australian Institute of International Affairs.
  • 원자력추진잠수함 도입논쟁에서 우리가 극복해야 할 점
    저자
    신창훈 (한국해양전략연구소)
    발간호
    2016-40
             1. 들어가는 말 2. 국제사회의 북핵위기에 대한 인식의 변화 3. 원자력추진잠수함과 핵비확산조약(NPT) 체제 및 안전조치 4. 캐나다, 브라질, 인도가 가져다주는 교훈 5. 우리의 주변국 6. 맺음말 1. 들어가는 말 5차 핵실험에 이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개발을 포함한 각종 미사일 도발 등 북한의 지칠 줄 모르는 전략적 도발로 인하여 미국 정부는 물론 워싱턴의 비확산 커뮤니티는 연일 분주하게 북한의 동향을 주시하고 있다. 몇 년 전 일본의 한 전직 군 장성은 어떤 회의에서 농담이지만 국제사회가 계속해서 북핵문제에 대해서는 레드라인을 후퇴시키다 보니 이제는 그 후퇴된 레드라인이 쌓여 북한에 레드카펫이 되었다고 냉소적인 경고를 한 적이 있다. 이처럼 국제사회는 그동안 북한의 핵문제에 대해 지나칠 만큼 관대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제 UN 외교가는 보다 강력한 대북제재를 위해 국제사회의 공조를 요청하며 동분서주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도발이 너무나도 자주 발생하다 보니 제재가 뒷북을 치며 따라가는 형상이 되어가고 있는 인상을 주고 있다. UN의 대북제재 전문가패널(panel of experts)1)이 그동안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효율성에 대해 평가하면서 북한의 핵을 저지하지는 못했지만, 최소한 상당기간 개발을 지연시키는 데 기여하였다고 주장했지만 이러한 긍정적 평가마저 의미가 없게 되어 버렸다. 제재가 정말 북한의 행위를 수정하여 자발적으로 핵을 포기하게 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아무리 압박해도 한쪽은 포기할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으니 사후적 처벌의 성격에만 머무는 것 아니냐는 탄식이 나오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그래도 사후적 처벌이라는 성격도 억제력을 지니고 있으니 좀 더 기다려보자는 자기만족적 항변도 나오고 있다. 논란이 분분하더라도 여전히 현시점은 제재의 장단점을 철저히 분석하여 단점을 보완하고, 효율성 극대화를 위해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할 시기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폴 브래큰은 “제2차 핵시대”2)라는 저서에서 그동안 미국과 국제사회가 한물간 상호확증파괴(MAD)에 기초를 두고 있는 전통적 억지(deterrence)의 관점에서 북핵을 최소 억지력에 불과하다고 폄하해 왔다는 뼈저린 반성을 한 바 있다. 그러나 여전히 북핵문제를 “이웃집 거실에서 자살하기” 정도로 비유하고 있다. 물론 북한을 미쳐서가 아니라 아주 교활하고 이성적으로 자살소동을 하고 있다고 보는 점, 제2차 핵시대는 미소의 양극체제가 아니라 보다 지역화 된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동아시아, 남아시아, 중동이 특히 위험한 지역으로 부상하고 있는 다극화 현상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분석과는 분명 차별화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비유가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 이웃집이 바로 우리라면 우리 거실에서 핵무기를 보유하면서 자살 소동을 벌이고 있는 북한을 바라보며 과연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자살하러 왔기 때문에 우리는 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정부나 국방분야 전문가들은 한미동맹을 그 어느 때보다 강조하면서 일본과의 군사적 협력 가능성도 언급하고 있다. 그렇다면 신뢰가 생명인 동맹과 협력을 강조하면서 정치권에서 봇물 터지듯 나오는 핵무장론과 핵잠수함 도입문제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당황스러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정부는 지난 10월 18일 당정협의회 직후 원자력추진잠수함 도입을 신중히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정부는 공식적으로 비핵화의 의지를 강조했다. 정부가 모순에 빠진 것이 아니라면 정부의 이번 발언은 원자력추진 잠수함의 도입이 핵확산과는 무관하다는 판단에 기초한 것일까? 이 글의 목적은 우리가 현시점에서 원자력추진잠수함을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한지를 논의해보자는 것은 아니다. 단지 원자력추진잠수함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정치권이나 언론에서 미국의 동의가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원자력추진잠수함의 보유는 미국과 국제사회의 핵비확산 문제로부터는 법적 기술적으로 자유로운 영역에 있다고 보는 것 같아 과연 이러한 단편적 시각이 앞으로 우리의 안보와 국익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보고자 한다. 결국, 이 글은 정치적 선택과 의지가 원자력추진잠수함의 도입으로 모이는 경우에 우리가 극복해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2. 국제사회의 북핵위기에 대한 인식의 변화 국제사회는 NPT(핵비확산조약)3) 제9조 3항 후문4)에 기초하여 회원국을 합법적인 핵보유국과 핵非보유국으로 분류해 놓았다. 이에 따라 합법적 핵보유국은 우연히도 UN 체제에서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 5개국으로 제한되어 있다. 조약에 의해 법적 지위가 결정되다 보니 조약은 당사국만을 구속한다는 법적 성격으로 인해 처음부터 NPT에 참가하지 않은 국가를 구속하지 못하는 현실적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이러한 법적 공백을 이용하여 핵을 보유할 수 있게 된 국가로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이 있다. 이들은 흔히 “사실상(de facto) 핵보유국”이라 불리고 있다. NPT의 관점에서 보면 용인할 수 없지만 엄격한 법해석론에 의하면 이들의 탄생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NPT 체제의 규범성은 내부적으로는 1993년 북한이 NPT 탈퇴를 선언하면서 심각한 도전을 받게 되었다. 인도, 파키스탄의 경우는 NPT 체제 밖에서 일어난 사건이지만, 북한은 최초로 NPT 체제 안에서 NPT 자체를 정면으로 도전한 사례였기 때문에 NPT의 향후 운명을 결정할 수도 있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물론 절차적으로는 북한이 NPT 제10조 1항5)이라는 탈퇴조항을 원용하면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북한을 규범적 측면에서 NPT 체제 내에 완전하게 붙잡아 두기에는 곤란한 측면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퇴 전 분명히 북한이 NPT의 정신과 개별 조문을 위반한 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러한 중요한 도전 직후 NPT 회원국들이 취한 조치는 안타깝게도 북한에 집중되지 못했다. 관심은 또 다른 형태의 도전 즉 이란의 도전으로 인해 분산되어 버렸다. 이란이 핵무기보유국으로 가는 것은 지정학적 측면이나 지리적 인접성 측면에서 서방세계에는 더 큰 위기로 인식되었다. 이란의 도전이 북한과 달랐던 점은 북한처럼 공개적으로 핵무기를 보유하겠다고 선언하면서 핵실험을 감행한 것이 아니라 NPT 체제 내에 머물면서 은밀히 핵무기프로그램을 가동하는 소위 헷징(hedging) 전략을 취했다는 점이다. 어떤 사고가 발생하면 그 사고에 대한 대처와 함께 사후 예방조치도 논의되지만 때에 따라서는 사고처리보다 사후예방조치에 더 큰 관심을 가지는 경향이 발생하기도 한다. 북핵문제를 두고 국제사회에서도 이러한 경향이 나타나게 되었다. 예를 들어 북한의 NPT 탈퇴선언 후 2년 뒤에 1995년 NPT 제8조 3항에 기초한 NPT 검토회의(Review Conference)6)가 개최되었다. 이 회의에서 당연히 NPT 탈퇴를 선언하며 NPT를 정면으로 도전하는 북한에 대해 비난은 거세었지만 이러한 북한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를 논의하기보다는 앞으로 북한과 같이 NPT를 탈퇴하는 국가는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지 혹시라도 이란이 북한처럼 탈퇴할 것인지의 문제를 더 우려하고 집중하는 양상을 보이게 되었다. 즉, 북한은 탈퇴해버렸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이란은 어떻게 해서라도 탈퇴를 막을 것인지가 더 큰 관심거리가 되어버리는 이상효과가 발생한 것이다. 이러한 사례 역시 북핵위기를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인식수준이 북핵위기를 점점 더 키우는 데 일조했다고 보여줄 수 있는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법규범의 이해와 관점의 차이일 수도 있지만 NPT 조약을 공개적이며 지속적으로 위반하면서 불편하다고 떠나버리는 체제도전이 더 나쁜가 NPT 체제에 머물면서 다른 당사국을 속이며 위반하는 도전이 더 나쁜가에 대해 NPT 회원국은 근본적으로 고민해 보지 못했다. 나아가 양자 중 어떤 경우가 향후 NPT 체제와 규범력에 더 큰 악영향을 줄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해보지 못했다. 국제사회가 북한에 대해 NPT 위반이라고 계속 항의해 왔지만 결국은 NPT라는 규범적 관점에서 비핵화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지정학적 국제정치학적 이익의 관점 정책의 우선순위라는 관점에서 비핵화를 바라보고 있었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가 된 셈이다. 이런 모순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의 노력은 결실을 이루어 이란 핵문제는 다행히도 2015년 7월 14일 이란과 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국 및 독일과의 합의로 타결되었다. 국내외에서 타결의 의의에 대해 여러 분석이 존재하지만 북핵문제에 가져다주는 의의와 관련해서 몇 가지 언급을 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결과론적이지만 성과가 규범도전에 대한 해악의 상대적 비교를 무의미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란 사례에서의 성과는 NPT의 가치와 효용성을 상대적으로 높여주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둘째, 이란 핵합의는 이란이 그래도 끝까지 NPT 체제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국제사회와의 대화가 가능했고 그 결과 합의가 가능했다는 점이다. 핵무기 개발로 신뢰가 깨어져 있는 상황에서 기술적 검증만이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끈이라 할 수 있는데 이 끈을 끊지 않고 NPT 체제에 머물고 있음으로써 모든 신뢰가 소진되었던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셋째, 다소 공격적으로 평가해 보면 이란 핵합의는 북한에 이중적 메시지를 전달해 주고 있다는 점이다. 한편으로는 도발을 중단하고 대화로 돌아와 NPT와 IAEA로 복귀하면 이란과 같은 사탕을 얻을 수도 있다는 메시지가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란과 대조적으로 NPT를 지속적으로 도전할 경우에는 철저한 응징을 가하여 다른 국가가 NPT 체제를 떠날 수 없도록 억제력이 통하는 선례를 남겨야 한다는 메시지가 될 수도 있다. NPT의 규범성이 여러 방면에서 도전받고 있지만, 국제사회에서 비확산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NPT 외에 다른 대안이 존재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법정책적인 관점에서는 NPT 규범력의 제고를 위해 이란과 북한의 사례는 대조적인 선례로 만들 필요가 있다. 만약 대조적인 선례로 만들지 못한다면 NPT 체제 내에서 향후에 혹시라도 도전하고 싶은 국가가 있다면 이란과 북한 방식이라는 선택지가 여전히 유효하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혹자는 북한이 지금이라도 NPT로 돌아온다면 받아들여야 NPT의 가치가 진정으로 더 높아지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아무 대가를 치르지 않고 돌아올 수 있다면 그만큼 NPT의 규범력은 감소하는 셈이 되므로 이런 선례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규범적 관점에서는 어떤 방식이라도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시점에서 그렇다면 과연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는 북핵위기에 대해 기존의 관용적 태도를 버리고 엄격한 규범적 잣대를 들이댈 만큼 인식이 전환되었을까? 아직은 그 정도로 인식이 전환되었다고 볼 수 없다. 국제사회 특히 미국의 관용이 점점 고갈되어가고 있는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볼 수도 있지만, 이는 미국 대선이 지나고 나서 냉정하게 분석해 보아야 할 문제라 생각된다. 다만 표면적으로나마 미국을 비롯한 우리와 뜻을 같이하는 동류국가(like-minded States)들이 이제 북핵문제와 관련해 정책의 우선순위를 높여가면서 핵무기 프로그램의 불가역적 포기라는 북한의 자발적 행동을 이끌어 내기 위해 제대로 된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북한 역시 행동을 되돌릴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자각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급박하게 진행되어 가는 상황에서 선택과 집중이 매우 중요한데 비확산체제에 대한 도전으로 오해받고 있는 원자력추진잠수함의 개발이나 도입문제를 공개적으로 논의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 시기인지에 대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더구나 북핵위기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전환이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또 다른 비핵확산에 대한 도전행위는 관심을 분산시킬 우려가 있기에 더더욱 주의해야 한다. 3. 원자력추진잠수함과 핵비확산조약(NPT)체제 및 안전조치 작년 새로운 한미원자력협력협정이 체결되기 전 필자는 미국의 비확산론자들을 만날 때마다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본 적이 있다.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회담인 6자회담의 구성원을 생각해보면 때로는 우리나라가 여러모로 손해를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6자회담을 열심히 준비해 회담장에 가면 북한을 상대로 5개국이 같은 목표로 북한과 대화를 해야 하는데 우리와 미국, 일본이 한편에 서고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 편에 서서 대화를 하고 있으니 때로는 과연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가 매우 의심스러웠다. 우리는 1991년 한반도 비핵화선언을 통해 핵연료주기를 모두 포기하겠다는 선언을 북한과 함께했다. 그런데 북한은 이를 위반하여 후행주기는 물론 선행주기까지 갖추게 되었음에도 우리는 끝까지 비핵화선언을 존중해 왔다. 6자회담 당사자 중 미국, 러시아, 중국은 합법적 핵보유국이어서 당연하겠지만 일본 역시 핵연료주기를 모두 갖추고 있다. 그러나 유독 한국만이 모범적으로 비확산의 가치를 준수하였음에도 평화적 이용에서도 핵연료주기를 전혀 가지지 못하는 불이익을 입고 있다. 왜 우리만 이렇게 불이익을 당해야 하는가?” 너무나도 의도가 뻔했던 터라 답변이 쉽게 예측되었지만 놀랍게도 반응은 개인에 따라 매우 다양했다. 심지어 어떤 이는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남북한을 비교해보라, 북한은 핵무기를 보유하는 길로 갔기 때문에 저렇게 되었고, 한국은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겠다는 선택을 했기 때문에 경제적 번영을 이루지 않았느냐? 핵연료주기를 갖추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원전기술도 보유하고 있지 않느냐?”라고 쏘아붙였다. 필자 역시 철저한 비확산 신봉자임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에서만은 마치 핵무장론자로 취급받는 기분이었다. 물론 좀 더 친절한 비확산론자는 필자의 의도를 간파하고 특히 선행주기인 우라늄 농축과 관련해서는 우리의 기술보유 유무와 경제성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 주면서 비확산의 장점을 설득하려는 자들도 있었다. 그런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 자들로부터 받은 공통된 인상은 필자의 질문에서 농축시설을 핵무기로 전용하겠다는 언급이 전혀 없었음에도 선행주기인 농축시설 보유 자체를 핵무기 보유의 길로 가는 것으로 당연시하였다는 점이다. 이러한 잣대는 동맹국인 우리마저 불신할 정도로 엄격했다. 이 점에서 원자력추진잠수함의 도입이 가지는 함의를 보다 신중히 평가해 볼 필요성이 존재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미국 비확산론자들의 논의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기에 앞서 NPT 체제 속에서 원자력추진잠수함의 문제부터 살펴보자. 소위 해군의 원자력추진프로그램(naval nuclear propulsion program)은 1970년대부터 많은 논의가 있었던 문제이다. 다수의 견해는 NPT의 법적 공백(loophole)7)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미 국제사회는 원자력추진잠수함의 문제가 NPT 체제의 정신을 훼손할 것이라는 점에 대해 NPT 탄생 직후부터 오랫동안 우려해 왔다. 법적 공백의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NPT 체제보다 먼저 출범한 IAEA(국제원자력기구) 협약8)과 NPT의 관련 조문 간의 상호 불일치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IAEA 협약 제3조 A항 5호는 “기구에 의하여 또는 그 요청에 의하여 또는 기구의 감독 또는 통제 하에서 제공된 특수핵분열성물질과 기타 물질, 역무, 설비, 시설 및 정보가 군사적 목적을 조장하는 방법으로 사용되지 않도록 하는 안전조치를 확립하고 관리한다”라고 규정함으로써 “군사적 목적을 조장하는 방법으로 사용되지 않도록(not used in such a way as to further any military purpose)” 안전조치를 확립하기 위한 권한을 IAEA에 부여하였다. 즉 이러한 문구의 해석에 의하면 잠수함의 동력으로 원자력을 사용하는 것은 군사적 목적(military purpose)에 해당하므로 사용되는 핵물질은 안전조치의 대상에서 면제될 수 없다. 이에 반해 NPT는 제3조 1항에서 “핵무기 비보유 조약당사국은 원자력을, 평화적 이용으로부터 핵무기 또는 기타의 핵폭발장치로, 전용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본 조약에 따라 부담하는 의무이행의 검증을 위한 전속적 목적으로 국제원자력기구규정 및 동기구의 안전조치제도에 따라 국제원자력기구와 교섭하여 체결할 합의사항에 열거된 안전조치를 수락하기로 약속한다”라고 규정함으로써 안전조치의 대상을 군사적 목적으로 규율하지 않고 핵무기 또는 기타 핵폭발장치로의 전용만으로 제한함으로써 단순한 잠수함 동력에 사용하는 것은 안전조치 면제대상에 두게 되었다. 이러한 불일치와 관련해 비확산론자들 사이에서는 오랫동안 두 가지 구체적 사례가 논의된 바 있다. 그 하나는 민간건설현장 등에서 핵폭발장치를 사용하는 경우이며, 다른 하나는 원자력추진잠수함과 같은 원자력이라는 동력을 군함에 사용하는 경우였다. 전자는 핵실험금지협약의 채택으로 법적 간극이 메워져 가고 있다. 그러나 후자는 IAEA가 안전조치협정의 모델협정을 마련하면서 오히려 양보하게 되었다. 즉 IAEA안전조치협정을 담고 있는 IAEA INFCIRC/1539)은 제14항에서 비평화적이용에 사용되는 핵물질에 대한 안전조치의 비적용(Non-Aplication of Safeguards to Nuclear Materials to Be Used in Non-Peaceful Use)을 규정함으로써 원자력추진잠수함의 동력으로 사용되는 핵물질의 안전조치 면제의 길을 터주고 있다. 민간건설현장에서 핵폭발장치의 사용이 금지된 것이 규범적으로는 핵실험금지협약의 채택이라 평가할 수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민간건설현장에서 핵폭발의 사용이 심각한 방사능 사건을 초래함으로써 안전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고 기존 폭발물의 효율성을 기술적으로 혁신할 수 있었기 때문에 핵폭발물 사용의 경제적 이점이 소멸된 영향이라 평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잠수함의 영역에서는 아직도 다른 동력이 원자력을 따라잡을 수 없기 때문에 규범의 창출을 통한 규제와 통제가 아니고서는 기술적, 경제적으로 민간 건설현장에서의 핵폭발물처럼 사라져버리기에는 요원해 보인다. IAEA 협약이 원자력의 군사적 목적으로의 이용을 안전조치의 대상으로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왜 NPT 체제에 와서 단순히 핵무기를 포함한 핵폭발장치로의 전용으로만 제한되었고 그 이후 IAEA가 원자력추진잠수함에 원자력을 동력으로 사용할 경우 그 지정된 핵물질에 대한 안전조치를 면제해 주는 것으로 양보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하다. 혹자는 NPT 협상에서부터 핵물질의 군사적 이용이 전혀 불가능한 핵非보유국의 심리적 불평등감을 해소해주기 위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즉, 잠수함의 동력으로 사용하는 핵물질의 경우 안전조치 대상에서 면제해줘서 핵非보유국도 원자력추진잠수함을 보유할 수는 길을 터줌으로써 불평등조약이라는 심리적 저항을 무마하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원자력추진잠수함을 군부독재 시기부터 보유하고 싶어 했던 브라질의 정책에 동조하는 친브라질계 학자들에 의해 많이 원용되고 있을 뿐 비확산론자들이 이러한 주장을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비확산론자들 중에서는 비록 핵보유국은 NPT 제3조에 의해 강제적으로 IAEA와 안전조치협정을 체결할 의무는 없지만, 자발적으로 체결해 오고 있는데 혹시라도 장래에 군사적 목적에 사용하는 핵물질이 안전조치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요구가 강해진다면 이에 대응하기 위해 분명히 면제의 대상으로 해둘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핵보유국의 원죄론을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서 주의할 점은 비록 IAEA INFCIRC/153이 제14항에서 면제대상으로 명시하고 있지만 엄격한 조건을 부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핵非보유국이라도 원자력추진잠수함을 보유할 경우 동력으로 사용되는 핵물질이 안전조치로부터 면제받을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었지만 이러한 면제를 위해서는 부가된 조건을 충족해야 할 의무도 함께 부가하고 있다. 물론 그 의무가 지나치게 과도하다고 할 수는 없다. 부가된 조건으로는 우선 핵非보유국으로서 원자력추진잠수함을 보유하게 되는 회원국은 IAEA에 그 활동을 보고해야 하고, 사용되는 핵물질이 안전조치의 대상에서 면제받는 기간과 상황에 대해 IAEA와 약정을 체결해야 하며, 이러한 약정은 IAEA의 합의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 있다. 이러한 조건을 충족하기만 하면 당해 핵물질이 사용되고 있는 군사활동의 기밀을 보고할 필요가 없으며 IAEA로부터 어떤 허가를 구하는 것도 아니므로 잠수함 활동이 위축될 정도로 근본적으로 IAEA의 통제 하에 놓이게 되는 것은 아니다. 또 하나 주의할 점은 안전조치의 면제대상은 원자력추진잠수함에 사용된다고 지정한 핵물질 그 자체에만 국한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를 확대해석하여 원자력추진잠수함을 보유하면 이 잠수함에 대한 연료의 안정적 공급을 위해 우라늄농축공장을 건설하여 농축우라늄을 생산하는 권리가 보유국에 부여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브라질의 원자력추진잠수함 개발을 지지하는 학자들마저도 농축권리의 발생을 주장할 경우 NPT 정신을 위반하는 것으로 NPT 체제 자체에 대한 도전이 될 수 있다고 평가한 바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NPT와 IAEA 회원국이면서 안전조치협정과 INFCIRC/153 제14항 상의 약정이라는 루트를 통해 원자력추진잠수함의 보유를 현실화하여 특히 미국의 비확산론자들이 표현하고 있는 법적 공백을 테스트한 나라는 한 번도 없었다. 즉 이에 대한 선례가 아직 존재하고 있지 않다. 여기에서 많은 비확산론자들은 이러한 루트를 가고자 하는 나라는 당연히 상당한 어려움과 감시의 눈초리를 받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물론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경고를 이용하여 원자력추진잠수함의 도입을 생각하고 있는 국가들의 학자의 경우 국제적인 관심이 이렇게 크기 때문에 비확산론자들이 우려하는 핵물질의 핵무기 전용이라는 사건은 오히려 발생하기 어렵고, 연료로 사용되는 것에 불과한 소량의 핵물질을 얻고자 엄청난 비용을 소모하는 비합리적이고 우회적인 선택을 할 어리석은 국가는 없을 것이며 직접적으로 핵물질을 생산하여 핵보유국의 길로 가는 길이 보다 쉬운 길이라면서 원자력추진잠수함에 대한 비확산론자의 우려는 과장되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결국, 우리가 원자력추진잠수함을 보유10)하더라도 국제법상 아무런 문제는 없다. 그러나 섣부른 결단을 내리기 전에 입력대비 출력을 꼼꼼하게 따져보아야 한다. 우리가 원자력추진잠수함을 보유하고자 하는 것이 일반 국민에게 심리적 안정을 가져다주는 상징적인 측면에서라면 보다 신중해질 필요가 있다. 나아가 우리가 원자력추진잠수함을 보유한다고 하여 우리에게 잠수함에 사용될 핵물질을 우리가 자체 생산할 수 있는 권한이 발생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사정도 다시 한 번 곱씹어 보아야 한다. 기술적 측면에서도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만약 미국이나 영국, 러시아로부터 원자력추진잠수함을 도입하는 선택을 하게 되면, 이들 국가는 잠수함에 무기급농축우라늄 내지 고농축우라늄을 사용하고 있으므로 핵확산의 우려와 의심은 계속해서 증가할 수밖에 없다.11) 설사 잠수함 자체는 우리가 자체기술로 건조하더라도 연료는 수입할 수밖에 없는데 핵무기 보유로 갈 국가라고 의심을 받게 되면 잠수함은 있어도 연료를 공급받지 못하는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 설사 확산성이 낮은 저농축우라늄을 연료로 사용하는 잠수함을 개발하거나 도입한다고 하더라도 핵무장론에 대한 지지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연료를 공급하려는 국가는 주저할 가능성이 높다. 4. 캐나다, 브라질, 인도가 가져다주는 교훈 원자력추진잠수함 도입에 관한 논란은 이미 풍부한 사례가 존재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한두 건이 더 있지만 3건의 사례만을 소개할 뿐인데 풍부하다는 표현이 다소 의아하게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3건이 공교롭게도 핵확산과 관련한 가능한 시나리오를 대부분 제시해 주고 있다. 3건의 사례를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전에 원자력추진잠수함의 논의를 군축의 관점으로 넓힌다면 국제사회에 세 가지 측면에서 큰 우려를 가져다주고 있다. 첫째, 핵비확산과는 무관하게 원자력추진잠수함은 그 자체로서 재래식군사력의 균형을 심각하게 파괴하는 무기체제의 확산문제와 연동되어 있다. 원자력추진잠수함은 장거리 군사력투사(power projection), 수개월 동안 잠수할 수 있는 장시간의 작전수행능력 등 우월한 능력으로 인해 기울어진 전력의 균형을 쉽게 회복할 수 있는 무기체제로 평가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의 핵보유로 군사적 균형을 다시 신속하게 회복하기에는 매우 유혹적인 옵션임에 틀림이 없다. 더구나 일반인에게 심리적 안정을 가져다주기에도 상징적인 요소를 충분히 지니고 있다. 그러나 원자력추진잠수함의 도입은 군비경쟁을 필연적으로 수반할 수밖에 없어 주변국의 저항이 너무나도 거셀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즉 원자력추진잠수함 도입의 논의에서 핵확산성에 대한 불식을 종식시키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잠수함 자체가 가지는 비대칭성과 군비경쟁의 우려도 존재한다는 측면을 잊어서는 곤란하다. 둘째, 원자력추진잠수함에 사용되는 연료가 안전조치로부터 면제된다 하더라도 주변국이 한국의 핵무기 보유 의도를 부각시키기에 좋은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더구나 기술적으로 무기급 농축우라늄을 연료로 사용하는 선택을 하게 된다면 최악의 오해가 발생할 수도 있다. 이는 궁극적으로 보유하더라도 실질적으로는 운용할 수 없는 가능성을 초래할 수도 있다. 또한, 저농축우라늄을 사용하는 선택을 하게 되더라도 주변국은 물론 국내 내부에서 환경론자들의 반발이라는 거센 파고를 넘어서야 할 것이다. 셋째, 원자력추진잠수함을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에서 위기 때마다 터져나오는 핵무장론이 동조현상을 일으킨다면 농축공장의 보유를 정당화하는 논의가 생겨나기 시작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우리의 비확산 의지는 더욱더 의심을 받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 이러한 위험적 요소에 대한 인식을 기초로 그동안 원자력추진잠수함을 추진해 왔던 국가 중 캐나다, 브라질, 인도의 사례를 살펴보면 국제비확산 커뮤니티가 이들 국가를 통해 원자력추진잠수함과 핵확산의 관계와 관련해 무엇을 어떻게 학습해 왔는지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먼저 캐나다는 1987년 기존의 독일식 디젤 잠수함을 주력으로 하던 체제에서 10~12척의 핵잠수함을 추가하는 체제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함으로써 비확산론자들을 깜짝 놀라게 한 적이 있다. 캐나다 사례는 NPT 회원국으로서 모범적 핵비확산국가의 경우에도 이러한 선택을 할 수 있음을 보여줄 수 있는 대표적 사례가 되어 버렸다. 냉전시대에 발생하였지만, 캐나다는 특히 극지방의 영토수호와 억지 태세 강화를 명분으로 이러한 발표를 하였다. 그러나 더 놀라운 점은 핵보유국이 핵보유구국으로 핵확산의 우려 때문에 아무도 협조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영국과 프랑스가 공급계약에 경쟁하는 등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점이다. 즉 핵보유국으로부터 핵非보유국으로의 수출이 성사될 뻔하였으며 그랬더라면 시장이 형성되므로 시장 인센티브가 존재한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 되어 핵확산의 측면으로 확대하지 않더라도 원자력추진잠수함 자체가 확산되는 위기에 놓이게 되었을 것이고, 결국 모범국 비모범국 구분 없이 시장논리에 의해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확산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가 미국에 의해 강하게 제기되어 캐나다는 자발적으로 포기하기에 이른다. 영국과 프랑스의 참여가 원자력추진잠수함의 시장에 대한 인센티브를 부정할 수 없다는 점을 일깨워준 사례가 되었지만, 구소련의 붕괴가 있자 비확산론자 사이에서는 러시아도 이러한 인센티브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가 팽배해졌다. 당시 캐나다는 핵비확산체제에서 오랫동안 대표적 모범국이었기 때문에 잠수함에 사용될 핵물질을 무기로 전용할 것이라고 아무도 의심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미롭게도 매우 강한 심리적 저항이 미국의 비확산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작동했다는 점이다. 즉 캐나다가 모범국으로서 모든 국제규범을 준수하면서 원자력추진잠수함을 운영하더라도 NPT 상 핵非보유국가로서 지정된 핵물질이 안전조치로부터 면제되는 선례가 성립된다면 다른 국가가 선례에 기초하여 신규 진입하게 되고 우선은 규범을 잘 지키다가 한순간에 돌변해 버리면 모든 비확산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다는 우려가 설득력 있게 설파된 것이다. 다소 극단적인 비확산론자의 경우 원자력추진잠수함의 도입은 “석탄광산의 카나리아”12)로 비유하면서 핵보유국으로 가는 시금석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들에 대해 절대로 핵무기로의 전용이 불가능하며 더구나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국가가 고비용을 들여 소량의 핵물질을 얻는 비경제적이고 어리석은 방법을 택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 주장은 전혀 통하지 않았던 것이다. 캐나다와 대조적으로 브라질의 경우는 초기 추진단계와 최근 추진단계로 구분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초기단계는 브라질이 군부 집권 시에 추진한 핵무기보유추진단계라 할 수 있다. 즉 브라질은 1970년대 후반부터 가스 원심분리기를 통한 우라늄 농축기술과 원자력추진잠수함의 보유를 추진함으로써 국제사회로부터 많은 의심을 받았다. 물론 1980년대와 90년대 정권이 교체되면서 핵무기 보유의 길은 포기되었지만 원자력추진잠수함 프로그램은 계속 유지되었다. 이러한 전력으로 브라질은 1998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NPT에 가입하게 되었다. NPT 역사상 쿠바가 2002년에 가입함으로써 끝에서 두 번째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결국 브라질의 경우 NPT 체제 안과 밖에서 모두 원자력추진잠수함을 추진한 국가라는 명성을 달게 해주었다. 또한, NPT의 가입은 브라질의 원자력잠수함추진단계를 구분하는 시기적 기준이 되고 있다. 결국, 브라질의 경우 원자력추진잠수함은 NPT 제3조가 지니고 있는 태생적 법적 공백(loophole)을 여전히 테스트하고 있는 유일한 사례로 평가되고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법적 공백을 테스트하는 최초의 사례가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브라질의 최근 추진은 프랑스와의 합작투자(joint venture)의 형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다만 기술의 확산이라는 측면이 부담되었는지 핵연료와 관련된 부분에서는 브라질 단독에 의한 자체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다. 원래 브라질은 독일의 잠수함 기술을 채택하고 있었지만 원자력추진잠수함 계획으로 프랑스와 합작하는 선택을 하였다. 이는 방위산업시장에서 잠수함을 놓고 독일과 프랑스 간에 미묘한 경쟁구도가 형성되어 있음을 간파할 수 있는 대목이다. 브라질이 프랑스의 합작을 통해 캐나다와 달리 핵비확산에 있어서 비모범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을 중심으로 한 비확산론자의 비난을 극복해 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데에는 또 다른 관전 포인트가 있다. 브라질은 NPT 회원국이 되기 전에 이미 안전벨트가 마련되어 있었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예를 들면 1991년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원자력에너지를 오로지 평화적으로만 이용하겠다는 소위 과달라하라협약을 서명하면서 ABACC(브라질-아르헨티나 핵물질 통제기구)라는 통제기구를 설치하였다. 이후 브라질-아르헨티나-통제기구(ABACC)와 IAEA는 안전조치에 관한 다자협정이라는 소위 4자 간 협정을 체결하여 양국의 모든 원자력 활동에 대해 IAEA의 독자적인 검증권한을 제공하였고, 이는 NPT 가입 이후에도 유지되고 있다. 브라질의 이러한 사례는 조금씩 과거의 불명예를 극복해 가는 방향으로 평가되고 있지만 아무리 모범국이라도 선례를 형성하는 것에 대한 저항성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외견상 우리 역시 브라질을 모델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브라질과의 근본적 차이점은 브라질은 우라늄농축공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연료의 자체생산이 가능하다는 점이고 우리는 농축기술 자체가 없어 연료를 외부로부터 도입해야 한다는 점에서 대외 의존성 요소가 더 존재하고 있다. 세 번째 사례인 인도는 우선 NPT 비회원국이라는 점에서 특색을 지니고 있다. 인도는 NPT 체제 밖에서 핵무장을 이미 하였으며, 전략화의 일환으로서 원자력추진잠수함 개발에도 성공하여 현재 2척의 원자력추진잠수함을 운영하고 있다. 인도의 추진전략에서 흥미로운 점은 우선 구소련으로부터 임대하는 방식으로부터 시작했다는 점이다. 1988년에 찰리급 잠수함을 임대하여 3년 뒤에 반환하였고, 2012년에는 아쿨라급 러시아잠수함을 임대하였다. 물론 구소련이나 러시아가 인도에게 모든 기술을 이전한 것은 아니었으므로 인도는 임대를 통한 자체기술의 개발이라는 루트를 선택하였다. 이러한 인도의 행동은 파키스탄과 중국의 협력이라는 새로운 양상을 유도함으로써 군비경쟁을 일으킨 측면이 있다고 비판받고 있다.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주변국이 늘어나고 있는 중국의 경우 어떤 합리적 선택을 하고 있는지 종잡을 수 없는데, 설상가상 인도의 원자력추진잠수함 도입으로 중국이 파키스탄의 핵잠수함 기술개발에 은밀히 원조하여 균형을 맞추려고 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는 단편적으로 생각할 경우 우리가 원자력추진잠수함을 도입할 경우 중국이 북한과의 관계에서 파키스탄에 적용했던 방식을 취할 수도 있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해주고 있다. 이러한 세 사례를 통해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원자력추진잠수함의 도입을 캐나다와 같이 즉흥적으로 시도할 경우 동맹국과 동류국가로부터 쓸데없는 의심을 받을 가능성이 높으며 심리적 저항이 거세게 작용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연일 북한의 핵을 비도덕적이라며 비난하는 상황에서 확산과 군축관점에서 우려가 높은 원자력추진잠수함의 도입논의가 북핵을 비난하는 도덕적 우월성과 정당성을 상실케 할 수도 있다. 둘째, 우리 사회에서 많은 공감을 가지고 있는 핵무장론을 극복하지 않는 이상 원자력추진잠수함의 논의는 동조현상으로 인해 의심을 더욱 증폭시킬 뿐이다. 이는 핵무장론과 원자력추진잠수함의 관계만을 놓고 보더라도 상호 이득이 될 수 없다는 추론을 얻게 해준다. 즉 원자력추진잠수함을 가지려면 국제사회의 의심을 없애기 위해 핵무장론을 희생시켜야 하는데 핵무장론을 진정으로 지지한다면 실질적인 핵무장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비록 관련이 있다 하더라도 비경제적이고 간접적인 원자력추진잠수함을 주장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셋째, 우리는 현재 핵연료와 관련해 어떠한 주기도 갖추고 있지 않다. 우라늄농축공장이 없는 사정에서 덜컹 잠수함부터 만들어봤자 연료가 공급되지 않아 운영할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할지도 모른다. 수출 또한 쉽지 않다. 시장에 대한 인센티브가 있다는 점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라는 것이 캐나다 사례에서 밝혀졌지만, 시장에 대한 예측은 쉽게 속단할 수 없다. 미국의 비확산론자들 사이에서는 이미 1990년대 후반부터 몰츠 등을 위시해서 미사일기술통제체제(MCTR)와 같은 원자력추진잠수함 기술통제체제를 공급국 사이에 갖추어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다.13) 즉 원자력추진잠수함은 다른 방위산업 물품에 비해 수출통제가 언제든지 강하게 발동될 수 있는 품목이라는 점에서 산업경제적 관점에서도 전망이 불투명하다. 5. 우리의 주변국 우리의 주변국을 보면 환경이 더욱더 척박함을 인식할 수 있다. 우리의 원자력추진잠수함의 보유를 선뜻 찬성하고 지지해 줄 수 있는 국가가 없어 보인다. 북핵에 대한 합리적 대처라고 한다면 한 국가라도 찬성해 줄 듯하나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먼저 미국의 경우 97%의 무기급 농축우라늄을 연료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핵확산의 우려 때문에 어느 국가에게도 미국의 기술을 이전할 수 없는 상황이다. 4차례에 걸친 핵안보정상회의 중 특히 마지막 회의였던 지난 2016년 3월 워싱턴핵안보정상회의에서도 NTI를 위시한 워싱턴의 비확산커뮤니티는 미국 해군의 원자력추진프로그램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여러 제안을 한 바 있다.14) 그러한 제안 중 핵심은 바로 핵안보에 있어서도 취약성이 드러나고 있는 미 해군 원자력추진프로그램에 사용되는 고농축우라늄(HEU)을 저농축우라늄(LEU)으로 대체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다시 말해 미국의 경우 비확산론자는 원자력추진잠수함의 문제점으로 핵확산 가능성에 더하여 핵안보 취약성의 논의를 덧붙여 정부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경향을 살펴볼 때 미국의 경우 우리에게 원자력추진잠수함과 관련해 저농축우라늄을 연료로 하는 잠수함으로 완전히 전환될 때까지 기술을 이전할 가능성이 없다고 보아야 한다. 더구나 한국은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한 동맹국이므로 필요하면 미국의 원자력추진잠수함 투입을 요청하면 될 것이지 한국이 왜 독자적으로 이를 보유하고자 하는지 이해하기 곤란해 할 것이다. 결국, 과도한 잠수함 논의는 동맹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 물론 비확산 커뮤니티의 특성상 개인적으로는 브라질, 인도의 사례를 들면서 한국도 굳이 원한다면 어떤 규범의 위반은 아니므로 그럴 수도 있다고 덕담을 해줄 수도 있으며 탐색의 방편으로 프랑스나 영국과 접촉해 보라고 조언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러시아는 예측이 곤란하다. 러시아의 경우 경제적 인센티브에 따라 움직일 수도 있다. 기술이전을 받지는 못하더라도 인도처럼 임대의 형식을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어쩌면 중국과 러시아의 관계를 소원케 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새로운 냉전과 지정학의 부활이 도래하고 있는 시점에서 인도 사례에서 볼 수 있는 인도-러시아 대 파키스탄-중국의 합종연횡이 동북아에서 일어나기는 희박해 보인다. 중국은 그 누구보다도 우리를 이해해주지 않을 것이다. 사드논쟁에서 중국의 입장은 명확히 드러났다. 원자력추진잠수함은 사드와는 달리 방어용이라는 항변이 매우 곤란한 전략자산이다. 오히려 인도-파키스탄 사례에서처럼 한반도에서 군사적 균형을 취하기 위해 중국이 북한을 조력하는 것을 정당화시켜주는 방편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적극적인 저항도 우려의 대상이지만 주목해야 할 점은 일본의 태도이다. 일본은 논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부지리를 얻을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비확산론자들 사이에서 일본은 비확산 노력에서 엄청난 평가를 받고 있다. 우리 역시 수없이 노력해왔지만, 신뢰도가 일본의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은 담당 실무가들이 이미 미국과의 새로운 원자력협력협정의 협상과정에서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폴 브래큰은 일본이 핵무기를 보유한다면 러시아나 중국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영국이나 프랑스와 같은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위험한(?) 전망을 하기도 했다.15) 재미있는 견해이지만 우리가 핵무기를 보유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아예 계산에 두고 있지 않다는 점은 분명히 파악된다. 물론 데이빗 산토로(David Santoro)와 같은 철저한 비확산론자는 한국과 일본이 NPT를 위반하고 핵보유의 길로 갈 경우 미국은 이들과 동맹관계를 깰 것이라고 경고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지만,16) 일본에 대해서는 폴 브래큰과 같이 다른 생각을 하는 것도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6. 맺음말 캐나다와는 달리 브라질 인도는 오랫동안 원자력추진잠수함의 보유를 추진해 옴으로써 국제사회의 지속적인 감시를 받아왔다. 물론 우리 역시 갑작스러운 논의가 아니지만은 왜 이러한 논의가 특히 시기적으로 문제인지를 외국의 사례와 비확산론자의 경향을 통해 살펴보았다. 논쟁 자체가 비전문적이고 구체적인 계획이 나오지 않아 다행스러운 측면도 존재한다. 자체 개발을 할 것인지, 임대할 것인지, 수입할 것인지, 연료로는 고농축우라늄(HEU)을 사용할 것인 저농축우라늄(LEU)을 사용할 것인지, 연료는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 등에 대한 논의만으로도 엄청난 시간과 고민이 필요한데도 피상적인 문제에서 겉돌고 있다는 점은 더더욱 반가운 사실이다. 물론 이런 논의가 정치권에서 공개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사안인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판단이 서질 않는다. 엄청난 예산이 소모되는 것이므로 단순히 군사전략적 가치만을 홍보하기보다는 그 영향과 파급효과도 국민에게 정확하게 전달해 주어 국민적 공감을 이끌어 낼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이런 사안은 정치적 의지와 결단이 없이는 곤란하다는 주장도 경청해 보아야 한다. 안보정책은 항상 최악의 상황까지 고려해야 하는 것이기에 대안 없는 비판만큼 비생산적이고 무의미한 것은 없다. 더구나 민주주의 제도 하에서 핵무장론과 핵잠수함 논쟁은 북핵문제가 현실적 위기가 된 상황에서 전혀 논의조차 없다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할 수도 있다. 위기가 고조되면 고조될수록 군사적 균형(military parity)에 대한 국민적 요청은 거세어지기 마련이다. 정치가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국민적 요청을 결코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런 문제들이 반드시 모든 쟁점이 소진될 때까지 치열하게 논의되어야만 한다는 데는 공감할 수 있다. 또한, 국민을 대표하는 정치권에서 논의하지 말라는 법도 없고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다. 그러나 이제 드디어 북핵문제가 워싱턴 정책가에서 최고의 관심을 끌고 있는데 미국의 비확산론자들에게 우리의 핵무장론이나 원자력추진잠수함 도입이 또 다른 관심사가 되어 관심을 분산시키는 것이 아닌지 고민해 봐야 한다. 북핵위기에 대해 우리와는 대조적으로 일본은 너무나도 얄미울 정도로 물리력보다 기초 다지기로 냉정하게 대처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또 다른 위기감마저 느껴진다. 기우에 불과하면 좋겠지만, 우리의 타이밍이 맞지 않고 설익은 논의가 여러 가지 오해를 재생산하는 일이 없으면 좋겠다. 물론 필자가 제기한 모든 문제가 전혀 극복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캐나다, 인도, 브라질의 사례 속에서 또 다른 창의적 모형을 모색해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성숙되지 않는 쟁점의 부각은 불안만 가중시킬 가능성이 높다. 정치권에서 이 문제가 정치적 논리에 의해 공전을 거듭하는 것보다는 전문가들이나 국방담당 관계자들이 모든 문제점을 신중히 검토하여 논의의 주도권을 잡을 필요가 있다. 원자력추진잠수함 논의는 북핵문제의 해결에도 역설적으로 핵무장론에 있어서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원자력추진잠수함 도입의 문제는 철저한 준비 없이 수면위로 부각되어서는 곤란한 계륵과도 같은 존재이다. 힘을 한곳으로 모아야 하는 시기에 카나리아가 작동하는 일이 생겨서는 정말 곤란하다. ----- 1) UN 안보리 산하 북한제재위원회인 1718위원회의 임무를 보조하기 위해 설치된 전문가 집단으로 2009년 UN 안보리 결의 제1874호에 의해 설치되어 역시 안보리 결의를 통해 지금까지 임무가 연장되고 있다. 2) Paul Bracken, The Second Nuclear Age: Strategy, Danger, and the New Power Politics (2013). 3) 조약의 공식 명칭은 “핵무기의 비확산에 관한 조약(Treaty on the Non-proliferation of Nuclear Weapons)”으로 1968년 7월 1일 채택되어 1970년 3월 5일 발효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75년 4월 23일 비준서를 기탁하였으며 동일자에 조약 제533호로 발효하였다. 4) NPT 제9조 3항 후문 “본 조약상 핵무기 보유국이라 함은 1967년 1월 1일 이전에 핵무기 또는 기타의 핵폭발장치를 제조하고 폭발한 국가를 말한다.” 5) NPT 제10조 1항 “각 당사국은, 당사국의 주권을 행사함에 있어서, 본 조약상의 문제에 관련되는 비상사태가 자국의 지상이익을 위태롭게 하고 있음을 결정하는 경우에는 본 조약으로부터 탈퇴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각 당사국은 동 탈퇴 통고를 3개월 전에 모든 조약당사국과 국제연합 안전보장 이사회에 행한다. 동 통고에는 동 국가의 지상이익을 위태롭게 하고 있는 것으로 그 국가가 간주하는 비상사태에 관한 설명이 포함되어야 한다.” 6) NPT 제8조 3항 “본 조약의 발효일로부터 5년이 경과한 후에 조약당사국 회의가 본 조약 전문의 목적과 조약규정이 실현되고 있음을 보증할 목적으로 본 조약의 실시를 검토하기 위하여 서서 제네바에서 개최된다. 그 이후에는 5년마다 조약당사국 과반수가 동일한 취지로 기탁국 정부에 제의함으로써 본 조약의 실시를 검토하기 위해 동일한 목적의 추후 회의를 소집할 수 있다.” 7) 많은 비확산 전문가들이 법적 공백(loophole)이란 표현을 쓰고 있다는 점에서 원자력추진잠수함 보유의도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엿볼 수 있다. 8) 국제원자력기구협약(Statute of the International Atomic Energy Agency)은 1956년 10월 26일 채택되어 1957년 7월 29일 발효한 것으로 우리나라는 1957년 8월 8일 가입서를 기탁하였고 동 협약은 같은 날 우리나라에서 조약 제41호로 발효되었다. 9) IAEA, “The Structure and Content of Agreements between the Agency and States required in connection with the Treaty on the Non-proliferation of Nuclear Weapons”, INFCIRC/153 (1972). 10) 현재 보유의 방식과 관련하여서는 자체 개발을 하겠다는 건지, 수입하겠다는 건지, 임대하겠다는 건지 독자 개발의 경우에도 연료는 어떻게 충당하겠다는 지에 대한 논의는 전혀 알 수 없다. 11) 미국의 NGO인 군비통제협회(Arms Control Association)자료에 의하면 미국은 97%, 러시아는 20-45%, 영국은 97%, 프랑스는 7.5%, 중국은 5%, 인도는 40%의 농축우라늄을 연료로 사용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20% 농축을 기준으로 그 이상을 고농축우라늄(HEU)이라 하고, 그 이하의 농축을 저농축우라늄(LEU)이라 한다. 전력을 생산하는 민수용 원자로에서는 3.5%의 LEU를 주로 사용하고 있으며 무기급 농축우라늄은 보통 90%이상의 농축을 의미한다. 12) 석탄광부들은 작업 중 일산화탄소가스의 발생으로 목숨을 잃는 일이 허다하다. 가스탐지 장치가 부족했던 시절에는 이를 탐지하기 위해 기관지가 예민했던 카나리아를 작업장에 두었는데 카나리아가 쓰러지면 광부들은 대피하였다. 따라서 이러한 비유가 비확산론자 사이에 사용되고 있다. Jeffrey Kaplow, “The Canary in the Nuclear Submarine: Assessing the Nonproliferation Risk of the Naval Nuclear Propulsion Loophole” 참조. 13) 예를 들어 James Clay Moltz, “Viewpoint: Closing the NPT Loophole on Exports of Naval Propulsion Reactors”, The Nonproliferation Review (1998) 참조. 14) 예를 들어 NTI, Replacing Highly Enriched Uranium in Naval Reactors (2016. 3) 참조. 15) Paul Bracken, supra note 2, pp. 240-241. 16) David Santoro, “Will America’s Asian Allies Go Nuclear?”, The National Interest (2014). http://nationalinterest.org/commentary/will-americas-asian-allies-go-nuclear-9794 참조
  • 러시아는 한국의 창조외교를 위한 전략적 동반자
    저자
    고상두 (연세대학교 교수)
    발간호
    2016-39
      러시아는 항상 강대국 외교를 추구한다. 러시아의 영토는 미국과 중국을 거의 합친 크기이다. 광대한 영토에 자연자원이 풍부하며, 특히 세계경제 발전에 필수적인 석유와 가스의 글로벌 공급자 역할을 하고 있다. 러시아는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이며, 약 4,500개의 핵탄두를 실전배치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러시아 정부와 국민은 러시아가 강대국 외교를 취할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서방국가들은 국제무대에서 러시아를 무시한다. 미국과 유럽의 군사동맹인 NATO는 동유럽 확대를 거듭하여 러시아 국경까지 밀고 들어갔다. 유럽의 전쟁사를 보면 러시아는 영토와 인구 면에서 가장 큰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늘 서유럽 국가로부터 침략을 당하였다. 특히 나폴레옹과 히틀러의 침략은 러시아인들에게 전쟁 트라우마를 남겼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러시아인들은 '강해야 생존한다'는 역사적 교훈을 체득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싫든 좋든 운명적으로 러시아는 강대국이 되어야 한다는 안보인식을 갖게 되었고, 강대국 외교를 통해 국제질서의 형성에 늘 능동적으로 관여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최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서방의 제재로 유럽지역에서 수세에 몰리고 있다. 푸틴 대통령의 신동방정책은 러시아가 아태지역에서 모색하고 있는 새로운 방향각이다. 그리하여 중국과의 전략적 동반자관계를 한층 강화하고 있다. 한국이 동진하는 러시아의 강대국 의지와 역량을 외교적으로 활용할 방안은 무엇인가? 러시아 외교의 최우선 목표는 다극적 국제질서의 형성이다. 러시아는 국제문제의 다자적 해결에 관심이 많고, 특히 자신의 영향력이 제한적인 동북아 지역에서 다자외교적 관여를 통해 역할을 증대할 수 있는 방안을 끊임없이 모색하고 있다. 그러므로 한국과 러시아가 정책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접점은 다자협력체의 형성이다. 외교 전략에는 경쟁외교와 창조외교라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경쟁외교가 이미 형성된 게임규칙 하에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노력이라면, 창조외교는 게임의 규칙을 만드는 일이다. 즉 창조외교란 새로운 이익의 창출을 가능케 해주는 규범형성의 외교이다. 그동안 한국은 국제레짐이나 국제기구를 주도적으로 만드는 창조적 외교에 소홀하였고, 주어진 게임규칙에 충실히 따르며 상대적 이익획득을 위한 외교경쟁에 힘을 쏟았다. 물론 외교사에 남는 역사적인 국제다자회의는 대부분 강대국에 의해 주도되었다. 하지만 헬싱키프로세스, 교토협약, 반둥회의 등과 같이 중견국도 국제규범을 창출하는 데에 선도적인 역할을 한 사례가 있다. 그동안 한국은 많은 다자대화 메커니즘을 만들었지만, 이것을 국제레짐 그리고 더 나아가 국제기구로 격상시키는 제도화 수순에 밟는 데는 미흡함을 보였다. 이러한 노력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다자적 협력환경이 필요한데, 동북아 지역 다자화에서 러시아가 우리의 적극적 동반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북한의 핵개발 속도가 빨라지고, 종래의 방식으로 북한 핵을 막는 것이 어렵게 되면서,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창의적 접근이 요구되고 있다. 그것은 지역 차원의 다자적 해결방안이다. 최근 북한 핵에 대한 양자적 수준의 대응이 오히려 한중 및 한러 관계를 악화시키고 있다. 한국의 대북정책이 주변국가들의 반발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사드배치를 둘러싼 갈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처럼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우리의 적극적인 노력이 역풍을 일으키는 이유는 동북아지역에는 양자적 경쟁관계가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북핵문제를 둘러싸고 주변국들이 서로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을 벌이고 있기 때문에, 북핵 해결을 위한 조치가 자국의 이익을 침해할 경우 반발하게 되는 것이다. 러시아는 북한 핵실험을 항상 비판하여 왔으며,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안을 지지하였다. 이처럼 러시아는 한반도의 비핵화를 원하고 있다. 또한 러시아는 한반도 통일로 한국과의 접경협력이 가능하게 되면, 철도, 가스관, 송전선 연결 등 그동안 양국정상 간의 합의에만 그쳤던 거대한 유라시아 대륙연결망 사업이 줄줄이 성사될 수 있기 때문에 남북통일의 최대 수혜국이다. 따라서 러시아가 한반도의 통일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북한에 대한 제재가 핵개발 포기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 체제의 급작스런 붕괴라는 의도치 않은 결과를 초래할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대북제재의 효과성은 제재의 강도, 지속성 그리고 국제사회의 동참이라는 3가지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첫째, 금년 6월에 채택된 대북제재 결의안 2270호는 지난 20년 동안 유엔안보리가 통과시킨 모든 종류의 제재안 중에서 가장 강력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최근 추가 핵실험 이후 더욱 강화된 제재안이 논의되고 있다. 둘째, 과거 대북제재는 제대로 실행되기도 전에 제재와 함께 대화 및 협상도 병행되어야 한다는 국내외 목소리에 의해 반년을 넘기지 못하고 늘 유야무야되었다. 셋째, 그동안 대북 결의안의 실행은 개별 국가의 자발적 이행에 의해 이루어져왔다. 그 결과 유엔 전체 회원국 중에서 평균 39개국이 대북제재 이행보고서를 제출해왔다. 그런데 대북제재를 실행하는 데에는 서방국가들도 중요하지만, 북한으로부터 값싼 무기와 광물자원을 수입하고, 대형 우상화 작품을 구매하는 제3세계 국가들이 다수 참여해야 북한의 통치자금줄과 북한 선박의 해로를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제3세계 국가와 친밀한 러시아의 협조가 필요하다. 그러나 러시아의 역할이 더욱 빛을 발할 수 있는 영역은 유엔 결의안의 이행여부를 강력히 모니터링할 수 있는 동북아 지역협력체의 형성에 있다. 국제사회의 제재효과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국제수준별로 세분화할 경우, 지역수준의 압력이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왜냐하면 모든 국가는 주변국과 가장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의 태도 또한 주변국의 시각과 입장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오늘날 동북아의 평화가 뜨거운 이슈로 떠오르면서, 동북아평화협력구상의 유용성이 커지고 있다. 이 구상은 우리의 오랜 세일즈를 통해 한국외교의 브랜드로 인정받았다. 따라서 이제 국제레짐으로 구현될 수 있는 성숙한 시점이 되었다. 다만 최근의 사태발전에 대응하여 그동안 연성안보에 초점을 맞추었던 접근법에서 경성안보로의 의제전환은 필요하다. 그리하여 북한의 핵개발을 저지하기 위해 채택된 유엔 안보리 결의안의 이행을 점검하는 실천적 지역협력체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6자회담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방안을 도출하려는 안보대화의 형태에 불과하였다면, 동북아평화협력체는 구속력을 갖춘 지역레짐으로서 중국과 러시아가 이미 유엔안보리에서 합의한 결의안을 실행에 옮기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6자회담 보다 훨씬 신속하고 실천력이 있는 다자협력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한반도비핵화 지역레짐을 한국이 주도적으로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다자협력에 가장 관심이 많고, 6자회담의 동북아 평화안보체제 실무그룹 의장을 맡고 있는 러시아와 적극 협력할 필요가 있고, 이것은 한러 간에 약속한 전략적 동반자관계가 실질적으로 가동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現 연세대학교 지역학협동과정 교수.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베를린 자유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를 취득. 한국슬라브학회 회장, 연세-SERI EU CENTRE 소장, 유럽정치연구회 회장 등을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