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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PI PeaceNet] 시진핑 시기 중국의 상업적 해양지배력 확대: 주요 동인과 국제정치적 함의
    저자
    이준성 (제주평화연구원 제주포럼 기획팀장)
    발간호
    2025-18
    [기획자 註] 국제정치의 역사를 살펴보면 주요 강대국이 해상에서 경쟁해왔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으며, 이는 미중 전략 경쟁이 심화되는 오늘날에도 재현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고는 중국이 20세기 말부터 해양지배력을 본격적으로 강화하기 시작하게된 배경을 살펴보고, 특히 시진핑 주석 체제하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해양지배력을 전세계적으로 확대하고 있는지 분석하여 정책적 함의를 도출해보고자 한다 [기획: 박동준 연구실장(djpark@jpi.or.kr)]. 초록 시진핑 주석 집권 이후 중국은 해상무역 분야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며 세계적으로 해양지배력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미국은 군사 억제 중심에서 글로벌 공급망 등 상업 분야에서 동맹국과 조선 산업 재편(MASGA) 및 공급망 연대를 추진하고 있다. 중국의 상업적 해양지배력 확대는 계속되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미·중 경쟁은 군사 분야를 넘어 상업 분야에서의 해양질서 재편 경쟁으로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기존 해양질서와 신질서 간 구조적 대립은 해상공급망 및 글로벌 물류체계 경쟁 심화는 경제 블록화와 이에 따른 국제정치적 긴장의 고조를 예고한다.미국의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중국의 항만 투자 확장에 따른 국제정치적 지형 변화 속에서 한국에게 주어진 전략적 선택지는 두 가지이다. 첫째, 동맹국 미국과의 안보 협력을 넘어 조선·해운 분야에서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면서, 경제 동반자 중국과의 협력을 지속해야 하는 균형 외교를 지속하는 것이다. 둘째, 경제 블록화에 대비하여 미·중 중심 해상 네트워크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동남아·인도양·아프리카 등 제3권역과의 물류·조선 협력을 심화함으로써 글로벌 공급망 안정성과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1. 서론: 미국의 해양지배력 쇠퇴 속 중국의 부상 2000년대 접어들어 급증한 테러리즘과 미국발 경제위기 등으로 미국의 전세계적 영향력이 쇠퇴하는 가운데 세계는 중국의 부상에 주목했다. 중국은 세계에 경제를 개방한지 30여 년만인 2010년에 세계 2위 경제로 올라섰고 2017년에는 GDP(구매력 평가, PPP)를 기준으로 미국을 넘어 세계 최대 경제 대국으로 자리했다. 이러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중국은 점차 정치·군사 분야에서도 미국의 지위를 위협하기 시작했고 해양을 통해 전세계로 영향력의 범위를 넓여갔다.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하 중국) 수립 이후 20세기말까지는 연안 방어를 위해 중국 지도부는 해군력 증강과 군 현대화를 통해 군사적 영향력을 높이는데 집중했었다. 하지만 시진핑 주석 집권 이후 중국은 해상무역 분야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며 세계적으로 해양지배력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미국 역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직후 해양지배력 복원을 새로운 전략 목표로 상정하며, MASGA 와 같은 조선 협력 프로젝트를 통해 한국, 일본 등과 함께 전례없는 수준으로 대중국 견제를 이어가고 있다. 이로써 미·중 간 경쟁은 해운·조선 분야에서의 전면적 대결로 격화되고 있다.오늘날 미·중 경쟁 심화는 중국의 상업적 해양지배력 확대가 기존 해양질서와 신질서 간구조적 대립임을 보여준다. 이는 한국을 동맹과 동반자 구조적 긴장 속에서 전략적 균형을 모색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하며, 유사한 입장에 놓인 국가들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이러한 배경에서 이 글은 전후 군사력 기반의 해양지배력을 형성한 미국과 달리, 상업적 수단을 중심으로 해양지배력을 넓혀가는 중국의 행보에 주목하여 그 동인을 고찰gk고, 이에 따른 국제정치적 함의를 도출하고자 한다. 2. 서구 열강의 해상 침략과 백년국치(百年国耻)의 역사  중국은 전통적인 대륙 국가라는 인식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막강한 해양지배력을 행사한 역사를 지닌다. 특히 15세기 명나라 영락제 시기에는 정화의 대규모 원정을 통해 인도양까지 영향력을 투사하며 이른바 명의 평화(Pax Ming)를 실현하고자 조공 체제를 해외 영토로까지 확장했다. 당시 중국은 유럽보다 앞선 항해술과 거대 보선을 기반으로 실질적인 해양지배력을 행사했으나, 북방 육상 세력의 위협 등 대륙 내부의 안보 위기에 직면하며 자발적으로 해양 활동을 중단하게 되었다. 이러한 해양지배력의 성쇠는 이후 청대부터 중국 수립까지 백년국치로 이어지는 굴욕의 역사와 맞물려, 현대 중국이 해양 강국을 열망하게 된 결정적인 역사적 동인이 되었다. 15세기 명나라는 당시 무역의 중심이었던 인도양에서 여러 해적과 마자파힛 왕조(Majapahit Empire)와 같은 수 많은 해상세력에 영향력을 행사했고 또 필요시 그들을 제압했다. 당시 해상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비단 정해진 항로를 따라 항해하거나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는 일을 넘어서 정치·경제·군사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강제적 수단을 사용하거나 무력을 쓰는 실질적인 지배력을 행사하는 행위였다. 명나라는 100여 척 선단을 이끌고 대규모 원정에 나서기도 했고, 스리랑카와 같은 주변 해상세력에 실질적으로 무력을 행사하며 해양지배력을 현시했다.1)하지만 명대부터 청나라까지 이어진 해금정책으로 중국의 해양지배력은 쇠퇴했고, 그 틈새로 서양 열강의 침략이 이어졌다. 해금정책은 바다를 통한 외국 교류를 금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행된 이래, 명나라가 북방의 육상세력 위협에 대한 방어에만 주로 집중함에 따라 해양활동은 자연스럽게 동력을 잃었다. 청나라는 1840년 제1차 아편전쟁으로 영국에 항구 다섯 곳을 강제로 개항했고, 그 후 약 100년간 서양 열강의 해상 침략을 겪었다.2) 그 후 청나라는 유럽 열강과의 불평등 조약을 체결하며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까지 약 한 세기간 쇠락하는 백년국치의 역사를 겪었다. 3. 새로운 국가발전 비전으로서 해양강국 건설의 공식화 중국은 1980년대 개혁개방 이후 해양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표출해 왔으나, 실질적인 해양자원 개발과 경제 발전을 위한 본격적인 투자는 경제적·기술적 역량을 확보한 2010년대에나 이뤄졌다. 중국의 개혁개방을 주도한 덩샤오핑(鄧小平)은 연해(沿海) 지역을 우선적으로 발전시키고자 근해 자원개발과 원해 공해 개척을 병행했고, 이를 해양경제전략의 기본방침으로 설정하여 해양경제 기반의 국민경제발전을 추진했다.3) 이러한 기조는 80년대 장쩌민(江泽民) 시기에 접어들어 해양개발과 해양산업을 본격적으로 확대하는 계기로 이어졌고, 후진타오(胡锦涛) 시기까지 계속되어 해양경제 기반의 국가발전 전략으로 발전했다.후진타오 시기 중국은 범국가적 해양교육을 통해 국가비전으로서 해양강국 건설을 선포하였다. 그 시작은 2003년 11월에 열린 제16기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집단학습회의에서 후진타오 주석이 15세기 이후 강대국 발전사를 조사하도록 지시한 것이었다. 그로부터 중국중앙방송(CCTV)은 약 3년에 걸쳐 강대국의 현대화 모델을 정리하여 《대국굴기(大国崛起)》라는 12부작 다큐멘터리로 제작, 전국민이 볼 수 있도록 방영하였다. 이어 중국은 기업 주도 해양 개척을 통해 국가를 부강으로 이끈 동인도회사 등 서구의 성공 사례를 분석한 《기업의 힘(公司的力量)》과 국가 주도 해양 탐사로 국가 재원 확보사례를 담은 《해양을 향하여(走向海洋)》 등을 추가로 제작하여 방영했다.이러한 일련의 노력을 바탕으로 기업을 국가 권력의 연장선이자 자본과 결합한 전략적 수단으로 인식했다. 또한, 중국은 해양을 강대국 간 군사 경쟁을 위한 공간이 아닌 인류의 생활터전이자 자원의 보고로 인식하는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며 여론 기반을 조성하였다.4)그리고 중국 지도부는 2012년 11월에 열린 제18차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해양강국 건설을 새로운 국가 비전으로 제시하며, 중국 수립 이래 최초로 국가전략 차원에서 해양발전계획을 공식화하였다.5) 중국은 이를 세계적인 대국으로 거듭나기 위한 정책적 실현이라 자평하며, 군사 중심의 미국 모델과 차별화 된 국가-기업 간 협력을 통한 상업적 해양지배력 확대를 예고하였다.6)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기획자: 박동준 제주평화연구원 연구실장, 편집 : 제주평화연구원 이혜진 연구원이준성 (제주평화연구원 제주포럼 기획팀장) 중국 칭화대학에서 영어영문학 학사를 받고, 제주대학교에서 정치학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핵안보전략포럼 운영위원, 플라자프로젝트 해양안보센터 연구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해군통역장교, 이어도연구회 연구실장, 제주대 법과정책연구원 전임연구원을 지냈다. 주요 연구분야는 국제 해양분쟁, 미·중 해양패권 경쟁, 섬 연구(island studies) 등이며, 최근 연구실적으로는 “해양패권 이행 경로의 유형화 연구” 『국제지역연구』(2026), “중국의 상업적 도전과 미・중 해양패권 경쟁 구조의 전환: 서태평양 항만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중소연구』(2025) 등이 있다.
  • [JPI PeaceNet] 바이오안보: 새로운 관점의 변화가 필요한 시기
    저자
    김현수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국가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 정책개발실장)
    발간호
    2025-17
    [기획자 註] 바이오산업은 21세기의 새로운 경제성장동력으로 많은 각광을 받고 있는 분야이다. 하지만 많은 과학기술이 그러하듯, 특정 행위자들에 의해 기술이 악용될 위험이 존재하며, 그 잠재적인 파괴력은 COVID-19 팬데믹 당시 간접적으로 확인된 바 있다. 또한, 바이오산업과 기술이 인공지능(AI)과 결합하며 급속하게 발전·진화하고 있고 세계 각국이 바이오산업을 경쟁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고는 한국이 ‘바이오안보’의 시각에서 전략을 수립해야할 필요성을 논의한다 [기획: 박동준 연구실장(djpark@jpi.or.kr)]. 초록 첨단 생명공학 기술의 급속한 발전과 인공지능의 결합은 바이오를 보건·산업 영역을 넘어 국가 안보와 경제 주권을 좌우하는 전략적 자산으로 부상시키고 있다. 특히 COVID-19 팬데믹과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은 생물학적 위협이 군사적 충돌 없이도 국가 시스템 전반에 치명적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주며, 바이오안보를 비전통 안보의 핵심 의제로 재정의 하도록 촉발하였다. 본 원고에서는 생물안전과 바이오안보의 개념적 차이를 명확히 구분하고, ‘기술로서의 생물학(Biology as Technology)’ 시대에 확대되는 이중용도 위험과 바이오 데이터, 공급망을 둘러싼 안보 이슈를 분석한다. 나아가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국제 바이오 질서 속에서 한국이 직면한 제도적 취약성과 전략적 과제를 진단하고, 사고 대응 중심의 관리 체계를 넘어 기술·데이터·공급망을 통합적으로 고려하는 국가 전략 차원의 바이오안보 접근 필요성을 제시한다. 이를 통해 바이오안보를 위험 통제의 문제가 아닌, 혁신을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국가 전략 역량으로 재정립할 것을 제안한다. 1. 서론: 바이오, 안보의 언어로까지 확장 바이오(Bio, 생물학)는 더 이상 단순한 보건이나 기초과학의 영역을 넘어, 국가 안전과 생존을 근본적으로 위협하거나 변화시키는 전략적 영역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첨단 생명 공학 기술의 놀라운 혁신과 이로 인해 발생한 예측 불가능한 위험의 확산, 그리고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이라는 거대한 지정학적 맥락이 결합된 결과입니다.가. 생명공학 혁신에 대한 기대와 불안의 공존 생물학(Biology as a Technology)' 시대, 즉 '황금기(Golden Era)'에 접어들었습니다. 이 시대에는 DNA, RNA, 세포와 같은 생명체의 기본 요소를 분석하고, 설계하고, 프로그래밍하여, 새로운 치료법, 진단, 신소재 및 청정 연료를 창출할 수 있는 능력이 발현됩니다.1) 특히 인공지능(AI)과 결합한 첨단 기술의 발전은 생물학적 시스템을 이해하고 조작하는 속도를 혁신적으로 높이고 있으며, 인간 게놈(Genome)을 분석하는 비용이 무어의 법칙(Moore's Law)보다 훨씬 빠르게 하락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그 기술적 진보의 속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2)생명공학 기술의 발전이 인류에게 주는 기대만큼이나 위협 또한 동시에 커지고 있다는 본질적인 문제가 존재합니다. 생명을 살리는 치료법을 개발하는 데 사용되는 도구와 기술이 악의적인 행위자에 의해 해를 입히는 목적으로 오용될 수 있다는 이른바 ‘이중용도 딜레마(Dual-use dilemma)’가 그것입니다. 위험한 병원체를 이해하여 대응책을 개발하려는 연구는 의도치 않게 악의적인 행위자가 해당 병원체를 더 치명적이거나 전염성이 높게 만들도록 오용할 수 있는 정보를 생산할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AI)과 합성생물학의 융합과 같은 기술적 진보는 한때 고도로 숙련된 연구실에만 국한되었던 위험한 생물학적 물질을 만들 수 있는 기술적 장벽을 낮추고 있습니다.3) 이러한 능력의 대중적 확산은 궁극적으로 바이오안보(Biosecurity) 환경의 불안정을 가중시키는 핵심 요인으로 작용합니다.나. 보건·산업을 넘어 안보로 이동한 바이오COVID-19 팬데믹은 생물학적 위협에 대한 인식의 근본적인 변화를 촉발했습니다. 이 팬데믹은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감염병이 인류와 경제에 미치는 극심한 피해를 분명히 보여주었으며, 팬데믹의 기원을 둘러싼 논쟁은 사고로 인한 병원체 유출 가능성이라는 또 다른 심각한 위협으로 대중의 초점을 옮겨 놓았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기존의 생물안전(Biosafety) 및 바이오안보 시스템에 존재하는 치명적인 취약성을 노출시켰으며, 감염병이 군사적 침략 없이도 대규모 인적, 물적 피해를 발생시킬 수 있는 21세기의 새로운 형태의 비전통 안보 위협임을 국제사회가 인식하게 했습니다.4) 이제 바이오기술은 단순한 공중 보건 문제를 넘어 국가 안보와 경제 번영에 필수적인 전략자산으로 그 위상이 격상되었습니다.첫째, 국가안보의 핵심입니다. 생명공학 기술은 생물학적 위협에 대한 생물학적 탄력성, 신속한 진단, 그리고 대항 수단을 제공함으로써 국가 안보를 강화하는 데 필수적입니다.5) 미국의 국방수권법(NDAA) 개정안에 생물보안법(Biosecure Act)이 포함된 것은 바이오기술이 이미 국방 및 국가 안보의 중심적인 영역이 되었음을 보여줍니다.6)둘째, 경제 패권 경쟁의 핵심입니다. 세계 경제와 국가 간 상호의존성이 강화되면서, 바이오기술의 주도권 확보는 ‘경제를 위한 안보’를 넘어 ‘안보를 위한 경제’라는 새로운 경제 안보 개념의 핵심이 되었습니다.7)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이 반도체를 넘어 첨단 바이오 부문으로 확대되면서, 양국은 기술 유출 통제 및 유전체 정보의 해외 이전 문제를 국가 안보적 사안으로 다루는 등 바이오기술은 기술 주권과 국가 경쟁력확보의 핵심 요소로 자리 매김했습니다. 2. 본론: 바이오안보, 새로운 이슈  가. 바이오안보는 생물안전의 확장이 아니다.바이오안보와 생물안전은 생명 시스템과 관련된 위험을 다루지만, 그 초점과 관리하는 위험의 유형에 있어 근본적인 차이를 갖습니다. 이러한 차이를 명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두 개념을 혼동할 경우 정책적 공백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즉, 생물안전은 살아있는 시스템과 관련된 예상되는 불확실성에 대비하는 것이며, 예를 들어 실험실 사고를 예방하거나 이에 대응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반면 바이오안보는 해를 유발하는 생물학적 제제의 자연적인 출현(공중 보건) 또는 고의적인 방출(생물 방어)에 대비하는 것을 포함합니다.8) 이를 좀더 구체적인 관리의 초점에서 보면, 생물안전은 주로 병원체에 대한 우발적인 방출이나 노출 위험을 줄이고 연구자와 주변 환경을 보호하는 조치에 중점을 둡니다. 반면 바이오안보는 병원체에 대한 접근 통제와 더불어, 접근 권한을 가진 과학자의 신뢰성(의도적인 유출 감소) 및 병원체의 독성, 숙주의 범위 등 민감한 정보에 대한 접근에 중점을 둡니다.9)필자는 생물안전과 바이오안보를 정책적으로 다른 관점의 초점으로 봐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생물안전이 실험실 시설과 장비, 등급체계 등 물리적 기반을 둔 문제라면, 바이오안보는 그 시스템을 누가 접근할 수 있는지, 어떤 정보가 공유되는지 그리고 그 사용 의도가 무엇인지에 관한 문제입니다. 이 점에서 생물안전은 하드웨어, 바이오안보는 소프트웨어 비유할 수 있습니다. 하드웨어가 아무리 정교해도 소프트웨어가 설계되지 않으면 시스템은 안전하게 작동할 수 없습니다. 문제는 지금까지의 정책이 이 두 영역을 구분하지 못한채, 생물안전에 머물러 왔다는 점입니다.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기획자: 박동준 제주평화연구원 연구실장, 편집 : 제주평화연구원 이혜진 연구원김현수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국가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 정책개발실장) 저자는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국가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 정책개발실장이다. 충북대학교에서 법학 학사·석사·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2012년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 입사한 이래 바이오 정책·법제 연구 및 정부 전략 수립을 수행해 왔다. 생명공학육성기본계획, 첨단바이오 이니셔티브 등 주요 국가 전략·계획 수립에 참여했으며, 「생명공학육성법」, 「합성생물학육성법」 등 바이오 분야 법령의 제·개정 과정에도 참여하였다. 또한 충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원을 역임했으며, 법무법인 청율인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바이오정책 이슈 확산을 위해 다양한 세미나에서 발표를 이어가고, KCI 및 SCI 등 학술지에 관련 연구성과를 지속적으로 발표하고 있다.
  • [JPI PeaceNet] 일본 정치 변화와 대일 의원외교의 강화
    저자
    조양현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인도태평양연구부 교수 및 일본연구센터장)
    발간호
    2025-16
    [기획자 註] 기획자 한일 관계에 있어 과거사를 극복하고 미래지향적인 관계로 발전하는 것은 오랜 과제이다. 전향적인 한일 협력의 필요성은 최근 급변하는 국제정세, 그리고 특히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출범 이후 긴밀하고 더욱 강조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본고는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한일 협력을 위한 상호 의원외교의 중요성과 필요성에 대해 논의해보고자 한다 [기획: 박동준 연구실장(djpark@jpi.or.kr)]. I. 대일 의원외교의 중요성 지난 6월에 출범한 이재명 정부는 ‘국익중심 실용외교’의 기조 위에 대일외교의 목표를 ‘한일관계의 미래지향적 발전 도모’로 설정하고,2) “앞마당을 같이 쓰는 이웃”인 일본과 성숙하고 지속 가능한 협력관계의 구축에 매진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8월 미국보다 일본을 먼저 방문하여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미래지향적이고 상호호혜적인 공동의 이익을 위해 함께 협력”하고 “급변하는 국제정세의 흐름 속에 흔들림 없는 한일, 한·미·일 협력을 추진”하기로 합의하였다. 이로써 신정부 출범에 따른 불확실성을 조기에 해소하고 대일외교가 순조로운 출발을 할 수 있었다.3)이재명 정부가 대일외교에서 명분보다 실용을 중시한 데는 우리의 국익을 극대화하고 상승한 국격에 맞게 지역과 세계의 안정과 번영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한일협력이 불가결하다는 인식이 있다. 한일협력은 원활한 한미관계는 물론 대북한 공조, 중국 및 러시아 등 주변국과의 관계 안정화, 한미일 협력과 한중일 협력 등 소다자 협력과 지역 및 글로벌 협력을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2기 정부에 의한 관세 및 방위비 압박, 미중 간의 전략경쟁과 연동된 경제 블록화와 보호무역주의의 고조에 대해 위기의식을 공유하는 한국과 일본의 협력이 중요해졌다. 뿐만 아니라, 지난 세기에 지배와 피지배, 선진국과 개도국의 관계였던 한일관계는 한국이 산업화와 민주화에 성공하면서 그 기본 성격이 바뀌었다 양국은 과거사 문제 외에 저출산 고령화 . , 외국인 노동자, 지방 소멸, 농업, 재해 방지, 인프라 노후화, 사회복지 문제를 공통으로 직면하게 되었다.이재명 정부의 실용주의 대일외교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일본 측의 적극적인 호응을 유도하여 한일 간에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고, 관여와 소통을 통해 상생 협력의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한국에 우호적이었던 이시바 내각이 사퇴하고 10월에 다카이치사나에(高市早苗) 내각이 출범하면서 일본 정치지형의 불확실성이 증가하였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의 계승자를 자처하면서 ‘강한 일본’의 재건을 공약한 다카이치의 당선은 일본 사회의 보수화를 반영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아소·아베·니카이 계열의 자민당 보수우파의 지지를 받는 다카이치는 방위력 증강, 외국인 규제 강화, 긴급사태조항을 포함한 헌법 개정 등을 제시하며 보수층 결집을 시도했고, 이것이 효과를 거두었다고 할 수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엄중한 국제정세를 고려하여 미일동맹과 함께 한일 및 한미일 협력을 중시하는 입장이지만, 그의 보수적인 역사관은 한일관계에 리스크 요인으로 다가온다. 다카이치 총리 외에 관방장관, 방위대신 등을 포함하여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이력을 가진 인사들이 내각에 다수 포진하고 있는바, 한일관계에서 과거사나 독도 문제와 같은 갈등 요인 관리의 중요성이 한층 커졌다고 할 수 있다.한편, 다당화에 따른 일본 정치의 불확실성 증가는 한일협력에 대한 일본 정부의 적극적인 호응을 제약할 가능성이 있다. 2024년 10월 중의원 선거와 2025년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연립여당의 패배로 중의원과 참의원에서 여소야대의 상황이 되었다. 다카이치 내각에서 자민당은 공명당이 아닌 유신회와 연립정권을 구성하였지만, 안정적인 자민당 장기집권의 시대가 저물고 다당화한 정당 구도 속에서 일본 정치는 불안정하게 전개될 전망이다.4) 일본 중의원이 해산되고 총선에 들어갈 경우 자민당 중심의 내각이 지속될지 비(非)자민 연립 정권이 출현할지는 현재로서는 불확실하다. 내각의 정권 기반이 취약한 상황에서 민감한 과거사 문제가 포함된 한일협력에서 일본 총리의 과감한 결단을 기대하기에는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 만약 역사 수정주의 색채의 내각이 출현한다면 우리의 대일 여론이 강경론으로 선회할 가능성이 있다.따라서 한일 간에 역사 갈등이 재연되지 않도록 세심한 관리가 필요한바, 셔틀외교 활성화를 통한 정상 간의 신뢰를 다지고 대외정책 담당하는 내각관방, NSC, 외무성 및 방위성 등의 고위 당국자와 원활한 소통채널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다카이치의 정치적 후원자인 아소 타로(麻生太郞) 전 총리와 자민당 지도부는 물론 참정당 등 신흥 정당과 전통 야당의 정치지도자와의 소통을 강화하여 한일협력의 전략적 중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확산시키는 노력이 요구된다. 양국 정계의 세대교체와 정치환경의 변화로 인해 지한파와 지일파 정치인이 줄어들고 소통 채널이 약화되었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특히 한일/일한의원연맹을 활성화하여 대일 의원외교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II. 대일 의원외교의 현황 의원외교(parliamentary diplomacy)는 국가의 대외정책과 외교활동을 주관하는 정부를 보완하고 지원하는 비공식 외교 채널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국회는 국내적으로는 입법 활동을 통해 대외정책에 영향을 미치고, 대외적으로는 의원외교를 통해 정부의 공식 외교를 보완하며 국민이 직접 선출한 대표로서 외교적 중개자 기능을 수행한다. 정치가의 대외활동은 정부 외교와 민간 외교의 중간적 성격을 지니며, 다양한 행위자들이 참여하는 현대 외교에서 의원외교는 정부 간 외교가 미치지 못하는 영역을 메우는 대표적인 비공식 채널로 기능하고 있다. 대일 의원외교의 핵심 채널은 ‘한일의원연맹’과 ‘일한의원연맹’이다. 이 두 연맹은 1972년 창립된 ‘한일·일한의원간친회’를 계승하여 1975년에 출범하였으며, 규약에 따라 양국 각각 1명의 회장과 간사장을 두고 상임위원회 및 특별위원회를 운영한다.6) 양측은 매년 번갈아 합동간사회와 총회를 개최하며 지속적인 교류를 이어오면서 한일 간에 과거사 갈등이 불거질 때마다 비공식 채널로서 기능하였다. 1982년 교과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교과서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일본 교과서 검정 기준에 ‘근린제국조항’을 도입하도록 측면 지원하였다. 또한 1999년 신어업협정의 체결과 2010-12년 조선의궤의 반환과 관련해서도 중재자적 역할을 수행하였다.그런데 2010년대 들어 한일 간에 ‘전후 최악의 한일관계’로 불릴 정도로 심각한 갈등 국면이 장기화되면서 의원연맹의 중재 기능은 약화되었다. 2012년 이후 약 10년간 위안부 및 강제동원 문제 등 과거사 갈등이 상시화하면서 경제·안보·민간교류 등 분야의 갈등으로 확산되었고, 양국 정상의 상대국 단독 방문이 중단되었다. 양국에서 반일과 혐한의 국민감정이 고조되자 정치권에서도 의원외교 차원의 개입을 피하려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 시기에도 한일/일한의원연맹은 합동총회를 꾸준히 개최하면서 비공식 외교 채널로서 최소한의 기능은 유지하였지만, 동 총회에서 위안부나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와 같은 과거사 관련 현안은 논의되지 않았다.이 시기에는 의원연맹 자체의 지반 침하도 눈에 띠게 진행되었다. 한일의원연맹과 일한의원 연맹의 상호 관심은 줄어들고 양 단체의 정치력과 영향력도 약화되었다. 이전에는 60%대였던 한일의원연맹의 회원 비율은 2012년 이후 50%대로 하락하였다가, 2024년에 60%대를 회복하였다. 반면 일한의원연맹은 같은 기간 40%에서 34.6%로 더 큰 감소세를 보였다. 일한의원연맹의 상대적 쇠퇴가 두드러진 것은 한국에 대한 일본 정계의 관심 저하 외에 예산 및 인력 면에서 제약이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한일의원연맹은 국회 보조금을 지원받아 활동하는 국회 소관 법인인 반면, 일한의원연맹은 임의단체로서 국회 보조금을 받지 못하고 의원들의 회비로운영되고 있다 자민당 주도로 운영되던 일한의원연맹에 . 대한 야당 의원들의 불만이 누적된 결과, 민주당 정부 때(2009-12년) 연맹에 대한 보조금이 중지되었고, 2012년 자민당 정권이 복귀한 후에도 보조금 문제는 해결되지 못한 채 남아 있다. III. 고려사항 및 제언  양국 의회 의석의 변화와 의원의 세대교체 및 국제정세의 변화를 반영한 초당파적인 의원교류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2025년에 일본 정치는 자민당 중심의 1강 체제가 막을 내리고 다당제적 경쟁이 본격화하였다. 자민당의 의석이 줄어들고, 연립 내각의 구성 세력이 변화하였다. 국민민주당과 참정당 등 신흥 보수 정당이 약진하여 보수 세력내의 경쟁과 분화라는 새로운 현상이 나타났다. 종교·노조·이익단체 기반의 조직표에 의존하던 자민당, 공명당, 공산당, 입헌민주당 등이 선거에서 고전한 반면, 소셜미디어나 인터넷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감세나 사회보험료 삭감 등 특정 이슈에 특화한 국민민주당, 참정당 등 보수 성향의 신흥 정당이 약진하였다. 대일 의원외교 채널을 재구축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상황 변화를 의원 연맹의 구성에 반영하고, 정당, 정책, 세대, 지역 차원의 다양한 교류 플랫폼을 도입하여 신흥 정당, 야당 인사와의 정기적 교류 및 방한 초청을 확대하여 한국에 대한 우호적 인식을 유도하는 것이중요하다.먼저 의회 의석 분포와 연립 구성의 변화를 반영하여 한일/일한의원연맹을 강화하여 초당적 기반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과거에 일한의원연맹은 주로 자민당 의원들이 주도적으로 활동했지만, 자민당 의석 감소에 따라 연맹의 회원 수도 급감했다. 2012년에 자민당 소속의원은 전체 연맹 회원의 35.3%였던 반면, 2024년 10월에는 57.6%로 오히려 비중이 증가했다. 반면 민주당·입헌민주당 소속 회원 비율은 같은 기간 45%에서 15.9%로 크게 줄었다. 2024년 10월 중의원 선거 이후에는 자민당 소속 의원 비율이 41%(101명)로 감소하고 입헌민주당 의원 비율이 25.6%까지 올라갔음에도 불구하고, 2024년 12월 기준 일한의원연맹 회원 수는 전체 국회의원의 34.6%인 246명에 그쳤다. 정당별 회원 수를 보면 자민당 101명(41%), 입헌민주당63명(25.6%), 공명당 27명(10.9%) 순이다. 따라서 입헌민주당이나 국민민주당, 참정당 등 야당의원들의 적극적인 일한의원연맹 가입을 유도하여 전체 회원 수를 확대하고, 야당 의원 비율을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아울러 일한의원연맹에 대한 보조금을 부활시켜 연맹 사무국의 기능을 강화하도록 일본 측을 유도하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한일의원연맹은 의회 보조금을 활용하여 사무실과 상설 스태프를 운영하고, 국회 입법관이 주재관 자격으로 동경 대사관에 상주하며 방일 의원들의 일정을 지원하고 있는 반면, 일한의원연맹은 이러한 운영이 불가능하다. 일본의 열악한 재정 상황을 감안한다면, 보조금 부활을 위해서는 일본의 국가 전략에서 한국의 전략적 가치가 높아졌음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의 국격 상승과 국제정세의 불확실성 속에서 한일협력의 중요성을 적극적으로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소통 채널을 다양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양국 . 국회의장 간 회동을 정례화하여 정부 차원의 공식 외교 채널 외에 입법부 최고위급 소통 체계를 추가로 구축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새로운 틀을 만들기보다는 기존에 존재하는 한일의회미래대화 등의 플랫폼을 정례화하는 방안이 현실적이다.다양한 형태의 의원 교류 플랫폼을 개발해 한일·일한의원연맹 비소속 의원들 간에도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상임위원회를 활용한 분야별 정책 교류, 젊은 의원 중심의 차세대 교류 활성화, 유사한 지역구 기반을 활용한 지역 차원의 교류 확대 등이 검토될 수 있다. 지역 차원의 교류에서는 지역활성화 정책이나 관광상품 개발 사례 등 실질적인 경험을 공유하는 것도 방안이다. 대표적인 예로는 고향사랑 기부제, 지역 특산품 구매 프로그램, 지방 축제(마츠리) 등이 있다. 그리고 한국이 사무국을 맡고 있는 아시아정당국제회의(ICAPP)와 같은 다자 회의에서 일본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여 교류의 장을 넓히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정당 간 교류 또한 중요한데, 여당 간·야당 간 또는 정책 성향이 유사한 정당 간의 교류를 활성화하면 당 차원의 신뢰 형성에 도움이 된다.정치인의 빠른 세대교체로 인한 불확실성을 완화하기 위해 보좌진 간 교류도 중요하다. 의원 보좌진은 정책 및 실무 지원뿐 아니라 장차 정치권에 진출하는 사례도 많기 때문에, 장기적 관점에서 상호방문이나 정책대화를 활성화하면 의회외교의 기반 강화에 기여할 것이다.마지막으로 관심 주제 내지는 의제 선정의 현실화이다. 국제정세 및 일본사회의 변화 그리고 한국의 국격 상승에 따라 한일관계의 구조가 바뀌고 있는 바 이에 맞는 다양한 의제를 발굴해야 한다. 2010년 이후 14년간 한일의원연맹 합동총회에서는 과거사 문제보다 재일한국인의 지방참정권, 인적 교류, 혐오발언(헤이트스피치, hate speech) 등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의제가 중심이 되어 왔다. 우리 측 관심사만을 우선하기보다는 양국의 공통 관심사를 출발점으로 삼아 논의를 확대해 나가는 접근법이 효과적일 수 있다. 예컨대 안보나 북한 문제처럼 입장 차이가 큰 하드 이슈보다는 공급망 안정, 과학기술, 인구 감소(저출산·고령화), 연금 재정 등 사회 복지, 인프라 유지·보수와 같은 연성 의제 중심의 지속적인 교류가 보다 현실적이다. 또한 일회성 논의가 아니라 전문성을 축적하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협력을 이어갈 수 있는 의제를 중심으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기획자: 박동준 제주평화연구원 연구실장, 편집 : 제주평화연구원 이혜진 연구원조양현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인도태평양연구부 교수 및 일본연구센터장)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인도태평양연구부 교수 및 일본연구센터장으로 재직중.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동경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 하버드대학교 웨더헤드센터(Weatherhead Center For International Affairs) Academic Associate, 싱가폴 국립대 동아시아연구소(East Asia Institute) Visiting Fellow 및 국립외교원 외교사연구센터장을 지냄. 주요연구 분야는 일본 정치외교, 동아시아국제관계 및 외교사. 주요 저서로는 『アジア地域主義とアメリカ』(東京大学出版会, 2009, 오히라 마사요시 기념상 수상), (공저)『한국의 대외관계와 외교사 현대 편』(동북아역사재단, 2019), (共著)『国境を越える危機』(東京大学出版会, 2020), (共著)『競合する歴史認識と歴史和解』(晃洋書房, 2020), (co-authored) The Political Economy of North Korea: Domestic, Regional, and Global Dynamics (Lynne Rienner Publishers, 2022), (공저)『한미일중 100년 II: 냉전 해체와 중국의 부상(1970-2023)』(일조각, 2023), (공저)『한국안보의 이해』(명인문화사, 2025) 등.
  • [JPI PeaceNet] 한-아세안 해양협력, 블루외교로의 전략적 전환
    저자
    최지연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부연구위원)
    발간호
    2025-15
    [기획자 註] 미중 전략경쟁이 심화되며 ASEAN의 지정학적·지경학적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이를 반영하여 한국은 지난 2024년, 아세안과의 관계를 2024년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Comprehensive Strategic Partnership, CSP)로 격상하며 동남아시아 국가들과의 협력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 하에서, 본고는 ASEAN과의 협력의 폭과 깊이를 높이는 방안으로 해양 분야에서의 포괄적인 블루외교(Blue DIplomacy)를 추구해야하는 필요성을 탐구한다 [기획: 박동준 연구실장(djpark@jpi.or.kr)]. 요약아세안이 블루이코노미(Blue Economy)를 역내 핵심 발전전략으로 채택함에 따라, 한–아세안 해양협력의 위상은 외교·경제·기후·기술이 결합된 전략적 차원으로 확대되고 있다. 한국은 해양을 국부 창출과 안보의 핵심 기반으로 인식하며, 해양을 공동 번영·상호호혜·규범·지속가능성의 가치로 연결하는 블루외교(Blue Diplomacy)를 통해 협력 프레임을 고도화해야 한다. 블루외교는 디지털·기후·안보·지식 협력을 하나의 구조적 틀로 묶어 해양경제 성장, 공급망 안정, 기후·환경 대응을 동시에 추진하는 새로운 해양외교 프레임이다. 이러한 블루외교의 실현을 위해 한국은 디지털 기반 해양경제 협력, 공급망 안정성 중심 해양안보 강화, 외교적 자율성 확대라는 세 가지 전략 방향을 설정하고 있다. 실행 전략으로는 아세안의 스마트항만·디지털 물류·해양재생에너지 수요와 한국의 기술·데이터 역량을 결합한 디지털 블루이코노미 이니셔티브(DBEI) 및 AI 기반 해상연계성 이니셔티브(AIMCI)를 추진해 실질적 협력 성과를 창출해야 한다. 또한 기후·환경 협력에서는 한–아세안 블루카본 및 해양순환경제 파트너십(BCOCP)을 구축해 탄소중립과 연안 회복력을 강화하는 공동의 대응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아울러 협력의 지속성과 제도적 기반을 확립하기 위해 블루외교 포럼을 정례화하고, 한–아세안 해양거버넌스 아카데미(AKMGA)를 설립해 차세대 해양 리더와 전문인력을 양성해야 한다. 이러한 다층적 협력체계는 한국이 해양을 매개로 글로벌 사우스와의 연대를 강화하고, 국제사회에서 외교적 영향력을 실질적으로 확장하는 핵심 전략 기반이 될 것이다. 1. 블루외교(Blue Diplomacy) 전환의 중요성 21세기 국제질서는 해양을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미·중 전략경쟁의 심화, 다극화의 확산, 기술패권 경쟁, 기후위기와 해양오염의 가중, 글로벌 공급망 교란 등 복합다중위기의 시대에, 해양은 안보·경제·기후·기술·규범이 중첩되는 지정학적 전략공간으로 전환하고 있으며 국제질서의 협력과 갈등은 바다에서 먼저 발현되는 구조가 되고 있다. 이러한 국제질서 변화가 가장 밀도 있게 진행되는 지역이 바로 아세안이다. 아세안 해역은 세계 해상교역의 필수 회랑이자 해운·항만·수산·관광 등 해양경제의 집적지이며, 동시에 연안침식·폭염·홍수·해양오염 등 기후·생태 위기가 급증하는 공간이다. 즉, 아세안은 해양성장의 기회와 해양위기의 위험이 교차하는 전략적 핵심공간이며, 이 지역의 안정은 곧 국제 해양질서의 안정성과 직결된다. 한국은 지정학적·전략적 중요성이 한층 부각되는 아세안과의 관계를 2024년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Comprehensive Strategic Partnership, CSP)로 격상했다. 이는 한국이 아세안의 중심성(ASEAN Centrality)과 아세안 인도-태평양 관점(ASEAN Outlook on the Indo-Pacific, AOIP)을 지지하며, 경제·사회 협력을 기반으로 전통안보·비전통안보·기후변화 대응·미래 발전 등 으로 협력의 외연을 확대하겠다는 전략적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2025년 7월 채택된 「2026–2030 한–아세안 행동계획(PoA 2026–2030)」은 CSP의 실질적 이행을 뒷받침하는 핵심 정책 기반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현 정부의 국익 중심 실용외교와 글로벌 사우스 협력 강화 기조와도 긴밀하게 연계된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아세안은 한국 외교의 지평을 확장하고 실질 협력을심화하는 데 핵심적인 전략 파트너이다.한편 아세안의 해양협력 의제는 블루이코노미, 해양쓰레기 대응 및 생태복원, 불법·비보고·비규제(IUU) 어업, 해상 사이버 위협 등으로 구체화되며 실천적 대응이 필요한 분야로 확장되고 있다. 이에 따라 한–아세안 해양협력의 전략적 강화는 양측의 공동 해양이익을 실현하고 현장에서 체감 가능한 성과를 창출하기 위한 핵심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할 때 한–아세안 해양협력은 부문별·사업별 협력 방식에서, 해양을 안보·경제·환경·기후·기술·규범이 상호 연계된 통합정책 영역으로 재구성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전략적 전환의 핵심이 바로 블루외교(Blue Diplomacy)이다. 블루외교는 해양을 공동의 번영과 상호호혜적 이익 증진을 위한 협력 플랫폼으로 설정하는 새로운 외교 프레임으로, 특히 블루이코노미 기반 실용 협력을 중심축으로 삼아 정책–기술–재정–데이터–지식이 결합된 실행가능한 해양협력 체계를 구축하려는 접근이다.아세안은 한국의 블루외교 전환을 가능하게 하는 최적의 해양전략적 공간이다. 아세안은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가 직면한 기후·수산·해양오염·디지털 격차 등의 문제를 복합적으로 보여주는 지역이자, 한국 협력모델을 시험하고 확장할 수 있는 테스트베드(testbed)이다. 또한 해양은 기후·식량·연결성·재난 대응·규범 등 초국경적 이슈를 다루는 분야이기 때문에 한국 외교의 위기 대응력·정책역량·국제 기여도를 높이는 기반이 된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한–아세안 해양협력은 블루외교로의 전략적 전환을 요구하는 국가적 과제로 자리하며, 본고는 그 전략적 전환을 뒷받침할 분석과 정책방향을 제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2. 아세안 블루이코노미의 부상과 한–아세안 협력의 확장  아세안은 블루이코노미(Blue Economy)를 역내 해양경제·기후대응·기술혁신을 결합한 새로운 발전모델로 정립해 나가고 있다. 이는 해양을 경제·환경·기후·기술이 교차하는 전략 공간으로 인식하는 정책적 전환과 맞물려, 관련 제도와 정책체계가 더욱 정교하게 구축되는 과정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과 아세안의 해양협력도 이러한 변화 속에서 블루이코노미를 중심으로 구조적 확장 가능성이 커지고 있으며, 양측은 기존의 해양안보 중심 협력에서 해양경제–기후·환경–기술전환을 포괄하는 새로운 협력 국면으로 이동하고 있다. 아세안은 블루이코노미를 ‘미래 경제성장의 새로운 엔진’으로 규정하며, 바다·해양·담수 자원을 포용적이고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활용해 가치와 가치사슬을 창출하는 해양경제발전체계로 정의한다.1) 이 체계는 해양재생에너지, 바이오테크, 해양데이터 등 신흥 해양경제 분야까지 아우르는 부문 간 연계와 주체 간 협력을 기반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기술혁신·생태회복력·포용성장·지속가능한 가치창출을 결합한 미래지향적 해양경제 모델로 확장되고 있다.아세안 블루이코노미는 경제·기후·기술전환이 동시적으로 전개되는 구조 속에서 높은 성장잠재력을 보이고 있다. 스마트항만, 디지털 물류망, 해양영역인식(Maritime Domain Awareness, MDA), 해양 예측시스템 등 디지털 해양인프라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으며, 블루카본 생태계는 2050년까지 연간 959억 달러 규모의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전략적 자산으로 평가된다.2) 또한 에너지 수요 증가와 탄소중립 목표가 동시에 부과되면서 해상풍력·조력·파력·해수온도차 발전 등 해양재생에너지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고, 해양 생명공학·순환양식·해조류 기반 기후 솔루션 등 블루푸드 산업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동남아시아 해역은 전 세계 해양 표면적의 2.5%에 불과하지만 세계 산호초의 30% 이상과 해초류의 절반이 서식하는 높은 생물다양성은 연안 주민의 생태적 혜택을 확대하고, 탄소흡수·어장 보전·해양 생태계 안정성 등 글로벌 생태계 서비스 제공에 기여하는 핵심 기반이 되고 있다.3)아세안은 UNCLOS(1982)를 해양협력의 규범 기반으로 삼고, 2021년 제38·39차 정상회의에서「블루이코노미 선언(ASEAN Leaders’ Declaration on the Blue Economy)」을 채택해 블루이코노미를 공식 의제로 설정하였다. 이어 2023년 제43차 정상회의에서 「아세안 블루이코노미 프레임워크(ASEAN Blue Economy Framework)」가 최종 채택되면서 블루이코노미는 역내 해양협력의 실천적 전략체계로 확정되었다. 프레임워크는 탄소중립 지향 해양활동, 오염방지·생태계 보전, 재해 및 기후위협 대응, 디지털 전환과 해양데이터 기반 정책, 투명한 공급망 구축, 해운·관광·해양에너지·수산양식 등 전략산업 육성 등을 주요 방향으로 제시하며, 해양을 복합적 전략공간으로 설정하는 아세안의 정책적 전환을 보여준다.한국과 아세안의 해양협력도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해양안보 중심의 협력에서 해양경제·환경·기후 대응을 포괄하는 다층적 구조로 발전하였다. 2014년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서 ‘지속 가능한 해양경제 개발’이 공식 의제로 도입된 이후, 블루이코노미는 한-아세안 연대구상(Korea-ASEAN Solidarity Initiative, KASI)과 2026–2030 행동계획(PoA)에 반영되며 협력 방향이 제도적으로 확립되었다. 수산·양식 분야의 기술 보급, 항만·물류 분야의 스마트·친환경 항만 구축과 디지털 물류망 협력, MDA·해사안전·사이버 위협 대응, IUU 정보 공유 등 다양한 협력 성과가 축적되었고, 블루카본, 해양오염 저감, 해양재생에너지, 스마트양식 등 블루이코노미 관련 협력이 확대되면서 해양경제–기후·환경–기술전환을 연계하는 기반이 강화되고 있다.이러한 협력 성과는 블루이코노미 분야에서 구조적 확장 가능성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수산·양식·해양안전·항만 분야에서 축적된 역량은 스마트양식, 항만 디지털화, 친환경 수산물 인증, MDA–사이버 연계체계 등으로 확장될 수 있으며, 블루카본·연안복원·해양재생에너지와 같은 기후·환경 분야는 한국의 기술·데이터·정책역량과의 연계 잠재력이 크다. 해양신산업 육성, 항만·물류·디지털 인프라 고도화, 역내 해양 연결성 강화는 블루이코노미를 미래 성장동력으로 발전시키고 공급망 회복력과 경제안보를 강화하는 기반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방향은 일자리 창출, 기업 간 교류, 투자 확대 등 실질적 성과로 이어질 가능성을 높이며, 한국–아세안 협력이 해양경제–기후대응–생태회복력–기술혁신을 아우르는 다차원적 협력체계로 발전할 전략적 기반을 형성한다. 이러한 발전 잠재력은 한국과 아세안이 공유하는 해양경제·기후·환경·기술전환 과제를 실질적 성과로 전환하기 위해 분야별 특성을 반영한 전문화된(specialized) 실천전략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특히 블루이코노미를 중심으로 한 협력은 경제성장·기후 대응·생태회복력·연결성 강화를 동시에 실현할 수 있는 이점을 제공하므로, 향후 한–아세안 해양협력에는 해양을 복합적 정책영역으로 설계하는 블루외교 전환이 요구된다.3. 한-아세안 블루외교 전환 방향과 과제 아세안이 블루이코노미를 역내 핵심 발전전략으로 채택하면서, 한국–아세안 해양협력은 외교·경제·기후·기술 협력이 결합된 전략적 협력 구조로 그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블루이코노미는 해양경제 성장, 기후대응, 생태회복력, 기술혁신, 지역 연결성이 상호작용하는 복합적정책영역이며, 이러한 특성을 고려할 때 일관된 방향 설정과 지속적 사업 추진, 실질적 성과 창출을 뒷받침하는 구조적 협력 프레임워크가 요구된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이 해양을 외교·경제·기후·기술 분야의 전략공간으로 인식하고, 기존 협력 체계를 블루이코노미 기반의 블루외교로 재편해야 할 필요성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블루외교는 해양을 공동 번영·상호호혜·규범·지속가능성의 원칙으로 연결하는 외교 프레임이며, 우리 정부의 국익 중심 실용외교와 아세안이 추구하는 중심성(ASEAN Centrality), 역내 연계성(Connectivity) 강화, 공동 번영의 가치와 정합성을 이루는 점에서 전략적 기반을 갖춘다.한국은 해양을 국부 창출과 안보의 기반으로 삼는 해양국가로서, 안정적인 해양질서와 해양 경제 혁신, 건강한 해양환경과 기후 회복력, 해양 디지털 전환을 국가의 핵심 해양이익으로 설정하고 있다. 아세안은 이러한 해양이익을 공유하며 기술·정책·데이터 기반 협력이 실질적으로 전개될 수 있는 최적의 파트너이자, 한국이 ‘글로벌 사우스’ 협력 모델을 발전시키고 외교적 지평을 확장할 수 있는 전략적 지역이다. 이에 따라 한–아세안 블루외교는 양측의 공동 번영을 실현하고 한국의 해양경제 경쟁력을 높이며, 해양·경제안보 기반과 기후·환경 대응력을 강화하는 국익 중심 실용외교 전략으로 기능한다. 한–아세안 해양협력은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CSP)로의 격상이라는 강점(Strength)과 아세안의 블루이코노미 전환이라는 기회(Opportunity)가 결합하는 중요한 시점에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아세안 블루외교 전환의 방향은 세 가지 방향으로 제안한다. 첫째, 블루외교는 한국의 해양경제영토를 확장하고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는 실질적 경제전략이다. 아세안은 스마트항만, 디지털 물류망, 해양재생에너지 등 대규모 인프라 수요가 확대되는 역동적 시장이며, 해양산업의 디지털·친환경 전환은 우리 기업에게 기술·자본·서비스가 결합된 새로운 진출 기회를 제공한다. ‘디지털 블루이코노미 이니셔티브(Digital Blue Economy Initiative, DBEI)’는 아세안의 해양경제 발전을 지원함과 동시에 한국의 기술과 자본이 현지 가치사슬에 안정적으로 연결되도록 설계된 상호호혜적 구조다. 이는 아세안의 해양경제 성장과 연계해 한국의 수출시장 고도화와 연관 산업 확장으로 이어지는 경제안보 효과를 창출한다.둘째, 블루외교는 우리의 핵심 해상교통로(Sea Lines of Communication, SLOC) 안전과 공급망 회복력을 강화하는 안보 전략이다. 한국은 에너지·원자재의 대부분을 해상에서 확보하는 해양국가이며, 아세안 해역은 이러한 전략자원이 통과하는 핵심 해상교통로이다. 그러나 이 지역은 기후위기, 해양오염, 불법어업(IUU), 미·중 전략경쟁 등 다양한 위험 요인이 중첩된 공간이다. ‘AI 기반 해상연계성 이니셔티브(AI-based Maritime Connectivity Initiative, AIMCI)’와 해양법 집행 역량 강화 협력은 아세안의 해양 거버넌스를 강화하고 역내 바다의 안전성을 높여, 한국 선박의 항행 안전과 공급망 안정성을 보호하는 안보 효과를 제공한다. 셋째, 블루외교는 다극질서의 재편 속에서 한국의 외교적 자율성을 확보하는 전략적 지렛대다. 현재 아세안은 지정학적 불확실성 속에서 외교적 다변화를 추진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전략적 자율성’을 지지하고 보완해 줄 신뢰 가능한 협력 파트너를 필요로 하고 있다. 해양 기후위기 대응, 생태계 회복, 블루푸드, 해양쓰레기 대응과 같은 연성 의제는 한국이 아세안의 신흥 해양협력 수요를 충족시키며 신뢰 기반의 영향력을 강화할 수 있는 최적의 분야다. 이러한 정합성은 회원국별 여건을 반영한 ‘맞춤형 협력 모델’로 구체화되며, 이는 협력의 실효성을 높이고 한국이 아세안 내에서 신뢰 기반의 영향력을 안정적으로 확대할 수 있는 구조적 기반이 된다.종합하면, 한–아세안 블루외교 전환은 디지털 혁신 기반의 해양경제협력, 공급망 안정성 중심의 해양안보 협력, 외교적 자율성 확대를 위한 전략협력이라는 세 가지 전환방향을 통해 양측이 공유하는 해양협력 구조를 고도화하는 데 목적을 둔다. 블루외교가 2026–2030 한–아세안행동계획(PoA)의 핵심 이행틀로 반영될 때 협력의 지속성과 실효성이 확보된다. 이러한 전환은 아세안의 블루이코노미 전략을 뒷받침함과 동시에 한국의 해양경제 경쟁력, 해양·경제안보 기반, 외교적 영향력을 강화하는 구조적 효과를 제공한다. 이와 같은 협력체계는 한국–아세안 해양협력이 지역 안정과 지속가능한 해양질서 구축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 4. 블루외교 전환 행동을 위한 제언 한–아세안 해양협력의 블루외교 전환은 구체적인 이니셔티브와 실행 가능한 행동전략을 통해 완성될 수 있다. 한국이 아세안의 블루이코노미 전환을 실질적으로 지원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가적 이익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기술·재정·규범을 아우르는 다층적 실행전략이 필요하다. 본 고에서는 한–아세안 블루외교의 실질적 전환을 위해 필요한 핵심 행동과제를 다음과 같이 제안하고자 한다.블루이코노미의 발전을 견인하는 핵심 동력은 디지털 전환이며, 그 중심에는 AI 기반 해양·물류 기술이 있다. 아세안은 스마트항만 구축, e-Navigation, 실시간 물류 관리, 데이터 표준화 등에서 높은 수요를 보유하고 있으며, 특히 항만 운영 최적화, 화물 흐름 예측, 운항 경로 분석에서 AI 적용 필요성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한국은 위성·AIS·IoT 기반 센싱 기술은 물론 AI 물류 예측, 항로 최적화, 디지털트윈 항만 운영에서 협력 역량을 갖춘 파트너다. 스마트항만 전환과 항만–해상 연계 디지털 체계에 AI 의사결정 시스템을 적용하면 블루이코노미 전반이 예측형(anticipatory)·고도화된 협력으로 확장될 수 있다. 나아가 아세안과 공동으로 해양데이터 허브(Ocean Data Hub)를 구축해 AI 분석 기반을 마련하고, 디지털·AI 해양인력 양성체계를 운영하면 산업·기술 협력의 지속성과 구조화를 동시에 강화할 수 있다. 블루외교의 핵심은 아세안 해역의 안정적 해양질서를 유지하고, 이를 통해 공급망과 항행 안전을 보호하는 협력 기반을 강화하는 데 있다. 아세안 해역은 한국의 전략물자가 통과하는 핵심 해상교통로이며, 기후위기, 오염사고, 불법어업(IUU), 지정학적 경쟁이 겹치며 긴장도가 높은 해역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AI 기반 해상연계성은 해양안보와 공급망 안정성을 동시에 강화하는 실질적 수단이 될 수 있다. 선박 위치·기상·해양환경 정보를 통합적으로 분석해 위험 징후를 조기 파악하고, 항로 선택과 운항 결정을 지원하며, 재난 발생 시 신속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면 아세안의 해양관리 역량과 한국의 SLOC 안정성이 함께 강화된다. 정치적 부담이 낮으면서도 실질적 효과가 큰 기술 기반 협력은 블루외교가 추구하는 실용적 협력의 대표적 사례가 될 수 있다.기후·환경 협력은 한–아세안이 글로벌 핵심 현안에 공동 대응함으로써 블루외교의 지속성을 뒷받침하는 핵심 분야다. 아세안은 블루카본 복원, 연안재해 대응, 플라스틱 순환경제 전환에서 구조적 수요가 높으며, 한국은 탄소배출 감축 측정(MRV) 기반 기술, 자연기반해법(NbS), 순환경제 정책 설계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양측이 이러한 역량을 토대로 ‘한–아세안 블루카본 및 해양순환경제 파트너십(ROK–ASEAN Blue Carbon and Ocean Circular Partnership, BCOCP)’을 구축해 블루카본과 해양순환경제를 연계한 회복력 협력체계를 마련한다면, 이는 아세안의 기후·환경 대응력을 높이는 데 기여할 뿐 아니라 글로벌 탄소중립 목표와 해양오염 저감이라는 국제적 과제 해결에도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협력 모델로 발전할 수 있다. 또한 공공·민간·다자기구 재원을 결합한 블루파이낸스 생태계를 조성하면 지역 단위를 넘어서 국제적 기후·환경 재원을 확장하는 구조적 기반이 마련되고, 아세안의 회복력 강화와 한국 기업의 기후 금융시장 참여 확대가 동시에 가능해진다. 이러한 기술·안보·기후 협력이 안정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제도·규범·교육을 아우르는 협력 거버넌스가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한다. 고위급–실무급–전문가를 연결하는 블루외교 포럼의 정례화는 정책 교류의 연속성을 확보하고, 해양법·정책·데이터 기반 전문교육을 제공하는 한–아세안 해양거버넌스 아카데미(ASEAN–Korea Maritime Governance Academy, AKMGA)는 협력의 장기적 기반을 강화하는 핵심 장치가 될 수 있다. 더불어 해양, 외교, 과학기술, 수산 등 다분야 전문가로 구성된 한–아세안 해양 싱크탱크 네트워크를 조직해 공동연구, 정책자문, 해양데이터 분석을 수행한다면, 한–아세안 해양협력은 단기적 프로젝트 중심의 구조를 벗어나 지식·정책·과학 기반의 체계적이고 지속가능한 협력체계로 발전할 수 있다.바다는 모든 지구 생명의 근원이자 인류의 과거·현재·미래를 잇는 거대한 연결망이다. 해양은 기후위기 극복, 생태 회복, 지속가능한 자원 활용 등 글로벌 난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며, 동시에 미래 세대의 번영을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기회의 공간이다. 블루외교는 이러한 해양 철학을 기반으로 바다를 세계가 공유하는 연결성과 교류의 장으로 인식하고, 디지털·기후·안보·지식체계를 하나의 연계된 구조로 설계하는 외교적 접근이다. 이 구조는 아세안의 블루이코노미 전환을 지원함과 동시에 한국의 해양경제 혁신, 해양·경제안보 강화, 기후·환경 대응력 확대를 함께 추진할 수 있는 전략적 방향을 제시한다. 이러한 철학을 현실의 정책으로 구현하기 위해 제시된 디지털 기반 해양경제 협력, AI 중심의 해상연계성 강화, 기후·환경 회복력 협력, 제도·규범·교육 기반의 협력 거버넌스 구축은 블루외교의 이념을 실질적 행동체계로 전환하는 핵심 요소다. 이들이 유기적으로 작동할 때, 한국과 아세안은 해양경제의 성장 기회를 확장하고 안정적 해양질서 유지에 기여하며 기후·환경 리스크에 공동 대응하는 협력 구조를 갖출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은 양측의 해양협력 역량을 고도화하는 동시에 지역적 지속가능성과 전략적 안정성을 강화하는 효과를 가져온다.한국은 블루외교를 통해 외교의 지평을 해양으로 확장하고, 글로벌 사우스와의 다층적 협력을 체계화하는 새로운 외교 프레임을 구축할 수 있다. 해양을 매개로 한 실질적 협력이 확대될수록 한국 외교의 전략적 영향력은 보다 입체적으로 강화되고, 변화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국가적 위상을 안정적으로 재정비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될 것이다. 이러한 방향은 바다와 인류가 공존·번영하기 위한 실천적 해양 리더십으로 이어지며,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연결(connectivity)과 조정(coordination)의 기능을 강화해 지속가능한 해양질서 형성에 기여하는 데중요한 토대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기획자: 박동준 제주평화연구원 연구실장, 편집 : 제주평화연구원 이혜진 연구원최지연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부연구위원) 경희대학교 지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2022년 2월부터 2025년 5월까지 한국해양수산개발원 해양연구본부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한국해양수산연수원 비상임이사, 국립해양과학관 비상임이사, 해양수산부 중앙연안관리심의회 위원, 여수엑스포사후활용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제10차 Our Ocean Conference(OOC) 및 제4차 UN Ocean Conference(UNOC) 개최를 위한 사전기획 용역(2023), 글로벌 해양중추국가 도약을 위한 해양수산 이니셔티브 수립 연구(2025) 등 주요 국가 해양정책 연구를 수행해 왔다. 주요 연구 분야는 연안경제, 연안·해양협력, 글로벌 해양 거버넌스, 국제협력 등이며, 다수의 연안·해양 관련 국가계획 수립을 주도했다.
  • [JPI PeaceNet]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정책과 글로벌 경제질서의 미래
    저자
    김흥종 (아산정책연구원 객원선임연구위원 / 前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원장)
    발간호
    2025-14
    [기획자 註]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유지되어 온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는 빠르게 재편되고 있으며, 이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취임 이후 더욱 가속화되는 형국이다. 급변하는 글로벌 정치·외교·경제 환경 속에서 각국은 국익과 안보를 위해 대외전략을 기민하게 수립해야하며, 이러한 부담은 한국과 같은 중견국에 가중되고 있다. 이에 본고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 정책을 중심으로 오늘날 국제 환경을 분석하여 한국 외교가 나아갈 길에 대한 정책적 제언을 제시한다 [기획: 박동준 연구실장(djpark@jpi.or.kr)]. 초록오늘의 국제질서는 미·중 갈등을 넘어 미국·중국·러시아의 3대 강대국이 경쟁과 견제, 사안별 협력을 병행하는 불안정한 다극체제로 전환되고 있다. 20세기 규칙기반 자유주의 질서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약화되었고, 대중국 억제전략 역시 트럼프 2기 들어 근본적 전환을 맞이했다. 세계는 초강대국들이 새로운 균형을 모색하는 가운데, 서방 진영과 글로벌 남방의 이합집산이 중첩되는 복합적 구조로 재편되고 있다. 세 국가는 모두 기존 질서의 재구성을 추구하지만 방식은 다르다. 러시아는 무력에 의한 영토 확장을 지속하고, 중국은 공급망, 기술, 그리고 일반 경제 영역에까지 영향력 확대를 가속하고 있으며, 미국은 관세를 무기로 삼아 글로벌 경제질서의 구조적 재편을 시도하는 마가(MAGA) 전략을 전개하고 있다. 이들은 갈등과 경쟁 속에서도 상호 존재를 인정하는 ‘불편한 공존’의 질서를 형성하고 있으며, 이를 신냉전으로 단순 규정하는 것은 변화의 본질을 오도한다. 특히 미국은 트럼프 2기 들어 지금까지 해 온 글로벌 공공재 제공자 역할을 축소하고 단극체제를 스스로 부정하는 방향으로 전환했다. 기본관세와 무역 수지 및 친소관계에 따른 추가 고율 관세는 미국 중심의 새로운 질서 창출을 목표로 한다. 그 결과 주요 다자체제와 국제기구는 전후 자유주의 규범의 관리자가 아니라 다극적 경쟁이 충돌하는 무대로 변화하고 있다.이러한 환경에서 한국과 같은 중견국은 전략적 자율성 확보를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고 동맹 및 파트너십 다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대미 의존을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조정하면서도, 유럽, 일본, 호주, 동남아, 인도 등 주요 글로벌 남방과의 협력을 확대하고, 공급망, 기술 및 에너지 전환 분야에서 국가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미·중·러 삼중구조 속에서 정책 선택의 폭을 유지할 수 있는 다층적 생존전략이 필수적이다.Ⅰ. 서론: 경주 APEC이 보여준 세계질서의 전환점 2025년 11월 경주에서 개최된 APEC 정상회의와 다수의 정상 간 양자 회담은 글로벌 경제질서가 중대한 교차로에 서 있음을 보여준 계기가 되었다. 무엇보다 주목할 장면은 미국과 중국 정상이 최근의 급박한 대치와 긴장을 뒤로하고 통상문제에서 전격적으로 휴전에 합의했다는 점이다. 2018년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노골화한 미국의 ‘중국 때리기’ 이래로 누적되어 온 기술, 산업, 안보 차원의 전방위적인 갈등을 고려해 본다면, 이번 합의는 분명 전략적 차원의 ‘휴지기’로 평가할 만하다. 미국의 고율 관세 정책과 중국의 강대강 대응이 서로에게 심각한 비용을 누적시키던 상황에서 양국이 충돌의 고삐를 다소 늦추었다.그러나 이번 합의가 곧바로 ‘안정’이나 ‘완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미·중 이 장기 경쟁을 보다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방향으로 전환했다는 점에서, 글로벌 경제질서는 새로운 불확실성에 진입했다고 보아야 한다. 유럽에서의 전쟁을 통하여 오히려 존재감과 레버리지를 높인 러시아와 함께, 미국과 중국은 각자의 방식으로 영향권을 구축하며 권역별 제도적 경계를 형성하고 있다. 그 사이에 위치한 중견국에게는 더욱 까다로운 대외경제 및 안보 환경이 펼쳐지고 있다. 미·중 간의 직접 충돌이 줄어드는 것이 주변국에게 곧바로 편안함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중견국은 ‘누구의 영향권 안에 설 것인가’에 관한 존재론적 고민과 함께, ‘당면한 선택지에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인가’라는 실존적 압박을 더 강하게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정책은 오늘날 글로벌 경제질서의 변화를 이해하는데 핵심이 된다. 이는 단순한 보호주의의 부활이 아니라, 미국의 대외전략, 나아가 세계질서 자체가 구조적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표이기 때문이다. 본고는 먼저 최근 글로벌 경제질서 변화의 특징을 살펴보고 이어서 최근의 한미 통상합의의 의미를 논의할 것이다. 이어서, 트럼프 관세정책의 구조와 배경 철학, 그리고 이런 정책이 글로벌 경제질서에 초래하는 변화와 중견국에게 주는 시사점을 검토하고자 한다. Ⅱ. 세계질서의 구조 변화: 트럼프 관세정책이 가져온 지각 변동1)  지금의 국제질서는 미·중 갈등의 대결 구도를 넘어, 미국, 중국, 러시아 세 세력의 전략적 경쟁 및 협력이 두드러지는 가운데, 이 새로운 체제에서 여타 국가들이 공존을 꾀하는 불안정한 체제로 전환되고 있다. 지난 20세기의 지배적 질서였던 규칙기반 자유주의 질서(rule-based liberal world order)는 2008년 글로벌경제위기부터 트럼프 2기 집권에 이르는 16년 동안 서서히 수명을 다했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시작하여 트럼프 1기 및 바이든 행정부까지 이어져 왔던대중국 억제정책도 트럼프 기에 와서는 완전히 새로운 2 국면을 맞이했다. 오늘의 세계는 미국, 중국, 러시아의 세 초강대국이 새로운 균형을 형성하는 가운데 여타 서방 민주주의 진영과 글로벌 남방(Global South)의 이합집산이 혼재하는 양상으로 재편되고 있다. 세 국가는 모두 20세기 규칙 기반 질서의 재편을 추구하고 있지만, 그 방식은 서로 다르다. 러시아는 무력을 통한 영토확장을 완성해가면서 2차대전 후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웠던 영토 변화를 초래하고 있고, 중국은 대만에 대한 적극적 투사의 시기를 저울질하는 가운데 공급망과 기술 및 일반 경제 영역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적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다. 미국은 관세를 무기로 삼는 경제 헤게모니를 적극적으로 구사하면서 글로벌 경제질서를 새롭게 재구조화하는 마가(MAGA)혁명을 진행 중이다. 세 나라는 서로 대립하면서도 동시에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불안한 공존”의 시대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러니 작금의 세계를 신냉전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고 보는 것은 현실을 오판하게 만든다.이 중 미국의 변화가 가장 주목된다. 1990년 이후의 단극체제가 힘을 다해가면서 그동안 푸틴의 러시아는 다극체제에서의 공존과 평화를 끊임없이 주장해 왔으며, 중국은 시진핑 집권 후 사실상 G2로 세계질서를 재구조화하려고 해 왔다. 반면, 미국은 그동안 중국과 러시아의 이러한 의도를 암묵적으로 부정하는 듯, 무시하는 듯 대응해 왔으나, 트럼프 2기 정부 들어와서는 자기 스스로 단극체제를 벗어던지고 다극체제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변화를 보이고 있다. 그 결과 현재의 세계질서는 불안정한 다극질서, 혹은 불편한 공존의 질서라고 말할 수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안보와 경제 양 측면에서 글로벌 공공재의 창출과 유지라는 전통적인 미국의 역할을 스스로 벗어던지고 자국의 단기적 이익에 충실한 대외정책을 구사한다. 여기에 관세가 가장 주요한 수단으로 등장한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추진 중인 공세적 관세정책은 소위 ‘공정’한 무역정책을 넘어서 글로벌 경제질서를 자국 중심으로 재구성하려는 시도다. 모든 교역 상대국에 기본입장료 10~15%를 부과하고, 무역흑자 규모나 친소관계, 트럼프의 개인적 호불호에 따라 추가적인 고율 관세를 매기는 이 새로운 시도는 미국이 이제 더 이상 자유무역의 수호자가 아니라 새로운 질서의 창조자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결국 오늘날의 세계질서는 패권 경쟁을 넘어 패권 다극화의 양상으로 진입했다. UN, WTO, G7, G20, APEC 등 미국이 참여하고 있는 주요 거버넌스 체제들도 이제 더 이상 자유주의 다자질서의 관리기구가 아니라, 미국 주도의 상이한 다극질서가 다투는 신질서 경쟁의 장으로 변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정책은 신고립주의(neo-isolationism), 맥킨리주의(McKinleyism) 및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큰몽둥이정책(Big Stick Policy)에서 그 연원을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은 아메리카 대륙에서의 지배권 확보, 제국주의적 대외팽창주의, 고율 관세정책, 제국주의 영향권의 암묵적 인정 등의 특징을 갖고 있다. 이러한 정신을 이어받아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더 이상 미국이 세계의 안보를 책임지지 않으며, 해외 분쟁에는 가급적 관심을 두지 않지만, 미국의 이익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의 경우에는 빠르고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최대한 억제하려고 한다. 남북아메리카에서 미국의 이익을 최대한 수호하고 트럼프 행정부 , 입장에서 복잡하고 골치 아픈 모든 종류의 다자주의를 배격한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러시아 및 중국과의 전략적 균형 속에서 자국의 이해를 관철하기 위하여 최대한 우방국을 압박하고 있다.트럼프 2기 대외정책은 대만과 동아시아에서 유동성의 증가, 중동 및 아프리카에서 분쟁, 홍해 등 전략지점의 안보 불안정 등 안보 불안의 세계화를 초래하고 있다. 또한 상호의존성을 무기화하여 우방국에 대해서 더 가혹한 통상 조건을 부과하고 있다. 이는 상대국의 추가적인 시장개방 효과를 부분적으로 가져오겠지만, 기존 현상 변경 세력에 대한 도덕적 우위의 상실과 미국 소프트 파워(soft power)의 소멸을 초래한다. 글로벌 남방 국가들의 단합과, 유럽, 일본, 한국, 오세아니아 등 유사입장국(like-minded states)들의 전략적 협력을 촉진하고, 부분적으로 시장의 탈미화가 진행되고 있다.내란을 극복하고 정권 인수기를 생략한 채 집권한 이재명 정부는 성장률의 하락, 정부 기능의 저하, 반지성, 부패 및 무능의 시대를 극복하라는 시대적 요구에 응답하면서, 이와 동시에 대외적으로 약화하는 규범적 질서와 마가혁명이 불러오는 척박한 대외환경 속에서 대한민국의 생존과 국익 수호를 위하여 분투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을 맞으면서 시작했다. Ⅲ. 한미 통상합의의 구조: 압박과 타협의 경계선 1. 관세 인하와 대미투자협정의 의미 2025년 10월 29일 발표된 한미 통상합의는 상호 관세의 인하와 대미투자 협정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양측은 한국의 대미 수출품에 대한 관세율을 기존 25% 수준에서 15%로 낮추기로 합의하였으며, 자동차 및 부품과 같은 핵심 품목도 같은 수준으로 낮추기로 했다. 품목별 관세 중 반도체와 의약품은 대만, 유럽 등 다른 주요국과의 형평성을 고려하여 최혜국 대우가 적용되었다. 항공기 부품이나 미국 내에서 생산되지 않는 천연자원과 같은 특정 품목은 무관세로 예외 처리되었다.투자 부분에서는 미국 측이 초기 요구했던 3,500억 달러의 전면 현금 이동 방식이 조정되어, 현금성 투자 2,000억 달러와 MASGA 방식의 한미조선협력 1,500억 달러의 이원적 구조로 조정되었다. 이 과정에서 연간 투자 상한 설정, 외환시장 불안 시 협의 조항, 프로젝트 진척도에 따른 순차적 투자(captial-call), 특수목적법인(Special Purpose Company, SPC) 공동 운영, 한국인 PM 선임 가능성 등 소위 안전장치가 도입되면서 한국이 대체적으로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의 부담으로 완화되었다. 2. 왜 통상합의에 시간이 걸렸나 한국이 미국과의 통상합의의 큰 틀을 마련한 것은 7월 30일이다. 일본이 9월 초에 구체적인 합의 형태를 도출한 것과는 달리 한국과 미국은 8월 정상회담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3개월을 더 끌다가 마침내 10월 29일 APEC 기간 중 구체적인 합의사항을 발표했다. 이후 양국간 합의의 구체적 기록형태인 팩트시트(Fact Sheet)를 내 놓은 것도 합의발표 후 2주가 더 지난 11월 14일이었다.이렇게 양국 간 합의가 늦어진 것은 한국이 당초에 미국이 제시한 제안에 대하여 수긍하지않고 강하게 저항했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가 당초 미국의 요구에 강하게 반발한 가장 주된 이유는 제시된 ‘투자’ 규모가 한국 경제의 규모에 비해 너무 컸기 때문이다. 사실상 한국 GDP의 5~7%에 해당하는 막대한 규모를 매년 이전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는 한국 외환 보유액의 80%에 달하는 수준으로, 경제적으로나 안보적으로 지속 가능하다고 보기 어려운 요구였다. 역사적으로 보면, 최초의 미국 제안은 마치 1차 세계대전 후 베르사유 조약이 패전국 독일에 부과했던 배상금과 유사한 구조와 규모를 상기시키는 것이었다.2) 따라서 한국으로서는 단순한 경제협상이라기보다, 자국 경제의 근간을 해칠 수 있는 수준의 압박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었다. 최종 합의는 이러한 위험을 줄이는 방향으로 재설계된 결과이다. 한국이 미국과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경제적 대가와 교환하는 구조라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지만, 그 대가의 규모가 통제 가능한 범위로 축소되었고, 합의가 가져오는 불확실성이 제거되었다는 점에서 다행스러운 결과다. 3. 의미: 거대한 압력 속에서 얻어낸 제한적 안정 이번 타결은 한국이 경제 안보 환경에서 필요로 하는 최소한의 안정성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한국 기업들이 미국 내에서 계획한 투자 일정이 다시 가동되기 시작했고, 미국 정부도 동맹국과의 갈등 확산을 자제할 명분을 확보했다. 향후 미국 정부의 일관된 정책 실행이 담보되어야 하지만, 양국 간 한미동맹의 새로운 장을 열어젖힌 것으로 평가된다.그러나 동시에 이번 합의는 미국이 추구하는 새로운 동맹 구조. 즉 투자를 통한 전략적 결속에 한국이 더 깊이 편입되었음을 의미한다. 미국은 일본과 EU 그리고 한국에 대해서 관세와 투자 요구를 연계하는 방식으로 우방국의 경제와 산업 구조를 자국 중심으로 재편하고 있으며, 만약 약속이 충실하게 이행된다면 불가피하게 장기적으로 우리의 전략적 자율성에 도전을 제기할 여지도 남겼다. Ⅳ. 트럼프 관세정책 구조: 관세를 중심으로 재설계된 대외전략1. 관세의 전략적 무기화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하는 관세정책은 단순히 보호주의의 강화가 아니라, 관세를 외교, 안보, 통상, 재정 운영의 중심 도구로 사용하는 전면적 전략이다. 미국 시장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최소 10~15%의 기본 입장료를 지불해야 한다는 새로운 인식은 관세를 사실상 미국 경제권에 연결되는 데 필요한 비용으로 재해석한 것이다.트럼프 정책의 논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대미무역에서 흑자를 보는 국가는 예외없이 불공정국가이며, 이는 해당 국가가 미국을 이용해 부를 속여서 뺏어갔다(rip off)는 의미라고 본다. 이것은 경제학 교과서에서 배운 무역의 발생 원인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둘째, 흑자를 줄이기 위한 수단은 다양하지만, 어느 방식이든 미국에 대한 경제적 환원을 실질적으로 요구한다는 점이다. 흑자를 줄이기 위해서는 관세를 그냥 내던가, 미국으로부터 수입을 획기적으로 늘리던가, 국방비를 늘려 늘린 국방예산을 모두 미국산 무기를 사는데 사용하던가, 주요 대미수출기업을 모두 미국으로 불러들이라는 요구다. 그리고 이런 시도가 모두 효과가 없을 시에는 미국 재무성에 현금을 전달하라는 놀라운 요구사항도 담고 있다.3) 셋째, 보복관세나 동맹국 간의 공조는 절대로 허용되지 않는다. 모두 개별적으로 미국과 협상해야 한다. 이 세 번째 원칙을 지키지 않은 나라는 현재로서는 중국밖에 없다. 이러한 접근은 글로벌 경제가 지난 70여 년간 유지해 온 규범 기반 질서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다자주의나 WTO 규범은 사실상 무시되며, 위계적 시장 질서가 다시 등장하고 있다. 2. 기본관세, 품목별 관세, 상호 관세의 삼중구조트럼프 관세 체제는 세 단계의 관세가 중첩되는 구조를 갖는다. 첫째, 모든 국가에 적용되는 10% 또는 15% 기본관세는 미국 시장 접근 자체의 비용이다. 영국이나 호주같이 가족의 일원인 나라에는 10%, 그 외 우방국 친구에게는 15%가 기본이다. 둘째, 철강, 알루미늄, 자동차, 반도체, 의약품 등 전략 품목에는 25% 또는 그 이상의 품목별 관세가 부과된다. 품목 관세의 대상은 미국 내로 생산을 불러들여야 하는 전략 산업인데, 전략 품목의 대상과 수는 정해져있지 않고 점점 확장되고 있다. 최근에는 구리와 가구도 포함되었다. 셋째, 상호 관세는 대미 흑자 규모에 따라 추가적으로 40%까지 부과되는 징벌적 관세이다. 특히 상호관세는 앞서 언급한 대로 경제학적 근거가 아닌 대상국에 대한 흑자 환수라는 정치적 판단에 기반해 설계되었다는 점에서 경제학의 논거와 국제통상 질서를 근본적으로 흔드는 조치라 할 수 있다. 3. 관세, 투자 및 환율 정책의 결합 마이런 보고서에 따르면, 트럼프 관세정책은 두 단계로 구성된다.4) 첫 번째 단계에서는 고율 관세를 통해 외국 자본의 미국 투자 확대를 유도한다. 관세가 미국 내 투자 확대를 통해 미국 제조업의 기반을 강화하고, 관세 수입이 재정적자를 보완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 과정에서 인플레이션의 가능성이 있으며,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고이자율이 유지된다면 불가피하게 달러 강세가 유발한다. 관세정책으로 인한 달러화 강세는 미국 제조업의 수출 기반을 약화시킨다는 측면에서 결국 해결되어야 한다. 미국에서 제조업이 부흥하려면 달러 약세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인위적인 달러 약세를 유도하기 위한 두 번째 단계가 필요하다. 1980년대 플라자 합의와 유사한 소위 ‘마라라고 합의(Mar-a-Lago Accord)’를 통해서 인위적인 달러 약세를 유도하고자 한다. 이와 같이 관세-투자-환율 정책의 유기적 조합을 통하여 미국 국익중심의 마가 정책이 완성된다.Ⅴ. 미국 대외정책의 사상적 배경 트럼프의 관세정책은 갑작스럽게 돌출한 예외적 정책처럼 보이지만, 미국 역사에서 고질적으로 반복되고 있는 큰 사상적 철학적 배경을 가진 세 가지 전통적 원리가 재조합된 결과라고 파악한다. 이를 신먼로주의, 맥킨리주의, 그리고 큰몽둥이정책(Big Stick Policy)으로 대별해 볼 수 있다.1. 신(新)먼로주의: 세계 경찰을 그만두지만, 미주 지역은 절대 사수 미국의 5대 대통령 먼로(1817~1825)가 1823년 발표한 먼로 선언(Monroe Doctrine)은 그 동안 미국 대외정책의 형성과 집행에서 큰 영향을 미쳐 왔다. 아메리카 대륙 전체를 미국의 영향권으로 보고 여기서 미국의 국익을 수호하며 외세, 즉 유럽제국의 간섭을 배격하겠다는 먼로주의는 미국으로서는 양보할 수 없는 대외정책의 필요조건으로 기능했다. 먼로주의의 정신을 계승한 신먼로주의는 미국이 더 이상 세계 전역의 분쟁에 책임지지 않겠다는 태도를 전면에 내세운다. 그러나 미국의 핵심 이익이 위치한 지역, 특히 미주 대륙에서는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는 국제질서가 다극체제로 전환하고 있으며 아메리카는 미국의 핵심 영향권임을 공식적으로 미국이 선언한 것과도 같다. 2. 매킨리주의: 고율 관세와 제조업 기반 보호 트럼프 행정부의 고율 관세 정책은 19세기 말 고율 관세를 통해 제조업 경쟁력을 강화하고자했던 매킨리 대통령(1896~1901) 시대의 정책을 떠올리게 한다. 미국은 고율 관세를 대외정책의 근간으로 삼고 미국 국내 제조업의 보호, 더 나아가 제조업의 부활을 핵심 목표로 삼고 있으며, 이를 위해 동맹국에게도 부담을 전가하고 있다. 맥킨리 대통령의 적극적인 대외영토 확장주의도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대외정책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3. 루스벨트주의의 대외정책: 강한 행정력과 영향권 구축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1901~1909)은 군사력과 적극적 중재를 통해 국제질서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고 이런 공로로 1906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트럼프는 관세, 투자협정, 달러체제를 결합하여 미국 중심의 새로운 영향권을 구축하고 있다. 이른바 큰 몽둥이 정책(Big Stick Policy) 전략의 현대판 버전으로 볼 수 있다. Ⅵ. 글로벌 경제질서의 변화와 전망1. 최근의 변화최근의 세계 경제는 상호의존성이 더 이상 평화와 번영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냉혹한 현실을 확인해주고 있다. 오히려 상호의존성은 상대방이 의존을 미끼로 우리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무기로 사용될 수 있다. 공급망은 지역화되고 탈세계화 현상은 심화하는 가운데, 디지털 전환과 녹색 전환은 새로운 경쟁의 장을 만들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의 불안정성은 국지적 안보 불안이 전 세계적인 파급력을 지닌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미국이 관세를 무기화하면서 그간 지켜왔던 규범적 리더십이 훼손되고 있다. 미국의 소프트 파워는 눈 녹듯이 사라지고 있으며 ‘미국 없는 세계’라는 담론이 부상하고 있다. 중국, 러시아, 그리고 글로벌 남방뿐만 아니라 선진국들도 이젠 미국의 도덕적 우위를 더 이상 인정하지 않으며, 독자적 질서를 구축하려는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 이는 다자주의 질서가 더 이상 글로벌 경제의 기본 틀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한편, 경주 APEC에서 미·중이 합의를 이루면서 양국 간 직접 충돌 가능성은 낮아졌다. 그러나 이 안정은 양국이 서로의 영향력 영역을 인정하는 방식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미국, 중국, 그리고 러시아가 각자의 방식으로 영역을 유지하거나 확장하려는 상황에서, 한국, 일본, 유럽, 중동, 글로벌 남방 국가들은 더욱 복잡해진 선택을 강요받는다. 주변국에게는 운신의 폭이 좁아지는 어려워진 대외환경이 도래하고 있다. 2. 전망트럼프 행정부의 제조업 부흥전략과 부채관리전략은 성공할까? 아마도 현재 트럼프 행정부가 의도하는 형태로 현실화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하는 전망이다. 일단 제조업 부흥의 경우 미국에서 제조업 부흥의 우호적 환경, 예컨대 우수한 노동력, 사회인프라, 신규 노동력의 끊임없는 유입 등의 장점이 약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에 투자하는 한국을 포함한 외국기업들은 제조업 부흥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을 다각도로 모색하고 있다. 가장 낙관적인 경우라면 미국의 제조업은 휴머노이드와 AI기반 디지털화로 성공할 수 있으나 미국 내 일자리 창출에는 큰 효과를 못 거두는 상황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부채관리전략도 향후 큰 도전이 예상된다. 현재 연간 부채이자상환액이 국방비를 넘어선 상황에서 관리가능한 부채 관리에 대한 회의가 높아지고 있으며 미 국채의 선호도가 전반적으로 하락하는 경향을 돌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스테이블코인 등 가상화폐를 통한 미 국채에 대한 수요 확대의 미래도 아직 불투명하다.이러한 회의적인 전망 앞에서 트럼프 정책은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MAGA 연합의 국내 정치적 기반이 공고하다는 점에서, 트럼프 이후에도 관세 중심의 대외전략은 상당 기간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재정, 에너지, 산업 전략은 이미 관세정책과 강하게 연동되어 있으며, 이는 단순한 정권 차원의 정책이 아니라 미국 정치의 구조적 변화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한국과 같은 중견국은 다음과 같은 전략적 딜레마에 직면하고 있다. 첫째, 대미의존도가 상당한 상황에서 향후 더 높아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전략적 자율성을 어떻게 강화하고 얼마나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둘째, 미·중·러가 구축하는 새로운 영향권 구조 속에서 한국은 전략적 균형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셋째, 공급망 재편과 기술 경쟁이 심화하는 가운데 국가적 생존전략과 지속가능한 성장전략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이에 대해 답해야 한다. Ⅶ. 결론: 한국의 전략적 선택세계경제질서는 이미 20세기적 구조에서 벗어나, 미국, 중국, 러시아가 상호 견제와 제한적 협력을 병행하는 불안정한 다극 및 분절 질서로 이동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공세적 관세정책은 이러한 구조 변화를 촉진하는 핵심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경주 APEC에서의 미·중 정상회담이 일시적 안정처럼 보일지라도 이는 갈등의 해소가 아니라 보다 복잡한 경쟁 관리 단계의 서막일 뿐이다. 오늘의 세계는 세 강대국이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불편한 공존 속에서 영향권을 재정렬하는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으며, 그 여파는 동맹국과 중견국의 전략적 공간을 더욱 좁히고 있다. 따라서 한국과 같은 중견국은 전략적 자율성을 유지하면서도 중장기적 생존전략을 구축해야하는 이중의 과제에 직면해 있다 미 중 러 삼중구조 . · · 속에서 과도한 편향은 위험을 초래하며, 공급망, 기술, 에너지, 안보 등 다양한 영역에서 압력이 심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단순한 단기 대응을 넘어 다층적이고 구조적인 대응 전략을 세워야 한다. 무엇보다 지속 가능한 대응을 위해서는 국내 경제의 잠재 성장률 회복과 경제체질 개혁이 전제되어야 한다. 기술혁신을 촉진하고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며, 경제환경 개선과 국토 공간 활용도 제고를 포함한 구조개혁을 통해 외부 충격에 흔들리지 않는 경제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 이러한 국내적 토대가 뒷받침되어야만 외교, 안보, 통상 전략의 자율성과 선택의 폭이 유지될 수 있다.동시에 대외적으로는 협력의 다변화 전략이 절실하다. 유럽·일본·호주·캐나다 등 가치와 이해를 공유하는 파트너들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글로벌 남방과는 균형적이고 상호 호혜적인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더불어 디지털 전환과 녹색 전환과 같은 세계 경제구조의 대전환 흐름에서 선도적 역할을 확보하려는 국가 전략이 필요하다. 이는 단순한 산업정책을 넘어, 장기적 경쟁력과 외교적 공간을 확보하는 핵심적 수단이 될 것이다. 한국은 새로운 다극질서 속에서 국내 역량 강화, 외교·경제 협력의 다변화, 그리고 신산업과 기술 전략의 주도권 확보라는 세 축을 기반으로 전략적 자율성을 지켜내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정책과 대외전략의 변화는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세계질서 구조 변화의 일부이므로, 이러한 대응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변화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한국이 능동적이고 지속 가능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지금이야말로 종합적인 중장기 전략을 마련할 중요한 시점이다.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기획자: 박동준 제주평화연구원 연구실장, 편집 : 제주평화연구원 이혜진 연구원김흥종 (아산정책연구원 객원선임연구위원 / 前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원장) 현재 아산정책연구원 객원선임연구위원이자 산업통상자원부 통상협정대책위원회 위원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원장을 역임했고, 한국APEC학회 회장, 한국EU학회 회장, 아시아태평양 EU학회 회장, 한국태평양경제협력위원회(KOPEC) 의장을 역임했다. 외교통상부 및 산업통상자원부 자문위원, 한중관계 미래발전위원회 경제통상분과위원장,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위원, 고려대학교 특임교수로 활동했다. 주요 연구 분야는 대외경제 전반, 통상정책, 경제안보 등이다. 미국, 중국, EU 및 유럽, 인도, 러시아, 호주, 중동·아프리카 등 전 세계에서 개최되는 다양한 국제회의와 전략대화에 초청받아 국제적 담론 형성에 기여하고 있다. 주요 논문과 저서로는 “Dynamics of the Korea-EU FTA: from the early stage to the entry-into-force” (The Routledge Handbook of Europe-Korea Relations 2022. 01), 『혁신경제 4.0』 (도서출판 한울, 2025.04, 공저), 『한국경제, 전환의 시간』 (도서출판 해남, 2025. 06, 공저) 등이 있다.
  • [JPI PeaceNet] 국제정치와 평화의 이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자유주의적 조명
    저자
    오영달 (충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발간호
    2025-13
    [기획자 註] 지난 2022년 2월에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양국간 협상이 난망한 가운데, 이번 전쟁으로 인해 국제질서가 향후 어떻게 변화하게 될 것인지 근본적으로 고찰해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고는 자유주의적 관점에서 전쟁의 원인과 배경을 이해해보고자 하며, 나아가 전쟁을 종식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어떠한 인식과 노력이 필요한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기획: 박동준 연구실장(djpark@jpi.or.kr)]. 들어가며제2차 세계대전 후 세계는 6.25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을 제외하면 강대국들 사이에 큰 전쟁 없이 지내왔고, 존 가디스(John L. Gaddis)는 이것을 ‘장기간의 평화(long peace)’라고 불렀었다. 6.25 한국 전쟁이나 베트남 전쟁 역시 비극적인 큰 규모의 전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세계는 교통, 통신이 요즘처럼 신속하지 않아서 일반인들이 이러한 전쟁들의 심각성을 모르는 상태에서 일상생활을 영위했기 때문에 평화 시대로 여겼을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 세계에서는 걸프전쟁 당시 유행하였던 ‘CNN효과’로 인해 지구상의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어나는 전쟁도 그 살상과 파괴의 모습이 사람들에게 시시각각으로 생생하게 전해진다. 이와 같은 통신의 발달 속에서 전쟁 관련 소식을 접하며 그 참화를 더욱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1989년 8월,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대통령이 쿠웨이트를 무력으로 점령하여 촉발되었던 제1차 걸프전쟁에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다국적군 구성을 승인함으로써 미국 등 여러 국가들의 개입으로 쿠웨이트의 국가 주권이 비교적 단기간에 회복되었다. 당시 세계사회는 유엔이 원래 설립목적대로 국제평화를 위해 역할을 수행하는 ‘신국제질서(new international order)’가 도래했다는 행복감에 젖어있었다. 이러한 신국제질서는 냉전 기간을 통하여 세계 전체를 놓고 동서 대립의 한 축을 담당했던 소련 중심의 사회주의 정치체제와 정권들이 무너지고, 미국 중심의 자유주의 정치이념과 체제가 도래한 것으로 이해되었다. 이러한 분위기를 단적으로 표현한 것이 프란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가 말한 역사발전의 마지막 단계로서 자유 민주주의 정치체제 시대의 도래였다. 당시 세계의 강대국들은 미국의 조지 W. H 부시 대통령, 소련의 미하일 고르바쵸프 서기장, 그리고 중국의 장쩌민 주석이 지도자로 있었다. 이들 지도자들이 활동하는 가운데 유엔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안전보장이사회를 비롯하여 각 기관들이 그 설립 취지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작동하였다. 원래 제2차 세계대전의 참화 속에서 후세를 또 다른 전쟁으로부터 구하기 위하여 수립된 평화기구인 유엔의 취지에 부응하여 이러한 강대국의 지도자들이 단합하였던 것이다. 나아가, 원래 설립 당시부터 인권보호 관련 조항들을 그 헌장에 담고 있었던 유엔은 이제 인권 보호를 제도적으로 더욱 강화하기 위해 2006년 기존의 인권위원회(Commission on Human Rights) 대신에 보다 격상된 인권이사회(Human Rights Council)를 도입하였다. 이후 세계사회에서 전개된 일련의 평화 분위기 속에서 대표적인 국제정치학 교과서의 하나인 『세계정치론: 경향과 변환』의 저자 섀논 블랜튼(Shannon Blanton)과 찰스 케글리(Charles Kegley, Jr)는 오늘날 국가 간의 전쟁이 사라질 수 있다는 낙관론을 주장하기도 하였다.1)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늘날 세계는 종종 국가 내 무력분쟁 즉, 내전과 국가 간 전쟁이 드물지않게 일어나 인명 살상과 삶의 터전 파괴를 야기하고 있다. 이 중에 러시아는 구 소련의 중심 국가로서 2000년 초 이래 조지아, 몰도바, 체첸니아 등지에서 무력 사용을 하였고, 2014년 3월 크리미아공화국을 합병하였으며, 2022년 2월에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면적 침공을 시작한 이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 또한 2023년 10월 팔레스타인의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대한 대규모 무력 공격을 함으로써 촉발된 가자지구의 전쟁은 이제 막 휴전 상태로 들어갔을 뿐이다. 이러한 전쟁으로 야기된 상흔은 언제 치유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이에 더하여 세계 곳곳에서 불안한 정세가 지속되고 있다. 가까이 중국과 대만 사이 그리고 한반도의 남한과 북한 사이에도 긴장이 높은 상태에 있다. 동북아 지역의 양안관계 그리고 한반도의 남북 관계는 당사국들이 향상된 경제력을 바탕으로 고도의 잠재적 살상력과 파괴력을 갖는 무기들을 보유한 상태에서 대치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처럼 세계사회의 여러 곳에서 악화 일로에 있는 안보상황을 보면서 그 근본 원인이 무엇이며 평화를 위한 접근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서는 논의의 편의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사례로 하여 그 배경 원인 등에 관한 논의들을 검토하고, 그로부터 평화를 위해 주의를 기울여야 할 원칙들에 대하여 논의하고자 한다. 이러한 시도에 있어서 필자는 국제관계론에서 활용되는 주류 이론적 시각들 중 하나인 자유주의를 통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하여 조명하고자 한다. 즉, 전쟁과 평화의 문제에 대하여 러시아의 지도자 푸틴의 개인 기본권으로서 자유에 대한 인식, 러시아 국가 정치체제와 그 운영방식, 그리고 국가 간 관계에 대한 접근 등을 중심으로 논의하고자 한다. 이러한 측면들은 서로 연관된 상호작용 속에서 오늘날 진행되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투영되고 있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그에 대한 관점 국가 공동체로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밀접한 관계는 유럽 중세시대의 9세기에 존재했던 키예프 루스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20세기에 들어서는 1917년 레닌이 주도한 볼셰비키 혁명 후 1922년에 우크라이나가 소비에트 연방의 한 창립 구성공화국이 된 사실이 있다. 주지하다시피, 이후 약 70여년 간 공산권의 지도국가였던 소비에트 연방국가가 1991년 12월 공식적으로 해체되면서 다른 구성 공화국들과 함께 우크라이나도 독립을 얻었다.이러한 상황에서 소비에트 연방의 중심 국가였던 러시아 연방과 그 구성 공화국들 중 하나였다가 독립한 우크라이나는 이후 러시아와 오랜 애증관계에 놓이게 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러시아의 국내 정치상황과 그 지도자들의 정책적 관점 그리고 미국 및 서방 자유진영 국가들을 아우르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이하 나토)와의 상호관계가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였다. 고르바쵸프 대통령 당시의 소련에서 구성 공화국들이 독립을 얻었고, 그를 승계한 보리스 옐친 대통령은 공산주의 정치체제를 포기하고 시장경제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혼란의 수습에 전념하느라 우크라이나 등 이전 소련의 구성 공화국들에 대하여 손쓸 겨를이 없었다. 그러나 2000년 옐친 대통령의 후임으로 블라디미르 푸틴이 대통령직을 승계하면서 점차 러시아 연방의 국내 상황이 안정을 되찾았다.푸틴 대통령은 소비에트 연방 당시의 강대국 위상을 되찾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고 그것은 러시아 국내외 정세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소비에트 연방이 분열되는 상황에서 새롭게 독립한 이전 구성 공화국들 내에는 연방 당시 그 곳에 정착하여 살던 러시아인들이 상당수 잔류하고 있었다. 푸틴 대통령은 이전 구성 공화국들이 다시 러시아의 영향권 아래에 들어와 함께 하기를 바랐는데 여의치 않은 경우 그 곳에 거주하고 있던 러시아 소수민들을 지렛대로 활용함으로써 내전이 촉발되곤 하였다. 러시아 남부의 조지아 공화국, 몰도바 공화국 그리고 체첸 공화국 등이 좋은 사례로서 푸틴 대통령은 이들 공화국들에 무력 개입을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 연장선 상에서 2014년 3월 1954년 이래 우크라이나 영토로 존재해왔던 크리미아 공화국을 러시아 연방에 합병하였으며 이어서 우크라이나 동남부 돈바스 지역의 도네츠크 인민공화국과 루한스크 인민공화국에서 친 러시아인들을 통하여 독립을 선언하게 한 후 이를 러시아 연방에 다시 편입하였다. 곧이어, 푸틴 대통령은 ‘특별군사작전’이라는 이름으로 2022년 2월 24일 오전 6시 약 20만 명의 무장병력을 동원하여 우크라이나에 대해 전면적 침공을 개시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푸틴 대통령은 처음에 이 침공을 ‘특별군사작전’이라 부르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면 전쟁 사실을 부인했지만 나중에 그도 인정했듯이 이것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유럽에서 벌어진 최대의 전쟁으로 평가된다. 그는 이 전쟁이 시작된 후 수일 내에 우크라이나의 수도인 키이우를 점령하고 친 서방 젤렌스키 대통령 정부를 제거하여 우크라이나를 다시 러시아의 영향권 아래 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였었다. 하지만, 이 전쟁은 그의 기대와 달리 시작된 지 3년 8개월이 지난 이 시점에도 상호 공격을 주고받으며 살상과 파괴가 지속되고 있다. 이와 관련한 정확한 통계수치를 확인할 수 없지만, 양측 모두에 있어서 현재까지 이 전쟁을 통해 목숨을 잃은 전투병은 수십만 명에 이르며 비전투병인 민간인들도 우크라이나의 경우 약 13,500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으로 회자된다.2) 러시아 역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것은 물론, 전사한 병사의 수는 약 이십만 명 전후로 추산되고 있다.3)이러한 전쟁상황에 대하여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에 관한 논의가 있어 왔다. 이러한 논의들을 모두 검토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대체로 두 가지 입장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러시아의 푸틴 정권이 불법적으로 우크라이나에 대해 전쟁을 도발했다는 견해이고, 다른 하나는 러시아 푸틴 정권의 전쟁 시작이 그 동안의 전반적인 정세 흐름상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견해이다. 예를 들면, 처음 이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와 나토, 유럽연합(EU) 국가들은 이 전쟁의 불법성을 강조하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원조와 함께 러시아에 대한 즉각적 제재조치들을 가하였다. 그리고 2025년 1월 미국의 제2기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최근 푸틴 대통령과의 알래스카 정상회담 개최 등을 통해 휴전 등 수습노력을 경주했지만 글을 쓰고 있는 현재 아직 협상은 진행 중에 있다. 학자들 중에도 러시아의 침략이 불법적이며 푸틴의 지도력 특징에서 전쟁의 원인을 찾는 견해들이 있다. 이러한 견해들은 우크라이나가 전통적으로 러시아와 하나의 영토였다는 등 푸틴 대통령의 주장을 반박하고 이 전쟁의 불법성을 주장한다.4)다른 한편으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전쟁에 대하여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정당화 입장에 동정적인 견해들이 존재한다. 푸틴 대통령은 이 전쟁을 시작하면서 장문의 담화문을 발표하여 그 자신의 입장을 정당화하였다. 푸틴 대통령의 담화문에 따르면 전쟁의 이유와 목적으로 나토 회원국의 확대와 동진에 따른 러시아 안보에 대한 위협이 제시되고 있다. 즉, 푸틴 대통령은 나토가 러시아의 역사적 영토인 우크라이나에 적대적인 ‘반러시아’를 만들고 있다고 비난하며 이것은 러시아에게 있어 삶과 죽음의 문제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보다 구체적으로 유엔 헌장 7장 51조에 따라 우크라이나 내의 도네츠크 인민공화국과 루한스크 인민공화국을 원조하기 위해 무력행동을 결정했으며 그 목표는 우크라이나 정권으로부터 학대와 학살을 겪어온 사람들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리하여,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비군사화와 비나치화를 달성하고 관련 책임자들에게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하였다.5)푸틴 대통령의 담화문 내용을 전체적으로 볼 때 놀라운 것은 일반적으로 민주정치 담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개인의 자유와 평등, 정의, 자결, 유엔 헌장의 집단자위권 등의 용어들에 대한 구사를 통해 러시아가 정의의 편에 서있는 반면에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국가들이 오랜 시간 러시아에 대하여 거짓과 억압으로 일관하고 있음을 주장한 것이다. 이것은 국제정치 문제를 인지심리학적으로 접근할 때 사용되는 개념으로서 ‘거울이미지(mirror image)’6)의 전형적인 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국내외 러시아 전문가들과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들 중 상당 수가 푸틴 대통령이 느껴온 미국 등 서구 국가들의 부당성을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보았다. 즉, 1991년 소련이 붕괴된 이후 심각한 수세에 몰려있던 러시아 연방에 대하여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이 나토 등을 앞세워 지속적으로 압박 정책을 추구해왔고, 그에 대하여 푸틴 대통령이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며, 그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쟁도 그 연장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7)국제관계에 있어서 전쟁 등에 이를 만한 사안들은 흔히 지정학적 복잡성을 띠게 마련인 것을 감안할 때, 그 전쟁의 당사국들은 물론이고 그것을 관찰하는 분석가들 사이에서도 다양한 견해와 입장이 존재할 수 있다. 그리고 심지어 상반된 견해까지도 존재할 수 있다. 따라서 여기에서 필자는 이러한 논의에 참여한다는 의미에서 나름대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하여 국제관계에서 많이 활용되는 자유주의적 시각의 견지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이 전쟁의 개시와 함께 발표된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담화문을 바탕으로 비판적 견해를 전개하고자 한다. 여기서 자유주의적 시각은 칸트의 영구평화론에서 볼 수 있는 내용을 중심으로 접근하고자 한다. 자유주의적 시각 역시 다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유주의와 평화에 대한 그 접근 전쟁과 평화라고 하는 문제는 현실주의에서 흔히 보여지는 것처럼 일반적으로 국가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어떤 현상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것은 사람들의 사물에 대한 관점에 뿌리를 두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전쟁과 평화 관련 정책을 결정하고 실행하는 지도자들이 인간과 인간 간의 관계 그리고 그러한 인간들이 모여서 형성하는 국가를 비롯한 다양한 수준의 공동체들 그리고 그러한 공동체들 간의 관계를 어떻게 보느냐 하는 것과 깊은 관계가 있다. 즉, 이러한 관계를 바라볼 때 매개적인 역할을 하는 개념들 중에는 정의(正義, justice), 이익(利益, interests)이라는 관념들에 매개되는 상황과 맥락에 대한 이해가 작용한다. 정치공동체의 중심적 구성주체로서 사람들의 삶은 다양한 정신적 및 물질적 요소들이 상호작용하는 복잡한 맥락 속에서 전개된다.기본적으로 전쟁과 평화라는 두 관점에서 보면 사람들은 당연히 평화를 선호할 것이다. 왜냐하면, 평화만이 국가 지도자들을 포함하여 자연인으로서 사람들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생명체의 안전한 생존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지도자들을 포함하여 사람들은 인간관계 그리고 그 연장으로서 국가 간의 실제 관계에 대하여 서로 다른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다. 그와 같이 서로 다른 관점들은 사람들과 국가들의 행동을 추동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는데 개인 간 또는 국가 간 전쟁도 종종 이러한 관점들의 상호작용 과정에서 나타나는 충돌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의 충돌은 어떤 갈등 상황이 발생했을 때 어떤 요소들이 더 중요하거나 덜 중요한 지에 대한 해석의 차이로 인해 부정적 상승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인류의 오랜 역사를 통하여 일어났던 수많은 전쟁들도 이러한 측면에서 해석할 수 있다.일반적으로 사람들 중 한 사람 한 사람 각자가 천부적으로 자유의 속성을 지니게 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서로 평등한 관계에 놓인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현실에서 다양한 형태의 불평등 속에 살아간다. 여기에서 존 롤즈(John Rawls)가 말하는 ‘무지의 베일(veil of ignorance)’ 개념이 도입될 수 있다. 선험적으로 자유롭고 평등한 것으로 가정된 사람들의 관계는 한 개인의 자유가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된다는 공리에 의하여 역설적으로 자유가 제한받는 결과로 나타나게 된다. 이러한 역설 속에서 공평성을 지향하는 상호성을 바탕으로 개개인의 자유는 제한될 수 있고 그러한 제한을 투명하고 공식화하기 위해 도덕 및 법 같은 규범들이 형성, 존재하게 된다. 이러한 도덕과 법 규범은 국내사회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오랜 옛날에는 지구의 물리적 공간 전체를 통하여 사람들 사이의 상호작용이 지극히 제한적이어서 인류사회의 보편적 도덕과 법에 관심이 적었지만, 오늘날과 같이 교통, 통신이 현저히 발달한 시대에는 지구 인류사회 전체에 적용되는 보편적 도덕 및 법 규범이 엄청난 양으로 늘어난 것은 자연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자유주의는 인간관계 그리고 그러한 인간들로 구성된 국가 공동체 내 그리고 국가 공동체간 관계를 어떻게 보는지 간략히 논의한다. 이것을 흔히 국제정치학 분야에서 말하는 세 가지 분석 수준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자유주의의 이론에서 그 핵심적 주체로 인정되는 개인이라는 존재는 어떻게 상정되어 왔는가? 근대유럽에서 자유주의 정치사상의 선구자들인 홉스(Thomas Hobbes), 로크(John Locke) 등은 중세시대 등 기존의 신의 지배 하에 있는 인간이라는 관념에서 벗어나 자율적인 존재로서 인간을 상정하고 체계적으로 담론을 전개하였었다. 유럽의 중세라는 오랜 기간을 통하여 보통의 사람들은 신 그리고 그의 가르침의 기술서로서 성경, 그리고 그것을 가르치는 성직자들의 권위가 절대시되는 환경 속에서 삶을 영위하였다. 그러나 유럽 근대시기로 들어오면서 이러한 분위기에 전환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인간 본성의 한 요소로서 초월적 이성의 역할에 대한 강조에서 비롯되었다. 즉, 성경을 비롯하여 그 어떤 것도 인간의 이성에 비추어 철저히 검토된 후에 수용 또는 거부될 수 있는 것으로 주장된 것이다. 이것을 단적으로 표현한 것이 기존의 ‘신의 주권(divine sovereignty)’ 대신에 ‘이성의 주권(sovereignty of reason)’제창이었다.8) 이러한 근대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자연상태 하의 자유롭고 평등한 인간들을 상정하였는데 이러한 인간들은 각각 생명, 자유, 재산이라고 부를 수 있는 자연권을 지니는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개인들은 자연상태에서 지니는 그들의 자연권을 더욱 확실히 보호하기 위해서 오늘날 우리가 운영하는 정부를 수립한 것으로 상정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정부는 홉스와 로크에 있어서 서로 다른 성격을 띠는 것이었다. 즉, 홉스는 사람들이 그들의 자연권을 보호하기 위해 사회계약을 통해 수립한 정부에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하는 것으로 보았다. 반면에 로크는 이러한 정부에 대한 복종은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자연권을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 즉 사람들의 생명, 자유, 재산권 등을 정부가 제대로 보호하고 존중한다는 애초의 설립 목적에 부합할 때만 수용되고 그렇지 않을 때는 저항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홉스와 로크 두 정치사상가들 사이에 자연권을 보호하기 위해 정부가 설립된다는 내용은 동일하지만 그 정부에 대한 절대 복종과 조건부 복종으로 나뉘는 것은 이 두 사상가들이 인간의 본성을 어떻게 보며 그러한 인간들이 국가가 수립되기 전의 자연상태에서 어떤 상태로 삶을 영위하는가에 대한 가정과 관련이 있다. 주지하다시피, 홉스는 인간들의 본성에 대하여 자기 중심의 이기적인 것으로 보아서 정부가 수립되기 전인 자연상태를 ‘만인의 만인에 대한 전쟁(war of all against all)’으로 규정하고 그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절대적인 권력으로서 주권을 행사하는 정부 또는 국가가 존재한다고 하였던 것이다. 반면에, 로크는 자연상태에서 사람들은 정부가 수립되기 전에도 비교적 평화로운 상태에서 삶을 영위하는 것으로 보았는데 다만 종종 일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자연권을 해치는 경우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대비하여 정부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그리하여 로크가 상정하는 정부는 언제나 무조건적으로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자연권을 보호한다는 전제조건 하에 놓여 있었다. 이렇게 볼 때 홉스에게 주권의 소재처는 국가 정부 한 곳에서만 상정될 수 있었지만 로크에게는 보다 본원적인 의미의 주권은 생명, 자유, 재산권의 주체로서 개인들의 집합체인 국민들에게 존재하며, 그로부터 파생된 그리고 위임된 형태의 주권만이 국가 정부에 존재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런데 이처럼 홉스와 로크가 그들의 정치이론에서 서로 다른 입장을 취하게 되는것은 바로 인간의 본성을 선한 것으로 보았느냐 아니면 악한 것으로 보았느냐 하는 데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인간의 본성은 자연의 사물처럼 눈에 보이지 않고 일상 삶 속의 경험세계에서 사람들마다 다르게 볼 수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하여 전적으로 선하다거나 또는 악하다고 단정적으로 말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즉, 인간의 본성에 대한 관점은 정치이론을 전개해 나가는 데 있어서 하나의 예비적 가정의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 사실 국제관계이론 중 현실주의와 자유주의는 이 두 사상가의 사상적 관점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자유 문제를 논의하는데 있어서 인간 본성의 근원적 차원으로서 도덕 또는 윤리적 잠재성과 관련하여 논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와 관련하여 칸트는 홉스나 로크의 논의를 넘어 ‘정언명령(categorical imperative)’이라는 개념을 통해 인간의 이성에는 인간의 도덕성 또는 도덕 원리의 기초로서 인간의 자율성이 내재되어 있음을 지적하였다. 또한 이러한 인간의 자율성이 인간 도덕성의 전제 또는 가능 조건임을 논파하였다. 그리하여, 칸트는 인간에게 있어서 ‘도덕적이고자 하면 자율의 원리에 따르고, 자율적이고자 하면 보편적 도덕의 원리에 충실하라’는 도덕 규범과 인간 자율성의 상호 내재적이며 내포적인 측면에 주목하였다.9)이러한 칸트의 도덕철학은 ‘자유’의 개념에 기초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자유’는 초월적 이성과의 관련 속에서 상정될 수 있는 것으로 인간은 자신의 자유의사에 따라 행동하는 주체로 간주된다. 칸트에 따르면, 이러한 주체는 그 행위들에 대해 귀책능력이 있어서 ‘인격’이라 일컬어지는데 마땅히 해야 할 바를 행해야만 하고 그것을 책임진다는 것이다. 여기서 마땅히 행할 바의 규정, 즉, 법이나 도덕 같은 당위의 법칙들은 인간이 그 자신에게 부과했다는 의미에서 자율로 본다. 이처럼 이성적 존재자로서 인간은 그 자체로서 가치를 가지며 다른 어떤 것에 의해서도 대체될 수 없는 목적적 존재자라는 것을 강조하였다.10) 도덕적 존재자로서 인간은 그 권리 곧 인권(human rights, menschenrecht)을 갖게 되며 이것은 사람이면 누구라도 한낱 수단이 아니라, 동시에 목적으로 살고 대우받을 권리를 의미한다. 칸트는 이러한 인격 안의 인격성의 권리들 및 인간들의 권리 외에 세상에서 더 신성한 것은 없다고 하였다. 이러한 인권은 모든 인간에게 그가 인간이라는 바로 그 힘으로 인하여 귀속하는 근원적인 권리로서 그러한 보편적 인권의 원리들은 곧 자유, 평등, 안전이라고 하였다. 칸트에 따르면, 이러한 인권의 으뜸은 자유의 권리로서 바로 타인의 강요적인 의사로부터 독립이며 모든 타인의 자유와 보편적 법칙에 따라 공존할 수 있는 한도에서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다.11) 이 자유는 각자가 좋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자기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권리를 핵심요소로 갖는다.인간, 그리고 인간의 자유와 평등, 안전 등의 원칙에 따라 칸트는 인류사회의 지속적인 평화 가능성을 논의하는데 그 결과가 바로 그의 영구평화론이다. 1795년 프랑스 시민혁명과 이후 전개된 나폴레옹 전쟁을 지켜보며 집필된 이 논문에서 칸트는 영구평화를 위한 필요 조건들을 논의, 제시하였다. 그는 이 논문을 작성함에 있어서 평화조약문 같은 형식을 취했는데 그 확정조항들에서 먼저 시민들이 자유와 평등의 권리를 갖는 공화주의적 헌정체제를 가져야 함을 규정하였다. 왜냐하면, 어떤 국가의 공화주의 정치체제에서는 자유와 권리의 주체인 시민들이 그들의 의사에 반하는 통치자의 자의적인 결정에서 비롯되는 전쟁을 거부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이러한 공화주의 정체를 가진 국가들끼리는 전쟁하지 않을 것이라는 공화주의 또는 자유주의 평화론, 그리고 오늘날 민주평화론이 등장하였다. 칸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러한 공화주의 국가들이 연맹을 형성함으로써 공화주의 정치체제가 아닌 국가들이 일으키기 쉬운 전쟁에 공동으로 대항할 수 있다고 하였다. 칸트의 이러한 평화구상이 실제 정책으로 추구된 것이 제1차 세계대전의 종결 무렵 미국의 우드로 윌슨 대통령의 주도에 의해 창설된 국제연맹과 그 집단안보체제였다. 집단안보체제는 세계의 구성 국가들이 하나의 집단을 형성하여 그 구성국가들 중 어느 한 국가가 공동의 평화질서를 파괴하는 경우 그에 대해 나머지 국가들이 공동으로 대응하는 제도적 장치이다. 국제연맹에 이어서 등장한 국제연합, 즉 유엔도 기본적으로 같은 집단안보 구상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집단안보를 통한 세계평화의 추구는 양자 또는 제한된 국가들 간의 안보동맹에 기초하여 세력균형을 추구하는 현실주의 평화이론과는 분명히 다른 점이 있다.칸트의 영구평화론에서 다시 주목할 만한 점은 그 예비조항들에서 영토의 거래, 불간섭 원칙, 종전 후 화해를 불가능하게 할 끔찍한 행위들을 금한 것이다. 즉, 아무리 국가 간 전쟁이 일어날지라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극한적 수단까지 동원하여 싸우기보다는 준수해야 할 규칙이 있음을 강조한다. 이러한 점은 유럽 사상사에서 오랫동안 논의되어 온 ‘정의로운 전쟁론(just war theory)’의 개념과 직결되는 것으로 국가 사이의 전쟁은 그 시작에 있어서 정당성을 확보해야 하며, 일단 개시된 전쟁의 수행에 있어서도 비례성의 원칙 등 지켜야 할 원칙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를 바탕으로 다음에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하여 논의하고자 한다.  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기획자: 박동준 제주평화연구원 연구실장, 편집 : 제주평화연구원 이혜진 연구원오영달 (충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충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이다. 영국 아버리스트위드대학교(Aberystwyth University)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주요 연구 분야는 국가주권과 국제인권과의 문제, 유엔 등 국제기구, 한국 정치사 등이다. 주요 논문으로는, “안중근의 자기희생과 한국의 보훈이념: 민주주의, 국가독립 및 수호, 그리고 세계평화,” 『한국동양정치사상사연구』, 제24권 1호 (2025. 2), “Peace and conflict in Northeast Asia: A Liberal Perspective,” Evolution of the United Nations System: An East Asian Perspective (Abingdon, UK: Taylor & Francis Group, 2023), “대한민국의 건국 시기에 대한 논쟁의 재조명: 이중주권론의 시각,” 『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보』21권 1호 (2022년 3월), “주한 유엔군사령부와 한반도 평화” 『외교』 제139호(2021. 10.) 등이 있다.
  • [JPI PeaceNet] 북·중·러 3자 군사 협력 가능성에 대한 평가
    저자
    김동찬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조교수)
    발간호
    2025-12
    [기획자 註] 지난 9월에 개최된 중국 전승절 80주년 열병식에서 시진핑 주석, 푸틴 대통령, 그리고 김정은 총서기가 한 자리에 나란히 서는 모습이 연출되면서 북중러 3국간 협력 강화, 그리고 나아가 동북아시아 지역에서의 신냉전 구도 고착화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본고는 북중러 3국 협력의 가능성을 여러 관점에서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정책적 함의를 도출해보고자 한다 [기획: 박동준 연구실장(djpark@jpi.or.kr)]. 초록중국 전승절 80주년 열병식을 계기로 북중러 3자 군사 협력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었다. 하지만 중국은 북중러 3자 간 정상회담 혹은 어떤 형태의 3자 간 논의에 대해서도 매우 신중하고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 이유에 대해 중러, 북중 양자 관계가 내포한 긴장 요인들과 3국이 추구하는 전략 목표가 불일치한다는 두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다.우선 중러 관계와 북중 관계에는 긴장과 갈등이 존재한다. 중러 양국은 미국에 대한 전략적 안정 유지를 위해 “전면적 전략 협력 파트너 관계”를 강조하지만, 양자 간 구체적 의제에서는 이견과 마찰이 노출되고 있다. 북중 관계는 트럼프 1기 북미 핵 협상을 앞두고 북미 관계가 개선될 가능성에 주목한 중국이 대북 정책을 전면 수정하여 북한에 전략적 지지를 재확인해주면서 개선되었다. 하지만 북중 관계에 다시 균열이 발생했다는 것을 방증하는 여러 사건들이 발생했다.한편 중국은 미국과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중국에게 불리한 진영화된 군사적 대치나 중국 경제가 세계 경제에서 디커플링되는 것을 방지하려 한다. 반면 북한은 진영화된 군사적 대치 구도가 형성되는 것이 자국에 유리하다고 판단하여 이를 적극 추동하고 있다. 각국이 추구하는 전략 목표가 불일치한다는 점이 북중러 3자 군사 협력을 제약하는 근본적 요인이다.중국 전승절 80주년 열병식을 계기로 북중러 3자 군사 협력에 대한 우려 고조 2025년 9월 3일 베이징에서 거행된 중국 전승절 80주년 기념 열병식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시진핑 주석이 집권한 후 중국 주요 국가 행사에 참석해 왔던 러시아 푸틴 대통령을 포함한 26개국 정상들 중에서도 단연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은 북한의 조선노동당 김정은 총서기였다. 중국과 북한, 러시아 최고권력자가 천안문 망루에 나란히 서서 열병식을 참관한 장면은 해외 언론들에 의해 북중러 3자 협력이 시작되는 상징적 사건으로 해석되었다. 이 장면을 보면서 혹자는 미소 냉전 시기에 형성되었던 북중러 대 한미일의 신냉전 구도 형성 가능성을 우려했고, 혹자는 2015년 박근혜 대통령이 김정은 총서기 자리에 섰었던 사실을 떠올렸다. 대체로 언론이나 대중들은 세 사람이 한 자리 모였다는 사실에 강한 인상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열병식 후 각국 언론은 북중러 3자 간 군사 협력 가능성, 심지어 반미 동맹 형성 가능성에 대한 여러 추측을 쏟아냈다.반면 한국의 중국, 러시아, 북한 전문가들과 중국 학자들은 대부분 북중러 3자 군사 협력 가능성은 낮다는 평가를 견지하고 있다. 패트리샤 킴(Patricia M. Kim)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은 9월 Foreign Affairs에 실린 “Don't Overestimate the Autocratic Alliance”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통해 “북중러 정상들이 중국 전승절 열병식에서 보여준 화려한 연출은 실상보다 과장된 이미지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1) 필자도 이 주장에 기본적으로 동의한다. 실제로 북중러 정상은 열병식 때는 한 자리에서 참관을 했지만, 열병식을 전후해서 각각 중러, 그리고 북중 양자 정상회담을 따로 개최했다. 면밀히 관찰해 보면 중국은 러시아와 북한도 전승절 기념 열병식에 최고권력자가 직접 참석해 축하를 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동시에 북중러 3자 간 정상회담 혹은 어떤 형태의 3자 간 논의에 대해서도 매우 신중하고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 글은 현 시점에서는 북중러 3자 군사 협력 가능성이 낮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중러 관계와 북중 관계 등 두 개의 양자관계가 현재 처한 상황을 분석할 것이다. 또 북중러 3국이 겉으로는 매우 우호적인 듯한 장면을 연출하지만 실제는 각국이 추구하는 국가이익의 근본적 차이로 인해 군사 협력을 하는 데에는 한계가 존재한다는 점을 설명하고자 한다. 중러 간 전면적 전략 협력 파트너 관계를 유지하는 원인과 목표 5선에 성공한 푸틴 대통령은 취임식 후 첫 해외 방문국으로 중국을 선택했다. 2024년 5월 16일 개최된 중러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주석과 푸틴 대통령은 중국과 러시아가 “전면적 전략 협력 파트너 관계(全面战略协作伙伴关系)”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중국과 러시아는 냉전 시기 중소 분쟁이라는 역사적 경험, 소련 해체 후 중러 관계가 정상화된 후에도 존재했었던 미묘한 긴장을 극복하고 전면적 전략 협력 파트너 관계를 형성했다. 그 핵심적 원인은 중러 양국의 미국에 대한 전략적 입장이다. 헨리 키신저(Henry Kissinger)는 냉전 시기 미중 데탕트를 통해 미국의 소련에 대한 전략적 우위를 확보했고, 이는 결국 미국이 소련과의 경쟁에서 승리하는 구조적 토대가 되었다. 미중경쟁이 시작되자 미국에서는 러시아와의 타협을 통해 중국과의 경쟁에서 전략적 우위를 확보해야 한다는 ‘역 키신저 전략(reverse Kissinger)’에 제기되었다. 그러자 중국은 미국과의 경쟁에서 전략적으로 불리한 상황에 처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러시아와의 전략적 협력을 강화 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 되었다.물론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후 미국과 러시아가 타협할 수 있는 가능성은 상당히 낮아졌다. 그렇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재집권에 성공한 후 ‘역 키신저 전략’을 추진하려는 시도는 계속되었다. 만에 하나라도 미국과 러시아가 미중 데탕트처럼 전략적으로 타협을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이는 중국에게는 중대한 타격으로 작용할 것이다. 따라서 현재 중국에게 미러 간 전략적 타협 가능성을 방지하는 것은 최우선 외교 목표 중 하나일 것이다. 한편 푸틴 대통령은 자신이 추구해 온 ‘위대한 강대국 러시아 재건’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유일한 국가가 미국이라고 판단하고 있을 것이다. 또 러시아의 실제 역량, 특히 경제적 역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미국과의 전략적 경쟁에 돌입한 경제 대국 중국과의 협력은 러시아에게도 필수적일 것이다.2024년 5월 중러 정상회담 직후 중국 외교부의 공식 발표 내용에서도 중국과 러시아의 이러한 인식들이 드러나고 있다. 시진핑 주석과 푸틴 대통령 모두 “전면적 전략 협력 파트너 관계”를 여러 차례 강조했다. 푸틴 대통령은 양국 관계가 “국제 전략적 안정에 유익”하며 “러시아는 유엔, 브릭스(BRICS), 상하이협력기구(SCO) 등에서 중국과 소통과 협력을 밀접히 하여 세계 다극화와 국제관계 민주화를 촉진하고 공정하고 합리적인 국제질서를 건립”할 것 이라고 언급했다. 시진핑 주석도 “양국 간의 전면적 전략 협력 파트너 관계가 지속적으로 강화되는 것은 글로벌 전략적 안정을 유지하고 국제관계의 민주화를 촉진하는 데 적극적 공헌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또 양국 협력을 통해 “공정하고 합리적인 글로벌 거버넌스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2)이와 같은 중러 양국 정상의 언급을 통해 우리는 중러 양국이 미국과 관계에서 전략적인 안정을 위해 협력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양국은 “세계 다극화”와 “국제관계 민주화”라는 표현을 통해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질서에 반대하며 자신들이 생각하는 “공정하고 합리적인 국제 체제 구축”이라는 목표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리고 열병식 바로 전날인 2025년 9월 2일에 진행된 중러 정상회담에서도 양국은 이 기본 입장을 다시 확인했다.3)  중러 전면적 전략 협력 파트너 관계의 한계와 중러 간 마찰 사례 분석 그렇지만 현재까지 중국은 러시아와의 군사 협력에 대해서는 명확히 선을 긋고 있다. 시진핑 집권 시기에 개최된 중러 정상회담에서는 양국 간에 다양한 협력 방안이 논의되었고 미국에 대한 전방위적 비판도 빠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중러 양국이 합의한 현재 중러 관계에 대한 공식 입장은 “동맹을 맺지 않고, 대항하지 않으며, 제3자를 겨냥하지 않는 특징을 가진 관계”라는 것이다.4)그 이유를 분석해 보면 다음과 같다. 중국이 미국과 전략적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러시아가 미국과 관계를 개선해 중국의 반대편에 서는 것은 막아야만 한다. 그렇다 해도 우크라이나 침공을 통해 미국뿐 아니라 나토(NATO) 국가들과도 이미 적대적 관계에 접어든 러시아와 군사적 협력, 심지어 군사 동맹을 구축하는 것은 유럽과의 관계를 우호적으로 유지하려 노력하는 중국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 중국은 현재도 러시아와 무역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특히 석유와 천연가스를 대량 수입하여 러시아의 전쟁 수행 능력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NATO 국가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다.5) 이것만으로도 중국의 국제적 이미지와 국가이익에는 큰 손해를 초래하고 있다.게다가 중국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해 군사적 공격을 한 것과 점령한 영토에서의 주민투표를 통해 영토 합병을 한 것에 대해서는 절대 러시아의 입장을 지지해 줄 수가 없다. 중국은 대만 문제 해결을 위해서라도 각국의 주권, 독립과 영토 완정을 보장해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할 수 밖에 없는데, 러시아는 주권국가인 우크라이나를 선제 공격해 영토를 빼앗은 것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또한 주민투표를 통해 한 지역이 어느 국가에 귀속될 것인지를 결정한 것도 대만 문제와 연결해 생각할 때 중국이 절대 용인할 수 없는 방식이다. 그렇기에 중국은 러우 전쟁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 중립을 취한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도 2023년 2월 발표한 “우크라이나 위기의 정치적 해결에 대한 중국의 입장(关于政治解决乌克兰危机的中国立场)” 중 첫 조항에서 “각국의 주권, 독립과 영토 완정은 응당 보장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6) 그리고 이는 푸틴 대통령이 전략적 협력 파트너인 중국에게 기대했던 반응은 아니었음이 분명하다.중러 양국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양국 관계가 더 이상 좋을 수 없는 관계라고 강조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양국 간에 상당한 마찰과 긴장이 존재함을 확인할 수 있다. 그 대표적 사례 중 하나가 2023년 3월 중러 정상회담 후 발표된 공동선언의 주요 내용 중 하나가 불과 며칠 만에 푸틴 대통령의 결정에 의해 부정된 사건이다. 당시 중러 양국은 2022년 1월 3일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 등 핵무기 보유 5개국 정상들이 발표한 “핵전쟁 방지와 군비 경쟁 금지에 관한 공동성명(Joint Statement of the Leaders of the Five Nuclear-Weapon States on Preventing Nuclear War and Avoiding Arms Races)”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모든 핵 보유국은 자국 영토 밖에 핵무기를 배치하지 말아야 하며 영토 밖에 배치한 핵무기를 철수시켜야한다”며 공동으로 미국을 에둘러 비판했다.7)그런데 시진핑 주석이 귀국한 후 불과 사흘 만에 푸틴 대통령은 자국의 핵무기를 벨라루스에 배치할 것이라고 발표했고, 실제로 이를 추진했다.8) 러시아의 이 조치는 2023년 2월 중국이 발표했던 “우크라이나 위기의 정치적 해결에 대한 중국의 입장”에 대한 불만 표시일 수도 있고, 푸틴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해결하려 노력했던 “시베리아의 힘 2(Power of Siberia 2)” 가스관 건설 사업에 관한 MOU 체결에 중국이 동의해 주지 않은 것에 대한 서운함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든지 러시아가 벨라루스에 핵무기를 배치한 결정은 중러 정상회담에서 중국이 제안하고 러시아가 동의했던 약속을 러시아가 곧바로 뒤엎은 것이라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참고로 “시베리아의 힘2” 가스관 건설 사업에 관한 중러 간 MOU는 2025년 9월 푸틴 대통령의 전승절 열병식 참석을 계기로 체결되었다.9) 2018년 북미 핵 협상 개최가 확정되자 중국은 대북 정책을 전면적으로 수정 북중 관계도 국제 정세 변화에 따라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북한과 중국이 혈맹 관계라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존재하지만, 한국전쟁 당시에도 북한과 중국은 전쟁 목표를 둘러싸고 큰 이견을 표출했었다. 특히 1992년 한중 수교는 북한에 심대한 외교적 타격이 되었고, 북한은 중국이 북한을 배신했다고 인식했다. 냉전 종식과 함께 중국에게 북한의 전략적인 중요성은 낮아졌고 중국 내에서는 북중 관계가 보통 국가 간 관계라는 주장까지 제기되었다. 북한의 핵 개발은 중국도 원하지 않는 것이었고, 북한의 지속적 군사 도발도 경제 발전과 국가 현대화에 매진하기 위해 주변 지역에서 안정적 대외 환경이 조성되기를 바라던 중국에게는 부담을 주는 요인이었다. 그러므로 한중 수교 후 북중 간에는 전반적으로 긴장 관계가 지속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특히, 2012년 시진핑 주석 집권 후 2018년 5월에 정상회담이 열리기 전까지 북중 관계는 심각한 냉각 상태에 있었다.그렇지만 2018년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총서기와의 직접 협상을 통한 북핵 문제 해결을 시도하면서 중국은 북한에 대한 정책을 전면 수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중국의 대 한반도 정책 기본 목표 중 하나는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는 것이며, 중국은 역사적으로 한반도 북부를 중국 안보에 결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지정학적 핵심 지역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총서기 간 회담 개최가 확정되자 중국은 북미 간 핵 협상이 타결될 가능성에 주목했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협상을 통해 북핵 문제가 해결될 경우에는 북미 간 관계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미중 전략 경쟁이 이미 시작된 상황에서 북미 관계 개선은 필연적으로 중국의 북한에 대한 영향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전략적으로도 중국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다. 이에 중국은 김정은 총서기를 전격적으로 초청하여 시진핑 주석이 직접 “3개의 불변(三个不会变)” 약속을 해 주면서 국제와 지역 정세에 어떤 변화가 발생하더라도 중국의 북한에 대한 전략적 지지는 확고하다는 것을 보장해주었다.10) 또 중국은 북중 관계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대북 정책을 전면 재조정했다.북중 관계가 다시 악화된 근본적 원인은 양국 전략 목표의 불일치그런데 2018년 북중 관계를 급격히 개선시키는 것으로 대북 정책을 전면 수정했던 중국과 북한 간 관계가 다시 악화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국내외 언론들을 통해 북중 관계에 다시 균열이 발생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여러 사건들이 보도되었다. 중국은 2018년 시진핑 주석과 김정은 총서기 간의 다롄 정상회담을 기념하기 위해 설치했던 기념 동판을 철거했다. 또한, 중국 공안이 북한 밀수품을 몰수했는데 북한이 이 물건이 김정은 총서기가 사용할 물품이라며 돌려달라 요청했지만 중국은 이 요청을 무시하고 경매 처리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중국이 자국 내 체류하는 북한 노동자에 대한 비자 연장을 거부하고 이들을 전원 귀국시키라고 북한에 요구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2024년은 “중조 우호의 해”였지만 양국 간 교류는 여전히 매우 제한적이었다. 여기에 북한과 러시아 간 밀착이 군사 협력 강화와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 체결로 이어지며 북중 관계 이상설이 더 확산되었다. 그렇다면 최근 북중 관계가 악화된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국내외 전문가들은 2024년 체결된 북러 조약과 북러 군사협력 강화를 중국이 탐탁하지 않게 생각하기 때문이라거나, 중국이 북한이 원하는 만큼 충분한 경제 지원을 해 주지 않기 때문이라는 등 북중 관계 악화 원인을 다양하게 제기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사건들도 북중 관계가 다시 악화되는 데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북중 관계가 다시 악화된 근본 원인은 양국이 추구하는 전략 목표에 심각한 불일치가 발생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중국은 현재 상황에서 미중 전략 경쟁이 중국에 불리한 군사적 충돌로 악화되거나 중국 경제에 파국적 영향을 주게 될 중국이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경제 시스템에서 디커플링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회피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중국이 미국과의 전략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중국에게 불리하다고 판단되는 영역에서 미국과의 경쟁을 회피하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전략이다. 반면 북한은 동북아에서 북중러 대 한미일 신냉전 구도가 다시 형성되는 것이 북한에 가장 유리한 외부 환경이라 판단하며 “국제관계 구도가 신냉전으로 변화된 것이 국제정세 변화의 주요 특징”이라고 규정했다. 또한 “미국 주도 블록화에 대항하기 위한 반제•반미 진영화의 불가피성도 주장”했다.11) 실제로 북한은 러시아와 군사 협력을 통해 동북아에서의 신냉전 구도 형성을 시도하고 있다. 즉 북한은 중국이 회피하려 노력하는 지역 안보 상황을 적극적으로 추구하고 있다.북중 간에 존재하는 전략 목표 불일치는 양국 간 주요 의제에 대한 의견 불일치에도 영향을 주었다. 2024년 5월 중러 정상회담 직후 양국은 “수교 75주년을 즈음하여 신시대 전면적 전략 협력 파트너 관계를 심화시키는 것에 대한 연합 성명”을 발표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성명 중 중러 경제 협력을 기술한 부분에 “양국은 중국 선박이 두만강 하류를 통해 바다로 항행하는 사안에 대해 북한과 건설적 대화를 전개할 것”이라는 내용이 포함된 것이다.12) 이 문제는 중국이 동북 지역의 경제 발전을 위해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이를 해결하려면 북한과 러시아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아직까지 해결하지 못했던 사안이다. 그런데 중국의 이 제안에 대한 북한의 답변은 두만강 하구에 기존 철교 외에 도로 교량을 하나 더 건설하기로 러시아와 합의하고 착공한 것이다.13) 즉 북한은 중국 선박이 두만강 하구를 통해 동해로 나가는 데 제약이 되는 기존 철교 외에 도로 교량을 하나 더 건설하는 방식으로 중국의 제안을 거절한 것이다.트럼프 2기에도 북중 혹은 북중러 군사 협력 추진은 어려울 것 전망트럼프 집권 2기에도 미국은 북한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북핵 협상을 다시 추진하려 한다. 미국 조야에서 북한이 핵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진 것이 아니냐는 회의론이 대두된 상황에서, 한국은 트럼프 2기 정부가 북한의 비핵화가 아니라 북한의 핵 보유 묵인을 전제로 한 핵 군축이나 동결 같은 ‘스몰딜’을 추진할 가능성에 대해 강력한 의구심과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의 핵 협상을 재개하려 시도하는 것은 중국의 대북 정책에도 심각한 딜레마를 제기하고 북중 관계를 더 악화시킬 요인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 만약 북미 핵 협상이 타결된다면 중국은 2018년처럼 다시 북미 관계 개선이 중국에 초래할 부정적 요인들을 우려하게 될 것이다. 반대로 북미 간 핵 협상이 실패한다면 북한은 계속 신냉전 구도 형성을 목표로 행동하면서, 중국이 원하지 않는 지역 내 군사적 진영화를 유발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즉 어느 경우에도 중국이 원하는 전략 목표와 북한이 추구할 전략 목표 사이에는 큰 간극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 간극은 북중 관계를 악화시키는 핵심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따라서 북중 간에도 군사 협력은 추진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결론적으로, 북중러 간에는 북러 군사 협력, 중러 전략적 협력 등 양자 관계에서의 협력은 지속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본문에서 검토한 것처럼 북중 관계와 중러 관계에는 긴장이 존재하는데다 무엇보다도 각국의 전략 목표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북중러 3자 간 군사 협력은 추진되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다. 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기획자: 박동준 제주평화연구원 연구실장, 편집 : 제주평화연구원 이혜진 연구원김동찬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조교수)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조교수이자 연세 중국연구원 운영위원이다. 중국 복단대(Fudan University)에서 국제정치학 전공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주요 연구 분야는 미중 전략 경쟁의 한반도에 대한 영향, 동아시아의 위계적 안보 질서, 중국의 대외 정책과 한중 관계, 북중 관계 등이다. 주요 논문으로는 “A show of strength or weakness: China’s motivation for the San Francisco détente”(Issues & Studies, Vol. 61, No. 1, 2025), “China s perception of minilateralism and Chinese-style multilateralism” (Australian Journal of International Affairs, Vol.78, No. 6, 2024) and “The Biden Doctrine and China's response” (International Area Studies Review, Vol. 26, No. 2, 2023) 등이 있다.
  • [JPI PeaceNet] 한일 국교정상화 60년, 과학기술 협력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향하여
    저자
    최해옥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시스템혁신실 연구위원)
    발간호
    2025-11
    [기획자 註] 한일 양국은 2025년에 국교정상화 60주년을 맞이하였다. 이 기간 동안 한일 관계는 변화하고 진화하였으며, 때로는 위기와 부침을 겪기도 하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고는 한일 양국이 지난 1960년대 이후 과학기술 분야에서 협력해온 양상과 특징을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앞으로 과학기술 분야에서 전략적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기획: 강영훈 원장(yhkang@jpi.or.kr)]. 초록한일 과학기술협력은 지난 60년간 산업발전 수준의 변화와 글로벌 질서 개편에 따라 진화발전해왔다. 본고는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을 맞아 양국의 과학기술협력의 전개과정과 기술, 조직, 제도의 관점에서 구조적 한계를 분석하고 향후 협력에 고도화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한일 양국은 2023년 정상회담 이후 경제안보대화가 출범하였지만 과학기술분야의 실행력은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다. 특히 한일 과학기술협력위원회는 13년간 중단되었다가 최근 재개되면서 실효성 제고 방안이 시급한 상황이다. 글로벌 기술 질서 재편과 미중 기술패권 경쟁속에서 전략기술분야의 공급망 안정화가 더욱 중요해졌기 때문이다.한일 과학기술협력은 지난 60년간 4단계로 진화 발전해왔다. 1기(1965-1985)는 기술이전으로 한국의 산업화 기반을 조성한 시기, 2기(1985-2000)는 한일 과학기술협력협정 체결로 상호호혜적 공동연구 협력이 시작된 시기, 3기(2000-2019)는 외교적 갈등으로 협력 중단, 일부 분야만 유지된 시기. 4기(2019-현재)는 경제안보 대응을 위해 전략적 협력이 재개된 시기이다.현행협력 체계는 기술, 조직, 제도 측면에서 구조적 한계를 보이고 있다. 첫째, 1985년 협적문에 고착된 12개 협력 분야로는 새롭게 등장한 경제안보, 전략기술분야 대응에 어려움이 있다. 둘째, 실무적 제도 인프라 미비로 인해 공동특허 등록기준, 성과공유체계, 연구집행기준 등에 관한 기준이 부족하다. 셋째, 정치외교적 종속성을 극복하고 지속가능한 거버넌스가 부족하여 외교 갈등시 협력이 반복적으로 중단되고 있다. 향후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한 정책적 대안으로는 거버넌스 측면에서 정치·외교 변수와 분리된 과학기술분야의 안정적인 ‘협력의 판’을 구축 할 필요가 있다. 또한 공동 R&D를 위해 연구개발펀드 조성과 인력순환체계 지원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한일 과학기술협력협정 협정문을 고도화하여 신기술분야를 포괄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서론: 왜 한일 과학기술분야 협력을 회고해야 하는가? 2025년은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을 맞아 그동안 과학기술분야 협력을 회고하고 미래 지향적인 협력체계를 구축해야 할 전환점이다. 그동안 정치·외교적 갈등에 따른 협력 중단 재개의 반복과 제도적 기반 미비로 지속가능성 확보가 시급해졌기 때문이다.2023년 한일 정상회담 이후 경제안보대화가 공식적으로 출범되었다. 하지만 과학기술분야 협력에 있어 실행력은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다. 특히 한일 과학기술협력위원회는 2011년부터 2023년까지 13년간 중단되었고 2023년 재개되었는데,1) 이러한 협력 여정의 중단과 재개를 극복하고 지속가능한 력체계 구축해야 한다. 특히 과거 협력의 성과와 한계를 좀 더 체계적인 방법을 가지고 분석해 나갈 필요가 있다.2024년 서울대학교 국가전략원이 출판한 『글로벌 대한민국의 새로운 한일협력』 보고서에서는 "한국-일본 플러스 경제, 과학, 안보 협력 프레임워크" 체결을 제안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특히 과학기술협력이 단순한 학술교류 차원을 넘어 경제안보와 연계된 전략적 핵심 의제로 부상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는데 의의가 있다.2)오늘날 글로벌 기술질서는 미중 기술패권으로 인해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선별적 협력론에 기반한 신뢰기반 정비 및 다양한 협력방식 개발(양자 및 다자협력)의 중요성이 점점 증대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전략기술분야인 반도체, 배터리, AI에서 글로벌 공급망 안정화가 시급한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일본의 경우 2022년 「경제안전보장추진법」을 제정하였고, 우리나라는 2023년 「K-칩스법」을 추진하며 양국 모두 전략물자 보호를 위한 법제도화를 진행하고 있다.3) 한일 양국은 중견국으로서 대응 방식과 전략적 유사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과거 협력 경험을 체계적으로 검토하는 작업은 향후 협력 체계 구축에 중요한 토대가 될 수 있다.글로벌 기술패권에 대응하는 전략과 동시에 디지털 전환과 탄소중립이라는 산업구조 전환이 필요한 한일 양국은 상호보완적인 협력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양국이 각각 강점을 지닌 산업분야가 상이하고 기술 발전 단계에도 차이가 있어 이러한 비대칭성을 기술협력과 공동연구개발의 기반으로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60년간 축척된 과학기술협력의 경험을 회고하고 그 성과와 한계, 그리고 기술, 조직, 제도 측면에서 평가하는 작업은 미래 협력전략을 수립하는데 필수적인 과정이라 판단된다. 한일 국교정상화 60년, 과학기술협력 4단계 진화 [1기 1965-1985] 기술이전으로 한국의 산업화 기반 조성한국의 중화학공업 발전 과정에서 일본의 자본과 기술은 핵심적 역할을 수행했다. 포항제철 건설 당시 신일본제철이 고로 설계와 압연기 자동화 시스템 기술을 전수한 사례는 이러한 협력의 대표적 성과로 평가된다. 가전산업 분야에서도 1960년대부터 1970년대에 걸쳐 일본과의 기술협력이 산업 성장의 토대가 되었다. 삼성전자는 1969년 산요전기와 합작을 통해 TV와 가전제품 생산기술을 확보하였고, LG전자는 1965년 히타치와 기술제휴를 맺어 냉장고 생산에 나섰다. 이들 기업은 일본 기업 대비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면서 글로벌 시장에서 입지를 강화할 수 있었다.4)이 시기 정치적 갈등 상황에서도 정경분리 원칙에 따라 경제협력은 지속되었다. 1973년 김대중 납치사건과 1974년 박정희 저격사건 등 외교적 긴장에도 불구하고, 양국간 경제교류는 유지되었다. 1969년 한일/일한 민간합동경제위원회가 발족하면서 민간 차원의 협력 채널이 형성되었고,5) 학술 분야에서도 한국연구재단과 일본학술진흥회 간 양해각서가 1979년 체결되어 이후 한일 공동학술연구지원사업을 통한 연구자 교류가 시작되었다.6) [2기 1985-2000] 한일 과학기술협력협정 체결로 상호호혜적 공동연구 협력 시작1985년 한일 과학기술협력협정이 체결되면서 양국 협력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이 협정은 12개 분야를 명시하고 2년 자동 연장 조항을 통해 지속성을 확보했다. 협력 대상 분야는 해양과학, 자원 및 에너지, 보건 및 환경, 건축 및 토목공학, 농학·임학 및 수산학, 소재과학, 전자, 전기통신, 항공 및 우주과학, 기계 및 화학공학, 생명공학, 컴퓨터 및 정보과학이었으며, "산업개발을 위한 기초를 제공하는데 적합한 과학 및 기술, 그리고 기타 상호합의하는 분야"도 포함되었다.7) 이 시기 국제 기술환경도 급변했다. 1985년 플라자 합의(Plaza Accord) 이후 1986년 미일 반도체 협정이 체결되었고, 미국의 대일 무역 압박으로 일본 반도체 산업이 타격을 받았다.8) 한편 1992년 한일산업기술협력재단이 설립되면서 퇴직 기술자 파견사업이 시작되었고, 1990년대 품질관리, 정밀가공, 생산자동화 등 중소기업 현장에 실질적 기술 지원이 이루어졌다.9) [3기 2000-2019] 외교적 갈등으로 협력 중단, 일부 분야만 유지2000년대 들어 양국 관계는 외교정치적 갈등으로 과학기술협력이 직접적 영향을 받은 시기이다. 2012년 교토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위안부 문제를 제기하면서 양국 관계는 더욱 긴장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2011년 이후 정부 간 협력 채널이 사실상 중단되었다. 특히 과학기술협력위원회는 2011년부터 2023년까지 13년간 가동되지 못하였는데, 이로 인해 신규 공동연구 과제 발굴도 정체하게 되었다.이후 한일 양국 협력은 일본이 2019년에 발표한 수출규제 강화 조치로 인해 더욱 직접적으로 타격받았다. 이로 인해 한국의 반도체 소부장 공급에 차질이 발생하였고, 민간 협력이 급감하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이 시기는 과거 축적된 협력 기반이 외교 정치적 갈등으로 중단될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4기 2019-현재] 경제안보 대응을 위해 전략적 협력 재개2023년 개최된 한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양국 관계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였다.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 복원하며 수출규제 이슈가 해소되면서 한일 양국의 협력 재개를 위한 노력이 이루어졌다. 특히 한일 경제안보대화가 새롭게 출범하면서 반도체, 배터리, AI, 사이버보안, 공급망과 같은 전략 분야에의 협력이 추진되고 있다.10)이러한 전략적 협력분야의 노력은 민간 차원의 협력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2023년 일본 경제 산업성은 삼성전자의 요코하마 반도체 연구거점에 200억 원 투자를 발표했고 이러한 과정에서 구체적 협력사업이 진행되고 있다.11)12) 이는 한일 과학기술협력 방식이 과거의 일방적 기술이전 단계를 넘어 상호 전략적 이해관계에 기반한 협력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일 과학기술협력 체계의 3대 구조적 한계[기술: 기술협력범위 한계] 1985년 과학기술협력협정의 고착화로 신기술 협력 대응에 한계1985년 체결된 과학기술협력협정에 명시된 12개 협력 분야는 실질적 개정 없이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협정문은 "기타 상호 합의하는 분야"라는 포괄 조항만으로 신기술 분야를 포함하고 있으나, 이는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기술협력 수요에 제도적으로 대응하기에는 명확성이 부족하다. 2023년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반도체, 인공지능, 양자기술 등 첨단 분야 협력이 논의되었으나, 이를 뒷받침할 구체적 후속조치나 협정 체계는 여전히 미흡한 상태이다. 협정문이 작성된 1980년대 중반과 현재의 기술환경 차이가 크게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협력의 법적 기반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제도: 제도적 인프라 미비] 협력을 위한 실무적 지원제도 미흡한일 양국 간 과학기술협력을 실질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실무적·제도적 인프라가 미흡하다. 예를 들어, 한일 과학기술협력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공동특허 등록기준 설정, 성과 공유체계, 연구비 집행 및 정산에 관한 표준화된 절차가 미흡하다. 연구시설 및 장비의 상호이용체계와 연구자 교류를 위한 비자 발급과 같은 기본적 행정 지원도 부족한 실정이다. 이는 실제 공동연구 수행과정에서 제도적 미비로 인해 실무적 혼란이 발생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또한, 한일 과학기술분야 협력 사업 수행 중 분쟁조정 메커니즘과 해결 절차가 명확히 구축되어 있지 않아 이해관계 충돌이나 갈등이 발생했을 때 이를 조정해 줄 수 있는 장치가 부족한 점도 한계로 지적할 수 있다. 한일 양국의 연구자들은 이러한 제도적 미비로 인해 공동연구를 기획하거나 추진하는 과정에서 실무적 혼란을 겪게 되고, 이로 인해 협력의 실효성이 결과적으로 저해되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조직: 지속가능한 거버넌스 부족] 정치·외교적 종속성을 극복하는 상시 협력체계 부족한일 협력은 지난 60년의 경험을 통해 한일 양국 간 외교 갈등이 발생할 때마다 과학기술협력도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는 양상을 보여왔다. 다시 말해, 한일 양국간 과학기술협력은 정치·외교적 상황에 크게 영향을 받으며 독립적인 협력체계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핵융합 분야처럼 일부 영역에서 지속적 협력이 이루어진 사례도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과학기술협력이 불안정한 한일 관계에 종속되는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보다 구체적으로, 한일 과학기술협력을 정부간 협력 차원에서 상시적으로 관리 및 운영하는 지속가능한 체계가 부족하다. 즉, 정상회담이나 고위급 회담에서 합의된 사항들이 실제로 이행되고 있는지 검증하고 점검할 수 있는 상시 조직이 부족한 실정이다. 지속적 협력을 위해서는 양국간 관계가 변하더라도 과학기술협력의 연속성을 보장해 줄 수 있는 독립적이고 상시적인 조직을 신설하거나 지정하는 방향으로 거버넌스 구조를 재편할 필요가 있다. 한일 과학기술협력 체계 고도화 방안 [거버넌스] 정치·외교 변수와 분리된 과학기술분야의 안정적 ‘협력의 판’ 구축한일 정부 간 공식적인 협력 체계 복원과 지위 격상을 통한 안정적 협력체계 구축이 필요한 시점이다. 특히 과학기술분야의 협력의 창구로서 한일과학기술협력위원회는 기존 국장급 회의에서 장관급 회의로 격상하여 협력의 위상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한국과 일본의 정부기관이 참여하는 정례회의에 있어 정부와 민간의 양방향 체계를 구축함으로써 외교적 긴장 상황에서도 과학기술협력의 연속성을 유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한일 과학기술 협력의 지속성을 강화하기 위해 창구 역할을 수행할 기관이나 조직을 명확히 지정하여 실무를 전담할 수 있는 제도 개편도 고려해야 한다. 양국에 각각 지정된 조직과 기관은 협력의제 발굴, 이행점검 및 평가, 성과평가를 체계적으로 수행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특히 지속되는 외교 정치적 상황 변동에도 협력의 실무적 기반을 유지하는 기능을 담당해 나가야 한다.다자 및 양자 협력체계에 대한 전략적 상시적 정책협의체 운영이 필요하다. 현재 분리하여 운영되고 있으나, 2023년 출범한 한일 경제안보대화와 기존 한일 과학기술협력을 연계하여 전략적 협력체계를 구축해 나갈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전략 수립 과정에서 양국간 협력의 범위와 한계를 분명히 하기 위해 협력분야와 경쟁분야를 명확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특히, 정부차원에서 가이드라인을 제공하여 민간 차원의 기술교류에서 협력 가능한 영역과 기술보호가 필요한 분야와 영역을 명확히 구분하여 기술보호와 협력의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공동 R&D] 연구개발펀드 조성과 인력순환체계 지원한일 공동 연구개발 펀드 조성으로 전략 분야 협력을 지원해야 한다. 경제안보 분야이기도 한 배터리와 반도체 분야에서는 양국의 기술적 강점을 연결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하여, 한국이 보유하고 있는 양산분야 기술과 일본의 소재 정밀 제어 기술을 결합하여 현지 이미 구축되어 있는 연구개발 거점을 확대하는 방안이 현실적이다. 배터리 분야에서는 전고체 배터리분야를 중심으로 협력 의제를 확대하고, 반도체 분야에서는 삼성전자가 요코하마에 설립한 '어드밴스드 패키징 랩(APL)'과 같은 연구개발 거점을 활용하는 협력모델을 확장해 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한편, 인력교류 플랫폼을 재정비하고 정책연구기관의 교류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한국연구재단과 일본학술진흥회가 추진하는 한일학술공동연구지원사업을 확대 추진해야 한다. 사업 추진과정에서 관련 인력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여 지속적인 인력관리 및 운영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특히 시기별 전략적 방향설정을 통해 전략기술 분야에 대한 지원을 우선하고 기업이나 연구소에서 6개월 이상 장기체류가 가능한 인턴십이나 공동연구를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마지막으로, 공동 펀드를 구성하여 정책연구기관 간 지속적인 공동연구 기반을 구축해 나가야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실무차원의 제도적 지원으로 연구자 비자 신속발급 제도화, 양국 박사학위 상호인정, 경력인정체계 제도화, 연구시설 및 장비 상호이용체계, 연구비 집행 및 정산에 관한 표준화 절차 마련 등이 필요하다.[협정문 고도화] 신기술 분야를 포괄하는 제도적 기반 고도화한일 과학기술협력협정 협정문 내용에 대한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고도화 추진이 필요하다. 1985년 체결된 한일 과학기술협력협정은 협력 기술분야로 12개 분야와 이외 “산업개발을 위한 기초를 제공하는데 적합한 과학 및 기술, 그리고 기타 상호합의하는 분야”로 규정에 명시되어 있지만 내용이 포괄적으로 명시되어 있다. 이는 최근 부상하는 신기술 및 서비스 분야에 대한 제도적 대응력이 부족할 수 밖에 없을을 의미한다. 향후 경제안보를 고려한 협력분야 선정과 공동연구 설계, 이를 수행하기 위한 법제도적 근거를 고도화해야 한다. 협정문을 현재의 기술환경과 협력 수요에 맞게 개정이 필요한데, 디지털 전환, 탄소중립, 바이오헬스에 협력 영역을 명시적으로 포괄할 필요가 있다.정책수요의 선제적 파악 및 분쟁조정 메커니즘 도입이 필요하다. 한일 과학기술협력에 있어 실무차원의 정책수요를 반영하기 위해 공동 특허 등록 기준, 기술료 배분 기준과 같은 지원제도를 사전에 명문화해야 한다. 또한, 협력 사업 내에서 갈등이 발생했을 때 제3자 중재 절차를 제도화하여 분쟁조정 메커니즘을 도입해야 한다. 추가적으로, 투자 회수 방법과 지적재산권 보호에 관한 원칙을 사전에 설계하여 협력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분쟁 요인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 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기획자: 강영훈 제주평화연구원 원장, 편집 : 제주평화연구원 이혜진 연구원최해옥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시스템혁신실 연구위원) 현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시스템혁신실 연구위원, 일본 동경대학교에서 박사학위(Ph.D)를 취득하였고 중국 칭화대학에서 박사후과정을 수료, 오사카시립대학교에서 박사후 fellowship을 수행함. 주요 연구분야는 규제혁신, 규제샌드박스, AI규제샌드박스, 이차전지, 동북아 혁신제도, 특구제도, 안전성과 신뢰성 관련 연구를 수행하고 있음. 주요 경력으로는 Global Sandbox Forum(글로벌샌드박스포럼)전문가 위원, 국민권익위원회 적극행정위원회, 세종특별자치시 과학기술진흥위원회 위원, 충청북도 과학기술위원회로 활동하고 있음
  • [JPI PeaceNet] 개발에서 공생으로: 한일 공동개발구역(JDZ) 거버넌스의 전환
    저자
    박창건 (국민대학교 일본학과 부교수/국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해양전략연구센터(KJMC) 센터장)
    발간호
    2025-10
    [기획자 註] 미래지향적 관계로의 발전을 통한 한일 협력의 필요성과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이러한 배경 하에서, 본고는 「한일대륙붕공동개발협정」이 곧 만료될 것을 앞두고 본 협정을 토대로 수립된 한일공동개발구역(JDZ: Joint Development Zone)의 거버넌스를 계승발전시킴으로써 향후 안정적인 한일협력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한다. [기획: 강영훈 원장(yhkang@jpi.or.kr)] 초록본고는 1974년 협정에 의해 설립된 한일공동개발구역(JDZ)을 단순한 ‘개발 지연’의 사례가 아니라, 지난 50년간 갈등 확산을 억제해 온 지정학적 위기관리 제도로 재해석한다. 2028년 협정의 시효 만료를 앞둔 현 시점에서, 본고는 JDZ의 ‘공생적 해양 거버넌스(symbiotic ocean governance)’로의 제도적 전환을 제안한다. 본고의 목적은 JDZ를 국제해양법협약(UNCLOS), 생물다양성협약(CBD),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글로벌생물다양성프레임워크(GBF) 등 국제규범과 정합적인 지속가능한 자원관리 체제로 재설계하기 위해, 이를 해양보호구역(MPA) 제도로 전환하는 실천적 경로를 제시하는 데 있다.연구방법으로는 문헌 분석과 정책 비교를 결합하여, 한국의 중앙정부 주도·기후연계형 MPA 모델과 일본의 지역공동체 기반·해양공간계획(MSP)·녹색전환(GX) 통합형 모델을 대조하고, 이를 JDZ에 적용 가능한 제도 모형으로 도출하였다.주요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JDZ의 안정성은 단독행위 금지–공동위원회 운영–잠정협정 유지라는 절차적 장치에 기반하며, 이는 실질적 개발 성과의 부족에도 불구하고 위기관리 기능을 수행하였다. 둘째, 변화하는 안보 환경은 개발과 보전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제도적 업그레이드를 요구한다. 셋째, JDZ를 공동 MPA로 전환할 경우, 에너지 안보·생태 보전·외교 협력을 통합하는 다층적 거버넌스 구조를 구축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해 공동 구역 설정, 통합 모니터링, 공정한 이익 공유체계 등이 필요하다. 본고는 JDZ 담론을 위기관리에서 지속가능성과 다층 거버넌스로 확장함으로써, 동북아 해양질서의 안정과 국제규범 준수를 강화할 수 있는 정책적‧학술적 청사진을 제시한다.서론 본고는 한일공동개발구역(JDZ: Joint Development Zone)을 지정학적 위기관리와 한일 공조의 관점에서 재조명하고, 이를 통해 JDZ 거버넌스의 제도적 전환 가능성을 탐구하는 데 목적이 있다. JDZ는 1974년 1월 30일에 체결된 「한일대륙붕공동개발협정」에 근거하여 설립된 이후 반세기 동안 양국이 중립적 지위를 유지하며 해저 자원의 공동 탐사와 개발을 추진해온 특별 구역이다. 그러나 2028년 6월 22일 협정 시효 만료까지 불과 2년 6개월가을 남겨둔 현시점에서, JDZ는 한일 양국 모두에게 단순한 자원개발 협력의 틀을 넘어서는 제도적 재설계 과제를 제기하고 있다. 협정의 종료는 곧 미해결된 대륙붕 경계획정 문제와 지정학적 갈등을 재점화할 수 있는 잠재적 위험을 내포하고 있으며, 동시에 기후위기 대응과 해양생태계 보전이라는 국제규범적 요구를 제도 속에 반영할 수 있는 전환의 기회가 되기도 한다. 즉, JDZ는 기존의 ‘개발 지연’과 ‘위기관리’라는 이중적 성격을 넘어, 한일 양국이 협력의 틀을 확장하고 갈등을 제도적으로 억제 할 수 있는 새로운 규범 질서를 모색하는 실험적 장(場)으로 재구성될 필요성에 직면해 있다(아래 [그림1] 참조). 기존 연구들은 JDZ를 주로 동북아 해양질서 재편 과정에서 국제법적 논리와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나 자원개발 성과 부재의 사례로 한정적으로 규정해 왔다.1) 그러나 JDZ를 지정학적 위기관리의 제도적 장치로 재평가하거나, 기후위기 대응과 해양환경 보전이라는 새로운 국제규범적 요구 속에서 ‘공생적 해양 거버넌스(symbiotic ocean governance)’의 관점에서 분석한 시도는 여전히 미흡하다.2) 본고에서 제시하는 ‘공생적 해양 거버넌스’는 해양을 공동의 자연 자본으로 인식하고, 장기적 자원관리와 생태계 보전을 동시에 달성하기 위해 국제정치학의 ‘정부 없는 거버넌스(governance without government)’와 정책학의 ‘협력적 관리’를 결합한 규범·제도·행위자 설계 프레임을 의미한다(Kelly & Flannery 2018). 따라서 본고는 JDZ를 단순한 자원 공동개발 구역이 아닌, 국제규범에 부합하는 ‘지속가능한 자원관리(sustainable resource management)’의 실험적 공간으로 재규정하고자 한다. 여기서 지속가능한 자원관리는 환경적 지속가능성, 경제적 효율성, 사회적 형평성을 균형적으로 고려하고 이를 제도·정책 체계에 내재화하는 통합적 접근을 지칭한다.2025년 6월 22일 협정 이행 분기점을 지난 지금, JDZ는 ‘개발’의 프레임을 넘어 지정학적 위기 관리와 거버넌스 전환의 실증 플랫폼으로 부상하고 있다. 주목할 것은 JDZ의 존속문제를 둘러싼 한일 양국의 협상 전략이 뚜렷이 엇갈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본은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절차적 통제와 단계적 협상 관리를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이른바 ‘지연 전략(delay strategy)’을 구사하는 경향을 보인다.3) 반면, 한국은 국제법적 정당성과 자원 주권 확보를 중시하는 입장에서, 현 체제를 연장하여 협정의 지속을 모색하는 일종의 ‘눈치보기 전략(wait-and-see strategy)’을 취하고 있다.4)이러한 전략적 불일치는 JDZ를 단순한 해저 자원개발의 장이 아니라, 협상 지형과 제도적 규범의 충돌이 교차하는 지정학적 접점으로 기능하게 만든다. 따라서 본고는 협정 종료 가능성을 둘러싼 불확실성의 국면에서 JDZ를 재구성할 수 있는 제도적·정책적 대안을 탐색하고, 이를 통해 한일 양국이 협력과 갈등 억제를 동시에 모색할 수 있는 공생적 해양 거버넌스의 구축 가능성을 규명하고자 한다.  JDZ 거버넌스의 재설계는 단순히 기존 개발 성과를 보완하는 차원을 넘어, 법적·시간적 제약과 제도적 공백에서 비롯되는 잠재적 리스크를 체계적으로 흡수하고, 더 나아가 한일 간 외교적 긴장을 구조적 수준에서 완화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자 전략적인 제도적 선택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지속가능한 자원관리의 관점에서 볼 때, JDZ는 기후위기 대응, 해양생태계 보전, 국제규범 이행이라는 복합‧다층 과제를 동시 해결해야 하는 국면에 직면해 있다. 이와 맞물려 국제사회가 2030년까지 전 세계 해양의 30% 보호(‘30 by 30’)를 채택함에 따라(Convention on Biological Diversity 2022), JDZ에 해양보호구역(MPA: Marine Protected Area)을 적용하는 방안은 개발 중심 거버넌스를 지속가능 관리체제로 전환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한일 양국은 유엔해양법협약(UNCLOS), 생물다양성협약(CBD),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쿤밍–몬트리올 글로벌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GBF) 등 국제레짐에 부합하도록 MPA를 제도화 해 왔으나, 제도 경로와 설계 논리는 상이하다. 일본은 2000년대 이후 해양기본계획과 해양정책 본부를 축으로 국가전략 차원의 MPA를 추진하며 해양산업 육성과 병행하는 발전주의적 성격을 강화했다. 한국은 「해양생태계의 보전 및 관리에 관한 법률」(2007)로 MPA를 확립했으나, 연안 습지·어촌계 중심의 분절적 관리와 중앙–지방–지역사회 간 거버넌스 정합성 부족이라는 한계를 안고 있다. 이러한 차이는 초국경 해역인 JDZ에서 MPA 기반 공동 거버넌스 모델을 설계할 때 필수적인 비교 준거가 되며, 상호보완적 요소를 교차 학습하여 제도 설계에 내재화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하면 JDZ 거버넌스의 전환은 개발과 보전의 균형을 제도화함으로써 외교적 갈등의 구조적 완화와 국제규범 준수의 동시 달성을 가능케 하는 지속가능한 해양 거버넌스로의 이행을 의미한다. JDZ의 지정학적 위기관리 JDZ는 1974년 체결된 협정에 따라 형성된 제도적 장치로, 표면적으로는 해저 자원의 공동 탐사와 개발을 목적으로 하였으나 실제로는 지난 반세기 동안 ‘잠정협정(provisional agreement)’이라는 특수한 지위로 지정학적 위기관리의 기능을 수행해 왔다.5) 한일 양국은 대륙붕 경계획정에서 근본적인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한 채, 한국은 ‘자연적 연장(natural prolongation)’, 일본은 ‘중간선(median line)’ 원칙을 주장하며 대립해왔다. 이와 같은 구조적 갈등 속에서 JDZ는 개발 성과를 내지 못했지만, 동시에 군사적 충돌이나 외교적 파국을 방지하는 완충 장치로 작용하였다. 다시 말해, JDZ는 미완의 자원개발 체제가 아니라 갈등을 제도적으로 지연시키며 관리하는 위기관리 플랫폼으로 기능해온 것이다.이러한 위기관리 기능은 세 가지 축으로 설명된다. 첫째는 절차화이다. 이 개념은 갈등 상황이 돌발적으로 확산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사전에 마련된 제도적 절차를 의미한다. JDZ 협정은 ‘합의 없는 단독행위 금지’라는 원칙을 명시하여, 일방적 개발이나 군사적 대응을 구조적으로 차단하였다. 또한 한일공동위원회의 정례적 운영을 통해 위기 발생 시 협의 절차를 제도화하였으며, 이는 국제 분쟁 관리에서 강조되는 ‘확전 억제 장치’의 전형적 사례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절차적 장치는 자원개발의 성과와 무관하게 양국 간 갈등이 폭발적으로 증폭되는 것을 억제하는 중요한 장벽으로 작용하였다.둘째는 제도적 완충이다. 이 개념은 개발 지연과 같은 비효율적 결과가 오히려 갈등의 격화를 억제하는 기능을 수행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실제로 상업적 탐사와 개발이 지연된 것은 단기적으로 경제적 손실을 초래하였으나, 이는 양국이 해양경계획정 문제를 둘러싸고 군사적 대치나 외교적 파국으로 나아가는 것을 방지하는 비용으로 기능하였다. 다시 말해, JDZ의 ‘개발실패’는 정치적 안정성의 유지라는 전략적 성공으로 전환되었다. 국제정치학적으로 볼 때, 이는갈등 억제를 위해 ‘비효율적 제도’가 일정한 역할을 이행할 수 있다는 역설을 보여준다.셋째는 신뢰 구축이다. 이 개념은 JDZ가 실질적 개발 성과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양국 간 최소한의 소통과 협력의 통로로 기능하였다는 점에서 확인된다. 협정의 존재 자체가 갈등을 관리하는 제도적 구속으로 작동하였고, 이는 한일관계가 악화된 시기에도 대륙붕 문제에서 군사적 충돌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심리적 안전망을 제공하였다. JDZ는 따라서 ‘부정적 평화(negative peace)’를 넘어, 장기적 관계 관리 속에서 ‘제한적 신뢰(restricted trust)’를 유지하는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JDZ는 국제 해양 분쟁 관리에서 협력적 억제와 제도적 신뢰 구축을 결합한 복합적 모델로 평가될 수 있다.다만, 이러한 위기관리는 소극적 안정 유지에 머물렀다는 한계를 가진다. 최근 중국의 해양팽창과 미·일의 인도-태평양 전략(FOIP: Free and Open Indo-Pacific) 구도 속에서 JDZ의 안정성은 외생 변수에 취약해졌고, 2028년 6월 22일의 협정 만료의 도래는 제도 공백 위험을 노출하고 있다. 따라서 JDZ는 양자 협력의 범위를 넘어 다자적 위기관리 틀, 그리고 기후·환경 의제와 연계된 지속가능 거버넌스로의 전환이 요구된다. 이런 맥락에서 JDZ는 “실패한 개발협정”이 아니라 “성공적 위기관리 제도”로 재평가될 수 있으며, 동시에 제도적 업그레이드가 필요한 시점에 놓여 있다.다시 말하면, JDZ를 둘러싼 현실은 세력 균형의 관점에서 ‘전략적 완충지대’이자, 복합상호의존론의 관점에서 ‘다층적 거버넌스 실험장’으로 동시에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중적 성격은 동시에 한계를 내포한다. 단순 개발협력 프레임은 ‘자원 접근권–해양안보–국제규범 준수’라는 삼중 과제(triple challenges)를 동시에 충족하기 어렵고, 기존 제도 틀은 특히 기후위기, 국제규범 진화, FOIP 구도와 중국의 해양전략 등과 같은 외부 환경 변화에 충분히 대응하지 못한다. 따라서 JDZ의 안정성을 보장하고 제도적 정당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개발과 보전 이분법을 넘어선 공생적 해양 거버넌스로의 전환이 불가피하다. 이는 갈등 억제 기능에 머물던 기존 제도를 환경적 지속가능성, 경제적 효율성, 사회적 형평성을 균형적으로 고려하는 규범·정책적 틀로 업그레이드하는 과정이며, 동시에 동북아 해양질서의 안정성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정책적 해법으로 기능할 것이다. 기후위기 시대의 JDZ 거버넌스 전환 JDZ 거버넌스의 제도적 전환은 국제규범의 진화와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구조적 압력 속에서 구체화되고 있다. JDZ와 같이 법적 권원, 자원 이익, 환경적 가치가 중첩되는 초국경 해역에서는 단일 국가의 규제나 일방적 개발만으로는 복합적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따라서 공생적 해양거버넌스 접근은 다층적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지속가능한 관리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필수적 제도·정책적 대안으로 기능한다. 이러한 거버넌스 전환의 동인은 국제규범적, 환경적, 정치경제적차원에서 상호작용하고 있다.국제규범적 기반의 심화: 1982년 채택된 유엔해양법협약(UNCLOS)은 연안국에게 자원개발권리를 인정하는 동시에 해양환경 보호 의무를 명시함으로써 개발과 보전의 균형을 제도화하였다.6) UNCLOS 제61조는 EEZ 내 생물자원의 남획 방지와 보존 의무를, 제192조는 모든 국가의 일반적 해양환경 보호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이는 법적 권원과 자원 이익이 중첩되는 JDZ에서 양국이 공동 관리 책임을 이행해야 함을 명시하는 규범적 근거가 된다. 이어 1992년 생물다양성협약(CBD)은 해양과 연안을 포함한 생물다양성의 보전과 지속가능한 이용을 국제적 책무로 확립하였다.7) 특히 2010년 나고야 총회에서 채택된 아이치 목표(Aichi Targets)는 2020년까지 전 세계 해양의 10%를 보호구역으로 지정할 것을 권고함으로써, JDZ와 같은 초국경 해역에서도 보전 중심의 공동관리 필요성을 강화하였다. 2015년 채택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는 해양자원의 보전과 지속가능한 이용을 글로벌 아젠다의 핵심으로 위치시켰다.8) 특히 목표 14(Life below Water)는 해양보호구역 확대를 명시하고, 이를 기후변화 대응(SDG13)·식량안보(SDG2) 등과 연계하여 해양 거버넌스를 지속가능발전 전략의 핵심 축으로 통합하였다.마지막으로 2022년 쿤밍–몬트리올 글로벌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GBF)는 ‘30 by 30’ 목표를 통해 2030년까지 전 세계 해양의 최소 30%를 보호구역으로 지정할 것을 합의하였다.9) 이는 기존의 권고적 목표를 넘어선 강화된 규범적 합의로, 향후 JDZ를 포함한 초국경 협력 구역에도 직접적 제도적 압력을 가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형성하였다. 이처럼 UNCLOS10), CBD11), SDGs12), GBF13) 등 국제규범은 해양 자원의 개발과 보전을 조화시키는 원칙을 제도적으로 확립해왔으며, JDZ 거버넌스의 제도적 전환은 이러한 규범적 진화를 내재화하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JDZ는 단순한 자원개발 구역이 아니라 국제규범의 실천적 적용 공간으로 기능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한일 양국은 국제규범 준수국으로서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동북아 해양환경 거버넌스의 선도적 협력 모델을 구축할 잠재력을 지닌다. 기후위기와 해양생태계 변화에 따른 전환 압력: 오늘날 JDZ 거버넌스 전환을 요구하는 가장 큰 구조적 동인은 기후위기의 심화와 탄소중립 이행 압력이다. 종래의 개발 중심 모델로는 탄소배출 감축과 블루카본 보전이라는 국제적 책무를 충족하기 어렵다. JDZ는 천연가스 및 재생 에너지 산업의 잠재 매장지이자, 이산화탄소 해양지중저장(CCS) 공간으로도 활용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14) 이러한 활용은 해양생태계의 회복력(resilience)과 자원 보전능력(capacity)을 강화해 장기적 생태서비스의 안정적 제공을 가능케 하지만, 반대로 무분별한 탐사·개발은 해저 생태계의 비가역적 손상을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남획 방지, 생태계 복원, 블루카본 보전, 기후충격 완화 등 환경적 지속가능성은 JDZ 거버넌스의 핵심 조건이며, 이는 이미 CBD·SDGs·GBF 등 국제규범을 통해 제도화되어 있다.또한 해양환경 악화와 생태계 위기는 JDZ를 단순한 자원개발 협정으로 유지하기 어려운 근본적 한계를 드러낸다. 해양자원은 유한하고 변동성이 높아 시장 논리만으로 최적의 배분을 보장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JDZ와 같은 공동개발 구역에서는 협력적 비용 분담, 공정한 이익 공유, 공동 관리 체제를 제도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나아가 해양재생에너지, 생태관광, 블루 이코노미 등 다원적 활용을 통해 경제적 지속가능성과 환경보전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기반이 요구된다.국제정치적 변화와 형평성의 제도화: 한편 국제규범의 진화와 동북아 해양안보 환경의 변화 역시 JDZ 거버넌스 전환의 중요한 외생적 요인이다. UNCLOS를 포함한 해양법 체제의 정착과 함께 중국 등 제3국의 전략적 행보는 한일 간 JDZ 협력을 다자적 규범질서와의 정합성 속에서 재구성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양자 자원협력을 넘어, 동북아 해양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과제로 작용한다. 동시에 JDZ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형평성(equity)의 가치가 제도적으로 내재화되어야 한다. 형평성은 국가 간 이익 배분의 공정성뿐 아니라 이해관계자 간 협력, 세대 간 정의를 포함하는 다층적 개념이다. 자원개발 이익이 특정 국가나 대기업에 집중될 경우 사회적 갈등이 심화될 수 있으므로, 공생적 거버넌스는 지역 어민 공동체, 지방정부, 시민사회의 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이러한 포용적 설계는 미래 세대가 동일한 자원을 향유할 수 있도록 하는 지속가능성의 전제이자, 국제사회가 강조하는 규범적 가치이기도 하다.결국 JDZ의 거버넌스 전환은 기후위기 대응–환경 보전–사회적 형평성–국제규범 정합성을 통합적으로 달성하려는 제도적 혁신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는 JDZ를 단순한 ‘개발지연의 사례’가 아닌, 지속가능성과 공생의 원리를 구현하는 해양 거버넌스 실험공간으로 재정의하는 실천적 경로라 할 수 있다. 한일 공생을 향한 JDZ의 제도적 전환 JDZ는 그동안 자원개발 협력의 제도적 장치로 출발했으나, 개발 지연과 제도적 한계 속에서 점차 본래의 기능을 상실해 왔다. 그러나 최근 기후위기 대응과 지속가능한 자원관리라는 국제적 흐름은 JDZ를 단순한 자원개발 구역이 아니라, 환경보전과 공생적 거버넌스의 실험장으로 재구성할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특히 해양보호구역(MPA) 정책은 개발과 보전을 조화시키는 제도적 장치로서 각국에서 확산되고 있으며, 이를 JDZ에 접목할 경우 갈등 관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공동의 자원 보전과 생태계 회복을 기반으로 한 한일협력의 새로운 모델을 구상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JDZ를 MPA로 전환할 경우 어떠한 제도적 가능성과 협력적 함의를 지닐 수 있는지를 고찰한다. 이러한 논의는 JDZ를 단순한 과거의 공동개발 틀에서 벗어나, 한일 공생과 동북아 해양기후 거버넌스의 제도적 전환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경로를 탐색하는 데 의의를 가진다.JDZ를 MPA로 재규정하려는 시도는 기존의 개발 중심 거버넌스를 탈피해, ‘보전과 이용’의 균형을 제도화하려는 전환을 의미한다. 1974년 체결된 한일대륙붕공동개발협정은 해저 자원의 탐사‧개발 촉진과 자원 배분·이익 공유에 초점을 두었으나, 기후위기의 심화, 국제규범의 진화, 그리고 협정 만료라는 시간적 제약은 JDZ를 더 이상 단순 개발구역으로 머물게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에 따라 JDZ의 제도 설계는 현 체계를 보완·재설계(re-design)하여 국제규범과의 정합성을 갖춘 지속가능 공동관리 체제로 이행하는 과정으로 이해되어야 하며, 이는 (1) 개발 권리와 환경 의무의 동시 충족, (2) 분쟁 억지와 협력 촉진의 제도적 병행, (3) 다층 행위자 참여와 투명성‧책임성의 규범화를 수반한다. 구체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정치적 함의를 내포한다.첫째, 개념적 전환의 차원에서 JDZ는 단순한 자원 공동개발 구역을 넘어, 기후위기 대응과 해양생태계 보전이라는 국제사회의 규범적 요구를 수용하는 초국경적 관리 구역으로 재규정될 필요가 있다. 이는 JDZ를 단순한 “해저자원 개발구역”에서 “지속가능한 해저 자원관리 구역”으로 전환함으로써, 한일 협력 패러다임 자체를 근본적으로 재구성하는 정치적 함의를 지닌다. 나아가 JDZ 제도 전환의 핵심적 근거는 국제규범적 기준에 있다. UNCLOS는 연안국의 자원개발 권리를 인정함과 동시에 해양환경 보전 의무를 병행하도록 규정함으로써, 개발과 보전의 균형을 국제법적으로 제도화하였다. CBD는 생물다양성 보전과 지속가능 이용을 국제적 책무로 확립하며, 국가 간 협력의 틀을 강화하였다. 더불어 SDGs와 GBF는 해양보호구역(MPA) 확대를 글로벌 목표로 제시하고, 그 이행을 통해 국제사회 전반에서 보전–이용 균형을 달성할 것을 촉구하였다. 이러한 규범들은 단순히 국가 단위의 정책 목표에 그치지 않고, JDZ와 같은 초국경적 협력구역에도 직접적 압력을 가하는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둘째, 한일 양국의 MPA 정책 비교는 JDZ 거버넌스의 제도적 설계 가능성을 탐색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분석 기준을 제공한다. 일본은 2000년대 이후 중앙정부 주도의 해양기본계획(海洋基本計画)과 해양정책본부의 조정을 통해 MPA 정책을 국가전략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확장해 왔다.15) 즉, 해양생태계 보전과 더불어 해양산업 육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정책적 성향이 제도 설계 전반에 반영되었다. 반면 한국은 2007년 제정된 「해양생태계의 보전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을 근거로 MPA 제도를 발전시켜 왔으나, 주로 연안 습지·어촌계를 중심으로 한 지역적·분절적 관리 체계에 의존해 왔으며, 중앙정부·지방정부·지역사회의 거버넌스 정합성 부족이라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이러한 상이한 제도 경로는 JDZ와 같은 초국경적 해역에서 공동관리 체계를 구상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정치적·정책적 요인으로 작용한다. 즉, 일본의 중앙집권적·발전주의적 관리 모델과 한국의 지역 분권적·분절적 관리 모델 간의 제도적 접합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는 JDZ 거버넌스 전환의 핵심 쟁점이라 할 수 있다.더 나아가 JDZ에 MPA 제도를 적용할 가능성은 환경적·경제적·사회적 차원에서 다층적으로 검토될 필요가 있다. 환경적 측면에서는 해양생태계의 회복력과 블루카본(blue carbon) 자원보존이 핵심 과제로 부상하며, 경제적 측면에서는 어족 자원의 회복, 지속가능 어업의 기반 강화, 그리고 해양재생에너지 활용과 같은 신산업 기회의 창출이 중요한 과제가 된다. 사회적 측면에서는 지역사회 참여, 세대 간 정의의 구현, 그리고 국가 간 형평성 제고가 요구된다. 따라서 JDZ의 MPA화는 단순히 자원보전을 위한 제도 설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개발과 보전을 동시에 달성하기 위한 통합적 관리 모델을 구축하는 제도적 실험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는 한일 양국의 정책적 차이를 조정하고 국제규범적 압력을 내재화함으로써, JDZ 거버넌스를 공생적 해양 거버넌스 모델로 전환시키는 중요한 정치적·학술적 의미를 갖는다.셋째, JDZ를 MPA로 재규정하는 시도는 불가피하게 다층적 제도적·정책적 과제를 수반한다. 무엇보다도 협정 만료 이후 새로운 법적·제도적 틀을 마련하는 것이 선결 과제이며, 이는 단순한 협정 갱신을 넘어선 재설계적 접근을 요구한다. 특히 JDZ 거버넌스가 국제사회에서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UNCLOS, CBD, SDGs, GBF 등 국제규범과의 정합성을 보장하는 것이 핵심적 조건으로 작동한다. 이러한 국제규범적 정합성은 JDZ의 제도적 전환이 단순히 양자 간 협력 차원을 넘어, 글로벌 규범 체제의 실천적 적용 공간으로 기능하게 하는 근거가 된다.정책적 차원에서도 복합적 과제가 존재한다. ①기존의 개발 중심 구조를 보완하여 공동관리 체제의 재조정이 필요하다. 이는 단순한 이익 배분의 문제를 넘어, 해저 자원 보전과 이용의 균형을 제도화하는 방향으로 협력구조를 재편하는 과정을 포함한다. ②JDZ를 둘러싼 정책 형성과 집행 과정에는 중앙 정부뿐만 아니라 지방정부, 지역사회, 어업인 집단, 환경 NGO, 학계 등 다양한 행위자가 얽혀 있으므로, 이해관계자 네트워크를 확대하고 다층적 참여 메커니즘을 구축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③공동관리의 정당성과 지속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투명성, 책임성, 절차적 정당성을 제도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새로운 거버넌스 메커니즘의 설계가 요구된다. 이러한 요구는 곧 JDZ의 제도 전환이 단순한 보호구역 지정이나 기존 협정의 부분적 수정에 머무르지 않고, 개발 중심 협력구조에서 공생적 해양 거버넌스로의 이행이라는 제도적 혁신이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결론본고는 JDZ를 ‘개발 성과의 미흡’이라는 협소한 평가 틀을 넘어, 지난 반세기 동안 한·일간 분쟁의 확전을 억제해 온 지정학적 위기관리 메커니즘으로 재평가하였다. 합의 없는 단독행위 금지, 공동위원회 운영, 잠정협정의 지속과 같은 제도적 장치는 자원개발의 실질적 성과가 부족했음에도 군사‧외교적 충돌을 억제하는 완충 기능을 수행했다. 동시에 의사결정의 경직성, 개발의 지연, 잠정성의 고착이라는 개발 중심 거버넌스의 구조적 한계도 분명히 드러났다. 이처럼 JDZ는 안정 유지의 성과와 제도적 비효율이 교차하는 이중적 성격을 지닌 제도임이 실증적으로 확인되었다.이러한 평가를 토대로 본고는 JDZ의 향후 지향점을 ‘공생적 해양 거버넌스’로 제안하였다. 이는 개발과 보전의 이분법을 넘어 UNCLOS·CBD·SDGs·GBF 등 국제규범을 외생적 제약이 아닌 내생적 설계 원리로 통합하고, 국가정부–지방정부–어업공동체–기업–NGO 등 다층 행위자의 참여를 제도화하는 접근이다. 한국(중앙정부 주도·기후연계형)과 일본(지역공동관리·MSP/GX 결합)을 통한 JDZ의 MPA 전환은 에너지 안보, 환경보존, 외교협력을 통합하는 다층적 거버넌스로의 혁신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JDZ의 MPA화는 단순 보호구역 지정이 아니라 보전과 이용의 균형과 위기관리 업그레이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실천적 경로로 평가된다.정책적 차원에서, 첫째, 2028년 협정 만료를 분기점으로 잠정협정의 핵심 규범(단독행위 금지·분쟁해결절차)을 계승하면서 생태계기반관리(EBM), 공동 모니터링·데이터 공유, 공동 MPA 설치 근거를 포함하는 법·제도 재설계가 필요하다. 둘째, ‘한일공동해양관리청(가칭)’과 이해관계자협의회(어민·지자체·기업·NGO)를 법정화하여 투명성과 절차적 정당성을 강화해야 한다. 셋째, 핵심 서식지–완충–다목적 이용의 구역화(zoning)를 통해 블루카본 복원과 해상풍력을 해양공간계획(MSP)으로 조정하고, 비용·이익 공유 및 자연 자본 회계·탄소크레딧 등 공정한 분배 메커니즘을 마련해야 한다. 넷째, 과학조사·환경영향평가의 표준화와 위기 시 연락체계를 기반으로 점진적 다자화(중국 등)를 추진하여 지역 안정성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  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기획자: 강영훈 제주평화연구원 원장, 편집 : 제주평화연구원 이혜진 연구원박창건 (국민대학교 일본학과 부교수/국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해양전략연구센터(KJMC) 센터장) 경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후 일본 히로시마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영국 셰필드대학교에서 국제정치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국민대학교 일본학과 부교수로 재직 중이며, 국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해양전략연구센터장을 역임하였다. 학회 활동으로는 한국국제정치학회 이사, 한국외교사학회 총무이사, 현대일본학회 부회장을 역임하며 학술 공동체 내에서 연구·행정·학술 교류를 두루 수행해 왔다. 연구 분야는 일본 정치경제, 동아시아 국제관계, 해양거버넌스, 경제안보 및 에너지·기후 정책 관련된 연구와 강의를 하고 있다. 대표 연구로는 「한일대륙붕공동개발협정의 이행 및 지속 방안: 양면게임 이론으로 분석한 한국의 대(對)일 협상 전략」(『동서연구』, 2024), 「Post-2028년을 대비한 일본의 대(對)한국 협상 외교: 한일공동개발구역(JDZ)에서의 협상력 강화를 위한 지연전략」(『국가안보와 전략』, 2024), 「지경학의 연결성으로서 한일대륙붕공동개발협정: Post-2028년을 대비하는 한일 양국의 입장과 중국 변수」(『국제정치논총』, 2022) 등이 있으며, 이 외에도 다수의 편저 및 공저를 통해 일본연구와 동아시아 국제정치 분야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 [JPI PeaceNet] 한미동맹 현대화: 포괄적·역동적·호혜적 동맹 구현을 위한 청사진
    저자
    손한별 (국방대학교 전략학부)
    발간호
    2025-9
    [기획자 註]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은 한국은 물론, EU와 일본 등 주요 동맹국들에 비용 및 부담 분담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한미동맹이 한국의 외교안보 전략의 근간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으나, 동맹에 관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요구에 대응하고 나아가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한국의 국익을 수호하기 위해서는 한미동맹을 미래지향적으로 지속 발전시켜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고는 한미동맹 현대화를 위한 위기와 기회요인들을 살펴보고 정책적 제언을 제시한다. [기획: 강영훈 원장(yhkang@jpi.or.kr)] 초록한미동맹 현대화는 급변하는 안보환경 속에서 더이상 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되었다. 미중 전략 경쟁의 장기화, 북·중·러 협력 심화, 신흥기술 경쟁의 가속화 속에서 동맹은 한반도 방위를 넘어 지역·글로벌 동맹으로 확장될 것을 요구받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에게 분명한 부담을 초래하지만 동시에 전략적 기회를 제공한다.이 글은 포괄성·역동성·호혜성이라는 동맹 아키텍처를 중심으로, 정책·전략의 정합, 상호운용성·역할 확대, 제도·규범 혁신이라는 3개 기조 아래 9개 핵심 과제를 분석한다. 이를 통해 동맹 현대화가 단순히 미국 요구의 수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이 선택적 기여와 협력을 통해 동맹 구조를 재설계하고 전략적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기회 관리’의 과정임을 강조한다.동맹 현대화의 성공은 위협인식 공유, 확장억제 강화, 전작권 전환, 주한미군 태세 조정, 다자안보협력 등 복합적 과제의 균형적 접근을 필요로 한다. 궁극적으로 동맹 현대화는 위험요인과 기회요인이 공존하며, 이를 전략적으로 활용할 때 한국의 안보와 외교적 공간은 오히려 확대될 것이다.문제제기 북한 위협의 질적·양적 고도화와 북·중·러의 군사협력,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미·중 전략경쟁, 글로벌 공급망 재편 등 복합위협 환경은 동맹의 위협인식 범위와 역할·비용 분담 구조 전반에 대한 재검토를 불가피하게 만들었다. 특히 2025년 1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출범과 함께 한미동맹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미국은 “동맹 현대화(Alliance Modernization)”를 명분으로 한국에 군사·비군사 분야에서의 역할 확대와 비용 분담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1) 한미 정상회담과 한미안보협의회의(SCM)에서 논의된 핵추진 잠수함, 전작권 전환 일정, 주한미군 역할 확대와 같은 민감한 현안들은 이러한 동맹 현대화의 압력을 여실히 보여준다. 문제는 이 같은 미국의 “현대화” 요구가 그 명분과 달리 한국의 전략·정치·재정적 한계를 시험하고 동맹 운영의 균형을 위태롭게 할 소지가 있다는 점이다.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증액, 역외분쟁에 대한 개입 요구, 글로벌 공급망 재편 참여 등은 모두 상당한 비용과 리스크를 수반하여 한국의 정치·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 또한 한국의 역량이나 우선순위를 초과하는 과도한 역할 확대는 동맹 내 비대칭성을 확대하고 국내 여론의 악화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 실제로 트럼프 행정부는 GDP 대비 5% 이상의 국방비 지출을 동맹 기여의 기준선으로 제시하며, 그에 못 미치는 동맹국에는 방위공약 축소를 언급하는 거래적 접근을 보였다.한편 동맹 현대화는 한국에게 전략적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새로운 동맹의 틀 속에서 한국은 전략적 자율성과 역내외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진행된 두 차례 한미 정상회담은 한미동맹의 경제·기술 협력을 강화하고, 한국이 오랫동안 희망해 온 핵심 현안에서 돌파구를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다. 실제로 10월 29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은 한국의 핵추진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핵연료 공급 협력을 약속하였다.2) 이는 호혜적 동맹으로 가기 위한 획기적인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동맹 현대화 아키텍처: 포괄성·역동성·호혜성동맹 현대화의 전략적 방향성은 분명했다. 한미 양국은 2003년부터 “포괄적이고 호혜적인 동맹”으로 비전을 설정해왔다. 2006년과 2007년 SCM에서는 “미래지향적이며 포괄적‧역동적‧호혜적 동맹” 관계가 제시되었다. 이후에도 2008년 “21세기 전략동맹”, 2009년 “포괄적 전략동맹”, 2013년 “미래지향적인 동맹”을 제시한 바 있다. 또 2019년과 2023년 「미래 한미동맹 국방비전」을 발표하면서 그 방향성을 재확인했다.3) 동맹 현대화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한미동맹이 추구해온 방향은 포괄성, 역동성, 호혜성의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4) 첫째, 포괄성(Comprehensiveness)은 동맹의 지리적, 기능적 대상을 한반도 방위에서 인도·태평양, 나아가 글로벌 안보 이슈까지 확장하는 것이다. 미국은 한국이 대만해협, 남중국해, 사이버·우주 등 광역 안보영역에서 선택적 기여를 확대하길 기대한다. 이는 한국에 부담을 주지만, 전략적 자율성 확보와 다자 연계 강화를 위한 기회이기도 하다. 포괄성은 한미동맹이 공동 위협인식을 통해 정책과 전략의 정합성을 확보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다.둘째, 역동성(Dynamism)은 변화하는 위협과 기술 환경에 신속히 적응하는 능력을 갖추어 상호 역할기대를 충족하려는 노력을 의미한다.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 북·중·러 협력 강화, 새로운 전장(우주·사이버)의 부상 속에서 한·미간 연합지휘체계 정비, 연합훈련 강화, 기술동맹심화 등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한국군의 전략기획·C4ISR 능력을 실질적으로 끌어올려 연합군사태세의 유연성과 상호운용성을 더욱 강화하는 것을 의미한다.셋째, 호혜성(Reciprocity)은 동맹 현대화가 한국의 일방적 비용 확대가 아니라 상호 이익의 교환 과정이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방위비 분담 인상 가능성, 주한미군 인프라 비용, 역외 기여확대 등 부담이 증가하는 만큼, 한국은 이에 상응하는 확장억제 강화, 안정적 전작권 전환, 핵심 기술협력 보장 등을 확보해야 한다. 한미동맹의 제도와 규범 혁신을 통해 상호신뢰성을 높이고, 비대칭적인 동맹의 호혜적 성격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9개 과제 분석#1. 위협인식의 공유미국은 한미동맹이 북한 뿐만 아니라 중국·러시아 등 ‘수정주의 세력’에 대응하는 광역 억제체계로 진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올해 SCM 공동성명에서는 “북·중·러의 전략적 협력 심화가 역내 안정에 구조적 위험을 초래한다”고 지적하며, 양국이 대만해협 안정의 중요성을 재확인했다고 밝혔다.5) 이는 한미 양국의 위협인식이 중국을 포함한 광역 차원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 도전요인: 한국은 지정학적 제약과 경제적 대중 의존도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 역외 분쟁 개입은 중국의 경제·외교적 반발을 유발할 수 있으며, 대만해협 긴장 고조 시 한미동맹의 임무분산은 북핵 대비태세 약화를 초래할 수 있다. 또한 한국의 분쟁 개입은 국내 여론과 법적 절차(국회승인 등)와 충돌할 가능성도 크다.• 기회요인: 미국, 일본과의 정보·경보체계 연동한다면 북한 미사일 탐지·추적 능력을 강화할 수 있다. 또한 사이버·우주 등 신흥 위협 분야에서 미국의 기술·운용 노하우를 흡수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동맹의 전략적 접점을 넓힘으로써 한국의 외교적 공간과 전략적 자율성이 확대될 것이다.6)따라서 중국에 대한 미국의 위협인식에 대해 한국은 충분한 공감을 표시하면서도, 위협 계층별(북한, 역내, 글로벌) 기여 범위와 우선순위를 명문화하고, 역외 작전에 대해서는 ‘사전협의, 사전 동의’의 원칙을 확립해야 한다. 단계적인 역할 확대에 대해서도 군사력 및 자원 배분에 대한 계획을 마련하고, 중국의 보복 가능성에 대비한 다양한 대응책을 동맹 차원에서 준비해야 할 것이다.#2. 확장억제의 신뢰성 강화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에 따라 미국이 제공하는 확장억제의 신뢰성을 높이는 문제는 동맹 현대화의 핵심 과제가 되었다. 미국은 한국에 대해 재래식 전력 강화를 요구하면서도, 정작 미국 자신의 확장억제는 기존 수준을 유지하려는 경향을 보여왔다. 이번 SCM 공동성명에서 미국은 “모든 범주의 군사능력을 활용한 확장억제 제공”을 재확인하고, 한미 핵협의그룹(NCG)의 지속 운영과 정례 보고를 약속한 것은 다행스럽지만,7) 한국의 모든 불안을 해소하기는 어렵다.• 도전요인: 전략자산 전개 및 운용은 미국 정치·전략 우선순위에 따라 변동될 수 있고, 전술핵 재배치나 핵공유는 미국의 비확산 원칙과 안보 환경상 현실성이 낮다. 이러한 확장억제의 불확실성은 한국 내 독자 핵무장 여론을 자극해 동맹 내부 균열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기회요인: 최근 미국은 핵추진잠수함 협력, SLCM-N(Nuclear-armed Sea-Launched Cruise Missile) 재도입 검토. 전략폭격기 순환 전개 확대를 포함한 ‘지역 확장억제 패키지’를 검토하고 있다.8) 또한 한미일 3자 협력을 통해 공동경보체계와 미사일 추적훈련을 강화함으로써 확장억제의 신뢰성을 높이고 있다. 이러한 지역의 통합태세 강화는 북핵 억제 뿐만 아니라 재래식 분쟁 예방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확장억제는 북핵 억제를 위한 한반도의 전략적 구조를 강화하는 동시에, 미국 안보공약의 실효성을 시험하는 사안이다. 따라서 한국은 역내 핵균형을 강조하면서 다양한 옵션을 활용해 확장 억제를 강화하고, 향후 전술핵 배치 등을 조건부 협상 카드로 유지해야 한다.9) 또한 NCG에서 합의된 의제들 외에도, 우주 기반 감시정찰, 다층 미사일방어 등 한국군의 역량을 발전시킬 수 있는 항목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할 것이다. #3. 비군사 안보협력 확대동맹 현대화의 또 다른 축인 경제안보, 기술안보 협력의 비중이 크게 증가했다는 점이 주목된다. 2025년 10월에는 양국이 기술동맹 MOU(Technology Prosperity Deal)까지 체결하여 전략 기술에서의 공조를 제도화했다. 이는 미국이 처한 전략환경 변화가 반영된 결과인데,10) 미국은 반도체, 배터리, 핵심광물, AI, 사이버·우주 등 민군 기술의 안보적 가치를 강조하며, 동맹국의 ‘전략 조정(align)’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은 미·중 기술경쟁의 최전선에 위치한 만큼 높은 기대와 부담을 동시에 안고 있다.• 도전요인: 미국의 대중 견제에 따라 공급망 재편, 대중국 수출통제 강화가 진행될 경우, 한국기업의 중국 시장 접근성이 제한되고 비용이 증가할 수 있다. AI, 양자, 우주 분야 협력은 지식재산권 문제와 기술흡수 능력의 불균형 등 제약을 동반한다. 아울러 국내법과 제도 개정의 부담도 있다,• 기회요인: 2023년 이후 미국은 ‘기술동맹’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며 한국을 핵심 파트너로 규정했다. 이는 단순히 산업 협력이 아니라 첨단 기술표준 설정, 공동 R&D, 국방·민간 연계 혁신 등 ‘전략 산업 생태계’를 함께 구축한다는 의미이다.11) 한국은 높은 기술력과 생산역량을 활용해 미·일과 함께 공급망 핵심축으로 부상할 수 있다. 한국은 비군사 협력에 대한 유연성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민·관·군 통합 거버넌스를 구축해 정책 일관성과 실행력을 확보해야 한다. 기술·산업 협력의 범위를 단계적, 선택적으로 설정해야 하는데, 전략적 가치와 파급효과가 큰 분야는 적극 협력하되, 경제적 손실 가능성이 큰 분야는 예외조항(safeguard)을 마련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4. 연합방위체계 간명화전시 작전통제권((OPCON) 전환은 동맹 현대화의 핵심 과제이자 한국군의 전략적 자율성 확대를 상징하는 사안이다. 1954년 합의의사록, 1978년 한미연합사령부 창설, 1994년 평시 작전통제권 전환에 이어 한미 연합방위체계를 재편하는 중대한 전환점이 될 것이다. 2014년 “조건부 전작권 전환(COTP)”과 2018년 합의된 ‘통합형 미래연합사령부’는 한국군 대장이 사령관을, 미군 대장이 부사령관을 맡는 구조로 설계되었다. 이는 미국의 핵심역량을 유지하면서도 한국군 주도권을 강화하기 위한 절충 모델이다.• 도전요인: 완전운용능력(FOC) 검증의 지연, 미측 정보·정찰자산 연계 문제, 연합 작전계획의 재정비 등 전환 조건은 아직 완전히 충족되지 않았다. 한국군의 C4ISR, 전략기획, 장거리 정밀타격 역량이 미군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전작권 전환 과정에서 지휘·통제속도와 효과성의 저하, 상호운용성 저해 등의 위험도 제기된다.• 기회요인: 전작권 전환은 한국군의 연합작전 기획능력 강화, 위기 시 책임체계 명확화, 국방개혁과 연계한 군구조 개편 등 도약의 기회를 제공한다. 미국도 2025년 SCM에서 “한국군의 재래식 전력 주도 능력을 지지한다”고 밝혀 전작권 전환 의지를 재확인한 바 있다.12) 전환과정이 수월하게 진행된다면 보다 간명한 연방방위체계 속에서 전략적 자율성과 상호운용성이 동시에 높아질 것을 기대할 수 있다.한국은 전작권 전환을 ‘시기·조건·신뢰’의 균형 속에서 추진해야 한다. 즉 △실질적인 FOC 평가, △연합지휘권한의 재정립, △장거리 타격, 정찰자산 등 핵심능력 확보, △미군 지원의무 제도화 등을 통해 안정적 전환을 구현해야 한다. 당연히 전작권 전환 이후의 전략기획, 정보분석 등 한국군의 지휘능력을 실질적으로 보강하고, 유사시 미군의 증원에 대한 공약과 정보를 요구해야 한다. #5. 주한미군 태세 최적화한미 정상회담과 SCM에서 미국은 주한미군의 역할을 “한반도 방위를 넘어 역내 안정 기여”로 규정했다. 이는 주한미군을 인도·태평양 분쟁 시 신속전개부대로 활용하는 ‘전략적 유연성’ 개념을 반영한 것이다. 또한 한미일 안보협력의 제도화는 주한미군의 임무가 다층화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일련의 주한미군 최적화(optimization)가 주한미군 규모의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지속적으로 제기된다.• 도전요인: 주한미군이 한반도 이외 지역에 전개될 경우 발생하는 대북 억제 공백 위험이 있다. 중국·러시아는 주한미군의 역내 작전 확대를 자신의 안보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해 한국에 대한 군사·외교적 압박을 강화할 가능성이 있다. 또한 주한미군 현대화에 따른 비용 증가가 한국 정부의 SMA 부담 확대와 연결될 수 있다. • 기회요인: 주한미군의 현대화, 통합운용은 한국군의 전력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 최신 미사일 방어 체계, 무인정찰기(MQ-9), 스텔스 플랫폼(F-35, B-21), 장거리 정찰·타격 자산의 순환전개는 한미동맹의 감시·타격 능력을 비약적으로 향상시킨다. 또한 주한미군의 지역 네트워크 화는 한국이 인도·태평양 안보 프레임의 ‘중심축’ 역할을 수행할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한국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대체전력 보장, 미군 진출입에 대한 사전협의, 지역 활동범위 규정 등의 원칙 하에 관리해야 한다.13) 또한 주한미군 인프라 현대화 과정에서 한국 방산기업의 참여를 확대하여 경제·기술적 이익도 확보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한반도와 지역 태세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전력배분의 원칙과 내용을 함께 기획하는 수준으로 발전해야 할 것이다. #6. 한국의 역할·비용 확대트럼프 2기의 미국은 동맹 기여의 핵심 기준으로 “GDP 대비 국방비 5%”, “방위비 대폭 증액”, “역외 기여 확대”를 제시해왔다.14) 이러한 배경에서 2025년 한미 협상은 무기 구매, 대미투자 패키지를 망라한 포괄적 협상으로 전개되었다. 금년 11월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에는 “한국이 국내법에 따라 국방비를 가급적 조속히 GDP 3.5%까지 증액할 것”이라는 계획이 담겼고, 또한 2030년까지 미 군사장비 250억 달러 구매와 주한미군 주둔 지원에 330억 달러 제공을 약속하여 방위비 분담에 대한 다년 계획을 공식화했다.15)• 도전요인: 이미 한국이 미군기지 이전, 기지운영, 군사시설 건설 등 다양한 방식으로 상당한 기여를 해오고 있는 상황에서, 방위비의 과도한 증액은 국내 여론과 재정구조에 큰 부담을 초래한다. 특히 국방비 증가가 교육·복지 등 사회적 우선순위와 충돌하는 문제, 미국이 요구 수위를 지속적으로 상향할 가능성, 역외 작전까지 비용을 분담하는 구조로 확대될 우려가 있다.• 기회요인: 비용 확대를 전략적 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다. 즉, 한국이 방위비 및 국방비 확대를 조건부로 수용하는 대신 △전작권 전환 이후 미측 지원 의무 명문화, △전략자산 상시 순환전개, △핵심 무기체계 공동개발, △한국 방산기업의 미국 시장 접근 확대 등을 교환할 수 있다. 실제로 미국은 최근 양국 정상회담에서 한국의 국방비 증액 계획을 환영하며, 핵추진잠수함 협력, 고위급 기술동맹 출범 등을 약속한 바 있다.결국 한국은 재정 부담 확대를 실질적 권한, 기술·억제력 강화로 전환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위해 다년 SMA 체제 도입, 비용 항목 세분화, 상호주의 기반의 ‘기여-보상 매트릭스’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전작권 전환과 연계한 핵심전력을 확보하고, 국방 연구개발과 방위산업 생태계 조성이라는 분명한 목표를 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 #7. 협의 메커니즘의 통합·효율화현재 한미는 한미안보협의회의(SCM), 한미군사위원회회의(MCM), 한미통합국방협의체(KIDD),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 핵협의그룹(NCG) 등 다층적 협의체를 운영하고 있으나,16) 위기상황에서 이들 채널이 중첩되거나 기능이 분절될 경우 의사결정이 지연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북한의 고도화된 도발 패턴, 북·중·러 군사협력 강화, 회색지대 전술 확대 등을 고려할 때, 기존 협의체의 관료적 구조만으로는 충분한 대응 속도와 통합성을 보장하기 어렵다.• 도전요인: 우선순위 설정에서 양국의 이해가 충돌할 수 있고, 협의체 자체가 관료화되어 신속성이 저하될 우려가 있다. 또한 정치·외교 의제가 군사적 판단을 지연시킬 위험이 있고, 이를 적대국들이 활용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있다. 긴급상황에서는 작전지휘 체계의 혼선이나 오해를 유발할 가능성도 크다.• 기회요인: 이들 협의체가 상시 운영되는 방향으로 강화된다면 정책·정보의 공유를 원활하게하며, 기능별로 정보공유와 위기대응의 속도를 높일 수 있다. 아울러 정치·군사·외교의 통합을 강화할 수 있고, 상호 신뢰와 연합작전의 질적 향상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따라서 한국은 상시 채널의 가동·종료 조건을 명확히 하되, 안보정책에서 시작하여 군사작전수준의 협의체로 발전시켜야 진정한 제도화가 완성된다. 이를 위해 한국은 의사결정 권한과 정보보호 규정을 제도화하여 자유로운 협의가 가능토록 해야 한다. 또한 기능적인 차원에서는 위기유형별, 수준별 전략워게임(국방부-합참-연합사-전략사)을 정례화, 최적화하여, 각 채널이 실행력있는 협의체로 기능하도록 인력·자원을 최적배분해야 한다.#8. 다자 안보네트워크 심화미국은 한미동맹을 미일동맹과 수평적으로 연결하여 ‘동북아 3자 안보체계’를 구축하는 전략을 추진 중이다. 2023년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 이후 한미일은 미사일 경보정보 실시간 공유, 3국 연합훈련 정례화, 공급망·신기술 협력의 제도화를 빠르게 진전시키고 있다. 이는 동맹 현대화의 지리적 범위를 한반도에서 인도·태평양 전역으로 확장하는 흐름이다.• 도전요인: 한국은 다자 구조 참여 시 연루(entrapment)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 대만해협 유사시 개입 압박, 중국·러시아의 경제·외교적 보복 가능성, 국내 국회 승인 및 여론 부담 등이 대표적이다. 반대로 한국의 역할이 상징적 수준에 머무를 위험도 고려해야 한다. • 기회요인: 한미일 3각 협력은 미사일 탐지·추적 능력과 대북 억제력 강화를 위해 가장 효과적이며, QUAD, AUKUS Pillar217) 참여는 기술·산업 협력 네트워크를 넓혀 한국의 전략적 입지를 크게 강화할 수 있다.18) 특히 첨단 방산·기술 협력으로 확대하면 한국의 국방 R&D, 방산 산업, 민군 융합 혁신에 실질적 이익을 가져올 것이다.한국의 다자 네트워크 참여는 필수적이지만, “선택적, 단계적, 이익 기반”의 원칙을 정립해야한다. 필수 영역(북핵 억제, 정보공유, 미사일 추적)은 적극 참여하되, 한반도 외부에 대한 군사 개입이나 경제적 피해가 큰 영역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이를 통해 연루 위험을 줄이면서도 동맹 현대화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 #9. 통합혁신과 기술협력4차 산업혁명 기술이 전쟁 양상을 변화시키는 가운데, 한미는 AI 기반 지휘통제통신, 무인 전력, 극초음속 탐지·요격, 우주감시 능력 등 ‘미래전력 분야’에서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2025년 정상회담에서도 기술동맹의 제도화가 강조되었고, 특히 국방 분야에서의 공동 R&D, 시험평가 협력, 첨단 플랫폼 통합 등이 진전되고 있다.• 도전요인: 기술협력에는 구조적 제약이 있는데, 미국은 핵심 기술을 쉽게 이전하지 않으려하고, 한국은 기술흡수, 지재권 관리, 산학연 협력 구조에서 아직 한계가 있다. 또한 다국 간 공동개발 시 보안, 데이터 공유·평가 절차가 상이한 경우 협력이 지연되거나 중단될 우려도있다.• 기회요인: 기술협력은 동맹 현대화를 실질적으로 완성하는 핵심 축이다. 한국은 미국과의 협력을 통해 미래전 핵심기술 확보의 속도를 단축할 수 있고, 이를 민간 산업, 우주경제, 방산 수출과 연계해 국가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미국 또한 한국의 기술력과 생산 능력을 활용해 중국과의 기술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한미동맹의 장기적, 전략적 발전을 위해서는 현재의 능력을 통합하는 통합억제(integrated deterrence)를 넘어, 미래의 기술과 능력을 통합하는 통합혁신(integrated innovation)이 핵심 기조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인력·예산 지원을 확대하고, 국방 R&D 결과가 민간 혁신으로 연결되도록 기술이전, 상용화 지원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19) 아울러 한미 간의 협력 초기부터 보안 인증, 데이터 표준화, 시험평가 절차를 공동 설계해 안정성과 상호운용성을 확보해야 한다. 위험과 기회를 함께 관리하는 동맹 현대화 전략 한미동맹은 지금 구조적 전환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동맹 현대화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며, 그 과정에서 한국은 도전과 기회를 동시에 관리해야 한다. 핵심은 “미국의 요구를 수동적으로 수용하는가, 아니면 능동적으로 동맹 구조를 재편하는가”에 달려 있다. 한국이 원하는 방향으로의 동맹 현대화 재설계를 위해서는 다음의 세 가지 전략적 접근이 요구된다.첫째, 조건부 수용과 상호이익 전략이다. 미국의 요구에 대해 단순 수용이나 거부가 아니라 조건부, 선별적 수용의 전략을 취해야 한다. 교환 조건을 정교하게 마련하여, 비용 증가를 안보적 이익으로 전환하는 것이 핵심이다. 또한 한국이 단순한 생산기지나 조립기지 역할에 머무르지 않고, 지식재산권, 기술이전, 공동표준 설정을 협상 테이블에서 요구해야 한다.둘째, 단계적, 계층적 동맹 운용 모델 구축이다. 한국은 한미동맹을 한반도-지역-글로벌의 3계층 구조로 재설정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에서는 북한 위협 대응에서 한국군의 주도권 강화, 확장억제의 작전·정책적 실효성 확보가 필요하다. 지역 차원에서는 정보 및 조기경보, 해양안보 중심의 기능적, 단계적 기여를 상호 제공한다. 글로벌 차원에서는 경제안보. 사이버·우주 등 비군사 영역에서 적극적 참여가 요구된다.셋째, 기술·산업 동맹을 미래 전략의 핵심으로 재설정해야 한다. 동맹 현대화의 지속성을 담보하는 요소는 군사력뿐만 아니라 기술·산업 생태계의 통합에 있다. AI 기반 지휘통제, 우주감시망, 무인·자율전력, 극초음속 대응체계 등은 한국의 독자능력만으로는 신속하게 개발하기 어려운 분야다. 미국과의 공동 연구개발, 시험평가, 표준화 작업이 이뤄지면 한국의 미래 억제력과 방산경쟁력을 크게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한미동맹 현대화는 단순한 군사협력의 조정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의 전략적 지위와 역할을 재설계하는 과정이며, 이 과정에서 한국은 비용·위험·기회가 혼재된 복합적 선택을 해야 한다. 한국은 미국의 요구를 구조적 기회로 전환해 △안정적인 전작권 전환, △기술동맹 실질화, △다자네트워크 강화, △미래전 대비 역량 강화 등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궁극적으로 한국에게 위기인 동시에 기회인 동맹 현대화를 어떻게 설계하고 활용하느냐가 한국의 새로운 안보환경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기획자: 강영훈 제주평화연구원 원장, 편집 : 제주평화연구원 이혜진 연구원손한별 (국방대학교 전략학부) 손한별 교수는 국방대학교 전략학부에서 전쟁론, 핵전략, 전략기획론 강의를 맡고 있으며, 국가안보문제연구소 연구기획실장 및 핵/WM대응연구센터장을 겸직하고 있다. 한미동맹, 확장억제, 군사전략기획 등에 대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합동참모본부 전략기획부(J5)에서 실무자로 근무하였고, 스웨덴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한국학연구소(GWIKS), 뒤스부르크-에센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IN-EAST)의 방문학자로 활동하였다. 서울대학교 독어교육학 학사와 정치학 석사 학위를, 국방대학교에서 군사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