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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래학의 논의를 통해 본 세계정부의 출현과 국제질서 전망
    저자
    이성우(제주평화연구원 분쟁해결연구부장)
    발간호
    2015-45
     최근 『유엔 미래보고서』와 함께 미래학을 포함한 여러 학문 분야에서 주를 이루는 논의는 ‘세상의 빠른 변화’와 그로 인한 사회적 파장이다. 고대부터 사람들은 항상 자신의 시대가 급속한 변화를 경험하고 있어 적응이 어렵다고 해 왔지만 현대로 올수록 과학기술뿐 아니라 사회의 변화에도 가속도가 붙는 것은 사실이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국내적 변화의 주요 주제는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경제, 사회, 그리고 정치 전반에 급격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국제적 변화로는 패권적 미국에 도전하는 중국의 부상으로 형성되는 새로운 국제질서, 산업화에 따른 온난화 및 기후변화와 같은 초국경적인 문제의 등장, 그리고 이에 따른 세계정부의 출현도 논의되고 있다. 총론의 차원에서 이러한 미래에 대한 설명은 설득력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용에 문제가 있다. 다시 말해서, 불안한 현재는 미래에 대한 전망을 더욱 필요하게 하는 한편, 그 절실한 만큼 미래에 대한 일관적이지 않은 진단을 촉발할 수 있다. 따라서 오진 및 잘못된 처방을 내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미래와 관련된 논의의 문제점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미래에 대한 전망이 엇갈린다. 다양한 미래예측은 기술의 발달로 사라지게 될, 그리고 새롭게 부상할 직업과 산업에 대한 설명과 함께 자원의 고갈로 경제체제가 붕괴할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을 제시하고 있다. 반면 경제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과 달리 과학기술 분야는 인간의 생명이 연장되고 장애가 없는 세상이 가능하게 될 것이라는 희망적인 전망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과학기술의 발달이 경제적인 풍요를 가능하게 할 것이라는 또 다른 전망은 경제체제의 붕괴라는 어두운 미래예측과 비교해 볼 때 일관성이 없다. 둘째, 정치 분야에 대한 미래의 전망 역시 국내정치적으로도 국제정치적으로도 일관된 설명이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 우선, 국내정치적으로는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불신이 확대되어 의회와 정당제도가 기능을 못하면서 대의민주주의가 위축되고 소셜네트워크를 이용한 주민참여제도와 같은 직접민주주의가 확대될 것이라는 예측이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올바른 정책결정을 위해 국회의원에게 좀 더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임기를 보장해 정치엘리트의 전문성에 기초한 집단지성을 활용하는 것이 미래의 정치제도로서 바람직할 것이라는 대안을 제시하기도 한다. 셋째, 국제정치에 대한 예측도 현실주의와 자유주의가 충돌하고 있다. 미래에는 국내정치와 국제정치가 접점을 이루면서 세계 각국의 국민들 사이에 민주주의에 대한 기대가 확대되어 세계정부의 출현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는 국제주의가 바람직한 대안으로 제시된다. 이 관점에서는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국제기구의 설립을 세계민주주의 실현의 구체적인 선결요건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와 같은 국제주의에 대한 신뢰는 국제정치에서 자유주의·제도주의의 점진적 진보를 전제로 한 설명이다. 이에 반해 중국의 미국 추월 가능성에 대한 논의는 세계적 차원의 국력 경쟁 과정에서 미국의 패권과 중국의 도전을 염두에 두고 있는 현실주의적 시각에서 전개되고 있다. 문제는 어떤 경로를 통해 세계정부가 출현하고 패권경쟁이 결정될지 등 과정에 대한 일관된 관점에서의 설명은 부족하고 최종 결과에 대한 예측만 나열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미래에 대한 논의가 일관성이 없으며 지나치게 다양하여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앞에서 제시한 대표적인 논의들을 정치학의 일관된 이론의 틀에 접목하여 국내정치의 변화에서부터 시작하여 미래의 국제질서를 논의하고자 한다. 첫째, 개인 삶의 질을 결정하는 기본 조건인 경제적 빈곤은 과학의 발달로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물론 자원의 고갈은 개인의 삶에 부정적인 요인이지만 과학기술의 발달이 인간의 생존과 삶의 질을 확보하는데 필요한 에너지, 재화, 그리고 용역 등의 공급을 용이하게 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전통적인 자원이 고갈되더라도 과학기술이 이를 대체할 새로운 자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미래의 정부가 선거를 통해 결정된다면, 과학기술을 시민의 삶의 질을 위해 효과적·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에 따라 국정의 책임자가 결정되어야 될 것이다. 낙관론일 수도 있겠지만 대중이 자신의 선호를 선거에 정확하게 반영할 수 있다면, 새로운 역량을 갖춘 정치체제가 출현하여 현재의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와는 다른 제도를 만들 것이다. 즉, 정의로운 분배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정치권력이 경제권력과 협조하여 국가제도를 운영할 것이다. 한편, 이러한 개인의 삶에 필요한 희소한 자원이 시장이 아닌 다른 형태의 제도를 통해서 배분이 이루어지는 새로운 역량을 갖춘 정치체제는 직접민주주의에서도 대의제민주주의에서도 가능하다. 셋째, 새로운 정치제제가 출현해도 국내정치에서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 그리고 국제관계에서는 국가이기주의가 행동의 원칙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으로 제시되는 것이 세계정부의 출현인데, 사실 이는 대안으로 보기 어렵다. 교통과 통신의 발달에 따라 자동적으로 세계정부가 출현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이기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이 출현해야 단일통화와 세계경찰에 기초한 세계정부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세계정부는 평화적 국제제도의 확보를 전제로 하는데 이는 한 국가가 경제적, 군사적, 환경적으로 다른 국가의 생존을 위협하면서 자신의 이익을 얻는 방식으로 국가의 발전을 추구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더 구체적으로, 세계정부는 국내정치적으로 시장에 기초한 경쟁적 분배에서 벗어나 과학과 기술의 힘으로 분배의 정의가 확보되는 정치경제제도가 현재의 국제질서에서 중요시되는 국가, 국경, 그리고 군사력과 관련된 안보의 중요성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넷째, 국제체제와 관련하여 세계정부의 출현이라는 긍정적인 미래 시나리오도 가능한 측면이 있다. 국제사회에서 다른 국가를 능가하는 경성국력(hard power)을 가진 국가는 경제적으로 부강하고 과학기술을 확보한 선진국이다. 경성국력을 확보한 국가가 재화와 용역을 도덕적으로 분배하는 경제제도까지 확보하고 있다면, 그 국가는 연성국력(soft power)에서도 선진적인 지도국가이다. 이와 같이 경성국력과 연성국력 모두 선진적인 국가들이 국제질서를 평화적인 세계정부의 출현으로 인도하려는 합의가 이루어진다면 세계정부의 출현은 결코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선진국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국가이기주의를 바탕으로 세계평화를 교란하는 잠재적 위협국가들을 응징할 수 있는, 이를 테면 다국적 상비군과 같은 집단안전보장을 위한 제도를 갖추는 것이다. 현재의 국제제도에 기초해 볼 때, 미국과 중국이 세계정부 출현에 공정한 선의의 안내자의 역할을 수행한다면 세계정부를 위한 세계적 움직임은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로서 미국과 중국이 국가이기주의를 포기하고 공동의 선을 위해 협력할 것이라는 현실적 근거는 없다. 다섯째, 세계정부가 실제로 구성되고, 적절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 해결되어야 하는 세부적·정책적인 문제가 산적해 있다. 이는 국제관계가 아니라 국내정치의 문제이다. 새로운 정치제도에서 정치적 권력을 가진 개인들이 합의를 효과적으로 유도하는 민주주의정부를 가진 국가가 국제정치에서도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가난한 국가와 부유한 국가의 경제적 격차가 가져오는 노동력의 이동, 개별국가의 재정정책과 통화정책, 단일화폐의 출현, 환율 문제 등은 현재 유럽의 통합에서도 쉽게 관찰할 수 있는 심각한 장애물들이다.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도덕적이고 민주적인 정치제도가 확보된다고 하더라도 개인이 국제적 공공질서를 위해 국내적 개별이익을 희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집단행동의 문제(collective action problems)’는 여전히 남아있다.   마지막으로 인간의 이기주의에서 발생하는 집단행동의 문제는 과학기술의 발전이나 정치제도의 변화와 무관하게 사회적인 문제의 원인으로 남아있게 될 것이다. 통칭하여 문화로 대변되는 언어, 종교, 인종, 관습, 제도, 그리고 신념의 차이와 같은 다양한 차이가 통합에 장애가 될 것이다. 결국 차이 그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차이를 이용하는 정치적 편가르기가 고용, 환경, 주택, 교육, 복지, 보건 등과 같이 일상생활에서 정책의 편익과 문화가 접점을 이루는 부분에서 통합을 저해할 것이다. 결국 인간의 이기심과 문화적 차이는 지방, 국가, 지역, 인종, 문화 등 다양한 차원의 편가르기로 나타나고 궁극적으로 세계정부의 통합에 있어서 제도나 법적인 측면의 발전을 상쇄하여 극복하기 어려운 부정적 요인으로 남을 것이다. 現 제주평화연구원 연구위원. 미국 University of North Texas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미국국제정치학회가 주관하는 International Studies Quarterly의 Referee로 활동한 바 있음. 저서로는 『2011 한국인의 평화관: 통일정책과 여론』 및 『2010 한국인의 평화관: 외교정책과 여론』 등이 있음.
  •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저자
    우정엽(아산정책연구원 워싱턴 사무소장)
    발간호
    2015-44
      한 차례 연기되었던 한미 정상회담이 내일로 다가왔다. 미국의 대선 일정상 이번 한미 정상회담이 두 정상 간 단독으로 갖는 마지막 회담이 될 가능성이 크다. 6월 정상회담이 연기된 이후, 많은 전문가들은 6개월 안에 정상회담 개최 일정을 조율하는 것이 매우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한국과 미국 정부는 정상회담 개최를 위해 양국 대통령의 빡빡한 일정을 조율하는 데 성공했다. 사실, 양국 정부가 정상회담 일정에 이토록 주의를 기울일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신속한 정상회담 일정 조율 여부가 동맹의 견고함을 나타내는 지표라고 보는 대중 여론을 의식했던 양국 정부는 이로부터 오는 불필요한 압박감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예상보다 일찍 정상회담 일정을 조율함으로써 양국 정부는 여론의 부담에서 자유로워졌다. 무엇을 논의할 것인가?   이번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이 무엇을 논의하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방향을 잘 못 잡게 되면 정상회담의 주요 결과물이 작은 현안들에 묻혀버릴 수 있다. 지난 6월에는 양국이 상호 긴박하게 다루어야 할 이슈가 없었기 때문에, 무엇을 놓고 의논할 것인가가 주요한 질문이었다. 즉, 특별히 정상회담을 통해 어떠한 정책적 성과가 도출될 것이란 기대가 없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당시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 방문을 두고 지난 4월에 있었던 일본 아베 총리의 미국 방문과 어떤 차이를 갖는지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이 기울여졌다. 그렇다면 4개월이 지난 지금은 어떠한가? 곧 개최될 정상회담과 관련하여 두 가지를 언급하고 싶다. 첫째, 우리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무엇이 강조되어야 하는지와 양국 정상 간 무엇이 논의될 수 있는지를 구분해야 한다. 현 시점에서 양국 정부가 대답해야 할 주요 문제는 무엇인가? 언론에서는 다음과 같은 현안들이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TP)에 참여하는 12개국에 포함되지 않았던 한국의 TPP 가입 가능성, 록히드마틴사의 F-35 40대 도입과 한국형 전투기 개발에 필요한 4개 핵심기술 이전 문제, 그리고 일 년 이상 꾸준히 논의되고 있는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한국 도입 가능성 등이 지금 논의될 수 있는 현안들이다. 물론 북한문제도 한미 정상 간 논의되어야 할 의제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북한이 미사일실험(인공위성 발사)과 같은 또 다른 무력 도발을 감행할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정상회담이 단지 정책적 합의 도출이나 양국의 문제 해결만을 위한 자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둘째, 제3국의 역할이 한미 정상회담을 지배해서는 안 된다. 지난 6월에는 4월에 있었던 아베 총리의 워싱턴 DC 방문이 거의 비교 기준처럼 여겨졌다. 아베 총리의 방문기간 동안 행적, 발언, 그리고 오바마 대통령과 함께 했던 일들과 박근혜 대통령이 6월에 정상회담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비교하는 논의가 지배적이었다. 4개월이 지난 지금의 비교대상은 중국이다. 한미 양국에서 한국이 중국의 영향권에 흡수되고 있는 것이 아닌지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어 왔다. 9월 초에 열렸던 중국 열병식에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한 것에 대해 미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워싱턴의 많은 전문가들이 눈살을 찌푸린 것은 사실이다. 이와 같은 워싱턴의 분위기를 인지하고 있는 한국의 많은 이들은 한국 정부가 미국의 선입견을 바꾸기 위해서 무언가를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해명이 이번 정상회담의 주요 사안이 되면 한미 정상회담의 의미가 상당히 퇴색될 수 있다. 중국이 경제적으로도, 안보적으로도 동북아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국가라고 할지라도 한국 입장에서는 어떻게 한미동맹을 진화시킬지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한미동맹의 비전 제시에 집중해야   이와 같은 배경을 전제로 필자는 이번 정상회담이 당면한 현안을 풀기 위한 장이 되어서는 안 되며 양국 정상이 어떻게 한미동맹을 끌고 나갈지에 대한 비전 제시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이야말로 한국이 동맹 관리 차원에서 직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제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지금 논의되는 현안들은 대통령 간의 담판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적인 이유에서라도 그러한 현안에 대한 협상 여부가 이번 정상회담의 성공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 보다 중요한 것은 두 정상이 앞으로의 동맹관계를 어떻게 이끌어 갈 것인가에 대해 다시 한 번 서로에게 확신을 주는 것이다. 미국의 대아시아정책에서 한국정책이 우선순위가 될 수 없다는 것은 틀린 말이 아니다. 미국의 대아시아정책에 있어서 중국은 변함 없이 최우선순위이다. 또한 미국이 한국을 볼 때 미중관계의 틀 안에서 보고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와 같은 분위기가 내일 열릴 정상회담을 맞이하는 워싱턴을 뒤덮고 있다.   매우 냉소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워싱턴에서 한국은 미국과 중국 모두를 만족시키거나 아니면 최소한 갈등을 피하기 위해서 수동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이러한 한국의 수동적 접근을 보여주는 한 예가 한국이 이번 정상회담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열병식 참석으로 불거진 미국의 부정적인 선입견을 떨쳐내려는 데 집중하는 모습이다. 우리가 해명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닌지에 집중하다 보면, 문제의 초점은 한국이 어떻게 미국 정부를 기쁘게 할 것인지로 연결되고, 이것은 다시 한국의 이런 태도가 중국을 자극하는 것은 아닌가에 대한 새로운 논의로 이어질 것이다. 사드 도입 관련 논의가 한국 안보 상황에 있어서의 필요성보다 오히려 미중 양국의 반응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이 이에 대한 단적인 예로 볼 수 있다. 우리는 미국, 그리고 국제사회에 한국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확실하게 보여주지 못한 상황이며, 이는 아마도 한국이 미국과 중국의 반응에 지나치게 중점을 두어 왔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어떤 지향점을 가지고 있는지 분명히 알릴 필요가 있다. 수동적인 상황 접근이 아니라 우리의 어젠다를 적극적으로 알리고 그러한 방향이 미국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설파해야 한다. 중국경사론과 관련해서 한국 정부는 우리의 대외정책이 어떠한 방향으로 가는지 설명함으로써 그 부담을 덜 수 있다. 소위 한국의 중국경사론은 중국이 절대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는 가정에 기반을 두고 있다. 따라서 원하든, 원하지 않든 한국과 같은 작은 배는 중국과 같은 큰 배를 움직일 수 없고, 반대로 큰 배에 의해 끌려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책적으로 한국이 중국에 의해 좌지우지 되지는 않았고, 또한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열병식 참석이 친중정책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동시에 중국의 한반도정책에도 실질적으로 큰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방문이 중국 여론의 남북한 인식에 대한 변화의 기회를 창출했다는 점은 강조될 필요가 있다. 동맹국인 한국과 미국은 한국의 대중국정책이 장기적으로 중국의 한반도정책 변화를 위해 구상되었다는 것을 이해하고 동의해야 한다.  가까운 미래에 중국의 정책 변화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한국은 미국이 한국의 대중국정책을 보다 큰 관점에서 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한미동맹의 미래 비전   이를 위해서 한국 정부는 한미동맹이 한국과 미국이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미국이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 시점에서 한국은 미국에게 한미동맹이 굳건한 국제적 동반자관계임을 재확인시킬 필요가 있다. 미국을 말로써 설득하려는 것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정책을 내보임으로써 한미동맹의 가치가 견고함을 입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필자는 한국이 수동적인 접근에 머물러 있을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정책을 담은 전략적 비전을 미국과 공유함으로써 목표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한다. 첫째, 한국은 한미동맹이 전통적인 양자 간의 안보영역을 넘어 사이버안보와 우주안보와 같은 영역으로 계속하여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 위에 언급한 두 가지 안보영역은 단순한 양자관계를 뛰어넘는 범위이고, 국제적 규범 및 규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중국의 반응에 대한 우려도 크지 않다. 즉, 이 이슈들은 중국에 관한 것이 아니고 국제규범의 문제이다. 한국과 미국 양국 지도자 간 합의를 바탕으로 국제규범을 제정하고 준수하는 것이다. 얼마 전 한국의 에볼라 바이러스 퇴치를 위한 적극적 참여는 한국이 국제보건분야에서 이슈를 선점하여 나아가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 정부는 국내외적으로 한국이 국제적 문제 해결에 주도적인 역할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   둘째, 한국은 일본과 지역안보를 위해 과감하게 협력할 수 있다. 워싱턴의 많은 전문가들은 한국이 역사문제에 대한 일본의 접근방식을 못마땅하게 여길 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그들은 늘 한국이 역사문제와 다른 문제를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역사문제를 보는 일본 지도자들의 수정주의적 시각은 정치적으로 해결이 필요한 부분이지만, 한국과 일본의 안보협력영역은 이 문제와 구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미국이 한국과 일본이 지역안보를 위해 협력할 수 있다고 인지한다면 한국의 중국경사론은 워싱턴에서 약해질 것이다. 현재 일본의 입장은 안보협력과 역사문제는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향후 한국이 과감하게 일본과 지역 협력을 추구한다면, 일본은 정치문제와 역사문제에 대한 반응을 보여야 하는 압박감을 느낄 것이다. 주도적 방향설정과 정책제시가 바람직 만약 한국의 입장을 수동적인 태도로 수사적으로 설명하고 규명하려고 한다면, 한국의 입지는 고래 싸움에 낀 새우와 같은 외교적 틀에 갇히게 것이다. 한국은 주도적인 방향을 설정하고 그 방향에 걸맞은 정책을 요구해야 한다. 양국의 지도자들이 한미동맹의 가치를 나누고 동맹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상호 이해한다면 양국 간의 많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다.? 現 아산정책연구원 워싱턴 사무소장.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Georgetown University에서 정책학 석사학위, 미국 University of Wisconsin at Milwaukee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한국학연구소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재직. 주요 연구분야는 정책결정 과정에서의 여론문제, 제3국의 내전 무력개입에 관한 국제분쟁 등.
  • Memory Wars in East Asia: Pluralistic Memories in Japan
    저자
    Kenneth J. RUOFF(Portland State University)
    발간호
    2015-43
      It is silly to think that the 127,341,000 citizens of Japan maintain the same memory of the past. There is a tremendous plurality of memories about the dark chapters of modern Japan’s history, ranging from outright contrition (which is far more common than most people outside Japan seem to understand) to far rightist claims that Japan never did anything wrong. This plurality is reflected in how museums in Japan portray the past. Curiously, Japan has no national museum, in other words a museum funded by the central government, devoted to telling the full sweep of Japan’s modern history. This is significant, and it is probably fair to say that the lack of such a national museum results from intense domestic contention about how that modern history should be told. The lack of such a museum also hints at the fact that the government of Japan, since 1945, arguably failed to reconcile with much of its own citizenry about the Asia-Pacific War, not to mention failed to reconcile with its neighbors about the imperial era.   The lack of a national museum about modern history in the Tokyo area (or anywhere else in Japan) lends undue significance to the far rightist Y?sh?kan Museum that is part of the privately operated Yasukuni Shrine. But there are many additional museums throughout Japan that present competing contrite versions of the past, and it is important to contextualize Y?sh?kan within a broader “museum landscape.”   Let me introduce here two museums whose exhibits symbolize the pluralistic ways that Japanese remember the past. First, the Hiroshima Peace Memorial Museum established and operated by the City of Hiroshima presents what could be termed the pacifistic viewpoint. Although the pacifistic line can at times be faulted for its unwillingness to assign clear responsibility for which country perpetrated the Asia Pacific War that caused so much suffering, it draws a vehemently anti-war stance from the lessons of the past, and in that sense tends to be very anti-Imperial Japan.   Second, the Ritsumeikan Kyoto Museum for Peace unambiguously presents the “Japan was Wrong” narrative of the past. The exhibit holds that the actions of Imperial Japan, including those towards its neighbors, were wrong, and that Japan bears a special responsibility for the errors of its past. Here is a description of the Kyoto Museum for Peace written by one of its staff members:   “In 1992, the Kyoto Museum for Peace opened as the first peace museum run by a university. It was established as a facility to realize the university’s educational principles. A permanent exhibition was developed to reflect both the common academic understanding and Ritsumeikan’s own perspective on Japanese history. Like other peace museums in Japan, it documents the horrors of war to induce the sentiment ‘never again.’ But the museum focuses not only on the perspective of the victim, but also on the perpetrator’s side of Japanese history. One display includes images that are often targeted by historical revisionists, such as those of sex slaves (often from occupied areas) of Japanese soldiers and bodies of Nanjing Massacre victims. The museum believes that only through exploring all facets of history, can one learn the lessons for peace. The university’s own past as a collaborator [in the militaristic era] is also on display.”?1?   In fact, there are museums in Japan that provide an even harsher verdict on modern Japan’s history. For example, I think that the Osaka Human Rights Museum provides one of the most biting anti-government interpretations of history that I have ever come across anywhere.   Although that at the moment that I write in 2015, Prime Minister Abe’s backsliding on the issue of Japan’s responsibility for the imperial era seems to be overshadowing the plurality of memories in Japan, I would still urge people to be very careful when making observations about how the Japanese (as in 127 million of them) remember the past. Please be wary of accepting uncritically inflammatory claims that Japanese collectively do not remember the bad things that Imperial Japan did.   Japan’s far right is very loud and their views tend to be given far greater weight, especially outside of Japan, than they deserve. My personal working thesis is that among the Japanese people, the “Japan was wrong” interpretation is more prevalent than the far right one. But the most common view of the past of all among the Japanese people is a tremendously strong pacificistic line that holds that “War is bad and must be avoided at all costs in the future.”   Some versions of this pacifistic line unquestionably focus more on Japanese suffering as the result of the war than on the suffering that Imperial Japan dished out to its neighbors. Nonetheless, the pacifistic line is also highly critical of Imperial Japan. In fact, Imperial Japan is typically held up precisely as the model of what must be avoided in the future. In that sense, the Japanese do reject Imperial Japan. Reference Kanekiyo, Junko. 2011. “Japanese Peace Museums and the Challenges and Perspectives of the Kyoto Museum for World Peace” in Gabriel Bix, (ed.). Museums of Ideas: Commitment and Conflict. Edinburgh: MuseumsEtc. Kenneth J. RUOFF is professor of the modern history of Japan and East Asia and director of the Center for Japanese Studies at Portland State University.
  • 일본의 방위산업은 부활하는가?: 무기수출금지 기조의 수정과 일본 평화주의의 미래
    저자
    조비연(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박사과정)
    발간호
    2015-42
    [편집자 註] '차세대의 목소리'는 젊은 세대들의 신선한 시각을 통해 평화와 안보문제를 살펴보고, 갈등해소와 평화정착을 위한 새로운 방안을 논의하는 JPI PeaceNet의 기획 시리즈입니다.   2014년 4월 1일, 일본 아베정부는 ‘방위장비이전 3원칙’을 제정하였다. 이번 ‘새로운 3원칙’은 간략히 말해 1967년 사토 내각 당시 전후 평화주의의 표상으로 일본의 무기수출을 억제하기 위해 제정된 ‘무기수출 3원칙’을 수정한 것이다. 이는 ‘무기수출 3원칙’ 제정 이후 처음으로 2011년 노다 내각에서 일본의 무기수출금지 기조에 예외적 조치를 취한 ‘방위장비이전을 위한 가이드라인’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다.   국내에서는 ‘방위장비이전 3원칙’을 두고 일본 군수산업의 ‘부활’, ‘빗장’풀린 일본의 무기수출(서정환 2014), 방위산업에 ‘날개’(YTN 2014), ‘신호탄’(조기원 2014), 무엇보다 일본의 재무장 또는 군사대국화를 향한 ‘음모’라고 표현하고 있으며, 국외에서도 유사하게 일본의 ‘평화주의를 역행하는 것’(Japan Press Weekly 2013 Fackler 2014 Kallender-Umezu 2014), ‘위험한 징조’(Global Times 2014)라고 비판하고 있다. 무엇보다 현재 국제적 우려를 사고 있는 아베정부의 역사수정주의와 집단자위권 행사를 위한 안보법안 처리 등과 맞물리면서, 일본의 방위산업 활성화에 대한 주변국들의 우려는 타당해 보인다. 또한 이러한 2010년대 일본의 무기수출정책의 변화과정은 좁은 내수시장과 정부의 들쑥날쑥한 재정 지원을 바탕으로 방산활동을 유지해오던 일본 기업들의 수출규제 완화 요청이 현실화된 것으로 해석되기도 하면서, 2014년의 ‘새로운 3원칙’을 기점으로 이들의 국제무기시장 진출은 당연시되고 있다.     ‘새로운 3원칙’에 대한 전망이 실제 일본의 방산업계의 모습과 일치하는가?   기존의 국내외 연구들과 언론보도들은 일본의 방산기업들의 실제 변화 추이보다는 이번 정책 변화에 대한 국내외적 배경과 함의 분석에 국한되고, 정책 변화의 당사자인 방산기업들의 행태 변화를 체계적으로 분석하지 못하고 있다. ‘기업 중심적’ 시각을 통해 알 수 있는 이번 정책 변화의 함의는 무엇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일본의 방산기업들에게 무기수출에 대한 ‘빗장’이 열리고, 이러한 ‘신호탄’에 따라 방산기업들이 국제시장에 진출할 것이라는 획일적인 평가와 다르게, 이들은 매우 다양한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일본의 주요 방산기업들을 면밀히 살펴보면, ‘새로운 3원칙’과는 별개로 여전히 ‘이익 창출’이라는 기업적 마인드, ‘합리성(rationality)’을 중심으로 세계무기시장 진출에 대해 ‘위험 기피적’이고, 이를 ‘주저’하고 있으며, 오히려 무기수출을 위한 조직개편이나 R&D투자집중, 기술특화보다는 무기기술의 상업화 방안에 집중하는 양상도 나타난다. 특히 아베정부의 무기기술개발에 대한 재정 지원의 불투명성이라는 국내적 요인과 국제무기시장의 높은 진입장벽이라는 국외적 위험요인을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따라 일본 방산기업들의 전략은 다각화되어 나타난다(Jo 2015).   지면의 제약으로 모든 연구 결과를 상세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일례로 일본의 최대 방산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의 경우, 정부의 재정 지원 요인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2011년 노다내각의 ‘방위장비이전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기점으로 미쓰비시중공업의 2010-2012년 연례보고서들을 보면, 군수생산 활성화에 대한 높은 기대감이 나타난다. 2012년 연례보고서의 경우 이전까지 여러 산업분야에 분산되어 있었던 군수품들을 ‘방위와 항공우주 산업’이라는 독립된 항목으로 재편한 것을 보여주는 것과 동시에, ‘앞으로 예상되는 일본의 무기수출금지 규제의 완화에 대비할 것’이란 기대 섞인 어조를 드러낸다. 그러나 2013-2014년 일본 정부가 구체적인 전방위적인 재정 지원보다는 특정 기업들을 선정하여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전략을 선호하고, 기업들에게는 스스로 ‘군수품의 민수적 활용’을 여전히 요구한다는 점에서(일본방위백서 2013, 2014), 2014년 미쓰비시중공업의 연례보고서는 이례적으로 이러한 일본 정부의 애매모호한 입장에 대하여 ‘느릿느릿 또는 부진’하다는 비판적인 표현을 명시하고 있다. 또한 2010년대 초반의 기대감과 달리 2014년 연례보고서는 국제무기시장에서의 낮은 비교우위를 강조하며 적극적인 진출방안을 내놓고 있지 않다.   보다 구체적인 사례로 일본이 항공자위대에 도입할 차세대 전투기 F-35를 들 수 있다. 미쓰비시중공업은 미쓰비시전기, IHI와 공동으로 2013년부터 국제공동 생산체제에 참여하겠다고 밝혔지만, 보조금에 대한 의견 불일치로 난항을 겪고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일본 정부가 미쓰비시중공업에게 약 640억 엔의 보조금을 제안했으나, 공동개발에 대한 경험부족에 따른 부담으로 미쓰비시중공업이 재차 약 100억엔의 추가 보조금을 요청했고, 이를 일본 정부가 거절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쓰비시중공업이 BAE에 2015년까지 생산·이전하기로 한 F-35의 기체생산은 지연되고 있다. 미쓰비시중공업 회장 히데아키 오미야는 2014년 10월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우선 정부가 먼저 원하는 바를 구체적으로 결정해야 하며, 미쓰비시중공업이 먼저 자발적으로 군수산업을 육성하거나 적극적으로 해외시장 진출에 나서지는 않을 것이라 밝혔다(International Business Times 2014). 미쓰비시중공업이 카와사키중공업과 합작·생산하기로 한 소류급(Soryu-class) 잠수함도 유사한 사례이다. 현재 호주, 태국, 인도, 필리핀 등 여러 국가들이 일본의 소류급 잠수함 도입에 적극적인 관심을 표명한 가운데, 카와사키중공업의 관계자는 이런 국제사업의 위험요인을 강조한다. 특히 이러한 대형장비의 수출에 따른 해외 관련 위험부담이 크다고 지적한다. 일본의 기존 잠수함들이 주로 20년까지의 생명주기로 운영되어 온 것과 달리 해외의 경우, 보다 긴 운항수명을 요구하는데 이러한 과정에 필요한 부품 수리 및 교체에 소요되는 국제적 활동에 대한 우려가 현저히 크다(East Asia Forum 2015). 궁극적으로 R&D에 대한 정부의 재정 지원, 보조금 여부와 국제시장에서의 성공여부에 대한 판단이 이 두 일본 방산기업들에게 국제시장 진출에 대한 적극성보다는 조건부적이고, 상당히 주저하며 신중한 태도를 견지하게 하고 있다. 육해상로에서 이착륙이 가능한 US-2 Amphibian Aircraft의 제조업체 ShinMaywa는 인도 등 여러 국가들에게 주목받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군수산업으로의 대대적인 전향보다는 오히려 기존 군수품의 민수상업화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유의미한 사례이다. 특히 ShinMaywa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재해현장에서 구조활동에 적극 활용된 US-2 Amphibian Aircraft에 대한 군민양용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주력하고 있다. 차세대 전투기 F-35 공동생산의 주요 참여기업인 IHI는 미쓰비시중공업과 유사하게 2010년도 초반에 뛰어난 항공엔진 기술을 바탕으로 군수시장에 주력하기 위해 ‘항공 엔진, 우주, 방위산업’이란 독립된 산업분야를 마련했다(IHI 2013, 4). 하지만 이후 2014년 연례보고서가 기술하듯 국제무기시장에서의 매출을 확보하는 것을 ‘가장 큰 도전적 과제 중 하나’로 보고 있으며, 초기의 기대감에 비해 훨씬 머뭇거리는 모습이 나타난다(IHI 2014, 4). 역시 IHI에게도 국제무기시장이라는 환경요인이 군수산업분야를 확대하는 데 주요 결정요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평화를 위한 현실 검토   이 글은 일본 방산기업들의 변화 추이를 면밀히 살펴보고 일본 방위산업의 부활, 재무장의 일로라는 전망을 구체적으로 검토해보고자 했다. 위의 결과들이 보여주듯, 일본 방산기업들의 변화 추이는 기존의 매체나 전문가들이 전망하고 있는 변화의 폭보다는 좁고, 그 변화의 속도 또한 덜 급진적이란 것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내수시장에만 의존해오던 일본의 방산기업들의 주요 매출은 방산이 아닌 민수품 생산에서 발생하여 민수중심 구조를 갖고 있다는 점을 다시 상기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일본의 최대 무기제조사인 미쓰비시중공업 조차도 그 비중이 총 매출의 9.4%에 불과하다).   물론 전전 일본 군수산업의 역사와, 현재 아베정부의 역사수정주의 및 안보법안 처리라는 맥락에서, 이번 '새로운 3원칙'의 제정이 주변국들의 우려를 증폭시키고 동북아시아의 군비경쟁을 촉진시킬 수밖에 없다는 점은 명확하다. 이 글은 이러한 전망에 대해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과는 별개로 현재 일본 방산기업들의 행태분석을 통해 일본 내부에는 이러한 주변국들의 우려에 대한 경각심을 제고하도록 하는 한편, 주변국들에게는 일본의 군사대국화에 대한 객관적인 진단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궁극적으로 일본의 우경화 행보에 대한 경로 수정과 협력의 여지를 모색하고자 하였다. * 이 글에서 언급된 연구나 기사에 대한 자세한 서지정보는  2015년 5월 발간된 필자의 논문에 포함되어 있다. Jo, Bee Yun(2015). Japan Inc.’s remilitarization? A firm-centric analysis on Mitsubishi Heavy Industries and Japan’s defense industry in the new-TPAE regime. International Relations of the Asia-Pacific. (doi:10.1093/irap/lcv011).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박사과정
  • 유럽 난민 위기, 어떻게 다룰 것인가?
    저자
    도종윤(제주평화연구원 지역통합연구부장)
    발간호
    2015-41
    난민(refugee) 유입으로 유럽이 곤경에 빠져 있다(유럽 언론들은 ‘난민’이라는 표현 대신 [불법]이민자(migrants)라는 표현을 주로 쓰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그리스 위기에 이어 난민처리 문제가 올 하반기 유럽의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2015년 들어 지난 9개월 동안 시리아, 리비아, 에리트레아 등에서 유럽에 유입된 난민의 숫자는 대략 50만 명에 이른다. 독일은 2016년 기준 난민 관련 예산으로 60억 유로를 긴급 편성하였고 다른 회원국들도 잇달아 난민 수용안을 제출하고 있다. 그러나 집행위원회와 회원국 간, 각 회원국 간, 그리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각종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만족할 만한 해법은 아직 제시되지 않고 있다.   난민 방지를 위한 구조적 처방   유럽이 난민을 다루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구조적 관점으로, 난민 방지를 위해 원천적으로 주변국의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번영을 지원하는 것이다. 유럽연합은 2003년 유럽근린정책(ENP)를 내놓으면서 유럽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국가들-일명 ‘친구들의 고리(Ring of Friends)’-의 번영과 안정이 유럽의 안정을 위한 중요 조건이라고 보았다. 난민은 전쟁과 압제로부터 탈출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 때문에 발생한다. 유럽에 국경을 접하고 있는 동부·남부 지역 국가들의 안정과 번영은 무역을 촉진하고 외교적 우호관계를 지속시켜 줄 뿐 아니라 불법 난민의 유입을 방지해준다. 따라서 유럽연합은 시리아를 비롯하여 리비아, 팔레스타인, 우크라이나, 이집트, 아르메니아 등 16개 취약 국가의 분쟁예방과 위기관리를 위해 공동행동계획을 수립하여 이들에게 민주주의, 법치, 건전한 통치 체제, 시장경제 옹호 등이 뿌리내리도록 꾸준히 원조하고 있다. 유럽집행위원회가 2014년 내놓은 실행보고서에 따르면, 2007-2013년 동안 유럽연합이 이 같은 근린정책에 쏟아 부은 금액은 130억 유로(한화로 약 2조 원)에 달한다.   난민 유입 관리 처방   다른 하나는 문제해결적 관점에서 난민 유입 과정과 유입 이후 그들을 관리하는 것이다. 집행위원회는 2014년 초, 불법이민과 난민을 관리하기 위한 다섯 가지 정책을 추진하기로 한 바 있다. 이는 기존의 더블린 규약(난민을 최초 입국 지점으로 되돌리는 정책) 이상으로 보다 적극적인 관리 정책을 취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다섯 정책 중 첫째는, ‘유럽 공동의 난민 시스템’의 구축이다. 이는 난민 신청자가 어느 한 국가에 몰리는 것을 방지하겠다는 것이다. 난민 사유가 같더라도 국가별로 신청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입국의 조건을 일관되게 처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골자다. 둘째, ‘유럽난민사무국’의 확대 개편이다. 이는 난민들의 지속적인 삶을 위해 보다 체계적인 훈련과 지원을 수행하는 일이다. 셋째, 불법이민자 발생국가와의 긴밀한 협력이다 이는 근린정책과 접점을 이루는 부분으로, 상시적으로 불법이민자가 발생하는 북아프리카 국가들- 예컨대, 이집트, 요르단, 모로코, 튀니지-에게 유럽부흥개발은행(EBRD)의 자금을 투입하여 그들의 안정적인 경제 성장을 도모한다는 것이다. 넷째, 합법적인 이민을 수용하기 위한 정치적 결단이다. 2060년을 기준으로 유럽의 경제 활동 인구는 현재보다 10%이상, 숫자로는 5천만 명 이상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반면 은퇴한 인구의 비율은 현재 17.1%에서 30%로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때문에 재능 있고 숙련된 기술을 가진 외국인은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이러한 필요성이 있기에, 국내 문제로 이민자들을 거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마지막은 유럽 대륙의 국경통제를 강화하는 정책이다. 난민 사태를 확대시키는 것은 불법 이민브로커들이 활개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들을 일소하기 위해서는 국경통제통제청(FRONTEX)의 역할이 보다 강화되어야 한다는 견해가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또 하나의 목소리: "언젠가는 당신이 난민이 될 수도 있다!"   최근 들어 유럽 지도자들로부터 들려오는 또 하나의 목소리는 인도주의적 처방이다. 이는 구조적 처방 및 문제해결적 처방과 같은 제도적 처방이 가진 한계를 유럽인 내부의 가치적 측면에서 찾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이 본격화된 것은 터키 해안에서 발견된 시리아 출신 어린 난민 아일란 쿠르디(Aylan Kurdi)의 죽음-최근 그의 아버지가 불법 이민 중개업자라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이 사진의 의미는 많이 퇴색되었다-이 전 세계 언론을 통해서 알려지고부터이다. 장-클로드 융커 집행위원장은 9월 9일 유럽의회에서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종교적, 정치적 박해로 인해 (유럽인들도) 한 번 정도는 난민이 되었던 적이 있었다”라고 언급하면서, 난민을 대하는 유럽인들의 태도를 스스로 돌아볼 것을 촉구하였다. 실제로 유럽인들이 난민이 되어 지구 이곳저곳을 떠돌아 다녔던 역사는 매우 깊다. 프랑스의 위그노(huguenot)은 17세기 말 루이 14세 치하에서 낭트칙령이 폐기되면서 범죄자로 내몰렸다. 약 30만 명으로 추정되던 신교도들이 네덜란드, 미국, 스위스 등으로 떠돌이 생활을 해야만 했다. 20세기 초 나치의 등장으로 소위 ‘집시’라고 불리는 로마니(Romani people)- 신타이(Sinti), 마누쉬(Manush), 카일(Kale) 등-가 학살당하거나 유럽 대륙을 전전했다. 이들은 유대인과 달리 전쟁 이후에도 인정받지 못하였다. 스페인 내전(1936-39)에서 프랑코 반란군에 패한 뒤 프랑스로 망명한 공화파 난민의 숫자는 50만 명에 달했다.   이처럼 지난 200여년 간 지구 어느 곳보다 더 많은 전쟁과 내전을 치렀던 유럽 대륙은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난민이 되어 떠돌아 다녔던 경험이 있다. 그리고 그들은 때때로 비범한 업적을 남기기도 한다. 1956년 헝가리 혁명이 실패한 후 오스트리아로 탈출한 수많은 헝가리인 중에는 임레 라카토스(Imre Lakatos)도 있었다. 훗날 ‘과학적 연구 프로그램 방법론’으로 포퍼와 쿤을 합리적으로 종합한 그는 영국에 정착한 이후에도 평생 무국적자로 남았다. 사후 그의 영국인 동료와 제자들은 ‘라카토스 상’을 제정하여 그의 과학철학 업적을 기리고 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저술한 밀란 쿤데라(Milan Kundera)는 1968년 프라하의 봄 이후 서유럽으로 탈출한 체코슬로바키아인들 중 한 사람이었다. 1975년 프랑스에 정착한 이후 그는 자신의 모든 작품을 프랑스어로 출간하여 프랑스 문단의 중요한 거장이 되었다. 이민자가 아닌 난민   프랑스 언론인 장 카트르메르는 자신의 칼럼에서 유럽의 언론매체는 현재의 사태를 ‘이민자(migrants)’에 관한 문제가 아닌 ‘난민(refugies)’에 관한 문제로 바꿔 표현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아일란 같은 어린이의 죽음을 단지 엘도라도(eldorado)를 찾아 떠난 불법이민자와 같은 것으로 묘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민자’라는 말뜻 속에는 고향을 떠나 숨을 곳을 찾아 변방을 떠도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숨어있는 반면, ‘난민’은 마지못해 고향을 떠나야 했던 존중받지 못한 인간의 존엄성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프랑스인들의 56%는 ‘이민자’를 받아들이는데 반대하지만 독일인들의 66%는 ‘난민’을 받아들이는데 긍정적이라고 한다. 그런 면에서 융커 집행위원장이 언급한, “행복한 조국을 떠나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다”는 주장은 새겨들을 만하다. 조국에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이들은 결코 난민이 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삶의 가치를 존중하는 유럽이 ‘난민’들을 따뜻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現 제주평화연구원 연구위원. 브뤼셀 자유대학교에서 정치사회학 박사 학위취득. 주요 논문으로 "국제정치학에서 주체물음(2013)", "유럽연합의 개발협력전략(2013)" 등이 있음.
  • 남북한 심리 통합으로 가는 길
    저자
    정혜진(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석사)
    발간호
    2015-40
    [편집자 註] '차세대의 목소리'는 젊은 세대들의 신선한 시각을 통해 평화와 안보문제를 살펴보고, 갈등해소와 평화정착을 위한 새로운 방안을 논의하는 JPI PeaceNet의 기획 시리즈입니다. 긴박했던 43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남북 고위급 접촉이 지난 8월 25일 극적으로 타결되었다. 무박 4일이라는 긴 마라톤협상은 여전히 남북 간의 의견 차가 존재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남북 고위급 접촉 합의 이후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협력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이러한 차이를 극복한 남북한 통합 준비가 필요하다. 독일의 역사를 돌아봤을 때 정치나 경제 통합보다는 멘탈리티 즉, 내적 통합에서 가장 큰 어려움이 있었다. 동서독 간의 다른 역사, 다른 성장과정 등이 있었고, 문화적 편견 등이 존재했기 때문에 이러한 것이 사라지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린 것이다. 독일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남북한 통합 문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바로 ‘심리 통합’ 문제이다. 통일 후 남북한 주민들은 서로 상대방의 마음을 어떻게 이해하고 사로잡을 것인가? 우리는 서로 다른 성격의 두 문화가 오랜 시간 접촉함으로써 변하는 ‘문화접변’ 현상을 접할 수 있다. 미국 인디언들이 자신들의 고유한 문화를 잃어버리고, 백인문화에 흡수한 ‘문화동화’ 사례나, 멕시코의 토착 인디언들의 전통과 에스파냐 정복자들의 문화가 혼합되어 나타난 메스티소라는 독특한 ‘문화 융합’의 사례 등 문화접변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렇다면 통일한국의 문화접변 현상은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날까? 북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문화를 잃어버리고 남한의 문화에 흡수될까? 아니면 남한의 문화와 북한의 문화가 혼합되어 새로운 ‘문화융합’ 사례를 창출할까? 이러한 문화접변으로 인한 남북한 주민들의 심리적 갈등은 통일 이후 가장 중요한 문제로서 자리 잡을 것이다.   영화 ‘코리아’를 통해 본 남북한 정서적 갈등 영화 ‘코리아’는 1991년 41회 세계선수권대회 남북 단일팀 결성이라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이다. ‘코리아’라는 이름으로 한 팀이 된 선수들은 생활방식, 연습방식, 언어 등 서로 다른 이질감으로 인해 사사건건 갈등이 발생한다. 통일 이후, 남북한 주민들 간의 어떠한 심리적 갈등이 발생할 것인가를 영화 ‘코리아’를 통해 예상할 수 있다. 영화 ‘코리아’에서는 남북한 선수들 간의 문화적 차이, 정치사상 교육의 차이 등으로 인한 심리적 갈등이 잘 나타난다. 예컨대 남한 선수들의 가벼운 농담을 북한 선수들이 희롱으로 받아들인다거나, 김일성 부자에 대한 우상화 교육이 지나치게 심해 이로 인한 갈등이 생긴다거나, 사회주의 이념과 체제의 강조로 인해 남한이 아무리 잘 산다고 하더라도 남한에서 살고 싶지 않다는 언급 등을 통해서 우리는 통일 후 남북 주민들 간의 심리적 갈등이 통합의 걸림돌이 될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통일 후 남북 주민들 간의 어떠한 심리적 갈등을 예상할 수 있을까? 첫째, 북한 주민들은 명분을 중시하고 집단의식, 책임감, 의무감이 강조되는 사회에서 성장하였다. 따라서 통일 이후 그들은 남한 주민들보다 자신들이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믿으면서 자아정체성을 유지하려 할 것이다. 둘째, 영화 속에서도 나타났듯이 남한 주민들의 북한체제에 대한 비판은 북한 주민들의 강한 심리적 저항을 불러일으킬 것이라 예상된다. 셋째, 문화적 차이로 인한 심리적 갈등을 예상할 수 있다. 예컨대 북한 청소년들은 남한 학생들의 자유분방한 모습, 학교에서 학생들이 선생님과 너무 거침없는 농담을 하는 모습 등을 보면서 사고방식에서의 차이를 경험할 가능성이 높고, 그래서 서로를 이해하기 힘들다고 생각하면서 심리적 갈등을 겪을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넷째, 법과 현실의 괴리로 인한 북한 사람들의 심리적 혼란을 예상할 수 있다. 예컨대 북한 헌법 제89조에 일반·직접·평등·비밀선거 규정이 있으나, 실제 비밀선거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점, 1991년에 제정된 가족법에 양성평등을 위한 남녀평등권 법령이 존재하나, 실제로는 양성평등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점 등 북한에서는 법과 현실의 괴리가 심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통일 후, 북한 사람들은 남한의 준법정신을 이해하기 어려워 할 것이고, 이로 인한 심리적 갈등이 발생할 것이다. 그렇다면 독일은 이러한 심리적 갈등을 어떻게 극복하고 있을까?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이다. 동서포럼은 매월 1회, 2박 3일간 진행되는 동서독인 대화 모임으로 1998년부터 현재까지 약 2천명 이상의 동서독인들 참여하고 있다. 동서포럼 외에도, 독일 정부는 심리적인 측면에서의 통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에서는 여전히 마음의 장벽 문제가 존재하고 있다. 따라서 독일의 교훈을 바탕으로 남북 심리 통합의 장애요소와 극복해야 할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단기적으로 ‘인식적 차원의 준비와 대비’가 필요하고, 중장기적으로는 ‘현실적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며 장기적으로는 ‘목표 지향적 정책’과 ‘이러한 정책을 제도적으로 확립’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인식적 차원의 준비와 대비’는 통일 전에 심리 통합을 위해 이루어져야 하는 작업이며, ‘현실적 차원의 노력’은 통일 전후의 시기를 고려하여, 마지막으로 ‘제도 확립의 노력’은 통일 후를 상상하며 준비해야 할 것이다.   통합은 교육에서 시작하여 교육으로 완료되어야 구체적으로 통합은 교육에서 시작하여 교육으로 완료된다는 신념으로 실행되어야 한다. 따라서 통일 전의 ‘심리 통합’을 위한 ‘교육’ 분야에서의 준비과정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초등학교 6학년 도덕교과서(5단원, 통일한국을 향하여)를 분석해본 결과, 통일의 필요성과 바람직한 통일의 과정에 대해서는 교과서에 잘 정리되어 있지만, 남북한이 어느 분야에서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서는 “북한에서는 개인보다 전체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남한 사람들은 개인의 능력과 일의 효율성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등 굉장히 추상적으로 설명되어 있었다. 어느 분야에서 어떻게 다른지를 각 교과목 별로 다루어 학생들이 유기적인 사고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더불어 초중고교 교과서의 ‘통일’교육 내용을 전반적으로 분석해 본 결과 초등학교의 경우 도덕과 사회 교과목에, 중학교의 경우 도덕, 생활국어, 사회, 국사 교과목에, 고등학교의 경우 생활과 윤리, 한국지리, 한국사, 법과 정치 등의 교과목에 통일교육이 편성되어 있었다. ‘심리 통합’ 문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분야를 가리지 않고 상대방의 가치 및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도덕이나 사회교과목에 편중되어 있는 통일 교육을 전교과로 확대할 필요성이 있다. 예컨대 음악, 미술 교과에서의 통일교육은 남북한의 미술 작품이나 음악을 직접 감상해봄으로써 동질성과 이질성을 정서적으로 느끼고 이해할 수 있도록 이루어져야 하며, 이는 마음의 통합에 상당한 도움을 줄 것이라 생각된다.   남북한 심리갈등 축소를 위한 미디어콘텐츠 활용 통일 후, 남북 주민 간에 어떠한 심리적 갈등이 발생할 것인지를 미디어콘텐츠를 활용하여 보급하는 것도 남북 주민들 간의 심리 통합에 도움이 될 것이다. 예컨대 앞서 분석한 영화 ‘코리아’를 통해서 남북 주민들 간의 심리갈등을 예상할 수 있듯이 드라마나 예능, 영화를 통해 서로의 문화 및 가치관을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미디어를 통해 마련할 필요가 있다. ‘남북의 창’이나 ‘통일전망대’와 같은 프로그램도 물론 북한의 문화를 이해하는데 상당한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이지만 상대적으로 시청자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독립적인 통일프로그램도 중요하지만 기존의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남북한의 현실 및 문화, 가치관 등을 이해할 수 있도록 콘텐츠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물론 ‘애정통일 남남북녀’, ‘이제 만나러 갑니다’ 등의 종편 프로그램에서 탈북자들의 생생한 증언을 다루거나, 가상결혼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지만 국민적 관심을 위해서는 기존의 지상파 프로그램에 북한을 이해하고 통일의 필요성을 강조할 수 있는 미디어콘텐츠를 녹여낼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성이 있다. 올해는 분단된 지 70년이 된 해이다. 이제 우리 대한민국은 한반도 통일을 위한 준비뿐만 아니라 통일 이후의 갈등도 미리 준비해야 한다. 특히 마음을 화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많은 문제가 생길 것이다. 그만큼 심리 통합은 통일한국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다. 심리 통합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은 남북 간의 의사소통 및 대화가 대등한 관계에서 출발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즉 갑을 관계가 되는 순간, 심리 통합은 더 어렵고 장기적인 과제가 될 것이다. 남북한의 통일 및 통합은 ‘1+1=2’가 아닌, 그보다 훨씬 더 큰 +α 만큼의 긍정적인 영향을 가져올 것이라 생각한다. 특히 정치, 행정, 교육, 사법 통합이 ‘2+α’의 영향력을 가져온다면, 심리 통합은 ‘2+∞’의 영향력을 가져올 것이다. 심리 통합이 그만큼 어렵기는 하지만 잘 이루어진다면 보다 강한 통일한국을 예상해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남북한 간의 교류를 강조해왔다. 즉, 교류가 이루어져야 통합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줄곧 주장하였다. 남북 간의 교류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귀납적 방법이 아닌 연역적 방법으로 심리 통합을 위한 예상시나리오 및 대안을 먼저 제시하고, 심리 통합을 이루기 위한 여러 학계 간의 유기적인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독일은 통일 20년이 지났지만 ‘마음의 통합’, ‘심리 통합’이 아직도 진행 중이다. 통일 전 편지 교환 등 ‘교류’가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심리 통합’이 아직도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독일의 사례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남겨준다. 남북한 심리 통합에 있어서 남한은 나와 다른 것을 포용 할 줄 아는 열린 사회가 되어야 하며, 북한은 세계를 향한 보다 넓은 마음가짐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베를린 장벽에 이런 글귀가 적혀있다고 한다. “작은 마을의 작은 사람들이 세기를 바꿀 수 있다.” 통합은 거창한 것이 아닌 작은 것에서부터, 즉 사람의 마음에서 시작됨을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다.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석사
  • 중립화에 관한 질의응답
    저자
    윤태룡(건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조교수)
    발간호
    2015-39
    [편집자 註] 오스트리아 비엔나 대학교 Heinz Gaertner 교수는 JPI PeaceNet 기고를 통해서 오스트리아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중국과 러시아가 통일을 지지하기 위해서는 통일한국이 중립화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남북은 충돌과 대치를 거듭하고 있고, 특히 북한은 핵무장까지 한 가운데 중립화가 과연 우리에게 가능한 선택일까? 이러한 궁금증과 우려를 풀고자 건국대학교 윤태룡 교수를 서면 인터뷰하였다. 윤태룡 교수는 최근 남북한 동시중립화가 힘들면 남한만이라도 먼저 중립화할 것을 주장한 바 있다. 편집자: 한인택 연구위원( ihan@jpi.or.kr )     1. 중립화를 추진하다가 자칫 우리의 평화와 안보가 위태롭게 되는 것은 아닌가?   현재의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지금 당장 중립화를 추진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남북한이 무력통일이나 일방의 체제붕괴로 인한 흡수통일이 아닌 쌍방합의에 의한 평화통일을 진실로 원한다면 중립화통일이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기 때문에 성공적 중립화를 위해 요구되는 여건을 갖출 때까지 스스로를 단계적으로 변화시켜 나가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2. 중립화에 대해 미국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미국의 지지 가능성은 중립화가 추진되는 시간적, 공간적, 국내외 정치적 맥락에 따라 달라질 것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가부를 말할 수 없다. 만일 지금 당장 한국이 뜬금없이 ‘남북한 동시중립화’ 혹은 ‘남한만의 중립화’를 추진할 것이니 미국은 한반도에서 철수하라고 주장한다면 이를 누가 합리적 제안이라고 보고 지지하겠는가? 이러한 주장은 6.25전쟁에서 북한의 무력통일 시도를 좌절시키고 그 후 북한의 재침을 억지하는데 큰 역할을 해온 동맹국으로서의 미국에 대한 매우 모욕적인 정책으로 비추어질 것이다. 그런 식의 중립화라면 우선 ‘남한만의 중립화’를 주장하는 본인도 절대 반대할 것이다.   하지만 한민족 스스로 먼저 변화되어 중립화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갖게 된다면, 미국이 무조건 반대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다시 말해, 미국은 조건을 따져보고 상황을 판단해가며 찬성, 반대 여부를 결정할 것이지, 무조건 반대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미국은 6.25전쟁 휴전을 전후하여 1953년 후반기에 한반도 중립화를 추진했었다. 한국의 반대에 부딪혀 결국 철회되었지만, 7월 초에 아이젠하워 대통령, 닉슨 부통령, 덜레스 국무장관, 국방장관, CIA국장, 합참의장을 포함하는 요인들이 모여 국가안보회의(NSC)를 몇 차례 거듭하여 한반도 중립화를 공식적으로 확정지었다. 또한, 한미동맹조약 공식서명 1주일쯤 전인 9월 24~26일에 걸쳐 뉴욕타임즈에 대서특필된 보도에 따르면, UN 총회가 열리는 기회에 미국 주도의 한반도중립화 방안이 UN 주재 소련, 영국, 캐나다, 프랑스, 인도 대사들에게도 전해졌다. 이는 남북한의 분단이 주변 강대국을 연루시킨 국제적 전쟁으로까지 비화하자, 미국이 한반도 문제의 영구적 해결을 위해 새로운 대안을 심각하게 모색했음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반대로 중립화가 무산되었다는 것은 한민족 자체의 태도가 성공 여부를 좌우함을 뜻한다.   최근 본인이 한 중립화 주장은 사실상 한반도 문제의 영구적 해결을 위해 미국이 이미 과거에 공식적으로 제안했던 한반도 중립화구상을 우리가 뒤늦게나마 수용하되, 지난 70년 동안 남북한이 더욱 이질화된 것을 감안하여 ‘남한만의 중립화’로 돌파구를 마련하자고 한 것뿐이다.   물론 한민족의 생각과 행동을 먼저 변화시킨다는 것은 지난한 일이지만, 우선 생각이 바뀌어야 행동(정책)도 변할 수 있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남북한의 긴장을 완화하고 통일국가를 형성하기 위한 국가대전략(grand strategy)에 관한 ‘인식공동체(epistemic community)’의 형성을 위해 힘을 쏟고 있다. 한반도 중립화방안이 보수와 진보, 여당과 야당을 불문하고 초당적 국가전략으로서 채택되어야만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이성적, 논리적으로 정치지도자들을 설득해야 한다고 본다. 정치지도자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선동이 아니라 이성적 논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런 논의에 학자, 지식인, 전문가들께서 먼저 동참하여 찬성론이든 반대론이든,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대토론(great debate)이 일어나길 희망한다. 어떤 통일방안이든 그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3. 중립화에 앞서서 강대국으로부터 불가침 약속을 받을 것이라고 하는데, 강대국이 우리에게 그런 약속을 해 줄 유인이 있는가? 만약 불가침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강대국이 우리에게 군사적 위협을 가하거나 침공하는 경우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역사적으로 강대국이 불가침조약이나 안전보장공약을 지키지 않은 경우들이 발견되기 때문에 이는 무시할 수 없는 가능성이다.    중립화되는 국가와 중립을 보장하는 주변 강대국이 공식적으로 조약을 맺는 “중립화조약이 언제나 지켜진다는 보장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당연히 "아니다(No)"일 수밖에 없다. 국제정치에서 전쟁의 가능성(possibility)은 언제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전쟁의 개연성(probability)은 구체적인 전략적 상황에 따라서 다르다. 따라서, 본인은 당연히 코스타리카의 경우와 같은 비무장 중립화를 주장하지 않는다. ‘남한만의 중립화’든 ‘남북한 동시중립화’든 스위스나 오스트리아의 경우처럼 강력한 군사력을 유지할 것을 상정한다. 오히려, 필요에 따라서는 중립화 후에 군사력은 현재의 수준보다 더욱 강화될 수도 있다. 주변 강대국의 세력균형이 현저하게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 강력한 패권국이 등장한다면 당연히 중립화의 지위는 훼손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국내정치에서도 법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범법자는 있게 마련이라는 사실이 법이 아무런 효과도 없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 것처럼, 중립화조약이 수반하는 불가침조약, 안전보장공약 등이 훼손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 자체가 조약, 공약 등이 모두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중립화조약도 일종의 안보레짐으로서 일정하게 국가들의 행위를 규율하는 효과가 있다. 국제정치에서 자국을 지키는 최후의 수단은 군사력이고, 그 밖에 타국의 자국에 대한 안보공약, 혹은 다자간 안보레짐의 형성, 국제법 등은 보조적 수단이라고 볼 수 있다. 2가지 이상의 수단을 모두 갖는 것이 군사력 하나만 갖는 것 보다는 나은 것 아닌가?   4. 만약 남한이 먼저 중립화를 선택한다고 가정할 경우, 중립화된 남한을 어떻게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가?     우선 ‘남한만의 중립화’를 남한의 무장해제로 오해하지 말 것을 강조하고 싶다. 중립화 후에 남한이 지금보다도 더 강력한 방어적 군사력을 갖추는 것에 대해 본인은 반대하지 않는다. 미군이 철수하더라도 보장국(guarantor)으로 참여하는 미국, 중국, 러시아는 만일 북한이 남한에 대해 핵공격을 포함한 군사적 공격을 할 경우, 이러한 선제공격에 대해 보복공격을 할 조약상의 정당한 권리를 갖게 된다.   본인이 ‘남한만의 중립화’를 주장하는 것은 그 자체를 궁극적 목표로 삼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1단계에서의 그러한 중립화가 남북관계에 있어 긴장완화 효과를 유발하여 2단계의 ‘북한만의 중립화’를 유도할 가능성을 증가시킬 것이고, 더 나아가 최종 3단계의 ‘남북한 동시중립화통일’로 귀착할 가능성을 늘릴 것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로드맵: (준비단계)남북대화/긴장완화 → (1단계)남한만의 중립화 → (2단계)북한만의 중립화 → (3단계)남북한 동시중립화].   현재의 북한은 늘 남한과 미국이 북한 정권을 무너뜨리려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실제로, 김일성 사후에 남한과 미국은 그런 모습을 자주 보여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니 북한은 고양이에게 몰리는 쥐와 같은 신세에서 극단적인 핵정책을 펴온 것이다. 기존과는 달리, 남한만의 중립화로 시작하는 통일을 위한 로드맵구상은 긴장완화 효과를 가질 것으로 희망한다.   남한의 중립화는 장기적으로 북한에게 남한으로부터의 위협을 크게 낮추는 효과가 있을 것이고, 그로 인해 꽤 시간이 걸리겠지만 궁극적으로 북한의 민주화로까지 연결될 공산이 크다. 외부위협을 빙자하여 독재체제를 강화해온 북한이 핑계로 삼을 외부위협이 크게 줄어든다면, 3대 세습의 독재체제는 최소한 중국식의 집단지도체제로 변경될 것이다. 북한이 외부의 위협을 덜 느끼게 되면, 좀 더 경제발전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고 북한 주민들의 생활수준이 높아지고, 북한과 미국 혹은 일본과의 관계도 정상화되어 “불량국가”에서 “정상국가”로 변한다면 북한은 결국 민주화될 것이다. 우리는 북한에게 통일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남북한관계가 통일이 되든 말든 별 차이가 없을 정도로 될 때까지 꾸준히 기다려야 한다. 통일 이후에 정치적으로 매우 불안한 ‘나쁜 통일’이 되는 것보다는 아무리 길더라도 ‘좋은 분단’ 상태를 유지하는 게 낫다.   5. 남한이 단독으로 중립화를 시도할 수 있을 정도로 남북한 관계가 개선되면 남한의 안전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과 관련하여, 어떻게 하면 그럴 정도로 남북관계가 개선될 수 있는가? 북한의 비핵화는 어떻게 달성할 것인가?   지금처럼 북한에 대해서 양보적 조치를 먼저 취하라고만 계속 주장하기보다는 우리가 먼저 궁극적으로 북한을 집어삼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명시적으로 보여주는 효과가 있는 단계적 중립화통일론 추진 자체가 긴장완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사실, 단계적으로 “나쁜 분단 → 좋은 분단 → 좋은 통일”로 가야할 텐데, ‘남한만의 중립화’ 추진은 "좋은 분단"으로 가는 길이라는 게 제 생각이다. 현재의 “나쁜 분단” 상태를 변화시키는데 도움이 된다면 ‘남한만의 중립화’를 추진할 이유는 충분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남한만의 중립화’와 ‘남북한 관계의 개선’은 일방향적이 아니라, 쌍방향적 인과관계를 혹은 서로를 강화하는(mutually reinforcing) 관계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사실 굳이 통일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관계가 개선되었을 때 통일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일 것이다.   북한이 이미 사실상 핵국가인 상태에서 비핵화는 그 어떠한  제재에 의해서도 실현되기 힘들 것이다. 북한이 안보상의 위협을 느끼는 한 핵무기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므로 북핵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도 크게 긴장완화 효과를 갖게 될 ‘남한만의 중립화’를 먼저 추진하자는 것이 저의 핵심 주장이다. 최근에, 미국이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THAAD) 배치와 관련하여 우리를 중국과의 대결상태로 몰아가는 것에 대해 깊은 생각 없이 한미관계의 강화라는 측면에서 말려들어가는 것은 우리의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 우리는 미국과 중국이 화해, 타협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우리의 독자적 목소리를 이제는 내야한다. 물론 미국을 배신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고, 남북관계 개선을 향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할 뿐만이 아니라, 미중관계의 개선을 위해서도 노력해야 한다.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임시방편적 정책이 아니라, 좀 더 일관성 있는 우리 나름의 외교정책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 주변에서 서로 싸우는 자들이 있으면, 누구  편인지 모호하게 행동할 것이 아니라, 누구 편도 들지 않을 것임을 명시적으로 밝히고, 화해하도록 돕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다. 그러기 위해서도, 한민족(남북한) 스스로 먼저 화해하는 방향을 취해야한다. 그게 가장 기본이다. 남북한이 자신들끼리도 스스로 화해하지 못하면서, 남더러 화해하라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그래서, 제가 제일 먼저 강조한 것이 준비단계로서 남북한의 대화 시작과 화해이다. 그게 모든 논의의 시초이고, 그게 안 되면 모든 게 공염불이라는 걸 인식해야 한다. 동시에, 남한이 북한의 붕괴나 흡수통일을 추진하지 않음을 명백히 보여줄 수 있는 평화통일의 확실한 비전을 제시하고 꾸준히 실천해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자체가 남북한 대화시작과 화해의 물꼬를 트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본인은 한국 정부가 인권 문제와 관련하여 북한을 국제사회에서 공공연히 몰아붙이고 유엔인권사무소를 한국에 유치한 것이 한민족의 장기적 이익에 배치하는 정책이라고 본다. 덧붙여, 그동안 너무 미국에 의존하는 것이 일상화되다 보니 (심지어 주권의 핵심중의 핵심인 전시작전통제권까지 내어줄 정도가 되다 보니) 미국이 한국의 주권을 대놓고 무시하는 (탄저균의 불법적 한국반입과 같은) 현상이 종종 발생하는 것이다. 미중 간의 경쟁구도가 그 누구에게도 이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양국이 다 잘 알고 있다고 본다. 문제는 양국이 전형적인 안보딜레마(security dilemma)에 빠져서 벗어나지 못하고 군비경쟁에 몰입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악순환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사드논쟁에서 볼 수 있듯이 미국 내 군산복합체의 막강한 세력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한국이 거기에 휩쓸리는 것은 우리를 위해서도, 동북아의 평화를 위해서도, 그 누구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한국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미중 간의 군사적 대결구도에 대해서 만큼은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고, 중재 역할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현재 핵무기를 제외한 한국의 화력(firepower)은 세계7위에 달한다. 경제력도 G20에 들어갈 만큼 커졌다. 이제 한국은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약소국이 아니다. 중견국으로서 좀 더 적극적으로 동북아의 평화체제가 정착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외교정책을 구사할 때가 되었다. 한국은 미국의 눈치를 보며 질질 끌려다니는 패턴에서 벗어나야 한다. 무엇보다도 한국은 한반도의 중립화가 미국의 이익에도 부합한다는 것을 설득해야한다. 우선 학계에서 이런 방향의 논의가 있어야 한다.   6. 마지막으로 추가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하나 지적하고 싶은 것은, 중립화에 대한 소극적, 부정적, 수동적 이미지에 관한 것이다. 그동안 중립화는 대개 지정학적으로 강대국들의 세력 다툼의 중심에 놓여있는 약소국에 대해서 강대국들이 일종의 완충지대 설정의 필요성을 인정하여 일방적으로 강제하는 성격이 짙었다. 하지만, 좀 더 상상력을 발휘하여 과거의 경험을 뛰어넘는 역발상의 가능성을 타진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한국과 같은 중견국은 최근 미중 간의 갈등 사이에서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명칭의 애매모호하고 양쪽으로부터 오해받기 쉬운 정책 보다는 보다 적극적, 긍정적, 능동적 정책으로서의 ‘남한만의 중립화’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사실 국제정치에서 중립화(neutralization)란 국제법적으로 영세중립(permanent neutrality)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그 중립국의 국민들 다수가 원한다면 국민투표나 국회의 의결 등을 통해서 그 지위를 해소하고 일반국가로 돌아갈 수도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강을 건넌 후에는 배를 버릴 수도 있고, 금방 또 다른 강을 만날 것으로 판단한다면 그 배를 들어 운반하며 상비수단으로 늘 갖고 다닐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 우리에게 있어서 중립화라는 수단은 한반도가 또 다시 강대국들의 세력다툼에 의해 원치 않는 전쟁터가 되는 것을 막고, 분단을 극복하려는 민족적 염원을 달성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될 때 사용될 수 있는 수단인 것이지 중립화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다. 본인은 중립화가 매우 세련된 방식으로 잘 이용되면 그런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물론 주도면밀한 계획이 없이 오용하면 역효과가 날 수도 있지만, 구더기 무서워서 장조차 담그지 못해서야 되겠느냐는 입장이다. 구더기가 생기지 않도록 잘 관리하며 장을 담가야할 것 아닌가!   제한된 지면에서 상세히 논할 수 없었으므로, 관심 있으신 분들은 다음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Tae-Ryong Yoon, "Neutralize or Die: Reshuffling South Korea's Grand Strategy Cards and the Neutralization of South Korea Alone," Pacific Focus, Vol.30, No.2 (August 2015) 윤태룡, “국내외 한반도중립화 논쟁의 비교분석: 찬반논쟁을 넘어서,” , 14권 3호(2013). 現 건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조교수. 고려대 영어영문학과(학사)/정치외교학과 대학원(석사)을 졸업하고, 美컬럼비아대 정치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 제주평화연구원 연구위원,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HK연구교수를 역임함. 주요 연구분야는 동맹이론, 한미일 관계, 동아시아 국제관계, 영토분쟁 등이며, 최근 연구로는 “Balance-of-Fear Theory and Korea-Japan-U.S. Relations, 1945-1953", "국내외 한반도 중립화논쟁의 비교분석”등이 있음.
  • 아시아 패러독스(Asia Paradox)와 한일 간 국가정체성
    저자
    박범준(서울대학교 석사과정)
    발간호
    2015-38
    [편집자 註] '차세대의 목소리'는 젊은 세대의 신선한 시각을 통해 평화와 안보문제를 살펴보고, 갈등해소와 평화정착을 위한 새로운 방안을 논의하는 JPI PeaceNet의 기획 시리즈입니다. '차세대의 목소리' 기획 시리즈의 발간을 계기로 평화와 협력을 위한 진지한 대화가 차세대와 기성세대 사이에서 시작되기를 기대합니다. 편집자:한인택 연구위원( ihan@jpi.or.kr )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에 관한 논의는 안보적 차원에서의 군사적 균형이나 경제협력, 통합을 통한 분쟁 억제에 관한 논의가 주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최근 동아시아에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역사문제에 대해 ‘아시아 패러독스’라는 표현이 사용되고 있는데 이는 이론적으로 관계 호조 요소로 간주되는 동아시아 각국 간 경제협력의 심화에도 불구하고, 역사인식의 차이로부터 오는 갈등을 의미한다. 물론 현실주의적 관점에서 국가 간 힘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기본적인 것이며, 경제협력을 통해 공통이익을 증진해 가는 것 또한 중요하다. 그러나 아시아 패러독스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이러한 조치들만으로는 상이한 역사인식의 충돌로 인한 불신은 계속될 것이며, 비록 이것이 심각한 군사적 분쟁으로 이어지지는 않을지라도 동아시아 국가들 간의 협력 증진은 어렵다.   많은 이들이 이러한 동아시아 정세를 바라보면서 유럽이 정치적·경제적 통합을 통해 회원국들 간의 전쟁 가능성을 희석시키고 지역평화를 이룩한 점을 언급하며, 동아시아가 추구해야 할 하나의 모델로 유럽연합의 지역통합 조치를 든다. 물론 유럽연합은 나름의 문제들을 직면하고 있으며, 유럽연합 형성 시기에 유럽 각국이 처해 있던 환경과 현재의 동아시아의 환경이 다르므로, 이를 단순히 비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하지만, 반드시 유럽연합 방식의 통합이 아닐지라도 보다 심화되고 제도화된 동아시아의 정치적·경제적 통합이 모든 동아시아 국가들의 이익에 부합하며, 지역정세 안정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는 이들이 많다. 한편, 지역통합 노력이 동아시아에서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나, 역사문제로 인해 각국 간 관계가 악화되어 협의가 어려웠다. 이렇듯 지역통합 등 다양한 이슈들은, 잘 알려져 있지만 잘 이해되고 있지는 않은 ‘역사문제’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문제의 해결은 매우 어렵다. 따라서 이를 ‘관리’하며 국가 간의 관계를 증진하려 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이는 임시방편으로, 항상 문제가 불거질 여지를 남겨놓는 것에 불과하다. ‘역사문제’는 흔히 한일이나 중일 간의 역사인식 차이로부터 생기는 문제로, 국가정체성의 충돌로 발생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관련국들의 국가정체성에 관한 고려 없이는 이 문제의 해결은커녕 제대로 된 이해조차 불가능하다. 동아시아의 국제관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국력이나 경제관계만이 아닌, 독립요소로서 ‘역사인식’이 각국, 그리고 이들의 국가정체성에 있어서 무엇이기에 이처럼 중요시되고 국가 간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국가정체성 분석에 있어 어려운 것은 ‘국가정체성’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 것인가이다. 이에 관해서는 다양한 접근법이 있지만, 이 글에서 필자는 국가정체성을 '일국이 추구하는 국가적 이상과 그 이상이 설득력 있고 논리적으로 타당하기 위한 구성요소들' 이라고 정의하겠다. 물론, 국가적 이상이라는 것은 한 사회에 다양하게 존재하며, 사회의 변화와 각 시기의 정치구도에 의해 각 이상들 간의 중요도 및 우선순위가 변할 수 있다. 또한, 국제정세 등 외부적 요인들에 따라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구성요소들 역시 변형 혹은 타협될 수도 있다. 따라서 국가정체성을 고려하기 위해서는 각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국가적 이상, 그 이상들을 추구하는 정치세력들 간의 역학구도, 그리고 국제정세에 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이 모든 것을 논하기보다는 한국과 일본의 국가정체성을 중점적으로 역사갈등과 지역통합의 가능성을 다루고자 한다. 한국에서 가장 강력하게 인식되는 국가적 이상은 ‘통일’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통일’이라는 이상은 단지 기술적으로 남한과 북한이 정치적 통일을 이루는 것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발생될 것으로 기대되는 안보상황 개선, 경제성장 기회, 아시아 대륙과의 진정한 연결, 국력증강 등의 다양한 이상을 포함한 개념이다. 통일이라는 이상을 유지하는 데는 여러 요소들이 있지만, 이 중 한일 간 역사문제와 관련되는 것은 ‘미완의 광복’으로서의 통일이다. 한국에서는 8월 15일을 광복절, 즉 일제로부터 독립을 기념하는 날로 의미를 부여하는 반면, 일본은 이 날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종전기념일로 여긴다. 뿐만 아니라, 일본 정부는 한국인들의 식민지 경험이 부정적이었다는 것을 인정한 적은 있어도, 단 한 번도 일제가 조선을 식민지화한 행위의 정당성을 부정한 적이 없다. 조선의 식민지화가 부당한 것이 아니라면, 광복절이 갖는 의미는 퇴색된다. 한국의 독립은 본래 있어야 할 정당한 ‘빛’이 복원된 것이 아니라, 단순히 강대국들 간 힘의 논리에 인해 부수적으로 생산된 ‘우연’일 뿐이게 되는 것이다. 만약 독립에 국가적 의미가 없고 단지 우연일 뿐이라면, ‘미완의 광복’은 없으며, 한국은 굳이 애써서 통일을 지향할 의미가 없어진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은 이미 한일합병 당시에 독자적인 국민국가(nation state)이기를 포기하여 정당하게 일본의 일부가 되었던 것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결국 대한민국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통일이라는 이상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광복’의 의미가 참이어야 하며, 한일합병이 부당했던 것으로 인정되어야 한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의 경우 현재 대중적으로는 헌법 9조에 기초한 “평화국가”로서의 국가정체성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지만, 아베 총리를 위시한 정치지도층의 일본의 명예를 중시하는 이상이 점차 평화국가 정체성을 개조하려 한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자랑스러운 일본’을 국가적 이상으로 인식하고 있는 현재 일본의 정치지도자들에게 있어 한일합병의 부당성을 인정한다든가 위안부 문제 등의 만행을 인정하는 것은 그들의 ‘자랑스러운 일본’을 모독 내지 부정하게 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와 같이, 현재 한일 간의 갈등은 국가정체성 충돌의 결과로 볼 수 있다. 한국에게 있어 과거의 일본제국을 부정하는 것은 현재 구축된 국가정체성을 유지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 반면, 일본에게 한국의 국가정체성을 인정하는 것은 일본이 추구하고자 하는 ‘자랑스러운 일본’이라는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으로 인식된다. 또한, 이러한 한국과 일본의 국가정체성은 상당히 폐쇄적인 성격을 보인다. 양국 모두 자국의 이상만을 추구하며, 그러한 이상 추구가 다른 국가들에게 미칠 영향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 다양한 국가들로 이루어진 동아시아 지역에 대한 이상을 찾아보기 힘든 것이다. 이는 ‘국가’는 단순히 영토로 지정된 하나의 공간이 아니라 국민(nation)의 운명공동체라는 유기적 인식이 있는 반면, 동아시아지역의 경우, 이러한 유기체들이 존재하는 무기체적 공간으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국민국가(nation state) 중심적 인식이 폐쇄적인 국가정체성의 근원이며, 나아가 역사문제, 그리고 여타 국가 간 갈등의 요인이라면 이를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한편, 이러한 인식의 대안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운명공동체로서 동아시아라는 지역을 인식하여 지역이상, 나아가 지역정체성을 형성해, 이를 각국의 국가정체성을 견제하는 요소가 될 수 있게끔 하는 것이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한·일을 포함한 동아시아 각국의 국민들이 자국의 국가정체성에 대해 건전한 의심을 품어보고, 타국의 국가정체성을 이해하는 한편, 운명공동체로서 동아시아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한 시도로, 한국의 ‘진정한 광복’ 추구와 일본의 ‘자랑스러운 일본’이라는 이상을 조화시키는 방법을 탐구해보는 것을 들 수 있다. 각국의 국가정체성에 대한 고려 없이는 지역평화와 협력을 위한 그 어떤 조치도 또 다른 충돌이 발생하기 전까지의 미봉책에 불과할 수밖에 없다.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석사과정
  • 2+2 남북고위급회담: 우린 정말 협상을 잘했을까?
    저자
    이성우(제주평화연구원 분쟁해결연구부장)
    발간호
    2015-37
      이번에 진행된 이른바 2+2 남북고위급회담을 협상론의 측면에서 분석함으로써 국익을 제고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번 회담의 결과에 대한 이해를 위해 하나의 에피소드가 필요하다. 초등학교 4학년인 아들이 아빠에게 무언가를 해 달라는 요구조건이 관철되지 않자 아빠의 팔을 뒤로 비틀면서 이른바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아빠의 팔이 뒤로 꺾이고 “아!”하고 비명을 지르면 부자 간에는 일종의 묵언의 합의가 이루어진다. 아들은 “아빠가 고통받고 있구나”하고 생각하고 아빠는 “내가 고통받고 있는 한 아들은 다른 요구를 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생각하게 된다. 아빠의 엄살(fraggle) 전략이 아들의 협상 전략을 효과적으로 제약하는 것이다. 이는 자신에게 손실이 발생한다는 착각을 상대방에게 신뢰하게 함으로써 협상에서 불리한 의제를 선제적으로 회피하고 협상 비용을 줄이는 일종의 기만술(deception)이다.   북한의 ‘목함지뢰 공격’에 우리는 ‘확성기 방송’으로 대응했다. 이에 북한은 “확성기를 타격하겠다.”고 위협했고 우리는 “원점타격과 선조치 후보고”로 맞받아쳤다. 그 사이에 남북한은 서로 포 사격을 교환했지만 이는 양쪽 모두 구체적인 목표물을 타격하지 않는 위협사격이었다. 위협사격을 제외하면 앞의 ‘맞대응 전략(Tit-for-Tat)’은 실제 행동(action)이고 그 다음의 맞대응은 구두 협박(verbal threat)이다. 문제는 북한이 남한의 대북 확성기 방송이 북한의 정권에 타격이 큰 것처럼 우리에게 알렸고 우리는 그 엄살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우리는 북한의 ‘벼랑 끝 전술(brinkmanship)’이나 과장된 위협(bluffing)에 익숙한 나머지 북한의 엄살을 간과했다. 그 결과, 한반도 평화에 정작 중요한 전략적 이슈와 정책 현안이라고 할 수 있는 북한의 핵개발, 미사일 실험을 포함한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개발, 박왕자 피격,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에 대한 사과와 재발 방지에 대한 논의가 협상 테이블에서 제외되었다.   북한의 도발을 우리 국익의 손실과 관련해 비유하자면, 우리에게 천안함 피격과 연평도 포격이 중상이었다면 목함지뢰는 비교적 경미한 상처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이번 고위급회담이 있기 전까지 우리 정부는 천안함 피격과 연평도 포격과 같은 도발에 대해 북한의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남북화해협력의 전제조건으로 요구해왔다. 확성기공격에 대한 북한의 엄살로 2+2 남북고위급회담의 프레임은 목함지뢰에 대한 사과 문제에 매몰되어 정작 한반도 평화에 전략적으로 중요한 문제는 의제로 언급조차 못했다. 북한은 남한의 확성기 방송을 통한 대북심리전이 북한에게 치명적인 것처럼 고통을 과장해 남한 당국자에게 믿게 함으로써 북한의 비핵화와 천안함 같은 주요 현안을 의제 목록에서 선제적으로 제거하는 효과를 거두었다. 북한은 천안함 피격과 연평도 포격에 대한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 없이 합의문 6조의 “다양한 분야에서 민간교류의 활성화”를 얻어냈다.   북한은 3대가 권좌를 세습하는 공산주의 왕조체제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구 상에 유래가 없는 전체주의 국가로, 주민들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다. 한편, 최근 주민에 대한 북한 당국의 통제력 이완 가능성이 논의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방에 배치되어 있는 북한군 병사들이 남한의 대북 확성기 방송에 설득될 만큼 북한 당국의 통제력이 취약할 것이라는 기대는 환상에 가깝다. 북한군 초병들이 우리의 확성기 방송으로 정신전력이 무너지고 급변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면, 역설적으로 우리는 북한과 심각한 협상을 할 필요 없이 김정은의 몰락을 기다리면 될 것이다.   합의문의 더욱 심각한 취약점은 3조 “남측은 비정상적인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한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모든 확성기 방송을 중단한다”는 부분이다. 북한에 의해서 발생하는 비정상적인 사태는 ‘군사적 도발’이거나 ‘대량살상무기의 개발 혹은 실험’인데 북한의 도발에 대한 우리는 대응은 확성기 방송, 다시 말해 ‘구두 경고’에 그치겠다고 우리 스스로 대응 수준의 한계를 정해 버린 것이다. 남북 간 대화와 협상의 역사를 돌이켜 볼 때 협상 결과가 북한에게 유리하게 이용될 여지가 크다는 우려를 자아내는 대목이다.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을 피하고 평화와 번영을 공동으로 추구하는 남북관계가 바람직하다는 것은 우리 정부와 국민 모두의 여망이다. 궁극적으로 한반도 평화통일이라는 목표는 대화와 타협이라는 평화적 방법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하지만 협상 과정에서 우리가 북한에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 한반도에 조성된 군사적 긴장으로 우리의 주식, 외환, 무역에 악영향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남북한의 고위급회담은 시의적절했다. 하지만 ‘비핵·개방·3000’과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목표로 설정한 북한의 비핵화와 군사적 도발에 대한 사과 및 재발 방지 약속은 달성되지 않은 상태로 결국 화해협력 정책을 답습하는 길로 들어서고 있다. 이번 고위급 접촉의 결과인 공동합의문에 분명 긍정적인 측면이 존재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권의 교체에 따라 변화되지 않는 ‘대북정책의 원칙’ 마련이다. 現 제주평화연구원 연구위원. 미국 University of North Texas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미국국제정치학회가 주관하는 International Studies Quarterly의 Referee로 활동한 바 있음. 저서로는 『2011 한국인의 평화관: 통일정책과 여론』 및 『2010 한국인의 평화관: 외교정책과 여론』 등이 있음.
  • 북한 급변사태를 통일의 기회로
    저자
    황병무(국방대학교 명예교수)
    발간호
    2015-36
      지난 6월 말 북경 칭화 대학에서 제 4차 세계평화포럼이 열렸다. 전 외교 담당 국무위원 탕자쉬안 회장이 주재하는 연례 국제회의로 세계 각국의 총리와 외교부 장관, 대사를 역임한 관료와 정부의 싱크탱크 역할을 담당하는 전문가들이 모인 회의였다. 필자는 동북아 갈등과 안보협력 분과에 참석했었다. 이 분과에 참석한 미국 부시 정부 때 안보보좌관을 지낸 스티븐 해들리 박사는 ‘북한 급변사태와 안보적 고려’라는 주제로 장차 북한의 내부 문제가 동북아 안정과 평화에 큰 이슈가 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해들리 박사는 북한 엘리트의 분열로 인한 무력 분쟁 가능성, 내정의 안정화, 난민 문제와 인도적 지원 문제, 핵무기 통제 문제 등으로 주변국 간의 갈등과 대립이 야기될 수 있기 때문에 주변국들은 북한 위기관리에 전향적 태도로 협력해야 함을 강조했다. 어느 한 곳에도 우리가 바라는 통일의 기회를 언급하지 않았다.   북 핵 폐기와 안정화 문제 분리 대응해야   북한 급변사태가 발생하면 주변국의 최대 관심은 북한 내부 혼란의 조기 안정과 대량살상무기의 통제와 폐기에 모아질 수 있다. 내부 혼란이 주변국으로 확대돼 주변국들 간에 관계가 악화 되지 않기를 바랄 것이다. 위기의 국제적 확산을 막기 위한 난민의 봉쇄와 인도적 지원, 특정 국가의 개입을 막기 위해서라도 국제협의체 구성을 서두를 수 있다. 북한 문제가 국제 관리로 되면 될수록 핵무기 제거를 제외한 한반도 문제에 우리의 발언권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정부는 북한 위기 관리를 남북한 내부 문제와 국제 관리 분야로 구분해 주변국 및 북한의 신생 정부와 협상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북 핵 통제와 폐기는 국제 관리로, 북한 위기의 안정화 문제는 남북한 내부 문제로 분리해 대응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선 북한 내정 안정, 후 핵 폐기 순이 돼야 한다. 핵 폐기를 앞세울 때 외세 개입으로 북한 안정화 문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만일 개혁, 개방 노선을 택하는 북한의 신생 정부가 들어선다면 핵 문제는 평화적으로 해결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신생정부는 미, 중을 비롯한 주변국들로부터 주권과 영토 보전의 보장을 받은 후 핵을 포기했던 1994년의 우크라이나 모델을 선호할 수 있다.   북중 국경으로의 대량난민 이탈이 중국의 군사개입의 빌미가 된다고 미리 겁을 먹어서는 안 된다. 2009년 미얀마 코캉(한족)난민들의 운남성으로 대거 탈출한 사건은 중국군의 개입을 촉발하지 않았다. 중국 정부는 운남성 국경지대에 난민 캠프를 설치해 월경한 군대와 난민 3만 여명을 수용하고 미얀마 사태가 진정된 후 돌려보냈다. 미얀마 정부도 이를 사전 약속했었다.   문제는 우리 정부의 의지와 능력   우리 외교의 첫 과제는 주변국으로부터 북한 관할권을 인정받는 문제이다. 정부의 태생이 한반도 남쪽에서만 합법 정부였고 현재는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해 북한은 국가성을 국제법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지난 5월 말 싱가포르 아시아안보회의에서 우리 국방장관이 일본 국방상에게 만약 일본이 미국 지원을 위해 북한을 무력 공격 시 우리와 사전 협의할 것을 요구했으나 일 국방상은 답변을 회피했다. 이 문제는 외세의 개입을 저지하는 방향에서 정치적으로 풀어야 한다.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이나 난민대책을 우리가 주도하면 주변국 간 발생할 수 있는 긴장이나 부담을 덜어주어 주변국 이익이 된다고 설득해야 한다. 중국이 갖는 우려는 한미중 협의체를 통해 통일 후 한미 동맹과 주한 미군의 주둔 및 역할 변화를 논의, 해소해야 한다. 통일 한국이 동북아 평화와 안정 및 경제 번영에 기여한다는 구상을 구체화 시킬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정부가 북한 위기관리의 주도권을 가진다 하여도 북한에 구세력이 참여하는 신정부 수립을 방지할 수 있는 방법은 더욱 큰 문제이다. 북한에 대한 정보 역량이 풍부하지 못하다. 당이 군을 통제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당내의 ‘누가’ 군을 통제하는가? 대북 공작은 ‘선 당심 확보, 후 군심 해체’의 방향으로 나가야 희생과 비용을 줄이고 위기를 조기에 마무리 할 수 있다. 실시간 변동이 심한 북 엘리트의 권력투쟁 내부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서라도 북한 내부 정세에 대한 귀와 눈이 많이 필요한 이유이다.   최악의 사태는 북한의 위기가 장기화되면서 안정화 전망이 불확실할 때이다. 북 엘리트의 분열로 어느 종파가 중국이나 남한 정부에 개입을 요청할 수 있다. 중국이 바라는 정치세력의 집권을 위해 군사개입 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주변국과 공조로 막아야 한다. 우리는 단독 군사 개입의 명분을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안정화 작전의 목표와 방향을 잘 세우고 이를 실수 없이 실행해야 한다. 저항집단의 진압과 북한 주민에 대한 선무공작을 동시에 펼쳐야 한다. 북 신생 정부와 사회·경제 통합과 평화통일 문제의 협상 시 북한 주민들의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안정화 작전의 70은 북한 주민들의 마음을 얻는 사회, 심리면의 선무공작의 문제로, 나머지 30은 군사작전의 문제로 볼 수 있다. 북한에도 돈벌이와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300만 명 이상의 장마당 세대가 존재한다. 남한에는 탈북자 3만 명에 이르고 있다. 이 중 선발된 인원을 선무공작대로 앞세울 수 있다. 탈북자 관리에 보다 신경을 써야한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사실은 북한 주민들이 남한 주민들의 삶을 부러워하도록 만드는 일이다. 이 때문이라도 남북 주민 간 인적·물적 교류 및 협력은 끊임없이 실시, 확대되어야 한다. 이는 평화통일 기반 조성의 핵심이다. 現 국방대학교 명예교수. 연구 분야는 국제정치. 서울대학교 외교학과에서 학사, 석사를 받은 후, 미국 캘리포니아대 리버사이드에서 정치학 박사를 취득함. 노무현 정부 시 국방발전자문위원회 위원장, 국제정치학회 회장(1995년)을 역임함. 주요 저서로는 ‘신 중국군사론’, ‘한국 안보의 영역, 쟁점, 정책’ 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