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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럼프의 경제적 국수주의와 한미관계의 미래
    저자
    우정엽(아산정책연구원 워싱턴 사무소장)
    발간호
    2016-17
      미국 현지시각으로 5월 3일 저녁, 인디애나 주의 공화당 경선이 트럼프의 승리로 끝나면서 그동안 트럼프의 유일한 상대로 여겨졌던 크루즈 상원의원이 경선 포기를 선언했다. 케이식 오하이오 주지사와 한국식의 후보 단일화까지 시도했던 인디애나 주에서 트럼프가 60%에 가까운 표를 얻으며 승리하자, 더 이상 경선을 이끌어갈 동력을 상실한 것이다. 동시에 트럼프는 공화당 경선의 승리를 선언했으며, 그동안 많은 논란을 빚었던 공화당 내부도 트럼프를 후보로 인정하는 모양새다. 그동안 트럼프에 대한 말을 아끼고, 소위 중재 전당대회를 염두에 두던 공화당 전국위원회도 인디애나 경선이 끝나면서 트럼프를 공화당 후보로 인정하면서, 그에게 단결하자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트럼프가 올해 초까지의 예상을 깨고 공화당 경선의 선두주자로 떠오르자 많은 전문가들은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가 될 수는 있겠지만, 본선에서는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대통령에 당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의 여론조사를 보면 그러한 예측을 하던 사람들이 언급한 바를 번복해야 할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적어도 트럼프가 후보가 되면 당연히 클린턴이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말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번 미국 대통령 후보 경선은 초반부터 상당한 흥미를 유발하면서 한국의 선거 못지않게 한국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 충격적인 재미의 선두에는 트럼프가 있었다. 각종 TV 프로그램에 등장하며 유명세를 쌓은 트럼프의 경이로운 언행은 일반 대중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러던 그가 다른 후보들을 멀찌감치 따돌리고 선두에 서면서 그가 가진 외교관이 우리로 하여금 흥미의 수준을 넘어 관심을 갖게 하였다. 많은 언론 보도를 통하여 소개된 그의 외교안보관은 많은 이들을 놀라게 하였다. 한미동맹을 비롯한 미국의 동맹체계에 대한 그의 발언은 미국의 주류 외교안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외교안보 분야에 대한 그의 견해는 그의 선거전략 전체를 관통하는 흐름인 경제적 국수주의의 관점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한마디로 미국이 대차대조표 상 현금의 흐름에서 이익을 봐야만 한다는 것이다. 비용의 관점에서 현재의 동맹체계가 미국에 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트럼프의 핵심주장이다. 그러나 트럼프식 대차대조표는 단기적으로 나타나는 현금의 흐름만을 중시한다. 왜 동맹이 형성되었는지, 동맹관계를 통하여 미국이 획득하고 있는 전략적 이익은 무엇인지 고려하지 않고 있다. 미국이 현재의 국제질서가 유지되면서 얻고 있는 이익이 무엇인지, 그 질서가 불안정해질 경우 미국이 감수해야 할 비용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려가 없는 것이다. 이에 대한 비판은 그동안 많은 글들을 통해서 소개된 바 있다. 그러나, 미시적으로 한국의 방위 무임승차론에만 우리의 논의를 한정하다 보면 이번 미국의 선거과정이 우리에게 미치게 될 영향을 분석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트럼프는 11월 선거에서 최종적으로 승리를 거두지 못하더라도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미칠 토대를 이미 만들어 놓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 글에서 트럼프의 이러한 정책관이 압도하고 있는 미국의 선거과정이 우리에게 미칠 영향을 장, 단기적으로 분석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트럼프가 이러한 경제적 국수주의에 기초한 정책을 표방하게 된 배경에 대한 분석, 향후 민주당 후보로 확실시되는 클린턴과의 본선 선거과정이 진행될 방향에 대한 분석, 마지막으로 이 과정이 우리에게 미칠 영향에 대한 분석을 하도록 한다. 트럼프의 정책 배경 정치권의 주류에서 전혀 고려되지 않던 트럼프가 후보에 가까워지면서 그의 정책관에 대한 비판이 미국 내외를 막론하고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였다. 이민자들에 대한 언급으로 시작된 그의 정책들은 미국 사회의 주된 기조와는 다른 것으로 받아들여졌고, 특히 그의 외교안보에 대한 기본 방향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세계전략과는 동떨어진 것으로 평가되었다. 그만큼 그의 언행은 '기이'하게 여겨졌다. 그러나 철저히 표를 획득하여 승리하기 위한 과정으로 선거에 접근하면 다른 분석이 가능하다. 그동안 미국의 여론조사를 보면 트럼프의 정책들은 옳고 그르냐의 문제를 떠나서 미국 대중의 여론이 이미 그가 그러한 정책을 표방하기 이전부터 그와 같은 방향을 지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14년 4월 퓨리서치(Pew Research)1)의 보고서를 보면 미국의 여론은 2013년에 이미 미국의 해외 개입에 대해 50% 이상이 부정적 의견을 나타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미국이 베트남 전쟁과 이라크 전쟁 당시의 수치를 상회하는 것으로, 같은 항목의 조사가 시행된 1964년 이래 최고의 수치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여론의 기초 위에 경제상황에 대한 불만을 선거전략으로 삼으면서 그 불만에 대한 책임을 해외 동맹국, 무역, 그리고 이민자들에게 전가하는 것으로 표심 확보의 방향을 설정한 것이 그의 성공요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단순히 트럼프 개인의 문제라고만 볼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잇겠지만 향후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고 안 되고를 떠나서 미국 여론이 트럼프의 외교안보관과 유사한 방향으로의 정책을 위해 압박을 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향후 선거과정의 방향 예전 미국의 선거과정을 살펴보면, 당내 경선과정에서는 선명성 경쟁을 하면서 중도에서 벗어난 정책들이 제시되었고, 이 정책들은 본선과 당선을 거치면서 중도로 많이 가까워졌다. 그러나, 이번 선거 과정은 크게 두 가지 점에서 과거의 정책방향 이동과 다를 가능성이 높다. 첫째, 트럼프가 경선에서 승리하는 과정에서 유권자들의 공화당 경선 참여율은 역사상 가장 높은 기록을 달성할 정도였다. 그동안 트럼프가 강조해 온 것처럼 트럼프를 통한 투표율 증가가 본선에서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트럼프로 하여금 현재의 정책방향을 유지하게 할 것이다. 둘째, 미국의 선거과정이 점점 유권자 설득보다는 자신들을 지지하는 유권자를 실제로 투표하게 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다시 말해, 중도 혹은 부동층을 공략하는 선거전략을 구사하는 것보다, 자신들의 고정 지지층을 투표장에 나오게 하는 것이 선거에서 더 유리하다는 것이다. 이 경우, 정책방향을 중도로 옮기는 것보다 선명한 정책방향을 유지하는 것이 표 계산에서 효과적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트럼프의 정책방향은 본선까지 현재의 방향을 유지하게 될 것이며, 11월 선거까지 미국 국민들은 트럼프의 정책에 대해 학습하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 미칠 영향 트럼프가 11월 대선에서 승리하여 대통령이 될 경우, 우리에게 골치 아픈 많은 일들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그가 선거과정에서 이렇게 경제적 국수주의에 기초한 정책들을 표방하더라도 실제로 정책화될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을 수 있다. 미국 정치의 견제와 균형, 미국의 관료제, 그리고 국제정치의 엄연한 현실적 상황이 그의 말과 같은 극단적 선택을 어렵게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트럼프의 주장과 관련된 걱정을 지울 수 없다. 우선, 무역에 관한 부분이다. 전통적으로 선거과정에서 공화당은 자유무역을 옹호해 왔고, 민주당이 보호무역에 가까운 주장을 해 왔다. 그런데 트럼프가 민주당의 영역에 가까운 반 자유무역 정책을 표방함으로써 민주당의 클린턴은 그에 상응하거나 그보다 강한 무역정책을 들고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민주당의 지지 기반인 노동조합과 그들의 반자유무역적 성향보다 훨씬 강한 트럼프의 정책에 맞서기 위해서는 클린턴 역시 그에 못지않은 정책을 내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크게 공격받을 가능성이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트럼프와 상관없이 현재도 미국의 불만이 큰 상황이다. 환율, 반기업적 환경, 관세 등의 문제에 있어서 미국은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강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선거과정에서 나오는 논의들과 맞물리게 되면, 자연히 미국 대중들이 우리에게 부정적 인식을 갖게 될 가능성이 크다. 향후의 방위 분담금 협상, 미국의 대(對)한국 투자 및 사업환경, 그리고 환율 등에 관한 문제들이 우리에게 압박으로 다가올 것이다. 복잡한 국제정치의 현실보다 트럼프가 던진 "왜 미국에 많은 수출을 하는 한국을 우리가 보호해야 하느냐" 하는 말만이 대중에게 기억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________ 1) http://www.pewresearch.org/fact-tank/2014/04/01/americans-disengaged-feeling-less-respected-but-still-see-u-s-as-worlds-military-superpower/ ​ 現 아산정책연구원 워싱턴 사무소장.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Georgetown University에서 정책학 석사학위, 미국 University of Wisconsin at Milwaukee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한국학연구소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재직. 주요 연구분야는 정책결정과정에서의 여론문제, 제3국의 내전 무력개입에 관한 국제분쟁 등.
  • 남북관계의 변화와 한반도 외교의 과제
    저자
    허태회(선문대학교 교수/제주평화연구원 객원연구위원)
    발간호
    2016-18
    남북관계의 변화양상 일제 강점으로부터 해방된 지 70여 년이 지났다. 독립 이후 한국사회는 분단과 전쟁, 독재와 탄압의 어두운 시기를 거치면서 빠른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었다.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보기 드문 성공의 역사를 쓰면서 한국은 세계사에서 발전의 귀감이 되었다. 그러나 또 다른 반쪽인 북한의 낙후된 경제와 군사모험주의로 인하여 남·북은 지난 70년 간 분단의 벽을 넘지 못한 채 적대적 대치 상태로 남아 있다. 돌이켜보면 1950년대 동서냉전이 시작하였을 때 냉전의 첨병 역할을 하던 양측은 전면전을 불사하면서 한반도에서 정통성 시비와 투쟁의 시기를 거쳤다. 이후 1960년대에는 직접적인 남북대화 없이 반목과 대립이 심화되는 갈등의 시기를 거쳤으며, 70년대 초반 국제적인 데탕트 조류에 편승하여 잠시나마 대화와 협상을 시도하였다. 1980년대에 신냉전이 도래하면서 양측은 다시 갈등과 반목의 시기를 겪게 되었지만 90년대 초반 세계적인 탈냉전 조류에 떠밀려 본격적인 대화와 협상에 나섰다. 그러나 남북기본합의서 체결과 같은 가시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냉전 해체를 위한 천금과 같은 기회를 잃어버린 채, 2000년대 초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인 관계 정상화를 모색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진보정권의 등장으로 1, 2차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면서 남북관계의 개선에 상당한 진전을 보이기도 했지만 북한의 핵개발과 미사일 발사문제로 남북관계는 다시 진통을 겪고 현재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다. 분단 70년과 한반도 외교의 과제   남북관계의 변천과정 70년을 기록해 보면서 느낀 소회 중의 하나는 한반도 분단사를 조명하는 데 있어서 그동안 우리 한국학자들의 시선이 외부적 요인에 의해 경도되어 있지 않는가 하는 것이었다. 사실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함께 분단을 겪은 많은 국가들도 우리보다 더 외압적이고 거친 국제정치 현실을 극복하고 통일국가를 이루었다. 해외 세미나에서 외국학자들이 종종 지적하듯이 해방 이후 한반도의 분단이 고착화되고 구조화된 현실을 우리는 스스로 외부적 요인에 주목하면서 자기합리화식의 해석으로 일관하지 않았는가 싶다.   분단 70년은 결코 짧지 않은 역사이다. 이 긴 과정을 큰 역사적 틀에서 통시적으로 바라보고 통찰력이 있는 통일비전을 형성하려면 이제 우리의 남북관계를 바라보는 시선도 좀 더 미래지향적이고 자기성찰적일 필요가 있다. 필자는 해방 이후 지난 70여 년의 남북분단 역사를 시기별로 나누어 역사적 맥락에서 함께 뒤돌아보고 남·북 간에 전개되어 온 상호작용을 한반도 외교의 시각에서 기술하면서 남북관계 변천이 주는 성찰적인 의미를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었다. 역사적으로 한반도는 지정학적 요충지에 위치하여 주변 강대국들의 관심대상이었으며 핵심이익이 걸린 지역이었다. 한반도는 오랫동안 중국인들에게 “용의 머리를 내려치는 망치(a hammer ready to strike at the dragon's head)”라는 식으로 인식되었으며, 일본인들에게는 “일본의 심장을 겨누는 단도(a dagger pointed at the heart of Japan)”라고 인식되었다. 주변국의 이런 아전인수 격인 해석이 한반도에게는 좋은 결과로 나타나지 않았지만, 이러한 표현은 그들에게 한반도가 중요한 전략지역으로 인식된 것이 틀림없음을 보여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최강국으로 부상한 미국마저 한반도가 소련의 공산주의 팽창을 제어하는 데 사활적 이익이 걸린 지역이 되자 한국전쟁이라는 대규모 전쟁을 불사하였다. 지금은 러시아로 위축되었지만 공산주의 진영을 이끌던 구소련 또한 자국의 동북지역 안보와 공산세력의 확산을 위해 한반도 북쪽에 사회주의 체제가 수립되도록 전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한반도의 지전략적인 상황(geo-strategic conditions)에서 한반도를 양분한 한국과 북한이 강대국들의 개입을 극복하면서 독자적으로 남북관계를 발전시키고 통합으로 나가는 것이 그처럼 어려웠을까? 해방 이후 남북관계의 70년 변천과정은 한반도 정치상황과 주변환경에 남과 북이 나름대로 반응하면서 겪었던 갈등의 역사이자, 지난한 적응의 과정이었다. 남북관계의 발전과 관련하여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거나 한반도 안정을 위해 상호협력을 제도화하는 데 있어서 대북강경책의 효용성이 기대만큼 크지 않다는 것이다. 이것이 물론 대북포용정책을 옹호하려는 것은 아니다. 제 1공화국에서부터 제3, 제5공화국에 이어 문민정부와 이명박 정부에 이르기까지 대북강경정책의 배경이나 의도는 이해할 수 있지만, 그 효과는 결코 기대한 것만큼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반면에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과 그 후 진보정권 10년 동안 추진된 대북포용정책들은 그 나름대로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남북관계 발전과 한반도 긴장 완화에 더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남북관계의 발전과 관련하여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은 우리 정치지도자들의 외교적 경륜과 전략적 사고이다. 역사적으로도 그러했지만 최근의 한반도가 처한 지전략적 상황은 그 어느 때보다 지도자들의 탁월한 외교적 감각과 전략적 판단을 요구한다. 한국이 처한 군사안보적 상황과 국제정치적 역학관계의 관점에서 본다면 복잡·미묘한 외교문제를 타결해나갈 수 있는 전략적 혜안을 가진 지도자의 등장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서독의 통일외교 공간을 확장시킨 동방정책의 빌리 브란트 그리고, 저렴한 봉쇄정책(Containment in Cheap)의 구상으로 미·중·소의 전략적 삼각관계 구축에 성공했던 헨리 키신저와 같은 전략가의 등장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책결정의 타이밍 또한 남북관계의 발전에 중요한 요소이다. 남과 북 모두 주변환경의 변화에 나름대로 민감하게 반응하려고 하였지만 결정적으로 중요한 기회를 놓치고 나중에 후회한 순간이 많았다. 특히 한반도 주변환경이 남북관계의 발전에 유리하거나 우호적일 때는 남과 북이 머뭇거림이 없이 속도를 내거나 더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 1990년대 초반 세계적인 탈냉전이 진행되고 있었을 때 남과 북이 상호 인정과 수용의 단계를 넘어 제도화하는 데까지 나갔더라면 2000년대의 남북관계는 더 높은 차원으로 진전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것은 문민정부와 이명박 정부 당시 남과 북에게 똑같이 적용된다. 문민정부 시절 김영삼 대통령이나 북한의 카운터 파트인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남북관계 개선의 의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주변 정세의 변화나 상대방 입장에 대한 전략적인 판단 없이 행동하여 남북관계 발전에 천금과 같은 기회를 잃어버렸다. 이명박 정부 역시 집권 초기, 새로 강화된 한·미 동맹관계를 이용하여 남북관계를 한층 더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가 있었으나 잘못된 판단으로 이를 실기하였다. 남북관계의 발전에 대하여 남과 북의 리더쉽이 구상해낸 정책내용 이상으로 정책의지와 타이밍이 중요하다. 역대 한국 정부는 각자 다양한 대북정책을 추진하였으며 북한의 3대 리더쉽 체제도 남북문제와 관련하여 여러 노력을 기울였지만, 정책내용이 미흡해서라기보다 타이밍을 놓쳐서 천금과 같은 기회를 잃어버린 경우가 많았다. 남북관계는 표면적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단순한 남과 북의 양자관계에서 진행되지 않는다. 남북관계는 남과 북의 당사자뿐만이 아니라 한반도 주변환경과 한미관계, 북미관계, 북중관계 등 여러 변수가 작용하는 복잡한 고차방정식이다. 최근에는 북핵문제까지 가세하여 남북관계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북핵문제가 여하히 해결되지 않으면 남북관계는 물론 한미관계와 한일관계에도 장애요인으로 작용하여 각국의 발목을 잡고 한반도 긴장 고조 및 동북아 불안정을 초래할 것이다. 북핵문제의 조기해결을 위한 전향적 조치를 서둘러 마련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이다. 남북관계의 새로운 지평을 열기 위해 2015년 8월 말, 남북 간의 군사적 긴장이 최고로 달한 ‘준전시’의 상태에서 남과 북이 전격적으로 합의를 하고 군사긴장을 완화시켰던 협상 타결의 과정을 보면 그동안 남과 북이 교류하고 협상했던 지난 분단 70여년의 과정이 그다지 헛된 것은 아닌 것 같다. 70여 년의 남북관계 역사는 협상하다가 싸우고, 싸우다가 협상하면서 서로를 겪게 된 지난한 갈등과 적응의 과정이었다. 당시 남북 고위급회담의 합의가 현 정부의 대북정책은 물론, 남북관계의 새로운 분수령이 되고 역사적 전환점이 될 수 있을지 확신할 수는 없다. 2016년 새해 벽두에 터진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이에 대한 미국과 국제사회의 제재조치로 인하여 한반도에는 다시 긴장이 고조되었고, 남북관계는 경색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작년 8월 말에 어렵게 타협된 남북합의를 기초로 남북관계의 개선을 본격적으로 시도하려고 한 현 정부는 물론 미국과 중국, 일본의 대북제재조치가 그 어느 때 보다도 강경하기 때문에 북핵문제와 남북관계의 해결에 돌파구가 열리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다만 중요한 것은 지난 70여 년의 남북분단사가 웅변하듯이 이러한 사건들이 남·북 간에 한두 번 있었던 것이 아니며 최고조의 남·북 긴장상황에서 극적인 타결을 시도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 것이다. 남과 북은 그동안 많은 분쟁과 갈등을 겪었지만 분단 70여 년을 거치면서 수많은 협상을 통해 서로에게 적응해 왔다. 이번의 상황 역시 어려운 과정을 겪겠지만 지금까지 그러해 왔듯이 남과 북이 나름대로 어렵고 험난한 위기를 지혜롭게 헤쳐 나가길 기대한다. 남북관계가 순항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넘어야할 산도 많고, 건너야 할 강도 많다. 남북분단 70여 년간 서로가 상대방에게 갖고 있었던 불신의 벽이 높고, 갈등의 골은 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남북분단 70년의 과정을 자성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때다. 남과 북 양측이 외부적 요인보다 자율적인 의지와 노력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갖고, 남북관계의 진전에 새 지평을 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現 선문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 건국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후에 미국 워싱턴 주립대 정치학 석사, 덴버대학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함. 한국정치사회연구소 연구위원과 국가정보원 전문위원을 역임함. 이후 선문대 입학홍보처장과 대외협력처장, 중앙도서관장, 국제평화대학 학장 및 동북아역사재단 자문위원, 대통령 직속 사회통합위원회 이념분과 위원 등을 역임함. 주요 연구분야는 미국 외교정책과 동아시아 정치 및 통일문제 등이며, 최근 연구로는 "전략정보의 실패와 정보 분석", "정보환경의 변화와 국가정보의 개혁" 등이 있음.
  • 2016 동아시아 영유권 갈등의 전개
    저자
    이성우(제주평화연구원 분쟁해결연구부장)
    발간호
    2016-16
      중동문제와 유럽 테러사태의 여파로 남중국해에서 영유권 갈등에 대한 국제적 여론의 관심이 감소했다. 그러나 동아시아에서 미국과 중국의 세력다툼은 여전히 진행 중에 있고, 상황이 개선될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미국과 중국은 전략적 협력과 함께 세력경쟁을 동시에 추진하는 복합구조를 보이고 있다. 현재 미·중 대결구도를 이해하기 위해 남중국해의 영유권 갈등을 이해하는 것은 정책적으로 의미가 있다. 중국은 남중국해의 산호섬에 간척을 하고, 항공 활주로 및 선박의 정박시설을 건설하면서 사실상 남중국해의 모든 분쟁수역에서 영유권을 주장한다. 그리고 인공 섬 건설은 정당하고 적법한 주권행사이며, 다른 나라를 군사적으로 위협하려는 의도가 없다고 주장한다. 한편, 이 지역에 대해 브루나이, 말레이시아, 베트남, 타이완, 그리고 필리핀이 영유권을 주장하면서 중국의 공세적 입장에 긴장하고 있다. 중국이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는 원인은 상당한 수준의 석유와 천연가스 매장량과 매년 5조원의 물동량이 지나가는 이른바 남해 9단선지역의 경제적 가치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미중대결에 있어서 남중국해의 전략적 가치이다. 남중국해에 대한 영유권 분쟁은 중국이 공격적인 자세를 취함에 따라 이에 반발하는 주변 동남아국가들이 미국과 연합하는 형세로 전개되고 있다. 필리핀은 중국의 도발에 대항하여 헤이그 중재 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하고, 미국과의 공동순찰을 제안하였다. 필리핀은 이미 미 해군과 이 지역에서 긴밀한 합동 군사훈련을 통해 미국과 유대를 강화하면서 적극적으로 중국을 견제하고 있다. 베트남의 반발은 더욱 거세다. 중국이 2014년 파라셀(시사) 군도 근처의 분쟁수역에서 석유 탐사 시추를 수행하자, 베트남에서는 폭력적인 시위가 일어났다. 올해 들어서도 스프래틀리(난사) 군도의 인공 섬에 중국이 비행기를 착륙시킨 것에 대해 베트남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미국은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현상 고착을 수용하지 않는 입장을 명백히 하고 있다. 중국은 남중국해 전역에 해양 영유권을 주장하면서 이 지역을 통과하는 선박과 항공기에 대하여 중국정부에 통행을 고지하고 사전 허락을 받도록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이를 항행의 권리와 자유에 대한 심각한 제한으로 보고, 의도적으로 군함을 파견해서 중국의 영유권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알레이 버크급 미사일 구축함인 미국의 전함 커디스 윌버 호는 중국, 대만, 그리고 베트남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파라슬 군도의 일부분인 트리톤 섬의 12마일 안쪽 지역으로 항해했지만, 3개국 어디서도 사전 고지를 받지 못했다. 이러한 미국의 의도적 도발에 대해 중국은 보다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미국과 대만은 인공위성을 통해 남중국해의 섬에 지대공 미사일 포대와 지원차량이 배치되어 있는 것을 확인했다. 이에 대해 중국은 파라셀 군도에 속한 우디(융싱) 섬에 방어시설을 배치한다는 일환으로 지대공 미사일을 배치하였다. 그리고 이를 군사화가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자국 영토를 보호하기 위한 방어조치가 정당한 것임을 역설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에 대해 군사적 조치 외에도 동남아 국가를 상대로 외교전을 펼치고 있다. 그리고, 중국과 영유권 분쟁으로 직접적 이해 충돌이 없는 브루나이, 캄보디아, 라오스와 남중국해에서의 영유권 분쟁은 중국과 ASEAN의 관계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는 데 합의했다고 발표하면서 동남아에서 중국의 입장을 지지해 줄 우방을 결속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세력경쟁이 남중국해에서 영유권 분쟁의 형태로 충돌하면서 군사, 정치, 경제, 외교를 망라하는 전방위적인 대결로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영유권 갈등에 몰입하면서, 동중국해에서 한·중·일의 주장이 중복되는 센카쿠 열도와 이어도 지역의 방공식별구역 확대와 관련된 중국의 공세적 입장은 주춤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동중국해에서 중국은 공격적 자세를 지니며, 언제나 갈등을 확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2016년 한국이 미국의 사드 도입을 고려하는 상황에서 중국 인민해방군 공군 군용기가 한국의 방공식별구역을 침범하면서 한국의 권한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일본은 독도까지 자국의 방공식별구역에 포함시키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 이어도의 경우, 영토가 아닌 해양관할권에 관련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의 국익을 보전하는데 중요한 단초이기는 하지만 확실한 버팀목은 되지 못한다. 따라서 우리는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의 영유권 분쟁의 전개에 보다 민감하게 주목해야 할 것이다.​ 現 제주평화연구원 분쟁해결연구부장. 단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후 2004년 미국 University of North Texas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음. 단국대학교 분쟁해결연구센터에서 연구위원으로 활동하며 “한국의 공공분쟁 사례연구”를 주제로 대한민국 학술진흥재단 중점연구소 연구과제를 수행하였음. 학술활동으로는 미국국제정치학회가 주관하는 International Studies Quarterly의 Referee로 활동한 바 있음. 저서로는 『2011 한국인의 평화관: 통일정책과 여론 』 및 『2010 한국인의 평화관: 외교정책과 여론』 등이 있음.
  • 2016 동아시아 영유권 갈등의 전개
    저자
    이성우(제주평화연구원 분쟁해결연구부장)
    발간호
    2016-16
      중동문제와 유럽 테러사태의 여파로 남중국해에서 영유권 갈등에 대한 국제적 여론의 관심이 감소했다. 그러나 동아시아에서 미국과 중국의 세력다툼은 여전히 진행 중에 있고, 상황이 개선될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미국과 중국은 전략적 협력과 함께 세력경쟁을 동시에 추진하는 복합구조를 보이고 있다. 현재 미·중 대결구도를 이해하기 위해 남중국해의 영유권 갈등을 이해하는 것은 정책적으로 의미가 있다. 중국은 남중국해의 산호섬에 간척을 하고, 항공 활주로 및 선박의 정박시설을 건설하면서 사실상 남중국해의 모든 분쟁수역에서 영유권을 주장한다. 그리고 인공 섬 건설은 정당하고 적법한 주권행사이며, 다른 나라를 군사적으로 위협하려는 의도가 없다고 주장한다. 한편, 이 지역에 대해 브루나이, 말레이시아, 베트남, 타이완, 그리고 필리핀이 영유권을 주장하면서 중국의 공세적 입장에 긴장하고 있다. 중국이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는 원인은 상당한 수준의 석유와 천연가스 매장량과 매년 5조원의 물동량이 지나가는 이른바 남해 9단선지역의 경제적 가치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미중대결에 있어서 남중국해의 전략적 가치이다. 남중국해에 대한 영유권 분쟁은 중국이 공격적인 자세를 취함에 따라 이에 반발하는 주변 동남아국가들이 미국과 연합하는 형세로 전개되고 있다. 필리핀은 중국의 도발에 대항하여 헤이그 중재 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하고, 미국과의 공동순찰을 제안하였다. 필리핀은 이미 미 해군과 이 지역에서 긴밀한 합동 군사훈련을 통해 미국과 유대를 강화하면서 적극적으로 중국을 견제하고 있다. 베트남의 반발은 더욱 거세다. 중국이 2014년 파라셀(시사) 군도 근처의 분쟁수역에서 석유 탐사 시추를 수행하자, 베트남에서는 폭력적인 시위가 일어났다. 올해 들어서도 스프래틀리(난사) 군도의 인공 섬에 중국이 비행기를 착륙시킨 것에 대해 베트남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미국은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현상 고착을 수용하지 않는 입장을 명백히 하고 있다. 중국은 남중국해 전역에 해양 영유권을 주장하면서 이 지역을 통과하는 선박과 항공기에 대하여 중국정부에 통행을 고지하고 사전 허락을 받도록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이를 항행의 권리와 자유에 대한 심각한 제한으로 보고, 의도적으로 군함을 파견해서 중국의 영유권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알레이 버크급 미사일 구축함인 미국의 전함 커디스 윌버 호는 중국, 대만, 그리고 베트남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파라슬 군도의 일부분인 트리톤 섬의 12마일 안쪽 지역으로 항해했지만, 3개국 어디서도 사전 고지를 받지 못했다. 이러한 미국의 의도적 도발에 대해 중국은 보다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미국과 대만은 인공위성을 통해 남중국해의 섬에 지대공 미사일 포대와 지원차량이 배치되어 있는 것을 확인했다. 이에 대해 중국은 파라셀 군도에 속한 우디(융싱) 섬에 방어시설을 배치한다는 일환으로 지대공 미사일을 배치하였다. 그리고 이를 군사화가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자국 영토를 보호하기 위한 방어조치가 정당한 것임을 역설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에 대해 군사적 조치 외에도 동남아 국가를 상대로 외교전을 펼치고 있다. 그리고, 중국과 영유권 분쟁으로 직접적 이해 충돌이 없는 브루나이, 캄보디아, 라오스와 남중국해에서의 영유권 분쟁은 중국과 ASEAN의 관계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는 데 합의했다고 발표하면서 동남아에서 중국의 입장을 지지해 줄 우방을 결속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세력경쟁이 남중국해에서 영유권 분쟁의 형태로 충돌하면서 군사, 정치, 경제, 외교를 망라하는 전방위적인 대결로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영유권 갈등에 몰입하면서, 동중국해에서 한·중·일의 주장이 중복되는 센카쿠 열도와 이어도 지역의 방공식별구역 확대와 관련된 중국의 공세적 입장은 주춤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동중국해에서 중국은 공격적 자세를 지니며, 언제나 갈등을 확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2016년 한국이 미국의 사드 도입을 고려하는 상황에서 중국 인민해방군 공군 군용기가 한국의 방공식별구역을 침범하면서 한국의 권한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일본은 독도까지 자국의 방공식별구역에 포함시키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 이어도의 경우, 영토가 아닌 해양관할권에 관련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의 국익을 보전하는데 중요한 단초이기는 하지만 확실한 버팀목은 되지 못한다. 따라서 우리는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의 영유권 분쟁의 전개에 보다 민감하게 주목해야 할 것이다.​ 現 제주평화연구원 분쟁해결연구부장. 단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후 2004년 미국 University of North Texas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음. 단국대학교 분쟁해결연구센터에서 연구위원으로 활동하며 “한국의 공공분쟁 사례연구”를 주제로 대한민국 학술진흥재단 중점연구소 연구과제를 수행하였음. 학술활동으로는 미국국제정치학회가 주관하는 International Studies Quarterly의 Referee로 활동한 바 있음. 저서로는 『2011 한국인의 평화관: 통일정책과 여론 』 및 『2010 한국인의 평화관: 외교정책과 여론』 등이 있음.
  • 공포정치와 북한 엘리트: 최근의 탈북을 계기로
    저자
    한병진(계명대학교 교수)
    발간호
    2016-15
      현재 공포정치의 광풍이 북한을 몰아치고 있다. 김정은의 폭정에 엘리트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노련한 장성택은 어린 김정은에게 왜 그렇게 허망하게 숙청을 당했을까? 도대체 김정은의 권력은 왜  절대적인가? 어쩌면 당연한 것처럼 보이는 질문이지만 쉽게 답하기는 어렵다. 주기적·공개적 숙청의 효과 지금까지 주요 연구 및 많은 이들은 숙청은 전격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여 왔다. 소위 합리적 행위자 모델의 논자들은 차례차례 엘리트를 제거할 경우 엘리트의 집단반발을 가져오기 때문에 독재자의 입장에서 위험한 방식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김정은의 공포정치를 비롯하여 김일성, 스탈린의 숙청을 살펴보면 전격적인 방식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주기적으로 한 명씩 제거하고 있다. 그리고 숙청은 은밀하지 않고 공개재판과 공개처형의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사실 공개재판과 공개처형에서 핵심은 바로 공개성에 있다. 공개재판과 공개처형이라는 잔인한 공개적 의례는 권력이 어디에 있는지를 모두에게 분명히 인식시킨다. 폭력적 권력행사의 공개성은 권력의 소재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함께 독재자의 권력정도를 모두가 인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절대적 개인독재에 대한 엘리트의 여론이 공고한 가운데 이루어지는 주기적 숙청, 공개재판, 공개처형은 엘리트의 반발이 아니라 권력질서에 대한 엘리트의 기대를 더욱 공고히 한다. 따라서 주기적 숙청의 정치적 결과는 엘리트의 은밀한 모의와 불만토로가 아니라 공개적인 지지와 충성경쟁이다. 공개재판과 공개처형의 정치적 효과와 함께 심리적 효과 역시 독재자에게 우호적일 공산이 크다. 공개재판에서 작동하는 심리적 기제로 ‘정박효과(anchoring effect)’를 꼽을 수 있다.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인식의 출발점은 인식의 마지막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명명백백한 거짓말과 오리발은 효과를 가질 수 있다. 북한 주민과 엘리트가 개인우상화를 공개적으로 표현하는 경우, 이는 분명히 외부적 압력에 기인한 것임을 알지만 관찰자는 관찰대상자의 정치적 태도를 충분히 조정하지 못한다. 숙청대상자가 자신의 잘못을 공개적으로 인정할 경우 고문에 의한 자백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조정하지 못한다. 공포정치의 역효과 공포정치가 엘리트의 두려움을 공고히 하겠지만, 이들의 충성심을 훼손할 가능성도 역시 높아 보인다. 김정은의 공포정치가 충성심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심리학적으로 추측해 보자.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한 번 공동체관계가 파괴되고 물질적인 이해가 지배적인 상태가 된 이후에는 개인이 다시 공동체적인 신념을 회복하기가 매우 어려워진다. 한 번 어그러진 연인관계가 좀처럼 복원되기 어려운 것과 비슷하다. 공동체적 사회관계는 즉각적인 보상이나 처벌이 아니라 상호신뢰에 기초한 인내와 손해를 전제한다. 강등과 복권의 반복으로 두려움은 강화될 수 있지만, 충성심은 사라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하지만 충성심의 침식이 당장 김정은 정권을 흔들 수 있다는 기대는 맞지 않다. 얼마나 많은 이가 진심으로 김정은 정권을 지지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충성파가 줄어들지라도 북한 정권은 현재 정치질서에서 한 발짝도 이탈하기 어렵다. 김정은을 싫어하는 것 이상으로 새로운 정치질서에 대한 행위적 의지에 대한 엘리트 사이의 공감대가 필요하다. 하지만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조금도 할 수 없는 북한 엘리트가 이러한 공감대를 형성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절대권력이 독재자의 존엄과 절대성에 대한 엘리트의 기대의 수렴에 달려있다는 점은 공포정치의 또 다른 특징인 사소한 잘못에 대한 처벌의 무자비성을 이해하게 해준다. 다리를 꼬거나 수령의 교시가 있는 동안 졸고있는 행위는 수령의 존엄을 위협하는 위험한 행동이다. 그 이유는 공개성 때문이다. 사소하지만 불손한 공개적 행위는 다른 관찰자의 인식에 영향을 미친다. 인간적 실수에서 비롯된 사소한 불손 행위가 광범위하게 용인될 경우, 이는 수령의 존엄에 대한 절대적 복종이라는 다수의 기대를 흔들 수 있다. 이러한 위협 때문에 김정은 정권은 졸음이라는 인간적인 실수마저도 무자비하게 처벌한다. 이는 마약범죄를 억지하기 위해 단순 운반에도 무거운 처벌을 부가하는 사법당국의 조치와 유사하다.  북한 엘리트의 딜레마 김정은의 마음이 변하지 않는 이상, 엘리트가 주체적으로 공포정치의 막을 내리게 할 수는 없다. 다수의 행동의지에 대한 다수의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엘리트의 최선의 선택은 묵종이다. 그리고 다수의 묵종은 관찰자의 기대를 더욱 강화한다. 새로운 기대와 확신이 생기는 대신 김정은 개인독재는 공고해 진다. 따라서 김정은의 개인독재권력은 상당 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리고 북한 엘리트는 계속해서 정치적 자율성이 전무한 가신의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많은 독재의 역사에서 등장했던 엘리트와 마찬가지로 북한 엘리트 역시 지극히 피동적이다. 합리적 행위자 모델에서는 엘리트의 회의적 태도를 가정하고 있다. 현실주의적 사고에 따라 독재자가 기회주의적으로 행동할 가능성을 걱정하고 이에 대해 미리 대비하려는 엘리트의 적극적인 태도는 현재 북한 엘리트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북한을 비롯하여 세계 곳곳의 독재정치에서 드러난 엘리트의 모습은 언젠가 사냥당할 운명이지만 이를 알아채지 못하고 평화롭게 풀을 뜯어 먹는 가축의 모습이다. 아마도 이들은 유죄추정의 원칙 대신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행동하는 듯하다. 사회적 현실은 많은 경우 애매모호하다.  야구 등 스포츠에서는 선수들이 유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행동하지만, 개인독재정권에서 엘리트는 독재자의 불확실한 의도를 유죄추정의 원칙이 아니라 무죄추정의 원칙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독재정권의 엘리트는 애매모호한 사회적 현실에서 독재자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가설에 부합하는 증거를 쉽게 찾고 그 가설을 받아들이는 듯하다. 그리고 북한 엘리트 역시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소수의 탈북이 아직까지 다수의 연쇄반응으로 이어지고 있지 않다. 공포정치에 직면한 북한 엘리트의 딜레마는 대안의 부재이다. 충성과 반대 대신 탈출의 대안이 존재한다면 엘리트는 공포정치에 보다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가난한 북한이 가진 것은 국가 밖에 없다. 북한 엘리트들은 국가 조직의 일부를 떼어 내어 도망갈 수 없으며, 국가에 머무를 때만 자신의 특권과 지위가 발생한다. 소련 공산당 엘리트처럼 천연자원 등 국부를 훔쳐 도망 갈 수도, 중국 엘리트처럼 시장에서 부를 축적할 수도 없는 상태이다. 그래서 공포정치의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수령과 한 배를 탄 운명공동체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現 계명대학교 공공인재학부 정치외교학 전공 부교수. 서울대학교 외교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 후, 2004년 미국 버팔로 뉴욕주립대에서 옐친과 푸틴시기 러시아의 개혁정치로 정치학 박사학위 취득. 최근 정치경제학, 행동경제학, 사회심리학 등에 의거하여 독재정치이론과 북한 정치와 관련한 연구를 진행 중임.
  • 공포정치와 북한 엘리트: 최근의 탈북을 계기로
    저자
    한병진(계명대학교 교수)
    발간호
    2016. 4. 14
      현재 공포정치의 광풍이 북한을 몰아치고 있다. 김정은의 폭정에 엘리트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노련한 장성택은 어린 김정은에게 왜 그렇게 허망하게 숙청을 당했을까? 도대체 김정은의 권력은 왜  절대적인가? 어쩌면 당연한 것처럼 보이는 질문이지만 쉽게 답하기는 어렵다. 주기적·공개적 숙청의 효과 지금까지 주요 연구 및 많은 이들은 숙청은 전격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여 왔다. 소위 합리적 행위자 모델의 논자들은 차례차례 엘리트를 제거할 경우 엘리트의 집단반발을 가져오기 때문에 독재자의 입장에서 위험한 방식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김정은의 공포정치를 비롯하여 김일성, 스탈린의 숙청을 살펴보면 전격적인 방식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주기적으로 한 명씩 제거하고 있다. 그리고 숙청은 은밀하지 않고 공개재판과 공개처형의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사실 공개재판과 공개처형에서 핵심은 바로 공개성에 있다. 공개재판과 공개처형이라는 잔인한 공개적 의례는 권력이 어디에 있는지를 모두에게 분명히 인식시킨다. 폭력적 권력행사의 공개성은 권력의 소재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함께 독재자의 권력정도를 모두가 인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절대적 개인독재에 대한 엘리트의 여론이 공고한 가운데 이루어지는 주기적 숙청, 공개재판, 공개처형은 엘리트의 반발이 아니라 권력질서에 대한 엘리트의 기대를 더욱 공고히 한다. 따라서 주기적 숙청의 정치적 결과는 엘리트의 은밀한 모의와 불만토로가 아니라 공개적인 지지와 충성경쟁이다. 공개재판과 공개처형의 정치적 효과와 함께 심리적 효과 역시 독재자에게 우호적일 공산이 크다. 공개재판에서 작동하는 심리적 기제로 ‘정박효과(anchoring effect)’를 꼽을 수 있다.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인식의 출발점은 인식의 마지막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명명백백한 거짓말과 오리발은 효과를 가질 수 있다. 북한 주민과 엘리트가 개인우상화를 공개적으로 표현하는 경우, 이는 분명히 외부적 압력에 기인한 것임을 알지만 관찰자는 관찰대상자의 정치적 태도를 충분히 조정하지 못한다. 숙청대상자가 자신의 잘못을 공개적으로 인정할 경우 고문에 의한 자백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조정하지 못한다. 공포정치의 역효과 공포정치가 엘리트의 두려움을 공고히 하겠지만, 이들의 충성심을 훼손할 가능성도 역시 높아 보인다. 김정은의 공포정치가 충성심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심리학적으로 추측해 보자.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한 번 공동체관계가 파괴되고 물질적인 이해가 지배적인 상태가 된 이후에는 개인이 다시 공동체적인 신념을 회복하기가 매우 어려워진다. 한 번 어그러진 연인관계가 좀처럼 복원되기 어려운 것과 비슷하다. 공동체적 사회관계는 즉각적인 보상이나 처벌이 아니라 상호신뢰에 기초한 인내와 손해를 전제한다. 강등과 복권의 반복으로 두려움은 강화될 수 있지만, 충성심은 사라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하지만 충성심의 침식이 당장 김정은 정권을 흔들 수 있다는 기대는 맞지 않다. 얼마나 많은 이가 진심으로 김정은 정권을 지지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충성파가 줄어들지라도 북한 정권은 현재 정치질서에서 한 발짝도 이탈하기 어렵다. 김정은을 싫어하는 것 이상으로 새로운 정치질서에 대한 행위적 의지에 대한 엘리트 사이의 공감대가 필요하다. 하지만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조금도 할 수 없는 북한 엘리트가 이러한 공감대를 형성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절대권력이 독재자의 존엄과 절대성에 대한 엘리트의 기대의 수렴에 달려있다는 점은 공포정치의 또 다른 특징인 사소한 잘못에 대한 처벌의 무자비성을 이해하게 해준다. 다리를 꼬거나 수령의 교시가 있는 동안 졸고있는 행위는 수령의 존엄을 위협하는 위험한 행동이다. 그 이유는 공개성 때문이다. 사소하지만 불손한 공개적 행위는 다른 관찰자의 인식에 영향을 미친다. 인간적 실수에서 비롯된 사소한 불손 행위가 광범위하게 용인될 경우, 이는 수령의 존엄에 대한 절대적 복종이라는 다수의 기대를 흔들 수 있다. 이러한 위협 때문에 김정은 정권은 졸음이라는 인간적인 실수마저도 무자비하게 처벌한다. 이는 마약범죄를 억지하기 위해 단순 운반에도 무거운 처벌을 부가하는 사법당국의 조치와 유사하다.  북한 엘리트의 딜레마 김정은의 마음이 변하지 않는 이상, 엘리트가 주체적으로 공포정치의 막을 내리게 할 수는 없다. 다수의 행동의지에 대한 다수의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엘리트의 최선의 선택은 묵종이다. 그리고 다수의 묵종은 관찰자의 기대를 더욱 강화한다. 새로운 기대와 확신이 생기는 대신 김정은 개인독재는 공고해 진다. 따라서 김정은의 개인독재권력은 상당 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리고 북한 엘리트는 계속해서 정치적 자율성이 전무한 가신의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많은 독재의 역사에서 등장했던 엘리트와 마찬가지로 북한 엘리트 역시 지극히 피동적이다. 합리적 행위자 모델에서는 엘리트의 회의적 태도를 가정하고 있다. 현실주의적 사고에 따라 독재자가 기회주의적으로 행동할 가능성을 걱정하고 이에 대해 미리 대비하려는 엘리트의 적극적인 태도는 현재 북한 엘리트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북한을 비롯하여 세계 곳곳의 독재정치에서 드러난 엘리트의 모습은 언젠가 사냥당할 운명이지만 이를 알아채지 못하고 평화롭게 풀을 뜯어 먹는 가축의 모습이다. 아마도 이들은 유죄추정의 원칙 대신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행동하는 듯하다. 사회적 현실은 많은 경우 애매모호하다.  야구 등 스포츠에서는 선수들이 유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행동하지만, 개인독재정권에서 엘리트는 독재자의 불확실한 의도를 유죄추정의 원칙이 아니라 무죄추정의 원칙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독재정권의 엘리트는 애매모호한 사회적 현실에서 독재자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가설에 부합하는 증거를 쉽게 찾고 그 가설을 받아들이는 듯하다. 그리고 북한 엘리트 역시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소수의 탈북이 아직까지 다수의 연쇄반응으로 이어지고 있지 않다. 공포정치에 직면한 북한 엘리트의 딜레마는 대안의 부재이다. 충성과 반대 대신 탈출의 대안이 존재한다면 엘리트는 공포정치에 보다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가난한 북한이 가진 것은 국가 밖에 없다. 북한 엘리트들은 국가 조직의 일부를 떼어 내어 도망갈 수 없으며, 국가에 머무를 때만 자신의 특권과 지위가 발생한다. 소련 공산당 엘리트처럼 천연자원 등 국부를 훔쳐 도망 갈 수도, 중국 엘리트처럼 시장에서 부를 축적할 수도 없는 상태이다. 그래서 공포정치의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수령과 한 배를 탄 운명공동체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現 계명대학교 공공인재학부 정치외교학 전공 부교수. 서울대학교 외교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 후, 2004년 미국 버팔로 뉴욕주립대에서 옐친과 푸틴시기 러시아의 개혁정치로 정치학 박사학위 취득. 최근 정치경제학, 행동경제학, 사회심리학 등에 의거하여 독재정치이론과 북한 정치와 관련한 연구를 진행 중임.
  • 미얀마의 지체된 민주화와 섭정통치
    저자
    신재혁(고려대학교 교수)
    발간호
    2016-14
      지난 2016년 3월 15일 미얀마 의회는 틴쪼(Htin Kyaw)를 대통령으로 선출하였다. 그는 1962년 군사쿠데타 이후의 첫 민선 대통령으로 오는 4월 1일에 취임할 예정이다. 한편, 오랫동안 미얀마의 민주화 운동을 이끌어 온 아웅산수찌(Aung San Suu Kyi)는 자신이 실질적인 국가 지도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틴쪼는 자신이 내세운 허수아비 대통령에 불과하고 자신이 섭정을 할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50년 넘게 기다려온 미얀마 민선 정부에서 왜 섭정통치가 이루어지는지 설명하고 앞으로의 전망을 제시하고자 한다. 역사적 배경   미얀마의 군사독재 하에서 야당이 참여하는 첫 총선은 1990년에 치러졌다. 수도 양곤에서는 1988년 초부터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학생들의 시위가 격렬하게 일어났고, 급기야 쿠데타 이후 20년 넘게 집권해 온 독재자 네윈(Ne Win)이 그 해 7월 23일 물러났다. 이 과정에서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아웅산의 딸 아웅산수찌가 민주화운동의 지도자로 부상하였고, 그녀는 1988년 9월 27일 민주주의민족동맹(National League for Democracy, 이하 NLD)을 결성하였다. 그러나 군부는 시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다. 군부는 시위를 폭력적으로 진압하였으며 이듬해에는 아웅산수찌를 가택연금에 처했다. 야당 지도자를 감금한 상황에서 군부는 국민통합당(National Unity Party, 이하 NUP)을 만들어 1990년 총선을 실시하였는데, 결과는 집권 여당의 참담한 패배였다. 총 492개의 의석 가운데 NLD가 392석을 획득한 반면 NUP은 불과 10석을 획득한 것이다. 이러한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은 군부는 수많은 NLD 지지자를 감금하고 고문하였으며, 아웅산수찌의 가택연금을 연장하였다.   아웅산수찌는 2012년 4월 보궐선거에서 당선되어 원내 야당 대표가 되었다. 2000년대에 들어 미얀마 군부는 오랜 고립으로 낙후된 경제를 성장시키기 위하여 개혁개방을 추진하였다. 이들은 2003년에 민주주의로의 로드맵을 발표하였고 2008년에는 헌법을 개정하였다. 이에 따라 2010년 11월에 총선이 실시되었는데 NLD는 이 선거에 불참하였고, 군부가 새롭게 만든 통합연대개발당(Solidarity and Development Party, 이하 USDP)이 상·하원 의석을 석권하였다. 그 직후 아웅산수찌는 가택연금에서 해제되었고 NLD를 다시 이끌게 되었다. 2012년, 상원의 6개 의석과 하원의 37개 의석을 채우는 보궐선거에 참여한 NLD는 상원 4석과 하원 37석을 전체를 획득하였다. 아웅산수찌와 NLD에 대한 높은 지지도가 다시 한 번 확인된 것이다. 2008년 헌법과 섭정통치   NLD는 2015년 11월 8일에 실시된 총선에서 승리하여 상원과 하원에서 모두 과반 의석을 확보하였다. 상원 224석 중 135석, 하원 440석 중 255석을 획득한 것이다. 미얀마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은 의회가 선출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따라서 NLD의 대표 아웅산수찌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것이 자명해 보였다. 그러나 군부는 2008년 헌법을 개정할 때 그 부모나 배우자, 또는 자녀나 자녀의 배우자가 외국 국적을 가진 사람은 대통령이나 부통령이 될 수 없다는 규정(59조 f항)을 삽입하였다. 아웅산수찌는 영국인 남편 사이에서 영국 국적의 아들 둘을 두고 있는데, 바로 이 헌법 조항 때문에 대통령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아웅산수찌가 행정부의 수반이 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군부의 의지가 반영된 조항이라 할 수 있다. 총선 직후 아웅산수찌는 헌법을 개정하여 자신이 대통령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다짐하였다. 그러나 군부의 안전장치는 결코 느슨하지 않았다. 2008년 헌법에 따르면, 헌법 개정을 위해서는 상·하원 의원 전체의 75퍼센트 이상으로부터 동의가 필요하다. 그런데 상원과 하원 의석 중 각각 25퍼센트는 군부가 임명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군부의 동의를 얻지 않고서는 헌법을 개정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처럼 헌법 개정도 어려운 상황에서 아웅산수찌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자신에게 충성스러운 사람을 대통령으로 내세워 섭정을 하는 것이었다. 헌법에 따르면 의회는 상원과 하원, 군부 임명 의원들이 각각 하나씩 총 3개의 위원회를 구성하여 대통령을 후보를 한 명씩 추천한다. 그 후 전체 투표를 거쳐 1위 득표자가 대통령으로 선출되고 나머지 두 명은 부통령이 된다. NLD가 상·하원의 다수 의석을 확보한 상황에서 아웅산수찌가 선택한 후보가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아웅산수찌는 자신의 오랜 친구이자 핵심 조력자인 틴쪼를 선택했고, NLD가 장악한 하원은 그를 대통령 후보로 추천하였다. 한편 상원은 소수종족 친(Chin)족 출신 헨리 반띠오(Henry Van Thio)를 추천하였고, 군부는 강경파 퇴역장교 민스웨(Myint Swe)를 추천하였다. 투표 결과 예상대로 틴쪼가 1등을 차지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고, 민스웨가 2등으로 제1부통령, 헨리 반띠오가 제2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대통령 당선자 틴쪼는 아웅산수찌와 고등학교(Yangon’s Methodist English High School)를 같이 다녔고, 런던대학교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였다고 알려졌다. 그는 1970년대 중반부터 군사정부에서 관료 생활을 했으나, 군부가 1990년 총선 결과를 수용하지 않자 1992년 사퇴한 후 지금까지 아웅산수찌를 돕고 있다. 틴쪼는 2000년에 아웅산수찌가 여행하는 것을 돕다가 4개월간 구금되기도 하였다. 전망     유권자 절대 다수의 지지를 받아 의회 다수파 대표가 된 아웅산수찌가 공식적으로 대통령이 되지 못한다는 것은 미얀마에서 민주주의로의 전환이 여전히 지체되었음을 의미한다. 민주주의의 요건 중 하나는 유권자가 직접, 또는 유권자가 선출한 대표가 실질적인 행정부 수반을 선출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실질적인 국가 지도자인 아웅산수찌가 섭정을 하는데 머물러야 한다는 사실은 민주주의의 이러한 요건을 결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헌법 개정을 통해 아웅산수찌가 대통령이 되는 것은 군부의 반대로 인하여 어려워 보인다. 군부는 비록 의회 소수파에 머물고 있으나 여전히 막강한 권한을 보유하고 있다. 그들은 군 최고사령관을 임명할 수 있으며, 국방안보위원회(National Defence and Security Council, 이하 NDSC)의 11개 의석 가운데 과반인 6개 의석을 차지하고 있다. NDSC는 대통령과 두 명의 부통령, 상원과 하원 의장, 최고사령관, 부사령관, 국방장관, 외무장관, 내무장관, 국경업무(border affairs)장관으로 구성되는데, 한 명의 부통령은 군부의 인사이고, 최고사령관에게 국방장관, 내무장관, 국경업무장관 임명권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군부가 장악한 NDSC는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할 수 있으며, 이 경우 입법·사법·행정권은 NDSC로 넘어간다. 사실상 군부는 필요하면 언제든 정치에 개입할 수 있을 것이다.   아웅산수찌와 틴쪼 대통령 당선자 간의 협력이 순조롭게 유지될지도 의문이다. 가장 효과적으로 섭정을 하려면 아웅산수찌가 장관으로 입각하여 틴쪼가 주재하는 각료회의와 NDSC에 참석하여 직접 의견을 개진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 아웅산수찌는 국회의원직을 상실하게 되므로 원내 다수당 대표직을 포기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국회에 머문다면 대통령이 각료회의 중 사안마다 의견을 구하는 것이 어려워서 아웅산수찌가 바라지 않는 결정을 내리는 경우도 생길 가능성이 있다.   미얀마는 지난 총선을 통하여 민주주의를 향하여 한 걸음 다가갔다. 더욱 발전된 민주주의로 나아갈지 다시 후퇴할지는 향후 아웅산수찌의 섭정통치체제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작동하느냐에 달려있다. 미얀마의 새 정부는 빈곤을 퇴치하고 종족갈등을 해소해야 하는 등 많은 난제들에 직면해 있다. 아웅산수찌와 틴쪼가 협력하여 이러한 문제들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다면 군부는 또다시 전면에 나설 수 있다. 現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조교수.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미국 UCLA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함. 2011년부터 2012년까지 미국 듀크대 정치학과 객원 조교수와 Rhodes College 국제학과 조교수를 역임한 후, 2013년부터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조교수로 재직 중. 주요 연구 분야는 정치제도, 신생민주국가의 선거와 정당, 국회 등이며, 최근 연구로 “Voter Demands, Access to Resources, and Party Switching: Evidence from the South Korean National Assembly, 1988-2008”, “Cabinet Duration in Presidential Democracies”, “Electoral System Choice and Parties in New Democracies: Lessons from the Philippines and Indonesia” 등이 있음.
  • '비핵화, 평화협정' 병행 추진의 전략적 의미
    저자
    황병무(국방대학교 명예교수)
    발간호
    2016-13
      최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과의 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 병행 추진 방침을 재확인하고, 이를 실행하기 위한 구체적 방안을 도출하겠다'라고 밝혔다. 왕 부장은 이를 위해 '언제든지 각국의 의견을 들을 것이며, 더욱 좋은 방법을 제시해 주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한편,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는 이 달 11일 외교부 기자 간담회에서 미국의 대북정책 최우선 순위는 정권 교체가 아닌 비핵화이며, 평화체제에 대한 입장 변화가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동시에 그는 미국이 여전히 외교적 해결책에 의지를 갖고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리퍼트 대사는 미국 정부가 중국과 계속 대화를 하고 있으며, 6자회담 재개를 논의할 것이라면서도 당장 중요한 문제는 북한을 회담장으로 이끌도록 강력한 제재를 실행하는 것이라 밝혔다. 그는 케리 미국 국무장관도 밝혔듯이 미국의 입장은 제재 자체는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목적은 원칙있는 외교를 통한 한반도 비핵화이며 비핵화 우선 원칙과 함께 한·미 양국의 대응 방향이 확고히 일치함을 밝혔다. 왕이 부장은 이번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안이 전면적이고 완전하게 이행되어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단호하게 저지하기를 희망하면서도 대화와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을 강조했다.   왕이 부장과 리퍼트 대사의 말로 미루어 볼 때 비핵화와 평화협정 빅딜 우려는 지나친 기우이다. 하지만 미·중은 철저한 제재 이행에 방점을 두면서도 대화를 거론하는 면에서 우리 정부가 말하는 대화의 시기상조와는 온도 차가 보인다. 현재 우리 정부는 선(先) 제재, 북한의 비핵화 태도 변화를 유도 후 대화 국면으로 비핵화 추진 수순을 밟고 있다.   문제는 중국이 비핵화와 평화협정 병행 추진을 제안한 배경이다. 북한이 핵문제를 협상 이슈화하지 않으려는 것에 중국의 고민이 있다. 북한은 2005년 9.19 합의 때만 하더라도 핵 및 핵프로그램과 안보·경제 지원을 맞바꾸려는 의사가 있었다. 하지만 2, 3차 핵실험 후 북한은 헌법과 당 노선에 핵국가임을 명기하였다. 김정은 정권 출범 후 특사로 중국을 방문한 최룡해 북한 노동당 비서는 시진핑 주석에게 북한의 핵 지위를 인정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4차 핵실험 직후 북한 중앙통신은 논평을 통해 평화협정 요구를 외면한 미국에 대응해 수소탄 실험을 단행했다고 주장했다. 2월 북한 미사일 발사 직전, 평양을 방문한 중국 6자회담 수석대표 우다웨이가 북한에게 미사일 발사 중단과 핵협상 복귀를 요구했지만 허사였다. 귀로에 서울에 들린 우다웨이는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북한은 정권 안보만 보장되면 핵 포기 의사가 있다'는 낙관론을 펴면서도 '정세가 변했으니 방법이 변해야 함'을 강조했다. 여기에서 정세란 북한이 핵 실험 국가임을 의미하며, 방법은 북한을 핵 협상으로 복귀시키려면 강도 높은 대북제재와 더불어 평화협정과 같은 당근이 필요함을 뜻한다. 4차 핵실험에 따른 안보리 제재 국면과 한·미 연합훈련 중 미군 전략자산의 출격이 최고조에 달했지만 북한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핵탄두, 설계도 및 공격 대상과 시나리오 등 일급 군사기밀을 이례적으로 공개했다. 경거망동한 행동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북한은 핵능력 과시에 의한 외부의 위협에 굴복하지 않는다는 의지를 천명하려는 의도 역시 무시할 수는 없다. 오준 유엔 대사가 밝혔듯 북한이 핵실험을 통해 핵실전능력에 가까워졌기 때문에 초강력 제재결의안이 채택되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 때문이라도 대북제재와 압박의 효율성을 높여 북한을 핵협상 테이블에 앉히기 위한 세심한 대책이 필요하다. 첫째, 안보리 제재 결의와 개별 국가의 독자적 제재 사이의 포괄적 공조를 통해서 제재와 압박 조치의 시너지 효과를 높일 필요가 있다. 북한을 제외한 5자회담이 개최되어야 한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의 긍정적 수용과 역할이 필요하다. 둘째, 중국은 국제제재를 받는 북한 권력층의 동향과 발생 가능한 내부 분열에 대한 정보를 이해 당사국들과 공유해야 한다. 북한 내부에 외부 정보 유입이 많아지는 시기이다. 외환(제재)이 내우(리더십 갈등)를 만들어 권력층 내의 노선 투쟁이 발생할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온건 협상파 김양건의 갑작스러운 의문사는 시사점이 크다. 김정은 정권은 권력과 핵개발 정책을 세습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당사국들은 핵무기만이 정권 안보의 핵심이라는 생각을 가지는 권력자의 마음을 바꾸지 못할 때를 대비해 차선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란도 온건파가 등장해 핵협상이 가능했다. 김정은 정권과의 협상에 의한 비핵화가 실패할 때 당사국들은 모두 한반도 안정과 평화 유지라는 지정학 가치 구현의 패배자가 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셋째, 미국의 한국 사드 배치 문제에 대해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는 한국의 핵심 안보 이익에 대한 간섭이다. 사드의 레이더 탐지 범위가 중국 내륙을 포함한다는 주장은 우주의 군사화와 무기화가 촉진되는 오늘날, 군사기술 면에서 적실성이 적다. 동아시아 군비 경쟁을 가속화시키는 요인은 사드의 배치보다는 중·일 간 및 남중국해 영토분쟁이다. 북한의 핵위협이 증대되고 있는 한 한·미·일 안보 협력이 강화될 수밖에 없다. 중·러는 사드를 대북제재 수위 조절의 흥정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끝으로 북한이 1970년대 중반부터 간헐적으로 제기해 온 북·미 간 평화협정 문제는 9.19 공동성명에서 밝혔듯이 북한 비핵화가 가시화 된 후 '당사국들이 적절한 별도의 포럼에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에 관한 협상'을 가질 때 해결 가능하다.​ 現 국방대학교 명예교수. 연구 분야는 국제정치. 서울대학교 외교학과에서 학사, 석사를 받은 후, 미국 캘리포니아대 리버사이드에서 정치학 박사를 취득. 국방발전자문위원회 위원장, 국제정치학회 회장, 외교통상부 정책자문위원장 등을 역임. 주요 저서로는 『신 중국군사론』, 『한국 안보의 영역, 쟁점, 정책』 등이 있음.
  • 이란 선거의 평가: 기대와 불안
    저자
    유흥태(University of London)
    발간호
    2016-12
      지난 2월 26일, 이란 전역에서 제10대 국회의원과 제5대 전문가회의(The Assembly of Experts) 선거가 동시에 시행되어 60%가 넘는 투표율을 기록하며 마무리되었다. 사전에 헌법수호위원회의 자격 심사를 통해 개혁 성향의 후보자가 다수 탈락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두 선거 모두 중도-개혁파 연대의 약진이 두드러졌다.1) 2017년에 있을 차기 대통령 선거와 맞물리는 중요한 시점에서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테헤란 지역구 30석을 모두 중도-개혁파 후보가 차지하는 이변이 발생했다. 2차 투표가 남아있는 상황이지만 성향을 밝히지 않은 무소속을 제외하고도 중도-개혁파는 보수파와 대등한 수의 의석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2) 차기 최고종교지도자를 선출하는 전문가회의 선거에서도 라프산자니 전 대통령과 로하니 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하는 중도파가 약진하여 하메네이 최고종교지도자 사후 강경보수 성향의 지도자 등극에 대한 견제가 가능해졌다. 중도파의 약진과 기대감 이번 선거 결과에는 2015년 7월 '역사적인' 핵협상 타결과 2016년 1월 경제제재 해제를 통한 이란 변화에 대한 희망이 그대로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개혁∙개방∙경제 회복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는 로하니 대통령에게 개방화 정책을 가속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환경을 조성해 주었다. 정국 주도권을 잡은 로하니 정부는 경제 회복을 위해 해외 투자 유치와 협력에 박차를 가할 것이며, 내부적으로도 국회와 긴밀히 협력하여 시장 자유화, 민영화 사업, 외국인 투자를 위한 규제 개혁 등에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발맞춰 많은 나라들이 이란과의 협력과 통상 확대를 위해 테헤란으로 향하고 있다. 그 중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중국 등이 가장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물밑작업을 통해 로하니 대통령 방문을 성사시켜 지난 1월 제재 해제 후 철도, 자동차, 항공기 등의 구매 및  송유관과 고속철 건설 계약을 체결했다. 중국은 시진핑 주석이 테헤란을 방문하여 고속철 건설을 포함한 17건의 대규모 투자 MOU에 서명했다. 우리나라도 지난 2월 28일, 29일 양일간 주형환 산업통상부 장관을 필두로 400여 명의 경제사절단이 이란을 방문하여 10년 만에 한-이란 경제공동위를 개최하고 경제협력 방안을 논의하였다. 남경필 경기지사와 경기도 경제 사절단도 가즈빈 주와 지방자치단체 간 경제∙문화∙학술 협력 강화를 위해 같은 기간 방문하였다. 우리 항공사가 한국-이란 간 직항노선에 처음으로 취항할 것이라는 소식도 들려오고 있다. 제재 해제와 함께 일어나고 있는 이란 특수를 선점하기 위해 중앙정부, 지방자치단체 할 것 없이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경제협력뿐만 아니라 중동 평화 정착과 안정에 대한 기대감도 증가하고 있다. 2013년 대통령 당선 후 고립된 국제관계를 청산하고 모든 국가와의 협력을 주장했던 로하니 대통령은 경제회복을 위한 당면과제 중 하나로 역내 안정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올해 초 발생한 사우디아라비아의 시아파 성직자 처형과 이에 대응해 이란 내 강경파들이 사우디 대사관과 영사관을 공격한 사건으로 이란-사우디아라비아는 외교 관계 단절이라는 벼랑까지 갔다. 그러나 이번 선거를 통해 로하니 정부의 외교정책에 힘이 실리면서 양국 관계 회복에 이란 외교정책의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선거 직후 “대결은 끝났다.” 라는 로하니의 발언 속에는 선거를 통한 국내정치 안에서의 대결만이 아니라 첨예한 갈등과 대립 관계에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와의 화해라는 의미도 포함되었을 것이다. 시리아, 예멘, 이라크, 레바논, 팔레스타인 등 이란이 개입되어 있는 중동의 갈등 관계에서도 로하니 대통령이 주도하는 상황에서는 협력과 평화를 기조로 문제를 해결해 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 남아있는 위협요소 이번 선거 결과는 서구와의 통상 확대를 통한 경제 회복과 국제협력을 통한 역내 평화 구축이라는 로하니 정부의 국정운영 방침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보이지만 여전히 불안요소가 존재한다. 첫째, 헌법수호위원회의 자격 심사를 통해 개혁파 후보자를 대거 탈락시키고도 정국의 주도권을 빼앗긴 보수파의 반격이다. 혁명수비대는 꾸준히 탄도미사일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단거리, 중거리, 장거리를 포함한 모든 종류의 탄도미사일 실험을 통해 이스라엘을 직접 타격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보수파는 혁명수비대와 결탁하여 정치∙경제∙사회의 개방과 개혁의 변화를 막고 지속적으로 역내 불안감을 조성할 것이다. 이미 보수파는 이슬람 혁명 이후 가장 개혁적인 정부로 평가받는 하타미 정부(1997-2005)와 제6대 국회(2000-2004)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식물 정부와 국회로 만든 경험이 있다. 그 결과 하타미 정부 차기 대통령으로 강경보수파 아흐마디네자드(2005-2013)가 당선되어 정치, 사회 모두 보수파 중심으로 바뀌었다. 둘째, 최고종교지도자의 변심이다. 하메네이는 경제제재 해제와 경제회복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로하니를 지지해 주고 있지만 로하니의 권력과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두고 보지 않을 것이다. 즉, 다양한 권력기관과 개인 간의 세력 균형(Power Balance) 정책을 통해 자신의 권력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하메네이가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로하니를 지속적으로 지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메네이는 원하는 수준의 경제회복이 이루어질 경우, 로하니에 대한 견제를 시작할 것이다. 셋째, 중도-보수파 연합으로 당선된 국회의원들의 로하니 정부 정책을 지지 여부이다. 정당정치가 없는 이란의 정치문화에서 중도-보수 연합에 이름을 올린 사람들 중에는 과거 보수파로 활동한 전력을 가진 사람들이 다수 있다. 현 국회의장 알리 라리자니도 하메네이의 측근인 보수파로 분류되던 인사였지만 지금은 중도-보수 연합세력으로 출마하였다. 이들이 로하니의 모든 개혁정책에 한결같은 지지를 보낼 지는 의문점이다. 선거를 통해 얻은 국민의 지지를 기반으로 이란의 경제회복과 역내 패권국가로서의 역할을 회복해 가고 있는 중도파 로하니 정부지만, 여전히 최고권력을 가지고 있는 최고종교지도자 하메네이, 사법부와 헌법수호위원회를 장악하고 있는 보수적 성직자들, 그리고 군과 안보기관을 장악하고 있는 혁명수비대가 건재하기 때문에 급격히 사회를 변화시키기는 힘들 것이다. 우리의 대응 이란은 결코 놓칠 수 없는 매력적인 시장이다. 8천만이 넘는 인구를 바탕으로 한 내수 시장과 중동, 북카프카즈, 중앙아시아로 이어지는 주변 시장은 한국 경제의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다. 또한 이란은 한국의 기술력을 인정할 뿐만 아니라 자동차, 백색 가전, 핸드폰 등 한국 상품에 대한 선호도도 높다. 반면, 이란은 한국이 이란에 대해 독자적 경제제재를 취하고 인권 관련 유엔 안보리 표결에서 불리한 투표를 한 전력을 기억하고 있으며, 투자와 기술 이전, 합작 생산에는 인색하고 제품만 팔아 이윤을 가져간다는 부정적인 인식 또한 가지고 있다. 여기에 정치적 불안요소들도 남아 있다. 이는 이란을 향한 기대감에 감춰져 있는 현실이다. 이럴 때일수록 이란 정치, 경제 환경에 대한 적극적인 연구와 상호 호혜적 협력방안 제시가 필요하다. 오랫동안 이란과 관계를 맺어온 기업들을 중심으로 적극적이면서도 사려 깊은 접근을 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보수파와 중도파를 아우르면서 모든 이란 사람들이 이해하고 함께 할 수 있는 동반자로 양국 관계가 발전해 나가야 할 때이다. ________ 1) 국회의원 선거에서 12,000명이 넘은 입후보자들 중 7,000명 이상의 후보자 자격을 박탈당했다. 개혁파 후보자들의 지도자인 호세인 마라쉬에 따르면 3,000명이 넘는 개혁파 후보자들 중에 1% 만 자격 심사를 통과하였다고 밝혔다. 전문가회의 선거에서도 800명이 넘는 후보 지원자들 중 개혁적인 후보자는 대부분 탈락하고, 20%가 조금 넘는 166명만 통과되었다. 중도-개혁 연대의 상징인 ‘희망의 명단’ 소속 출마자들은 개혁파라기보다 실용주의 중도파에 가깝다고 보는 편이 맞다. 2) 1차 투표 결과는 중도파 83석, 보수파 78석, 무소속 60석, 소수종교 5석이며, 2차 투표 결과는 64석으로 집계되었다. (www.entekhab.ir 집계 발표) 現 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SOAS), University of London 방문연구원.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에서 중동지역학으로 석사 학위, 이란 이스파한 국립대학교에서 정치학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 "이란 에너지 산업 연구: 석유와 천연가스 중심으로," "A Study of Rural Development in Iran through the White Revolution: Comparing with South Korea’s Rural Development Program(Saemaul Undong)" 등의 논문과 『페르시아의 종교』, 『고대 페르시아의 역사』, 『이란의 역사』, 『에스파한』 등 다수의 저서가 있음.
  • 위안부 문제 합의에 대한 일본 보수세력의 반발과 한일관계의 과제
    저자
    고선규(선거연수원 교수)
    발간호
    2016-11
      지난 2015년 12월 28일, 한국과 일본은 양국의 최대 현안으로 존재해 온 종군위안부 문제 해결에 전격적으로 합의하였다.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인 2015년을 넘기지 않고 위안부 문제에 합의한 것은 한일관계만이 아니라 동북아지역 안보체제와 관련해서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위안부 문제 합의 이후, 양국관계는 정상궤도로 돌아오고 있다. 북한의 핵실험, 장거리미사일 발사와 관련해서 양국 정상은 두 번에 걸쳐 전화회담 형태로 현안을 협의하였다. 그리고 지난 3.1절 경축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기존과는 다른 대일 메시지를 발표하였다. 아베 수상도 지난 1월 22일 중의원 시정연설에서 한국은 “전략적 이해를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이웃나라”라고 강조하였다.   한편,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위안부 문제 합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뿐만 아니라 일본 국내에서도 위안부 문제 합의에 반하는 정치가의 발언이나 우익세력의 반발도 심심치 않게 나타나고 있다. 심지어 지난 2월 16일에는 일본 외무성 심의관이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에서 “정부가 조사한 자료에서 군과 관헌에 의한 강제연행을 확인할 수 없었다”고 발언함으로써 위안부 문제 합의에 대한 일본 정부의 진의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이 글은 위안부 문제 합의를 둘러싼 일본의 국내정치적 상황을 보수세력의 인식과 반발에 주목하여 고찰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번 합의를 계기로 향후 한일관계가 미래 지향적인 관계로 나아가기 위한 대응방안을 살펴보기로 한다.   한국 정부는 그간 위안부 문제 해결과정에서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과 수용 가능하고 납득할 수 있는 조치를 요구하였다. 이번 합의에서 일본 정부는 당시 군의 관여 하에 다수의 여성이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받았다는 점을 인정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고 사죄하였다. 따라서 위안부 할머니들의 심신을 치료하고 추모하기 위한 사업비로 정부 예산 10억 엔을 거출할 것을 약속하였다. 그리고 이번 합의로 위안부 문제는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된 것임을 확인하였다.   이러한 합의는 한국과 일본 양쪽이 만족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기존 논의과정에서 제기된 어떠한 합의안보다도 진전된 것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일본 보수세력에게 당시 군의 위안부 문제 관여, 정부의 책임 인정과 배상은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마지노선이었다. 정부의 배상과 사과는 1965년 한일기본조약에서 모두 해결되었다는 입장을 고수하여 왔기 때문이다. 결국 지난해 12월, 위안부 문제 합의과정에서 아베 수상은 이러한 보수세력을 의식하여 간접적이고 우회적인 방법으로 정부의 책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위안부 문제 합의 이후, 자민당 내부에서도 불만이 표출되었다. 지난 1월 14일, 자민당 외교·경제연대본부 합동회의에서 문부성 부대신을 역임한 사쿠라다(桜田) 의원이 위안부를 “직업 매춘부”로 폄하하는 망언을 했으며, 뒤를 이어 1월 26일에는 자민당 외교부회에서 소녀상의 조기 철거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하여 아베 수상에게 전달하였다. 이 결의안이 채택된 배경은 이번 합의안에 대한 불만과 한국 정부를 압박하기 위한 의도라고 볼 수밖에 없다. 한편, 자민당 내 보수세력이 이번 합의안에 대하여 부정적인 의견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사쿠라다 의원의 발언에 대해 스가(菅) 관방장관은 기자 브리핑에서 대답할 가치도 없다고 일축하면서 양국 간 합의에 노력할 뿐이라고 망언이 미칠 파장을 우려하였다. 또한, 자민당은 소녀상 조기 철거 요구 결의안에서 아베 수상이 성사시킨 위안부 합의안을 강력하게 지지한다고 표현하고 있다. 반면, 일본 내 극단적인 우익세력은 아베 수상에게 실망을 표출하고 지지 철회를 주장하고 있다. 일본의 우익보수세력이 2012년 아베 수상의 재등판을 용인한 이유는 일본 국내뿐만 아니라 아시아의 역사관을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바로잡겠다는 의도에서였기 때문이다. 이들은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 합의에서 ‘군의 관여’를 인정한 점을 도저히 수용하기 어렵다며 반발하고 있다.   이러한 반발에 대하여 아베 수상은 일정한 범위 내에서 수용하면서 보수세력을 달래기 위한 정치적인 설득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 우선, 이번 합의안이 역대 정권에서 제시된 어떤 합의안보다도 진전된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1995년 무라야마(村山) 정권, 2009년 이후 민주당 정권에서도 성사시키지 못한 문제를 해결했다는 역사적 의의를 강조하면서 보수세력을 설득하고 있다. 이번 합의에는 일본 정부가 국회의 동의가 필요한 예산의 형태로 10억 엔을 지급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지금까지 일본의 입장은 식민지 청산과 관련된 배상 문제는 1965년 한일기본조약 체결을 계기로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되었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한편, 이번 합의로 일본 정부가 제공하는 10억 엔이 정치적으로는 큰 의미를 가지는 반면, 배상금 또는 식민지 청산 관련 비용으로는 그 규모가 크지 않다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 예를 들면, 1989년 한일 양국의 합의로 진행된 사할린 동포 영주귀국사업에 소용된 예산은 82조 엔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본 정부는 사할린 동포들이 한국에 영주, 귀국할 경우 거처를 마련하기 위하여 32억 엔을 들여 안산시에 아파트를 건축했고, 사할린 현지의 기념관 건설 비용을 부담하였다.   이번 합의가 가능하게 된 일본 내부 상황으로는 아베 수상의 강력한 정치적 지지기반이 존재함을 들 수 있다. 현재 자민당 내에 아베 수상을 대체할만한 유력한 정치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위안부 합의 이후, 아베 수상의 지지율은 오히려 상승하였다. 여·야관계를 살펴보아도 자민당이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 1월 NHK 여론조사에서 자민당과 민주당의 지지율을 각각 40%, 8%로 나타났다.   일본은 2016년 7월 참의원선거가 예정되어 있다. 현재 연립여당을 구성하고 있는 자민당과 공명당은 중의원에서 68.4%의 의석을 차지하고 있다. 지난 3월 2일, 아베 수상은 올해 참의원선거에서 자민당이나 연립여당이 3분의 2 이상 의석을 확보하게 된다면, 자신의 임기 중에 개헌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하였다. 현재 상황으로는 참의원선거에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가 아베 수상에게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 같지는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베 수상은 위안부 합의가 보수세력이 요구하는 전후체제의 종결과 식민지 지배의 부정적인 유산을 청산하기 위한 시도임을 강조하고 있다. 동시에 2015년 9월 안보법제 성립 이후, 본격화되고 있는 미일 안보협력을 통한 대중 견제전략에 걸림돌로 작용해 온 한일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보수세력을 설득하고 있다.   향후 한일관계나 동북아안보협력 관련 대응방안을 생각해 보면 위안부 문제 합의를 둘러싸고 일본에서는 구심력이 작용하고 있지만, 반대로 한국에서는 원심력이 작용하고 있다. 한국에서 위안부 문제 합의에 대한 반대여론이 줄어들지 않고 있다. 특히, 이번 합의에서 양국이 합의한 ‘최종적이고 불가역적 해결’이 아직까지도 논쟁점으로 남아 있다. ‘최종적이고 불가역적 해결’이라는 수사는 일반국민들에게 매우 생소한 표현이다. 이 표현은 이번 합의가 최종적인 해결임을 강조하기 위하여 일본 측의 요청으로 명기되었다. 그러나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50년의 한일관계를 살펴볼 때, ‘최종적이고 불가역적 해결’이라는 표현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65년 한일기본조약 체결문에도 명시되어 있다. 1993년 고노 담화, 1995년 무라야마 담화가 발표될 당시에도 양국 정부가 상대방의 조치를 적극적으로 수용한다는 입장을 취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일 간에는 과거사와 관련된 새로운 문제들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었고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새로운 합의가 이루어져 왔다. 결국 최종적 해결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이번 합의에도 불구하고 위안부 문제가 다시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여론이 일본에서도 적지 않다. 향후 국제사회의 여론이나 가치관의 변화, 일본에서 정권 교체 가능성 등의 상황 변화에 따라 새로운 형태의 ‘최종적이고 불가역적 해결’은 반복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최종적이고 불가역적 해결’은 일본이 약속한 사항을 성실하게 수행할 경우만 해당되는 것이다. 지금처럼 정치인들이 망언을 주기적으로 반복하는 한 어떠한 구속적인 의미도 갖지 못할 것이다. 한국 정부는 일본의 정치가들이 과거사를 부정하는 망언을 되풀이하거나 위안부 문제 합의 내용을 번복하는 일이 없도록 한국 정부는 이 합의를 정치적, 법적 구속력이 강한 공동선언이나 조약의 형태로 발전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동북아지역의 안보협력과 관련하여 이번 위안부 문제 합의가 가지는 의의가 결코 적지 않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미사일 발사와 같은 긴급사태에 공동 대응할 수 있는 한일, 한미일 공동안보협력체제 구축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동북아지역에서 지속 가능한 안보협력체제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한일 간 현안 해결에 대한 ‘실패’를 반복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번 위안부 문제는 1995년 아시아여성기금의 실패로 2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합의가 이루어졌다. 현재 위안부 할머니들은 평균연령이 89세이며, 생존자도 44명에 불과하다. 이제 더 이상 현안에 대한 실패의 반복으로 그분들의 명예 회복과 치유가 지연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더구나 최근과 같이 동북아지역에서 군사안보적 불안정성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더 그러하다. 現 선거연수원 교수. 2000년 일본 토호쿠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함. 전공분야는 일본 국내정치이며, 관심분야는 주로 선거, 정당, 시민사회 등 정치과정. 최근 논문으로는 “일본자민당 파벌의 정책성향과 대한정책의 우경화 배경”(『일본평론』 2015. 12)과 대표 저서로서는『韓日政治制度比較』 (동경: 게이오대학출판회, 2015)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