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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러 관계의 새로운 조망
    저자
    김덕중(경기대학교 국제대학 러시아학과 교수)
    발간호
    2010-19
      1990년 9월 30일 유엔총회가 열리고 있던 뉴욕으로부터 한국과 소련이 국교 수립에 합의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는 우리 역사의 새로운 장이 열린 것을 알린 것이었다. 1980년대 말 세계는 냉전구조의 해체 및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와 1990년 독일 통일이라는 대변혁 가운데 있었으며 한반도 정세 또한 급변하고 있었다. 1991년 남북한의 유엔 가입과 남북기본합의서 및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합의, 그리고 1992년의 한·중 수교를 가능하게 했던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바로 한·소 수교였다. 역사적으로 본다면, 1945년 북한 지역을 점령한 데 이어 1948년의 북한 정권 수립과 1950년 한국전쟁을 일으킨 과정에서 소련이 한반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가를 재확인시켜 주었다. 앞으로 북한문제 해결과 한반도 통일 과정에서도 러시아가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다는 예측을 가능케 한다.금년은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이자 소련군의 참전 60주년이기도 하다. 1950년 가을 중공군의 참전을 가능케 했던 것이 소련 공군의 지원이었고 그 역할을 담당했던 제64독립항공군단의 전투일지가 서울에 들어와 있다. 필자의 관심 주제였기 때문에 여러 편의 논문과 <소련군의 한국전 참전>이 단행본으로 나왔으나 정부 차원에서 한국전쟁사와 한·러 관계사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은 아직 부족하다. 60주년을 맞아 소련이 한국전에 직접 참전했었다는 사실을 참전했던 조종사들의 증언을 통해 기록으로 남기는 것을 제안한다. 나아가 그들을 우리나라로 초청하여 한국의 발전상을 보여주면 어떨까 한다. 그들이 한·러 관계의 발전에 어떤 기여를 할 것인지는 지켜볼 일이기 때문에 소련공군의 한국전 참전 60주년 기념을 통하여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울러 2차 대전 말기 북한 지역을 점령했던 소련군의 역할과 북한 정권 수립과 경제적 지원에 관한 러시아 측의 역사를 정확하게 기록하는 것은 한·러 관계는 물론 남북한 관계 정립의 기초가 될 것이다.새로운 20년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지난 20년간 잘한 것은 더욱 잘하도록 하고, 잘못한 것은 고치는 일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러시아가 한국과 얼마나 가까운가를 인식해야 한다. 한반도와 육지로 국경을 접하고 있는 나라는 지구상에 단 두 나라가 있다. 중국과 러시아가 바로 그들인데 러시아는 두만강 끝부분에서 아주 짧게 만나지만 동해를 통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한국과 러시아가 얼마나 가까운 지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 한·러 관계의 변화 과정을 지켜본 사람으로서 양국 관계 발전을 위한 다섯 가지를 제안하고자 한다.첫째, 러시아 전문가의 양적 증대가 무엇보다도 시급하다. 러시아가 세계 최대의 국토에 석유와 천연가스를 비롯한 방대한 자원의 보고라고 말하면서 일을 맡아서 할 사람은 태부족한 현실이다. 더구나 어문학 전공자와 비교할 때 지역학 전공자가 너무 적기 때문에 실제 러시아 관련 업무를 담당할 사람을 찾기가 어렵다는 말을 현장으로부터 듣고 있다. 러시아어가 다른 외국어에 비해 어렵다는 선입견을 버리고 많은 학생들이 러시아의 중소 도시들에 있는 학교에 가서 2년 정도 집중적으로 러시아어를 배우고 돌아오면 좋을 것이다.둘째, 양적 증대와 함께 질적 수준을 높여야 한다. 1990년 한·소 수교 이후 한국의 러시아 유학생이 급증하였고 이제 우리 주변에서는 러시아에서 박사 학위를 따 온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되었다. 러시아의 입장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자기의 전공 주제에 대해 러시아어로 논문을 발표하고 러시아 학자 및 전문가들과 러시아어로 토론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아직 많지 않다. 더구나 러시아 측 인사들과 공식 혹은 비공식 교류를 계속하며 개인적인 네트워크를 유지하는 일 등은 시작단계에 있다. 러시아에 관심이 있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현지에 체류하면서 연구하고 체험하면서 인적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도록 한국연구재단을 비롯한 기관들의 정책적인 지원이 필요한 부분이다.셋째, 러시아에 관하여 지난 20년간 수집한 지식과 정보를 종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국내에서는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의 전망에 관한 회의나 한반도 안보와 주변 4강에 관한 회의가 많이 열리는데 이들 회의에 직접 참석해 보면 한 가지 특징이 나타난다.  단상에 앉아 있는 전문가들의 출신국적을 보면 대부분의 경우 러시아인 학자는 찾아보기 어렵다. 러시아의 입장을 분석하여 설명할 수 있는 한국인 러시아 전문가도 보이지 않으며 단상은 물론이고 청중석에서도 러시아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수교한 지  20년이나 되었음에도 러시아는 아직도 우리한테서 너무도 멀리에 있다. 뿐만 아니라, 러시아 전공자들의 모임도 다른 지역전문가들의 모임에 비해 양적으로도 부족한데다가 다양한 배경과 대립적인 견해를 갖는 전문가들 사이의 비판이나 토론도 매우 부족하다. 이러한 약점을 보충하기 위해서는 러시아에 관한 연구비를 지원하는 한국연구재단 등에서 다양한 견해를 취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한·소 관계 발전을 위한 방안을 전국 규모의 전문가들로부터 듣는 것은 외교통상부가 해야 할 일인데, 1990년대 후반에는 그러한 노력들이 있었으며 평소에는 말이 적었던 다수의 러시아 전문가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것이 지금도 기억에 새롭다.넷째, 주한 러시아 대사관의 역할이다. 지난 2008년부터 주한 러시아대사관은 한국의 러시아전문가들을 대사관으로 초청하여 파티를 열기 시작했다. 이처럼 러시아대사관이 적극적으로 한국 국민들에게 다가온다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미국의 경우를 보면, 1970년대 초반 미국문화원에서는 몇 개의 영어회화 클럽을 지원하였다.  당시 영어를 좀 한다는 대학생들이 모여들었고 그들은 후일 각 분야에서 괄목할만한 활동을 하는 것을 보았는데 그들 대부분이 친미성향의 엘리트들이 된 배경에는 미국문화원의 장기적인 포석이 있었다. 러시아대사관의 경우에도 러시아회화 동아리 활동을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이미 국내에는 러시아어를 공부하는 학생들이 모이는 동아리들이 있는 바 이들이 정기적으로 모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교재와 시청각 자료를 공급해 주는 일은 장차 한·러 관계를 직간접적으로 담당하게 될 자원들을 미리 확보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다섯째, 한·러 간의 교류와 접촉을 제도화하는 것이 시급하다. 무엇보다도 한국 대통령이 매년 최소 한 차례 이상 상호 방문하는 외국 원수의 명단에 러시아 대통령이 포함되어야 한다. 한반도 주변 4강 정상과의 정례적인 만남, 나아가 언젠가는 남북한 정상회담의 정례화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도모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주변 4강을 말할 때 <미·일·중·러> 혹은 <미·중·일·러>라고 하는데 어느 경우이던 간에 러시아는 항상 4위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처럼 한·러 관계가 가장 부족하다는 것을 안다면 그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려는 외교적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미국과 중국, 미국과 러시아, 일본과 중국, 그리고 중국과 러시아는 1998년을 전후하여 모두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돌아가며 수립하였고 각 부문에서의 교류와 접촉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그들의 한 가운데 있는 한국이 러시아와의 관계를 증대하는 것이 다른 세 나라의 국익에 반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한다면 한·러 간의 교류와 접촉은 대폭 늘려야 한다. 학계의 경우에도 필자가 연구이사로 일하던  2003년, 한국슬라브학회는 2년마다 한 번씩 러시아의 지역 대학들을 방문하여 국제학술회의를 열기로 결정하여 그 첫 회의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개최한 바 있는데 각 분야별로 정례적인 학술대회를 상호 초청방문하면서 개최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 좋은 사례였다.이제 새로운 20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러시아 친구들은 러시아를 “자원으로만 보지 말아 달라”는 부탁을 한다. 경제적인 측면 말고도 사회문화적 측면에서 러시아는 우리와 많은 것을 공유할 수 있다는 말이다. 고려인 혹은 고려 사람들이 있는 광대한 연해주는 한국은 물론 북한을 위해서도 훌륭한 식량 공급지가 될 것이다.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고 러시아를 구석구석 여행하는 것도 위험하기는커녕 꼭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스킨헤드족이 무서워서 러시아 어학연수나 유학을 망설이고 있는 사람은 스스로를 돌아보기 바란다. 그리하여 러시아와 친해지려는 노력을 하면 할수록 러시아는 우리에게 더 좋은 친구가 될 것이다. 그것이 한반도 주변 4강 모두를 친구로 사귀어야 하는 우리 한국 국민들에게 주어진 과제이다.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김덕중경기대학교 국제대학 러시아학과 교수
  • 유엔 안보리 의장 성명 이후 대북정책 추진방향
    저자
    이봉조(전 통일부 차관)
    발간호
    2010-18
    지난 7월 9일 천안함 사건에 대한 유엔 안보리 의장성명이 채택되었다. 천안함 사건이 발생한지 3개월 반 만에 그리고 이 사건이 안보리에 공식 회부된 지 35일 만에 천안함 사건 관련 문건이 유엔 안보리에서 나오게 된 것이다. 안보리 상임이사국 사이의 견해 차이와 성명문안의 내용에 대해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천안함 사건에 대한 유엔에서의 조치가 일단락되었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이를 천안함 사건의 해결로 볼 수는 없을 것이다.천안함 사건의 본질은 최근 남북 간의 긴장과 대립이 지속적으로 고조되어 왔고 이로 인해 NLL해역의 불안정이 심화되어 온 데서 찾을 수 있다. 즉 천안함 사건은 남북 간의 문제이기 때문에 종국적으로는 남북 간에 해결되어야할 문제라는 성격을 갖는다. 그렇기 때문에 유엔 안보리에서 분명하고 구속력 있는 조치가 나오기란 애초부터 기대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천안함 사건 이후 남북관계의 향방은 우리가 천안함 사건의 해결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와 연관되어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5월 24일 대국민 담화에서 북한의 ‘사과와 관련자 처벌’을 요구했다. 그러나 북한이 줄곧 남측의 “날조, 모략극”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마당에 북한이 이를 수용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더욱이 지금까지 중국과 러시아가 보인 태도나 안보리 의장 성명으로 미루어 보면 북한이 우리의 요구를 수용할 가능성은 전무 하다고 할 수 있다.천안함 사건은 본질적으로 남북관계 속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라면 과연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가 앞으로의 핵심적 관심사가 될 것이다. 그렇다고 천안함 문제를 당장 남북대화의 틀 속에서 다루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남북 간에 신뢰가 소진된 상태에서는 어떠한 성과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건 자체의 무게로 보아서도 용이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정부는 애초부터 남북 간의 문제로 접근할 의사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유엔 안보리 회부는 당연한 조치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주변국의 국가이익과 연관되어 관련국들의 태도에서 차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천안함 사건에 대한 주변국의 견해가 각기 다른 것도 이 문제를 그들 나름의 국익의 관점에서 보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런 상황에서 남북관계는 상당기간 단절과 실종이 불가피해 보인다. 그렇다고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도 없는 형국이다. 그래서 중간 단계가 필요하다.7월 9일 유엔 안보리 의장 성명은 “정전협정의 완전한 준수를 촉구하고, 분쟁을 회피하고 상황악화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적절한 경로를 통해 직접대화와 협상을 가급적 조속히 재개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한편 천안함 사건으로 중단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 재개 문제도 마냥 미루어 둘 수는 없는 상황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북한의 핵능력은 통제 없이 증대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현안과제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천안함 사건으로 중단된 6자회담 재개 프로세스를 재가동하는 것이 ‘적절한 경로’가 될 수 있다. 천안함 사건의 해결방향을 안보리에서 논의하여 의장 성명에 담았다면 6자회담에서는 북핵문제 해결과 함께 안보리의 권장사항을 이행하는 차원에서 ‘정전협정 준수와 남북 간 분쟁 방지 문제’를 병행 논의하는 방안을 강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6자회담 프로세스에서 어느 정도 진전이 있게 되면 이를 토대로 천안함 문제를 직접 당사자인 남북관계의 문제로 전환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다.북한은 안보리 의장 성명에서 북한을 공격의 주체로 명기하지 않은 점과 북한에 대한 추가적인 제재문제가 언급되지 않은데 대해 안도해 할지도 모른다. 이것은 북한으로 하여금 6자회담의 참여에 좋은 구실을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안보리 의장 성명 채택 직후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우리는 평등한 6자회담을 통하여 평화협정 체결과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을 일관되게 기울여 나갈 것”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으며 판문점에서 유엔사와의 대화에도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북한이 6자회담에 참여하기 위해 또 다시 전제조건을 제시할 가능성이 있지만 미중이 천안함 사건 이전에 보인 협력 체제를 가동한다면 어렵지 않게 해결 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이 6자회담에 적극 나설 것으로 보는 이유는 첫째, 현재 북한은「9.19 공동성명」에 합의한 5년 전 보다 체제 생존이 더욱 긴박한 과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연초부터 북한이 계속 제기해 왔던 대북제재 해제요구와 평화협정 우선 논의 주장도 궁극적으로는 경제지원과 체제 안전 보장에 대한 요구이자 “다시는 절대로 참가하지 않겠다” 고 공언한 6자회담에 복귀하기 위한 명분 축적용으로 볼 수 있다. 둘째, 추후 6자회담은 과거 남한 정부가 수행해 온 조정자, 촉진자 역할을 중국이 수행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점에서 북한이 의장국인 중국의 체면과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셋째, 북한은 남한 정부가 천안함 사건으로 더욱 강경해질 것으로 보고 한반도 문제를 국제화함으로써 남한의 강경공세를 누그러뜨리고 동시에 북중관계 발전과 북미관계 개선의 기회로 삼으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천안함 사건은 갈 길이 바쁜 김정일 정권으로 하여금 중국에 대한 의존을 심화시키는 한편 상대적으로 우리의 대북 영향력을 제한함으로써 북한을 근원적으로 바꾸어 보려는 이명박 정부의 노력을 무력화할 수도 있다. 더 늦기 전에 6자회담 재개 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해야 하는 이유이다.유엔 안보리 의장 성명 채택 이후 상황에서 대북정책의 방향은 먼저 상황관리에 주력하면서 그동안의 단선적인 정책에서 벗어나 보다 종합적이고 입체적인 대북정책을 수립하는 것이다. 천안함 사건과 이후 조성된 정세변화를 냉정하게 평가하고 대북정책을 보완하는 계기로 삼는 지혜가 필요하다. 우리가 전략과 대안을 갖고 주도하지 못하면 미국과 중국의 전략이 한반도에서 각축을 하게 되고 결국 한반도 문제의 주도권을 미국과 중국이 쥐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남북이 모두 더 이상 실패하지 않으려면 국력이나 국제사회의 위상이 북한에 비해 월등한 위치에 있는 우리로부터 새로운 돌파구가 나와야 할 것이다. 압박정책 만으로는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다. 우리가 갖고 있던 대북 레버리지가 이미 소진된 상태에서 5.24 조치는 실효성을 갖기가 어렵다. 그나마 북한에 대해 취할 수 있는 상정 가능한 조치들을 한꺼번에 모두 열거함으로써 실질적인 조치가 이루어지지 못했을 뿐 아니라 추후 대응을 어렵게 하는 결과가 되고 말았다. 북한의 책임을 묻기 위해 안보리에 회부는 하였으나 의장 성명 선에서 절충이 되었고 내용 또한「5.24 조치」에서 기대했던 것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그렇기 때문에 당장은 어렵겠지만 안보리 의장 성명에서 권장한 ‘적절한 경로를 통한 직접대화와 협상’에 입각한 출구전략의 모색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현 상황에서 대북정책을 재정립하기 위해서는 첫째, 안보리 논의의 종결을 기점으로 그동안 북한에만 초점을 맞춘 대북정책을 동북아라는 보다 큰 틀 속에서 북한 문제에 접근하는 정책으로 전환을 모색하는 것이다. 둘째, 이러한 맥락에서 과거와 달리 생산적인 6자회담이 되도록 우리가 대안을 갖고 적극 나서고 6자회담의 진전을 남북관계 정상화의 계기로 활용하는 세밀한 정책 조정이 필요하다. 셋째, 6자회담에서 북한이 비핵화에 보다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조치를 취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중국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중협력을 통해 천안함 사건에서 비롯된 불신을 해소하고 6자회담의 진전에 대한 담보를 확보하는 것이다. 넷째, 6자회담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게 되면 남북 직접대화를 통해 NLL에서의 긴장해소와 분쟁 방지를 위한 대책을 강구하는 것이다. 물론 쉽지 않겠지만 가능하다면 G20 정상회의 이전에 이런 여건이 마련된다면 회의의 성공적 개최에도 기여하게 될 것이다. 현 단계에서 남북관계를 정상화하는 일은 매우 어려운 과제임이 분명하나 가변적 요소 또한 적지 않기 때문에 여지를 열어 놓고 다양한 대안을 강구하는 것이 긴요하다.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이봉조전 통일부 차관
  • 2010년 봄: 세계 비핵화로 가는 전환점을 만들 수 있을 것인가? 러시아의 관점
    저자
    세르게이 M. 스미르노프(국립해양대학교)
    발간호
    2010-17
      2010년 봄, 나는 주요 핵 관련 정치활동에서 오바마 행정부의 주도에 아무도 도전을 하지 못하리라고 생각한다. 핵태세검토보고서(Nuclear Posture Review)와 핵안보 정상회의(Nuclear Security Summit)는 분명한 미국 대통령의 위업이었다. 러시아와 새로운 START에 합의할 수 있었던 것도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오바마 대통령의 적극적 노력 덕분이었다. 이러한 업적들은 정치적 의미에서 대단한 성공이다. 특히 노벨상 위원회의 선택이 옳았음을 재확인시키려 애써온 오바마 대통령에게는 매우 중요한 성과였다.  2010년 핵태세검토보고서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이 문서에서는 핵비축량의 투명성, 핵비확산활동, 핵무기 없는 세계로 가는 로드맵 등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핵무기보유고에 관한 세부상항들이 (명확히 분류되진 않았지만) 최초로 공개되었고, 핵태세검토보고서를 통해 새로운 핵무기 개발이나 기존 핵무기의 새로운 능력 또는 작전 개발을 하지 않기로 선언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핵확산방지조약에 가입하여 의무를 준수하는 비핵보유국에 대해서는 핵무기 사용을 금지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제 현실적인 면에서 이러한 업적들의 가치를 논의해보자. 미국과 러시아가 배치 또는 보유하고 있는 핵탄두의 수는 적어도 전문가와 외교관, 그리고 INF, SALT, START 활동에 참가하는 군인들에게는 사실상 중요한 기밀이 아니다.  가오 왕라이(Gao Wanglai) 박사는 이 사이트에 올린 ‘핵태세검토보고서에 대한 중국의 입장’이라는 논문에서 핵태세검토보고서의 다양한 ‘부작용들’을 완벽히 진단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미국은 핵무기 수를 발표하면서 자국이 세계에서 가장 우월한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세계에 과시하여 결과적으로 안보를 더욱 강화하였다’라는 그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 사실 미국의 전략적 핵무기는 냉전시대 이후 기술적으로 큰 변화가 없었다. 미국의 주요한 전략적 적대국가인 러시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이미 무기의 성능이 작전 요구를 크게 초과하므로 굳이 현대화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양국은 4월 프라하에서 새로운 START 협정을 채결할 때 보여준 전략적 무기 면에서의 동등한 지위를 지금까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2010년 핵태세검토보고서의 유효기간인 2015-2020년 동안에도 이 상태가 계속 유지될 것으로 전망된다.  러시아의 경우 새로운 협정으로 가는 길이 평탄치 않았다. 사나운 ‘매파(Hawks)’들이 전략적 무기를 더욱 감축한다면 국가방어능력이 전반적으로 악화될 것이라고 시위를 했기 때문이다. 반면 ‘현실주의자’들은 실제 국내 상황을 고려할 때 전략적 무기를 더욱 많이 삭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러시아의 많은 전략시스템들이 노후화되고 있지만 방위산업부문에서 이를 적시에 대체할 능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지난 5년간 연기되고 있는 불행한 ‘불라바(Bulava)’ SLBM 프로젝트 역시 러시아 방위산업의 심각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협정의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솔직히 이전 START 체계에서 군대 대 군대로서의 상호작용이 20년간 이상 계속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미국과 러시아가 이전의 전략적 적대국 관계에서 벗어나 투명성, 신뢰형성, 협력의 관계를 조성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사실이다.  핵태세보고서에서 또 다른 주목할 점은 미국의 핵무기기지에 대한 지출비용의 증가다. 그러한 결정에는 분명한 논리가 숨어있다. 핵탄두는 플루토늄 함유 비율과 다른 물리적 효과에 의해 생명주기가 달라진다. 따라서 핵탄두를 지속적으로 검사하고, 정비하고, 충전하지 않으면 모든 핵실험에 부여된 일시적 정지기간이 지난 후에는 그 성능을 신뢰할 수 없게 된다. 한편 기존 탄두의 품질 향상에도 추가재정이 지원된다. 외부인들은 그것이 핵탄두의 안전성과 안정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것인지, 핵탄두의 파괴력과 정확도를 향상시키기 위한 것인지 정확히 알 수가 없다. 만약 후자의 경우라면 아슬아슬하게 유지되고 있는 세계의 전략적 균형이 허무하게 무너질 위험이 있다.  비전략적 핵무기 문제에 대해서도 비슷한 논리적 접근방법이 적용되어 빠른 감축 속도를 보일 전망이다. 때때로 미친듯한 냉전논리가 끝난 것이다. 전략적 핵무기 대량사용에 따른 확증된 자기파괴효과는 전투 지휘자(적군의 핵잠수함에 핵어뢰 발사를 명령하는 해군 함대참모와 10인치 핵 장착 포탄 발사를 준비하는 육군대령)에게 결코 비밀이 아니다. 오늘날에는 핵무기의 정확도를 이용해 같은 임무를 보다(이것이 문맥에 접합한 단어라면) 적절히 그리고 안전하게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토마호크(Tomahawk) 핵 크루즈 미사일의 퇴출 선언은 그것의 운영가치가 사라진 새로운 전략적 환경에서 지루한 심사숙고를 반복한 끝에 얻어낸 긍정적인 진보였다. 그러나 미국이 비전략적 핵무기 퇴출에서 러시아를 앞서가고 있다 해도, 그것이 워싱턴이 러시아보다 ‘핵무기 없는 세계’를 더욱 간절히 원하고 있다는 증거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미국이 많은 핵심전투지역에서 재래식 무기의 기술적 우월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결과 러시아 군사 전략가들은 이 지역에서 계속 핵무기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2010년 2월 채택된) 새로운 러시아 군사강령에서는 ‘대규모 재래식 공격의 결과로 러시아의 존재가 위험에 처한다면’ 핵무기 사용을 고려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탄도미사일방어체제는 오늘날 가장 논란이 많은 이슈일 것이다. 동유럽 탄도미사일방어체제의 배치 계획은 새로운 START 협상과정의 주요 장애물로 알려져 왔다. 이 계획에 대한 러시아의 반응은 다소 과장되어 종종 히스테리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선거공약을 지키기 위해 이 프로젝트를 철회하며 2010년 프라하 선언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러나 그가 실제로 한 일은 단순한 거래 이상이었다. 그는 미국-러시아, 미국-유럽 관계에서 심각한 대립 이슈를 제거하고, 미국 납세자에게서 수십억 달러의 부담(폴란드와 체코 공화국에 제공하는 ‘보상 패키지’ 비용)을 줄여주며, 비용이 많이 들고 작전상 비효과적인 프로젝트를 거부하였다. 미국은 현재 발틱, 흑해, 페르시아만에서 작전 중인 이지스(AEGIS) 전함에 새로운 M-3 미사일를 장착하였다. 그 결과 폴란드에 배치할 것을 고려했던 신뢰할 수 없고 검증되지 않은 요격 미사일이 없어도 탄도미사일을 충분히 방어할 수 있게 되었다. 미 해군은 현재 한국에서와 같이 유럽에서도 이지스의 탄도미사일방어체제를 즉각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이 충분히 있다.  한편 북한의 핵 개발 상황은 상당히 불안정하고 예측하기 어렵다. 그러나 북한의 핵확산활동에 대해 북한의 책임만 묻는 것은 불공평할 수도 있다. 그 동안 미국을 포함한 주변 국가들은 한반도에서 핵 대립을 종결할 수 있는 기회를 적어도 세 번 놓쳤다. 첫째는 북한이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의 의무이행을 사실상 거부했을 때였다. 중유 제공 중단과 경수로핵발전소 건설 중단이 결국은 김정일이 핵활동을 재개하도록 자극한 것이었다. 둘째 북한이 2003년 1월 핵확산방지조약에서 탈퇴를 선언했을 때 열강들은 이 결정의 심각성을 믿지 않는 척 무시했다. 셋째, 2006년 10월 북한이 첫 번째 핵폭발 실험을 실시했을 때 (일본을 제외한) 6자 회담 당사국들의 반응이 다소 우유부단했다. 만약 그 때 세계가 핵확산방지조약 위반을 용서하지 않으리라는 메시지를 분명히 했다면 북한이 핵무기프로그램을 중단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하여 우리는 현재의 상황에 이르렀다. 이제 북한은 두 번째 핵실험에 성공했다. 정치가들은 그들의 두통거리(어느 날 김정일 정권이 끝이 나면 핵무기는 어떻게 될 것인가?)를 제거해줄 수 있는 치료약을 절실히 구하고 있는 반면 해외 전문가들은 사용 가능한 핵탄두의 숫자와 전달수단을 예측하느라 바쁘다.  나쁜 소식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독립 분석가들은 비극적인 천안함 사건에 대한 미국과 동맹국들의 비정상적으로 우유부단하고 온건했던 태도에 좀더 주목할 필요가 있었다. 물론 그것이 매우 민감한 문제이고 정치가에 의한 어떠한 실수도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야기할 수 있는 위급한 상황이기도 했다. 그러나 상상력이 풍부한 호사가들은 강경론자들이 북한에 대한 공격 주장을 멈춘 이유가 북한이 가지고 있는 핵무기 때문이라는 또 다른 결론에 도달할지도 모른다. 이란 지도자들은 그러한 의견에 수긍할 것이다. 아마도 이란은 적대국인 이라크가 미국이 이끄는 연합군이 자국을 공격하고 점령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핵무기를 얻으려 시도했으나 실패했던 사례에 비추어 지금의 남북 상황을 분석하려 할 것이다.  많은 세계적 징조나 징후들이 유엔과 국제원자력기구를 포함한 국제기구들이 핵확산, 핵안전, 핵인식 등의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보다 강화되어야 할 필요성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인도, 브라질, 아르헨티나는 핵발전 전함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일본은 초대형 플루토늄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세계의 젊은이들은 핵무기가 실체 없는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나는 올 봄 오바마 대통령의 핵 관련 노력이 보다 높이 평가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현실을 고려할 때 ‘핵무기 없는 세계’라는 오바마의 비전이 가시적인 미래에는 실현되기 힘들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우리 세계를 좀더 안전하게 만들 수 없는 것은 아니다.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세르게이 M. 스미르노프(Sergey M. Smirnov)국립해양대학교(Maritime State University), 국제학 센터, 이사장 대리
  • Spring-2010: Will It Become A Turning Point on The Road to Nuclear Free World?A View from Russia
    저자
    Sergey M. SMIRNOV(Center for International Studies of Maritime State University )
    발간호
    2010-17
      I think that nobody would challenge the Obama administration lead in all major nuclear-related political activities in the spring of 2010. True, the Nuclear Posture Review (NPR), the Nuclear Security Summit should be regarded as evident achievements of US president. The signing of the new START agreement with Russia may also be attributed to Obama’s efforts, at least partly. Well, these achievements are clear and obvious success ? in political sense, especially for president Obama himself who has managed to reaffirm the rightness of choice by Nobel Peace Prize committee. Yet the picture will not be that bright if we try to look at the strategic outcome of these events.  Let’s start with NPR-2010. The publishing of this document provides a good opportunity for discussing on transparency of nuclear stockpiles, importance of non-proliferation activities, on the roadmap to a world without nuclear weapons, etc. Secretary of  State Hillary Clinton underlined that the declassified details about US nuclear arsenal have been released for the first time, that the NPR  rules out the development of new U.S. nuclear weapons and new missions and capabilities for existing weapons and that NPR also prohibits the use of nuclear weapons against non-nuclear weapons states that are parties to the NPT and comply with its nonproliferation obligations. In reality the value of these achievements can be argued. The figures on deployed and stockpiled nuclear warheads of both USA and USSR/Russia have never been a major secret, at least for the experts, diplomats and military participating in numerous INF, SALT and START-related activities.  Dr. Gao Wanglai gives a perfect assessment of various ‘side effects’ of NPR in his paper “A Chinese Perspective on the Nuclear Posture Review” published on this site. I will not fully agree only with his notion that “by announcing the number of its weapons, the United States enhances its security by demonstrating to the world it possesses the most superior technology in the world”. The fact is that US strategic nuclear weapons have not radically changed technologically since Cold war era the same is true for its main strategic opponent ? Russia. Explanation is pretty simple: you don’t need to modernize the weapons which performance is far exceeding operational demands. The parity in strategic arms between these powers still remains as it was demonstrated by signing of the new START treaty in Prague in April. And it will most likely remain until the expiration of NPR-2010 term which is declared to stay in effect till 2015-2020.  In Russia the road to the new START was not easy. The ‘hawks’ protested that further reductions in strategic arms would deteriorate the overall national defense capabilities while the ‘realists’ would prefer more deep cuts in strategic stockpiles to adjust to actual domestic situation. A number of Russian strategic systems are aging and must be retired while the industry is unable to produce the timely replacement to it. The unfortunate ‘Bulava’ SLBM project which is at least 5 years behind schedule is a proof of serious problems in Russian defense industry. But almost nobody argued the necessity of the treaty itself. It is remarkable: the 20+ years of military-to-military interaction in the framework of previous START mechanisms have created a unique situation of transparency, confidence building and cooperation between former strategic adversaries.  Worth noting is another definition in NPR ? that spending on US nuclear weapons complex will be increased. There is certain logic in such a decision. Nuclear warheads have its life cycle depending on plutonium contamination rate and other physical effects. Warheads must be examined, refurbished or recharged otherwise you can not rely on its performance especially with the moratorium imposed on all nuclear tests. To the other hand, additional funding provides an option for quality upgrades in existing warheads. No outsider will know for sure whether it is done to improve safety and stability of warheads or to increase its power and accuracy. The latter may easily change the fragile strategic balance in the world.  If we address the issue of non-strategic nuclear weapons it should be noted that the similar rational approach dictates its high reduction tempo. The sometimes crazy Cold war logic is over. The guaranteed self-destruction effect of massive use of tactical nuclear munitions was no secret for field commanders be it a Navy captain ordering to fire nuclear-tipped torpedo at enemy nuclear submarine or an Army colonel ready to shoot 10-inch nuclear artillery shells. Precision guided munitions can do the same job properly (if only this word is appropriate in the context) and safely today. The declared retirement of nuclear Tomahawk cruise missiles is by all means a positive step though motivated by sheer prosaic considerations again ? in the new strategic environment its operational value has diminished. And if the US is seemingly ahead of Russia in retiring its non-strategic nuclear arsenal it does not mean that Washington wants to see ‘a world without nuclear weapons’ more than Moscow. It simply matters that US has acquired technologic superiority in conventional weapons in a number of key battlefield areas. And Russian military planners have no choice other than to continue to rely on nuclear arms in these areas. It also explains why the new Russian military doctrine (adopted in February, 2010) provides an option to use nuclear weapons first “if the very existence of Russia will be put at risk as a result of large scale ‘conventional’ aggression against us”.  Ballistic missile defense is probably the most controversial issue today. It is well known that plans to deploy BMD elements in Eastern Europe were the main obstacle in the process of the START negotiations. The Russian reaction to these plans was a bit exaggerated, at times even hysteric. President Obama fulfilling his campaign promises has dropped this project and cleared the way to Prague-2010. But what he actually did was not a mere bargain: he has managed to remove a serious confrontational issue in US-Russian and US-European relations, saved several billions dollars to American taxpayers (it was a price of ‘compensation package’ to Poland and Czech Republic) and rejected a costly and operationally ineffective project. The AEGIS warships equipped with new versions of SM-3 missiles operating in Baltic, Black seas and Persian Gulf can easily outperform 10 unreliable and untested interceptors proposed for deployment in Poland. Moreover, US Navy can start ABMD patrol in European zone immediately ? like they do in Korea today.  The situation around DPRK’s nuclear program is highly unstable and unpredictable. It would be unfair to blame only North Koreans for their proliferation activities. Neighbor powers including USA missed at least three chances to put an end to nuclear confrontation on Korean peninsula. First, when they de facto declined to fulfill their obligations on 1994 Agreed Framework. Frozen heavy oil supplies and the view of unfinished basement instead of working LWR nuclear power plant urged Kim Jong Il to resume nuclear activities. Second, when Pyongyang had declared its withdrawal from the NPT in January, 2003 the powers pretended they did not believe in seriousness of this decision. Third, when DPRK detonated its first nuclear device in October, 2006 the reaction of 6-party talks’ partners (except for Japan) happened to be rather strange. A clear message that world community would not tolerate NPT violators might have been enough for Pyongyang to stop its nuclear arms program.  And now we have what we have. North Korea successfully conducted a second nuclear test. Foreign experts now are busy calculating the figures of possible available warheads and means of its delivery while politicians are desperately looking for a medicine able to cure their headache ? what will happen with nuclear stockpile of DPRK if Kim Jong Il’s term comes to an end one day.  Unfortunately that’s not all bad news. Independent observers should have noted the unusually indecisive and pacifying stance of US and its allies on tragic Cheonan incident. Sure, it’s an extremely delicate issue and any mistake by politicians could lead to fatal consequences. But the ‘would-be’ proliferators may draw another conclusion, that it is the newly acquired nuclear weapons that stop possible aggressors from attacking North Korea. The Iran leaders may well share such an opinion. Perhaps they compare this situation with the example of its former adversary Iraq which apparently tried but failed to get nuclear arms in time to deter US-led coalition from attacking and occupying Iraqi territory.  We can see another signs or symptoms globally that convince us in necessity to strengthen the mechanisms of UN, IAEA and other international structures dealing with proliferation, nuclear safety, nuclear awareness, etc. India, Brazil, Argentina decided to build nuclear powered warships. Japan launched the extra large scale plutonium program. The youth everywhere tend to refer to nuclear arms as to something illusionary. For these reasons I guess that president Obama’s nuclear-related efforts this spring should be highly appreciated. And thinking realistically I doubt that his vision of a ‘world without nuclear weapons’ will come true in foreseeable future. But it definitely does not mean that we can not make our world safe and secure.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Sergey M. SmirnovActing Director, Center for International Studies of Maritime State University
  • 천안함 사태이후 한러관계의 전개와 핵심과제
    저자
    박종수(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그국립대학교)
    발간호
    2010-21
      지난 3월 26일 발생한 천안함 침몰사건은 전 세계의 이목을 한반도로 집중시켰다. 주변국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지정학적 특성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미국, 영국, 호주, 스웨덴, 인도네시아 등 6개국 국제합동조사단을 구성하여 객관적인 원인규명에 주력했다. 조사단에는 러시아와 중국이 포함되지 않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5월 24일 담화문 발표를 통해 천안함이 북한의 어뢰공격에 의해 침몰한 것임을 밝혔다. 국제사회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한 정부차원의 외교활동과 함께 러시아 대통령에게도 전화를 걸어 사건 전모를 직접 설명하고 조사단 파견을 요청했다. 이에 러시아 대표단은 6월 1일부터 약 1주일 간 별도조사 후 귀환했다. 우리 정부는 유엔 안보리 이사회에 대북 제재안 상정을 추진하면서 러시아로부터 긍정적 답변을 기대했다. 안보리는 천안함 공격을 규탄하는 의장성명을 채택했으나 러시아와 중국의 반대로 북한을 직접적으로 비난하는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다. 이러한 러시아 정부의 태도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이 적지 않게 실망했다는 후문이다. 우선 한러 수교 전부터 시베리아 벌판을 누비면서 대러 진출의 의지를 불태우며 애증을 쌓아왔다.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수차례 정상회담을 통해 양국 간 전략적 우의를 다져왔다.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러시아를 비난만 할 것인가. 국가 간 관계가 흔히 그렇듯이 갈등이 있으면 화해도 있는 법이다. 요체는 갈등의 원인을 보다 냉철하고 객관적이며 지극히 현실적으로 분석하는 것이다.  첫째로, 수교 후 20년간 협력관계를 지속하면서 흔히 간과해온 매우 초보단계의 고려사항이 있다. 러시아인들의 신중한 기질과 여유 있는 국민성이다. 구소련 말기에 빵 한 조각을 사기 위해 영하 20도의 추위에서도 장시간 줄을 서서 기다리는 국민들이다. 어쩌면 지정학적 특수성과 수난의 역사를 경험하는 과정에서 체득한 습관인지도 모른다. 반면 한국인들은 조급하고 역동적이다. 우리 정부는 대북 제재안을 유엔 안보리 이사회에 회부하는 로드맵을 설정해 놓고 러시아로부터 신속한 조사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단적으로 그러한 기대는 과욕이었다.  둘째로, 천안함 사태를 조율하는 절차상의 문제와 외교적 테크닉이다. 국제합동조사단에 러시아와 중국을 누락시킬 수밖에 없었다면, 그 불가피성을 사전에 납득시키는 외교적 노력이 필요했다. 또한 정상간 핫라인을 통해 직접 설명해 주는 배려까지도 좋았다. 그러나 국내언론들은 청와대 발표를 근거로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천안함 사태와 관련해 우리 정부와 긴밀하게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고 보도했다. 즉 러시아 대통령이 우리 대통령에게 저자세를 보였다는 뉘앙스로도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5월 25일자 크렘린 홈페이지에는 ‘разговор состоялся по инициативе южнокорейской стороны'(통화가 한국 측의 주도로 이루어졌다)라고 실려 있다. 대수롭지 않은 일로 간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더 나아가 우리 정부가 조사단 파견을 요청했고 러시아는 이에 응해 온 것이다. 물론 러시아는 천안함 사태를 비롯한 한반도 안보현안에 뒤늦게나마 초대받아 관여할 수 있는 실익을 얻었다. 조사결과를 빨리 통보해 달라는 우리 측의 조급성은 오히려 ‘천안함 사건 주범=북한’을 입증하는 본질을 퇴색시키고 북한을 자극하고 싶지 않은 러시아 측에게 구실을 주었다고나 할까. 유감스럽게도 신중하지 못한 외교적 접근방식으로 인해 내용마저 그르치는 상황을 연출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셋째로, 대(對)테러 문제는 러시아의 아픔 및 자존심과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 소련 붕괴이후 현재까지 수차례에 걸쳐 체첸 반군의 테러에 시달려 왔다.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모스크바 중심부에서 대규모 지하철 테러사건이 발생했다. 푸틴은 2000년 대통령 취임사에서 ’21세기는 테러와의 전쟁’임을 예고하며 국제사회의 공동대처를 호소했다. KGB 후신인 연방보안부(FSB)는 2002년부터 전 세계 정보기관을 초청하여 대규모 대(對)테러 국제회의를 매년 개최하고 있다.  희생도 큰 만큼 노하우도 적지 않다. 노하우가 많기에 자존심도 강하다. ‘북한 테러에 의한 천안함 침몰’에 쉽게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는 러시아 측의 신중함과 부담감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금번 천안함 사태는 한러 수교 20년의 현주소와 양국관계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로 볼 수 있다. 지나친 대미 동맹을 고집함으로써 20년간 맺어온 또 다른 주변 우방국들과의 관계에 흠집을 남겼다. 다니엘 벨이 ‘이데올로기의 종언’을 고한지도 수십 년이 지났다. 사회주의권의 연쇄 붕괴 및 1990년 한러 수교, 1992년 한중 수교와 함께 냉전은 오래전에 끝났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냉전적 사고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한반도에는 신 냉전의 도래를 스스로 자초하는 측면도 적지 않다. 21세기 디지털 시대에서 아날로그 방식으로는 생존할 수 없다. 강국으로 둘러싸인 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성에 비추어 힘의 균형을 상실하는 순간에 대한민국호는 천안함의 운명을 반복할지도 모른다. 구한말 서세동점의 소용돌이와 열강의 각축전 속에서 얻은 소중한 교훈을 결코 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다면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악화된 한러 관계를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 임시방편의 임기응변식 대처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 근본적 치유가 요망된다.   첫째로, 인적 자원을 확보해야 한다. 수교 후 20년이 지났지만 러시아 관련 인력이 절대 부족하다. 동일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만 해도 냉전당시 대만의 존재가 중국 전문가를 필요로 하는 요인이 되었고 한국어를 구사하는 조선족도 많았다. 그러나 러시아의 경우는 수교 전까지 전문가다운 전문가도 별무했고 수교 후에도 소련 붕괴에 따른 러시아 무시 경향이 전문 인력 배출에 부정적으로 작용했다. 게다가 한국어를 이해하는 고려인도 극소수에 불과했다. 외교는 대통령을 비롯한 소수 고위관료의 전유물이 아니다. 하부구조가 허약한 상태에서 최고 통치권자의 의지가 제대로 실현될 리 만무하다. 청와대를 비롯한 외교안보 라인에 러시아 전문가가 몇 명이나 포진되어 있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젠 국가 차원에서도 러시아 전문가에 대한 배려 및 관리에 소홀해서는 안 될 것이다. 시장경제 원리에만 맡겨 두기에는 국가의 백년대계가 위태롭다.  둘째로, 내재적 관점에서의 접근이다. 우리 입장에서만 더이상 러시아를 바라보지 말아야 한다. 구한말 당시의 아관파천처럼 좌충우돌의 역사적 시행착오를 반복해서는 안 될 것이다. 남북분단의 비극이 주변강국에 의해 강요당했듯이 한반도의 운명은 빈번히 외부의 입김에 좌우되어 왔다. 바로 한반도가 국제사회에서 차지하는 지정학적 이유 때문이다. 더욱이 레드콤플렉스의 구태로 인해 러시아 카드를 사장시키거나 악화시키지 말아야 한다. 천안함 사태의 안보리 회부를 앞두고 행여 우리 정부가 러시아의 조연을 기대했다면 안일한 판단이었다. 러시아는 지난세기말의 과도기적 혼란을 극복하고 21세기 진입과 함께 강국으로서의 국제적 위상을 꾸준히 회복해 가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다. 러시아 당국은 천안함 사태관련 국제사회의 제재가 북한 지도부에 통하지 않을 것이며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셋째로, 이젠 출구전략을 세워야 할 때다. 국제법상 영원한 미제로 남을 수도 있는 천안함 사태로 인해 한러 관계가 더 이상 악화 내지 답보상태에 놓여서는 안 된다. 1964년 8월 북베트남 통킹만에서 침몰했던 미국 해군함정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베트콩 어뢰정 공격을 받았다는 미국 측의 주장은 베트남전쟁의 구실이 되었고 수년간 지속된 소모전은 결국 미국의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2000년 8월 바렌츠해에서  침몰한 러시아 핵잠수함 쿠르스크호 사건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갓 출범한 푸틴 정권이 최대의 정치적 위기를 맞았으나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았다.  러시아 측의 조사결과가 우리 정부의 입장과 상반된다고 해서 언제까지 갑론을박할 수 없다. 지난 4월 2일 볼쇼이극장에서 개최된 수교 20주년 개막식은 천안함 사건으로 인해 축제분위기를 연출할 수 없었다. 그 후 7개월간 지속된 각종 수교기념 행사도  양국 국민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수교 20주년 폐막행사와 <한러 대화> 포럼이 오는 11월초 G-20정상회의 직전에 마지막 행사로 예정되어 있다. 특히 양국 정상의 참석 하에 출범할 <한러 대화> 포럼은 양국 간 신뢰 회복 및 관계 발전을 위한 모멘텀으로 활용할 수 있다. 천안함 사태로 인한 불협화음을 봉합하는 출구전략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박종수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그국립대학교
  • 북한 내부 정세 변화와 과도기적 위기관리
    저자
    진행남(제주평화연구원 연구위원)
    발간호
    2010-20
      북한의 내부 정세 변화를 외부에서 정확히 들여다보기란 결코 쉽지 않다. 북한의 체제가 워낙 폐쇄적인데다 특히 근래 들어 북한의 내부 정세는 매우 유동적이어서 예측불허의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내부 정세 변화의 몇 가지 요인들은 그리 어렵잖게 짚어볼 수 있다.북한 내부정세 변화요인첫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일 영도체제인 북한으로서는 그 절대권력자의 건강 이상으로 후계체제를 비상하게 빠른 시일 내에 구축해야 하는 형편인 점이다. 북한은 금년 들어 전례 없이 한해에 두 차례나 최고인민회의를 연 데 이어 오는 9월에는 44년 만에 당대표자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이는 모두 내부체제 강화를 겨냥한 것으로, 후계세습 등을 둘러싼 체제의 동요가능성을 차단하고 취약성을 보강하려는 게 그 배경이라 하겠다.둘째, 화폐개혁 실패를 분수령으로 민심이반이 가속화되고 있는 점도 북한의 내부 정세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다. 과거 같으면 북한의 체제 특성상 민심은 내부 정세에 큰 변수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후계세습을 정당화하기 위해 민심을 다독일 ‘당근’이 절대로 필요한 시점에서, 북한은 심화된 경제난 등으로 이 ‘당근’ 확보가 여의치 않아 보인다. 연초에 김정일 위원장이 이른바 ‘이밥에 고깃국’이 아직도 달성치 못한 유훈임을 자인한 것도 이를 입증하는 셈이다.셋째, 북한 정권이 내부 정세를 추스르기 위해 하드파워에 더욱 의존하려는 경향이 노골화되고 있는 점이다. 화폐개혁 실패의 책임을 지워 박남기 당 계획재정부장을 총살하는 등 최근 들어 잦아진 공개처형설은 북한의 대내적 소프트파워 자원의 고갈을 시사한다. 이는 동시에 체제의 결속력이 그만큼 약화되고 있음을 의미한다.넷째, 시장을 통한 빠른 정보유통, 정치적 무관심과 물질추구 등 지배적 사회가치의 변화, 사적 영역과 공공 영역의 혼재 등은 북한의 통치시스템 작동을 교란하고 있다. 이 또한 내부 정세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체제의 내구력이 소진되고 있음을 뜻한다.이 밖에도 후계체제와 대내외정책 등을 둘러싼 노동당과 군부의 경쟁과 견제 등 내부 정세에 큰 영향을 미칠 요소들은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따라서 이와 같은 여러 요인들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북한체제를 ‘과도기적 위기’ 상태로 몰아넣고 있다고 하겠다.과도기적 위기에 대한 미중의 대응북한의 과도기적 위기가 한반도와 동북아에 미치는 파급력은 결코 만만치 않다. 최근의 천안함 사건만 하더라도 북한의 이러한 심상치 않은 내부 정세의 외부적 투영이라고 보는 전문가들이 있다. 천안함 폭침의 원인이 단지 대청해전에 대한 보복 차원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북한은 내부 정세의 불안과 갈수록 차오른 불만을 외부로 돌림으로써 내부적 단결을 도모하는 동시에, 이를 후계세습의 정당성으로 연결시키기 위해 천안함 공격의 그림을 그렸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천안함 사건이 일으킨 파장은 일거에 한반도를 뛰어넘어 동북아 정세를 뒤흔들어 놓았다.더욱이 문제는 2012년 강성대국 건설을 외치고 있는 북한에게 시간은 그들 편이 아니라는 점이다. 북한 지도부가 ‘약속의 해’가 다가오면서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더 큰 일’을 저지를 가능성도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한마디로 북한체제의 과도기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하는 엄중한 과제가 우리에게 주어진 셈이다.중국이 ‘북핵문제’와 ‘북한문제’를 분리하여 북핵문제보다 한반도의 안정을 우선시하는 것도 북한의 과도기에 대한 중국 나름의 관리 전략이라 할 수 있다. 중국으로서는 한반도 안정이 자국의 지속적인 경제발전을 위해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국익차원에서 가장 먼저 고려하고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중국은 한반도의 안정적 관리를 위해 6자회담의 조속한 재개를 주장하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동북아에서 크게 강화된 미국의 입지를 견제하고 동북아 정세를 자신들이 주도하겠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고 하겠다.또한 최근 한·미 연합 해상훈련을 두고 중국이 보인 과민 반응은 이제 한반도 문제가 얼마든지 주변 강국의 게임으로 변질되어 확산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말하자면 천안함 사건은 우리에게는 기본적으로 남북문제이겠지만, 미·중간에는 동북아에 대한 영향력을 놓고 벌이는 줄다리기 소재로도 된 측면이 있다.최근 들어 미국이 국내법에 의거해 추진하고 있는 강도 높은 대이란 제재방식과 달리, 북한에 대해서는 강제성 없는 행정명령에 의해 ‘너무 가혹하지도 약하지도 않게’ 제재하려는 것은 되새겨 볼 점이 있다. 이는 대북 금융제재와 핵실험의 악순환을 감안한 것이기도 하지만, 북한에게 ‘진정성 있는 대화’에 복귀할 수 있는 퇴로를 막지 않으려는 원려도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읽힌다.천안함 이후 대북 정책을 위한 고려사항북핵의 민감성에 대해 한국이 느끼는 강도는 중국과 분명 다르다. 북한의 과도기적 위기에 대한 대응의 논리와 그 방식에 있어서도 한국과 중국은 기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시한폭탄’과 같은 북한의 과도기적 위기를 관리하지 않고 방치할 수만은 없는 게 남북관계의 현실이다. 따라서 우리 정부로서도 머잖아 천안함 사건의 출구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야 할 시점이 도래할 것으로 보인다. 단절된 남북간 대화의 복구가 그러한 출구전략의 첫 수순이 될 수밖에 없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안함 사건의 후폭풍이 워낙 커서 남북 당국 간 대화가 조기에 이뤄질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따라서 정부는 우선 북한 주민의 절박한 식량난을 덜기 위해 WFP(세계식량계획) 등을 통해 쌀을 지원하는 문제를 전향적으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인도적 차원에서도, 또 북한 주민의 민심을 얻는 차원에서도, 이에 대해 엄격한 상호주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와 함께 남북 간 민간차원의 교류협력을 단계적으로 복원시키는 방안도 고려해 볼만하다. 남북은 어떠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그 관계를 완전히 단절할 수는 없는 숙명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정부로서는 당장은 아니겠지만 미국이 대북 제재와 함께 6자회담 재개 카드를 꺼내는 ‘제재와 대화’의 투트랙을 구사할 때를 대비해 우리 나름의 치밀한 전략과 대응 방안을 마련해 두어야 할 것이다.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진행남제주평화연구원 연구위원
  • North Korea Policy after the UNSC Presidential Statement on the Sinking of the Cheonan
    저자
    RHEE Bong-Jo(Former Vice Unification Minister)
    발간호
    2010-18
      On July 9, 2010, the UN Security Council adopted a presidential statement on the sinking of the South Korean corvette, the Cheonan, three and a half months after the incident (which occurred in March),and 35 days after the referral of the case to the UNSC. The UN’s action concerning the incident was concluded, although the permanent member countries of the UNSC were divided in their views about the incident, and the contents of the statement remain controversial. Furthermore, the incident was not settled with the issuance of the UNSC statement.  The tragic incident can be traced back to the recent heightening of tension and confrontation between the two Koreas that aggravated the security situation particularly along the Northern Limit Line (NLL). The incident is ultimately a case that should be settled between the two Koreas. From the beginning, it was difficult to expect the UNSC to take clear-cut and binding measures concerning the incident. As it happens, the direction of bilateral relations between the two Koreas in the aftermath of the incident will be delineated by how the South intends to settle the incident. In the statement made to the South Koreans on May 24, South Korean President Lee Myung-bak asked the North to apologize for the attack and to punish those responsible. However, it is doubtful whether the North will accommodate such a request, as the North has asserted that the incident was a “sheer fabrication” concocted by the South. Such doubt is strengthened further by the uneven attitude in favor of the North shown by China and Russia, and by the tone of the statement contained in the UNSC President’s statement.  Essentially, the incident is a matter that should be settled between the two Koreas, and how they settle it will remain a matter of crucial interest. However, it is unrealistic to deal with the incident within the current inter-Korea dialogue framework, as mutual trust has been exhausted due to the seriousness of the incident. It appears that the South Korean government did not intend to handle the case as an inter-Korean issue at the beginning, perhaps based on such a judgment. The referral of the matter to the UNSC was the expected course of action, but the countries concerned started showing different attitudes with the passing of time, according to their national interests. The various countries of Northeast Asia have different views of the incident, depending on their national interests. Under such circumstances, inter-Korea relations will inevitably go through a long, dark tunnel. Granted, it will not be wise to sit down with arms folded. It is necessary to do something.  The UNSC statement issued on July 9 calls for full adherence to the Korean Armistice Agreement and encourages the settlement of outstanding issues on the Korean peninsula by peaceful means, via a resumption of direct dialogue and negotiation through the appropriate channels as soon as possible, with a view to avoiding conflicts and averting escalation.” The resumption of the Six-Party Talks concerning the North’s nuclear program is another matter that should not be ignored indefinitely. It is feared that the North’s nuclear capability will be further strengthened, with no substantial control imposed with the passage of time. Reactivation of the process concerning the Six-Party Talks may provide an appropriate opportunity to deal with the two pending issues. A direction for the settlement of the sinking of the Cheonan issue was proposed in the UNSC statement after a process of discussion between the relevant countries the Six-Party Talks may provide an opportunity to discuss how to adhere to the Armistice Agreement and prevent clashes between the two Koreas in accordance with the UNSC recommendation, in addition to efforts made to settle the issue of the North’s nuclear program. If some progress is made at the Six-Party Talks, the two Koreas should be able to handle the Cheonan incident as the directly related parties.  The North may feel relieved by the UNSC statement, which did not pinpoint it as the aggressor in the Cheonan incident or ask for additional sanctions against the North. The lenient nature of the statement may give the North a good excuse to re-join the Six-Party Talks. Following the UNSC statement, the North’s Foreign Ministry spokesman said, “[We] will make consistent efforts to conclude a peace treaty and consider denuclearization on the basis of six-party talks conducted on an equal footing,” and the North is taking a positive attitude concerning dialogue with the UN Command at Panmunjom. It should be possible to find a way out of the current deadlocked situation without much difficulty. The U.S. and China will be able to operate the pre-Cheonan system of collaboration although the North may set other preconditions for its re-joining the Six-Party Talks. It is possible to predict that the North will take a positive stance in its re-joining the Six-Party Talks based on the following premises.   First, the country feels that the survival of the regime has become a more pressing issue than it was at the time of the Joint Statement of the fourth round of the Six-Party Talks in Beijing, held on September 19, 2005. Its demand for the withdrawal of the worldwide sanctions imposed against it and the discussions about a peace treaty conducted on a continual basis since earlier this year may ultimately be viewed as an attempt to find an excuse to return to the Six-Party Talks. This is something that North Korea had said it would never return to and there may be a request for the international community to provide economic support and a guarantee for the safety of the regime.   Second, for the forthcoming rounds of the Six-Party Talks, China will have to take on the South Korean government’s former role of coordinator or promoter, and the North should consider this China’s position. Third, the North will try to mitigate the South’s offensive concerning the Cheonan incident by internationalizing the Korean Peninsula issue, while trying to further develop its relations with China and to improve its relations with the U.S. As a result, the Cheonan incident may deepen the Kim Jung-il regime’s dependence on China. It may also end up putting a limit on the South’s influence on the North by invalidating the Lee Myung-bak Administration’s efforts to cause a fundamental change in the North. This is why the South should consider the need for a resumption of the Six-Party Talks before it is too late.  In the period following the UNSC’s July 9 statement, any desirable course of action taken by the South concerning the North should include the establishment of a comprehensive and multi-faceted policy, while paying greater attention to the need for effective management of the situation. The South Korean government needs to take a cool-headed stance, appraising changes in the international situation in the wake of the Cheonan incident, and review its policy toward the North. It should remember that unless it is in the driver’s seat and equipped with appropriate strategies, the U.S. and China will take the initiative. The South is in a more advantageous position than the North within the international community and the South should lead the way in finding a means to overcome the currently stalled situation. Squeezing the North alone cannot solve the problems involving the country. The series of punitive measures against the North announced by the South on May 24 can hardly bring about the desired results, with most of the leverage held by the South against the North exhausted. The South committed the folly of disclosing all the measures it could take against the North at the same time. The South’s referral of the Cheonan case to the UNSC while laying the blame on the North met a series of insurmountable stumbling blocks. The contents of the UNSC statement fell some way short of what the South had expected in line with the punitive measures it took on May 24.  Given the previously mentioned circumstances, the South needs to consider an exit strategy based on “direct dialogue and negotiation through the appropriate channels” as recommended by the UNSC statement, with the aim of reestablishing its policy on the North, although it is not an alternative that the South can take immediately. To that end, the South should take the following steps: First, it should consider a policy shift, i.e. making an approach to the North Korean issue within a grander framework and through a perspective focusing on Northeast Asia rather than on the North alone. Second, it should actively take part in the Six-Party Talks, suggest alternatives intended to make it a more productive process of dialogue, and fine-tune the policies adopted with the aim of using the progress made in the Six-Party Talks as leverage for the normalization of relations with the North. Third, it should reinforce its collaboration with China so that China can exert greater influence on the North with regard to its taking more positive steps toward the goal of denuclearizing the Korean Peninsula, along with efforts to ease the level of distrust formed between the two countries due to the Cheonan incident and to secure progress in the Six-Party Talks. Fourth, it should strive to ease tensions and prevent clashes along the NLL through direct dialogue with the North, using the momentum made in the Six-Party Talks.   The above recommendations may not be easy to put into practice however, progress made in these efforts will contribute to the South’s successful hosting of the G20 Summit in November 2010. The South needs to consider diverse alternatives in a spirit of open-mindedness, while bearing in mind that there are many variables in its relationship with the North despite the obvious difficulties.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RHEE Bong-joFormer Vice Unification Minister
  • 자연재해와 국제협력
    저자
    하규만(인제대학원대학교 외래교수)
    발간호
    2010-23
      최근에 발생한 아이티 지진, 파키스탄 풍수해 등에서 알 수 있듯이 대규모 자연재해는 피해가 거대한 지역에 미치기 때문에 재해관리를 위해서 국제협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예를 들어서 태풍이 특정국을 강타하는 경우에 다수의 주변국에도 비슷한 피해가 발생하기 때문에 자연재해의 발생 이전, 발생 기간 중, 그리고 발생 이후에도 국제협력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자연재해 관리는 민간단체에서 시도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 성격상 공공재이기 때문에 국가기관에서 총괄적인 책임을 맡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행정안전부 산하의 소방방재청이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소방방재청이 2004년 6월에 설립될 즈음에는 국제협력 업무가 매우 미비하였다. 어느 조직이든 설립 초창기에는 국제협력 보다는 국내적 역량강화에 집중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6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는 소방방재청이 주축이 되어 외교통상부가 협조하는 가운데 자연재해와 관련한 국제적 교류를 활발히 하고 있다.   예를 들면 최근에 소방방재청은 중국 쓰촨성 지진복구에 원조팀을 파견하였고, ‘제4차 유엔 재해경감 아시아 각료회의’를 국내에 유치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자연재해와 관련하여 우리정부가 국제사회에 기부하는 액수도, 우리의 경제위상에 비해 아직도 미비하다는 국제사회의 평가도 있지만 그래도 최근에는 많은 증가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같은 활동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자연재해와 국제협력에 관련하여 우리 정부는, 특히 소방방재청은 다수의 문제점을 보이고 있다. 그 중에서 거시적 차원의 문제를 다섯 가지를 소개하고 해결책을 제시해 보겠다.  첫째, 자연재해와 관련하여 우리나라는 주로 아시아 국가들과 협력을 시도하고 있다. 예를 들어서 소방방재청은 중국, 몽고, 일본, 동남아시아에 위치한 국가들과 국제협력을 서두르고 있다. 최근에 자연재해의 피해가 직접 발생하였던 중국과 몽고의 경우에 소방방재청은 지원팀을 파견하였고 현장에서 재난복구를 시도하였다. 중국의 경우에는 지진 발생 후에 구조구급팀을 파견하였고, 몽고의 경우에는 황사현상을 감소시키는 노력을 공동으로 기울였다. 자연재해가 직접적으로 발생하지 않는 이웃국가들과도 평상시에 합동세미나, 공동회의, 재난관리자 훈련, 재난관리 관련자 초청 등을 통하여 국제협력을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경우에 이웃한 국가들과는 국제협력상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고 있다. 국제협력에 동참한 이웃한 국가들은 우리나라의 원조에 대하여 감사를 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멀리 위치한 국가들과의 국제협력을 소홀히 여기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서 최근에 아이티와 칠레에서 치명적인 지진피해가 발생하였는데 기부액을 포함한 우리의 국제협력이 미비한 것으로 지적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중국의 경우에는 아이티 공항에 비행기가 착륙하기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대규모의 원조팀을 파견하면서 국제협력을 시도하였다. 당연히 아이티와 특히 미국의 언론에서 중국의 원조를 칭송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관점에서 앞으로 멀리 위치한 국가들에게도 국제협력을 시도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장기적 관점에서 재난관리 측면뿐만 아니리 국가차원의 실익 확장에 기초가 되어서 긍정적 파급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둘째, 우리나라는 자연재해와 관련한 국제협력을 시도하는 경우에 주로 정부기관 및 정부 인사들이 주축이 되어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예를 들어 소방방재청이 자연재해에 관련한 국제협력을 하는 경우를 분석해 보면 거의가 공무원 위주로 활동이 전개되고 있다. 간헐적으로 민간인이 동반되는 경우가 있지만 이러한 경우는 민간인이 개인적으로 그리고 자기조직의 재정지원으로 공무원들과 형식적으로만 동반하여 국제협력을 하는 경우이다.  민간기관이나 민간인들은 업무수행능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자연재해와 관련된 국제협력을 시도하는데 매우 큰 장애를 가지고 있다. 특히 국제협력은 경비가 비교적 많이 들기 때문에 작은 규모의 민간단체가 시도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 중에서도 인류애에 기초하여 국제협력을 하고자 하는 열망을 가진 단체와 개인들이 많이 존재하고 있다.  특히 우리의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불을 상회하는 요즘에는 이러한 국제협력 희망자들이 더욱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사실에 기초하여 우리 정부는 국제협력을 시도하는 경우에 정부기관뿐만 아니라 민간단체와 함께 국제협력을 시도해야 할 것이다. 특히 한국 적십자사나 기타 중요한 NGO의 경우에는 전 세계적으로 거대한 조직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민간단체들과 함께 국제협력을 시도하는 것이 정부의 목적달성에 보다 용이할 것이다.  셋째, 우리나라는 국제협력을 시도하는 경우에 현직에 있는 인적자원만 활용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서 주변국가 및 기타지역의 국가들과 국제협력을 시도하는 경우에 거의 모든 인원들이 현직에 종사하는 사람들로 구성이 되었다. 인적자원 활용의 폭이 매우 좁은 경우이다.  이러한 경우에 현직에서 물러났지만 국제적으로 중량감이 높은 인사를 동반하여 국제협력을 시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왜냐하면 퇴직인사들도 국제사회에 공헌하고 싶어 하는 열망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국제사회에서 여전히 영향력을 보유하고 있는 인사는 우리 나라의의 국제협력 효과를 배가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전임 대통령, 전임 국무총리, 전임 국회의장, 전임 대법원장 등을 활용하는 국제협력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현직에서 물러났지만 전직 정치인 및 고위공무원으로서 국제사회에서 여전히 잠재적인 효과를 지니고 있다. 미국의 경우에 국제적으로 재난이 발생하였을 경우에 전임 대통령을 활용하는 경우가 매우 빈번하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소방방재청은 급박한 자연재해가 발생하는 경우에 특히 전임 대통령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넷째, 소방방재청의 경우 형식적으로나 실질적으로 이웃한 국가들과 국제협력은 서두르고 있으나 북한과의 국제협력은 거의 없는 것이 현실정이다. 북한과의 협력은 통일부가 총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자연재해는 남한에서 발생하는 경우에 북한에서도 발생하여 큰 피해를 야기 시키고 있다. 하지만 북한과의 국제협력은 거의 없는 경우이다.  여러 가지 정치적 이유로 인하여 자연재해에 관하여 북한과의 국제협력이 불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정부는, 특히 소방방재청은 미래지향적인 차원에서 북한의 자연재해에 관하여 최소한 관련연구를 시도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연구결과는 통일이 되는 경우를 대비해서라도 필요한 지식자원이 될 것이다. 북한 자연재해 연구를 전담하는 팀을 새롭게 두기 보다는 기존인력과 조직으로 하여금 지금 하고 있는 연구에서 북한과의 연계성도 고려하는 연구를 하게끔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국제협력의 차원에서 미래지향적인 효과를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다섯째, 우리나라가 외국에서 자연재해에 관련된 원조를 시도하는 경우에 언론매체가 이것을 보도하고 있지만 거의가 국내의 언론매체이다. 이는 국민의 세금으로 시도되는 국제협력이 안방잔치로만 끝나는 경우이다. 자연재해와 관련하여 국제협력을 시도하는 목적은 인류애에 기초하여 인명과 재산상의 손실을 감소시키려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국제협력을 통하여 우리나라의 위상을 강화하려는 의도도 분명하게 존재하고 있다. 따라서 국내홍보용으로만 시도되는 국제협력은 재고할 필요가 한다.  우리 정부는 자연재해가 발생하는 지역에서 국제협력을 시도하면서 국가를 홍보하는 전략을 대폭적으로 강화해야만 할 것이다. 아이티에 지진이 발생하였던 경우에 중국은 원조팀이 아이티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대형 오성기를 선두에서 들고 나가면서 아이티 원조의 구호를 외친 것으로 외신이 보도하고 있다. 또한 아이티 원조의 가장 큰 축을 담당한 미국의 경우에는 모든 주요방송사들이 아이티로 옮겨와 뉴스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미국정부의 원조노력을 전하기도 하였다. 현재에도 파키스탄에 대규모 홍수복구를 시도하면서 미국홍보를 노리고 있다.  우리 정부도 중국과 미국의 이러한 전략을 분석하여 외국에서 자연재해가 발생하는 경우에 보다 적극적으로 우리의 노력을 국제적으로 알리려는 전략을 강화해야만 할 것이다. 이러한 전략은 소방방재청의 노력은 물론이고 외교통상부, 외국 언론사와의 사전협의에 기초해야만 가능할 것이다.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하규만인제대학원대학교 외래교수
  • G30의 부상과 새로운 세계금융질서의 모색
    저자
    이상환(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
    발간호
    2010-24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새로운 금융·경제 질서의 탄생을 알리게 될 G20 서울 정상회의가 한두 달 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국제경제협력을 위한 정상 모임인 G20 회의의 최우선 과제인 지속가능한 균형성장의 정책적 방향이 이번 서울 회의에서 윤곽을 드러낼 전망이다. 지난 6월 토론토 회의에서 G20 정상들은 은행 건전성 규제를 강화하기 위한 자본과 유동성에 대한 새로운 국제기준과, 국제통화기금(IMF)을 비롯한 국제금융기구의 개혁 방안을 서울 회의에서 논의하기로 한 바 있다.  G20은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선진국 모임인 G7의 대안으로 생겨난 것으로 세계경제를 다루는 사실상 최고의 협의체이다. G7의 출범을 촉발한 원인은 1970년대 초의 제1차 석유파동과 이로 인한 국제경제의 불안정이었다. 당시 이러한 불안정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브레튼우즈 체제(Bretton-Woods system)의 붕괴 즉, 변동환율제의 등장이었다.  G20은 출범 당시부터 금융 위기와 밀접한 관련을 지니고 있었다. 1997년 동아시아 외환금융 위기는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각국은 물론 전 세계 경제를 혼란으로 몰고 간 사건이었다. 세계화의 결과 신흥공업국의 금융 위기가 선진국의 금융 불안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한 주요 선진국이 향후 이러한 사태의 재발 방지를 위해 신흥공업국과 협력 체제를 모색하게 된 것이다. 결국 1999년 12월 제1차 G20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총재 회의가 베를린에서 개최된 것을 계기로 G20 체제가 모습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  G20은 주요 선진국 그룹인 G7(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일본, 캐나다) 및 유럽연합(EU) 대표부를 중심으로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4개국과 지역별 주요 신흥공업국인 한국, 인도네시아, 아르헨티나, 멕시코, 터키, 호주, 남아프리카공화국, 사우디아라비아 등 8개국을 포함한 20개 회원국을 가진 명실상부 세계 주요 경제지도국의 모임인 것이다. 오늘날 세계 GDP에서 차지하는 G20의 비율이 약 85%에 달하며, 그 인구도 세계인구의 ⅔를 차지한다는 점에서 G20의 영향력과 대표성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특히 신흥공업국이 새로운 세계금융질서를 모색함에 있어 수동적인 위치에서 벗어나 능동적인 위치를 확보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G7 체제에서 G20 체제로의 변화는 글로벌 경제위기와 국가 간 경제력 분포의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아직 정착된 제도는 아니나 경제적 대표성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그 효과성만 확보할 수 있다면 제도화가 가능한 것이다. 문제는 국익의 견지에서 다양한 입장을 갖고 있는 회원국 간 합의를 이루고 이에 대한 실행을 담보할 수단을 강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10년 뒤에는 세계경제에서 신흥공업국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약 70%로 크게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G7을 대체하는 G20의 부상, 나아가 아프리카 국가 등 일부 빈곤국들을 포함하는 G30 주장이 부각되고 있다. 이제 글로벌 경제금융 문제는 주요 선진국에 의해서 혹은 일부 신흥공업국을 포함하는 소수 국가군에서 의해서도 해결이 불가능하며, 일부 빈곤국까지 아우르는 G30에 의해서만 해결이 가능하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1970년대의 상황이 G7을 필요로 했고, 1990년대의 상황이 G20의 동인이 되었다면, 오늘날의 흐름은 G30의 도래를 예견하게 하고 있다.  기존 G20의 구성이 제1그룹(미국·캐나다·사우디아라비아·오스트레일리아), 제2그룹(러시아·인도·터키·남아프리카공화국), 제3그룹(브라질·아르헨티나·멕시코), 제4그룹(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 그리고 제5그룹(한국·일본·중국·인도네시아)으로 지역별 지도국(선진국+신흥공업국) 구도라면, 새로이 논의되고 있는 G30은 여기에 아프리카, 아시아, 중남미의 약소국(후발공업국+빈곤국)을 포함하는 사실상 전 세계적인 대표성을 확보하는 협의체가 되는 것이다. 이는 진정한 글로벌 거버넌스로 가는 과도기적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세계경제를 이끌어가는 중심은 그 효과성을 강조한 나머지 주요 선진국에 머물러왔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전세계적 합의는 힘이 아닌 협상과 합의에 기초한 대표성이 확보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G30 논의는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G30의 부상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G20의 의미를 말함에 있어 향후 세계 금융경제 질서는 영미식 시장중심체제가 쇠퇴하고 정부의 영향력이 강화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있다. 이로 인해 과거와 같은 지역별 광범위한 버블경제가 생성되기 힘들다고 한다. 이는 규제완화보다는 시장위험을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먼저라는 주장에 근거한다. 즉 규제완화의 순기능을 극대화하면서 이로 인한 시장위험은 철저하게 관리하고자 하는 정책적 입장인 것이다.  1978년에 결성된 세계 각국의 경제학자들과 정책입안자들 간의 기구인 Group of Thirty(G-30)가 2009년 초 발표한 ‘금융시스템 개선 보고서’는 은행 및 투자업무와 관련한 정부규제를 전폭적으로 늘리는 방안을 담고 있다. 이 보고서는 은행의 규모 제한, 경영진에 대한 보수 통제, 헤지펀드 규제, 소수 은행의 예금 집중 규제 등을 언급하고 있다. 각 금융기관의 규모를 작게 유지해 각 기관의 실패가 구조적 중요성을 갖지 않도록 하는 것이 그 취지인 것이다. 이는 은행과 유사한 형태를 지닌 모든 금융기관과 상품에 대한 규제 강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조지 소로스는 금융개혁을 통해 글로벌 금융위기를 막을 수 있을지 여부에 대해 “시장은 완벽하지 않을 뿐 아니라 스스로 항상 균형을 찾아가는 게 아니기 때문에 늘 거품이 발생하게 마련”이라며 “감독 당국이 시장 상황을 면밀히 파악해 적절한 시점에 경고음을 보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즉 금융시장을 획일적으로 규제하는 것도 쉽지 않고 규제의 효과도 장담하기 어려우므로, 앞으로 획일적인 규제 확대보다는 금융시장의 구조적 특성에 상응하는 감독체계 강화를 중심으로 한 개혁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국가 간 협력이 더욱 요구되며 G20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G30로의 확대가 기대되는 것이다.  미국발 금융위기 해결과정에서 선진국과 신흥공업국 간의 긴밀한 정책공조의 필요성에 따라 2008년 새로운 국제경제 협의체인 G20 정상회의가 태동하였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선진국과 신흥산업국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참여하게 된 이유는 한국, 중국, 인도 등 신흥공업국의 위상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제 국제사회의 일부 빈곤국을 포함하는 G30이 논의되고 있다. 진정한 글로벌 거버넌스의 출범을 눈앞에 둔 것이다.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이상환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
  • South Korea-Russia Relations: A Call for New Thinking
    저자
    KIM Doug-Joong(Kyonggi University)
    발간호
    2010-19
     On September 30th 1990 in New York, South Korea and the Soviet agreed to establish diplomatic relations. It was the opening of a new page in the history of South Korea. At the end of the 1980s, the world was going through epochal changes. It saw the end of the Cold War, the collapse of the Berlin Wall (1989), and the unification of Germany (1990).  The situation on the Korean Peninsula was also changing rapidly. The normalization of the relations between South Korea and the Soviet was decisive in the following events: the entry of the two Koreas into the UN (1991), the signing of the Inter-Korea Basic Agreement (1991) and the Joint Declaration of the Denuclearization of the Korean Peninsula (1991), and the establishment of diplomatic relations between South Korea and China (1992).  Historically, we can see how significant the influence of the Soviet was on the Korean Peninsula through its occupation of the northern part of the peninsula in 1945, following Japan’s surrender in the Pacific War, the establishment of the North Korean regime in 1948, and the start of the Korean War by the North in 1950. All of these lead us to expect that Russia will continue to play an important role in the efforts for the resolution of the problems concerning North Korea and the reunification of the two Koreas.  This year marks the 60th anniversary of the outbreak of the Korean War, which was started by the North’s attack with the support of the Soviet military. The Soviet Air Force helped the Chinese ground troops engaged in the war against the UN Forces in the winter of 1950. The daily combat journal that contains records of the activities of the Soviet 64th Independent Fighter Aviation Corps at that time is available in Seoul. Many relevant articles and a book by Doug Joong Kim, entitled The Soviet Military’s Participation in the Korean War have been published.  It is regretful that the South Korean government has not made sufficient efforts to set the record straight concerning the Korean War and the history of the relations between South Korea and Russia. On the occasion of the 60th anniversary of the Korean War, it is suggested that the records concerning the Soviet Union’s direct engagement in the Korean War should be made available based on the testimonies made by Soviet pilots who carried out military duties at that time. It would be a good idea to invite the pilots to South Korea so that they may have a first-hand look at how much the country has changed. Events carried out by the South Korean government on the occasion of the 60th anniversary of the Korean War in which the Soviet Air Force was directly engaged may serve for the beginning of new relations. In addition, efforts to keep an accurate record concerning the role of the Soviet troops that occupied the northern part of Korea at the end of the Pacific War, the role of the Soviet in the establishment of the North Korean regime, and the economic support provided to North Korea in the postwar period will help further establish relations between South Korea and Russia as well as the two Koreas based on a better understanding of the events of the time.  In order to prepare for the future, it is necessary to examine what has happened in past decades with a willingness to set right what went wrong. Only China and Russia borders the Korean Peninsula. Koreans should remember how significant an influence Russia has on the Korean Peninsula. South Korea and Russia are also connected with each other via the East Sea. As a researcher on South Korea-Russia relations, the author would like to make the following suggestions for the development of bilateral relations.  First, it is urgently necessary to increase the number of experts on Russia. It is embarrassing that there are insufficient numbers of experts on Russia in South Korea, with the potential Russia represents in natural resources, including petroleum and natural gas. Business people point out that they can hardly find capable Koreans to carry out activities related to Russia. They point to the unbalance between Russian language or literature majors and regional study majors specializing in Russia. This author believes that many Korean students should be encouraged to study in Russia for several years and return home in connection with the need to train experts on Russia.   Secondly, the quality of those studying in Russia should be enhanced substantially. There are limited Koreans who can write articles in specialized fields or discuss relevant subjects with Russian scholars in Russian, although there has been a sharp increase in the number of Koreans studying in Russia following the establishment of diplomatic relations in 1990. Efforts to maintain a personal network of Russian acquaintances appear to remain only at an initial phase. Relevant institutions, including the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 should provide positive support for experts in diverse areas and to those interested in Russia, so that they may stay in that country studying their fields of specialization and establish a personal network of collaboration with the Russian colleagues.   Thirdly, the knowledge and information concerning Russia accumulated over past decades should be compiled systematically. This author has attended many seminars held in Korea concerning the prospect of the Six-Party Talks on North Korea’s nuclear program, the security of the Korean Peninsula, and the four powers surrounding the country. In most cases, there was no scholar from Russia. Nor were there Korean experts on Russia able to analyze and explain the position of Russia in its relation with Korea. It was not easy to find those deeply interested in Russia among the audience. It shows that Russia remains distant to us after the 20 years of diplomatic relations between the two countries. Compared to other area studies, the numbers of associations specializing in Russia are limited. Under such circumstances, it will not make sense to expect to see opportunities for criticism or debate between those with diverse backgrounds and opposing views. Associations, such as the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 which provides support for those studying in Russia, should derive a way to collect diverse views on Russia to compensate for the disadvantageous position of the country. The author remembers that the Ministry of Foreign Affairs and Trade made such efforts in the late 1990s and experts on Russia (who usually remained low-key) expressed their views positively on meetings held to discuss how  to develop the bilateral relations between South Korea and Russia.  Fourthly, the importance of the Russian Embassy in South Korea should be emphasized. Since 2008, they have held parties and invited Korean scholars on Russian studies at the embassy in Seoul. The author has felt happy to witness such efforts made by the Russian embassy in order to get closer to Koreans. Here is an example. In the early 1970s, the United States Information Agency (USIA) in Seoul carried out programs for Korean students interested in enhancing their English conversation skills. Many students attending such programs developed into leaders with pro-American viewpoints in their areas of specialty. The USIA carried out such programs with a long-term view of expanding a network of pro-American people. It will be a worthwhile effort for the Russian Embassy to undertake similar actions, such as conducting programs for students studying Russian, providing texts, and audio-visual materials for them.  Lastly, it is urgently necessary to systematize exchanges and contacts between people of the two countries. The Russian President should be included in the list of heads of state that the Korean President visits at least once a year. Periodical meetings between the Korean President and the heads of state of the four powers surrounding the Korean Peninsula and regular summits between the leaders of the two Koreas will be an important way to maintain peace and stability on the Korean Peninsula. When Koreans refer to the four powers surrounding the peninsula (the U.S., Japan, China, and Russia), they put Russia last and regard it as the least important country in terms of influence. Diplomatic efforts should be made to build closer relations with Russia.  Towards the end of the 1990s, strategic partnerships were established between the U.S. and China, between the U.S. and Russia, between Japan and China, and between China and Russia. The level of exchanges and contacts between these countries is immense. South Korea needs to increase efforts get closer to Russia, as it will help the other three powers and Russia maintain balanced and stable relations in the region. For instance, in 2003, the Korean Association of Slavic Studies (in which the author served as Director of Research) decided to hold an international seminar at a university in Russia on a biennial basis. At the first meeting held in St. Petersburg, we found that it was necessary to hold such an event reciprocally among those sharing similar specialties.  After two decades of relations, we are looking back at what we have achieved. Many Russians ask Koreans not to regard their country as “an easy source of resources.” That means they are looking forward to the opportunities to build ties with Koreans on matters beyond economics. The vast land of the Russian Far East (where many ethnic Koreans live) will serve as a fine supply source of grains to the two Koreas.  There are no special safety concerns when travelling in Russia or on the Trans-Siberian Railroad. Please feel free to study the language and other subjects in Russia. More Koreans traveling and making friends with people in the region of the four powers will develop future opportunities for Korea.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KIM Doug Joong(Professor of Russian Studies, Kyonggi Univers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