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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PI PeaceNet] 최근의 희토류 분쟁을 둘러싼 주요국 동향과 대응 방안
    저자
    이춘근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초빙전문위원)
    발간호
    2025-8
    [기획자 註]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은 중국을 대상으로 높은 관세를 부과하였고, 중국은 이에 대응하여 고강도 희토류 수출통제 조치로 맞서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본고는 주요국의 대응을 중심으로 이번의 희토류 수출통제 조치가 어느 분야에 집중하고 있는지, 그리고 파급효과가 얼마나 클지를 예측하여 한국의 대응 방안을 살펴보고자 한다 [기획: 강영훈 원장(yhkang@jpi.or.kr)]. 요약 최근 중국이 미국의 관세 압박에 대응해 강도 높은 희토류 수출규제 조치를 취했다. 이는 고성능 자석을 중심으로, 자국이 보유한 병목 자원을 활용해 외국의 병목 기술과 전략기술을 통제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중국이 거의 독점하고 있는 중희토, 특히 디스프로슘(Dy)과 이의 대체자원에 집중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간의 경과를 보면, 미국, 호주와 같이 자원이 있어도 하류 공정이 없거나, 일본과 같이 하류 기술이 탁월해도 자원이 없으면, 자원을 포함한 상하류 전반이 고르게 발전하고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중국을 이기기 어렵다. 경희토만 있고 중희토가 없어도 상당히 불리하다. 최근 미국, 호주, 일본이 연합해 상하류를 연결하고, 열심히 중희토를 찾아다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희토류 관련 상류산업이 거의 전무하고, 하류산업도 중국에서 자석공장을 운영하다 국내 이전을 추진하는 것이 거의 유일하다. 따라서 중국의 희토류 무기화에 대한 대응차원에서, 대체자원을 확보하고 비축 사업을 내실 있게 추진하며, 관련 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생산하는 기업을 체계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 1. 서론 최근 중국이, 미국의 높은 관세 부과에 대응해, 영구자석을 중심으로 하는 고강도 희토류 수출통제 조치를 내놓았다. 사실 중국이 희토류를 국제 분쟁의 해결 수단으로 크게 활용한 것은 2010년의 조어도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일본이 조어도(센가쿠 열도)를 침범한 중국 선장을 체포하자 중국이 희토류 수출을 중단하였고, 일본이 바로 굴복하면서 선장을 석방하였다. 그러나 그 이후 벌어진 미중 분쟁에서는 중국이 희토류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2010년 이후 미국, 일본 등이 체계적으로 대응하고 역량을 키워, 희토류 제재의 실효성이 많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요국의 대응을 중심으로 이번의 희토류 수출통제 조치가 어느 분야에 집중하고 있는지, 파급효과가 얼마나 클지를 예측하고 우리의 대응 방안을 살펴보는 것도 큰의미가 있을 것이다. 2. 희토류 분쟁의 주요 변수 희토류 분쟁은 상당히 많은 변수의 영향을 받는다. 분쟁 대상에 포함되는 원소의 수가 많고 매장량과 지역 분포, 활용 분야 등도 상당히 다양하다. 따라서 포괄적으로 희토류 한 단어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 하면, 자칫 오류를 범하거나 핵심 내용에서 벗어날 수 있다. 본 글에서는 컴퓨터와 전기자동차, 풍력발전기 등에 널리 쓰이는 NdFeB(네오디뮴.철.붕소) 영구자석을 중심으로, 주요 변수를 간단히 정리한다. 희토류에 포함되는 원소는 17개에 달하는데, 이를 원자량의 대소에 따라 경희토와 중희토로 구분한다. 경희토는 중국 외에 미국, 호주, 남아공, 러시아 등에도 많아, 수출 통제의 효용이 크게 줄어들었다. 중희토는 매장량이 적고 채굴 과정이 복잡해 중국이 거의 독점해 왔으나, 근래에 베트남, 미얀마, 호주 등에서도 개발, 생산되고 있다. 희토류 채굴과 분리는 많은 환경 오염을 유발한다. 경희토인 모나자이트 광물에 토륨이 함유되어 방사선 오염이 발생하고, 중희토는 화학약품을 사용해 채광하면서 광산 지역에서의 오염과 지반 붕괴를 수반한다. 채광 이후의 분리 공정에도 많은 화학약품이 들어간다. 자원이 있는 선진국들이, 자국에서 채광과 분리를 잘 안하는 이유이다. 자석은 희토류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NdFeB 외에도, 사마륨-코발트(Sm-Co), 알리코, 페라이트 등의 다양한 영구자석이 있어, 하나를 제재하거나 가격이 크게 상승하면, 일부를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있다. 실제로 염가의 NdFeB 자석이 나오기 전까지, 고성능 자석은 Sm-Co를 많이 사용한 바 있다. 도시광산의 형식1)으로, 사용 후 폐기된 자석을 수거해 재활용하기도 한다. 기술의 발전과 특정 자원 보유 여부에 따라 불균형이 발생하기도 한다. NdFeB 자석은 가격대비 성능이 우수하나 고온에서 불안정하므로, Dy(디스프로슘)을 Nd(네오디뮴)의 10% 정도 첨가한다. 자성 제고를 위해 Tb(테르븀)을 1% 정도 첨가하기도 한다. 다만, Nd는 모나자이트 등의 경희토에 비교적 많이 있는데 비해, Dy와 Tb는 중희토에 존재하고 그 양도 적다. 이에 따라 중희토를 독점하던 중국이, 오랫동안 Dy 등을 핵심 무기로 삼아 왔다. 그 결과 가격도 가장 큰 폭으로 올랐고, 최근 서방 국가들의 대응도 중희토 자원 확보에 집중된다. 이를 절약하는 방법으로 Dy를 표면에만 코팅하거나, 합금 공정에서 Dy를 표면에 집중시키는 기술도 개발되었다. 이런 기술들이 특허로 출원되면서, 새로운 분쟁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상하류 공정2)의 연결과 분리도 커다란 변수가 된다. NdFeB 영구자석 생산공정은, 채광, 분리, 합금, 소결(sintering)과 자화(magnetization) 등으로 이어진다. 하류 공정인 합금과 소결 및 자화공정에서 설비와 기술, 경험 의존성이 크고, 이것이 품질과 가격을 크게 좌우한다. 다만, 중국과 같은 대규모 자원 보유국은, 원료만 파는 것보다 부가가치가 큰 후공정(하류공정)까지 자국내에서 하려 한다. 광물 특성에 따라 경희토에 일부 포함된 Dy 또는 Pr(프라세오디뮴)을, Nd와 분리하지 않고 같이 추출해, 후공정에 넘기기도 한다. 이러면, 상류와 하류가 연결된 회사가 더 유리할 수 있다. 중국과 같이 커다란 환경 오염을 감수하면서 희토류 분리 공장을 확장하고 전세계 주요 광물의 처리까지 대행하는 국가가 이런 유형의 전후방 연결을 통해 자국 기업들을 지원하기도 한다. 3. 중국의 희토류 정책과 수출통제 중국이 개혁개방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1983년에, 일본의 사가와 박사가 NdFeB 자석의 분말소결법을 발표하였다. 이후 세계 각국의 희토류 자석 업계가 자원이 많은 중국에 대거 진출하였다. 마침 미국의 희토류 광산이 환경규제로 중단되고 자석 설비와 기술이 중국에 흡수되면서, 2000년대에 이르러서는 중국이 전세계 희토류 자원의 90%를 공급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는 자원 수출 위주라서, "금을 소금값으로 판다."는 불만이 팽배하였다. 이에, 등소평이 "중동에 석유가 있다면, 중국에는 희토류가 있다."고 천명하고, 국내 산업을 발전시키면서 2005년부터 수출을 통제하기 시작하였다. 2010년에 조어도 사태로 40%를 감축해 큰 충격을 주었지만, 이는 중국 정부가 시행해 오던 정책의 연장으로 볼 수 있다. 중국의 핵심 정책은 상류의 광산을 모두 국유화하고 , (1) 대기업으로 통폐합해, 난개발과 과잉생산을 줄이면서 환경을 보호하고 외국을 배제한다. (2) 중간 분리정제 분야에 외국의 개입과 수출을 제한하면서, 중국 내 상하류 연결과 주도권 확보, 수출 통제의 핵심 고리로 삼는다. (3) 하류 분야에서 외국과 교류해, 기술력을 개선한다 등이었다. [그림 1. 중국 바오터우의 세계 최대 희토광산]  2010년대에 중국은 "전략적 신흥산업"으로 전기자동차와 풍력발전 등을 급속히 발전시켰다. 이에 따라 중국의 희토류 영구자석 시장과 산업, 기술, 경쟁력이 크게 상승하였고, 자원의 고부가가치화와 지속가능 발전의 토대가 형성되었다. 아울러 북경대학과 중국과학원 장춘응용화학연구소, 북경유색금속연구총원 등에 희토류 관련 국가중점실험실과 국가공정연구센터를 설치하고, 바오터우 희토연구원(Baotou Research Institute of Rare Earth)도 집중 육성하였다. 세계 최대의 바오터우 경희토 광산이 철광석과 같이 생산되므로, 철광석 수요가 많을 때는 희토류도 과잉 생산된다. 남방의 중희토는 매장량이 적어 지속 발전이 어렵다. 따라서, 희토류 생산을 적절히 조절하면서, 가격과 자원, 시장, 표준, 특허 등을 총동원해, 외국기업의 경제성을 제한하고 자국 기업들의 경쟁력을 제고하는 정책을 추진하였다. 2010년대 일본의 NdFeB 특허 만료 시점에 해외 수출을 확대하고, 분쟁 시에는 라이센스와 자국 특허, 보유 자원과의 연동을 추진하였다. 외국 희토광(특히 중희토와 대형 경희토) 매입도 적극 추진하였다. 세계 2,3위인 미국 마운틴패스(Mountain Pass)와 호주 마운트웰드(Mount Wells) 광산도 매입하려 했으나, 해당국 정부의 개입으로 실패한 바 있다. 중국은 채광에서 분리, 합금, 가공, 기술과 설비, 시장과 금융 등 전 분야를 제공할 수 있으므로, 개발도상국들의 호응이 제법 있다. 환경 오염이 큰 분리 공정에서, 외국 광물의 중국 내 반입과 처리도 허용하고 있다. 외국의 분리 공장 건설과 상하류 연결을 막고 물류 부담을 가중시켜, 중국의 독점권과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그림 2. 중국 바오터우의 희토연구원]  4. 주요 국가들의 대응 일본은 사가와 박사가 1983년에 NdFeB 영구자석의 분말소결 공법을 발표한 이래, Dy, Tb 첨가를 통한 성능 개선, 코팅에 의한 Dy 절약, 대체 소재 개발 등으로 하류 공정 기술을 선도해왔다. 사가와 박사는 이 공로로 2022년에, 공학계의 노벨상이라고 하는 "엘리자베스 여왕 공학상(Queen Elizabeth Prize for Engineering, QEPrize)”을 수상하였다. 상류 분야를 염가 중국산에 의존하였으나, 2010년 수출규제 이후 일본은 수입선을 다변화하고, Dy 사용량 감축과 대체제 개발, 폐자석 재활용 등을 적극 추진하였다. 미국은 1980년대 중반까지 세계 희토류 공급을 주도했으나, 환경규제와 염가 중국산의 유입으로 1998년에 세계 2위 규모인 마운틴패스 광산(경희토 바스트네사이트 광물)이 생산을 중지하였다. 2010년 중국이 희토류 수출을 대폭 감축하자, Molycorp사가 일본과 공동으로 마운틴패스 광산을 복원했으나, 환경과 제반 여건 미비로, 광석을 중국에 이송해 분리하면서, 하류 공정을 건설하지 못하고 파산하고 말았다. 호주는 세계적인 철광석 대국이고 부산물로 경희토 , 자원이 풍부하며, 근래에는 중희토 자원도 개발하고 있다. 먼저 경희토를 개발하고 일본의 투자도 받아, 말레이시아 콴탄 지역에서의 분리공정을 거쳐 산화물과 합금을 수출하였다. 그러나 환경오염으로 지역 주민들의 반발이 심해지면서, 말레이시아 분리공장의 정상 가동이 난항을 겪었다. [그림 3. 미국의 마운틴패스 희토광산]  최근의 미중 패권경쟁 속에서 희토류 자원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자, 자원 안보 차원에서의 국가간 협력과 공동대응이 확대되고 있다. 미국은 트럼프와 바이든이 연속으로 행정명령을 내려, 희토류를 안정적으로 확보토록 지시하였다. MP Materials사가 설립되어 마운틴패스 광산을 재건하고, 생산량을 급속히 확대하였다. 국제협력으로 미국 본토와 캐나다, 그린랜드 등의 희토류 탐사와 개발을 추진하고, 호주와 협력해 분리공장도 건설하였다. 호주는 말레이시아의 협력을 받아 콴탄 분리공장 가동을 정상화하고, 제품 상당량을 일본에 공급하였다. 환경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국내 광산에서의 전처리로 토륨(Th) 등의 방사성 물질을 제거한 후, 말레이시아로 이송한다. 아울러 공동으로 베트남, 미얀마 등에 진출해 부족한 중희토 자원을 확보하고, 이를 공동으로 분리, 가공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중국도 각국의 희토류 자원 탐사와 개발에 적극적이고 상당한 기반도 있으므로, 곳곳에서 보이지 않는 경쟁과 마찰이 전개되었다. 5. 북한의 도전과 좌절 북한의 철산에도 희토류 광산이 있다. 철산이라는 지명에서 보듯이, 철광석과 섞인 경희토 모나자이트(monazite) 광물이다. 1950년대에 소련에 광물을 수출하다 방치했던 것을, 80년대에 재일동포 합영으로 본격 개발한 바 있다. 필자도 북한을 연구하면서 이에 주목하고, 일본의 재일동포 관련자 인터뷰도 여러 번 수행하고 이를 당시의 광물자원공사 등 국내 관련회사를 소개하기도 하였다. 북한이 1985년에 합영법을 제정하고 이듬해에 김일성 교시가 나오면서, 재일동포 중심의 합영사업이 본격화되었다. 이 때, 재일동포 기업인 "국제트레이딩"과 북한의 조선룡악산무역총회사의 합영으로, 1,600만 달러를 투자해 국제화학합영회사를 설립하였다. 1989년 4월에 부지 6.5만m2, 건평 2만m2 규모의 함흥화학합영공장을 착공해 1년 8개월만에 시범생산을 시작하였고, 1991년 4월에 조업식을 개최하였다. 재일동포 기업의 합영 사유는, (1) 북한에 모나자이트 광석이 풍부하고, (2) 연간 150만 달러가 소요되는, 산과 알카리 등 부원료의 현지조달이 가능하며, (3) 고부가가치 제품을 연 1,000만 달러씩 일본에 수출할 수 있다는 것 등이었다. 희토류 분리공정의 기술 수준이 높으므로 재일동포 과학자들이 기술적인 지원을 하였고, 설비 상당수는 중국에서 들여왔다. 생산공정을 보면, 평안북도 철산에서 채광해, 희토류 65%까지 자력 선광한 후 연간 1,000톤을 함흥으로 이송한다는 계획이었다. 이후 함흥공장에서의 가성소다 전처리로, 인산소다 연900톤과 토륨 90톤, 우라늄 2톤을 부산물로 얻는다. 이어서 길이 100m의 분리 공장에서 유기용매로 추출해 희토류 산화물을 만들고, 이중 일부를 금속으로 만든다. 생산 목표는 희토류 산화물 연 300톤, 세륨 연마제 20톤, 희토류 관련 제품 1,350톤 등이었다. 제강에 필요한 미슈메탈과 희토류 미량원소 비료도 생산하였다. 다만, 하류 산업의 중추인 영구자석 생산은 하지 못했다. 이는 일본의 기술 수준이 높고 관련 설비도 풍부하므로, 희토류 산화물 형태로 일본에 가져와 자석으로 가공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업 이후의 경과는 상당히 열악하였다. 장비 부족 등으로 건설이 지연되어 금리 부담이 가중되었고, 투자비용이 계획을 초과하였다. 당시 일본의 경기 침체와 염가 중국제품 유입으로, 희토류 가격이 폭락하고 채산성도 크게 악화되었다. 여기에 1994년부터 북한이 "고난의 행군"에 들어가면서, 원료 수송과 부자재 공급에 큰 타격을 입었다. 결국 공장 가동이 거의 중단되었다. 합영 당사자인 국제트레이딩에서는 생산량 확대로 난관을 타개하려 했으나, 결국 중단하고 말았다. 북한에서의 희토류 사업은 다음의 5가지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1) 광물이 대부분 경희토이고, 고급 NdFeB 자석에 필요한 Dy와 Tb 등이 거의 없다. (2) 경희토는 방사성 토륨이 포함되어 환경 부담이 크고, 핵무기 관련 위험부담도 있다. 철산 광석은 거의 고갈되었다고 한다. 여타지역의 광물 발견 소식도 있으나, 개발 비용이 엄청나 노천광산인 중국이나 기타 국가 대비 경쟁력이 부족하다 철도 사정이 워낙 열악하고 중량 . (3) 레일이 적어, 장거리 수송이 어렵다. 철도의 90% 이상이 전기철도이므로, 전력사정이 수송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4) 전력공급이 부족하고 정전이 잦으며, 전압과 주파수 변동이 커, 전력 수요가 큰 공장의 항시 정상가동이 어렵다. (5) 산, 알카리 등의 원부자재 현지 조달이 어려울 때가 많다. 북한에서 염산과 가성소다는 소금물을 전기분해해 생산하고, 여기에 상당히 많은 전력이 필요하다. 6. 최근의 희토류 분쟁 재발과 파급효과 최근에 벌어진 중국의 희토류 수출규제 조치는, 고성능 자석을 중심으로, 자국이 보유한 병목자원을 활용해 외국의 병목기술, 전략기술을 통제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통제 품목이 NdFeB자석의 성능 개선에 집중되어 있고, 핵심 보유 자원을 지적재산권처럼 활용해 해외 활동까지 통제하려 하기 때문이다. 먼저 중국은 자국이 거의 독점하고 있는 중희토, 특히 디스프로슘(Dy)과 이의 대체자원에 집중하고 있다. Dy는 NdFeB 자석의 열안정성을 향상시키는 핵심 자원이고 미국, 호주 등의 경희토에는 거의 없는 자원이다. 이 자석에 철(Fe)이 포함되므로, 디스프로슘-철 합금까지 통제하였다. Dy을 대체하는 원소에 가돌리늄(Gd), 테르븀(Tb) 등이 있는데, 역시 중희토이고 이번에 중국은 이것들도 통제 대상에 포함시켰다. 빈틈이 없다. [표 1. 주요국의 희토광물 성분(%, REO)]  고성능 대체 자석도 통제한다. 사마륨(Sm)과 이의 코발트(Co) 합금을 넣었는데, 이는 Sm-Co 자석이 고가이지만 내열성이 우수해, Dy 함유 NdFeB 자석을 대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염가의 NdFeB 자석이 나오기 전까지는 Sm-Co 자석이 주로 사용되었다. Sm은 경희토에 속해 서방세계도 보유하고 있지만, 환경오염과 분리공정 문제로 중국이 주도한다. 코발트도 아프리카 콩고가 최대 생산지이지만, 중국 자본이 진출해 많은 양을 수입, 국내 가공하므로, 역시 주도권을 행사한다. 해외 생산시에도 중국의 희토류가 들어가면 통제하는데, 자원도 특허와 같은 지적재산권의 범주로 다루는 것이다. NdFeB나 Sm-Co 자석처럼 물질특허가 있는(있었던) 품목을 통제하지 않고, 이들의 고성능화에 필요한 핵심 병목자원인 Dy와 Co, 기타 대체자원을 통제한다. 이는 지적재산권과 얽히지 않으면서 통제권을 행사하려는 전략적 조치라 볼 수 있다. 이런 자원은 중국만 보유한 게 아니다. Dy를 포함한 중희토는 소량이지만 베트남과 미얀마, 말레이시아, 호주 등에도 존재한다. 다만, 호주 외에는 중국의 정책에 찬성할 듯하니 문제가 된다. 아마도 중국이 수출 통제 정책 발표 전에 이들 국가와 사전 조율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보유 자원 비율이 적어도 대규모 보유국이 자원을 통제하면, 가격과 몸값이 커지는 것이다. 중국의 이번 조치가 미국을 향하고 있지만, 일본에도 불똥이 튀었다. NdFeB 자석은 1983년대에 일본의 사가와 박사가 이의 분말소결법을 발표하면서 세상에 나왔다. 이 자석에 Dy을 첨가해 내열성을 높이는 방법도 80년대에 일본 “스미토모 특수금속”에서 개발하였다. 2010년경에 물질특허 효력이 종료되었지만, 아직도 그 영향력이 지대하다. Dy을 절약하거나 대체하는 기술도 일본이 선도하였다. Dy를 표면에 코팅하거나 합금 과정에서 표면에 집중토록 해서 이를 절약하는 기술, 내열성 고분자를 코팅하는 기술, 도시광산 형식으로 폐품에서 자원을 회수하는 기술 등이 그것이다. 따라서 지적재산권 측면에서는 일본이 중국의 조치에 할 말이 많을 것이다. 일본이 개발한 기술로 막대한 이익을 보는 것이니, 수혜를 입는 중국이 해서는 안될 행동을 하는 것이라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자원 보유국이 팔지 않겠다고 하므로 달리 방법이 없다. 특정 국가가 부존량이 극히 적은 전략자원을 독점하게 되면, 이런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자원 보유가 기술, 특허를 압도하는 것이다. 따라서 중국의 이번 조치는 과거와 달리 상당히 구체적이면서 고도로 전략적이라 할 수 있다. 과거처럼 거칠게 도끼를 휘두르지 않고, 날카로운 칼로 급소를 찌르는 것이다. 상당히 오랫동안 치밀하게 준비한 듯하다. 그러나 이런 조치는 지금까지 보지 못한 형태이고, 전 세계에서 중국만이 하는 것 같다. 관세를 동원하여 외국을 압박하는 미국이 잘못이라면, 중국의 이번 조치도 비난받을 만하다. 그러면 어찌할 것인가? 역시 기술개발과 대체자원 확보가 답이다. NdFeB 자석을 개발하고 후속기술개발을 선도해 온 일본이 이런 조치에 상당한 내성을 가지고 잘 대처해 나가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과거 사례를 보면 미국 호주와 같이 자원이 , (1) , , 있어도 하류 공정이 없거나, (2) 일본과 같이, 하류공정 기술이 탁월해도 자원이 없으면, (3) 자원을 포함한 상하류 전반이 고르게 발전하고,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중국을 이기기 어렵다. 경희토만 있고 중희토가 없어도 상당히 불리하다. 미국, 호주, 일본이 연합해 상하류를 연결하고, 열심히 중희토를 찾아다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 호주, 일본의 상하류 연결은 아직 진행형이고 완성되지 않았다. 이것도 정부 지원에 많이 의존하고 있고, 기업의 자생력은 중국보다 취약하다. 결국, 서구 국가들의 경희토 상하류 연결과 중희토 자원 확보, 새로운 기술 발전과 대체재 개발 등에 따라, 중국의 희토류 지배력과 분쟁 재발 정도가 달라질 것이다. 7. 우리의 대응방안 우리나라가 ICT 강국이라고 하지만, 관련 자원 보유 현황을 보면, 자생력과 지속발전 능력이 그리 높지 않다. 위기 때마다 대책 수립에 몰두하지만, 장기적으로 성공한 사례도 많지 않다. 다만, 희토류 자석과 관련해서는 어느 정도의 지속적인 노력이 있었다. 2010년대 중일간 희토류 분쟁이 발생하면서, 국내 각계에서 대책 수립에 몰두하였다. 주 무대는 역시 중국이었다. 당시의 광물자원공사는 시안에 페라이트 자석공장을 운용하면서 본격적인 희토류 비축과 영구자석 생산을 추진하였다. 포스코와 함께 중국측 파트너를 찾아, 바오토우에 NdFeB 영구자석 생산기업(영신희토)을 세운 것도 이 때였다. 포스코는 호주 철광석 광산에서 부산물로 나오는 경희토를 말레이시아에서 분리해, 국내 자석 수요를 충당하려 하였다. 산하 포항산업과학연구원에서 희토류 자석을 연구하면서, 영신희토를 지원하기도 하였다. 다만, 분리 공장이 말레이시아의 환경문제 제기로 중단되면서, 자원의 중국 의존이 여전하게 되었다. 국내에 분리공장을 건설하려 했으나, 이 역시 환경문제로 중단되었다. 2010년 6월, 필자도 과학기술부 산하의 한중과학기술협력센터 센터장으로 부임하면서, 희토류 협력에 몰두하게 되었다. 먼저, 중국의 희토정책과 산업동향을 연구해, 보고서를 편찬, 배포하였다. 바오토우 희토연구원을 방문해한중희토협력에 합의하고, MOU를 체결하였다. 이 과정에서 한국 전문가들을 초청해 바오토우 희토광산과 분리, 합금, 자석공장 등을 두루 방문하고, 세부 동향을 파악하였다. 이듬해부터는, 남방 중희토 기업들도 방문, 관찰하였다. 한편으로, 중국 북방 희토의 총본산인 바오토우철강 당서기와 희토광산장(후에 희토연구원장), 희토연구원 부원장과 연구부장을 일주일간 한국에 초청해, 포스코(영구자석, 환경)와 지질지원연구원(분리공정), 재료연구소(합금), KIST 등을 방문하고 협력방안을 모색하였다. 이를 토대로 희토연구원과의 정례세미나를 만들어, 양국 관련 전문가들의 토론과 협력을 지원하였다. 광산 환경오염 문제와 관련해, 한국광해관리공단을 소개하기도 하였다. 중국 현지에 진출한 한국기업들도 지원하였다 . 중국 희토연구원과 포스코의 희토협력 MOU체결과 공동연구, 제품 검사 등도 지원하였다. 바오토우 영신희토에 고가 합금기계가 있었으나 중국측의 외국 배제 정책으로 활용을 못하고 있었다. 이에 희토연구원 산하기업과의 합작을 성사시켜, 합금 기계를 살리기도 하였다. 역시 희토에 관심이 지대했던 삼성과 SK 등에 대한 자문도 했다. 다만, 희토류 분쟁이 줄어들면서, 이런 노력이 지속적으로 추진되지 못했다. 바오토우 영신희토는 중국측 파트너와의 협력에 문제가 있었고, 상류인 희토 자원 및 합금과의 연계도 부족하였다. 결국 적자 누적으로 이 사업에서 철수하였다. 광물자원공사는 해외자원 사업으로 큰 타격을 받아 적자가 누적되고, 결국 광해관리공단과 합병해 광해광업공단이 되었다. 우리나라는 희토류 관련 상류산업이 거의 전무하고, 하류는 성림첨단산업(주)이 중국에서 NdFeB 자석공장을 운영하다 국내 이전을 추진하는 것이 거의 유일하다. 자석 수요가 많은 국내 대기업이 이를 간접 지원한다고 전해진다. 상류는 해외 협력과 대기업 참여가 필요하고 하류는 중소기업 집단과 체인 형성이 필요한데, 연결이 잘 안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총결해서 몇 가지 대응방안을 도출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대체자원을 확보해야 한다. 중국의 대안으로 미국, 호주 등이 연합해 자원을 개발하면서 우리나라를 포함한 대형 수요처를 찾고 있다. 여기에 투자해 일정 지분과 기술을 획득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비축사업도 내실 있게 추진해야 한다. 국내 수요의 30~40%만 공급할 수 있어도, 해외 파동이나 압력에 어느 정도 대응할 수 있다. 북한과 협력한다면, 함흥에 있는 분리공장을 살려, 호주 등에서 채광한 광물을 처리할 수는 있겠다. 이 때도 산, 알카리 등의 부재료와 전력공급 문제를 사전에 해결하고, 환경관련 분쟁해소 대책도 세밀히 수립해야 한다. 관련 기술도 적극적으로 개발해야 한다. 희토류 분리공정 연구는 지질자원연구원이 거의 유일하고, 금속과 자석은 몇 개 연구원들이 수행하고 있다. 국가 차원에서 연합사업단을 만들어, 희토류를 포함한 전략자원 연구를 강화했으면 한다. 중소기업이 자원 확보와 분리, 합금, 가공 등의 다양한 수요에 모두 대처하기 어려우므로 이를 지원할 필요가 있다. 대형 수요처인 대기업은 자원안보와 미래 대비 차원에서, 그리고 정부도 상하류 연결과 ICT 종합경쟁력 향상 차원에서 중소기업을 다각도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 사실상, 미국, 호주, 일본도 마찬가지로, 개별 기업 혼자로는 상하류 연결이 잘 되면서 막대한 정부지원을 받는 중국 기업을 이길 수 없다. 수요가 더 큰 배터리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이지만, 대기업 참여가 많아서 어느 정도 대처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1) 한중과학기술협력센터(2012), “중국의 희토류 개발정책과 산업 동향” 2) 재일본조선인과학기술협회(1988), “희토류원소자원과 제련기술에 관한 기초자료” 3) 최계영, 『차가운 평화의 시대』 (인문공간, 2022).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기획자: 강영훈 제주평화연구원 원장, 편집 : 제주평화연구원 이혜진 연구원 이춘근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초빙전문위원) 서울대학교 섬유고분자공학과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중국 북경사범대학 국제 및 비교교육연구소에서 교육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중국과학원 과기정책연구소와 북경대학 과학사회학연구센터, 미국 스탠포드대학 아시아태평양연구센터에서 연구하였다. 2000년부터 2019년까지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으로 재직하면서 북한, 중국을 포함한 주요 사회주의국가들의 과학기술정책과 이들과의 협력, 국방과학 등을 연구하였다. 오랫동안 통일부와 국방부, 합동참모본부 등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하였고, 중국 연변과학기술대학 부총장, 통일준비위원회 전문위원,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 민간위원, 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회 상임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주요 저서에 “북한의 핵패권(인문공간)”, “중국의 우주굴기(지성사)”, “과학기술로 읽는 북한 핵(생각의 나무)”, “북한의 과학기술(한울아카데미)” 등이 있다.
  • [JPI PeaceNet] 신(新) 블록정치의 문턱에서 : 싱가포르 DIS·NEACD 참가 회고와 동북아 질서
    저자
    배학영 (국방대학교 교수 / 안보문제연구소 군사전략연구센터장)
    발간호
    2025-7
    [기획자 註]  미중 전략경쟁이 심화되면서 양대 강국을 중심으로 하는 블록(bloc) 정치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양국의 입장을 솔직히 교환함으로써 불필요한 오해를 최소화하여 긴장을 관리할 수 있는 다자 협의의 중요성 또한 강조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고는 최근 싱가포르에서 개최된 DIS와 NEACD 등 1.5트랙 회의에서 제기된 내용을 분석하고 동북아시아지역 평화와 안정에 지닌 함의를 분석하고자 한다 [기획: 강영훈 원장(yhkang@jpi.or.kr)]. 1. 서론 매년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국방정보공유회의(Defense Information Sharing, DIS)와 동북아협력대화(Northeast Asia Cooperation Dialogue, NEACD)는 초 냉전 해체와 1차 북핵 위기의 충격 속에서 태어난 동북아의 대표적 트랙 1.5 대화의 장이다. 정부 대표와 학자, 전직 고위관료가 한자리에 모여 상대의 의도와 한계, 가능성과 리스크를 가감 없이 토론해 왔다는 점에서, 이 두 회의는 ‘대화를 제도화’하려는 동북아의 오랜 시도라 할 만하다. 올해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대화의 현장 바깥에서 ‘대결의 표식’이 동시에 연출되었다는 사실이다. DIS 첫날인 9월 3일, 베이징에서는 전승 80주년기념 열병식이 있었고, 시진핑 국가주석과 함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천안문 망루에 나란히 서 있었다. 이 자리에 서방 정상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중국은 신형 무기와 무인전력을 대거 공개하며 ‘자립적 국방산업의 위상’을 과시했고, 열병식 행사를 주관한 시 주석은 “인류는 다시 평화와 전쟁의 갈림길에 서 있다”고 경고했다. 이 장면은 동북아가 맞닥뜨린 신(新) 블록정치의 부상을 단번에 시각화했고, DIS·NEACD의 토론 주제와 온도 또한 그 장면을 축으로 빠르게 재정렬되었다. 북한의 비핵화, 중국의 새로운 비전인 세계안보구상(Global Security Initiative)1), 새로운 블록정치 등 급변하는 글로벌 정세 속에서 난제들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해 논의가 집중되었다. 한미일과 북중러간 대립 구도가 동북아에서 지역 협력을 어렵게 하는 상황에서, DIS와 NEACD는 북한을 제외한 나머지 동북아 국가들의 참석자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가능한 해법을 논의하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2. 국방정보공유 세션: 연합억제·전력민첩성·산업동원의 ‘삼중 과제’ 국방정보공유회의(DIS)는 동북아 및 인도·태평양 지역 국가들이 군사기술, 작전개념, 산업기반을 함께 논의해온 다자 안보대화체로, NEACD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지만 2000년대 초부터 꾸준히 개최되어 왔다. 그간 회의에서는 미사일 방어체계와 확장억제, 해양안보, 사이버 및 우주 영역 등 신흥 안보 과제가 협의되었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교훈과 한반도 급변사태 대비 등 시의성 있는 주제들도 다루어졌다. DIS는 특히 정부 대표와 학계, 전직군 관계자가 함께 모여 ‘기술–작전–산업’을 하나의 연속선상에서 논의한다는 점에서 NEACD와 성격을 달리한다. 올해 논의의 핵심 축은 두 가지였다. 첫째, 연합억제 구조의 재확인과 업데이트이다. 북한의 전력 증강과 중국의 반접근/지역거부(A2/AD) 역량 진전은 미국이 주도하는 연합군의 개입 비용을 높이고 억지의 명료성을 약화시키며, 위기 시 ‘오판’ 가능성을 증대시킨다. 이에 따라 한‧미‧일 3국은 정보‧조기경보‧요격체계의 통합도를 한층 더 끌어올려야 한다는 점에 참가자들 사이에서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반면, 중국과 러시아 측 인사들은 이러한 3각 공조 강화가 새로운 블록 정치와 군비경쟁을 촉발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였고, 일부 제3국 참가자들 역시 긴장 고조와 신냉전적 구도가 심화되는 것에 대한 경계심을 드러냈다. 따라서 이 의제는 한편으로는 3국 억지력 강화를 위한 실질적 협력방안으로 논의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역내 신뢰 구축과 위기관리 채널을 병행해야 한다는 문제의식 속에서 다층적으로 토론되었다. 둘째, 산업동원과 재래식 전력의 귀환이다. 러–우 전쟁의 교훈은 단순하지만 명확하다. 정밀유도·무인체계가 전장을 바꾸고 있으되, 포탄·유류·부품·정비가 부족하면 첨단무기 운용도 장기전에서 지속될 수 없다. 한국 방산은 중·저가 영역에서 고가의 미국 무기체계와는 달리 가성비 좋은 무기로 존재감을 키워왔지만, 장기 수요에 대응할 국가 수준의 방산전략, 생산 유연성, 핵심 부품 공급의 자립성, 그리고 인공지능을 결합한 방산(AI+X)을 위한 로드맵을 보다 분명히 해야 한다는 점이 이번 회의에서 제기되었다. 이에 대해 한국 측은 최근 방산 수출 확대와 ‘소버린 AI’2) 를 접목한 방산 디지털 전환 전략을 소개하며, 중장기적으로는 해외생산기지 확보와 공급망 다변화를 통해 대응하려는 계획을 공유하였다. 일본 참가자들은 자국이 여전히 미국 의존도가 높아 독자적 대량생산 능력 확보가 과제임을 인정하면서도, 방위비 증액과 생산라인 확충을 통해 점진적으로 대응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중국 측은 자국의 ‘국산화된 방산 생태계’와 고속철·민간산업을 통한 대규모 산업동원 능력을 사례로 제시하며, 장기전에 대비한 생산·보급체계의 자립성을 자신 있게 설명하였다. 러시아 참가자들은 우크라이나 전쟁 경험을 토대로 전통적 포병·탄약·재래식 전력이 여전히 핵심적임을 강조하고, 방산기업의 전시체제 전환을 이미 실행하고 있음을 부각시켰다. 이처럼 각국은 자국의 경험과 산업능력에 따라 상이한 설명을 제시했으나, 공통적으로 ‘첨단무기와 더불어 재래식 전력·보급 능력의 회복력이 장기전 지속능력을 좌우한다’는 데에는 인식을 같이하였다. 지난 9월 3일에 개최된 중국 전승 80주년기념 열병식에서 공개된 신형 극초음속·대함·무인전력은 이와 같은 두 가지 주제에 관한 논의를 관통하였다. 이는 중국이 더 이상 외산 의존형이 아니며, 국산화된 방산 생태계를 기반으로 장기 경쟁에 임하겠다는 신호로 해석되었다. 이에 대해 DIS에 참석한 중국 측 참가자들은 열병식이 단순히 무기를 과시한 것이 아니라 ‘자국의 자립적 방위산업 역량을 입증하는 계기’였음을 강조하였다. 특히 이들은 중국이 지난 10여 년간 추진한 무기체계의 국산화와 생산라인의 다변화가 이미 결실을 맺고 있으며, 이는 단지 중국군을 위한 것이 아니라 역내·글로벌 차원의 ‘안보 공공재’로 기여할 수 있는 토대라고 설명하였다. 아울러 중국 관계자들은 서방이 제기하는 ‘군사적 위협 신호’라는 해석에 대해, 이는 중국의 방산 발전을 과도하게 정치화하는 시각이라 반박하며, 오히려 자국이 평시부터 재난구호, 해양안보, 비전통 영역까지 포괄하는 기여를 하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올해 DIS는 동북아 안보 환경이 직면한 이중 과제, 즉 (1) 미국 주도 연합억제의 명료성 확보, (2) 산업동원의 체계화라는 구조적 도전에 집중하였다. 북한의 전력 증강과 중국의 질적 군사력 도약으로 인해 기존 억지의 신뢰성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단순한 전력 증강이 아니라 동맹 통합, 회복력, 산업 동원 능력이 국가안보의 핵심 변수로 부상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이번 회의는 군사기술과 작전개념, 산업기반을 동시에 논의함으로써, 동북아의 안보 과제가 전장의 전술적 문제를 넘어 경제·산업·정치적 총체성을 띄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3. 동북아협력대화: ‘비핵화/군비통제’와 ‘블록정치/다자협력’의 긴장 동북아협력대화(NEACD)는 1993년 UCSD의 수전 셔크(Susan Shirk) 교수 주도로 시작된 동북아지역의 대표적 트랙 1.5 대화로, 외교·안보 고위 인사와 학자, 전직 관료들이 비공식적·자유롭게 정책 의도와 제약을 솔직히 드러내는 자리다. NEACD는 그동안 북핵 문제와 한반도 평화체제, 미·중 전략경쟁, 일본의 안보정책 변화, 동북아에서 러시아의 안보 역할, 해양안보 및 비전통 안보 과제 등 시의성 있는 주제를 폭넓게 다뤄왔다. 특히 6자회담이 교착 상태에 빠졌던 시기에는 사실상 유일한 다자 대화의 장으로 기능하며, 상호 인식을 공유하고 긴장 완화의 계기를 마련하는 데 기여해 왔다. 올해 회의에서 논의된 주요 쟁점은 크게 네 가지였다. 첫째, 북핵 접근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의견들이 제시되었다. 일부 참가자들은 완전한 비핵화 목표를 재확인했지만, 다른 일부는 현실적으로 ‘동결–군비통제–위험 저감’의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이 논쟁은 최근 발효된 러–북 상호방위 조약으로 더욱 복잡해졌다. 조약은 ‘무력공격 시 상호원조’를 명시함으로써 양국 간 군사·외교·경제 협력을 제도화하였고, 이는 한반도의 새로운 불안정 요인을 낳고 있다. 북한은 ‘러시아의 후원으로 안전보장이 강화’되었고 이로 인해 ‘한반도에 전략적 균형이 이루어졌다’고 인식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 대해 한국과 미국은 기존 억지력이 약화되어 ‘도발 가능성이 더 커지고 위기 관리가 어려워짐’으로써 한반도 정세가 불안해지는 결과가 동시에 나타나게 된다. 이러한 상반된 효과가 공존한다는 점에서 ‘균형과 위기가 동시에 강화되는 역설’이라는 평가가 나온 것이다. 둘째, 블록정치와 다자협력의 줄다리기다. 2023년 캠프데이비드 정상회담이후 한‧미‧일 협력이 강화와 답보를 반복하나 이 틀에 있어서는 유지되고 앞으로의 발전이 기대되는 반면, 북‧중‧러는 상징성과 편익을 공유하되 실제 공동작전·통합기획의 제도화에는 한계가 있다는 평가가 제기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이징 열병식에서 세 정상이 나란히 자리한 장면은 강력한 상징적 파급력을 보여주었으며, 정치적 연대가 군사·경제 협력으로 얼마나 신속히 전환될 지가 향후 1~2년의 중요한 관전 포인트로 지적되었다. 동시에, 일부 참가자들은 이러한 블록화가 동북아 전체를 신냉전 구도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우려를 표하며, 이를 완화하기 위해 ASEAN 중심의 다자 틀이나 UN·ARF 같은 포괄적 다자 협력 기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즉, 블록정치가 가속화되는 흐름 속에서도 역내 국가들은 다자적 대화와 신뢰구축 메커니즘을 통해 ‘완충지대’를 마련하려는 노력을 병행하고 있어, 이 두 흐름이 끊임없이 긴장 관계 속에서 줄다리기를 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셋째, 중국의 세계안보구상(Global Security Initiative, GSI)이다. 중국측 참가자들은 비전통 안보와 주권·내정 불간섭 원칙을 강조하며 ‘안보 공공재의 제공자’ 이미지를 설명했지만, 서방과 한국·일본의 일부 참가자들은 실행력·투명성의 공백과 권위주의 정권의 통제 및 검열 강화의 부작용을 지적했다. 그럼에도 이러한 중국의 세계안보구상(GSI)이 미국주도의 세계질서에 도전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공백이 있는 안보에 공공재로서 제공될 수 있는 가능성도 같이 봐야 한다는 한 참가자의 의견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넷째, 경제안보의 다층화다. 이번 회의에서는 기술공급망, 중요광물, 사이버·데이터 거버넌스가 △동맹(한·미, 미·일, 미·한·일) △소다자주의(미·일·호주, 미·일·동남아 일부국가) △지역 FTA(RCEP, CPTPP)라는 여러 층위에서 동시에 다루어졌다. 미국 측 참가자들은 반도체·AI·배터리 분야에서 동맹국 간 공급망을 긴밀히 통합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중국 의존도를 줄이는 것이 핵심 목표임을 분명히 했다. 일본은 CPTPP와 자국의 경제안보 전략을 연계하면서 ‘동맹 강화와 지역 협력 병행’을 주장했고, 중요광물 확보를 위해 호주·동남아와의 소다자 협력 필요성을 언급했다. 한국은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安美經中)’이라는 이중트랙이 점점 지속하기 어려워지고 있으며, 따라서 미국과의 첨단기술 협력을 심화하는 동시에 RCEP·CPTPP 같은 다자 경제협정을 통해 선택지를 넓히려는 입장을 공유했다. 한편, 중국 측은 세계안보구상(GSI)과 연계해 경제협력 또한 ‘공공재’의 성격을 강조하며, 미국식 디커플링 대신 상호의존 심화를 통한 안정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참가자들은 자국에 대해 제재가 부과되는 상황에서 중국 및 ‘글로벌 사우스’와의 경제 연계를 강화하고, 에너지·자원 수출을 통해 대체 시장을 확대하려는 구상을 소개했다. 종합하면, 동맹국들은 기술·자원 협력의 내실화를 강조했고, 중국과 러시아는 서방 중심의 경제안보 프레임에 대항하여 대체적 연계망을 주장하였다. 이처럼, 경제안보는 블록정치와 다자협력이 교차하는 주요 전장이자 선택지가 점점 협소해지는 영역이라는 인식이 공유되었다. 이번 NEACD는 동북아 안보 환경이 비핵화와 군비통제 사이의 현실적 간극, 그리고 블록정치와 다자협력 사이의 긴장 속에서 전개되고 있음을 잘 보여주었다. 한편으로는 북중러 연대의 상징성이 부각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최소한 바이든 행정부 시기까지 한미일 협력이 제도적으로 공고해지면서 신(新) 블록 정치의 전조가 명확해졌다. 그러나 동시에 중국의 세계안보구상(GSI)을 포함한 다양한 협력 제안, 그리고 경제안보의 복잡한 다층 구조는 동북아가 여전히 협력의 공간을 모색할 여지를 가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결론적으로 NEACD는 갈등과 경쟁의 구조 속에서도 대화와 다자협력이 불가결한 도구임을 다시금 확인시켜 주는 자리였다. 4. 이재명 정부에 대한 제언: ‘Pacemaker–Peacemaker’의 이론적 실질화 싱가포르에서 열린 DIS와 NEACD의 논의는 한국 외교안보 전략이 직면한 구조적 도전을 이론적으로 재해석할 필요성을 보여주었다. 신(新) 블록정치의 부상과 비핵화·군비통제의 간극, 블록정치와 다자협력의 긴장, 경제안보의 다층화는 단순한 현상 진단을 넘어, 한국 정부가 ‘Pacemaker–Peacemaker’라는 프레임을 어떻게 제도적·전략적으로 구체화해야 하는지를 묻는다. 이재명 정부의 실용외교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국제정치이론적 함의와 정책적 연계성을 갖춘 전략적 선택으로 구현되어야 하는 이유다. 그래서 실용외교의 실질적 실천을 위한 다음과 같은 5가지 정책 제언을 제시해본다.  1) 억지의 명료성과 동맹의 다차원적 재정의: 억지이론과 복합안보의 적용 전통적 억지(deterrence) 이론은 상대방의 의도와 비용-편익 계산을 명확히 하는 데 초점이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와 중국의 A2/AD 능력은 억지의 명료성을 약화시키며 오판 위험을 높이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은 핵억지–재래식 억지–동맹 억지의 삼중 구조를 복합안보적 관점에서 재구축해야 한다. 한·미 동맹은 군사적 억지에 머무르지 않고, 기술·산업·데이터·우주 등 신흥 영역으로 확장되는 ‘총체적 억지’를 지향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군사동맹에서 종합안보동맹으로의 진화를 의미하며, 억지 이론의 현대적 적용이라 할 수 있다. 2) 산업동원과 소버린 AI: 전쟁지속성 이론과 혁신적 국가안보 전략 러–우 전쟁은 첨단무기만으로는 전쟁을 장기적으로 유지할 수 없으며, 탄약·연료·부품·정비 같은 산업동원력이 승패를 좌우한다는 진리를 재확인해주고 있다. 한국은 ‘가격대 성능’ 전략에서 벗어나 국가 차원의 방위산업 전략과 핵심 부품 자립성을 확보해야 한다. 특히 이재명 정부의 소버린 AI 구상은 단순한 디지털 전환이 아니라, 군사혁신(RMA)과 국가혁신체제(NIS)를 결합하는 실험장이 될 수 있다. ‘AI+X’와 ‘디지털 트윈(Digital Twin)’과 같은 신기술은 인공지능을 기존 산업 영역(X)과 결합해 새로운 효율성과 예측 능력을 창출하는 접근을 의미한다. ‘AI+X’는 인공지능을 생산·정비·물류 등 다양한 군수 영역에 적용함으로써 의사결정의 속도와 정확성을 높이는 기술 통합 모델이며, ‘디지털 트윈’은 실제 전력·장비·공정을 가상 공간에 복제하여 모의실험과 운영 최적화를 가능하게 하는 기술이다. 이러한 기술들을 방위산업의 테스트베드로 활용하면, 한국은 기술혁신과 안보역량을 동시에 강화하는 한국형 기술–안보 복합 전략을 창출 할 수 있다. 이는 장기적으로 전쟁의 지속 능력, 즉 산업과 작전의 연속성을 구조적으로 보장하는 기반이 될 것이다. 3) 중국과의 위험관리: 복합상호의존 이론의 전략적 활용 중국의 세계안보구상(GSI)과 군사력 증강은 분명히 주변국에 구조적 불안 요인을 제공하지만, 동시에 제한적 협력의 여지를 내포한다. GSI는 미국 주도의 기존 안보체계에 대한 대안 담론으로 출발했으나, 그 안에는 비전통 안보 영역—기후변화, 감염병 대응, 해양안전, 사이버 거버넌스—등에서 실질 협력을 확대하려는 의도도 포함되어 있다. 한국을 포함한 중견국 입장에서는 이러한 분야에서의 협력은 군사·정치 영역의 대립과는 분리된 ‘비갈등성 협력공간(non-conflictual cooperation space)’으로 제한적으로 활용할 여지가 있을 수 있다. 따라서 한국은 GSI를 전면 수용하기보다, 그 중 비전통 안보와 공공재적 요소만을 선별적으로 연계하여 실익 중심의 협력 구조를 만드는 전략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한국은 미·중 경쟁 속에서 단순한 편승이 아니라 ‘경쟁적 상호의존(competitive interdependence)’ 전략을 채택해야 한다. 해양, 기후, 보건, 데이터 관리 같은 영역에서 실무 대화 채널을 복원하고, 공급망·사이버 안보에서는 가드레일을 설정하여 갈등을 관리하는 것이 그 예이다. 이는 Keohane과 Nye가 제시한 복합상호의존 이론의 핵심,3) 즉 ‘갈등 속 협력(possibility of cooperation under competition)’이라는 모델을 동북아 현실에 맞게 적용하는 시도라 할 수 있다. 이재명 정부는 이러한 접근을 통해 미·중 경쟁 구도 속에서도 국익을 극대화하고, 안보와 경제의 상호 의존 구조를 전략적으로 관리하는 균형 외교를 추진해야 한다. 4) 북핵 협상 설계: 점진적 군비통제와 모듈형 협상의 결합 NEACD에서 드러난 것처럼 완전한 비핵화와 단계적 군비통제 사이의 간극은 현실적 난제다. 한국은 이 간극을 좁히기 위해 ‘동결–사찰–검증’ 단계의 모듈형 접근을 주도해야 한다. 이는 한꺼번에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보다, 단계적으로 긴장을 완화하고 신뢰를 쌓아가는 방식(군비통제의 점진적 접근)과, 하나의 큰 합의 대신 작은 합의들을 연결시켜 전체 협상을 완성해 나가는 방식(협상의 모듈형 설계)을 결합한 것이다. 다시 말해, 북한 비핵화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려 하기보다, 핵활동 ‘동결–사찰–검증’ 같은 세부 단계를 별도의 모듈로 나누어 합의하고 실행하면서 점진적으로 군비를 통제해 나가자는 접근이다. 이러한 접근에 기초할 경우 한국은 미국·일본과 공조하면서 중국·러시아의 반대를 최소화하기 위해 조건부 인센티브 패키지를 마련해야 한다. 5. 맺음말: 대화와 대결의 교차, 그리고 한국의 과제 올해 싱가포르에서 열린 DIS와 NEACD는 동북아 안보 환경이 직면한 구조적 도전과 그 해법을 동시에 드러내는 자리였다. DIS에서는 북한의 전력 증강과 중국의 A2/AD 능력 진전으로 인해 연합억지의 명료성 확보가 시급하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동시에 러–우 전쟁이 보여준 교훈을 토대로, 산업동원력과 재래식 전력의 회복력이 첨단무기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각국은 자국의 방위산업 현황과 대응 태세를 공유하며, 첨단기술·AI와 전통적 전력의 결합이 장기전 지속능력을 좌우한다는 인식을 함께하였다. NEACD에서는 비핵화와 군비통제 사이의 접근 간극, 블록정치와 다자협력의 긴장, 중국의 GSI와 그 함의, 경제안보의 다층화가 집중적으로 논의되었다. 한·미·일 공조의 제도화와 북·중·러의 상징적 연대가 대비되었고, 이는 동북아가 신(新) 블록정치의 전조에 놓여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동시에 ASEAN 중심의 다자 틀, UN 및 ARF와 같은 협력 메커니즘, 경제분야의 소다자 협력과 FTA들은 여전히 협력의 공간을 열어두고 있음을 시사했다. 이러한 논의에 비추어 한국, 특히 이재명 정부가 취해야 할 방향은 분명하다. ‘페이스메이커-피스메이커(Pacemaker–Peacemaker)’라는 프레임이 단순한 수사에 머물지 않기 위해서는, 첫째 연합억지의 명료성을 회복하고 동맹을 기술·산업·데이터까지 포괄하는 종합안보 동맹으로 재정의해야 한다. 둘째, 방산 전략을 장기적 국가 전략으로 격상시켜 소버린 AI를 접목한 산업 민첩성을 확보해야 한다. 셋째 미·중 경쟁 속에서 위험을 관리하는 ‘경쟁적 상호 의존’ 전략을 구체화해야 한다. 넷째, 북핵 협상에서는 동결–사찰–검증의 모듈형 설계를 통해 다자적 이익 구조를 창출해야 한다. DIS와 NEACD가 다시금 확인시켜 준 것은, 대화의 제도는 여전히 필요하며, 질문은 더욱 날카로워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베이징의 열병식 장면이 신(新) 블록정치의 상징이었다면, 싱가포르의 토론은 여전히 협력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제도적 노력의 표현이었다. 한국의 과제는 이 두 현실을 동시에 직시하며, 정교한 설계와 일관된 실행을 통해 페이스메이커 국가로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설계도는 이미 마련되어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속도와 순서다.  1) GSI(Global Security Initiative)는 시진핑 국가주석이 2022년 보아오 포럼(Boao Forum for Asia)에서 처음 제안한 개념으로, “공통·종합·협력·지속 가능 안보”(common, comprehensive, cooperative, sustainable security) 원칙을 내세운다. 이 구상은 국가주권 및 영토 보전 존중, 유엔헌장 준수, 대화·협상을 통한 분쟁 해결, 전통 및 비전통 안보 위협 모두를 포괄하는 안보 프레임 등 여섯 가지 약속(commitments)을 중심 축으로 삼고 있다. 다만 중국 내 공식 문서는 GSI의 작동 메커니즘과 실행 로드맵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고 있으며, 외부 분석가들은 이를 “정책적 구상 또는 외교적 수사(rhetoric)”으로 보기도 한다. 중국 정부는 이후 2023년 2월 GSI 개념문서(Concept Paper)를 발표하여, 협력 우선 분야와 협력 플랫폼·메커니즘을 20개 항목 수준으로 제시한 바 있다. 이와같은 구상은 중국 스스로가 ‘안보 공공재 제공자(security public good)’ 역할을 강조하고자 하는 전략적 이미지 구축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2) 소버린 AI (Sovereign AI)는 국가가 인공지능 기술과 데이터 생태계를 자국 중심으로 통제하고 운영하겠다는 전략적 개념이다. 한국에서는 이재명 정부가 발표한 AI 정책의 핵심 축으로, 해외 의존성을 줄이고 자국어·문화·안보에 적합한 AI 생태계를 구축하고자 한다. 정부는 2025년부터 5년간 약 5300억 원을 투자해 국내 AI 기반 모델 개발을 지원하고 있으며, Hanwha Systems 등 방산 업체들도 국방 영역의 소버린 AI 기술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3) Robert O. Keohane & Joseph S. Nye, Jr., Power and Interdependence: World Politics in Transition (Boston & Toronto: Little, Brown & Co.,1977)에서 제창한 복합상호의존(Complex Interdependence) 이론은 전통적 현실주의가 가정하는 ‘군사력 중심의 위계적 국제관계’ 모형을 비판하며, 국가들 사이의 관계가 점점 복잡해지고 다채로운 채널을 통해 상호작용한다는 점을 강조한다.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기획자: 강영훈 제주평화연구원 원장, 편집 : 제주평화연구원 이혜진 연구원 배학영 (국방대학교 교수 / 안보문제연구소 군사전략연구센터장)  배학영 교수는 국방대학교 전략학부 교수이자 안보문제연구소 군사전략연구센터장으로 재직 중이다.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학사), 국방대학교에서 국제관계학 석사학위를 취득한 뒤, 미국 플로리다 주립대학교(Florida State University)에서 정치학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연구분야는 미래전(Future Warfare), 해양전략(Maritime Strategy), 인공지능(AI) 기반 전쟁과 군사혁신, 국방데이터 및 방위산업 전략, 핵전략과 억지이론 등이며, 최근에는 인공지능·빅데이터·우주 영역이 결합된 지능화 전장(Intelligent Battlespace) 및 한국형 방위산업 혁신 생태계 구축 전략을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배학영 교수는 국방대학교에서 「미래전」, 「해양전략」, 「군사연구방법론」 등을 강의하며, 고위정책과정 및 장성급 교육과정에서도 안보관련 강의를 하고있다. 또한 국방대학교 안보문제연구소, 해군본부, 국방부, 외교부 등과 공동으로 국방혁신, AI·MRO 체계, 인도·태평양전략 관련 정책 연구를 수행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우주전장시대 해양 우주력』(박영사,2022), 『핵무기와 핵전략』(박영사, 2025), 『21세기 해양안보와 국제관계』(북코리아, 2017) 등이 있으며, SSCI급 저널인 The Korean Journal of Defense Analysis 및 『국방연구』, 『한국방위산업학회지』, 『한국해군과학기술학회지』 등에 다수의 논문을 게재하였다. 국제적으로는 UCSD(IGCC)가 주관하는 동북아협력대화(NEACD), 국방정보공유회의(DIS), 하와이 East-West Center, Asia-Pacific Center for Security Studies, NATO Defense College, Diplomatic Academy of Vietnam 등 다양한 국제 안보포럼과 학술회의에서 발표자로 초청받았다. 현재 배학영 교수는 인공지능 기반 미래전의 국가전략적 함의, 해양안보와 우주력의 융합, 그리고 한·미·일 협력과 북·중·러 블록화 대응 전략을 중심으로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 [JPI PeaceNet] 트럼프 2기 미국의 사이버 안보 전략: ‘사이버 복합 넥서스’의 시각
    저자
    김상배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발간호
    2025-6
    [기획자 註]  제4차 산업혁명(4th Industrial Revolution)은 정치·경제·사회 등 모든 분야에 정보통신 기술(ICT)이 융합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에 따라, 세계 각국은 사이버 공간(cyber space) 및 빅데이터를 적대적인 국가 혹은 세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정책적·기술적 노력을 경쟁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본고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의 사이버 안보전략을 분식 및 전망해보고 이에 따른 변화를 살펴보고자 한다 [기획: 강영훈 원장(yhkang@jpi.or.kr)].  요약 2025년 1월 20일 출범한 제2기 트럼프 행정부가 펼칠 사이버 안보 전략은, 미중 패권경쟁의 맥락에서 중국의 해킹에 대응한다는 차원에서는 이전 바이든 행정부에서 수행한 정책적 연속성을 이어받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사이버 안보와 여타 다양한 이슈들이 연계되는 맥락을 정치·외교·경제적으로 활용하려는 트럼프의 전략적 의도에 따라서 다양한 변화가 예견된다. 미국이 추구할 새로운 사이버 안보 전략의 방향과 내용을 파악하는 것은, 한국과 같은 중견국에는 매우 중요한 정책적 논제가 아닐 수 없다. 이 글은 트럼프 2기 미국의 사이버 안보 전략에서 나타나는 전반적인 기조 변화를 검토하고, 이를 바탕으로 여러 세부 분야에서 드러날 구체적인 변화의 양상을 전망해 보고자 한다.  서론: ‘사이버 복합 넥서스’의 시각 최근 사이버 공격은 그 양이 급격히 늘어나서 질적인 변화를 초래하는 ‘양질전화(量質轉化)’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게다가 양적으로만 늘어나는 게 아니라 복합적인 ‘이슈연계(issue linkage)’의 과정을 거치면서 새로운 패턴을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전통안보’의 임계점을 넘어 사이버 안보 이슈가 지정학적 문제로 부상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그림-1> 참조). 실제로 최근 사이버 안보 문제는 좁은 의미의 시스템 해킹이나 악성코드 공격 등의 경계를 넘어서 다양한 신흥안보(emerging security)의 이슈로 창발(emergence) 및 피드백(feedback)의 과정을 겪고 있다.1) <그림-1> 사이버 안보의 창발·피드백과 복합 넥서스  이러한 사이버 안보의 진화 과정과 구조를 최근 학계에서는 ‘사이버 복합 넥서스(Cyber Complex Nexus)’로 개념화하고 있다.2) 사이버 안보 이슈가 다양한 이슈들과 복잡하게 연계되는 현상을 의미하는 ‘사이버 복합 넥서스’에 대한 논의는 현재 진화하고 있는 사이버 안보 문제를 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이러한 넥서스의 개념은 사이버 안보의 지정학이 단순한 단계적 부상이 아니라 양질전화-이슈연계-전통안보의 세 단계가 모두 복잡하게 얽히서 부상하는 입체적 창발 과정이라는 점을 드러낸다. 이 글은 사이버 복합 넥서스의 시각을 원용하여 향후 트럼프 2기 미국의 사이버 안보 전략의 행보를 살펴보고자 한다.  사이버 안보 전략의 전반적 기조 바이든 행정부와 비교하여 트럼프 2기의 사이버 안보 전략은 상당한 부분에서 연속성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사이버 안보 정책이 공화당과 민주당을 막론하고 초당적으로 추진되어 온 역사를 돌아볼 때 그러한 전망은 설득력이 있다. 그럼에도 트럼프 2기 사이버 안보 전략은 몇 가지 핵심적인 분야에서 변화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사이버 안보 전략의 전반적 기조에서 드러나고 있는 변화의 조짐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차원에서 발견된다. 사이버 안보 전략의 연속성 첫째, 트럼프 2기 미국이 바이든 행정부의 사이버 안보 전략의 기조를 어느 정도 이어받을지, 아니면 ‘바이든 그림자 지우기’에 나설지가 관건이다. 미중 사이버 안보 갈등이 지속되거나 아니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바이든 행정부 말기 중국 해커들의 통신사 해킹, 재무부 해킹 등과 같은 사건의 발생으로 인해서 미국의 대중국 사이버 안보 대응 태세와 제재 수위는 갈수록 강화되는 추세이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은 임기 종료 4일 전인 2025년 1월 16일 사이버 안보 관련 행정명령을 발표하고 나섰다. 미국 정부와 거래하는 소프트웨어 기업들에 새로운 보안 기준을 부과하였는데, 이 행정명령의 핵심은 소프트웨어 공급망 보안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소프트웨어 구성표(Software Bill of Materials, SBOM) 제도를 도입했다.3) 바이든 행정부 시기 최대 쟁점이었던 ‘소프트웨어 공급망 안보’ 문제는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 취임 후 트럼프 대통령이, 바이든 정부의 여타 많은 행정명령을 폐기했는데도 불구하고 사이버 안보 관련 행정명령은 그대로 유지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은 2025년 3월 19일 미국내 사이버 안보 정책에 대한 행정명령을 발표하여 사이버 복원력(cyber resilience)을 강조하였다. 이 행정명령에는 연방정부의 역할은 최소화하고, 지방과 민간의 자율성은 확대하는 등과 관련된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적 기조를 주 내용으로 담았다. 이러한 양상은 사이버 안보 전략과 관련해서는 미국내에서 공화당과 민주당 간의 초당적 공감대가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4) 사이버 안보 전략 추진체계의 변화 둘째, 트럼프 행정부에서 단행한 사이버 안보 추진체계의 변화, 특히 ‘사이버 보안 및 인프라 보안국(CISA)’의 권한 및 활동 범위를 축소한 조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사이버 안보 업무에서 정부의 개입을 줄이고 민간 부문의 자율성을 높이려는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런데 CISA의 축소에 대한 논의의 이면에는 미국의 정치적 상황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2020년 대선 당시 CISA의 수장이었던 크리스 크렙스(Chris Krebs) 국장이 트럼프 행정부의 부정선거 주장을 반박하면서 보수 진영을 비판하여 정치적 논란에 휘말린 바 있다. 당시 CISA의 임무가 선거보안 관련 허위조작정보 대응으로 확장되었는데, 트럼프는 이를 정치적 임무로 비판하며 축소할 것을 주장했다. 트럼프는 ‘진보세력’이 CISA를 장악하여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이러한 논란은 CISA의 활동 범위 축소에 영향을 미쳤는데, CISA의 사이버 안보 업무에서 허위조작정보 관련 업무가 분리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사한 맥락에서 2025년 1월 22일 CISA가 관리하던 자문기구인 사이버 안전 검토위원회(CSRB) 위원 전원을 해임하였는데, 그 위원 중에 크리스 크렙스 전 국장도 포함되어 있었다. 2025년 5월에는 CISA의 2026년도 예산을 약 5억 달러 감축할 것을 제안했으며, 1,300명을 감원하는 계획의 추진을 밝히기도 했다. 사이버 안보 분야 규제완화와 민관협력 셋째,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기조는 규제 완화를 통한 시장 활성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사이버 안보 분야에서도 정책의 권한과 책임을 분산시키고, 규제를 완화하는 정책을 도입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언급한 2025년 3월 19일 행정명령은 사이버 안보 정책 추진과 관련하여 연방정부의 역할을 최소화하고, 주정부의 자율성을 확대하며, 사이버 안보에 대한 민간 기업의 책임 완화를 강조하고 있다. 구글, MS, 아마존, 메타 등 빅테크 기업들의 신속한 혁신 유도를 강조하되, 기업의 자율적인 보안 책임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민간 기업과 정부 기관과의 협력을 촉진하고 연방정부의 직접적 감독과 같은 개입은 최소화하려 한다. 2024년 4월 미 사이버사령부가 발표한 「사이버 공간 우위 달성 및 유지」(Achieve and Maintain Cyberspace Superiority)라는 새로운 비전에서도 민간 부문과의 파트너십 강화 의지를 드러냈다. 이러한 상황 전개는 한국 기업들이 미국 시장에서 활동하거나 미국 기업들과 협력 할 때, 사이버 위협 정보를 공유하고 공동 대응하는 데 있어 더욱 적극적인 역할을 요구받을 수 있음을 예견케 한다. 다시 말해 한국 기업들에 혁신의 기회와 강력한 자체 보안 역량 확보라는 도전을 동시에 안겨줄 가능성이 있다. 대중국 견제의 기조 유지 끝으로, 트럼프 2기의 사이버 안보 전략은 미중 디지털 패권경쟁의 전개에 대해 적극 대응하는 방향으로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과의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기술혁신과 규제완화, 국가안보 목표를 중심으로 사이버 안보 전략의 강화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대중국 사이버 전략의 초점은 기술적·물리적 인프라 보호에 맞춰질 가능성이 있다. 미중 첨단기술 경쟁에서의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기술통제 목적의 사이버 안보 담론 개발 및 관련 대응책 강화에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미국이 중국에 집중하면서 러시아 등의 사이버 안보 위협에 대한 대응은 상대적으로 약화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2025년 3월 3일, 피트 헤그세스(Pete Hegseth) 미 국방장관은 러시아에 대한 사이버 공격 작전 중단을 명령했다. 마이클 왈츠(Michael Waltz) 전 미 국가안보보좌관도 사이버 위협국으로 러시아는 언급하지 않고, 중국과 이란만 언급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 기조 아래 자국 빅테크 기업들 중심의 사이버 안보 전략을 노골적으로 추구하는 양상이 전개될 것으로 예견된다. 이러한 사이버 안보 분야의 행보는 트럼프의 기술·경제 노선이 취하고 있는 경향을 반영하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사이버 복합 넥서스’의 전개 트럼프 2기 미국은 자국의 경제적 영향력 유지라고 하는 큰 목표 아래 사이버 안보 수단을 적극 활용하리라는 점에서 이전의 바이든 행정부와의 연속성이 발견된다. 그러나 트럼프 2기의 전략은 좁은 의미의 사이버 안보를 넘어서 다양한 이슈들이 연계되어 넥서스를 이루는 맥락에서 여러 가지 차이를 드러낼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좁은 의미의 사이버 안보와 확장된 사이버 안보 넥서스를 연계하는, 이른바 ‘성동격서(聲東擊西)’를 연상케 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현란한 전략 구사가 불확실한 변수로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 구체적으로 주목해야 할 ‘사이버 복합 넥서스’의 사례로서 다음과 같은 여덟 가지 이슈를 제시하고자 한다. 사이버 안보와 인지전 첫째, ‘사이버 복합 넥서스’ 중에서 트럼프 2기를 맞아 제일 많이 주목받을 이슈 중의 하나는 ‘사이버-AI-인지전 넥서스’일 듯하다. 생성형 AI를 활용한 사이버 공격에 대한 논의가 큰 쟁점이고, AI가 수행하는 사이버 영향력 공작 또는 인지전(cognitive warfare)도 논란거리이다. 특히 거대언어모델(LLM)의 활용 문제가 부상했는데, 최근 발생한 중국발 ‘딥시크 쇼크’로 인해서 생성형 AI가 데이터 유출, 인지전 위협 등 사이버 안보 문제에 미치는 영향이 정책적 차원에서 큰 관심거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미국을 포함한 해외 정부들이 이 문제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고, 최근에는 개인정보 유출과 인지전 위협을 우려해서 미국 텍사스주 등 에서 딥시크에 대한 금지 조치를 내리고 있다. 트럼프 2기에도 딥시크 등 중국산 AI 모델의 사이버·데이터 안보 문제에 대한 논란이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취임 이후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는 이러한 ‘사이버-AI-인지전 넥서스’의 부상 트렌드와 모순되는 다소 역행적 경향을 보이고 있는데, 이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CISA의 조직 축소와 예산 및 인력 감축 등의 행보에서 보는 바와 같이, ‘표현의 자유 침해’를 거론하며 허위조작정보 대응을 경시하는 경향이 드러나고 있다. 인지전 인프라를 사이버 안보 영역에서 명시적으로 제외하고, 사이버 공격으로부터 기술 인프라를 보호하는 데 초점을 두는 경향이 드러나고 있다. 중국의 허위정보공작에 대응하는 기관과 예산은 폐지 또는 축소되었는데, 미 국무부의 해외정보조작 및 개입 대응 조직(The Counter Foreign Information Manipulation and Interference, R/FIMI)이 4월에 공식 폐지되기도 했다. 사이버 안보와 공급망 안보 둘째, 트럼프 2기에 주목할 이슈로는 ‘사이버-공급망 안보 넥서스’도 있다. 트럼프 1기에 제기된 대(對)중국 공급망 안보 갈등 이슈의 연장선에서 볼 때, 트럼프 2기에는 그야말로 ‘공급망 안보 이슈의 귀환’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미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다양한 아이템과 관련된 공급망 안보 문제가 제기된 바 있는데, 바이든 말기에 커넥티드카 또는 스마트카와 관련된 사이버·데이터 안보 논란이 부각된 바 있다. 또한 공급망 관련 사이버·데이터 안보 이슈와 관련하여 드론에 대한 규제 법안 논의가 재등장하였으며, AI 반도체 관련 수출통제 강화도 쟁점으로 등장했다. 사이버 안보 분야와 관련하여, 미국 정부가 부과하는 통상 압력의 속내를 알아야 한다. 미국 정부는 자국 빅테크 기업들이 해당국 기업들보다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자유로운 시장 경쟁을 옹호하는데, 이러한 경향은 사이버 안보 분야에도 투영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트럼프 정부가 자국 사이버 보안제품 적용 확대 차원에서 관세 카드를 활용할 ‘사이버-관세 넥서스’의 가능성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관세 인하와 타 이슈에서 상대국의 양보를 교환하는 거래적 접근이 득세하여, 자동차-반도체 분야의 관세 유예의 대가로 사이버·데이터 안보 분야의 양보를 요구할 가능성이다. 사이버 안보와 플랫폼 안보 셋째, 트럼프 2기에 주목받을 이슈로 ‘사이버-플랫폼 안보 넥서스’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최근 디지털 플랫폼 경제의 활성화에 영향을 받아 사이버 안보 이슈도 제품과 서비스에서 플랫폼으로 확장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그랬지만 트럼프 2기에도 이러한 추세는 계속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플랫폼 안보에서의 쟁점은 서비스 제공 과정에서 발생하는 개인정보 유출과 데이터 안보의 문제인데 최근 중국 플랫폼의 해외 진출, 특히 미국과 유럽 진출이 활발히 진행되면서 ‘안보화(securitization)’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동영상 플랫폼인 틱톡 금지이며,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테무 등 ‘차이나 커머스’의 개인정보유출 문제가 있다. 중국산 AI 모델인 딥시크를 둘러싸고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 문제가 제기될 것이며, 중국 AI 플랫폼 전반으로 확산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약간 결을 달리하지만, 이러한 플랫폼 안보는 트럼프 대통령이 강조하는 가상자산의 사이버 안보 문제로도 연계되어 쟁점화할 가능성이 있다. 다만 다른 이슈와는 달리 플랫폼 안보가 국민 생활 전반과 연계된 특징으로 인해서 조심스럽게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서슬이 퍼렇던 틱톡금지법 시행 문제도 트럼프 취임 직후 75일의 유예 조치를 내린 바 있다. 사이버 억지와 공세적 작전 넷째, ‘사이버 안보의 군사화’를 바탕으로 한 ‘사이버-국방 넥서스’의 부상이다. 러시아, 이란, 특히 중국에 대항하기 위한 공격적인 ‘사이버 억지(cyber deterrence)’에 대한 논의는 지속될 것이다. 사이버 공격에 대한 공격적 수단을 포함한 군사적·보복적 억지 중심으로 사이버 안보 전략의 무게중심이 이동할 가능성이 있다. 군사력을 중심으로 사이버 안보의 역량과 자원을 집중한다는 트럼프 2기의 기조는, 캐서린 서튼(Katherine E. Sutton) 국방부 사이버 정책 담당 차관보의 언급에서 드러났다. 서튼 차관보는 사이버 무기 사용 규정의 완화, 디지털 작전을 ‘전통적인 군사 활동’으로 규정한 국방 정책 법률의 완화 등을 지시했다. 또한 2025년 5월 상원 군사위원회에 출석해서는 신속한 사이버 대응태세, 특히 AI 기반 공격에 대한 대처를 강조했다. 한편, NSC 사이버 담당 선임국장 알렉세이 불라젤(Alexei Bulazel)도 공격적 사이버 전략을 제시했는데, 이른바 ‘공격의 갱신, 방어의 갱신(Updating offense, updating defense)’을 강조했다. 이렇게 국토방위와 군사적 대응이라는 측면에서 사이버 안보의 군사화 추세가 강화되는 트럼프 2기의 변화가 기존에 바이든 행정부에서 제기했던 ‘선제적 방어(defense forward)’와 얼마나 다를지가 관건이다.5) 이외에 조직개편 차원에서 ‘사이버군’을 독립군으로 창설하는 문제나 국가안보국(NSA)과 사이버사령부의 구조 변경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사이버전(戰)과 미래전 다섯째, 트럼프 2기에 들어 주목받을 이슈 중의 하나는 ‘사이버-미래전 복합 넥서스’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오프라인 전쟁과 결합한 사이버전에 대한 관심이 국내외에서 증대하였는데, ‘미래전 복합 넥서스’로서 ‘사이버전 복합 넥서스’에 관심이다. 그중에서 트럼프 1기에서 이미 문제 제기된 이슈라는 점에서 주목해야 할 것이 ‘우주 사이버 안보’ 이슈이다. 이는 어떠한 형태로건 트럼프 2기에 이슈로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는 이미 창설된 미 ‘우주군’의 작전 영역과 관련하여 사이버전의 위상 설정 논의가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또한 최근 국내외에서 큰 주목을 받는 것은 ‘사이버-AI-핵(nuclear) 넥서스’이다. 이는 트럼프 2기 미국의 사이버 안보 및 국방 전략과 관련하여 조만간 제기될 가능성이 있는 주제이다. 이른바 ‘확장억제’ 전략에 기반을 두고 수립된 대북 군사전략도 사이버·AI 환경에 맞추어 전환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전통적인 핵무기 이외에도 사이버·AI 기반 조기경보, 미사일 방어시스템 강화 등과 같이 사이버·AI 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형태의 억지 수단 도입이 고려 될 것이다. 사이버-AI-핵 넥서스의 부상에 대응하여 기존의 군사전략 개념을 새로이 설정하고 이를 지원하는 군사혁신을 추진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사이버 안보와 동맹·연대 여섯째, 바이든 시기의 ‘신뢰 기반 동맹관’을 넘어서 이른바 ‘거래적 동맹관’을 제시할 것으로 보이는 트럼프 2기 쟁점 중의 하나는 ‘사이버-동맹 넥서스’의 전환(transformation)이다. 다자외교보다는 양자외교를 강조하는 트럼프 외교에서 소다자 외교 프레임은 유지될 가능성이 있다. 대중국 대응에 집중한다는 측면에서 인태 지역 국가들과 미국 중심의 양자 및 소다자 사이버 안보협력은 트럼프가 보기에 ‘효율적인 프레임워크’이다. 그러나 이러한 소다자 협력에 참여하고 있는 다수 국가가 미국 우선주의와 동맹 경시로 직·간접적인 피해를 보고 있어서 향후 그 응집력이 유지될 것인지가 관건이다. 이러한 소다자 협력체 중에서 대표적 사례는 파이브아이즈(Five Eyes)이다. 최근 파이브 아이즈의 확장 논의(프랑스, 일본, 한국 등 참여)가 제기되었다. 그러나 최근 미국-캐나다 관계의 악화로 파이브아이즈의 틀 자체를 활용하기에는 난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 대신 파이브 아이즈 내의 오커스(AUKUS) 3국, 즉 미국, 영국, 호주 정보협력이 파이브 아이즈의 핵심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있다. 한편, 트럼프 취임 직후의 양상을 보면 트럼프 2기에도 중국을 견제하는 ‘쿼드(Quad) 안보협력체’는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취임식 다음 날 쿼드 외교장관 회의를 열었으며, 쿼드 정상회의 개최도 유력하게 전망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쿼드 플러스’에 한국이 참여하는 문제가 쟁점으로 제기될 가능성이 있는데, 좀 더 유력하게 거론되는 것은 한국이 오커스(AUKUS) 필라-II에 참여하는 문제가 쟁점이다. 오커스 필러-II는 6개 기술 분야(사이버, 인공지능, 양자 컴퓨터, 해저 기술, 극초음속 미사일, 전자전)와 2개 기능 분야(혁신, 정보공유)로 구성된다. 사이버 안보와 한미일 관계, 한미동맹 일곱째, 사이버 안보 분야의 동맹과 연대라는 시각에서 볼 때, 미일 관계, 한미일 관계, 한미 관계의 맥락에서 제기되는 사이버 안보 협력의 미래에 대한 전망도 큰 쟁점이다. 트럼프 취임 이전에도 ‘미일 사이버 동맹’의 지속되는 조짐이 드러나고 있는 가운데, 미국과 일본은 AI를 악용한 사이버 공격에 공동 대응하기 위한 연구 협력에 착수한다는 보도가 나왔다.6)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후인 2025년 2월 10일에 개최된 미일 정상회담에서도 양 정상은 “쿼드, 한·미·일, 미·일·호주, 미·일·필리핀 등의 다층적 협력을 강화할 예정”임을 강조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트럼프 2기에도 미국은 미일동맹과 한미일 안보 협력체제의 중국 견제 기능을 인정할 가능성이 있다. ‘한미 사이버 안보 동맹’의 미래도 관건이다. 한미 간 사이버 안보 영역에서는 2023년 4월 26일 체결된 「한-미 전략적 사이버 안보 협력 프레임워크」를 발전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에 근거한 협력체계로서 사이버 안보 고위급 회의체(Senior Steering Group)가 2023년부터 매년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바이든 시기 ‘한미 사이버 동맹’이 다소 ‘선언적 성격’을 띠었다면, 트럼프 2기 거래적 동맹관에 기반을 둔 ‘사이버 동맹’은 좀 더 구체적인 문제와연계될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이 한국에 대한 방위비 분담 추가 요구와 사이버 안보 동맹 이슈가 연계될 가능성이 우려된다. 사이버 안보와 국제질서의 미래 끝으로, ‘사이버-국제질서 넥서스’이다. 바이든 정부 시기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 구도로 중국과 러시아를 권위주의 축으로, 동맹 등 동지국가들과의 협력을 핵심 축으로 구분 짓던 가치와 규범 기반의 사이버 안보 외교는 약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바이든이 공들였던 ‘민주주의 정상회의’, ‘인터넷의 미래 선언’ 등은 중단될 가능성이 크다. 「랜섬웨어 대응 이니셔티브」(CRI: Counter Ransomware Initiative)’와 같은 다자적 틀에서 진행되던 사이버 국제협력도 경시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이 나토에서 탈퇴할 가능성도 언급되고 있는 상황에서 바이든 말기 나토-인태 협력 차원에서 진행된 사이버 안보 국제협력도 약화 될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IP-4(Indo-Pacific 4)’에서의 사이버 협력 및 방산 협력 등이 지속될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된다. 서방 진영 내 입장 차이가 명확하게 드러난 계기는 2025년 2월 10일 프랑스에서 열린 ‘AI 행동 정상회의(AI Action Summit)’였다. 미국은 정상회의에서 채택할 공동성명에 서명을 거부하였고, 영국도 미국과는 다른 이유에서 서명을 거부했다. 이러한 갈등 양상은 2월 14일에 열린 뮌헨안보회의에서의 J.D. 밴스(J.D. Vance) 미 부통령의 연설에도 이어졌다. 결국 트럼프 2기 서방 진영의 내부 결속 원리가 달라지는 ’질서 재편‘의 가능성마저도 엿보인다. 이는 사이버 안보 관련 국제규범이나 국제기구 활동의 약화 가능성을 전망케 한다. 이러한 행보가 낳을 국제질서의 변화는 어떤 모습을 보일지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결론 요컨대, 트럼프 2기 미국의 사이버 안보 전략은 연속성과 변화의 양상을 동시에 드러내며 전개될 것으로 전망된다. 기존 정부의 사이버 안보 관련 행정명령은 그대로 유지하며 이 분야에서의 초당적 대응 기조를 강조하는 가운데, 공급망 안보의 지속적 강조, 사이버 안보 추진체계의 재편, 민간 기업에 대한 규제 완화와 민관협력의 강조, 경제·군사안보 차원에서의 대중국 견제 기조 유지 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이 글이 강조한 ‘사이버 복합 넥서스’ 분야에서 나타나는 변화의 양상에 주목해야 한다. 특히 기존의 사이버 안보 영역을 넘어서 다양한 이슈들이 연계되는 상황에서 이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려는 트럼프의 정책 불확실성이 새로운 변화를 초래할 변수가 될 것이다. 사이버 안보 분야의 새로운 변화에 대응하는 중견국 한국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1) 김상배. 2016. “신흥안보와 메타 거버넌스: 새로운 안보 패러다임의 이론적 이해.” 『한국정치학회보』 50(1), pp.75-102. 2) 김상배. 편. 2024. 『사이버 안보의 국제정치학』, 사회평론. 3) White House, 2025. “Executive Order on Strengthening and Promoting Innovation in the Nation’s Cybersecurity,” January 16. 소프트웨어 구성표(SBOM) 제도는 공공조달 과정에서 소프트웨어의 구성요소, 개발 및 취득 과정, 그리고 운영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도록 하는 정책으로, 바이든 행정부가 2021년 5월 12일에 발표한 행정명령 14028호(“Improving the Nation's Cybersecurity”)에서 처음 도입되었으며, 이번 행정명령은 이를 보다 강화하여 적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4) White House. 2025. “Executive Order on Achieving Efficiency Through State and Local Preparedness.” March 18. 5) 선제적 방어개념은 “악의적 사이버 활동과 그 원천을 방해 또는 중지하기 위해 무력분쟁(armed conflict) 수준 이하의 행동까지 수행”하겠다는 전략을 의미하며, 바이든 행정부가 2018년 9월에 발표한 국방사이버전략(DOD Cyber Strategy)부터 등장하여 네트워크에 대한 방어에 집중해왔던 기존 사이버 전략으로부터의 전환을 상징한다. 오일석. 2022. “바이든 정부의 사이버안보 정책과 시사점: 사이버 억지를 중심으로.” 『INSS 연구보고서』 2022-13호. p. 43. 6) 박상현. 2025. “미일, AI 악용한 사이버 고엮 공동 연구.” 『연합뉴스』. 1월 2일.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기획자: 강영훈 제주평화연구원 원장, 편집 : 제주평화연구원 이혜진 연구원 김상배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교 외교학 석사를 취득하고 미국 인디애나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를 취득하였다. 서울대학교 국제문제연구소장을 역임하고 현재 서울대학교 미래전연구센터장을 맡고 있다. 학회 활동으로는 한국국제정치학회장, 한국사이버안보학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정보세계정치학회장을 맡고 있다. ‘디지털 기술의 국제정치와 국가전략’에 대한 연구와 강의를 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미중 디지털 패권경쟁: 기술-안보-권력의 복합지정학』 (한울, 2022), 『버추얼 창과 그물망 방패: 사이버 안보의 세계정치와 한국』 (한울,2018), 『아라크네의 국제정치학: 네트워크 세계정치이론의 도전』 (한울, 2014), 『정보혁명과 권력변환: 네트워크 정치학의 시각』 (한울, 2010), 『정보화시대의 표준경쟁: 윈텔리즘과 일본의 컴퓨터산업』 (한울, 2007) 외에 다수의 편저서 및 공저서가 있다.
  • [JPI PeaceNet] 중국의 해양군사전략에 대한 국제법적 평가
    저자
    이용일 (前 주코트디부아르 대사)
    발간호
    2025-5
    [기획자 註]  중국은 증강된 군사력을 주변해역을 중심으로 투사하고 초강대국으로서 당연히 가져야 할 해양군사력을 공세적으로 구축해 나가고 있다. 특히, 최근 중국의 외교전략이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정치·경제는 물론 과학기술·경제·법률·심리 등 다양한 영역과 연계하여 전개되는 초한전(超限战)의 형태를 띄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중국의 해양군사전략을 군사적 관점에서 뿐만 아니라 국제법적 관점에서도 평가하고 대응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기획: 강영훈 원장(yhkang@jpi.or.kr)]. 중국의 군사적 굴기가 역내는 물론, 국제사회의 관심과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근년 들어 중국의 해군력의 신장은 괄목할만한 것이어서 특히, 건함 속도 및 규모에서 미국 등 서방권을압도하고 있는 지경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중국에 의한 주변 해양 및 원양으로의 군사력 투사가 주는 전략적 함의를 생각하게 한다. 해양이라는 지리적 공간은 수상ㆍ수중 및 상부공역의 입체적 점유, 이용 및 지배, 무역 및 수송을 위한 교통, 자원을 포함한 경제적 개발과 활용 등 그 사용이 무궁무진하여 오히려 육상보다 더 가치가 높은 곳이라 볼 수 있다. 바다로부터 소외된 내륙국들이 겪는 심각한 어려움을 본다면 해양이라는 곳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 수 있다. 해양을 확보하고 지배하기 위해 국가들은 군사력이라는 폭력을 사용하여 왔고 이와 관련한 군사전략과 군사교리를 발전시켜 적용해왔다. 중국은 해양군사전략의 측면에서 보면 사회주의 국가 수립 직후 취약한 해군력으로 인하여 수세적인 전략을 실행해 왔었으나, 개혁개방 이후 현격하게 발전된 경제력에 힘입어 본격적으로 증강된 군사력을 주변해역을 중심으로 투사하고 초강대국으로서 당연히 가져야 할 해양군사력을 공세적으로 구축해 나가고 있다.  ------------------------ · ------------------------ 우리나라는 중국에 있어 소위 일의대수(一衣帶水)의 최인접국인 관계로 중국의 해양군사전략이 국방의 측면을 넘어 심대한 의미와 영향을 가진다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중국은 핵전력 등 비대칭 전력과 공군력을 제외하더라도 이미 양적으로 수상함과 잠수함을 주축으로 하는 해군력에서 우리나라를 3-4배의 규모로 압도한다. 중국은 미증유의 초강대국 미국과 사실상 건함 경쟁에 돌입할 수준에 있기 때문에 우리가 군사적 측면에서 타개책을 모색하는 것은 일정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중국의 해양군사력 및 그 사용과 관련하여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는 국제법규범을 가지고 평가해 보고 가능한 제어 가능성을 모색해 보는 것도 유용할 것이라고 본다. 바다의 헌장으로 불리는 유엔해양법협약(United Nations Convention on the Law of the Sea: 이하 UNCLOS)은 1982년 유엔을 통하여 지구상 모든 국가가 참여한 협상에서 최종 성안되기까지 숱한 이슈들이 제기되고 반영되었다. 그 가운데 특히, 군함의 영해무해통항, 군함 및 군용기의 국제해협 통항 방식, 배타적경제수역(Exclusive Economic Zone: EEZ)과 외국의 군사활동의 관계 등 해양의 군사적 이용과 관련한 여러 문제가 제기되고 협상되었다. 당시 초강대국 미국과 소련을 위시해 국제사회에 거인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중국 등 강대국의 주요 관심은 이 보편적 해양법규범이 자국의 해양군사전략과 실행에 어떠한 함의와 제약을 가져올지에 집중되었고 이를 조정하는데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 협상하였다. 그 결과, 비록 해양군사활동 관련 규율에 있어서는 다소 모호하고 공백도 있지만 오늘날 국제사회의 보편적 법규범으로 수립되어 적용되고 있다.1) 해양의 군사적 측면에 관한 국제사회의 기본적인 법적 판단이 반영된 UNCLOS를 중심으로 국제법 원칙에 입각하여 중국이 견지하는 해양군사전략을 비판적으로 평가해 보는 것은 자뭇 의미가 있다고 본다. 대략적으로 중국의 해양군사전략을 말하자면, 먼저 일대일로(Belt and Road Initiative, BRI) 개척의 명분으로 아프리카 지부티 등에 원해 해군군사기지를 설치하는 것과 같은 원양 해군전략을 주목할 만하다. 또한 기본적으로 발해만, 서해 및 동중국해, 남중국해로 이어지는 주변해역의 적극방어 전략을 갖고 해군력을 전폭적으로 강화하면서, 그 일환으로 미국의 서태평양 진출을 차단/거부하기 위해 중국이 실행하고 있는 소위 반접근/지역거부(A2/AD) 전략2)이 두드러진다. 이와 관련하여 중국의 근해로 볼 수 있는 대만 해역 봉쇄 및 침공, 서해 및 동중국해의 내해화 전략, 동남아 역내국들과 분쟁 중인 남중국해의 군사화를 추진하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이러한 기본전략 하에 하나의 해양군사교리로서 자국 근해를 중심으로 미국 및 그 동맹국의 군사력 진입을 차단하려는 소위 도련선(island chain)을 설정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는 중국의 근해 적극방어 전략에 따라 설정된 해상방위선으로 일본열도와 대만 외곽 해상을 거쳐 필리핀 근해와 남중국해를 감싸면서 말래카 해협에 이르는 제1도련선과 그 외곽의 광대한 서태평양 해역을 대상으로 제2ㆍ3도련선이 설정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의 해양 관련 핵심이익을 수호하기 위한 최종선으로서 제1도련선은 당연히 대만이 그 속에 포함 되어 있으며, 우리나라도 일본의 좌측에 있는 사정으로 우리 영해와 EEZ가 속한 한반도 주변 해역이 그 속에 포함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중국의 공간전략을 중심으로 서해, 대만 등 동중국해 및 남중국해에 대한 중국의 해양군사전략을 해양법을 포함한 국제법 원칙에 의거하여 살펴본다면 상당한 문제점을 노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 ------------------------ 사실 군사전략과 국제법은 상호 그렇게 친한 관계가 아니다. 군사문제와 관련하여 군비축소를 국제조약으로 규정하거나, 침략행위 등 평화에 반한 국제범죄를 국제사법기관을 통하여 단죄하고, 무력충돌시 교전행위를 국제인도법에 따라 규율하고 있지만, 무력행사에 이르지 아니한 군사전략에 대한 국제법의 적용은 다소 생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군사전략과 그에 입각한 군사교리는 무력충돌시 나타날 수 있는 적대행위(hostilities)의 예비이기 때문에 그러한 전략이 국제법상 어떤 법적 의미를 지니며 타당한지 여부를 평가할 수 있다. 또한 군사전략과 그 전략을 유지, 발전시키기 위한 조치와 상황이 타국의 국제법상 권리와 이익을 침해한다면 당연히 국제법상의 평가 대상이 되는데 문제가 없다. 비록 미국의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도래하면서 국가간 관계를 합리적으로 규정하고 조정하여야 하는 국제법의 무력성이 드러나고 있다는 지적이 있지만, 여전히 국제법은 국제관계에 관한 담론을 지배하는 메타담론의 핵심이라 믿는다. 오늘날 가장 영향력 있는 국제정치학설 중의 하나인 구성주의 이론에 의하면, 가장 중요한 국제관계의 동인인 국가이익과 정체성이라는 요소는 항상 변증법적 규정을 받아 변화, 발전한다고 보며, 국제법은 그 총체성과 구체성의 타당성을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고 보아야 한다. 이를테면 주권, 영토 등 국가의 기본요소, 나아가 영해, EEZ, 대륙붕 등과 같은 국가의 해양 관련 기본 범주적 개념과 형성은 국제법이 부여하는 것이고, 해양에 관련되는 제 개념과 권익도 국제법이 없이는 설명될 수 없다. 독특하게도 사회주의 국가 중국은 국제사회에서 해양권익과 관련하여 국제법 규범을 과도하게 자기에게 유리하게 주장하는 국가 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3) 국제법상 인정되는 해양권익을 확보하기 위한 군사전략도 자국 중심의 국제법 해석과 적용에 결부되어 있는 것이다. 현재 중국이 견지하고 있는 해양군사전략은 당연히 보편타당한 국제법의 원리에 따라 그 정당성 여부에 관해 비판 받을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중국이 해양에 대한 자국의 군사적 전략이 추구하는 목표, 방법 및 실행이 당연히 국제법에 의해 타당하게 설명되어야 하며 그릇된 측면이 있다면 조정되어야 할 것이다. ------------------------ · ------------------------ 먼저 살펴볼 것은 중국의 서해 및 동중국해의 내해화(內海化) 전략이다. 해양군사전략가들이 지적하는 중국의 내해화 전략에서 말하는 ‘내해’는 정확한 국제법상의 용어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4) 이와 유사한 국제법상 개념으로는 ‘내수’(內水, internal waters)가 있다. 내수는 영해보다도 더 연안국의 주권이 적용되는 곳으로 거의 영토와 동일시되는 영해 내측의 만(灣)이나 항구 주변과 같은 해역을 말한다. 아마도 ‘내해화’라고 할 때 마치 내수와 같이 중국이 일방적으로 지배하는 해역이 되는 것을 말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법규범적 의미보다는 사실력인 군사력을 바탕으로 중국이 타국의 권익에 우선하여 지배 전유(專有) 한다는 뜻으로도 볼 수 있다. 군사적 측면에서, 지배를 말하는 것으로 이해되지만 서해와 동중국해는 한국과 일본의 주권적 권리와 관할권이 미치는 수역이어서 거의 공해(公海)가 없다. 특히, 준국가적 실체인 대만이 위치하는 곳이므로 단순하게 볼 수 만은 없는 곳이다. 이러한 내해화 전략의 공간적 한계선은 현재로선 상기한 제1도련선으로 볼 수 있다. 과연 중국의 이러한 군사적 성격의 폐쇄해를 유지하는 것이 어떤 법적 함의를 가지는 것일까? ------------------------ · ------------------------ 사실 ‘아일랜드 체인(Island chain)’ 전략이라고 하는 도련선 개념은 일찍이 한국전쟁 당시 미국에 의해 소련과 중국의 봉쇄를 염두에 두고 설정된 것으로 쿠릴열도, 대만, 북부필리핀 및 보르네오해로 연결되는 전략방어선으로 설계된 것이라고 한다.5) 중국은 이러한 미국의 해양 포위전략을 돌파하기 위한 전략으로 도련선을 역으로 원용하여 재편성하게 되는데, 1982년 당시 류화칭(柳華淸) 중국 해군사령관이 이를 공식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2 및 3 도련선은 아직 현실화가 이루어지지 아니한 채 제1도련선은 중국의 절대 해상방어선으로 미국 및 동맹국의 군사력 투사와 진입을 저지하기 위한 공간적 한계선으로 설정되어 운용되고 있는 것이다. ------------------------ · ------------------------ 역사적으로 보면 해양을 나누어 열강의 이익 내지 영향력을 구획하는 행태는 종종 목격되곤 하였다. 예를 들면 1494년 스페인과 포르투갈 간에 체결된 토르데시야스(Tordesillas)조약은 대서양에 그어진 선으로 당시 제국주의 선두주자였던 두 국가 간에 거의 비유럽권 세계를 양분하는 해양이익선으로 유명하다. 현대에 들어와서도 동서냉전의 사례에서 보듯 영향권(sphere of influence)라고 하여 공간적 분할을 추구한 바가 있었다. 중국이 추구하는 제3도련선은 하와 이제도 근처에 선을 그어 미국과 태평양을 반분하겠다는 야심을 드러내는 것으로 영향권이나 세력권을 형성하려는 발로로 보이나, 현행 국제법의 시각에서 보면 세력권을 나눠 특정 국가를 특정 지역의 지배적 국가로 인정하는 행위는 유엔헌장에서 금하는 제3국의 정치적 독립을 침해하는 행태로서 정당하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제1도련선은 이와 달리 절대사수의 군사적 해양구획선으로 볼 수 있다.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 한국전쟁, 월남전, 포클랜드전쟁, 걸프전쟁을 거치면서 관계국들은 여러 형태의 전쟁수역(war zone)과 같은 군사적 목적의 수역을 다양한 형태로 설정하여 사용한 바가 있다. 해상봉쇄 등 군사적 성격의 수역에 관하여 1909년 해전에 관한 런던 선언6)(London Declaration concerning the Laws of Naval War) 이래 1994년 산레모 지침(San Remo Manual on International Law Applicable to Armed Conflicts at Sea)7)에 이르기까지 국제법규범으로 규칙화하는 노력이 이루어져 왔지만 포괄적이고 명확한 원칙이 성립되었다고는 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따라서 중국의 도련선 설정 자체가 허용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 운용과 관련해서는 국제법적 관점에서 비판할 수 있다고 본다. ------------------------ · ------------------------ 중국의 제1도련선은 법적으로 표현한다면 일종의 정지조건부 전쟁수역, 작전수역 등의 성격을 가지는 군사수역이다. 만약 중국이 미국 등과 해상 적대상태에 돌입한다면, 이 수역은 바로 중국의 최종 군사방어선이자 작전구역으로서 적대국은 물론 제3국의 항해 및 비행을 통제하는 구역으로 변모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 주변 수역에는 중국이 예전에 발해만과 양자강 어귀에 군사수역을 유지한 바가 있으며, 북한도 자신의 연안 50해리에 군사경계수역을 설정하여 외국의 통항을 제한하고 있는 등 군사적 성격을 갖는 수역이 낯선 것은 아니다. 상기한 런던 선언이나 산레모 지침 등 국제규범의 관점에서 보면 군사적 성격의 수역의 설정 및 운용은 기본적으로 군사적 필요성 및 비례성의 원칙을 준수해야 하며 비적대국의 항행, 안전 등 권익을 침해하지 않아야 한다. 오늘날 UNCLOS 체제 하에 200해리 EEZ가 일반화된 시대에 있어서 완전한 항행의 자유를 향유하는 공해는 좁아진 가운데 대략적으로 보아도 중국이 설정한 제1도련선내 해역은 동아시아 각국의 영해와 EEZ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주변국들의 권익 즉, 그 주권, 관할권, 항행 등 이용, 자원 및 환경에 대한 침해, 방해 및 위협은 용납되기 어려울 것이다. 예를 들어 중국이 유사시 제1도련선을 침파하는 미항모부대에 대해 전술핵을 탑재한 DF-21 미사일 등을 사용하는 경우에 광범위하게 자원과 환경에 대한 영구적이고 치명적이며 무분별한 피해를 야기 할 것이다.8) 따라서 대량파괴무기에 기반한 전략과 군사교리는 해역의 특성상 허용될 수 없다고 본다. 이 원칙은 교전상태에서만이 아니라 평시에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미 남중국해 및 대만주변 해역에서 미중 양국의 해공군은 군사적 대치상태를 빚고 있는 가운데 법률상 적대상태의 발생여부와 관계없이 중국과 미국은 사실상 해상 적대상태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9) 전쟁을 부인하는 오늘날의 국제법은 평시/전시라는 고전적 방식의 이분법적 구별로 적용법규를 달리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현재에도 중국은 타국의 권익을 침해하거나 위협하는 방식으로 도련선을 운용할 수 없으며 당연히 그 도련선 선 및 내부 수역에 대한 , 여하한 국제법상 권원(title)도 인정되지 않으므로 그 내외의 통제가 달라서는 아니 된다. 따라서 제1도련선으로 설정되는 수역에 대해 중국에게 권원이 인정되는 수역을 제외하고서는 어떤 우월한 법률적, 군사적 권익도 부여할 수 없으며, 타국의 권익을 침해해서 안되는 것은 분명하다. ------------------------ · ------------------------ 중국의 제1도련선에서 키 포인트는 대만이다. 사실상 본토 중국과 분리되어 자치를 향유하는 대만은 이 도련선의 소위 '부족한 연결고리(missing link)'이다. 이를 완성하기 위해 중국은 대만을 합병하기를 원한다. 2030년까지 무력침공으로 합병하겠다는 중국의 시나리오가 운위되고 있다. 중국이 대만에 대해 무력을 사용하거나 이미 수차 실행된 바 있는 대만 해역을 포위하는 군사훈련과 같은 무력위협은 국제법상 문제가 없는 것일까? 대만은 일제로부터 해방 이후 중화인민공화국의 실효적 지배를 받은 바 없이 현재까지 고도의 자치와 번영을 누리고 있는 정치적 실체임이 분명하다. 대만의 국제법상 지위는 국제사회 다수 국가들이 중국의 일부로 인정하기 때문에 비록 일부 소수 국가가 외교관계를 맺고 있지만 독립된 국가로 인정되지 않는다고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국제사회에는 그 누구도 특정 정치적 실체의 지위를 일의적이고 보편적으로 결정할 중앙기구가 없다. 1971년 중국 대표권 문제로 유엔총회 결의로 중화인민공화국 정부가 대만 당국을 대체했지만 이것은 유엔 내부의 문제를 다룬 것이지 유엔이 전체 국제사회를 대표해 대만의 국가성 여부를 결정한 것은 아니다. 즉 국가성의 문제는 국가별로 상대적인 것으로 각국은 이 문제에 관한 재량권을 가진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중국과 대다수 국가는 ‘하나의 중국’ 원칙이나 정책에 따라 대만을 중국의 일부로 보기 때문에 형식상으로는 대체로 중국 지방 정부의 수준으로 고려되는 것으로 보인다. 대만이 중국의 일부로 합류하든, 아니면 분리독립을 하든, 그것은 일차적으로 대만 주민들의 정치적 미래에 관한 것으로 국제법상으로 자결권의 문제로 볼 수 있다. 국제법과 국제정치의 논리상으로 자결권의 행사가 국가의 영토적 일체성을 침해하지 못한다는 것이 대체로 인정되고 있기 때문에 대만과 같이 일정한 정치적 단위의 주민들이 자결권을 가진다고 별도 국가로 분리해 나갈 수 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자결권은 대만 주민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 기본적 인권10)이므로 이를 억압하거나 그 행사를 방해하는 무력 사용이나 위협은 허용된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중국에 의한 대만 무력사용과 이와 관련된 해양군사전략은 일정 정도 제약된다고 보아야 한다. 도리어 군사력을 사용해 기본적 인권을 침해하고 대만 주민들의 자유로운 의사를 억압하며 그들의 사회경제적 기반을 파괴한다면, 중국정부가 엄청나게 반발하겠지만, 이것이야 말로 대만이 분리독립할 수 있는 합법적 이유를 구성해 줄 소지가 있는 것이다. ------------------------ · ------------------------ 중국의 핵심이익으로 지목된 남중국해 상황은 미중간 군사적 대치, 영유권 및 도서군의 지위 등 법률문제, 역내 국가들의 권익이 엉킨 곳으로 복잡다단하다. 2016년에 국제중재재판정이 일차적으로 상당한 법률문제를 정리했음에도 중국은 이 판정을 원천적으로 부인하고 변함없이 자신이 주장하는 남중국해 관련 권익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11) 중국은 자신이 점유하고 있는 암초나 모래톱에 인공섬을 건설하고 활주로를 닦으며 미사일 등 각종 무기와 군사시설 및 군부대를 배치하는 군사기지화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남중국해를 작전구역으로 삼아 접근을 통제하고 나아가 유사시 적대국의 군사력이 진입하는 것을 방지하려는 구상을 실현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EEZ의 관할권을 확대해석하는데 특히, UNCLOS 제88조의 EEZ의 평화적 목적의 이용이라는 규정에 의거해 남중국해는 물론 대만해협상 중국의 EEZ에 대한 미군의 초계, 정찰 및 훈련 등 군사활동이 허용되지 아니한다는 주장을 제기해 오고 있다. 한편, 중국 영해관계법은 외국군함이 중국 영해를 무해통항하기 위해서는 사전허가를 받을 것을 요구하는 등 외국 군사력의 자국 연안 접근을 법률제도상으로도 제한하려 한다. 당연히 미국은 중국의 반발에도 EEZ를 항행의 자유를 누리는 국제수역으로 간주해 EEZ내 군용기 및 군함의 작전을 제한하려는 중국의 주장을 무시하며 항행하고 있으며, 또한 항행의 자유 작전을 통해 남중국해 중국 점유 도서에 설정된 영해 내를 사전허가 없이 통과하여 중국의 주장을 부인하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마치 근세 들어 해양의 이용에 관한 기본적 관점의 대립으로 나타난 국제법의 비조 그로티우스(H. Grotius)의 ‘자유해론’(Mare liberum)과 셀덴(J. Selden)의 ‘폐쇄해론’(Mare Clausum)이 개방되고 자유로운 해양질서를 선호하는 미국과 자국 연근해를 외국세력으로부터 차단하려는 중국의 입장으로 각각 재현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대립은 EEZ내 외국군사 활동의 제한 여부에 관한 UNCLOS 규정의 모호함에 따른 해석과 적용의 차이에서 빚어지는 측면도 간과할 수 없지만, 연안국의 주권적 권리와 관할권을 확대하여 과도하게 주장하는 중국의 태도도 문제가 없지 않아 보인다. ------------------------ · ------------------------ 그러면 남중국해에서 중국이 취한 군사적 성격의 조치들이 국제법상 정당화될 수 있을지 살펴보자. 중국은 스프래틀리(Spratly, 중국명 ‘난사’) 군도 등 주변국과 영유권 분쟁 중인 도서를 점령하여 매립과 인공섬 조성을 통해 군사기지를 건설하고 미사일, 공군력 배치 등 장거리 군사력 투사를 완비하는 조치를 진행 중이다. 군사적 목적은 차치하더라도 영유권 분쟁이 진행 중이며, 구속력 있는 국제중재재판에서 그 권원 주장의 근거가 부인된 도서군의 형상을 회복할 수 없는 지경으로 변경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따라 평가하면 중국이 이런 방식으로 스프래틀리 군도를 군사화하는 행태는 국제법상으로 정당화되기 어렵다고 볼 수 있다.12) 타국의 권익을 존중하고 해양환경을 보존하는 적법한 방향으로 전향되어야 할 것이다. 나아가 EEZ에 대한 외국 군함 및 군용기의 활동에 대해서도 UNCLOS가 항행에 관한 한 공해 자유의 원칙을 EEZ에서 인정하고 있는 점에 비추어, 이러한 활동이 EEZ의 자원 및 환경에 대한 주권적 권리와 관할권을 침해하지 않는 한도에서는 인정되는 것이 합리적이라 볼 수 있다. 다만, 군함의 영해무해통항에 관해 상당수 국가들은 사전허가 내지 사전통보제를 통해 제약을 가하고 있고 국제사회의 관행이 일치되는 것이 아니기 떄문에 반드시 중국의 입장이 틀리다고 볼 수 없다.13) 다만, 대양해군화에 따라 중국이 타국의 EEZ를 불가피하게 이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중국의 입장은 자가당착에 직면하게 되어 조만간 슬그머니 미국 등 서방국과 유사하게 변할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본다.  ------------------------ · ------------------------ 중국은 소위 ‘법률전’(lawfare)14)의 방식으로 자국의 해양권익을 최대한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고 적용하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으며, 남중국해 분쟁 관련 중국의 행태는 그 대표적 사례가 되고 있다. 그들은 국제관계에서 국제법을 대체할 수 있는 그 어떤 가치판단 체계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그 유용성을 활용해 자신의 해양권익을 주장하고 확보하려 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상기 남중국해 중재재판에서 전면적으로 패배한 것은 중국에게는 엄청난 재앙이라고 볼 수 있다. 아무리 중국이 재판결과를 거부하더라도 이미 판결이 확정되어 국제법상 구속력이 발생했고, 이를 법률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뒤집을 수 있는 수단은 현재로선 가용치 않기 때문에, 중국은 법률전의 가장 중요한 일전에서 대패한 것이다. 이를 계속 거부한다면 중국은 정치외교적으로 상당한 대가를 지속적으로 지불해야 하는 운명이다. ------------------------ · ------------------------ 최근 한중어업협정상 잠정조치수역에 중국이 군사훈련 목적의 기한부 항행금지 수역을 지정했다는 언론보도가 나온 바 있다. 보도에 의하면 중국의 항행금지 수역은 서해에 있어서 한중 간 EEZ 가상중간선을 넘어 우리측 수역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이는 어업에 관한 한중협정의 문제를 넘어서는 사안으로 우리 EEZ의 잠재적 권익을 침해할 수 있는 것으로 인식하여 대처할 필요가 있다. 중국과의 관계에서 군사, 외교, 경제, 기술, 등 제 분야에서 열세에 처한 우리로서는 해양문제에 관해 정치하게 법률적으로 분석하여 정리된 입장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해양 관련 주권, 주권적 권리와 관할권을 침해하거나 그런 소지가 있는 군사활동은 제한되며, 주변 국제수역에서의 군사활동도 군사적 필요성과 항행안전 등 여타 법익을 형량하는 비례의 원칙에 입각해 제한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임해야 할 것이다. 다수의 상이한 법익이 교차하는 주변수역의 성격을 고려한다면, 중국의 해양군사전략을 위한 특별한 우월적 지위나 대우를 부여할 소지가 있는 여하한 시도도 국제법의 논리로 견제할 필요가 있다. 위에서 고찰 한 바와 같이, 중국의 해양군사전략의 내용을 보면 상당히 현행 국제법 규범과 상이하며, 타국의 합법적 권익을 침해할 소지를 배제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를 지양해 좀 더 국제법질서와 정합성을 가지는 방향으로 조정될 수 있도록 중국과의 관계에서나 국제사회에서 주도적으로 외교적 담론을 이끌어나가야 하겠다. ------------------------ · ------------------------ 무엇보다도 해양질서는 UNCLOS 제301조에서 설파한대로 해양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대의에 따라야 할 것이다. 군사적 갈등과 대치가 세계에서 가장 번영하는 동아시아의 해역을 지배하게 해서는 아니 된다. 우리 주변해역을 전장화하고 황폐화하는 군사전략은 다수 역내 국가의 생명선이자 권익이 촘촘하게 들어찬 동아시아 해역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역사적 에피소드로 영국 청교도혁명 당시 왕당파와 의회파 군대간 결전을 앞둔 지역의 농민들이 들고 일어나 농작물 피해가 발생하지 않는 곳으로 전장을 옮겼다는 이야기에서 보듯 미중 쟁패의 해상 격돌과 이를 전제로 한 군사 전략과 교리는 역내와 국제사회의 권익이 고밀도로 집중된 동아시아 해역에서는 비례의 원칙상 회피되어야 한다. 구시대의 유물인 정치ㆍ군사 조합주의자들의 무분별한 군사전략과 실행은 발붙일 곳이 좁아져야 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의 결과로 야기된 엄청난 피해와 법적 책임과 관련하여 전쟁을 지속하여 받을 수 있는 최대의 성과로 고작 피로스의 승리에 불과할 푸틴의 러시아는 어떻게 수습할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작금의 미중간 경쟁은 전쟁으로 패권국을 정한 고대나 근대와는 다른 방식으로 전개될 것이다. 이미 러·우전쟁에서 입증되었듯이 상호확증파괴와 비대칭적이거나 효율적인 신기술의 확산으로 전쟁은 정치적 문제 해결의 능력이 예전과 달리 상실되어 가고 있다. 번영의 바다를 불모의 죽은 바다로 만들 수 있는 그런 해양군사전략은 유엔헌장의 정신대로 현상의 평화적 변경 원칙, 그리고 바다의 헌장인 UNCLOS의 기본 정신인 해양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원칙에 양보해야 할 것이다.  1) UNCLOS 체제 하에서 영해폭 확대, EEZ 제도 신설, 대륙붕의 광역화 등 연안국 관할권의 대폭 확대에 따라 종래 넓은 공해에서 향유하던 군사활동을 포함한 항행의 자유가 공간적으로 축소, 제한되고 군사활동도 변화된 해양공간구조에 의해 연안국의 권익과 조화되는 방향으로 규율해야 하는 과제가 등장하게 되었다. 2) 중국은 유사시 적군의 서태평양 지역 진입을 저지하여 서태평양 지역의 이익을 지키는 군사교리로 적극 방어(Active Defense) 또는 반(反) 관여(Counter-Intervention)라고 부르는데, 미국의 군사학자들은 이를 반접근·지역거부(Anti-access/areal denial) 전략이라고 칭한다. 3) 소위 9단선이라고 지칭되는 구역도를 제시하여 남중국해 도서와 해역을 전유하려 시도하고, 자국 연안에 과도한 직선기선을 설정하며, 파라셀군도 등 도서군에 군도수역(archipelagic zone)을 설정하여 본토 외에 주권적 성격을 가지는 수역을 주장하고, 발해만을 폐쇄하여 자국의 내수(內水)로 삼는 등 행태를 보이고 있다. 이는 국제법규범이 인정하는 합리적 한계를 넘어서는 과도한 주장(excessive claim)이라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4) 예를 들면, 이은수, “중국의 서해 내해화 전략과 한국의 대응방안”, KIMS(한국해양전략연구소) Periscope 178호(2022.6.13.) 5) 미국측 도련선에도 여기서 언급된 제1도련선과 함께 서태평양 및 중부태평양을 가로지르는 제2, 3도련선을 두고 있었다. 이는 1953년 미국 국무장관 덜레스(J.F. Dulles)에 의해 입안된 것으로 알려졌다. 6) 이 선언은 조약형태로 채택되었지만, 미국, 영국, 일본 등 대부분 열강들이 서명했음에도 비준에 실패하여 발효하지 못했다. 해상포획의 범위에 관련된 영국, 일본 등의 불만이 그 실패의 원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해상봉쇄, 적화(敵貨), 중립 등 해전법규를 성문화한 공로가 인정된다. 7) 이 지침은 해상무력충돌에 적용되는 국제법에 관한 전문가 회의가 1988년 산레모에서 개최되어 논의된 결과, 해전규칙에 관한성문화된 형태로 채택되었다. 8) 국제사법재판소(ICJ)는 1996년 핵무기의 위법성 여부에 관한 권고적 의견에서 핵무기와 같은 무분별한 피해를 야기하는 무기의 사용이 금지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9) 미국은 중국의 남중국해에 대한 계속적인 전유(專有) 및 군사화 시도에 대해 대응조치로서 워싱턴의 지시에 따라 미해군은 항행의 자유작전(Freedom of Navigation Operations: FONOP)을 2015년부터 실시하여 왔다. 이에 앞서 2001.4.1. 미군정찰기와 중공군기가 해남도 부근에서 충돌하여 각각 불시착 및 추락하는 사건이 발생한 바 있다. 10) 자결권(right of self-determination)은 국제법상 보통 강행규범이 구비하는 대세적 효력을 가질 정도로 높은 수준의 법규범성을 구비한다고 1995년 국제사법재판소(ICJ)는 동티모르 사건을 통해 판시한 바 있다. 11) 2013년 필리핀이 UNCLOS의 강제분쟁해결절차에 따라 중국을 제소해 중재재판이 진행된 결과 중국이 점유한 도서의 지위 및 이와관련되는 주권적 권리 및 관할권의 범위와 한계에 관해 중국 측의 주장이 거부되는 방향으로 판정되었다. 12) 상기 남중국해 중재재판에서 중국의 인공섬 건설 등의 행위가 해양환경 관련 국제법규범을 위반한 것으로 판정한 바 있고, 1978년 국제사법재판소(ICJ)도 에게해 대륙붕 사건의 잠정조치 심리에서 분쟁 중인 해역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주는 행동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바 있다. 13) 우리나라는 영해법에서 외국 군함의 무해통항에 관해 사전통보제를 채택하고 있다. 14) 법률전은 전쟁의 무기로서 법의 사용으로 정의될 수 있다. 이는 전술적 이점과 정치․군사적 목표 달성을 위하여 국가 내지 비국가행위자가 법을 활용하는 다양한 관행과 기술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이 용어는 1975년 Carlson & Yeoman의 “Whither Goeth the Law - Humanity or Barbarity?"에서 처음 등장한 이래 Charles J. Dunlap 등에 의해 본격적으로 그 개념과 양상에 관한 연구가 발전되어 오고 있다.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기획자: 강영훈 제주평화연구원 원장, 편집 : 제주평화연구원 이혜진 연구원 이용일 (前 주코트디부아르 대사)  서울대학교 불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교 법학석사를 졸업하고 박사과정(국제법 전공)을 수료하고 캐나다 몬트리올대학교 법학박사과정을 수학하였다. 법제처 법제연구담당관으로 공직을 시작하여(1990), 이후 외무부로 옮겨 국제법규과 및 국제협약과에서 실무자로 근무하였으며 외교통상부 국제협약과장(2004-2006)과 세종특별자치시 국제관계대사(2020-2022)를 역임하였다. 주요 재외공관 근무경력으로 주태국대사관 참사관 주루마니아대사관 공사참사관 및 주오스트리아대사관 공사참사관으로 근무하였고, 재외공관장으로 주코트디부아르대사(부르키나파소 및 니제르 겸임)로 봉직하였다(2015-2019). 외교부 근무시 주로 해양법 등 국제법 외교 분야에 종사하였으며, 아주대(1992), 및 이화여대(2002)에서 국제법을, 고려대(2024)에서 국제기구론을 강의 한 바가 있다. 외교부 정년퇴직 이후 대한변호사협회 국제특보(2023-2024), 고려대강사, 외교부 외교사료전문위원을 역임하였고, 서울국제법연구원 부원장으로 재임중에 있다. 저서로 ‘국제조약의 국내 직접적용에 관한 연구’(2014), ‘분단과 통일의 법’(2020) 등이 있으며, 국제법 관련 논문 수 개가 있다.
  • [JPI PeaceNet] 유럽연합이 한반도에서 갖는 의미
    저자
    김형진 (서울대학교 국가미래전략원 객원연구원 / 前 주벨기에유럽연합 대사)
    발간호
    2025-4
    [기획자 註]  유럽연합이 국제정치에서 지닌 정치적 및 경제적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유럽연합은 전통적으로 한국외교에서 크게 부각되지 못해왔다. 하지만 트럼프 2기 행정부 하에서 이른바 ‘서방 진영’에 균열이 조금씩 발생하고, 국제사회의 파편화와 진영화가 빠르게 진행됨에 따라 한국의 대유럽 관계와 전략을 다시 살펴볼 필요성이 강하게 제기된다. 이에 본고는 오늘날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 유럽연합이 한국 외교에 지닌 의미를 살펴본다 [기획: 강영훈 원장(yhkang@jpi.or.kr)].  초록 세계가 시대의 전환을 맞이하고 있다. 미국을 단극으로 하는 탈냉전 시대는 끝났다. 국제사회의 파편화와 진영화가 동시에 진행된다. 세계에서 불안정과 불안이 확산되고 새로운 세계 질서가 모색 됨에 따라 생각을 함께 하는 국가 간 협력의 중요성이 커진다. ‘격변의 추축’ 간 협력, 특히 ‘악마의 거래'라고 하는 북한과 러시아의 협력은 우려 대상이다. 한.미.일과 북.중.러로 갈라지는 동북아의 신냉전 구도 형성 과정에서 한국과 유럽연합 간의 협력은 중요하다. 유럽연합은 모스크바-평양간 추축에 대응하기 위하여 한국과 파트너십을 강화하기를 원한다. 워싱턴에서 촉발된 불확실성이 계속되며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조정기를 갖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유럽연합은 한국을 최고의 파트너로 생각한다. 한국은 유럽연합과 정무, 경제, 안보 면에서 3대 협정을 체결한 최초국가이다. 한국은 아시아 국가 중 처음으로 유럽연합과 FTA를 체결하였다. 한국도 경제규모가 큰 상대와 처음으로 체결한 FTA이었다. 교역을 증진하고 성장과 일자리를 만들었다. 양측은 위기관리기본협정을 체결하여 유럽연합이 처음으로 실시한 해군작전인 아탈란타 작전에 함께 참여하면서 아프리카 소말리아 인근 해적퇴치를 위해 정례적으로 공동작전을 펼쳐왔다. 2024년 11월 4일 양측 외교장관간 전략대화도 출범되었다. 한국이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에서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 옮겨가면서 유럽연합의 ‘브뤼셀 효과(Brussels Effect)’와 상승 작용을 가질 수 있다. 한국이 추진하는 동심원 외교 전략에서 유럽연합은 미국에 이어 두 번째 동심원에 위치할 수 있다. 양측이 추구하는 가치에 공통점이 많고 국익이 서로 부합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는 국제 정세가 변환기를 통과하며 새로운 질서를 모색하는 때에 더욱 중요하다.  서론: 시대의 전환 올라프 숄츠 전 독일 총리는 세계가 시대의 전환을 맞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독일어 ‘자이텐벤데’(Zeitenwende)는 ‘시대’(Zeit)와 ‘전환’(wende)을 연결한 말이었다. 한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는 것을 의미하였다. 숄츠 전 총리가 시대의 전환이란 말을 하도록 촉발시킨 것은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었다. 그는 독일의 외교.안보 정책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였다. 미국을 단극으로 하는 탈냉전 시대는 끝났다.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은 서로를 견제하였지만 세계가 변곡점을 지나고 있다는 데는 의견을 같이 하였다. 두 정상은 각각 세계가 지나고 있는 ‘변곡점’(inflection point)과 ‘전절점’(轉折点)을 말하였다. 국제사회에서 파편화와 진영화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1) 유럽과 인태 지역의 안보가 보다 연계된다. “역사의 종말”이 아니라 “역사의 복귀”가 관심의 대상이다. 새로운 세계 질서가 모색되고 있다. 키신저 전 장관은 진정한 세계질서는 존재한 적이 없다고 갈파했다.2) 세계는 유럽의 30년 전쟁 결과로 1648년 체결된 베스트팔렌 평화조약을 통해 출범한 질서에 익숙하지만 이는 세력 균형을 통해 서로 야심을 억제하는 것이었다. 유럽과 이슬람 세계, 중국과 미국이 생각하는 세계 질서가 같지 않았다. 세계에서 불안정과 불안이 확산 됨에 따라 안정을 위해 뜻을 함께 하는 국가 간 협력의 중요성이 커진다. ‘격변의 추축' 간 협력, 특히 ‘악마의 거래'라고 하는 북한과 러시아의 협력은 우려 대상이다.3) 북한은 포탄, 미사일, 병력을, 러시아는 식량, 유류, 외화, 정찰 인공위성 발사 기술 등을 제공해왔다. 러시아가 추가로 무엇을 제공하고 있는지, 앞으로 제공할 것인지가 관심의 대상이다.4) 양측은 작년 6월 푸틴 대통령의 평양 방문 때에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에 합의해 1961년 체결된 조.소 동맹조약에 포함되었던 ‘유사시 자동군사개입 조항’을 부활시켰다. 한.미.일과 북.중.러로 갈라지는 동북아의 신냉전 구도 형성과정에서 한국과 유럽연합 간 협력은 중요하다. 특히 유럽과 인태 지역의 안보가 점점 구분되지 않는 만큼 더욱 그렇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당시 나토 사무총장은 2023년 7월 12일 나토 정상회의 개막연설을 통해 “유럽-대서양 지역에서 발생하는 일이 인태에 중요하며 인태에서 발생하는 일이 유럽-대서양에 중요하다”(What happens in the Euro-Atlantic region matters for the Indo-Pacific, and what happens in the Indo-Pacific matters to the Euro-Atlantic)라고 말했다. 북한의 러시아 파병은 유럽과 인태 지역 안보 관계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다.5) 유럽연합은 모스크바와 평양간의 추축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과의 파트너십을 심화시킬 수 있기를 희망한다. 한반도에서의 유럽연합 유럽연합이 한반도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한국에서 유럽연합은 일상적인 관심대상은 아니다. 유럽연합에 관한 뉴스는 적다.6) 그러나 유럽연합은 한반도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유럽연합은 한국의 세 번째 교역상대이다. 한국은 유럽연합의 여덟 번째 교역상대국이다.7) 매일 상품 교역량이 약 4억 달러에 이르는 데에서 볼 수 있듯이 많은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다. 유럽연합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하여 1994년 미.북간 체결된 제네바 합의 이행 과정에서 한국, 미국, 일본과 함께 집행이사국으로서 한반도 에너지 개발기구(KEDO)에 참여해 활동한 것처럼 북한 문제에 대해 관심이 많고 상당한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전 나토사무총장이 말하곤 한 대로 브뤼셀과 평양의 거리는 캔버라와 평양의 거리보다 가깝다. 유럽연합은 27개 회원국이 때로는 함께, 때로는 각자 활동하지만 한국에 대한 우호적 입장에는 차이가 없다. 유럽연합은 한국을 2010년 이래 전략적 동반자 국가로 중시한다. 유럽연합은 10개국만 전략적 동반자 국가로 유지해오고 있는데 특히 한국을 진정으로 뜻을 함께 하는 전략적 동반자로 평가한다. 국제 정세의 유동성이 커짐에 따라 전략적 동반자의 중요성이 증대된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워싱턴에서 촉발되는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미국과 중국간의 관계도 새로운 균형을 찾을 때까지 계속 요동칠 전망이다. 서로를 신뢰할 수 있는 한국과 유럽연합간 협력은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유럽연합이 국제규범을 선도하는 “브뤼셀 효과”는 국제사회의 불안정성이 증대될 때에 더욱 가치를 갖는다. 북한이 러시아에 탄약, 포탄과 미사일을 제공한데 이어 군대까지 파병한 것은 유럽연합에 대해 유럽과 아시아의 안보가 직접 연계되어 있음을 실감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아시아 군대가 유럽까지 파견된 것은 제1차 세계대전이래 처음이었다. 유럽연합이 북한의 러시아 파병으로 유럽과 동아시아의 안보 관계에 근본적인 변화가 발생하였다고 판단하는 배경이다.8) 유럽연합과 러시아간 관계는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과 이후로 나뉘는 관계이다. 당초 유럽연합은 러시아에 대해 일치된 입장을 갖기 어려웠다. 폴란드와 발트해 국가들은 러시아가 초래하는 안보 위협을 우려하였지만, 독일은 러시아와 경제협력을 추진하고 프랑스는 러시아를 잠재적인 동맹으로 생각하였다. 유럽연합 회원국의 입장이 서로 달랐다. 유럽연합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래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단계적으로 강화하면서 푸틴 대통령에 대한 경계심을 누그러뜨리지 않고 있다.9) 유럽연합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래 유럽에 대한 가장 큰 안보위협이 되고 있다고 인식한다. 유럽연합은 중국, 북한, 이란의 지원이 없었다면 러시아가 지금처럼 전쟁을 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판단하면서 이들 러시아를 지원하는 국가들에 대한 경계심도 높인다.10) 북한의 지원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차이를 만들었다. 2023년 여름 우크라이나는 하루 7천-7.5천 발, 러시아는 하루 5천 발의 포탄을 발사하였다. 단 북한이 러시아에 포탄을 제공한 이후인 2023년 10월 우크라이나는 재고가 소진되어 하루 2천 발을 발사하지 못하는데 러시아는 하루 1만발의 포탄을 발사하였다.11) 제1차 세계대전 당시와 유사한 참호전이 벌어지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서 얼마나 많은 포탄을 발사할 수 있는가는 중요하였다.12) 북한은 2024년 10월 1만 1천명의 병력을 보낸 것을 시작으로 총 1만 5천명의 병력을 러시아에 파견하였다. 북한군은 러시아가 쿠르스크 지역을 탈환하는데 기여하였다.13) 북한군의 파견은 북한이 제안해 러시아가 수용한 것으로 알려졌다.14) 북한은 파병을 통해 병사 1인당 매달 2천 달러 정도의 수입을 올리는 것 외에도 군인들의 전투 경험을 쌓고 유엔 안보리 등에서 협조를 위해 러시아에 보험을 들어두는 것이었다.15) 유럽연합은 러시아와 북한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고 있지만 즉각적인 효과를 거두지는 못하고 있다. 제재는 오랜 기간에 걸쳐 부과될 때에만 고통을 줄 수 있을 정도로 그 효과가 점진적으로 나타나며 제재를 부과받는 국가도 이에 적응해 가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은 2024년 2월 22일에도 러시아에 대한 제13차 제재를 부과하여 강순남 북한 국방상 등 개인 106명과 기관 88개를 제재 대상으로 추가하였지만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 대한 영향은 제한적이다.16) 유럽연합의 미국, 중국과의 관계 2025년 1월 20일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한 이후 예상을 벗어나는 일이 많았다. 미국 영화 ‘매트릭스 리로디드’의 한국 광고 문안과 같이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게 될 것”이라는 말이 실현되는 것 같았다. 유럽연합에 다가오는 불확실성은 트럼프 2기 행정부나 1기 행정부나 큰 차이가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당시에도 범세계적으로 가장 큰 적대국을 꼽으라는 기자 질문에 대해 유럽연합이 적이라도 답변하였다.17) 트럼프 2기 행정부도 국방비 증액, 상호관세 협상에서 유럽을 거세게 밀어붙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5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말하였다가 다시 이를 거둬들이면서 유럽연합을 압박한다. 유럽연합은 민주주의, 법의 지배 등 가치를 함께 추구하여온 전략적 동반자인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방위비, 무역수지 등 돈 문제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바이든 전 대통령은 트럼프 1기 행정부가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라고 하면서 취임 후 일성으로 “미국이 돌아왔다”, “동맹이 돌아왔다”, “외교가 돌아왔다”고 외쳤다. 그렇지만 이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돌아왔다”, “불확실성이 돌아왔다” 등 바이든 대통령 지우기가 계속된다. 뉴욕의 한 광고와 같이 2025년 1월 1일은 ‘새로운 한 해의 시작’에 불과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복귀한 2025년 1월 20일은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라는 말에 일리가 있음을 각국은 절감한다. 유럽연합은 미국과의 관세협상에서도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논리를 이해하기 어려워한다. 관세에서 논리를 찾고자 해도 이를 찾기 어렵다. “관세는 가장 아름다운 단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말로부터 각오는 하였지만 이 정도일지는 몰랐다는 반응이다. 유럽연합은 미국에 서로 예의를 갖추자고 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남은 임기를 버티고자 동병상련의 우방국을 찾는다. 유럽연합은 당장은 러시아에 대한 대응에 관심을 기울이지만 장래 중국이 가장 큰 도전일 수 있음을 인식한다. 유럽연합의 한 인사는 러시아는 허리케인이지만 중국은 기후변화라고 하면서 도전의 깊이가 다름을 표명하였다. 허리케인은 당장 대응해야 할 문제이지만 기후변화는 훨씬 더 긴 기간에 걸쳐 생존에 영향을 미치는 근본적인 도전으로 다가올 사안이다. 유럽연합은 중국과의 관계가 복합적일 수 있음을 인식한다. 유럽연합이 중국을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경제적 경쟁자, 시스템 라이벌이라고 동시에 정의한 이유이다. 협력할 부분과 경쟁 할 부분, 또 대치할 부분이 혼재한다는 것이다. 기후변화 등 여러 이슈에서 중국과의 협력이 긴요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과정에서 중국의 러시아에 대한 지원과 같이 수용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스톨텐베르그 전 나토 사무총장은 유럽이 중국에 다가간 것이 아니라 중국이 유럽에 다가왔다고 말하곤 하였다. 중국이 사이버 공간, 북극해, 유럽국가 내의 핵심적인 인프라에 대한 대규모 투자 등으로 유럽에 대한 위협으로 다가왔다는 것이다.18) 중국의 병력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파견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유럽연합의 고민은 더욱 깊어진다. 중국의 파병은 러시아를 우회적인 방식으로 경제적으로, 군사적으로 지원한 것과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유럽연합은 중국에 대해서는 27개 회원국이 함께 단결해서 대응하기가 쉽지 않음도 인식한다. 회원국마다 중국에 대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헝가리와 같은 나라는 중국이 제공하는 투자, 중국과의 협력을 중시한다. 2017년 6월 제네바의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중국 관련 성명을 발표하고자 하였을 때는 그리스가 반대하여 이를 추진하지 못한 바도 있다.19) 이러한 사정이기 때문에 유럽연합은 중국과 어떠한 관계를 갖고자 하는 것이 유럽연합이 어떠한 연합이 되고자 하는가를 결정하는 문제가 될 것이라고 인식한다.20) 유럽연합이 생각을 함께 하는 국가들과 가능한 협력을 모색해보려고 하는 이유이다. 시진핑 주석은 2025년 4월 11일 베이징에서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와 회담하면서도 미국에 대한 메시지를 간접적으로 보낸 바 있다. 시진핑 주석은 관세전쟁에서 승자는 없으며 세계를 상대로 자신을 고립시킬 뿐이라고 말하였다. 시 주석은 지난 70여 년 중국의 발전은 시종자력 갱생의 결과라고 하면서 “누구의 은혜에도 의지하지 않았으며 무리한 압박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스페인과의 회담이지만 미국에 대한 메시지를 발신하였다. 유럽연합의 한국과의 협력 2017년 2월 22일 유럽연합의 정상인 도널드 투스크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필자로부터 신임장을 받으면서 한국이 유럽연합의 최고의 파트너라고 강조하였다. 필자는 처음 신임장을 제정하면서 흥분하여 잘못 들었는가 하여 귀를 기울여 다시 들어보았지만 투스크 의장은 한국이 유럽연합의 최고의 파트너 중의 하나라고 말하지 않고 유럽연합의 최고의 파트너라고 말하였다. 투스크 의장은 한국이 유럽연합과 뜻을 같이 하는 전략적 동반자로서 당시 유럽연합과 정무, 경제, 안보 면에서 3대 협정을 체결한 유일한 나라인 점을 들었다. 3대 협정은 기본협정, FTA, 위기관리기본협정이다. 지금까지도 3대 협정을 모두 발효시킨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한국은 어떤 경위로 유럽연합의 최고의 파트너로 평가받게 되었을까? 유럽연합은 1996년 10월 아시아 국가 중 최초로 한국과 기본협정을 체결하였다. 협정은 2001년 4월 발효되었다. 2010년 5월 10일에는 시대의 변화를 반영한 개정 협정이 서명되어 2014년 6월 1일 발효되었다. 기본협정은 양측간 경제적 및 정치적 파트너십 강화를 위한 미래비전을 제시하고 상호 이익이 될 수 있도록 경제협력을 강화하며 양측의 역할과 프로필을 높여왔다.21) 한국과 유럽연합은 꾸준히 경제.통상 협력을 증진해왔다. 무역수지가 대체로 균형을 이루는 협력이었다. 양측은 윈윈 협력을 한다. 유럽연합과 한국은 서로에게 자동차를 수출한다. 유럽연합은 반도체 제작 장비를 수출하며 한국은 반도체를 수출한다. 유럽연합이 한국의 세 번째의 교역상대이며 한국이 유럽연합의 여덟 번째의 교역상대국이 된 데에는 연유가 있었다.  [ 표 1. 2021-2023년 유럽연합의 한국에 대한 수출입 (단위: 억 유로)22)]  양측간의 교역이 증대된 것은 한.EU FTA에 힘입은 바 크다. 한.EU FTA는 2010년 10월 6일 서명돼 2015년 12월 13일 전면 발효되었다. 금년은 FTA가 발효된지 10주년이다. 한.EU FTA는 첫 신세대 FTA로 당시 유럽연합의 가장 야심적이며 포괄적인 FTA이었다.23) 한국은 아시아 국가 중 유럽연합의 첫 FTA 상대이었다. 교역을 증진하고 성장과 일자리를 만들었다. 2017년 3월 17일 워싱턴에서 메르켈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EU FTA가 고용을 확대하여 양측에 도움이 되었다고 평가하였다.24) ‘아메리카 퍼스트’에 대해 상생 협력을 강조하였다. 캐서린 애쉬턴 EU 외교안보고위대표가 한국을 방문하여 2014년 5월 23일 윤병세 외교장관과 위기관리기본협정에 서명하였다. 양측간에 평화유지, 분쟁예방, 해적퇴치, 재난구호 등 위기관리분야에서 협력을 확대하는 포괄적인 기반을 마련하였다. 협정은 2016년 12월 1일 발효되었다. 양측은 아프리카 소말리아 인근 해적퇴치를 위해 정례적으로 공동작전을 펼쳐온다. 아탈란타 작전은 유럽연합이 실시한 최초의 해군작전이다. 한국 청해부대가 2017년 2월 아탈란타 작전에 처음 참여한 이래 양측간 협력이 이어지고 있다. 민간선박 보호와 해적퇴치라는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며 양측간 전략적 동반자 협력을 심화시킨다. 2021년 10월에는 오만도 함께 하여 한국, 유럽연합과 오만이 아덴만 연안 해적퇴치를 위한 연합 해상훈련을 가졌다. 2024년 11월 4일 서울에서 조태열 외교장관과 조셉 보렐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는 장관급 전략대화를 출범시켰다. 2023년 5월 22일 서울에서 개최된 윤석열 대통령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간 한.EU 정상회의에서 합의된 사항을 이행하는 것이었다. 양측 외교장관은 “한.EU 안보방위 파트너십” 합의문서도 채택하였다. 사이버, 해양안보, 비확산.군축 등 15개 분야를 망라한 협력을 규정하는 문서이었다.25) 유럽연합의 북한 문제 관련 역할 북한 문제에서 유럽연합의 역할이 있을까? 북한 문제에서 유럽연합은 부각되지 않는다. 그러나 유럽연합은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해 미국과 북한이 1994년 체결한 제네바 합의를 이행해 가는 과정에서 1997년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에 집행이사국으로 참여해 한국, 미국, 일본과 함께 협력하기도 하였다. 유럽연합은 KEDO에 1996-2005년 총 1억 1,800만 유로를 기여하였다. 유럽연합은 비판적 관여정책에 따라 북한에 대해 압박과 유도책을 함께 구사한다. 유럽연합은 세계 최대의 인도적 지원 공여 당사자답게 북한에 식량 지원은 물론, 인력 교육, NGO를 통한 소규모 사업도 실시한 바 있다. 유럽연합은 북한 주민의 인권 개선에도 관심을 갖고 매년 인권이사회와 유엔에서 북한 인권결의안을 제안해 온다. 유럽연합 자체가 북한과 수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27개 회원국 중에 25개 회원국이 북한과 수교하고 있다. 프랑스와 에스토니아만 미수교국이다. 유럽은 네 차례의 역사적인 계기를 통해 북한과 수교하였다. 1948년 북한 정부 수립 이후 동구 국가, 1972년 닉슨 대통령의 중국 방문 등 냉전완화 기간 중 북구 중립성향 국가, 1991년 구소련 붕괴 후 구소련, 구유고 국가, 2000년 남북 정상회담 계기 서유럽 국가이었다.26) EU 회원국 가운데 스웨덴, 체코, 폴란드, 불가리아, 루마니아, 독일 등 6개국이 평양에 대사관을 유지하고 있다. 북한은 이들 6개국 및 이탈리아, 스페인, 오스트리아에 대사관을 유지하고 있다. 프랑스는 2011년 10월 NGO 활동지원 및 문화협력을 위해 북한에 ‘협력사무소’를 개설하였으며 북한은 파리에 일반대표부와 주유네스코 대표부를 유지해오고 있다. 이는 예산상 이유로 외교 공관 숫자를 줄여오고 있는 북한이 바깥 세상과 직접적인 소통을 유지할 수 있는 창구가 된다.  [표2. EU 25개 회원국의 북한과의 수교 일자(유럽연합의 북한과의 수교일자는 2001.5.14.)27)]  북한의 유럽연합에 대한 반감은 상대적으로 작다. 북한은 미국에 비해 유럽연합을 덜 적대적인 상대(lesser evil)로 본다. 북한은 정권 생존에 가장 중요한 국가가 미국이며 미국으로 다가 가는 길에 유럽이 있다고도 생각한다. 단, 유럽연합의 북한에 대한 관심은 2000-2002년 정점에 달한 후 감소하였다. 2002년 2차 북핵 위기가 도래된 후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유럽연합을 제외한 6자회담이 추진되면서 유럽연합의 북한에 대한 지렛대가 축소되었다. 유럽연합이 북한의 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1년 EU 회원국 대부분이 북한과 외교관계를 수립한 전후 21%까지 올라갔으나 2002년 북핵 위기가 다시 대두된 후 국제사회의 인식 악화, 대북 제재 등의 영향으로 계속 감소해 2020년에는 1% 미만으로 줄어들었다. 2021년 양측 무역규모는 135만 5,347 유로로서 2011년 1억 5,495만 유로의 1%에 미치지 못하였다. 북한에 대한 제재와 함께 북한이 코로나19의 여파로 국경을 봉쇄한 것이 무역 축소로 이어졌다.28) 유럽연합의 북한 관련 역할은 확대될 수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종료되고 미.북 정상회담이 개최된다면 그 과정에서 유럽연합은 북한 비핵화를 진척시키기 위해 미국, 한국과 보조를 맞출 것이다. 북한의 비핵화가 진전되고 북한의 미국, 일본과의 수교 움직임 등 대외관계가 개선된다면 유럽연합이 할 수 있는 일은 더욱 증대할 것이다.27) 브뤼셀 효과와 한국의 퍼스트 무버 전략29) 유럽연합은 흔히 평화 프로젝트로 지칭된다. 유럽에서 전쟁을 막고 항구적인 평화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통합을 이끈 힘은 단일시장에 기초한 교역 증대와 규모의 경제로부터 창출된 번영에서 나왔다. 유럽연합은 2011년 노벨 평화상 수상 당시에도 확인된 것처럼 유럽을 전쟁의 대륙에서 평화의 대륙으로 바꾸었다. 유럽의 통합과 협력을 진전시키는데는 유럽연합이 만드는 규정도 기여를 하였다. 유럽연합이 만드는 규정은 회원국 간 이견과 분쟁의 소지를 없애 예측 가능한 협력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보편성을 갖고 세계적으로도 적용되었다. 유럽연합이 만든 규정이 세계적으로 적용되는 현상을 브뤼셀 효과(Brussels Effect)라고 한다. 애뉴 브래드포드 콜럼비아 대학 교수가 사용한 말인데 널리 통용된다.30) 유럽연합은 단일시장의 규모가 크고 규정이 구체적이며, 각국 기업이 유럽연합의 규정을 모국 정부가 수용하도록 설득할 정도로 보편성을 갖고 있어 전세계적으로 규정을 선도한다.31) 유럽연합은 환경 보호, 디지털 초기업 과세, 조세회피 기준 등에서 범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기준을 만들었다. 유럽이 기준을 만드는 전통은 오래된 것이다. 근대 국제질서를 수립하는 토대가 되는 세력균형, 주권, 국민국가, 국가이성 등 개념이 처음 탄생한 곳도 유럽이었다.32) 금년 5월 9일은 유럽연합의 모체가 된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를 창설하는 기초가 된 슈망선언이 발표된 지 75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로베르 슈망 프랑스 외교장관이 새로운 협력체를 제안하였을 때에는 이상주의만이 아니라 전쟁을 수행하는 무기 제조에 필요한 석탄과 철강을 공동으로 통제하여 전쟁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게 하겠다는 실용주의가 결합된 것이었다. 유럽인들은 아직 요원하기는 하지만 유럽합중국을 지향해간다는 생각이 있다. 우리나라는 급속한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뤄오면서 패스트 팔로워로 평가받아 왔다. 앞선 나라들을 빠른 속도로 따라 잡았다. 우리나라가 앞으로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를 따라 가는 것이 아니라 앞장서 나가는 퍼스트 무버로 옮겨가야 할 단계가 되었다. 우리나라가 이러한 변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유럽연합과의 협력이 힘이 될 수 있다. 양측 간 협력이 유럽연합의 ‘브뤼셀 효과’와 상승 작용을 가질 수 있다. 필자가 2017년 2월 투스크 상임의장에게 신임장을 제정한 곳은 유럽연합의 정상회의와 각료 이사회 회의가 개최되는 유로파 빌딩이었다. 거대한 알을 품은 모습이어서 ‘스페이스 에그’(Space Egg)라는 별명으로도 불리는 유로파 빌딩은 한 달 전부터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원형 회의장이 있는 럭비공 모양의 건물을 유리 직사각형 건물이 싸고 있는 형태이다. 3,750개의 유리 창문은 유럽연합의 투명성을 상징하였다 회원국간 . 친밀한 협의를 가질 수 있는 원형 회의장을 감싼다. 흔히 유럽대륙을 말하지만 유럽대륙이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유럽대륙은 아시아대륙과 연결되어 있다. 유라시아이다. 유럽대륙과 아시아대륙간에는 물리적인 경계선이 있는 것이 아니어서 역사적으로 계속 변화되어 왔다. 에게해, 카스피해, 터키 해협, 흑해, 코카서스, 우랄산맥 등으로 이어지는 선을 생각하는데 이는 지도에만 존재할 뿐이다. 부산에서 로테르담 까지 기차로 이동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 프로이센의 군사전략가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책의 연장”이라고 말하였다. 그런데 현재의 세계에서는 “외교는 다른 수단에 의한 국내정치의 연장”이 되는 것이 현실이다. 정쟁은 국경에서 끝나야 한다는 격언은 잘 지켜지지 않는다. 다만, 유럽연합에 대해서는 국내에서 초당적인 공감대를 이루는 것이 비교적 쉽다. 한.EU FTA는 비슷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한.미 FTA와 달리 국내 쟁점이 되지 않았다. 마리아 카스티요 페르난데즈 주한 EU대사는 우리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유럽연합은 한국에 예측가능하고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다. 협정을 이행하려 노력하고, 약속을 지킨다. 오늘날 세상에서는 이런 부분이 중요하다.”33) 유럽연합의 인사들도 한국에 대해 유사한 인식을 가지고 있다. 서로의 협력에 대한 수요가 있는 배경이다. 한국과 유럽 연합의 관계는 서로 문제를 일으키지 않아서 뉴스에서 자주 취급되지 않는 면이 있다. 한국에 근무하는 유럽연합 외교관들은 한국이 신뢰하는 파트너이지만 보이지 않는 장벽이 있는 것처럼 자주 만날 수 없다고도 말한다. 가까운 동반자라도 서로 관심과 노력을 기울임으로써 더욱 가까운 동반자가 될 수 있다. 우리나라가 중시하는 가치와 추구하는 국익에 따라 동심원 외교 전략을 추진해나간다면 유럽연합은 미국에 이어 두 번째 동심원에 위치할 수 있다.34) 양측이 추구하는 가치에 공통점이 많고 국익이 서로 부합하기 때문이다. 양측이 자연스러운 동반자로 불리는 이유이다. 이는 국제 정세가 변환기를 통과하며 새로운 질서를 모색하는 때에 더욱 중요하다.  1) 이상현, “2024년 국제정세 전망,” 「정세와 정책」 세종연구소, 2024년 1월호 (통권 370호) p. 1. 2) Henry Kissinger, World Order, Penguin Books (New York, 2014), pp. 15-16. 3) Matt Berg, “Coons warn of ‘devil's deal’ during Kim's visit to Russia," Politico, 2023. 9. 11. 4) “Remarks by National Security Advisor Jake Sullivan at the NATO Summit Defense Industry Forum," 2024. 7. 9. 5) James Crabtree, Alexander Lipke, “Pyongyang's power play: How the EU should respond to North Korean troops in Russia," European Council on Foreign Relations, 2024. 11. 5. 6) 채영길, 이종현. (2022). “국제 뉴스에서 국가별 보도 빈도와 보도 태도에 대한 차이 탐색 : 감성사전과 인공신경망을 연계한 ‘하이브리드 감성분석’을 통해.” 「정치커뮤니케이션연구」 65, pp. 5-64. 7) “Top 10 EU trading partners in 2023," Directorate-General for Parliament Research Services, European Parliament (2025. 5. 27. 열람) 8) James Crabtree, Alexander Lipke, op. cit. 9) Adam Forrest, “Putin is ‘Hitler of the 21st century', says Ireland's Leo Varadkar," Independent, 2022. 2. 25. 10) “Foreign Affairs Council (Defence): Press remarks by High Representative Josep Borrell after the meeting," Brussels, EEAS, 2024. 11. 19. 11) “Ukraine Uses Five Times Less Artillery Ammunition Than russia - RUSI," Defense Express, 2024. 1. 8. 12) Raphael S. Cohen and Glan Gentile,“Stop Comparing Ukraine to World War I," Foreign Policy, 2023. 7. 18. 13) Choe Sang-Hun, “Putin Thanks Kim for North Korean Troops Fighting Against Ukraine,” The New York Times, 2025. 4. 27.; 손현수, “국정원 “북한군 이달초 러시아에 2차 파병”,” 한겨레, 2025. 2. 27. 14) Julian E. Barnes and Michael Schwirtz, “Sending Troops to Help Russia Was North Korea's Idea, U.S. Officials Say," The New York Times, 2024. 12. 23. 15) 홍지인, 김철선, “국정원 “北병력 3천여명 러 이동...파병대가 1인당 월 2천달러 수준”(종합),” 연합뉴스, 2024. 10. 23. 16) “European Council meeting (21 and 22 March 2024) - Conclusions" European Council, Brussels, 2024. 3. 22. 17) ““I think the European Union is a foe," Trump says ahead of Putin meeting in Helsinki,", Face the Nation, CBS, 2018. 7. 15. 18) Roula Khalaf and Henry Foy, “Transcript: ‘China is coming closer to us' - Jens Stoltenberg, Nato's secretary-general," Financial Times, 2021. 10. 18. 19) Robin Emmott, Angeliki Koutantou, “Greece blocks EU statement on China human rights at U.N.” Reuters, 2017. 6. 18. 20) Peter Ludlow, Eurocomment (Pre-summit Briefing 2019/1): “when we ask what kind of relationship we want with China, we are in reality asking what kind of Union we want the EU to be.” 21) “Framework Agreement between the European Union and its Member States, on the one part, and the Republic of Korea, on the other part," EU Official Journal, 2013. 1. 23. 22) “EU trade relations with Korea," European Commission (2025. 5. 17. 열람) 23) EEAS (European External Action Service), “The Republic of Korea and the EU” 2016. 5. 10. 24) “The President's News Conference With Chancellor Angela Merkel of Germany", 2017. 3. 17., The American Presidency Project, Donald J. Trump, 45th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 2017-2021 25) 외교부 보도자료, “장관, EU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와 제1차 한-EU 전략대화 개최,” 2024. 11. 4. 26) Michael Hindley and James Bridges, “4. Europe and North Korea,” in Hazel Smith, et al. eds., North Korea in the New World Order (1996), p. 75; 김형진, 『왜 유럽연합은 한국외교에서 잘 보이지 않을까』 (박영사, 2025년), p. 235 27) 김형진, 『왜 유럽연합은 한국외교에서 잘 보이지 않을까』 (박영사, 2025년), p. 235 28) 박수윤, “EU와 북한 무역규모, 10년 전의 100분의 1로 급감,” 연합뉴스, 2022. 12. 3. 29) 상세 설명은 김형진, 『왜 유럽연합은 한국외교에서 잘 보이지 않을까』 (박영사, 2025년), pp. 257-261 30) Bradford, Anu, The Brussels Effect: How the European Union Rules the World (Oxford University Press, 2020), pp. 1-3. 31) “Charlemagne: The parable of the plug,” The Economist, 2020. 2. 8. 32) Henry Kissinger, Diplomacy (Simon & Schuster, 1994), p. 24. 33) 오수연, “[주한대사를 만나다] “EU는 신뢰할 수 있는 韓파트너...양국 윈윈”,” 아시아경제, 2025. 4. 23. 34) 손인주 등, “강대국 외교 구상: 한국 주도 동심원 전략,” 서울대학교 국가미래전략원, 글로벌 한국 클러스터 2023년 연차보고서, 2023년 9월.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기획자: 강영훈 제주평화연구원 원장, 편집 : 제주평화연구원 이혜진 연구원 김형진 (서울대학교 국가미래전략원 객원연구원 / 前 주벨기에유럽연합 대사 )  현 서울대학교 국가미래전략원 객원연구원 겸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 정책위원이다.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정책학 석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일본 정책 연구대학원대학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일본 도쿄대학 객원연구원, 와세다대학 초빙연구원으로 수학하였다. 2022년 5월 퇴직할 때까지 38년 넘게 정부에서 근무하며 국가안보실 제2차장, 서울시 국제관계대사, 주벨기에유럽연합 대사, 외교부 차관보, 기획조정실장, 청와대 외교비서관, 북미국장 등을 맡았고 6자회담, 4자회담, 케도 협상 등에 참여하였다. 미국, 가나, 중국, 벨기에 등에서 근무하였다. 국내외 대학에서 강연하고 국내외 학술지에 기고하고 있다.
  • [JPI PeaceNet]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미중관계 동향과 시사점
    저자
    박병광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
    발간호
    2025-3
    [기획자 註]  많은 전문가들이 예상한 바와 같이, 미중 관계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더욱 악화되는 추세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대외 정책에 있어 앞으로도 중국과의 경쟁에 초점을 둘 것으로 전망되며, 이는 한중 관계에도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고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대중 정책 기조를 분석하고 함의를 도출함으로써 한국에 시사하는 바를 살펴보고 정책 제언을 제시하고자 한다 [기획: 강영훈 원장(yhkang@jpi.or.kr)].  트럼프 2기 행정부와 미국의 대중국 인식과 정책목표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귀환과 함께 미중관계가 다시 요동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주장하는 ‘위대한 미국’은 부강한 나라로서 누려왔던 미국의 국제적 리더십과 영향력을 유지하는 것이다. 중국은 미국의 가장 강력한 경쟁국이란 점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축소하고 견제하는 것이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외교·안보전략의 핵심이 될 수밖에 없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주요 인사들은 소련 붕괴 이후 중국 공산당이 미국의 국가안보를 가장 포괄적으로 위협하는 세력이며, 경제적·문화적으로 거의 모든 미국인의 삶에 깊숙이 침투해 있다고 본다. 그들은 중국이 오늘날 군사적·경제적으로 강력한 ‘적대국’이 되었고, 베이징은 사이버 공간에서 워싱턴의 가장 큰 ‘적’이며, 미국 외부로부터 오는 ‘최대의 위협’이라고 주장한다.1) 그런 점에서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발간된 <국가안보전략서(NSS)>는 중국을 ‘현상타파(revisionist)’ 세력으로 규정했지만,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국가안보전략서>는 보다 노골적인 적대적 인식을 표출할 수도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대중국정책 목표는 미국의 패권 지위에 대한 중국의 도전을 좌절시키고, 중국과의 대결에서 ‘승리’를 쟁취하는 것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첨단·신흥 기술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고,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에 대한 ‘전략적 탈동조화’를 가속화함으로써 중국의 발전을 억제하여 미국에 대한 도전 의지를 꺾고자 한다.2) 중국을 적대적으로 바라보는 트럼프 진영은 “미국과 중국이 이미 냉전 상태에 돌입했고, 경쟁 관리는 목표가 될 수 없으며, 대중국정책의 명확한 목표는 승리(victory)여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그들은 미중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양국 사이에 더 큰 마찰이 필요하다는 것을 받아들여야하며, 미중 사이에 긴장이 고조되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인식해야만 한다고 본다.3) 또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대중국정책은 중국에 대한 군사적 우위를 유지하고, 힘의 효과적 사용을 통한 억제력을 극대화하여 ‘힘을 통한 평화(peace through strength)’를 목표로 하고 있다. 트럼프 진영은 세계 무대에서 미국의 전쟁 개입을 줄이고자 하지만 이와 별개로 중국에 대해 압도적인 군사적 우위를 유지하고, 힘의 극적 사용을 통한 충격과 공포를 통해 대중국억제력 극대화를 의도하고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특히 미국의 ‘선택적 개입’ 정책에 대한 중국의 오판을 방지함으로써 대만침공 가능성을 줄이고, 트럼프 1기 행정부가 제시한 다영역작전(Multi-Domain Operations, MDO)’개념을 더욱 발전시켜 나가려 한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대중국 정책의 핵심은 미국의 국가이익과 실리주의에 기반하여 경제적 압박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첫 번째 임기 4년간 트위터(현재의 X)에 올린 중국 관련 메시지를 분석하면 ‘경제’와 ‘통상’에 관한 언급이 가장 많으면서도 꾸준함(consistency)을 유지했다. 이는 트럼프 2기 행정부에도 미국의 이익을 바탕으로 중국에 대한 경제적 압박이 무엇보다 중시될 것이란 점을 예측하게 만든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두 번째 취임 직후부터 중국에 대한 고율 관세 부과에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당시 중국이 다른 나라를 통한 미국으로의 우회 수출을 제한할 것이며, 미국 회사가 중국에 투자하는 것을 막고, 중국인의 미국내 부동산 및 기업(산업) 구매를 차단하는 정책을 채택할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중국 경제적 압박이 현실화할 경우, 미국 내 인플레이션을 자극하고, 근로자들의 실질소득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와 중국의 대미국 인식과 정책 중국내 많은 전문가들은 갈수록 미국과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견제와 압박에 시달리면서 미중관계에 대해 어떠한 환상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을 주장한다. 그럼에도 중국의 전략가들은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중국이 많은 것을 배웠고, 미국의 국제사회 리더십이 약화되는 공간을 파고들 수 있었다는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귀환이 중국에 여러 면으로 이득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을 숨기지 않는다.4) 중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귀환 이후 ‘상호존중’과 ‘안정적 발전’이라는 미중관계의 기본 입장을 일관되게 천명함으로써 트럼프 대통령의 재등장에 따른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고 양자관계의 안정적 관리에 주력하고자 의도했다. 시진핑 주석은 미국 대선 직후(2024. 11. 7) 트럼프 대통령에게 축전을 보내어 “역사는 우리에게 미중이 협력하면 모두에 이롭고 싸우면 모두가 다친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면서 “안정적이고 건전하며 지속가능한 중미관계는 양국의 공동 이익과 국제 사회의 기대에 부합한다”고 언급했다.5) 시진핑 주석은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을 앞두고 이뤄진 통화에서(2025. 1. 17) “중미 양국 간에는 광범한 공동이익과 드넓은 협력 공간이 있어 파트너, 친구가 될 수 있고, 상호 성취와 공동 번영으로 양국과 세계를 이롭게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6) 요컨대 중국은 “미중관계의 안정이 세계의 안정과 평화에 관건”이라는 기본 입장을 견지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책임감을 가지고 상호 대화와 협상을 통한 신뢰 증진 및 문제해결의 자세”를 요구함으로써 양국관계의 안정적 발전에 방점을 두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두 번쨰 취임 전후 중국은 미국의 경제적 압박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전망하에 트럼프 2기 행정부와 대화의 창구를 유지하고, ‘거래의 조건’을 맞추는 데 주력하고자 의도했다. 중국은 오바마 행정부 시절 미국과의 정부간 공식 대화채널이 90개가 넘었고, 바이든 행정부 하에서는 20개 가까운 정부간 채널을 보유했다. 하지만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이러한 모든 채널을 닫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쌍방 간 공식 대화채널 유지를 희망했다.7) 중국은 미국 대선 전부터 트럼프 진영의 정책 성향을 분석하고, 대응 전략을 준비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중국은 일대일 거래 방식을 선호하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직접 접촉을 통해 협상하고자 의도했으며,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전 중국 측 대표단을 통해 시진핑 주석과 이미 대화중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중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거래에 능하다”는 점을 활용하여 다양한 ‘거래의 조건’을 내세워 협상을 통한 미중관계 관리에 주력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동시에 중국은 미국을 향해 대화를 원하지만 대만 문제 등 ‘4가지 레드라인’을 넘어서서는 안된다는 점도 함께 언급했다.8) 한편 트럼프 대통령의 귀환에 따른 대중국 압박과 견제가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중국 외교의 중점 추진 방향은 국제적 영향력 유지와 경제적 자강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이를 위해 중국은 변화하는 국제정세에 맞춰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에 대한 접근을 강화하고, 첨단기술 자립과 쌍순환 발전을 촉진하며, 주변외교와 지역협력을 강화하여 미국의 압박을 돌파하고자 한다. 구체적으로, 중국은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 변혁을 위해 ‘다극화’를 추동하고 글로벌 거버넌스를 개혁하고자 하며, 이를 위해 ‘평화와 번영의 동반자’를 내세우면서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에 대한 접근 및 파트너십 강화에 주력하고자 한다. 중국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전략적 디커플링에 맞서고 글로벌 공급망 재조정에 대응하여 첨단기술 자립을 적극 추진하고, 국내시장 활성화를 통한 내수 확대와 대외경제를 연계하는 쌍순환(雙循環) 정책에 주력하고자 한다. 중국은 SCO, BRICS 등 다자주의 외교와 지역 협력 체제를 강화하고, 아세안과의 경제적 파트너십을 심화하여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동맹체계를 견제함과 동시에 국제무대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유지하는 데 주력하고자 한다. 트럼프 대통령 귀환 후 미중 대결 1회전 : 관세전쟁 트럼프 대통령의 두 번째 취임 직후부터 강행된 대중국 고율 관세 등 미국의 대중국 압박에 직면하여 중국지도부는 단계와 강도에 따른 ‘맞대응’을 선택했다. 미국은 중국산 제품에 최대 145%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며 ‘중국 때리기’를 핵심 전략으로 삼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를 수단으로 대중국 압박에 나선 것은 미국의 경제적 이익을 보호하고, 중국과의 더 큰 협상에서 원하는 바를 얻어내는 수단으로 활용하며, 자국 내에서의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한 의도를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미국산 제품에 125%의 보복 관세로 맞서며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정면 대응에 나섰다. 상호 관세율이 100%를 넘어서면서 미중 간 실질적인 교역은 사실상 중단됐다. 미국 수입업체들의 주문 취소가 잇따르며 중국산 화물이 항구에 방치되는 상황까지 벌어졌고, 중국 내에서는 미국산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과 ‘애국소비’ 운동이 빠르게 확산되었다. 양국이 추가 보복관세 부과를 중단하기로 선언했지만, 이는 관세전쟁의 근본적 타협이나 해결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더 치열한 충돌을 대비한 ‘일시적 휴지기’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미국은 동맹국들과의 공조를 강화해 중국을 국제무역 질서에서 고립시키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이를 위해 중국을 제외한 국가들과는 상호 관세를 유예하거나 조율하는 한편, 중국을 명확한 ‘타겟’으로 설정해 전선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는 단기적으로는 대중국 무역적자 축소라는 성과를 기대할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글로벌 공급망의 불안정, 물가 상승, 소비자 부담 증가라는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전쟁에서 중국의 대응은 어느 때보다 단호하고 강경하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중국 정부는 인터넷 검열을 통해 관련 보도를 통제하고, 관영 언론을 통해 경제적 충격은 크지 않다는 메시지를 강조하며 내부 동요를 막는 데 주력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주요 언론이 직접 나서 “미국은 상대를 잘못 골랐다”며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전 국민적 항전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왕이 외교부장은 “미국과 싸우기를 원하지는 않지만, 두려워하지도 않는다”며 미국을 향해 강한 경고를 보냈다. 시진핑 주석은 마치 트럼프 대통령에게 “당신이 상대해야 할 2025년의 중국은 2017년의 중국이 아니며, 과거의 시진핑도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듯하다. 시진핑 체제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기 싸움’에서 밀리는 모습을 보일 수 없기에, 초기부터 강경 대응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중국의 대응은 단순한 맞대응을 넘어선다. 그동안 중국은 미국과의 무역전쟁을 거치며 기술 자립도 제고와 대외 의존도 축소를 국가 핵심 과제로 삼아 왔다. 이는 반도체, 인공지능(AI), 전기차 등 전략 산업 분야에서 국산화 추진에 박차를 가하는 계기가 되었고, 내수 시장을 중심으로 한 ‘쌍순환 전략’을 본격화하며 외부 충격에 대한 회복력을 강화해 왔다. 이러한 전략은 일정 부분 성과를 거두었고, 중국 내에서는 “이제는 미국에 ‘노(No)’라고 말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퍼져가고 있다. 미중 간 갈등은 역사적으로 반복되어 왔지만 양측은 적절한 시점에 어느 한쪽이 양보하거나 물밑 접촉을 통해 타협을 이루는 방식으로 긴장을 조율해 왔다. 이번에도 어느 한쪽이 먼저 손을 내밀지 않는다면 갈등은 더욱 격화될 것이고, 그 여파는 양국 간의 경제를 넘어 정치·외교·안보 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다. 중국은 항전 의지와 내부 결속력에서는 강점을 보이지만, 무역의 구조적 측면에서는 여전히 미국에 불리하다. 대미 수출이 대미 수입의 두 배를 넘고, 핵심기술과 글로벌 공급망에서도 미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미중 관세전쟁의 격화가 양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세계는 이미 글로벌 공급망을 통해 하나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두 강대국 간의 충돌은 전 세계적인 파장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특히 미중 간 관세전쟁은 향후 수년간 자유주의 무역질서의 재편과 세계경제의 흐름을 좌우할 주요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향후 미중관계 관전 포인트와 시사점 트럼프 2기 행정부하의 미중관계는 불확실성의 증대와 더불어 많은 마찰 요소들이 존재하지만 양국관계를 관찰하고 평가하는 데 있어서 다음과 같은 요인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 시진핑 주석과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적 성향(personality)이 미중 대립에 미치는 영향이다. 두 사람은 이제 최고지도자로서 처음 만났던 2017년 4월과 완전히 다른 정치적 권위와 야망을 지닌 거물로 성장했고, 두 지도자의 개성과 인식이 양국 간 주요 대립 사안에서 어떻게발현될 것인지에 따라 미중관계에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둘째, 양측 간 무역전쟁의 전개 양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100일 맞이 여론조사에서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낮은 41%의 지지율을 보였고, 관세 부과 정책에 대해서는 35% 지지율에 그쳤다. 시진핑 주석 역시 수출, 투자, 소비의 ‘3중 난맥’ 속에서 높은 ‘청년실업률’과 ‘부동산문제’ 등 산적한 경제문제에 직면해 있으며, 국내문제 해결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안정적 미중관계가 중요 조건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언제, 어떠한 방식으로 극적인 타협을 이루며, 일시적 긴장 완화를 추구할지가 관전 포인트일 수밖에 없다. 셋째, 대만 문제의 전개 양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 대만 문제에 관해 특별한 언급을 자제하며 다소 회피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미중대립 구도에서 대만 문제는 가장 뜨거운 이슈이며 언제, 어떻게 대만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를지 지켜보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은 대만독립을 추구하는 민진당이 집권하는 한 대만에 대한 강압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이 과정에서 미국 역시 어떤 식으로든 대만 카드를 활용하려는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넷째, 과거 냉전시기 중국과 손잡고 소련을 견제했던 ‘뒤집기 닉슨 전략(Reverse Nixon)’의 시도 가능성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러 연대의 고리인 ‘우크라이나 전쟁’을 종식시킴으로써 러시아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러시아의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서 미국 쪽으로 끌어 당기겠다는 셈법을 지니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중국 압박의 일환으로 냉전 시기 미중관계 개선을 통한 소련 견제와 같은 방식으로 미국과 러시아가 연합해 중국을 견제하는 전략을추진할 수 있다. 우리는 그 가능성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한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귀환 이후 미중 간 패권 경쟁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구조적 한계 속에서 ‘전략적 피봇 외교(pivot diplomacy)’를 발전시켜 나감으로써 대중 경제협력과 대미 안보협력을 조화롭게 관리할 필요가 있다. 피봇(pivot)은 사전적으로 ‘축을 중심으로 회전하다’ 또는 ‘중심축’을 의미하는 것으로 농구의 경우 한 발은 지탱한 채 다른 발을 계속해서 옮겨 딛는 플레이를 의미한다. 한미동맹은 상당 기간 다른 세력(국가)으로 대체하기 어렵고, 미국 우위의 구도는 미중관계에서 단기간 내에 바뀌기 어렵다. 따라서 한국 정부는 한미동맹을 기축으로 일본, 중국, 러시아와의 관계 증진 및 협력을 추구하면서 북한과 대화를 모색하는 외교를 펼쳐나가야 한다. 아울러 한국은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중국을 견제하는 데 국가적 역량을 집중할 것이란 점에서 지정학적·안보적·기술경쟁력 측면에서 우리나라가 미국의 ‘중요한 전략적 파트너’로서 한미동맹의 가치를 중시한다는 사실을 최대한 부각하고 활용해야 한다. 동시에 한국은 올해 가을 경주에서 개최되는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시진핑 주석의 국빈 방한과 한중 정상회담 성사를 통해 한중관계 회복과 발전의 모멘텀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1) Steve Yates and Adam Savit, “Communist China: A Singular Threat and a Comprehensive Challenge for America First Security Policy,”in Fred Fleitz eds., An America First Approach to U.S. National Security (Las Vegas: American First Press, 2024), p. 97. 2) Robert Lighthizer, “Bad Trade Policy Endangers American National Security,” Fred Fleitz eds., An America First Approach to U.S. National Security (Las Vegas: American First Press, 2024), p. 162. 3) Matt Pottinger, “No Substitute for Victory: America’s Competition With China Must Be Won, Not Managed,” Foreign Affairs, May/June 2024, https://www.foreignaffairs.com/united-states/no-substitute-victory-pottinger-gallagher. 4) Yan Xuetong, “Why China Isn’t Scared of Trump,” Foreign Affairs, December 20, 2024, https://www.foreignaffairs.com/united-states/why-china-isnt-scared-trump. 5) “2024年11月7日外交部发言人毛宁主持例行记者会.”2024년 11월 7일, https://www.mfa.gov.cn/web/fyrbt_673021/202412/t20241217_11495487.shtml. 6) “习近平同美国当选总统特朗普通电话,”2025년 1월 17일, https://www.mfa.gov.cn/zyxw/202501/t20250117_11538132.shtml. 7) Xuetong, “Why China Isn’t Scared of Trump,” (2024). 8) 왕이 외교부장은 ‘2024년 국제정세와 중국 외교’ 심포지엄 개막식 기조연설에서 “시진핑 주석이▲대만 문제 ▲노선과 제도 ▲민주·인권 ▲권리 발전이라는, 도전을 허용할 수 없는 4가지 레드라인을 선명하게 그었다”며 “중미관계의 안정적이고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에 힘쓴다는 중국의 목표는 변함 없고 상호존중·평화공존·협력상생에 따라 중미관계를 처리하는 원칙은 변함이 없다”고 했다. “王毅谈中美关系和中国对美政策,” 2024년 12월 17일, https://www.mfa.gov.cn/web/wjbz_673089/xghd_673097/202412/t20241218_11496943.shtml.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기획자: 강영훈 제주평화연구원 원장, 편집 : 제주평화연구원 이혜진 연구원 박병광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 ) 현재 국가안보전략연구원(INSS) 수석연구위원으로 재직 중이다. 단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상하이 푸단대학(Fudan Univ.)에서 중국정치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1998). 이후 동경대학 동양문화연구소 외국인연구원(1998-1999),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박사 후(Post-Doc) 연구원(2000-2001), 서울대학교 국제문제연구소 객원연구위원(2004-2005), 대만정치대학 초빙연구위원(2012), 아산정책연구원 초빙연구위원(2013), 국방대학교 객원교수(2024) 등의 연구 경력을 쌓았다. 현재 한양대 정외과 겸임교수로 강의중이며, 외교부 정책자문위원, 통일부 정책자무위원, 합동참모본부 정책자문위원, 대한민국공군 정책자문위원,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국제협력분과 상임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세계지역학회 33대 회장(2018)을 역임했다. 주요 관심 연구 분야는 중국의 외교, 군사 및 동아시아 안보 등으로서 40편이 넘는 논문과 10권의 저서(공저포함)가 있다.
  • [JPI PeaceNet] 중국과 통합되는 아세안 경제와 그 시사점
    저자
    박번순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원 연구위원)
    발간호
    2025-2
    [기획자 註]  한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아세안 또한 미중 패권경쟁의 글로벌 흐름 속에서 회원국들의 정치적, 그리고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여러 정책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배경하에서, 본고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아세안의 대외무역환경을 살펴보고 이에 따른 정책적 함의를 도출함으로써 한-아세안 관계에 시사하는 바를 논의한다 [기획: 강영훈 원장(yhkang@jpi.or.kr)]. 초록 아세안은 수출지향적 성장전략을 택해왔다. 외국인투자를 유치하여 수출산업을 육성한 것이다. 전통적으로 미국, EU, 일본 등이 주요 교역대상국이었으나 중국의 부상과 함께 중국에 대해 빠르게 통합되고 있다. 아세안-중국의 무역구조는 아세안의 무역수지 적자로 나타난다. 아세안과 중국의 불균형적인 통합은 아세안이 조립 제조업에 치중하고 있고, 미중 무역갈등 이후 아세안이 중국에서 중간재 수입을 늘렸기 때문이다. 향후 미중갈등이 더 심화된다면 중국의 아세안 진출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 우리는 아세안은 중간재 산업 육성에 협력할 수 있을것이고, 이를 위해 아세안 대상의 신남방정책을 다시 살리고, 동아시아 전체 협력을 강화 할 필요가 있다. 1.머리말 아세안은 동남아 지역 10개국으로 구성된 개발도상국 연합체이다. 냉전체제가 강고해지던 1968년 창설되어 정치경제 협력을 강화해 왔다. 내정불간섭, 합의와 협의에 의한 의사결정 등 소위 아세안 방식(ASEAN Way)를 지키면서 서서히 협력을 강화해 왔고, 2015년 정치안보공동체, 경제공동체, 사회문화공동체로 구성된 아세안공동체를 출범시켰다. 아세안공동체는 EU와 같이 고도의 통합체는 아니지만 6.7억 명의 인구, 세계 4위 권의 교역규모를 가진 무시할 수 없는 협력체이다. 아세안은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이후 일치된 목소리로 동아시아 질서 구축과정의 중심적 역할을 담당해 왔으며, 내년부터 시작되는 ”아세안공동체 비전 2045년“ 실행을 통해 세계 질서 구축에도 영향력을 확대하겠다는 생각이다. 경제적으로 1980년대 중반부터 아세안 주요국은 외국인 투자 유치를 통한 수출주도형 공업화로 성장했다. 아세안은 석유, 가스, 석탄, 팜오일, 주석, 목재 등 다양한 천연자원을 풍부하게 보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태국, 베트남, 미얀마 등 거대 하천을 끼고 있는 국가는 비옥한 농지와 몬순 기후로 농업 생산력도 높다. 따라서 이들은 도시국가인 싱가포르를 제외하면 1960년부터 수입대체 공업화를 성장전략으로 채택했다. 수입대체 공업화의 성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말레이시아, 태국, 인도네시아는 1980년 중반부터 제조업에 외국인직접투자 유치를 강화하고, 수출을 장려하는 수출주도 공업화로 방향을 바꿨다. 그 결과 아세안 선발국들은 1990년대 중반이면 주요한 생산기지로 부상했고, 후발국 중 베트남도 1990년대 들어 계획경제를 포기하고 다국적기업의 투자를 유치하여 빠른 속도로 수출산업화에 성공했다. 아세안에 진출한 조립형 다국적 제조기업은 현지 중간재 산업의 미개발 때문에 모기업 혹은 본국으로부터 부품, 소재, 장비를 수입하여 이를 가공 조립한 후 미국 등 역외시장에 수출하는 형태의 경영활동을 했다. 아세안의 주요 시장은 아세안 자체시장 외에 미국, EU 등이었다. 그러나 중국이 2001년 WTO에 가입한 이후 세계의 공장으로 부상하면서 아세안은 중국과 교역을 빠르게 늘렸다. 중국 상품은 아세안에 밀려들고, 철도 등 교통이 중국과 아세안으로 연결되고 있으며, 중국의 자본은 일대일로(BRI) 전략의 일환으로 아세안 인프라 건설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나아가 중국의 관광객은 싱가포르, 태국, 말레이시아, 베트남, 라오스 등 관광산업 의존도가 높은 국가의 서비스 경기를 결정하고 있다. 이와 같이 아세안과 중국의 경제적 통합은 여러 측면에서 진행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무역의 통합은 특히 현저하게 진행되고 있다. 아세안의 대외교역에서 차지하는 중국의 비중은 2015년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했고, 특히 수출보다도 수입이 급증하고 있다. 중국으로부터 수입 증가는 아세안 경제의 미래에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이 글은 아세안과 중국의 무역관계의 구조변화와 그 배경, 그리고 아세안 경제에 중장기적으로 미칠 영향을 검토한다. 2. 아세안 중국의 경제협력 (1) 아세안과 중국의 교역 관계 제국주의 식민지 경험을 가진 대부분 아세안 국가는 전후 신생국으로 출범할 때 다소 차이는 있었으나 수입대체 공업화를 추진했다. 수입대체 공업화는 수입 공산품을 국내에서 생산하자는 것이었고 이는 높은 수입 장벽 구축과 선발된 기업에 기회를 주는 인허가 제도를 기반으로 한다. 보호주의와 인허가는 필연적으로 비효율적이고 국제 경쟁력이 낮은 기업, 독과점적 시장구조, 부패를 낳았고 경제 전체의 효율성을 저하했다.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의 1960-80년대의 경제성과는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 수출주도형 전략을 선택한 국가보다 낮았고, 1980년대 중반 자원가격 하락으로 이들은 상당한 타격을 받기도 했다. 다행히도 미국의 대일본 압력을 근간으로 하는 1985년의 플라자합의(Plaza Accord)를 계기로 일본 기업이 아세안 투자를 확대하자 아세안은 수입대체 공업화를 포기하고,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여 수출주도형 공업화를 성장전략으로 채택했다. 정책 전환의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1990년대 중반까지 아세안 선발국들은 투자와 수출 증가에 힘입어 전례 없는 고도성장을 달성했다. 수출 증가로 아세안의 대외의존도는 급격히 상승했는데, 인도네시아와 미얀마를 제외한 대부분 아세안 국가의 수출의존도(수출/GDP)는 한국의 그것보다 더 높아질 정도였다. 고도성장에 따른 버블을 효과적으로 관리하지 못하면서 아세안은 외환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이를 역내 통합과 아세안+3 체제 구축이라는 동아시아 질서 개편을 통해 극복했다. 아세안은 2015년 아세안공동체 발족을 대내외에 선언했다. 아세안공동체의 중심인 경제공동체는 아세안 전체를 단일 시장이나 단일 생산기지로 육성한다는 것이다. 기업은 규모의 경제를 누릴 수 있고, 이는 또 새로운 투자를 유도할 것이라고 봤다. 아세안의 교역은 1980-90년대에는, 아세안 역내, 미국, 그리고 일본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중국이 새로운 교역 대상지역으로 중요해졌다. 다음의 [그림 1]에 의하면 아세안공동체가 출범한 2015년 당시 아세안의 교역은 23.6%가 아세안 자체 내에서 이뤄지고 있었고, 중국과 16%, 미국과 9.3%, 그리고 EU와 8.9% 등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2024년 현재 아세안 자체 교역은 21.4%로 하락했고, 미국과는 11.8%로 증가했고, EU와의 교역은 7.6%로 하락했다. 그림에는 표시되지 않았으나 일본과의 교역은 2015년 8.9%에서 2024년 6.2%로 하락했다. 주요 교역대상국 중 중국과 미국만이 그 비중이 증가했는데 중국과의 교역 비중이 특히 많이 증가했다.  [그림 1. 아세안의 주요 교역 대상]   출처: 아세안 사무국 (https://asean.org/) 자료를 토대로 저자가 직접 작성함.  중국 통계에 따르면 중국은 2024년 아세안에 5,862억 달러의 상품을 수출했고, 3,965억 달러의 상품을 수입했다. 2020년에 중국의 수출은 3,837억 달러, 수입은 3,004억 달러였으니 4년 동안 수출은 52.8%, 수입은 32.0% 증가했다. 즉 아세안에서는 대중국 수출보다 수입이 더 많이 증가했다. 이 때문에 이 기간 중국의 대아세안 무역수지 흑자는 833억 달러에서 1,898억달러로 증가했다. 아세안 통계로 보면 대중국 교역은 전체 수출에서 2024년 현재 14.9%이며, 수입에서는 25.4%이다. 중국에 대한 수출입 비중이 2015년에는 각각 12.4%와 19.8%였는데, 수출 비중은 기복을 보이고 있으나 수입 비중은 일관되게 증가했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그림 2] 참조). 이처럼 수출입에서 아세안과 중국은 통합도가 심화하고 있는데, 구조적으로는 수입의존도가 수출의존도에 비해서 훨씬 높다. 그 때문에 아세안의 대중국 무역수지 적자는 급증하면서, 중국과 불균형적인 통합이 심화되고 있다. [그림 2. 아세안의 대중국 수출입 비중]  출처: 아세안 사무국(https://asean.org/) 자료를 토대로 저자가 직접 작성함. 아세안과 중국의 교역 관계가 정상화된 1990년대 이후 상황을 돌아보면, 초기에는 중국의 노동집약적 경공업이 아세안으로 유입되었다. 가전제품, 오토바이, 섬유제품 등이 아세안의 주요 수입품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중국의 아세안 수출 상품은 소재, 부품, 장비 등이 추가되었고, 특히 트럼프 1기의 미중갈등 이후에 이러한 경향은 더욱 두드러졌다. 그러나 지난 10여 년 기간에 중국과 아세안의 교역 상품의 구조는 별로 변하지 않았다. 반도체, 무선전화기, 석유제품, 디스플레이, 컴퓨터제품 및 부품, 전자제품, 철강, 섬유직물 등이 주요한 교역제품이다. 반도체의 경우 중국은 아세안 대부분에게 수출하고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 등에서 많이 수입한다. 반도체 제품이 워낙 다양하고 공정이 복잡하여, 양측은 상호 비교우위 분야에 특화하고 있다. 다른 전자제품의 경우 주로 중국은 부품을 수출하고 아세안은 완제품을 수출한다. 다만 무선전화기의 경우 중국이 아세안 각국에 가성비 좋은 중국 상표의 전화기를 거의 일방적으로 수출하고 있다. 캄보디아 및 인도네시아 등 상대적으로 섬유산업의 비중이 높은 나라는 섬유직물을 중국에서 대량 수입하고 있다. 대신 인도네시아는 석탄을 중국에 수출하고 팜오일은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가 중요한 공급지이다. (2) 아세안-중국 통합의 배경 아세안이 중국에 대해 불평등한 통합이 심화하는 이유는 몇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는 가장 근본적인 요인인데, 아세안의 발전모델 성격에서 유래하는 중간재 산업이 지닌 취약성이다.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아세안은 경제성장을 위해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여 수출산업을 육성했다. 아세안은 자본과 기술을 축적하고 고용과 수출을 창출하기 위해 다국적 기업에 일정 역할을 위탁한 것이다. 따라서 아세안에 진출한 초기의 다국적기업은 가치사슬에서 부가가치 창출효과가 가장 낮은 조립 제조업에 특화하고 있고. 부가가치가 높은 R&D 등 제품의 기획, 개발, 마케팅 등은 다국적기업의 본사가 담당하는 것이 보통이다. 다국적기업은 완제품 조립에 필요한 부품과 소재를 중간재 산업이 발달하지 않은 아세안에서 조달하지 못하고, 외국에서 수입하게 되는데 공급국으로서 중국이 점점 중요해진 것이다. 시간 경과에 따라 아세안이 자체 기업을 육성하거나 다국적기업을 장려하여 또한 부가가치가 높은 가치사슬 분야로 경제 활동을 이전하거나 조립에 필요한 부품, 소재 등의 생산을 늘리도록 해야 했다. 이러한 고도화는 상당한 기술역량, R&D 능력, 아이디어가 넘치는 기업가가 갖추어 져야 하지만 아세안은 이를 육성하지 못했다. 결국 다국적기업은 계속 조립부문에 치중하게 되고 지리적으로 가깝거나 다국적기업이 네트워크를 갖고 있는 그리고 가성비 높은 제품을 공급할 수 있는 중국이 중간재 공급국이 된 것이다. 둘째, 미중 관계 악화의 결과가 아세안의 대중국 의존도 증가의 외형적 요인이 된다. 트럼프 1기에서 미중 무역 갈등이 발생했을 때 중국과 유사한 상품을 수출하는 아세안이 가격경쟁력을 제고하면서 중국의 대미수출을 상당 부분 대체할 것으로 평가되었다. 실제로 아세안의 수출에서 미국 시장의 비중은 트럼프 1기가 시작된 2017년 10.8%에서 2024년 16.0%로 대폭 증가하여 일반적 평가가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 결과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베트남이 미국 무역적자 15대 상위국에 포함될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대미수출의 증대만큼 아세안 내에서 서플라이 체인이 양과 질로 따라오지 못했기 때문에 단기적으로아세안은 중간재를 외국에서 수입해야 했다. 가장 좋은 공급국이 바로 중국이었다. 또한 미국의 대중국 무역압력은 중국기업의 대아세안 투자를 늘렸다. 중국에서 직접 미국에 수출하기보다는 우회로를 찾아 아세안에 투자를 늘린 것이다. 아세안 통계를 기준으로 2015년 아세안에 유입된 중국기업의 투자는 66억 달러였고, 코로나로 기복은 있었으나 2023년에는 176억 달러로 급증했다. 중국 통계를 기준으로도 2018년 136억 달러였던 대아세안 투자는 2023년 251억 달러로 증가했다. 중국의 아세안 투자는 제조업 비중이 40% 이상에 이른다. 중국 제조업체가 활발하게 진출하는 국가는 인도네시아, 베트남, 말레이시아, 태국 등이며 전기차, 전자, 섬유 등이 주요한 분야였다. 미국에 수출하기 위해 아세안에 진출한 중국기업이 현지에서 부품, 소재, 장비 등 중간재 산업의 공급망을 단기간에 구비하기는 어렵다. 이들은 결국 모기업이나 중국의 다른 기업으로부터 중간재를 수입하지 않을 수 없다. 대미 수출증가가 대중국 수입증가로 나타나는 현저한 사례는 베트남이다. 아세안 최대의 생산기지인 베트남은 미중무역전쟁이 발발한 2018년 총수출 중에서 미국에 19.5%를 수출했으나, 미중무역마찰 기간에 급속히 증가해서 미국 비중은 2022년 29.5%까지 증가했고, 2024년에도 29.6%에 이르게 되었다. 이와 같은 대미수출의 급증으로 미국의 대베트남 무역적자는 2018년 395억 달러에서 2024년에는 1,235억 달러가 되었다. 베트남은 미국의 3위의 적자국이 되었는데 트럼프 2기 정부가 베트남에 46%의 고관세율 부과하겠다고 선언한 이유이기도 하다. 베트남의 대미흑자는 그대로 대중국 적자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관계에 있다. 베트남은 수출상품을 제조하기 위한 부품과 소재의 수입을 증대시켜야 했는데 이 중의 상당 부분이 중국으로부터 왔다. 그 결과 2018년 27.7%였던 대중국 수입 비율은 대미수출의 증가보다 더 높은 비율로 증가하여 2024년에는 38.0%로 증가했다. 중국의 대베트남 무역수지 흑자는 2018년 294억 달러, 2022년 697억 달러 그리고 2024년에는 633억 달러로 증가했다. 물론 이러한 수입의 증가 현상은 단기에 급증한 중국기업의 대베트남 투자기업이 중국에서 중간재를 조달한 것도 한 이유이지만 근본적으로는 기존에 베트남에서 생산활동을 하던 다국적기업이 중간재 조달이 용이한 중국을 이용한 결과이다. [그림 3. 베트남의 대미수출과 대중 수입 비중 추이]   출처: 베트남 통계청(https://www.gso.gov.vn/en/homepage/) 자료를 토대로 저자가 직접 작성함.  3. 아세안 경제에 미치는 영향 아세안과 중국의 통합 심화는 아세안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아세안  역내통합의 지체이다. 아세안은 1992년 자유무역지대를 창설 이후 점진적 과정을 거쳐 2015년 아세안경제공동체의 출범을 대외에 천명했다. 회원국 사이에 관세는 사라졌으며 자본의 이동도 자유로워졌다. 그렇지만 공동체가 출범한 2015년 역내 수출비율은 24.5%에서 2024년 22.5%로 하락했고, 수입비율도 같은 기간 22.5%에서 20.3%로 하락했다(<그림 4>참조). 과거 아세안 역내 교역에서 싱가포르가 중계항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나 이제 그 역할이 다소 감소했고, 지난 10여 년 이상 아세안 제2의 무역국으로 성장한 베트남도 중국, 한국, 일본 등에서 조달한 중간재를 단순 조립한 후 비아세안지역에 수출하기 때문에 아세안 역내 교역 증가에 별로 기여하지 못했다. 이 점에서 아세안 역내교역을 증대할 계기가 보이지 않는다. [그림 4. 아세안 역내 수출입 비중 추이]  출처: 아세안 사무국(https://asean.org/) 자료를 토대로 저자가 직접 작성함.아세안 경제통합의 이완은 아세안에 많은 문제를 일으키는데, 먼저 전략적 차원에서 아세안의 대외 협상력이 축소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아세안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중일을 포함한 아세안+3 협력체제가 가동할 때 협력체제 구축의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아세안 중심성(Asean Centrality)’을 주창하고 이를 실현해 왔다. 아세안은 내년부터 실행할 2045년 청사진에서 동아시아의 중심적 역할에서 나아가 세계 무대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겠다고 선언할 것으로 보인다. 아세안의 통합이 지체되면서 아세안 회원국 사이의 단일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아세안 통합의 기대이익이 크지 않다면 외곽의 회원국으로부터 충성심을 유도하기 어렵다. 실제로 라오스, 캄보디아, 미얀마는 아직도 최빈국의 생활 수준에 머물고 있으며, 앞으로도 시장규모와 인력 수준으로 볼 때 경쟁력 있는 제조업 육성은 쉽지 않아 보인다. 이들은 중국의 아세안에 대한 영향력 확대가 바람직스럽다고 여기지 않은 상태에서도 중국이 주는 유무형의 편익을 기대하고 중국으로 경도하지 않을 수 없고 아세안 통합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싱가포르의 국책연구기관인 ISEAS(ISEAS–Yusof Ishak Institute)는 매년 아세안 여론 주도층을 대상으로 아세안과 관련된 다양한 측면에 대해 인식조사를 하고 있는데, 2025년 초의 조사 결과는 매우 흥미롭다. ”아세안에 대해 가장 우려되는 사항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5개의 응답 중 ”아세안이 느리고 비효율적이어서 유동적인 정치 및 경제 발전에 대처할 수 없으며 새로운 세계 질서에서 무의미해지고 있다“가 35%로 가장 높은 비중을 보였고, ”ASEAN이 주요 강대국 경쟁의 장이 되고 있으며 회원국들은 주요 강대국의 대리인이 될 수 있다“가 29.8%로 2위의 우려사항이라는 답이 나왔다. 모두 아세안의 응집력 결여와 대외협상력의 저하와 관련된 우려였다.(Seah, S. et al. 2025.p.18) 둘째, 중국과의 통합 심화로 인해 아세안의 지속적 성장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먼저 제조업의 고도화가 어려워질 것이다. 조립 생산에 치중하는 아세안은 오랫동안 소재, 부품, 장비 산업 육성을 중요한 과제로 생각해 왔다. 그러나 중국이 가성비 높은 소재, 부품, 장비 제품을 아세안에 쏟아내면서 아세안의 중간재 산업 육성은 쉽지 않았다. 아세안에서 취약한 소재, 부품, 장비 산업 분야에서 국내 기업인이 창업한다고 해도 중국제품과 경쟁하기 어려워진다. 베트남의 하노이 인근에는 많은 다국적 전자 조립업체들이 진출하고 있는데, 이 지역이 중국에서 부품과 소재를 조달하기 쉽다는 점이 작용하고 있다. 나아가 트럼프 2기에서 더욱 격화된 미중 갈등으로 이제 중국은 제3의 완제품 수출시장을 찾아야 한다. 이제 중국의 완제품 기업은 내수부진과 대미수출 부진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아세안에 수출을 확대할 것이고, 아세안은 품질 좋은 저가의 중국 공산품 유입을 목격해야 할 것이다. 아세안에서 다국적기업은 전자, 자동차 등 내구소비재 분야의 제품을 조립하고 있고, 아세안 자체 기업인들은 대개 섬유, 의류, 식품 등에 진출해 있다. 이제 중국제품은 이런 분야에도 저가로 수출을 확대한다면 아세안 현지 기업에게 타격을 줄 수 있다. 이러한 제조업 분야의 압박은 아세안 국가들의 교역조건 개선을 어렵게 한다. 아세안이 국제분업 체제에서 대량생산이 가능한 조립제조업에 치중하고 있는 한 수출상품은 가격경쟁력을 기반으로 해외시장에 진출해야 한다. 또한 중국의 완제품 수입에도 경쟁해야 한다. 이를 고려하면 아세안의 통화가치가 높아지기 어렵다. 이 점은 왜 말레이시아, 태국 등이 고도의 제조업 수출국가로 성장했으면서도 1인당 GDP는 계속 중진국 수준에 머무는 ‘중진국 함정’에 빠진이유이기도 하다. 앞으로도 이들은 중진국 함정을 쉽게 벗어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아세안 경제가 중국과 통합되는 사실은 아세안 기업인들도 이미 잘 인식하고 있다. 일본의 일본무역진흥기구(Japan External Trade Organization, JETRO)가 2022년 아세안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는 흥미로운 결과를 보여준다. 조사의 목적은 아세안 재계의 일본에 대한 인식조사이지만 질문 중의 하나로, 향후 10년 기간에 아세안의 무역과 투자를 장악할 국가는 어느 나라인가인데 중국이라고 답한 비율은 69.5%로서 2위인 일본이라고 답한 비율 12.6%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았다([그림 5] 참조). [그림 5. 향후 10년 동안 아세안의 무역 및 투자를 장악할 국가는?]  자료: JETRO, Business Sentiment Survey Report: Perception of ASEAN Businesses Towards Japan 2022. p. 24.4. 우리가 얻을 시사점 아세안-중국의 교역관계 심화, 그에 따른 중국에 대한 아세안 경제의 불균형적인 통합에 대해 우리는 어떤 대응을 해야 할 것인가?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는데 그 하나는 아세안의 향후 대응에 대한 아세안과의 협력이고, 다른 하나는 동아시아 전체의 변화 과정에서 우리의 대응이다.  먼저 아세안은 중국으로부터 독립적인 경쟁력을 갖춘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아세안은 어떤 전략을 써야 할 것인가는 자명하다. 쉽지 않겠지만 아세안 제조업을 조립분야에서 부가가치가 높은 소재, 부품 등 중간재 생산으로 이전하고 제품개발을 위한 R&D 투자를 확대하는 것이다. 과거 아세안은 일본의 시장이었고, 현재는 중국의 시장을 변했다. 우리는 아세안에서 기회를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일본기업의 존재를 넘어설 수 없었고, 현재도중국기업의 공세를 이겨내기 쉽지 않다. 우리는 일본과 중국기업이 진출하기 이전에 베트남 시장에 먼저 진출하여 베트남의 발전에 기여해 왔다. 그러나 이제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의 중간재 산업 개발 노력에서 기회를 발굴해야 한다. 소재 및 부품 산업에서우리의 대아세안 투자를 확대하고 이들을 정착시킬 수 있도록 아세안 각국과 협력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R&D 협력, 인력 양성 등에서도 기회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지난 정부에서 신남방정책을 통해 아세안과 우호적인 관계를 모색했던 바가 있다. 다시 한번 새로운 신남방정책을 실시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또한 트럼프 2기에서 아세안은 또 다른 도전에 직면해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미국이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국가들을 겨냥해 높은 관세를 부과할 예정이다. 베트남,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등은 미국의 주요 타겟이 되고 있다. 중국,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들도 동일하다. 미국 시장의 장벽이 높아지면서 수출지향적 경제구조를 가진 동아시아는 새로운 시장을 찾아야 하고 역내에서 일정한 시장을 찾아야 한다. 이 점에서 중국, 아세안, 다소 멀리 있지만 인도까지 경제협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한동안 잊고 있었던 동아시아 전체의 통합에 대해 다시 한번 노력해 볼 필요가 있다. 아세안의 인구는 가까운 시간에 7억 명에 이를 것이고, 중국과 인도가 각각 14억의 인구를 갖고 있다. 이 자체가 거대한 시장이다.아시아 각국이 시장을 더욱 개방하고 비교우위에 입각한 분업체제를 구축해 간다면 미국에서 오는 부정적 효과를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아세안+3이든 동아시아정상회의체제(East Asia Summit, EAS)이든 다시 한번 동아시아 협력의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1) JETRO(2022). Business Sentiment Survey Report: Perception of ASEAN Businesses Towards Japan, https://www.jetro.go.jp/ext_images/en/reports/survey/pdf/202208.pdf. 2) Seah, S. et al.,(2025). ”The State of Southeast Asia: 2025 Survey Report,“ ISEAS - Yusof Ishak Institute, https://www.iseas.edu.sg/centres/asean-studies-centre/state-of-southeast-asia-survey/the-state-of-southeast-asia-2025-survey-report/.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기획자: 강영훈 제주평화연구원 원장, 편집 : 제주평화연구원 이혜진 연구원 박번순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원 연구위원 )  오랫동안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연구생활을했고, 고려대학교에서 경제학을 가르쳤다. 고려대학교 퇴직 후 현재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연구분야는 아세안경제, 동아시아 경제통합이다. “아시아 경제 힘의 이동”, “하나의 동아시아”, “아세안의 시간” 외에 다수의 저서를 냈으며, “중국의 부상과 아시아의 대응”, “중국기업 대해부”, “신남방정책 평가와 개선방향” 등의 대표 필자로 활동했다. answeodls 정부 시기 신남방정책위원회의 위원을 지냈으며, “아세안의 시간”으로 2020년 매일경제신문사의 정진기언론문화상 도서부문 대상을 받았다.
  • [JPI PeaceNet]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중동 정책과 한국에 주는 함의
    저자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
    발간호
    2025-1
    [기획자 註]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재당선됨에 따라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앞세운 대외 정책을 1기 행정부보다 더 강력하게 추진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으며, 이는 이미 복합 위기를 겪고 있는 글로벌 정세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고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중동 지역 정책을 살펴봄으로써 향후 중동 지역에서 예상되는 변화가 한국 외교에 미치는 함의를 살펴보고 이에 대응하는 방안을 고찰해보고자 한다 [기획: 강영훈 원장(yhkang@jpi.or.kr)] 2025년 트럼프의 귀환과 중동의 불확실성 증폭 2025년 1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2기 행정부가 출범했다. 분쟁이 끊이지 않는 중동에서 불확실성과 혼란이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의 기조 아래 지불 능력을 우선시하는 동맹관, 폭탄선언에 가까운 충동적 결정, 후속 대안 없이 기존 정책을 폐기하는 방식 등으로 중동에는 바람 잘 날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핵 다자 합의(JCPOA) 전격 파기, 이란 혁명수비대 최고 사령관 암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하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242호 위반, 시리아 골란고원을 이스라엘의 영토로 인정하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497호 위반, 워싱턴 주재 팔레스타인 해방 기구(PLO) 대표부 및 팔레스타인 주재 미 영사관 폐쇄, 우방인 쿠르드계 시리아 민병대를 향한 튀르키예군의 공격 방조, 우방인 아프가니스탄 정부를 배제한 채 탈레반과 단독 평화 협정 체결, 중동 권위주의 리더들과 기이한 친분 과시 등 좌충우돌 외교 안보 기행을 선보였다. 그런 트럼프 후보가 2024년 대선 캠페인에서는 중동 이슈를 별로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자신이 대통령이었다면 중동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전화 한 통으로 전쟁을 당장 끝낼 수도 있다고는 호언장담했다. 공화당의 공식 공약집도 ‘이스라엘과 함께 중동 평화를 추구할 것’이라는 간단한 내용만 담았다.1) 트럼프 후보는 대중에게 피로도가 높은 이스라엘·하마스·헤즈볼라 전쟁 대신 인플레이션, 불법 이민 등 조 바이든 행정부의 실패를 부각할 수 있는 국내 문제에 집중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임기 동안 치솟는 물가를 잡지 못하고 사회 분열을 봉합하지도 못해 우유부단한 이미지였다. 사실 미국 대선 캠페인 과정에서 후보들이 내세운 중동 관련 공약은 당선 이후 크게 바뀌고는 하여 사전에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 지역의 불안정한 특성상 취임 이후 역내 정세가 급변하기 때문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인권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역설하며 사우디아라비아를 수준 이하의 ‘왕따’ 국가로 불렀으나 정작 재임 기간에는 호의적인 태도를 유지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나면서 사우디아라비아에 원유 증산과 대러 제재 동참을 부탁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의 돌변에 차갑게 반응했고 바이든 행정부는 탈중동 정책 선언마저 뒤집으며 역내 안정에 대한 헌신을 강조하고 사우디아라비아의 협력을 끌어내기 위해 애썼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2008년 대선 캠페인에서 이라크에 주둔 중인 ‘우리 아들과 딸’ 미군을 즉각 데려오겠다고 공약했고, 2011년 이를 실행에 옮겼다. 그러나 2014년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 조직 ISIS가 갑작스럽게 등장하며 세력을 확장하자, 이에 맞서기 위해 다시 이라크에 미군을 파병할 수밖에 없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중동 정책은 앞으로 역내 변화에 맞춰 모양을 갖춰갈 것이다. 대선 캠페인에서는 구체적인 중동 공약이 제시되지 않았으며, 취임 연설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하마스에 억류되었던 이스라엘 인질 석방을 환영하며 ‘모든 전쟁을 끝내겠다’라는 원론적인 견해를 밝혔다. 가자지구에 대해서는 ‘해안가에 있는 최고의 날씨를 가진 놀라운 장소’라고 표현하며, 재건의 잠재력을 암시하는 언급만 했다. 취임식 2주 후 트럼프 대통령은 느닷없이 가자지구를 인수하고 팔레스타인 주민을 이웃 아랍 국가로 이주시키겠다는 구상을 밝혔으나, 곧 서두를 필요가 없다며 입장을 번복하기도 했다.2) 트럼프 2기의 중동 정책 전망: 이란 강경파 최대 압박, 이스라엘 우파 전폭 지지, 걸프 산유국과 안보 협력 강화, 탈중동 전격 시행, 이스라엘·사우디아라비아 수교 적극 중재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2017~2021년 임기 동안 자신만의 뚜렷한 중동 정책을 펼친 경험이 있어 이를 바탕으로 2기 행정부의 정책 방향을 예상해 볼 수 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중동의 동맹 우방국과 국제사회가 아닌, 개인의 정치적 이해관계와 국내 지지층 결집을 목표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 만들겠다며 배타적 민족주의를 노골적으로 선동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입법·사법·행정부를 장악하고 대통령의 코드에 맞는 충성파로 내각을 채우고 있기에 더 강력해진 ‘트럼피즘’을 선보일 것이다. 이란의 핵 개발과 역내 친이란 무장 프록시 조직 재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아랍 걸프 산유국과의 안보 협력, 미국의 탈중동 정책 등을 둘러싸고 거래식 외교·신고립주의·보호주의를 전면에 내세운 정책을 펼칠 가능성이 크다. 우선,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의 핵 개발과 팽창주의에 대해 최대 압박 접근법을 선호한다. 특히 미국 대통령 선거 캠페인 기간 이란 혁명수비대의 트럼프 후보 암살 모의가 발각되고, 이란 해커들이 트럼프 후보의 자료를 해킹해 민주당 선거 캠프 관계자에게 전달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대이란 압박 수위는 최고조에 이를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재임 시절 이란 핵 합의를 파기하고 고강도 제재를 단행했으며, 레바논·가자지구·시리아·이라크·예멘 등에서 프록시 육성에 매진해 온 이란 혁명수비대의 최고 실세인 가셈 솔레이 마니 사령관을 암살했다. 결국 이란 내 온건 개혁파의 입지는 극도로 위축되었고, 강경 보수파가 득세하면서 이란의 군사 모험주의는 더욱 강화되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2024년 5월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이란은 이론적으로 핵무기 3기를 제조할 수 있는 능력에 가까워졌다고 평가된다.3) 이에 따라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외교적 방법보다는 고강도 제재와 군사적 수단을 통해 이를 저지하려 들 것이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캠페인에서 이란과 거래의 문은 언제나 활짝 열려 있다며 즉흥적인 협상 가능성을 내비치기도 했다. 전례 없는 압박 전략을 추구하면서도 필요에 따라 기습적인 외교적 돌파구를 모색할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다음으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둘러싸고 트럼프 대통령은 강경 우파 성향의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그의 안보 포퓰리즘 정책을 적극 지지한다. 작년 미국 대선 TV 토론에서도 ‘해리스가 당선되면 이스라엘이 사라질 것’이라면서 네타냐후 총리와 극우 정치인의 사임을 압박하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또 2024년 7월 선거 캠페인 중 네타냐후 총리와의 통화에서 ‘자신의 취임식이 열릴 2025년 1월 20일 전까지 전쟁을 끝내라’라고 주문했다.4) 작년 11월 초 트럼프 후보의 당선이 확정되자 네타냐후 총리는 하마스와의 휴전 협정을 서둘렀고 결국 2025년 1월 15일, 15개월간의 전쟁 끝에 휴전 협정이 전격적으로 체결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가자지구 재건과 관련해 이스라엘의 입장을 적극 옹호하는 한편 걸프 산유국에게 재정 지원을 요구할 것이다. 반면 가자지구에 대한 인도적 지원이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역량 강화에는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은 사우디아라비아를 포함한 걸프 산유국과의 군사 안보 협력에 매우 우호적이다. 이들 산유국도 미국산 무기 수입 및 방산 협력에서 지불 능력에 근거한 거래주의 방식에 큰 불편 없이 호응할 것이며, 트럼프 대통령은 이들 국가에 인권과 민주주의 원칙을 압박하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 대통령의 첫 해외 순방지가 사우디아라비아였던 만큼, 양측의 관계는 이미 상당히 돈독하다. 2018년에는 사우디아라비아 정보국 요원들이 이스탄불 주재 자국 총영사관에서 반정부 언론인인 자말 카슈끄지를 잔혹하게 살해하자 국제사회는 사우디아라비아 왕실을 거세게 비난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사업 및 무기 거래가 매우 중요하다며 미 의회의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무기 금수와 제재 요구를 거부했다. 그러나 트럼프 패밀리와 사우디아라비아 왕실 간의 사적 친분에도 양국 사이가 늘 원만했던 것은 아니다. 2019년 이란의 프록시인 예멘 후티 반군이 미사일과 드론을 동원해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 시설을 대거 공격했을 때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의 강력한 대응을 기대했지만, 트럼프 1기 행정부는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당시 후티 반군의 공격은 1991년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이 쿠웨이트의 정유 시설을 공격한 이래 국제 원유 시장을 마비시킨 가장 큰 도발이었다. 이 사건 이후 사우디아라비아뿐만 아니라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등 걸프 산유국은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 없다고 판단해 외교 안보 다변화 정책을 추진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와 걸프 산유국은 경제 실용주의에 기반한 협력을 이어갈 것이지만, 걸프 국가는 더는 미국에만 의존하지는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역내 동맹 우방국이 직면한 군사 위협을 크게 고려하지 않은 채 미국의 탈중동 정책을 밀어붙일 것이다. 2025년에는 이라크에 주둔한 약 2,500명, 시리아에 주둔한 약 900명의 미군이 신속히 철수할 것으로 예상하며 철군 이후 이라크 내 이란 혁명수비대의 영향력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2019년 트럼프 대통령은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시리아 주둔 미군 병력을 대폭 감축했고 동시에 반ISIS 국제 연합 전선에서 핵심 지상군 역할을 했던 쿠르드계 시리아 민병대인 인민수비대에 대한 지원을 중단했다. 철군과 지원 중단이 이루어진 지 불과 사흘 만에 튀르키예군이 시리아 국경을 넘어 미국의 우방이었던 인민수비대를 공격했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사실상 방관했다. 반면 며칠 후 트럼프 대통령은 사우디아라비아가 적정 수준의 비용 지급을 약속했다며 사우디아라비아에 추가 미군 파병과 첨단무기 배치 계획을 발표했다. 2020년에는 미국의 우방인 아프가니스탄 정부를 배제한 채 카타르에서 탈레반과 평화 협정을 체결하며 철군을 준비했는데 이는 결국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재집권하는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했다. 더불어 트럼프 대통령은 1기 집권 기간 ‘21세기 술탄’으로 불리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을 자신의 ‘터프 가이’ 친구라며 치켜세웠고, G7 회의장에서 이집트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탄압한 압둘 팟타흐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독재자’로 부르며 친근감을 표했다.5) 2019년 에르도안 대통령의 가족이 연루된 튀르키예 국영 은행 할크방크에 대한 미 검찰의 이란 돈세탁 공모 혐의 기소를 보류했으며, 튀르키예의 러시아제 S-400 지대공 미사일 시스템 도입에 대한 미 의회의 초당적인 제재 요구도 막아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도 이러한 기조가 계속되면 미 동맹 우방국의 안보 불안은 더욱 커질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 1기 행정부의 중동 정책에도 중요한 업적은 있다. 바로 기념비적인 아랍·이스라엘 데탕트를 가져온 ‘아브라함 협정(Abraham Accords)’ 체결 과정에서 성공적인 중재역할을 한 것이다. 2020년 수니파 아랍 국가 아랍에미리트와 유대 국가인 이스라엘이 국교 수립에 깜짝 합의했고, 곧 바레인까지 참여해 백악관에서 역사적인 협정식이 개최됐다. 아브라함 협정은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이자 백악관 선임 고문이던 재러드 쿠슈너가 설계했고, 구시대적인 민족주의를 넘어선 새로운 연대로 평가받는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중동의 평화와 안보를 증진하는 구상이라며 환영했고 바이든 후임 행정부도 협정에 대한 강한 지지를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브라함 협정을 자신의 자랑스러운 치적으로 여기고 있으며, 이번에도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 간 관계 정상화를 성사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설 것이다. 수니파의 대표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산업 다각화, 사회 개방화, 외교 안보 다변화를 목표로 정권의 사활을 걸고 국가 개조 프로젝트를 추진해 왔다. 그러나 미국의 탈중동 선언과 시아파 종주국 이란의 팽창주의를 개혁 성공의 걸림돌이자 정권 생존을 위협 요소로 인식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사우디아라비아가 이스라엘과의 수교를 고려하는 것은 미국의 공백을 대비하고 이란을 견제하기 위한 안보 자구책의 일환이다. 또한 이스라엘의 혁신 기술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첨단산업 육성과 청년 일자리 창출에 이바지할 수 있어 경제·안보 이익을 제공할 것이다. 한국의 중동 정책에 주는 함의 현재 미국의 중동 정책은 여러 딜레마에 빠져있다. 최고 우방국이자 유일한 민주주의 국가인 이스라엘을 군사적으로 지원하면서도 이스라엘·이란의 전면전 가능성은 차단해야 하고, 가자지구와 레바논 남부에서 민간인을 보호하면서도 거기에 뿌리내린 친이란 급진 프록시 조직을 소탕해야 하며, 중국을 직접 견제하기 위해 인도 태평양 지역에 역량을 집중하면서도 이 과정에서 실망한 중동의 동맹 우방국이 중국과 밀착하지 않도록 조율해야 한다. 이토록 복잡한 정책 과제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과 2기 행정부의 핵심 인사는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결국 트럼프 2기 행정부 시기 중동은 또다시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크며 역내 질서는 한층 더 요동 칠 것이다. 중동의 불안정은 한국에도 타격이다. 중동, 특히 걸프 산유국은 한국의 최대 석유 공급처이자 구매력 높은 수출시장이다. 한국은 세계 7위 석유 소비국이며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산 석유를 중동산으로 대체하면서 중동 의존도는 72%까지 늘어났다.6) 오일머니 덕에 부유한 걸프협력회의(GCC) 나라들과는 2023년 12월에 FTA를 맺어 경제협력의 절정기를 맞았다. 앞서 살펴봤듯이 걸프 산유국은 외교 안보 다변화에 맹렬히 나서고 있다. 최대 맞수인 이란이 핵 개발과 역내 무장 프록시 육성을 통해 군사 모험주의의 야심을 드러내는데 최대 우방국인 미국은 탈중동 정책에 몰두하기 때문이다. 대대적인 탈석유·탈이슬람 개혁에 성공해 정권의 생존을 보장해야 하는 시기에 이란은 역내 혼란을 조장하고 미국은 인도 태평양에서 중국 견제에만 매달려 왔다. 물론 최근 헤즈볼라의 궤멸, 하마스의 와해, 바샤르 아사드 시리아 독재정권의 몰락 등 친이란 프록시 ‘저항의 축’의 잇따른 붕괴 앞에서 이란은 당분간 팽창주의 행보를 자제하고 한발 물러서 전략적 인내를 감내할 것이다. 더불어 미국의 고강도 제재로 비롯된 경제난과 공포 철권통치가 가져온 민심 이반 때문에 이란의 강경파 지배층은 내부 체제 단속에 더 힘쓸 수밖에 없다. 지난해 이란은 최악의 인플레이션과 실업률 및 환율폭등에 시달렸고7) 국민은 경제적 어려움에도 역내 프록시 조직에 막대한 자금을 제공하는 정권에 격렬히 항의해 왔다. 그러나 이란의 강경파 지배층이 이슬람공화국의 국시인 미국·이스라엘 타도와 이슬람 혁명 수출 및 역내 헤게모니 장악을 포기했을 리는 없다. 이란은 단기적으로 위험회피 전략을 취하면서 프록시 재건을 꾀하고 러시아·중국 반미연대와 더욱 밀착할 것이다. 동시에 핵개발에 집중해 대미 레버리지로 삼을 것이다. 현재 이란 당국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투명성 검증 요구에 불응하고 있고 협력 관련 실무 논의도 중단된 상태다. 따라서 불안에 휩싸인 걸프국들은 위기를 기회로 삼아 미국 무기체계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새로운 시장을 찾아 나섰고 한국과의 협력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대중동 무기 수출은 지난 10년간 10배가량 늘었고 한-GCC FTA 덕에 이 추세는 강화될 것이다. 최근 세계 9위의 무기 수출국으로 급부상한 한국은 천궁 II, K9 자주포 등 K-방산의 수출을 대상국에 대한 기술 이전과 인적자원 개발로 연계해 추진하고 있다. 걸프 산유국이 바라는 자국 방산 역량 강화 전략과 맞아떨어지는 대목이다. 한국 무기체계가 공격적이거나 팽창주의적이지 않고 방어적 성격이 강하다는 평판 역시 긍정적인 역향을 미친다. 또한 이들 국가는 원전 건설에도 높은 관심을 두고 있다. 전례 없이 파격적인 개혁으로 인한 전력 수요 증가에 대비하고 왕실의 품격과 위상을 위해 탄소중립에도 앞장서야 하기 때문이다. 우라늄 농축을 가속하는 이란을 겨냥해 핵심 원자력 기술을 확보하려는 계산 역시 존재한다. 한국은 2009년부터 UAE에서 최초의 사막형 발전소인 바라카 원전을 설계부터 가동까지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곧 대규모 원전 건설에 착수할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러한 한국 기술에 지대한 관심을 보여왔다. 2025년 1월에 한국과 미국이 세계 원전 시장 공동 진출을 위한 약정에 서명하면서 한국의 원전 수출은 더 탄력을 받을 것이다. 단, 한국의 대중동 원조 정책은 취약한 편이다. 한국은 2010년대 중반 이래 평화유지군 활동과 대테러 작전에 참여했고 공적개발원조(ODA) 규모를 확대해 왔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이후 팔레스타인 민간인을 위한 인도적 지원금을 두 차례에 걸쳐 제공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2023년도 OECD 산하 개발원조위원회의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국민총소득 대비 ODA 비중은0.17%로 회원국의 평균인 0.37%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또한 우리의 ODA 규모는 일본의 약 1/6 수준에 불과하고 대중동 ODA 규모는 더 작다.8) 2024년에 이어 올해도 한국의 1인당 국내 총생산이 일본을 앞설 것이라는데 이러한 경제력과 국격에 걸맞은 기여가 모자란 것으로 보인다. 특히 팔레스타인에 대한 인도주의 지원은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걸프 산유국이 아랍과 이슬람 세계에서 대표국의 위상을 유지하기 위해 대단히 신경 쓰는 의제다. 나아가 이란과 이스라엘이 치열하게 벌이는 각축전에서도 역내 정당성 확보와 연관된 핵심 사안이다. 미국 역시 주요 동맹국의 더 큰 기여를 기대하는 분야다. 무엇보다 원조 수혜국에서 기부국으로 전환해 책임감 있고 신뢰받는 글로벌 강국으로 자리매김한 한국은 최악의 인도주의 재앙을 겪은 팔레스타인 주민을 위해 원조와 기부를 늘려야 할 것이다. 1) Kelsey Ables and Frances Vinall, “What to know about Trump’s history of support for Israel,” The Washington Post, November 9, 2024, https://www.washingtonpost.com/world/2024/11/09/trump-on-israel-hamas-war-gaza-netanyahu/. 2) “Trump says he’s in ‘no rush’ to implement plan to take over, redevelop Gaza,” The Times of Isreal, February 7, 2025, https://www.timesofisrael.com/trump-says-hes-in-no-rush-to-implement-plan-to-take-over-redevelop-gaza/. 3) Stephanie Liechtenstein, “Iran further increases its stockpile of uranium enriched to near weapons-grade levels, watchdog says,” AP, May 28, 2024, https://apnews.com/article/iaea-iran-nuclear-enrichment-stockpile-2190f0d7247a6160fb13f28304d4b6ad. 4) Kanishka Singh and Nathan Layne, “Trump says he told Netanyahu to end Gaza war but criticizes ceasefire call,” Reuters, August 16, 2024, https://www.reuters.com/world/netanyahu-denies-report-he-spoke-trump-about-gaza-talks-2024-08-15/. 5) “The strange love-in between Donald Trump and Recep Tayyip Erdogan,“ The Economist, November 14, 2019, https://www.economist.com/united-states/2019/11/14/the-strange-love-in-between-donald-trump-and-recep-tayyip-erdogan. 6) Adel Abdel Ghafar, “South Korea and GCC States: A Growing Partnership,” The Middle East Council on Global Affairs Issue Brief, August 2023, https://mecouncil.org/publication/south-korea-and-gcc-states-a-growing-partnership/. 7) Andreas Becker, “Iran and the cost of a war with Israel,” DW, October 2, 2024, https://www.dw.com/en/iran-and-the-cost-of-a-war-with-israel/a-70385852. 기획자: 강영훈 제주평화연구원 원장, 편집 : 제주평화연구원 이혜진 연구원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 ) 장지향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수석연구위원이자 지역연구센터장이다. 외교부 정책자문위원, 아산서원 교수를 지냈고 현재 산업부, 법무부, 국방부 자문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2018년부터 에 중동 관련 칼럼을 기고하고 있으며 주요 연구 분야는 ‘중동 정치경제’, ‘정치 이슬람’, ‘비교 민주주의와 독재’, ‘극단주의 테러와 안보’, ‘국제개발협력’ 등이다. 대표 연구로는 중동정치를 비교분석한 (시공사, 2023), (아산정책연구원, 2018), 클레멘트 헨리와 공편한 The Arab Spring: Will It Lead to Democratic Transitions? (Palgrave Macmillan, 2013), “Islamic Fundamentalism” (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the Social Sciences 2008) 등이 있다. 한국외국어 대학교에서 문학사, 정치학 석사 학위를, 미국 텍사스 오스틴 대학교(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 [JPI PeaceNet] 2025년 아세안 의장국 말레이시아를 주목할 이유
    저자
    이재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
    발간호
    2024-18
    [기획자 註] 최근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ASEAN의 영향력과 중요성이 하락하고 있다는 우려가 ASEAN 안팎으로 제기되는 가운데 오는 2025년에는 말레이시아가 의장국을 수임할 예정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고는 ASEAN이 현재 당면한 과제들을 분석하고, 이에 대해 말레이시아가 자신의 대외정책 특징인 헤징 전략을 ASEAN에 접목시킬 가능성을 논의하면서 이에 따른 정책적 함의를 도출해보고자 한다. [기획: 강영훈 원장(yhkang@jpi.or.kr)]  2025년 아세안 의장국(ASEAN Chair)은 말레이시아가 맡는다. 최근 수년간 아세안은 다양한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대외적으로 계속 강도를 더하는 미국과 중국 사이 전략 경쟁의 한 가운데 아세안은 던져져 있다. 개별 동남아 국가 차원에서, 그리고 집합적으로 아세안 차원에서 미중 전략 경쟁의 격랑 속에 나아갈 방향을 잡는 것이 쉽지 않다. 동남아 국가들이 모인 지역 기구 차원에서도 아세안은 위기를 맞고 있다. 아세안중심성의 위기로 대표되는 아세안의 위기는 인태 지역 국제 관계에서 아세안이 가진 중요성이 대내외 도전으로 인해 낮아지는 것이 핵심이다.1)  아세안이 위기를 맡고 있는 시점에서 말레이시아에 의장국 순번이 돌아온 것은 여러 가지 차원에서 향후 아세안의 진로를 흥미롭게 한다. 2025년 말레이시아의 의장국 수임은 말레이시아를 포함해 아세안 내에서 목소리가 비교적 큰 국가들이 의장국을 연이어 수임하는 출발점에 있다. 말레이시아 뒤로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의 의장국 순번이 돌아온다. 말레이시아는 아세안 내에서 전통적으로 회원국들을 한자리로 끌어모으는 역할을 해왔다. 아세안의 내적 단결에도 미치는 영향이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말레이시아는 동남아 국가 중에서 강대국 사이 헤징(hedging) 전략에 가장 능한 국가다. 이런 말레이시아가 2025년 한해 아세안을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갈지 주목되는 이유다. 이 글에서는 아세안 의장국이 아세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왜 아세안 의장국이 중요한지에 관한 일반적인 사항을 먼저 살펴본다. 그리고 의장국 말레이시아가 당면한 아세안의 과제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2025년 말레이시아가 자신의 대외정책 특징인 헤징 전략을 어떻게 아세안 내에서 펼 가능성이 있는지, 그리고 이런 말레이시아의 아세안 운영 전략이 어떤 유산을 아세안에 남길지에 대해서 분석한다. 아세안 의장국의 의미와 역할 동남아 지역의 10개국으로 구성된 아세안은 회원국이 1년씩 알파벳 순서로 순번을 정해 돌아가며 의장국을 맡는다. 이에 따라 2024년 라오스에 이어 2025년은 말레이시아가 의장국을 맡게 된다. 이후로 2026년은 필리핀이, 2027년은 싱가포르가, 2028년은 태국이, 그리고 2029년은 베트남이 의장국을 맡는다. 2021년에 쿠데타가 발생한 미얀마는 원래 말레이시아 다음으로 2026년 의장국을 맡을 순번이었으나 아세안 내에서 회원국 간 합의에 의해 2026년 미얀마의 의장국 자격을 사실상 박탈하고 대신 그 다음 차례였던 필리핀이 2026년 의장국을 맡게 되었다. 대체로 더 오래된 회원국, 국력이 큰 국가가 더 큰 영향력을 갖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싱가포르, 필리핀, 그리고 최근 몇 년 사이 베트남이 좀 더 의장국으로 활동적이고 목소리가 큰 편이다. 반면 브루나이,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는 그 반대라고 볼 수 있다. 1년씩 돌아가며 맡는 의장국이므로 큰 의미가 없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아세안이라는 10개국의 지역 협력체를 운영해야 하는 의장국의 부담은 크다. 연간 1,000여건 이상 아세안 내 각급 정부간 회의가 펼쳐지는데 이 회의의 의장을 모두 의장국이 담당해야 한다. 상반기 아세안 정상회의, 그리고 하반기에 있는 아세안 정상회의, 아세안+3 정상회의, 그리고 동아시아정상회의(East Asia Summit, EAS)를 의장국으로 치러내야 한다. 아세안 주도의 아세안안보포럼(ASEAN Regional Forum, ARF)의 의장도 아세안 의장국이 맡는다. 의장국 역할 뿐만 아니라 총 18개국이 모이는 EAS의 경우 각국 정상과 대표단, 취재진을 수용할 호텔과 같은 의장국의 회의 관련 인프라도 문제가 된다. 아세안 의장국은 그 해 아세안의 캐치프레이즈를 설정한다. 이 캐치프레이즈는 의장국이 한 해 아세안을 운영하면서 역점을 둔 사업을 묘사한다. 의장국의 임무로 가장 중요한 사항은 정상회의를 포함한 여러 회의의 의장성명 초안을 만드는 것이다. 물론 회원국 사이 협의와 합의를 중시하는 아세안의 원칙상 의장국이 초안을 만들더라도 의장국 마음대로 성명을 발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아세안 회원국의 합의를 도출해야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안에서 어떤 점을 강조하고 어떤 점을 제외할지에 대해서 일차적으로는 의장국 의사가 반영된다. 간단히 말해 의장국이 어느 정도 아세안 내 어젠다 세팅과 아세안 내 합의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의미다. 혹은 반대로 의장국이 아세안 내 합의를 무시하고 자기 이익을 고집해 아세안 전체에 부정적인 의미에서 영향을 줄 수도 있다. Phnom Penh fiasco라고 알려진 2021년 아세안 외교장관회의가 이런 경우다.2) [표 1. 2020~2025 AEAN 의장국 및 캐치프레이즈]  한편 아세안의 주요 국가, 즉 아세안이 처음 만들어 질 때부터 아세안의 회원국이었던 ASEAN 5(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태국, 싱가포르)는 초창기부터 의장국 수임을 계기로 아세안의 중요한 제도적 변화를 추진하거나 이정표를 남기려는 노력을 해왔다. 특히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는 의장국으로 이런 제도적 흔적을 자주 남겼다. 말레이시아는 1997년 의장국 당시 아세안의 장기 비전인 ASEAN 2020 비전을 주도했고, 2005년에는 EAS의 창설을, 2015년에는 아세안공동체 선언을 의장국으로 맡았다. 2025년 말레이시아 의장국 하에서 향후 20년의 아세안 비전인 아세안공동체비전 2045(ASEAN Community Vision 2045)가 발표될 전망이다. 인도네시아 역시 의장국 계기로 1976년 아세안우호협력조약(ASEAN Amity and Cooperation Treaty, TAC)으로 알려진 발리협약I(Bali Concord I), 2003년 아세안공동체의 기틀이 된 발리협약II, 그리고 2011년 주요 글로벌 이슈에 대한 아세안 단일 입장을 담은 발리협약III을 의장국 자격으로 도출해냈다. 의장국 말레이시아가 당면한 과제 아세안이 내외적으로 당면한 과제는 곧 아세안 의장국인 말레이시아의 당면 과제가 된다. 코로나-19 이후 경제성장 추세의 회복, 새로운 성장 동력의 확보, 미-중 경제전쟁에서 아세안 국가의 생존 등 경제적인 과제도 있겠지만 전략적인 문제에 초점을 맞춘다면 현재 아세안이 마주하는 내외적 과제는 크게 네 가지로 구분된다. 미중 전략 경쟁에 따른 압력이 외적 과제라면 남중국해 문제는 외적 위협과 내적 분열이 복합된 도전이다. 이 외적 도전 과제는 아세안중심성의 재강화라는 명제와 연결된다. 내적으로는 분열된 아세안을 어떻게 통합할 것인가, 특히 미얀마 문제와 남중국해 문제를 둘러싸고 나타나는 이견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가 아세안중심성 강화 과제의 핵심이다. 아세안 단결이라는 내적 결속이 곧 아세안중심성의 강화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미중 경쟁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며 이미 아세안 국가들은 개별적으로, 그리고 집합적으로 미중 경쟁의 맥락에서 자신의 이익을 강화하기 위한 각자의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미중 경쟁이 단순한 전략 경쟁을 넘어서 기술, 경제, 공급망 등 전방위로 확대되면서 아세안 국가들이 마주하는 압력 역시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자국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위치를 정하는데 갈수록 복잡한 함수가 동원된다. 무엇보다 의장국으로 말레이시아가 마주해야 할 2025년 강대국 경쟁이란 변수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미국에서 트럼프 행정부 2기가 등장하는 현실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정책, 특히 트럼프 행정부의 대 동남아 정책에 따른 지역의 세력균형의 변화, 동남아에 가해지는 전략적 압력, 그리고 개별 국가 및 아세안의 이익 확보가 말레이시아의 과제다. 트럼프 행정부 1기는 동남아, 아세안 지역에 대해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중국과 양자 갈등과 경쟁만이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정책 어젠다에 있었을 뿐 중국을 간접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동남아 지역에 대한 최소한의 관여 정책도 없었다. 특히 아세안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아세안 주도의 지역 다자협력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무관심을 넘어서 무시는 아세안 국가와 미국 사이 관계를 크게 저해했다. 지금으로서는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도 이런 1기 대 동남아 정책 방향은 크게 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3) 문제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대 동남아 경시 혹은 무시 정책이 장기적으로 미국의 이 지역에 대한 관여 정책의 근간을 흔들게 되고 그에 따라 미국의 역할에 대해 가졌던 동남아 국가들의 확신도 약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 전개는 아세안 지역에서 아세안 국가들에게 전략적 공간과 자율성을 확보해주던 미국과 중국 사이 힘의 균형, 영향력의 균형의 붕괴를 가져올 수 있다. 이로 인해 동남아 국가들은 특정 강대국 영향권으로 급속히 빨려들어가면서 자율성과 대 강대국 레버리지를 상실할 위험에 처한다. 강대국 경쟁의 맥락과 아세안 내부의 단결 저해의 문제가 함께 나타나는 이슈가 남중국해 문제다. 의장국으로 말레이시아는 중국의 남중국해에서 행동을 통제하며, 미국의 관여를 확보하는 동시에 아세안 내 남중국해 문제 관련 합의를 만들어 내는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특히 수년간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남중국해에서 행동규약(code of conduct) 협상에서 진전을 가져오는 것에 말레이시아는 관심을 보이고 있다.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공격적인 행동은 이미 오래된 일이다. 2024년 중국의 공격적인 행동은 특히 필리핀과 갈등을 많이 빚었다.4) 미국, 일본, 호주 등은 필리핀을 지원하면서 양자, 다자 안보협력을 강화했다. 기존 미국 주도 쿼드(Quad)에 필리핀이 가세하면서 만들어진 S-Quad는 필리핀 입장에서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아세안 회원국 입장에서 강대국의 군사적 관여가 일정한 선을 넘을 경우 아세안 국가들에게 가져올 수 있는 전략적 부담이 있으므로 반드시 바람직한 방향은 아니다. 남중국해 문제에 관한 아세안 회원국 입장이 서로 차이를 보이는 기존 아세안 내 복잡한 상황 위에 최근 S-quad로 대표되는 강대국의 관여 강화는 아세안 내 새로운 분열의 출발점이 되거나 기존 분열의 악화를 가져올 수 있다. 아세안 내 중요 전략적 사안을 놓고 입장의 차이가 점점 명확해지는 상황은 아세안 내적 결속(ASEAN unity)에 분명히 부정적이다. 이런 내적 분열은 아세안의 집단적 행동 가능성을 낮추고 나아가 대외적으로 아세안 중심성이라는 담론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한다.5) 아세안 10개국이 강대국에 대해, 지역 문제의 주요 사안에서 하나의 목소리를 낼 때 아세안의 레버리지는 강화되고 이런 강력한 레버리지는 아세안이 지역 전략 문제에서 중심적인 위치에 놓여야 한다는 아세안중심성 담론을 강화하는데 중요하다. 지난 10여년간 지속적으로 약화된 아세안중심성 담론은 강대국 경쟁, 남중국해 문제 등 내외 변수가 가져온 아세안의 내적 분열로 인해 더욱 악화되고 있다. 2025년 아세안 의장국인 말레이시아가 이 복잡한 문제를 다 해결할 수는 없지만 아세안중심성 약화의 추세를 멈추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정도의 역할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의장국으로 말레이시아 앞에 놓인 문제는 외적 문제뿐만 아니라 내적 분열의 요소인 미얀마 문제도 있다. 미얀마는 2021년 군부에 의한 쿠데타 이후 계속 아세안 전체의 골칫거리로 남아있다. 2021년 쿠데타 직후 아세안 정상들이 모여 미얀마 문제 해결을 위한 5개항의 합의(5 points of consensus)를 만들어 내고 아세안 관련 회의에 미얀마 고위 군부 인사의 참석을 금지한 조치 외에 지난 4년간 미얀마 상황 개선을 위한 효과적 조치를 내놓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아세안 내에서는 미얀마 군부에 대해 보다 비판적인 입장과 수용적인 입장이 나뉘기 시작했고 이는 새로운 아세안내 분열의 씨앗으로 커지고 있다. 특히 미얀마 군부는 2025년 11월 총선을 실시하고 권력을 민간에 이양하겠다는 주장을 하고있다. 군부에 의해 통제된 선거가 될 가능성이 높고 미얀마 민주화, 자유화를 지지하는 세력들은 선거를 보이콧할 자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세안 내에서는 이 선거를 계기로 미얀마의 회원 자격을 정상화하자는 주장이 고개를 들 가능성이 높다. 크게 실질적인 제재 수단도 없으면서 미얀마에 대해서 거리를 두고 있는 현 상황은 미얀마와 다른 아세안 국가의 관계, 아세안 내부의 단결을 위해서 좋지 않다는 주장이다. 물론, 2025년 11월 선거가 치러질 때는 말레이시아의 의장국 지위는 이미 필리핀으로 넘어간 상황이다.6) 하지만 2025년 한해 미얀마 문제, 특히 선거 이후 미얀마와 관계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 말레이시아는 회원국 사이 중지를 모아야 한다. 말레이시아의 전략: 헤징과 내적 합의 만들기 2025년 말레이시아가 아세안의 의장국을 맡으며 가장 주목받는 부분은 헤징의 달인인 말레이시아가 아세안을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갈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현재 아세안이 당면한 과제를 간단히 요약하면 미-중 경쟁 등 강대국 전략 경쟁으로부터 유래한 아세안 중심성의 약화, 아세안 내부 이견으로 인한 아세안 내적 단결의 약화, 이런 단결 약화가 더욱 악화시킨 아세안 중심성의 문제로 요약된다. 대외적으로 강대국 전략 경쟁의 파고를 넘는 일과 내적으로 아세안 내 단합을 다시 도모하는 것으로 말레이시아의 과제는 압축된다. 이런 과제에 직면해 말레이시아는 대외적으로는 헤징 전략을, 대내적으로는 아세안 내 명사를 모은 자문단의 집단적 지혜에 의존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말레이시아는 약소국의 대 강대국 전략을 묘사하는 헤징이라는 말이 만들어지기 훨씬 전부터 경쟁하는 두 강력한 세력, 블록 사이에서 헤징 전략을 효과적으로 구사해왔다. 이런 전략을 통해 국가의 힘이나 크기에 비해 강한 외교력을 가진 국가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독립하기 이전인 1948년부터 독립 직후인 1960년까지 말레이 반도에서 공산주의를 막기 위한 비상통치(Malayan Emergency)를 했을 정도로 냉전 블록에서 말레이시아는 명확히 반공 진영에 속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레이시아는 1970년 비동맹운동에 가입했고 1974년 아직 개혁개방 이전의 중국과 국교를 맺었다. 말레이시아는 초기부터 특정 진영에 포함되어 그 노선을 고수하기 보다는 국가 이익을 위해 서로 경쟁하는 진영을 넘나드는 외교를 펼쳤다. 1981년 집권한 마하티르(Mahathir Mohamad) 총리는 미국 주도의 냉전 블럭 안에서 빠른 경제 성장을 구가하면서도 말레이시아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서방 국가의 대외정책에 대해서는 늘 비판적이었다. 마하티르는 서방문화의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서 꾸준히 비판을 하면서 아시아 국가 경제성장의 이면에는 아시아만의 가치(Asian Values)가 있다고 주장하고 서구식 민주주의를 비판했다. 이런 마하티르의 서구에 대한 비판은 세계화, 1997 아시아 경제위기, 서구의 신식민주의, 서구의 위선에 대한 비판이란 형태로 서방 국가를 겨냥했다. 경제적 친서방, 정치적 반서방의 담론으로 마하티르식 헤징 전략을 취해왔다. 마하티르의 오랜 정적이자 현 총리인 안와르 이브라힘(Anwar Ibrahim) 총리 역시 국내 정치적으로는 마하티르와 대립했을지 모르지만, 대외정책에서는 유사한 태도를 보인다.7) 안와르 총리도 서구적 가치와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대해서 비판하면서 아시아적 가치의 중요성을 언급한다. 특히 미국과 중국 사이 전략 경쟁, 더 나아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수정주의 세력 연대라고 칭해지는 중국-러시아와 그 반대의 미국간 전략경쟁에서 미국에 대한 견제를 위해 중국-러시아와 관계 강화에 적극 나섰다. 하마스-이스라엘 분쟁 이후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미국에 대한 비판은 더욱 강해졌다. 인구 절반 이상이 무슬림인 말레이시아는 정부를 막론하고 무슬림 연대 차원에서 늘 팔레스타인 문제에 큰 관심을 보였고, 팔레스타인을 지지해왔다. 이런 친팔레스타인, 반이스라엘 정책 노선은 현재 안와르 정부에서도 현재 진행형이다. 안와르 총리는 취임 이후 2023년 두 차례, 그리고 2024년 한 차례 중국을 방문했다. 미국은 두 차례 방문했는데 모두 UN 총회, APEC 참석 등 다른 다자회의 계기였다. 안와르 총리 취임 이후 중국과 경제협력도 강화되었다. 더 나아가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말레이시아와 러시아 사이 협력도 활발해졌다. 2024년에 말레이시아는 인도네시아, 베트남, 태국 등과 함께 중국, 러시아가 주도하는 BRICS 회원 가입 신청도 했다.8) 이런 일련의 안와르 정부의 대외정책이 보여주는 것은 말레이시아의 대외정책은 여전히 매우 유연한 강대국 사이 헤징이라는 전통에 충실하다는 점이다. 안와르 행정부가 중국, 러시아와 외교적 거리를 좁히는 것은 미국진영으로부터 이탈이라기보다는 양 진영에 동시에 관여하는 전략이다. 말레이시아 입장에서 미국은 여전히 두 번째로 큰 무역 상대인 동시에 세 번째로 큰 해외직접투자를 말레이시아로 들여오는 국가다.9) 미국과 중국 혹은 미국과 미국에 반대하는 중국-러시아 연합 사이 효과적인 헤징 전략이란 줄타기는 말레이시아가 아세안 의장국으로 역할을 할 때도 그대로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말레이시아가 의장을 맡은 아세안은 어느 특정 강대국 쪽으로 쏠리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미국이든, 중국이든, 러시아든 어떤 세력의 행동이라도 아세안의 이익을 침해하거나 자율성을 침해한다고 판단될 때 아세안 의장국으로 말레이시아는 목소리를 높일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런 말레이시아의 입장이 그대로 아세안의 행동으로 투영되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다른 회원국들의 합의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세안 정상회의, 아세안+3, EAS, ARF, 아세안(확대)외교장관회의 등의 의장성명 초안은 이전에 비해 훨씬 명확한 입장을 드러내고 최종안 역시 이런 의장국의 명확한 입장에 영향을 받을 것이다. 두 번째로, 안와르 총리는 역내 주요 국가의 대외정책에 영향력 있는 인물을 모아 아세안 의장국의 자문단을 구상하고 있다. 12월 16일 안와르 총리는 전 태국 총리 탁신(Thaksin Shinawatra), 전 싱가포르 외교장관 조지 여(George Yeo), 전 인도네시아 외교장관 레트노 마르수디(Retno Marsudi) 등으로 구성된 아세안 의장 자문단을 구성한다는 발표를 했다.10) 아세안 내 주요 국가의 영향력 있는 전 관료, 정치인들로 구성되었다. 레트노는 인도네시아 조코위(Jokowi) 정부에서 외교장관으로 쿠데타 이후 미얀마와 아세안 관계, 그리고 미얀마 내 소수종족인 로힝야(Rohingya) 문제를 오랫동안 다루어 왔다. 조지 여는 아세안 지역에서 명성이 높은 외교관이자 전략가로 아세안의 대 강대국 전략 등의 문제에 정통하다. 한편 탁신은 현 태국 총리인 패통탄(Paetongtan Shinawatra)의 아버지로 과거 총리 시절 아시아협력대화(Asian Cooperation Dialogue)를 시작한 바 있고, 현 총리의 아버지로 태국 대외정책에도 일정한 영향력 행사가 가능하다. 안와르 총리가 이런 일종의 명망가 집단(eminent persons’ group)을 구성한 것은 아세안 의장국으로 말레이시아와 안와르 총리의 결정 혹은 전략 방향이 말레이시아 독단적인 것이 아니라 다른 지역 국가들의 명망가와 협의한 결과라는 점을 앞세우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긍정적으로 보면 아세안 내 중지를 모으려는 것이고 주요 논쟁적 이슈에 대해 이 문제를 다루었던 인사들의 조언을 얻으려는 것으로 볼 수도 있고 부정적으로 보면 이들 전문가 혹은 명망가의 뒤로 말레이시아의 결정을 숨기겠다는 의도로도 읽힐 수 있다. 어쨌든 말레이시아가 의장국으로 골치 아픈 내적 분열의 문제를 헤쳐가기 위해 이런 명망가 집단과 같은 노력이 어떤 결실을 가져올지는 좀 더 두고 지켜볼 문제다. 말레이시아의 아세안 의장국 수임을 앞두고 많은 아세안 전문가들이 말레이시아가 해결해야 할 과제들과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론에 대한 의견을 쏟아내고 있다. 과제가 큰 만큼 1년이라는 의장국 임기가 너무 짧아 그 안에 중차대한 과제를 해결하기 쉽지 않다는 관측도 있다.11) 이는 말레이시아의 한계를 지적하는 관측이라기 보다는 말레이시아가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한 과도한 기대를 경계하는 목소리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말레이시아의 의장국 수임은 그 어느 때보다 복잡한 역내, 역외 전략적 불안정성과 겹친다. 1년이라는 의장국 임기, 그리고 협의와 합의, 주권 존중 및 내정 불간섭이라는 아세안의 내적 질서는 의장국이 할 수 있는 역할을 크게 제한하는 것이 사실이다. 말레이시아는 2025년 의장국으로 앞서 언급한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노력하되, 일단 방향을 설정해 놓고 아세안 내 변화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만으로도 큰 역할을 했다고 향후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2025년 이후 잇달아 의장국을 맡는 필리핀, 태국, 싱가포르, 베트남 등 말레이시아처럼 아세안 내 목소리와 영향력이 큰 회원국들이 과제의 해결을 하나씩 마무리 해가는 기초를 놓는 일도 말레이시아에게는 중요할 것이다.  1) 과거 아세안 밖의 전문가들에 의해 주로 아세안중심성의 위기가 지적되었는데 최근 들어 아세안 전문가 사이에서도 아세안중심성의 위기에 대한 진단이 부쩍 늘고 있다. 대표적으로 Dewi Fortuna Anwar. 2023. “ASEAN Centrality: Opportunities and Challenges” in The Indo-Pacific Theatre: Strategic Visions and Frameworks. Sabani Roy Choudhyry ed. Routledge: London.; Rizal Sukma. 2024. “If ASEAN is to remain central to the region it must deal with its institutional weaknesses” East Asia Forum. 29 September. 2) 2012년 캄보디아가 의장국을 할 당시 아세안외교장관회의(ASEAN Ministers’ Meeting)는 남중국해 문제를 의장성명에 언급하려는 몇몇 아세안 국가와 이를 막으려는 의장국 캄보디아 사이 합의에 실패했고 그 당시까지 진행된 45차례의 아세안외교장관회의 중 처음으로 의장성명을 발표하지 못하고 막을 내렸다. Sabam Siagian. 2012. “Is Phnom Penh fiasco the beginning of end of ASEAN?” GMA News Online. July 17. 3) Hoang Thi Ha and William Choong. “Trump 2.0 Presidency: What Is in Store for Southeast Asia?” Fulcrum. November 20, 2024. 4) Al-Jazeera. “What’s behind Escalating China-Philippines Tensions in the South China Sea?” Al-Jazeera. October 11 , 2024. 5) Joanne Lin and Sharon Seah, “ASEAN’s Unity Under the Microscope” Fulcrum. July 30, 2024. 6) 아세안 의장국은 대개 10월 경 개최되는 하반기 아세안 정상회의를 계기로 차기 의장국에 권한을 넘겨준다. 7) Cheng-Chwee Kuik. 2024. “Explaining Hedging: The Case of Malaysian Equidistance” Contemporary Southeast Asia: A Journal of International and Strategic Affairs. 46: 1. 8) Lam Choong Wah. “Malaysia Bandwagoning with BRICS” East Asia Forum., December 12, 2024. 9) Emir Zainul. “Malaysia’s trade contracts but exceeds RM2 tril for third consecutive year in 2023 — Miti” The Edge. January 19, 2024. 10) Izzah Aqilah Norman. 2024. “Anwar forming advisory team for Malaysia's ASEAN chairmanship; names include Thaksin and reportedly George Yeo” Channel New Asia., December 16, 2024. 11) Elina Noor, “How Malaysia can boost ASEAN agency and centrality amid global challenges” Asia Research Institute, National University of Singapore. December 2, 2024; Shannon Teoh. “Great expectations as Malaysia is set to head ASEAN in 2025” The Straits Times. 31 October.; Angeline Tan and Yanitha Meena Louis. 2024. “Malaysia’s ASEAN chairmanship is a catalyst, not a panacea” The Interpreter. October 16, 2024.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기획자: 강영훈 제주평화연구원 원장, 편집 : 제주평화연구원 이혜진 연구원 이재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 )  이재현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수석연구위원이다. 한국동남아학회 부회장이며, 대통령직속 신남방정책특별위원회 자문위원을 역임했다.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정치학 학사, 동 대학원 정치학과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받고, 호주 Murdoch University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학위 이후, 한국동남아연구소 선임연구원을 거쳐 2012년까지 국립외교원의 외교안보연구소에서 객원교수를 지냈다. 주요 연구분야는 동남아 정치, 아세안, 동아시아 지역협력 등이다. 최근 주요 연구결과물은 다음과 같다. 한국과 아세안의 전략적 공통분모와 신남방정책(2019), 비정형성과 비공식성의 아세안 의사결정(2019), G-Zero 시대 글로벌, 지역 질서와 중견국(2020)
  • [JPI PeaceNet] 미중관계 전망과 한중관계에 대한 함의
    저자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
    발간호
    2024-17
    [기획자 註]  2025년 1월에 출범할 예정인 트럼프 기 행정부 하에서 미중 전략 경쟁은 한층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되며, 이에 따라 한중 관계 역시 크게 영향을 받을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고는 우선 미중 전략 경쟁을 정치·외교, 군사·안보, 그리고 경제·통상 등 분야별로 나누어 살펴본다. 이를 토대로, 현재의 한중 관계를 분야별로 구분하여 살펴본 후, 각 분야별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출범이 어떠한 함의를 지니는지 논의해본다. [기획: 강영훈 원장(yhkang@jpi.or.kr)]  초록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출범과 함께 미‧중 전략적 경쟁은 한층 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두 강대국의 경쟁과 갈등은 한중관계에도 많은 함의를 지닌다. 한중관계는 양국간 현안들과 더불어, 미‧중 전략적 경쟁이 심화되고 다차원적으로 전개되는 대외적인 환경요인으로 인해 최근 정치, 외교‧안보, 경제‧통상은 물론 사회‧문화 분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구조적인 도전 요인에 직면해있다. 이러한 한‧중 간 구조적 도전 요인들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대중국 정책과 이에 대한 중국의 대응에 따라 다시 한번 변화를 맞이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시기에 한층 치열해질 미‧중 전략적 경쟁 구도 하에서 한국은 국익의 확대를 위해 한미동맹의 공고함을 기반으로 한중관계의 발전을 모색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한국은 먼저 한중관계에서 나타난 구조적인 도전 요인, 그리고 양자 간 주요 현안에서의 시각 차이와 이견을 직시하고 해소 또는 관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다음으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대중국 정책과 중국의 대응이 한중관계에 미칠 함의를 분석하고 준비해야 한다. 이 두 가지의 과제들을 풀지 못하면 현재 중국이 실행하는 ‘원만한 관리’를 뛰어넘어 실질적인 한중관계의 개선과 협력을 만들어 가기가 요원하기 때문이다. I. 들어가며 최근까지 미‧중 전략적 경쟁은 심화되어 왔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중국과의 경쟁 구도를 ‘미국 대 중국’에서 ‘자유진영 대 중국’으로 점차 전환해 나가며 우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평가된다. 트럼프 행정부 1기 시기 관세 조치 및 무역 협상을 중심으로 본격적이고 일방적인 압박을 중국에 가했던 미국은 바이든 행정부 취임 이후 동맹과 파트너 국가들과의 협력을 확대하며 한층 구체화되고 다자적인 대중국 압박을 강화해 나갔다. 이로 인해 중국은 다양한 영역에서 ‘안보(安全)’에 대한 우려가 커졌으며, 이러한 중국 공산당 지도부의 우려는 시진핑 지도부 3기가 출범했던 중국 공산당 20차 전국대표대회(이하 20차 당 대회)의 업무 ‘보고’를 통해 대내외에 표출되었다. 현재도 미‧중 전략적 경쟁은 정치‧외교, 경제‧통상, 군사‧안보 등 다양한 영역에서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으며, 특히 2025년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출범과 함께 미‧중 전략적 경쟁은 한층 심화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중국 또한 트럼프 1기 행정부 시기에 비해 2기 행정부 하에서 예상되는 미국의 다양한 압박에 대한 대응을 준비해 왔기 때문에 쉽게 물러서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렇듯 트럼프 2기 행정부 시기에 예상되는 미중관계의 변화는 한중관계에도 많은 함의를 던지고 있다. II 미‧중 전략적 경쟁의 주요 분야별 현황 1. 정치·외교 분야: 인권과 민주주의의 ‘가치’와 ‘체제’의 경쟁 미국은 타이완, 홍콩, 신장 위구르 자치구 등의 상황을 지적하며 중국이 국제사회의 ‘보편적 가치’인 인권과 민주주의를 존중하지 않으며, 국제사회의 ‘규칙 기반 질서(rules-based order)’를 위협하는 국가로 진단하고 강하게 비판해왔다. 또한, 미국은 중국과 가치와 체제를 논쟁하고 및 비판하는 과정에서 자유주의 국가들과의 결집을 모색하며, 미·중 전략적 경쟁을 ‘미국 對 중국’에서 ‘자유진영 對 중국’의 구도로 전환해왔다. 반면 중국의 입장에서 신장 위구르 자치구, 홍콩, 타이완 관련 현안들은 미·중 전략적 경쟁은 물론 국내정치적으로 시진핑 주석의 정치적 위상과 권위는 물론, 중국 공산당 1당 체제의 정통성과 연계되는 주권, 영토, 통일, 그리고 서구의 민주주의와 비교되는 공산당 1당 체제의 우월성과도 관련되어 있어 절대 물러설 수 없다. 특히 20차 당 대회에서 당 총서기에 세 번째로 선출되며 장기 집권의 기반을 마련했던 시진핑 주석의 입장에서는 자칫 외부로부터의 압박, 특히 경쟁국인 미국의 압박에 쉽게 양보하거나 약한 모습으로 비쳐질 수 있는 민감한 정치적 현안이기도 하다. 이로 인해 중국은 미국이 제기한 신장 위구르 자치구, 홍콩, 타이완 관련 현안들에 대해 강경하게 대응하며 이를 주권의 문제이자 내정 간섭으로 정의하고 미국을 비판해 왔다. 중국 시진핑 지도부는 내부적으로 애국 (또는 애국·민족주의) 및 사상 교육을 강화했다. 또한 중국은 내부적으로 당국의 SNS 통제를 강화해 왔으며, 이러한 정책적 기조는 시진핑 지도부 시기에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미국의 대중국 전략적 압박에 대응하기 위한 내부 결집 강화, 대미 항전 의식 고취, 그리고 당과 시진핑 지도부에 대한 중국인들의 지지와 충성을 제고하고 있기 때문에 장기 집권을 공고화하려는 시진핑 주석의 입장에서도 이를 마다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다른 한편으로, 중국은 대외적으로 가치와 체제의 다양성을 강조하며 우방국들과의 연대를 강화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이 정의하는 인권과 민주주의의 ‘가치’가 국제사회의 보편적 가치가 아니라 미국의 일방적인 주장임을 강조하고 있다. 중국은 또한 국제사회의 다양한 국가 및 지역이 가지는 고유한 역사와 문화 및 각각의 대내외적 환경에 따라 국제사회에는 다양한 ‘문명’과 ‘체제’가 나타났음을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다양성을 존중하고 평화로운 공존을 강조하며 미국의 ‘보편적 가치’에 대해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1) 특히 중국은 2021년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미군 철군 상황에 대해 물리력을 동원한 미국의 일방적인 가치와 체제의 주입이 궁극적으로 실패한 대표적인 사례로 지적하며 이를 비판했다.2) 중국이 주장한 문명과 체제의 ‘다양성’은 미국을 필두로 한 서구사회가 강조하는 인권과 민주주의의 보편적 가치가 불편하게 다가왔던 남미, 아프리카, 아시아의 독재 또는 권위주의 국가, 중동의 일부 왕조국가, 그리고 이슬람 신정국가들과 중국 사이에 정치적 연대감을 증진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물론, 이러한 연대감은 미국의 동맹 체제와 비교해 본다면 결집력에서 현저한 차이가 나타나지만, 중국이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지역 및 개발도상국가들 중심의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에 대한 전력적 접근과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는 데 도움이 되는 요인으로 평가된다. 2. 군사‧안보 분야 미국은 해‧공군력을 강화하며 해양세력으로 발돋움하려는 중국의 의지를 남중국해, 타이완 해협, 동중국해, 그리고 한반도 부근에서 견제해왔다. 이를 위해 미국은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인도-태평양 전략을 중심으로, 미국-인도-일본-호주로 구성된 QUAD를 2020년에 결성하여 역내에서 중국을 군사‧안보적으로 압박해왔다. 또한 미국은 이에 더하여, 미국-영국-호주의 3국 동맹인 AUKUS를 수립했다. 미국은 남중국해에서는 기존의 다국적 ‘항행의 자유작전(FONOPs)’으로, 동중국해에서는 미일동맹을 중심으로, 한반도 주변에서는 한미 및 미일동맹의 강화, 그리고 나아가 한‧미‧일 협력을 통해 중국을 견제해왔다. 그리고 타이완 해협에서는 미국-타이완 경제적, 군사‧안보적 협력의 공간을 전략적으로 확대 중이다. 특히 최근 타이완 해협에서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미국이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 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 이하 NATO)’와 인도-태평양 지역 내 미국의 동맹과 파트너 국가들 간 군사‧안보적 연계를 강화하는 모습이 나타나며 중국에게는 역내 군사‧안보적 우려가 더해지고 있다. NATO의 회원국들 또한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국익 및 지정학적 가치에 기인한 관여의 의지가 증가하고 있다. 이를 증명하듯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영국, 이탈리아, 스웨덴, 체코 등 NATO의 회원국들은 인도-태평양 전략서 또는 동 지역을 다룬 통합 전략문서를 발표하고 있다.3) 이에 더하여 EU와 NATO 또한 국가 간 협의체로서 인도-태평양 지역에 대한 전략문서를 발간했다.4) 중국의 입장에서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더욱 긴장을 고조시켰던 사안은 전략문서 발표에 이어 유럽의 일부 국가들이 실제로 인도-태평양 지역에 해군 군함들을 파견하여 연합훈련 및 군사 활동을 전개하거나 전개할 계획을 밝히고 있는 점이다.5) 그리고 이에 더하여 2022년 6월과 2023년 7월, 그리고 2024년 7월에도 NATO 정상회의에 IP4(한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Indo-Pacific 4, a.k.a. AP4: Asia-Pacific 4)가 계속해서 초청된 점 또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미국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동맹 네트워크의 체계를 기존의 부챗살 모양의 ‘허브-앤-스포크(Hub-and-Spokes)’에서 최근 들어 소다자 구조의 ‘격자형 안보 네트워크(lattice-like security network)’로 전환해 나가고 있다.6) 미국은 냉전 시대에 진입하며 유럽 지역에서는 소련이 주도하는 바르샤바 조약 체제에 대응해 다자주의의 틀로 NATO를 구축했다. 하지만 아시아 지역에서는 1951년 8월에 체결된 ‘미국-필리핀 상호방위조약(U.S.-Philippines Mutual Defense Treaty)’, 1951년 9월에 체결된 ‘호주, 뉴질랜드, 미국 안보조약(Australia, New Zealand, United States Security Treaty, ANZUS)’, 1953년 10월에 체결된 ‘한·미 상호방위조약(Mutual Defense Treaty between the Republic of Korea and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1960년 1월에 체결된 ‘미국-일본 상호협력과 안보조약(Treaty of Mutual Cooperation and Security between the United States and Japan)’ 등을 통해 미국을 중심으로 양자동맹 체제의 ‘허브 앤 스포크’ 구조를 냉전 시기부터 유지해 왔었다. 현재 미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구축하는 ‘격자형 안보 네트워크’는 기존의 정보관련 동맹체인 Five Eyes(미국, 영국,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를 제외하고 크게 네 가지의 틀이 부상하고 있다. 첫 번째는 미국, 일본, 호주 인도가 참여하는 QUAD, 두 번째 틀은 2021년 9월에 미국, 영국, 호주로 결성된 AUKUS, 세 번째는 미국-일본-호주 및 미국-일본-영국으로 구성된 소다자의 틀, 네 번째는 동북아시아 지역에서의 한‧미‧일 협력의 틀이다.7) 이에 더하여 남중국해에서는 최근 미국, 일본, 호주, 필리핀으로 구성된 SQUAD가 새로운 소다자 협력 틀로 부상하고 있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QUAD 내에서 인도의 군사·안보적 역할이 점차 감소하는 추세에서 SQUAD의 부상은 남중국해에서 중국을 견제하는 새로운 소다자 협력의 틀로 평가되고있다.8) 이렇듯 미국이 NATO와 인도-태평양 지역 내 동맹과 파트너 국가들 간 군사·안보적 연계를 강화시키고, 소다자 체제를 중심으로 격자형 구조의 안보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모습은 중국에게 군사‧안보적 우려로 더하고 있다. 현재 미국과 비교해 군사력을 포함한 종합국력에서 열세임을 알고 있는 중국은 ‘후발제인(后发制人)’의 원칙을 바탕으로 대미 군사‧안보 정책에서 방어적인 군사전략을 견지해왔다. 하지만, 중국은 장기적인 군사‧안보 정책을 통해 내부적으로는 지속적인 국방예산의 증액 및 ‘군민융합(军民融合)’ 정책을 통한 군사 과학기술의 자립을 추구하고 지속적인 군사력 강화를 모색해왔다. 대외적으로는 미국이 펼치는 중국 포위를 돌파하고, 동시에 미국의 군사력을분산시키는 전략을 지속적으로 추구할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중국은 지속적인 자국 국방예산의 증가를 통해 미국과의 군사력 차이를 감소시키고 중국의 주변 지역에서는 미국에 대등하게 맞설 수 있는 군사력의 보유를 목표로 삼고 있다. 시진핑 지도부 출범 이후 중국의 국방 예산의 증가율을 살펴보면, 전반적으로 중국 경제가 신창타이(新常态)로 명명된 중저성장 국면에 진입하고, 코로나 펜데믹(pandemic) 현상으로 GDP 성장률이 2020년과 2022년 크게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방 예산을 매년 약 7% 전후로 일관되게 증액해온 모습은 시진핑 지도부가 가진 군사력 강화에 대한 분명한 의지를 표출하는 사례로 평가되고 있다. ([표 1] 참조) [표 1. 시진핑 주석 취임 이후의 중국 국방예산 및 GDP 증가율]  자료: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정부업무보고(2013~2024); World Bank DB(검색일: 2024.10.12).  이와 함께 중국은 민간과 군의 첨단 과학기술의 교류와 협력을 고무하는 '군민융합' 정책을 통해 AI, 사이버, 우주, 심해능력 등 미래전의 핵심이 되는 분야에서 미국에 대응하기 위한 중국 인민해방군의 역량 강화를 추구하고 있다. 또한, 중국은 중국인민해방군 창군 100주년을 맞이하는 2027년까지 ‘건군 100주년 분투 목표’를 내세우며 실질적인 군사력 증진의 성과를 보이기 위한 노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실제로 시진핑 주석은 2022년 10월에 열린 20차 당 대회에서 당 총서기직의 3연임을 확정한 후 첫 개인 차원의 공식 일정으로 2022년 10월 24일에 ‘군대 영도(領導) 간부회의’에 참석해 ‘건군 일백년 분투 목표(建军一百年奋斗目标)’의 달성을 강조했다. 이를 통해 시 주석은 중국이 마주한 군사‧안보적 우려에 대응하고 외부의 간섭에 맞서 타이완 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군사력 증강의 강한 의지를 대내외에 다시금 확인시켰다. 다른 한편으로, 중국은 대외적으로 미국의 군사·안보적 포위망을 돌파하고 중국을 목표로 집중되는 미국의 힘을 분산하기 위해 러시아(유럽), 이란(중동),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서남아시아), 캄보디아, 라오스(동남아시아), 북한(동북아시아), 쿠바(중남미) 등 국제사회 각 지역에서 주요 우방국을 중심으로 전략적 협력 강화를 추구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최근 중국이 미국의 힘을 분산시키기 위해 장기적인 포석으로 실행한 대표적인 사례로는 남태평양 제도(諸島) 국가들과의 경제 및 안보 협력의 강화를 들 수 있다.9) 물론, 중국의 남태평양 제도 국가들에 대한 전략적 접근은 아직 미미한 포석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중국의 경제력과 군사력이 지속적으로 증가한다면, 미국과 호주 및 뉴질랜드의 군사‧안보적 영향력을 분산시키는지정학적 요인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존재한다.  3. 경제‧통상 분야 미국은 동맹과 파트너 국가들로 구성된 미국 주도의 첨단산업의 공급망 및 글로벌 가치 사슬(이하 GVC)에서 ‘디리스킹(de-risking)’ 또는 일부 첨단산업에서 중국 배제를 모색해왔다. 미‧중 사이 첨단 과학기술 산업 및 자국 주도의 GVC 구축 경쟁은 경제적인 측면은 물론, 군사‧안보적으로도 많은 의미를 내포하며 미‧중 전략적 경쟁을 전망함에 있어 핵심적인 승부처로 인식되고 있다. 미국은 내부적으로 ▲2021 미국 혁신과 경쟁법,10) ▲2022 반도체와 과학법,11) ▲2022 인플레이션 감축법12) 등을 발효하며 중국과의 경쟁에 대응해 나갔다. 대외적으로 미국은 ▲미국‧EU 무역과 기술 위원회(TTC: Trade and Technology Council), ▲북미지역의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 ▲주요 7개국(G7),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 등을 통해 중국으로부터의 ‘리스크’와 잠재적인 위협에 대응하는 미국 주도의 산업공급망 확립과 첨단산업에 대한 GVC 구축 및 국제규범과 표준을 논의했다. 특히 2022년 5월에 미국의 주도로 한국을 포함한 미국, 인도, 일본, 호주, 뉴질랜드, 인도네시아, 베트남,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태국, 필리핀, 피지, 브루나이 등 총 14국이 참여하며 출범한 IPEF는 2024년 6월 6일에 싱가포르에서 최종합의문에 서명했다.13) IPEF는 미국에게 ▲트럼프 1기 행정부 시기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Tans-Pacific Partnership)'에서 탈퇴하며 역내에서 자유무역협정(FTA: Free Trade Agreement) 이외에 경제적으로 관여할 수 있는 제도적 기제를 확보, ▲인도-태평양 지역의 국가들과 다자 간 경제 협력의 규범과 기준의 수립을 통해 미국의 경제와 안보에 영향을 끼치는 현안들을 관리,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지경학적 영향력 견제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14) 이에 대응하여 중국은 내부적으로 내수 경제 중심의 ▲‘쌍순환(双循环)’ 정책 및 ▲반도체를 포함한 첨단 기술의 자립을 추구하고 있으며, 대외적으로는 중국 주도의 산업 생태계 구성 및 자국의 지경학적 영향력 확대를 위한 국제사회의 ▲브릭스(브리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 공화국; 이하 BRICS)에서 BRICS 플러스(BRICS Plus) 및 상하이 협력 기구(Shanghai Cooperation Organization, 이하 SCO)의 확대를 모색하며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에 대한 전략적 접근을 추구하고 있다. '쌍순환' 정책은 국내 및 국제 대순환의 양축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사실상 내수 경제 중심의 국내대순환에 무게 중심이 놓여있다고 평가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국제대순환은 미국의 견제로 의한 글로벌 공급망의 붕괴 또는 교란에 의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산업, 특히 첨단산업의 필수 부품과 소재의 수입대체 가속화를 추구하고 있다. 또한 중국은 미국의 견제와 압박으로부터 중국 중심의 산업 공급망 확립 및 주변 국가들에 대한 경제 협력 강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동시에 중국은 첨단 기술의 자립을 위해 인적 및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를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이를 위해 중국은 ‘중국제조 2025’를 2015년 5월에 발표한데 이어, 2024년 3월에 개최된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는 ‘새로운 질적 생산력(新質生産力)’을 강조하며 산업고도화정책을 추진하는 한편, ‘천인계획(千人計劃)’을 통해 지속적인 연구 인력의 양성과 국내 유치를 실행해 오고 있다. 중국은 미국이 동맹과 파트너 국가들과 더불어 ‘디리스킹’과 함께 일부 첨단산업에서 중국을 배제하려는 다자적인 압박을 추진하고, 나아가 미국 주도의 새로운 글로벌 산업공급망을 구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이에 대한 대응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 중국은 ‘BRICS’에서 ‘BRICS 플러스’로의 전환 및 SCO의 확대를 추구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중국은 ▲글로벌 발전 창의(全球发展倡议, Global Development Initiative, 이하 GDI), 글로벌 안보 창의(全球安全倡议, Global Security Initiative, 이하 GSI), 글로벌 문명 창의(全球文明倡议, Global Civilization Initiative, 이하 GCI)를 강조하고 중국 주도의 글로벌 거버넌스 개념들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중국은 미국과의 관계 개선 및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경쟁을 모색하는 한편, 이에 대응하기 위해 특히 글로벌 사우스에 대한 전략적 접근을 강화해 왔다. 실제로 2022년 6월 23일에 화상으로 개최된 제14차 BRICS 정상회의에서는 ‘베이징 선언’을 통해 BRICS 회원 확대 추진, 다자주의, 세계 정책 결정 과정에 개발도상국의 의미 있는 참여를 선언했다. 이어 중국은 2023년 8월에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제15차 BRICS 정상회의에서 기존 회원국인 중국, 러시아, 인도,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5개국에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이란, 이집트, 에티오피아의 5개국을 더해 10개국이 참여하는 ‘BRICS 플러스’를 출범시켰다. III. 트럼프 2기 행정부 시기의 미중관계 전망 미‧중 전략적 경쟁 구도 하에서 현재 중국이 실행할 수 있는 대미 정책의 방향성과 전망에 대해서는 학자와 전문가들 사이에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있으나, 전반적으로 ▲장기적인 전략적 경쟁의 구도 하에서 안정적인 경쟁과 협력의 관리, ▲“제도적 협력”,15) ▲미‧중 패권 충돌 등 크게 세 가지로 구분이 가능하다 이 중 현재 중국은 . ‘장기적인 전략적 경쟁의 구도하에서 안정적인 경쟁과 협력의 관리’를 추구하며 미국으로부터의 다양한 전략적 압력에 대응하는 모습이다. 예를 들어, 2024년 3월 중국 ‘양회’ 기간 중 개최된 제13기 전국인대 제2차회의에서 왕이 외교부장은 3월 7일에 개최된 기자회견을 통해 2023년 11월에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된 미·중 정상회담 이후 미국과 소통과 교류를 강화하며 안정적인 양자관계를 모색하고 있다고 발언했다.16) 특히 왕이 부장은 시진핑 주석이 제기한 미중관계의 3원칙인 “상호존중(相互尊重), 평화공존(和平共处), 협력공영(合作共赢)”을 언급했으며, 이는 앞으로도 중국의 대미정책 결정 과정에서 핵심 개념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트럼프 2기 행정부 시기의 미‧중 전략적 경쟁은 더욱 심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미국 국내정치에서 공화당이 대선 승리와 함께 의회를 장악하는 'Red Wave'의 발생으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정책에 가속 추진 동력을 제공하고 있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의 공약 중 하나였던 감세 정책 및 행정명령으로 불법 이민과 입국 장벽을 높이고, 여기서 발생하는 예산 지출과 세입 감소의 보완을 위해 대중국 60% 관세 및 보편적 관세 10% 추진, IRA 보조금 축소 또는 법안 폐지, 메디케어 축소 등이 진행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 과정에서 중국과의 무역 분쟁과 상호 보복관세 조치, 그리고 한국에게도 트럼프 2기 행정부로부터 방위비 분담금 협상 및 한미 FTA 재협상 등의 압박이 예상된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무엇보다도 트럼프 2기 행정부 시기에 대미관계에서의 불확실성이 증가 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행정부부터 일관된 입장을 내놓기보다는 주장을 번복하거나 거친 외교적 행보로 예측불가한 인물로 평가되어 왔다. 예를 들어, 암호화폐와 틱톡(TikTok)에 대한 입장도 부정적에서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이러한 트럼프 대통령의 행동은 미국에게 실익을 가져다준다면 이에 맞게 언제든 태도를 바꿀 수 있는 사업가적 관점에서 비롯되었다고 분석된다. 다른 한편으로, 중국은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미국 우선주의’로 인해 동맹 및 파트너 국가들과 마찰과 갈등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이는 미국과의 전략적 경쟁에서 중국에 유리한 요인이 될 수 있을 것으로 평가한다. 그 이유는, 트럼프 1기 행정부의 일방적인 미국의 대중국 압박보다, 바이든 행정부가 동맹 및 파트너 국가들과 함께 전개한 다자적인 압박으로 인한 중국의 어려움이 더 컸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은 트럼프 2기 행정부 하에서 미국의 동맹 체계에 틈이 벌어진다면 다자적인 대중국 압박이 완화되는 한편 중국의 대EU 전략적 접근의 효과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또한 중국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대중국 무역 압박 강화와 관세 인상이 예상되지만 이는 단기적인 갈등 요인일 뿐, 근본적인 미‧중 무역의 틀이 깨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는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에도 무역협상과 상호 보복관세 조치가 발생했지만, 결과적으로 미‧중 무역액은 오히려 증가했던 경험에 근거하고 있다. 오히려, 중국 측은 통상 분야보다는 첨단과학기술 분야에서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하고 이를 더욱 우려하고있다. 이와 관련하여 중국은 트럼프 1기 행정부와 비교해 2기 행정부는 국내정치적으로 행정부와 의회를 모두 장악하여 강력한 리더쉽의 실행이 가능하고, 특히 트럼프의 외교 및 경제 참모들이 마르코 루비오(Marco Rubio), 로버트 라이트하이저(Robert Lighthizer) 등 대중 강경파가 포진한 것을 염려하고 있다. 지정학적 측면에서,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식, 친이스라엘과 친사우디아라비아 정책 기조, 중국과 이란에 대한 강경 정책, 북미 핵 협상 재개, 동맹과 파트너 국가들에 대한 미국의 요구 증가등을 추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NATO는 물론이고, 타이완과 필리핀에 대한 군사 지원 축소, 한국과 일본에 대한 방위비 부담 증가 요구 등으로 미국의 다자주의 동맹 체계의 위축 가능성이 논의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트럼프 1기에 대만에 상당 액수의 무기를 판매했으면서도 2024 미국 대선 당시 미국 반도체 산업의 거의 100%를 타이완이 가져갔다고 주장하며 타이완의 방위비 부담을 주장한 점, 그리고 트럼프 1기 당시 미국은 필리핀의 동맹국으로서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에 맞서기 위해 군용기, 군함, 항공모함 전단을 파견했으나, 동시에 필리핀에 방위비 인상을 압박했던 점은 한국에게도 많은 함의를 던지고 있다. IV. 한중관계에 대한 함의 1. 한중관계의 현주소: 구조적 도전 요인의 증가 한중관계는 1992년 8월에 공식 수교 이후 발전기와 조정기, 그리고 2016년 7월에 발생한 한국 내 사드 배치 현안 이후 갈등기를 거쳐 현재 한중관계의 재정립 시기에 진입했다. 한국 내 사드 배치 현안 발생 이후 한‧중은 2017년 10월에 ‘한중관계 개선 관련 양국 간 협의 결과’를 공동 발표하며 돌파구를 찾았으나, 현재까지 완전한 관계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으로 평가된다. 또한 점차 심화하는 미‧중 전략적 경쟁 구도 하에서 윤석열 정부의 한미동맹 공고화 및 한‧미‧일 협력 강화는 한국의 대북 억제력 및 장‧단기적인 대외전략에 필요한 사안들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동시에 이와 같은 정책들은 한중관계의 정치, 외교·안보, 경제·통상, 사회·문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구조적인 도전 요인들을 계속해서 증가시켜왔다. 1) 정치 분야 한중관계는 정치 분야에서 가치, 체제, 정체성과 관련된 도전 요인이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요인들은 1992년 한‧중 수교 당시 양국 사이에 분명한 차이가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한중관계에서 주요 도전 요인으로 인식되지 않았었다. 하지만, 미‧중 전략적 경쟁이 심화하는 과정에서 인권과 민주주의의 가치, 정치 체제, 그리고 이러한 가치와 체제를 바탕으로 한 양국 국민들 간 정체성의 차이가 한중관계의 새로운 도전 요인들로 점차 부상하기 시작했다. 정치 분야에서 한중관계의 도전 요인들은 당분간 존재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은‘글로벌 중추국가(Global Pivot State)’로 나아간다는 외교 비전을 분명히 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실행에 나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은 국제사회의 주요 현안에 대해 정부의 입장을 분명하고 적극적으로 밝히기 시작했다. 이 중에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을 포함하여 남중국해와 타이완 해협의 문제도 포함되어 있다. 특히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해양교통로(SLOC: Sea Lines of Communication)’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타이완 해협의 현안에 접근하고 있지만, 중국은 국내문제인 양안관계에 대한 한국의 내정 간섭으로 해석하고 있어 한‧중 간 분명한 시각차이가 존재한다. 2) 경제·통상 분야 한중관계의 경제 분야에서도 미‧중 전략적 경쟁의 심화와 산업 구조의 변화로 인해 양자 간 협력의 공간이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도전 요인이 증가하는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 가장 큰 요인은 수교 이후 형상되었던 동북아 한‧중‧일 국가 간 분업화 구조가 무너지고, 중국의 산업 구조가 변화하며 한‧중 간 협력 공간이 줄어들고 경쟁 산업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한‧중‧일 국가 간 분업화 구조는 한국의 대중국 주력 수출 품목인 중간재 제품에 대한 중국의 기술 및 생산력의 증진, 그리고 임금의 점차적인 인상으로 한‧중 사이의 분업화 구조는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나아가 한‧중 양국의 산업 구조가 변화하며 양자 간 협력의 공간이 감소하고 가전제품, 휴대폰, OLED, 2차 전지 등 주력 사업의 경쟁이 심화하고 있다. 이로 인해 한‧중 간 산업 구조는 ‘상호 보완과 협력’에서 ‘경쟁’ 관계로 전환되었다. 이에 더하여, 미‧중 전략적 경쟁 구도 하에서 첨단산업에 대한 한‧중 간 협력의 공간은 더욱 줄어들고 있다. 미국은 중국의 반도체를 포함해 첨단산업에 대한 전략적 견제를 지속해서 강화하고 있다. 또한 미국은 동맹과 파트너 국가들과 함께 글로벌 산업 공급망 구축을 모색하고 있다. 한국은 수출 주력 품목인 반도체 산업이 미국의 원천 기술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대중국 수출통제가 강화되자 한국 반도체 제품의 중국 수출 및 중국 내 한국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반도체 공장의 생산설비 증진에 제한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한국과 반도체를 포함한 첨단 기술과 산업에서 협력의 확대를 모색해왔던 중국의 기대는 감소할 수밖에 없었다. 3) 외교‧안보 분야 분단국가이자 북한으로부터 핵과 미사일 위협을 계속해서 받아온 한국은 한반도 주변 정세에 대응하기 위해 한미동맹의 공고화를 바탕으로 중국과의 협력 확대를 추구해왔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한국은 한미동맹의 강화 및 한‧미‧일 협력을 통해 대북 억제력(deterrence)을 증진시키기 위해 노력해왔다. 동시에 한국은 한반도 비핵화 및 한반도 정세 안정을 위한 중국의 건설적인 역할을 기대해왔다. 반면 중국은 동북아 지역에서 한미 및 미일동맹의 강화, 그리고 한‧미‧일 협력의 확대로 인해 군사‧안보적 긴장이 높아졌다고 비판했다. 특히 중국은 미‧중 전략적 경쟁이 심화하는 가운데 한‧미‧일 협력은 북한을 넘어 미국의 주도로 중국을 견제할 것이란 우려를 표출했다. 다시 말해, 한국에게 한‧미‧일 협력은 점증하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응하여 억지력 증강의 의미를 가졌지만, 중국의 입장에서는 3국의 협력이 궁극적으로 역내에서 중국을 압박하는 미국의 전략 기제로 인식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한국 윤석열 정부는 외교‧안보 정책에서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 및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한미동맹 강화➪한일관계 개선➪한·미·일 협력➪한중협력 확대의 단계적인 접근을 모색해왔다. 하지만 미국과 점차 치열해지는 전략적 경쟁을 펼치는 중국의 입장에서는 한국의 이러한 단계적 접근을 수용하기 어려웠다. 반면, 최근 북‧러 간 상호협력과 지원이 확대되는 가운데, 중국이 양자 차원에서 중‧러 및 북‧중 전략적 협력관계를 강화하고, 한반도 정세의 긴장 고조에 대한 책임과 비판의 초점을 북한이 아닌 미국에 맞추자, 한국은 한반도 비핵화 및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으로부터 한반도 긴장을 완화시키는 중국의 건설적인 역할에 대한 기대감이 점차 감소하게 되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로부터 직접적인 위협을 마주한 한국의 입장에서는 중국 또한 북한의 무력도발에 대해서는 불만을 가지고 있지만, 중국이 역내 대미 전략 차원에서 엄중한 대응보다는 북한을 감싸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4) 사회·문화 분야 사회·문화 분야에서의 한‧중 교류는 2016년에 급속하게 감소한 이후 아직까지 완전히 회복되지 못한 상태이다. 앞서 언급했던 한‧중 간 가치와 체제의 차이가 부상하는 가운데 단오절, 한복, 김치 등 연이은 문화적 논란이 한‧중 양국 국민 사이에 발생했다. 이로 인해 양국 국민들은 상대 국가에 대한 호감도가 감소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일례로 Pew Research Center에서 2023년 7월에 발표했던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인들이 가지는 중국에 대한 '비호감(Unfavorable view)'은 77%로 일본(87%), 호주(87%), 미국(83%) 국민들이 중국에 대해 가지는 비호감 비율보다는 낮지만 인도(67%)보다는 높았다.17) 이어 2024년 7월에 발표했던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인들이 가지는 중국에 대한 '비호감'은 71%로 일본(87%), 호주(85%), 미국(81%)보다는 낮지만 필리핀 (64%)와 인도(52%)보다는 높았다.18) 중국 또한 2016년 한국 내 사드 배치 현안 이후 한국에 대한 호감도가 떨어지고 한국산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이 나타났었으며, 단체관광을 포함한 중국의 대한국 사회‧문화적 교류가 급격히 감소했다. 이에 더하여 최근 온라인상에서 한국인들과 문화적 논란을 둘러싸고 오해와 갈등이 증가하며 한국에 대한 호감도가 계속 낮아진 것으로 평가된다. 2. 트럼프 2기 행정부 시기 한중관계의 과제와 함의 한중관계는 구조적인 양자 간 도전 요인들을 해소 또는 관리하는 한편, 2025년 초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출범과 함께 나타날 대외환경의 변화에 대응하며 발전을 추구해야 나가야 한다. 최근의 한중관계는 한국 윤석열 정부가 한미동맹 및 한‧미‧일 협력 강화 기조를 견지하는 가운데 중국의 주변외교 정책이 강화되며 중국의 한국에 대한 ‘원만한 관리’가 실행되고 있다. 2024년 5월에 한‧중 외교장관 회담과 제18차 한‧중 경제장관회의가 베이지엥서 각각 개최되었으며, 이어 서울에서 4년 5개월 만에 한‧중‧일 정상회담이 개최됐다. 6월에는 한‧중 차관급 외교 안보 대화(2+2)가 개최되었고, 7월에는 ASEAN 관련 외교장관 회의를 계기로 한‧중 외교장관회담이 라오스에서 열렸다. 이어 10월에 들어서는 1.5 트랙인 한‧중 우호미래포럼이 베이징 개최되는 등 고위급 교류가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한중관계에서는 여전히 풀어야 할 두 가지의 과제가 남아있다. 먼저 한중관계에서 나타난 구조적인 도전 요인들을 해소 또는 관리하며 양자 간 주요 현안에서의 시각 차이와 이견의 좁히는 과제이다. 다음으로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대중국 정책과 중국의 대응이 한중관계에 미칠 함의를 분석하고 대응을 준비하는 과제이다. 이 두 가지의 과제를 풀지 못하면 한국에게 근본적인 한중관계의 개선과 실질적인 협력의 실현은 요원해지기 때문이다. 먼저 한‧중 간 시각 차이 및 이견과 관련하여 전반적으로 7가지의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다. 첫째는 최근 한국이 추진하는 한‧미, 한‧일, 한‧미‧일 협력의 강화를 공고히 한 이후 한‧중 협력모색이라는 단계적 접근에 대한 중국의 부정적인 대응이다. 둘째, 한국이 한미동맹을 강화할수록 중국이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높이고 접근해 올 것이란 시각의 차이이다. 셋째, 타이완관련 현안을 한반도 정세와 연계시키고 동 현안을 국제화시키는 것이다. 넷째, 한국의 ‘가치외교’에 대해 중국은 내정 간섭이자 한‧중 간의 협력 공간이 제한된다고 주장한다. 다섯째, 현재의 한중관계 고착에 대해 한국은 중국의 외교 행태로, 중국은 한국 외교의 매몰비용(sunk cost)에서 원인을 찾고 있다. 여섯째, 미‧중 전략적 경쟁이 심화하는 가운데 한‧중 간 사드(THAAD), 한미동맹의 의미와 역할, 첨단산업의 글로벌 가치 사슬과 중국 배제 움직임 등의 현안들이 한중관계의 교류와 협력에 도전 요인으로 남아있다. 끝으로 일곱째는 한반도 비핵화와 관련된 중국의 건설적인 역할에 대한 한‧중 간 시각 차이다.19) 다음으로는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추구하는 미국 ‘ 우선주의’와 대중국 정책, 그리고 이에 대한 중국의 대응이 한중관계에 던지는 함의를 살펴야 한다. 함의에는 장단점이 공존하고 있다. 먼저 ‘가치’와 ‘체제’관련 현안에서 트럼프 2기 행정부는 경제적 실익에 무게를 두는 국익 추구에 더욱 무게를 둘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한중관계에서도 ‘가치’ 와 ‘체제’ 관련 현안에서는 유연한 대응의 공간이 확대되었다고 평가된다. 다른 한편으로 바이든 정부는 미국의 동맹과 파트너 국가들을 중심으로 다자 간 협력의 틀을 대중국 전략적 압박, 특히 경제‧안보 현안에 활용하려 했다. 반면,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바이든 행정부가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를 포함해 적극적으로 추진했던 ‘프랜드 쇼어링’을 버리고 ‘미국 우선주의’를 강조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과정에서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양자 간 거래를 중시하면서 다자간의 협력 틀을 선호하지 않을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특히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미국 우선주의’를 바탕으로 중국 이외의 국가들에게도 언제든 강한 압력을 가할 수 있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특히 트럼프 2기 행정부의‘전략적 디커플링(Strategic decoupling)’에 대한 함의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략적 디커플링’과 관련하여 최근 트럼프는 자신의 2기 행정부의 미국 무역 대표부(USTR) 대표로 제이미슨 그리어(Jamieson Lee Greer)를 지명했다. 대중국 강경파이자 그 간 ‘전략적 디커플링’을 강조해온 로버트 라이트하이저(Robert Lighthizer)가 전면에 나서지는 않았지만, 그리어는 2017년 5월부터 약 3년간 라이트하이저 당시 USTR 대표를 비서실장으로서 보좌했던 측근 인사이다. 이로 인해 그리어는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전략적 디커플링’을 주창하는 라이트하이저의 정책적 방향성을 견지해 나갈 핵심적인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이는 EU를 중심으로 미국의 동맹과 파트너 국가들 사이에서 공감해온 ‘선택적 디커플링’이라고 할 수 있는 ‘디리스킹(derisking)’에서 중국에 대해 한층 더 공세적인 ‘전략적 디커플링’으로의 전환은 국제사회 다수의 국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시기에 ‘전략적 디커플링’을 바탕으로 한층 심화될 대중국 전략적 압박을 전망하면서 국제사회가 주목하고 있는 또 하나의 주요 현안은 중국의 대응이다. 2017년 트럼프 1기 행정부 출범 당시 미국이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시작하자 중국은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방적인 트럼프 1기 행정부의 강경한 관세 조치 및 무역 협상 압박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평가된다. 물론 중국은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강경한 상호 관세 보복 조치와 함께 미국과의 무역 협상에 따라 대두를 포함한 미국 농산품의 수입 확대를 약속하며 미중관계를 관리해 나가려 노력했었다. 반면 트럼프 2기 행정부를 맞이하며 중국은 과거와는 다르게 다양한 대응 조치를 준비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표적인 사례들로 미국산 제품에 대한 보복관세에 대하여 갈륨, 게르마늄 등의 희토류 및 흑연을 포함한 주요 핵심 자원 및 광물에 대한 수출통제 강화, 위안화 평가 절하 등 다층적인 대응 조치들을 검토하고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로 인해 트럼프 2기 행정부 시기 미·중 간 무역 분쟁은 한층 치열해질 것으로 평가되는 것은 물론, 중국의 대응 방안들이 미국과 함께 한국을 포함한 중국의 주변 국가들의 무역환경과 산업공급망에도 불안정성을 높이는 도전 요인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로 인해 한중관계 경제‧통상 분야에서의 구조적 도전 요인들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1) 2020년 7월 9일 당시 중국의 왕이(王毅)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중٠미 싱크탱크매체 영상 포럼에서 미٠중은 “다른 체제와 문명이 평화적으로 공존하는 길을 공동으로 찾자(共同探索不同制度和文明和平共存之道)”라고 언급함. 中华人民共和国外交部. 2020. “王毅向中美智库媒体视频论坛发表致辞”. (07月09日). 2) 中华人民共和国外交部. 2021. “2021年8月20日外交部发言人华春莹主持例行记者会”. (8月20日). 3) 프랑스는 2022년 9월 14일에 “France’s Indo-Pacific Strategy”를 발표했다. 이는 2019년에 발표된 인도-태평양 전략을 수정 보완해 발표한 전략문서였다. 이어 2021년 4월에는 “France’s Partnerships in the Indo-Pacific”을 공개했다. 독일 연방정부는 2020년 9월에 “Policy guidelines for the Indo-Pacific region: Germany–Europe–Asia: shaping the 21st century together“를 발표한데 이어, 2021년 9월에는 ”Progress report on the implementation of the German Government policy guidelines on the Indo-Pacific region“를 발간했다. 네덜란드는 2020년 11월에 “Indo-Pacific: Guidelines for strengthening Dutch and EU cooperation with partners in Asia”를 발표했으며, 영국은 2021년 3월에 "Global Britain in a Competitive Age: Integrated Review of Security, Defence, Development and Foreign Policy"를 공개했다. 이 외에도 이탈리아는 2022년 1월에 “The Italian Contribution to the EU Strategy for the Indo-Pacific”를 발표했으며, 스웨덴은 2022년 5월에 외교부에서 아시아와 태평양 지역에서 스웨덴의 역할에 대한 내용을 담은 전략서 “Strategy for Sweden’s Regional Development Cooperation with Asia and the Pacific Region in 2022-2026”를 발간했다. 이어 2024년 7월 25일에는 ‘Defence Policy Focus for Cooperation with Countries in the Indo-Pacific Region’를 발표했다. 또한 체코는 2022년 9월에 “Strategie České republiky pro spolupráci s Indo-Pacifikem”를 발표하며 영국 및 EU 회원국들이 인도-태평양 지역에 대해 가지는 정책적 관심과 관여 의지를 나타내었다. 4) 대표적인 사례로 EU는 2021년 9월 16일에 “EU strategy for cooperation in the Indo-Pacific”을 발표한데 이어 2022년 3월에는 “A Strategic Compass for Security and Defence”를 공개하며 인도-태평양 지역에 대한 자신들의 전략적 이해와 입장을 밝혔다. NATO 또한 2022년 6월에 “NATO 2022 전략개념(NATO 2022 Strategic Concept)”을 발표했는데, 동 문서는 인도-태평양에 관한 내용을 처음으로 포함시켜서 관심을 모았다. 5) 대표적인 사례들로 먼저 인도-태평양 지역에 프랑스령이 존재하고 주둔군을 보유하고 있던 프랑스가 2021년에 매년 실시되었던 잔 다르크(Jeanne d’Are) 상륙 준비단(Amphibious Ready Group)의 임무 기간(2월~7월) 동안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남중국해를 2차례 통과하고, 5월 11~16일사이 동중국해를 포함한 해역에서 호주, 일본, 미국과 합동 군사훈련(The ARC-21 exercise)을 실시했다. 또한 영국은 2021년 5월에 퀸엘리자베스 항공모함(HMS Queen Elizabeth)이 이끄는 항모전단을 26주간 인도-태평양 지역에 파견하여 다양한 군사 활동을 전개했다. 독일과 네덜란드는 소규모이지만 최근 자국의 해군 함정을 인도-태평양 지역에 파견하고 군사 활동을 전개했다. 네덜란드는 1척의 호위함(HNLMS Evertsen)이 영국의 퀸엘리자베스 항모전단에 미국과 함께 참여하여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군사 활동을 펼쳤다. 독일 또한 2021년 8월부터 2022년 2월까지 해군 호위함인 바이에른함(F217-3600t)을 약 6개월간 정찰 및 훈련 임무 수행을 위해 최초로 남중국해를 포함한 인도-태평양 지역으로 파견했다. NATO 회원국들의 인도-태평양 지역에 대한 자국 해군의 파견 추세는 최근까지 지속되고 있다. 예를 들어 2024년에도 독일이 호위함인 바덴 뷔르템베르크함(Baden-Württemberg, F222)과 군수지원함 프랑크푸르트암마인함(Frankfurt am Main, A1412)을 인도-태평양 지역에 파견했으며, 군사 활동 과정에 6월에는 한국 인천항에 머물다 다음 목적지인 필리핀을 향해 떠나기도 했다. 또한 스웨덴도 2024년에 ‘Defence Policy Focus for Cooperation with Countries in the Indo-Pacific Region’을 통해 인도-태평양 지역 내 군사 활동에 자국 군이 참여함으로써 해양안보 상황 감시 및 역내 안보 증진 활동에 기여할 것임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6) 아사바 유키. “미일정상회의와 ‘격자형’ 동맹네트워크 형성,” 『KINU Online Series』 CO 24-32 (2024). 7) 위의 글 pp. 5-7. 8) Oorja Tapan. “The Squad: Adding an ‘S’ for Security.” The Diplomat, May 11, 2024; Richard Javad Heydarian. ““Squad” Goals: Consolidating the New Quadrilateral partnership,” Lowy Institute, May 9, 2024. 9) 대표적이 사례로 중국 외교부는 2022년 4월 19일에 남태평양의 섬나라 솔로몬 제도와 ‘안보협력프레임협정(安全合作框架协议, a framework agreement on security cooperation)’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이어 당시 중국의 왕이(王毅)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2022년 5월 26일과 6월 4일 사이 남태평양 8개 국가 (솔로몬 제도, 키리바시, 사모아, 피지, 통가, 바누아투, 파푸아 뉴기니, 동티모르)를 방문하며 중국과 이들 국가 간 다양한 영역에서의 협력 확대를 논의했다. 中华人民共和国外交部. (2022). “2022年4月19日外交部发言人汪文斌主持例行记者会”. (4月19日); 中华人民共和国外交部. (2022). “2022年5月24日外交部发言人汪文斌主持例行记者会”. (5月24日). 10) 117th Congress (2021-2022). “S.1260 - United States Innovation and Competition Act of 2021” 11) 117th Congress (2021-2022). “H.R.4346 - Chips and Science Act” 12) 117th Congress (2021-2022). “H.R.5376 - Inflation Reduction Act of 2022” 13) IPEF는 무역(Trade, Pillar 1), 공급망 회복력(Supply-chain Resilience, Pillar 2), 청정 경제(Clean Economy, Pillar 3), 공정 경제(Fair Economy, Pillar 4) 등 총 4개의 필라(pillar)를 가지고 출범했다. 하지만 2024년 6월의 IPEF 최종합의문에는 기존에 논의되었던 4개 필라와 더불어 IPEF 운영 합의(Agreement on IPEF) 부분이 더해져 총 5개의 분야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2023년 11월에 미국무역대표부(USTR: United States Trade Representative)는 무역 분야의 협상에 대해 무기한 연기를 선언했으며, 이로 인해 동 분야의 협상이 중단된 상태임. 또한 공급망 회복력 필라는 최종합의문 서명 이전인 2023년 11월 16일에 합의에 이르러 참가국들의 서명을 마쳤으며, 2024년 2월 24일에 이미 발효가 되었다. 따라서 IPEF 최종합의문은 청정 경제, 공정 경제, IPEF 운영 합의 분야에 대한 각 참가국들의 비준 빛 발효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14) 강선주.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최종 합의: 미국의 새로운 무역 패러다임의 투영과 함의 분석”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주요국제문제분석』 2024-16 (2024), pp. 3-5. 15) 신종호, 정성윤, 김재철, 민병원, 임수호, 전재성, 정재관, 차창훈 등은 2030년의 미중관계를 전망하며 총 5가지의 유형(패권 경쟁, 전략적 갈등, 복합적 관계, 제도적 협력, 비패권 공존)을 제시하였으며, 그 중 “제도적 협력”의 용어를 이 글에서 인용했다. 신종호, 정성윤, 김재철, 민병원, 임수호, 전재성, 정재관, 차창훈. 『2030 미중관계 시나리오와 한반도』 (서울: 통일연구원, 2018). 16) 中华人民共和国外交部. “中共中央政治局委员、外交部长王毅就中国外交政策和对外关系回答中外记者提问” (2024年3月7日). 17) Laura Silver, Christine Huang, and Laura Clancy, “China's Approach to Foreign Policy Gets Largely Negative Reviews in 24 Country Survey,” Pew Research Center, July 27, 2023. 18) Laura Silver and Gar Meng Leong, “Most People in 35 Countries Say China Has a Large Impact on Their National Economy,”Pew Research Center, July 09, 2024. 19) 성균관대학교 이희옥 교수 발표와 면담 (2024년 12월 5일, 대한민국 서울 국립외교원 2024 중국정세평가 연례회의, “한중 정치‧외교관계”).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기획자: 강영훈 제주평화연구원 원장, 편집 : 제주평화연구원 이혜진 연구원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 )  현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인도태평양연구부 교수 겸 중국연구센터장으로 재직 중이다. 미국 코네티컷 주립대에서 정치학 학사와 행정학 석사를, 미국 아메리칸대에서 국제관계학 박사를 취득했다. Post-Doc과정을 중국 칭화대(清华大)에서 마치고, 북경대(北京大) 국제관계학원에서 연구학자를 지냈다. 이후 아산정책연구원의 연구위원 겸 중국연구센터장을 역임했다. 청와대 국가안보실(NSC), 국방부, 통일부, 합동참모본부, 한미연합사의 정책 자문위원 및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상임위원(국제협력분과위)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와 논문으로는 「미중 전략적 경쟁」(공저),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국제관계연구시리즈 36 (서울: 페이퍼로드, 2020);「뉴 노멀 시대 미중 전략 경쟁 관계와 한반도에의 함의」(공저), 통일연구원, KINU 연구총서 17-21-01 (2017); "Evaluating China’s Soft Power: Dimensions of Norms and Attraction" in Assessing China’s PowerEd by Jae Ho Chung (Palgrave Macmillan, 2015); 차이나 콤플렉스 (공저), 아산정책연구원 (2014)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