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I PeaceNet

전체 51

  • 사드(THAAD) 배치에 대한 중국의 논리
    저자
    郑继永(复旦大学 朝鲜韩国研究中心)
    발간호
    2015-18
     [편집자 註] 사드를 둘러싼 논의가 객관적인 사실과 상호이해를 바탕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JPI PeaceNet은 사드를 보는 한중 양국의 시각을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독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 첫 시도로서 우정엽 박사의 "사드(THAAD)가 중국에게 위협이 되는가?"를 국문과 중문으로 발행하였으며, 그에 대한 중국 아태학회 조선반도연구회 조세공 위원의 반론도  배포하였다. 상해 복단대 조선한국연구소 정계영 소장의 기고문도 국문과 중문으로 발행되어 한중 양국의 독자들에게 배포될 예정이다.  많은 관심을 부탁드리며 독자들의 기고도 환영한다. 편집: 한인택 연구위원(ihan@jpi.or.kr) 사드를 둘러싼 한국 내의 논의가 중국 각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중국이 사드의 배치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은 사드에 대한 중국 나름의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I. 지역 정세와 관련된 정치적 우려 정치적 차원에서 보면 중국은 사드의 배치가 동북아 정치에 예측 불가능한 혼란을 유발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국제정치 차원에서 볼 때 한반도에 사드가 배치된다면 동북아 지역의 안정과 평화를 위협하게 될 것이다. 국제적 정세가 극히 불안정한 상황에서 동북아 지역은 그동안 어렵게 안정과 평화를 유지해 왔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큰 충돌이 발생하지는 않았다. 동북아 지역은 군비경쟁이 가장 심각한 지역 중의 하나로서 역사 문제, 영토분쟁, 해상충돌 등의 문제로 인해 나선형(spiral)의 안보딜레마가 심화되는 국면에 위치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드의 도입은 설상가상으로 동북아의 취약한 평화와 안정을 파괴하고 우크라이나 식의 혼란상태를 초래할 것임에 의심할 여지가 없다. 중국과 한국에게 있어서 동북아의 안정과 평화는 가장 큰 이익이면서도 궁극적인 목적으로,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는 행위는 중국을 비롯한 각국의 거센 반대를 받을 것이다. 한반도 차원에서 봐도 사드는 한반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최적의 방안은 아니다. 논리적으로 방패의 발전은 창의 진화에 달려 있으면서 뒤떨어진다. 한반도의 평화, 안정, 비핵화의 방향은 군축, 반핵, 화해에 있지 무력으로써 무력에 대항하는 것을 반복하거나 안보 딜레마를 악화시키는 투쟁, 또는 냉전적 사고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 사드는 북한이 한 단계 더 첨단적인 반격무기를 개발하도록 자극할 수도 있고, 어렵게 이루어진 화해의 분위기를 파괴할 수도 있다.  따라서 사드는 순수한 의미에서의 방어성 무기보다는 지역 안정과 평화를 뒤흔드는 ‘공격성’ 무기로 진화할 가능성이 더 크다. 중국과 한국의 국내정치 차원에서도, 사드는 한국의 국내정치를 분열시켰을 뿐만 아니라 한중 간 우호관계 발전의 속도를 늦췄다. 사드 문제가 정치적 의제로 된 이후 한국 국내에서 심각한 대립이 나타났고 반대자들과 지지자들은 서로 거친 표현으로 비난하면서 정치적?사회적 분쟁을 낳았다. 이에 따라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던 한중관계도 많은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어, 사드 문제는 한중 우호관계의 발전에 장애가 되었다. 러시아도 사드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아주 단순해 보이는 사드 문제는 미?중?러 3대국을 동시에 뒤흔들고 있다. 따라서 한국의 미중러 외교도 준엄한 시련에 직면하고 있다.   II. 사드에 관한 현실적 우려 필자는 무기 전문가는 아니지만 국제정치 학자이자 일반인으로서의 시각에서 볼 때, 사드는 현실적 측면에서 여러 가지 문제를 유발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사드의 실제 역할은 아주 제한적이기 때문에 북한의 핵무기와 포탄를 요격할 수 없다. 비록 사드의 배치가 중, 러를 상대로 한 것이 아니라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이 그 대상이라고 계속 표명하고 있고 기술적으로도 그와 같이 해석하고 있지만 사실 이러한 주장은 일종의 자기 환상으로 자신을 무섭게 한다. 북한이 전술적 핵무기와 탑재수단을 보유하고 있다는 가정하에 한반도의 전술적 지형을 보면 발사로부터 목표물 공격까지 아주 짧은 시간이 소요된다. 사드가 목표물을 성공적으로 격추시킬 수 있더라도 핵무기의 폭발범위를 감안하면 한반도 남부지역이 피격이나 오염을 피할 수 있으리라고 보장할 수 없다. 핵탄두를 격추했어도 핵탄두가 공중에서 폭발하면 남과 북의 오염이나 공격이 될 수 있다. 한편, 필자 개인의 관찰에 따르면 북한에게 있어서 핵무기는 자신의 가치를 증대하는 수단일 뿐 북한이 아직 실전에서 핵무기를 사용할 능력과 의도는 없다. 동북아에서 핵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은 예상보다 훨씬 작다. 저공비행 항공기와 대포야말로 한국이 실제로 대응해야 할 위협이다. 그러나 저공비행 항공기와 대포는 사드의 대상이 될 수 없다. 핵무기와 대포에 대응할 수 없는 사드는 일종의 심리적 위안일 수밖에 없다. 또한 사드 배치 그 자체가 적의의 표시와 위협으로 간주될 수 있다. 일부 학자는 사드 레이더의 출력을 낮추거나 방향을 조절함으로써 중국과의 불필요한 마찰을 피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일본과 대만에 이미 이러한 레이더가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중국은 우려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중국에게 보내는 호의적인 메시지이지만, 논리적으로 확실하지 않다. 중국과 마찰을 피하게 레이더의 출력을 낮추거나 방향을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은 나중에 필요하다면 출력을 다시 높이거나 방향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이는 안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무서운 일이다. 둘째, 이러한 방법에 동의하더라도 첨단 무기들이 중국을 겨냥하는지 아닌지 누가 통제하고 확인할 것인가? 셋째, 중국 주변에 이러한 무기들이 이미 배치되어 있는 상태라고 하더라도 중국은 자신의 주변 지역에 이러한 무기들이 더 많아지길 원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에게 적의를 품고 있는 국가가 많다고 해서 한국까지도 중국에게 적의를 품는 것이 문제가 없다라는 논리는 당연히 성립될 수 없다. 대만 지역은 중국의 통일 대상이고 ‘반분열국가법’ 대상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일본은 역사, 영토 문제에서 지속적으로 중국을 도발하고 중일 군비경쟁도 확대해나가고 있다. 한중관계가 중일관계처럼 뒷걸음질 치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 꼭 사드가 북한의 핵무기에 대응한 것이라고 주장하고자 한다면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에 대해 정확한 평가를 내려야 한다. 만약 북한의 핵무기가 확실히 한?미에게 큰 위협이 될 수 있다면 사드 배치를 통해 북한을 자극하는 것보다는 적극적으로 핵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더욱 필요할 것이다. 그것은 핵무기 발전과정의 가역성이 낮고 사드의 배치는 단지 시간과 장소의 문제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핵 문제 회담의 재개에 대해 한미 양국을 포함한 각 국의 태도는 소극적으로 보인다. 북핵 문제가 그렇게 절박하지 않다면 이처럼 값 비싸고 큰 논란을 일으키는 무기체계를 배치하기 위해 급히 서두를 필요가 없다. 북한의 ‘위협’을 해결하는 첫걸음은 사드의 배치가 아니라 협상에 복귀하는 것이다. 협상 테이블이야말로 평화의 시발점이며, 그 반대로 무기는 전쟁을 가져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능력과 전쟁 수행능력에 대한 커다란 인식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한국에게 있어서 가장 큰 위협은 북한의 대규모 특공부대원과 재래식무기 및 WMD 등 군사력과 북한의 붕괴로 인한 한반도 혼란이다. 현재 한반도 정세를 통제하는 데에 있어서 한국군과 주한미군은 이미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더욱 거시적인 한반도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한국과 동아시아 국가들이 정치적 지혜를 바탕으로 전략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III. 만약 사드가 배치되면 야기될 수 있는 우려 사드의 배치가 이루어졌다고 가정할 때 한반도는 여러 가지 도전에 놓이게 될 것이다. 우선 강대국 간의 군사력 전략균형이 깨질 것이다. 현대의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정보이며, 정보는 전장의 각종 정보를 수집하는 레이더 등의 ‘눈과 귀’에 의지한다. 동시에 전쟁에서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목표가 바로 이러한 ‘눈과 귀’들이다. 분석에 의하면 사드는 극히 짧은 시간 내(0~3분)에 조기 경보를 제공해 줄 수 있다. 따라서 중국 동부, 동북부지역 및 러시아 극동지역은 전략적 선제우위를 잃게 된다. 반대로 대규모 국지전이나 강대국 간 전면전이 펼쳐지면 가장 먼저 공격을 받을 대상이 바로 일본, 대만, 하와이에 배치된 전략적 경보시스템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한반도에 배치된 사드에 대해 중국은 사드가 미국의 ‘아시아 복귀’에서의 선두로서 중국의 안보적 마지노선(bottom line)을 탐측하기 위한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한반도 핵 문제는 이로써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심연 속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안정, 평화 그리고 통일은 한반도에 사는 모든 이들의 소원이다. 핵 문제의 해결에는 첨단무기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한반도 자체의 안정이 필요하다. 사드의 배치는 여러 부분에서 북한의 반발과 국가 간의 연쇄효과를 초래할 것이다. 따라서 핵폐기 문제에서 타협이 이루어지기 더욱 어려워질 것이고 간신히 안정궤도에 오른 한반도에 파장을 미칠 것이다. 사드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대응하기는커녕 남북 간의 상호교류를 더 어렵게 할 것이다. 북한은 핵능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명확히 밝혔으며 한반도 분단 영구화의 추세는 한 단계 더 심화될 것이다. 한중관계도 사드 문제로 인해 변화를 겪게 될 가능성이 높다. 사드 문제는 중국의 한반도에서의 레드라인과 부딪치고 있다.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것은 중국의 핵심이익으로서 중국은 절대로 그 어떤 국가라도 중국의 문전에서 전쟁을 일으키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60년 전에도 허용하지 않았고, 오늘날에는 더욱 허용하지 않는다. 한중 양국은 이러한 마지노선에 대한 공동인식과 최대의 이익을 갖고 있다. 중국은 북핵 문제와 한반도 안보 문제에 있어서 한국과 일치하는 입장을 더 많이 취하고 있으며 정치적 발전과 안보 교류를 통해 남북의 균형을 도모하고 불안요인들은 억제시키려고 시도해 왔다. 바꿔 말하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면 중국은 한미 군사훈련을 비롯한 행동까지도 묵인해왔다. 한반도 정세에 변화가 나타날 때 중국은 심지어 “중국의 문전에서 말썽을 일으키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경고까지 보냈다. 정치와 안보에서 한반도 평화에 힘을 기울인 중국은 “과거의 적인 한국을 좋은 친구로 발전시키려 하고” 이것을 중국이 추진하는 선한 외교의 모범으로 삼고 있다. 한중관계의 후퇴라는 결과를 보고 싶지 않기 때문에 시진핑 주석을 비롯한 각급 관료, 당정군 각계 인사들은 반복적으로 한국이 사드 배치를 포기하도록 설득하고 있다. 한반도의 안보에 대한 관심이 지금 과도하게 확대되어 있다. 마르크스는 “이가 아플 때 당신의 세계에는 그 충치만 남게 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지금은 과도한 언론보도로 한중관계, 한미관계의 중심은 모두 사드에 놓여 있고 마치 뛰어넘을 수 없는 난관처럼 만들어서 다른 문제들의 중요성이 가려졌다. 근본적으로 사드 논란의 시작점은 북핵 문제에 있고 종착점도 북핵 문제에서 착안해야 한다. 성경에서 “가이샤의 것은 가이샤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라고 하듯이 사드 문제는 북핵 문제가 유발한 하위 문제로서 단순하게 처리해야 하고 다른 문제와 연결시켜서는 안 된다. 이와 동시에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고려해야 하고 특히 한중 언론은 자제해야 한다. 침묵의 방식으로 처리하면 더욱 이성적인 답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정세하에서는 위협에 대응하고자 하는 한국의 요구를 해결하면서도 한반도 혼란을 억제시킬 수 있는 해결책이 필요하다. 사드 문제의 해결은 북핵 문제의 진전에 달려 있다. 다른 문제를 야기해서 북핵 문제의 진전을 압력을 가하는 등 행동으로 사드를 거론할 수는 없다. 중국은 기세등등한 태도를 취하지 말아야 하고, 한국도 어떤 사태도 사드 배치를 정당화하는 계기로 간주하지 말아야 하며, 중국은 한반도의 사실을 직시해야 하고 안보에 대한 한국의 요구와 인식을 인정해야 한다. 또한 미국은 부채질하여 한반도에 압력을 가하지 말아야 하며, 각국의 협력을 통해 문제를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하여야 한다.   IV. 건의사항 사드 문제는 이미 동북아 각국 간에 놓인 위태로운 돌담이 되었다. 춘추말기의 “삼가분진(三家分晋)”, 두 차례 세계대전에서의 폴란드, 그리고 지금의 우크라이나의 경험은 모두 우리에게 참혹한 교훈을 남겨줬다. 이들은 강제나 자국의 의지에 따라 어느 한 쪽으로 속했지만 결국 분할과 약탈의 대상으로 되어 버렸다. 편을 가르는 선택을 한 국가나 개인은 흔히 비극적으로 된다. 한반도의 기억도 아직 생생하게 남아 있다. 이조 말기에 각 세력이 각각 중국, 러시아, 일본 세력들을 끌어들여 결국 한반도는 36년간의 식민지 지배를 당했고 광복시기에 소련과 미국 세력의 개입으로 인해 한반도는 지금까지 분단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천명을 아는 사람은 돌 담 밑에 서지 않는다 (知命者不立乎巖墻之下: A true man won't stand beside a collapsing wall)”는 말이 있다. 한국은 사드 사태의 발전을 경계해야 하고 다시 예전처럼 편 가르기를 할 수는 없다. 현대 한국은 우크라이나도 아니고 폴란드도 아니다. 그래서 이러한 정치적 비극을 되풀이 할 수는 없다. 한국이 이러한 논쟁의 중심이 되어서는 안된다. 문제 자체에 빠지면 문제의 전반을 바라볼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은 더욱 높은 전략적 차원에서 이 문제를 살펴보아야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말한 것처럼 자신의 힘으로 동북아에서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시대를 열어 가야 하고 소녀 한 명에게 4명의 청년이 청혼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야 한다. [손자병법 모공편]에서 이른바 “싸우지 않고서 적군을 굴복시키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고로 최상의 병법은 적의 책모를 벌초하여 적의 의도를 봉쇄하는 것이다. 차선은 적의 외교를 봉쇄하는 것이다. 그 다음 차선은 적의 군대를 직접 공격하여 봉쇄하는 것이다. 최하의 방법은 적의 성을 공격하는 것이다(不?而屈人之兵,善之善者也。故上兵伐?,其次伐交,其次伐兵,其下攻城).”는 말이 있다. 사드를 둘러싼 경쟁은 하책 중의 “군대를 공격(伐兵)”하거나 “성을 공격(攻城)”하는 것에 해당한다. 한반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보다 나은 방법은 대국관계의 “모략(?)”과 한중관계 및 남북관계의 “외교(交)”를 개선하는 것이다. 한국이 이러한 논쟁을 잘 활용할 수 있다면 “성을 공격하는 방법(攻城之?)”을 “책모의 공략(伐?)”과 “외교의 봉쇄(伐交)”로 향상시키고, 미중 양국을 공략하며 미중 양국에서 이득을 얻으면서 각자의 상생을 실현시킬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최선의 선택이다. 현재 한반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안정이다. 안정한 정세를 유지해야 한국의 경제발전도 보장되고 미중 게임의 압력이 한반도에 집중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한국도 한반도 문제에서 더욱 많은 발언권을 가질 수 있게 되고, 통일게임에서 더욱 많은 카드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사드는 한국의 이러한 전략적 이익을 파괴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중국, 러시아 등 동북아 국가들의 강력한 반대를 받고 있다. 사드 문제는 이미 미사일 방어, 한반도 문제 등 중요한 과제 그 자체를 초월하여 강대국 정치경쟁 중 하나의 전쟁터가 되었고, 심지어 동북아 정치를 좌우하는 정치적 “핵무기”가 되어 버렸다. 이것은 북핵 문제, 남북관계뿐만 아니라 중국, 미국, 러시아, 한국을 포함한 여러 쌍의 양자관계를 손상시켰다. 이것은 “무기로써 안보를 지키는” 일방적인 현실주의 사고방식을 보여줬다. 한국에게 있어서 가장 시급한 것은 중국이 사드 배치를 받아들이도록 중국을 설득하는 것보다 상상의 공간을 펼치는 것이다. 사드를 둘러싼 논쟁이 없어진 이후를 상상하면, 안정된 국내?국제환경, 한반도와 지역 평화에 대한 진심, 진정한 의미에서의 대국관계 중재자로서의 한국, 의제 지도자로서의 한국, 국제적 영향력 등 선의의 보람과 찬양들로 가득할 것이다. 물론 그 속에 한국의 선의의 노력에 대한 중국의 더 많은 보답과 선의도 있을 것이다. 現 상해 복단대 북한한국연구센터 소장
  • Middle Power Leadership for Multilateral Cooperation
    저자
    Joe CLARK(Former Prime Minister of Canada)
    발간호
    2015-23
     Let me reflect on one lesson which Canada and Korea learned by working together. In 1990 Canada initiated the North Pacific Cooperative Security Dialogue ? a track-two process to encourage a common approach to the tensions in North East Asia. I was Canada’s Foreign Minister at the time, and recall, in particular, the leadership in that process of the late, and far-sighted, Dr. Kim Kyung Won. That modest but important initiative encouraged and allowed a frankness and discussion among parties in North-East Asia who had rarely had the chance for broad dialogue. It was an early spark which helped facilitate the Korean Peninsula Energy Development Organization, and the Six-Party Talks.  What is noteworthy is that this dialogue was the sort of initiative which only middle-powers could take, because larger powers were imbedded in, and protective of, their own security arrangements.  Much of the world’s focus today is on countries which have the capacity to be dominant powers ? specifically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and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There is absolutely no doubt that their inherent ambition and power, the interests they share, and the tensions between them, are of paramount importance. But other actors matter too, including the growing capacity of the growing number of significant “middle powers” countries here like Korea, and Canada, and Indonesia, and Australia, and Malaysia and others.  In fact, middle powers matter more than we once did, because the tensions between dominant powers can lead them to narrow their focus, and often, therefore, to limit their capacity to lead or stimulate change. Middle powers, by contrast, often have much more flexibility in opening new dialogues, reaching across existing boundaries, and encouraging the skeptical or the constrained to explore new options.  There is a long list of essential work in international relations for which middle powers are often better suited than stronger powers: * mediation in cases where stronger powers are mistrusted * moderation on issues which might be unpopular or contentious in Washington or Beijing * compromises which are often easier for smaller powers to initiate * simply being in the “middle” and not in the lead. Often, in a superpower age, leadership had to come from the top.  In this era, where several nation-states have significant power, and some non-state actors have increasing influence, there is a need for more leadership from beside. What is central is not who sits at the head of the table, but rather what the various members at that table can accomplish together.  That is unusually important in a period where the challenge is not to provide new pews for those who think alike, but to build opportunities, and alliances, where there is a chance to express, and reconcile, the significant differences which mark modern times. In significant cases, that broader process can also take account of the rising power of forces that are not nation-states ? such as non-governmental organizations, foundations like the Gates Foundation, environmentalists, and socially-responsible corporations which have acquired new prominence and influence in an era where information moves instantly and everywhere.  Being “in the middle” is familiar to both Korea and Canada.  We are “middle powers” in both our capacity, and our geography.  We each live beside a dominant power. - - - Each contemporary middle power has its specific interests and strengths. However, we also have a strong shared interest, and that is to make the multilateral system work, because that contributes to an international order based on agreement, not simply power, or force and smaller powers, and middle powers, have a greater need for rules and order.  Advancing that shared interest is never easy, but it is particularly important here and now now in a period of increasing internal and international conflict, and here, in the broad Asia-Pacific, where there has always been potential turbulence.  The pertinent question for us, right now, is: how might multilateral approaches and institutions help stabilize the Asia-Pacific region during this period of a dramatic shift in the balance of power, China’s ascent, and new challenges to American primacy? Joe CLARK(Former Prime Minister of Canada)
  • Opportunities and Challenges of Korean Development Cooperation
    저자
    Thomas KALINOWSKI(Ewha Womans Univ. / JPI)
    발간호
    2015-19
      Korea is a relatively new but very active global player in the field of development cooperation. Spending on 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ODA) increased from 750 million USD in 2005 to more than 1.7 billion USD in 2013. This is 0.13% of the Korean gross national income, still below the OECD development assistant committee (DAC) average of 0.4% (and far below the UN pledge of 0.7%). However, nobody beats Korea when it comes to growth rates in ODA that represents only a beginning of what Korea has to offer in support for developing countries. The most valuable contribution of Korea to development cooperation is its successful rise from a poor and destroyed agrarian country at the end of the Korean War in 1953 to a fully industrialized OECD and G20 member at the beginning of the 21st century. Providing such an excellent case study is a significant contribution to the international community, particularly for government officials, scholars and students in the developing world. The Korean case offers many challenges to mainstream prescriptions for the successful development of getting fundamentals and institutions right, and then letting market forces work their magic. As one of the major recipients of development aid until the 1970s, Korea has shown that development cooperation works if it is embedded in a national development plan. The success story of Korea provides immense credibility in the field of development. Korea is aware of its responsibility and is eager to become a “middle power” by claiming issue leadership in the field of development (vom Hau et al., 2012, Kalinowski and Cho, 2012). Korea successfully integrated development cooperation into the 2010 G-20 Seoul Summit agenda under the Seoul development consensus. In 2010, Korea became a member of the OECD-DAC and in 2011 it hosted the High Level Forum on Aid Effectiveness in Busan. Korea is one of the countries that emphasized growth and “development effectiveness” compared to “aid effectiveness”. This welcomed addition (but not replacement) of the traditional aid agenda broadens the perspective of development cooperation to include more areas such as trade and investment policies. Experience with aid shows that the building of schools, hospitals and roads in developing countries must be integrated into national development plans that ensure their operation, staffing and maintenance. Korea has clearly brought a new dynamic into the club of donor countries that have suffered from “donor fatigue” who have been criticized for the ineffectiveness, patriarchal and even neo-colonial tendency of their efforts (Easterly, 2006, Easterly, 2013). Like China, Korea explicitly challenged the Western approach to development cooperation based on a combination of aid for poverty reduction and support (as well as pressure) for market oriented institutional reform and good governance. The Korean government made package deals in which the economic interest of domestic businesses was balanced with the aim of economic development in the partner country instead of attaching a complicated conditionality for institutional reform vis-a-vis humanitarian aid. This close cooperation of government and business can be seen in the dependency of the Korean developmental state or the international extension of industrial policies (Kalinowski and Cho, 2012). This approach it does have merit however, it can be criticized as a problematic mixture of development cooperation and industrial policies. The Korean “package deal” approach does not follow the DAC preference for untied aid but is a blending of aid with broader trade and investment policies in the name of development effectiveness are not automatically less effective. There are few alternatives to close cooperation between government and business for a country like Korea that is committed to quickly improve its economic and political presence in the developing world. The success and failure of development projects depends on many different elements and it is important to empirically study Korean development projects to assess successes and problems. When it comes to Korea’s relationship with developing countries most attention is paid to spectacular investment failures that were part of the “resource diplomacy” under President Lee Myung Bak (Resource Diplomacy Probe goes to Prosecutors, JoongAng Daily, January 5, 2015). Resource diplomacy was not limited to developing countries however, many of the projects were facilitated by development aid such as oil exploration in Iraq and Peru as well as Lithium mining in Bolivia that were facilitated by development aid. Peru and Bolivia are both focus countries of Korean ODA and Iraq used to be the largest recipient of Korean development aid. The intertwining of diplomacy and business with development aid functioning as a door opener creates many problems of collusion, corruption and waste of taxpayer’s money. The ongoing investigation in the National Assembly will reveal more problems and hopefully produce the right institutions to better safeguard taxpayer’s money. It is also equally important to take development effectiveness seriously and not just scrutinize losses for Korean taxpayers but understand how these projects effect development in the recipient country. In this sense even seemingly successful cases raise issues. For example, Korean state owned gas company KOGAS is invested of gas extraction and liquefying in Mozambique where a newly discovered gas field represents five years of Korea’s gas imports (KOGAS Hits Jackpot off Mozambique, Korea Herald Sept 8, 2013). This might have been a successful investment for KOGAS however, it will most likely have little impact on the development of Mozambique. On the contrary, as we know from research on the resource curse (for a critical literature review see Rosser, 2006), revenues from resource extraction tend to end up in the pockets of a well-connected elite while squeezing out other sectors of the economy. However, we also have to see that in other sectors the packaging of development cooperation with foreign investment worked as well as the IT infrastructure projects in Rwanda. Korea Telecom will invest 140 million USD to deploy and operate a comprehensive high-speed broadband network (Ben-Ari, 2014). Rwanda is a resource poor and landlocked country. While it is not a democracy it has made major progress in increasing government efficiency and ranked 55 in the Transparency International CPI index, one of the least corrupt countries in Africa (in Africa only Botswana ranked higher). Its government has designed a national development plan based on a strong IT infrastructure and has reached partners to provide these services. We do not know if this plan will succeed in the end (just as the Korean government did not know if the heavy and chemical industrialization in the 1970s would succeed) however, the Rwandan government is strategically implementing development plans investing into the future and not selling non-renewable resources for short term rent. The Korean development experience shows that national development plans should be the reference point for cooperation. Development projects not integrated into national development plans and negotiated with corrupt leaders are likely to fail even if they are carried out by established donors or new donors like Korea. Projects in the field of resource extraction are particularly vulnerable to these failures. Resource diplomacy in developing countries is generally problematic and not due to poorly negotiated deals, but due to their problematic effect on development. Projects that do not benefit the recipient country will also fail from a donor or investor perspective. If the Rwandan project succeeds it will open up a new market for Korean IT companies and mobile phone makers, but even if the project in Mozambique succeeds, it will only deplete natural resources and enrich a small elite (that will probably still prefer to drive Mercedes over Hyundai Genesis). The situation will be worse for Korea who will be locked into long term gas contracts amid decreasing renewable energy prices and international pressure to reduce greenhouse gas emissions. Korea faces similar problems that established donors deal with. The successful development experience makes Korea an inspiring case to study but not automatically a better partner in development cooperation. A development effectiveness and “development mainstreaming” approach is needed towards developing countries based on the effects on development in all areas (not just ODA) that includes trade and investment. Korea is in a unique position to contribute its development experience to the further improvement of international norms and institutions codified in OECD-DAC rules. Unlike the West it has credibility in the field of development and unlike China (that invests substantially more in the developing world), Korea is not rejecting global norms of development cooperation but helping to improve them. Korea is an important player in shaping a future international development agenda. This role will also have profound positive impacts on Korean society as the country reaches a new level of global engagement. _____ References BEN-ARI, N. 2014. Big dreams for Rwanda’s ICT sector. Africa Rebewal, 28. EASTERLY, W. 2013. The tyranny of experts: economists, dictators, and the forgotten rights of the poor, New York, Basic Books, a member of the Perseus Book Group. EASTERLY, W. R. 2006. The white man's burden: why the West's efforts to aid the rest have done so much ill and so little good, New York, Penguin Press. KALINOWSKI, T. & CHO, H. 2012. Korea’s search for a global role between hard economic interests and soft power. European Journal of Development Research, 24, 242-260. ROSSER, A. 2006. The political economy of the resource curse: A literature survey. IDS WORKING PAPER. VOM HAU, M., SCOTT, J. & HULME, D. 2012. Beyond the BRICs: Alternative strategies of influence in the global politics of development. European Journal of Development Research 24.? Dr. Thomas KALINOWSKI is associate professor at the Graduate School of International Studies, Ewha Womans University, Seoul, Korea and visiting research fellow at the Jeju Peace Institute. Major research areas are International Political Economy, International Organizations and Development.
  • 러시아의 승전 70주년 기념과 한국의 대응방안: 러시아의 공과 감상법
    저자
    우준모(선문대학교 교수)
    발간호
    2015-20
      러시아에서 제2차 세계대전은 ‘대조국전쟁’으로 회자된다. 나치 독일의 세계 침탈에 맞서 러시아인을 필두로 소연방의 모든 민족들이 힘을 합해 세계 구원에 나섰던 신화와도 같은 역사가 제2차 세계대전이다. 소연방은 대조국전쟁에서 희생된 2천 5백만 명 이상의 시민들을 추모하고 전쟁을 승리로 이끈 ‘붉은 군대(Red Army)’에 대한 존경심을 담아 5월 9일을 승전기념일로 지정하고 해마다 대규모의 군사 퍼레이드와 축제를 해왔다.  1991년 말 소연방이 해체되면서 냉전이 종식되었다. 소연방을 계승한 러시아 역시 승전기념일을 국가의 최대 축일로 삼고 있다.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1995년 승전 50주년 기념행사에는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이 참석했고 2005년 60주년 기념행사에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우리나라 노무현 대통령 등 세계 각국의 정상들이 참석해 대대적인 승전기념 군사 퍼레이드를 참관하고 대조국전쟁에서 러시아의 희생과 공헌을 기렸다.  그런데 승전 70주년이 되는 금년의 승전 기념행사는 미국을 위시한 서구국가 정상들 대부분이 불참하게 되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사태를 빌미로 크림반도를 환수하고 우크라이나 동부지역 분리독립 세력들을 지원하는데 대한 제재 때문이다. 4월 16일자 로이터(Reuters) 통신에 따르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미국이 승전 70주년 기념행사에 세계 각국 지도자들이 참석하지 못하게 압력을 가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푸틴은 러시아인들이 나치 독일에 맞서 인류를 구원했다는 사실은 자명하다고 주장하며 러시아인들은 자신들의 승전기념일을 축하하고 승리를 쟁취한 세대들을 향해 존경을 표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특히 러시아인들은 전쟁 당시 미국과 영국이 의도적으로 지상군 파병을 늦춰 ‘제2전선’이 뒤늦게 형성되었기에 전쟁 승리의 주역은 당연히 소연방 군대라고 인식하고 있다.   러시아의 승전기념일 행사를 지켜보면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역사를 제2차 세계대전의 종결과정에 주안점을 두고 감상하면 러시아의 공훈을 배제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런데 시선을 전쟁의 발발과정과 아시아에서의 제2차 세계대전에 주목하면 러시아의 과오도 뚜렷하게 살아 오른다. 우선 스탈린과 히틀러는 1939년 8월 ‘독소 불가침 협정’을 맺고 폴란드 분할과 중부유럽에 대한 소연방의 지배에 합의했다. 이 합의에 따라 소연방은 같은 해 9월 폴란드를 침공했고 이듬해 6월 발트해 연안의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를 합병했다. 그리고 루마니아의 부코비나와 벳사라비야를 점령하여 소연방 영토로 편입했다.   이때 소연방은 폴란드군 장교, 경찰, 지식인, 예술가, 성직자 등 지도층 인사 2만 명 이상을 러시아의 스몰렌스크 시 인근 카틴 숲으로 끌고 와 학살했다. 카틴 숲 대학살의 참극은 2010년 4월 당시 폴란드 대통령 레흐 카친스키의 전용기 추락 사고로 이어졌다. 카틴 대학살 70주년 추모식을 거행하기 위해 스몰렌스크로 향하던 대통령 전용기가 착륙 도중 추락해 카친스키 대통령 내외를 비롯한 육군 참모총장, 대통령 비서실장, 중앙은행 총재 등 탑승객 87명 전원이 사망한 사고였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소연방의 만행은 아시아에서도 두드러진다. 소연방은 1941년 4월 제국주의적 침탈을 일삼고 있던 일본과 중립조약을 체결했다. 이로써 일본은 제국주의 침탈전쟁을 남동 태평양 지역으로 확장하고 같은 해 12월 진주만 공습까지 감행할 수 있었다. 소연방은 아시아에서 일본의 침략을 묵인하는 대가로 몽골 및 시베리아와 극동지역에서 확장한 자국의 영토를 온전하게 보존할 수 있었다.   소연방 극동지역에 거주하던 우리민족 역시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이전부터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당하는 비운을 겪어야 했다. 소·일 중립조약은 1945년 8월 미국이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그러나 일본의 무조건 항복 이후 소연방은 얄타협정을 근거로 한반도 38도선 이북까지 진주하여 남북 분단을 초래했다. 오늘날 유라시아대륙 곳곳에 ‘고려인’의 이름으로 유랑하는 우리민족들, 그리고 3년여 기간에 걸쳐 동족상잔의 한국전쟁을 겪고 여전히 분단국으로 존재하는 남·북한의 현재는 제2차 세계대전 무렵 소연방이 파놓은 덫에서 우리민족이 아직까지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사실은 내일의 역사가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러시아의 승전 70주년 기념행사에 즈음하여 우리나라의 진로를 가늠해 볼 필요가 있다. 러시아는 지난 수년간 지속적인 투자를 통해 극동지역 블라디보스토크와 하산 그리고 북한의 나진항까지 철도를 현대화시켜 연결했다. 그리고 이와 연계하여 가스관 연결도 준비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 철도를 이용해서 시베리아산 무연탄을 나진항에서 제3국의 배로 실어 한국으로 들여오는 시범사업을 모색하고 있다. 소위 말하는 ‘나진-하산 프로젝트’에 대한 타당성을 검토하는 과정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당초 러시아의 승전 70주년 기념행사에는 북한 최고지도자 김정은의 참석이 예정되어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주창하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실현하기 위해 직접 참석해야 한다는 주장도 개진되면서 남북정상 간의 조우도 점쳐졌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정부를 대표해서 새누리당 윤상현 의원이 특사 자격으로 참석하기로 했다. 행사를 불과 열흘 앞두고 북한의 김정은 역시 참석하지 않는다는 뉴스가 나왔다. 다만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은 당초의 계획대로 참석할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 각국 지도자들이 참여를 거부한 상태이기 때문에 시진핑 중국 주석의 참석은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최근 러시아의 새로운 외교정책 방향은 아시아를 중시하는 ‘신동방정책’으로 제시되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제시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푸틴의 신동방정책과 연계될 때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 부산에서 중국과 러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연결되는 실크로드 익스프레스(SRX)와 북극항로에 대한 상업적 항행 추진, 유라시아 역내 에너지 수급 연계망 구축, 역내 국가들의 협력적 창조경제 동력추진, 동북아와 한반도 평화를 위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가동 등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청사진은 푸틴의 신동방 정책 즉, 러시아의 극동·시베리아 개발 및 아태지역 진출전략과 완벽하게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금번 승전 70주년 기념행사에 한국정부를 대표해서 참석하는 윤상현 특사가 역량을 발휘하여 한-러 간 신뢰관계를 돈독하게 만들고 남-북-러 연계 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할 초석을 다지고 오기를 기대한다.  現 선문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주요경력으로는 우즈베키스탄 국립 동방학대학교 국제관계 및 경제학부 교수와 한국외대 두뇌한국 21(BK21) 지역연구전략개발팀에서 전임 연구원을 역임했음. 연구 분야는 러시아의 영토?국경정책, 외교정책, 지정학임. 주요논문으로는 『러시아 민주변혁의 진로』, 『러시아 대통령제의 발전과정과 전망』 외 다수의 논문과 공동저서 등이 있음.
  • Public Perception and Security Cooperation: Is an ROK-PRC Alliance Possible?
    저자
    Intaek HAN(Research Fellow, JPI)
    발간호
    2015-21
     1. Introduction    Widening and deepening cooperation between the two countries is desirable however, frustration (and even disappointment) are likely to follow if the two countries have different expectations about the pace and scope of bilateral cooperation. This paper examines the idea of an ROK-PRC alliance (as proposed by Prof. Yan Xuetong, a leading Chinese international relations expert) against the reality of South Korean public perception, as a way to gauge the divergence between the two countries about future bilateral cooperation.  Prof. Yan Xuetong, a political realist, is the author of Inertia of History: China and World in Future Ten Years and an article recently published in Sungkyun China Brief, “Is an ROK-PRC Alliance Possible?”. His writings on the prediction of a formation of an ROK- PRC alliance have received significant attention in South Korea and China. His prediction of an alliance within 10 years have taken many by surprise due to their imminent nature.  Prof. Yan Xuetong details three factors that will contribute to the emergence of an ROK-PRC alliance: Two common threats ? Japan’s military normalization and North Korea’s nuclearization?and one common challenge?the need to maintain regional peace. Prof. Yan argues that security cooperation between South Korea and China is needed to respond to the threats posed by Japan and North Korea along with the challenge of maintaining peace in the region. There are two potentially two negative factors that may influence the rise of a ROK-PRC alliance, Prof. Yan argues. They are ROK-US alliance and DPRK-PRC alliance. However, his view is that a ROK-US alliance does not necessarily exclude the possibility of an ROK-PRC alliance as well as that a DPRK-PRC alliance cannot pose any obstacle to an ROK-PRC alliance since the DPRK-PRC alliance has practically ceased to exist. Prof. Yan is aware that many consider his prediction as an unlikely fairy tale.  From a realist perspective of international relations, security interests are the most important factor to explain state behavior. For a realist like Prof. Yan, the idea that the existence of common security interests (realized through alliances) will motivate the two countries to cooperate in a logical conclusion. Is this conclusion by Prof. Yan realistic as much as it is logical? Or is it as unrealistic as it is fantasy?  Security cooperation does not occur automatically when there are common threats or challenges. Rather security cooperation is possible when states perceive each other as cooperation partners who perceive threats and challenges similarly. In addition, public perception matters a lot in democratic countries like South Korea. Security cooperation requires that the public view a foreign country as cooperation partner that faces a similar threat and challenges. Public perception is important in regards to future security cooperation with China.  Perceptions matter in cooperation as well as interests therefore, we can partially “test”  Prof. Yan’s prediction of an ROK-PRC alliance by studying public perception in South Korea. However, it is not possible to fully test his prediction for the future of ROK-PRC security cooperation by studying public perceptions today. Public change slowly therefore, public perceptions today are most likely to be quite similar to public perceptions ten years from now. A careful examination of changes in public perception over the last few years will provide some insight into the current and future direction of public perception.  An ROK-PRC alliance is more likely when Koreans feel close to China however, an alliance, in essence entails cooperation against a common enemy. An alliance should only be possible as long as there exists a common enemy. The existence of amity between allies is desirable but not always necessary. 2. South Koreans’ Perception of China 1) Findings from Global Attitude Survey by Pew Research Center  In the spring of 2014, Pew Research Center Global Attitude Survey asked respondents in a number of countries about their views of China. Their responses varied widely among Asian countries. In Pakistan, 78% of respondents answered that they had a favorable view of China, while 3% said they had an unfavorable view of China. In Japan, in a sharp contrast, 91% of respondents said that they had an unfavorable view of China, while only 7% had a favorable view of China. Views of China in Asian Countries   Source: Pew Research Center, “Global Opposition to U.S. Surveillance and Drones, but Limited Harm to America’s Image" (July 2014)   Among South Korean respondents, 42% held an unfavorable view of China, while 56% had a favorable view of China. Comparatively, 82% of South Koreans had a favorable view of the United States, while 22% had a favorable view of Japan. The more than a half of respondents holding a favorable view of China indicates no problems in South Koreans’ perception of China. However, it is troubling that 42% of South Korean respondents have an unfavorable view of China, even though South Korea is not in a territorial dispute with China (unlike Japan, Vietnam, the Philippines, and India, where China is understandably unpopular). Nor does South Korea have any potential obligation to oppose China through a treaty of alliance as the United States does. There is no acute conflict of national interest between South Korea and China mutual interests are expanding as bilateral cooperation in trade and investment increases. Nevertheless, the percentage of South Koreans with a favorable view of China is relatively low, while the percentage of South Koreans holding an unfavorable view of China is significant. This counter-intuitive result requires an explanation. What is important is that the current state of South Koreans’ perception of China makes it difficult for an ROK-PRC alliance to form within 10 years. There must be a gap between objective interest and public perception. 2) Findings from Unification Attitude Survey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Institute for Peace and Unification Studies (IPUS)  Since 2007, the Institute for Peace and Unification Studies (IPUS) at Seoul National University conducts an annual Unification Attitude Survey to learn more about South Korean attitudes towards unification issues. a. Favorability Country One Feels Most Close To (%)  For the past 8 years, the percentage of South Koreans who answered that they felt most close to China has been small their percentage decreased even before the Cheonan and Yonpyeong Island incidents by North Korea only to return to the 2007 level in 2014. Therefore, based on favorability, an ROK-PRC alliance seem unlikely in 10 years.  Security cooperation does not necessarily require amity. At minimum, two countries can form alliance only if they do not feel threatened by each other. Also of interest is that the Unification Attitude Survey asked respondents to name the country that they believe poses the biggest threat to peace on the Korean peninsula. b. Threat Perception Country Posing the Biggest Threat to Peace on the Korean Peninsula (%)    Most respondents answered that North Korea was the biggest threat. The percentage of the respondents who answered North Korea was below 40% in 2007 and 2008. In 2009, before the Cheonan torpedo attack by North Korea, the percentage was higher than 50%. These are not unexpected, and supportive of Prof. Yan’s prediction. He has based his prediction for a ROK-PRC alliance on the need to respond to North Korea, and South Koreans do believe that North Korea as the biggest threat to peace on the Korean peninsula.  What is notable is the percentage of South Koreans who chose China as the biggest threat, over 30% in 2011 and 2012. In 2014, the percentage was 17.7%, back to the pre-Cheonan sinking level. For South Koreans, China was perceived as a threat only second to North Korea in some years. Such perception does not bode well for the predicted ROK-PRC alliance.  What is notable is the percentage of South Koreans who chose China as the biggest threat, over 30% in 2011 and 2012. In 2014, the percentage was 17.7%, back to the pre-Cheonan sinking level. For South Koreans, China was perceived as a threat only second to North Korea in some years. Such perception does not bode well for the predicted ROK-PRC alliance.? c. Cooperation Partner  In addition to common interests, amity and shared threat perception contribute to security cooperation. Each party must perceive each other as a cooperation partner. Do South Koreans perceive China as a cooperation partner? The Unification Attitude surveyed the image of China.   Exact percentages vary from year to year however, the percentage of respondents who view China as a cooperation partner has increased from less than 20% to a mid-30% over an 8 year period. This is a positive development for the predicted ROK-PRC alliance however, nearly 50% of South Koreans perceive China as a competitor even though such perception is now less common at 30%. The following table shows the South Korean perception of the image of the United States among South Koreans. Every year, the majority of respondents perceive the US as a cooperation partner. It is not surprising that an alliance exists between South Korean and the United States. Consequently, China also needs to be seen as a cooperation partner by the majority of South Koreans over the next ten years for an ROK-PRC alliance to form.    Does a low level of favorability, a weak image as a cooperation partner, a continuing strong image as a competitor and object of suspicion suggest that South Koreans are unwilling to work with China either consciously or subconsciously? Since 2008, the Unification Attitude Survey has asked respondents if South Korea needs Chinese cooperation for South and North Korea unification. The following table shows that a vast majority think that cooperation with China is necessary.    Successive Unification Attitude Surveys indicate that South Koreans do not have favorable views of China. Nevertheless, as high as 88.9% of South Koreans answered that cooperation with China is necessary for unification. 3. Implications The survey results do not support Prof. Yan’s prediction of an ROK-PRC alliance in the near future. South Koreans do not have generally favorable views of China. South Koreans view North Korea as a major threat however, they do not find Japan as a major threat. Many South Koreans see China as a threat, as a competitor and an object of suspicion. An ROK-PRC alliance will require significant effort on both sides to change current perceptions. However, South Koreans do recognize the need to work with China to achieve unification. The results suggest that an ROK-PRC alliance (in a traditional sense) is unlikely in the near future a more likely development is an “issue-based” alliance or security cooperation in specific areas.  Whether such cooperation should be called an alliance is debatable. Misunderstandings and frustrations are likely to occur if South Korea and China have different perceptions of each other and have different expectations about bilateral cooperation. To prevent misperceptions, China needs to recognize that public opinion in South Korea is not favorable enough for ROK-PRC security cooperation and adjust expectations accordingly. It is important for South Korea to understand the nature and extent of Chinese expectations and make efforts to accommodate them when necessary. Also important is consideration of other countries, such as the United States, who require due attention and communication efforts to prevent misunderstandings and frustration. Starting in 2015, the Jeju Peace Institute plans to conduct an annual survey of public and expert opinions in order to better understand public and expert views from East Asian countries in regards to neighboring countries. We expect our survey to reduce misunderstandings and frustration as well as assist in regional cooperation. Intaek HAN is Research Fellow at the Jeju Peace Institute, an independent think tank located in Jeju, South Korea.
  • 다자적 국제협력과 중견국가의 리더십
    저자
    Joe CLARK(전 캐나다 총리)
    발간호
    2015-22
    [전략] 양자간 그리고 다자간 협정은 아태 지역에서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25년 전만 해도, 아태지역 역내 이니셔티브는 상대적으로 흔치 않았습니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의 중심에서 이루어진 신중한 협력은 예외적인 경우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아태지역 역내 무역과 각종 협정, 그리고 다자간 협력은 역내 독보적인 경제 성장과 통합의 촉매제가 되고 있습니다. 다자주의와 번영은 함께 성장해 왔습니다. 안보 협력은 지금까지 나름의 성공을 거두어 왔지만 국제적 혼란이 증가하면서 점차 속도가 감소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정부 차원, 그리고 민간 차원의 핵심적인 협력이 어떻게 안보 문제로 확장될 수 있는지 심사숙고해야 합니다. 과거 캐나다와 한국이 공조하는 과정에서 얻은 교훈이 떠오릅니다. 캐나다는 1990년, 동북아 지역분쟁에 대한 접근 방법으로써 민간 차원에서 북태평양협력안보대화(North Pacific Co-operative Security Dialogue)를 제안했습니다. 당시 저는 캐나다 외무 장관이었습니다. 현인(賢人)이셨던 故 김경원 대사의 리더십이 특히 떠오릅니다. 온건하면서도 중요했던 그 대화체제 제안은 그 동안 역내 안보에 관한 다자간 대화를 할 기회가 거의 없었던 동북아 지역 관계국들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었고, 한반도 에너지 개발 기구(Korean Peninsula Energy Development Organization) 발족과 6자 회담을 개최하는데 일조하였습니다. 괄목할 만한 것은 그 안보대화가 중견국만이 취할 수 있었던 발의였다는 점입니다. 강대국은 그들 자신의 안보에 급급했고 그들 자신의 안보 대책에만 골몰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전세계의 시선은 패권을 가진 국가 즉, 미합중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을 향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국에 내재한 야망과 패권, 그들 사이에 공유된 이익, 그리고 긴장감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 캐나다, 인도네시아, 호주, 말레이시아 등 그 수가 점차 늘어나고 있는, 세계 무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중견국들의 영향력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사실, 현재 중견국들은 과거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강대국은 그들 간 긴장의 고조로 인해 더 넓은 시각에서 사안을 보지 못하여 새로운 변화를 자극하고 이끌어내는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와는 다르게, 현대의 중견국은 새로운 회담을 개최하고, 국제공조체제를 구축하고 기존 체제에 회의적이거나 봉쇄된 국가가 그들이 추구하는 것과 다른 방향의 제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하도록 독려하는데 더 좋은 위치에 있습니다. 다음은 국제관계에서 필수적으로 수행해야 할 목록으로, 강대국보다 중견국이 맡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역할에 관한 것입니다.   - 갈등 중재: 강대국을 신뢰할 수 없는 사안일 경우   - 절제: 미국이나 중국이 관심 갖지 않거나 논쟁을 초래할만한 이슈에 대해   - 타협과 절충: 강대국보다는 중견국이 제안하기 쉬운 경우가 더 많음   - 선두가 아닌, 단순히 중간적 위치에 존재하는 것 패권국 시대에, 리더십은 주로 위에서 아래로의 수직적 관계였습니다. 그러나 몇몇 국민국가가 상당부분의 패권을 가졌으며 비정부 활동세력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는 요즘 같은 시대에는 수평적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중심에 있다는 것”은 누가 상석에 앉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세계 무대의 여러 주체들이 함께 성취하는 것을 말합니다.   함께 성취한다는 것,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만 관계를 유지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기회를 만들고 동맹을 형성하기 위해 세계적 도전 과제가 있는 시대, 표현할 기회 그리고 현시대를 특징짓는 중요한 차이를 조화시킬 기회가 있다는 점이 이 시대에 전례 없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거시적 관점은 정보가 빠른 속도로 전달되는 이 시대에서 새로운 입지와 영향력을 확보한 비국가주체, 즉 비정부 기관, 게이츠 자선재단, 환경운동가, 사회적으로 책임 있는 기업 등의 영향력이 커지는 점도 고려한 시각입니다. “중간적 위치에 존재하는 것”은 한국과 캐나다 양국 모두에게 익숙한 개념입니다. 두 국가는 영향력으로나 지리적으로나 중견국의 위치에 있습니다. 양국은 모두 패권국가 옆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중략] 오늘날 중견국들은 각기 다른 이익과 영향력을 보유합니다. 그러나 함께 공유하는 이익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다자간 공조체제를 이행하는 것입니다. 다자간 공조체제는 단순한 패권이나 무력이 아닌 협정에 의거하여 국제 질서를 유지하는데 기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약소국과 중견국은 강대국에 비해 국제규범과 질서를 더더욱 필요로 합니다.   다자간 공조체제에 대한 공유 이익을 발전시키는 것은 물론 쉽지 않은 일이지만 국제적, 내부적 갈등이 고조되는 오늘날, 그리고 항상 격동의 가능성을 품어온 광범위한 아-태 지역에 특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현재 우리가 마주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중국이 부상하고 미국의 패권이 도전받으며, 세력균형이 급격하게 변화하는 시대에 다자주의적 접근 방법 및 제도가 어떻게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안정화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인가? *이 글은 제10회 제주포럼 개회식 기조연설 발췌문이며, 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의견으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 웬디 셔먼 미 국무차관의 발언과 2015 지역질서 건축
    저자
    이헌미(서울대 국제문제연구소)
    발간호
    2015-11
    지난 2월 27일 웬디 셔먼 미국 국무부 정무차관의 카네기 국제평화연구소 연설로 대한민국은 한바탕 난리가 났다. 연설 내용 중 특히 논란이 된 부분은, 한국과 중국이 위안부, 교과서, 영해 표기 등 역사인식 문제로 일본과 대립각을 세우는 것에 대한 셔먼 차관의 비판이었다. 그녀는 민족주의가 정권 지지도를 높이는 데 동원될 소지를 언급하면서, 동아시아 지역 협력의 진보를 위해서는 역사에 지나치게 연연하는 대신 미래지향적이 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이를 1차 보도한 국내 언론은 미국이 한일 역사분쟁에서 일본을 편들고 나섰다며 연설의 특정 부분을 부각시켰다. 덕분에, '값싼 박수(cheap applause)'를 받으려 하는 정치지도자가 박근혜 대통령을 지칭하는 것이냐, '소위 위안부(so-called comfort women)'라니 일본의 전쟁범죄를 부인하는 것이냐는 등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국내 여론이 들끓으면서 공식 사과를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미국 국무부가 3월 2일 정례 브리핑 자리에서 그런 뜻이 아니었다며 해명한 바 있고, 3월 5일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피습 사건으로 분위기는 일변하였다. 어느 정도 열기가 가라앉자, 국제관계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과 한미일 삼각동맹의 맥락에서 셔먼 차관의 연설을 해석한 논평이 나왔다. 이들은 셔먼 차관의 연설에 감정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그 이면에 놓인 미국의 전략을 읽고 대응방안을 마련할 것을 요청했다. 주장의 요지는 첫째, 한중관계 밀착에 대한 미국의 견제, 둘째, 워싱턴 정가에 대한 일본의 막대한 로비와 미국의 일본 경사에 대한 우려, 셋째, 앞의 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한국 대미 외교 재정비의 필요성으로 모아진다. 셔먼 발언에 대한 여론의 초기 반응을 다분히 민족주의적 의분에서 나온 '열정'이라고 한다면, 이러한 일련의 견해는 힘의 차이에 기초한 타협을 불가피하다고 여기는 국제정치적 '냉정'이라고 하겠다. 문제는 동아시아 지역정치가 냉정 혹은 열정의 이분법적 논리로는 답이 안 나오는 냉정과 열정의 혼탕이라는 사실이다. 외교안보 현안 타결과 장기적 지역협력 구상에서 한중일 정책결정자 및 국민들 상호간 인식 변수의 중요성이 크기 때문이다. 셔먼 차관은 계속되는 역사분쟁의 원인을 민족주의와 리더십의 문제로 정리하고, 해결의 실마리 또한 여기에서 발견하고 있다. 경색된 한일 및 중일관계의 이면에 아베 총리, 시진핑 주석, 박근혜 대통령의 국내정치적 고려가 일정하게 존재함은 분명하다. 그러나 셔먼 차관이 읽은 것과 달리, 동아시아 역사 갈등은 정권이 일방적으로 주도하기 어려운 국민 여론적 민감성을 띠는 사안이다. 이와 관련, 외교정책에 대한 국민여론의 영향력이 증가하는 확연한 추세 속에서, 한국 정부의 대일정책은 국내적 설득력과 대외적 설득력을 동시에 갖추어야 한다. 전략적 이익을 위해 과거사를 덮자는 셔먼식 냉정으로는 국내 여론의 반발을 살 테고, 여하한의 타협을 거절하는 한국식 열정으로는 일본 사회와 미국 정부를 납득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논란이 되고 있는 위안부 문제에 있어서, 한일청구권협정 해석을 둘러싼 한일 간 입장 차이를 정상회담 성사 여부와 분리시켜서, 한일청구권협정 조항에 근거하여 중재위원회에 회부하자는 제안을 진지하게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조세영, 2015.2.24. EAI 일본논평) 미국 국무부는 금번 발언 이후, 침략 전쟁의 책임과 위안부 일본군 관여를 인정한 무라야마·고노 담화가 자신들의 입장임을 재확인했다. 셔먼 차관의 발언이 미국 정부의 입장 변경을 의미하지 않음도 분명히 했다. 태평양전쟁 종전 70주년, 한일청구권협정 50주년을 맞는 올해, 우리 정부와 언론은 미국의 지지와 국제 규범을 객관적 근거로 삼아, 일본 정부의 역사 인식 후퇴를 경계하고 압박해야 한다. 셔먼 차관의 발언을 더 이상 문제 삼는 것은 오히려 편협한 민족주의적 과민반응으로 읽힐 수 있다는 점에서 현명하지 못한 포석이다. "나는 당신들에 대해서 잘 모른다. 그러나 겨울은 지긋지긋하다(I don’t know about you, but I’m tired of winter)."라는 셔먼 차관의 발언은 지지부진한 한일관계에 대한 워싱턴의 냉담한 시각을 단적으로 대변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리더십의 결단과 지혜가 강력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국제정치적 겨울의 추위에 가장 시달리고 있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셔먼 차관이 이처럼 다소 거칠게 말한 까닭은 한중일 관계 정상화에 대한 미국의 열망을 강조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민주당 정부의 대표 협상전략가로서 클린턴 행정부 시절 대북정책 조정관을 역임한 그녀가 동아시아에 대해 잘 모를 리도 없다. 그러나 미국이 동아시아를 '우리'가 아닌 ‘당신들’로 인식하는 한, '아시아는 아시아인들에게(Asia for Asians)'라는 시진핑 주석의 주장을 반박하기 어려울 것이다. 동북아 과거사 문제가 여론을 달구는 뜨거운 감자이자 현재진행형인 근본 원인은, 이 지역에서 제2차 세계대전의 전후처리가 불철저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유럽과 달리, 근린국가가 아닌 미국이라는 역외세력이 일본을 굴복시켰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점, 오늘날 동아시아의 지형을 만들어낸 전후 질서 설계의 주역으로서, 미국은 제3자의 태도를 버리고 역사 분쟁의 당사자로서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 셔먼 차관은 연설에서 제2차 세계대전 종전 70주년의 함의를 여러 번 언급했다. 또한 동아시아의 조화와 협력이 미국 및 세계 다른 지역에 끼치는 영향력이 크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녀가 말한 것처럼 아시아-태평양 지역이 미국의 안보와 번영에 긴요하다면, 정책환경으로서 지역 문화에 대한 보다 치밀한 감수성이 요구된다. 사회를 본 평화연구소 부소장 더글러스 팔(Douglas Paal)이 평한 것처럼, 셔먼 차관의 이 날 연설은 동아시아의 현안 전반을 포괄적으로 논한 '야심찬(ambitious)'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국제질서의 '건축(architecture)'과 '설계(design)'라는 표현이 여러 번 등장했다. 철학이 있는 건축가라면, 그리고 성공적인 건축물이 되기 위해서는 주변 환경과의 조화, 장소의 역사와 전통, 그 집에서 살 사람들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민트 레스토랑, 본태 박물관 등 제주에서도 그 작품을 볼 수 있는 일본 출신의 세계적 건축가 안도 다다오(安藤忠雄)는 재료의 질감을 그대로 살리면서 자연환경을 인공적 구조물의 미학에 담아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아시아 지역 질서의 새로운 도면에서 이러한 미덕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現 서울대 국제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 저작으로 “반역의 정치학: 대한제국기 혁명개념 연구”(2012 서울대학교 박사학위 논문)등이 있음.
  • 베트남의 Track 2 외교 경험: 북한에의 함의
    저자
    Dr. NGUYEN Hung Son(Diplomatic Academy of Vietnam)
    발간호
    2015-12
    [편집자 註] 동남아는 다자주의 전통의 빈곤에도 불구하고 단시일 내 다자안보협력을 성공시킨 모범적인 지역이다. 동남아의 다자안보협력이 성공한 중요한 요인으로 활발한 Track 2 외교를 들 수 있다. 동남아 Track 2 외교의 경험을 공유하고 동북아 다자안보협력에 주는 함의를 알아보고자 “Track 2 외교와 다자안보협력” 시리즈를 기획하였다. 이 시리즈를 통하여 동남아 주요국가의 Track 2 외교 경험이 JPI PeaceNet 독자들과 공유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공동편집자: Carolina Hernandez (ISDS Philippines)  한인택 (JPI)      Informal Diplomacy through think tanks and academia, often referred to as Track II Diplomacy in South East Asia, is relatively new in Vietnam. “Diplomacy” has traditionally been a highly centralised activity only conducted by dedicated government agency. Track II Diplomacy only started since the “Doi moi” (Renovation) that opened up the country in the late 1980s, and gained greater strength and acceptance since Vietnam joined ASEAN, and hence, its formal and informal mechanisms. With deeper and multi-faceted regional integration, greater diversification of “actors” in foreign relations, “comprehensive diplomacy” gradually became a necessity and a foreign policy guideline. The “Track II” was then officially recognised as an indispensible channel for Vietnam to interact with the world, with increasingly important contribution.   It took a while at the beginning for Vietnam to align itself with regional Track II Diplomatic practices. Thinking and speaking “out of the box”, i.e. not repeating or echoing the official lines, was often perceived as a challenge. The Vietnam Institute for International Relations (now Diplomatic Academy of Vietnam), the leading Track II Diplomacy agency in Vietnam is a formal institution under the Ministry of Foreign Affairs, with their senior experts and scholars still serving as, or just retired from, the “Track I”. Under such structural setup, it was impossible for them not to be influenced by their government official positions. In those early days, there was some impression around the older ASEAN’s members that Vietnam lacked “candour” in Track 2 participation. Nor was the Vietnamese government fully attentive to the informal regional processes at the time when it was still making an effort to integrate to the broad range of official mechanisms and activities. Vietnam devoted more attention and interests to those activities with more immediate and concrete impacts. Participating on Track 2 processes were, therefore, more a political effort towards ASEAN’s integration rather then a decision made based on merit. It was a tough time for the Track 2 Vietnamese scholars to build confidence both among their regional peers and their domestic colleagues at home.   Things changed rapidly as Vietnam became more confident in ASEAN and regional affairs, when Vietnam exhibited greater resolve for proactive regional integration. Vietnamese scholars participated in the process more academically. The informal, off the record nature of the meetings did help immensely. Their Track I affiliation and links kept them informed of official activities without imposing too much constrain to their mind freedom. With more confident participation, Vietnam started realising the importance of the Track II and paid greater attention and investment on it. Many senior Ambassadors and former Vice Ministers for Foreign Affairs joined the Track II processes and were frequently dispatched to Track II events. Reports from the Track II interested senior leadership not only from the Ministry of Foreign Affairs but also from a broader and higher policy makers. Vietnam started taking up responsibility in Track II mechanisms, such as Co-chairing the CSCAP process on Weapon of Mass Destructions, and even initiated CSCAP study groups such as the CSCAP Study Group on Water Security. Starting from 2008, Vietnam has initiated an annual International Workshop on the South China Sea, gathering the most prominent researchers on the related topics. This series of Workshop have become the leading regional forum on the South China Sea issue. In 2011, Vietnam hosted the General Conference of CSCAP, a landmark Track II event of the Asia-Pacific that is held only every two years, marking Vietnam’s maturity in Track II Diplomacy. Track II Diplomacy has proven to provide a huge amount of knowledge that helped Vietnam make more informed foreign policy decisions. As the national focal point for Track II Diplomacy, the DAV - Diplomatic Academy of Vietnam (formerly the Institute for International relations) manages Track II activities and serves as the link between Track II and Track I. The DAV shares the knowledge it has learnt to enhance the perspectives and awareness of the most relevant government agencies. The DAV also shared its knowledge and experiences through a network and contacts of expert countrywide, thus contributed to the national consensus building process. The DAV disseminates its knowledge through various local and regional seminars, and through articles published in popular media. Two most important channels trough which the DAV influenced policies were direct participation in policy formulation discussions, and through presenting special reports with recommendations to relevant government agency, most typically the Ministry of Foreign Affairs. The DAV also raised Vietnamese views and explained Vietnamese government interests and positions on critical issues, such as the South China Sea and water security in the Mekong river. The process helps build confidence and raise regional awareness on those issues.   As regional Track II Diplomacy expands in scope and depth, so do the challenges facing the Track II community, the DAV included. Human capacity is the most immediate challenge, as most Track II agencies in the region struggle to have the appropriate human capital to fully participate and benefit from the regional discussions on a broader range of topics. From weapon of mass destructions to climate change to water security etc., these specific topics require true experts in the fields. On the other hand, some regional issues are inter-disciplinary and call for good inter-agencies coordination, such as the issues in the South China Sea. Networking and the ability to draw resources and expertise from other think tanks and government agencies is another challenge to the DAV. Financial deficiency also decapitates, since many Track II agencies are self-funded or only partly funded by the government.   Vietnam experiences on Track II process in South East Asia could be used to engage Pyongyang. Building initial confidence is critically important, therefore early attempt should stay on “easy” topics in very informal and off the record settings. Broader participation from North Korea might shorten the ice breaking process and greater confidence in Pyongyang on Track II diplomacy, therefore North Koreans invited to Track II events should be diversified rather than concentrated on a few “dedicated” North Koreans diplomats. Lastly, Pyongyang should be assisted financially to cover participation costs.   A once divided South East Asia is now turning into an integrated Community, and Track II diplomacy have always been at the fore front. Let us hope the same for North East Asia. Dr. NGUYEN Hung Son is Deputy Director-General of the Institute for South China Sea/East Sea Studies at the Diplomatic Academy of Vietnam. His areas of research are East Asia's security and cooperation, particularly maritime security, East Asia regionalism and ASEAN affairs.
  • 사드(THAAD)의 한국 배치는 중국에게 위협이 안되는가?
    저자
    曹世功(亚太学会 朝鲜半岛研究会)
    발간호
    2015-16
     [편집자 註] 사드를 둘러싼 논의가 객관적인 사실과 상호이해를 바탕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JPI PeaceNet은 사드를 보는 한중 양국의 시각을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독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 첫 시도로서 우정엽 박사의 기고문 "사드(THAAD)가 중국에게 위협이 되는가?"를 국문과 중문으로 발행하여 한중 양국의 독자들에게 배포하였다. 사드를 보는 중국의 시각으로서 중국 아태학회 조선반도연구회 조세공 위원의 기고문과 그 뒤를 이어서 상해 복단대학 정계용 조선한국연구센터 소장의 기고문을 소개하고자 한다. 많은 관심을 부탁드리며 독자들의 기고도 환영한다. 채택된 원고에 대해서는 원고료가 지급되며 JPI PeaceNet을 통하여 한중 양국 독자들에게 배포될 예정이다. 편집자: 한인택 연구위원(ihan@jpi.or.kr)  최근 미국의 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인 사드(THAAD)의 한국 배치 문제가 국제 사회의 주목을 받는 이슈로 부상하였다. 미국이 한국에 대해 끊임없이 압력과 영향을 행사하고 있어서 중국이 여러 차례 우려를 표명하였다. 한국 내에서도 사드 도입의 타당성 여부를 둘러싸고 여야 간의 대립이 가열되고 있고 국민 여론의 양분화도 심해지고 있다. 이러한 복잡한 정세에 직면하여 한국 정부는 딜레마에 빠져서 결정을 못내리고 있다. 일설에 의하면 한국 정부가 의도적으로 “모호 전략”을 쓴다고 한다.  바로 이런 배경하에 아산정책연구원 미국 워싱턴 사무소의 우정엽 소장은 "사드(THAAD)는 중국에게 위협이 되는가?"라는 제목의 논문을 얼마 전 JPI PeaceNet을 통해 발표하여 한국 정부에 정책제안을 하고 여론도 조성하려고 하였다. 우 소장의 논문은 미국의 미사일 방어 전략을 공공연히 대변하고, 사드가 러시아와 중국뿐만 아니라 지역 안보를 위협한다는 점을 완전히 부인하면서,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중국의 동기를 심각하게 왜곡하였다. 우 소장의 논문은 심지어 사실까지 왜곡하여 중국이 북한의 모험적 정책에 “편들기를 한다”고 주장하였다. 필자는 이런 잘못된 주장을 일일히 분석하고 반박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우 소장은 자신의 논문에서 이른바 “제한적인 탄도 미사일 공격으로부터의 미국 방어”라는 미국의 개념을 근거로, 러시아와 중국은 미국의 미사일 방어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하고, 미국의 방어 목표는 “현재 추산되는 미국, 나토, 러시아, 중국의 통제 밖에 있는 6300여 개의 탄도 미사일”이라고 주장하였다. 필자는 이런 주장이 객관적인 사실과 거리가 매우 멀다고 생각한다. 잘 알려져 있듯이 미국은 이미 1950년대 중반부터 탄도 미사일 방어 체계의 개발에 착수하였다. 레이건 정부는 구 소련에 대항하기 위해 ‘스타 워즈’ 라고 불리는 ‘전략적 방위 구상(SDI)’을 추진하였고, 이러한 시도는 훗날 ‘국가 미사일 방어 체계(NMD)’와 ‘전구 미사일 방어 체제(TMD)’로 변신하였다. 90년대 초 구 소련의 해체로 주적이 소멸됨에 따라 미국은 전략적 조정을 시작하여 ‘제한적 방어’라는 신 개념을 제시하였다. 그리하여 미국 미사일 방어의 중심은 구 소련의 미사일 위협에 대한 방어로부터 미국의 국토, 해외 주둔 미군, 동맹국 및 파트너 등의 보호와 사고나 허가 받지 않은 탄도 미사일 공격으로부터의 보호 등으로 전환되었다. 하지만 미국의 미사일 방어 전략은 결코 고정불변된 것이 아니고 방어대상과 방위태세의 변화에 따라 수시로 조정될 수 있는 것이다. 즉, ‘제한적 방어 전락’은 오직 단계적인 개념일 뿐, 절대로 미국의 미사일 방어 전략의 전부를 대표할 수 없다. 사실 “제한적 방어”라는 개념의 적용 범위 자체도 일찍부터 깨졌고 변화하였다. 막대한 핵무기와 미사일 공격능력을 보유한 러시아가 국력을 회복하고 국제무대에 복귀함에 따라 러시아는 불가피하게 미국의 방어 범위에 다시 들어가게 되였다. 중국도 경제의 지속적인 고속 발전과 종합적인 국력의 증강으로 인해 미국 패권의 도전자로 간주되게 되면서, 중국을 억제하는 것이 미국의 주요한 전략적 목표가 되었다. 따라서 미국의 미사일 방어 체계가 중국을 겨냥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은 이제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이는 몇 가지 사실만 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다. 미국은 일찍이 1997년 「4개년 국방검토 보고서」에서 2015년 이후에는 러시아와 중국이 지역적 대국이나 새로운 세계적 경쟁국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예측하였다. Ford 대통령 시기에 국방장관을 역임했던 Rumsfeld의 주관하에 작성되어 1998년 여름에 발간된 보고서에서는 중국의 “장거리 미사일과 핵무기의 현대화”와 “상관 기술의 확산”이 “미국의 위협으로 될 것”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동 보고서는 미국 정부에 “조기 대비”를 해야 한다고 촉구하였다. 그리고 William. Perry와 Ashton Carter는 「예방적 방어」라는 공저에서 21세기에 중국은 미국의 “2급 위협”에서 “1급 위협”으로 될 것이라고 하였다. 최근 몇 년간 미국 일부 의원과 심지어 정부 관리들도 공개적으로나 또는 암암리에 소위 중국 미사일 위협을 과도하게 부풀리고 중국을 미사일 방어 체계의 가상의 적으로 삼아 미사일 전략을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미국 정부는 심지어 상황 변화에 따라서는 대만을 미국 미사일 방어 체계에 편입하는 가능성을 고려할 것이라고 공공연히 언급하고 미사일 감시용 레이더도 대만에 도입하였다. 이러한 분명한 사실들은 미국의 미사일 방어 체계가 중국을 겨냥한다는 것을 입증해 주고 있다. 중국이 미국의 미사일 방어의 주요 목표의 하나라는 것은 미국인 스스로도 부인하지 않는데 굳이 외국인이 미국을 위해 변호할 필요가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 소장은 “의도와 능력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미국의 미사일 방어 체계는 러시아와 중국을 그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라고까지 주장하였다. 이것은 사실과의 거리가 너무 커서 전혀 설득력이 상실된다고 생각한다. 우 소장은 미국이 “소모적 군비 경쟁 유발”과 “전쟁 발발 가능성 증가”를 우려하여 러시아와 중국을 겨냥하는 의도가 없다고 단언하였다. 중국을 겨냥하는 것이 “미국의 전략적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강조하였다. 그렇지만 앞에서 언급한 사실들이 보여주듯이 미사일 방어 체제가 러시아와 중국을 겨냥하는 것은 바로 미국의 전략적 이익에서부터 출발한 것이다. 첫째, 미사일 방어 수단을 강화하게 되면 상대방의 보복 능력을 약화시키는 효과를 가져올 것인데 이것은 미국 공격 수단의 강화를 의미한다. 미국은 공격 수단과 방어 수단을 동시 발전시키는 “쌍 궤도 전략”을 실시함으로써 공격과 방어를 겸비한 “절대적 전략적 우세”를 확립하여 적국에게 더 강력한 위협과 억제가 될 것이다. 미국은 한편 이에 의지하여 공격의 주도권을 확보하고 필요하다고 판단할 때면 언제나 적국에게 선제공격을 감행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이 “소모적 군비 경쟁 유발”과 “전쟁 발발 가능성 증가”를 우려한다는 것은 허황한 명제에 불과하다. 둘째, 미국이 비록 구두상 새로운 군비 경쟁의 발생을 바라지 않는다고 운운하지만 사실상 군비 경쟁은 바로 적국을 곤경에 빠지게 하여 패배시키는 유력한 무기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구 소련의 해체에 있어서 여러 가지 원인들이 있지만, 구 소련이 미국과 전면적 군비 경쟁을 전개하여 국력의 과도한 소모를 초래한 것이 중요한 원인의 하나로 꼽을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적국을 군비 경쟁의 함정에 끌어 들이는 것이 미국의 전략적 이익에 부합하는 것이지 결코 그 반대가 아니다. 셋째, “전략적 재균형 전략”을 추진하기 위한 미국의 주요한 조치 중의 하나는 바로 군사 동맹을 강화하는 것이다. 미국의 미사일 방어 체계는 관련 국가와 지역에 배치된 탐지, 사전 경보, 발사, 저장 및 운송 등 일련의 서브 시스템으로 구성된 긴밀하고 상호 의존적인 군사 체계로 구성된다. 이것은 새로운 군사 동맹 결성과 기존 군사 동맹의 확충, 증강과 맞먹는다고 할 수 있다. 적지 않은 군사 평론가들은 미, 일, 한 3국 간 미사일 방어 체계의 “일체화”가 완성되면 3자의 실질적인 군사 동맹의 형성을 가속화시킬 것이라고 보고 있다. 우 소장은 또한 미국이 러시아와 중국의 미사일을 100% 격추할 수 없다는 것과 미국이 천문학적 비용을 부담할 수 없다는 것을 이유로 두 나라를 대상으로 한 미사일 방어 체계의 구축은 전혀 현실적이지 않다고 단언하고, 러시아와 중국에 대해서는 상호 억지에 의존할수 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필자는 이런 판단이 주관적이고 독단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문제에 있어서 우 소장의 오류는 세계를 제패하려는 미국의 야심과 우월한 기술력을 과소평가한 데에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목표는 어떤 잠재적 도전자도 억제하여 “세계적 패권국”의 지위를 유지하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미사일 방어 체계의 구축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상황이 될 수 있다고 해도 미국은 그 대가를 개의치 않을 것이다. 미국은 오래전부터 수많은 난관에 부딪히고 여러 번 좌절하여 왔지만 추호도 동요하지 않고 끊임없이 투자를 증대시켜 왔다. 이것은 전략적 의지와 능력에 대한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장기적이고 꾸준한 노력을 거쳐 미사일 격추 성공률이 점차 향상되고 있고 이에 따라 미국이 적국을 억지하는 전략적 주도권이 현저히 강화되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이런 유리한 상황에 처한 미국이 어찌 “제한적 억지 전략”에 만족하여 안주하고 러시아와 중국이라는 양대 적국을 겨냥한 미사일 방어 체계를 쉽게 포기할 수 있겠는가? 우 소장은 이미 일본과 대만에 사드와 유사하거나 심지어 성능이 더 좋은 탐지 레이더가 구축되어 있는 상황에서 사드가 중국 감시용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매우 떨어진다고 하였다. 필자는 사실과 논리를 외면한 우 소장의 주장이야말로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주지하듯이 미국은 세계 제패 전략과 미사일 방어의 실제 필요성에 근거하여 전지구적 차원에서 장소를 선택하고 방어 기지를 배치, 구축하는 것이다. 각 기지 사이에 상호 연결된 시스템이 형성되는 동시에 각자에 특정한 분업 영역을 주어 피차 대체될 수 없다. 핵심 전략 요충지와 방어 목표에 가장 근접한 지역에 배치하는 것이 미국의 미사일 방어 체계 구축 전략의 중요한 원칙이다. 이것만 보더라도 미국이 이미 일본과 대만 지역에 감시 레이더를 구축하고 있는 상황하에도 왜 굳이 한국에 사드를 끌어들이려고 부심하는 것인지 알 수 있다. 따라서 일본과 대만 지역에 구축되어 있는 레이더가 중국을 감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드가 중국 감시용이 아니다 라는 결론을 도출할 수는 없다. 필자가 이미 앞에서 전략적 억지, 선제적 공격, 군비 경쟁 유발, 군사 동맹 강화 등 여러 면에서 미국의 미사일 방어 체계의 전략적 목표와 위협을 밝혔는데, 만약 한국에 사드가 배치될 경우 이러한 위협을 중국에 주게 될 것이다. 강조할 만한 것이 있다면, 바로 한국의 특수한 전략적 위상 때문에 중국에 대한 사드의 위협이 보다 더 심각해서 결코 등한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국은 아태 지역에 있는 미국의 중요한 동맹국으로 동북아의 핵심지에 위치해 있고 지리적으로 중국 대륙, 특히 중국의 심장인 베이징과 중요한 문호인 천진, 그리고 동북 지역의 공업, 국방 기지와 매우 근접되어 있으므로 만약 사드가 한국에 배치되면 중국은 필연적으로 미국의 전방위적인 근접 감시망에 놓이게 될 것이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미, 일, 한 삼각 군사 동맹의 형성이 3국 간의 미사일 방어 체계의 “일체화”에 의해 크게 진전될 것이고 이로 인해 지역의 전략적 균형과 안정이 깨지게 될 것이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북한이 심각한 안보적 압력을  받아서 틀림없이 “핵 억제력”의 제고와 축적을 가속하고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하여 저항해 나갈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한반도와 동북 아시아 지역이 끊임 없는 충돌, 혼란, 심지어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말려 들 것인데 이것이 어찌 중국에 대한 심각한 안보 위협이 안 되는 것인가? 우 소장은 중국에 대한 사드의 위협을 극력 부인하며 심지어 “사드 자체가 중국과는 무관하다.”고 하고 또한 이것을 전제로 하여 사드의 한국 배치를 반대하는 중국의 입장을 제멋대로 왜곡하였다. 우 소장은 중국의 목적의 하나가 한미 동맹을 약화, 와해하려는 데에 있다고 하고 다른 목적은 북한의 모험적인 정책을 편들기 위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 이유는 중국이 북한 “내부의 불확실성과 잠재적 불안정성”을 우려하고 북한이 “더 이상 강압외교와 도발을 감행하는 것이 어렵게 되는 상황으로 변화하게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것은 황당무계하고 반박할 가치가 없다. 필자는 단 한 가지만 강조하고 싶다. 미국과 “신형 대국 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기본 정책, 그리고 “不?, 不?, 无核”(전쟁 발발을 반대하고 정세의 혼란을 방지하며 비핵화를 추진한다)과 “促?, 支?”(대화를 촉진하고 통일을 지지한다)을 핵심으로 하는 중국의 한반도 평화안정 기본 정책은 매우 명확하고 확고부동한 것이며 오랜 기간 동안 중국은 이를 끊임없이 견지하고 많은 노력을 경주해 왔다. 이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객관적 사실이다. 대미 정책에 있어 중국은 미국의 세계 패권에 도전할 의사가 전혀 없고 아시아 내에서 미국의 존재와 이익을 인정해 주고 있다. 한미 동맹과 주한 미군에 대한 태도를 놓고 볼 때 중국은 다른 나라에 군대를 주둔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반대하지만 냉전 종결 이래 한미 동맹을 반대하고 주한미군을 철수하라고 요구한 주장이나 행동이 전혀 없었다. 중국은 지역의 긴장과 대립을 심화시키는 행위를 반대하는 동시에 한미 동맹와 주한미군의 존재를 역사적으로 보고 한반도의 세력균형을 유지하고 전쟁을 억지하는 데에 한미 동맹과 주한미군이 갖는 역할을 객관적으로 인정해 왔다. 중국이 “한미 동맹을 와해하려고 시도한다.”는 결론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왔는가? 북한과의 관계에 관련하여, 중국은 북한이 핵무기를 가지는 것을 확고하게 반대하며 유엔 안보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안을 지지하고 이행해 오고 있다. 중국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전적으로 지지하고 어떤 나라가 “문전에서 말썽을 일으키는 것”을 굳건히 반대한다고 하였는데 물론 그 가운데 북한도 포함된다. 중국이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그것이 북한을 자극하여 한반도 정세의 악화를 초래하고 비핵화의 진전에 더 심각한 장애를 초래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세상이 다 아는데 어떤 이유를 가지고 중국이 “북한을 편들기 한다.”고 비난할 수 있겠는가? 우 소장은  한국 정부에게 두 가지의 정책 제언을 하였는데 하나는 모호적 태도를 포기하고 “사드가 중국의 전략적 이해와는  무관하다.”고 천명하고 “중국의 태도는 북한 편들기로 밖에 간주될 수 없음을 강하게 주장해야 한다.”고 했다. 다른 하나는 실속 없는 논쟁을 벗어나 한국의 안보 상황, 예산 상황, 특히 북한의 “미사일 위협 능력”에 따라 “상황 적응적인 미사일 방어 전략과 정책”을 수립하라고 제안하였다. 우 소장은 “국익”의 명목 아래 사드의 한국 배치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는데 과연 그것이 정말로 한국 국가 이익에 부합되는가? 필자가 앞에서 상술한 분석을 통해서 독자들은 결론을 쉽게 내릴 수 있을 것이다. 한번 더 강조해야 할 것은 사드 배치가 중국의 전략적 이해에 긴밀히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중국 정부가 결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보도에 의하면 중국 시진핑 국가 주석이 지난 해 7월 중한 정상회담에서 사드의 한국 배치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표명하였다는 것이다. 또 지난 2월 4일 중국 창완취안 국방부장이 중한 국방장관 회담에서 사드의 한국 배치에 대해 재차 우려를 표명하였다는 것이 알려졌다. 이것은 중국이 한국에 보내는 강력한 신호이다. 한국이 국가 안보를 수호하고 한미 동맹의 기초를 공고히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지만 그 대가로 중국의 안보이익과 지역의 평화안정을 희생시켜서는 안된다. 만약 한국이 미국의 영향과 압력에 의해 중국의 이해와 관심, 깊은 우려에 불구하고 사드의 배치를 강행한다면 그것은 필연적으로 한계선을 넘어 중한 관계에 심각한 손상을 갖다 줄 것이다. 한국은 이로 인한 심각한 결과를 직면하고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한국 정부가 한국의 국익과 지역의 평화와 안정이라는 대국(大局)적 견지에서 신중하게 생각하여 줄 것을 필자는 간절히 바란다. 現 중국 아태학회 한반도연구회 위원. 前 중국경제일보 서울특파원
  • 글로벌 사이버 거버넌스
    저자
    김상배(서울대학교)
    발간호
    2015-13
      글로벌 사이버 거버넌스에 대한 논의는 1990년대 후반부터 진행되어 왔지만 2010년대에 들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사이버 공간의 안보 문제가 글로벌 사이버 거버넌스의 전면으로 부상했다. 예를 들어 사이버 안보 문제에 초점을 맞춘 다양한 형태의 국제회의가 자주 열렸을 뿐만 아니라, 21세기의 두 강대국인 미국과 중국이 사이버 안보의 문제를 놓고 외교적 공방을 펼치고 있다. 그야말로 종전에는 소수의 전문가들이나 민간 행위자들의 몫으로 여겨졌던 사이버 거버넌스 논의에 국가 행위자들이 빠르게 진출하면서 자신들의 설 자리를 찾으려는 모습을 엿보게 한다. 소위 ‘인터넷 강국’으로서 역량을 키워왔을 뿐만 아니라 최근 중견국으로서 적극적인 외교를 추진하고 있는 한국의 입장에서 볼 때, 사이버 안보 분야에서 벌어지고 있는 글로벌 거버넌스의 동향을 파악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미래전략의 사안이 아닐 수 없다.  1990년대 후반부터 펼쳐진 역사를 보면, 사이버 안보 분야의 글로벌 거버넌스의 모색은 그 자체가 독립적 이슈로서 다루어졌다기보다는, 넓은 의미에서 본 인터넷 거버넌스의 일부로서 논의되어 왔다. 아직까지 사이버 안보 거버넌스 분야에서 법규범이나 사이버 교전의 규칙을 어떻게 정할지, 사이버 행위에 대해서 어떠한 기존규정을 적용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합의기반은 마련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글로벌 인터넷 거버넌스의 연속선상에서 사이버 안보의 문제에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에 대한 세계정치 행위자들 간의 대립구도는 그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포괄적인 의미에서 사이버 안보 분야에서 발견되는 대립구도는 소위 ‘다중이해당사자주의(multistakeholderism)’와 ‘정부간주의(inter-governmentalism)’로 대별되는 두 가지 인터넷 거버넌스 담론의 경합에서 발견된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인터넷의 기본골격은 국제기구의 장에서 정부 대표들의 합의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 인터넷 전문가들과 민간사업자, 학계, 국제기구 전문가들이 자율적으로 구축한 거버넌스 메커니즘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특히 미국에 활동적 기반을 두는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의 주도로 구축되어 왔다. 이러한 면모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초창기부터 인터넷을 관리해온 미국 캘리포니아 소재 민간기관인 ICANN(Internet Corporation for Assigned Names and Numbers)이다. 여러모로 보아 ICANN 모델은 개인, 전문가 그룹, 민간 기업, 시민사회, 국가 행위자 등이 다양하게 참여하는 ‘다중이해당사자주의’의 실험대였다. 그런데 이러한 모델은 인터넷 전문가들이나 민간 행위자들이 전면에 나서는 모습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미국 정부가 뒤에서 사실상 패권을 발휘하고 있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이러한 기존의 인터넷 거버넌스 모델에 대해서 최근 개도국들이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개도국들은 인터넷 분야에서 ‘다중이해당사자주의’를 바탕으로 한 미국의 패권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모든 국가들이 참여하는 전통적인 국제기구의 틀을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터넷 발전의 초기에는 선발주자로서 미국의 사실상 영향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지만 인터넷이 지구적으로 확산되고 다양한 이해관계의 대립이 첨예해지면서 여태까지 용인되었던 관리방식의 정당성을 문제 삼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특히 이러한 움직임은 인터넷 초창기에는 상대적으로 뒤로 물러서 있던 국가 행위자들이 인터넷 거버넌스에서 고유한 활동영역, 예를 들어 글로벌 정보격차나 사이버 안보 등을 찾아가는 과정과 맞물렸다. 특히 인터넷 거버넌스의 운영 과정에 국가 행위자들의 영토주권이 좀 더 적극적으로 인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유엔과 같은 전통적인 국제기구들이 인터넷 거버넌스 분야에 진출하는 현상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전통적으로 전기통신 분야의 국제기구로 활동해온 유엔 산하의 ITU(International Telecommunication Union)가 민첩하게 움직이고 있다. ITU가 주도하여 2003년에 제네바와 2005년에 튀니스에서 두 차례에 걸쳐서 열린 바 있는 정보사회세계정상회의(World Summit on the Information Society, WSIS)가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선진국 정부들 간 협의체의 틀을 기반으로 하여 열린 사이버공간총회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이버공간총회는 사이버 공간의 안보 문제와 기타 관련 의제들을 논의하기 위해서 2011년 영국의 런던에서 첫 총회가 열렸다. 2012년의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에서 총회를 가진 후, 2013년 10월에는 서울에서 제3차 총회가 열렸으며, 2015년에는 네덜란드에서 제5회 총회가 열릴 예정이다. 사이버공간총회의 의미는 사이버 공간이라는 포괄적 의제를 명시적으로 내건 본격적인 논의의 장이 출현했다는 데 있다.  이러한 국제기구나 국제회의와는 성격을 달리하지만, 지역 다자안보기구 차원에서 사이버 안보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는 움직임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CCDCOE(Cooperative Cyber Defence Centre of Excellence)가 2013년 3월 발표한 사이버 전쟁의 교전수칙인, 소위 ‘탈린 매뉴얼(Tallinn Manual)’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탈린 매뉴얼의 골자는 사이버 공격으로 인해 인명 피해가 발생했을 경우 해당 국가에 대한 군사적 보복이 가능하고, 핵티비스트 등과 같은 비국가 행위자에 대해서도 보복하겠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사이버 공격의 배후지를 제공한 국가나 업체에 대해서도 국제법과 전쟁법을 적용하여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2007년 에스토니아 사태 이후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중심이 되어 NATO 회원국의 전문가들이 참여하여 러시아에 대응하는 성격을 띰으로써 균형 잡힌 시각보다는 러시아나 중국 등이 배제된 채 미국 중심의 시각에 반영된 결과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상의 복합적 구도를 염두에 두고 글로벌 사이버 거버넌스의 구축을 놓고 벌어지는 21세기의 두 강대국, 미국과 중국의 경쟁을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미·중 경쟁의 구도는, 좀 더 넓게 보면, 미국과 영국이 주도하는 서방 진영을 한편으로 하고, 러시아와 중국을 중심으로 한 개도국 진영을 다른 한편으로 하는 두 개의 진영 구도로 이해할 수 있다. 사이버 안보의 세계질서 형성과 관련하여 두 진영은 극명한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다. 서방 진영은 사이버 공간에서 표현의 자유, 개방, 신뢰 등의 기본 원칙을 존중하면서 개인, 업계, 시민사회 및 정부기관 등과 같은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이 수렴되는 방향으로 세계질서를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러시아와 중국으로 대변되는 진영은 사이버 공간은 국가주권의 공간이며 필요시 정보통제도 가능한 공간이므로 기존의 인터넷 거버넌스를 주도해 온 서방 진영의 주장처럼 민간 중심의 이해당사자주의에 의해서 사이버 공간을 관리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입장 차이는 최근 러시아와 중국 등이 제기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사례에서 드러난 바 있다.  첫 번째 사례는 2011년 9월 22일 52개 국가의 정보기관 지도부가 러시아 예카테린부르크에서 모여서 개최한 ‘제2차 고위급 안보회의’에서 러시아가 제안한 ICIS(International Convention on Information Security)이다. ICIS는 인터넷에 대한 회원국의 주권을 보장하고 회원국의 정치, 역사, 문화적 특수성을 강조하였다. 두 번째 사례는 2012년 12월 두바이에서 열린 WCIT(World Conference on International Telecommunication)에서 시도된 ITR(International Telecommunications Regulation)의 개정 과정에서 드러난 서방 진영과 개도국 진영의 대립이다. ITR의 폐기를 주장하는 선진국들의 입장과 ITR의 개정과 강화를 주장하는 개도국들의 입장이 대립하는 양상이 나타났다. 세 번째 사례는 2013년 6월 유엔 군축 및 국제안보 위원회 산하 정보보안 관련 정부전문가그룹(GGE, Group of Governmental Experts)에서 합의해서 도출한 최종 권고안이다. 기존 회의에서는 인터넷의 국가통제를 강조하는 러시아나 중국과 이에 반대하는 미국이 극명히 대립했었으나, 2013년 6월 개최된 회의에서는 전체 참여국들이 사이버 공간에서도 기존의 국제법이 적용될 수 있다는 점에 합의하고 이러한 규범이 국가의 역할로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연구하기로 합의하였다.  이상에서 살펴본 글로벌 사이버 거버넌스의 구도는 세 가지 차원에서 벌어지는 복합적인 경합으로 요약할 수 있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사이버 공간에서는 여전히 전통적인 국가 행위자들끼리의 경합이 발견되는데, 미국과 서방 선진국들에 대해서 러시아 및 중국과 여타 개도국들이 맞서는 모습이다. 여기에 민간 행위자들과 국가 행위자들의 주도권 다툼이 중첩된다. 또한 초국적으로 형성되는 글로벌 거버넌스의 모색 노력과 전통적인 국제기구의 관할권을 유지하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이러한 세 층위의 경합구도에서 중견국으로서 한국의 주요 관심사는 미국과 중국의 입장과 행보가 아닐 수 없다. 대체로 미국이 전자의 논리를 취한다면 중국은 후자의 논리에 기반을 두고 있다. 사실 사이버 안보 분야에서 복합적으로 벌어지는 미국과 중국의 경쟁은 단순히 두 나라의 관계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계정치와 동아시아 정치의 구조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변수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최근 중견국 외교전략을 고민하고 있는 한국에게 사이버 안보의 문제는 전통안보의 문제에 못지않게 중요한 미래전략의 사안임이 분명하다. 現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외교학 전공) 교수.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석사, 미국 인디애나 대학교 정치학 박사를 취득함. 정보화시대의 권력변환과 세계정치의 변화에 대한 연구와 강의를 하고 있음, 최근에는 네트워크 이론의 시각에서 보는 동아시아 세계정치에 대한 이론적, 경험적 연구에 주력하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