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I PeaceNet

전체 29

  • [JPI PeaceNet] 아프간 철군과 미국 정치 변화, 그리고 한반도 이슈: 역사, 리더십, 선거 관점에서
    저자
    서정건(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발간호
    2021-18
    [기획자 註] 미국 역사상 가장 긴 전쟁이었던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미군의 철수로 공식적으로 종전이 되었다. 이번 아프간 철수의 원인과 결과, 그 교훈에 대한 논의들이 성행하지만, 이번 아프간 철군에 대해 철군의 결정 주체인 미국 국내정치의 역사적인 맥락과 미국의 내부의 정책 결정 과정, 그리고 철군 결정으로 인한 미국 국내정치 전망에 대한 논의가 적다. 이에 JPI PeaceNet은 경희대학교 서정건 교수의 기고문을 통해 바이든 대통령의 아프간 철군 결정과 그 과정을 통해 드러난 미국의 대내 및 대외정치의 변화를 확인하고 한반도에 대한 함의를 찾아보고자 한다. [기획: 임해용 연구위원(haeyonglim@jpi.or.kr)]   1. 들어가며 바이든 대통령 이전에 외교 정책 경력을 보유하고 당선된 미국 대통령을 꼽자면 1988년 아버지 부시(George H. W. Bush)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지난 28년간의 미국 대통령들, 즉 클린턴, 아들 부시, 오바마, 트럼프는 모두 국제 정치 경험이 일천한 주지사 아니면 초선 상원 의원, 혹은 부동산 개발업자였기 때문이다. 바이든은 도중에 하차했던 1988년과 2008년의 민주당 대선 경선 당시를 포함하여 선거 때마다 자신의 외교 안보 분야 배경을 전면에 내세운 바 있다. 44년간 이어진 워싱턴 정치 역정을 통해 전 세계 상당수 지도자들과 개인적 인연을 맺어 온 바이든에게 국제무대는 상대적으로 익숙한 영역임이 틀림없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아버지 부시와 바이든 대통령 모두 임기 첫해 대외 이슈로 인해 발목이 잡혔다. 1989년 6월 4일 중국 청년들이 주도했던 민주화 운동을 중국 공산당이 무력으로 탄압하였고 이는 곧 부시 대통령의 대응 능력을 둘러싼 비판과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 베이징 연락사무소장과 CIA 국장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중국 민주화 운동은 평화적으로 끝날 것이라고 오판한 점과 천안문 사태 이후에도 중국에 유화적 입장을 취한데 대해 민주당과 언론, 그리고 여론이 들끓었다. 특히 1980년 이후 세 차례나 연속으로 대선 패배를 당해 위기의식이 팽배하였던 민주당에 천안문 사태는 부시 공화당을 공격할 기회였다. 당장 다음 해인 1990년부터 샌프란시스코 출신의 소장파 펠로시(Pelosi) 하원 의원을 필두로 의회 민주당은 중국에 대한 최혜국대우(MFN) 자격을 놓고 공방을 벌이기 시작하였다. 역사는 돌고 돌아 한 세대 만에 새로 등장한 외교 경험자 미국 대통령이 국제 이슈로 또 한 번 정치적 위기에 빠졌다. 이 글을 통해 바이든 대통령의 아프간 철군 결정과 과정에서 드러난 미국 정치 및 외교의 변화를 분석하고 향후 한반도에 미칠 파급력과 시사점을 전망해 본다. 2. 아프간 철군 사태와 미국 정치    1) 미국 외교 역사와 사이공 순간(Saigon Moment) 미국 외교사의 특징 중 하나는 유사한 위기와 도전이 반복된다는 사실이다. 1949년 중국 공산화로 인해 국내적 비판에 직면한 트루먼 대통령을 지켜본 존슨은 자신의 임기 동안 베트남이 공산화될 가능성을 우려하였다. 민주당 외교 중진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1964년 대선 압승 이후 베트남 전쟁을 확대했던 주된 이유다. 하지만 1968년 초 북베트남의 구정 대공세(Tet Offensive) 장면을 TV로 시청한 미국 국민은 미국이 동남아시아 전쟁에서 고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결국 알게 된다. 대통령에 대한 신뢰는 급격히 추락하였고 존슨은 1968년 재선을 포기하기에 이른다. 트루먼이 1952년 대선에 나서지 않았던 사실과 유사하다. 한편 1962년 쿠바 미사일 사태 당시 극적인 반전을 통해 위기관리 능력을 인정받게 된 케네디 대통령은 중간 선거에서 선전하게 된다. 2002년 이라크 전쟁을 앞두고 결집 효과를 이끌어 낸 아들 부시 역시 중간 선거 승리를 거머쥐었다. 실제로 대통령 소속 정당이 중간 선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일은 미국 정치에서 예외적이다. 1972년에는 강경 반공주의자였던 닉슨 대통령이 중국을 전격 방문하여 마오(Mao)와 회담을 가졌다. 냉전 시대였음에도 당시 미국 국내에서는 별다른 우려의 목소리가 거의 없었다. 공산주의 배척 경력이 워낙 탄탄했던 닉슨 대통령이라 별 문제 없을 거라는 인식이 컸기 때문이다.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과 정상 회담을 했을 때도 미국 내에서는 비슷한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국제무대에서 북한 독재자를 인정하며 공식적으로 만났다는 점을 당연히 거세게 비판할 것으로 예상되었던 공화당 매파 의원들이 대부분 침묵하였다. 트럼프가 같은 소속인 공화당 대통령이었기 때문이었다. 많이 회자되었듯이 이번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 철수는 1975년 4월 포드 대통령 당시 미국의 베트남 철수를 떠올리게 한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물러난 닉슨을 승계하여 대통령직에 오른 포드 역시 자신이 시작하지 않았던 베트남 전쟁을 끝내야 하는 숙명을 맞았다. 떠나려는 미군 헬리콥터에 올라타려던 미국 국민과 베트남 난민들의 이미지가 카불 공항과 군 수송기 등 장소와 종류만 바뀌어 재연되었다. 탈레반이 아프간을 점령할 가능성은 극히 낮을 뿐만 아니라 건물 옥상에서 허둥지둥 미국민들을 아프가니스탄에서 탈출시키는 일은 절대 없을 거라 장담하던 바이든 대통령 발언은 바로 한 달 전이었다. 물론 차이점도 적지 않다. 포드의 베트남 철수 직후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다소 올라간 반면 바이든은 약 20퍼센트 넘는 지지율 급락을 경험하였다. 또한, 당시 야당이던 민주당은 공화당 대통령의 베트남 철수를 적극 지지하였다. 반면 현재 의회 소수당인 공화당은 민주당 대통령의 아프간 철군에 대해 재앙에 가깝다며 비판 공세를 퍼붓는 중이다. 트럼프와 바이든을 싸잡아 비판한 체니 의원의 지적은 일회성으로 끝났고 대신 공화당 상원 의원 두 명이 바이든의 사임을 요구하고 나섰다. 공화당 소속인 하원 외교위원회 부위원장은 향후 탈레반 정권이 아직 탈출하지 못한 미국 민간인을 인질로 잡는다면 대책이 무엇인지도 추궁 중이다.    2) 미국 정치 현실과 미국 우선주의 순간(America-First Moment) 이번 철군을 계기로 재확인된 단순 사실 하나는 바이든이 예전의 상원 외교위원장 바이든이 아니라 트럼프 이후에 등장한 대통령 바이든이라는 점이다. 마치 트럼프가 온갖 비판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선거 공약을 당선 후에 철저히 지킨 근래 보기 드문 대통령이었다는 평가가 있는 것처럼 바이든 역시 미국 국민의 달라진 대외 관계 인식을 충실히 따르는 지도자로 자리 잡고 있다. 백신 접종이나, 기후 위기, 그리고 낙태 문제 등 전통적 정당 양극화 이슈는 별개로 치더라도 중국에 대한 강경한 태도, 군사적 개입에 대한 반대 등과 관련해서는 트럼프가 남겨 놓은 미국 우선주의를 순화시킨 버전으로 그대로 유지 중이다. 30세라는 젊은 나이에 상원 의원이 된 이래 바이든은 주로 남부 출신 보수파 중진 의원들에게 정치 훈련을 받으며 미국의 자유주의적 국제주의 입장을 옹호해 온 상원 외교위원장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아프간 철군 관련해서는 이런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2002년 이라크 전쟁 찬성이라는 상원 표결 이후 한 동안 정치적 곤경을 치렀던 바이든이므로 군사적 개입 문제에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민주당의 최대 국제 협력 관심사인 기후 위기 분야, 혹은 역대 정권이 해결 못 해온 북한 비핵화 분야 등에 있어서는 외교위원장 바이든의 사고와 레토릭이 복원될 가능성도 있다. 특히 중간 선거 이전이나 이후, 혹은 다음 대선 국면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내치 성과 못지않게 외교 업적에 욕심을 낼 법하다. 바이든이 이어받은 미국 우선주의 순간에 트럼프와 공화당은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을까? 동맹을 폄하하고 방위비 분담을 요구하며 무역 재협상을 촉구했던 트럼프였지만 트럼프를 단순히 고립주의자 혹은 축소 주의자로 규정하기 어려웠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임기 중 대규모로 국방 예산을 증액했다는 점이다. 사실 아들 부시 공화당 대통령의 이라크 전쟁 실패와 오바마 민주당 대통령의 빈 라덴 사살은 기존의 공화당과 민주당 간에 존재했던 소위 ‘안보 격차’를 크게 줄여 놓았다. 안보는 공화당, 복지는 민주당이라는 오래된 공식이 상당 부분 허물어졌던 것이다. 강한 지도자 면모를 과시하려던 트럼프와 기존의 군산복합체 관계를 강화하려는 공화당의 합의된 전략이 바로 국방비 증대였다. 현재 공화당이 하원, 상원 할 것 없이 바이든 대통령의 아프간 철군 참사를 물고 늘어지는 것은 쉽게 이해되는 대목이다. 사실 백신 접종이나 재난 지원금, 혹은 사회간접자본 법안 등 바이든이 집권 첫 해 추진하였던 대부분의 국내 정책은 공화당 입장에서도 대놓고 반대하기 어려운 주제들이었다. 다만 남부 국경 관리에 허점이 노출되었던 이민 이슈가 그나마 바이든을 공격할 수 있는 공화당의 소재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소셜 미디어 중심으로 만천하에 공개된 아프간 철군 과정의 혼란과 테러야말로 바이든 대통령의 국정 운영 능력과 리더십, 그리고 미국의 자존심 등을 근거로 공화당의 반격 거리가 되기에 충분하였다. 3. 아프간 철군 이후 미국 정치와 외교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했다는 소식이 날아든 8월 16일 이후에야 미국 국민과 아프간 조력자들을 허둥지둥 철수시켰던 바이든 대통령은 현재 정치적 위기에 빠져있다. 물론 전임 트럼프 대통령이 탈레반과 합의하였던 올해 5월 1일 철수 날짜로 인해 지난 20년간 미국이 훈련시켰던 아프간 정부군이 이미 저항 태세와 능력을 거의 상실해 버렸다는 문제가 있었다. 그런데도 바이든 대통령이 미군 철수 이후 탈레반에 의한 아프가니스탄 전역 지배는 가능성이 지극히 낮을 것이라 자신했던 점은 패착이었다. 게다가 영국과 프랑스 등 동맹국들과 긴밀히 철수와 관련된 상의를 했다고 주장했지만, 당사국들은 이를 부인하며 심지어 배신감까지 느끼는 중이다. 왜 민간인 철수를 먼저 완료하고 난 후 마지막으로 군대가 빠져나오는 방식으로 진행하지 않았느냐는 바이든 친화적 매체 CNN의 앵커 질문에 블링컨 국무장관은 반복적으로 답변을 회피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미국 정보 당국의 예측 착오, 대통령의 부실한 철군 계획과 결정, 미디어를 통한 국민 설득 부족 등 아프간 철군 과정에서 드러난 바이든 행정부의 리더십 실패는 그야말로 총체적 양상이었다. 아직 아프간을 탈출하지 못하고 남아 있는 미국 국민이 만일 알케이다 테러에 희생된다면 바이든 행정부는 아프간 악몽에서 쉽게 빠져나오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국 내 델타 변이 상황은 악화일로인 데다가 8월 중 일자리 창출은 단지 25만 개에 그침으로써 70만 개 이상일 거라던 전문가들의 예측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바이든 지지율은 43퍼센트까지 추락하였고 중도층 지지율은 7월보다 10퍼센트나 줄어든 36퍼센트에 머물렀다. 전방위적 위기에 빠진 대통령을 미국 국민이 외면했던 역사적 사례는 적지 않다. 소련의 아프간 침공, 석유 파동과 경제 침체, 이란 인질 사태를 동시에 겪었던 카터 대통령이 대표적 사례다. 젊은 상원 의원 시절 이를 가까이 지켜보았던 바이든 대통령이다. 이번엔 자신에게 닥친 위기 국면을 전환하기 위해 최근 승부수를 던지고 있다. 먼저 9월 9일 대국민 연설을 통해 거의 1억 명에 가까운 연방 정부 공무원들, 대기업 직원들과 보건 의료진들의 백신 의무화 계획을 천명하였다. 보수 정치인들과 일부 연방 정부 노조가 개인 권리와 자유 침해라며 즉각적으로 반발하였고 공화당 주지사들 중심의 거대한 법적 분쟁이 예상된다. 하지만 동시에 궁극적으로는 팬데믹 극복에 자신의 대통령직이 걸려 있다는 바이든의 확신을 잘 보여주는 결정이기도 하다. 다음 날인 9월 10일 바이든은 7개월 만에 중국의 시진핑 주석과 전화 통화도 재개하였다. 해외 지도자와의 개인적 유대감을 유독 강조하는 바이든 스타일을 상기해 본다면 의미 있는 시점의 행보다. 또한, 이미 공화당과 합의하여 성사시킨 1조 달러 규모의 초당파적 사회간접자본 법안과 더불어 3조 5천억 달러 규모의 인프라 법안을 적정 수준으로 조정하는 선에서 통과시킬 것으로 관측된다. 결정적으로 텍사스 주지사가 서명한 초강수 낙태 금지 법안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취함으로써 1973년 연방 대법원의 낙태 허용 결정을 수호하려는 진보 지지층의 결집에 나설 것으로 짐작된다. 만일 현재의 국정 위기 상황을 조기에 수습하지 못한다면 중간 선거 경선이 시작되는 내년 초부터 거의 1년 내내 바이든의 지지율은 정체될 수도 있다. 역사적 경향, 선거구 재획정, 근소한 의석 수 차이라는 세 가지 불리한 상황을 동시에 극복해야 하는 민주당이 2022년 중간 선거에서 만일 하원을 공화당에 내준다면 바이든의 국내 정치는 거의 마침표를 찍게 될 공산이 크다. 물론 이를 계기로 2023년에 바이든이 대외 관계를 국정 운영의 전면에 내세우게 될 수도 있다. 미국 내부의 변화가 우리에게 미칠 다양한 유불리 가능성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4. 아프간 철군 이후와 한반도 이슈 철수 과정상의 시행착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시간이 흐르면서 다소 잊혀 진다면 아프간 철군으로 20년 전쟁을 끝낸 미국은 앞으로 어떤 국내 정치 정서 하에 어떤 대외 전략을 구축하게 될지 예측이 무성하다. 물론 대다수가 동의하는 전망은 바이든 대통령이 아프간 철군 완료 시점에서 행한 대국민 연설 내용 중 밝힌 대로 중국과 러시아를 한데 묶어 견제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의 강화다. 아프간이라는 밑 빠진 독에 쏟아붓던 재정과 군사력을 확보하게 된 현재 구겨진 체면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미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힘의 우위를 과시하려는 동기는 충분하다. 동시에 미국 외교사의 주요 분기점인 베트남 증후군 및 이라크 증후군 그리고 이후 아프간 증후군까지 비교 분석이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베트남 증후군 경우 닉슨-포드-카터 당시의 화해(detente) 무드로 이어졌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 결국 국민들의 자존심 회복과 군사력 증강에 호소한 레이건의 등장과 공화당 우위 시대가 펼쳐졌다. 이라크 증후군 역시 2008년에 발생한 최악의 금융 위기와 겹치며 이후 오바마의 “국내 건설 우선” 주장, 그리고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으로 연결되었다. 앞으로 이라크 증후군이 아프간 증후군을 통해 더욱 강화된 결과 미국 축소주의(retrenchment)까지 끌어낼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적극적 국제주의로 방향을 다시 한 번 틀게 될 것인지 관찰해 볼 일이다. 한편 미국의 이번 아프간 철수와 한미 동맹을 관련지어 생각하는 것은 불가피할지 모르지만 실상 불필요하다. 미국은 국익에 따라 어디서든 언제든 군대를 철수하고 떠날 수 있다는 일각의 우려와 주장이 사실 크게 틀리지는 않는다. 그런데 “국익에 의해”라는 바로 그 조건에 비추어 볼 때 적어도 현재 한국은 아프가니스탄과 거의 정반대 경우라고 볼 수 있다. 2차 대전 이후 군사적 개입을 통한 국가 건설에 성공한 거의 유일한 사례가 바로 한국이라고 미국은 오랫동안 자부해 왔다. 작고한 맥케인(McCain) 공화당 대선 후보는 2008년 선거 캠페인 당시 미군의 이라크 주둔 필요성을 거론하며 한국을 성공 사례로 인용한 적도 있다. 다시 말해 민주화와 경제 발전을 동시에 이룬 무역 강국이자 동북아 지정학 질서 상 미국에 절대적인 우호 국가가 한국이다. 게다가 엄청난 규모의 무기 구매와 방위비 분담금을 통해 동맹으로서의 기여도 또한 크다. 미-중 갈등이 점점 기술 경쟁과 가치 규범으로 전환되어 간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도 여전히 미국에게 한국의 비중은 높다. 물론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한국을 향한 미국의 국익이나 미국을 향한 한국의 국익이 어떻게 변화할지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적어도 현 시점에서 한국과 아프간을 비교하는 일은 우리에게도 미국에게도 실효성이 크지 않다. 향후 북미 관계가 이번 미국의 아프간 철군과 어떤 상관성을 가지게 될지 예측하는 일은 언제나 그렇듯 어렵다. 우선 당장은 바이든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적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미국 국내 현안에 집중할 가능성이 비교적 높아 보인다. 중국, 러시아, 이란, 북한 등 어떤 외교 현안 경우에도 단기간에 괄목할 성과를 낼 수 있는 구도가 아니다. 더구나 현재 미국 국민들의 관심사는 온통 코로나와 경제, 그리고 백신 접종과 낙태 찬반에 쏠려 있다. 자칫하면 1차 걸프 전쟁 승리라는 대외 이슈에 집중한 나머지 급격한 경제 악화를 소홀히 했던 아버지 부시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 더구나 아프간 철군 과정에서 리더십 이미지 손상을 입은 바이든 대통령이 북한에 무언가 먼저 양보하기에는 시기적으로 적절치 않다.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과의 협력 체제 구축, 러시아와의 갈등 관리, 이란과의 JCPOA 복원,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 재개라는 굵직굵직한 외교 목표를 여전히 가지고 있다. 특히 북한 문제 경우 동맹 파트너인 한국의 내년 3월 대선 일정을 워싱턴에서는 주요 변수로 인식하는 중이다. 새로 들어선 한국 정부와의 협력을 통해 내년 가을 쯤 북한과의 새로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전격 합의할 수만 있다면 내년 11월 8일 중간 선거를 앞둔 바이든과 민주당에게 결정적은 아닐지라도 긍정적인 성과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만일 중간 선거에서 참패한 이후 외교 문제로 돌파구를 열어 보려는 바이든 대통령이라면 국내적 이해 관계가 비교적 덜 복잡한 북한 이슈로 관심을 집중하게 될 수도 있다. 미국 역사상 1979년 중국과의 관계 정상화, 1995년 베트남과의 관계 정상화, 그리고 2015년 쿠바와의 관계 정상화는 모두 중간 선거에 패배한 민주당 대통령의 업적이다. 물론 북한 경우 당장의 관계 정상화는 불가능하다. 다만 연락 사무소 상호 개설을 통한 구조적 관계 개선의 출발은 언제든 가능하다고 본다. 5. 마치며 1965년 존슨 대통령이 동남아 문제를 미국 문제(Americanization)로 만들며 확전을 결정한지 10년 후인 1975년 베트남 전쟁은 파리 조약을 통해 끝이 났다. 2003년에 시작된 이라크 전쟁은 미국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이다가 2005년을 기점으로 이라크 내부 종파 간 분쟁에 미군이 휩싸이며 악화되었고 결국 오바마 대통령이 2011년 공식 종전을 선언하였다. 2017년까지도 이라크 전쟁의 여파가 지속되기도 하였다. 이에 비해 2001년 9/11 테러 당시 알카에다를 숨겨준 혐의로 탈레반 통치 하의 아프가니스탄을 미국이 침공한 이래 정확히 20년 동안 아프간 전쟁은 이어졌다. 미국 역사상 가장 오래된 전쟁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그 철군 과정에서의 혼란상 역시 상상 이상이었다. 미국 대통령 바이든은 리더십에 상처를 입었고 아프간의 향후 행보에 중국은 긴장하고 있는 중이다. 국가 건설이나 정권 교체를 위한 미국의 군사력 사용은 앞으로 상당 기간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평화 건설(peace-building)을 위한 미국의 동기와 역할에 대한 평가 절하는 시기상조다. 오히려 임기 중 외교적 성과를 내야만 한다는 정치적 압박감이 그 동안 갇혀 있던 바이든 대통령의 정치적 상상력을 일깨울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 미국 정치와 국제 정세가 크게 변화 중이다. 특히 미국 내부와 국제 사회가 서로 변화시키고 변화되는 상황에 대한 종합적 분석과 적극적 대응이 앞으로 더욱 필요하다. 기획: 임해용 연구위원 편집: 김소연 보조원 저자소개 서정건 교수는 현재 경희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미국 정치와 외교 정책, 정치 제도 등을 강의 및 연구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텍사스 오스틴 대학교에서 미국 의회 정치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교(윌밍턴) 교수(2007-2012)와 우드로우 윌슨 센터 풀브라이트 펠로우(2019)를 지냈다. 대표 저서로 와 이 있고 모두 대한민국 학술원 우수도서로 선정된 바 있다. 이외에 “The China Card: Playing Politics with Sino-American Relations,” “Wedge Issue Dynamics and Party Position Shifts: Chinese Exclusion Debates in the post-Reconstruction U.S. Congress, 1879-1882,” “미국 국내 정치와 북한 비핵화 이슈,” “트럼프 행정부와 미국 외교의 잭슨주의 전환” 등 다수의 논문을 출간하였다. 현재 통일부와 민주평통 정책자문위원, 한국연구재단 책임전문위원, KBS 객원해설위원 등을 맡고 있으며 미국정치연구회장(2020년)을 역임했다.
  • [JPI PeaceNet] 아프가니스탄 미군 철군과  탈레반의 정권장악, 그리고 한국의 대응
    저자
    오은경(동덕여대 교양대학 교수, 유라시아투르크 연구소장)
    발간호
    2021-17
    [기획자 註] 현지시각 2021년 8월 30일, 미군은 마침내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철군을 완료하였다. 이어서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종전을 선언하였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지난 20년간 지속되어온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마침내 끝이 난 것이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총 2조 달러 이상을 지출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미군을 포함한) 수많은 인명피해와 재정적 손실만을 입었다. 그렇다면 미국이 지난 20년간 수많은 인적, 물적 자원을 쏟아 부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아프가니스탄을 포기하고 자국 군대를 철수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제 아프가니스탄의 정권을 장악한 탈레반은 누구인가? 앞으로 아프가니스탄을 둘러싼 국제정세는 어떻게 돌아갈 것인가? 한국은 이번 아프가니스탄 사태를 어떻게 바라보고 대응해야할 것인가? JPI PeaceNet은 동덕여대 교양대학, 동덕여대 유라시아투르크 연구소의 오은경 교수/소장님의 기고문을 통해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알아보고자 한다. [편집: 정승철 연구위원(scchung@jpi.or.kr)]   1.서론 미국은 20년을 끌어온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철군을 감행했고 철군이 완료되기도 전에 아프가니스탄은 완전히 탈레반의 손에 넘어가고 말았다.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 조차도 미군철수 이후 아프가니스탄 정부 붕괴까지는 적어도 1-2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으며, 실제로 11 일 만에 붕괴될지는 아무도 상상도 못했다고 자백했다. 아프간 가니 대통령은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겠다”고 다짐한 것도 무색하게 미군이 철군하자 다음 날 바로 돈가방을 싸들고 아랍에미레이트로 도주해버렸고, 무기력한 군부는 탈레반에 백기를 들었다. 미국이 20년을 지켰던 카불은 허무하게도 힘없이 탈레반에 당일 함락되었다. 지난 8월 15일 탈레반은 수도 카불에 있는 대통령궁을 장악하고 아프가니스탄 종전을 선언하였다. 당황한 미국은 철군 날짜를 연기해달라고 요청했지만 탈레반측은 강경했다. 기일엄수를 양보하지 않았다. 다행히 IS-K의 공항테러에도 불구하고, 드디어 미국은 약속했던 8월 31일을 하루 앞두고 모든 군대의 철수를 완료했다. 2. 미국 역사 상 가장 길었던 아프간 전쟁, 미군 철군 이유는? 미국은 2001년 전 세계를 경악케 했던 9.11 테러에 대한 복수로 주범인 오사마 빈라덴과 알카에다를 잡겠다며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미국의 실추된 위상과 자존심 회복이라는 대의명분 때문에 시작했던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미국은 20년을 끌어오다가 이렇다한 성과도, 이유도 없이 갑자기 발을 뺐다. 철군 이후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가니스탄에서는 탈출을 시도하는 수많은 아프간인들의 필사적 절규로 인해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고, 이륙하는 비행기 바퀴에 매달렸다가 추락사하는 현장까지 목격한 국제 사회는 참담함을 금할 길이 없었다. 미국 내부에서도 체계적인 대응책 없이 무방비한 상태로 철군을 감행한 바이든 정부의 무책임함에 대한 비난여론이 쏟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이든 대통령은 미군철수의 정당성을 강조하며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부통령 시절부터 추진하고자 했던 철군을 하게 되었으니 “실수”로 시작된 전쟁을 지속하지 않겠다고 했다. 결국 오바마 대통령이나 트럼프, 그리고 바이든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을 철수해야 한다는 입장에서는 모두 동일했다. 그렇다면 아프간 전쟁에서 미국은 왜 갑자기 발을 빼야만 했을까. 아프간 전쟁은 미국의 역사상 가장 길었던 전쟁이었다. 그러나 20년 동안 대략 2조 달러가 넘는 어마어마한 천문학적인 전쟁 비용과 병력을 소모하고도 아무 성과를 내지 못했다. 2011년 5월, 9.11 테러의 수괴 오사마 빈라덴 사살했으니 미국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지만 그러자 미국은 탈레반 소탕과 국가 재건 사업에 들어갔다. 그러나 밑 빠진 독에 물 붙기 식으로 뚜렷한 성과 없이 알 수 없는 늪에 빠져들 뿐이었다. 더구나 아프간 정부는 부패하고 무능했다. “제국의 무덤”이라는 국제적 평가가 있었음에도 전쟁 돌입 당시 미국은 지나치게 감정적이었다. 아프가니스탄에 대해 크게 학습이 되어 있지도 않았다. 전쟁을 시작하고 나서 몇 달이 지나도록 아프가니스탄에서 어떤 언어가 쓰이는지 알지 못했다고 자백했던 도널드 럼스펠드 장관의 발언이 그 상황을 대변해준다. 미국이 비록 개전(開戰) 한 달 만에 수도인 카불과 주요 도시 칸다하르를 점령하였다고는 하지만, 이것이 탈레반과의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볼 수는 없었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성공하기 어려운 이유는 너무도 많았다. 우선, 10년 이상 구소련과의 전쟁 경험을 통해 다져진 탈레반 게릴라전의 전술과 전략을 미국이 대응하기에는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아프가니스탄은 대부분 해발 3천 미터 이상의 험준한 산악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고, 개미굴 같은 동굴들이 산재되어 있어 산악지대 지형지물이 보통 복잡한 게 아니었다. 낯선 산악 지형에 익숙하지 않은 미국이 보병전투에서 난항을 겪으리라는 것은 예측 가능한 일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난기류와 모래폭풍 등으로 병력 수송이 쉽지 않아 미군은 병력 투입 직후부터 생지옥을 경험하였다. 두 번째는 산악지형 탓에 무전기나 위성전화가 수시로 먹통이 되는 등 아군들 사이에서 커뮤니케이션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군인지 적군인지 확인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항공지원 참사가 이어졌다. 탈레반 저격수가 산속에서 초장거리 저격을 하면 F15E가 엉뚱한 곳을 포격 하는 참사가 반복되었다. 오죽하면 “미군의 최대 적은 미 공군”이라는 말이 돌 정도였다. 미군 사망자가 2천 4백이라고 하는데 전사자의 1/4 정도가 오폭으로 사망했다고 밝혀진 바 있다. 오폭으로 인한 민간인들 피해도 적지 않았는데, 대략적 사망자 숫자만 해도 4만 8천 명 정도라고 한다. 세 번째로 수많은 부족으로 구성된 아프간 국민들의 내부 정치 상황도 한 몫 거들었다. 원한 관계에 있는 부족들의 복수극에 미군이 동원되는 경우도 왕왕 발생하였다. 거짓된 정보로 자신들이 해코지 하고자 하는 부족을 공격하도록 유도하는 해프닝도 이어졌다. 결과적으로 민간이 피해로 인해 미군에 대한 아프간 국민들의 반감이 생기자 탈레반에 가담하도록 하는 동기를 제공하기도 했다. 더불어, 탈레반의 활약과 첩보 작전 또한 갈수록 치밀해 미군의 피해 또한 극심해져 갔다. 2011년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작전을 주도했던 특수부대 네이비실(Navy SEAL) 1급 작전팀 팀식스(Team 6) 요원들이 탑승하고 있던 헬기가 정확히 빈라덴 사살 99일 만에 피격되어, 탑승하고 있던 전원이 몰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탈레반 내부 통역원 첩자들이 거짓 정보를 흘려 미군을 속였던 것이다. 2014년에는 해럴드 그린 미군 소장이 내부 테러로 피살되기까지 하였다. 베트남전 이후 미군 소장이 해외전장에서 피격당해 숨진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더구나 탈레반 요원이 아프간 군으로 위장 입대하여 발생한 피격사건이었다. 한편, 2008년 중산층 붕괴를 가져왔던 미국의 금융 대란과 경제 위기 역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 비용 지출로 인한 국부 손실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미국 군수업체와 로비스트 그룹 그리고 월가의 큰손들만 막대한 천문학적 이득을 챙기도록 해주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수많은 청춘들은 이들의 돈벌이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는 이야기로 귀결된다. 3. 탈레반은 누구인가 지난 1996년부터 2001년까지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을 지배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탈레반의 형성과 성장 배후에 미국이 자리한다. 미국은 자신의 손으로 키워낸 탈레반과 전쟁을 벌인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에 세력을 형성하고 있던 구소련은 아프가니스탄이 이슬람화 되어가자 공산주의 세력이 소멸되는 것이 두려워 군대를 파견하고 1979년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당시 미국은 구소련의 팽창에 위협을 느끼고 이 지역을 방어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으나 이미 베트남전의 패배로 인해 국내외적으로 직접 개입할 형편이 되지 못했다. 결국 구소련에 대항하는 “이슬람 전사”라는 뜻을 가진 무자헤딘( مجاهدين, mujāhidīn)” 무장투쟁 조직에게 막대한 돈과 무기를 지원하는 간접적 방식으로 미국은 구소련에 대항한다. 무자헤딘은 구소련이 물러가고 나자 탈레반과 반(反)탈레반 세력으로 분할된다. 탈레반은 1994년경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에 살고 있던 이란계 파슈툰족 신학생들이 만든 조직이었다. 파슈툰어로 탈레반은 ‘학생’을 뜻하는 탈립(طالب,talib)의 복수형이다. 이슬람 신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이슬람 ‘신정국가’ 건설이라는 이상향을 지향점으로 삼고, 사명감에 똘똘 뭉쳐 부정부패와 비리척결에 나섰던 것이다. 최고 지도자 무함마드 오마르 또한 무자헤딘 출신으로 존경받는 신학자이며 스승 역할을 했던 “물라(mullah)”였다. 공산주의 정권 붕괴 후 오랜 내전과 군벌들의 부정부패에 질려 있던 민중들은 탈레반을 지지했고 큰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탈레반은 수도 카불을 점령하고 1996년부터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했던 2001년까지 아프가니스탄을 통치하였다. 북부 동맹이 장악했던 북부를 제외하고 영토의 거의 90%를 점령했지만 탈레반은 국민들의 기대와는 다른 세상을 창조해냈고, 국제사회를 경악시키기에 충분했다. 여성인권 탄압과 세계문화유산 바미안 석불 파괴와 같은 폭력적이며 “극단적 신정국가”를 창조해낸 것이다. 당시까지 누구도 상상해보지 못한 억압적이고 끔찍한 방식의 이슬람 신정국가 모델이었다. 결국 탈레반은 이후 IS 등 극단적 이슬람 무장단체들에게 신정국가 거버넌스의 악용 사례를 제공한 셈이다. 탈레반은 수니파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슬람 극단주의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한발리 법학파와는 다른 하나피 법학파에 속한다. 수니파는 대체로 융통성 있고, 관대한 법해석을 현실세계에 적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니피 법학파가 와하비즘과 융합되어 사우디아라비아와는 또 다른 형태로 이슬람 “기형아”로 출생한 것이 탈레반이다. 결국 2001년 9.11 사태가 발발하자 미국은 주범인 알카에다와 오사마 빈라덴을 탈레반이 보호하고 있다는 명목으로 아프간 전쟁을 일으켰다. 오사마 빈라덴은 마침내 아프간 침공 10년이 지난 2011년에야 사살되었지만 탈레반이 파키스탄 국경 밖으로 쫓겨나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미국은 개전(開戰) 한 달 만에 수도인 카불과 주요 도시 칸다하르를 점령하였다. 그렇다고 탈레반이 괴멸한 것은 아니었다. 파키스탄 북부 지역은 파슈툰 부족 집단 거주지로 험준한 산악 지역이라서 사실상 국경선이 별로 의미가 없었다. 파슈툰 족은 자유롭게 통제 없이 국경을 드나들 수 있었다. 원래 영국이 국경을 획정할 당시 가장 인구가 많은 파슈툰 족의 세력 약화를 위해서 일부러 파슈툰 족이 사는 지역 중간에 국경선을 그었다. 더구나 무기 제조 등에 필요한 모든 인력과 무기를 공급받을 수 있는 곳이니, 탈레반의 요충지라고도 할 수 있다. 결국 탈레반은 숨을 죽이고 기회를 보며 파키스탄 지원으로 연명해 오다가 2003년 미국이 이라크 전쟁을 일으키고 아프가니스탄이 미국의 관심권에서 멀어지자 세를 불려 파키스탄 서북부를 장악하며 부활했다. 활동에 필요한 자금은 마약 제조로 확보했다. 종교적 신념으로 무장된 사명감과 이슬람 신정국가 건설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가진 탈레반은 그동안 전쟁 경험을 통해 축적된 전략과 전술을 통해 더욱 진화하였다. 미국이 빠져나간 공백을 이용하여 빠른 속도로 수도 카불까지 점령할 수 있었던 것은, 아프간 정부 내부의 리더십 붕괴도 한몫했지만, 탈레반의 조직력도 크게 작용했다. 대외적으로는 아프가니스탄을 외부적으로 고립시켜 우방 국가의 지원을 차단시키는 전략을 썼고, 내부적으로는 각 지방 관료들과 개별 협상을 통해 비리 혐의 등으로 협박 하며 무력화시켰다. 4. IS-K의 등장과 아프가니스탄 국민저항전선, 탈레반의 역학 관계 수도 카불이 탈레반에게 넘어가자 반(反)탈레반 투쟁의 구심점이었고 아프가니스탄의 ‘국부’라고 추앙받았던 아흐마드 샤 마수드 장군의 아들 아흐마드 마수드(주니어)가 카불 북부 판지시르 계곡에서 반(反)탈레반 세력을 집결시키면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아흐마드 샤 마수드 장군은 아프간과 소련 전쟁에서 반군을 이끈 사령관으로 탈레반에 저항하다 2001년 9.11 테러 이틀 전에 암살당했던 전쟁영웅이다. 이번에는 대를 이어 아들 마수드가 이 계곡을 지키면서 휘하에 9천 여 명의 병력을 모았다. 헌법상 대통령의 권한을 이어받은 살레 부통령도 여기에 합류하면서 국제 사회의 주목을 끌고 있다. 34개 주(州) 중에서 판지시르, 바글란, 파르와 주(州)는 반(反)탈레반 세력이 집권하고 있다. 판지시르는 카불에서 북동부로 70Km 떨어져 있는 주(州)로 소련에 맞서 아프간 군이 게릴라전을 벌였던 곳이다. 험준한 산악지형으로 둘러싸여 있어 한 번도 빼앗긴 적이 없는 천연 요새로 알려져 있다. 전신 “북부동맹”의 맥을 잇는 “아프가니스탄 국민저항전선”은 반(反)탈레반 세력으로 대부분 타직 족으로 이루어져 있다. 최근 미군이 완전 철군을 감행하자마자 탈레반은 미국이 남겨둔 무기로 무장하고 저항세력 마지막 근거지인 판지시르에 대규모 공세를 벌였으나 완전한 점령은 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존재가 아프가니스탄의 새로운 희망이 될지, 그대로 잊혀지게 될 지는 탈레반의 향후 행보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탈레반이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는다면, 이들의 존재는 묻히게 될 것이다. 반면 국제사회가 살레 부통령과 마수드를 받아들이고 이들을 지원한다면 아프가니스탄의 상황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 것이다. 이런 혼란 속에 또 하나의 세력이 등장했다. 지난 26일 카불 국제공항에 자살폭탄 테러 발생했다. 다수의 인명 피해자가 발생했는데, 미군 13명이 사망하고 아프간인 90여명이 사망했다. 이 사건은 탈레반과 미군이 약속한 철수기한 5일을 앞두고 아직 천 여 명 미군이 남아있는 상황에서 발생하여, 미국과 동맹국들의 철수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예측과 불안을 야기했지만 다행히도 탈레반과 미국의 공조와 협력이 잘 이루어진 탓에 미국은 무사히 기한을 엄수하고 철군을 마쳤다. 카불 자살 폭탄 테러의 주범은 IS-K로 밝혀졌다. IS(ISIS)의 아프간 지부 격인 IS-K이다. IS-K는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이란과 중앙아시아를 포괄하는 상징적 지명으로 “호라산(Khorasan)”을 따서 지었다는 설도 있고, “아부 오마르 호라사니에”를 따왔다는 설도 있다. 지난 2015년부터 아프가니스탄 동부 지역에서 세를 확장했으며, IS-K는 알카에다, 탈레반과 같은 이슬람 수니파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이슬람 세계를 하나로 통합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으며, 서방세계와 타협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탈레반과 노선을 달리한다. 서방국가와 자유 민주주의가 공격 목표이며, 세계적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는 IS의 일부이다. 탈레반과는 공격목표가 다르기 때문에 탈레반이 미국과 평화협정을 맺은 이후 적대관계가 되었다. 탈레반이 이슬람 교리를 제대로 따르지 않는다는 것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탈레반 지도부가 온건하다며 불만을 품은 탈레반 대원들이 IS-K에 대거 합류하기도 했다. IS-K는 3천명까지 조직원이 늘었다가 미군·탈레반과의 충돌로 인해 1-2 천 여 명 정도로 축소된 것으로 밝혀졌다. 아프가니스탄을 통치하고 집권 세력으로써 정부를 구성하고 국제사회의 지원과 인정을 받는 것이 우선적 관심인 탈레반은 IS-K와는 본격적인 거리두기를 하고 있다. 이번 카불 공항 테러는 미국뿐만 아니라 탈레반을 겨냥한 것이기도 한데, 이 사건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면서 아프가니스탄을 두고 본격적인 주도권 싸움이 시작되었다. 아프가니스탄이 탈레반 손에 들어간 이후 이슬람 급진주의자 및 극단주의자의 라스베가스가 되어 가면서 피의 투쟁이 일어날 조짐도 보이고 있다. IS-K는 알카에다와도 갈등을 빚고 있고, 산부인과 테러, 카불 대학 로켓 공격 등 이미 아프간 민간인에 대한 수차례 테러를 감행한 바 있다. 더구나 미국 본토는 물론이고 중앙아시아, 남아시아에 대한 위험 세력이 될 수 있다. 이슬람 온건파이면서 타직 족으로 구성된 아프가니스탄 국민저항전선과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확보하고 있는 IS 아프간 지부격인 IS-K 그리고 탈레반 사이에 어떤 역학 관계가 펼쳐질 지는 국제사회의 개입에 따라 다르게 전개될 전망이다. 5.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철군이 국제사회에 미치는 영향 아프가니스탄과 사태로 인해 가장 많은 이득을 본 나라는 역시 파키스탄이다. 파키스탄은 특히 90년대 중후반 탈레반의 성장과 탈레반의 아프간 장악에 큰 역할을 한 나라이고, 무기와 정보, 인력 등을 제공해주고 있다. 현재까지도 파키스탄 북부는 탈레반 활약의 주요 무대이며, 탈레반을 통해 파키스탄은 인도를 견제하고자 하고 있다. 어찌 보면 미국에서 받은 지원금으로 탈레반을 지원해왔다고 볼 수 있지만 미국은 파키스탄의 이중 플레이를 알면서도 눈감아 줄 수밖에 없었다. 내륙국인 아프가니스탄의 지정학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파키스탄의 협조가 무엇보다 절박했기 때문이다. 파키스탄 다음으로 탈레반과 중국의 관계는 미국의 중국 견제 정책으로 인해 국제 사회의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중국은 이란과 아프간에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중앙아시아를 거쳐 이란으로 연결되는 일대일로 정책을 추진하고자 하고 있다. 탈레반과 손을 잡는다면 반미 대륙세력 형성이라는 든든하고도 큰 성과를 얻게 된다. 탈레반 또한 아프가니스탄의 경제 재건을 위해서는 중국의 기술적 도움과 경제협력이 절실한 상황이기 때문에 이들의 경제협력 추진 가능성은 매우 높다. 다만, 미국이 신장 위구르의 인권 문제나 위구르 해방에 대해 힘을 실어주고 있는 상황에서 탈레반과 신장 위구르 독립운동단체인 ETIM과의 관계가 어떻게 전개될 지는 알 수 없다. 중국으로서는 탈레반을 달래고 통제하는 전략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미국과 대치 관계에 있는 시아파의 종주국 이란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이 철수하게 되면 이란과 이라크는 시아파 결속을 더욱 공고히 하여 반미 시아파 벨트 세력이 확장될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는 있지만 쏟아지는 난민과 수니파 근본주의 탈레반의 등장이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이다. 결국 국제사회의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이 떠안았던 아프가니스탄을 중국, 러시아, 인도, 이란 등 주변국의 몫으로 떠넘기고 말았다. 그렇다면 미국은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것인가. 현실주의자인 바이든 대통령은 IS-K 때문에라도 탈레반과 협력하고 있다. 실제로 미군이 막바지에 철수할 수 있도록 도와준 일등공신은 탈레반이다. 평화협정에 입각하여 이들은 미군을 안전하게 공항으로 안내하는데 성공했다. 비밀 통로까지 사용하고, 미국인을 위한 콜센터도 운영했다. 결국 미군 천여 명과 아프간 협조인들 2천여 명을 안전하게 집결지로 수송하도록 협조했다. 탈레반이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승인을 받기 위해서는 탈레반의 향후 행보가 중요할 것이다. 무엇보다 탈레반은 미군의 철수가 자신의 승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더구나 7만명 탈레반 숫자로 4천만 아프간인 통치한다는 것이 무리이며, 무장조직이었던 탈레반에게 인재풀이 부족하다는 자신들의 약점 또한 잘 알고 있다. 아프간 재건을 위해 유화적 제스추어를 쓰는 것도 서방의 경제원조가 절박하기 때문이다. 만일 탈레반이 급진적 행동을 할 경우 미국과 서방의 금융제제나 국제원조 금지 등의 경제적 고립을 면하기 어렵다는 현실을 탈레반도 잘 파악하고 있다. 현재 아프가니스탄 예산은 미국으로부터 동결되어 있고, IMF 또한 아프간으로 가는 경제지원과 개발도상국 저금리 금융지원금 등을 막고 있다. 국제 사회는 진화된 탈레반을 기대하고는 있지만 낙관하기는 어렵다. 탈레반은 이미 공식적으로 민주주의 국가 수립을 부정하고, 샤리아 율법에 입각한 정부 구성을 선포하였다. 결국 정부 구성에 있어 여성에게는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심지어 취업과 학업권을 주장하며 거리로 쏟아진 여성들을 최루탄과 소총 개머리판을 휘둘러 진압했다. 타직 족으로 구성된 국민저항전선과의 정부 수립 및 연대도 마침내 실패로 돌아가자 판지시르 진압에 나섰다. 중앙 탈레반의 유화적 제스추어는 지방 조직까지 미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마크 밀리 합장의장은 현재 상황에서 탈레반이 권력을 통합하고 아프가니스탄을 통치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회의적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내전의 가능성도 시사했다. 6. 한국의 대응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을 감행하자 국내 여론도 들끓기 시작했다. 남·북한 대치상태에 있는 한국의 안보문제가 대두되었다. 냉혹한 힘의 역학관계 속에서 주한미군이 철수하게 된 이후 한국의 안보는 장담하기 어렵다는 비관론에서 시작하여 안보는 스스로의 몫이라는 자성론에 이르기까지 여러 층위의 여론으로 어수선했다. 결국 바이든 대통령이 한국과 아프가니스탄은 다르다면서 동맹과의 협력을 강조하며 진화에 나섰다. 여기서 한 가지, 미국이 중국을 고립시키고 일대일로에 대응하기 위해 발표한 B3W(Build Back Better World) 전략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이에 4경 5천조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예산을 책정하고 있다. 그 내용은 중국과 국경 분쟁을 겪고 있는 인도, 신장 위구르 지원, 티벳 달라이 라마 지원, 그리고 이란과 북한 등 악의 축 체제를 중단하고 북한 끌어들이기를 골자로 한다. 한국 정부는 그간 풀지 못한 북핵 문제를 미국의 B3W 정책을 활용하여 새로운 국면으로 리드할 수 있다. 더불어 아프가니스탄 사태를 통해 중앙아시아는 러시아, 중국,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에게 포기할 수 없는 전략적 요충지로 부각되었다. 중앙아시아의 안보에 아프가니스탄이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역으로 아프가니스탄이 이미 이슬람 극단주의자와 테러의 라스베가스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은 상태에서 중앙아시아가 세계인의 안보를 위해 공군 기지 확보 등 필요한 전략적 거점이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의 경우, 미국과 북한과의 관계가 개선될 경우 중앙아시아와 북한, 러시아, 중국 등 유라시아 대륙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게 된다. 한국 정부는 아프간 협조자 390명을 난민이 아닌 ‘특별 기여자’로 국내 구출작전에 성공함으로써 국제 사회의 지지를 받았다. 국제사회에서 선진국 반열에 오른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에서 제대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난민 수용 등 적극적인 기여를 해야 할 때인 것은 분명하다. 다만, 한국 사회가 다문화 사회 운영 경험이 아직은 부족하고, 특히 무슬림에 대한 사회통합 정책이나 문화 수용 방안 등 이에 대한 연구나 준비 또한 거의 전무한 상태라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앞으로 한국 사회가 해결해야 할 과제이니 이번 사태를 계기로 “난민 문제”나 “무슬림 동화 정책‘ 등 적극적으로 대책과 방안 마련에 나서야 한다. 탈레반과의 교류와 정부 승인에 대한 전문가들의 적극적인 수용 제안 또한 매우 신중해야 할 문제이다. 무엇보다 여성에 대한 폭력과 인권 유린을 국제사회가 묵인하고 자국의 경제적 이익만을 위해 탈레반을 돕는다면 결국 탈레반의 폭력적 여성 인권 유린에 가담하는 꼴이 되고 만다. 국제사회가 탈레반 길들이기 작업을 통해 정상적인 길로 유도하면서 여성억압을 중단시켜야 한다. 소수자에 대한 박해를 모른척하면서 테러, 환경문제, 탄소 중립 등을 운운하는 우리에게 과연 미래가 있을지 자문해야 할 것이다. 기획: 정승철 연구실장 편집: 김소연 보조원 저자소개 오은경 교수는 현 동덕여자대학교 교양대학 교수이자 유라시아투르크 연구소장으로서 대통령 직속기구 북방경제협력위원회 민간위원, 한·중앙아 협력포럼, 법무부 이민정책자문위원회, 서울시 외국인주민 및 다문화가족지원 협의회 자문위원을 겸하고 있다. 터키 국립 하제테페 대학교 문학박사(Ph.D)이자 우즈베키스탄 국립학술원 인문학 국가박사(Doctor of Philology)이며 아제르바이잔 국제 벡토르 학술원에서 명예박사를 받았다. 주요 연구 분야는 터키문학·이슬람여성·비교문학·중앙아시아 투르크 민족의 구비문학·정신분석학으로, 이와 관련하여 한국어, 터키어, 우즈베크어, 영어, 러시아어로 백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터키·유라시아 투르크 전문가로서 활약 중이다.
  • [JPI PeaceNet] 빅데이터 기사분석을 통해 본 탈레반과 미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태도
    저자
    유기은(제주평화연구원 박사 후 연구원)
    발간호
    2021-16
    탈레반의 카불 점령 이후 주요국들은 탈레반이 집권한 아프간을 탈출하고자 하는 난민들을 긴급히 수송하고 있으며, 미군이 완전 철수하는 8월 31일까지 채 닷새가 남지 않은 시한을 앞두고 카불 공항은 혼돈으로 치닫고 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아프간 전쟁을 끝내고 철군시한을 고수한다는 확고한 입장을 지키고 있는 가운데 미국 국내와 국제사회의 미국의 철수 결정에 대한 시각도 다양하다. 이 글에서는 GDELT 기사분석을 통해 지난 15일 탈레반의 카불 점령 이후 탈레반과 미국정부에 대한 국제사회의 태도가 어떻게 나타나는지 알아본다. [집필: 유기은 박사후 연구원 (keryu@jpi.or.kr)] 1.서론 8월 15일 탈레반 무장세력이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을 점령하고 아프간의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은 아프간을 버리고 해외로 도피했다. 지난 5월 미군과 나토군의 철수가 본격화된 지 3개월 만에 벌어진 일이다. 20년 동안 지속된 아프간 전쟁은 사실상 미국의 패배로 끝났다. 이 기간에 2400명이 넘는 미군이 사망했으며 1조달러(한화 약 1176조원)가 넘는 예산이 투입되었다. 이로부터 열흘 남짓이 지난 현재, 주요국들은 탈레반이 집권한 아프간을 탈출하고자 하는 난민들을 긴급히 수송하고 있으며 미군이 완전히 철수하는 8월 31일까지 채 닷새가 남지 않은 시한을 앞두고 카불 공항은 혼돈으로 치닫고 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아프간 전쟁을 끝내고 철군 시한을 고수한다는 확고한 입장을 지키고 있는 가운데 미국 국내와 국제사회의 미국에 대한 시각도 다양하다. 이 글에서는 GDELT 기사 분석을 통해 지난 15일 탈레반의 카불 점령 이후 탈레반과 미국정부에 대한 국제사회의 태도가 어떻게 나타나는지 알아본다. GDELT(Global Data on Events, Location and Tone)는 구글에서 검색 가능한 전 세계 뉴스 기사를 기반으로 각 국가 간에 있었던 사건(event)에 대한 자료를 제공한다. 세계 곳곳에 지부를 두고 있는 거대 미디어 그룹들의 기사뿐만 아니라, 개별 국가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기사 중에 구글 뉴스(Google News)에 공개되는 모드 기사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그 양이 방대하며 각국 미디어의 보도를 반영하고 있다는 장점을 가진다. GDELT 사건 자료는 1979년 1월 1일부터 생성된 전 세계 사건이 25억개 이상 담겨있으며, 15분마다 업데이트되고 있다. 본 연구는 탈레반이 카불을 점령한 15일을 전후로 8월 10일부터 8월 24일까지 2주간의 GDELT 자료를 이용하였다.   2. 탈레반의 카불점령에 대한 주요국 및 국제기구의 입장 [그래프 1]에서 탈레반 관련 전 세계 보도 수의 추이를 살펴보면 지난 8월 15일 탈레반이 카불을 점령하면서 그 다음날부터 탈레반에 관한 기사가 급격히 증가한 것을 알 수 있다. 14일 탈레반이 언급된 기사는 1700여 개였지만 이틀 후 16일에는 탈레반에 관한 기사가 3배 이상 증가하여 5000개의 기사가 보도되었다. [그래프 1] 탈레반 관련 기사 수 추이   탈레반에 관한 기사의 내용은 함께 언급된 국가에 따라 그 어조가 다르게 나타났다. [그래프 2]는 탈레반에 대해 부정적 어조로 쓰인 기사 수를 비교한 것이다. 탈레반과 미국의 관계에 관한 기사 가운데 부정적 어조를 띤 기사들의 수가 다른 국가와의 관계를 다룬 경우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것을 알 수 있으며 그 숫자는 8월 15일 탈레반의 카불점령 이후 증가 추세에 있다. 반면, 다른 국가들의 경우, 점령 이튿날인 16일에 부정적 기사의 수가 순간적으로 높아졌다가 다시 줄어드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중국(CHN)은 미국(USA), 영국(GBR), 러시아(RUS)의 16일 보도들과 비교할 때 적은 수의 부정적 기사들이 보도된 것을 알 수 있다. 탈레반의 점령 직후 전세계적으로 이 같은 상황을 우려하는 기사들이 쏟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곧바로 입장을 밝히는 것에 조심스러워했다. 이어 21일에는 탈레반을 옹호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21일 중국 중앙방송 (CCTV)보도에 따르면 왕이(王毅) 중국 외교 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전날 (20일) 루이지 디 마이오 이탈리아 외무장관과 통화에서 왕 부장은 “아프간의 미래는 아프간 인민이 결정해야 하고 각국은 아프간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며 “서구의 기준으로 아프간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는 중국이 줄곧 고수하고 있는 내정불간섭 원칙과도 맥을 같이한다. [그래프 2] 탈레반에 관한 부정적 어조의 기사 수   유엔(UN)을 비롯한 국제기구 (IGO) 또한 탈레반을 비판하고 있지만 국가들에 비해 기사 건수는 적게유지되고 있다. 유엔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이 철수하고 탈레반이 재부상함으로써 사헬(Sahel) 지역, 서아프리카, 남부 아프리카 일부 지역의 이슬람주의 무장 단체의 영향력이 강화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였고 미첼 바첼레트 유엔 인권최고대표 또한 24일 성명을 통해 "탈레반이 수도를 포함한 아프간 대부분 지역을 빠르게 점령하면서 과거의 인권 침해 양상으로 회귀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고 밝혔다.   3. 탈레반의 카불점령에 대한 미국책임론 미국은 20년간 아프가니스탄에 천조원이 넘는 비용을 들여 아프간 정부군을 훈련시키고 지원했지만 결국 국익의 반한다는 판단 하에 철수를 결정했다. 바이든은 16일 백악관 연설에서 “미국의 아프간에서의 이익과 목적은 아프간이 테러집단의 베이스캠프가 되지 않도록 하고 결과적으로 미국 본토를 테러로부터 지키는 것이지 아프가니스탄의 재건을 완수하거나, 반란을 막는 것이 아니다”라고 아프간 철군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바이든은 특히 20년 동안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취약함을 극복하지 못한 아프간의 정부와 군대에 대해 비판했다. 실제로 탈레반이 예상보다 매우 빨리 카불을 점령할 수 있었던 것은 아프가니스탄 지도부의 뿌리깊은 문제들이 20년간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악화되었기 때문이라고 지적이 많다. 아프간 정부군의 사기 저하, 탈영, 부패, 민족 분파주의, 열악한 병참, 미 아프간 특수 작전 부대의 지원에 대한 과도한 의존 등의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게다가 지난 몇 년 동안 아프간 정부군이 탈레반과의 전투를 거부하고, 기밀을 유출하고 심지어는 무기와 장비를 판매해왔다. 아프간 국민들은 오래전부터 정부군을 신뢰하지 않고 있었다. 아프간 지도부는 미국이 절대로 아프간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군과 정부를 개혁하려고 하지 않았고 예산은 지도부의 배를 불리는 데 사용했다. 아프간 지도부의 부패와 무능함에 대한 비판과는 별개로 미군이 아프간을 탈레반에게 넘겨주고 철수를 강행한 것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와 비판도 동시에 존재한다. 아래의 그래프는 지난 15일 탈레반의 아프간 점령 이후 미국정부에 대한 국제사회의 태도가 어떻게 나타나는지 보여준다. [그래프 3] 탈레반 카불 점령 전후 미국에 대한 부정적 어조 기사 수   그래프에 따르면 영국과 중국, 러시아의 부정적 어조 기사 수가 탈레반 점령 이후 증가하며 특히 영국과 중국의 부정적인 기사가 계속해서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더욱 정확한 분석을 위해 기사의 내용이 미국에 대한 ‘비판(criticize)’ 또는 ‘비난(denounce)’으로 분류된 경우를 따로 살펴보았다. [그래프 4]가 그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그래프 4] 미국에 대한 비판 기사 수 추이   그래프에 따르면 중국, 이란, 영국의 미국 비판기사가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미국과 경쟁, 적대관계에 있는 중국과 이란, 그리고 동맹국 영국의 비판여론이 함께 증가하고 있는 점이 흥미롭다. 우선 중국과 이란은 아프간 상황을 '미국의 실패'를 부각하는 수단으로 삼았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 보도에 따르면 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16일(현지시각) "역사와 문화, 국민정서가 완전히 다른 나라에 외래 모델을 억지로 적용하려 하면 결국 발붙이기가 어렵다는 사실이 재차 증명”되었고 "한 정권은 인민의 지지 없이는 설 수 없으며, 힘과 군사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면 문제만 더 커질 뿐"이라며 미국을 아프간 개입 자체를 비판하였다. 그러면서도 "미군이 급히 아프간에서 철군한 것은 이미 아프간 정세에 심각하게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며 미군의 철군 또한 동시에 비판하는 모습을 보였다. 미국이 아랍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내심 반가워하고 있을 이란 또한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 나서 “아프간 사태는 미국의 패배”라고 강조했다. 한편으로 미국은 영국을 비롯한 유럽 동맹국가들로부터도 비판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24일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아프가니스탄 철군 시한을 기존 8월 31일로 유지하겠다고 밝히자 연장을 요구했던 유럽 동맹국들이 우려를 표하였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바이든 대통령의 결정을 전하면서 "미국이 아프간 조력자들을 탈레반에 넘겨주고 있다는 비난이 더욱 거세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유럽연합(EU)의 각료회의 격인 EU이사회의 샤를 미셸 의장은 "G7 회의에서 여러 정상이 철군 시기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으나 미국이 원래의 시한을 연장하지 않자 유럽 언론들은 이번 G7 회의가 '실패'했다고 보도했다. 특히 20여년 전 아프간전 파병을 결정했던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가 미국의 결정을 공개적으로 비판하여 크게 기사화되었다. 영국 BBC 등에 따르면 블레어 전 총리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낸 성명을 통해 미국의 철군이 "비극적이고 위험한 결정"이며 "철수 결정은 '영원한 전쟁'을 끝내겠다는 미국의 어리석은 정치적 슬로건 때문에 이뤄졌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또 철군 결정은 세계 지하디스트(이슬람 성전주의자)를 비롯해 서구 이해관계에 적대적인 이들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주고, 러시아와 중국, 이란이 이런 상황을 이용할 것이라고 주장하며, 결과적으로 미국의 철수는 '서구권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를 무너뜨린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철군 결정은 미국의 국익을 두고 볼 때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수 있다. 바이든이 지적한대로 아프간 지도부와 정부군이 스스로를 지킬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면 앞으로 1년 더, 5년 더 주둔해도 별 차이가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와 같은 미국의 정당화 논리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경쟁국과 동맹국 양쪽으로부터 비판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미군의 아프간 철수는 중국과 러시아, 이란에게는 ‘미국의 실패’를 선전할 수 있는 상징적 사건이 된 동시에 나토 동맹국들에게는 아프간과 그 국민들, 인권과 민주주의를 포기한 책임감 없는 결정으로 지탄받고 있다.   [1] The GDELT Project  (https://www.gdeltproject.org/) [2] “Why the Taliban Won And What Washington Can Do about It Now”, 2021.8.17, Foreign Affairs (https://www.yna.co.kr/view/AKR20210817109600083) [3] '미국의 실패' 강조하는 중국…아프간 미중공조 가능할까, 8.17.  연합뉴스  (https://www.yna.co.kr/view/AKR20210817109600083) [4] 중국 연일 탈레반 감싸기…왕이 "제재는 문제 해결 못해" 8.21 연합뉴스 (https://www.yna.co.kr/view/AKR20210821019100083) [5] UN "탈레반, 즉결 처형 등 심각한 인권침해 저질러", 8.25. 한국경제 (https://www.hankyung.com/international/article/2021082562147) [6] 아프간전 파병 英 블레어 "미 철수는 어리석은 정치슬로건 때문". 2021.8.21. 연합뉴스 (https://www.yna.co.kr/view/AKR20210823041500009) [7] Why America keeps building corrupt client states, 2021.8.22, The Economist (https://www.economist.com/international/2021/08/22/why-america-keeps-building-corrupt-client-states) 기획: 유기은 제주평화연구원 박사 후 연구원 편집: 김소연 보조원 저자소개 現 제주평화연구원 박사후 연구원.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후 미국 아이오와 대학교 (University of Iowa) 정치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음. 국제법과 국제조약, 정책과 조약의 전파, 권위주의 국가의 인권조약 가입과 준수 등이 주요 관심 분야임.
  • [JPI PeaceNet] 팬더믹 시대 디지털 권위주의와 민주주의의 미래
    저자
    정구연(강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조교수)
    발간호
    2021-15
    기획자註 미중 양국의 디지털 거버넌스 경쟁은 코로나19 국면 속에서 더욱 심화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디지털 기술 경쟁이 단순히 기술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디지털 권위주의 확산과 민주주의 쇠퇴를 촉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향후 미중 양국의 디지털 기술 경쟁의 쟁점은 무엇이며, 향후 어떠한 양상으로 발전할 것인가? 특히 코로나19 국면 속에서 디지털 기술 경쟁은 민주주의에 어떠한 위기를 초래할 수 있을 것인가? JPI PeaceNet은 강원대학교 정구연 교수의 기고문을 통해 디지털 거버넌스 영역에서의 강대국 경쟁이 가져올 효과와 이로부터의 함의를 논의해 보고자 한다. [기획: 임해용 연구위원(haeyonglim@jpi.or.kr)] 1. 미중 디지털 기술 경쟁의 쟁점 미중 경쟁이 군사, 정치, 경제, 기술, 체제와 규범 등 전방위로 확산되는 가운데, 각각의 영역에서의 강대국 경쟁 현황과 전망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특히 디지털 거버넌스와 관련한 미중 경쟁은 코로나19 팬더믹 국면 속에서도 더욱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데, 이는 일차적으로는 팬더믹에 대응하기 위한 감염경로 추적 및 백신 개발, 또한 팬더믹 극복에 유용한 디지털 거버넌스 체제의 경쟁이라는 차원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 미중 양국은 디지털 기술 경쟁을 통해 인도태평양 전략과 일대일로 이니셔티브가 관통하는 지정학적 공간에 대한 디지털 거버넌스 구축을 통해 전략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1] 그러나 기술발전의 속도는 그에 대한 정치적, 법적 규범의 확립 속도보다 빠르기에, 무엇이 ‘자유로운 디지털 질서(liberal digital order)’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국제적 합의와 규범적 판단은 여전히 부재하다. 미국과 중국뿐만 아니라 유럽연합 등 다양한 행위자들이 각각 가지고 있는 디지털 기술 역량 수준뿐만 아니라 사이버 주권과 인터넷 자유 개념 간의 긴장, 그리고 디지털 공간 속에서 무엇이 ‘liberal value’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려와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그중에서도 각국이 ‘정보’에 대해 갖고 있는 관념이 상이함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국가들은 정보에 대한 끊임없는 경쟁을 치러왔다. 이때의 정보경쟁이란 정보의 내용뿐만 아니라 정보 아키텍쳐에 대한 경쟁 모두를 아우르는데, 이는 근본적으로 ‘정보’에 관한 상이한 이해로부터 기인한다. 예컨대 미국의 경우 정부의 권력 남용 방지 및 견제 차원에서 정보 공개와 초국적 유통에 대해 강조한다. 반면 권위주의 국가들의 경우 정보를 정권에 대한 위협으로 상정하기에 정권 유지를 목표로 정보 통제를 수행하며, 이러한 과정에서 최근 주목받고 있는 AI와 바이오테크놀로지 기술은 권위주의 정부의 대국민 정보수집과 표현의 자유 억제, 데이터 접근성 차단, 디지털 검열 등에 활용된다.[2] 또한, 이러한 정보 통제는 국내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가짜뉴스 확산, 해외 영향력 캠페인(influence campaign)으로도 이어지기도 한다. 예컨대 지난 홍콩 민주화운동 당시 시위와 관련한 해시태그(hashtag)는 페이스북 등 주요 소셜미디어 플랫폼에서는 다수 확인된 바 있으나, 틱톡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고, 신장 위구르 무슬림 박해 관련 콘텐츠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3] 실제로 미국은 초국가적 데이터 유통을 통한 디지털 생태계 구축을 선호한다면, 중국은 데이터 주권 차원 및 자원 보호에서 중국 내부에서의 데이터 공유만을 허용하고 해외로의 유출을 거부하는 블록화 전략을 추진한다. 실제로 중국은 지난 2017년 을 통해 데이터를 중국의 미래 산업의 주요 요소이자 주권 차원에서 보호해야 할 자원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디지털 권위주의의 등장 디지털 권위주의 (Digital authoritarianism), 즉 감시, 억압, 조작, 검열, 그리고 정치적 통제 확대를 위해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는 권위주의 정권[4]으로서 중국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중동,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다수의 지역에 이미 디지털 권위주의 특색을 갖춘 정권들이 늘어나고 있다. 다만 중국의 경우 디지털 권위주의의 모델을 타국으로 확산시킨다는 점에 있어 주목해야 하며, 또한 중국의 디지털 권위주의는 시민들에 대한 보상 및 처벌기제로 사회신용체제(social credit system)를 활용하여, 오직 순종적 시민만이 사회 및 경제체제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화를 시도한다는 점에 있어 그 내구성은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이러한 점에 있어 중국의 디지털 권위주의는 소위 “기술 해방(technology liberation)” 담론과 간극 속에 존재하며, 사이버 주권(cyber sovereignty)을 강조하는 입장으로 이어진다. 2010년 ‘아랍의 봄’ 당시 소셜 미디어를 통해 민주화 운동이 촉발됨에 따라 소위 ‘독재자의 디지털 딜레마’가 논의된 바 있다. 즉 디지털 억압은 오히려 시민들의 거센 저항에 부딪혀 독재자의 생존을 어렵게 한다는 것이다.[5] 그러나 오히려 중국은 이러한 기술 해방의 담론에서 예외적이라고 볼 수 있다. 우선 중국은 자국 영토 내 인터넷을 통제하는 사이버 주권의 원칙을 강조하는데, 이는 근본적으로 중립성과 자유로운 정보의 흐름을 강조하는 인터넷의 기본 원리와 상충된다. 사이버 주권이란 각 국가가 독립적으로 사이버 규제모델과 인터넷 정책을 개발하고 다른 국가와 동등한 수준에서 국제 사이버공간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6] 그러한 차원에서 중국은 국가주권을 명분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 정부의 통제가 가능한 ‘국가 간’ 인터넷 거버넌스 구축을 선호한다. 즉 미국과 동맹국들이 형성해온 상향식, 민간영역 주도의 디지털 거버넌스 체제, 즉 시민사회조직과 서구 민간 디지털 기술기업이 주도해온 디지털 거버넌스 체제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다. 반면 중국이 상정하는 사이버 주권은 결국 정보환경과 시민의 행동을 통제하는 정부의 권한을 강화할 뿐만 아니라, 시민들에 대한 검열을 선제적으로 실시할 유인을 제공한다. 한편 시민들에 대한 검열이 선제적으로 진행된다면, 오히려 시민들을 억압할 필요성은 줄어들 수도 있다. 자기검열, 사회적 감독, 디지털 애플리케이션을 통한 시민들 간의 상호 감시를 통해 정부에 대한 대항이 사전에 차단될 수 있으며, 위와 같은 시민들과 정부와의 상호작용은 오히려 권위주의 정권이 표방하는 가치와 규범을 강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지게 되어, 디지털 권위주의 거버넌스는 공고화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중국은 사이버 주권을 강조하며 구글과 같은 회사의 저항에 부딪혔으나, 이에 대한 대체 플랫폼 – 예컨대 바이두, 웨이보, 위챗, 알리바바-를 활용함으로써 중국의 디지털 거버넌스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는 중국 디지털 시장 규모가 여타 권위주의 국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또한 중국의 디지털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기에 가능했다. 이러한 대안이 없는 권위주의 국가들의 경우 디지털 통제의 수준을 높이는데 집중하고 있다. 예컨대 에티오피아의 경우 인터넷 접근성을 정치적 충성도가 높은 지역에 좀 더 많이 부여하고 있고, 카메룬의 경우 정권유지를 위해 영어권 지역의 주민들의 인터넷 접근을 제약하고 기타 언어사용지역 주민들은 허용하는 식의 선별적 디지털 통제 전략을 사용하고 있으며, 태국의 경우 불경죄 혹은 국왕모독죄를 범하는 웹사이트를 차단해왔다.[7]   코로나19 팬더믹과 디지털 권위주의의 확산 지난 트럼프 대통령 재임 당시 미국의 글로벌 보건외교 리더십이 부재함으로 인해 중국의 디지털 권위주의 레짐은 코로나19를 대응하는데 있어 유용한 방식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더욱이 중국은 전랑외교를 통해 이러한 내러티브를 전세계에 확산시켰으며, 특히 비권위주의적 국가에서조차 극단적인 조치라고 여겨지던 감시 및 통제 조치들이 코로나19 팬더믹이 장기화됨에 따라 ‘정상적인 조치’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더욱이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 중 디지털 실크로드 이니셔티브를 통해 중국은 AI를 이용한 감시기술을 개발도상국에 전파하고 있으며, 특히 화웨이의 세이프시티 솔루션(safe city solution)은 전 세계 80여개 국가들에 의해 채택되기도 했다.[8] 실제로 일대일로의 물리적 인프라 구축 사업은 팬더믹으로 인해 그 속도가 주춤했으나, 보건 실크로드 및 디지털 실크로드 이니셔티브의 경우 오히려 더 많은 수요에 직면하고 있다. 이에 중국은 디지털 인프라 수출과 훈련, 사이버 공간 관리 등에 관한 노하우를 제공하며 해외 국가들의 ‘사회 안정’에 기여하는 디지털 거버넌스 플랫폼 구축에 기여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플랫폼에 권위주의 국가들만이 참여하는 것은 아니며, 지난 2019년 호주의 다윈 시(City of Darwin)도 스마트시티 플랫폼을 받아들이기도 하였다.[9] 이러한 참여는 중국기업이 수출한 디지털 인프라를 통해 수집되는 정보와 데이터들이 중국 당국에게로 전달될 수 있는 위험을 노정하고 있다는 점에 있어 많은 우려를 낳고 있다. 디지털 실크로드 이니셔티브는 이러한 이유로 지정학적 함의를 분명 갖고 있다. 중국의 디지털 실크로드 이니셔티브 참여 국가들에 있어 중국 디지털 기술기업의 시장점유율도 높아진다는 점을 차치하고서라도, 중국의 기술 인프라 및 이와 관련한 규범 역시 전달됨에 따라 정보관리 및 통제 메커니즘을 통해 참여국의 정치, 경제, 사회 등 다양한 분야의 정보 수집 우위를 중국이 갖게 되기 때문이다. 미국 상원에서 지난 6월 가결된 미국혁신법(US Innovation and Competition Act of 2021, USICA)은 위와 같이 빠르게 발전하는 중국의 디지털 역량에 대항하는 미국의 대중국 지정학 전략을 대표하며, 향후 5년간 최소 2,000억 달러 예산이 투입될 전망이다. 본 법안은 척 슈머 민주당 원내대표가 발의한 첨단기술 육성을 목표로 하는 “Endless Frontier Act,”그리고 대중국 지정학 견제를 위한 “Strategic Competition Act” 등을 통합한 형태로 입법이 추진되었고, 그 가운데에서도 미래 과학기술 선도를 위해 총 1,200억 달러가 투자될 전망이다. 이는 반도체, 통신 분야에 집중되어있으며, 국립과학재단(NSF), 상무부, 에너지부의 연구개발 예산으로 주로 소요될 것이다. 과거 맨해튼 프로젝트와 같이 선도기술분야에 대한 압도적 예산 투입을 통해 기술 경쟁력 우위를 지속하고자 하는 미국의 의중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미국혁신법에 따른 해외공여가능금액은 1,000억 달러로 묶여있고 이는 중국의 디지털 실크로드 이니셔티브 (약 2,000억 달러 이상) 예산 투입규모보다 작은 상황이다. 지난 G7 회담 당시 참여국들이 공약한 “Build Back Batter World(B3W)”이니셔티브 역시 그러하다. 트럼프 행정부 당시 설립된 국제개발금융공사(International Development Finance Corporation) 역시 역내 공여금액 한도를 600억 달러로 제한시켜두어, 과연 디지털 거버넌스 구축을 통한 지정학적 우위를 점하려는 목표가 달성될 수 있을지는 아직까지 불확실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미국은 동맹국들과의 협력을 다시 한 번 강조할 것이며, 디지털 기술개발 차원에서의 협력뿐만 아니라 미중경쟁이 집중된 공간에 대한 디지털 거버넌스 구축에 있어서도 동맹국들과의 단합을 이끌어낼 공산이 크다.   함의 강대국 간의 디지털 기술경쟁은 글로벌 산업구조와 질서, 공급망의 재편으로 이어지며, 특히 지금의 디지털 거버넌스 경쟁을 이끌고 있는 미국과 중국 모두 프론티어 전략(frontier strategy)를 통해 각각의 디지털 생태계를 주도적으로 구축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한국의 디지털 거버넌스는 어떠한 생태계와의 공존이 가능할 것인가의 여부를 기술적 측면뿐만 아니라 체제적, 규범적 측면 차원에서도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10] 특히 지금의 코로나 19 팬더믹 국면에서 많은 국가들은 디지털 거버넌스의 효용성을 팬더믹 극복 차원에서 일차적으로 판단할 가능성이 높지만, 아직까지 정립되지 않은 수많은 디지털 거버넌스 규범과 질서에 대해서도 긴 안목을 갖고 고민해볼 필요도 있을 것이다. 앞서 논의한 바와 같이 팬더믹 국면에서 디지털 권위주의의 확산은 이미 관찰되고 있다. 팬더믹이 장기화될수록 그러한 확산은 불가피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을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서도 뉴노멀로서 받아들여야하는지의 여부는 또 다른 문제일 것이다. 한편 중국은 사이버 공간에서의 규칙 제정에 있어 유엔을 중심으로 한 규칙 마련을 선호한다. 이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사이버 국가주권을 강조하는 입장에 근거하며, 민간영역,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규칙제정보다 국가주도의 규칙제정을 선호하는 것이다. 또한 규칙 마련과정에 있어 디지털 실크로드를 통해 협력해온 개발도상국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 존재한다. 이러한 사실을 고려하더라도 사이버 공간에서의 규칙마련은 단순히 기술적인 영역에 국한되지 않으며 상당히 정치화된 논쟁을 피해갈 수 없을 것임을 알 수 있다. 한국의 입장에서 볼 때, 이러한 논쟁 속에서 중요한 것은 한국 스스로의 역량과 잠재력에 대한 정확한 판단뿐만 아니라 그것의 지정학적 함의에 대한 고려일 것이다. 디지털 기술이 기술로만 남아있지 않으며 한국이 공존할 디지털 생태계, 그에 따른 대외적 위상과 운신의 폭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1] Lisa Curtis, Joshua Fitt, and Jacob Strokes. “Advancing a Liberal Digital Order in the Indo-Pacific” Center for a New American Security Report (May 2021). [2] Lindsay Gorman, “China’s Data Ambitions Strategy, Emerging Technologies, and Implications for Democracies,” National Bureau of Asian Research Commentary (August 14, 2021). [3] Raymond Zhong, “TikTok Blocks Teen Who Posted about China’s Detention Camps,” New York Times (November 26, 2019) [4] Lydia Khalil. “Digital Authoriatarianism, China and COVID,” Lowy Institute Analyses (November 2, 2020). [5] Steven Feldstein, The Rise of Digital Repression: How Technology is Reshaping Power, Politics, and Resistance (London: Oxford University Press, 2021). [6] Adam Segal, “When China Rules the Web: Technology in Service of the State” Foreign Affairs (September/October 2018). [7] Council on Foreign Relations, “How the Dictator’s Digital Dilemma Constraints Leader’s Choice” (May 11, 2021). [8] Sheena Chestnut Greitens, “Dealing with Demand for China’s Global Surveillance Export” Brookings Institution Global China Report (April 2020). [9] Steven Feldstein, “The Global Expansion of AI Surveillance,” Carnegie Endowment for International Peace (September 17, 2019). [10] 박강민, 김준연.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미중 AI패권 경쟁을 바라보는 관전 포인트” (성남: 소프트웨어 정책연구소, 2020). 기획: 임해용 연구위원 편집: 우장민 연구보조원 저자소개   정구연 교수는 강원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재직 중이며, 캘리포니아 대학 로스앤젤레스(UCLA) 정치학 박사학위 취득 후 국립외교원 객원교수, 통일연구원 부연구위원으로 근무하였다. 주요 연구분야는 미국 대외정책과 안보아키텍쳐, 그레이존 및 해양안보 등이며, 최근 연구로는 “South Korea’s perspective on Quad Plus and Evolving Indo-Pacific Security Architecture” (Journal of Indo-Pacific Affairs, 2020), “Wartime Durability of the US-led Coalition of the Willing: The Case of the 2003 Operation Iraqi Freedom,” Korean Journal of Security Affair, 2020) 등 다수의 논문과 저서가 있다. 현재 외교부 및 통일부 정책자문위원, 해군발전자문위원 등을 역임하고 있으며, 국제정책연구원 기조실장, 한국해양전략연구소의 편집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다.
  • [JPI PeaceNet] The Contemporary Global Governance Dilemma: Beyond the State
    저자
    Brendan M. HOWE
    발간호
    2021-14
    팬데믹으로 인해 국제사회가 겪고 있는 커다란 사회적, 경제적 충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제적 차원의 정책대응이 절실함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중심이 된 글로벌 거버넌스는 최근 더욱 약화되고 있다. 국제 및 국내 거버넌스 차원에서 가장 시급한 위기는 무엇이며, 이 위기를 악화시키는 요인은 무엇인가? 국제사회는 어떻게 글로벌 거버넌스를 회복하고 국제협력과 평화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인가? 이번 JPI PeaceNet에서는 이화여자대학교 브랜든 하우(Brendan M. HOWE) 교수의 기고문을 통해 심화되고 있는 글로벌 거버넌스 딜레마 현상과 그 원인을 세 가지 이슈(팬데믹, 기후변화, 난민의 인도적 위기 및 강제이주)를 통해 살펴본다. 더불어, 이에 대한 해법으로서 비국가 행위자의 중요성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기획: 유기은 박사후연구원(keryu@jpi.or.kr)] Introduction Governance is the process of governing by those with the authority (legitimized power) to do so. We expect those who govern to do so in the interests of the governed, usefully providing services that can best, or perhaps only, be achieved through collective action. It is an ongoing and evolutionary process which looks to reconcile conflicting interests, through the rule of law, and introduce security for all members of a particular community. Governance is also a process through which collective good and goods are generated so that all are better off than they would be when acting individually. Thus, governance implies a concern by those who govern with both the security and development of those who are governed. A further element of governance recognizes the rights of those who are governed, and the obligations towards them imposed upon those who govern. [1] Domestically, governance is carried out by instruments of the state. Internationally, governance refers not only to global attempts to govern in the absence of world government, dealing with conflicts of interests and development cooperation between states, the rights and security of states, and those issues that transcend national boundaries; but also, prescriptions for how the governments of those states should themselves govern. Hence the governments of members states need to work together to contribute to the reconciliation of international conflicts of interests, support international peace and security, take part in the generation of global collective good such as through free trade, but also in terms of distributive justice such as the Millennium Development Goals (MDGs) and the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SDGs), as well as playing the roles of good global citizens. This last implies and expansion of the normative boundaries of the state, whereby governments are not solely responsible for the wellbeing of their own citizens, but also for the wellbeing of all the citizens of the world, and in particular, for that of the most vulnerable individuals and groups. The transitional process from anarchic conditions which generate conflict, towards the aspiration of global governance, whereby states are actively brought together to solve common problems, reconcile conflicting interests, and generate collective good, including a more peaceful and secure operating environment, may be termed international organization. International organizations (IOs) are representative aspects of the phase of that process which has been reached at a given time. [2] Both the process of international organization and individual representative IOs manifest a dualistic nature in that on the one hand they serve to facilitate the functioning of the sovereign inter-state system, while on the other, they simultaneously require a degree of alienation of the sovereign authority of states. Safeguarding international peace and security was the primary reason for the establishment of the United Nations (UN) in 1945. The aspiration “to save succeeding generations from the scourge of war” appears in the opening lines of the UN Charter. Maintaining peace and security appears first in the Charter’s statement of purposes and principles. Even the roles and non-military functions of IOs dealing with other aspects of global governance are often justified by the contributions they can make to international peace and security. Yet, seventy-five years ago, the UN Charter established three founding pillars of the UN system: peace and security, development, and human rights. These broadly reflect the governance concerns listed above. More recently it has become common to refer to a fourth pillar, incorporating the rule of law, likewise reflecting governance principles. While security remains the preeminent consideration for global governance, the impact of the other pillars and principles has been reflected in the evolution of conceptualization and policy prescription. In 2005, UN Secretary-General Kofi Annan referenced the interrelatedness of the three initial pillars of the UN by noting “we will not enjoy security without development, development without security, and neither without respect for human rights. Unless all these causes are advanced, none will succeed.” [3] In doing so he neatly encapsulated the progress made by the evolution of security and governance conceptualizations, as well as ongoing obstacles. The complexity of contemporary international governance challenges requires holistic policy responses, but operationalizing these obligations is likely to face resistance from the states whose sovereign rights they can be seen as undermining. This, I have termed the global governance dilemma. The three most pressing crises requiring urgent responses at the levels of both international and domestic governance are COVID-19 (and other pandemics), climate change, and the humanitarian crisis of refugees and forced migration flows. All three are exacerbated by the pursuit of narrow self-interest (unilateralism) and an emphasis on state security among national policymakers. Such state-centricity is, however, normatively untenable, and ultimately self-defeating. Hence this investigation emphasizes the need to go beyond the state in terms of global governance policy prescription.   The COVID-19 Crisis In trying to coordinate a global response to COVID-19 (and, historically, towards other pandemics), the World Health Organization (WHO) has found itself at the center of the dualistic paradox of international organization. The responses of the three great powers, the US, China, and Russia to the COVID-19 crisis, as well as those of some second-tier powers such as the UK, Brazil, and India, have left much to be desired in terms of both international and domestic leadership. Indeed, policies in these countries contribute overall to the challenges faced by the WHO, rather than providing adequate support for the organization to carry out its global governance and systemic health security mission. Lack of transparency and freedom of information and speech in China has allowed pandemics to spread, and critically endangered vulnerable individuals and groups in the country, the region, and across the globe. When the Chinese government has acted, it has been unilaterally, and in an authoritarian manner rather than openness, imposing comprehensive lockdowns which exacerbated socio-economic vulnerabilities. By contrast, agents of governance in the US during the current COVID-19 pandemic were slow to respond to the pandemic out of concern for national economic impact, as well as the impact restrictions would have upon civil liberties and individual freedoms. These have also provided the pressures for premature lifting of restrictions. As a result, the US is now the most severely impacted country in the world. Internationally, China and the US have focused on blaming each other for the impact of COVID-19, resorting to national interest security promotion rather than collective action, and showing inconsistent support for the mission of the WHO, and even outright hostility. Donald Trump even threatened to withdraw the US from the WHO. While the Biden administration has rejected this policy, lack of consistent support for the mechanisms of the liberal world order from the US, its very architect and formerly chief champion, does little to engender confidence in its future. Rich developed countries have overall, engaged in vaccine nationalism, whereby governments sign agreements with pharmaceutical manufacturers to supply their own populations with vaccines ahead of them becoming available for other countries. This has continued even to the extent of surplus vaccines thereby acquired expiring and going to waste, while developing countries are left with insufficient supply. The national interest prioritization of the rich is demonstrated by the fact that the central banks of the world’s major economies mobilized roughly $9tn to respond to the economic shock of COVID-19, acting swiftly and decisively to protect the interests of their investors, while these countries have failed to find the $23bn, or 0.25% of this monetary response needed for global vaccination (a number which would dramatically decrease if governments compelled their pharmaceutical companies to share technology). [4] Not only does this seem normatively wrong, but it is also, ultimately, self-defeating. The virus is thriving in regions with low vaccination rates, throwing up mutant strains which come back to haunt the selfish countries which were only concerned with vaccinating their own people. At present rates of vaccination, the pandemic will continue to rage until at least 2024, and the longer the virus travels, the more often it mutates, and the more viciously it may rebound on the rich countries undermining their vaccination programs. [5] Furthermore, even from an economic perspective, unilateral vaccine nationalism makes little sense, for as long as the crisis continues, outbreaks and mutations will continue to wipe trillions of dollars off stock valuations world-wide, with perhaps only the shareholders of big pharmaceutical companies, online shopping operations, and digital streaming services seeing an upside.   The Climate Crisis Environmental security is a policy area in which all the classes of political actor interact; both affected by and able to affect significant elements of the paradigm. It is of growing importance in absolute terms (the biosphere is increasingly endangered by human activity), relative terms (when compared with other security conceptualizations), and academic terms. Policy options and implications are increasingly cross-border or global and are not amenable to state-centric, unilateral rational actor model (RAM) pressures such as defense, deterrence, appeasements, or inducements. Rather than the tit-for-tat nature of traditional security interactions, environmental security is best modeled by the game theoretical model of a “tragedy of the commons,” whereby if each actor pursues their narrow selfish interests it will result in catastrophe for all. From a global governance perspective, the UN has launched multiple initiatives, but remains challenged in its aspirations by the legacies of traditional national security and national interest considerations. These include the 1972 UN Conference on the Human environment in Stockholm which contributed publicity, a declaration on principles, an action plan of recommendations, and a resolution on institutional and financial arrangements. The Stockholm declaration established limitations to sovereignty, noted duties incumbent on state actors, as well as the common heritage of mankind’s resources. It also established monitoring networks, created the United Nations Environment Programme (UNEP) to serve as a propagation and organizational framework, and stimulated NGOs and individual governments to act. This was followed by the Brundtland Commission which introduced the concept of sustainable development; the 1987 Montreal Protocol addressing ozone depletion; the 1992 UN Conference on Environment and Development (UNCED) in Rio which launched the United Nations Framework Convention on Climate Change (UNFCC); the 1997 Kyoto Protocol which extended the UNFCCC with more stringent measures; and the 2015 Paris Agreement, which was an agreement within the UNFCCC, dealing with greenhouse-gas-emissions mitigation, adaptation, and finance. The environmental security paradigm has created lots of awareness, some government, IO and non-governmental organization (NGO) action, but not enough enforcement or binding mechanisms. It has substantially been challenged by the unilateral policy prescriptions and rejection of obligations by the dominant states in the system, with the US, China, Russia, as well as second-tier great powers India and Brazil, all ranking as major contributors to climate change. As with the COVID-19 crisis, the world hegemonic leader, the US, actively obstructed the evolution of the governance paradigm by withdrawing from or refusing to ratify the above-mentioned international instruments. Despite the Biden administration performing a policy U-turn on the issue, American perfidy has not inspired confidence. Again, this selfishness on the part of the major players is not only normatively unjustifiable but is also self-defeating. Ultimately, of course, given that climate change poses an existential threat to the whole of mankind, culminating in an extinction level event wherein the Earth has been made uninhabitable, the national security and interest of all states is impacted. But even before we reach such a catastrophe, climate change has the capacity dramatically to harm the national interest of any state in the system through costs associated with extreme weather events (such as the 2021 heatwaves engulfing much of the Northern hemisphere), through the increased severity and frequency of natural disasters (storms, flooding, tornadoes, etc.), as well as nature-induced disasters which are precipitated and further exacerbated by the impact of human beings (such as wildfires, droughts, desertification, and deforestation). Rising sea-levels around the world not only threaten the existence of some low-lying island nations, but also pose an increasing threat to some of the world’s prime real estate.   The Humanitarian Crisis The number of displaced people, including refugees, has almost doubled in the last decade due to persecution, conflict, violence, or human rights violations. The office of the United Nations High Commissioner for Refugees (UNHCR) noted that around 72 million people – including refugees and persons in a refugee-like situation, asylum-seekers, internally displaced persons (IDPs), stateless persons and others of concern - were forcibly displaced by the end of 2018. These figures include the Rohingya refugees, but not others displaced since the military coup in Myanmar, and the near civil war-like conditions now pertaining. According to the human security paradigm, vulnerable individual human beings and groups have an absolute right of protection from threats to their existence. This translates to an obligation upon those who govern to respect this right. Refugees are among the most vulnerable individuals and groups, and refugee crises are among the gravest contemporary governance and human security issues, posing severe challenges to national governments and international organizations alike. Refugees are guaranteed special protection as vulnerable groups under international humanitarian law. The 1951 UN Refugee Convention provided a legal framework for the protection of displaced people in Europe after the Second World War. In 1967, the Protocol Relating to the Status of Refugees added ‘without any geographic limitation’ thereby removing the time and location conditions of the initial Convention. Refugees are entitled to protection under the Refugee Convention and the additional Protocol if their human rights are not being protected in their country of origin, but potentially not if they are economic migrants merely seeking a better life. In taking a human security perspective to governance, however, all human beings have a reasonable expectation to live their lives free from fear, want, and indignity. If conditions in their country of origin are severe enough to constitute an existential threat, whether or not they are being violently persecuted, the logic of protection under the international humanitarian regime would seem to extend to other categories of migrants. This is particularly the case under contemporary conditions wherein the threat agenda should be broadened to include hunger, disease, extreme (absolute) poverty, and natural disasters, because these kill far more people than war, genocide, and terrorism combined. Likewise, the principles of shared humanity make demands upon all of us. The global acceptance of these principles is reflected in the near universal endorsement of related international documentation starting with the 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 (UDHR) and continuing through the UN operationalization of the responsibility to protect (R2P), the MDGs, and the SDGs. Clearly, of all the contemporary crises, this one makes the most explicit normative demands upon our shared humanity. Again, however, rich, powerful states tend to follow narrow self interest when determining policy. Generally, throughout the member states of the 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 (OECD), there is a preference for admitting highly skilled additions to the workforce, but a resistance to accepting refugees, especially the most vulnerable (likely to be unskilled and often challenging to integrate). This selfishness has combined with global resistance to immigration based on popular (although misguided) fears of socio-economic challenges and increased law and order threats (including terrorism) which have manifest in Brexit, the rise of the National Front in France, Pegida in Germany, One Nationism in Australia, and Trumpism in the US. Furthermore, in East Asia, often viewed as the most “Westphalian” or state-centric region of the world, this policy focus has combined with an extreme form of economic national interest focus which has been termed “econophoria,” as well as ethno-nationalism based on (mis)conceptualizations of ethnic homogeneity. Hence, refugees and forced migrants are only welcome to the extent they can contribute to the national development project, and the degree to which they can blend into the dominant ethno-cultural community. Hence, for instance, despite in 2013 becoming the first state in Asia to enact a domestic refugee law, South Korea has only accepted 3.7% of refugee applications. Once more, such policy positions are also not only normatively insupportable, but also even counter-productive from the perspective of championing national interest. The US and EU countries have already experienced the challenges of failing to deal with human insecurity in other countries with unprecedented refugee flows. Mick Keelty, Australian Federal Police Commissioner identified climate change refugees as a huge national security problem. [6] Refugees and IDPs in overcrowded camps can fuel religious extremism, terrorism, and trans-national crime, all of which can impact on selfish developed countries around the world. Meanwhile, due to demographic time bombs, East Asian polities are in particular need of “new blood.” For instance, South Korea’s working-age population is projected to decline an average of 330,000 per year in the 2020s as baby boomers reach retirement age, and the country is also widely expected to become a “super-aged society” in 2025, in which the proportion of those aged 65 and older will hit 20 percent of the total population. [7] Refugees and immigrants have, throughout history, consistently contributed greatly to the reinvigoration of host societies, and improved their economic competitiveness.   Beyond the State New perspectives have, however, increasingly come to the fore, with a broadening of the scope of enquiry along the x-axis of issues from a strict focus on national survival in a hostile operating environment and questions related to war and peace, to include some or all of the following: a focus on non-military rather than military threats, transnational rather than national threats, and multilateral or collective rather than self-help security solutions. [8] Within both security and governance discourses, there have also been increasing emphases on individual human beings as well as on the planet or global biosphere, corresponding to a bi-directional expansion along the y-axis of referent objects. Thus, non-traditional security (NTS) perspectives expand conceptualizations to include the final original, and most non-state-centric pillar of global governance introduced above, that of human rights. New, non-state actors, NGOs, civil society organizations (CSOs), pressure and protest groups, are increasingly influential, not only in the implementation of good governance on the ground, but also, empowered by the information and communication technology (ICT) revolution, in influencing those who govern at both the domestic and international level. Hence, Brian Hocking points to a new “network” model of diplomacy, in which publics are “direct participants in the shaping of international policy and, through an emergent global civil society, may operate through or independently of national governments.” [9] Even in Westphalian East Asia, which is also the most connected region of the world, governance may be viewed as increasingly a two-level game, whereby societies of the region are interconnected to an unprecedented degree. [10] What Nyan Chanda refers to as the “New Preachers,” NGOs and CSOs, as well as community activists, have sprouted in many countries in the region to uphold humanitarian causes and issues, and to pressure governments and corporations. These activists have also linked with international bodies and fellow activists in other countries for coordination and support, thus the authoritarian state’s efforts to maintain its power are challenged by the mutually reinforcing trends of the constant diffusion of information and the rise of civil society activism. [11] The reason that countries in East Asia outperformed those in the West on virtually all metrics in terms of dealing with COVID-19 was primarily because of societal rather than government reactions. Due to previous pandemic scares, preparations were already in place to ramp up dramatically the production of tests, masks, and personal protective equipment (PPE), but populations were already aware of the dangers such pandemics pose, and willing to accept limitations on their freedoms. People in the region are already used to wearing masks due to the pollution and are willing to accept a degree of invasiveness in their lives due to national security considerations. The successful measures, such as contact-tracing, mass-testing, and targeted lockdowns, could perhaps only have been implemented swiftly to such a degree in this region, due to the shared social value-system, across a broad geographical area, and taking in a wide range of governance models. Members of global civil society are the most vociferous proponents of climate action, and critics of those who govern when they fail to address the crisis adequately. Since 2018, the strongest voice on climate change has been (then 15-year-old) Greta Thunberg, and the ICT revolution, combined with increased receptiveness to non-state actors at the level of international governance, has given her a global stage. NGOs and CSOs are also the first responders when natural and nature-induced disasters occur, and as such need to be further empowered in terms of governance contributions and input. Finally, civil society actors are key to addressing human vulnerabilities at all stages of the journey for refugees and forced migrants. In the originating state, the voices of civil society are often key in bringing wider attention to the governance failures which stimulate refugee and migration flows. NGOs and CSOs are often active in trying to mitigate the circumstances which contribute to the human insecurity triggers the movement of people, whether through involvement in demining operations, negotiating cease-fires, or providing access to food, water, and medical assistance. During transit through third party countries, it is often NGOs and CSOs to whom refugees turn for assistance, and who run the camps in which they find themselves. When seeking asylum or settling in destination countries, again it is usually members of civil society who are the greatest champions of, and assistants to, refugees and migrants. At the same time, however, we must recognize the dangers of increased governance input from civil society empowered by the democratization of information through the CIT revolution. Vaccine sceptics, climate change deniers, and those peddling the false narrative of the “threat” posed by refugees, can all have a significant negative effect on public perception and government policy formation. Human insecurity for the most vulnerable individuals and groups can be generated by the words and actions of those campaigning against them. Hence, even those seeking vaccines are sometimes forced to do so surreptitiously to avoid condemnation from neighbors, and shopworkers can face abuse for adhering to policies regarding mask-wearing. Groups campaign against the “threat to jobs” posed by green governance initiatives. Genocide and ethnic cleansing can be triggered through social media, as has been the case with the Rohingya in Myanmar.   Conclusion State-centric governance is no longer fit for purpose, in either normative or practical terms. This has been highlighted by the impact of the three gravest crises facing the world today. Non-state-centric voices and actors hold tremendous potential to address the shortcomings of the traditional models. Care must also be taken, however, to also consider non-state-centric threats to good governance. At the very least, governments need to pay more attention to non-state-centric issues in their policy-making, funding, and research prioritization.   Reference [1] Brendan Howe, “Governance in the Interests of the Most Vulnerable” Public Administration and Development 32, (2012): pp.345–356. [2] Inis Claude, Swords Into Plowshares: The Problems and Progress of International Organization (New York: Random House, 1963): p.4. [3] Kofi Annan, “In Larger Freedom: Towards Development, Security and Human Rights for All” Report of the Secretary-General (2005). https://www.un.org/en/events/pastevents/in_larger_freedom.shtml. [4] Rogelio Mayta, KK Shailaja and Anyang’ Nyong’o, “Vaccine nationalism is killing us. We need an internationalist approach” The Guardian June 17, 2021. https://www.theguardian.com/commentisfree/2021/jun/17/covid-vaccine-nationalism-internationalist-approach. [5] Ibid. [6] Rogelio Mayta, KK Shailaja and Anyang’ Nyong’o, “Vaccine nationalism is killing us. We need an internationalist approach” The Guardian June 17, 2021. https://www.theguardian.com/commentisfree/2021/jun/17/covid-vaccine-nationalism-internationalist-approach. [7] The Korea Times, “Korea in search of solutions for looming ultra-low childbirth, aging population” July 11, 2021. https://www.koreatimes.co.kr/www/culture/2021/07/703_311935.html?fa&fbclid=IwAR00P9OByLr57IV_6fMGZa90PKu9ZT9ayEFxNwnA8JZtlneMwRFvkX26YuI [8] Amitav Acharya, “Human Security: What Kind for the Asia Pacific?” David Dickens, ed. The Human Face of Security: Asia-Pacific Perspectives. Canberra Papers in Strategy and Defence, No 144 (Canberra: Australian National University, 2002); Ole Waever, “Securitization and Desecuritization” in Ronnie Lipschutz (ed). On Security.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1995). [9] Brian Hocking, “Rethinking the ‘New’ Public Diplomacy” in Melissen, J. (ed.) The New Public Diplomacy: Soft Power in International Relations, 28-46. (Basingstoke: Palgrave Macmillan, 2005): p.29 [10] David Shambaugh, “International Relations in Asia: The Two-Level Game” in Shambaugh, D. and Yahuda, M. (eds) International Relations of Asia (Plymouth: Rowman & Littlefield, 2008). [11] Nyan Chanda, “Globalization and International Politics in Asia” in Shambaugh, D. and Yahuda, M. (eds) International Relations of Asia (Plymouth: Rowman & Littlefield, 2008). 기획:  유기은 박사후연구원(keryu@jpi.or.kr) 편집: 우장민 연구보조원 저자소개 Brendan Howe is Dean and Professor Ewha Womans University Graduate School of International Studies, and President of the Asian Political and International Studies Association. His research focuses on traditional and non-traditional security in East Asia, human security, comprehensive peacebuilding, middle powers, post-crisis development, and conflict transformation. He has authored, co-authored, or edited more than 90 related publications including The Niche Diplomacy of Asian Middle Powers (Lexington Books, 2021), UN Governance: Peace and Human Security in Cambodia and Timor-Leste (Springer, 2020), Regional Cooperation for Peace and Development (Routledge, 2018), Peacekeeping and the Asia-Pacific (Brill, 2016), Post-Conflict Development in East Asia (Ashgate, 2014), and The Protection and Promotion of Human Security in East Asia (Palgrave, 2013).
  • [JPI PeaceNet] 복합위기 시대 탄소통상질서의 변화: EU 탄소국경조정제도의 추진 동향과 정책적 함의
    저자
    김성진(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부연구위원)
    발간호
    2021-13
    유럽연합의 탄소국경조정제도의 구체적인 시행방안이 담긴 법안이 유럽위원회에 의해 발표되었다. 탄소국경조정의 세계적인 도입은 국제통상질서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중차대한 사안인 바, 한국은 그 동향을 파악하고 대응 방안을 시급히 모색해야 할 필요가 있다. JPI PeaceNet은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김성진 부연구위원의 기고문을 통해, 유럽연합 탄소국경조정제도의 구체적인 내용과 추진 동향을 파악하고, 한국에 주는 정책적 함의를 도출하고자 한다. [기획: 임해용 연구위원(haeyonglim@jpi.or.kr)]   1. 서론 2021년 7월 14일, 유럽위원회(European Commission)의 법안 패키지가 발표되었다(European Commission, 2021a). 유럽연합(European Union, EU)의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1990년 배출량 대비 55% 감축)를 따서 “Fit for 55”라고 불리는 이 패키지에는 유럽 그린딜(European Green Deal)과 유럽기후법(European Climate Law)에 명시된 목표를 달성하고, EU의 경제·사회 저탄소 전환의 법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다수의 법안이 담겨 있다. 특히 EU 배출권거래제(Emissions Trading System, ETS)의 혁신과 탄소국경조정제도(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 CBAM)의 시행방안이 법안으로 제출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녔다고 할 수 있다. EU의 CBAM 도입은 기존의 국제통상질서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중차대한 사안이다. 인간 활동에 의한 온실가스 배출량이 급격히 증가하고 이로 인해 기후위기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었고, 기후변화의 위험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특정 국가들의 노력만이 아닌 전지구적 공조가 필요한 상황이다. 하지만 주권 국가들이 각자의 이득을 추구하는 세계에서는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 없기 때문에, 국가 간 교역에 대한 탄소규제를 통해 전지구적으로 적절한 탄소비용을 동일하게 부과하는 CBAM과 같은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이에 따라 기존의 탄소집약적 제조업, 화석연료, 수출 중심의 생산 방식은 산업경쟁력을 잃고, 저탄소제품이 경쟁력을 얻게 되는 방향으로 국제통상질서가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인식하고 대비하고자 하는 목적을 갖고, 본고에서는 EU의 CBAM 도입 추진 동향과 세계 주요국의 반응을 고찰하고, 이것이 한국에 주는 정책적 함의를 도출한다.   2. EU의 CBAM 도입 추진 2019년 12월 11일 유럽위원회는 유럽 그린딜 계획을 발표하면서, 상향된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조치 중 하나로 CBAM의 도입을 공식화하였다(European Commission, 2019). 유럽 그린딜에서 EU는 가장 우선적인 목표로 “2030년 및 2050년 기후변화 대응목표의 상향조정”을 들었다. EU는 1990~2018년 사이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23%를 감축했고, 1990년 대비 2030년까지 40%의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2050년까지 60%의 감축을 향후의 목표로 제시한 바 있다. 하지만 기후변화를 막기에 이 목표가 여전히 부족하다고 판단한 EU는, 2030년까지 55% 감축으로 단기 목표를 상향 조정하고, 2050년에는 온실가스 순배출량 제로를 뜻하는 기후중립(climate neutrality)을 달성할 것을 유럽 그린딜에서 새로운 목표로 선언하였다. 2021년 6월 28일 EU이사회를 통과한 유럽기후법(European Climate Law)에도 명시적으로 규정된 이 야심찬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EU는 내부적으로 강력한 온실가스 감축조치를 시행해야 했는데, 그 과정에서 EU 기업들의 탄소감축 비용 증대로 인해 생산비용이 높아지면 산업경쟁력이 떨어질 것이 자명했다. 예컨대, A 제품의 기존 생산비용이 100유로이고 온실가스 함유량을 일정 수준 이하로 감축하는 조치에서 발생하는 추가 비용이 10유로라면, 동일한 A 제품 생산을 위해 EU 기업에서는 110유로의 비용이 드는 반면, 온실가스 규제조치가 없는 다른 국가의 기업에서는 100유로의 비용만 들게 되므로 EU 기업은 가격경쟁력을 잃게 된다. 그 결과 EU 기업들은 온실가스 규제가 덜한 지역(“오염피난처”)으로 생산기지를 이전하게 될 것인데, 이 현상을 “탄소누출(carbon leakage)”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EU 기업의 해외로의 탄소누출을 막기 위해서는 EU가 부과한 10유로만큼의 탄소비용을 EU 시장에 들어오는 해외 생산품에도 부과해야 한다. 이것이 CBAM 도입의 핵심적인 근거이다. 유럽 그린딜에서 CBAM의 도입을 선언한 이후, EU는 2023년부터 이를 시행할 것을 목표로 잡고 구체적인 CBAM의 설계도를 만들기 위해 주요 이해당사자들과 지속적으로 논의를 해왔다. 2020년 3월 4일부터 4월 1일까지 도입영향평가를 시행하였고, 7월 22일부터 10월 28일까지는 설문조사를 포함한 공공협의를 거쳐 외부의 의견을 수렴하였다. 공공협의에서 EU가 배포한 설문지에는 CBAM의 설계에 대한 EU의 고민이 담겨 있는데, 그 주요 내용은 이하의 표와 같다.   EU 공공협의 설문지의 주요 내용 *자료: European Commission. 2020.의 설문지 내용을 저자가 표로 정리. 공공협의 설문지를 통해 드러나는바, EU가 가장 고심한 부분은 국제통상규칙, 특히 세계무역기구(World Trade Organization, WTO) 관세·무역일반협정(The General Agreement on Tariffs and Trade, GATT) 규정과의 합치성이라고 할 수 있다. GATT 2조 2(a)항에서는 국경세조정을 인정하고 있으나, 이는 기존에 내국세로 이미 자국에 부여하고 있는 비용을 수입품에도 적용하는 경우를 보통 지칭한다. 따라서 소비세 또는 부가가치세의 형태로 탄소세를 시행하여 국산품과 수입품에 모두 동일한 세금을 부과한다면 이는 WTO 규정에 합치된다. 하지만 현재 EU는 개별 회원국 차원에서만 서로 다른 형태의 탄소세를 시행 중이며(현재 14개국 시행), EU 27개국 전체에 적용되는 “EU 탄소세”를 법안으로 제정하기 위해서는 27개 회원국의 만장일치가 필요하다. 따라서 탄소세 형태의 CBAM은 단기적으로는 도입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만약 관세 형태로 CBAM을 설계한다면, GATT 2조 1(b)항 양허표에서 규정한 관세율을 초과하여 부과하는 수입관세가 되어 국제통상규칙을 위반할 여지가 있다. 탄소세와 관세의 선택지 모두 도입이 어려우니, EU가 구상한 새로운 방식은 EU-ETS의 활용이다. EU-ETS 법인 EU Rirective/2009/29/EC 제10b조 1(b)항에는 EU-ETS를 수입품에 적용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어서, 따로 근거 규정을 신설할 필요가 없기에 도입이 용이하며, EU-ETS에 의해 역내 기업에 부과하는 탄소비용을 해외에도 동일하게 적용한다는 명분이 성립되니 WTO 내국민대우 원칙에도 부합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상품에 세금을 부과하기만 하면 되는 관세나 탄소세와는 달리, ETS는 대단히 복잡한 설계를 필요로 하며 높은 행정비용이 들어간다. 대상 업체의 선정, 탄소배출 허용총량의 산정, 배출권 할당방식의 결정, 이월·차입·상쇄배출권 등 세부선택지의 채택 등을 시작부터 정교하게 설계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EU-ETS를 바로 해외 기업에 확장하여 적용하는 것은 높은 비용과 운영의 어려움을 초래하므로, 해외의 수출업자를 대상으로 하는 특정 저장고를 EU-ETS 외부에 따로 설치하여 EU-ETS 탄소배출권 가격에 연동하는 비용을 지불하도록 하는 관념적(notional) ETS가 더 시행이 용이한 선택지라고 할 수 있다(김성진 외, 2021, pp.38-39). 다만 EU-ETS 활용 형태의 선택지는 한 가지 큰 문제를 안고 있다. EU-ETS 4기(2021~2030)에서도 여전히 배출권을 100% 무상할당 받는 업종들의 명단인 탄소누출목록(carbon leakage list)의 존재이다. 탄소비용을 높일 경우 해외로 생산기지를 이전하는 탄소누출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업종들은 탄소누출목록에 포함되어 탄소배출권을 100% 무상할당 받는다. 여기에는 철강, 시멘트, 정유, 비료, 석유화학 등 탄소집약도가 높은 대부분의 업종이 포함되어 있으며, EU 산업 부문(발전 업종 제외) 온실가스 배출량의 94%를 차지한다(European Commission, “Carbon leakage”). 탄소배출의 주를 이루는 산업군에 대한 배출권 무상할당을 유지하면서 수입품에 대해서는 배출권에 상응하는 비용을 부과한다면, 이는 WTO 내국민대우 위반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유럽위원회 역시 이를 인지하고 탄소누출목록 무상할당의 점진적 폐지를 주장해 왔으나, 유럽의회 및 EU이사회는 역내 산업군의 무상할당이 폐지될 경우 산업경쟁력의 큰 상실을 우려하여 이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탄소누출목록 업종에 대한 무상할당의 점진적 폐지와 탄소국경조정의 도입은 유럽 그린딜 이전인 EU-ETS 3기(2013~2020) 개선안 논의 때부터 이미 세 차례에 걸쳐 유럽위원회에 의해 제시된 바 있으나, 유럽의회는 보호무역주의의 위험과 EU 역내 산업군의 국제경쟁력 상실을 우려하여 이를 기각시켰다. 2021년 3월에도 유럽의회는 CBAM의 도입을 찬성하되, 무상할당제의 점진적 폐지에 대해서는 반대한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표명하였다(김성진 외, 2021, p.12). 형태 이외에도 적용 대상 제품의 선정, 예외 적용대상의 선정, 온실가스 측정 방법론 등과 관련하여, EU는 설문지에서 많은 선택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를 통해, 국제통상규칙의 위반을 피하고, EU 산업경쟁력 및 수입원의 증대라는 이익보다 전지구적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대의를 더 부각시키고자, CBAM의 설계를 다각도에서 고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 EU CBAM 법안의 내용 2021년 7월 14일, 유럽위원회가 CBAM 법안을 발표했다. 제시된 법안은 국제통상규칙과의 합치성, 탄소배출권 무상할당 폐지를 둘러싼 EU 내부의 갈등, 세계 주요국들의 반발 등을 포괄적으로 고려하여 비교적 완화된 형태로 설계된 것으로 보인다. 주요 내용을 정리하면 이하의 표와 같다.   EU CBAM 법안의 주요 내용 *자료: European Commission. 2021b.의 내용을 저자가 표로 정리. 첫째, 2023년으로 예정되었던 도입 일정은 2026년으로 연기되었다. 대신 2023~2025년 기간은 시범 적용의 형태로 시행하며, 어떠한 비용 부과도 없이 수입품의 탄소함유량 등에 대한 상세정보 제출만을 요청하기로 하였다. 둘째, 앞에서 추론한 바와 같이 형태는 관념적 ETS로 결정되었으며, EU 시장에 수출하고자 하는 업자는 EU-ETS 배출권의 주간 평균 경매가격(유로/CO₂톤)에 연동되는 “EU 인증서(Certificate)”를 구입하도록 규정했다. 원산지에서 생산제품의 탄소비용을 이미 지불했다는 것을 제3자 공증을 통해 증명하면 EU 인증서 구입 비용에서 해당 비용을 공제하기로 하였으며(제2장), 가장 큰 문제가 되었던 EU-ETS 4기 탄소누출목록 업종들의 무상할당 혜택은 수입제품에도 동일하게 적용하기로 하였다(제9장). 또한, 유럽위원회는 2026년부터 EU-ETS에서 10%p씩 무상할당의 비율을 줄여서, 2035년부터는 100% 유상할당이 되도록 법안을 설계하였다. CBAM 수입원은 개별 회원국에게 배분하거나 기후변화 취약국에게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EU의 예산으로 귀속된다. 셋째, 제품은 시멘트, 전기, 비료, 강철/철강, 알루미늄의 다섯 가지에 한정하였으며(부속서 1), 2026년 이후부터는 점진적으로 대상 제품을 확대할 것이 발표되었다. 대상이 되는 온실가스는 대부분 CO₂인데, 비료에서는 N₂O가, 알루미늄에서는 PFCs가 포함되었다. 넷째, CBAM 적용을 면제받는 국가 및 영토는 EU-ETS에 참여하거나 제도적으로 연계된 곳에 한정되었다. 이에는 아이슬란드, 리히텐슈타인, 노르웨이, 스위스, 5개 EU 영토(뷔징겐, 헬골란트, 리비뇨, 세우타, 멜리야)가 해당된다(부속서 2). 최빈개도국에 대한 면제는 법안에 규정되어 있지 않다. 다섯째, 제품에 내재된 탄소배출량은 제품의 귀속 배출량을 제품의 활동수준으로 나누는 방식으로 산정한다(부속서 3). 배출량 생산공정으로 인해 설비에서 발생한 직접배출(영역 1)과 동법 제7조 6항에서 정의한 해당 공정의 시스템경계에서 발생한 기타 간접배출(영역 3)을 대상으로 측정하며, 간접배출(영역 2) 및 전주기 탄소발자국은 2026년 도입 여부를 추후에 평가한다. 배출량 측정은 ①생산국 사업장의 실질 배출량, ②생산국 동종제품의 평균 탄소집약도, ③EU 동종제품 중 배출량 상위 10%의 평균 탄소집약도의 순으로 기준을 삼는다. CBAM 법안이 비교적 완화된 형태로 발표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탄소배출량 산정에서 간접배출을 제외했다는 점이다. 온실가스 배출원은 크게 세 개의 영역으로 구분하는데, 영역 1인 직접배출은 제품 생산과정에서 고정연소, 이동연소, 공정배출, 탈루배출 등에 따른 배출량을 의미한다. 영역 2인 간접 배출은 외부에서 구입하여 사용하는 전기, 열, 스팀의 생산과정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를, 영역 3인 기타 간접배출은 영역 2의 간접 배출원을 제외한 그 밖의 간접 배출원(아웃소싱, 종업원 이동, 유통, 원재료 등)에서 비롯된 온실가스를 지칭한다(최성운, 2009, pp.64-65). 이 중 영역 2인 전기·열의 생산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CBAM 탄소배출량 산정에서 일단 제외함으로써, 화석연료를 통한 전기·열 생산과정에서 배출되는 막대한 양의 온실가스에 적절한 탄소비용을 부과하지 않게 된 셈이다. 물론 2026년 이후 간접배출 및 전주기 탄소발자국을 측정방법론으로 삼을 수 있다는 점을 밝힘으로써, EU의 목표와 방향성을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이다.   4. 세계 주요국의 반응과 한국에의 정책적 시사점 EU를 필두로 한 세계적인 탄소국경조정의 도입은, 탄소집약적 산업군의 흐름과 구도를 완전히 바꿔놓을 가능성이 높다. 예컨대, EU에서 철강산업에 대한 CBAM을 도입하면 지금까지 저렴하게 사용해 오던 수입산 철강제품의 가격이 상승하여 EU 내 철강산업계는 가격경쟁력을 지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저렴한 수입산 철강을 재료로 사용해오던 EU의 자동차업계, 기계업계 등은 구입비용의 상승으로 인해 생산비가 올라가는 상황에 직면하여 가격경쟁력을 상실할 수 있다. 한편, 수출국(A국) 쪽에서 생각해보면, EU에 판매하는 철강제품의 가격이 상승하게 되니 탄소국경조정이 없는 다른 시장(“오염피난처”)인 B국을 새로운 판매처로 개척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경우 B국에 저렴하게 공급되는 A국 철강제품으로 인해, A국에서는 철강 공급과잉 및 가격하락이 발생하게 되어 A국 철강기업들은 경쟁력을 상실할 수 있다. 이것은 하나의 산업으로 간략히 생각해 본 예일 뿐이며, 다양한 산업군에 탄소국경조정이 도입되면 각각의 산업군에 나타날 영향은 짐작하기 어려운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보스턴컨설팅그룹에서는 EU CBAM이 세계 무역에 미칠 영향을 추산한 보고서를 발간한 바 있다(Aylor et. al. 2020). 동 보고서에서는 향후 각 국이 생산하는 제품의 탄소집약도에 따라 산업경쟁력의 우위가 재편될 것이라고 예상하면서, 탄소효율적인 제품이 가격경쟁력을 획득할 것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예를 들어 철강 산업의 경우, 중국과 우크라이나는 다른 나라에 비해 철강제품의 탄소집약도가 높아서 더 높은 탄소비용을 물게 것으로 예상되며, 러시아와 한국의 철강제품은 중국과 우크라이나에 비해 탄소효율이 더 높기 때문에 경쟁력을 지니지만, 터키, 미국, 인도, 캐나다에 비해 탄소집약도 면에서 불리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석유의 경우에는, 탄소집약도가 매우 높은 캐나다산은 경쟁력을 잃게 되며, 이라크, 미국, 러시아에 비해 탄소효율이 더 높은 사우디아라비아산 석유가 경쟁력을 확보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추세가 국제규칙으로 확립된다면, 결국 모든 산업군에서 탄소집약도를 낮출 수밖에 없을 것이며, 탄소집약도와 무역집약도를 고려할 때 세계적으로 이에 가장 큰 영향을 받을 산업군은 철강, 화학제품, 원유, 채광 및 채석, 기초금속, 펄프·제지 등이 될 것이다. 탄소집약적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를 지녀 온실가스를 다량 배출하는 중국, 인도 등의 개도국들은 이전부터 탄소국경조정 조치의 도입에 민감한 반응을 보여 왔다. EU와 미국에서 2007년부터 탄소국경조정 도입의 움직임이 시작되고, 2009년 덴마크 코펜하겐 UNFCCC 제15차 당사국총회에서 교토의정서를 대체할 구속력 있는 합의를 도출하지 못하자, 국제사회에서는 서구 선진국에서 탄소국경조정을 도입할 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온실가스 배출 규제가 더 느슨한 국가에서 수입되는 상품에 관세 또는 다른 형태의 탄소국경조정 조치가 부과될 것이라는 예상이 팽배했던 것이다. 이에 대해 인도 환경부장관 라메시(Jairam Ramesh)는, 서구에서 탄소국경조정이 시행되면 인도는 이 문제를 WTO 분쟁해결기구로 가져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WTO 규정에 부합되지 않으며, BASIC(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인도, 중국) 국가들은 연합하여 끝까지 싸우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것이다(Kulkarni, 2010). 이후 2010년 멕시코 칸쿤에서 열린 제16차 UNFCCC 당사국총회에서 주요 개도국들은 “기후변화를 근거로 하는 어떤 일방주의적 무역조치 또는 무역 보호주의도 채택되지 못한다는 점을 확실히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다시금 강조하였다(Earth Negotiations Bulletin, 2010). 국가 수출품 중 64%가 석유, 천연가스 등의 에너지원이며, EU에 무려 43.1%라는 무역의존도를 지녀서(최진형 2020) CBAM에 가장 큰 영향을 받게 될 국가인 러시아 역시 강력한 반대의견을 표명했는데, 경제개발부장관 레셴트니코프(Maxim Reshetnikov)는 이것이 기후의제를 이용한 새로운 무역장벽이며, WTO 규정에 위반되는 조치임을 강조하였다(Morgan, 2020). 탄소국경조정 도입에 따라 가장 큰 경제적 손해를 입을 것으로 예상되는 국가 중 하나인 중국 역시 강력한 반대의사를 표명해오고 있다. 온실가스 누적배출량으로 볼 때 기후변화에 대한 선진국의 역사적 책임이 개도국에 비해 훨씬 더 크며, 이는 UNFCCC에서 국제사회가 합의한 사실임을 강조한다. 선진국이 개도국에 대해 오히려 책임과 비용을 전가하는 것은 형평성과 정의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또한 EU가 탄소국경조정의 대상으로 삼는 개도국들은 대부분 기후변화 적응을 위해 선진국으로부터 재정적·기술적 지원을 받아야 하는 국가이지 선진국에 탄소관세를 추가로 더 내야 하는 국가가 아니며, 어디까지나 오염자부담원칙 하에서 개도국의 저탄소 발전이 추구되어야 한다는 것이 개도국을 대표하는 중국의 반론이다(Sung, 2016). 이는 산업과 무역 영역에서의 경쟁력 사안을 넘어, 국제기후레짐에서 발전시켜 온 형평성 원칙을 근거로 삼는 주장이기에 향후 큰 파급력이 예상된다. 미국의 반응은 찬성과 유보가 섞인 복합적인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미국에서도 2007년 이래 미국청정에너지·안보법(“왁스먼-마키법”) 등 다양한 법안을 통해 탄소국경조정을 법제화하려는 노력이 존재했으나, 의회를 통과하여 법제화된 적은 없다. 2021년 바이든(Joe Biden)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탄소국경조정 도입 논의가 미국에서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는 바이든이 대선 공약에서 기후환경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국가의 탄소집약적 상품에 대해 탄소조정료(carbon adjustment fees) 또는 할당량(quotas)을 부과할 것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바이든 취임 직후인 2021년 3월 1일, 미국 무역대표부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탄소국경조정의 도입 고려를 바이든 정부의 2021년 무역정책 의제 중 하나로 명시한 바 있다. 하지만 연방 차원의 탄소가격제(탄소세,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를 시행할 법적 근거를 갖추지 못한 미국의 현 상황에서는 탄소국경조정의 단기적인 도입이 어려우며, 그에 따라 EU의 빠른 행보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는 상황이다(Hook, 2021). 이러한 미국의 국내 사정에 더해서, 기후 리더십의 회복과 국제공조의 강화를 목표로 하는 미국으로서는 파리기후체제가 출범하자마자 EU CBAM을 둘러싸고 선진국 대 개도국 갈등이 불거질 수 있는 가능성을 고려하여, EU CBAM의 빠른 도입에 반대하며 속도를 조절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한국은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하지는 않고 있으나, 전지구적 기후변화 대응의 강화라는 대의에는 찬성하되, 국가의 산업경쟁력에 직접적인 피해를 줄 수 있는 CBAM을 국제사회의 동의 없이 일방적인 방식으로 조속히 도입하는 것에는 반대하는 입장을 지닌 것으로 판단된다. 화석연료 비중이 높은 전기 생산구조를 지닌 한국으로서는, 2023년부터 간접배출량에 높은 탄소비용이 부과되는 것을 특히 우려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적어도 2025년까지는 직접배출과 원자재 기타 간접배출만 탄소함유량 측정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 그리고 원산지에서 생산제품의 적절한 탄소비용을 지불하면 CBAM 인증서 구입요금을 공제받는다는 사실은 한국에게 중요한 기회로 인식될 필요가 있다. 예상보다 완화된 탄소국경조정이 시행되는 동안 한국은 국익을 최대한 증진하는 방향으로 국제사회에서의 협상에 임하면서, 국내적으로는 화석연료 중심의 발전구조에서 최대한 탈피하는 에너지 전환과, 탄소집약적 산업(철강, 석유화학, 시멘트, 정유, 반도체, 디스플레이, 제지 등)의 온실가스 원단위를 최대한 낮추는 산업 부문 저탄소 전환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이에 더하여, CBAM이 향후 간접배출뿐 아니라 탄소발자국에까지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국가 차원에서 탄소정보체계를 고도화하는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EU 및 세계 기준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국내 탄소발자국 정보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확충하고, 이를 공신력 있는 플랫폼에 등록하는 등의 체계적 운영·관리를 해야 할 것이다. 기후변화의 위험이 점점 더 높아지는 현 상황 속에서, 한국은 탄소중립이라는 분명한 방향으로 나아가며,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대내·외적 위기에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는 실력을 시급히 축적해야 할 시기이다. 김성진 외. 2021. 『해외 탄소국경조정 동향 분석 및 대응방안 연구.』 환경부 수탁과제 보고서. 세종: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최성운. 2009. “온실가스 배출량 인벤토리의 이해.” 한국에너지공단 에너지 기후변화 기획특집. 최진형. 2020. “2020년 러시아 통상정책 및 방향 전망.” 『KOTRA 해외시장뉴스』 (2월 3일). https://news.kotra.or.kr/user/globalBbs/kotranews/5/globalBbsDataView.do?setIdx=244&dataIdx=180009 (검색일: 2021. 7. 15.). Aylor, Ben, Marc Gilbert, Nikolaus Lang, Michael McAdoo, Johan Öberg, Cornelius Pieper, Bas Sudmeijer, and Nicole Voigt. 2020. “How an EU Carbon Border Tax Could Jolt World Trade.” Boston Consulting Group Publication. https://www.bcg.com/en-au/publications/2020/how-an-eu-carbon-border-tax-could-jolt-world-trade (검색일: 2021. 7. 15.). Earth Negotiations Bulletin. 2010. “Report of Main Proceedings for 6 December 2010.” https://enb.iisd.org/events/cancun-climate-change-conference-november-2010/report-main-proceedings-6-december-2010 (검색일: 2021. 7. 15.). European Commission. “Carbon Leakage.” https://ec.europa.eu/clima/policies/ets/allowances/leakage_en (검색일: 2021. 7. 15.). European Commission. 2019. “The European Green Deal.” (December 11). https://eur-lex.europa.eu/legal-content/EN/TXT/?qid=1588580774040&uri=CELEX:52019DC0640 (검색일: 2021. 7. 15.). European Commissin. 2020. “EU Green Deal (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 https://ec.europa.eu/info/law/better-regulation/have-your-say/initiatives/12228-Carbon-Border-Adjustment-Mechanism/public-consultation_en (검색일: 2021. 7. 15.). European Commission. 2021a. “European Green Deal: Commission Proposes Transformation of EU Economy and Society to Meet Climate Ambitions.” (July 14). https://ec.europa.eu/commission/presscorner/detail/en/ip_21_3541?fbclid=IwAR308jLSVnixBipVbT4lbCOMMXybcLKDBsnqG4838NJVCIbd_iohPMDhbpI (검색일: 2021. 7. 15.). European Commission. 2021b. “Proposal for a Regulation of the European Parliament and of the Council Establishing a 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 (July 14). Hook, Leslie. 2021. “John Kerry Warns EU against Carbon Border Tax.” Financial Times (March 12). https://www.ft.com/content/3d00d3c8-202d-4765-b0ae-e2b212bbca98 (검색일: 2021. 7. 15.). Kulkarni, Vishwanath. 2010. “India Threatens to Move WTO on Carbon Tax Issue.” Business Line (March 29). https://www.thehindubusinessline.com/todays-paper/India-threatens-to-move-WTO-on-carbon-tax-issue/article20047257.ece (검색일: 2021. 7. 15.). Morgan, Sam. 2020. “Moscow Cries Foul over EU’s Planned Carbon Border Tax.” EURACTIV (July 27). https://www.euractiv.com/section/economy-jobs/news/moscow-cries-foul-over-eus-planned-carbon-border-tax/ (검색일: 2021. 7. 15.). Sung, Shufan. 2016. “Border Tax Adjustments and Developing Countries: A perspective from China.” Annual Survey of International & Comparative Law 21(1). 기획:  임해용 연구위원 편집: 우장민 연구보조원 저자소개 김성진 박사는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의 부연구위원으로, 고려대 에너지·환경대학원(그린스쿨) 연구교수와 한양대 에너지거버넌스센터 연구원을 지냈다. 서울대학교 외교학과(현 정치외교학부)에서 학사, 석사, 박사를 취득했으며, 외교학 박사논문은 “기후변화와 국가 대응의 정치학: 영국, 미국, 한국의 교토의정서 대응정책 비교”이다. 주요 연구분야는 지구환경정치, 기후·환경외교, 무역과 환경 등이다. 주요 논문으로는 “파리기후체제는 효과적으로 작동할 것인가? (『국제정치논총』, 2016)”, “REDD+ 설립을 위한 중견국 기후-산림외교 연구 (『정치·정보연구』, 2019)” 등이 있다.
  • [JPI PeaceNet]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이 한국에 주는 함의: 갈등 해결에서 관리로
    저자
    성일광(서강대학교 유로메나연구소 연구교수)
    발간호
    2021-12
    기획자 註 2020년 9월, 미국의 중재 아래 아랍에미리트, 바레인, 이스라엘이 아브라함 협정에 서명함으로써 중동은 평화를 향해 한 발짝 나아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2021년 5월, 이스라엘과 하마스 사이에 무력충돌이 발생하면서 중동에는 여전히 갈등의 씨앗이 남아 있으며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갈 길이 멀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드러났다. 이스라엘과 아랍국가들, 팔레스타인 사이의 갈등이 이토록 해결하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인가? 중동에서의 이러한 갈등양상이 한국의 외교정책에 주는 함의는 무엇인가? JPI PeaceNet은 서강대 유로메나 연구소 성일광 교수님의 기고문을 통해 중동 갈등의 기원, 갈등의 전개 과정, 이스라엘과 중동국가들 및 팔레스타인 간의 평화협상 과정과 그 결과, 그리고 이 모든 과정과 결과가 한국에 주는 사시점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편집: 정승철 연구위원(scchung@jpi.or.kr)]  서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은 1882년부터 시작된 유대인의 팔레스타인 지역으로의 대규모 이주에서 출발한다. 시온주의에 영감을 얻은 전 세계 유대인들이 ‘약속의 땅(?)’으로 몰려들면서 이미 이 지역에 거주하던 아랍인들과의 충돌은 불가피했다. 유대인들의 이주는 단순히 아랍인들의 땅을 무력으로 강탈했다는 오해가 있는데 대부분은 아랍인 지주들에게 웃돈을 주고 유대인과 유대인 재단이 매입한 것이다. 유대인과 아랍인 양측 간의 무력충돌이 심해지면서 골치를 앓던 영국은 1937년 필위원회(Peel comission)를 구성하고 해결책을 모색했다. 필위원회는 유대인 국가와 팔레스타인 국가로 나누는 분할안을 제안했고 아랍인들은 단번에 거절했지만 유대인은 논의가 필요하다며 여지를 남겼다. 1947년 UN 역시 팔레스타인 땅을 유대인 국가와 팔레스타인 국가로 나눠 2개 국가를 세우는 해법안을 제안했다. 유대인은 분할안을 수용했지만 아랍인은 거부했고 결국, 1948년 유대인들은 일방적인 독립 국가를 선언하고 이집트, 트랜스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은 일제히 이스라엘을 공격하면서 제1차 중동전쟁이 발발했다. 아쉽게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두 차례의 기회를 놓친 것이다. 역사엔 만약이 없다지만 1947년 양측이 진지한 협상을 통해 분할안을 수용했다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은 해결되거나 지금과 같이 만성화된 갈등으로 남진 않았을 것이다. 되돌아보면 초기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이었지만 주변 아랍국가가 팔레스타인 측을 돕겠다며 전쟁에 동참하면서 이스라엘-아랍 분쟁으로 확대됐다. 아랍세계는 이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에서 한 발짝 벗어나려 한다. 그 첫걸음이 바로 작년 이스라엘과 UAE, 바레인이 맺은 관계 정상화 합의이다. 아니 아랍국가의 정상화는 이미 1973년 제4차 중동전쟁 이후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이스라엘은 1979년 이집트와 1994년 요르단과 각각 평화협정을 맺었기 때문이다. 아랍세계는 지금까지 약 70년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 해결을 위해 직접 참전해 피를 흘렸고 평화협상을 중재하기도 했으며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를 지원하는 등 다양한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해결책은 여전히 요원한 상황에서 아랍세계는 이제 지쳐 보인다. 한편으로는 팔레스타인 문제의 효용성이 과거만 못하기 때문에 아랍세계의 관심이 떠난 것이다. 이제 더는 정권의 안위를 위한 정당성 확보를 위해 팔레스타인 민족을 지지하거나 지원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아랍세계의 대오각성은 맑스주의 정치학자이며 역사학자인 베네딕트 앤더슨(Benedict Anderson)이 언명한 “상상의 공동체” 개념에서 잘 드러난다. 아랍세계는 공통의 언어, 역사와 문화에 기반한 아랍 민족주의이건 사회주의에 기반한 아랍 사회주의이건 간에 ‘가공의 이데올로기’는 더는 사회를 이끌 원동력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가 성급히 샴페인을 터트리며 이데올로기의 시대가 끝났다며 선언한 “역사의 종언”이 적어도 아랍세계에서 통한다고나 할까. 아랍세계는 자국 중심의 합종연횡이 이뤄줬으며 걸프 아랍국가는 화석연료 경제에서 탈피하기 위한 산업 다각화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4개 아랍국가가 이스라엘과 관계 정상화를 했다는 사실이 아랍세계의 이데올로기 시대의 종언을 방증한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의 해결을 의미하는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에 집착하기보다는 현 상황에서 양측이 평화롭게 공존할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으로 보인다. 왜 갈등 해결이 더 어려워졌고 해결보다는 관리가 차선책이 될 수 밖에 없을까. 갈등의 변곡점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이었다. 만약 이스라엘이 전쟁 종결 이후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 지구를 요르단과 이집트에 반환했다면 팔레스타인 문제는 존재하지 않거나 지금보다 훨씬 나은 상황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요르단강 서안과 동예루살렘이 전쟁 이전과 같이 요르단의 영토로 남아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요르단화가 진행됐다면 요르단의 국민으로 살아갔을 것이다. 가자 지구는 이집트군 통치가 이어져 하마스와 같은 이슬람 급진주의 단체가 크게 성장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요르단이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그 대가로 요르단강 서안을 돌려주겠다는 이스라엘의 꼼수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았다. 더 큰 문제는 단순히 요르단강 서안과 동예루살렘을 차지했을 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이 이 지역에 거주하도록 정부가 승인했다는 것이다. 초기 소수의 유대인이 정착하기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숫자는 점차 불어나 요르단강 서안에 무려 50만명, 동예루살렘에 약 20만명이 거주한다. 국제법상 점령지에 자국 인구를 이주시키거나 거주지 원주민 인구의 변화를 가져오는 정책은 금지되어 있다. 이스라엘의 영토 차지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을 증폭시켰으며 아랍세계와의 관계도 악화시킨 주범이었다. 1차 인티파다 폭발과 파급효과 1987년 시작된 팔레스타인 무장봉기 인티파다는 이스라엘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주민을 효과적으로 통제 가능하다고 믿었고 많은 수의 주민이 조직적인 저항을 감행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더 그렇다. 인티파다의 목적은 팔레스타인의 자결권과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이었다. 이스라엘은 대응법을 놓고 의견이 갈렸다. 첫째는 정치적 해법을 통해 PLO와 협상해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를 건설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반면 두 번째 주장은 강경책으로 영토 타협은 안 된다는 것이다. 시몬 페레스 외무장관은 정치적 해법으로 먼저 가자 지구에서 정착촌을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이츠하크 라빈 국방장관은 강경 진압을 주장했다. 이츠하크 샤미르 총리는 팔레스타인 국가는 이스라엘의 생존을 위협한다는 이유로 강경진압, 정치범 추방, 정치적 암살, 억류, 통금, 경제 제재, 학원 폐쇄, 지역 시설 파괴 등의 정책으로 몰아붙였다. 인티파다는 UN뿐만 아니라 국제사회가 이스라엘 비판에 열을 올리게 했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미국의 대이스라엘 정책이 바뀐 것이다. 1988년 미국이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를 합법적 협상 상대로 인정했으며 미국여론도 친이스라엘에서 친팔레스타인으로 많은 이동이 발생했다. 인티파다로 손해를 본 국가는 요르단과 이스라엘이다. 1988년 7월 31일 후세인 요르단 국왕은 요르단강 서안에 대한 요르단의 법적·행정 구속력을 포기한다고 선언했다. 요르단은 이스라엘의 서안지구 점령 이후에도 서안지구 공무원 3분의 1의 임금을 지급해 왔지만 이제 중단하겠다고 한 것이다. 대신 이스트 뱅크 (요르단강 동안)는 요르단의 영토임을 확실히 했다. 후세인의 서안 포기 선언은 PLO 입지 강화와 이스라엘 중도좌파 연합 세력이 추구해온 ‘요르단 옵션’의 종결을 의미했다. 요르단 옵션은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 지구를 요르단에 통합시켜 정치 경제 연합체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결국 이스라엘 단독으로 PLO와 문제 해결해야 하는 새로운 결과를 낳았다. 또 다른 중요한 결과는 하마스라는 이슬람주의 팔레스타인 민족주의 단체의 창설을 불러왔다. 하마스에 대한 초기 이스라엘 대응은 “분할통치(divide and rule)”전략으로 온건파 팔레스타인 정파 파타흐(Fatah)에 대항하는 하마스의 활동을 제한하지 않았지만, 하마스가 과격화되면서 창설자 아흐마드 야신을 투옥시켰다. 하마스는 1993년 오슬로 협정 체결 이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화해과정을 방해하기 위해 1994년부터 자살 폭탄 테러를 시작했다. 야세르 아라파트(Yasser Arafat) PLO 의장은 1988년 11월 알제리 팔레스타인 민족의회(PNC) 회의에서 이스라엘 국가의 정당성을 인정하고 두 국가 해결안을 제시한 1947년 11월 29일 UN의 팔레스타인 분할 결의안을 수용했다. 또한 1967년 제3차 중동전쟁과 1973년 제4차 중동전쟁 이후 UN 안전보장이사회가 합의한 결의안 242호, 338호를 수용하겠다고 했다. 결국, 아라파트는 팔레스타인 영토 전체가 아닌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이전 국경으로 이스라엘이 철수하면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 지구에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 건설을 세우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이스라엘 반응은 냉담했다.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평화협상을 중재하고자 했으나 이츠하크 샤미르 총리는 반대했다. 반면 이츠하크 라빈 국장 장관은 기존의 강경 자세에서 협상으로 선회하고 단계적 해법을 제안했다. 1991년 소련의 붕괴가 완료되면서 국제정치뿐만 아니라 중동정치 지형도 큰 변화를 경험했다. 양극 체제에서 미국 중심의 단극체제로 바뀌면서 미국에 유리한 국제환경이 조성됐다. 소련의 지원을 받던 하페즈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의 입지가 약화했고 미국이 중재한 마드리드 중동평화 회담 참여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또 사담 후세인 대통령의 쿠웨이트 침공 이후 발생한 걸프 전쟁 역시 역내 정치 구도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요르단 후세인 국왕은 사담 후세인을 감싸는 발언으로 서방세계의 분노를 산 만큼 마드리드 회의에 동참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아라파트 의장도 사담 후세인을 지지한다고 선언하면서 외교적 고립을 자초해 마드리드 협상에 참여하라는 미국의 압박을 거부할 수 없었다. 샤미르 총리 역시 마드리드 회담을 원치 않았으나 미국의 대이스라엘 담보 대출 100억 달러를 동결시키자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 마드리드 회담은 최종 평화안을 도출하지 못했지만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이 단계적 접근법으로 잠정협정도 가능하다는 합의에 이르렀다. 1988년 후세인 국왕의 서안 포기 선언으로 수면으로 가라앉았던 서안과 요르단을 통합하는 연방체 구성안이 다시 논의됐다. 마드리드 회담의 가장 큰 성과는 2년 후 오슬로 협정으로 가는 가교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오슬로 협정과 희망 고문 이스라엘이 PLO와 직접협상에 임한 것은 이스라엘 외교사에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1993년 오슬로 협정이 체결되기 전 양측 대표는 오슬로에서 비밀리에 약 1년간 직접협상을 진행했다. 오슬로 협정이란 역사적인 사건의 주인공은 라빈 총리, 페레스 외무장관, 요시 베일린 등이 직접협상을 주도했다. 팔레스타인 측에서는 야세르 아라파트 의장이 협상을 지원했고 아부 알라(아흐메드 꾸레이)가 협상대표로 참여했다.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을 인정하는 대신 자신들의 자결권을 인정하라는 기존 입장에서 물러나 최종결과에 대한 합의 없이 잠정협정을 시도했다. 페레스는 이스라엘이 먼저 가자 지구를 철수하겠다고 제안했지만 아라파트는 가자지구와 여리고까지 철수하라고 역제안했다. 라빈은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팔레스타인과의 협상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보았고 결국 아라파트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음을 깨달았다. 협정 체결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와 여리고에서 철수하고 팔레스타인 경찰이 내부치안을 담당하고 이스라엘은 외부 치안을 담당했다. 요르단강 서안의 5개 분야 교육, 의료, 사회복지, 조세와 관광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이양했다. 오슬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이 공존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준게 사실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행이 늦어졌고 요르단강 서안의 정착촌은 증가했으며 동예루살렘의 팔레스타인 주민의 경제 상황은 더 악화했다. 말 그대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양측 모두에게 희망 고문의 시기였다. 2차 인티파다와 오슬로의 폐기 오슬로 협정의 골자는 5년간의 팔레스타인 자치 기간이 끝나면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오슬로 협정은 혁명적인 합의였지만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상의 가장 어려운 사안은 추후 협상키로 하고 논의를 미뤘다는 약점을 내포하고 있었다. 갈등의 핵으로 남아 있는 의제는 바로 예루살렘 지위, 요르단강 서안 정착촌, 국경확정과 난민 등이다. 오슬로가 이행되지 못한 이유는 많이 있지만 가장 결정적인 것을 꼽으라면 협정을 이끌었던 이츠하크 라빈 총리가 암살당한 것이다. 1995년 라빈은 팔레스타인과 평화협정을 체결했다는 이유로 극우파 유대교인 청년의 총탄에 쓰러졌다. 라빈 총리 암살은 이스라엘 사회의 분열상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극우파들은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을 막기 위해 총리 암살도 서슴지 않으며 성서에 등장하는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 지구에 대한 광신적인 애착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1997년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헤브론 협정’(Hebron agreement)을 통해 팔레스타인 서안 도시 헤브론 80% 지역에서 철수하기로 합의했다. 1998년 다시 서안지구 11%에서 철수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게 넘기겠다고 약속하는 ‘와이리버 각서’(Wye River Memorandum)에 합의했지만 그를 지지하던 유대교 정당이 반발하면서 결국 연립정부가 붕괴되고 말았다. 네타냐후는 팔레스타인과의 화해는 실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뼈아픈 교훈을 얻었고 2009년 다시 총리직에 오른 후에는 강경책으로 일관했다. 네타냐후 총리도 적극적인 평화협상에 임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지만 그를 이어 총리직에 오른 에후드 바라크의 평화협상 실패가 오슬로의 폐기를 앞당긴 결정적인 이유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총리 선거 캠페인에서 아라파트 의장과 단번에 협상을 마무리하겠다고 큰소리쳤지만 별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홍해 휴양도시 샤름 앗셰이크와 미국 대통령 별장 캠프 데이빗에서 협상을 이어갔지만 결국 2000년 마지막 협상이 실패한 이후 제2차 인티파다 발생했다. 평화협상 실패로 실망한 팔레스타인 국민감정에 기름을 부은 사건은 아리엘 샤론이 성전산에 출입한 것이다. 이 사건으로 2차 인티파다는 ‘알아끄사 인티파다’라는 예명이 붙었고 팔레스타인 무장단체가 동참하면서 사망자는 급증했다. 팔레스타인 지역 주민 298명, 이스라엘 내 아랍인 13명과 이스라엘 시민도 43명이 사망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꺼져가는 희망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최종지위 문제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피력해 발표한 것이 바로 ‘클린턴 초안(Clinton parameters)’이다. ‘클린턴 초안’의 핵심은 “예루살렘을 위한 난민 귀환권 포기”로 팔레스타인 측은 일부 극소수 외에는 팔레스타인 난민의 이스라엘 내 귀환을 포기하는 대신 팔레스타인 지역으로의 귀환을 허용하고 예루살렘의 주요 지역을 얻는 것이다. 예컨대 팔레스타인 측은 동예루살렘, 예루살렘 구(舊)시가지 아랍지역 통치권과 하람 앗샤리프(성전산)의 주권을 얻지만 이스라엘은 구시가지 유대인 지역과 통곡의 벽의 관할권을 얻는다. 요르단강 서안지역의 97%를 팔레스타인 측이 돌려받고 나머지 3%는 이스라엘이 보전해 주는 대신 요르단강 서안 소재 이스라엘 정착촌 80%는 이스라엘 주권 하에 남게 된다. 바라크 이스라엘 총리와 아라파트 의장은 큰 틀에서 이 초안을 수용했지만 일부 사안에 대해서는 여전히 수정을 요구했다. 클린턴 초안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양측에 득보다는 실이됐다. 이스라엘 여론은 팔레스타인 측에 크게 양보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는 비판이 쏟아졌고 팔레스타인 측 역시 합의안 도출에 실패했다는 실망감만 쌓이는 역효과를 냈기 때문이다. 하마스의 부활 하마스의 선제 로켓 공격으로 시작된 지난 5월 발생한 하마스-이스라엘 전쟁은 확실히 하마스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하마스의 전쟁은 대이스라엘 항전임과 동시에 PA가 아니라 자신들이 예루살렘의 진정한 수호자임을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 과시하기 위한 것이었다. 더 나아가 하마스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의 향배를 결정짓는 주도권을 쥐겠다는 것이다. 하마스는 어떻게 PA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가진 조직으로 성장했을까. 이스라엘이 PA를 홀대한 정책이 오히려 하마스를 성장시켰다. 최근 10년간 이스라엘의 입장은 압바스 수반은 더는 평화협상을 이끌 능력이 없는 만큼 배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장기 집권한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압바스 수반을 무시하고 PA를 소외시켜 왔다. 그 결과 하마스가 팔레스타인 주민의 기대에 부응하고 희망을 주는 유일한 정파로 자리매김했다. 온건 정파 PA를 지지하고 지원해야 할 이스라엘이 오히려 압박하면서 강경파 하마스가 대안 세력으로 등장한 것이다. 하마스는 예루살렘이 가지는 종교적·민족적 상징성을 강조하고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은 물론, 이스라엘 내 팔레스타인 시민들까지 아우르는 이슈로 부각시켰다. 하마스는 이스라엘 시민권을 가지 팔레스타인 주민들까지 폭동에 동참하도록 부추겼고 가자 전쟁 중 이스라엘 내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의 충돌이라는 새로운 현상이 발생했다. 네타냐후는 또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체결한 아랍국가들이 압바스 수반을 설득해 이스라엘의 평화안을 수용하도록 하는 전략을 마련하고 있었다. 작년 이스라엘은 UAE와 바레인과 관계 정상화를 체결한 아브라함 협정을 시작으로 수단과 모로코와 관계 정상화를 하면서 이런 전략을 구체화했다. 그러나 압바스 수반과 대화하지 않고 아랍국가의 도움으로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겠다는 네타냐후의 전략은 성공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하마스의 입지만 강화했다. 하마스는 이스라엘과의 협상보다는 무장투쟁을 통해 이슬람 가치에 기초한 팔레스타인 국가를 건설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더군다나 하마스의 지지도는 압바스 수반이 주도하는 파타흐보다 앞서 나가고 있다. 팔레스타인 주민 눈에 PA는 이스라엘과 치안을 공조하는 배신자의 이미지가 강하게 배어 있다는 이유도 한몫했다. 부패한 PA의 개혁작업도 필요하고 무엇보다도 80세가 넘은 고령인 압바스 수반의 뒤를 이어 PA를 이끌 새로운 지도자가 절실한 상황이다. 여기에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상에 큰 진전이 없다면 PA의 앞날은 암울하다. 반대로 지속적인 무기 개량으로 사거리가 부쩍 늘어나고 정확도도 높아진 로켓으로 무장한 하마스는 이스라엘에 심각한 위협이 될 것이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 역사가 한국에 주는 함의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 해결의 가장 좋은 해법이라는 사실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그러나 현 상황에서 실현 가능성이 매우 낮다. 하마스의 득세와 PA의 무능함이 첫 번째 이유이고 두 번째 이유는, 이스라엘 국내정치 구조가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을 용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총리가 누가 되든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에 합의한다면 연립정부는 그날로 붕괴되고 새로 총선을 치러야 할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중도 우파 정당은 거의 모두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에 반대하는 만큼 연정을 탈퇴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평화협상 최종 타결이라는 큰 목표보다는 현 상황에서 양측간 무력충돌을 막고 공존할 방안이 필요하다. 예컨대 요시 베일린 같은 이스라엘 좌파 지식인들이 주장하는 연방제가 있다. 요르단강 서안의 유대인 정착촌은 팔레스타인 관할권 아래에 그대로 살게 하고(따라서 정착촌 철수가 필요하지 않다) 그 숫자만큼의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이스라엘 내에 살도록 하는 것이다. 국경은 1967년 국경으로 정하고 동예루살렘은 팔레스타인의 수도로 서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로 정하는 것이다. 예루살렘의 성지는 공동 관리하는 방안을 택하고 팔레스타인의 치안은 다국적군이 보장하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양측이 공동으로 군을 지휘하는 것이다. 이처럼 고착화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은 북과 대치하고 있는 우리에게 몇 가지 시사점을 던져준다. 첫째 1993년 오슬로 협정이 체결될 당시 중동에 평화가 올 것처럼 전세계가 열광했지만 결국 5년 안에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에 실패하면서 상황은 더 나빠졌다. 그만큼 평화를 얻는 것은 매우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하고 합의보다 합의이행이 더 어렵다는 교훈을 준다. 지나친 낙관론이나 서두름도 금물이다. 둘째 오슬로 평화협정을 성사시킨 것은 미국의 중재나 관련국 중심의 다자회담이 아니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양측이 1년간 비밀리에 협상을 과감히 추진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물론 미국의 눈을 피해 비밀협상을 진행하는 것은 어려운게 현실이나 남북한 당사자의 노력 없이는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는 만큼 설득과 화해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셋째 남북관계 개선 방향은 큰 목표를 설정하돼 고집하지 않고 실현 가능한 협력사업을 먼저 추진하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이런 협력사업을 통해 남북 간 신뢰를 회복하고 한반도의 안정화에 주력하는 것이 의도치 않은 무력충돌을 막고 평화로 가는 큰 디딤돌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   참고자료 Avi Shlaim, The Iron Wall: Israel and the Arab World (New York: W. W. Norton & Company, 2001). Charles D. Smith, Palestine and the Arab-Israeli Conflict: A History with Documents (Bedford: St. Martin's 2020). “Clinton Parameters” in BICOM (Britain Israel Communications and Research Centre). https://www.bicom.org.uk/timeline/the-clinton-parameters/ (접속일 7월1일) Ze’ev Schiff and Ehud Ya’ari, Intifada: The Palestinian Uprising-Israel's Third Front (New York: Simon & Schuster, 1990). 성일광 “이슬람 테러리즘과 중동분쟁” 「세계지역의 이슈:갈등과 협력」 계명대학교 국제학연구소 학술총서 02 (서울:명인문화사, 2021). 기획: 정승철 연구위원 편집: 우장민 연구보조원 성일광 교수는 이스라엘 예루살렘 히브리대학에서 중동학 석사를 텔아비브 대학에서 중동학 박사과정을 마쳤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중동연구회 전문위원이며 한국이스라엘 학회장이다. 저서로는 Mamluks in the Modern Egyptian Mind: Changing the Memory of the Mamluks, 1919-1952 (Palgrave macmillan, 2017)이 있다
  • [JPI PeaceNet] 중동 지역 내 중국 일대일로 전략과 한국에 주는 시사점 분석
    저자
    이창주(아주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강사)
    발간호
    2021-11
    기획자 註 최근 중국은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통해 유라시아 대륙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와 남태평양 지역, 나아가 남미 국가들을 하나로 이으려는 야심찬 계획을 추진·실행하고 있다. 산유국이 많은 중동 지역 또한 예외가 아니다. 중국은 중동국가에 대한 투자 및 교류를 확대함으로써 중동 지역에서도 자신의 영향력을 넓히고자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자신의 영향력을 전 세계로 넓히려는 이러한 중국의 계획에 대해 미국은 견제를 통해 맞서고자 하고 있다. 이에 JPI PeaceNet은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이창주 강사님의 기고문을 통해 중동 지역 내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 이러한 중국의 전략이 미중 전략경쟁, 나아가 한국의 외교정책에 주는 시사점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기획: 정승철 연구위원(scchung@jpi.or.kr)]   1.서론 최근 국제이슈를 관통하는 키워드가 있다. 코로나-19, 기후변화, 바이든 행정부, 미중 전략경쟁관계 등이다. 이런 이슈에서 어느 지역 하나 자유로울 수 없다고는 하지만, 중동지역은 에너지 이슈까지 겹치며 미중 전략경쟁관계와 역내 구조가 복잡하게 얽힌 지역이다. 중동지역은 에너지 자원의 보고(寶庫)일 뿐만 아니라 대륙으로는 유럽, 아프리카, 유라시아를 잇고, 해양으로는 지중해, 홍해, 인도양을 연결하는 지경학적으로 중심지이다. 이런 중동을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에 각각 변수가 발생하고 있다. 쉽게 말해, 미국은 중동으로부터 에너지자원 수입량이 감소세이고, 중국은 중동으로부터 에너지자원 수입량이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은 셰일혁명을 통해 심지어 중동의 경쟁자가 되고 있고, 중국은 ‘일대일로’ 전략을 통해 중동의 최대 소비국, 교역국, 그리고 투자처가 되고자 한다. 미국의 대 중동 개입전략과 중국의 대 중동 개입전략 간의 차이가 발생하고 있는 것도 이에 기인한다. 중동지역 국가들은 물론 각 국가들마다 다소 상이하긴 하지만 큰 맥락에서 모두 산업구조 전환이라는 전략적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중동 국가들은 대부분 에너지자원에 대한 산업 의존도가 높다. 그리고 이런 취약한 산업구조를 전환하기 위해 다른 산업분야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 투자를 위해 에너지자원 수출을 늘려야 한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이런 구조에서 중동국가들에게 필요한 것은 셰일혁명에 도취된 미국의 지정학적 개입이 아니라, 이들의 에너지자원을 수입하면서 동시에 다른 산업군에 대한 투자를 진행하는 중국의 지경학적 개입일 것이다. 중동 국가들에게 더 이상 중요한 것은 돈의 색깔이 아니다. 중동국가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국의 에너지자원을 지속적으로 수입하고, 자국의 미래비전에 투자할 수 있는 안정적인 국가인 것이다. 중국은 일대일로 전략을 통해 중동에게 길을 열고 있다. 이런 중국의 전략적 움직임을 간단히 분석해보고 한국에 주는 시사점을 논의해보고자 한다.   2.중국의 일대일로 개념과 현황 일대일로는 ‘실크로드경제벨트(일대)’와 ‘21세기 해상실크로드(일로)’의 합성어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013년에 일대일로 공동건설을 처음 국제사회에 제시했다. 2015년에는 중국 국무원의 비준으로 “일대일로 공동건설을 위한 행동과 비전”이라는 정부 공식 문서를 발표하며 일대일로에 대한 로드맵을 마련하기도 했다. 일대일로는 쉽게 말하면, 중국의 주도로 건설하는 ‘공간 베이스의 자유무역지대’라고 말할 수 있다. 중국은 이런 일대일로의 핵심 개념에 고대 교역 루트였던 ‘실크로드’라는 이미지를 프레임으로 활용하면서 초반에 국제사회에서도 큰 주목을 받았다. 일대일로는 초반에 중국-유럽을 연결하는 대륙과 해양 지역에 국한된 것처럼 보였으나 그 범위는 유라시아 대륙을 넘어 아프리카, 남태평양 지역을 넘어섰다. 심지어 남미 일부 국가들은 일대일로 사업에 참여하고 있으며, 중러 간에 북극해 지역을 아이스 실크로드라며 공동 개발에 나서고 있다. 이런 일대일로의 핵심 운영기제는 ‘5통(五通)’으로 정리할 수 있다. 중국은 일대일로를 운영하는 핵심기제로서 정책구통, 시설련통, 무역창통, 자금융통, 민심상통 등 5개의 ‘통’을 제시하고 있다. 여기 5개의 통(通) 중에서 시설련통(physical connectivity), 무역창통(institutional connectivity), 민심상통(people-to-people connectivity) 등은 중국에서 시작한 것은 아니고 아시아개발은행(ADB)에서 제시한 개념으로서 국제 인프라를 건설해, 그 네트워크 위의 흐름을 위한 제도를 개선하고, 인적교류를 활성화해 지역 경제통합을 이루자는 연계성(connectivity)의 개념에서 시작한 것이다. 중국은 여기에 정책구통(정부 간 협력), 자금융통(금융 지원) 등의 내용을 추가하며 일대일로의 기본틀을 마련했다. 실제로 이런 5통의 개념은 중국이 일대일로를 추진함에 있어 중요한 메커니즘으로 운영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금 논의하는 중동지역 국가들과의 협력 내용에 있어서도 중요한 뼈대를 이루고 있다. 일대일로 현황을 살펴보면, 중국은 상대적으로 조기에 코로나-19를 극복하고 안정적으로 일대일로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공식적으로 공개한 자료를 토대로 살펴보면, 중국은 2021년 1월 30일 기준 140개 국가, 31개 국제조직 등과 205건의 일대일로 협력문건을 체결했다고 밝히고 있다. 중국 상무부는 2013년 일대일로를 시작한 이래로 중국이 일대일로 연선국가들에게 누적액 약 900억 달러를 투자했고, 아웃소싱 공정에는 약 6,700억 달러를 계약해 이 중에 약 4,200억 달러 수준의 작업을 마무리했다고 밝혔다. 또한, 중국 상무부는 2021년 1분기 기준으로 일대일로 연선국가들에게 금융분야가 아닌 FDI로 44.2억 달러를 투자했는데, 이는 동기대비 5.2% 상승한 수치이며, 동기 총액의 17.8%를 차지하는 수치라 밝히고 있다. 중국은 이외에도 건강실크로드라는 이름으로 마스크, 각종 보건물품, 그리고 중국에서 개발한 백신까지 일대일로 연선국가들에게 제공해주고 있다.   3. 중동을 둘러싼 미중전략경쟁 상황 분석 코로나-19는 분명 중국 우한에서 시작해 세계적인 팬데믹으로 확장되었다. 코로나-19 기원에 대한 갈등은 일단 차치하더라도, 현실적인 상황만 봤을 때 중국이 미국, 유럽, 일본, 다른 신흥국등과 비교했을 때 보다 안정적으로 코로나-19에 대처하며 경제성장을 실현하고 있는 것 만큼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KDI 자료에 따르면, 중국은 2021년 1/4분기의 성장률이 18.3%를 기록하며 올해 8%대의 성장률이 예상되고, 코로나-19 백신보급과 함께 기저효과가 작용하면서 대내외 수요 회복세가 지속되면서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중국은 제14차 5개년 경제계획에서 ‘쌍순환’, ‘신인프라’ 등의 개념을 앞세워 포스트 코로나 시기를 대비한 내수시장 활성화와 기술굴기를 준비하고 있고, 이런 내수시장을 향후 해외시장 진출로 연계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내수시장과 대외시장을 연결하는 매개체가 바로 일대일로이다. 중국의 상황이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다양한 도전과제가 존재하지만 이 중에 가장 큰 도전과제는 역시 미국의 대중 견제이다. 바이든 행정부의 등장과 함께 미국은 현재 대대적인 백신보급에 나섰고 이에 더해 대규모 정책지원까지 겹치며 빠른 경기회복이 예상되고 있다. 미국은 올해 약 6.4%의 경제성장률을 실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며,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행정부와는 다르게 보다 공세적으로 동맹국과의 관계를 개선하며 연대를 통한 중국 견제 노선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중국의 기술발전 분야에서 반도체, 5G, AI, 드론, 신인프라 분야 등 첨단산업분야에 대한 견제가 보다 구체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중동 지역 역시 이런 미중 전략경쟁 구조를 피해갈 수는 없다. 그러나 중동지역의 경우에는 에너지자원, 산업구조 전환, 그리고 국내 거버넌스 문제, 이란문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 시리아 문제 등등이 복잡다단하게 얽혀져 있는 상황에서 중동국가들의 선택이 경제 분야에 더 집중될 것으로 전망이 가능하다. 바이든 정부의 정책에 따라 그 정도에 차이는 보이겠지만, 중국과 중동국가들 간의 관계는 보다 더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설명한 바 있는 것처럼, 중국은 2017년에 이미 미국을 추월하여 중동에서 가장 많은 원유를 수입하는 국가가 되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전망에 따르면, 중국은 대중동 원유 수입량을 일일 400만 배럴에서 670만 배럴로 확대할 것으로 보이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미국은 셰일혁명으로 중동으로부터 2035년까지 일일 10만 배럴 수준으로 축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전망치를 근거로 봤을 때, 또한 중동국가들의 산업구조가 에너지자원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것을 고려해봤을 때, 중동국가들은 상대적으로 미국과의 협력보다는 중국과의 경제협력에 대한 동인이 더 크게 작용하게 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4.중동 지역 내 일대일로 전략 분석 중국의 대중동 일대일로 정책 로드맵은 중국이 2016년 1월에 공식으로 발표한 “중국의 대 아랍국가정책 문건”에서 살펴볼 수 있다. 본 문건에서 중국은 아랍권 국가들은 실제로 중국의 제1대 원유공급처이자 제7대 무역 동반자라면서 양측의 협력의 가치를 설명하고 있다. 중국은 이 문건에서 중국-아랍 일대일로 협력 방향으로서 “1+2+3”를 제시하고 있는데, 에너지자원(1), 인프라건설+무역편리화(2), 원자력에너지+항공우주+신에너지(3) 등을 종합해 중국-아랍 간의 협력을 심화해간다는 내용이 골자이다. 본 문건에서 중국은 아랍권 지역 내 지역안보, 문화, 금융, 과학, 교육, 방송미디어에 걸친 다양한 영역에서 중국-아랍 간의 교류를 심화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협력 문건에서 확인할 수 있는 바와 같이, 중국은 아랍권 국가들과 에너지자원을 매개로 한 경제협력을 심화할 뿐만 아니라 인프라건설(시설연통), 무역편리화(무역창통)을 통해 일대일로 사업을 확대하며 아랍권 국가들의 산업구조 다원화에도 협력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2020년 상반기에 코로나-19로 인해 중국이 위기에 직면했을 때, 이런 교류 플랫폼으로 이란을 중심으로 중동 지역에도 코로나-19가 급격히 확장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중국이 오히려 조기에 극복하고 중동지역 국가들이 코로나-19 악화되는 상황에 빠지는 역전 현상이 일어나면서 중국은 일대일로를 통한 보건의료 분야 지원과 함께 더 적극적으로 중동지역에 대한 협력의 기반을 마련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중국은 중동지역 국가들과의 경제협력을 강화하는 한편, 바이든 행정부 취임 이후 미국의 가치동맹 공세를 저지하기 위한 외교 행보도 코로나-19 시기임에도 강화해가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2021년 3월 24일부터 30일까지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 부장의 중동 지역 6개국 순회이다. 왕이 부장은 관련 기간 동안에 사우디아라비아, 터키, 이란, UAE, 바레인, 오만 등을 순회하며 6개국 정상 및 외교부 장관들과 회의를 가졌다. 왕이 부장은 크게 중국-중동 간 협력 원칙, 코로나-19 관련 협력, 중동지역 안보, 경제분야 협력 등을 논의했다. 왕이 부장의 회견 내용 설명에 따르면, 중국은 중동지역 내 외부 간섭을 배척하고 사익을 추구하지 않으며 지정학적 경쟁과 세력경쟁을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제시했다고 발언했는데, 이는 분명 바이든 행정부의 ‘민주주의’, ‘인권’의 가치를 내세운 것에 대한 전략으로 보인다. 왕이 부장은 또한 중국이 코로나-19 발생 이후 백신 협력에 있어 17개 중동국가들에게 3,800만개의 백신을 원조 및 수출하고 있으며, UAE에서 중국 백신에 대한 임상실험을 제공 받으며 대규모 백신 생산라인 구축에 협력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왕이 부장은 또한 2020년 중국-아랍권 국가들 간에 무역액 2,400억 달러를 실현하며 중국이 아랍권 국가들에게 제1의 무역파트너가 되었으며, 중국의 원유 수입은 동년 2.5억톤에 달해 중국 총 원유 수입액에 절반에 달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5G, 빅데이터, 인공지능, 항공분야에 걸쳐 중국의 표준으로 기술협력을 확대해나가겠다고 말했다. 또한, 중국은 중동의 자원시장과 융합하며 산업투자, 산업단지 및 양항 개발, 산업 연계 및 인프라 건설 투자를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이런 왕이 부장의 발언을 분석하면 중국의 중동에 대한 최근 일대일로 전략이 집약되어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앞서 설명한대로 중국은 일대일로를 통해 중동 지역 내에서도 중국이 주도하는 ‘공간 베이스의 자유무역지대’를 확대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중국은 명확히 중동이 원하는 것을 알고 있다. 중국은 중동의 에너지자원을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수입할 것이고, 중동의 인프라 건설, 스마트 시티 건설, 산업 다원화 분야에 투자할 것이다. 중국은 이런 메시지를 중동에 전달하고 있다. 또한, 중국은 중동의 지정학적 이슈보다는 지경학적 협력 분야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도 표방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왕이 부장의 발언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언외의미를 파헤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국가이익을 추구하는 국가의 속내를 들여다본다고 그래도 중국의 중동 내 일대일로 전략은 이렇듯 우리가 현실로서 직면해야 할 상황이다.   5. 결론 및 한국에 주는 시사점 중국의 대중동 접근은 미중전략경쟁관계, 코로나-19 등의 악조건 속에서도 심화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중국은 일대일로를 통해 중동권 나아가 아랍권 국가들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이해하며 그 협력 과제를 분명히 하며 전략적 접근을 심화시키고 있다. 중국이 중동에 접근하는 것은 윈윈과 공동번영을 위한 부분도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중국의 국가이익도 분명히 이 협력 내용 중에 중요한 한 축으로 작용하고 있다. 중국은 일대일로를 통해 중동국가들의 에너지자원 수출 문제, 인프라 건설 문제, 산업 다원화 문제 등에 보다 구체적으로 접근하고 있고, 또한 이러한 사업들에 있어 중국의 자금과 함께 중국의 국유기업이 진출하고 있는 것도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한국에 주는 시사점은 어떤 것이 있을까. 한국은 중국처럼 일대일로와 같은 사업을 진행하기에 거버넌스 구조가 쉽지 않다. 한국 정부가 제시한 방향이 있다고 그래도 각 기관별 의견이 다양하고, 금융계와 재계의 의견을 수용해야 하는 정책 플랫폼도 역시 정권의 변화에 따라 단명한다. 한국은 중국의 일대일로 플랫폼을 벤치마킹해야 할 부분은 존재한다. 정권의 변화에 흔들리지 않는 중동지역 관련 정책 플랫폼을 정부, 정계, 기업(산업계), 금융계, 학계를 망라하여 수립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중동지역과의 민감한 이슈는 정부가 나서 정책구통하고, 금융계는 산업계의 중동 내 진출을 위한 자금융통하며, 학계는 인재를 통한 민심상통을 진행해며 우리만의 메커니즘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참고자료 1)이창주(2017), 『일대일로의 모든 것』, 서해문집. 2)중국 일대일로망, . 3)新华社新媒体, "商务部:与“一带一路”沿线国家经贸合作态势良好",. 4)KDI 경제전망 2021 상반기, 제38권 제1호, 177쪽. 5)International Energy Agency. (2019). World energy outlook. Paris: Organis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 6)백승훈, 이창주(2019). “중국과 중동의 연계 강화: 세계 에너지 구조 변환 속의 지경학”. 『아시아지역리뷰』 「다양성+Asia」 2019년 9월호(2권 3호). . 7)왕이 부장 6개 중동국가 순회 관련 내용은, 新华社,"王毅国务委员兼外长在结束访问中东六国后接受媒体采访", 2021.3.31., . 기획: 정승철 연구실장 편집: 안경은 연구보조원 저자소개 이창주, 상하이 푸단대 외교전공 박사. 현재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강사,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 정치경제연구센터 센터장. 이전 경력으로는 KMI 중국연구센터 현지연구원, 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 등이 있고, 저서로는 , 등이 있다.
  • [JPI PeaceNet] 중동 지역 내 중국 일대일로 전략과 한국에 주는 시사점 분석
  • [JPI PeaceNet] 미얀마 사태와 국가폭력: 민주주의 위기의 원인과 과제
    저자
    최경준 (제주대학교 교수)
    발간호
    2021-10
    기획자 註 미얀마에서 발생한 군사 쿠데타와 국가폭력 사태의 원인은 무엇이고, 미얀마의 민주주의는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지금의 미얀마 사태는 탈식민지 국가건설 과정에서 물리적, 정치적, 경제적 권력을 확보한 군과 다민족 사회 속 주류 민족인 버마족 정치인들이 이끌어 온 민주세력 사이의 타협에 기반한 유사민주주의 체제가 개방성과 포용성을 갖춘 새로운 민족적 정체성을 갖춘 시민사회의 성장 없이는 취약성을 드러낼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제주대학교 최경준 교수의 기고문을 통해 미얀마 사태의 원인과 전개 그리고 향후 민주주의 발전의 전망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기획: 임해용 연구위원(haeyonglim@jpi.or.kr)]   2021년 2월 미얀마에서 발생한 군사 쿠데타와 군에 의한 폭력 사태는 현재 많은 인명 피해를 야기하고 있다. 미얀마 사태는 민주화를 열망하는 미얀마 시민들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와 규범을 강조해 온 국제사회의 구성원들에게도 국가폭력에 대한 우려와 공동의 대응을 위한 과제를 제기하고 있다. 독립 이후 세 번째 발생한 군부 쿠데타는 미얀마가 그동안 국내외적 위기 속에서 이루어 온 민주화의 성과가 취약성을 드러낸 원인이 무엇인지, 위기를 극복하고 민주화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지 고민하게 만든다. 이 글은 미얀마에서 군부 쿠데타와 국가폭력 사태를 야기한 원인을 탈식민지 국가건설 과정에서 나타난 군부의 역할과 지위, 군이 쿠데타를 감행한 의도와 이것을 가능하게 만든 능력, 그리고 민주화 과정 속에서 드러난 미얀마 정치 지도자와 시민의 역할과 한계의 측면에서 살펴본다. 이를 통해 미얀마 사태의 향후 전개와 민주주의 발전에 대해 전망해 본다.   1.국가와 군부 미얀마 군부(Tatmadow)의 정치개입과 국가폭력 사태는 식민지 지배의 유산과 탈식민지 국가건설 과정의 특성과 관련되어 있다. 식민지 모국의 의도와 필요에 따라 과다 성장한 식민지 국가는 강력한 관료-군사 조직에 의해 운영되는 통치 체제를 탈식민지 사회에 유산으로 남긴다. 미얀마 역시 탈식민지 국가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군에 의해 국가조직과 정치가 지배되는 결과가 야기되었다. 그러나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국가의 출현은 단순히 식민지 지배의 군사주의적 유산에 따른 필연적 결과가 아니다. 독립 후 미얀마는 국내 반대 세력들을 포용하는 정치적 해결책을 채택하기보다는 소수민족의 분리 독립 요구를 군사 조직들을 활용해 대응하면서 국내적인 혼란과 국가 파편화의 위기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군사 조직들은 1950년대 이후 미얀마의 핵심적인 국가 제도로 부상하였고, 군은 고유 영역인 국방을 넘어 법집행, 경제규제, 세금징수, 정보수집, 정당규제, 식량배급 등 국가의 주요 기능들을 담당하게 되었다. 국가건설 과정에서 나타난 미얀마 정치의 폭력성은 다수의 상이한 민족들을 인위적으로 묶어 영국령 버마를 형성시킨 식민지 지배의 특수성에서 출발한다. 1946년 말 미얀마를 여러 개의 민족국가로 분리 독립시키려는 영국의 의도에 맞서 아웅산(Aung San) 장군은 ‘소수민족에 대한 평등한 대우’를 핵심으로 하는 ‘팡롱 협정(Panglong Agreement)’을 소수 민족 지도자들과 체결하여 버마 연방의 독립을 이루었다. 그러나 아웅산의 암살 이후 협정의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고, 카렌, 카친, 라카인 등의 소수민족들은 다수 버마족(인구의 68%) 중심의 중앙정부에 맞서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카렌족은 카렌민족동맹(KNU)을 중심으로 반정부 투쟁을 지속해 왔으며, 카친족은 카친독립군(KIA)을 결성하여 무쟁투쟁을 벌이고 있고, 라카인족은 7,000명 규모의 아라칸 군대(AA)를 창설하여 군사적 저항을 하고 있다. 소수민족과의 내부적 갈등 구조는 군의 직접적인 정치개입과 지배를 초래하였다. 1962년 군부는 소수민족 반란으로 인한 국가위기 해소를 명분으로 쿠데타를 감행하였고, 소수민족을 연방 구성원으로 대우하지 않으면서 이들의 존재를 군부의 정치적 역할과 군사독재를 합리화하는 수단으로 이용하였다. 군은 지속적으로 자치권을 요구해 온 소수민족 집단이 미얀마 연방을 붕괴시킬 것이라 주장하며 소수민족 지역에 대한 권력 이양을 거부해 왔다. 소수민족 무장투장을 상대해야 하는 미얀마의 국내적 환경 속에서 군은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국가를 보호하는 일반적인 군대의 역할과는 달리 자국 영토 내부에 존재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전쟁을 벌여 왔다. 군부는 최근까지도 국방백서를 통해 국내적인 무장집단들과의 분쟁을 끝내는 것이 자신들의 우선적인 목표임을 밝히며 자신에게 “국가건설(state-building)”의 역할이 있기에 정치에 대한 개입이 정당한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군부에 의한 폭력 행사의 주요 대상은 소수민족 무장 집단에만 국한되지 않았고, 민주화를 향한 중요한 정치적 분기점마다 군은 폭력 수단을 동원한 개입과 탄압을 통해 정치발전을 제약하고 국민적 희생을 초래해 왔다. 1988년 8월 민주화 항쟁 당시 군은 탱크와 기관총을 동원하여 학생들의 시위를 진압하였으며, 시위 진압 과정에서 1백 명이 사망하였다는 정부의 발표와 달리 약 3천 명가량이 희생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62년과 1988년에 이어 2021년 2월 1일 발생한 세 번째 군부 쿠데타는 5월 10일 기준 민간인 희생자 780명(18세 미만 43명), 체포된 사람 3,826명을 기록하며 군이 민주주의를 위해 군부에 저항하는 자국 시민들을 상대로 물리적 폭력을 사용하는데 주저하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2. 능력과 이익 인구 5,283만 명에 67.7만㎢(한반도의 약 3배)의 영토면적을 지니고 있는 미얀마는 2019년 기준 686억 달러의 GDP와 1,299 달러의 1인당 GDP를 기록하고 있는 경제적 저발전 국가이다. 그러나 군은 이러한 경제 규모에 걸맞지 않게 강력한 군사력을 지니고 있다. 미얀마 군대는 406,000명의 병력(육군 375,000명, 해군 16,000명, 공군 15,000명, 준군사조직 107,000명)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중 준군사조직에 속하는 경찰은 72,000명이다. 이러한 군병력 수는 인도네시아(396,000), 말레이시아(113,000), 필리핀(143,000), 싱가포르(51,000), 태국(361,000)보다 많으며, 베트남(482,000)에 비해 조금 못 미치는 수준이다. 경제적 취약성으로 인해 2020년 미얀마 국방비는 미화 약 21억 달러로 인도네시아(83억 달러), 말레이시아(37억 달러), 필리핀(36억 달러), 싱가포르(108억 달러), 태국(69억 달러), 베트남(56억 달러) 등에 비해 작은 규모이다. 그러나 GDP 대비 국방비의 비중은 2.97%로서 싱가포르(3.23%)보다는 조금 낮은 수준이지만 인도네시아(0.77%), 말레이시아(1.11%), 필리핀(1.01%), 태국(1.37%), 베트남(1.68%) 등 동남아 주요 국가들을 압도하고 있다. 높은 수준의 GDP 대비 국방비 비중과 육군 위주의 대규모 군병력 유지는 미얀마가 제한된 경제적 능력 속에서도 군사 부분에 상당한 자원을 집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얀마 군부의 힘은 군사 부문에 국한되지 않는다. 군부는 기업에 대한 직접 소유와 운영을 통해 막강한 자금력을 구축하며 미얀마 경제를 장악해 왔다. 군부가 지주회사와 자회사 등을 통해 장악하고 있는 산업 분야는 맥주, 담배, 통신, 광업, 부동산 등 미얀마 경제의 상당 부분을 포괄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군부의 자금력을 뒷받침하는 것은 주요 천연자원에서 나오는 투명성이 부재한 수익에 대한 점유이다. 군부가 원유와 천연가스 등 천연자원의 수출을 통해 확보하는 외화는 정부 예산에서 세금으로 거둬들이는 것보다 더 많다. 특히 천연가스 수출은 매년 5억 달러의 수익을 군부에게 가져다주고 있다. 군부는 이 밖에도 보석과 목재 등에 대한 불법적인 밀수와 마약 생산에 관여하면서 많은 이윤을 얻고 있다. 2017년 미얀마군의 로힝야족 탄압에 대한 명령권자이자 이번 쿠데타의 주역인 민 아웅 흘라잉(Min Aung Hlaing) 사령관 역시 미얀마의 대표적인 대기업들에 대한 지분을 갖고 있으며, 흘라잉의 자녀들도 식당, 체육관, 갤러리, 미디어 제작사 등의 기업을 문어발식으로 확장하면서 각종 이권을 챙겨 왔다. 미얀마 군인들은 “국가 안의 국가(a state within the state)”로 존재하는 군대 체제 속에서 사회로부터 유리된 채 살아간다. 군이 자신의 은행, 병원, 학교, 대학, 보험회사, 농장, 방송사, 출판사, 영화사 등을 보유하며 자신들만의 폐쇄적인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기에 군인들에게 군은 그 자체가 국가이자 사회이다. 쿠데타에 저항하는 시민들에 대한 군의 무자비한 폭력은 사회로부터 절연된 채 군에 대한 충성과 특권의식을 체화해 온 군의 이러한 특성과 무관하지 않다. 군부의 정치적 영향력과 시민에 대한 폭력성을 제한하기 위해서는 국가 속에서 확대된 군의 역할과 경제에 대한 장악뿐만 아니라 사회로부터 단절된 조직의 폐쇄성도 함께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   3.군부와 정치 미얀마 군부는 통제되지 않는 정치적 경쟁이 초래하는 무질서를 극복하고 질서와 번영이 실현되는 “규율번성적 민주주의(discipline-flourishing democracy)”를 오직 자신만이 실행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1988년 반독재 항쟁을 무력으로 진압한 군은 1990년 5월 다당제 선거를 허용하였으나 이 선거에서 아웅산 수찌(Aung San Suu Kyi)를 내세운 야권 세력인 민족민주연맹(NLD)이 의석의 80%를 차지하며 승리하자 선거결과를 취소하고 군정을 이어갔다. 2007년 샤프론 혁명이라 불리는 민주화 투쟁과 오랜 국제적 고립으로 인한 경제 문제에 직면한 군은 민간정부의 출범을 위한 헌법 개정에 착수하였다. 그러나 규율이 확립된 민주주의 확립이라는 명분 하에 군이 정치에 개입하고 주요 국가조직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헌법에 명시함으로써 군부 통치와 민주주의가 혼융된 유사민주주의(quasi-democracy) 체제를 창출하였다. 2008년 헌법은 3대 핵심 부처인 국방부(Ministry of Defence), 내무부(Ministry of Interior), 국경부(Ministry of Border) 장관을 군 총사령관이 지명하고, 군부가 대통령 후보 3인 중 1인을 추천(다수결로 대통령과 부통령 2명 결정)하도록 규정하였다. 또한, 의회 의석의 25%를 선거와 무관하게 자동 할당받아 헌법 개정에 대해 군이 비토할 수 있는 권한을 지니게 만들었다. NLD가 불참한 2010년 선거에서 군부가 지원하는 연합연대개발당(USDP)이 승리하였고 군 총사령관에서 전역한 떼인 세인(Thein Sein)이 집권하였다. 그러나 가택연금의 해제와 함께 정치과정에 참여한 수찌가 이끄는 NLD는 2015년 11월 총선에서 투표로 결정되는 의석의 80%를 차지하며 승리하였고 유사민주주의 체제의 한계 속에서도 민주주의 전환을 이룰 수 있다는 기대를 높였다. 2017년 무슬림 소수민족인 로힝야족에 대한 군부의 탄압 작전은 수찌에게 국내적 정치기반과 국제적 평판 사이에서 선택을 하도록 만들어 이후 미얀마 정치 지형에 변화를 초래하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수찌가 로힝야족을 두둔함으로써 다수파 버마족의 지지를 상실할 것이라는 군부의 기대와는 달리 수찌는 이 작전을 옹호하였고 군에 의한 인종청소 작전을 국제사회 속에서 부인함으로써 국제적 평판을 희생하는 대가로 국내적 지지를 확보할 수 있었다. NLD는 2020년 11월 선거에서 선출직 자리의 83%를 차지하는 대승을 거두었고 USDP는 단지 7%만을 차지할 수 있었다. 선거결과 NLD는 하원(국민대표원) 의원 440석의 58.6%인 258석을, 상원(민족대표원) 의원 224석의 61.6%인 138석을 차지하였다. 그러나 민주세력의 선거 승리는 군부에게 심각한 정치적 위기의식을 초래한다. 특히 선거 승리 후 수찌 정부가 향후 군부 의석수를 축소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개헌안을 마련함으로써 군부의 반발과 위기의식은 더욱 증폭되었다. 군부의 입장에서 정치적 영향력의 축소와 국가조직에 대한 통제권 상실은 그 자체에 머물지 않고 그동안 누려온 경제적 이권을 반납하고 사회적 영향력 축소를 받아들여야 함을 의미한다. 또한, 소수민족 집단들과의 평화회담을 통해 제2의 팡롱 협정을 추진한 수찌 정부의 행보는 소수민족에 대한 무력행사를 통해 자신의 국내적 역할을 합리화했던 군의 존재 이유 자체를 근본적으로 위협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2021년 2월 쿠데타를 감행한 군은 자신이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적법한 절차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흘라잉은 쿠데타 후 첫 대중 연설에서 “군은 국민의 편이며 ‘진실되고 규율화된 민주주의(true and disciplined democracy)’를 형성할 것”이며, 1년간의 비상사태 이후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실시할 것임을 발표하였다. 군부는 자신들이 쿠데타를 감행한 것이 아니라 국가의 민주주의에 이상이 생겼기에 헌법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2008년 헌법은 주권 상실의 가능성이나 국가 결속 또는 연방의 통합을 방해하는 충분한 사유가 제기되면 대통령이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군사령관에게 권력을 이양해야 함을 규정하고 있다. 군은 NLD가 2020년 선거에서 불법선거를 통해 승리하였기에 군이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합법적인 방식으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직 대통령(Win Myint)을 구금시키고 퇴역 장성 출신의 부통령(Myint Swe)을 대통령으로 승격시킨 직후 비상사태를 선포한 군부의 행동은 명백한 쿠데타의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 이번 쿠데타는 미얀마 민주주의 체제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준다. 군의 정치개입을 가능하게 만든 헌법적, 제도적 문제뿐만 아니라 수찌라는 개인을 중심으로 형성된 미얀마의 민주주의 세력 역시 한계를 드러냈다. 외국인과 결혼한 사람은 대통령이 될 수 없는 헌법적 제약에 의해 수찌는 2015년 총선 승리 이후 자신을 위해 “대통령보다 위(above the president)”에 있는 “국가고문(state counsellor)”이라는 직위를 만들어 공식적인 제도를 벗어난 개인화된 권력을 만들어 냈다. 군에 의한 로힝야족 탄압 당시 인권 규범과 가치보다는 버마족의 정치적 지지를 선택한 수찌의 결정은 단기적으로는 선거 승리를 가져왔으나 자신이 두둔한 군에 의해 민주주의가 파괴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또한 소수민족과의 평화회담을 모색하면서도 이들의 대표를 정부에 참여시키지 않는 이중적 태도는 2020년 선거에서 100만 명 이상의 소수민족 사람들이 투표권을 부여받지 못하게 함으로써 쿠데타 세력이 선거 부정을 주장하는 빌미를 제공하였다. 국가의 무력 조직에 대한 제도적 통제권을 지니지 못한 민주 세력은 군부에 대항할 물리적 힘이 부재할 뿐만 아니라 군부와 다수 버마족 그리고 소수민족 사이에서 정치적으로 표류하였으며 포용과 통합을 지향하는 민주적 시민 사회의 형성을 이끌지 못하면서 군부의 쿠데타 앞에 무력함을 드러냈다.   4. 폭력과 저항 쿠데타 발발 이후 군은 선출된 지도자들을 체포하고 거리에서 시민들을 사살하고 집에 대한 급습을 통해 전국적인 시위와 저항을 분쇄하고 있다. 특히 2017년 로힝야족 학살에 책임이 있는 ‘33경보병사단’을 비롯한 실전경험이 있는 부대를 시위 진압을 위해 대도시에 배치하는 등 지난 수십 년간 국경지대에서 무장 소수민족 집단을 상대하며 훈련된 군의 폭력 수단을 쿠데타에 저항하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사용하고 있다. 군은 기관총과 로켓 발사 수류탄 등을 사용하며 시위자들을 공격하면서도 시위 진압을 위해 최소한의 무력만을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군부는 해체된 NLD 의원들로 구성된 연방의회대표자위원회(CRPH)가 임시정부를 표방하며 만든 국민통합정부(NUG)를 테러단체로 규정하고, 폭탄 테러, 방화, 살인 등의 혐의로 반테러법에 의해 처벌할 것이라 경고하고 있다. 군대의 진입을 막기 위해 바리케이드를 치고 돌맹이, 화염병 등으로 저항하는 시위자들은 “무정부주의적 폭도(anarchic mobs)”로 지목되고 있으며 군은 자신들이 행하는 폭력적 시위진압을 질서 유지 차원에서 합리화하고 있다. 처음 몇 주간 평화적인 시위로 쿠데타에 저항하던 시민들은 불복종운동과 무력투쟁으로 저항의 방법을 다각화하고 있다. 불복종운동을 통한 저항은 총파업의 형태로 전개되고 있는데, 공무원, 트럭 기사, 교사, 의사, 은행원들을 포함한 수만 명의 노동자들이 일터에 가지 않음으로써 군부가 일상적인 민간 행정을 운영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은행은 약 10% 정도의 지점만 업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병원, 기차, 항만에서부터 학교, 상점에 이르기까지 사회의 많은 부문이 파업과 불복종운동으로 군부의 일상적인 통치를 방해하고 민간정부로 통치의 권위를 되돌리기 위해 정지해 있다. 무력투쟁을 통한 저항은 엘리트와 대중 차원에서 동시에 모색되고 있다. 엘리트 차원의 무력투쟁은 소수민족 무장집단과의 연계를 통한 쿠데타 세력에 대한 물리적 저항을 지향하고 있다. CRPH는 4월 1일 2008년 군부가 제정한 헌법의 폐기를 선언하고 평등권 등 국민의 기본권이 담긴 ‘연방 민주주의 헌장’에 따라 모든 민주주의 세력의 연립정부이자 집단 지도체제가 될 NUG를 구성할 것을 발표하였다. 4월 16일 창설된 NUG는 내각 26개 자리에 소수민족 출신 장차관 13명을 포함시킴으로써 소수민족과의 연대의지를 드러냈다. 또한 “시민들이 스스로를 지킬 힘이 필요하다”라는 인식 하에 소수민족 무장단체와 연합해 ‘연방군(federal army)’을 창설할 것을 선언하였다. 민주주의 세력이 소수민족 무장단체와 연합을 지향하는 것은 이들이 지닌 군사력 때문이다. 국경 지대에서 활동 중인 약 20여 개의 소수민족 민병대는 대공미사일, 대포, 무장한 병력수송차들을 갖춘 군사적 수단을 동원할 수 있다. 만약 소수민족 무장 세력들이 국경 부근에서 봉기한다면 군부는 복수의 격전지에서 분산되어 싸워야 하고, 도시 지역의 시위자들에 대한 군의 압력을 경감시키는 효과가 있다. 소수민족 무장집단들 사이의 통합된 반쿠데타 세력 결집이 아직 구체화되지는 못하고 있지만, KNU와 KIA가 미얀마 군부와의 교전을 통한 군사적 저항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소수민족 무장집단들을 규합하여 통합된 ‘연방군’을 결성하더라도 전체 7만 5천에 불과한 민병대 병력으로 압도적인 군사력을 지닌 군부를 상대로 승리하는 것은 쉽지 않다. 더욱이 NUG를 주도하고 있는 CRPH가 과거 소수민족을 차별하던 버마족 정치인들로 구성되어 있기에 버마족에 의한 차별과 탄압을 받았던 소수민족 정치인들로부터 신뢰와 협력을 이끌어 내는 것 역시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또한 소수민족 집단들 내부에 존재하는 분열과 이들 집단 사이의 상호 갈등도 쿠데타 세력에 맞선 공동대응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내전 상황 속에서 형성된 상호 불신과 각자의 내부적 이해관계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이들이 분열 상태에 놓인다면 일부 소수민족 무장집단에 대해 유화적 입장을 통해 이들에 대한 포섭을 모색하는 군부의 “분열을 통한 격퇴” 전략의 희생물이 될 수 있다. 무장투쟁을 통한 저항은 미얀마 시민들 차원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평화시위를 통해 국제사회의 개입을 촉구해 왔으나 군부의 폭력에 대한 실질적인 대응이 이루어지지 않자 반군부 저항의 방법을 군에 대한 반격을 통한 무장투쟁으로 전환하고 있다. 미얀마 시민들은 사상 처음으로 KNU 등 소수민족 단체에 기부금을 전달하는 등 지지를 보내고 있으며, 도시에서 사제 총기, 폭탄 등을 만들거나 국경지역에서 활동하는 소수민족 무장단체를 찾아 군사훈련을 받고 있다. 시민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소수민족 무장단체에 대한 지지와 연대 노력은 단순히 군부에 대한 물리적 저항 수단을 확보할 수 있다는 차원을 넘어 대중 차원에서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민족 간 불신과 갈등을 극복하고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새로운 민족 정체성을 형성시킬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5. 제재와 협력 미얀마 쿠데타와 국가폭력 사태에 대해 국제사회는 상이한 입장과 대응을 보여주고 있다. 국제관계에서 인권과 민주주의 규범을 강조해 온 미국은 이번 사태에 대해 제재와 압박을 통해 대응하고 있다. 1988년 민주화 운동에 대한 군부의 탄압을 계기로 경제제재와 함께 UN 안보리에 미얀마 인권문제를 상정했던 미국은 2011년 양국간 관계 개선을 계기로 제재를 완화하였으나 로힝야족 사태 발생으로 탄압의 주역인 흘라잉을 비롯한 주요 인사에 대한 제재를 가한 바 있다. 이번 쿠데타 발발 후 미 재무부와 국무부는 미얀마 군부 기업에 대한 제재를 통해 쿠데타 세력에 대해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오랜 기간 ‘외톨이 국가(a pariah state)’로 존재하던 미얀마에 대한 미국의 제재는 당시 의미 있는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고, 미얀마와의 교역과 투자에 있어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 미국 차원의 제재는 미얀마 경제에 대해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중국의 참여 없이는 그 효과가 결정적이지 않을 것이다. 미국과 전략경쟁을 벌이고 있으며 내부적으로 인권문제를 지니고 있는 중국은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를 몰아낸 미얀마 군부의 행위를 ‘쿠데타’로 규정하지 않고 있다. 왕이(王毅) 외교부장은 4월 1일 각 진영이 절제력을 발휘해 상황이 격화하는 걸 피하기를 바란다면서도 “국제사회는 내정 불간섭이란 기본적 원칙을 전제로 미얀마의 정치적 화해를 위한 환경을 조성해야지, 압박을 가해선 안된다”고 강조하였다. 중국의 이러한 입장은 미얀마 사태에 대한 국제사회의 효과적 대응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UN 안보리는 4월 1일 성명에서 “미얀마 상황이 급격히 악화하는 것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며 “평화로운 시위대를 겨냥한 폭력과 여성과 어린이를 포함해 민간인 수백 명이 사망한 것을 강력 규탄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당초 성명의 초안에 포함되었던 군부에 대한 제재를 의미하는 ‘후속 조치를 검토한다’는 문구는 중국의 반대로 삭제되었다. UN 안보리 순회 의장을 맡은 장쥔(張軍) 유엔 주재 중국 대사는 미얀마에 대한 제재를 지지하지 않으며 미얀마 사태가 선거에 대한 견해 차이와 관련돼 있기에 정당들이 문제의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입장을 표명하였다. 동남아의 지역협력 기구인 ASEAN 역시 미얀마 사태에 대한 대응에서 부분적인 성과와 한계를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ASEAN 10개 회원국은 4월 24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특별정상회의를 개최하고 5개 항에 합의해 의장 성명 형태의 합의문을 발표함으로써 미얀마 문제 해결을 위한 지역차원의 공동노력을 시도하였다. 흘라잉 총사령관이 직접 참여한 회의를 통해 회원국 정상들은 (1) 즉각적 폭력 중단, (2) 평화적 해결을 위한 대화, (3) ASEAN의 대화 중재, (4) 인도적 지원, (5) 특사와 대표단 방문에 대해 합의하였다. 그러나 미얀마 민주진영의 핵심 요구사항이었던 ‘모든 정치범의 석방’은 합의사항에서 제외되었고 대신 의장 성명에 “외국인을 포함한 모든 정치범을 석방하라는 요구를 확인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가장 큰 문제는 미얀마 군부로 하여금 합의안을 이행하도록 할 구체적인 방안이 제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합의 이후에도 미얀마 군부는 시민과 소수민족을 향한 폭력 행위를 지속하면서, 상황이 안정된다면 ASEAN 정상들의 건설적인 제안을 신중히 검토하겠으며 현재의 우선순위는 “법과 질서 유지, 공동체 평화와 평온을 회복하는 것”이라 밝히고 있다. ‘내정 불간섭 원칙’을 유지해 온 ASEAN이 사태해결을 위한 합의에 도달했음에도 한계를 드러낸 것은 회원국 각국의 내부적 사정과 이들 사이에 존재하는 관점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말레이시아는 흘라잉 총사령관에게 폭력을 중단하고 정치범을 석방할 것을 요구해 온 반면, 반정부 인사에 대한 장기 구금 행위로 비판받고 있는 베트남, 미얀마 군부와 가까운 관계를 유지해 온 태국, 마약과의 전쟁으로 수천 명의 사람들을 희생시킨 필리핀 등은 미얀마를 포함 타국의 인권 문제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주저하고 있다. 미얀마 사태에 대한 이러한 국제적 대응의 한계는 인권과 민주주의 규범에 대한 보편적 합의가 아직 국제사회 속에 부재하고 국제적인 공동 노력을 통해 국가폭력 사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도와 능력이 각국의 내부 사정과 국익 계산에 의해 제약되고 있음을 말해 준다.   6.과제와 전망 이번 군부 쿠데타는 국가형성 과정에서 힘을 키운 군부와의 타협에 기반한 불완전한 민주주의 체제가 얼마나 취약한가를 보여주고 있다. 소수민족을 상대로 한 오랜 내전을 통해 전투에 익숙하고, 유사민주주의 헌법 하에 정치적으로 강력하며, 사회로부터 폐쇄된 경제왕국을 국가 내부에 건설하고, 과거 일련의 쿠데타를 통해 자국민을 죽이고도 처벌받지 않은 경험을 가진 미얀마 군부는 무력 수단을 국내적으로 사용하는 것에 대한 어떠한 금기도 가지고 있지 않다. 미얀마에서 또 다시 반복된 쿠데타와 군에 의한 폭력 사태는 정치에 대한 군의 개입이 일단 이루어지면 이것을 멈추게 하는 것이 많은 희생과 오랜 노력을 필요로 하는 어려운 과제임을 말해주고 있다. 미얀마의 국가폭력 사태는 일차적으로는 탈식민 국가건설 과정에서 과다성장한 군부의 폭력성과 이를 가능하게 만든 정치 제도의 취약성에서 기인하지만, 미얀마 민주주의 세력과 이를 지탱해 줄 시민사회의 문제와도 관련되어 있다. 미얀마 민주주의는 수찌를 중심으로 한 버마족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고 민주주의 규범과 통치에 대한 미얀마인들의 태도 역시 이중성을 드러내 왔다. 2019년 아시아 바로미터 서베이(Asian Barometer Survey)는 87%의 미얀마인들이 민주주의를 지지하고 있으나, 3분의 2가량이 민주주의가 경제성장을 증진시키지도 질서를 유지시키지도 않는다고 믿고 있으며, 거의 절반가량이 군부가 정치에서 행하는 역할을 지지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미얀마 민주주의가 정치 제도와 엘리트 차원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와 군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과 태도 차원에서도 해결될 필요가 있음을 의미한다. 현재 미얀마 사태는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부정적 전망과 긍정적 전망을 동시에 제기하고 있다. 군부는 수찌를 비롯한 민주주의 세력의 정치활동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으며, 향후 선거 제도를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변경하고 민주주의 세력을 배재한 상태에서 선거를 치러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공고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그 사이 미얀마가 직면할 경제 위기 역시 민주화의 전망을 어둡게 한다. 지난 10년간 연평균 6% 이상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한 미얀마의 올해 국내총생산은 10% 감소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상품 수출 역시 올해 약 60% 가량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경제 위기의 최대 피해자는 인구의 약 4분의 1을 차지하는 극빈층에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 민간정부에 의한 국가의 공적 역할 수행이 부재한 상태에서 경제적 생존 능력을 상실한 국민들이 군부가 제공하는 물질적 유인에 의존하고 저항이 아닌 순응을 선택한다면 민주화에 대한 전망은 더욱 불투명해 질 것이다. 그러나 비록 장기적 차원이지만 긍정적 전망 역시 가능하다. 국가통합의 역할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합리화한 미얀마 군부는 자국민에 대한 국가테러를 자행하면서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자신의 평판을 국내외적으로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군부에 의해 억압받아 온 소수민족들은 이번 쿠데타 발발 이전에도 군에 대한 어떠한 환상도 갖고 있지 않았지만, 또 다시 물리적 탄압의 대상이 된 버마족들도 군이 국가의 수호자가 아니라 자신들만의 권력과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자국의 시민들을 상대로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의도와 능력을 지닌 존재임을 깨닫고 있다. 군의 이러한 공적, 사회적 이미지 실추는 버마족 주류 집단과 군대 사이의 접합을 약화시킴으로써 장기적으로 미얀마 사회 내 군의 역할과 위상을 축소시키고 민주화를 향한 정치 발전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이번 쿠데타는 군부의 의도와는 달리 시민들로 하여금 소수민족에 대한 인식과 태도에 있어 중요한 변화를 초래하여 다민족을 아우르는 보다 포용적이고 응집력 있는 국가를 건설할 수 있는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쿠데타 이후 시민들은 군이 자신들의 삶의 공간에서 사람들을 죽이고 고문하는 것을 직접 목격하면서 오랜 시기 자신들보다 심한 고통을 겪어 온 소수민족 사람들에 대해 공감과 동정심을 갖기 시작했다. 물론 이것이 소수민족을 포용할 근본적인 전환이 아니라 현재 직면한 군부 탄압에 맞서기 위해 소수민족 무장집단의 물리적 힘을 활용하고자 하는 단기적인 전략적 태도일 수도 있다. 그러나 군에 의한 쿠데타와 폭력적 억압에 대한 반복된 경험은 수십 년의 박해를 감내해 온 소수민족들에 대한 존중과 포용 없이는 이들을 향해 투사되던 군의 폭력이 언제든 자신들에게 돌아올 수 있는 가능성을 제거할 수 없다는 인식을 미얀마 시민들에게 심어 줌으로써 향후 다민족을 포용하는 민주주의 발전에 장기적으로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자료 1) Hamza Alavi, “The State in Post-Colonial Societies: Pakistan and Bangladesh,” New Left Review, 74 (1972), p. 61. 2) Mary P. Callahan, Making Enemies: War and State Building in Burma (Ithaca: Cornell University Press, 2003), pp. 3-5, 18-19. 3) 조용경, “미얀마 임시정부, 소수민족과 연방군 추진...군부 꺽을 변수,” 『중앙일보』, 2021년 4월 22일. 4) “미얀마 군부 쿠데타의 역설...74년 전 아웅산 꿈 이루어질수도,” 『중앙일보』, 2021년 4월 21일. 5) International Institute for Strategic Studies (IISS), The Military Balance, 2021, p. 285. 6) Michael W. Charney, A History of Modern Burma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9), p. 153. 7) 이효상, “국제사회가 힘 못 쓰자 무장투쟁으로 기우는 ‘미얀마의 봄’,” 『경향신문』, 2021년 5월 10일. 8) 대한민국 외교부, 국가/지역정보, https://www.mofa.go.kr/www/nation/m_3458/view.do?seq=16 (접속일: 2021년 5월 25일). 9) IISS (2021), pp. 286-287, 519. 10) Hannah Beech, “To Break Coup, Myanmar’s Ethnic Groups Reach for Moment for Unity,” The New York Times, May 1, 2021. 11) “It’s Time to Cut off the Gas for Myanmar’s Military Coup Leaders,” The Washington Post, April 22, 2021. 12) Hannah Beech, “In Myanmar, Strikers Intend to Oust Junta,” The New York Times, March 21, 2021. 13) “쿠데타는 미얀마 군부 비즈니스,” 『경향신문』, 2021년 4월 4일. 14) Renaud Egreteau and Lary Jagan, Soldiers and Diplomacy in Burma: Understanding the Foreign Relations of the Burmese Praetorian State (Singapore: NUS Press, 2013), pp. 42, 45. 15) “Chaos in Myanmar: Asia’s Next Failed State,” The Economist, April 17, 2021, p. 16. 16) 정의길, “‘3중 포위’ 몰린 미얀마 군부, 미-중 사이에서 줄다리기?” 『한겨레신문』, 2021년 3월 8일. 17) 정재완·김미림, “미얀마의 쿠데타 발발 배경과 전망 및 시사점,” 『세계경제 포커스』, Vol. 4, No. 5 (2021년 2월 5일), p. 4. 18) “Briefing Myanmar’s Coup: Reversion to Type,” The Economist, February 6, 2021, p. 15. 19) 채인택, “미얀마 미스터리...민심 얻고도 군부 앞에선 작아지는 수지 왜,” 『중앙일보』, 2021년 2월 8일. 20) 김찬호, “안 나서나, 못 나서나, 미얀마 두고 계산 중인 국제정치,” 『경향신문』, 2021년 4월 3일. 21) Alice Cuddy, “Myanmar Coup: What is Happening and Why?” BBC News, April 1, 2021. 22) 장준영, “미얀마의 정치위기와 불확실한 미래: 군부의 무기와 시민의 세 손가락,” 『아시아 브리프』, 1권 3호 (통권 3호, 2021년 3월 22일). 23) “Briefing Myanmar’s Coup: Reversion to Type,” The Economist, February 6, 2021, p. 16. 24) “The Meaning of Myanmar’s Coup,” The Economist, February 6, 2021, p. 10. 25) Hannah Beech, “To Break Coup, Myanmar’s Ethnic Groups Reach for Moment for Unity,” The New York Times, May 1, 2021. 26) 조유라, “국가가 버린 사람들...‘학살-추방’ 로힝야, 마르지 않는 피눈물,” 『동아일보』, 2021년 2월 27일. 27) Richard C. Paddock, “Myanmar Military Has Killed 700 Since February Coup,” The New York Times, April 12, 2021. 28) “Taking Up Arms Against Myanmar’s Golliath,” The New York Times, April 18, 2021. 29) “Myanmar’s Failing Coup: Burmese Blaze,” The Economist, April 17, 2021, p. 47. 30) 이은택, “미얀마 민주진영 국가통합정부 수립,” 『동아일보』, 2021년 4월 2일; 정문태, “버마인은 필요할 때만 소수민족 찾아...전쟁, 자선사업 아니다,” 『한겨레신문』, 2021년 5월 10일. 31) 정은혜, “미얀마 쿠데타 100일...‘군부 규탄’ 입으로만 때운 국제사회,” 『중앙일보』, 2021년 5월 11일. 32) “Myanmar’s Failing Coup: Burmese Blaze,” The Economist, April 17, 2021, p. 47. 33) 정의길, “소수민족 반군들 나선 미얀마 ‘다자 내전’ 수렁 빠지나,” 『한겨레신문』, 2021년 4월 13일. 34) 이효상, “국제사회가 힘 못쓰자 무장투쟁으로 기우는 ‘미얀마의 봄’,” 『경향신문』, 2021년 5월 10일. 35) 최경준, “미얀마 사태와 미중 관계: 지정학적 중간국의 위기,” 『성균차이나브리프』, 9권 2호, 2021, pp. 66-68. 36) 정인환, “살해→사망, 내정 불간섭 환영, 중, 국제사회 미얀마 규탄 물타기,” 『한겨레신문』, 2021년 4월 2일. 37) 이종섭, “유엔 주재 중국대사 ‘미얀마 사태 내전 이어질수도’...제재 반대 ‘정당간 해법 찾아야’,” 『경향신문』, 2021년 5월 5일. 38) 최현준, “폭력 중단? 상황 안정되면...미얀마 군부, 아세안 합의 백지화,” 『한겨레신문』, 2021년 4월 27일. 39) 이효상, “미얀마 중재 나선 아세안, 폭력 멈춰세울까,” 『경향신문』, 2021년 4월 25일; 이효상, “아세안 미얀마 ‘폭력종식’ 합의 무효되나...군부 ‘안정되면 함의 이행 검토’,” 『경향신문』, 2021년 4월 27일. 40) 양단즈, “중국의 시각에서 본 미얀마 정세와 향후 전망,” 『성균차이나브리프』, 9권 2호, 2021, p. 83; Richard C. Paddock, “General Who Led Myanmar’s Coup Arrives for Regional Talks on the Crisis,” The New York Times, April 24, 2021. 41) Max Fisher, “Bloodshed Reveals a World That’s Changed, and Hasn’t,” The New York Times, April 3, 2021. 42) “Briefing Myanmar’s Coup: Reversion to Type,” The Economist, February 6, 2021, p. 16. 43) “Myanmar’s Failing Coup: Burmese Blaze,” The Economist, April 17, 2021, p. 47. 44) Maung Zarni, “The Myanmar Military is Destroying Its Public Image,” The Washington Post, March 26, 2021. 45) Hannah Beech, “To Break Coup, Myanmar’s Ethnic Groups Reach for Moment for Unity,” The New York Times, May 1, 2021. 기획: 임해용 연구위원 편집: 안경은 연구보조원 저자소개 최경준 교수는 제주대 사회교육과에 재직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외교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워싱턴대학교(University of Washington, Seattle)에서 신생민주주의 국가의 법집행을 주제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연구분야는 법치, 국가폭력, 지정학적 중간국 외교 등이다. 주요 논문으로는 “미얀마 사태와 미중관계: 지정학적 중간국의 위기.” (성균차이나브리프, 2021), “미-중 갈등과 동남아시아: 베트남, 미얀마, 필리핀의 대응전략과 중간국 외교.” (아태연구, 2020), 저서로는 『법집행의 정치: 신생민주주의 국가의 법집행과 공권력의 변화』 (도서출판 이조, 2018)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