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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PI PeaceNet] 쿼드와 한미동맹: 한국의 선택
    저자
    마상윤(가톨릭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발간호
    2021-09
    미국, 일본, 호주, 인도 4개국이 참여하는 외교협의체인 쿼드(Quad, Quadrilateral Security Dialogue)가 미국의 대아시아 정책의 핵심으로 부상하면서 한국의 쿼드 참여에 대한 관심과 압력도 높아지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쿼드가 안보기구로 비치는 것을 경계하고 개방성과 유연성을 강조하며 다른 국가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쿼드가 우리 외교에 가지는 의미는 무엇이며 한국은 어떻게 이 문제에 접근해야 할 것인가? 가톨릭대학교 마상윤 교수의 기고문을 통해 쿼드 논의의 등장과 발전, 현황에 대해 살펴보고 한국의 정책적 입장이 어떠해야 할지 논의해보고자 한다. [편집: 유기은 (keryu@jpi.or.kr)] 최근 우리 외교와 관련해서 쿼드(Quad, Quadrilateral Security Dialogue, 4개국 안보대화)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논제는 우리의 쿼드 참여 여부로서, 참여와 불참 사이에서 하나를 고르는 양자택일 유형으로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외교의 선택지가 꼭 양단에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쿼드라는 협의체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면서 우리의 입장을 정립해 나간다면 현재 제시되는 두 개의 선택지 사이에서 창의적인 대안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이 글에서는 먼저 쿼드 가입 문제가 대두된 배경과 과정에 대해 살펴보고, 그것이 갑작스레 등장한 정책 사안이 아니라 동아시아 지역의 아키텍처 경쟁과 깊이 관련된 문제임을 보여줄 것이다. 이어서 쿼드의 발전과 현황을 검토하면서 한국의 정책적 입장이 어떠해야 할지를 논의하고자 한다.   쿼드의 재등장   쿼드는 미국, 일본, 호주, 인도 4개국의 외교 협의체를 이른다. 네 나라는 2004년 인도양에서의 쓰나미 발생 이후 구호 차원에서 협력한 바 있는데, 2007년 8월 인도를 방문한 일본의 아베 총리가 ‘두 대양의 합류(Confluence of the Two Seas)라는 주제로 의회에서 연설하면서 쿼드를 제안했다. 이런 점에서 쿼드는 일본의 지정학적 상상력의 산물로 시작되었다고 할만하다. 2007년 5월 아세안지역포럼(ARF) 마닐라 회의를 계기로 쿼드의 국장급 실무회의가 개최되었다. 같은 해 9월에는 미국과 인도의 연례적인 말라바(Malabar) 해상군사훈련에 일본과 호주가 동참했다. 그러나 아베 총리가 2007년 9월 사임했고, 호주에서도 같은 해 12월에 정부가 교체되면서 쿼드는 추동력을 상실하고 모든 활동이 중단되었다. 사라졌던 쿼드는 2017년 재등장했다. 쿼드의 부활은 중국의 부상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등장한 인도·태평양이라는 새로운 지정학적 개념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2012년 두 번째로 일본 총리직에 오른 아베 신조는 취임 직후 인도양과 태평양을 하나의 전략 공간으로 삼는 외교 구상을 다시 추진했다. 특히 트럼프행정부의 출범 직후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Free and Open Indo-Pacific)’ 구상을 마련하여 적극적으로 미국을 설득했다. 2017년 10월 틸러슨 국무장관이 인도와의 관계에 대한 공개연설에서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을 언급했다. 일본의 구상이 미국에 의해 수용되었음을 공개적으로 보여주는 첫 순간이었다. 이어 11월 개최된 미일 정상회담에서는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지역 건설을 위한 3원칙으로서 △법의 지배, 항행의 자유 등 근본적 가치의 보급과 정착, △연결성의 향상 등을 통한 경제적 번영 추구, △해양경찰 능력 배양 지원 등 평화와 안전을 위한 노력이 발표되었다. 같은 달 마닐라에서 쿼드 국장급 회의가 10년 만에 재개되었다. 의제에는 아시아의 규칙기반질서, 항행의 자유, 국제법 존중, 연계성 강화, 해양안보, 북한위협과 핵 비확산, 테러리즘 등이 포함되었으나, 실무급 회의여서 국제적으로 큰 관심의 대상이 되지는 않았다. 2020년 하반기 트럼프 행정부가 쿼드 추진에 적극성을 강화하면서 국제적 관심도 고조되었다. 비건 국무부 부장관은 8월 쿼드를 통해 NATO나 EU 같은 다자구조를 인도·태평양 지역에 만들어갈 수 있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쿼드의 장관급 회의도 열렸다. 2019년 9월 유엔총회 계기에 뉴욕에서 쿼드 외교장관회의가 개최되었던 데 이어, 2020년 10월 도쿄에서 두 번째 장관급 회의가 단독행사로 개최되었다. 다만 국가 간 이견 때문에 공식성명서나 합의문은 도출되지 못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2021년 1월 출범 직후부터 쿼드의 계승 및 발전을 표명해왔다. 바이든 행정부가 전임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에 대해 매우 비판적임에 비추어 볼 때 쿼드 계승 입장은 이례적이기까지 하다. 캠벨 인도태평양조정관은 임명 직전 발간된 『포린 어페어즈』 공동기고문에서 쿼드를 중국의 도전에 대응하는 창의적 접근으로 묘사했다. 설리반 국가안보보좌관은 1월 29일 열린 미국국제평화연구소 주최 화상토론회에서 쿼드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정책을 구축해 나갈 기본적인 토대가 될 것”이라며 “쿼드의 형식과 작동 방식을 계승 발전시키겠다”고 했다. 쿼드에 대한 바이든 행정부 주요 인사들의 이러한 말은 구체적 행동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블링컨 국무장관은 2월 18일 쿼드 외교장관 간 통화를 통해, 매년 장관급을 포함하여 각급에서의 회의를 정례화하기로 했다. 더욱 중요한 진전으로서 3월 12일 쿼드 정상회의가 비록 화상으로지만 최초로 개최됨으로써 쿼드에 실리는 무게감이 더욱 커졌다. 정상회담 후 발표된 공동성명은 강압에 구속되지 않는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지역이라는 비전하에 포괄적 안보협력을 추구한다고 밝혔다. 중국을 명시적으로 지명하지는 않았지만 중국을 겨냥한 것이었다. 아울러 동 회담을 통해 4개국은 백신 전문가 워킹그룹, 핵심 신기술 워킹그룹, 그리고 기후 워킹그룹을 만들기로 했다. 또한 향후 연내에 대면 정상회의를 갖기로 하였다. 이렇듯 쿼드는 최근 들어 괄목할만한 성장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러한 가운데 미국의 핵심동맹국인 한국의 쿼드 참여에 대한 관심과 압력도 높아지고 있다.   동아시아 지정학과 아키텍처 경쟁   한국은 쿼드에 참여할 것인가? 그동안 우리 외교당국은 쿼드에의 참여 가능성에 대해 대체로 소극적인 자세를 취해왔다. 작년 9월 강경화 외교장관은 “다른 국가의 이익을 자동으로 배제하는 협력체는 그 어떤 것도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해 쿼드 가입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표현했다. 금년 3월 정의용 외교부 장관도 “투명하고 개방적이며 포용적이고 또 국제 규범을 준수한다면 어떤 지역 협력체와도 적극 협력할 수 있다”라고 말하며 원칙적인 입장을 반복했다. 최종건 외교부 제1차관도 “특정 국가를 배척하거나 그들을 견제하기 위한 배타적 지역구조는 만들면 안 된다는 것이 우리 역대 정부가 추구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정부의 소극적인 자세가 전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사실 우리의 이익에 비춰볼 때 쿼드가 최선의 선택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의 입장에서 최선은 유럽에서의 공동체 형성과 같이 지역 내 국가 간 협력을 활성화하고, 이에 기반을 둔 평화를 동북아 지역에 뿌리내리며, 그러는 가운데 한반도 분단과 대립의 문제도 동시에 해결해 나가는 것이다. 실제로 동북아 국가들의 협력을 기초로 ‘공동의 집’을 건설하여 평화를 도모한다는 비전을 한국 외교는 탈냉전 이후 지속적으로 천명해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동북아시아를 갈등과 대립이 아니라 평화와 협력의 지역으로 만들어 나가겠다는 비전은 지금까지 이렇다 할 구체적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공동의 집’이 논의되던 당시에 비해 보더라도 현재 동아시아의 지역정세는 험악하기만 하다. 중국의 급속한 부상과 함께 지정학적 긴장과 대립이 빠르게 귀환하였다. 새로운 냉전의 도래라는 진단조차 점차 현실감 있게 거론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쿼드라는 새롭게 대두되고 있는 지역 아키텍처는 이러한 지정학적 추세의 산물이면서 동시에 그러한 추세를 한층 가속화할 잠재성도 지닌다. 그것은 공생을 위한 집이라기보다는 경쟁을 기본 구도로 삼는 집으로 보인다. 미국과 중국의 전략적 경쟁을 배경으로 지어진 건축물이어서 우리에게 불편하고 심지어 위험할 수도 있다. 중국의 거친 대내외 행보가 주변국에 두려움을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적절한 대응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자칫 대응이 과도할 경우 역내 정세의 불안정성이 커질 위험도 있다. 한국에게는 특히 곤란한 상황이 될 수 있다. 한국은 주변국에 비해 상대적 약소국이며, 무엇보다도 핵무장한 북한이 제기하는 사활적 위협에 대응해야하기 때문이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쿼드는 인도태평양 전략 내지 구상을 구현하기 위한 플랫폼으로 급부상하고 있고, 그 배경에는 일본의 적극적 역할이 있었다. 인도태평양이라는 지정학적 개념은 인도와 호주에서 오랫동안 거론되어왔으나, 그것을 현실의 정책과 움직임으로 끌어들이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협력체로서 쿼드를 제안했던 것은 일본의 아베총리이다. 일본은 부상하는 중국에 큰 위협을 느끼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을 끌어오는 데 성공했으며, 이어서 호주와 인도도 강하게 당기고 있다.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에 맞서기 위해 쿼드를 적극 활용하기로 하면서 일본이 제시한 지정학적 구상은 빠르게 현실로 굳어지고 있다. 미국이 쿼드에 관심을 갖고 외교적 투자를 적극화하고 있는 이유는 분명하다. 중국과의 전략적 경쟁이 불가피하다는 인식 하에 동맹국들과 힘을 합쳐 중국에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동북아지역 다자협력체 건설이라는 한국의 오랜 지역구상이 제자리걸음을 하는 사이에 인도태평양지역에는 미중경쟁을 위한 아키텍처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동북아정세도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쿼드가 우리에게 아무리 불편하다고 하더라도 현실을 부정하거나 외면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쿼드의 현황과 한국의 선택   쿼드가 미국의 대아시아정책의 핵심으로 급속히 부상하면서 한국의 참가에 대한 찬반논의가 뜨겁게 진행되고 있다. 조속한 참가를 주장하는 입장은 우리의 동맹국이며 같은 가치를 공유하는 미국의 편에 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경제적으로도 미국과의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야 첨단산업기술을 발전시키는 데 유리하다고 본다. 반면 한국의 쿼드 가입에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우리의 대외교역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높은 비중과 대북정책 차원에서의 중국과의 협력 필요성을 거론한다. 그러면서 미국 주도의 반(反)중국연대로 인식되고 있는 쿼드에 가입함으로써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될 것을 우려한다. 우리 정부는 쿼드 가입과 관련하여 투명성, 개방성과 포용성의 원칙을 내세우며 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대체로 부정적인 입장에 가까운 것으로 감지되고 있다. 최종건 외교부 차관은 쿼드와 관련해 “특정 국가를 배척하거나 그들을 견제하기 위한 배타적 지역구조는 만들면 안 된다는 게 우리 정부가 추구해온 입장”이라고 말한 바 있다. 정부는 쿼드에 대한 미국의 공식적인 참가 요청이 없었다고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공식적 요청이 없었다 하더라도 한미 간에 쿼드에 대한 논의가 있었으며, 미국이 한국의 참여를 희망하고 있다는 점은 거의 분명해 보인다. 사실 인도·태평양 지역에는 한국과 같이 군사, 경제, 과학기술 등 여러 차원의 높은 수준의 능력을 골고루 갖춘 나라가 드물어서 한국의 참여는 미국이 추진하는 지역네트워크 형성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다만 미국은 한국정부의 현재 입장을 감안하여 강하게 압박하지 않고, 대신 우선 한미일 삼각협력을 유도하고 점차적으로 쿼드와의 협력도 확대하도록 독려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 당국자들은 “쿼드에 관한 한국과의 긴밀한 협의와 참여를 환영할 것”이라면서 쿼드에 대해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을 유지하고 지원하는 것에 관심을 있고 비슷한 생각을 가진 국가들을 묶으려는 시도” 또는 “유사한 생각을 가진 나라들이 원칙적으로 코로나19·기후변화 등 공동문제를 논의하는 모임”라고 설명한다. “특정 국가를 배제하겠다는 방향성은 없다”고 하면서 쿼드가 반중국 연대라는 인식도 불식하려 한다. 또한 미국은 한국에 “반도체 공급 등 기술 분야 협력, 동남아시아에 대한 코로나19 백신 공급과 같은 여러 의제에 공식 참여의 기회가 있을 수 있다”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쿼드의 방향에 관해서는 여전히 모호성이 존재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군사적 측면이 될 것이다. 이는 물론 중국이 가장 민감하게 여기는 분야이다. 현재 미국은 쿼드가 비공식적 협의체라고 강조하고 있고, 협력 의제도 주로 방역, 기후변화, 공급망 같은 연성안보 사안이 부각되고 있다. 그러나 쿼드와 관련된 군사적 활동도 계속되고 있다. 쿼드국가들의 말라바 해상연합훈련이 인도양에서 정기적으로 실시되고 있으며, ‘쿼드+α’의 형태로 쿼드 4개국과 프랑스는 지난 4월 5일부터 7일까지 인도 동부 벵골만에서 합동해상훈련을 실시했다. 최근 미국-인도(3.28-29, 인도양 동부), 일본-호주(3.29-31, 남중국해), 미국-일본(3.29, 동중국해) 등 쿼드 내 양자훈련도 활발히 실시되고 있으며, 쿼드 국가 중 일부와 동남아시아의 비쿼드 국가가 참여하는 형태의 연합군사훈련도 모색되고 있다. 이렇듯 쿼드를 중심으로 하는 다양한 형태의 군사 활동은 쿼드가 갖는 군사적 의미를 배제할 수 없음을 나타낸다. 해양안보 그리고 대중 군사적 견제 등의 이슈가 지금은 회피되고 있지만 현재의 쿼드 참가국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만약 이러한 문제가 다루어지지 않는다면 쿼드는 별 의미 없는 협의체가 될 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른 한편 앞으로 쿼드에서 이러한 문제가 본격적으로 다루어진다면 사안의 민감성으로 인해 한국으로서는 쉽게 쿼드에의 참여를 공식화할 수 없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현재 시점에서 한국으로서는 쿼드에 가입하는 것이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지금까지처럼 쿼드에의 ‘가입’ 또는 ‘참여’ 여부를 논의하는 대신, 어떤 분야에서 어떤 방식으로 ‘협력’할 것인가로 검토의 주안점을 바꿀 필요가 있다. 쿼드는 아직도 움직이며 진화하고 있다. 핵심 질문은 쿼드의 성격인데, 특히 미중관계의 민감한 문제를 얼마나 건드릴 것이냐이다. 미국은 현재로서는 비공식적 협의체이며, 방역, 기후변화, 핵심 신기술 공급망의 세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쿼드가 가입 절차를 밟아야하는 제도화된 공식 기구가 아니라면, 또한 초점을 맞추고 있는 분야가 비교적 덜 민감한 연성안보에 집중되어 있다면 우리도 선택적으로 사안별 협력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기후변화는 세계 모든 국가들이 협력해야하는 문제이며, 백신 공급도 우리 뿐 아니라 역내 모든 개발도상국들에게 시급한 해결을 요하는 중대한 사안인 만큼 이에 대한 우리의 쿼드와의 협력이 문제될 이유는 없다. 반도체 등 새로운 핵심 기술 공급망 문제는 미중 간 지경학적 대립 사안으로 빠르게 전화되고 있어서 예민한 문제이지만, 원천기술의 소재와 지속적인 기술 발전 필요성, 그리고 미래의 시장 전망 등을 고려한다면 중장기적으로 미국과의 긴밀한 협력 유지가 긴요하다. 물론 모든 사안에 대해 일괄적으로 협력해야하는 것은 아니며, 국익의 관점에서 상황을 고려하면서 협력의 대상을 차츰 확대해가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쿼드 참여문제가 제기되는 중요한 이유는 미국과의 동맹관계이다.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동참의 압력이 직간접적으로 가해진다. 그러나 미국의 현재 관심은 한국의 쿼드 참여 자체라기보다는 인도태평양지역질서에 대한 한국의 정책 방향을 확인하고 싶은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지 모른다. 이는 쿼드에의 참여 또는 불참의 문제보다 더 큰 차원에 있어서의 한국의 지역외교 전략에 관한 문제이다. 쿼드와의 선택적 협력은 일단 지역질서에 대한 우리의 지향점을 보여주는 시그널이 될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는 지금까지 지역질서형성에 대한 전략적 관심이 부족했다. 동북아 공동체 건설이라는 탈냉전 이후의 오랜 비전은 비전으로서만 존재할 뿐 현실적 추동력이 부족했고 이렇다 할 성과도 얻지 못했다. 지역전략의 사실상의 부재는 북핵문제에서 비롯하는 한반도 안보 현안의 시급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지역전략에 대한 의도적 회피의 결과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한국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쿼드에의 참여냐 불참이냐를 묻는 것은 좋은 질문이 아니다. 계속 미국과 중국의 눈치를 살피면서 그때그때의 상황을 모면하려는 태도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문제는 전략적 비전과 방향성이다. 쿼드에 대해서는 사안별 선택적 협력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시급한 연성안보 사안을 중심으로 협력을 시작하되, 조심스럽게 협력 분야를 확대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쿼드 일부 국가와의 양자 또는 삼자 협력도 가능한 선택지이다. 쿼드와의 협력을 모색해가되,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지역질서에 대한 우리 나름의 분명한 전략적 계산과 원칙을 마련하는 일은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고 시급한 과업이 되었다. 【끝】 기획 및 편집: 유기은(제주평화연구원 박사 후 연구원) 저자소개 마상윤 교수는 가톨릭대 국제학부에 재직중이다. 서울대학교에서 외교학 학사와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으며, 그 후 옥스포드 대학교에서 1960년대 미국의 대한(對韓)정책에 대한 논문으로 국제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그의 주된 연구 관심사는 동아시아 국제정치, 미국의 대외정책, 한미관계, 냉전사 등이다. 2011~2012년에는 브루킹스 연구소(Brookings Institution) 방문학자, 우드로윌슨 센터(Woodrow Wilson Center) 공공정책학 연구학자를 지낸바 있다. 2015년에는 한국국제정치학회 총무이사로 활동하였으며,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외교부 정책기획관/외교전략기획관을 역임하였다.
  • [JPI PeaceNet] 바이든 행정부의 무역정책: 트럼프 없는 트럼프주의?
    저자
    이왕휘 교수(아주대학교)
    발간호
    2021-08
    [편집자 註] 새롭게 출범한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주의를 탈피하고 다자주의를 바탕으로 한 자유무역으로 회귀할 것인가? 선거 유세에서 대중 보복관세가 미국 기업과 소비자에게 부담을 준다고 주장했던 바이든 후보는 대통령은 취임 후 기존 정책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입장으로 선회하였다. 아주대학교 이왕휘 교수의 기고문을 통해 취임 후 100일 동안 바이든 시대 무역정책이 향후 세계무역질서, 미중관계 및 한미관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편집: 임해용 연구위원(haeyonglim@jpi.or.kr)] 취임 후 100일 동안 바이든 행정부의 무역정책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트럼프 없는 트럼프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인권, 민주주의, 기후변화 등에서 트럼프 행정부와 차별화된 정책을 제시했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무역과 중국 등에서는 미국우선주의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미국무역대표부(USTR)는 중국이 국유기업 보조금, 지적재산권 도용, 덤핑 불공정 행위 등을 개선할 때까지 트럼프 행정부가 부과한 관세의 축소/철회를 유보하겠다고 천명하였다. 보호주의의 유일한 예외는 3월 유럽연합(EU) 및 영국과 항공기 보조금 분쟁에서 보복관세를 유예하고 협상을 통한 해결을 모색하는 데 합의한 것이 유일하다. 지금까지 백악관이 발표한 행정명령과 미국무역대표부(USTR)가 발간한 보고서를 보면,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 기업과 노동자의 경쟁력 강화라는 명분 하에 보호주의를 밀어붙이고 있다.   취임 후 바이든 행정부의 보호주의로 선회 사실 바이든 행정부가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주의를 계승할 것이라는 예상은 거의 없었다. 선거 기간 중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주의를 비판했었다. 중국산 상품에 부과한 보복관세가 미국 기업과 소비자가 지불해야 하는 추가 비용이라는 것이다. 또한 미국이 세계무역질서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 위해 세계무역기구(WTO)에 복귀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하였다. 그러나 취임 후 바이든 대통령은 자유주의로 복귀하기보다는 보호주의를 용인하고 있다. 이 때문에 바이든 대통령이 공약을 지키지 않는다는 부정적 평가가 나오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발표한 행정명령은 그 제목과 내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집행했던 행정명령과 별 차이가 없다. 1월 25일 미국제품 구매 행정명령(E.O. 14005)은 연방기관이 미국산 상품과 서비스를 더 많이 구매하도록 만들었다. 미국산 규정을 더 엄격하게 관리하기 위해 백악관 예산관리국(OMB) 산하에 미국산(Made-in-America)국을 신설하기로 하였다. 2월 24일 공급망 평가 행정명령(E.O. 14017)은 글로벌 공급망에서 미국의 역할을 증진하기 위한 조치를 담고 있다. 반도체, 전기차용 대용량 배터리, 희토류, 의약품에 대해서는 100일, 국방산업, 보건, 정보통신기술(IT), 에너지, 교통, 농업 및 식량 생산 등에 대해서는 1년 동안 평가하여 관련 부처가 공동으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반도체 품귀로 자동차 및 방산 업체가 조업을 중단하는 문제가 악화되자 백악관 국가안보실(NSC)과 국가경제위원회(NEC)가 공동으로 반도체 공급망을 점검하는 회의를 4월 12일 개최하였다. 이 회의에는 미국 기업인 인텔, 엔비디아, 델, 마이크론, 글로벌파운드리, 알파벳, 포드, 제너럴모터스, 노스롭그루먼, 커민스뿐만 아니라 한국의 삼성전자와 대만의 TSMC로 참여하였다. 캐서린 타이 USTR 대표의 경력과 성향도 자유무역보다 보호주의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타이 대표는 환경 및 노동 기준을 중시하는 민주당의 무역정책 기조에 충실하였다. 중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타이 대표는 중국에 강경한 대응을 예고하였다. 상원 인사청문회에서 98명 전원의 만장일치로 인준을 받았기 때문에 타이 대표는 대중 협상에서 상당한 재량권을 행사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보호주의의 구조적 원인 바이든 행정부가 트럼프 행정부와 유사한 보호주의를 지속한 이유는 세 가지로 설명될 수 있다. 먼저 미국에서 세계화에 대한 지지가 약화되었다는 사실에 주목을 해야 한다. 세계화가 본격적으로 추진된 1980년대에는 무역자유화과 금융개방이 미국의 경쟁력을 향상시킬 것이라는 기대가 충만하였다. 1990년대 안으로는 무역 및 재정 적자를 극복하고 밖으로는 일본의 도전을 방어하고 냉전에서 승리함으로써 이런 기대가 잘 구현되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부정적 평가가 긍정적 평가를 압도하기 시작하였다. 세계화의 경제적 성과가 특정 집단과 지역에 불균등하게 분배됨으로써 미국 내에서 빈부 격차가 확대되었다. 제조업 공동화에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저숙련 저임금 일자리가 급속히 줄어들면서, 세계화에 대한 정치적 지지를 약화시켰다. 2016년 대통령 선거에서 미국제일주의를 제창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었다는 사실은 미국 내에서 자유무역보다 보호주의가 우세하다는 인식을 강화하는 데 일조하였다. 미국 내 보호주의는 대중 강경론과 밀접하게 연계가 되어 있다. 중국이 WTO에 가입한 이후 미국의 대중 무역적자가 급속히 증가하였다. 미국은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불공정 무역과 환율 조작의 시정을 지속적으로 요구하였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중 무역적자는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더 많은 미국 다국적 기업이 인건비 절감을 위해 중국으로 생산시설을 이전하였다. 이런 과정을 통해 실업이 발생한 지역에서 보호주의는 반중 정서와 결합되었다. 중국과 경합하는 산업을 가진 지역에서 보호주의가 득세하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보호주의와 대중 강경론이 경제-안보 연계(economy-security nexus)를 강화시키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2017년 『국가안보전략』보고서는 “경제안보는 국가안보”라고 선언하였다. 트럼프 행정부는 경제 문제의 해결을 위해 안보 수단을 동원하거나 반대로 안보 문제의 해소를 위해 경제 재제를 부과하였다. 이러한 기조는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2021년 3월 발표된 『국가안보 전략 중간 지침』에 “경제안보는 국가안보”라는 구절이 들어있다.   바이든 행정부의 무역정책 기조 물론 바이든 행정부는 대중정책에서 트럼프 행정부와 차별성을 가지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을 일관되게 압박하였던 반면, 바이든 행정부는 경쟁, 협력, 적대를 병행하는 복합적 방식을 추구하고 있다. 토니 블링큰 국무장관은 “우리의 중국과 관계는 경쟁적이어야 할 때는 경쟁적, 협력적일 수 있을 때는 협력적, 적대적이어야만 할 때는 적대적일 것이다”라고 주장하였다. 재닛 옐런 재무장관도 이 입장을 공유하고 있다. 현재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과 협력을 추구하는 분야는 코로나19 전염병, 기후변화, 비핵화, 적대적인 분야는 민주주의, 인권, 안보라고 할 수 있다. 무역은 협력과 적대의 중간에 있는 경쟁 분류로 될 수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할 무역정책의 기조는 『2021년 무역정책 의제 및 2020년 연간 보고서』 에 제시되어 있다. 가장 우선적인 과제는 코로나19 위기 극복과 경제회복 추진에 두어져 있다. 코로나를 극복하는데 필요한 의약품을 미국 내에서 생산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것이다. 그다음으로 USTR은 노동자의 권익을 무역정책의 핵심으로 규정하였다. 바이든 대통령의 선거공약에 들어있었던 중산층 부흥이 노동자 권익으로 대체되었다. 이는 바이든 행정부가 반세계화를 지지하는 노동단체의 이해관계를 정책결정에 적극적으로 반영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세 번째는 글로벌 기후변화 대응 노력에 대한 강조이다. 이 과제를 달성하기 위한 조치로 탄소국경조정(Carbon Border Adjustments) 제도가 논의되고 있다. 중국의 불공정 무역 관행에 대한 대응이 네 번째 과제이다. 무역전쟁 발발 이후 협상해온 수출보조금, 과잉생산, 지재권 침해 등에다 신장위구르자치구 인권 탄압 및 강제 노동이 추가되었다. 이외에도 USTR은 글로벌 통상규정 확립, 글로벌 공정 경제성장 확산, 국제 통상규범의 철저한 이행에서 미국의 역할을 확대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세계무역질서에 미국의 적극적 개입은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우선주의로부터 탈피를 의미한다. 미국의 국제적 역할에 대해서 바이든 행정부와 트럼프 행정부의 차이는 목표보다는 방식과 수단에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동맹국에게도 가혹한 조치를 불사하는 일방주의를 추구한 반면, 바이든 행정부는 동맹국과 참여하는 다자주의를 통해 중국을 압박하려고 한다. 그렇지만 미국이 새로운 무역협상을 추구할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 캐서린 타이 USTR 대표는 미국의 노동자와 기업이 국제적으로 경쟁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하기 전까지 어떤 종류의 대외협상에도 나서지 않겠다고 발언하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직후 탈퇴를 선언했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으로 복귀나 일본 주도로 재편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가입은 당분간 논의되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보호주의 수단으로서 디지털세와 탄소국경세 현재 바이든 행정부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디지털세와 탄소국경세는 자유무역보다는 보호주의를 조장할 가능성이 크다. 이 중 디지털세는 이미 무역분쟁의 대상이 되었다. 2019년 7월 프랑스는 37개 IT 기업에게 온라인 중개수수료, 온라인 타깃 광고, 데이터 판매 등에 세금을 부과하는 제도를 도입하였다. 12월 USTR은 1974년 통상법 301조 조사를 통해 프랑스의 디지털세가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이베이 등을 포함한 17개 미국 기업의 이익을 침해했다며 프랑스산 수입품 63종에 최대 100% 보복관세를 부과하였다, 프랑스가 OECD를 통해 미국과 디지털세에 대한 국제규범을 논의하기로 합의하면서, 보복관세 부과는 유예되었다. 2020년 6월 2일 USTR은 EU, 오스트리아, 영국, 브라질, 체코, 인도, 인도네시아, 이탈리아, 스페인, 터키 등 10개 국가의 디지털 서비스세에 대한 301조 조사를 개시했다. 2021년 3월에 발표된 조사결과에 따르면, 디지털세를 실제로 집행한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스페인, 영국, 터키 및 인도에 대해서는 불공정 세제로 판정하였고 아직 세금을 부과하지 않은 EU, 체코, 브라질 및 인도네시아에 대해서는 조사를 종결하였다. OECD를 중심으로 한 국제적 합의에 도달하지 않을 경우, 미국이 보복조치 유예를 일방적으로 파기할 가능성이 남아 있다. 탄소국경세는 향후 무역분쟁의 소재가 될 가능성이 크다. 탄소국경세는 2019년 12월 EU 집행위원위가 발표한 유럽 그린딜(European Green Deal)에 포함되어 있다. 이 세금을 매기는 이유는 환경오염 물질을 배출한 당사자의 처리 비용 부담과 환경 규제가 약한 국가로 탄소 배출원을 이전하는 탄소 누출 현상 예방에 있다. 셰일 가스 혁명 이후 생산량이 증가된 석유 및 천연가스의 수출을 도모했던 트럼프 행정부는 이 세금의 도입에 반대했다. 그러나 그린 뉴딜을 지지하는 바이든 행정부는 무역정책의 핵심과제에 탄소국경조정 제도를 포함시켰다. 탄소배출양의 정점에 이미 도달했던 선진국은 도입에 긍정적이지만, 그렇지 못한 개발도상국 및 저개발국은 비용 부담을 우려하고 있다. 그래서 탄소배출량 1위 중국과 3위 인도는 이 세금을 선진국의 보호주의 수단으로 비판하고 있다.   향후 무역 정책 과제 향후 바이든 행정부의 무역정책은 공급망 재편, 대중 무역적자 및 기후변화 협상에 영향을 받을 것이다. 4월 12일 백악관 반도체 회의에서 알 수 있듯이, 미국은 핵심 산업의 공급망을 미국에 건설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공급망 건설은 바이든 행정부가 단기간에 달성할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 중국보다 더 좋은 공급망을 가진 국가가 없기 때문에, 많은 미국 기업이 트럼프 대통령의 회유와 위협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생산시설을 미국으로 복귀시키지 않았다. 오히려 세계 최대 전기자동차 업체 테슬라는 2019년 이후 중국 상하이에 50만 대를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신설하였다. 이 때문에 미국과 중국 사이의 탈동조화는 아주 제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대중 무역적자 문제도 바이든 행정부가 직면한 난제이다. 무역전쟁이 정점에 이르렀던 2019년 축소되기 시작했던 무역적자가 2020년 3월 코로나 19 위기 발생 이후 다시 증가하는 추세로 전환되었다. 2021년 1분기에는 미국의 대중 수입이 전년 동기 대비 60%  이상 급증하였다. 그 결과 2월 무역수지 적자는 역대 최대인 711억 달러로 치솟았다.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하는 인프라 건설이 본격화되면, 중국산 제품의 수입이 더 늘어날 것이다. 따라서 무역적자는 당분간 해결되기 어려울 것이다. 기후변화정책이 무역정책에 미치는 영향은 점점 더 커질 것이다. 미국과 EU가 탄소국경세를 도입을 할 경우, 중국과 인도를 위시한 개발도상국의 반발이 예상된다. 중국은 미국과 EU가 산업화를 늦게 시작한 국가에게 불공평한 부담을 지우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마지막으로 미국이 WTO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WTO가 중국 편향이라고 비판하면서 상소기구 위원의 충원에 반대하고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사무총장 선임 절차를 지연시켰다. 바이든 대통령은 WTO에 복귀해 지도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그러나 타이 대표는 미국·멕시코·캐나다무역협정(USMCA) 및 미중 무역 관계를 우선한다는 입장을 표명하였다. 제12차 WTO 각료회담에서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무역과 보건 이니셔티브(Trade and Health Initiative)이다. 2019년 기준 회원국이 의약품에 부과하는 관세도 평균 10~20% 이상이다. 코로나 19 위기 발생 직후인 75개 국가가 의약품의 수출을 통제하였다. 2020년 4월 관세와 통제를 철폐한 뉴질랜드와 싱가포르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회원국은 여전히 통제하고 있다. 특히 미국과 EU의 백신민족주의는 환자가 많이 발생한 국가가 백신을 구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WTO에서는 의약품 교역과 관련된 규제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기후변화 예방을 위한 환경 상품과 서비스도 논의되고 있다. 환경 상품의 관세율을 대폭 낮추기 위한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데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입장 차이가 좁혀지지 않고 있다. 중국산 자전거에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고 있는 미국과 EU는 자전거를 환경 상품에 포함을 시키자는 중국을 제안을 수용하지 않고 있다. 디지털 무역에 대해서는 관세 부과, 데이터 이동, 컴퓨팅 설비 현지화, 소스코드 등을 포함한 글로벌 전자상거래 규범이 타결되어야 한다. 디지털 보호주의를 막기 위해서는 미국, EU, 중국이 데이터 보호, 개인정보 보호, 사이버 보안 등을 포함한 다양한 쟁점에 대한 합의를 통해 규범을 확립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협상에 참가했거나 체결한 CPTPP와 USMCA에 반영되어 있는 원칙을 WTO 차원에서 확산시키려고 한다.   한미협력의 가능성과 과제 2019년 FTA 개정을 한 이후 한미 협력을 잘 유지되고 있다. 개방형 통상국가로서 한국은 WTO 중심의 자유무역 원칙을 미국과 공유하고 있다. 미국은 2020년 WTO 사무총장 선거에서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을 지지하였다. 한국이 CPTPP 가입한다면 디지털 무역과 환경 무역에서도 한국은 미국이 선호하는 규범을 자연스럽게 수용하게 될 것이다. 또한 공급망 재편에서 한국의 반도체, 배터리, 5G 기업은 미국에게 탈중국을 할 수 있는 대안을 제공해줄 수 있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공장을 텍사스주,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은 배터리 공장을 각각 오하이오주, 조지아주에 건설할 계획이다. 이런 점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 사이의 분쟁을 중재하는데 직접 개입을 했다는 사실은 의미가 있다. ----------------------------------------------------------------------------- 참고문헌 [1] Dani Rodrik, Why Does Globalization Fuel Populism? Economics, Culture, and the Rise of Right-Wing Populism, Working Paper. John F. Kennedy School of Government (2020) [2] David H. Autor, David Dorn, and Gordon H. Hanson, The China Syndrome: Local Labor Market Effects of Import Competition in the United States, American Economic Review, 103(6) (2013); David Autor, David Dorn, Gordon Hanson, and Kaveh Majlesi, Importing Political Polarization? The Electoral Consequences of Rising Trade Exposure, American Economic Review, 110(10) (2020) [3] White House, National Security Strategy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2017), p.17. [4] White House, Interim National Security Strategy Guidance (2021), p.15. [5] Antony J. Blinken, A Foreign Policy for the American People, Department of State (March 3, 2021) [6] Janet L. Yellen, Remarks by Secretary of the Treasury Janet L. Yellen on International Priorities to The Chicago Council on Global Affairs, U.S. Department of the Treasury (April 5, 2021) [7] USTR, 2021 Trade Policy Agenda and 2020 Annual Report (2021) [8] Bob Davis and Yuka Hayashi, New Trade Representative Says U.S.Isn’t Ready to Lift China Tariffs, Wall Street Journal (March 28, 2021) [9] USTR, USTR Announces Next Steps of Section 301 Digital Services Taxes Investigations (March 26, 2021) [10] James Bacchus, Reviving the WTO: Five Priorities for Liberalization, Policy Analysis NO. 911, Cato Institute (2021) [11]White House, Statement by President Joe Biden on the Electric Battery Dispute Settlement (April 11, 2021) 기획 및 편집: 임해용(제주평화연구원 연구위원) 저자소개 이왕휘 교수는 아주대 정치외교학과에서 재직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외교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영국 런던정경대(LSE)에서 동아시아 금융위기를 주제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연구분야는 미중 경쟁, 동아시아 정치경제, 기업지배구조 등이다. 주요 논문으로는 “미중 무역전쟁: 미국 내에서 보호주의에 대한 저항과 중국의 대미 로비.” (국방연구, 2018), (공저) 『미중 전략적 경쟁,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풀어야 하나』(극동문제연구소, 2020) 등이 있다.
  • [JPI PeaceNet] 바이든 행정부와 민주주의:  비민주주의 국가에 대한 미국의 대응 전략과 전망
    저자
    정승철 (제주평화연구원 연구위원)
    발간호
    20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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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정승철 연구위원(scchung@jpi.or.kr)]   I. 들어가며 2021년 3월 26일, 미국 대통령 조 바이든(Joe Biden)은 영국 총리 보리스 존슨(Boris Johnson)과의 통화에서 중국의 ‘일대일로(BRI: Belt and Road Initiative)’에 맞서 민주주의 국가가 주도하는 인프라 건설 프로젝트를 구축할 것을 제안하였다. 즉, 민주주의 국가들이 모여 경제적 도움을 필요로하는 국가, 지역에 인프라 건설을 지원하는 계획을 바이든이 제안하고 나선 것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과거부터 최근까지 오랫동안 계속해서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강조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예로, 지난해 11월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된 조 바이든은 2021년에 민주주의 국가 간의 정상회담(Summit for Democracy)을 개최하려는 계획을 밝혔었다. 또한, 바이든은 지난 2020년 11월 15일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태평양 지역 15개국이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을 체결하자 이에 맞서 미국은 민주주의 국가 간의 협력을 통해 국제무역규칙을 새롭게 쓰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리고 지난 2021년 1월 20일 대통령 취임사에서 조 바이든은 ‘민주주의(democracy)’라는 단어를 총 11차례 언급하였다. 이는 역대 대통령 취임사 가운데 ‘민주주의’를 가장 많이 언급한 사례라고 한다. 나아가 2021년 2월 20일 뮌헨안보회의(Munich Security Conference)에서 바이든은 민주주의 수호와 민주주의 국가 간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2021년 3월 26일 바이든은 민주주의 국가로 이루어진 ‘일대일로’를 제안하였다. 이처럼 조 바이든은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중요시 여기며 민주주의 국가 간 정치·경제·안보 분야에서의 유대를 강화하려는 의지를 계속해서 전 세계에 표출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바이든이 이번에 공개적으로 민주주의 국가의 결집을 제안하게 한 중국의 일대일로는 무엇이며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미국이 맞서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바이든이 구상하는 민주주의 국가 간의 협력은 어떤 모습으로 구현될 것인지, 그리고 바이든의 이러한 제안이 한국의 외교에는 어떤 영향을 끼칠지에 대한 전망을 본 원고에서 다루어 보도록 하겠다.   II. 바이든이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지목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번 바이든의 발언은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미국을 비롯한 민주주의 국가들이 대응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나온 발언이다. 그렇다면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란 과연 무엇인가? 이는 2013년부터 중국이 시행해온 대규모 프로젝트로 유라시아 대륙과 아프리카를 포함한 100여 개 이상의 국가에 인프라 (도로, 철도, 항만 등) 건설을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를 통해 중국과 유라시아, 아프리카 국가들 간의 연결성을 향상시킴으로써 이들을 하나의 경제권으로 묶고자 하는 중국의 야심찬 계획이며 현재 이를 하나하나 실행하는 중이다. 다만 중국이 일대일로 정책을 벌이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 일부 학자와 전문가들은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이 어디까지나 경제적인 목적을 지닌 프로젝트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가 오로지 경제적인 목적만을 지닌 프로젝트는 아니라는 부정적인 시각 또한 존재한다.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는 유라시아 대륙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넓히고 미국 패권에 맞서기 위한 목적을 지닌 전략이라는 것이다. 또한, 중국의 투자를 통해 인프라를 향상하고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일대일로 프로젝트가 이를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긍정적인 평가만을 받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중국의 투자를 유치하는 국가 내 국민들은 중국이 투자금과 함께 중국 노동자들을 데리고 오기 때문에 현지인 고용창출에는 정작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 중국의 투자결정이 종종 정부 대 정부 간에 비밀리에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아서 현지인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궁극적으로 중국자본의 유입으로 인해 자국 경제의 중국 의존도가 높아진다는 점 등을 들어 중국 자본 유치, 그리고 일대일로 프로젝트 참여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현지에서 널리 퍼지고 있기도 하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처럼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가 중국의 영향력을 전 세계로 넓히려는 야심을 담고 있다는 점, 하지만 이를 실행하는 과정과 결과에 대해 참여국들 사이에서 부정적인 인식이 널리 퍼지고 있다는 점을 파고들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일대일로 프로젝트가 유라시아 대륙과 아프리카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전략으로 인식한 바이든 행정부는 이를 견제하기 위한 명분으로 민주주의 국가가 주도하는 ‘미국판’ 혹은 ‘서방식’ 일대일로를 계획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III. 바이든이 추구하는 민주주의 국가 간 연대 정책에 대한 전망 바이든은 대선 후보 시절이던 2020년 상반기, Foreign Affairs지에 기고한 글에서 자신이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미국은 지속적으로 민주주의 국가 간의 유대를 강화해나가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바이든은 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확립하기 위해 미국을 비롯한 민주주의 국가 간의 다자협력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따라서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겨냥한 발언은 이러한 바이든의 의지를 나타내는 사례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로 구성된 인프라 계획은 중국에 맞서고자 하는 특정 국가들을 하나로 모으기에 좋은 명분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직까지 바이든이 밝힌 포부와는 달리 이를 실행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과 전략은 드러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바이든은 지난해 11월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된 이후 계속해서 민주주의 국가 간의 정상회담 개최, 민주주의 국가 간의 협력을 통한 새로운 국제무역규칙 설정, 그리고 이번에 민주주의 국가를 중심으로 한 인프라 계획 제안 등 민주주의 국가 간의 정치·경제·안보적 유대를 강화하고자 하는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이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행할 것이며 바이든이 지칭하는 민주주의 국가란 어떤 국가들을 포함하는지에 대한 기준 등을 명확히 밝힌 적이 없으며 구체적인 정책을 발표, 시행하지도 않고 있다. (예를 들어, 만약 특정 국가가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갖추고는 있으나 그 국가 정부가 미국과 자주 대립한다면 바이든은 이 국가를 여전히 민주주의 국가로 받아들이고 자신이 구상하는 정상회담, 국제무역질서, 인프라 계획 등에 포함시킬 것인지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또한, 반대로 미국에 호의적인 비민주주의 국가에 대한 대응은 어떻게 할 것인지도 바이든은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번 ‘미국판’ 혹은 ‘서방식’ 일대일로 프로젝트 제안 또한 막상 이에 필요할 막대한 양의 예산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에 관한 구체적인 계획은 언급하지 않았다. 지난 2008년 세계 금융위기, 그리고 2020년부터 시작된 코로나19 위기 등을 겪으며 막대한 양의 연방정부 부채를 짊어지고 있는 미국이, 더불어 최근 미국 내 인프라 재건 및 개선을 위해 약 2조 달러를 들이기로 한 미국이 과연 다른 국가 내 인프라 건설을 지원하기 위한 재원을 마련할 방안은 있는지에 대한 명확한 답을 바이든 행정부는 제시해야 할 것이다. 물론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선지 (2021년 4월부로) 3개월이 채 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까지 민주주의 국가 간의 유대·협력관계를 강화하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과 정책을 고안할 시간이 바이든에게는 충분하지 않았을 것이다. 막연한 구상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실현 계획을 수립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바이든 행정부는 현재 미국 내 인종갈등, 코로나19 대응, 경제회복 등 국내문제에 집중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대외정책에 할애할 수 있는 여력이 부족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국제정세는 계속해서 빠르게 변하고 있다. 중국은 코로나19를 단기간에 극복하고 오늘날 계속해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나아가 일대일로와 같은 거대 프로젝트를 통해 중국은 그 주변국, 나아가 유라시아 대륙 전체에 그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가 순수하게 경제적인 목적을 지녔건 미국과의 패권경쟁을 위한 전략적인 목적을 내재하고 있건 부정할 수 없는 분명한 점은 이를 통해 유라시아 대륙에 걸쳐 중국의 정치·경제적 영향력이 갈수록 확장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맞서기 위한 바이든 행정부의 전략이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내세워 중국의 인권문제, 권위주의 체제를 비판하는 것이라면 중국에 대응하기 위한 앞으로 4년간 (혹은 8년간)의 구체적인 전략과 정책을 시급히 준비해야 할 것이다. 한편, 지금까지 바이든은 민주주의 국가 간의 협력을 강조해 왔지만 비민주주의 국가들과의 협력에 대한 언급은 없다. 이 점에서 바이든이 추구하는 국제다자협력은 민주주의 국가들만을 대상으로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전 세계 국가들은 보다 명확히 파악해야할 것이다. 일단 미국을 제외한 전 세계 국가들의 입장에서는 바이든의 미국이 비민주주의 국가를 어떻게 대할 계획인지를 알아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바이든의 행보를 봤을 때 미국이 비민주주의 국가들과 협력하겠다는 의사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 그 예로, 앞서 언급하였듯이, 바이든은 미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2020년 11월 15일 체결된 (중국이 참여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과 관련하여 미국도 이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보다는 다른 민주주의 국가들과 협력하여 국제무역 규칙을 새롭게 쓰겠다고 밝혔다. 바이든이 중국과 같은 비민주주의 국가들과는 협력하지 않겠다는 의도를 비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바이든은 미국이 비민주주의 국가들과는 어떤 방식으로 협력을 모색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이처럼 지속적으로 민주주의 국가 간의 협력만을 강조할 경우 비민주주의 국가들은 미국이 자신들을 국제 다자협력체제에서 배제하려는 의도를 지녔다는 신호로 받아들일 수 있다. 필자는 지난 2020년 12월 작성한 JPI PeaceNet에서 바이든 시대의 국제다자주의 체제에 대해 세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한 바 있다. 첫째는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을 비롯한 비민주주의 국가들과도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오늘날 팬데믹, 기후변화, 환경파괴 등과 같은 전 지구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치체제 구분 없이 전 세계 모든 국가들이 협력해야만 한다. 그리고 기후변화와 같은 문제에 관심이 많은 바이든도 이 점을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바이든도 계속해서 민주주의/비민주주의 국가들을 구분하며 대외정책을 펼칠 수만은 없을 것이다. 둘째 시나리오는 부정적인 시나리오로 바이든이 중국, 러시아와 같은 비민주주의 국가와는 협력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첫 번째 시나리오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이러한 정책을 바이든 정부가 계속해서 이어나가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코로나19와 기후변화 같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비민주주의 국가들과의 협력이 필요하다. 또한, 비민주주의 국가와의 무역분쟁과 같은 크고 작은 갈등이 지속될 경우 이는 국제정세의 불안정으로 이어질 것이고 이는 (코로나19 이후 빠른 회복이 절실한) 미국 경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시나리오는 미국이 국제 다자협력체제를 이원화하는 것이다. 즉, 팬데믹, 기후변화, 인권, 민주주의의 확산, 국가안보 등 각 현안을 비민주주의 국가들과 협력할 사안과 민주주의 국가 간에만 협력할 사안으로 나눈 다음 두 가지 별도의 국제협력체제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 경우 전 세계적 차원의 다자주의 체제와 민주주의 국가들만의 다자주의체제라는 두 개의 체제가 공존하게 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이원화된 국제 다자협력체제 또한 현실적으로 운영이 어려울 것이다. 각 현안이 민주주의 국가만의 협력이 필요한 혹은 비민주주의 국가의 참여 또한 필요한 현안으로 매번 정확히 구분할 수 있는 것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팬데믹, 기후변화, 인권문제, 세계경제 회복, 지역분쟁, 민주주의의 확산 등과 같은 문제들은 각각 독립된 현안이 아니라 하나하나 복합적으로 얽히고설켜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바이든이 선택할 수 있는 시나리오는 궁극적으로 첫 번째 – 미국과 민주주의 국가들이 비민주주의 국가들과도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 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렇다면, 과연 앞으로도 바이든은 계속해서 민주주의 국가 간의 협력을 강조하고 비민주주의, 권위주의 체제 국가를 비판하는 행보를 이어갈 수 있을지도 우리는 눈여겨봐야 할 것이다. 더불어, 민주주의 국가 간의 유대를 강조하는 바이든의 구상과 제안에 대해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들은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도 관건이다. 과연 이들이 지정학적, 전략적 고려 없이 오로지 민주주의 국가라는 타이틀에 끌려 바이든의 제안에 동참할지는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중국 주변국들은 중국의 부상으로 인해 안보에 위협을 느끼고 있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중국으로의 수출을 늘림으로써 경제적인 이득을 보고 있기도 하다. 이 상황에서 이들이 바이든이 구상하는 민주주의 국가 ‘모임’에 참여한다는 것은 (다소 이분법적인 판단일 수는 있으나) 중국과의 경제교류를 통해 얻는 이익의 일부를 포기해야 함을 의미할 수도 있다. 따라서 이들이 경제적 이득보다 민주주의 국가라는 명분을 더 중요시 여기고 미국의 거대한 계획에 동참하리라는 전망은 섣부를 수도 있다.   IV.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전략에 대한 한국의 대응 그렇다면 계속해서 민주주의 국가 간의 협력과 유대를 강조하는 바이든의 구상을 한국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앞서 언급하였듯이 아직까지 바이든은 민주주의 국가 간의 정상회담, 국제무역질서, 인프라 계획 등에 대한 구체적인 전략과 계획을 발표하지 않았다. 이는 달리 말하면 우리 정부로서는 (모든 것이 불투명한 상황이지만 한편으로는) 추후 바이든이 보일 행보에 대해 미리 대비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아직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만 미국이 계속해서 중국과 대립각을 보이고 중국을 견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한국에게도 좋은 신호는 아니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은 한국에게 있어서 중요한 안보 파트너이자 무역상대국이다. 중국 또한 남북관계를 평화적으로 풀어나가는 데 있어서 반드시 협조가 필요한 국가이자 한국의 가장 큰 수출시장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바이든이 계속해서 민주주의 국가 간의 결집을 외치며 우리에게 양자택일을 압박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한국으로서도 외교적으로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 글을 쓰고 있는 4월 첫째 주 현재, 바이든은 다시 한번 미국이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불참할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이에 미국의 동맹국인 일본과 한국에게도 바이든이 곧 선택을 요구해오는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민주주의 국가라는 타이틀과 경제성장(과 수출증대)이라는 목표는 우리가 반드시 잡아야 할 두 마리 토끼이다. 국민의 권리와 인권을 보호·유지한다는 측면에서, 그리고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인다는 차원에서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들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한국에게 중요하다. 또한, 국민의 물질적 안녕과 복지를 위해서는 수출증대를 통한 경제성장이 반드시 지속되어야 한다. 앞선 JPI PeaceNet에서도 언급하였듯이 현 상황에서 한국에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미국과 중국이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다방면에서 국제협력을 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바이든이 민주주의 국가 간에 보다 긴밀한 협력을 추구하는 (미국의) 대외정책을 수립한다면 한국으로서도 국익을 위한 외교정책을 펼치는 데 있어서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아지게 될 것이다. 따라서 한국은 미국과 중국의 갈등 상황에서 정치·군사·외교·경제 등 분야별로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대한 시나리오를 사전에 준비하고 이에 대한 대응 방안을 미리미리 준비해 놓아야 할 것이다. 국제사회에서 민주주의 국가라는 타이틀에 붙는 프리미엄은 막대하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은 민주주의 국가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국제사회에 어필할 필요가 있다. 다만 이와 함께 경제적 측면에서도 국익을 추구할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펜데믹 위기, 세계 경제불황, 기후변화, 강대국 간의 갈등 등 복합위기로 인해 국제정세는 나날이 불안해지고 있으며 우리나라 또한 그 어느 때보다도 여러 측면에서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다. 다만 이럴 때일수록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로서의 국제위상을 제고 함과 동시에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실리를 추구하는 외교 방안이 절실히 요구된다. 1) Biden, Jr, Joseph R. 2020. “Why American Must Lead Again: Rescuing U.S. Foreign Policy After Trump. Foreign Affairs 99(2): 64-76. 기획 및 편집: 정승철 연구위원 저자소개 정승철 現 제주평화연구원 연구위원. University of Florida에서 정치외교학 박사학위 취득. 관심분야는 국제정치경제, 동아시아 국제관계, 연구방법론이며, 주요 논문으로는 “Effects of Trade Relations on South Korean Views of China,” "Economic Interest or Security Concerns? Which affected how individuals in five Asian countries viewed China in 2013?", "Effects of International Trade on East and Southeast Asians’ Views of China,” “The Determinants of China-ROK Relations, 1993-2018,” “Who Supports the US-led Global Order? An Empirical Analysis Using Survey Data” 등이 있음.[/fusion_text][/fusion_builder_column][/fusion_builder_row][/fusion_builder_container]
  • [JPI PeaceNet] The Main Theme of the 16th Jeju Forum: Sustainable Peace, Inclusive Prosperity
    저자
    Jeju Peace Institute
    발간호
    2021-06
    The main theme of the 16th Jeju Forum is “Sustainable Peace, Inclusive Prosperity.” This year’s Jeju Forum will be a platform to discuss various challenges and threats we face while also seeking joint responses for peace and prosperity for current and future generations. This year’s Jeju Forum will be a venue for discourse covering various topics such as each country’s response to COVID-19; the global economic recovery; the beginning of the Biden Administration era; conflicts between major powers; climate change; the Fourth Industrial Revolution and the emergence of new technologies; and ways to eventually achieve world peace and prosperity. This year marks the 30th anniversary of the end of the Cold War. During the Cold War, we believed that the era of peace would come if we reduced military and diplomatic conflicts between countries. However, we are now surrounded by more complex and diverse crises than ever before. The COVID-19 pandemic continues to threaten our survival, causing damage to our health and economy. Additionally, while governments try to prevent the spread of the disease by implementing anti-democratic policies, there are growing concerns that such measures will lead to the retreat of democracy in various countries. Moreover, crises that existed before the pandemic, such as climate change, resource depletion, environmental degradation, major power competition, local military clashes, and cyberattacks, still exist and are working in combination to threaten individuals’ lives on the Korean Peninsula, Northeast Asia, and around the world. Because we live in such an era, we need to actively seek ways to overcome these challenges before it’s too late. In this context, the Jeju Forum presents two concepts necessary to address the multiple crises: Sustainable Peace and Inclusive Prosperity. First, achieving sustainable peace means solving the crises we face and maintaining a state of peace while continuing that peace for tomorrow. These crises threaten humanity’s survival from multiple dimensions, making them difficult to overcome through short-term and superficial approaches. Thus, to solve the multiple crises more fundamentally, it is necessary to find their root causes in an effort to eradicate them. The process of coordinating the interests between countries and developing discussions in the political, military, economic, societal, and environmental fields will require great patience and effort. We should not avoid difficult tasks or choose the easy way. To build sustainable peace, it is essential to prevent and eradicate conflict, recover wounds, rebuild society, and ultimately achieve harmony and coexistence among groups. The sustainable peace created through such a process will strengthen the resilience of individuals, societies, and countries, thereby establishing a solid foundation for overcoming the current crisis and preparing for future challenges. After all, in a society where the continuation of peace is the shared goal, priority will be given to maintaining all members’ mental and material well-being, not individuals’ interests. Achieving sustainable peace also includes creating an environment in which we can maintain peace continuously. To preserve and sustain peace, it is essential to maintain friendly relations between individuals, societies, and countries. However, we must first establish conditions that allow humans to enjoy a stable life on this planet. For example, if climate change is allowed to go unchecked, human life will be devastated by the mental and material damage. Such results will also lead to local and international conflicts, eventually making world peace untenable. Therefore, to achieve sustainable peace, we must find countermeasures to climate change, resource depletion, and environmental degradation in an effort to protect the planet. Second, inclusive prosperity means that the benefits of economic growth must be shared with marginalized members of society. To this end, we must correct the inequality and unfair practices that prevent individuals from enjoying equal opportunities. In addition, we must emphasize values that cannot be measured materially, such as quality of life, environment, education level, and health, to not only increase wealth but also achieve true prosperity. People from low socioeconomic backgrounds and developing countries are the ones who have suffered the most significant physical and psychological damage from the pandemic over the past year. Therefore, we must embrace those who have been marginalized from the benefits of economic growth if we want to achieve a material and mental recovery in the post-COVID-19 era. The recovery should also focus on individuals, societies, and countries hit hard by the pandemic. Vulnerable populations and low-income countries are also the ones most affected by climate change. However, their voices are not reflected in international agreements that seek to combat climate change. Therefore, responding to the climate crisis should be done in a way that considers the needs of the vulnerable instead of sacrificing or alienating them. Recovery and prosperity that alienates the weak will only lead to situations in which income inequality and social instability increase, causing yet more crises. After all, growth and recovery without inclusion will hinder stability and order around the world, impeding us from realizing sustainable peace. In this era of multiple crises, individuals, societies, nongovernmental organizations, local governments, national governments, and international organizations must all work together to overcome our current challenges. These crises are not only a problem for actors exposed to threats but also threaten everyone, regardless of borders. Crises faced by one actor will soon affect others as well. We cannot overcome these challenges through competition, conflict, and “my country first” attitudes; turning a blind eye to others’ problems is not a solution. Instead, we must emphasize the importance of multilateral cooperation more than ever. The form of multilateral cooperation we must pursue should embody sustainable peace and inclusive prosperity. If we pursue prosperity that embraces the weak and vulnerable and builds sustainable peace by listening to their voices, we will be able to create an environment that embraces more people in the future. In other words, by achieving sustainable peace that embodies inclusion, we can create a virtuous cycle that endlessly reproduces inclusive prosperity. To do this, we must act now. If we seek short-term interests out of complacency, the path may be even more difficult in the future, or we may even lose the opportunity to take action altogether. The 16th Jeju Forum aims to set a stage where the world can focus on sustainable peace and inclusive prosperity as a countermeasure to the current crises. The Jeju Forum serves as a venue for discussions about ways to achieve peace and prosperity in Jeju, the Korean Peninsula, East Asia, and around the world. Renowned world leaders, Nobel Peace Prize winners, experts, and activists participate in the Forum every year. This year’s Jeju Forum is expected to serve as an opportunity for intellectuals to share their knowledge and experience regarding the definitions, examples of, and practices to ensure sustainable peace and inclusive prosperity. The 16th Jeju Forum is scheduled to be held in Jeju from June 24 to June 26, 2021.
  • [JPI PeaceNet] 신남방정책(플러스)의 지속적 발전을 위한 제언
    저자
    박정훈 (서강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선임연구원)
    발간호
    2021-05
    [편집자 註] 그동안 한국은 한반도 주변 강대국들인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와의 외교관계를 긴밀하게 유지하는데 집중해 왔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 한국은 외교 다변화 차원에서 보다 많은 국가들과의 외교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 노력의 일환이 동남아시아 국가들과의 협력관계 구축·강화를 목표로 하는 현 정부의 신남방정책(플러스)이다. 이에 JPI PeaceNet은 서강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박정훈 선임연구원의 기고문을 통해 신남방정책(플러스)이란 무엇이며 그 성과와 한계는 무엇인지, 향후 본 정책을 어떤 식으로 개선·발전 시켜 나가야 할지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편집: 정승철 연구위원(scchung@jpi.or.kr)]   서론: 늦었지만 다행인 한국의 새로운 이웃들에 대한 외교정책 한국의 “이웃” 국가들은 어디일까? 역사적으로 밀접하고 지리적으로 가까운 중국과 일본, 그리고 러시아는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이 땅의 근현대사를 고려한다면 근대국가 형성과 발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미국도 후보다. 앞서 언급한 국가들 모두 한국을 중심으로 볼 때 방위상으로 동, 서, 북쪽에 자리 잡고 있는데, 그렇다면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한국의 이웃이 될 수 있을까? 간단하게 물리적 거리부터 살펴보자. 제주평화연구원이 위치한 제주도와 필리핀 루손섬 북부까지는 직선거리로 약 1,700km 정도인데, 이는 제주도와 일본 홋카이도의 최대도시인 삿포로 사이의 거리와 거의 일치한다. 또한 베트남의 수도인 하노이와 제주도 사이의 직선거리(약 2,450km)는 서울에서 중국 청두와의 거리와 비슷하다. 예상외의 지리적 인접성과 더불어 주목할 점은 한국과 동남아시아 사이에 급격히 높아진 경제적 상호의존성이다. 2019년 기준 동남아시아 10개국에 대한 한국의 무역 규모는 약 800억 달러로 집계되었는데, 이는 한국과 아세안(ASEAN, 동남아시아국가연합) 사이에 대화관계가 수립된 1999년의 그것과 비교한다면 약 20배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더욱이 한국의 10대 교역국 가운데 3개국(베트남, 싱가포르, 말레이시아)이 아세안에 소속되어 있으며, 약 10만 명이 넘는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출신 노동자들은 국내 제조업 인력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필자의 소견으로는, 동남아시아는 이미 한국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또 다른 이웃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새로운 이웃에 대한 우리 정부의 관심은 최근까지 그다지 높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후술하듯이 우리 외교의 중심에는 언제나 한반도의 냉전체제 종식과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이해당사자간의 조정이 자리 잡고 있었기에, 상대적으로 아세안과 동남아국가들의 관계증진은 후 순위로 밀려왔다. 더욱이 기존의 대(對)동남아시아/남아시아 외교는 장기적인 어젠다에 기초하지 못한 채 남북한 사이의 이른바 “편가르기식”전략에 의존해왔다. 다행스럽게도 2017년 시작된 신(新)남방정책은 이러한 기존의 한계를 극복하고 동남아시아, 더 나아가 인도와의 관계를 포괄적으로 증진하며, 사람 중심의 동아시아의 공동체 건설을 긴 호흡을 가지고 추구한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본 원고에서는 신남방정책–작년부터 신남방정책 플러스로 개편된-의 성과와 한계를 평가하고, 정책의 영속적 발전을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신남방정책(플러스)의 수립과 전개 동남아시아와 인도에 대한 한국의 외교적 관심은 국력의 신장과 비례해왔다. 북한과의 군사적, 이념적 대결이 치열하게 전개된 상황에서 경제력 역시 뒷받침되지 않던 냉전 시기 한국의 동남아시아 지역 외교의 초점은 안보 협력의 강화와 개별국가와의 경제 교류 증진수준에 머물렀다. 이승만 대통령의 이른바 “태평양 동맹” 구상과 박정희 대통령의 아태지역 집단안보체제 설치 제안은 이러한 기조의 대표적인 사례들이다(최영종 2011: 202-4). 북한과의 체제경쟁에서 어느 정도 우위를 차지하게 된 1980년대 이후에 들어서면서 전두환 대통령의 아시아태평양 협의체구성 제안과 같이 동남아시아를 포괄하는 지역통합 외교를 구상한 바 있으나, 당시까지 남아있던 한국의 베트남전쟁 참전에 대한 지역 내 부정적 시선과 역량의 한계로 인해 제안단계에 머물렀다. 더욱이 비동맹중립외교노선과 사회주의경제체제를 기반으로 하던 인도는 한국에게 만족스러운 외교파트너가 될 수 없었다. 따라서 점차 증가하고 있던 민간분야의 교류와는 달리 외교분야에서의 한국과 동남아시아, 나아가 인도와의 관계는 1990년대 중반까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본격적으로 동남아시아를 지역통합의 파트너로 인식하게 된 시기는 1998년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부터다.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개별국가 수준을 뛰어넘어 동아시아 차원의 지역협력 필요성을 인식하게 된 김대중 대통령은 역내 경제안정과 자신이 주진하고자 했던 햇볕정책의 국제적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취임 직후부터 동아시아 공동체(EAC)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동아시아 연구그룹(EASG)의 창설을 주도했다. 이러한 노력은 아세안 국가들과 중국과 일본의 EAC 참여를 이끌어내는 등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지만, 중국과 일본의 상호견제와 더불어 정권을 계승한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 중심 외교정책수립으로 인해 지속될 수 없었다(박명림 2006). 노무현 정부 이후 출범한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 역시 동남아시아에 대한 중요성을 바탕으로 아세안과의 관계를 전략적 협력동반자로 격상하고 역내 개별국가들과 경제와 안보 영역을 넘어 공공외교를 추진하는 노력이 가시화되었으나, 글로벌 금융위기와 국내정세의 혼란으로 인해 전략의 지속성을 담보하지 못했다(최영종 2010; 변창구 2014). 2017년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아세안과 인도를 중심으로 한 외교다변화를 주요국정과제로 내세운 첫 번째 정권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같은 해 11월 9일 한-인도네시아 비즈니스 포럼‘ 기조연설에서 사람(people), 번영(prosperity), 평화(peace) 등 이른바 ’3P’를 통해 아세안과 인도, 그리고 한국을 포괄하는 지역공동체를 궁극적으로 건설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신남방정책을 공식적으로 천명했다. 특히 아세안이 강조하는 상호이해 증진을 통한 사람중심의 공동체 건설 목표를 신남방정책의 첫 번째 지향점으로 그대로 수용하고, 단기간의 국익추구가 아닌 지역 내 항구적인 평화와 상생번영이라는 규범과 가치를 우선한다는 점에서 기존 외교정책과 차별화하고자 했다(김형종 2020: 38). 이러한 목표들을 현실화하기 위해 우선 주아세안대표부의 위상을 주변 4국 공관 수준으로 격상시켰고, 아세안 내 주요 재외공관의 조직과 인력을 확충했다. 또한 정책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집행기관으로 2018년 8월 신남방정책특별위원회를 대통령직속기관으로 출범시켜 16개 세부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정상외교에도 이전 정부보다 더 큰 노력을 기울여 2018년 7월 인도, 2019년 9월 태국, 미얀마, 라오스를 문재인 대통령이 방문하였고 2019년 말 제3차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와 제1차 한-메콩 정상회의를 연달아 개최했다. 정책 시행 3년 차를 맞는 2020년은 이러한 정책 추진 성과가 실질적으로 구현되고, 이를 바탕으로 더욱 심화한 신남방정책이 수립될 원년으로 예상되었다(이재현 2020: 170-176). 그러나 연초부터 불어닥친 전례 없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전 세계적 경기침체와 더불어 인적교류가 사실상 중단되면서 이러한 장밋빛 전망도 무산되었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국내외적 위기상황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의 신남방정책의 기조에는 변함이 없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코로나 사태 초기국면 당시 다른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양호한 방역상황과 높은 의료수준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신남방정책을 확대 개편했는데. 2020년 11월 제21차 한-아세안 화상 정상회의에서 소개된 신남방정책 플러스가 바로 그것이다. 신남방정책 플러스는 기존의 협력사업들을 시의성과 현지수요에 맞춰 (1) 보건의료, (2) 교육 및 인적자원 개발, (3) 문화교류, (4) 무역투자, (5) 인프라개발, (6) 미래산업, (7) 기후변화를 포함한 비전통적 안보협력 강화로 재편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데(최원기 2020), 그중에서도 코로나19 조기 극복을 통해 사람 중심의 지역공동체 건설을 차질없이 달성하기 위한 보건의료 협력사업을 최우선 과제로 선정했다. 이를 위해 2025년까지 아세안 지역 국가들의 보건의료 체계 및 역량 강화를 위한 지속적 지원을 추진한다.   신남방정책(플러스)의 성과와 한계 앞서 언급했듯이, 신남방정책은 기존 한반도 주변국가 중심의 외교정책과는 궤를 달리하면서, 아세안과 인도의 전략적 가치를 장기적인 관점에서 고려하는 사실상 최초의 외교적 시도이다. 아세안은 동아시아 국제질서 속에서 더는 변방이 아니라 자신만의 중심성(centrality)을 강화하고 있으며, 2015년 아세안공동체의 출범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단일한 목소리를 통해 외교적 레버리지를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머지않아 세계 최대의 인구대국이 될 인도 역시 중국과의 경쟁 관계에 있어 자신의 우군을 확보하기 위해 동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 강화에 노력하고 있다. 따라서 중견국인 한국에게는 강대국 위주의 동아시아 다자외교체제를 극복하기 위한 일종의 틈새전략이자, 역내 세력균형을 통한 평화체제와 공동체 구축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과제로써 아세안과 인도와의 긴밀한 협력이 필수적이다. 더욱이 신남방정책은 단기적 이익이 아닌 장기적 규범과 가치를 내세우고, 특정 정치체제와 이념에 대한 지지를 구하는 대신 인적교류와 문화이해라는 상호호혜적 방법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일방향적 외교전략으로 인한 대상국들의 반감을 극복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정책이 시작된 지 불과 만 3년이 넘은 시점에서 성과를 섣불리 판단할 수는 없지만, 신남방정책이 일정한 긍정적 효과를 가져왔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한 연구에 의하면 2015년에 비해 2017년 동남아시아 3개국(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에서 한국에 대해 가지고 있는 호감도가 증가하거나 같았는데, 특히 교류가 집중된 베트남에서는 응답자의 82%가 한국에 대해 매우 우호적이거나 우호적이라고 답했다. 이는 일본에 대한 호감도(86%)와 거의 비슷한 수준이며, 중국(10%)의 그것보다 크게 높은 수치이다(이진영 2020: 185-86). 소프트파워가 가지고 있는 외교적 잠재력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호감도의 증가는 고무적이다. 더욱이 오래전부터 중립외교노선을 견지해왔으며, 북한과도 우호적 관계를 유지했던 인도네시아와 신남방정책 수립 이후 급속도로 가까워져, 양국 정상이 언급한 대로 “최상 수준의 관계 모멘텀”을 구축한 것도 신남방정책이 가져온 성과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정책의 한계 역시 분명하다. 우선 사람 중심의 공동체 건설을 주된 목표로 내세웠으나 여전히 그 실현 방안에는 과거의 “중상주의”적 접근방식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예를 들어 신남방정책의 두 번째 목표인 상생번영 공동체의 건설을 위해 정부는 무역투자증진, 역내 인프라개발, 중소기업의 시장진출, 과학기술협력, 국가별 맞춤 협력모델 등을 세부정책으로 제시하고 있는데, 이는 자칫하면 아세안을 한국의 경제발전을 위해 이용한다는 부정적인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 실제로 빌라하리 카우시칸 전 싱가포르 외무차관은 2019년 8월 열린 한 학술회의에서 한국 정부와 기업의 동남아시아에 대한 증가하는 관심을 사드(THAAD) 배치에 따른 중국의 강경대응의 결과라고 평가절하하면서 “한국의 아세안과 인도에 대한 접근은 전략적이기보다는 상업성, 거래의 관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한국일보 2019.11.20.). 신남방정책의 궁극적 목표인 ‘사람중심공동체’ 건설을 위해 필수적인 상호 간 문화교류를 통한 이해의 확대분야에서도 일방향성을 극복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한국과 아세안의 경우 코로나19 사태 이전까지 양자 간 인적교류는 지속적인 양적성장을 이룬 것이 사실이다. 2019년 아세안 국가들을 방문한 한국인과 한국을 방문한 아세안 지역 국적자들은 각각 998만여 명과 270여만 명으로 집계(복수방문포함)되었는데, 이는 전년도 대비 각각 11.1%와 9.5% 증가한 수치이다. 한국에서 취업과 유학 등의 이유로 장기체류 중인 아세안 지역 국적자들 역시 2017년 51만 8천여 명에서 2019년 64만 7천여 명으로 약 19.9% 증가했다. 더욱이 K-POP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대중문화는 이미 동남아시아에서 주류로 자리를 잡은 지 오래다. 그러나 신남방정책의 수립과 실행 이후에도 한국에서 동남아시아는 단순히 관광지로 소비되거나 ‘경제적으로 낙후되고 문화적으로 이질적인 곳’이라는 인식이 여전히 강하다. 더욱이 할랄(Halal)산업 육성계획이 무산된 대구와 익산, 그리고 반(反)난민시위로 몸살을 앓았던 제주도의 경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세안과 인도를 포함한 비서구지역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우리 사회에 여전히 자리를 잡고 있다. 서울대와 서강대, 그리고 한국외대를 포함한 일부 대학들에서 아세안과 남아시아 지역전문가를 양성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나 여전히 많은 대학이 신남방정책 실시 이후에도 학문적 교류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신남방정책의 관심이 특정국가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 또한 한계이다. 2019년 상반기에 아세안지역에 진출한 649개 한국기업들 가운데 약 70%에 달하는 433개 기업이 베트남을 선택하였으며, 2019년 한-아세안 전체교역량의 약 45%는 베트남이 담당했다 (한국일보 2019.11.20.). 이러한 베트남 편중 현상은 비단 경제영역뿐만 아니라 공적 외교분야에서도 뚜렷해졌는데, 2007년 캄보디아(24.9%), 인도네시아(20.3%), 필리핀(19.8%), 베트남(17.4%) 순이었던 한국의 대(對)아시아 공적원조(총 1억 4200만달러)는 2016년(총 4억 2500만달러) 베트남(42.3%), 필리핀(14.1%), 캄보디아(12.5%), 미얀마(10.4%) 순으로 크게 바뀌었다(이진영 2020: 193). 신남방정책이 개별국가차원이 아닌 아세안과 인도를 아우르는 지역적 차원의 포괄적 협력과 공동체 형성을 목표로 한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이러한 특정국가 쏠림현상은 시정될 필요가 있다.   결론: 향후 과제제언 신남방정책은 이른바 동북아 ‘4강 외교’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지정학적, 문화적, 경제적 중요성이 날로 높아지는 아세안과 인도에 대한 상호이해도를 장기적으로 높이고, 궁극적으로는 사람과 가치 중심의 동아시아공동체를 건설하는 것이 골자이다. 따라서 신남방정책의 성패는 단기간의 실적에 집착하지 않고 정책의 입안자와 수혜자 사이의 균형과 조화를 추구하는 이른바 지속가능성을 가지느냐에 달려있다. 결론을 대신해 이에 대한 몇 가지 과제를 제시하고자 한다. 우선 한국의 지식인들과 정치인들과 관료를 포함한 주요 의사결정권자(decision makers)들의 저변에 깔린 아시아에 대한 소위 ‘후진국프레임’에서 벗어나고 신남방정책에 대한 초당파적인 지지와 이해가 필요하다. 이미 관련 연구자들이 오랫동안 지적했듯이,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인도는 이미 경제력과는 무관하게 이미 수십 년간 강대국들 사이에서 국가의 생존을 보장하고 국익을 증진하려는 노하우를 축적해왔으며(최영종 2019: 10-11), 아세안의 경우 구성국 사이의 만장일치가 의견도출의 기본전제이며, 이를 위해 상당 기간의 협의와 비공식적 접촉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이른바 ‘아세안웨이’를 출범부터 채택하고 있다(김형종 2020: 38). 더욱이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와 같이 자국의 경제적 성과를 바탕으로 독자적인 4차산업 발전전략에 이미 착수한 국가들도 있으며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여타 국가 역시 자국 인력양성과 기술유치를 통해 산업구조의 고도화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러한 지역에 대한 이해와 배경없이 단순히 아세안과 인도를 단순히 – 몇 년 전 정부고위관료와 야당의 최고위원이 각각 언급한 것처럼 – “5, 60대 은퇴자들의 일자리가 있는 곳” 혹은 “4차산업과는 관계없는 후진국”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현실 정합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신남방정책의 진정성을 의심하게끔 충분하다. 당파적 이해관계를 초월해 신남방정책을 정권교체 이후에도 지속시킬 수 있도록 정당들의 합의 또한 절실하다. 마지막으로, 특정국가에 대한 편중현상을 완화하고 단기간의 국익이 아닌 장기간의 동아시아공동체를 구성하는 신남방정책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동남아시아, 그리고 인도를 포함한 남아시아에 대한 교육과정을 편성하여 대중들의 이해도를 높이고 전문가를 양성하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동남아시아의 유명대학 가운데 하나인 싱가포르국립대의 경우 교양 한국어 수업이 난이도 별로 6개 과정이 개설되어 있으며, 항상 수강정원을 조기에 채울 정도로 인기다. 그러나 동남아시아와 남아시아의 언어나 정치, 사회, 문화 등을 다루는 과목이 개설된 한국의 교육기관 들은 중, 고등학교는 물론이거니와 대학에서도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더욱이 아세안과 그 개별국가를 연구하거나 엘리트층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전문가들은 턱없이 부족하다. 한국과 같이 자국 문화에 대한 자긍심과 민족주의가 저변에 넓게 퍼져있고, 비공식적 관계와 절차를 통해 의견이 도출되는 아세안과 인도사회의 특성을 고려한다면, 지속가능한 신남방정책을 위해서는 교육을 통해 한국사회의 동남아시아와 남아시아에 대한 이해의 폭을 획기적으로 신장하고, 다수의 지역전문가를 양성해야 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참고자료 김형종. 2020. “코로나19 감염병 사태와 신남방정책: 아세안을 중심으로.” 『동남아시아연구』 30(3): 21-54. 뉴스핌. 2021. “최종건 차관, 오늘 아세안 대사들과 ‘신남방정책 플러스’ 논의.” 3월 5일. http://www.newspim.com/news/view/20210304001115 (검색일 2021.3.20.). 박명림. 2006. “노무현의 동북아 구상 연구 – 인식, 비전, 전략.” 『역사비평』 148-179. 변창구. 2014. “박근혜 정부의 동남아외교: 성과와 과제.” 『대한정치학회보』 22(4): 101-115. 이재현. 2021. “아세안 2020: 코로나19 가운데 맞이한 아세안공동체 5주년.” 『동남아시아연구』 31(1): 1-30. _____. 2020. “아세안 2019: 어수선한 주변 환경, 꾸준한 통합 추진.” 『동남아시아연구』 30(1): 157-180. 이진영. 2020. “한국 정부의 공공외교와 공적개발원조(ODA)의 정합성.” 『대한정치학회보』 28(2): 171-195. 최영종. 2011. “동아시아 지역통합과 한국의 중견국가 외교.” 『한국정치외교사논집』 32(2): 189-225. _____. 2019. “인도태평양 시대 한국의 ‘신남방정책’과 새로운 지역주의 전략의 모색.” 『동북아연구』 34(1): 5-35. 최원기. 2020. “신남방정책 플러스 추진 방향.” 정책기획위원회 정책 칼럼. http://pcpp.go.kr/images/webzine/202012/s54.html (검색일 2021.3.19.). 한국일보. 2019. “신남방정책, 중상주의 접근은 한계...특정국 편애도 경계해야.” 11월 20일.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911191501789649 (검색일 2021.3.20.). 기획 및 편집: 정승철 연구위원 저자소개 박정훈 現 서강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선임연구원. 서강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정치외교학과와 플로리다대학교 대학원(정치학석사)을 졸업했다. 싱가포르국립대에서 인도네시아 이슬람 정당정치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할 예정이다. “Stuck in Place? Normalization and the Changing Voter Profile of Indonesia’s Islamist Prosperous Justice Party”, “The Electoral Paradox of Party Institutionalisation: The Case of PKS in Eastern Indonesia” 등의 논문을 Journal of East Asian Studies를 비롯한 국제학술지에 수록하였다. 인도네시아와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정당정치와 민주주의, 이슬람 정당의 발전과 선거 동원 등이 주요 관심 분야다.
  • [JPI PeaceNet] 트럼프의 등장과 패배, 코로나 팬데믹: 뉴 노멀이 주는 국제정치경제적 함의
    저자
    임해용(제주평화연구원 연구위원)
    발간호
    2021-04
    [편집자 註] 미·중 전략경쟁, 코로나 팬데믹으로 촉발된 뉴 노멀은 기존의 국제정치경제질서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코로나 팬데믹 이후 국제정치경제질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내재된 자유주의, 1980년대 이후 전면에 부상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시기를 겪은 후 새로운 형태의 질서를 요청하고 있다. JPI PeaceNet은 제주평화연구원 임해용 부연구위원의 기고문을 통해 트럼프의 당선과 패배, 코로나 팬데믹이 가져온 뉴 노멀이 기존의 국제정치질서의 변화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편집: 임해용 (haeyonglim@jpi.or.kr)] 2020년 한 해는 코로나바이러스와의 전쟁으로 점철되었고 그 전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우리는 코로나 팬데믹이 가져온 전환기를 지나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전 세계적 확산으로 인한 팬데믹은 우리에게 새로운 일상을 강요했고 이제 세계는 코로나 이전(Before Corona)과 이후(After Corona)로 나뉠 것으로 예상되기도 한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출현한 뉴노멀(new normal)은 코로나 이전의 세계와는 무엇이 다를 것이며, 이 새로운 정상성이 국가와 사회의 관계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결론적으로, 코로나 팬데믹은 국가와 사회의 관계의 변환을 가속화 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코로나 팬데믹은 일종의 준전시상황으로 사회에 대한 국가의 지원과 통제력을 크게 증가시켰고 이로 인해 국가-사회 관계를 변동시키고 있다. 하지만 넓게 보면, 코로나 팬데믹이 국가-사회 관계를 변동시키는 근원적 원인은 아니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에 이미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가져온 불평등에 대해 국내정치의 항거가 지속되었고, 패권국인 미국에서는 러스트벨트에서의 선거승리를 기반으로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국내정치적 지지를 잠식당하는 상황이었다. 넓게 보면,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은 지난 한 세대 이상 워싱턴 컨센서스를 통해 국제정치경제질서를 구축해 왔던 세계화에 피해를 보는 계층이 국가에 보호를 요청한 것이다. 트럼프의 패배 또한 같은 맥락인데, 코로나 팬데믹으로부터 사회를 보호할 국가의 책임을 방기한데 기인한 바가 크다. 코로나 팬데믹 발발 전에 트럼프의 재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트럼프를 당선시켰던 러스트벨트의 백인유권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경제위기와 보건 위기에서 국가에게 기대되는 사회적 보호였던 것이다. 트럼프의 등장과 퇴장의 국제정치경제적 의미 트럼프의 패배가 갖는 국제정치경제적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당선이 주는 국제정치경제적 함의부터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트럼프의 승리는 미국의 중서부의 공업지역인 러스트벨트인 미시건, 위스콘신, 오하이오 등에서의 승리에 기반하였다. 트럼프는 미국우선주의라는 정치적인 구호를 통해 세계화의 희생자였던 러스트벨트의 노동자들의 지지를 받았다. 트럼프의 당선은 집합적인 의미로서의 미국 유권자들이 신자유주의로 대변되는 패권국 미국의 대외정책을 더 이상 정치적으로 용인하지 않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트럼프가 간과한 것은 이 시기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하고 과거의 영광을 되찾는 것을 넘어서 세계화가 추동되는 과정에서 진행되어 온 국가-사회 관계의 변화의 변곡점이었다는 사실이다. 시민들은 국가가 자신들을 보호함으로써 사회를 보호해주기를 바랐지만, 트럼프는 자신에 대한 지지를 개인적이고 인종적인 것으로 환원시켰다. 하지만 이러한 그의 지지에 대한 정치적 환원은 유권자들의 지지에 대한 오판이었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정부의 규제에 대해 반대하는 다수의 미국인들도 국가가 나서서 코로나 팬데믹으로부터 사회를 보호해 주기를 바랐다. 트럼프의 노력은 이에 미치지 못하였고 여러 가지 면에서 사회보호를 위한 국가의 책임을 방기하였다. 이 책임의 방기가 그의 낙선의 가장 큰 원인 중에 하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2016년에 트럼프를 당선시켰던 러스트 벨트의 다수 백인노동자들이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백인우월주의의 세상이 아니라 국가가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 무엇인가 사회적인 조치를 해주기를 바랐던 것이고 코로나 상황에서 그것은 정부가 코로나 대책을 개인에게 미루지 않고 나서서 사회를 보호하는 조치를 해주기를 바랐던 것일 것이다. 4년 전에 러스트벨트에서 트럼프가 승리하였지만 이번에는 패배한 것은 그러한 러스트벨트 유권자의 정치적 표현이라고 추정될 수 있다. 트럼프는 그 동안 주류정치권에서 소외된 정치적 불만의 목소리를 자신의 정치적 자산으로 전환하는데 성공했지만, 그것이 갖는 더 깊은 정치경제적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였고 그 정치적 부작위는 선거의 패배로 나타났다.   패권국의 대외정책의 국내적 기반의 변동 트럼프의 당선은 미국 내의 국가-사회 관계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었지만 국제체제의 실제적인 변동에 중요한 분기점이 되었다. 한 국가의 대외정책은 국내적 기반을 바탕으로 실행되고 유지된다. 자유주의적 입장에서 본다면 국내사회집단의 정체성과 이익의 구조가 국가라는 기구를 통해 대외적으로 투사되는 것이 일국의 대외정책이다. 국제관계 측면에서 일국의 대외정책은 그 나라가 국제체제에서 갖는 힘과 위상에 좌우될 것이다. 거비치(Peter Gourevitch)는 일국의 대외정책은 개별적으로 처한 대외환경에 영향을 받게 될 것이며 이를 제 2이미지 역전 이론(the second image reversed)으로 명명하였다.[1] 그의 이론대로 일반적인 국가는 국내사회의 여론의 변화가 대외정책의 변화로 그대로 전환되지 않으며, 오히려 많은 경우 국제체제의 영향을 받게 된다. 하지만 패권국의 위상을 가진 국가의 국내사회의 변화는 패권국의 대외정책을 변화시킴으로써 국제체제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 시기는 패권국의 국내사회의 변화가 국가를 통해 대외적으로 체제적 변화를 가속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패권국의 국내사회의 변화는 체제적 변화의 변곡점과 시발점이 되는 특수성을 내포한다. 패권국의 경우는 케네스 월츠가 말한 제 2이미지가 국제체계를 변화시키는 동력으로서 작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2] 거비치의 제 2이미지 역전 이론은 패권국의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덜 해당되는 개념이다. 미국의 경우처럼 패권국의 국내사회의 변화는 국제체제의 변동을 가져올 수 있는 원인에 해당될 수 있다. 물론 패권국의 국내 사회도 세계화라는 국제정치경제체제의 영향을 받은 것이니 여기에는 내생성이 존재함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시간의 흐름 상에서 보면 세계화가 패권국의 국내사회에 영향을 주고 패권국의 국내사회의 손해보는 집단들의 정치적 목소리가 축적되어서 국내정치의 변화를 가져온다. 이 국내정치의 변화는 패권국의 대외정책을 변화시켜서 국제체제의 변동에 직접적으로 원인이 된다. 미·중 전략갈등은 세력전이론에서 예측하듯이 중국의 급속한 경제적, 군사적 성장으로 인해 예견된 것이지만 그 갈등의 직접적인 촉발은 국가-사회적 변화에 기반을 두고 있다. 패권국의 국내사회의 변화는 국제체제의 변화를 가져오는 특수성이 매개되어 있다. 역전된 제 2이미지는 비패권국에 주로 적용될 것이고 자국의 국력과 네트워크의 힘에 따라 체제로부터 받는 영향에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과 국가-사회 관계의 변화의 가속화 결국 미·중 전략경쟁을 촉발시킨 패권국 내의 국가-사회 관계의 변화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증폭될 가능성이 크다. 뉴 노멀 시대는 그 동안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추구해 왔던 방향을 되돌리고 국가우선주의의 흐름을 가속화시킬 것이다. 트럼프가 재선되었다면 그 방향으로 더 힘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다자 간 국제협력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하는 바이든 대통령도 미국우선주의를 제창하였고 러스트벨트의 지지를 받았기 때문에 지역 산업계의 요구로부터 일정한 구속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지난 1년 동안 가장 중요하고 전면에 지속적으로 나왔던 뉴스는 코로나19 상황이다. 확진자와 사망자는 매일 실시간으로 업데이트 되었으며 대부분의 시민들은 이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정부의 지침대로 움직였다. 정부가 전면에 나서서 방역과 백신처방을 통해 국민의 일상을 규제하게 되었다. 이런 차원의 동원은 국가만이 가능한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시장이나 기업에게 맡길 수 없는 것이다. 국가가 나서는 것이 상대적으로 가장 효율적일 것인데, 이 코로나 대처 상황은 준 전시상황으로 코로나 팬데믹 이전에 부여할 수 없었던 거대한 통제 권한이 국가에게 허락되었다. 게다가 이 코로나 상황은 정치적으로 “국기결집효과(rally ‘round the flag effect)”를 가져왔다. 애국심 증대효과라고 볼 수 있는 이 현상은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국민들이 위기 극복을 위해 현 집권정부를 지지하게 된다는 가설로써, 이번 코로나 상황에서도 여러 나라에서 증명되었다.[3] 우리나라의 작년 4월 총선에서도 집권당은 이 애국심효과의 수혜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의 시간을 지나면서 국가가 나서서 사회를 보호해 줄 것을 직접적으로 요청하고 있기 때문에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대한 회의가 정치적으로 표출되면서 표면화되었던 국가-사회 관계 변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1929년 대공황으로 촉발된 1930년대의 세계적인 차원에서 발생한 국가-사회 변화는 칼 폴라니의 주장대로 산업혁명 이후 시장을 통해 투사된 거대한 변환에 대한 사회적 반기였고[4] 이는 국내적으로는 케인스주의의 실행으로 이어졌다. 국제적으로는 러기가 명명한 내재된 자유주의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전후 세계 국제정치경제 시스템의 이념이었다.[5] 브레튼우즈 체제 하에서 규제되었던 자본의 이동은 1970년대 이후 시카고학파의 신고전주의 경제학파의 이념을 따라 활발해졌다. 자본의 이동이 자유로워지기 시작하면서 1980년대부터는 정책적인 차원에서 레이건과 대처를 중심으로 정부 분야의 민간화, 무역과 금융의 세계화를 핵심으로 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진행되기 시작하였다. 지난 40년간 세계는 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통해 무역과 금융의 연결을 바탕으로 수준 높은 상호의존의 세계를 만들어왔다. 하지만 세계화가 만들어 낸 그림자의 골이 깊어졌고 세계화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정치적으로 유의미하게 반영되기 시작하였다. 세계화는 결국 다수의 희생 아래 소수의 가진 자들의 부를 키웠을 뿐이라는 세계화에 대한 불만은 1999년 시애틀에서 WTO에 대한 노동자들의 항의에서 이미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었다. 세계화가 추동된 지난 40년간 부의 불평등한 배분의 구조는 더 심화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어떠한 경제적 선택도 비용 없이 발생할 수 없는 바, 국가들의 세계화라는 선택도 비교우위가 없는 분야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에게는 막대한 손해를 발생시켜왔고, 그 불만이 미국의 경우에는 트럼프의 당선으로, 영국의 경우에는 브렉시트로 이어진 것으로 이해된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민주주의적 대항이 신자유주의의 본산지였던 미국과 영국에서 발생하였다는 사실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기세가 변곡점(inflection point)을 넘어 그 추동력이 완전히 꺾여서 기조가 반대로 바뀌는 결정적인 시점(critical point)을 향해 다가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일 수 있다. 노벨상 수상자인 진보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최근 뉴욕타임즈 논평에서 바이든 행정부의 구제법안(the American Rescue Plan Act)이 통과됨으로써 “‘큰 정부의 시대가 끝났다’라고 하는 시대는 끝났다”(The era of “the era of big government is over” is over.)라고 언급하였다.[6] 그는 과거에는 불가능하였을 이런 구제법안의 통과는 정파를 뛰어넘어 미국민 사이에서 인기가 높아서 공화당의 반대가 거의 힘을 쓰지 못하였다고 평가한다. 그는 이 법안의 통과는 미국이 지난 40년간 국내정치를 지배했던 보수이념으로부터 돌아선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무엇이 이런 변화를 촉발시켰는지 자신도 모르겠다고 하였는데, 그 이유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대공황 이후 가장 높은 대규모 실직과 경제난에 기인한 바가 클 것이다. 물론 대공황과 이번 팬데믹 사이에도 크고 작은 경제위기가 많이 있었으나 국가-사회관계에서 다시 국가에게 사회적 보호의 역할을 맡기는 큰 수준의 변혁은 대공황 이후에는 없었기에 코로나 팬데믹은 기존의 국제정치경제질서를 흔드는 큰 충격을 현 세대에 준 것으로 이해된다. 전쟁 이후 이미 거대해진 국가의 사회장악력은 정치적이고 제도적인 관성을 지닌다. 대중동원을 통해 위기를 지난 이후에도 국가의 개입력은 여전히 남아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위기의 시대에 국가의 역할과 위상은 더욱 커졌다고 할 수 있다. 코로나 19로 가속화된 국가-사회 관계의 변화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통제되더라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코로나 19로 인해 사회복지지출이 크게 증가하였고 이 증가는 일정 기간 지속될 것이다. 국가-사회 관계의 변화는 정부-시장 관계에 있어서도 변화를 내포한다. 국가의 역할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민주적인 방식으로 커질 때 고삐풀린 시장에 대한 규제의 목소리도 높아질 것이다. 한국의 주식시장에서 공매도의 폐지에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월스트리트에서는 개미들의 집단 투자가 월가를 변혁시키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는 폴라니가 말한 고도 금융(haute finance)이 민주화의 영향을 받게 되었음을 보여준다.[7] 결론: 지속가능한 평화와 포용적 번영을 위한 새로운 국제적 합의의 필요성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과정에서 축적된 불만은 기존의 국가-사회 관계에 변화를 요구하였고, 코로나 팬데믹이 촉발한 전례 없는 대규모의 실업과 터전의 상실로 인해 국가의 사회보호 역할을 강화시키게 되어 국가-사회 변화가 가속화되었다. 그 여파로 해외공장 국내이전(reshoring) 등 글로벌 밸류체인에 큰 변화가 발생하고 있다. 여러 나라들이 자국우선주의로 회귀하는 가운데 있지만 자국우선주의도 세계화의 폐해와 코로나 팬데믹에 대한 온전한 해결책일 수는 없다. 자국우선주의가 가져오는 폐해를 두려워할 필요가 있는바, 대공황 이후 1930년대의 국제협력의 실패로 인해 인근궁핍화(beggar-thy-neighbor)정책을 통하여 대공황의 세계적 확장과 심화를 가져와서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진 역사적 결과를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국가 간 국경이 닫히는 이러한 상황에서 국가우선주의는 더 힘을 얻을 것이고 이는 국수주의와 폐쇄된 민족주의를 불러올 가능성이 있다. 물론 이런 염려는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인해 국제커뮤니케이션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어느 정도 불식될 수도 있다. 하지만 온라인에서 난무하는 각종 비정보(disinformation)와 오정보(misinformation)는 이념의 극단화를 부추키는 힘으로써 작동할 수 있으므로 주의할 필요가 있다.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속가능한 평화와 포용적 번영을 위한 새로운 국제적 합의이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폐해를 치유하고 자국우선주의가 내포하고 있는 위험성을 인지하고 이에 대처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적 결단과 방향, 무엇보다 새로운 국제적 합의에 대한 국가의 공약준수의지(commitment)가 필요하다. [1]Peter Gourevitch, “The second image reversed: the international sources of domestic politics,” International Organization 32, 4, Autumn 1978 [2]Kenneth Waltz, The Theory of International Politics, McGraw-Hill, Boston, 1979. [3]Yam et al., “The rise of COVID-19 cases is associated with support for world leaders,”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volume 117, No 41, 2020, National Academy Sciences, pp. 25429—25433 [4]Karl Polanyi, The Great Transformation: the Political and Economic Origins of Our Time, Farrar & Rinehart, 1944. [5]John Ruggie, “International regimes, transactions, and change: embedded liberalism in the postwar economic order,” International Organization, 1982, 36, 2, pp. 379-415. [6]Paul Krugman, “Ending the End of the Welfare as We Know It”, Opinion, New York Times, March 11, 2021, [7]The Economist, “The Real Revolution on Wall Street,” Leaders, Feb 6th, 2021. 기획 및 편집:  임해용 연구위원 저자소개 임해용 박사는 제주평화연구원의 연구위원으로 애리조나주립대 박사후연구원과 통일연구원의 부연구위원을 지냈다. 서울대학교 외교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휴스턴대학에서 투명성의 정치경제에 관한 연구를 하여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연구분야는 투명성의 정치경제, 분쟁과 평화의 정치경제, 동북아 국제정치 등이다. 주요 논문으로는 “Does the WTO Exacerbate International Conflict”(Journal of Peace Research, 2020), “평화경제론과 한반도: 분쟁 후 국가의 평화구축 관점” (국제정치논총, 2021) 등이 있다.
  • [JPI PeaceNet] 바이든 정부의 대중동정책: 핵심 이슈와 전망
    저자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중동센터장)
    발간호
    2021-03
    [편집자 註] 트럼프가 뒤흔든 중동정세의 미래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바이든 정부의 등장으로 미중동지역에 대한 미국의 새로운 대전략이 국제사회의 관심을 받고 있다. 이전 정부가 파기한 이란 핵합의는 순조롭게 복원될 것인가? 아브라함 협정의 성과는 어떻게 유지, 변화될 것인가? JPI PeaceNet은 아산정책연구원 장지향 선임연구위원의 기고문을 통해 바이든 중동정책의 핵심과 전망, 그것이 가지는 한국 대중동정책에의 함의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편집: 유기은 박사후 연구원(keryu@jpi.or.kr)] 바이든 정부의 중동정책은 트럼프 정부가 파기한 이란 핵합의(Joint Comprehensive Plan of Action) 복원, 민주주의와 인권 및 동맹 가치 강조, 아브라함 협정과 아랍-이스라엘 데탕트 지지를 핵심으로 한다. 하지만 그 실행 과정이 순조롭지 않으리라고 전망된다. 첫째, 2015년 오바마 정부가 핵합의를 주도했을 때와 달리 현재 이란 내부에서는 강경파가 득세하고 있다. 강경파는 핵개발 포기와 제재 완화를 통한 이란의 정상국가화가 아닌 반미 이슬람 혁명의 역내 수출과 핵개발을 고려한다. 둘째, 중동 동맹국 가운데 민주주의 모범국은 거의 없다. 포스트 코로나 시기 중동에서 국가의 실패를 틈타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조직이 부활할 경우 미국엔 연합전선을 함께 조직할 동맹국의 역할이 절실하고 이때 민주주의와 인권 가치의 기준은 현저히 낮아질 수 있다. 셋째, 2020년 말 트럼프 정부의 중재로 성사된 아브라함 협정은 팔레스타인 이슈를 우선순위로 다루지 않지만 역내 갈등 일변도의 관성을 깬 외교적 성과였다. 이에 바이든 정부는 새로운 데탕트 지지의 일환으로 예루살렘으로 옮긴 미국 대사관을 그대로 유지하고 팔레스타인의 반발과 저항을 감내할 것이다. 이에 더해 역내 미 동맹체제의 이완, 러시아의 영향력 부상, 러시아-중국-이란-터키의 반미연대 강화 역시 바이든 정부 중동정책의 걸림돌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국내 지지세력 결집을 위해 포퓰리스트 대외정책을 남발하자 중동 내 미 동맹·우방국의 불안감은 높아갔고 이합집산이 시작됐다. 동맹국 터키와 카타르는 친러, 친이란 일탈 행보를 보였고 트럼프 정부는 이를 방관했다. 미국의 신뢰도가 추락한 사이 러시아는 후원국 시리아의 정상국가 복귀를 위한 종전협상을 주도했고 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 분쟁도 중재하며 외교력을 과시했다. 미국의 역내 입지가 빠르게 약화하자 미 동맹국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는 중국과의 관계를 발전시켰다. 중국은 터키, 이란과도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무엇보다 바이든 정부는 중동 내 미국의 역할을 점차 줄이고 중국 견제를 위한 인도-태평양 전략에 집중할 것이라고 밝혀 새로운 중동정책의 효과적 실행을 위해 전력투구하지 않을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란 핵합의 복원 2021년 1월 출범한 바이든 미 민주당 행정부는 트럼프 정부가 파기한 이란 핵합의 복원을 중동정책의 핵심으로 삼고 있다. 2018년 5월 트럼프 대통령은 2015년 오바마 정부 주도로 주요 6개국(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과 독일) 및 유럽연합이 이란과 어렵게 체결한 다자 핵협정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했고 고강도 이란 제재를 복원했다. 당시 핵합의가 이란의 핵개발을 근본적으로 막지 못한다는 이유에서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제사회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내 지지층의 결속을 노리며 개인 의지를 밀어붙였다. 2020년 12월 바이든 당선인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중동 안정을 위한 최고의 방법은 이란 핵합의 복원이라고 밝혔다. 이어 새 정부의 외교안보 진용을 2015년 이란 핵합의 주역들로 꾸렸다. 블링컨 국무장관,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말리 이란 특사 모두 과거 핵합의에서 핵심 역할을 맡았다. 2021년 1월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은 미국평화연구소 주최 화상회의에서 이란 핵합의 복원이 바이든 정부 초기의 중대한 우선순위 정책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바이든 정부의 이란 핵합의 복원 과정에는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트럼프 정부의 대이란 최대 압박 정책으로 인해 미국과의 핵합의를 지지한 이란 온건 개혁파의 입지는 현저히 줄어들었고 강경 보수파의 장악력이 견고해졌기 때문이다. 이란 강경파의 이해관계는 제재 완화를 통한 정상국가화가 아닌 반미 구호를 앞세운 이슬람 혁명의 역내 수출 및 팽창주의 전략 확대와 밀접하다. 이란 이슬람법학자 체제의 군조직 혁명수비대는 레바논 헤즈볼라, 예멘 후티 반군, 시리아와 이라크 시아파 민병대, 가자지구 하마스를 친이란 프록시 조직으로 육성해왔다. 특히 2020년 1월 트럼프 정부가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사령관을 이라크 바그다드 공항에서 드론으로 살해한 후 이란 내에선 대미 복수를 천명한 급진파가 득세했다. 이후 내부 권력 구도에서 보혁 경쟁은 사라졌고 혁명수비대 계열 강경파와 울라마 그룹 원리주의파 간 보수 경쟁이 자리 잡았다. 같은 해 2월 총선에서 군부 강경파가 원리주의자파에 승리했고 혁명수비대는 내부 숙청작업을 끝낸 후 대미 강경 대응의 전열을 갖췄다. 12월 급진 강경파가 장악한 의회는 20% 우라늄 농축 재개 법안을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시켰고 2021년 1월 이란 당국은 솔레이마니 사령관 사망 1주기에 맞춰 포르도 농축시설에서 20% 농축 재개를 선언했다. 같은 달 혁명수비대는 호르무즈 해협에서 환경오염을 이유로 우리 선박을 나포해 미국의 대이란 제재에 따른 한국의 원유 수출 대금 동결을 비난하며 한-이란 관계를 경색시켰다. 이란 강경파는 이미 트럼프 정부의 핵합의 파기와 고강도 제재로 인한 금전적 피해 보상을 주장하고 나섰다. 바이든 정부와의 핵합의 복원 협상을 앞두고 주도권 선점의 기 싸움을 시작한 것이다. 2021년 6월 실시될 이란 대선에서 강경파 계열의 당선은 거의 확실해 보인다. 2015년 오바마 정부가 핵합의를 주도했을 때 이란엔 온건파 계열 대통령, 외무장관, 대도시 국회의원 다수가 존재했으나 현재 권력층은 강경파 일색이다. 2020년 2월 이란 총선은 강경 보수파의 압승, 온건 개혁파의 참패로 끝났다. 전체 290석 가운데 보수파가 230석, 개혁파는 20석을 차지했고 35석은 무소속, 5석은 소수종교에 돌아갔다. 2016년 선거에서는 개혁파가 121석, 보수파는 83석을 얻었고 2013년 대선에선 온건 개혁파 로하니 후보가 당선됐다. 2021년 유력한 대선 주자는 2020년 총선을 통해 테헤란에서 압도적 1위로 승리한 갈리바프 전 혁명수비대 사령관이다. 이란 핵합의 복원에 대한 중동 지역 내 반대도 커졌다. 오바마 정부 주도의 핵합의 과정에서 배제됐던 수니파 대표국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UAE)는 이번 핵합의 복원 과정에 아랍 걸프국의 참여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또 이란의 핵무장을 우려하는 이스라엘이 이란 핵과학자 암살, 핵시설 파괴 등 다양한 비밀작전 지속을 공언하고 있다. 2020년 11월 이란 핵개발의 대부 파흐리자데가 테헤란 인근에서 살해당했고 이스라엘 정보국이 배후로 지목되고 있다. 바이든 정부의 이란 핵합의 복원이 순탄치 않으리라고 전망되는 또 다른 이유는 신정부 외교정책의 중점 지역이 인도-태평양이기 때문이다. 바이든 정부가 밑그림으로 삼는 오바마 정부의 중동정책 역시 역외균형 기조와 ‘뒤에서 이끄는’ 방식을 택했고 아시아 중시 전략에 집중했다. 이란 핵합의를 성사시켜 온건 개혁파에 힘을 실어주고 강경 보수파를 견제한 다음 나아가 중동 내 힘의 균형까지 끌어낸다는 계산이었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참전으로 인한 피로감과 여론 악화, 셰일 에너지 개발에 따른 중동 의존도 감소로 인해 중국 견제의 이해관계가 우선순위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로운 미 행정부는 중동 내 미국의 적극적 역할을 지양할 것이고 이란과의 협상에 전력을 쏟지 못할 수 있다. 트럼프 정부는 ‘중동에서 발 빼기’를 선언하며 이란 핵합의의 독단적 파기, 급작스러운 미군 철수와 우방 쿠르드 배신, 편파적 친이스라엘 행보, 대NATO 방위분담금 증액의 일방적 요구를 강행했다. 바이든 정부는 대안을 제시해가며 단계적으로 ‘중동 떠나기’를 실행하고 중국 견제를 내세운 인도-태평양 전략에 집중할 것이다. 신정부가 이란 핵합의 복원 협상을 서둘러 추진하고 있으나 조기성과가 나타나지 않으면 핵합의 장래는 그리 밝지 않을 것이다.   중동 민주주의와 동맹 가치 강조 다음으로 바이든 정부의 중동정책은 민주주의와 인권 및 동맹 가치를 강조할 것이다. 터키와 이집트에 권위주의 퇴행을 지적하고 사우디에 인권 개선을 압박하며 최근 후퇴하는 이스라엘 민주주의도 묵과하지 않을 것이다. 터키의 민주주의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일인체제와 철권통치 강화로 인해 추락했다. 전 세계 민주주의를 측정하는 프리덤 하우스의 2020년 보고서에 따르면 터키의 민주주의 지수는 중동의 대표적 독재 국가 알제리보다 낮았다. 그런데도 트럼프 대통령은 에르도안 대통령을 ‘터프가이’ 친구라며 적극 감쌌다. 2018년 터키 당국의 브런슨 복음주의 종단 목사 수감에 제재를 취한 경우를 제외하고 트럼프 정부는 터키의 러시아제 S-400 시스템 도입, 이란 당국과 돈세탁 공모에 대한 의회의 초당적 제재 요구를 끝내 막았다. 이집트에서는 2013년 엘시시 현 대통령이자 당시 국방장관이 민주적으로 선출된 무슬림형제단 정부를 쿠데타로 몰아낸 이래 심각한 수준의 권위주의 회귀가 일어났다. 2019년 엘시시 대통령은 헌법 개정을 통해 2030년까지 장기 집권할 수 있는 제도적 근거를 마련했다. 같은 해 트럼프 대통령은 미-이집트 정상회담에서 엘시시 대통령에게 ‘제일 좋아하는 독재자’라며 친분을 과시한 바 있다. 2013년 엘시시 국방장관 주도의 쿠데타 발발 당시 오바마-바이든 정부는 대이집트 원조를 즉각 중단했고 사우디가 수십억 달러 투자를 제공해 이집트의 재정 공백을 메워줬다. 바이든 정부는 2018년 사우디 정보국 요원들이 살해한 반정부 언론인 카슈끄지 사건의 책임을 사우디 정부에 묻고 여권 운동 탄압 중지도 압박할 것이다. 또 바이든 대통령은 2021년 2월 취임 후 첫 외교정책 연설에서 사우디 주도 아랍연합전선의 예멘 내전 개입 지원을 끝내겠다고 발표했다. 2015년 사우디는 아랍연합전선을 조직해 유엔이 정통성을 인정한 하디 정부를 지원해왔다. 그러나 이란 지원을 받는 후티 반군이 사우디 본토 공격을 본격화하자 사우디는 예멘 내 모든 항구를 봉쇄했고 인도주의 위기를 초래했다. 미국은 사우디 주도 아랍연합전선의 공중 급유와 민간인 오폭을 막기 위한 군사기술을 지원해왔다. 중동 내 유일한 공고화된 민주주의 국가 이스라엘은 2018년 7월 의회에서 유대민족국가법이 통과된 이후 빠른 민주주의 후퇴를 경험했다. 인구의 20%를 차지하는 아랍계 이스라엘인이 2등 시민으로 전락하고 서안의 유대인 불법 정착촌은 묵인되면서다. 네타냐후 총리는 폐쇄적 유대 민족주의와 안보 포퓰리즘을 효과적으로 선동해왔고 팔레스타인과의 공존을 강조하는 중도·진보 연합은 분열되어 있다. 바이든 정부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두 국가 해법’과 평화로운 공존을 지지하고 있다. 팬데믹 시기 세계적으로 민주주의 약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중동에서도 권위주의 심화 현상이 나타났다. 중동 권위주의 정권은 국가의 감시가 허용된 틈을 타 방역 명목 아래 집회를 금지했고 정적을 잡아들였다. 2019년 레바논, 이라크, 알제리, 수단, 이란, 이집트에서 일어났던 대규모 반정부, 반부정부패 시위도 동력을 잃었다. 이에 바이든 정부는 취약국가 레바논과 이라크, 신흥 민주주의 튀니지에 재정지원을 고려해야 하고 알제리와 수단의 민주화 시위대에도 도움을 줘야 한다. 반ISIS(Islamic State of Iraq and Syria) 국제연합전선에서 핵심 지상군으로 싸웠으나 트럼프 정부에 철저히 배신당한 시리아계 쿠르드를 다시 지원해야 하며 트럼프 정부가 중단한 유엔 팔레스타인난민구호기구 지원도 재개해야 한다. 그런데 포스트 코로나 시기 국가의 실패를 틈타 ISIS와 같은 극단주의 테러조직이 부활할 경우 바이든 정부는 동맹·우방국과 함께 연합전선을 조직해야 한다. 전염병의 혼란이 지나간 후 권위주의 정권이 민생고와 불평등의 불만을 해소하지 못하고 사회 저항과 정권 탄압의 악순환이 이어지면서 폭력적 극단주의 테러가 재부상할 가능성이 크다. 이때 동맹의 중요성을 앞세운 바이든 정부에 함께 격퇴전을 조직할 역내 동맹·우방국의 도움이 절실하지만 민주주의 모범국이 거의 없는 중동에서 민주주의 원칙과 기준을 내세울 수는 없을 것이다. 바이든 정부는 오바마 정부와 비슷하게 역내 내전과 분쟁 개입을 자제하고 대테러전에는 단호하게 대처하되 동맹국과 조직한 연합전선의 힘을 빌릴 것이라고 밝혔다. 즉 지상군이 아닌 특수부대 파병과 무기 제공, 공습 지원에 중점을 두고 동맹국과 고통을 분담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신정부는 대테러 연합전선을 구축해야 할 급박한 상황 앞에서 민주주의 원칙과 타협할 수밖에 없고 가치 연대의 틀은 희석될 것이다.   아랍-이스라엘 데탕트 지지 바이든 정부는 비록 트럼프 정부의 유산이지만 역내 갈등 해소에 이바지한 아랍-이스라엘 데탕트 성과를 지지할 것이다. 2020년 8월 UAE와 이스라엘은 미국 중재로 아브라함 협정을 맺어 국교 정상화를 이뤘고 이후 바레인, 수단, 모로코도 이스라엘과 수교에 합의했다. UAE와 이스라엘은 첨단기술과 정보 분야, 코로나19 백신 개발 등에 협력하기로 했고 특히 이스라엘은 국제법상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인 서안 합병 중단을 밝혔다. 아브라함 협정은 아랍-이스라엘 갈등의 핵심인 팔레스타인 문제를 우선 과제로 다루지 않지만 중동 내 갈등 일변도의 오랜 관성을 깨는 외교적 성과로 평가된다. UAE와 아랍 국가는 지금껏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서 같은 민족이자 이스라엘보다 약자인 팔레스타인을 지지하고 팔레스타인자치정부의 시민사회 탄압과 원조금 횡령을 묵인해왔으나 이러한 구시대적 민족주의에서 벗어난 것이다. 최근 UAE와 사우디는 여성 인재 등용, 보조금 폐지, 첨단산업 육성으로 석유 의존과 보수 이슬람 탈피 개혁을 시행해왔다. 코로나19 시기 이들 걸프 산유왕정은 권위주의 시스템을 활용해 봉쇄와 격리를 일사불란하게 집행했고 대규모 추적 검사를 시행했으며 감염 관련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했다. 또 서남아 출신 이주 노동자에게도 무료 검사를 시행하고 의료용품을 나눠주면서 국가역량을 과시했다. 저유가로 인한 재정 감소, 청년 인구의 증가, 미국의 역내 입지 약화, 이란의 팽창정책 확산의 위기 앞에서 이들 걸프국에 개혁개방 정책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이스라엘의 기술 경쟁력은 왕정의 개혁 정책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가장 개방적 왕정인 UAE엔 이미 이스라엘계 스타트업 회사가 다수 진출해 있고 사우디의 개혁 프로젝트 ‘비전 2030’에는 이스라엘 출신 자문단이 깊이 간여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스라엘, UAE, 사우디는 시아파 종주국 이란이라는 공동의 적을 갖고 있기도 하다. 다만 사우디는 수니파 대표국이자 이슬람 성지 메카와 메디나의 수호국이라는 위상을 고려하여 이스라엘과의 국교 정상화 대열에 아직 나서지는 않고 있다. 바이든 정부는 UAE를 위시한 아랍 국가와 이스라엘 간의 전략적 연합을 지지하면서 트럼프 정부 시기 예루살렘으로 옮긴 미국 대사관을 그대로 유지할 것이다. 팔레스타인은 이에 거세게 반발할 것이기에 신정부는 대신 트럼프 정부가 강행한 다른 이스라엘 편향 정책을 되돌려 놓을 것이다. 2018년 폐쇄한 워싱턴 주재 팔레스타인해방기구 대표부, 같은 해 중단한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 지원, 2019년 폐쇄한 팔레스타인 업무 담당 동예루살렘 주재 미국 영사관을 재개할 수 있다. 나아가 아브라함 협정의 기본 틀을 유지하는 대신 데탕트의 아랍 당사자 UAE와 사우디에 민주주의와 인권 원칙을 강조할 것이다. 또한 팔레스타인에도 2021년 5월 예정인 총선, 7월 예정인 대선의 공정한 실시를 압박할 수 있다. 파타가 이끄는 팔레스타인자치정부는 2006년 총선에서 하마스가 승리하자 이후 15년간 선거를 시행하지 않은 채 권위주의 통치를 고수해왔다. 바이든 정부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로운 공존 조건으로서 팔레스타인자치정부의 민주주의와 인권 증진 필요성을 주장할 것이다.   나가며 바이든 정부의 중동정책은 여러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다자주의, 민주주의, 인권 원칙에 기반해 단계적으로 투명하게 진행될 것이란 점에서 한국의 대중동정책에 긍정 신호를 보낼 수 있다. 우리는 중동 내 핵확산 금지, 민주주의 지지, 인권 보호를 핵심으로 삼는 중견국 외교를 강조해왔다. 국제사회 내 한국의 위상에 걸맞도록 경제 이익을 넘어선 국제규범, 다자주의, 인도주의 원칙에 따른 중동정책 구축을 추진해왔다. 이는 한반도 의제를 둘러싼 국제사회의 협조와 윤리적 권위 확보를 위해서도 필요한 정책이다. 나아가 바이든 시대 중동 민주주의와 인권 강조 정책은 우리의 대중동 중견국 외교와 같은 원칙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다자 무대에서 한미 양국의 가치외교 협력을 꾀할 수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이러한 한미 공조는 현재 바이든 정부가 역점을 두고 있는 이란 핵합의 복원 과정에서도 이뤄져야 한다. 2021년 2월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말리 이란 특사에게 핵합의 복원 협상팀 구성을 지시했고 말리 특사는 내부 조직 구성과 함께 영국, 프랑스, 독일은 물론 이스라엘과 아랍 걸프국까지 접촉해 협의를 시작했다. 우리는 이란 핵개발 포기에 대한 명확한 로드맵이 복원 과정에서 관철되도록 외교력을 발휘해야 한다. 이란 핵합의가 북핵 협상에 주는 함의가 크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선 중동 핵 비확산 원칙을 주장하는 우리의 중견국 외교를 활발히 펼치고 미국의 이란 핵문제 해결 움직임을 적극 지지해야 한다. 한편 바이든 정부의 아랍-이스라엘 데탕트 지지는 우리가 현재 진행 중인 UAE의 개혁개방 프로젝트 협력과 맥을 같이 할 수 있다. 아브라함 협정 체결 이후 UAE와 이스라엘 협력의 핵심은 UAE 산업 다변화에 이스라엘 첨단기술을 투입하는 것이다. 우리의 특별 전략적 동반자 국가이자 최초 원자력 발전소 수출국인 UAE는 최근 우리와 수소 경제 협력 MOU를 체결했다. 2020년 12월 한-이스라엘 FTA가 3년 만에 타결되어 2021년 초 발효를 앞둔 만큼 한국-이스라엘-UAE 3국 간 신산업 분야 협력을 활성화할 수도 있다. 바이든 정부의 중동정책 기조가 역내 미국의 역할을 점차 줄여나가는 것이라면 우리가 아랍-이스라엘의 전략적 연합을 지원하고 중동 안정에 이바지하면서 한미 공조를 다질 수 있다.   기획 및 편집: 유기은 박사후연구원 저자소개 장지향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선임연구위원이자 중동센터장이다. 외교부 정책자문위원(2012-2018)을 지냈고 현재 산업부, 법무부,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문학사, 정치학 석사 학위를, 미국 텍사스 오스틴 대학교(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연구 분야는 중동 정치경제, 정치 이슬람, 비교 민주주의와 독재, 극단주의 테러와 안보, 국제개발협력 등이다. 저서로 클레멘트 헨리(Clement Henry)와 공동으로 편집한 The Arab Spring: Will It Lead to Democratic Transitions? (Palgrave Macmillan 2013), 주요 논문으로 『중동 독재 정권의 말로와 북한의 미래』 (아산리포트 2018), “Disaggregated ISIS and the New Normal of Terrorism” (Asan Issue Brief 2016), “Islamic Fundamentalism” (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the Social Sciences 2008) 등이 있다.
  • [JPI PeaceNet] 북한의 평화개념과 평화 만들기
    저자
    홍용표 (한양대학교 교수)
    발간호
    2021-02
    [편집자 註]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는 일은 남과 북, 동아시아, 나아가 전 세계를 위해서도 우리가 반드시 이루어야할 과제이다. 하지만 한반도의 평화를 만들고 지키기 데 있어서 장애물로 작용하는 요인은 남과 북이 각자 ‘평화’가 무엇인지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JPI PeaceNet은 한양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홍용표 교수님의 기고문을 통해 남과 북이 생각하는 ‘평화’란 각각 무엇이며 어떻게 하면 그 차이를 줄일 수 있는지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편집: 정승철 연구위원(scchung@jpi.or.kr)] 다양한 평화의 의미 평화연구의 대가인 볼딩(Kenneth Boulding)은 “평화라는 말은 너무나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강조하였다. 평화의 개념을 학문적으로 정리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 쓰임새가 가지각색이라는 것이다.1) 2000년 이후 출간된 논문 중 제목에 평화(peace)가 포함된 것들을 분석한 결과, 평화라는 용어가 40여 개의 다른 의미로 사용되었다는 분석 결과도 있다.2) 평화는 말 그대로 ‘인류 보편적 가치’이며, 누구도 그 필요성을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평화는 시대적·공간적 상황에 따라, 또는 사용자에 따라 다른 의미를 지닌다. 때로는 평화 앞에 어떤 형용사를 붙여 특정 의미를 부각하려 한다. ‘항구적’ 평화, ‘불안한’ 평화, ‘진정한’ 평화, ‘거짓’ 평화 등이 그것이다. 평화연구가 지닌 다학제적, 다차원적 접근법도 평화 개념의 다양성에 영향을 미쳤다. 평화학의 선구자인 갈퉁(Johan Galtung)은 폭력을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모독하는 것”이라고 정의하며 3가지 유형의 폭력을 제시하였다. 전쟁, 사형과 같은 ‘직접적(물리적) 폭력,’ 정치적 억압, 경제적 착취, 사회적 차별과 같은 ‘구조적 폭력,’ 그리고 이러한 폭력을 정당화하는 기제인 ‘문화적 폭력’ 등이 그것이다.3) 이미 널리 알려져 있듯이 물리적 폭력이 없는 상태는 “소극적” 평화로, 갈퉁이 제시한 3가지 폭력이 모두 없는 상태는 “적극적” 평화라고 일컬어진다. 갈퉁의 적극적 평화는 사실상 인간 생활의 모든 영역에 걸친 고통의 문제와 연관되어 있으며, 그만큼 넓은 범위를 다룬다. 적극적 평화론을 현실 세계와 접목하기 위해 UNESCO 등을 중심으로 발전된 ‘평화문화(culture of peace)’ 개념도 평화가 “생명에 대한 존중, 자유, 정의, 연대, 관용, 인권, 남녀평등”과 같은 다양한 가치에 기초해 있다고 인식한다. 이와 같은 논의는 평화연구의 영역을 확대하였고 다양한 폭력과 위협에 대한 경각심을 높였다는 긍정적인 평가와, 그 개념이 너무 광범위하여 학문적 정체성과 정책적 응집성 및 방향성이 떨어진다는 부정적 평가를 동시에 받고 있다. 한국에서의 평화 논의 최근 한국사회의 평화 담론도 점차 그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서구에서의 평화연구 발전의 영향과 한국에서의 평화 연구에 대한 관심 확대 등으로 평화의 구조적, 문화적 측면에 관한 연구가 본격화되고 있다. 하지만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으로 인해 한국에서의 평화논의는 분단관리 차원, 특히 군사적 긴장 완환 또는 전쟁 방지 문제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2019년 통일연구원의 『한국인의 평화의식』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평화’라는 단어를 듣고 가장 많이 떠올린 단어는 ‘통일’(26.1%)이었고, 그다음이 ‘비둘기’(18.6%)였다. 이어 ‘전쟁’(6.6%), ‘북한’(6.3%) 등을 떠올렸다. 일반 국민도 평화를 인류 보편적 가치라는 측면보다는 분단 극복이라는 특수성 차원에서 이해하려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전쟁의 경험과 냉전문화, 지속적인 북한의 위협, 갈등적 상황이 현존하는 대내외 환경 등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첫째, 6.25 전쟁으로 인해 우리 사회에는 전쟁 재발에 대한 두려움, 북한에 대한 불신과 적대감이 내재화되었다. 둘째, 북한은 전쟁 이후 각종 도발을 지속하여 왔으며, 특히 핵·미사일 개발을 가속화로 인해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은 확대될 수밖에 없었다. 셋째, 국제환경적 측면에서 주변 강대국 사이의 대립과 갈등은 분단 상황과 어우러져 한반도에 투영되어왔다. 국내적 차원에서는 냉전문화에 기인한 정치적·이념적 갈등이 평화에 대한 시야를 더욱 좁혔다.4) 정책적 측면에서도 평화에 대한 시각을 넓히려는 접근이 시도됐으나, 분단이라는 현실을 완전히 뛰어넘을 수는 없었다. 예를 들어 박근혜 정부는 안보를 확실히 챙김과 동시에 “신뢰와 협력을 바탕으로 지속가능한 평화를 적극적으로 만들겠다”는 정책 기조를 내세웠다. 아울러 “정치·군사적 신뢰구축”과 “사회·경제적 교류협력”의 상호보완적 추진을 통해, 남북관계를 정상화하고 “한반도 평화를 굳건히” 하고자 했다. 하지만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심각해짐에 따라 안보를 굳건히 지키는 소극적 평화에 더 큰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한반도 정책에서 평화가 차지하는 비중이 더욱 커졌다. 문재인 정부는 평화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최우선의 가치이자 정의이며, 번영을 위한 토대”라고 강조하였다. 또한 튼튼한 안보를 바탕으로 “평화를 지키고, 평화를 만들어” 나감으로써, “항구적인 평화를 정착”시키겠다는 정책 방향을 제시하였다. 하지만 현 정부의 평화 프로세스 역시 지속되는 북한의 핵위협 등 안보적 문제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사실 문재인 정부 초기에는 평화정책이 상당히 효과가 있었다. 무엇보다 남북한 간에는 3차례의 정상회담이 개최되었고, 한반도 평화에 대한 중요한 합의가 이루어졌다. 우선 2018년 4월 두 정상은 「판문점 선언」에서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리었음”을 천명하였다. 이 선언에서 남북한의 정상은 “군사적 긴장 상태를 완화하고 전쟁위험을 해소하는 것”이 민족의 “평화롭고 안정된 삶을 보장하기 위한 관건적인 문제”라는데 인식을 같이하였다. 나아가 남북은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하고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하여 적극 협력”하기로 약속했다. 5개월 뒤 「평양공동선언」에서는 평화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내용이 담겼다. 남과 북은 한반도를 “항구적인 평화지대”로 만들기 위해 ‘군사분야 이행합의서’ 체결 등 실천적 조치를 적극적으로 취해 나가기로 하였다. 핵문제와 관련해서도 한반도를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기 위해 필요한 “실질적인 진전을 조속히” 추진하자는데 인식을 같이하였다. 같은 해 6월 미국과 북한의 정상도 싱가포르에서 만나, 한반도의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함께 노력할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평화의 약속은 제대로 지켜지지 못했다. 무엇이 원인일까? 여러 가지 환경적, 구조적 요인들이 영향을 미쳤겠지만, 주요 당사자들이 생각하는 평화의 개념에 차이가 있다는 점도 중요한 요인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아무도 평화의 중요성을 부인하지는 않지만,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평화의 의미와 목표는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이 말하는 평화의 의미는 무엇인지, 어떤 특징을 지니고 있는지, 특히 우리가 생각하는 평화와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는 것은 앞으로 평화를 만들어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북한이 생각하는 평화 북한이 간행한 『조선말 대사전』을 찾아보면 ‘평화’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① 전쟁이나 무장충돌 같은 것이 없는 상태, ② 분쟁이나 반목이 없이 화목한 상태. 이는 한국의 사전적 의미와 유사하다. Naver 사전에 따르면 평화는 “평온하고 화목함,” “전쟁, 분쟁 또는 일체의 갈등이 없이 평온함, 또는 그런 상태” 등을 뜻한다. 하지만 북한의 경우 평화가 포함된 합성어의 의미에는 이념적·환경적 특수성이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어 ‘평화전략’은 “미제가 세계 혁명력량을 말살하고 해외 침략을 강화하기 위하여 들고나온 침략적인 전략의 하나”라고 정의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평화주의’는 “제국주의에 아부 굴종하면서 정의의 전쟁도 포함한 전쟁 일반을 반대하고 무원칙한 평화를 주장하는 반동적인 사상이나 태도”라고 정의하였다. 그렇다면 북한의 최고 권력자이며 북한의 대남정책 및 대외정책을 주도하는 김정은 위원장은 평화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최근 발표된 북한 노동당 제8차 당대회 사업총화 보고(이하 「보고」로 표기)는 이런 궁금증을 풀어줄 좋은 자료이다. 『조선중앙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위원장의 「보고」는 ① 총결 기간(즉, 지난 5년간) 이룩된 성과, ② 사회주의 건설의 획기적 전진을 위한 과제, ③ 조국의 자주적 통일과 대외관계 발전을 과제, ④ 당 사업의 강화발전을 위한 과제 등 네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A4 용지 기준 23페이지 분량의 「보고」에서 김정은은 ‘평화’라는 표현을 14번 사용하였으며, 여기에는 김정은의 평화 인식과 정책 방향이 잘 나타나 있다.5) 우선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5년간 군사력 부분의 성과와 관련, 북한의 “인민군대가 조국의 령토, 령공, 령해를 믿음직하게 보위”하였으며, “적들의 도발위협을 단호히 제압하며 사회주의 건설의 평화적 환경을 수호하였다”고 강조하였다. 이어 김정은은 “국가 핵무력 건설 대업을 빛나게 완성”함으로써 “우리나라가 명실공히 세계적인 핵강국, 군사강국으로 부상”하였다고 천명하였다. 나아가 “우리 인민들이 존엄 높은 강대한 나라에서 영원히 전쟁의 참화를 모르고 번영과 행복을 마음껏 창조해나갈 수 있게” 되었고, 이것이 지난 5년간 이룩한 “가장 뜻깊고 긍지 높은 대승리”라고 자평하였다. 대외관계 부문에서 「보고」가 내세운 업적은 “대담한 로선 전환과 공격적인 전략”을 통해 “국제사회가 공감하는 평화의 기류를 조성하고 대화 분위기를 마련”하였는 것이다. 여기서 북한이 말한 ‘노선과 전략’은 소위 “병진노선”을 의미한다. 즉, “병진로선의 위대한 승리”와 이에 기반한 적극적인 대외활동이 “국가의 존엄과 위상”을 높였다는 것이다. 특히 「보고」는 미국의 “발악적인 공세”로 인한 “엄혹한” 대외환경에서 “공화국의 자주권을 그 누구도 침해할 수 없다”는 것을 “만천하에 각인”시켰다고 강조하였다. 이러한 논리는 북한이 미국과의 “역학관계를 극적으로 변화”시킴으로써 “평화수호의 새로운 정치 흐름”을 만들었다는 주장으로 이어졌다. 미국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자신들의 “자주적 리익”과 “평화와 정의를 수호하는 공화국의 전략적 지위”를 과시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번 북한 노동당 제8차 당대회 사업총화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에서 가장 큰 특징으로 이야기된 점이 경제적으로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의 실패를 인정하는 대신, 핵능력 강화 및 이에 기초한 대외적 지위 상승을 주요 성과로 제시하였다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평화 관련 내용을 보면 북한은 바로 이러한 성과를 평화와 연결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울러 김정은은 ‘국가’ ‘공화국’ 등의 표현을 자주 사용하며 힘에 기초한 국익 차원에서, 즉 현실주의적 관점에서, 평화를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북한의 평화 개념에는 대미 인식이 크게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북한식 평화 논리는 향후 당 사업 과제에 대한 내용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보고」에서 국방건설을 위한 과업을 제시하면서 꺼낸 첫 마디는 바로 “국가 방어력이 평화수호의 믿음직한 담보”라는 것이다. 특히 김정은은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이 더 극심해”지고 있는 상황을 언급하며, 다음과 같이 국방력의 중요성을 설명하였다: “우리 국가를 겨냥한 적들의 첨단무기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자기의 힘을 부단히 키우지 않고 무사태평하게 있는 것보다 더 어리석고 위험천만한 짓은 없다.” 따라서 김정은은 군사력을 끊임없이 강화해서 미국의 군사적 위협을 억제해야 “조선반도의 평화”가 이룩될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남북관계에 대한 내용은 ‘남한 탓’ 논리가 핵심이다. 한반도 평화가 불안한 것은 남한 때문이며, 남한이 하기에 따라 평화가 정착될 수 있다는 것이다. 「보고」는 현 상황이 “평화와 통일의 길로 나아가는가 아니면 대결의 악순환”으로 이어지는가 하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고 평가하면서, 남한에서 지속되고 있는 “군사적 적대행위와 반공화국 모략소동” 때문에 앞으로의 남북관계가 “불투명”하다고 전망했다. 이어 「보고」는 “조선반도의 평화와 군사적 안정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남측이 남북합의를 이행하고, 특히 “첨단 군사장비 반입과 미국과의 합동군사연습을 중지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아울러 북한은 우리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 방안으로 제안한 방역 협력, 인도주의적 지원, 개별 관광 사업 등은 “비본질적인 문제”라고 폄훼하였다. 결론적으로 「보고」는 남측이 북한의 “정당한 요구에 화답”해야만--즉 군사력 강화와 한미합동 훈련을 중지해야만--“3년전 봄날”과 같은 “평화와 번영의 새 출발점”에 설 수 있다며 남측의 변화를 요구하였다. 대외관계 관련 과제를 언급하면서도 김정은 위원장은 힘에 기초한 평화의 중요성을 천명하였다. 다음의 「보고」 내용은 평화에 대한 김정은의 인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행성에 우리나라처럼 항시적인 전쟁 위협을 받고 있는 나라는 없으며 그만큼 평화에 대한 우리 인민의 갈망은 매우 강렬하다. 우리가 최강의 전쟁억제력을 비축하고 끊임없이 강화하고 있는 것은 우리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이며 영원히 전쟁이 없는 진정한 평화의 시대를 열어놓기 위해서이다. 우리의 국가방위력이 적대세력들의 위협을 령토 밖에서 선제적으로 제압할 수 있는 수준으로 올라선 것만큼 앞으로 조선반도의 정세 격화는 곧 우리를 위협하는 세력들의 안보 불안정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와 같은 김정은의 평화 논리는 다시 한번 대미정책 방향과 연결된다. 북미관계를 새롭게 수립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이 철회되어야 하며, 북한은 “앞으로도 강대강, 선대선의 원칙”에서 미국을 상대할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이어 「보고」는 북한이 “책임적인 핵보유국”이라는 점을 내세우며 대외관계 부분을 마무리하였다. 이와 관련 북한은 “침략적인 적대세력이 우리를 겨냥하여 핵을 사용하려 하지 않는 한 핵무기를 람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하였다. 여기에는 자신의 핵무기가 공격용이 아니라고 말함으로써 미국을 과도하게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이 “핵보유국”이라는 점을 미국에게 재확인시키고 기정사실화 하려는 북한의 의도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러한 평화 인식을 지닌 북한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 것인가? 한반도에서 평화 지키기와 평화 만들기 한반도 평화정착은 우리 자신은 물론, 동북아와 세계적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리고 한반도에서 평화를 지킬 뿐만 아니라, 안정적인 평화 상태로 전진하기 위해서는 우선 북한의 비핵화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데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렇기에 우리 정부도 2021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위한 핵심 추진과제로 “남북관계 개선, 남북 정상 간 합의사항 본격 이행 추진,” 특히 「판문점 선언」 및 「평양공동선언」의 ‘완전한 비핵화’와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 노력을 내세웠다. 문제는 남북한이 합의한 ‘평화’에 대한 생각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물론 유사한 측면도 있지만, 차이점이 더 크다. 첫째, 앞에서 살펴봤듯이 김정은의 평화관은 매우 현실주의적이다. 국가 이익 유지와 국가 지위 향상의 중요성을 강조하였으며, 평화수호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고 이를 위한 국방력 강화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서구적인 평화 개념에 따르면 매우 ‘소극적인 평화관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둘째, 북한의 평화 개념 역시 분단이라는 특수성을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그 정도가 훨씬 심하며 특히 반미주의가 짙게 깔려있다. 셋째, 앞의 두 가지 특징은 결국 북한의 핵보유 정당화 논리로 이어진다. 우리는 ‘비핵 평화’를 원하고 있지만, 북한은 ‘핵 평화’를 지향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더구나 북한은 한국의 군사력 강화가 평화의 걸림돌이라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갈퉁은 평화란 “갈등을 비폭력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에 갈등이 존재하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 갈등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폭력이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다. 그렇다고 실제 정책을 수립·이행하면서 ‘힘의 정치’가 존재하는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다. 비폭력의 중요성이 힘 자체를 포기해야 하는 것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처칠은 평화에도 “근력(sinews)’이 필요하다고 역설하였다. 이는 폭력을 위한 힘의 필요성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잘못된 생각과 행동에는 단호히 대응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북한과 평화를 논의할 때도 이러한 측면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우리의 목표가 비핵 평화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비핵화 협상은 핵개발이라는 북한의 잘못된 행동을 중단시키고 핵무력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야 진정한 평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 비핵화 과정은 말 그대로 길고 어려운 길이다. 또 다양한 접근법이 시도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목표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대화와 제재는 모두 비핵화와 평화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이다. 제재만을 앞세우며 대화를 외면해서는 안되지만, 단순히 대화의 장을 만들기 위해 제재를 함부로 완화하는 것도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 북한이 원하는 핵 평화는 결코 인정할 수 없다는 굳은 의지를 다지고, 대화와 제재 등 다양한 수단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며 비핵화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평화정책을 추진함에 있어서는 남북관계의 국가적 차원과 민족적 차원에 대한 균형적 접근이 필요하다. 김정은 시기에 들어와 북한은 ‘국가 제일주의’를 앞세우며 평화문제도 철저하게 국익 중심으로 생각하고 있다. 김정은은 “국가와 인민의 자주권과 생존권”을 위해 핵무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따라서 우리 정부도 평화와 통일을 지향하되 그 과정에서 국가 이익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특히 북한의 핵개발과 위협은 민족 감정을 앞세우며 감싸줄 수 없는 사안이다. 북한은 통일 이후 함께 살아가야 할 대상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안보이익을 위협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정부는 이러한 이중성을 분명히 인지하며 정책을 만들고 추진해야 한다. 장기적 관점에서 평화 담론과 정책 목표의 범위를 넓혀야 할 것이다. 앞서 지적하였듯이 분단의 영향으로 우리 사회에서 평화를 보는 시각은 국제사회에 비해 상당히 좁다. 북한의 평화인 식은 더욱 편협하다. 군사력에 의존한 평화수호 논리에 매달리고 있는 북한을 상대하기 위해 단기적으로는 우리도 국익과 안보 지키기에 치중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단기간 내에 구조적, 문화적 폭력이 없는 수준의 평화를 만들 수는 없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현재보다 적극적이고 다양한 평화 아젠다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평화는 기본적으로 인간다운 삶을 의미한다. 한반도 평화도 다르지 않다. 정부간 대화와 군사적 긴장 완화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 한반도 구성원의 자유롭고 인간다운 삶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그래야 북한이 제시하는 편협한 평화 프레임에 말려들지 않고, 글로벌 시대에 걸맞는 평화를 주도적으로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1] Kenneth E. Boulding, Stable Peace (Austin: University of Texas Press, 1978). [2] Peter T. Coleman, “Conclusion: The Essence of Peace? Toward a Comprehensive and Parsimonious Model of Sustainable Peace.” Peter T. Coleman & Morton Deutsch, eds. Psychological Components of Sustainable Peace (New York: Springer, 2012). [3] Johan Galtung, 강종일 외 옮김,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 (서울: 들녘, 2000). [4] 홍용표, “평화문화와 지속가능한 평화: 한국에서의 의미와 과제,” 『문화와 정치』 제5권 2호(2018). [5]『조선중앙통신』, 2021년 1월 9일. 아래에서 북한의 평화 인식과 관련해 인용한 내용 중 이탤릭 표시는 필자가 덧붙인 것임. 기획: 정승철 연구위원 편집: 장훈필 연구원 저자소개 영국 Oxford University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을 거쳐 2001년 한양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부임하였다. 한국정치학회 연구이사, 민주평통 상임위원, 경실련 통일협회 운영위원장 등으로 활동하였으며, 2015년 3월부터 통일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한양대 교수로 복귀한 이후 통일문제, 평화와 안보, 한국외교 분야에 대한 연구와 교육을 지속하고 있다.
  • [JPI PeaceNet] 분열의 미국 사회와 포스트트럼프 시대, 바이든 행정부는 통합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
    저자
    유성진 (이화여대 스크랜튼학부 교수)
    발간호
    2021-01
    2021년 1월 6일 대통령선거의 결과를 최종적으로 확정 짓는 절차를 앞둔 미국 국회의사당에서의 폭력사태는 미국은 물론 전세계를 경악시켰다. 성난 군중이 미국 민주주의의 심장으로 여겨지던 국회의사당에 난입하는 모습은 대중매체와 SNS를 통해 삽시간에 전세계로 전달되었다. 영국과 캐나다, 독일 등 미국의 우방국가의 정치지도자들은 이러한 상황을 미국 민주주의의 직접적인 위협으로 보며 심각한 우려를 표방하였다. 트럼프지지자들의 국회의사당 난입은 미국 사회의 극심한 분열과 리더십의 붕괴를 보여주는 최악의 사태이다. 미국의 진보매체 일각에서는 큐어넌(QAnon)과 프라우드보이즈(The Proud Boys)와 같은 극우성향의 트럼프지지자들을 사건의 주동자들로 지목하고 있으나 상황 전체를 그들의 책임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트럼프지지자와 반트럼프 세력 간의 대결 속에서 극심한 국내적 분열의 양상으로 전개된 2020 미국 대선은 바이든의 승리로 귀결되었지만, 트럼프는 2016년보다 천만 표 이상 증가한 7천4백만 표 이상을 획득하여 그 영향력을 보여주었다. 펜실베이니아와 조지아 등 접전주에서의 승부가 민주당으로 기울어 선거의 승패가 가름되었음에도 선거부정을 빌미로 트럼프는 결과에 승복하지 않았으며, 증명되지 않은 의혹은 트럼프지지자들을 중심으로 선거결과에 대한 일련의 소송과 기각으로 이어졌다. 이전에 형식적으로 진행되던 선거 이후의 절차들을 둘러싸고도 분열의 양상은 약화되지 않았으며, 급기야는 트럼프 대통령의 방관과 선동 속에서 트럼프 지지시위대에 의한 국회의사당의 폭력적인 점거라는 파국으로 귀결되었다. 결국 현재 우리가 목도하는 상황은 극우세력에 의한 우발적인 돌발행동이라기보다는 잠재되어 있던 미국 사회의 분열이 노골적으로 그리고 극단적으로 표면화된 결과이다. 파국의 원인에는 극심한 미국 사회의 양극화와 이를 제대로 관리, 해결하지 못한 미국 정당들의 무능력, 그리고 노골적으로 분열을 조장한 트럼프의 리더십이 중첩되어 있다. 다양한 민족적 뿌리를 가진 이민자들의 나라라는 미국의 태생적 출발은 정치적으로 통합을 중요시하는 풍토를 가져왔고 사회·문화적으로는 다양성의 인정과 관용, 그에 기반을 둔 다원주의를 중요한 덕목으로 이어왔다. 이러한 미국 사회의 덕목은 최근 이를 위협하는 변화에 봉착하였다. 2001년 전대미문의 911 테러, 2008년 경제적인 불황을 가져온 금융위기는 외부인에 대한 미국인들의 관용도를 크게 낮추는 계기가 되었다. 이에 더해 소수인종 대통령인 오바마의 등장은 스스로를 미국 사회의 주류라 여겼던 백인계층, 특히 백인노동자들의 불만과 불안감을 가중시켰다. 2016년 트럼프 행정부의 출범 이후 미국 사회는 기존에 이념적으로 갈라졌던 당파적인 양극화에 더해 성별로, 연령별로, 거주지역별로, 인종별로 트럼프에 대한 지지여부를 중심으로 극심한 사회적 분열을 겪었다. 이러한 미국 사회의 분열은 이를 제도적으로 조정하지 못한 정당의 무능력으로 그 효과가 더욱 배가되었다. 권력분립의 제도적인 틀 속에서 사회갈등을 논의하고 해소해야 하는 책무를 가진 정당들은 그 자체로 정파적 양극화의 대변자가 되었으며, 그러한 경향은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더욱 극심해졌다. 민주·공화 양 당으로 갈라진 정파적 양극화는 오바마 행정부 출범 이후 노골화된 정체성을 앞세운 정치로 인해 더욱 극단화되었고, 이러한 변화는 트럼프를 중심으로 결집한 공화당에서 더욱 현저하게 나타났다. 강성의 지지자들을 등에 업은 트럼프에 의해 장악된 공화당은 2016년과 2018년 두 차례의 선거를 거치면서 더욱 정파적인 의원들로 구성되었고, 사회분열과 갈등을 제도적인 틀 내에서 타협을 통해 해결하려는 중립적인 목소리는 크게 약화되었다. 유권자 차원의 분열과 극단적인 정당 양극화의 심화는 2020 미국 대선과정에서도 미국 민주주의의 민낯을 가감 없이 드러내었다. 지지세력 결집에 집중한 트럼프의 노골적인 캠페인 전략은 유권자들을 트럼프 지지자와 반트럼프 세력으로 양분시켰고, 코로나에 대한 대처와 경제불황, 이민문제 등 사회의 모든 현안을 정파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정파적 양극화는 트럼프에 대한 맹목적인 지지와 불신의 감정과 결합되어 현안해결을 위한 생산적인 논의는 거의 불가능해졌다. 지지와 불신임 간의 세력대결이 선거 내내 이어졌고 결과에 대한 수용 역시 정파성에 따라 크게 달라졌다. 급기야는 선거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트럼프 지지시위대에 의해 국회의사당이 폭력적으로 점거되는 상황으로까지 이어졌다. 이제 막 취임한 바이든 행정부에게는 무엇보다도 트럼프 행정부 시기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된 미국 사회의 분열을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놓여 있다. 현재의 미국은 극단적 정치와 문화전쟁, 그리고 경제 양극화로 인한 불평등으로 인해 그 분열의 양상이 극에 달해 있는 상황이다. 2020 대선결과는 인구학적으로 보면 여성과 소수인종, 고학력백인, 대도시거주자, 젊은 유권자층을 중심으로 한 반트럼프 연합, 그리고 남성, 저소득백인, 시골지역거주자, 고연령층을 중심으로 한 트럼프 지지세력으로 양분되어 그 균열의 양상이 한층 더 복잡해졌다. 1월 20일 바이든 행정부의 출범을 알리는 취임식은 미국 사회 분열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과 이의 치유를 위해 통합이 절실함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코로나 팬데믹의 영향으로 과거와 같이 수많은 지지자들의 환호 속에 펼쳐지지 못했지만, 대통령 취임식은 통합과 화합의 기치 아래 이전보다 더욱 경건하고 절실하게 치러졌다. 트럼프의 불참이라는 이례적인 상황이 있었지만, 민주·공화의 당파성을 넘어서서 전직 대통령들과 의회의 지도자들이 대거 참석하여 새로운 대통령의 취임을 축하하였다. 취임사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다른 무엇보다도 통합(unity)과 미국 민주주의의 복원을 강조하였다. 이제 출범한 새로운 행정부에게 통합의 과제는 단순하지만 그 해결은 쉽지 않다.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 사회의 통합을 위해 한편으로는 트럼프를 지지한 세력을 포용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반트럼프 선거연합으로 뭉친 바이든 지지자들을 정책적인 협력집단으로 결집해야 하는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바이든 행정부에게 무엇보다 큰 고민은 전자에의 집중이 반트럼프 선거연합이라는 지지자들은 느슨한 연계를 와해시킬 우려가 있는 반면, 후자에의 집중은 트럼프 지지자들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히게 된다는 점이다. 선거연합으로 더욱 이질화된 민주당 내부를 다독이면서 동시에 초당적인 통합을 이룩하는 것은 쉽지 않은 과제이다. 통합에의 일차적인 열쇠는 바이든 행정부가 반트럼프 선거연합으로 집결한 민주당 내의 느슨한 가치연합을 정책적 협력으로 이어나갈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공화당에 비해 상대적으로 이질성이 강한 민주당은 이번 대선에서의 반트럼프 선거연합이 더해지면서 그 이질성이 더욱 높아졌다. 특히 샌더스와 워런 등 민주당 경선에서 후보자리를 두고 경쟁하였던 후보들이 반트럼프 선거연합을 통해 바이든을 지지하면서 민주당 내부의 진보적인 정책요구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따라서 행정부 인선과 정책적인 측면에서 소수자집단과 진보진영의 요구를 수용하는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다. 실제로 그러한 선택은 바이든 행정부의 구성에 이미 반영되어 있다. 바이든 행정부의 인선은 여성과 소수인종들을 대거 등용하면서 과거 어떤 행정부보다도 높은 다양성을 보여주었다. 상원의 인준과정이 남아있지만 국방장관과 재무장관, 그리고 국가정보국장 등 요직에 흑인과 여성을 역사상 최초로 임명한 것은 바이든 행정부가 다양성의 존중과 통합을 중요한 국정과제로 여기고 있음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더불어 취임 직전 발표된 바이든 행정부의 경기부양책은 그 규모가 예상보다 큰 1조 9천억 달러에 달하며 코로나 사태로 인해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계층에 한층 더 집중되어 있다. 이는 당분간 미국이 재정부채보다는 경제부흥에 집중하겠다는 분명한 메시지로, 2008년 금융위기에서 재정부채에 대한 우려로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에 소극적인 결과 이들을 민주당으로부터 멀어지게 했던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취임 첫날 서명한 17건에 달하는 행정명령에도 이민과 환경문제에 대해 소수자집단과 진보진영이 요구해왔던 내용들을 다수 포함하고 있다. 이민과 관련한 행정명령은 모두 5건으로 DACA(Deferred Action for Childhood Arrivals)의 강화, 이슬람 국가들로부터의 입국제한 철회, 국경장벽설치 중지 등 규제를 강화해 왔던 이전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들을 되돌리며 이민문제를 전향적으로 다루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더불어 트럼프 행정부가 탈퇴했던 파리기후협약에 재가입하고, 환경오염에의 우려를 안고 있음에도 트럼프 행정부에 의해 추진된 송유관 건설을 재검토하고 규제를 강화하였다. 그러나 현재 미국 사회의 분열은 그러한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적인 변화가 트럼프 지지자들의 극심한 당파성을 자극하는 정도로 추진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점 역시 분명하다. 새로운 정부의 출범에도 이를 바라보는 미국 유권자들의 시각은 여전히 극단적으로 당파적인 모습을 지속하고 있다. 취임 직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바이든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는 53%로 과반수를 넘고 있으나, 공화당 지지자들의 83%는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고 2020 대선에서 트럼프를 선택한 응답자들에게서는 부정적인 평가가 89%에 이른다. 선거에서 트럼프의 지지기반이었던 시골지역거주자들과 저학력백인들에게서도 부정적인 평가가 절반을 넘고 있다.1) 이와 같은 상황이 바이든 행정부의 진보적인 정책추진을 억제하는 제약요소가 될 것임은 자명하다. 다행스러운 것은 미국이 현재 당면하고 있는 코로나 위기가 초당적인 단합과 협조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기 초기 코로나 위기극복과 경제회복이라는 국가적인 당면과제를 전면에 내세우는 바이든 행정부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은 어려운 상황이다. 심각한 상황에 처한 코로나 위기의 극복과 경제회복이라는 국가적인 난제해결에 공화당이 당파적인 반대를 하기란 쉽지 않다. 더욱이 조지아주 선거결과로 하원 뿐 아니라 상원에서도 민주당이 정책결정의 주도권을 갖게 된 권력구도 역시 당분간 바이든 행정부가 취할 수 있는 정책적인 운신의 폭을 넓혀주었다. 더욱이 시위대의 국회의사당 난입이라는 폭력적인 상황에 대한 여론의 비판이 높고, 이를 방임하고 동조한 공화당에 대한 외부적인 압박과 내부의 자성 목소리가 등장하고 있다. 여전히 트럼프의 영향력이 건재하고 광적인 트럼프 지지자들의 폭력적인 시위가 촉발될 가능성이 있지만, 그것이 가져올 사회 불안정을 우려하는 여론이 높은 상황에서 ‘법과 질서의 수호’를 옹호하는 정당인 공화당으로서는 당분간 이전과 같은 이전투구를 보이기 어렵다. 만일 초기의 적극적인 정책추진으로 코로나 위기에 대한 해결의 돌파구를 찾고 가시적인 경제성과를 거둘 수 있다면 이는 바이든 행정부에게 커다란 정책실현의 동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한편으로 바이든 행정부와 민주당에게 주어진 정치적 시간이 그다지 많지 않은 것 역시 사실이다. 선거 직전 민주당의 기대와는 달리 의회선거는 민주·공화 양 당이 초박빙의 결과를 가져왔다. 민주당은 조지아주에서의 선전에 힘입어 상원에서의 주도권은 되찾았지만 하원에서 공화당과의 의석 격차는 10석으로 이전의 1/3로 줄어들었다.2) 이러한 상황은 바이든 행정부의 초기 정책이 가시적인 성과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2022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대단히 유리한 국면에 서게 됨을 의미한다. 취임사를 통해 분명히 제시했듯이 임기 초기 바이든은 트럼프와 다른 통합의 리더십을 앞세워 초당적 태도로 유권자들에게 다가가고 공화당의 협조를 구하는 통치전략을 구사하면서. 국론분열의 위기극복을 위해 당파적인 다툼 역시 최소화하려는 노력을 경주할 것이다. 현재 미국 사회가 겪고 있는 국가적인 위기 상황은 바이든 행정부에게 초기 국정운영을 위한 우호적인 환경을 제공할 것이다. 민주당이 상하원에서 정책결정을 주도권을 잡고 있다는 점과 트럼프 행정부가 지지시위대의 국회의사당 난입이라는 폭력적인 파국으로 종결되었다는 점은 분열보다는 통합을 기치로 내건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추진을 미국의 유권자들이 당분간 관망할 개연성을 높여주었다. 바이든 대통령이 오랜 정치적 경력의 대부분을 의회에서 보냈기에 광범위한 초당적인 네트워크를 갖고 있다는 점 역시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바이든이 민주당 내부의 이질성 극복과 초당적 협력의 창출에서 어떠한 리더십을 발휘할지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더불어 트럼프 이후 공화당의 변화 역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 지지시위대의 국회의사당 난입은 트럼프 임기 내내 단합된 지지를 보여주었던 공화당 지도부를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하게 만들었다. 특히 트럼프 지지시위대의 폭력적인 국회의사당 난입은 그간 ‘법과 질서 수호의 정당’으로 자임해 왔던 공화당에게는 큰 타격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상원의 공화당 리더인 매코넬(Mitch McConnell)은 국회의사당 난입에서 트럼프의 책임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였고 트럼프의 가장 강력한 지지자였던 그래이엄(Lindsey Graham) 상원의원 역시 우려의 목소리를 낸 바 있다. 더불어 공화당의 오랜 후원자였던 기업들이 의사당 난입을 빌미로 후원을 끊는 외부의 재정적인 압박 역시 들어오고 있어 공화당의 일각에서는 트럼프의 유산을 정리하고 거리두기를 해야 한다는 우려의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공화당에게 새롭게 당을 재건할 필요성에 대한 요구를 높이고 있다. 물론 광적인 지지자들을 등에 업은 트럼프가 퇴임하면서 어떠한 형태로든 되돌아 올 것임을 천명하였고 그의 영향력이 여전히 높은 상황에서 공화당 지도부의 트럼프와의 거리두기가 선거에서의 역효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극심한 사회분열이라는 부정적인 유산을 남겨 놓고 대통령으로서 누리던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을 잃어버린 상황에서 트럼프의 영향력이 오랫동안 유지될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초유의 두 번째 탄핵을 겪고 있는 트럼프에 대해 공화당 지도부가 어떠한 선택을 할 것인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지금 순간에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바이든 행정부가 가시적인 성과를 통해 정책추진의 동력을 유지하고 기치로 내건 통합의 드라이브를 이어갈 수 있다면, 그리고 공화당이 트럼프의 유산을 넘어 전통적인 보수정당으로서 재편을 가져올 수 있다면 미국 사회는 다양성에 근거한 상호존중의 민주주의 재건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2022년 중간선거 그리고 2024년 대선 역시 극심한 분열 속에서 당파성이 지배하는 또다른 큰 싸움이 벌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1] https://morningconsult.com/2021/01/20/biden-favorability-inauguration-polling/(검색일 2021년 1월 21일). [2] 하원의 선거결과는 민주당 222석, 공화당 212석(1석은 미정)으로 나타났다. 직전인 116대 하원에서 민주당의 의석수는 235석이었다. 기획: 유기은 박사후 연구원 편집: 장훈필 연구원 저자소개 유성진 교수는 스크랜튼학부 소속 교수로 선거와 정당연구의 권위자이다. 서울대학교 외교학과와 같은 대학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뉴욕주립대(Stony Brook)에서 유권자의 정당과 후보인식, 그리고 정치참여에 관한 논문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미국과 한국을 중심으로 선거, 정당, 여론 등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2018년 현재까지 40여 편의 연구논문을 Journal of Politics, 한국정치학회보, 국제정치논총, 한국정당학회보, 미국학논집, Asia-Pacific Social Science Review 등에 발표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