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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아세안 구상과 한 - 아세안 협력의 미래
    저자
    김학수(아시아경제공동체재단 이사장)
    발간호
    2009-01
    한국의 신 아시아 외교정책  한국정부는 2009년 3월 아시아지역 국가들과의 우호협력증진을 기조한 “신아시아 외교정책”을 발표하였다. 그동안 1990년대 초 “북방정책”이 있었지만 아시아지역을 향해 소위 “남방정책”을 천명한 것은 아마도 이번이 처음일 것 같다. 따라서 먼저 이웃나라들의 남방정책을 개관함으로써 타산지석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일본은 1970년대 초 저기술, 노동집약적 그리고 다소 공해산업들의 구조조정 토론과정에서 완전퇴출이냐 또는 해외이전이냐를 두고 격론을 거친 뒤에 소위 “남방정책”의 일환으로 삼기로 하였다. 우선 JETRO, JAICA등 지역연구기관을 통하여 동남아시아 각국 별 심층조사와 경제잠재력, 자원, 시장규모, 국내 산업정책 등 다양한 측면에서 개별국가 프로파일을 작성하여 유관기관(산업통산성, 재무, 교통, 외교)협의를 거쳐 전문가들로 구성된 실사단을 파견하여 현실성 있는 정보를 수집한 후 여러나라 가운데 3개국을 남방정책 중점 대상국가로 선택하였다.  즉, 이를테면 선택과 집중의 전략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이 세 나라는 태국, 말레이시아 그리고 인도네시아였다. 사양사업 해외이전이 일면 해외직접투자(FDI)측면도 있지만 때마침 크게 증액되는 공적개발원조(ODA)로 일본기업이전 주변의 SOC 건설에도 일조를 하였다.  태국에는 많은 일본기업이 진출하였다. 아지노모토, 아사이비어에서 도요타, 닛산 부품공장까지…. 그러나 여기에도 많은 일화가 있다. 자동차조립공장의 대부분부품이 일본에서 수입되던 1990년대 초 태국정부는 상당히 강경한 협상을 통하여 부품의 기술 이전과 국산화가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사실상 태국의 해외직접투자 가운데 상당히 큰 비중이 일본 투자였으며, 1997년 7월 금융위기 때 태국의 대외부채 900억 달러가운데 약 700억 달러(77.8%)가 대 일본부채였음이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마하티르 수상취임 직후 약 6~7년간 (1980-1987) “동방정책(Look East)”의 모델이 한국이었다. 따라서 이때에 말레이시아의 경제개발 5**** 계획 중 산업정책 부문의 자문위원이 한국인(중앙대교수)이었으며 말레이시아의 고급관리 약 50여명을 자국정부 부담으로 매년 한국의 중앙공무원 교육원에 위탁교육 시켰다. 그러나 그 후 Look East는 점차 일본으로 옮겨 갔으며, 일본정부의 남방정책과 더불어 말레이시아의 공업화에 비공해하이텍 산업 – 즉 소니, 히타치, 미쯔비시 자동차 모델인 프로톤 등이 진출하기 시작했다.  인도네시아도 일본 남방정책의 타겟국가였으나 수하르토 대통령 후기(1990년대 중반)에 이를 견제하기 위하여 국민자동차 모델을 한국의 기아자동차로 지정하여 일본정부와 WTO로부터 강한 반발을 사기도 하였다. 인도네시아는 원래 큰 나라이기 때문에 호주, 독일, 네델란드, 한국 등과 더불어 일본의 투자도 괄목할만하다.  1992년 “남방정책(Southern Policy)”을 공식화한 나라는 대만이었다. 대만은 ODA와 FDI를 브랜딩하여 중남미에 집중투자하고 미국시장을 공략하는 한편 민간부문 주도로 중국의 복건성에 집중투자하고 있었는데 정부차원에서 일본과 유사하게 면밀한 개별국가 조사와 검토 끝에 베트남과 필리핀 두 나라를 남방정책 목표국가로 정하였다. 그 후 베트남에 대대적 투자, 필리핀의 수빅만과 클라크기지에 대한 진출 등은 모두 정부차원의 남방정책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한국의 남방정책 즉 “신아시아 외교정책”은 상당히 선언적 의미가 강하다. 우선 아시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첫째, ASEAN과의 교역규모를 2008년의 900억 달러에서 2015년에 1,500억 달러 규모로 확대한다는 것. 둘째, 한국의 대 아시아 개도국 공적개발원조(ODA)규모를 현재의 2억 달러에서 2015년까지 4억 달러규모로 증액시킨다는 것. 셋째, ASEAN+3의 동아시아 FTA(EAFTA), ASEAN+6의 동아시아 포괄적 경제파트너십(CEPEA) 그리고 남아시아지역협력연합(SAARC)등 소지역별 경제통합 구성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것. 넷째, 세계금융위기, 기후변화, 개발협력, 반테러 등 글로벌 이슈의 해결을 위하여 아시아 우방국들과의 연대를 통해 아시아 전체의 공동이익을 최대한 반영하도록 노력한다는 것. 다섯째, 한국의 신아시아 외교추진에 있어 핵심은 정상외교의 활성화라는 것 등이다.그리하여 일단은 새로운 이니시어티브(New Initiative)라기 보다 기존의 외교통상부 진행업무를 새롭게 포장한 것이 아닌가 하는 전문가들의 견해가 지배적이다.  여하튼 이웃나라 일본과 대만의 남방정책이 전문가와 유관기관, 유관부처의 광범위한 참여와 토론 그리고 민간부문의 적극적인 참여와 추진이 돋보였던 만큼 한국도 이를 신중하게 참고함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하고자 한다.한아세안 협력의 미래  한아세안 협력은 사실상 소문자 c 즉 top-down이 아닌 bottom-up의 community-building으로 이미 시작되고 있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지에서 정부의 지원 없이 한국기업들은 괄목할만한 진출을 하였고 후발 ASEAN국들인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미얀마 등지에서도 정부지원을 받고 있는 일본기업들 보다 더 열심히 경쟁력 있게 기업 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기업의 지평선은 ASEAN을 이미 뛰어넘고 있다. 인도에서의 자동차, 세탁기, TV등, 방글라데시에서의 섬유제품, 파키스탄에서의 고속도로와 버스사업, 스리랑카에서의 토이, 모자, 도자기사업, 중앙아시아 제국과 이란, 터키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기업가 정신은 이미 전 아시아를 휩쓸고 있다.말레이시아의 Look East(동방)정책이 한국이었고 베트남의 도이모이와 함께 추진한 산업정책의 모델이 한국이었듯이 아시아개도국들은 정부차원에서 한국을 동경하고 있다. 여기에 최근에는 한류가 가세되고 2009년 정부차원의 신아시아 외교정책이 천명되었으니 아시아개도국들의 기대감도 한껏 고조되어 있다.  2009년 6월 1-2일 한아세안 정상회의에서 그동안 협상하였던 투자협정을 서명함으로서 2007년 6월에 발효된 상품협정 및 2009년 5월에 발표된 서비스협정에 이어 한국과 아세안 간 자유무역지대 골격을 완성하게 되었다. 이번의 공동성명에는 ①2008년 교역규모 900억 달러를 2015년 까지 거의 배증하는 1500억 달러 달성,②ODA규모를 2억 달러에서 4억 달러로 확대,③7년간 7000여명의 아세안 연수생을 한국에 초청하는 대신 해외봉사단 1만명을 파견,④한아세안 ICT지식협력 강화,⑤특히 한아세안 간 녹색기술협력 강화,⑥기후변화, 식량에너지 안보, 금융위기 등 범세계적 이슈도 공동 협력한다는 내용을 수록하였으며 정치안보 면에서도,⑦6자회담 등 평화적 방법으로 북핵문제 조속해결,⑧테러 등 국제범죄 대응에도 협력한다는 광범위한 내용을 포괄하였다.  이와 같이 한국정부의 정치적결의(political will)가 널리 천명되었으니 총론적 목표와 방향을 이어받아 좀 더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각론적 전략과 실천계획을 짜야되겠다. 이를 위하여서는 학계, 연구기관, 민간부문의 전문가 그리고 정부의 유관기관이 모두 심층연구, 조사, 토론을 통하여 단일 안이 아닌 복수 대안을 가지고 최선의 방안을 도출하는 방식(일본 및 대만의 남방정책 참조)을 취함이 좋을 것이다.때마침 2009년 3월에 발족된 “한아세안 센터”나 또는 민간차원으로 발족하게 될 “한아세안 협회”등이 한몫을 담당해야 되리라고 본다.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저자 김학수이사장은 아시아경제공동체재단 이사장으로 재직 중이며 한국인으로 유엔 최고위직이라고 할 수 있는 UNSCAP 사무총장 겸 UN 사무차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