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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PI PeaceNet] 우주지정학과 뉴스페이스: 복합지정학의 시각
    저자
    김상배(서울대학교)
    발간호
    2022-03
    [기획자 註] 우주 탐사와 개발을 통해 인류 활동의 공간은 지구를 넘어서 확대되고 인류의 사유의 공간은 더욱 확장된다. 특히 최근에는 기존에 국가가 독점하던 우주 개발과 탐사 활동에 민간기업들의 참여가 이루어지면서 민간 우주여행과 개발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새로운 우주시대가 제공하는 무한한 가능성에 대해  기대감이 생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우주 경쟁은 지구의 지정학을 반영하며 무엇보다 미중전략경쟁의 시기에 우주도 예외가 아니다. 새로운 차원의 우주 시대가 열리고 있지만 우주 경쟁의 현실은 두 초강대국의 안보 경쟁과 맞물려 있다. 서울대학교 김상배 교수의 글을 통해 미중전략경쟁 하의 우주시대에 대해 고찰해보고 한국의 대응방안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기획: 임해용 연구위원(haeyonglim@jpi.or.kr)]   우주경쟁의 복합지정학 과거 관찰과 탐험의 대상으로 이해되었던 우주공간에 대한 관심이 최근 새롭게 제기되고 있다. 사이버 공간의 부상과 결합되면서 우주는 육·해·공에 이어 우주·사이버전(戰)이 벌어지는 ‘다영역 작전’(multi-domain operation)의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다. 가히 ‘우주지정학’(宇宙地政學, Cosmo-geopolitics)이라고 부를 만하다. 그렇다고 냉전기 강대국들이 군비경쟁을 벌이던 공간과 같은 의미로 우주공간을 다시 소환하자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의 우주공간은 민군 겸용의 함의를 갖는 첨단 방위산업의 대상일 뿐만 아니라 그 상업적 활용을 통해서 민간산업과 서비스 영역으로 연결되고 있다. 좀 더 포괄적인 의미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기술·정보·데이터 환경을 배경으로 일상생활 전반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렇게 재조명되는 우주공간은 새롭게 구성되는 성격의 사회적 공간이며, ‘저 멀리 있는 공간’이 아니라 우리 삶의 여타 공간과 연동된 ‘복합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전략적·경제적·사회적 수요가 커지면서 우주공간을 둘러싼 이익갈등도 늘어나고 있다. 우주공간은 이제는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공공재가 아니라 제한된 희소재이며, 마냥 사용할 수 있는 무한 자원이 아니라 언젠가는 소실될 유한 자원이다. 정지궤도는 이미 꽉 차 있고 주파수도 제한된 자산이어서 우주 교통관리가 필요한 밀집공간이 되어 가고 있으며, 군사적 충돌도 우려되는 분쟁의 공간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더욱 주목할 것은 참여 주체의 다변화이다. 고도의 과학기술과 자본이 필요한 분야라는 우주개발의 특성상 과거 우주개발에 참여할 수 있는 국가들은 몇몇 강대국들에 제한되어 있었다. 최근에는 그 참여의 문턱이 낮아져서 여타 선진국들과 중견국들도 참여하게 되었으며, 더 나아가 민간기업들도 우주산업에 참여하고 있다. 이른바 뉴스페이스(New Space)의 부상을 거론케 하는 대목이다. 이렇게 양적으로 확대되고 질적으로 변화하는 우주복합공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그것이 초래할 안보위협에 대한 인식도 달라지고 있다. 우주공간을 통한 군사적 위협이 전통적으로 문제시되었던 안보위협이었다면, 민군 겸용의 성격을 강하게 지닌 우주공간에서의 상업적 활동의 확대도 사실상의 군사·정보활동을 의미하는 잠재적 위협요인으로 간주된다. 아울러 적극적인 개발과 경쟁의 대상이 된 우주공간 자체도 인류에 대한 새로운 안보위협으로 인식되고 있다. 우주의 난개발에 따른 우주환경의 훼손에 따른 위협도 만만치 않아서, 우주잔해물이나 폐위성 추락 등이 초래할 피해도 크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주는 새로운 국제규범의 마련을 필요로 하는 공간으로도 이해된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이 글은 복합지정학(Complex Geopolitics)의 시각에서 우주경쟁의 세계정치를 살펴보았다.   우주의 안보화와 지정학적 경쟁 최근 주요국들은 우주문제를 국가안보의 사안으로 안보화하고, 이에 전략적으로 접근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우주공간의 중요성이 높아질수록 우주를 선점하고, 우주력을 육성하려는 각국의 경쟁이 치열해지는 양상이다. 우주시대의 초창기에는 미국과 구소련 간의 양자 경쟁이 진행되었다면, 최근에는 중국의 진입으로 경쟁구도가 확장되었다. 미국, 중국, 러시아 등은 우주공간을 과학기술과 경제산업의 문제로 인식하는 차원을 넘어서 전략적이고 군사적인 시각에서 보고 있으며,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우주력을 배양하고, 더 나아가 우주공간에서의 전쟁 수행능력을 향상하기 위한 군비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들 우주강국들은 우주력을 국가안보 전략 구현의 핵심으로 이해하여 위성, 발사체, 제어 등과 관련된 우주기술·자산의 확보는 물론이고 우주무기 개발과 우주군 창설을 추진하고 있다. 우주 분야의 미중경쟁이 제일 큰 쟁점인데, 2000년대 들어서 중국의 도전적 행보가 도화선이 되었다. 2000년대 중국은 최초 유인우주선 선저우5호 발사(2003), ASAT실험 성공(2007) 등을 미국을 자극하였다. 이후 중국은 우주개발 사업을 국가안보와 국가발전 전략의 핵심으로 인식하고, 우주강국 달성을 위한 혁신개발과 과학탐구 및 경제개발 능력 등을 자체적으로 구비하기 위한 노력을 벌여왔다. 2016년 『우주전략백서』 발표를 계기로 중국의 우주전략은 시진핑 정부의 ‘중국몽’ 구현의 일환으로 이해되어 광범위하고 포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2010년대에는 우주-사이버-전자 통합 ‘전략지원군’ 창설(2016), 양자통신위성 묵자 발사(2016), 우주정거장 텐궁2호(2016), 창어4호 달뒷면 탐사(2019) 등을 통해서 우주굴기의 행보를 강화했다. 특히 중국은 2020년 10월 55번째의 베이더우(北斗) 위성을 쏘아 올리면서, 1994년 이후 완성까지 26년 만에 미국의 전 지구적 위성항법장치에 상응하는 베이더우 자체 위성항법시스템의 완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군사적 차원에서 미 우주군과 유사한 ‘전략지원군’을 새로운 군종으로 창설해 위성 발사와 항법통신위성을 운영하고 있다. 2020년대에 들어서도 화성탐사선 텐원1호 화성 착륙(2021), 중국 로켓 창정5B호 추락 사건(2021) 등의 이벤트가 발생하면서 미중 우주경쟁의 불씨가 커지고 있다. 중국은 2025년까지 인류 최초의 달기지 건설(5년 내에 유인화)을 계획하고 있으며, 2030년까지 우주 분야 선진국으로 도약하고 2045년에는 우주 장비와 기술 면에서 최고의 선진국으로 부상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중국은 우주 관련 기술의 연구개발에 집중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우주굴기로 알려진 중국의 행보에 대응하여 미국은 한동안 템포를 늦추었던 우주경쟁의 고삐를 다시 잡고 있다.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17년 6월 국가우주위원회(NSC)를 부활시키고, 『국가우주전략(National Space Strategy)』을 발표했으며, 대통령 문서(Presidential Documents)의 형태로 ‘우주정책지침(Space Policy Directive)’을 계속 발표하면서 우주정책을 구현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 우주전략의 핵심은 ‘미국우선주의(America First)’의 취지에 따라 우주 군사력을 강화하고 상업적 규제개혁을 통해 미국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조에 따라 미국은 2019년 12월 24일 우주군을 창설했는데, 이는 육·해·공군과 해병대, 해안경비대에 이은 6번째 군종이다. 이외에도 우주상황인식(SSA) 발표, 우주교통관리(STM) 체계 정비, 2018년 수출통제개혁법(ECRA) 등 일련의 우주안보 정책을 추진하였다. 미국은 유인 달탐사와 달 연구기지 건설을 포함한 아르테미스 프로젝트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미국의 화성우주헬기(인저뉴어티) 비행에서도 나타났듯이 최근에는 화성 탐사 경쟁도 벌이고 있다. 2024년까지 인류 최초의 달궤도 우주정거장을 만들고, 2033년엔 화성에 사람을 보낸다는 구상이다. 이렇듯 미국의 우주전략이 가속화되는 배경에는 중국의 유인우주선 발사나 위성요격무기(ASAT) 개발 등에 대한 위협감이 존재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특히 중국이 2019년 1월 인류 최초로 달의 뒷면에 탐사선 ‘창어(嫦娥) 4호’를 착륙시키자, 미국은 우주군 창설을 공표하는 반응을 보였다. 오늘날 우주공간이 그 군사적 활용 가능성을 염두에 둔 군비경쟁의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역사적으로 미국, 중국, 러시아 등 강대국들이 우주경쟁을 본격화하는 과정에서 우주전 수행을 위한 능력을 강화하는 경쟁을 벌여 왔다. 우주공간은 육·해·공에 이어 ‘제4의 전장’으로 이해되고 있으며, 사이버 공간의 전쟁과 더불어 ‘다영역 작전’이 수행되는 복합공간으로서 그 위상을 정립해 가고 있다. 최근 군사작전 수행과정에서 우주와 인공위성의 활용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으며, 우주력을 활용하지 않고서는 효과적으로 전쟁을 수행하기 어려운 작전환경이 펼쳐지고 있다. 우주전의 수행과정에서 제기되는 우주의 군사적 활용 문제는 주로 우주의 ‘군사화’(militarization)와 우주의 ‘무기화’(weponization)라는 두 가지 차원으로 나누어 이해된다. 우주의 군사화는, 우주공간을 활용한 지상전 지원작전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위성자산을 활용한 정찰, GPS를 이용한 유도제어 등 민간 및 국방 분야에서 우주자산이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우주의 군사화가 통신, 조기경보, 감시항법, 기상관측, 정찰 등과 같이 우주에서 수행되는 안정적이고 소극적이며 비강제적인 군사 활동을 의미한다면, 우주의 무기화란 대(對) 위성무기 배치, 우주 기반 탄도미사일 방어 등과 같이 적극적, 강제적, 독립적이면서 불안정한 군사 활동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우주의 무기화는 주로 위성요격무기 등과 같은 실용적인 무기체계 그 자체를 우주공간에 도입하는 행위와 관련된다. 우주의 군사화와 무기화의 과정에서 출현하는 우주무기들은 단순한 군용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민군 겸용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최근 모든 국가의 군과 정부는 상업적 우주산업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통신, 지휘, 감시, 정찰 등과 같은 군사정보 서비스들은 민간기업들에 의해 제공되고 있다. 미국의 군과 정부의 투자로 개발된 다양한 민간기술들이 인공위성의 민군 겸용 임무 수행에 직·간접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민간주체들의 우주활동은 그것이 아무리 상업적 활동이라도 많은 경우 사실상 군사적 활동을 전제하거나 또는 수반하는 측면이 강하다. 이 대목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우주개발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상업적 목적의 우주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주 산업경쟁과 뉴스페이스의 부상 글로벌 우주산업은 크게 성장하고 있는데, 이러한 성장을 추동하는 것은 정부 부문이 아니라 민간 부문일 것으로 예견된다. 이러한 변화는 과거 정부 주도의 ‘올드스페이스(Old Space) 모델’로부터 민간업체들이 신규시장을 개척하는 ‘뉴스페이스(NewSpace)’ 모델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바탕에 깔고 있다. 2000년대 중반 일론 머스크나 제프 베조스 등과 같은 ICT 업계의 억만장자들이 우주산업에 진출한 이후, 2010년을 전후하여 상업 우주시대를 뜻하는 뉴스페이스라는 용어가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뉴스페이스는 혁신적인 우주상품이나 서비스를 통한 이익추구를 목표로 하는 민간 우주산업의 부상을 의미한다. 뉴스페이스의 부상은 우주개발의 상업화와 민간 참여의 확대와 함께 그 기저에서 작동하는 기술적 변화, 그리고 ‘정부-민간 관계’의 변화를 수반한 우주산업 생태계 전반의 변화를 뜻한다. 우주의 상업화와 함께 참여 주체의 다변화도 발생하고 있다. 뉴스페이스의 출현은 우주개발에서 정부의 역할이 점점 더 줄어들고 민간부문의 역할이 늘어나는 현상으로 나타났다. 스페이스X의 크루 드래건과 스타링크, 블루오리진의 뉴 셰퍼드, 아마존의 카이퍼(Kuiper) 프로젝트, 원웹(OneWeb) 등은 이러한 변화를 반영하는 사례들이다. 뉴스페이스의 부상은 우주개발의 상업화와 민간 참여의 확대와 함께 그 기저에서 작동하는 기술적 변화를 수반한 우주산업 생태계 전반의 변화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뉴스페이스의 부상은 우주분야에서 민간 스타트업들의 참여가 늘어나고 이들에 의한 벤처투자가 확대되는 형태로 나타났으며, 이러한 뉴스페이스 부상의 기저에는 소형위성과 재사용 로켓 개발로 인해 비용이 감소하면서 우주 진입장벽이 낮아진 기술적 변화가 있다. 미국이나 유럽 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는 뉴스페이스 분야에 도전하는 중국의 행보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근 중국 정부가 승인한 민간 우주기업의 수가 급격히 증가하는 모습인데, 이들 중국 기업들은 독자적으로 로켓을 궤도에 발사하거나 재사용 가능한 로켓 실험에 성공하기도 하였다. 2020년 11월 중국의 민간 로켓 벤처기업 갤럭틱에너지는 설립한 지 3년도 되지 않아 세레스(CERES) 1호 발사시켜 주목을 끌었다. 세레스 1호는 길이가 약 19m밖에 안 되는 새로운 유형의 로켓이다. 중국의 민간 우주산업은 아직은 미국보다 규모나 기술력이 낮고 중국 정부의 규제가 여전히 심하지만, 최근 중국 정부가 민간 투자를 장려하면서 정부 시설과 발사 장소에 대한 접근이 쉬워지고 있다. 이들 중국의 신생기업은 국가사업과는 경쟁을 피하면서 주로 초소형 위성, 재사용 가능한 로켓 및 저가 운송 서비스와 같은 저렴한 기술에 사업 중점을 두고 있다. 최근 뉴스페이스 모델은 우주발사 서비스, 위성제작, 통신·지구관측 이외에도 우주상황인식, 자원채굴, 우주관광 등 다양한 활용범위로 확장되고 있으며 이에 참여하는 기업의 숫자와 투자 규모도 늘어나고 있다. 게다가 우주 식민지 건설, 우주 자원채굴, 우주공장(Space Factory) 등과 같이 장기적으로나 실현 가능한 불확실한 분야에까지 우주개발 투자가 확대되는 양상이다. 최근에는 우주 공간에서의 제조업, 사물인터넷을 활용한 인터넷 서비스, 우주폐기물 처리와 우주태양광 에너지 활용 등도 시작 또는 기획하고 있다. 특히 지구 궤도를 도는 위성이 많아지면서 새로운 우주산업도 파생되고 있는 현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 궤도를 돌고 있는 위성들에 대한 점검, 수리, 교체, 업그레이드, 궤도 및 자세 유지 등 궤도상 서비싱(OOS: On-Orbit Servicing)이 각광을 받고 있다. 폐기위성을 처리하는 우주쓰레기 처리 사업도 유망하다고 평가된다. 4차 산업혁명이 우주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스페이스4.0‘에 대한 논의에서 나타난다. 스페이스1.0은 고대의 우주 천문관측 시대이고, 스페이스2.0이 냉전기 미소 우주 군사경쟁 시대이며, 스페이스3.0이 우주정거장으로 대변되는 우주국제협력 시대였다면, 2010년 초중반부터 논의되기 시작한 스페이스4.0은 4차 산업혁명의 맥락에서 본 우주공간의 융복합화 시대를 의미한다. 특히 우주산업을 위성과 발사체를 생산하는 ’업스트림‘(upstream)과 위성 영상·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는 ’다운스트림‘(downstream)으로 구분해서 볼 때, 스페이스4.0은 다운스트림 서비스를 기반으로 하여 4차 산업혁명 분야의 기술을 융복합한 신산업과 서비스가 창출되는 시대를 의미한다.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스페이스4.0의 우주 서비스로는 위성항법시스템, 위성인터넷 서비스, 우주 영상 및 데이터 활용 서비스 등을 들 수 있다. 그중에서도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하여 위성항법시스템이 특히 주목을 받는다. 위성항법시스템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사회기반시설을 구축하여 개인의 편익을 증진하는 국가의 주요 인프라로 부상하고 있다. 또한, 위성항법시스템은 항법, 긴급구조 등 공공부문뿐만 아니라 스마트폰 등과 같은 국민 개개인의 생활 속까지 그 활용 영역을 급속히 확대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 미래전이 인공위성의 위성항법장치를 이용한 우주전의 형태를 띠고 있다는 점에서 그 군사안보적 함의도 커지고 있다. 이러한 추세에 부응하여 각국은 독자적 위성항법시스템 구축에 박차를 가하는 추세이다. 미국은 GPS, 러시아는 글로나스(GLONASS), 중국은 베이더우는 GNSS(Global Navigation Satellite System)를 이미 구축하였고, 유럽의 갈릴레오(Galileo)도 GNSS를 구축 중이다. 한편, 인도의 나빅(Navic), 일본의 큐즈(QZSS)는 RNSS(Regional Navigation Satellite System)을 구축 중이고, 한국도 독자 위성항법시스템인 KPS 구축에 대한 논의를 벌이고 있다. 이 중에서 최근 쟁점은 중국이다. 중국은 우주군사력 건설 차원에서 미국의 GPS와 같은 독자적인 위성항법시스템을 구축하려 시도해왔다. 중국은 미국이 제공하는 GPS에 위치정보에 의존할 경우 자국의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초래할 수 있다는 전략적 판단에 따라 국가안보 차원에서 베이더우를 구축해 왔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중국은 2020년 10월 55번째의 베이더우 위성을 쏘아 올리면서, 미국의 전 지구적 위성항법시스템에 상응하는 자체적인 베이더우 시스템을 완성했다. 이와 더불어 중국은 일대일로 대상국들을 대상으로 하여 베이더우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우주 분야에서도 중국의 영향력을 높여가고 있다.   우주지정학과 뉴스페이스 시대의 한국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복합지정학의 공간으로 이해된 우주가 세계정치에 던지는 의미를 이해하고 이에 대응하는 미래 국가전략을 모색할 과제가 최근 시급히 제기되고 있다. 이전의 우주전략이 과학기술 전담부처를 중심으로 연구개발 역량의 획득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면, 이제는 좀 더 복합적인 우주전략을 모색하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우주기술의 개발과 확보 이외에도 우주산업 육성, 우주자산의 관리·활용, 미사일·정찰위성 등 국방·안보, 우주탐사, 우주외교 등에 이르기까지 좀 더 포괄적인 대응전략의 마련이 필요하다. 우주의 복합적 특성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현재 제기되고 있는 주요 현안에 대한 분석과 더 나아가 이에 걸맞은 국제협력과 거버넌스, 그리고 관련 국가 행위자의 역할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사실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우주전략이 아니라, 최근 쟁점이 되고 있는 사이버 안보나 인공지능 탑재 무기체계까지도 포함하는 신흥기술(emerging technology) 안보에 대응하는 복합적인 우주 미래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신흥기술로서 우주기술 분야에서 ‘상업화와 군사화의 동시 전개’라는 근본적인 지형 변화가 최근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적시해야 한다. 우주의 상업화는 우주산업의 효율성 향상과 여타 산업과의 연계를 강화하는 차원에서 빠르게 전개되고 있다. 이른바 뉴스페이스의 부상은 이러한 추세를 잘 반영한다. 한편 중국의 우주산업 경쟁력이 강화될 뿐만 아니라 우주굴기의 안보위협이 ‘안보화’되는 과정에서 미중 우주경쟁의 군사화 또는 무기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우주산업의 변화 추세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상업 및 군사 부문의 연계를 실질적으로 지원하는 정책의 개발과 제도의 정비가 필요하다. 특히 주요국들의 우주 경쟁 과정에서 발견되는 틈새를 공략하는 전략 마인드도 필요하다. 최근 우주산업에 진입하려는 개도국의 우주 협력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는 가운데, 전통적인 우주 강국뿐만 아니라 일본, 인도 등과 같이 우주산업에 일정한 역량을 갖춘 우주 신흥국들에 대한 국제협력의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우주 국제협력의 구도를 감안하여, 기존 우주 강국들과 차별화된 틈새 전략을 추진하여 중견국 및 개도국들과의 우주 협력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우주산업 육성의 경험을 활용하여, 개도국의 우주 역량육성을 지원하는 프로그램 운영이 틈새 전략의 한 사례가 될 수 있다. 그럼에도 군사적 함의를 갖는 우주기술 분야에서는 미국이 여전히 기술적 우위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한 전략적 행보가 필요하다. 물론, 중국의 우주 능력이 빠르게 향상되고, 미국과의 거리를 좁히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미국과 중국의 우주 능력을 현시점에서 동일선상에서 비교하기는 어렵다. 미중 양국의 기술 역량의 차이와 우주공간에 대한 접근의 차별성을 감안할 때, 미국이 주도하는 우주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가운데 한미협력을 고도화함으로써 한국의 우주 역량을 업그레이드시키는 전략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 특히, 미국은 우주의 상업화를 통해 우주산업의 패러다임을 선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려는 노력이 시급히 필요하다.   저자 김상배 교수는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외교학 전공) 교수로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책임연구원을 지냈다. 서울대학교 외교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인디애나 대학에서 미국과 일본의 기술 패권경쟁에 관한 연구를 하여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연구 분야는 4차 산업혁명과 네트워크의 세계정치, 신흥안보의 복합지정학, 미중 디지털 패권경쟁 등이다. 단독저서로는 『미중 디지털 패권경쟁: 기술-안보-권력의 복합지정학』(2022), 『버추얼 창과 그물망 방패: 사이버 안보의 세계정치와 한국』(2018), 『아라크네의 국제정치학: 네트워크 세계정치이론의 도전』(2014), 『정보혁명과 권력변환: 네트워크 정치학의 시각』(2010), 『정보화시대의 표준경쟁: 윈텔리즘과 일본의 컴퓨터 산업』(2007)이 있다.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 [JPI PeaceNet] 2022년 남북관계, 어디에 있는가
    저자
    서보혁(통일연구원)
    발간호
    2022-02
    [기획자 註] 2019년 2월 하노이 노딜 이후 남북관계는 경색되어 있다. 베이징 동계 올림픽에서 남북한 사이에 정부차원의 회담이 기대되기도 하였으나 북한의 불참으로 불가능해졌다. 2022년에 들어서자 북한은 극초음속미사일을 시험발사하고 이에 대한 미국의 제재 발표에 대해 단거리 탄도 미사일 시험발사로 한반도 정세에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북미 간 대결구도가 심화될수록 남북관계의 개선도 어려워질 수밖에 없는 한반도의 안보역학구도 속에서 북한의 핵개발 드라이브 지속으로 인해 상황은 더욱 복잡하다. 이런 상황에서 2022년의 남북관계는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통일연구원의 서보혁 연구위원의 글을 통해 남북관계의 답보의 원인과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상황, 현재 남북관계의 도전요인에 대해서 논의해보고자 한다. [기획: 임해용 연구위원(haeyonglim@jpi.or.kr)] 남북관계 답보의 이면: 하노이의 후폭풍2021년 남북관계는 간헐적인 대화를 제외하면 이전 해와 같이 협력 부재로 채워졌다. 대화 및 협력 부재는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의 결렬로 거슬러 올라간다. 비핵화와 안전보장을 둘러싼 공동 이행방안에 대한 북미 양측의 합의 실패 말이다. 김정은 정권은 하노이 회담 실태와 남북 합의 이행 지연 등에 관해 한미 양국을 비난하기 시작하였다. 물론 김정은은 그해 4월에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회의 시정연설에서 “올해 말까지는 인내심을 갖고 미국의 용단을 기다려볼 것이지만 지난번처럼 좋은 기회를 다시 얻기는 분명 힘들 것”이라고 했다. 김정은은 자신이 하노이 회담에서 거론한 “적대세력들의 제재해제 문제 따위에는 이제 더는 집착하지 않을 것이며 나는 우리의 힘으로 부흥의 앞길을 열 것”이라고 공언하였다. 문재인 정부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의 결렬과 그에 따른 북한의 태도를 보고 평화 프로세스를 이어가야 한다고 재삼 다짐하고, 6월 30일 최초의 남북미 세 정상 간 판문점 회담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평화 프로세스가 더 이상의 진전으로 나아가지는 못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정치적인 곤경에 빠진 상태에서 미국은 대통령 선거 국면으로 진입해 들어갔고, 그에 따라 (그리고 대북 제재 하에서) 남한이 독자적으로 남북협력에 나서지도 못하는 형국이었다. 김정은 정권의 실망이 깊어지면서 “자력갱생”, “자력부강” 노선에 대한 집착은 높아갔다. 2020년 6월 9일 북한은 남한 민간단체가 접경지역 일대에서 살포한 대북 전단을 문제삼아 남북 통신연락선 단절을 통보하였다. 급기야 1주일 후(6.16) 북한측은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였다. 연락사무소는 문재인 정부 들어 추구해온 남북교류협력의 제도화 및 상시화를 구현하려는 조치였다. 이 건물을 북한이 파괴한 것은 2018년 벽두부터 전개한 대남·대미관계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고 일종의 ‘전략적 고립’을 택했음을 말해준다. 물론 그 배후에 중국, 러시아라는 큰 뒷마당이 있었다. 파주 통일전망대에서는 지금도 폭파된 상태 그대로 있는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건물을 관측할 수 있다. 이 폭파행위에 대한 북한의 유감 표명 없이 남북관계 정상화가 가능하다고 볼 국민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2022년 새핵 벽두 북한 관영언론들이 내놓고 있는 선전용 기사들은 대남·대미관계에 대한 기대 표명 없이 고립주의 노선을 확인해주고 있다.한국, 미국과 대화의 창을 잠근 채 김정은 정권은 자력갱생노선을 본격화해갔다. 그런 가운데서도 2021년 남북은 물밑에서 대화 재개를 위한 소통을 벌여나갔다. 문재인 정부로서는 “평화로운 한반도”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남북대화가 필수적이고, 2018년 판문점 및 평양 공동선언의 이행이 우선 과제였다. 문 대통령은 제102주년 3·1절 기념사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를 위해서도 변함없이 노력할 것”이라고 전제하고, 전쟁불용, 상호안전보장, 공동번영 등 3대 원칙에 입각한 남북관계 발전과 북한을 포함한 동북아 방역·보건협력체 제안 등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입장을 밝혔다. 상반기 다각도로 전개한 대화 복원 노력의 결과, 7월 27일 남북이 동시에 통신연락선 복원을 발표하였다. 남북통신연락선 복원은 남북정상 간 합의사항으로 알려졌고, 북한의 호응에는 북한이 문제 삼았던 대북전단의 살포를 제한하는 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이 3월 30일부터 시행된 점과 코로나19의 지속 및 식량 부족 등 북한 대내적 요인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청와대에서 직접 통신선 복원을 발표한 것에 비해 북한은 통신사 보도라는 형식을 취함으로써 북한이 이 조치를 남한만큼 중요하게 판단하지 않고 있음을 암시했다.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담화(8.1.)를 통해 “남북통신선은 물리적으로 다시 연결시켜 놓은 것으로 남북정상회담 문제까지 여론화하는 것은 경솔한 판단이라고 지적하고, 한미연합군사훈련이 진행되면 북남관계의 앞길을 흐리게 하는 전주곡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실제 김여정은 8월 10일 한미연합훈련을 비난하며 남북 통신연락선을 다시 단절한다고 발표하였다. 그 다음날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장도 담화를 내 “북남관계 개선의 기회를 제손으로 날려보내고 우리의 선의에 적대행위로 대답한 대가에 대하여 똑바로 알게 해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후 10월 4일 남북 통신연락선은 재복원되었지만 연락선의 의미에 대한 남북의 상이한 태도와 재단절 및 복원과 같은 시행착오 등을 고려할 때 남북 통신연락선 가동을 안정적인 남북관계의 징표로 간주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통신연락선 재복원을 둘러싼 남북의 소통방식은 대면 접촉이 아닌 방식으로 이루어졌는데, 이것이 반드시 코로나19 상황 때문인지는 단정하기 어렵다.문재인 정부의 평화 프로세스, 그 당위와 현실2021년 문재인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안과 그에 대한 북한의 반응 역시 위와 같은 간접적인 소통방식으로 전개되었다. 문 대통령은 제76차 유엔 총회 기조연설(2021.9.22.)에서 남북 간, 북미 간 조속한 대화 재개를 촉구하며 ‘종전선언’을 다시 제안하였다. 문 대통령은 종전선언의 주체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 그 기대효과로 “비핵화의 불가역적 진전과 함께 완전한 평화(의) 시작”을 언급하였다.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안은 한국정부의 일관된 평화 메시지를 발신함은 물론, 한반도 평화의 주요 당사자들(특히 북한과 미국)이 평화 프로세스에 호응할 것을 강력히 촉구하는 것이었다. 한국은 미국측에 종전선언의 필요성을 설득하는 한편 종전선언(안)의 문구에 대한 실무협의에 들어갔다. 그 결과 2021년 말에 가서는 한미 양국 간에 종전선언 문안에 대한 합의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한편 종전선언에 관한 북한의 입장은 전면 긍정도 부정도 아니었다. 2018년 6.12 싱가포르 공동선언 전후로 북한은 종전선언에 가장 적극적인 입장을 표명하였는데, 향후 미국과의 평화협상을 촉진하려는 의도가 담겨있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의 반응이 미온적이었고 북한도 ‘선언’보다는 제재 완화를 통한 실리를 추구하는 쪽으로 선회하였다. 이후 종전선언은 묻히는 것처럼 보였다가 한국정부가 비핵화와 평화체제의 병행 추진을 위한 촉매로 살려낸 것이다. 2021년 유엔 총회 연설에서 문 대통령이 종전선언을 다시 제안하자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9월 24일 “남조선이 적대적이지 않다면 관계회복과 발전 전망에 대한 건설적인 논의를 해볼 용의가 있다”고 관영언론 담화를 통해 밝혔다. 김 부부장은 “종전선언은 나쁘지 않다”며 “장기간 지속돼오고 있는 조선반도의 불안정한 정전 상태를 물리적으로 끝장내고 상대방에 대한 적대시를 철회한다는 의미에서의 종전선언은 흥미 있는 제안이고 좋은 발상”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다만 “선결 조건이 마련돼야 서로 마주 앉아 의의 있는 종전도 선언할 수 있을 것이며 북남관계, 조선반도의 전도문제에 대해서도 의논을 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조건을 걸었다. 북한은 김여정 부부장의 담화가 있던 날 오전에 리태성 외무성 부상 명의로 종전선언이 시기상조라는 담화를 내기도 하였다. 이런 다소 어긋난 현상이 의도된 것인지, 북한 내 관련 조직 간 조율되지 않은 결과인지는 알 수 없다.장기간의 정전체제 하에 있는 한반도 안보상황을 고려할 때 종전선언이 정전체제의 평화적 전환을 추진하는 촉진제 역할을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과 한국, 미국 사이에 종전선언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차이가 존재한다. 북한은 미국과의 평화협정 체결의 전 단계로 보는 대신, 한국과 미국은 비핵화 촉진 수단으로서의 의미에 비중을 두고 있다. 이와 별개로 문재인 정부가 종전선언에 높은 비중을 두고 대통령 임기 말까지 일관된 종전 및 평화 메시지를 발신하는 것은 인상적인데, 그것은 2022년 벽두 북한의 잇달은 미사일 시험발사로 강력한 도전에 부딪혔다.문재인정부의 대북정책 평가와 전망2017년 5월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라는 비전을 제시하고 그 전략으로 ‘남북 간 화해협력과 한반도 비핵화를 제시하였다. 그리고 그 전략을 달성할 실행 과제로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 및 경제통일 구현과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및 평화체제 구축을 제시하였다. 여기서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 실행‘은 동해권 에너지·자원벨트, 서해안 산업·물류·교통벨트, DMZ 환경·관광벨트를 3축으로 한 한반도 신성장동력 확보 및 북방경제 연계 추진을 말한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은 포괄적 비핵화를 목표로 제재국면을 반영한 남북 교류협력 등 단계적 접근과 비핵화 진전에 따라 평화체제 협상을 추진한다는 방침을 말한다.그러나 3년이 훨씬 지난 2021년 통일부 업무보고에서는 제일의 추진과제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추진하여 비핵화·평화체제 진전’을 제시하면서 발전된 남북연락·협의기구 구축과 남북회담 개최 남북합의 이행을 추진 방안으로 제시하였다. 2018년 1년간 개시된 평화 프로세스가 중단된 가운데 제시된 것이지만 2017년 출범때의 목표에서 진전된 내용은 아니었다. 이어 제시된 상생과 평화의 한반도 생명·안전공동체 구축 추진, 남북교류협력 활성화, DMZ 국제평화지대화 추진과 남북 접경지역 평화 증진 등과 같은 과제도 제재국면과 남북대화 중단 상황을 고려하면 현실성이 떨어진 희망사항에 불과해 보였다. 물론 2021년 가을 국정감사 기간 중 통일부가 보고한 사항 중 복원된 남북 통신연락선의 안정적 운영을 토대로 남북관계 복원 노력은 적절한 방침으로 보였다. 그렇지만 함께 제시한 보건의료·재해재난·기후환경·민생 분야 등 인도적 협력을 정치·군사상황과 무관하게 일관되게 추진한다는 방침은 코로나19+대북제재 국면과 ‘비본질적 문제’에 관심이 없다는 북한의 입장을 고려할 때 현실성이 떨어진 이야기였다.2022년 들어 통일부가 밝힌 업무보고는 “중단 없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로 평화를 지키고 만들어간다.”는 목표 하에 일관된 대북 통일정책의 추진, 한반도 주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인도적 문제 해결을 구체적인 과제로 제시하고, 그 실행방안으로 남북영상회담 등 방역안전 회담 체계 구축, 남북관계 차원의 비핵화 협상 진전 촉진, 코로나 19 방역협력 등 보건의료협력, 탄소중립 및 기후환경 협력 등 단계적 확대, 설 계기 등 대면 화상상봉 재개 등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북한의 반응은 호응과 협력이 아니라 무시와 도발이었다.핵개발 드라이브와 남북관계의 도전유엔에서 문 대통령이 종전선언을 제안하고 거기에 김여정 등 북한의 반응이 오가는 시점에 북한에서는 또 다른 움직임이 진행되었다. 2021년 9월 25일 북한 국방과학원이 새로 개발한 극초음속미사일 화성-8형을 시험발사하였다. 북한 관영언론은 이것이 “노동당 제8차 대회에서 제시한 국방과학 발전 및 무기체계 개발 5개년계획의 전략무기부문 최우선 5대 과업에 속하며, 자립적인 첨단국방과학기술력을 높이고 자위적방위력을 강화하는 데 전략적 의의를 가진다”고 평가했다. 이 무기는 중국, 러시아만 완성해 실전 배치하였고 미국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진 것으로서, 미사일요격을 피할 수 있는 일종의 게임체이저(game changer)로 평가된다. 위 실험이 성공한 것으로 평가되지는 않았지만, 2022년 1월 5, 11일 북한은 연이어 극초음속미사일 실험을 해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1월 11일 시험발사에는 김정은이 참관하고 발사 후 관계자들을 치하했다고 한다. 김정은은 위 첫 극초음속미사일 시험발사 4일 후(9.29) 시정연설에서 경색된 남북관계의 회복과 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10월 초부터 관계악화로 단절시켰던 남북통신연락선을 다시 복원하도록 할 의사를 표명하였다. 동시에 김정은은 미국 행정부가 주장하는 외교적 관여와 전제조건 없는 대화를 적대행위를 가리기 위한 허울에 지나지 않고 적대시 정책의 연장에 불과하다고 비판하고, 그 대신 대미 전략구상을 집행하기 위해 전술적 대책을 만들고 국권과 발전 이익을 철저히 수호하기 위한 사업을 밝혔다고 한다. 이를 보면 북한이 협상을 통한 대외관계 개선보다는 핵억제력 강화를 통한 안보 우선 노선을 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미국의 대화 제의에 선을 긋는 대신 남한과 조건부 대화 의사를 보인 것은 한미 분열을 도모한 것이거나, 주어진 상황에서 남북대화 가능성이 낮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대화 의지 자체가 낮은 것으로 볼 수도 있다.북한은 2022년 들어 위 극초음속 미사일 시험발사에 이어 그에 대한 미국의 제재 발표에 맞서 단거리 탄도미사일 시험발사(1.14, 1.17)로 응수했다. 이제 북한은 발사방식, 비행 거리 및 방식, 파괴력 등에서 다종다양한 미사일 능력을 확보해 보다 유연한 군사전략을 전개할 수 있을 것이다. 금년 들어 네 차례의 미사일 시험발사를 두고 언론은 주로 북한의 국내정치 혹은 대외교섭용이라고 평가하고 있으나, 김정은 정권의 확고한 핵미사일 개발 의지가 더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2021년 12월 27~31일 개최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4차 전원회의에서 북한정권은 “날로 불안정해지고 있는 조선반도의 군사적 환경과 국제정세의 흐름은 국가방위력 강화를 잠시도 늦춤 없이 더욱 힘있게 추진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언급하였다. 노동당 대회에서 결의한 국방력 강화를 위한 5대 무기 개발 시도가 지속될 것이다. 이는 한반도 정세와 비핵화의 전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김정은 정권은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2019년 말까지 시한부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미국 신 행정부가 제재 레짐을 유지하면서 무조건 대화를 하자는데는 어떤 기대도 보이지 않았다. 남한에 대해서는 문재인 정부의 평화 프로세스 재개에 대한 집념을 알고 있었기에 통신연락선 복원 등 대화 재개 용의를 밝히기도 했으나, 대북 제재와 코로나19 사태의 지속 등으로 실질적인 관계개선은 힘들었다. 만약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고 남한의 입장이 지금과 같다면 남북관계는 개선될 것인가? 북한의 경제적 필요와 상호 긴장완화가 내치에 유익함을 고려할 때 관계개선이 모색될 것이다. 다만 그에 맞서 대북제재가 지속되는 가운데 북한이 노동당 결정기구에서 결의한 국방력 강화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다면 실질적인 관계 진전은 도전에 직면할 것이다. 이것을 지도력의 문제로 환원하기는 힘들 것이다.대통령 선거 국면에 들어선 국내에서는 북한 핵시설 선제타격과 통일부의 명칭 수정 등 대북정책과 관련해 서로 다른 입장들이 여과 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2021~22 겨울 시즌 북한의 군사동향과 5년 간 문재인 정부가 전개한 평화 프로세스의 희망과 한계를 종합 고려할 때 향후 남북관계의 중심이 이동할 것이다. 향후 남북관계는 통일과 평화 사이에서 선택의 기로에 서기보다는 질을 달리하는 평화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을 것이다. 즉 핵평화와 비핵평화 사이에서 남북은 선택이냐 조화냐 하는 고난도의 상황에 직면할 것이다. 이 문제는 한반도 미래는 물론 세계평화에도 중대한 의미로 다가갈 것이다.저자서보혁 박사는 한국외국어대에서 정치학 박사를 취득하고 현재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북한·통일연구를 하며 20여년 간 정부/비정부기구의 대북정책을 자문해왔고 비교평화연구로 나아가고 있다. 근래 저작으로 『한국 평화학의 탐구』, 『평화개념 연구』(공편, 근간), 『12개 렌즈로 보는 남북관계』(공편), 『분쟁의 평화적 전환과 한반도』(공편), 『평화의 인권·발전 효과와 한반도』(공저) 등이 있다.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들의 개인적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 [JPI PeaceNet] 2022년 남북관계, 어디에 있는가
    저자
    서보혁(통일연구원)
    발간호
    2022-02
    [기획자 註] 2019년 2월 하노이 노딜 이후 남북관계는 경색되어 있다. 베이징 동계 올림픽에서 남북한 사이에 정부차원의 회담이 기대되기도 하였으나 북한의 불참으로 불가능해졌다. 2022년에 들어서자 북한은 극초음속미사일을 시험발사하고 이에 대한 미국의 제재 발표에 대해 단거리 탄도 미사일 시험발사로 한반도 정세에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북미 간 대결구도가 심화될수록 남북관계의 개선도 어려워질 수밖에 없는 한반도의 안보역학구도 속에서 북한의 핵개발 드라이브 지속으로 인해 상황은 더욱 복잡하다. 이런 상황에서 2022년의 남북관계는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통일연구원의 서보혁 연구위원의 글을 통해 남북관계의 답보의 원인과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상황, 현재 남북관계의 도전요인에 대해서 논의해보고자 한다. [기획: 임해용 연구위원(haeyonglim@jpi.or.kr)] 남북관계 답보의 이면: 하노이의 후폭풍2021년 남북관계는 간헐적인 대화를 제외하면 이전 해와 같이 협력 부재로 채워졌다. 대화 및 협력 부재는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의 결렬로 거슬러 올라간다. 비핵화와 안전보장을 둘러싼 공동 이행방안에 대한 북미 양측의 합의 실패 말이다. 김정은 정권은 하노이 회담 실태와 남북 합의 이행 지연 등에 관해 한미 양국을 비난하기 시작하였다. 물론 김정은은 그해 4월에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회의 시정연설에서 “올해 말까지는 인내심을 갖고 미국의 용단을 기다려볼 것이지만 지난번처럼 좋은 기회를 다시 얻기는 분명 힘들 것”이라고 했다. 김정은은 자신이 하노이 회담에서 거론한 “적대세력들의 제재해제 문제 따위에는 이제 더는 집착하지 않을 것이며 나는 우리의 힘으로 부흥의 앞길을 열 것”이라고 공언하였다. 문재인 정부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의 결렬과 그에 따른 북한의 태도를 보고 평화 프로세스를 이어가야 한다고 재삼 다짐하고, 6월 30일 최초의 남북미 세 정상 간 판문점 회담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평화 프로세스가 더 이상의 진전으로 나아가지는 못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정치적인 곤경에 빠진 상태에서 미국은 대통령 선거 국면으로 진입해 들어갔고, 그에 따라 (그리고 대북 제재 하에서) 남한이 독자적으로 남북협력에 나서지도 못하는 형국이었다. 김정은 정권의 실망이 깊어지면서 “자력갱생”, “자력부강” 노선에 대한 집착은 높아갔다. 2020년 6월 9일 북한은 남한 민간단체가 접경지역 일대에서 살포한 대북 전단을 문제삼아 남북 통신연락선 단절을 통보하였다. 급기야 1주일 후(6.16) 북한측은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였다. 연락사무소는 문재인 정부 들어 추구해온 남북교류협력의 제도화 및 상시화를 구현하려는 조치였다. 이 건물을 북한이 파괴한 것은 2018년 벽두부터 전개한 대남·대미관계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고 일종의 ‘전략적 고립’을 택했음을 말해준다. 물론 그 배후에 중국, 러시아라는 큰 뒷마당이 있었다. 파주 통일전망대에서는 지금도 폭파된 상태 그대로 있는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건물을 관측할 수 있다. 이 폭파행위에 대한 북한의 유감 표명 없이 남북관계 정상화가 가능하다고 볼 국민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2022년 새핵 벽두 북한 관영언론들이 내놓고 있는 선전용 기사들은 대남·대미관계에 대한 기대 표명 없이 고립주의 노선을 확인해주고 있다.한국, 미국과 대화의 창을 잠근 채 김정은 정권은 자력갱생노선을 본격화해갔다. 그런 가운데서도 2021년 남북은 물밑에서 대화 재개를 위한 소통을 벌여나갔다. 문재인 정부로서는 “평화로운 한반도”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남북대화가 필수적이고, 2018년 판문점 및 평양 공동선언의 이행이 우선 과제였다. 문 대통령은 제102주년 3·1절 기념사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를 위해서도 변함없이 노력할 것”이라고 전제하고, 전쟁불용, 상호안전보장, 공동번영 등 3대 원칙에 입각한 남북관계 발전과 북한을 포함한 동북아 방역·보건협력체 제안 등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입장을 밝혔다. 상반기 다각도로 전개한 대화 복원 노력의 결과, 7월 27일 남북이 동시에 통신연락선 복원을 발표하였다. 남북통신연락선 복원은 남북정상 간 합의사항으로 알려졌고, 북한의 호응에는 북한이 문제 삼았던 대북전단의 살포를 제한하는 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이 3월 30일부터 시행된 점과 코로나19의 지속 및 식량 부족 등 북한 대내적 요인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청와대에서 직접 통신선 복원을 발표한 것에 비해 북한은 통신사 보도라는 형식을 취함으로써 북한이 이 조치를 남한만큼 중요하게 판단하지 않고 있음을 암시했다.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담화(8.1.)를 통해 “남북통신선은 물리적으로 다시 연결시켜 놓은 것으로 남북정상회담 문제까지 여론화하는 것은 경솔한 판단이라고 지적하고, 한미연합군사훈련이 진행되면 북남관계의 앞길을 흐리게 하는 전주곡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실제 김여정은 8월 10일 한미연합훈련을 비난하며 남북 통신연락선을 다시 단절한다고 발표하였다. 그 다음날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장도 담화를 내 “북남관계 개선의 기회를 제손으로 날려보내고 우리의 선의에 적대행위로 대답한 대가에 대하여 똑바로 알게 해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후 10월 4일 남북 통신연락선은 재복원되었지만 연락선의 의미에 대한 남북의 상이한 태도와 재단절 및 복원과 같은 시행착오 등을 고려할 때 남북 통신연락선 가동을 안정적인 남북관계의 징표로 간주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통신연락선 재복원을 둘러싼 남북의 소통방식은 대면 접촉이 아닌 방식으로 이루어졌는데, 이것이 반드시 코로나19 상황 때문인지는 단정하기 어렵다.문재인 정부의 평화 프로세스, 그 당위와 현실2021년 문재인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안과 그에 대한 북한의 반응 역시 위와 같은 간접적인 소통방식으로 전개되었다. 문 대통령은 제76차 유엔 총회 기조연설(2021.9.22.)에서 남북 간, 북미 간 조속한 대화 재개를 촉구하며 ‘종전선언’을 다시 제안하였다. 문 대통령은 종전선언의 주체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 그 기대효과로 “비핵화의 불가역적 진전과 함께 완전한 평화(의) 시작”을 언급하였다.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안은 한국정부의 일관된 평화 메시지를 발신함은 물론, 한반도 평화의 주요 당사자들(특히 북한과 미국)이 평화 프로세스에 호응할 것을 강력히 촉구하는 것이었다. 한국은 미국측에 종전선언의 필요성을 설득하는 한편 종전선언(안)의 문구에 대한 실무협의에 들어갔다. 그 결과 2021년 말에 가서는 한미 양국 간에 종전선언 문안에 대한 합의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한편 종전선언에 관한 북한의 입장은 전면 긍정도 부정도 아니었다. 2018년 6.12 싱가포르 공동선언 전후로 북한은 종전선언에 가장 적극적인 입장을 표명하였는데, 향후 미국과의 평화협상을 촉진하려는 의도가 담겨있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의 반응이 미온적이었고 북한도 ‘선언’보다는 제재 완화를 통한 실리를 추구하는 쪽으로 선회하였다. 이후 종전선언은 묻히는 것처럼 보였다가 한국정부가 비핵화와 평화체제의 병행 추진을 위한 촉매로 살려낸 것이다. 2021년 유엔 총회 연설에서 문 대통령이 종전선언을 다시 제안하자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9월 24일 “남조선이 적대적이지 않다면 관계회복과 발전 전망에 대한 건설적인 논의를 해볼 용의가 있다”고 관영언론 담화를 통해 밝혔다. 김 부부장은 “종전선언은 나쁘지 않다”며 “장기간 지속돼오고 있는 조선반도의 불안정한 정전 상태를 물리적으로 끝장내고 상대방에 대한 적대시를 철회한다는 의미에서의 종전선언은 흥미 있는 제안이고 좋은 발상”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다만 “선결 조건이 마련돼야 서로 마주 앉아 의의 있는 종전도 선언할 수 있을 것이며 북남관계, 조선반도의 전도문제에 대해서도 의논을 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조건을 걸었다. 북한은 김여정 부부장의 담화가 있던 날 오전에 리태성 외무성 부상 명의로 종전선언이 시기상조라는 담화를 내기도 하였다. 이런 다소 어긋난 현상이 의도된 것인지, 북한 내 관련 조직 간 조율되지 않은 결과인지는 알 수 없다.장기간의 정전체제 하에 있는 한반도 안보상황을 고려할 때 종전선언이 정전체제의 평화적 전환을 추진하는 촉진제 역할을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과 한국, 미국 사이에 종전선언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차이가 존재한다. 북한은 미국과의 평화협정 체결의 전 단계로 보는 대신, 한국과 미국은 비핵화 촉진 수단으로서의 의미에 비중을 두고 있다. 이와 별개로 문재인 정부가 종전선언에 높은 비중을 두고 대통령 임기 말까지 일관된 종전 및 평화 메시지를 발신하는 것은 인상적인데, 그것은 2022년 벽두 북한의 잇달은 미사일 시험발사로 강력한 도전에 부딪혔다.문재인정부의 대북정책 평가와 전망2017년 5월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라는 비전을 제시하고 그 전략으로 ‘남북 간 화해협력과 한반도 비핵화를 제시하였다. 그리고 그 전략을 달성할 실행 과제로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 및 경제통일 구현과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및 평화체제 구축을 제시하였다. 여기서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 실행‘은 동해권 에너지·자원벨트, 서해안 산업·물류·교통벨트, DMZ 환경·관광벨트를 3축으로 한 한반도 신성장동력 확보 및 북방경제 연계 추진을 말한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은 포괄적 비핵화를 목표로 제재국면을 반영한 남북 교류협력 등 단계적 접근과 비핵화 진전에 따라 평화체제 협상을 추진한다는 방침을 말한다.그러나 3년이 훨씬 지난 2021년 통일부 업무보고에서는 제일의 추진과제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추진하여 비핵화·평화체제 진전’을 제시하면서 발전된 남북연락·협의기구 구축과 남북회담 개최 남북합의 이행을 추진 방안으로 제시하였다. 2018년 1년간 개시된 평화 프로세스가 중단된 가운데 제시된 것이지만 2017년 출범때의 목표에서 진전된 내용은 아니었다. 이어 제시된 상생과 평화의 한반도 생명·안전공동체 구축 추진, 남북교류협력 활성화, DMZ 국제평화지대화 추진과 남북 접경지역 평화 증진 등과 같은 과제도 제재국면과 남북대화 중단 상황을 고려하면 현실성이 떨어진 희망사항에 불과해 보였다. 물론 2021년 가을 국정감사 기간 중 통일부가 보고한 사항 중 복원된 남북 통신연락선의 안정적 운영을 토대로 남북관계 복원 노력은 적절한 방침으로 보였다. 그렇지만 함께 제시한 보건의료·재해재난·기후환경·민생 분야 등 인도적 협력을 정치·군사상황과 무관하게 일관되게 추진한다는 방침은 코로나19+대북제재 국면과 ‘비본질적 문제’에 관심이 없다는 북한의 입장을 고려할 때 현실성이 떨어진 이야기였다.2022년 들어 통일부가 밝힌 업무보고는 “중단 없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로 평화를 지키고 만들어간다.”는 목표 하에 일관된 대북 통일정책의 추진, 한반도 주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인도적 문제 해결을 구체적인 과제로 제시하고, 그 실행방안으로 남북영상회담 등 방역안전 회담 체계 구축, 남북관계 차원의 비핵화 협상 진전 촉진, 코로나 19 방역협력 등 보건의료협력, 탄소중립 및 기후환경 협력 등 단계적 확대, 설 계기 등 대면 화상상봉 재개 등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북한의 반응은 호응과 협력이 아니라 무시와 도발이었다.핵개발 드라이브와 남북관계의 도전유엔에서 문 대통령이 종전선언을 제안하고 거기에 김여정 등 북한의 반응이 오가는 시점에 북한에서는 또 다른 움직임이 진행되었다. 2021년 9월 25일 북한 국방과학원이 새로 개발한 극초음속미사일 화성-8형을 시험발사하였다. 북한 관영언론은 이것이 “노동당 제8차 대회에서 제시한 국방과학 발전 및 무기체계 개발 5개년계획의 전략무기부문 최우선 5대 과업에 속하며, 자립적인 첨단국방과학기술력을 높이고 자위적방위력을 강화하는 데 전략적 의의를 가진다”고 평가했다. 이 무기는 중국, 러시아만 완성해 실전 배치하였고 미국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진 것으로서, 미사일요격을 피할 수 있는 일종의 게임체이저(game changer)로 평가된다. 위 실험이 성공한 것으로 평가되지는 않았지만, 2022년 1월 5, 11일 북한은 연이어 극초음속미사일 실험을 해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1월 11일 시험발사에는 김정은이 참관하고 발사 후 관계자들을 치하했다고 한다. 김정은은 위 첫 극초음속미사일 시험발사 4일 후(9.29) 시정연설에서 경색된 남북관계의 회복과 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10월 초부터 관계악화로 단절시켰던 남북통신연락선을 다시 복원하도록 할 의사를 표명하였다. 동시에 김정은은 미국 행정부가 주장하는 외교적 관여와 전제조건 없는 대화를 적대행위를 가리기 위한 허울에 지나지 않고 적대시 정책의 연장에 불과하다고 비판하고, 그 대신 대미 전략구상을 집행하기 위해 전술적 대책을 만들고 국권과 발전 이익을 철저히 수호하기 위한 사업을 밝혔다고 한다. 이를 보면 북한이 협상을 통한 대외관계 개선보다는 핵억제력 강화를 통한 안보 우선 노선을 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미국의 대화 제의에 선을 긋는 대신 남한과 조건부 대화 의사를 보인 것은 한미 분열을 도모한 것이거나, 주어진 상황에서 남북대화 가능성이 낮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대화 의지 자체가 낮은 것으로 볼 수도 있다.북한은 2022년 들어 위 극초음속 미사일 시험발사에 이어 그에 대한 미국의 제재 발표에 맞서 단거리 탄도미사일 시험발사(1.14, 1.17)로 응수했다. 이제 북한은 발사방식, 비행 거리 및 방식, 파괴력 등에서 다종다양한 미사일 능력을 확보해 보다 유연한 군사전략을 전개할 수 있을 것이다. 금년 들어 네 차례의 미사일 시험발사를 두고 언론은 주로 북한의 국내정치 혹은 대외교섭용이라고 평가하고 있으나, 김정은 정권의 확고한 핵미사일 개발 의지가 더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2021년 12월 27~31일 개최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4차 전원회의에서 북한정권은 “날로 불안정해지고 있는 조선반도의 군사적 환경과 국제정세의 흐름은 국가방위력 강화를 잠시도 늦춤 없이 더욱 힘있게 추진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언급하였다. 노동당 대회에서 결의한 국방력 강화를 위한 5대 무기 개발 시도가 지속될 것이다. 이는 한반도 정세와 비핵화의 전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김정은 정권은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2019년 말까지 시한부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미국 신 행정부가 제재 레짐을 유지하면서 무조건 대화를 하자는데는 어떤 기대도 보이지 않았다. 남한에 대해서는 문재인 정부의 평화 프로세스 재개에 대한 집념을 알고 있었기에 통신연락선 복원 등 대화 재개 용의를 밝히기도 했으나, 대북 제재와 코로나19 사태의 지속 등으로 실질적인 관계개선은 힘들었다. 만약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고 남한의 입장이 지금과 같다면 남북관계는 개선될 것인가? 북한의 경제적 필요와 상호 긴장완화가 내치에 유익함을 고려할 때 관계개선이 모색될 것이다. 다만 그에 맞서 대북제재가 지속되는 가운데 북한이 노동당 결정기구에서 결의한 국방력 강화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다면 실질적인 관계 진전은 도전에 직면할 것이다. 이것을 지도력의 문제로 환원하기는 힘들 것이다.대통령 선거 국면에 들어선 국내에서는 북한 핵시설 선제타격과 통일부의 명칭 수정 등 대북정책과 관련해 서로 다른 입장들이 여과 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2021~22 겨울 시즌 북한의 군사동향과 5년 간 문재인 정부가 전개한 평화 프로세스의 희망과 한계를 종합 고려할 때 향후 남북관계의 중심이 이동할 것이다. 향후 남북관계는 통일과 평화 사이에서 선택의 기로에 서기보다는 질을 달리하는 평화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을 것이다. 즉 핵평화와 비핵평화 사이에서 남북은 선택이냐 조화냐 하는 고난도의 상황에 직면할 것이다. 이 문제는 한반도 미래는 물론 세계평화에도 중대한 의미로 다가갈 것이다.저자서보혁 박사는 한국외국어대에서 정치학 박사를 취득하고 현재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북한·통일연구를 하며 20여년 간 정부/비정부기구의 대북정책을 자문해왔고 비교평화연구로 나아가고 있다. 근래 저작으로 『한국 평화학의 탐구』, 『평화개념 연구』(공편, 근간), 『12개 렌즈로 보는 남북관계』(공편), 『분쟁의 평화적 전환과 한반도』(공편), 『평화의 인권·발전 효과와 한반도』(공저) 등이 있다.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들의 개인적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 [JPI PeaceNet] 빅데이터를 통해 본 2021년 한국의 대외관계: 격동 속 안정
    저자
    정승철, 임해용, 유기은, 이재준(제주평화연구원)
    발간호
    2022-01
    [기획자 註] 지난 2021년 동북아 국제관계는 코로나 팬데믹의 지속과 미중전략경쟁의 심화의 한 가운데서 변화를 겪었다.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의 엄중한 상황이 여전히 지속되고 확산되고 있으며 특히 코로나 바이러스 변이인 오미크론이 2021년 후반부터 급속하게 전파되면서 펜데믹의 새로운 국면이 진행 중이다. 미중전략경쟁은 바이든행정부의 취임 이후로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에 따른 아시아재균형정책을 통해 새로운 질서가 구축 중이다. 이러한 보건, 경제, 안보 측면에서 발생하고 있는 복합위기에 대한 분석이 있어왔으나, 정량적으로 분석하고자 하는 시도가 부족했다. 이에 제주평화연구원의 연구진은 빅데이터를 사용하여 보건위기, 경제위기, 안보위기 등 복합위기를 겪은 2021년의 동북아의 국제관계를 회고해 보고자 한다. [기획: 임해용 연구위원(haeyonglim@jpi.or.kr)]  서론 2021년은 격변의 한 해였다. 코로나 확산, 글로벌 공급망의 위기, 미중 패권경쟁의 가속 속에서 각국은 각자의 국익에 따라 연합하고 반목하였다. 2020년 전 세계를 팬데믹으로 몰아 넣은 코로나19는 2021년에 백신접종으로 종식되거나 기세가 크게 꺾일 것이라는 일반의 기대와 달리 변이를 거듭하면서 확산을 멈추지 않고 있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하였지만 미국과 중국의 패권전쟁은 더욱 심화되고 다층화되고 있다. 미국은 영국, 호주와 작년 9월 안보협력체인 오커스(AUKUS)를 만들어 안보협력을 확대하였고, 12월에는 ‘민주주의 정상회의(Summit for Democracy)’를 개최하여 중국에 대한 압박을 지속하였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기조로 민족주의를 앞세우며 대외 강경기조를 이어나간 중국은 일대일로 전략을 강화하고, 동남아와 아프리카에서 세력을 강화하였다. 달리 말하면 2021년은 보건위기, 경제위기, 세력전이, 민주주의의 쇠퇴라는 복합위기 속에서 각국이 이합집산한 한 해라고 할 수 있다. 그 동안 이러한 2021년 동북아 국제관계의 다양성과 복합성을 평가 및 검토하는 시도가 있었다. 이 글은 기존의 정성적 접근과 달리 GDELT(Global Database of Events, Language, and Tone)라는 빅데이터[1]를 통해서 2021년 동북아 역내 국가 간 협력과 갈등을 정량적으로 평가하였다.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연구진은 2021년 한국의 역내 국제관계는 격동 속에서 일정한 안정을 유지해 왔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미중전략경쟁이 심화되는 상황 속에서도 한국은 미국, 중국과 각각 협력적인 관계를 유지하였다. 다만, 한일관계와 남북관계는 개선이 이루어지다가 다시 악화되는 추세를 나타냈는데, 한일관계의 경우는 12월에 다시 개선되는 모습을 보였다. 한러관계는 GDELT에는 잡히지 않았지만 최소한 현상유지 이상을 해온 것으로 보인다.   2. 한국의 동북아 역내 국제관계 1)한미관계          그림 1. 골드스타인 척도로 본 한미관계  2021년 한미 관계는 전 기간 골드스타인 척도 0이상을 유지해 협력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2] 특히 같은 해 7월 골드스타인 척도가 높았다. 미국 하원에서 6월 말 주한 미군 감축 제한법을 상정하고 미국과 호주의 연합작전인 '탤리스먼 세이버' 훈련에 한국이 참가를 발표하는 등 한미 사이의 협력 요인들이 작용한 결과이다. 또 한미 정책대화를 통해 한일 관계 개선 논의가 이뤄진 점 역시 긍정적인 요인이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2021년 출범한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동맹관계를 중시하는 미국의 전통적인 외교정책을 복원하려고 노력하였다(America is back).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 견제를 위해 대중강경책을 지속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취했던 미국 일방주의와는 그 방식을 달리하면서 쿼드(QUAD: Quadrilateral Security Dialogue)와 AUKUS 등 전통적인 동맹관계를 중심으로 인도태평양 전략의 심화와 확대를 추구하고 있다. 미국은 특히, 미중전략경쟁을 안보와 기술 경쟁만이 아니라 가치 부문으로 확대해 나갔는데, 12월에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개최하여 110개 민주주의 국가들을 초청하여 권위주의 진영에 대한 대결구도를 구축해 나가기 시작하였다. 2021년에 한미는 5월의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양국 간 의지와 공조를 재확인하였다. 9월 UN총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안으로 한미 간 의견 조율이 진행중이며 북한의 태도와 입장의 변화가 종전선언 실현에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미국은 한미동맹을 중국을 겨냥한 동아시아 전략 차원에서 활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 전통적인 동맹국인 미국과 경제적 상호의존도가 높은 중국 사이에서 딜레마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한국은 미중 전략 경쟁이 격화하는 상황에서 미중 간 전략적 공간을 활용하는 외교 전략이 필요하다. 특히 올해는 한국과 미국에서 모두 중요한 선거가 예정된 시기이다. 한국은 오는 3월에 대통령 선거가, 미국은 11월에 중간선거가 각각 예정되어 있다. 미국 중간선거에서 야당인 공화당의 승리가 예상되기 때문에 안보와 경제관련 미국대외정책의 변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한중관계 그림 2. 골드스타인 척도로 본 한중관계  2021년 언론에 드러난 중국과 한국의 관계는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11월 중국의 수출규제로 국내에 요소수 파동이 일어났던 기간 0에 가까운 낮은 점수를 기록한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 1이상의 상대적으로 긍정적인 국가관계를 유지해 온 것을 알 수 있다. 2021년은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이면서, 시진핑 장기집권을 위해 국내적 기반을 조성한 해이다. 2021년 11월에 열린 제 19기 중앙위원회 제6차 전체회의에서는 ‘당의 100년 분투의 중대성취와 역사 경험에 관한 중공 중앙 결의 (中共中央关于党的百年奋斗重大成就和历史经验的决议)’가 발표되었다. 이번 역사결의는 1945년 (마오쩌둥 집권기) 제1차 역사결의, 1981년 (덩샤오핑 집권기) 제2차 역사결의에 이은 세번째 역사 결의로 시진핑을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의 반열의 올려놓고자 하는 의지가 반영되었다. 특히 ‘시진핑 신시대 중국특색사회주의 사상’의 위대한 성취를 강조하며 시진핑의 장기집권을 정당화하였다. 중국은 미국과의 전략경쟁, 가치경쟁을 본격화하고 있다. 특히 ‘중국식 민주주의’의 우월성을 서구식 민주주의와 대립되는 경쟁관계로 설정하고, 권위주의 국가와의 결속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2021년 8월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철군과 탈레반의 아프간 장악 이후, 중동을 테러로부터 보호하겠다는 명목으로 러시아, 중앙아시아 국가 및 중근동 국가들과 안보협력을 강화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두드러졌다. 더불어,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대면행사는 없었지만 조중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조약 체결 60주년을 맞아 시진핑주석과 김정은 위원장이 친서를 교환하고 혈맹관계를 재확인하였다. 2022년 제20차 당대회에서 시진핑의 세번째 연임이 확정될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이는 중국 정부의 강경한 대외정책 기조가 유지될 것임을 의미한다. 특히,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대해 미국, 호주, 뉴질랜드, 영국, 캐나다, 일본 등이 보이콧을 선언한 만큼 이를 둘러싸고 중국과 서구진영간 대립이 첨예화 될 수 있다. 한국과 중국관계에 있어서, 올해는 한중수교 3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지만 미중간 경쟁의 심화가 동북아와 한반도 외교에 투사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2021년 한복과 김치 원조 논쟁 등 한, 중 국민 간 악화된 여론, 특히 한국 젊은 세대 사이에 팽배한 반중감정이 2022년에 지속될 수 있다. 3)한일관계 그림 3. 골드스타인 척도로 본 한일관계  2021년 한일관계는 골드스타인 척도가 0 이상으로 상반기에 다소 긍정적이었으나 , 하반기에는 부정적인 국면으로 들어섰다. 한국정부가 2015년 한일 양국 간에 체결된 ‘위안부’ 합의를 인정하지 않음으로 시작된 한일 갈등은 2019년 일본 정부가 한국에 대해 수출규제 조치를 취함에 따라 무역분쟁으로 번졌다. 이에 따라 한국은 일본과의 한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GSOMIA: General Security of Military Information Agreement) 연장을 거부하였고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한일관계는 급속하게 냉각되었다. 2021년에도 상반기에 한일관계는 회복세를 보이는듯 하였으나 그 기세는 하반기 들어 꺾였다. 2021년 문재인 정부는 역사 문제와 현안을 분리하는 투트랙 접근을 통해 일본과의 관계개선 의지를 표명하였다. 다만 일본은 2015년 ‘위안부’ 합의 준수를 요구하는 등 역사 문제에 대한 해결을 우선시하는 자세를 보였다. 나아가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종전선언’ 등 한국의 대북정책에 대해서도 일본은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결국 2021년 11월 미국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한일 외교차관회담은 양국의 의견차에 따라 공동 기자회견이 무산되었고 12월 영국에서 있었던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서도 여전히 의견차이만 확인하고 마무리되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2022년 상반기에는 한일관계에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2022년 3월에는 한국 대통령 선거가, 7월에는 일본 참의원 선거가 예정되어 있다. 이처럼 각 국가의 지도층에 변화가 있을 수 있는 상황에서 양국의 현 정부들은 현상 변화를 꾀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되므로 한일 관계의 변화 및 개선은 2022년 하반기가 되어야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2021년 일본은 코로나19의 확산이 지속되는 가운데서도 도쿄올림픽을 무난하게 개최하는 성과를 거두는듯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가 요시히테 총리는 2020년 9월 취임 당시 기록했던 높은 지지율이 급락함에 따라 2021년 10월 퇴임하였다. 스가 총리의 지지율이 하락한 주된 원인으로는 코로나19의 확산에 대한 미흡한 대응과 그로 인한 경기 침체가 꼽힌다. 결국 스가에 이어 기시다 후미오가 같은 달 일본총리로 취임하였다. 2022년 7월 참의원 선거 결과에 따라 기시다 총리의 장기집권 여부가 결정될 예정이지만 한편으로 2022년 일본은 계속해서 코로나19 확산 방지와 국내경제 회복에 집중하는 한편 계속해서 미일동맹과 쿼드 체제 강화를 통한 중국 견제를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4) 남북관계 그림 4. 골드스타인 척도로 본 남북관계  2021년 한해 남북관계를 회고해 볼 때, 2월에 관계가 가장 악화되어 있었고, 5월에 관계가 상승했으며 9월과 10월에는 다시 관계가 악화되었다. 남북관계의 골드스타인 척도는 5월에 상승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이는 남북 사이의 직접적인 관계 개선에 따른 결과라고 하기는 어렵다. 당시 한미정상회담에서 북한 관련 의제들을 두고 한미 정상이 합의한 데 따른 영향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9월에서 10월의 골드스타인 척도 하락은 9월 말 북한의 극초음속 미사일 화성-8형의 시험발사로 인한 것으로 판단된다. 골드스타인 척도가 관측되지 않는 달이 다수있는데, 이는 GDELT가 제공하는 언론기사에 남북한 관계에 대한 기사가 잡히지 않아서이다. 2019년 2월 하노이 노딜과 그 후 2020년 개성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이후 경색되었던 남북관계는 이후 크게 개선되지 않고 있다. 현 정부는 종전선언을 통해 한반도 평화를 고취시키려고 미국과 의견을 조율하고 있으며 북한도 한때 긍정적 반응을 보이기도 하였지만 현재로서는 종전선언 여부는 불투명하다. 2021년 후반부에 남북통신연락선이 복원되기도 하면서 종전선언 가능성에 대한 기대가 높아졌지만 북미 간의 교착상태는 지속되고 있다. 2022년 2월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통해 고착된 관계를 타개해보려는 한국의 의도가 있었지만, 미국과 북한의 불참으로 인해 대화의 창을 여는 일이 어렵게 되었다. 베이징 올림픽에 미국과 북한이 불참하여 남한, 미국, 북한 간 공식정부 사절단의 만남이 불가능해짐에 따라 현 정부의 임기말까지 북미 간 및 남북 간 대화재개, 북한의 비핵화 문제를 논의할 중요한 기회의 창이 사라지게 되었다. 2022년에는 3월에 한국 대선이 있고 5월에는 새로운 정부가 출범한다. 2022년에도 한반도 평화의 동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남북관계가 경색되지 않도록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5)한러관계 미국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과 함께 미중 간 가치경쟁이 심화되었으며, 러시아는 미국식 민주주의를 비판하는 중국과 공감대를 형성하며 밀착을 강화하였다. 한 예로, 2021년 7월 러시아는 새로운 ‘국가안보전략’을 승인하였다. 새 국가안보전략은 서구 자유민주주의 모델이 자유방임, 부도덕, 이기성, 폭력과 소비, 쾌락에 대한 추종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비판과 함께 몇몇 국가들이 러시아 연방의 자주권과 통일성을 위협하고 있다는 우려를 담고 있다. 한편, 2020-2021년은 한러 상호교류의 해로 양국 외교수장 등 고위급 차원의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졌다. 한국의 신북방정책과 연계하여 러시아와 에너지 경제 협력 분야에서 협력할 여지 또한 충분히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러시아와 서방 국가들 사이의 관계가 악화될수록 미국과 동맹관계에 있는 한국의 입지와 한러관계 또한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특히 미중 가치경쟁의 심화로 동북아 내의 한-미-일과 북-중-러의 대립 구도가 가시화 될 수 있기 때문에 한러관계 또한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결론: 격동 속에서도 안정 유지한 2021년 2021년 한국을 중심으로 한 동북아 국제관계에 대한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한미 간에는 협력 관계가 유지되었고 한중 간 협력관계도 갈등으로 악화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한일관계는 2021년 후반부에 악화되었으나 마지막에 회복의 기미를 보이는 측면이 있었으며, 남북관계는 협력과 갈등의 추세를 모두 나타내었다. 마지막으로, 한러관계는 언론기사에는 잘 잡히지 않았으나 신북방정책의 일환으로 상호교류가 있었으며 최소한의 관계가 현상유지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 팬데믹의 여파가 여전히 진행되고 있으며 글로벌 확진자 수로는 최고치를 매일 경신하고 있다. 코로나 상황이 국가 간 교류를 줄이면서 갈등을 줄여주는 측면도 있을 것이므로 현재의 팬데믹 상황이 사회적 차원에서 일상생활을 방해하지 않는 엔데믹(endemic) 상황으로 전환되었을 때, 동북아에서 가장 큰 국제정치 이슈인 미중 전략경쟁의 속도와 방향이 어떻게 변화될지에 대해서 주시할 필요가 있다. 남북으로 분단되고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라는 강대국들에 둘러싸인 한반도에서 평화와 안보를 유지하는 일은 세계 어느 나라가 겪는 것보다 더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이다. 2022년 5월에 새롭게 들어설 한국 정부 앞에 놓인 과제는 미중 전략 경쟁 속에서 한국의 국익을 보호하는 방안을 모색함과 동시에 11월 중간선거 이후 미국의 외교정책 변화가능성 예측, 수교 30주년을 맞는 한중관계의 점검 및 재도약 모색, 악화되어 있는 한일관계의 회복, 북미 대화 재개, 신북방정책의 연장선상에서 긴밀한 한러관계 유지 등이라고 볼 수 있다. 복잡한 국제정치의 역학 구도 속에서도 국가역량을 키워 경제발전과 민주화 모든 면에서 남부럽지 않은 나라로 성장해 온 한국은 그 저력을 바탕으로 2022년에도 평화를 향해 계속 나아가야 한다. --------------------------------------------------------------------------------------------------------------------------- [1] GDELT(Global Database of Events, Language, and Tone)는 구글 뉴스에서 공개되는 전 세계 언론기사를 바탕으로 한 빅데이터이다. GDELT는 수십 억개의 뉴스기사를 사건데이터(event data)로 변환하여 제공해 줌으로써 국가 간 협력과 갈등의 관계를 양적으로 표현한다. GDELT는 많은 양의 데이터를 신속하게 수집, 저장하여 제공하는데, 1979년부터 현재까지 전세계뉴스기사데이터를 제공하며 최근에는 15분마다 업데이트된다. 특히 2015년 이후부터는 비영어권기사도 번역해서 제공한다. GDELT가 제공하는 사건데이터의 시계열자료를 통해 1979년 이후 국가 간 갈등과 협력의 장기적 추세와 단기적 변화에 대한 분석이 가능하게 되었다. GDELT는 구글에서 제공되는 뉴스를 TABARI(Textual Analysis by Augmented Replacement Instructions) 프로그램을 통해 개별 기사에서 행위자, 대상자, 사건유형, 사건 날짜, 사건 발생 지역, 사건의 어조 수준 등에 대한 정보를 자동으로 탐지하고, 각 항목의 사전방식의 분류체계인 CAMEO(Conflict and Mediation Event Observations)에 맞게 분류한다. GDELT는 머신코딩 방식을 통해 빅데이터를 신속하게 분류, 저장, 분석하는 방식으로 데이터를 시계열자료로 제공한다. 이 글에서 사용한 골드스타인 척도는 GDELT에서 해당 기간의 데이터를 추출하여 국가 행위자 중심으로 산출되었다. 골드스타인 척도는 국가들의 상호작용에 대한 연구(World Event/Interaction Survey (WEIS) Project, 1966-1978)에 기반하여 국가 간 협력과 갈등을 수량화한 지수이다. 골드스타인 척도가 0 이하이면 갈등을, 0 이상이면 협력을 의미하고 값이 클수록 협력의 정도가 높음을 의미한다. 그래프에서 해당 월에 골드스타인 척도가 표시되지 않는 것은 해당 월에 두 국가의 협력과 안보에 대한 기사가 구글뉴스에 제공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GDELT는 일정한 시간이 흐른 후에 데이터가 보충되기도 하지만 그 비율은 크지 않다. (참조: Joshua S. Goldstein, "A Conflict-Cooperation Scale for WEIS Events Data," Journal of Conflict Resolution, 36, 2 (June 1992)) [2]골드스타인 척도는 최저 -10에서 최고 8.3까지 변한다. 그림 1은 2021년 1월에서 12월까지 한미 간의 관계를 월별 평균치로 보여주고 있다. 중간의 파란줄은 월평균이고 위아래의 회색줄은 각각 월별 골드스타인 척도의 상위 90%값과 하위 10%값을 나타낸다. 이하 그림도 같은 방식으로 작성되었다 ---------------------------------------------------------------------------------------------------------------------------       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기획 및 편집: 임해용 연구위원 /빅데이터 산출: 유기은 박사후연구원    저자 정승철 박사는 제주평화연구원의 연구실장으로 플로리다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국제정치경제와 동아시아 국제정치를 연구하고 있다. 임해용 박사는 제주평화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휴스턴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분쟁과 평화의 정치경제, 투명성의 정치경제를 연구하고 있다. 유기은 박사는 제주평화연구원 박사후연구원으로 아이오아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국제조약과 비교정치를 연구하고 있다. 이재준 박사는 제주평화연구원 연구위원으로 서울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중국정치와 북중관계를 연구하고 있다. I am text block. Click edit button to change this te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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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PI PeaceNet] 남북한 유엔동시가입 의미의 재평가
    저자
    주재우 (경희대학교 중국어학과)
    발간호
    2021-28
    [초록] 2021년은 남북한이 유엔 동시 가입 30주년을 맞이한 해였다. 냉전 말미라는 특수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우여곡절 끝에 일궈낸 성과였던 것이다. 유엔 가입이라는 대한민국 외교의 역사적 성과를 올리는데 몰두한 나머지 당시 남북한에 주는 전략적 함의가 간과된 것도 사실이었다. 특히 북한에게 유엔이라는 국제무대가 제공되고, 미국에 유엔본부가 소재한 점이 북한 외교 전략은 물론 북한의 대남, 대미 관계 변화에 가져다준 전략적 의미 조망이 부족했다. 가령 한반도 분단의 고착과 북한의 ‘통미봉남’전략이 현실화될 수 있는 여건과 근거를 제공한 셈이 되었다. 서론 1991년 9월 17일은 우리나라 외교사에서 기념비적인 날이다. 이날, 우리와 북한이 함께 유엔에 가입했다. 그러나 가입 여정은 달랐다. 북한보다도 우리가 더 긴 여정 겪었기 때문에 그 의미는 더 고무적이었다. 30년이 지난 오늘날 가입당시에 우리가 기대했던 외교적 효과는 안 보인다. 당시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의 일환으로 추진된 우리의 유엔 가입 시도가 북한이라는 장벽에 부딪히면서 남북한의 동시가입이라는 선택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북방정책의 목표와 취지에 부합했기에 동시가입은 정당화될 수 있었고 어느 정도 설득력도 있어 보였다. 당시의 기대감은 사라진지 오래다. 현실은 남북관계가 더욱 경색되고 한반도 통일은 더욱 멀어져 보인다. 이런 의미에서 남북한의 유엔 동시가입을 재평가해봄으로써 향후 우리의 대북전략은 물론 우리의 한반도 외교도 새로이 정립할 필요가 있다.   한국과 북한이 유엔에 가입하기까지의 과정 우리나라의 유엔 진출은 건국 이후 즉각 이뤄졌다. 1948년 12월 유엔 결의안195호가 대한민국 정부를 합법적인 정부로 승인하면서 우리나라는 1949년에 유엔 옵서버국가로 대표부를 설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의 주미대사가 이를 겸직했다. 6.25전쟁 중이었던 1951년에 우리는 유엔에 옵서버국 상주대표부까지 설립할 수 있었다. 이후 우리의 유엔가입신청이 시작되었다. 1949년부터 1956년까지 5차례 가입 신청을 했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셔야했다. 이유인즉슨 유엔 상임이사국 5개국의 승인을 모두 받아야하는데 그 중 소련의 반대(veto)에 막혔다. 중국이 문제가 아니었다. 당시 중국은 대만이 대표했기 때문이었다. 북한의 유엔 가입 신청도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우선, 유엔이 북한을 한반도의 합법적인 정부로 승인하지 않았다. 유엔은 2차 세계대전의 전승국이 수립한 기관이었다. 따라서 소련과 몇 개의 위성국가 외에 모든 회원국이 친서방 또는 친미 국가로 주를 이뤘다. 북한이 유엔 가입 신청하기 위해서는 제3국만을 통할 수밖에 없었다. 즉, 이들이 대리인으로 북한 관련 의제를 유엔에 상정해야했다. 또한 북한이 6.25전쟁이후 제기한 한반도 관련 이슈 또한 같은 경로를 통해서만 제기될 수 있었다. 당시 북한의 대표적인 대리인들은 중국, 소련과 제3세계 국가 등이었다. 북한은 유엔 가입 신청을 차치하더라도 더 급한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이것은 유엔 한국통일부흥위원회(United Nations Commission for the Unification and Rehabilitation of Korea, UNCURK)와 유엔 사령부의 해체였다. 이런 의제가 북한에 시급했던 이유는 이들의 존재만으로도 이는 북한이 추구했던 한반도의 적화통일, 무력통일에 가장 큰 걸림돌이었기 때문이다. 북한이 유엔 한국통일부흥위원회의 해산을 원했던 가장 큰 이유는 유엔이 한국정부의 정당성을 인정하고 유엔사와 유엔군의 주둔을 정당화한 데 있었다. 주지하듯, 동 위원회는 6.25전쟁 중이었던 1950년 10월에 이와 관련된 결의안을 채택했다. 유엔 한국통일부흥위원회의 사무처도 인천상륙작전 성공 직후 설립됐다. 미국은 당시 유엔군의 승리를 전망하면서 3·8선의 부당성을 주장했다. 이를 근거로 미국은 한반도 전체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적절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그리고 전세가 통일로 이어질 가능성을 염두하고 통일 이후 민주한국정부가 대의제를 수립하고 파괴된 경제를 재건하는데 유엔의 도움이 따라야하는 것으로 동 위원회의 설립을 합리화했다. 북한이 이 같은 기구의 해산과 해체를 각각 원했던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그러나 북한이 유엔 회원국이 아니라는 이유로 유엔에서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그래서 북한에게 차선책은 중국, 소련과 제3세계 국가를 통해 해산 안(案)을 발의하는 것이었다. 이들의 도움으로 1953년부터 1975년까지 안건은 매년 유엔에 상정되었다. 1960년과 1964년을 제외하고 이들은 북한을 도왔다. 유엔에서 이런 노력이 여의치 않자 북한은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중국에게 직접 도움을 요청하는 전략으로 선회한다. 이의 가장 결정적인 계기가 미중관계 정상화 협의였다. 1971년 7월 헨리 키신저 전 국가안보보좌관이 중국을 비밀 방문한 이후부터 북중 양국의 합작 노력이 개진되었다. 중국이 관계정상화 논의과정에서 두 의제를 협의 대상으로 상정했다. 그 결과 북한은 ‘절반의 승리’를 일궈낼 수 있었다. 1973년 미중 양국은 유엔 한국통일부흥위원의 해산에 합의했고 유엔은 이를 받아들였다. 미국이 이에 동의한 데는 유엔사의 존속과 미중관계 정상화를 위해 타협한 결과가 결정적이었다. 미국에게 유엔사의 해체는 미국이 최선을 다해 막아내야하는 최후의 ‘마지노선’과 같은 것이었다. 아니면 주한미군의 주둔을 정당하게, 적법하게 이어나갈 수 있는 근거가 사라지기 때문이었다. 중국과의 협상에서 미국은 이를 철저하게 방어했다. 키신저는 저우를 설득했다. 당시 불안한 한반도의 정세와 주변국의 한반도 전략으로 그의 합의를 도출했다. 키신저는 중국의 역린을 건드렸다. 그는 유엔사 해체가 한미동맹관계에 미칠 영향과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을 유발할 가능성을 점쳤다. 중국은 6.25 전쟁이후 북한과 같이 유엔사의 해체와 주한미군의 철수를 시종일관 요구했었다. 그러나 키시저는 미중관계 정상화 협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일본에 대한 대안이 없이는 모든 것이 시기상조임을 저우에게 상기시켰다. 주한미군의 철수가 한반도의 권력공백을 조장할 수 있어 일본의 군사적 야욕에 도화선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논리로 저우를 설득시켰다. 이런 전략적 의미에서 중국은 그 후부터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입장을 공식화했다. 그리고 유엔사 해체에 관한 논의가 미중 간의 의제에서 사라지는 자연스러운 결과를 볼 수 있었다. 미중 간의 관계정상화 협상이 한 참이던 1973년에 우리나라는 “6.23 평화통일 외교정책 선언(6.23 선언)”을 발표한다. 핵심 내용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북한의 국제기구 참여를 반대하지 않는다. 다른 하나는 통일 이전까지 잠정적으로 남북한의 유엔동시가입을 반대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로써 남북한이 서로의 유엔 가입을 서로 반대하던 대결 국면을 해결할 수 있는 첫 실마리가 제공되었다. 그럼에도 북한과 사회주의진영의 나라들은 우리의 6.23선언을 모두 반대했다. 이 중 특히 중국의 반대가 심했다. 당시 중국이 견지하는 ‘하나의 중국’ 원칙 때문이었다. 중국은 ‘두 개의 중국’을 부정한다. 때문에 북한과 관련해서도 ‘두 개의 조선(한국)’이 조장되는 그 어떠한 상황도 거부하는 입장을 견지했다. 냉전이 종결될 때까지 남북한의 유엔동시가입문제는 답보상태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냉전의 종결로 우리에게 유엔 가입의 기회가 다시 주어졌다. 우리나라 정부의 발걸음도 바빠졌다. 북방정책의 결실로 우리나라는 1990년 9월 소련과 수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유엔 가입관련 소련의 지지를 자연스럽게 확보할 수 있었다. 문제는 중국이었다. 이규형 전 주중대사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그는 우리의 가입 신청 계획을 중국에 알리자 중국 측에서 이의 유보를 당부한 것으로 회고했다. 당시 그는 이 메시지로 낙담하지 않았다. 대신 이듬해에 가능하다는 의미로 이를 받아들였다. 우리 외교 당국의 판단이 옳았다. 1991년 중국은 우리의 유엔가입신청을 더 이상 반대하기 어려운 입장을 북측에 전했다. 5월3일 방북한 리펑 총리는 연형묵 북한 총리에게 더 이상 반대 입장을 고수하기 어려운 실정을 직접 전했다. 그러면서 남한이 먼저 가입한 후 북한이 가입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최후통첩’과 같은 언지를 전했다고 태영호 전 북한공사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당시 상황을 밝혔다. 그 결과 북한도 마지못해 우리와 유엔 동시 가입을 숙명처럼 받아들여야만 했다.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의 의미 유엔은 우리의 안보 및 한반도 문제와 깊은 연관을 가진다. 때문에 우리의 성공적인 가입은 고무적인 사건이었고 우리 외교에도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러나 역사가 과거를 돌이켜보고 선택한 결정의 의미를 되새기며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유의미한 지침서라는 통념에서 남북한 유엔동시가입을 평가하는 것도 유의미한 작업일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두 가지 의미를 유추할 수 있다. 하나는 한반도 분단의 고착화 문제와 관련 이 있다. 다른 하나는 주변국의 대북 영향력 감소와 연관된다. 우선 한반도 분단의 고착화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남북한이 동시에 유엔 회원국으로 인정받음으로써 국제사회에 이제 ‘두 개의 한국(조선)’이 공인된 것이다. 남북한 모두가 주권국가로 인정받은 셈이다. 따라서 통일의 해법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특히 평화적인 통일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주권이 존중되는 범위 내에서 이뤄져야할 것이다. 이제 무력통일의 방식은 최소한 비(非)합법적이라는 인식을 남북한이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두 번째 문제인 주변국의 대북 영향력 감소 문제는 북한이 국제사회와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채널을 확보한 것과 연관이 깊다. 특히 북한의 적대진영의 국가와의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장이 열렸기 때문이다. 우선 북한에게 유엔 진출은 북한 외교관이 미국에 상주할 수 있고 미국에 사무실을 열 수 있는 기회를 의미한다. 북한이 가장 대화하고 싶은 나라가 미국인 점을 감안하면 북한의 유엔진출은 북한에게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북한은 이미 1973년 5월 세계보건기구(WHO)에 가입하면서 7월에 뉴욕에 유엔대표부를 설립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한반도문제 논의의 장에 옵서버국으로 초대되었다. 그러면서 북한은 6.25전쟁 이후 원하던 미국과 직접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 해 미국과 첫 관방회의를 할 수 있었던 외교적 쾌거도 올렸다. 그 이전까지 북한은 수없이 미국과의 대화를 시도했지만 접촉경로를 정확히 알지 못해 번번이 고배를 들어야했었다. 물론 북미 첫 관방회의는 뉴욕에 주재할 북한 외교관과 공관개설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것으로 한반도문제는 언급 조차되지 않았다. 북한이 잘못된 경로로 미국과의 대화를 모색하는 동시에 제3국을 통해 대화의사를 수없이 미국 측에 전하려했다. 때로는 동구권, 때로는 중동, 또 때로는 서남아시아의 지도자를 통해 대화 의지를 알렸다. 그러나 북한은 그 누구보다도 중국에 의존을 많이 했었다. 특히 미중관계 정상화 논의로 양국 고위급인사의 만남이 빈번해진 것을 이용한 것이다. 역으로 중국은 북한의 이런 갈망을 대북 영향력을 강화하는 요인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북한이 유엔에 가입한 후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미국과의 대화를 위해 더 이상 다른 나라의 중재에 의존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리고 이를 스스로 주도할 수 있는 위치에 올랐고 역량도 갖추게 되었다. 모든 일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득이 있으면 실이 있고, 긍정적인 이면에는 부정적인 것도 존재한다. 남북한의 유엔동시가입은 무력통일방식을 최소한 불법화시켰기에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긍정적으로 기여한 점에서 가치가 있었던 일이었다. 그러나 분단의 고착화와 북한의 외교적 입지를 넓혔다는 관점에서는 우리와 주변국의 대북 영향력 상실의 의미를 부정하기 어렵다. 따라서 북한과의 대화에서 북한의 주권을 존중하는 태도로 임할 필요가 있다. 반면 북한도 역시 유엔회원국으로 국제제도, 규범과 법칙을 존중하고 성실하게 준수하는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겠다. 북한의 태도 전환만이 남북한 유엔가입으로 일어난 한반도의 실익부분을 보완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기획 및 편집: 정승철 연구위원 주재우 (경희대 중국어학과) 미국 웨슬리언대 정치학 학사, 중국 베이징대 국제정치학 석박사. 전(前)미국 브루킹스연구원 방문학자 역임. 현(現)한중사회과학회 회장. 현(現)한국국가전략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 「한국인을 위한 미중관계사」, 「팩트로 읽는 미중의 한반도 전략」, 「북중관계: 그 숙명의 역사」 저자
  • [JPI PeaceNet] 남북한 유엔동시가입 의미의 재평가
    저자
    주재우 (경희대학교 중국어학과)
    발간호
    2021-28
    [초록] 2021년은 남북한이 유엔 동시 가입 30주년을 맞이한 해였다. 냉전 말미라는 특수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우여곡절 끝에 일궈낸 성과였던 것이다. 유엔 가입이라는 대한민국 외교의 역사적 성과를 올리는데 몰두한 나머지 당시 남북한에 주는 전략적 함의가 간과된 것도 사실이었다. 특히 북한에게 유엔이라는 국제무대가 제공되고, 미국에 유엔본부가 소재한 점이 북한 외교 전략은 물론 북한의 대남, 대미 관계 변화에 가져다준 전략적 의미 조망이 부족했다. 가령 한반도 분단의 고착과 북한의 ‘통미봉남’전략이 현실화될 수 있는 여건과 근거를 제공한 셈이 되었다. 서론 1991년 9월 17일은 우리나라 외교사에서 기념비적인 날이다. 이날, 우리와 북한이 함께 유엔에 가입했다. 그러나 가입 여정은 달랐다. 북한보다도 우리가 더 긴 여정 겪었기 때문에 그 의미는 더 고무적이었다. 30년이 지난 오늘날 가입당시에 우리가 기대했던 외교적 효과는 안 보인다. 당시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의 일환으로 추진된 우리의 유엔 가입 시도가 북한이라는 장벽에 부딪히면서 남북한의 동시가입이라는 선택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북방정책의 목표와 취지에 부합했기에 동시가입은 정당화될 수 있었고 어느 정도 설득력도 있어 보였다. 당시의 기대감은 사라진지 오래다. 현실은 남북관계가 더욱 경색되고 한반도 통일은 더욱 멀어져 보인다. 이런 의미에서 남북한의 유엔 동시가입을 재평가해봄으로써 향후 우리의 대북전략은 물론 우리의 한반도 외교도 새로이 정립할 필요가 있다.   한국과 북한이 유엔에 가입하기까지의 과정 우리나라의 유엔 진출은 건국 이후 즉각 이뤄졌다. 1948년 12월 유엔 결의안195호가 대한민국 정부를 합법적인 정부로 승인하면서 우리나라는 1949년에 유엔 옵서버국가로 대표부를 설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의 주미대사가 이를 겸직했다. 6.25전쟁 중이었던 1951년에 우리는 유엔에 옵서버국 상주대표부까지 설립할 수 있었다.이후 우리의 유엔가입신청이 시작되었다. 1949년부터 1956년까지 5차례 가입 신청을 했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셔야했다. 이유인즉슨 유엔 상임이사국 5개국의 승인을 모두 받아야하는데 그 중 소련의 반대(veto)에 막혔다. 중국이 문제가 아니었다. 당시 중국은 대만이 대표했기 때문이었다.북한의 유엔 가입 신청도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우선, 유엔이 북한을 한반도의 합법적인 정부로 승인하지 않았다. 유엔은 2차 세계대전의 전승국이 수립한 기관이었다. 따라서 소련과 몇 개의 위성국가 외에 모든 회원국이 친서방 또는 친미 국가로 주를 이뤘다. 북한이 유엔 가입 신청하기 위해서는 제3국만을 통할 수밖에 없었다. 즉, 이들이 대리인으로 북한 관련 의제를 유엔에 상정해야했다. 또한 북한이 6.25전쟁이후 제기한 한반도 관련 이슈 또한 같은 경로를 통해서만 제기될 수 있었다. 당시 북한의 대표적인 대리인들은 중국, 소련과 제3세계 국가 등이었다.북한은 유엔 가입 신청을 차치하더라도 더 급한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이것은 유엔 한국통일부흥위원회(United Nations Commission for the Unification and Rehabilitation of Korea, UNCURK)와 유엔 사령부의 해체였다. 이런 의제가 북한에 시급했던 이유는 이들의 존재만으로도 이는 북한이 추구했던 한반도의 적화통일, 무력통일에 가장 큰 걸림돌이었기 때문이다. 북한이 유엔 한국통일부흥위원회의 해산을 원했던 가장 큰 이유는 유엔이 한국정부의 정당성을 인정하고 유엔사와 유엔군의 주둔을 정당화한 데 있었다.주지하듯, 동 위원회는 6.25전쟁 중이었던 1950년 10월에 이와 관련된 결의안을 채택했다. 유엔 한국통일부흥위원회의 사무처도 인천상륙작전 성공 직후 설립됐다. 미국은 당시 유엔군의 승리를 전망하면서 3·8선의 부당성을 주장했다. 이를 근거로 미국은 한반도 전체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적절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그리고 전세가 통일로 이어질 가능성을 염두하고 통일 이후 민주한국정부가 대의제를 수립하고 파괴된 경제를 재건하는데 유엔의 도움이 따라야하는 것으로 동 위원회의 설립을 합리화했다.북한이 이 같은 기구의 해산과 해체를 각각 원했던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그러나 북한이 유엔 회원국이 아니라는 이유로 유엔에서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그래서 북한에게 차선책은 중국, 소련과 제3세계 국가를 통해 해산 안(案)을 발의하는 것이었다. 이들의 도움으로 1953년부터 1975년까지 안건은 매년 유엔에 상정되었다. 1960년과 1964년을 제외하고 이들은 북한을 도왔다.유엔에서 이런 노력이 여의치 않자 북한은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중국에게 직접 도움을 요청하는 전략으로 선회한다. 이의 가장 결정적인 계기가 미중관계 정상화 협의였다. 1971년 7월 헨리 키신저 전 국가안보보좌관이 중국을 비밀 방문한 이후부터 북중 양국의 합작 노력이 개진되었다. 중국이 관계정상화 논의과정에서 두 의제를 협의 대상으로 상정했다. 그 결과 북한은 ‘절반의 승리’를 일궈낼 수 있었다. 1973년 미중 양국은 유엔 한국통일부흥위원의 해산에 합의했고 유엔은 이를 받아들였다.미국이 이에 동의한 데는 유엔사의 존속과 미중관계 정상화를 위해 타협한 결과가 결정적이었다. 미국에게 유엔사의 해체는 미국이 최선을 다해 막아내야하는 최후의 ‘마지노선’과 같은 것이었다. 아니면 주한미군의 주둔을 정당하게, 적법하게 이어나갈 수 있는 근거가 사라지기 때문이었다. 중국과의 협상에서 미국은 이를 철저하게 방어했다. 키신저는 저우를 설득했다. 당시 불안한 한반도의 정세와 주변국의 한반도 전략으로 그의 합의를 도출했다. 키신저는 중국의 역린을 건드렸다. 그는 유엔사 해체가 한미동맹관계에 미칠 영향과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을 유발할 가능성을 점쳤다.중국은 6.25 전쟁이후 북한과 같이 유엔사의 해체와 주한미군의 철수를 시종일관 요구했었다. 그러나 키시저는 미중관계 정상화 협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일본에 대한 대안이 없이는 모든 것이 시기상조임을 저우에게 상기시켰다. 주한미군의 철수가 한반도의 권력공백을 조장할 수 있어 일본의 군사적 야욕에 도화선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논리로 저우를 설득시켰다. 이런 전략적 의미에서 중국은 그 후부터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입장을 공식화했다. 그리고 유엔사 해체에 관한 논의가 미중 간의 의제에서 사라지는 자연스러운 결과를 볼 수 있었다.미중 간의 관계정상화 협상이 한 참이던 1973년에 우리나라는 “6.23 평화통일 외교정책 선언(6.23 선언)”을 발표한다. 핵심 내용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북한의 국제기구 참여를 반대하지 않는다. 다른 하나는 통일 이전까지 잠정적으로 남북한의 유엔동시가입을 반대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로써 남북한이 서로의 유엔 가입을 서로 반대하던 대결 국면을 해결할 수 있는 첫 실마리가 제공되었다. 그럼에도 북한과 사회주의진영의 나라들은 우리의 6.23선언을 모두 반대했다. 이 중 특히 중국의 반대가 심했다. 당시 중국이 견지하는 ‘하나의 중국’ 원칙 때문이었다. 중국은 ‘두 개의 중국’을 부정한다. 때문에 북한과 관련해서도 ‘두 개의 조선(한국)’이 조장되는 그 어떠한 상황도 거부하는 입장을 견지했다.냉전이 종결될 때까지 남북한의 유엔동시가입문제는 답보상태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냉전의 종결로 우리에게 유엔 가입의 기회가 다시 주어졌다. 우리나라 정부의 발걸음도 바빠졌다. 북방정책의 결실로 우리나라는 1990년 9월 소련과 수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유엔 가입관련 소련의 지지를 자연스럽게 확보할 수 있었다. 문제는 중국이었다. 이규형 전 주중대사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그는 우리의 가입 신청 계획을 중국에 알리자 중국 측에서 이의 유보를 당부한 것으로 회고했다. 당시 그는 이 메시지로 낙담하지 않았다. 대신 이듬해에 가능하다는 의미로 이를 받아들였다.우리 외교 당국의 판단이 옳았다. 1991년 중국은 우리의 유엔가입신청을 더 이상 반대하기 어려운 입장을 북측에 전했다. 5월3일 방북한 리펑 총리는 연형묵 북한 총리에게 더 이상 반대 입장을 고수하기 어려운 실정을 직접 전했다. 그러면서 남한이 먼저 가입한 후 북한이 가입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최후통첩’과 같은 언지를 전했다고 태영호 전 북한공사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당시 상황을 밝혔다. 그 결과 북한도 마지못해 우리와 유엔 동시 가입을 숙명처럼 받아들여야만 했다.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의 의미 유엔은 우리의 안보 및 한반도 문제와 깊은 연관을 가진다. 때문에 우리의 성공적인 가입은 고무적인 사건이었고 우리 외교에도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러나 역사가 과거를 돌이켜보고 선택한 결정의 의미를 되새기며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유의미한 지침서라는 통념에서 남북한 유엔동시가입을 평가하는 것도 유의미한 작업일 것이다.이 문제에 대해 두 가지 의미를 유추할 수 있다. 하나는 한반도 분단의 고착화 문제와 관련 이 있다. 다른 하나는 주변국의 대북 영향력 감소와 연관된다.우선 한반도 분단의 고착화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남북한이 동시에 유엔 회원국으로 인정받음으로써 국제사회에 이제 ‘두 개의 한국(조선)’이 공인된 것이다. 남북한 모두가 주권국가로 인정받은 셈이다. 따라서 통일의 해법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특히 평화적인 통일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주권이 존중되는 범위 내에서 이뤄져야할 것이다. 이제 무력통일의 방식은 최소한 비(非)합법적이라는 인식을 남북한이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두 번째 문제인 주변국의 대북 영향력 감소 문제는 북한이 국제사회와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채널을 확보한 것과 연관이 깊다. 특히 북한의 적대진영의 국가와의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장이 열렸기 때문이다. 우선 북한에게 유엔 진출은 북한 외교관이 미국에 상주할 수 있고 미국에 사무실을 열 수 있는 기회를 의미한다. 북한이 가장 대화하고 싶은 나라가 미국인 점을 감안하면 북한의 유엔진출은 북한에게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북한은 이미 1973년 5월 세계보건기구(WHO)에 가입하면서 7월에 뉴욕에 유엔대표부를 설립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한반도문제 논의의 장에 옵서버국으로 초대되었다. 그러면서 북한은 6.25전쟁 이후 원하던 미국과 직접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 해 미국과 첫 관방회의를 할 수 있었던 외교적 쾌거도 올렸다. 그 이전까지 북한은 수없이 미국과의 대화를 시도했지만 접촉경로를 정확히 알지 못해 번번이 고배를 들어야했었다. 물론 북미 첫 관방회의는 뉴욕에 주재할 북한 외교관과 공관개설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것으로 한반도문제는 언급 조차되지 않았다.북한이 잘못된 경로로 미국과의 대화를 모색하는 동시에 제3국을 통해 대화의사를 수없이 미국 측에 전하려했다. 때로는 동구권, 때로는 중동, 또 때로는 서남아시아의 지도자를 통해 대화 의지를 알렸다. 그러나 북한은 그 누구보다도 중국에 의존을 많이 했었다. 특히 미중관계 정상화 논의로 양국 고위급인사의 만남이 빈번해진 것을 이용한 것이다. 역으로 중국은 북한의 이런 갈망을 대북 영향력을 강화하는 요인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북한이 유엔에 가입한 후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미국과의 대화를 위해 더 이상 다른 나라의 중재에 의존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리고 이를 스스로 주도할 수 있는 위치에 올랐고 역량도 갖추게 되었다.모든 일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득이 있으면 실이 있고, 긍정적인 이면에는 부정적인 것도 존재한다. 남북한의 유엔동시가입은 무력통일방식을 최소한 불법화시켰기에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긍정적으로 기여한 점에서 가치가 있었던 일이었다. 그러나 분단의 고착화와 북한의 외교적 입지를 넓혔다는 관점에서는 우리와 주변국의 대북 영향력 상실의 의미를 부정하기 어렵다. 따라서 북한과의 대화에서 북한의 주권을 존중하는 태도로 임할 필요가 있다. 반면 북한도 역시 유엔회원국으로 국제제도, 규범과 법칙을 존중하고 성실하게 준수하는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겠다. 북한의 태도 전환만이 남북한 유엔가입으로 일어난 한반도의 실익부분을 보완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기획 및 편집: 정승철 연구위원 주재우 (경희대 중국어학과) 미국 웨슬리언대 정치학 학사, 중국 베이징대 국제정치학 석박사. 전(前)미국 브루킹스연구원 방문학자 역임. 현(現)한중사회과학회 회장. 현(現)한국국가전략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 「한국인을 위한 미중관계사」, 「팩트로 읽는 미중의 한반도 전략」, 「북중관계: 그 숙명의 역사」 저자
  • [JPI PeaceNet] 동북아 지역협력의 미래와 한국의 비전
    저자
    최은미(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
    발간호
    2021-24
    [기획자 註] 오늘날 동북아 국가들 간의 지역협력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동북아 국가들은 지정학적 문제, 북핵문제, 역사와 영토문제 등으로 인해 갈등을 겪고 있으며 이는 보다 높은 수준의 지역협력으로 나아가는데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북아 국가들은 꾸준히 지역협력을 추구해야할 것이다. 지역협력을 통해 공존·공영·상생을 추구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동북아 국가들 간의 지역협력을 강화를 위해 한국이 맡을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일까. JPI PeaceNet은 아산정책연구원 최은미 연구위원님의 기고문을 통해 동북아 지역협력의 미래와 한국의 역할, 비전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기획: 정승철 연구위원(scchung@jpi.or.kr)] 그래도, 여전히 중요한 동북아 지역협력 – 동북아 지역협력의 필요성 동북아시아는 역사적, 경험적으로 지역협력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지역이다. 역내 협력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주장하는 수많은 논의와 다양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견고한 협력체제를 구축하지 못하였고, 특히, 안보 분야에서의 협력체제는 부재하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 이유는 협력의 필요성에 대한 넓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문제들이 협력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는, 역내 국가들 간 상이한 정체성, 북핵 문제에 대한 인식 및 접근방식의 차이, 역사 및 영토문제 등을 들 수 있다. 더욱이 최근 국제정세가 인도태평양 지역을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는 상황에서 동북아 지역의 협력을 주장하는 것이 시대의 흐름에 뒤떨어져 있다는 인상마저 준다. 그럼에도 여전히 동북아 국가들 간 협력에 대한 논의는 지속되어야 한다.그 이유로는 첫째, 동북아 지역의 평화와 안정은 곧 한국을 비롯한 역내 국가들의 생존과 직결되는 사항이기 때문이다. 국제질서 논의의 주된 흐름이 인도-태평양 지역, 미중경쟁 등으로 이어지고 있지만, 이와는 별도로 역내 질서 구축을 위한 논의가 진행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전 세계적 논의의 흐름에 발맞추어 가는 것만큼 역내 문제 해결을 위한 논의 또한 중요하기 때문이다. 둘째, 협력을 통해 갈등을 방지하고, 역내 위기관리 메커니즘을 구축하기 위해서이다. 동북아 지역은 북한문제 해결이라는 공통의 과제를 갖고 있으나, 이에 대한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되어 문제 해결이 요원한 상황이다. 이에 더하여 역사 및 영토 갈등 등으로 인한 양자갈등이 다자간 협력을 저해하는 상황도 종종 발생한다. 따라서 갈등을 해소하고, 위기상황을 관리하기 위한 협력 메커니즘을 구축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협력의 공간을 확대하여 역내 국가들이 공존·공영·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알 수 있듯, 원자력의 안전한 이용, 기후변화, 미세먼지, 보건 등 국경을 초월하는 비전통안보, 인류의 삶과 생명을 위협하는 인간안보 분야의 협력의 필요성이 증대하고 있다. 하지만 협력의 경험이 많지 않은 역내 국가들은 공동의 위기상황에서도 불신과 반목, 각자도생으로 대응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고, 이에 따라 위기 극복에 더 많은 어려움이 따르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이 지속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역내 공통과제 해결을 위한 협력의 습관을 만들고, 협력의 저변을 확대해 나가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렇지만, 여전히 쉽지 않은 동북아 지역협력 – 동북아 지역협력의 이상과 현실 동북아의 지정학적 긴장과 경쟁 구도 속에서 한국은 역내 평화와 안정의 질서를 확립해 나가기 위해 노력해 왔다. 1980년대 후반 냉전이 종식되며 갈등과 대립의 국제질서에서 통합과 화합의 새로운 흐름이 생겨남에 따라 제안된 노태우 정부의 「동북아평화협의회」, 이후 김영삼 정부의 「동북아안보대화」, 김대중 정부의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6개국 선언」, 노무현 정부의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시대」, 이명박 정부의 「신아시아구상」, 박근혜 정부의 「동북아평화협력구상」 등이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그리고 현재 문재인 정부에서는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와 동북아를 만들어 가기 위한 「동북아플러스책임공동체」 구상을 시행하고 있다([표1] 참조). 이와 같은 지역협력 구상을 통해 한국 정부는 역내 갈등을 해소하고, 초국경적 문제를 해결하며, 우리 외교의 외연을 확대시키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동북아지역은 협력체제가 구축되지 않았고, 앞으로의 전망도 밝지 않다. 여기에는 앞서 제시한 동북아의 지정학적 환경과 북핵문제, 서로 다른 정체성, 역사와 영토문제 등 협력을 저해하는 요소들이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지역협력 혹은 다자협력에 대한 낮은 정책적 우선순위와 무관심이 협력을 증진시키기 어려운 요인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주지하듯이, 강대국들로 둘러싸인 한국의 지정학적 특성을 고려할 때, 한미·한중·한일 등‘양자’관계는‘다자’관계보다 더 많은 주목을 받는다. 또한, 역내 국가들이 직면하게 되는 다양한 ‘갈등’과 대립 사안이 ‘협력’ 사안보다 더 주목받는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이렇게 낮은 관심 속에 지역협력에 대한 정부의 정책 우선순위도 높게 자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지역협력과 다자협력의 당위성을 강조하면서도, 이것이 곧 한반도 혹은 동북아 지역이 직면한 주요 현안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처럼 주변국들과의 관계 강화 속에서 북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 속에 동북아 협력이 중요하게 다루어지던 시기도 있었지만, 정권에 따라 북한문제를 다루는 접근방식의 차이로 인해 지속되지 못하였다. 더욱이 지역협력은 지속적인 교류와 협력을 통해 상호 간 신뢰와 경험을 축적해 나간다는 측면에서 정책 시행의 가시적인 성과가 즉각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특징을 지닌다.이러한 점들로 인해 결국 지역협력은 하지 않을 수 없고, 해야 하고, 필요한 것이지만, 시급성이 높아 당장 해야 하거나, 하지 않았을 때 부정적 영향 혹은 파급효과가 크지는 않은 사안으로 여겨지게 된다. 다시 말해, 역내 위기상황에 대한 해결방안으로서 본질적 혹은 필수적 수단이 아닌, 추가적 혹은 보조적 수단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국가의 한정된 외교역량과 자산을 쏟기에는 지역협력 정책이 양자 및 갈등을 다루는 정책보다 우선순위에 놓이지 않는 이유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지속해야 하는 동북아 지역협력 - 동북아지역협력의 미래와 한국의 비전 앞서 알아본 바와 같이, 동북아 지역협력은 여러 제약요인으로 인해 원활한 추진이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내 국가들이 직면한 다양한 문제의 해결, 동북아 지역의 평화와 번영의 질서 구축이라는 측면에서 그 중요성을 작지 않다. 뿐만 아니라, 역내 다양한 현안 해결에 급급하여 과소평가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한국외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비전, 전략, 그리고 한국의 지역구상과 이어진다는 점에서 더욱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 따라서 동북아 지역협력에 대한 기존의 관점과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이를 위해 먼저, 지역협력 추진을 위한 정책의 우선순위를 높여야 한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지역협력은 우리 외교의 지역구상, 외교전략과도 맞닿는 것으로 당장 직면한 현안 해결보다 보다 높은 단계의 논의이다. 당장의 가시적인 정책성과가 보이지 않더라도 국가전략의 일환으로서 지속적인 논의의 심화와 담론 형성이 필요한 사안인 것이다. 이는 경제·문화 선진국 반열에 올라선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고려하여 국제사회에서의 한국의 역할에 대한 고민과도 이어진다. 따라서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속성을 갖고 시행해 나갈 수 있도록 사고의 전환을 시도하고, 기존까지 소홀히 했던 동북아 지역협력에 대한 관심과 우선순위를 높일 필요가 있다.다음으로, 정권의 변화에 흔들리지 않는 정책추진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실행전략을 구체화해야 한다. [표1]에서 제시된 바와 같이, 탈냉전 이후 역대 모든 정부는 동북아지역의 지역구상 비전을 내 놓았지만, 대부분의 구상들이 구상에 그쳤고, 정권교체기마다 그조차 변화하는 양상이 나타났다. 다시 말해, 매 정부마다 새로운 이름을 내세웠고, 새로운 정책을 추진해 온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정책들이 전 정부와의 차별성만을 강조한 나머지 정책의 방향성마저 흔들린다는 데에 있다. 정권 교체에 따른 명칭 변경이 불가피하다 하더라도, 한국외교가 역내 지역질서 형성을 위해 지향하는 방향성과 외교의 정체성은 유지되어야 하는데, 이 또한 함께 흔들리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외교의 방향성, 한국이 바라는 동북아 질서 구현을 위한 보다 진지한 고민 하에 정책추진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실행전략을 구체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한편, 이 과정에서 “북한문제”는 분리해서 접근하는 것이 정책추진의 연속성을 확보하고, 차별성을 갖는 방법이라 여겨진다. 북핵문제가 역내 가장 중요한 현안 중 하나이며, 한국이 주도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임은 부인할 수 없으나, 역내 다양한 지역협력 사안을 반드시 북핵문제와 연계시키거나 궁극적 혹은 필연적으로 북핵문제에 대한 논의로 나아갈 목표를 가질 필요는 없다. 박근혜 정부에서 실시했던 「동북아평화협력구상」의 경험을 통해 알 수 있듯, 비전통안보 분야에서의 협력이 전통안보 분야의 협력으로 확산되는 스필오버 효과는 일어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더욱이 정권 변화에 따른 정책의 변화가 큰 사안이 북한문제라는 점을 고려할 때, 북한문제와의 연계는 정책의 지속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가장 큰 저해요인으로 작용한다. 더욱이 북한문제는 이미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어 부처 및 부서 등이 있어 업무가 중첩되거나, 유사한 정책들이 이미 많아 시행되고 있어 차별성을 갖기 어렵다. 따라서 북한문제 해결과는 별도로, 역내 다양한 사안에 대한 협력체제를 구축해 나가도록 노력하고, 북한 이슈로 인해 다른 사안이 영향을 받는 현상이 발생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에 더하여, 비전통안보협력이 전통안보협력만큼 중요하고, 전통안보협력만큼 쉽게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인식하에 부단히 노력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연속성을 확보하고, 시행착오를 줄여나가야 할 것이다.마지막으로, 지역협력을 위한 한국의 주도적 역할을 모색해야 한다. 기존까지 한국은 역내 지역협력을 위한 촉진자, 균형자 등의 역할을 자임해 왔다. 그러나 협력을 위한 의제 선정과 시행 과정을 살펴보면, 한국의 역할은 주체적이라기 보다는 수동적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제는 기존까지 역내 공통의 문제를 협력의 장에 제시한‘과제공유국’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논의를 중심으로 공통의 의제를 발굴하여 주변국과 함께 논의하는‘과제선도국’으로 발돋움하여 협력의 진전을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한국이 주도하고, 의제별 소다자협력 등의 형식을 이끌어 나갈 수 있는 공동의 의제를 개발하고, 이 과정에서 역내 지역협력의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발신하며, 기후변화 등 주요 의제에 대한 협력 논의를 주도하며, 주변국의 지지와 동의, 공감과 호응, 그리고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과정들은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입지와 영향력을 높이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미중경쟁 속 새롭게 전개되는 국제질서 혹 한국의 외교입지 선정, QUAD, AUKUS, Five Eyes 등 새롭게 부상한 협력체제들에 대한 다양한 논의 속에서‘동북아 지역협력’이라는 전통적 의제를 다시 고민해야 하는 이유는, 결국 역내 평화와 안정이 우리의 생존과도 직결되는 사항이자, 한국외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도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역내 다양한 갈등 현안 속 간과되기 쉬운 부분이지만, 역내 어떠한 협력체계를 만들고, 어떠한 지역질서를 구축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기획: 정승철 연구위원 편집: 김인서 연구보조    최은미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이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후 고려대학교에서 정치학 석사,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미시간대학교와 와세다대학교에서 방문연구원, 외교부 연구원, 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 국립외교원 일본연구센터 연구교수로 재직하였다. 한국외대 강의교수, 현대일본학회 및 한국국제정치학회 편집이사, 한국유엔체제학회 홍보간사, 세계일보 오피니언 정기필진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일본정치외교, 한일관계, 동북아다자협력을 중심으로 연구하고 있다. 최근 연구로는 『외교의 부활』(2021, 공저), 『Issues and Perspectives in The Korean Peace Process』 (2021, 공저), 『스가(菅義偉) 내각 출범을 통해 본 일본의 정치변동과 향후전망』 (2020), 『국가정체성과 한중일관계』 (2020, 공저), “박근혜 정부의 「동북아평화협력구상」은 왜 사라졌을까? 동북아 다자협력을 위한 (신)기능주의적 접근의 도전과 한계” (2020), “한일 갈등관리메커니즘의 역사적 전개와 구조적 변용” (2020) 등 다수의 논문과 저서를 출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