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도종윤 (제주평화연구원 지역통합연구부장)
- 발간호
- 2017-02
1. 2017년, 국제정치의 실마리
2017년에 국제정치가 맞서게 될 사태의 실마리는 2016년 하반기에 이미 던져진 사건에서부터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1월 20일, 도널드 트럼프의 제45대 미국 대통령 취임과 3월로 예상되는 브렉시트(Brexit) 협상 개시는 2017년을 가늠하는 첫 잣대가 될 것이다. 이민자 문제는 여전히 유럽에서 중요한 관심사로 자리를 차지할 것이지만, 난민 유입은 절정의 단계를 지나 소강상태에 접어들 것이다. 비록 난민 유입에 대응하기 위해 유럽이 여러 가지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지만, 올해 내로 기대만큼 준비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러시아혁명 100주년을 기념하는 올해, 러시아의 역할은 더욱 확대될 것이다. 난민 문제와 EU의 역할에 실망한 몇몇 중동부 유럽 국가들은 보다 민족주의적 색채를 띨 것이며, 권위와 주권 우선의 가치에 향수를 느끼는 유럽회의론자들은 러시아의 접근을 환영할 것이다. 유독 선거가 많은 올해(프랑스 대선, 독일 총선, 네덜란드 총선, 헝가리 총선, 슬로베니아 대선, 체크 총선 등), 연말 즈음에 이르면 포퓰리즘(populism)은 ‘유럽인들이 선정한 올해의 단어’로 선택될 가능성이 높다. 포퓰리즘이 선거 분위기를 장악하는 한 거시적이거나 장기적인 정책은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며, 선거를 앞둔 정치인들의 득표 전략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한편, 미국의 새 정부가 미국 우선주의 정책(American First)을 취한다면, 유럽 역시 유럽 우선주의(Europe First)의 유혹을 뿌리치기는 힘들 것이다. 벌써 무역과 안보에서 이러한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이 같은 반(反)자유주의적 분위기는 그동안 유럽이 취해 왔던 국제사회에서의 ‘역할론’과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 그 때문에 대외관계에서 새로운 정책의 채택보다는 EU 회원국들의 자율성을 존중하면서 내부의 결속을 유지하려 할 것이다. 또한 통합의 확대 같은 공격적인 정책보다는 테러리즘 대비 등 안보 위주의 보수적인 분위기를 이어갈 것으로 판단된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유럽의 동아시아 정책은 역할론이 줄고 실리 위주의 접근에 치중하게 될 것이다. 자연재해 대비, 기술표준, 사이버안보, 기후변화 대처 등 실용주의 정책들은 오히려 집중도가 높아질 것이며 이에 대한 협력 요구는 더욱 강해질 것이다.
이 같은 내용을 보다 구체적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2. “탈퇴가 더 나은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브렉시트(Brexit)
작년 6월 치러진 영국 국민 투표에서, 영국이 정말 EU를 탈퇴할 것으로 예측한 전문가들은 거의 없었다(선거 결과가 52:48의 박빙이었으므로 이를 예측하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했다고 보아야 한다). 당초 EU와 영국의 전략은 소위 영국이 ‘특별지위(special status)’를 누리도록 내용상 양보는 하되 통합의 겉모양새는 유지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2015년 11월, 양측이 4개 분야 협상(deal)-영국의 유로화 불사용, 경쟁력 강화 지속, 영국의 주권 존중, 국경 간 자유 이동에 대한 회원국의 권리 존중-을 타결했을 때, 영국의 EU 잔류가 조심스럽게 예상되었었다.
올 3월부터 시작될 것으로 예상되는 영국의 EU 탈퇴 협상은 알려진 대로 리스본조약 50조에 따라 진행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영국이 어떤 전략에 따라서 협상에 임할지, 이 협상을 통해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지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영국 노동당의 힐러리 벤 의원은, “브렉시트는 현상유지를 깨고자 하는 도전이었다. 그러나 영국이 이처럼 깨진 현상유지 이후에 무엇을 할 것인지, 어떤 전략을 가지고 있는지 여전히 알 수가 없다”고 비판한다(Euobserver, 12월 28일 자). 분명한 것은 영국이 탈퇴 이후에도 협상의 목표를 EU와 특별관계를 맺어 기존에 누리던 EU와의 관련성을 계속 유지하는 쪽으로 둘 것이라는 것이다. 반면 나머지 회원국들은 영국의 탈퇴로 생긴 공백을 자신들의 영역 확대의 기회로 삼을 것이다. 테레사 메이 신임 영국 총리는 탈퇴 협상을 통해 적어도 카메론이 성공이라고 공언했던 2015년 11월의 협상 결과보다 더 얻을 것이 무엇인지 유권자들에게 설명해야 한다. 혹자는 향후 2년간 진행될 영국의 EU 탈퇴 협상 기간이 매우 짧다고 하지만, 영국으로서는 오히려 길게 느껴질 수도 있다. 곤혹스러운 것은 이 협상 기간 동안 영국은 EU 정상회담을 비롯하여 각료이사회나 각종 회의에서 토론권이나 결정권에 제한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어정쩡한 회원국 지위를 2년이나 유지한다는 것은 영국 내의 여론에 큰 변화요인이 될 것이다. EU도 고민이 있다. 쌍두마차인 프랑스와 독일이 올해는 국내 선거로 영국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룰 만한 여력이 없다는 점이다. 영국과 개별 협상을 진행하게 될 각료이사회(the Council)의 순회 의장국은 향후 몰타, 에스토니아(2017), 불가리아, 오스트리아(2018) 등 소국들이다. 걸출한 조율자가 등장하지 않는 한, 이들이 영국과의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물론 칼자루는 EU가 쥐고 있다. EU는 깔끔하게 떠나보내려 할 것이고, 영국은 조금이라도 남겨두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재투표 혹은 탈퇴 거부라는 여론이 조성되는 것이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영국이 보다 더 크게 걱정해야 할 것은 유럽이 지난 60년 이상 지속해온 ‘한층 더 긴밀한 통합(ever closer union)’ 원칙을 파괴한 첫 번째 회원국으로 낙인찍혔다는 점일 것이다.
3. “최악의 사태는 넘겼다. 그러나...”: 이민자 문제
2014년의 우크라이나의 크림 반도 위기, 2015년의 테러리즘에 이어, 2016년 EU의 가장 큰 역내 이슈는 이민자(migrant) 문제였다. 2016년에 열린 공식 EU 정상회담은 모두 5회(2, 3, 6, 10, 12월)였는데, 이 중에서 이민자 문제는 2월 회의를 제외하고는 줄곧 제1 주제였다(2월 회의의 제1 주제는 영국이 요구한 특별지위 부여 관련 승인 문제). 보통 상반기에는 경제 이슈, 하반기에는 안보 이슈를 다루던 정상회담의 성격을 놓고 볼 때 연중 이민자 문제에 관심을 기울인 것은 그만큼 사안이 중대함을 의미한다.
유럽으로의 국경 이탈자 추이를 보면 2009년에서 2013년까지 연간 10만 명 선에 그치던 것이 2014년에는 283,175명으로 늘어났다. 더 나아가 이들을 포함한 난민 신청자 추이는 2015년에는 1,822,260명으로 급격히 늘더니 2016년에는 3/4분기 기준으로 951,140명을 넘어섰다(Frontex/Eurostat).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전년도보다 2016년의 총 이민 신청자 수는 다소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고, 2017년에도 유입 추세는 다소 둔해질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유럽으로 유입되는 최대 난민 배출 국가인 시리아를 비롯하여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파키스탄, 나이지리아, 소말리아 등 아프리카 국가들, 알바니아, 코소보 등 발칸권 국가들의 정치적 안정과 경제 회복이 전제되지 않는 한 망명 신청자들은 언제든지 다시 늘어날 것이다. 난민 유입과 관련하여 주목할 부분은 최대 월경(越境) 경로인 ‘서부 발칸 루트(the Western Balkan Route)’를 관리하기 위해 작년 3월에 채택된 “EU-터키 간 망명자에 관한 성명서(EU-Turkey Statement)”의 이행 여부다. 함께 채택된 실천계획서에 따라 EU는 그리스 역내로 들어오는 망명자 유입을 저지하는 조건으로 터키 국민의 비자 면제, 터키의 관세동맹 가입, 2018년까지 최대 60억 유로 지원 등의 조건을 내걸었다. 그러나 시행 여부는 불투명하다. 대가로 내건 터키인의 유럽 비자 면제 시행이 2016년 6월에서 6개월 연기되었지만, 지금으로써는 2017년 이내에 시행될지도 불투명하다. 작년 여름 불발된 터키 쿠데타 이후, 에르도간 터키 대통령의 무자비한 숙청과 탄압이 유럽에 물음표를 던졌기 때문이다. 또 다른 난민 유입 통로인 ‘중부 지중해 루트’에 대한 통제는 차질없이 강화될 것이며, 주변 국가들과 ‘신(新)동반자 관계 틀(New Partnership Framework)’ 수립을 통해 난민 유입이 보다 엄격하게 관리될 것이다. 또한 기존의 ‘유럽공동망명자 시스템(Common European Asylum System)’에 대한 재점검, 비자 면제 프로그램에 따라 입국한 모든 여행자를 통합 관리하는 입출국 시스템(entry/exit system)에 관한 입법이 올 상반기에 완료되면 불법 경로를 통한 유럽 이주에 대한 기대감은 크게 줄어들 것이다.
4. “러시아를 주목해야 한다.”: 중동부 유럽의 러시아로의 경도
중동부 유럽과 터키의 극우파에게 러시아는 인기 상종가다. 지난 12월 19일, 터키의 수도 앙카라에서 터키 주재 러시아 대사가 현 터키 정부에 불만을 품은 전직 경찰관에 의해 살해되었다. 에르도간 터키 대통령은 사건 직후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사건의 경위에 대하여 직접 설명하는 정성을 보였다. 작년 쿠데타 사태 이후 유럽과 사이가 결정적으로 틀어진 터키 정부는 러시아와 밀착 관계에 접어들었다. 2015년, EU를 배제하고 러시아-터키를 잇는 신형 가스관 건설 사업을 추진하기로 한 양측의 관계는 올해에도 더욱 공고해질 것이다. 헝가리의 야당 ‘요비크(Jobbilk)’가 러시아에 경도된 극우파인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 10월, 헝가리의 극우단체 ‘헝가리국민전선(MNA)’의 지도자 이스트반 교르코스가 피격되었다. 이 사건을 통해 러시아 해외군사 첩보국(GRU)이 외교관 신분을 가장하여 헝가리 내의 여러 극우정당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상한 것은 헝가리 정부가 러시아 정보국의 헝가리 국민전선에 대한 개입을 묵인하고 있다는 점이다. 헝가리 정부와 러시아의 밀착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집권당인 ‘헝가리시민동맹(FIDESZ)’은 스스로를 중도우파라고 자임하고 있지만, 유럽회의주의, 이민 반대, 포퓰리즘, 민족주의 등의 극우적 성향을 띠고 있으며 이들 역시 러시아와 긴밀한 관련을 맺고 있다는 시각이 많다. 러시아와 헝가리 정부 간 친밀감은, 2015년 2월 오르반 헝가리 총리와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러시아산 가스의 운송을 위한 양국 간 가스관 건설 협력에 대하여 합의하면서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이들 외에, 슬로바키아의 극우정당 ‘우리의 슬로바키아(LSNS)’ 역시 반(反)이민, 유럽회의주의를 외치면서 친(親)러시아적 성향을 보이고 있다. 오스트리아의 극우정파 ‘자유당(FPOe)’의 주요 지도자들도 러시아에 미소를 보내고 있다. 오스트리아의 몇몇 의원들은 지난 연말 모스크바를 방문하여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으로 제재 대상에 오른 세르게이 젤레니악(Sergei Zheleznyak) 러시아 의원과 회담을 하고 사진을 함께 찍어 게시하여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브렉시트와 트럼프의 당선으로 서방의 결속이 흔들리는 가운데 오히려 느긋한 쪽은 러시아다. 지난 연말, EU는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하여 러시아와 맺은 ‘민스크 정전협정’이 불이행되고 있는 것을 이유로 러시아에 대한 경제 재재 기간을 올해 7월까지 늘리기로 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러시아의 메드베데프 총리는, “러시아도 이에 대응하여 EU산 농수산물에 대한 제재 조치를 유지하기는 하겠지만, 오래 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대범하게 응수하였다.
5. “자유주의를 구하라!”: 유럽의 분열과 장벽 세우기
유럽과 미국의 관계는 공식적으로 1990년에 맺은 협정에 근거한다. 이 문서는 양측의 관계를 ‘범대서양 동반자관계(The Transatlantic Partnership)’라고 칭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실제로 ‘동반자관계(partnership)’ 이상의 관계다. 외교적 표현으로 자주 등장하는 ‘포괄적’, ‘전략적’, ‘호혜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들 간에는 이런 표현조차 불필요하기 때문이다. 2014년 모게리니 EU 고등외교대표는 양자의 관계를 “혼돈의 세계에서 선택된 관계(Partners of choice in a complex)”라고 정의한 바 있다. 심지어, “가치와 문화적 정체성에서 같은 DNA를 가지고 있다”고 묘사하기도 하였다(Delegation of the EU to the US, “eumatters”). 이보다 더 긴밀한 표현은 국제관계에서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 당선 이후 이러한 관계는 삐걱거리고 있다. 우선 트럼프에 대한 태도에서 유럽국가 간 균열이 보이고 있다. 메이 영국 총리는 트럼프 당선 직후, “유럽과 미국 간의 강력하고 밀접한 관계가 지속될 것으로 확신한다”는 축하 전문을 보냈다. 폴란드 출신의 도널드 투스크 EU 상임의장도 “이른 시일 내 양측 간 정상회담을 원한다”는 편지를 공개한 바 있다. 민족주의 성향의 오르반 헝가리 총리도 트럼프가 자신을 백악관에 초대하겠다고 하자, “검은 양(a black sheep)으로 취급되던 내가 처음으로 워싱턴에 가게 되었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에 반해 프랑스와 독일의 입장은 크게 다르다. 서유럽 주요 정상들은 트럼프와의 정상회담 일정조차 잡지 않고 있다.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 11월 10일 자 사설은 “미국 우선주의에 맞설 유럽 우선주의의 카드를 내놓을 준비를 해야 한다”며 유럽의 강경한 준비를 촉구하였다(Le Monde 11월 10일자). 미국의 고립주의, 장벽 세우기에 대응한 유럽식 장벽 설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난항을 거듭하던 ‘범대서양 무역·투자 동반자협정(TTIP)’은 폐기의 길을 걷거나 당분간 협상 테이블조차 차려지지 않을 것이다. 미국발 장벽에 세우기에 맞춰 민간에서는 벌써 유럽이 안보 분야에서 자신의 역할을 독립적으로 재정비해야 할 시기라고 보는 시각이 늘어나고 있다. 장-도미니크 줄리아니 로베르 슈망 재단 이사장은, “전략적 자율성(strategic autonomy)”라는 표현을 쓰면서 “이제 유럽이 독자적인 힘을 기를 시기”라고 주장하고 있다.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EU도 미국과 중요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안보 문제에 대해 이미 재검토 작업에 들어갔다. 모게리니 EU 고등외교대표는 지난 11월, ‘유럽공동대응군(a joint battlegroup)’의 사령부 창설을 암시한 바 있다. 비록 비전투군 위주의 구성이지만, 트럼프 당선 이후, 커지고 있는 안보 수요에 대비해야 한다는 여론과, 이에 따른 유럽의 독자적인 대응 전략 요구가 높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트럼프의 NATO 회의론에 대응하여 유럽은 NATO에 투입되는 비용과 자체 방위 예산을 구분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노력도 하고 있다. 즉, 방위비 공동 지출에 관한 ‘아테나 메커니즘(Athena Mechanism)’의 검토 작업을 올해 상반기 중에 끝내겠다는 입장이다. 이 작업이 끝나면 독자적인 방위체계를 구축하려는 EU의 노력이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계기가 될 것이다.
오는 4월로 예정된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 보수우파의 집권이 거의 확실시되는 가운데, 프랑수와 필롱 공화당 후보는 후보자 수락 연설에서 “회원국들의 주권을 존중하면서 프랑스의 지도력을 발휘하겠다”고 공언하였다. 또한 “독일의 독주에 대응하는 역할을 하겠다”고도 덧붙였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유럽통합의 이론적 토대였던 자유주의는 위기에 직면할 것이다. 더구나 이탈리아의 극우파이자 유럽회의주의 정파인 ‘오성운동(M5S)’이 영국 독립당(UKIP)과 결별하여 의회 내 ‘자유주의 정파(ALDE)’에 가입하겠다고 공언하였다. 이렇게 되면 유럽의회의 자유주의의 정체성은 더욱 흔들리게 될것이다. 영국이 떠나가고, 프랑스가 목소리를 높이며, 중동부 유럽이 극우주의의 유혹에 빠져드는 동안 유럽식 자유주의의 선봉에 섰던 메르켈 독일 총리는 외로운 싸움을 벌여야 할 것이다. 자유주의 정파의 수장인 기 베르호프스타트 전 벨기에 총리 역시 EU 역할의 성찰을 재검토해야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최근 “지금은 초국가(superstate) 유럽이 아닌 다양성을 존중하는 유럽이 필요한 시기”라고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6. “올해도 원칙대로”: 유럽의 동아시아 정책
1994년 EU가 처음 동아시아 관련 전략을 내놓았을 때의 기본 방침은 ‘존재감(presence)의 확보’였다. 이러한 기조는 2001년 2차 아시아 전략 문서나, 2012년 동아시아 외교안보 가이드라인에서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다만, 아시아의 지역통합에 기여하겠다는 기존의 유럽 역할론은 다소 주춤할 것이다. 브렉시트 이후 분열된 유럽 내부의 입장과 미국의 대아시아 정책이 어떤 모습으로 드러날지 모르기 때문에 대외정책의 폭은 크게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정말 '아시아 재균형 정책'을 중단할 경우, 이에 대비한 유럽의 입장은 아직 모호하다. 그러나 적어도 올해만큼은 남중국해의 미묘한 문제에 대해 국제법에 근거한 평화적 해결 원칙을 고수할 뿐 “어떤 입장도 취하지 않겠다(not in any sense taking position)”는 EU의 태도는 그대로 이어질 전망이다. 또한 중국의 ‘하나의 중국(One China)’ 원칙에 대한 지지도 변함없을 것이지만, 대만과의 경제적, 문화적 특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은 예전과 같이 계속 시도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EU의 북한에 대한 태도는 두 가지 원칙에 따라 분명히 유지될 것이다. 즉, ‘대량살상무기(WMD) 반대’ 및 ‘유엔 인권위원회 메커니즘 존중’이 그것이다. 한국 정부가 이러한 범주 내에서 EU와 대북정책을 협의한다면, EU는 여전히 한국의 입장을 지지할 것이다.
現 제주평화연구원 분쟁해결연구부장. 단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후 2004년 미국 University of North Texas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음. 단국대학교 분쟁해결연구센터에서 연구위원으로 활동하며 “한국의 공공분쟁 사례연구”를 주제로 대한민국 학술진흥재단 중점연구소 연구과제를 수행하였음. 학술활동으로는 미국국제정치학회가 주관하는 International Studies Quarterly의 Referee로 활동한 바 있음. 저서로는 『2011 한국인의 평화관: 통일정책과 여론 』 및 『2010 한국인의 평화관: 외교정책과 여론』 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