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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안함 사태의 출구전략이 필요한 시기이다
    저자
    김진호(제주대학교 교수)
    발간호
    2010-27
      우리는 지난 6개월여 동안, 국가안보적인 측면에서 천안함 사태에 매몰되어 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동안 국내외 상황은 변화를 거듭해 왔다. 특히 김정일 위원장의 중국 방문은 한반도를 둘러싼 역학 작용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어떻게 보면, 급변하게 돌아가는 국내외 환경을 예측할 수 없을 정도이다.이러한 과정 속에서 우리 정부도 ‘통일세’ 신설 등과 같은 자체역량강화를 위한 고육지책을 발표했다. 이와 관련하여 청와대 고위관계자도 “정부는 남북 간 합의로 평화적·점진적 통일을 이루는 것을 지향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그는 “진보는 통일을 원하고 보수는 분단을 원한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며, 진보와 보수 구별 없이 반드시 통일을 이루어야 하며 그런 의미에서 지난 8·15 경축사는 통일 논의를 국민적 공론화의 장에 들여놓는 계기가 됐다고 본다”고 평가했다(통일신문, 2010년 9월 6일). 이러한 분위기 속에 북한의 신의주 홍수를 계기로 우리의 정치적·군사적 대응과 순수한 인도적 지원·협력은 분리되어야 한다는 공론이 제기되어 온 것도 사실이다.때마침, 북한의 이산가족상봉 제안은 천안함 공격 이후 강화되고 있는 대북 제재를 대화국면으로 전환시키기 위한 전형적인 위기회피전략에 따른 행동이라고 본다. 북한은 이 제안을 통해서 남북관계를 복원하기 위한 실마리를 찾고, 이를 바탕으로 대미관계를 개선함으로써 제재를 완화 시키려고 하고 있다. 북한의 의도는 천암함 의장 성명이 채택된 후 제재 완화를 위해 자신들의 외교력을 총동원하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잘 드러난다(통일신문, 2010년 9월 20일).국가안보와 관련해서 천안함 사태는 안보위협에 대한 정책 부서의 미숙함, 이완된 지휘체계, 국민으로부터의 불신감, 외교력 부재 등 우리 안보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우리 정부의 천안함 외교는 가시적인 성과를 얻었다고 볼 수 있다. 아전인수(我田引水) 격으로 해석될 수도 있지만, 유엔의장 성명에서 회원국들에게 한반도의 상황을 재고시켰다는 것만으로도 의미를 찾을 수가 있다. 이제 우리 정부는 천안함 사태에 대한 북한의 사과를 다른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다. 천안함 사태와 G20 의장국으로서 한국외교는 별개로 진행시켜야만 성숙한 외교이다.첫째로, MB 정권은 종반전을 향해 가고 있다. 이제는 그동안의 국내외적인 성과를 점검하고 정리해서 수성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도 천안함 사태를 잘 넘겨야 할 것이다. 2010년 하반기에 이 사건에 대한 가시적인 성과를 내놓아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되어야만 선거가 안팎으로 많은 2012년을 무난하게 대처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 시기를 놓치게 되면, 선거쟁점화가 되기 쉽다는 것이다. 새로운 남남갈등 관계가 반드시 표출될 것이다. 성숙된 정치문화를 훼손시킴으로써 정치역량은 물론이고 외교안보역량도 약화될 것이다.둘째로, 6자회담에 대한 생각이다. 한미양국은 ‘북한의 사과가 선행되어야만 6자회담을 재개할 수 있다’라는 입장이다. 옳은 이야기이다. 이러한 6자 회담의 수순은 남북관계 개선 북미 접촉 6자 예비회담 본회담이 될 것이다. 우리 정부의 역할과 정책전환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제는 새롭게 국면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국무총리와 외교통상부장관의 공백이 조만간 메워질 모양이다. 신내각 진용이 완성되는 시점을 계기로 새로운 외교 안보정책 노선의 변화를 시도해야 할 것이다. 또한 중국과 북한 등은 8월 26일부터 30일까지 중국 동북지역에서의 정상회담에서 친선우호관계를 지속 강화하면서 나름대로의 노력을 하고 있다.셋째로, 북한 측의 적극적인 대외공세와 관련된 담당자들의 변화이다. 북한의 핵협상과 대미 외교를 실질적으로 주도해온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에 따라 내각 부총리에 임명됐다고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이 9월 23일 보도했다. 대미 외교라인에 힘을 실으면서 북한은 핵협상에 대한 세대교체를 염두에 둔 듯하다. 이번에 승진한 인사들은 북한 외무성의 북핵 및 대미 외교 라인에서 잔뼈가 굵은 전문가들로 꼽힌다. 강 신임 부총리는 24년 동안 같은 직책을 맡아오면서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를 이끌어 내는 등 북한의 대표적인 북핵·대미 협상가로 알려져 있다. 미국도 11월의 중간 선거를 앞두고 있다. 선거결과에 따라서 대북정책의 기조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시기를 놓치게 되면 우리 정부가 6자회담을 더디게 하는 장본인으로 주객이 전도되는 억울한 국면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넷째로, 9월 상순에 열릴 예정이었던 당대표자회의가 9월 28일에 열릴 모양이다. 북한도 새로운 정권변화의 움직임이 있을 것이다. 물론 우리의 시각으로는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외신보도도 북한 노동당 대표자회의가 28일 평양에서 열리는 것과 관련해 영국 언론매체들은 22일(영국 현지시간) 지구상에서 가장 비밀스런 독재국가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풀이했다(연합뉴스, 2010년 9월 22일).다섯째로, G20 정상회담은 세계경제의 위기 속에서도 경제성장을 하고 있는 우리의 입지를 강화시키고 북한에 대해서도 직간접적인 외교 압박을 줄 수 있는 대단히 중요한 국가적 국제적 이벤트이다. 추석연휴 연합뉴스보도에 따르면, 제3차 조선노동당 대표자회의 참석차 평양을 방문했던 한 소식통이 “9월초 국방위가 G20 정상회의를 방해하기 위한 긴급회의를 비밀리에 열었다”는 얘기를 탈북 제대군인 단체인 북한인민해방전선에 전했다고 보도했다. 북한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질서를 선 순환적으로 돌아가게 하기 위한 논의를 모으는 국제행사도 자신들을 국제적으로 고립·압살하기 위해 벌이는 세계 금융열강의 ‘정치 모략회의’로 규정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한 구체적인 대응책으로, 한국에 안보 불안을 지속적으로 조장하고 친북단체들이 벌이는 G20 반대 시위를 지원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금융과 관련된 국제회의가 열릴 때마다 국제 NGO들의 ‘반 세계화시위’가 따로 또 같이 열려서 회의 자체를 위협하는 경우를 목도한 바 있다. 물론, 비상시 대비책도 잘 준비가 되고 있지만, 북한을 설득시킬 수 있는 지혜가 필요 하다.여섯째로, 대북관리를 위한 선제적 예방조치를 통해서 적극적인 대북관여정책은 필요한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국익을 위해서이다. 이것은 MB정권 하에서 남북관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는 것인데, 한미동맹과 한중의 전략적 관계의 틀을 우리가 외교적 선제조치를 통해서 북한을 관리하는 것이다. 남북이 중무장 상태로 대치중인 것은 사실이나 대화와 협상을 통해 긴장을 낮추고 평화를 정착시켜나가야 한다는 당위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모처럼 일고 있는 남북관계 대화 진전에 긍정적인 상황을 수습시켜 천안함 사태의 국면전환을 해야 할 것이다. 천안함 사태를 잊지는 말되, 집착해서도 안될 것이다._____* 본 원고는 9월 24일 이전에 작성되었다는 점을 밝혀둡니다.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김진호제주대학교 교수
  • 북한의 대미외교: 최근의 추세와 그 함축성
    저자
    차두현(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 정책보좌역)
    발간호
    2010-26
      지난 8월 25일 지미 카터 前 미국 대통령은 전격적인 평양 방문을 통해 선교 목적의 무단 입북으로 인해 7개월 여 동안 억류되어 있었던 미국인 아이잘론 곰즈(Aijalon Gomes)를 석방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카터가 방북 목적을 철저히 억류 미국인 석방이라는 인도주의적 목적에 국한하였고, 2009년의 클린턴 前 미국 대통령 방북 때와는 달리 김정일 면담 역시 성사되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미?북 양국은 곰즈를 매개로 또 한 번의 소통을 이루었다.북한의 ‘인질외교’: 의도된 책략인가 우연한 기회인가?흥미 있는 것은 카터 방북을 전후한 상황의 맥락이 2009년 클린턴의 평양 방문 당시와 매우 유사하다는 것이다. 미?북 간의 공식적 대화채널은 단절된 상태였고, 장거리 미사일 발사 및 2차 핵실험(2009년), 천안함 사태(2010년) 등 북한의 강경 대외정책으로 인해 경색국면의 돌파구를 찾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화 재개를 향한 주변국들의 물밑 외교전이 서서히 속도를 더하고 있던 시기에 미국의 전직 최고지도자가 평양을 방문했다. 물론, 미국 측이 여전히 천안함 사태에 대한 북한의 성의 있는 접근이 없는 한 대북 대화의 재개가 어렵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지만, 북한뿐만 아니라 주변국들 모두가 천안함 이후 국면에 대한 출구전략(exit strategy)을 본격화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비록 본격적인 미?북 대화로 연결되지는 못했지만 클린턴 방북은 2009년 하반기의 상대적인 해빙무드의 촉매제 역할을 했다. 북한은 그 직후 현정은 현대아산 회장의 방북을 허용했고, 김대중 前 대통령 장례식에 조문사절단을 파견하였다. 남북한 간에는 추석 기간을 전후한 이산가족 상봉이 실현되었다. 카터의 방북을 단순한 개인 자격의 활동으로만 바라보기 어려운 이유도 과거의 사례가 주는 교훈 때문이다. 적어도 북한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대화 재개를 향한 유연한 입장을 지니고 있음을 대외적으로 과시하는 한편, 미국 측에 모종의 메시지를 전달할 기회로써 미국인 억류 국면을 활용한 것이다. 전반적인 상황간의 결합이 너무 절묘하기에 일부에서는 북한의 ‘인질외교’가 이제는 대미정책의 한 수단으로 정착된 것이 아닌가 하고 전망하기도 한다.북한이 대미외교에 활용하기 위해 일부러 미국인들을 억류했다고 단정하기는 힘들다. 아니, 오히려 이러한 시각에 몰입될 경우 인과관계와 상관관계를 혼동하는 전형적인 순환론적 오류에 빠질 수도 있다. 2009년 한국계 유나 리와 중국계 로라 링 두 기자가 국경침범 혐의로 북한군에 체포될 당시에는 북한의 고의성이 의심될 소지가 존재하였다. 반면 곰즈의 경우, 다른 국가의 시각에서 보더라도 불법 입국이라는 지적을 면키 어렵다. 또한, 만일 북한이 미국 국적자들을 외교적인 인질로 활용하려 했다면, 왜 곰즈에 앞서 불법입북 명목으로 체포되었던 로버트 박을 활용하지 않았는지를 설명하기 어렵다(로버트 박은 2달여의 북한 억류 후 중국 추방 형식으로 석방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 재개를 통해 양자 간 직거래 관계를 조기 개설하기 위해 부심하고 있으며, 억류 국면이 그 돌파구를 여는 기회로 활용하려 했다는 설명은 가능하다. 북한이 최근 강석주, 김계관, 리용호 등 대미 외교의 핵심 3인방을 모두 내각에서 승진시킨 조치 역시 향후의 대미 접근을 향한 포석으로 이해될 수 있다. 미국의 입장에서도 ‘인질’은 인도주의적 문제 해결이라는 명분을 제공함으로써 한?미 공조에 대한 부담 없이도 대북 접촉이 가능한 분야임을 유념해야 한다.미 · 북 관계: 상호 인식과 갈등요인의 변화북한의 대미전략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 동안 미국과 북한간의 상호 인식과 갈등요인의 변화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북한에게 있어 냉전시기의 미국은 ‘한반도 혁명’을 가로막고 있는 가장 큰 걸림돌이었고, 가능한 배제하고 타도해야 할 존재였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북한에게 있어 미국은 정권 및 체제 생존에 있어 점차 주요한 변수로 부각되기 시작하였다. 舊소련의 붕괴, 동구권 자유화 등의 국제환경 변화에서 유일 초강대국으로 떠오른 미국의 우월성을 인정하는 것이 불가피해졌으며,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경제질서와의 관계 형성이 이미 당시부터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었던 북한의 경제적 난국 탈피의 관건이라 인식된 것이다. 이에 따라 북한은 1994년의 김일성 사망을 전후하여 미국과의 대화를 적극 추구하는 정책을 전개하는 한편, 대미 레버리지의 강화 측면에서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에 대응하기 위한 외교정책을 강력히 추진하면서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해 왔다. 즉, 미국이 북한에 대해 구사할 수 있는 정권/체제 변환(regime transformation) 정책을 차단하는 한편, 미?북 직거래 관계의 개설을 통해 북한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을 최대화한다는 구상 하에 핵과 탄도미사일을 협상수단으로 활용해 온 것이다.이러한 북한의 대미 인식변화는 미국의 대북 인식변화와 맞물리면서 미?북 관계의 갈등 및 협력 요인을 동시에 조성하였다. 냉전기간 동안 북한은 동서대립체제 하에서 동북아 축선에 위치하는 소련 및 중국의 대리자(proxy)에 불과하였다. 또한, 탈냉전 초기에는 변방의 ‘악당국가’(rogue states)로서 핵 등 위험한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지만, 동구권과 소련의 운명(붕괴 혹은 체제전환)을 따를 체제로 규정하였던 듯하다. 반면, 『9.11테러』 이후 북한은 더 이상 저 멀리의 위협 대상이 아닌 현실적 대응의 존재로 부각되었다. 대량살상무기와 미국에 대한 증오심을 동시에 갖춘 집단이나 체제가 강대국 이상으로 미국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시대에서 북한은 이제 미국에게 ‘변환’시키던 협력하던 간에 직접적으로 관리해 나가야 할 상대가 된 것이다.본격화된 미국의 천안함 출구전략과 그 함축성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은 천안함 사태 이후 외형상으로는 더욱 굳어진 한?미 공조에도 불구하고, 사태처리의 최종목표까지 완전히 한?미가 일치된 움직임을 보일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천안함 사태 초반 미국은 “북한 개입을 추정할 근거가 없다”는 태도를 보였으나, 점차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는 쪽으로 변화하였다. 또한, 4월 중순 이후에는 적극적으로 우리의 입장을 지지하면서 한?미간 공조를 강조해 왔다. 미국의 이러한 접근은 한?미 공조와 대북 정책에서의 실리를 동시에 염두에 둔 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천안함 사태와 관련하여 북한의 연루가 의심되는 것은 북한을 압박하여 기존의 전제조건(한반도 평화협정, 대북제재 완화)을 철회한 가운데에서 『6자회담』 복귀를 유도할 수 있는 유용한 카드이며, 북한의 전통적 후견자인 중국에 대한 카드로도 유리한 수단이었던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북한으로 하여금 2008년 12월 『6자회담』 결렬의 주요한 원인이었던 비핵화 ‘검증의정서’ 채택에 대한 양보를 이끌어낼 수도 있었다. 천안함 사태 이후 미국이 대북 추가제재 조치 등 압력을 강화하는 모습을 보이고는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확산 활동과 관련된 것일 뿐 천안함 공격에 대한 단죄의 조치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의료보험 및 금융체제 개혁 등 국내에 아직 논쟁적인 이슈들이 산적한 미국의 입장에서는 대외정책에 집중할 역량이 아직은 충분치 않다. 더욱이 이란의 핵개발 의혹, 중동의 불안한 정세가 지속되는 상황 하에서 한반도 문제에 대한 우선순위는 여전히 중간 이상의 자리를 차지하기 힘들다. 따라서 미국의 입장에서는 북한이 더 이상의 극단적 행동(3차 핵실험 등)을 하지 못하도록 ‘관리’하는 가운데, 일정한 대화국면을 유지하는 것이 압박 일변도의 정책보다는 유리할 수가 있다.한반도를 둘러싼 북한과 주변국의 최근 외교적 움직임은 이미 이러한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의 입장에서도 향후 『6자회담』의 재개 논의가 본격화되는 시기에 천안함 사태의 종결조건을 어떻게 재정립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현 시점부터 필요하다.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차두현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 정책보좌역
  • 대북 인도지원의 해법
    저자
    권태진(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발간호
    2010-25
      금년 여름 한반도의 기상이 심상치 않다. 태풍 곤파스가 한반도의 허리를 가로지르는 바람에 많은 국민들이 피해를 입더니 추석을 맞이하려는데 느닷없이 시간당 100mm의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져 이재민이 발생하였다. 북한은 7월 중순부터 9월 초까지 다섯 차례 폭우가 발생하여 많은 이재민과 재산 피해가 발생하였다. 특히 신의주 지역의 피해는 심각한 상황이다. 이를 계기로 우리 정부는 북한에 100억 원 상당의 긴급구호지원을 제의하였고 북한은 우리의 제의를 받아들이고 쌀을 포함하여 수해복구 물자를 지원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북한은 이산가족 상봉도 제의하였다.북한 식량난의 원인지금까지의 관례에 비추어 북한이 대한적십자사에 식량지원을 요청한 것이나 이산가족 상봉을 먼저 제의한 것은 뜻밖의 일이다. 우리가 북한에 먼저 긴급수해복구 지원을 제의하기는 하였으나 북한이 꼭 집어 쌀을 지원해 달라고 한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남북한은 그 동안 너무 긴 시간 동안 대화가 단절되고 긴장이 축적되었기에 양측 모두 대화의 돌파구를 찾아야 할 시점에 북한에서 수해가 발생한 것이다. 수해는 자연스럽게 남북한 사이의 대화를 매개하는 촉매제가 된 듯싶다.사실 북한이 겪고 있는 식량난은 자연재해보다는 인재가 근원적인 원인이다. 자연재해를 키운 것도 정책의 실패 때문이다. 그렇지만 북한은 절대수령인 통치자의 잘못을 인정하기 어려운 체제이다. 이런 상황에서 수해가 발생하여 현재 겪고 있는 식량난을 통치자의 잘못이 아니라 자연재해의 탓으로 돌려 통치자에 대한 주민들의 불만을 무마하려는 것이다.북한은 금년 여름 수해가 아니어도 식량난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가깝게는 지난해 가을 수확 이후 100만 톤 이상의 식량 부족이 예상되었다. 좀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2004년 북한이 더 이상 국제사회의 긴급식량지원을 받지 않겠다고 공언할 때부터 예상된 일이었다. 왜냐하면 북한은 자체적으로 식량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국제사회의 지원에 의존해야만 하는데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지 않겠다고 했으니 어느 누가 북한에 식량 지원을 하겠는가. 게다가 북한은 미사일 발사다, 핵실험이다 국제사회의 반발을 살만한 일은 죄다 저질렀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규범을 모르는 것일까 무시하는 것일까?인도적 지원에도 규칙이 있다우리나라는 지난해 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개발원조위원회(DAC) 회원국이 되었다. 그야말로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탈바꿈한 것이다. 그 동안 원조의 방법을 둘러싸고 국제사회는 많은 갈등이 있었다. 자칫 원조가 수원국 국민의 인도적 상황을 개선하기 보다는 독재 권력의 집권을 연장시키고 살찌우는 도구로 잘못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나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이 이러한 의심을 받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피하기 위하여 유엔은 1991년 12월 총회에서 인도지원 원칙을 결의하였다. 여러 가지 원칙이 있지만 식량지원과 관련해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원칙이 중요하다.첫째, 지원을 받고자 하는 나라는 먼저 도움을 요청하고 지원에 동의해야 한다. 긴급재난을 당한 나라는 일차적으로 자국 국민의 인도적 문제를 책임져야 하며 필요한 경우 이차적으로 다른 나라에 도움을 청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래야만 긴급재난을 당한 나라가 주권을 보장받을 수 있다.둘째, 인도지원의 수혜자가 누구인지 대상을 명확히 설정해야 한다. 수혜자가 긴급재난을 당한 국가의 모든 국민일 수도 있지만 특정 지역 또는 특정 계층에 한정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수혜자를 한정해야만 지원의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다.셋째, 수혜자가 당초 목표대로 인도지원을 받았는지, 지원의 효과가 있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 과정을 통상 모니터링이라고 하는데, 분배의 투명성 확인이라는 목적도 있지만 좀 더 효과적인 지원을 위해서도 필요하다.위의 원칙은 수해와 같은 긴급인도지원뿐만 아니라 복구지원이나 개발지원에도 공통적으로 적용된다. 개발지원의 경우 긴급인도지원에 비해 더욱 엄격한 원칙과 복잡한 절차가 충족되어야 한다. 따라서 이번의 대북 수해복구지원에 있어서도 우리가 지원하는 쌀과 복구지원 물자에 대해서는 수혜를 받는 북한과 사전에 위의 원칙에 대해 협의한 후 지원을 개시하는 것이 순서이다. 이산가족 상봉을 수해복구지원의 반대급부쯤으로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북한이 하필 이 시점에 이산가족 상봉을 먼저 제의했는지 궁금하다. 앞으로 더 큰 규모의 대북 식량지원을 논의할 때는 긴급인도지원 이상으로 원칙에 더욱 충실해야만 국민의 동의를 얻을 수 있으며 국제사회로부터 신뢰를 받을 수 있다.개발지원으로의 연계가 필요하다긴급인도지원은 말 그대로 긴급히 인도적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취하는 조치이다. 그런데 북한의 인도적 상황은 단기간에 개선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금년 여름의 나쁜 기상은 내년의 식량상황을 더욱 어렵게 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은 내년에 더 많은 국제사회의 도움을 필요로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내년을 넘긴다고 해서 식량상황이 개선될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북한이 식량문제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북한 자체의 노력과 함께 국제사회의 개발지원이 동시에 추진되어야 한다. 긴급인도지원과 개발지원이 병행되어야만 식량을 둘러싼 북한 주민의 인도적 상황이 개선될 수 있다. 그런데 개발지원이 추진되려면 단순히 북한 주민의 인도적 상황이 나쁘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북한이 인도적 상황을 적극적으로 개선하려는 모습을 국제사회에 보여줘야 하고 국제사회를 적극적으로 설득해야만 개발지원이 추진될 수 있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책임 있는 행동을 할 때 비로소 국제사회는 북한의 개발지원에 동의하게 될 것이다.남북한 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할 필요는 있지만 이를 지나치게 강조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북한을 지원함에 있어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강조하여 국제규범에 어긋나게 행동하면 우리는 국제사회로부터 따돌림을 받게 될 것이다. 어려운 처지의 국민에게 도움을 주더라도 국격이 높아지기는커녕 비난의 대상이 될 것이 뻔하다. 국제사회가 애써 합의한 원칙과 규범이 무너지면 인류가 지향하는 평화와 번영을 달성하는데 커다란 장애물이 생기기 때문이다. 혹자는 인도적 지원이라 할지라도 정치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지만 인도적 문제와 정치 문제와의 연계성을 줄여나가야만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 이제 얼마 후면 G20 정상회담이 한국에서 개최된다. G20 의장국으로서 우리는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국가로 당당하게 행동해야 되지 않겠는가.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권태진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Emergence of G30 and the Need for a New World Financial Order
    저자
    LEE Sang-Hwan(Hankuk University of Foreign Studies)
    발간호
    2010-24
      In two months time, the G20 Summit will be held in Seoul, heralding the start of a new world financial and economic order in the wake of the global financial crisis. The outline of the policy direction concerning sustainable and balanced growth, which is the priority item on the agenda of the G20 Summit, is expected to be presented at the forthcoming event in Seoul. At the Toronto Summit held last June, the leaders of the G20 countries agreed to discuss new international capital and cash liquidity criteria designed to reinforce bank soundness regulation and new ways of innovating international financial organizations, including the International Monetary Fund (IMF), at the Seoul Summit.  The G20, which was launched as an alternative to the G7 in connection with the need to overcome the global financial crisis, is a de facto supreme council dealing with global economic issues. The launch of the G7 was a result of the first oil shock in the early 1970s and the ensuing instability of the world economy. At that time, a more fundamental cause of such instability was the collapse of the Bretton Woods system and the adoption of a system of fluctuating exchange rates.  From the time of its launch, the G20 was closely connected with financial crisis. The foreign exchange/financial crisis that hit various countries in East Asia in 1997 drove not only Asian countries, including South Korea, but the world economy into confusion. Leading industrialized countries saw that the financial crises in newly emerging countries could cause financial instability in themselves as a result of globalization. Thus, they started looking for ways of cooperation with newly emerging countries to prevent the recurrence of such a disaster. The G20 system has gradually revealed itself, following the first meeting of the financial ministers and central bank presidents of the G20 countries in Berlin in December 1999.  The G20 is a club composed of the twenty leading economies of the world, i.e. the G7 (the U.S., the U.K., France, Germany, Italy, Japan and Canada), the EU, the BRICs (Brazil, Russia, India and China), and eight emerging economies (South Korea, Indonesia, Argentina, Mexico, Turkey, Australia, South Africa, and Saudi Arabia). Today, the G20 accounts for roughly 85% of the world’s GDP and two-third’s of the world’s population, displaying its influence and representativeness. It is particularly significant that, with the launch of the G20 Summit, emerging countries have secured an active position in the search for a new world financial order.  It can be said that the shift to the G20 system was a natural course of action following the global economic crisis and the change in the distribution of economic power between countries. As it has sufficient economic representativeness, the G20 will only be able to consolidate its position as an established system if it can secure effectiveness. The problem is that it is not easy to find the means by which the member countries, which hold diverse positions from the perspective of national interest, can reach a consensus and put it into action.  Some scholars say that the share of emerging countries in the world economy will expand to about 70% in ten years. While the G20 has emerged to replace the G7, there are people voicing the need for the launch of a G30, which would include some of the poor countries of Africa. They say that global economic and financial issues cannot now be settled by either the leading industrialized countries or by a small group of countries, including newly industrialized countries, and that they can only be settled by the proposed G30. The prevailing situation in the 1970s required collaboration between the G7 countries. The G20 was launched according to the dictates of the situation in the 1990s. And what is happening today leads experts to predict the emergence of a G30.  The G20 is composed of five groups of regional leading countries (i.e. industrialized and emerging countries), namely, Group 1 (the U.S., Canada, Saudi Arabia and Australia), Group 2 (Russia, India, Turkey and South Africa), Group 3 (Brazil, Argentina and Mexico), Group 4 (the U.K., France, Germany and Italy) and Group 5 (South Korea, Japan, China and Indonesia). In contrast, the G30 will be a body that represents the whole world, including late-starting industrial countries and poor countries in Africa, Asia and Latin America. It may be said to be a transitional course in the move toward the status of genuine global governance. The central of the world economy has laid in major industrialized countries amid the emphasis on effectiveness. However, the discussion about the launch of a G30 is meaningful in that the global consensus in the true meaning of the word should secure its representativeness based on negotiations and mutual agreements rather than on strength.  How, then, should we view the emergence of the proposed G30? In discussions about the significance of the G20, some watchers express their view that the Anglo-American style market-oriented system will decline and be replaced by the influence of governments in the future world financial/economic order, and thus that it will be difficult to a wide-ranging bubble economy in various regions of the world as in the past. They insist that priority should be placed on the establishment of a system that can control market-related risks rather than on deregulation. Their policy position is that the positive functions of deregulation should be maximized, but market-related risks caused by deregulation should be thoroughly controlled.  In early 2009, the Group of Thirty (G-30), formed in 1978 and composed a body of economists and policy makers from many countries around the world, released the Report on How to Improve the Financial System. The report contains ideas about how to expand governmental regulations on banks and their investment business in an epoch-making way. It points to the need to limit the size of banks and regulate their managers’ remunerations, hedge funds and the concentration of deposits on a small number of banks. Their point is that it is necessary not to allow the failure of each institution to have structural importance by reducing its size, and that the same logic should apply to all financial institutions similar to banks and their products.  Concerning the possibility of preventing a global financial crisis through financial innovation, George Soros said: “ Markets are not only imperfect but bubbles are likely to occur as they do not always succeed in balancing themselves. Financial authorities should check the status of the market and emit a warning sound at an opportune time.” What he says is that it is not easy to regulate the financial market uniformly and that we cannot be confident about the effects of regulations. As such, we should focus on innovations by reinforcing the supervisory system that copes well with the structural characteristics of the financial market rather than by expanding uniform regulations. In this regard, collaboration between countries appears to be all the more important, and we expect a more positive role of the G30, which will take a one step forward from the G20.  In 2008, the G20 Summit was launched as a new world economic council due to a perceived need for close policy collaboration between industrialized countries and emerging countries amid the effort to settle the global financial crisis that started in the U.S.. What enabled emerging countries to take part in the efforts to overcome the financial crisis shoulder to shoulder with industrialized countries was the enhanced status of such countries as South Korea, China and India. Now, they are discussing the launch of a G30 that would include even some poor countries, pointing to the forthcoming launch of genuine global governance.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LEE Sang-hwan(Professor, Hankuk University of Foreign Studies)
  • G30의 부상과 새로운 세계금융질서의 모색
    저자
    이상환(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
    발간호
    2010-24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새로운 금융·경제 질서의 탄생을 알리게 될 G20 서울 정상회의가 한두 달 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국제경제협력을 위한 정상 모임인 G20 회의의 최우선 과제인 지속가능한 균형성장의 정책적 방향이 이번 서울 회의에서 윤곽을 드러낼 전망이다. 지난 6월 토론토 회의에서 G20 정상들은 은행 건전성 규제를 강화하기 위한 자본과 유동성에 대한 새로운 국제기준과, 국제통화기금(IMF)을 비롯한 국제금융기구의 개혁 방안을 서울 회의에서 논의하기로 한 바 있다.  G20은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선진국 모임인 G7의 대안으로 생겨난 것으로 세계경제를 다루는 사실상 최고의 협의체이다. G7의 출범을 촉발한 원인은 1970년대 초의 제1차 석유파동과 이로 인한 국제경제의 불안정이었다. 당시 이러한 불안정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브레튼우즈 체제(Bretton-Woods system)의 붕괴 즉, 변동환율제의 등장이었다.  G20은 출범 당시부터 금융 위기와 밀접한 관련을 지니고 있었다. 1997년 동아시아 외환금융 위기는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각국은 물론 전 세계 경제를 혼란으로 몰고 간 사건이었다. 세계화의 결과 신흥공업국의 금융 위기가 선진국의 금융 불안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한 주요 선진국이 향후 이러한 사태의 재발 방지를 위해 신흥공업국과 협력 체제를 모색하게 된 것이다. 결국 1999년 12월 제1차 G20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총재 회의가 베를린에서 개최된 것을 계기로 G20 체제가 모습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  G20은 주요 선진국 그룹인 G7(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일본, 캐나다) 및 유럽연합(EU) 대표부를 중심으로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4개국과 지역별 주요 신흥공업국인 한국, 인도네시아, 아르헨티나, 멕시코, 터키, 호주, 남아프리카공화국, 사우디아라비아 등 8개국을 포함한 20개 회원국을 가진 명실상부 세계 주요 경제지도국의 모임인 것이다. 오늘날 세계 GDP에서 차지하는 G20의 비율이 약 85%에 달하며, 그 인구도 세계인구의 ⅔를 차지한다는 점에서 G20의 영향력과 대표성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특히 신흥공업국이 새로운 세계금융질서를 모색함에 있어 수동적인 위치에서 벗어나 능동적인 위치를 확보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G7 체제에서 G20 체제로의 변화는 글로벌 경제위기와 국가 간 경제력 분포의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아직 정착된 제도는 아니나 경제적 대표성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그 효과성만 확보할 수 있다면 제도화가 가능한 것이다. 문제는 국익의 견지에서 다양한 입장을 갖고 있는 회원국 간 합의를 이루고 이에 대한 실행을 담보할 수단을 강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10년 뒤에는 세계경제에서 신흥공업국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약 70%로 크게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G7을 대체하는 G20의 부상, 나아가 아프리카 국가 등 일부 빈곤국들을 포함하는 G30 주장이 부각되고 있다. 이제 글로벌 경제금융 문제는 주요 선진국에 의해서 혹은 일부 신흥공업국을 포함하는 소수 국가군에서 의해서도 해결이 불가능하며, 일부 빈곤국까지 아우르는 G30에 의해서만 해결이 가능하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1970년대의 상황이 G7을 필요로 했고, 1990년대의 상황이 G20의 동인이 되었다면, 오늘날의 흐름은 G30의 도래를 예견하게 하고 있다.  기존 G20의 구성이 제1그룹(미국·캐나다·사우디아라비아·오스트레일리아), 제2그룹(러시아·인도·터키·남아프리카공화국), 제3그룹(브라질·아르헨티나·멕시코), 제4그룹(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 그리고 제5그룹(한국·일본·중국·인도네시아)으로 지역별 지도국(선진국+신흥공업국) 구도라면, 새로이 논의되고 있는 G30은 여기에 아프리카, 아시아, 중남미의 약소국(후발공업국+빈곤국)을 포함하는 사실상 전 세계적인 대표성을 확보하는 협의체가 되는 것이다. 이는 진정한 글로벌 거버넌스로 가는 과도기적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세계경제를 이끌어가는 중심은 그 효과성을 강조한 나머지 주요 선진국에 머물러왔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전세계적 합의는 힘이 아닌 협상과 합의에 기초한 대표성이 확보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G30 논의는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G30의 부상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G20의 의미를 말함에 있어 향후 세계 금융경제 질서는 영미식 시장중심체제가 쇠퇴하고 정부의 영향력이 강화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있다. 이로 인해 과거와 같은 지역별 광범위한 버블경제가 생성되기 힘들다고 한다. 이는 규제완화보다는 시장위험을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먼저라는 주장에 근거한다. 즉 규제완화의 순기능을 극대화하면서 이로 인한 시장위험은 철저하게 관리하고자 하는 정책적 입장인 것이다.  1978년에 결성된 세계 각국의 경제학자들과 정책입안자들 간의 기구인 Group of Thirty(G-30)가 2009년 초 발표한 ‘금융시스템 개선 보고서’는 은행 및 투자업무와 관련한 정부규제를 전폭적으로 늘리는 방안을 담고 있다. 이 보고서는 은행의 규모 제한, 경영진에 대한 보수 통제, 헤지펀드 규제, 소수 은행의 예금 집중 규제 등을 언급하고 있다. 각 금융기관의 규모를 작게 유지해 각 기관의 실패가 구조적 중요성을 갖지 않도록 하는 것이 그 취지인 것이다. 이는 은행과 유사한 형태를 지닌 모든 금융기관과 상품에 대한 규제 강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조지 소로스는 금융개혁을 통해 글로벌 금융위기를 막을 수 있을지 여부에 대해 “시장은 완벽하지 않을 뿐 아니라 스스로 항상 균형을 찾아가는 게 아니기 때문에 늘 거품이 발생하게 마련”이라며 “감독 당국이 시장 상황을 면밀히 파악해 적절한 시점에 경고음을 보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즉 금융시장을 획일적으로 규제하는 것도 쉽지 않고 규제의 효과도 장담하기 어려우므로, 앞으로 획일적인 규제 확대보다는 금융시장의 구조적 특성에 상응하는 감독체계 강화를 중심으로 한 개혁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국가 간 협력이 더욱 요구되며 G20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G30로의 확대가 기대되는 것이다.  미국발 금융위기 해결과정에서 선진국과 신흥공업국 간의 긴밀한 정책공조의 필요성에 따라 2008년 새로운 국제경제 협의체인 G20 정상회의가 태동하였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선진국과 신흥산업국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참여하게 된 이유는 한국, 중국, 인도 등 신흥공업국의 위상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제 국제사회의 일부 빈곤국을 포함하는 G30이 논의되고 있다. 진정한 글로벌 거버넌스의 출범을 눈앞에 둔 것이다.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이상환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
  • 자연재해와 국제협력
    저자
    하규만(인제대학원대학교 외래교수)
    발간호
    2010-23
      최근에 발생한 아이티 지진, 파키스탄 풍수해 등에서 알 수 있듯이 대규모 자연재해는 피해가 거대한 지역에 미치기 때문에 재해관리를 위해서 국제협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예를 들어서 태풍이 특정국을 강타하는 경우에 다수의 주변국에도 비슷한 피해가 발생하기 때문에 자연재해의 발생 이전, 발생 기간 중, 그리고 발생 이후에도 국제협력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자연재해 관리는 민간단체에서 시도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 성격상 공공재이기 때문에 국가기관에서 총괄적인 책임을 맡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행정안전부 산하의 소방방재청이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소방방재청이 2004년 6월에 설립될 즈음에는 국제협력 업무가 매우 미비하였다. 어느 조직이든 설립 초창기에는 국제협력 보다는 국내적 역량강화에 집중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6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는 소방방재청이 주축이 되어 외교통상부가 협조하는 가운데 자연재해와 관련한 국제적 교류를 활발히 하고 있다.   예를 들면 최근에 소방방재청은 중국 쓰촨성 지진복구에 원조팀을 파견하였고, ‘제4차 유엔 재해경감 아시아 각료회의’를 국내에 유치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자연재해와 관련하여 우리정부가 국제사회에 기부하는 액수도, 우리의 경제위상에 비해 아직도 미비하다는 국제사회의 평가도 있지만 그래도 최근에는 많은 증가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같은 활동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자연재해와 국제협력에 관련하여 우리 정부는, 특히 소방방재청은 다수의 문제점을 보이고 있다. 그 중에서 거시적 차원의 문제를 다섯 가지를 소개하고 해결책을 제시해 보겠다.  첫째, 자연재해와 관련하여 우리나라는 주로 아시아 국가들과 협력을 시도하고 있다. 예를 들어서 소방방재청은 중국, 몽고, 일본, 동남아시아에 위치한 국가들과 국제협력을 서두르고 있다. 최근에 자연재해의 피해가 직접 발생하였던 중국과 몽고의 경우에 소방방재청은 지원팀을 파견하였고 현장에서 재난복구를 시도하였다. 중국의 경우에는 지진 발생 후에 구조구급팀을 파견하였고, 몽고의 경우에는 황사현상을 감소시키는 노력을 공동으로 기울였다. 자연재해가 직접적으로 발생하지 않는 이웃국가들과도 평상시에 합동세미나, 공동회의, 재난관리자 훈련, 재난관리 관련자 초청 등을 통하여 국제협력을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경우에 이웃한 국가들과는 국제협력상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고 있다. 국제협력에 동참한 이웃한 국가들은 우리나라의 원조에 대하여 감사를 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멀리 위치한 국가들과의 국제협력을 소홀히 여기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서 최근에 아이티와 칠레에서 치명적인 지진피해가 발생하였는데 기부액을 포함한 우리의 국제협력이 미비한 것으로 지적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중국의 경우에는 아이티 공항에 비행기가 착륙하기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대규모의 원조팀을 파견하면서 국제협력을 시도하였다. 당연히 아이티와 특히 미국의 언론에서 중국의 원조를 칭송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관점에서 앞으로 멀리 위치한 국가들에게도 국제협력을 시도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장기적 관점에서 재난관리 측면뿐만 아니리 국가차원의 실익 확장에 기초가 되어서 긍정적 파급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둘째, 우리나라는 자연재해와 관련한 국제협력을 시도하는 경우에 주로 정부기관 및 정부 인사들이 주축이 되어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예를 들어 소방방재청이 자연재해에 관련한 국제협력을 하는 경우를 분석해 보면 거의가 공무원 위주로 활동이 전개되고 있다. 간헐적으로 민간인이 동반되는 경우가 있지만 이러한 경우는 민간인이 개인적으로 그리고 자기조직의 재정지원으로 공무원들과 형식적으로만 동반하여 국제협력을 하는 경우이다.  민간기관이나 민간인들은 업무수행능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자연재해와 관련된 국제협력을 시도하는데 매우 큰 장애를 가지고 있다. 특히 국제협력은 경비가 비교적 많이 들기 때문에 작은 규모의 민간단체가 시도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 중에서도 인류애에 기초하여 국제협력을 하고자 하는 열망을 가진 단체와 개인들이 많이 존재하고 있다.  특히 우리의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불을 상회하는 요즘에는 이러한 국제협력 희망자들이 더욱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사실에 기초하여 우리 정부는 국제협력을 시도하는 경우에 정부기관뿐만 아니라 민간단체와 함께 국제협력을 시도해야 할 것이다. 특히 한국 적십자사나 기타 중요한 NGO의 경우에는 전 세계적으로 거대한 조직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민간단체들과 함께 국제협력을 시도하는 것이 정부의 목적달성에 보다 용이할 것이다.  셋째, 우리나라는 국제협력을 시도하는 경우에 현직에 있는 인적자원만 활용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서 주변국가 및 기타지역의 국가들과 국제협력을 시도하는 경우에 거의 모든 인원들이 현직에 종사하는 사람들로 구성이 되었다. 인적자원 활용의 폭이 매우 좁은 경우이다.  이러한 경우에 현직에서 물러났지만 국제적으로 중량감이 높은 인사를 동반하여 국제협력을 시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왜냐하면 퇴직인사들도 국제사회에 공헌하고 싶어 하는 열망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국제사회에서 여전히 영향력을 보유하고 있는 인사는 우리 나라의의 국제협력 효과를 배가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전임 대통령, 전임 국무총리, 전임 국회의장, 전임 대법원장 등을 활용하는 국제협력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현직에서 물러났지만 전직 정치인 및 고위공무원으로서 국제사회에서 여전히 잠재적인 효과를 지니고 있다. 미국의 경우에 국제적으로 재난이 발생하였을 경우에 전임 대통령을 활용하는 경우가 매우 빈번하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소방방재청은 급박한 자연재해가 발생하는 경우에 특히 전임 대통령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넷째, 소방방재청의 경우 형식적으로나 실질적으로 이웃한 국가들과 국제협력은 서두르고 있으나 북한과의 국제협력은 거의 없는 것이 현실정이다. 북한과의 협력은 통일부가 총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자연재해는 남한에서 발생하는 경우에 북한에서도 발생하여 큰 피해를 야기 시키고 있다. 하지만 북한과의 국제협력은 거의 없는 경우이다.  여러 가지 정치적 이유로 인하여 자연재해에 관하여 북한과의 국제협력이 불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정부는, 특히 소방방재청은 미래지향적인 차원에서 북한의 자연재해에 관하여 최소한 관련연구를 시도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연구결과는 통일이 되는 경우를 대비해서라도 필요한 지식자원이 될 것이다. 북한 자연재해 연구를 전담하는 팀을 새롭게 두기 보다는 기존인력과 조직으로 하여금 지금 하고 있는 연구에서 북한과의 연계성도 고려하는 연구를 하게끔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국제협력의 차원에서 미래지향적인 효과를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다섯째, 우리나라가 외국에서 자연재해에 관련된 원조를 시도하는 경우에 언론매체가 이것을 보도하고 있지만 거의가 국내의 언론매체이다. 이는 국민의 세금으로 시도되는 국제협력이 안방잔치로만 끝나는 경우이다. 자연재해와 관련하여 국제협력을 시도하는 목적은 인류애에 기초하여 인명과 재산상의 손실을 감소시키려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국제협력을 통하여 우리나라의 위상을 강화하려는 의도도 분명하게 존재하고 있다. 따라서 국내홍보용으로만 시도되는 국제협력은 재고할 필요가 한다.  우리 정부는 자연재해가 발생하는 지역에서 국제협력을 시도하면서 국가를 홍보하는 전략을 대폭적으로 강화해야만 할 것이다. 아이티에 지진이 발생하였던 경우에 중국은 원조팀이 아이티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대형 오성기를 선두에서 들고 나가면서 아이티 원조의 구호를 외친 것으로 외신이 보도하고 있다. 또한 아이티 원조의 가장 큰 축을 담당한 미국의 경우에는 모든 주요방송사들이 아이티로 옮겨와 뉴스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미국정부의 원조노력을 전하기도 하였다. 현재에도 파키스탄에 대규모 홍수복구를 시도하면서 미국홍보를 노리고 있다.  우리 정부도 중국과 미국의 이러한 전략을 분석하여 외국에서 자연재해가 발생하는 경우에 보다 적극적으로 우리의 노력을 국제적으로 알리려는 전략을 강화해야만 할 것이다. 이러한 전략은 소방방재청의 노력은 물론이고 외교통상부, 외국 언론사와의 사전협의에 기초해야만 가능할 것이다.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하규만인제대학원대학교 외래교수
  • 유로존의 경제위기와 동아시아 통화협력의 미래
    저자
    채희율(경기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발간호
    2010-22
    1. 유로존 경제위기의 전개  2010년에 들어와 국제금융시장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에서 벗어나 안정을 찾아가는 듯 했으나 그리스와 포르투갈 등 일부 남유럽 국가들의 재정위기로 인해 다시 크게 출렁거렸다. 이들의 경제규모가 그다지 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국제금융시장이 동요한 것은 이 국가들에 대한 유럽 중심국 금융기관의 채권 규모가 작지 않다는 사실 외에도 주요 통화 대비 유로화 가치의 급락에서 드러나듯이 유로화와 유로존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강한 의구심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유로존 정상들은 그리스에 대한 구제금융안을 발표하고 유로존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을 천명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하였다. 물론 유로존 차원의 공동대책 마련이 순조롭게만 진전된 것은 아니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그리스 지원을 유로존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독일, 스웨덴, 핀란드 등은 IMF의 참여를 전제로 지원할 것을 주장하였다. 결국 유로지역이 지원금의 3분의 2를 부담하고 IMF가 나머지 3분의 1을 지원하는 방식이 채택됨으로써 독일 등의 주장이 관철된 것으로 결론이 났다.  유로존의 지원 노력에 힘입어 유로존 경제는 최근 다소 안정세를 찾은 듯하고 유로화 가치도 반등하였으나 일부 국가들의 국가위험은 여전히 높으며 현재 잠복해 있는 위기 상황이 언제든지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독일, 프랑스 등 유로존의 중심 국가에서 경기 회복이 전망되고 있는 것과는 달리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 등 남유럽 국가들의 경기 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어 이들 국가의 경제위기가 구조적으로 고착화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우려된다.   2. 유로존 경제위기의 원인  이번 유로존 경제위기의 중요한 원인으로는 남유럽 국가들의 방만한 재정 운용과 과도한 복지 지출 등 대내적 요인 외에도 단일통화권 형성과정의 태생적 한계도 지적되고 있다. 지난 60년간 지속되어 온 유럽경제통합의 심화와 확대 과정에는 경제적 논리와 정치적 고려가 공히 중요한 추동력으로 작용해 왔다. 1951년 유럽석탄철강공동체의 탄생은 경제적 결속체가 지역 내 평화 유지에 중요한 수단으로 작용하리라는 기대가 작용한 결과였으며, 그 이후 유럽경제공동체와 유럽통화제도의 출범, 그리고 남북 유럽국가 및 중동부 유럽 국가로의 통합 외연의 확대 과정에서 모두 정치적 결속의 강화가 중요한 동인으로 작용하였다. 유로화의 출범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단일통화권의 형성은 역내 교역과 인적 교류를 활성화시키고 통화의 국제적 사용을 촉진하는 등 장점이 있으나 회원국 차원의 통화정책 및 환율정책 수단이 없어짐에 따라 일국 차원의 경기침체나 경상수지 등 경제적 불균형을 시정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문제점이 있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점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경기 사이클이 유사하고, 산업경쟁력에 큰 격차가 없으며, 건전한 거시경제 기초여건을 지닌 국가 간에 단일통화가 채택되어야 한다. 유럽에서도 이러한 점을 감안하여 마스트리히트 조약에서 상당히 엄격한 경제수렴조건을 제시하고 그 조건을 충족하는 국가들만 유로존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하였었다. 그러나 실제 그러한 조건을 충족하는 국가가 일부 국가에 머무르자 정치적 결속이 보다 중요하다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유로존 가입을 원했던 대부분 국가가 1999년 유럽통화동맹의 출범에 동참할 수 있었다. 그리스의 경우 워낙 재정적자와 국가채무가 기준에 미달하여 가입이 유보되었으나 그리스가 통계를 조작한 데다가 정치적 고려가 작용하여 2001년에 유로존에 가입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이 경제적 측면에서 부적절한 파트너들이 정치적 고려에 의해 다수 통화통합에 참여하게 된 것이 유로존의 태생적 한계였다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산업경쟁력이 취약한 남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역내 경상수지 적자가 심화되었다. 전세계적 호황기에는 이들 국가들도 높은 성장세를 유지하면서 구조적 문제점이 부각되지 않았으나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를 맞아 유일한 정책수단인 재정정책에 의존하면서 재정수지가 악화되고 대외채무가 증가하는 등 재정위기가 표면화되었다.    3. 동아시아 통화협력에 대한 시사점  동아시아 지역은 현재 통화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통화가 없으며, 미달러화가 표시, 결제, 가치저장 등 국제통화의 모든 기능에서 절대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 경제의 위상이 하루가 다르게 커지면서 향후 20 내지 30년 후에는 중국 위안화가 지역적 기축통화로 부상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물론 당장은 중국 경제의 불투명성과 폐쇄성, 중국 자본시장의 미발달 등으로 인해 위안화의 국제통화로서의 부상 가능성이 낮은 실정이지만 향후 중국이 자본시장을 개방하고 투명한 경제정책체계를 확립한다면 중국경제의 급속한 성장과 역내 교역의 높은 대중국 의존도에 힘입어 동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통화로 부상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최근 중국이 자국 통화의 국제화를 위한 조치들을 추진하고 있음을 감안할 때 중국 위안화의 헤게모니 획득을 아주 먼 장래의 일로만 치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만약 위안화가 지역 기축통화가 된다면 지역 내 국가들의 중국 경제에 대한 의존도가 실물 뿐 아니라 통화·금융부문으로 확대되면서 더욱 심화될 것이다. 이는 정치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개별국이 통화주권을 상실하게 되며, 중국경제가 불안할 때 받게 되는 영향이 증폭된다는 문제가 있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 보다는 역내 국가들간 통화협력을 통해 궁극적으로 제3의 단일통화를 창출하는 방안이 바람직할 것이다. 중국도 현재는 미국으로부터의 환율절상 압력에 직면해 있는 만큼 역내 통화협력에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점에서 중국을 통화협력의 장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여지가 존재한다.  그러나 문제는 어떠한 국가들이 통화협력의 한 배에 탈 수 있는가라는 문제가 제기된다. 유럽의 사례에서 보았듯이 정치적인 고려가 지나치게 강하게 작용해 통화협력의 대상을 예를 들어 ASEAN+3 국가 전체로 확대한다면 궁극적으로 그렇게 형성될 통화블럭은 취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점을 감안할 때 향후 동아시아의 통화협력은 경제발전단계가 유사하고 투명한 정책과 통계시스템을 지닌 국가들을 우선 고려 대상으로 해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그러나 경제적 요인들만 고려할 때 동아시아 국가들 간 경기와 환율이 상당히 비대칭적으로 움직이고 산업경쟁력이 상이한 상황에서 통화협력의 대상국은 매우 한정될 수밖에 없다. 더욱이 동아시아 통화협력의 주된 목적이 중국의 장래 헤게모니에 대한 견제임을 감안할 때 소수국가만의 통화협력, 특히 중국을 제외한 협력은 그러한 목적 달성에 부합하지 않는 측면이 있다. 따라서 향후의 동아시아 통화협력은 정치적 측면과 경제적 측면의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면서 추진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번 유럽경제의 위기가 통화통합의 부정적인 측면만을 부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리스나 포르투갈은 재정위기를 겪었지만 외화유동성 위기는 겪지 않았다. 그 이유는 자국통화가 유로화라는 국제통화였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은 재정 등 거시경제 기초여건이 우수했음에도 불구하고 외화유동성 문제에 직면했다. 만약 동아시아 단일통화가 출범해서 국제통화로 자리 잡게 된다면 건실한 경제운용을 하면서 산업경쟁력이 있는 한국과 같은 나라는 지금보다도 더 안정적인 위기대응태세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채희율경기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 North Korea Policy after the UNSC Presidential Statement on the Sinking of the Cheonan
    저자
    RHEE Bong-Jo(Former Vice Unification Minister)
    발간호
    2010-18
      On July 9, 2010, the UN Security Council adopted a presidential statement on the sinking of the South Korean corvette, the Cheonan, three and a half months after the incident (which occurred in March),and 35 days after the referral of the case to the UNSC. The UN’s action concerning the incident was concluded, although the permanent member countries of the UNSC were divided in their views about the incident, and the contents of the statement remain controversial. Furthermore, the incident was not settled with the issuance of the UNSC statement.  The tragic incident can be traced back to the recent heightening of tension and confrontation between the two Koreas that aggravated the security situation particularly along the Northern Limit Line (NLL). The incident is ultimately a case that should be settled between the two Koreas. From the beginning, it was difficult to expect the UNSC to take clear-cut and binding measures concerning the incident. As it happens, the direction of bilateral relations between the two Koreas in the aftermath of the incident will be delineated by how the South intends to settle the incident. In the statement made to the South Koreans on May 24, South Korean President Lee Myung-bak asked the North to apologize for the attack and to punish those responsible. However, it is doubtful whether the North will accommodate such a request, as the North has asserted that the incident was a “sheer fabrication” concocted by the South. Such doubt is strengthened further by the uneven attitude in favor of the North shown by China and Russia, and by the tone of the statement contained in the UNSC President’s statement.  Essentially, the incident is a matter that should be settled between the two Koreas, and how they settle it will remain a matter of crucial interest. However, it is unrealistic to deal with the incident within the current inter-Korea dialogue framework, as mutual trust has been exhausted due to the seriousness of the incident. It appears that the South Korean government did not intend to handle the case as an inter-Korean issue at the beginning, perhaps based on such a judgment. The referral of the matter to the UNSC was the expected course of action, but the countries concerned started showing different attitudes with the passing of time, according to their national interests. The various countries of Northeast Asia have different views of the incident, depending on their national interests. Under such circumstances, inter-Korea relations will inevitably go through a long, dark tunnel. Granted, it will not be wise to sit down with arms folded. It is necessary to do something.  The UNSC statement issued on July 9 calls for full adherence to the Korean Armistice Agreement and encourages the settlement of outstanding issues on the Korean peninsula by peaceful means, via a resumption of direct dialogue and negotiation through the appropriate channels as soon as possible, with a view to avoiding conflicts and averting escalation.” The resumption of the Six-Party Talks concerning the North’s nuclear program is another matter that should not be ignored indefinitely. It is feared that the North’s nuclear capability will be further strengthened, with no substantial control imposed with the passage of time. Reactivation of the process concerning the Six-Party Talks may provide an appropriate opportunity to deal with the two pending issues. A direction for the settlement of the sinking of the Cheonan issue was proposed in the UNSC statement after a process of discussion between the relevant countries the Six-Party Talks may provide an opportunity to discuss how to adhere to the Armistice Agreement and prevent clashes between the two Koreas in accordance with the UNSC recommendation, in addition to efforts made to settle the issue of the North’s nuclear program. If some progress is made at the Six-Party Talks, the two Koreas should be able to handle the Cheonan incident as the directly related parties.  The North may feel relieved by the UNSC statement, which did not pinpoint it as the aggressor in the Cheonan incident or ask for additional sanctions against the North. The lenient nature of the statement may give the North a good excuse to re-join the Six-Party Talks. Following the UNSC statement, the North’s Foreign Ministry spokesman said, “[We] will make consistent efforts to conclude a peace treaty and consider denuclearization on the basis of six-party talks conducted on an equal footing,” and the North is taking a positive attitude concerning dialogue with the UN Command at Panmunjom. It should be possible to find a way out of the current deadlocked situation without much difficulty. The U.S. and China will be able to operate the pre-Cheonan system of collaboration although the North may set other preconditions for its re-joining the Six-Party Talks. It is possible to predict that the North will take a positive stance in its re-joining the Six-Party Talks based on the following premises.   First, the country feels that the survival of the regime has become a more pressing issue than it was at the time of the Joint Statement of the fourth round of the Six-Party Talks in Beijing, held on September 19, 2005. Its demand for the withdrawal of the worldwide sanctions imposed against it and the discussions about a peace treaty conducted on a continual basis since earlier this year may ultimately be viewed as an attempt to find an excuse to return to the Six-Party Talks. This is something that North Korea had said it would never return to and there may be a request for the international community to provide economic support and a guarantee for the safety of the regime.   Second, for the forthcoming rounds of the Six-Party Talks, China will have to take on the South Korean government’s former role of coordinator or promoter, and the North should consider this China’s position. Third, the North will try to mitigate the South’s offensive concerning the Cheonan incident by internationalizing the Korean Peninsula issue, while trying to further develop its relations with China and to improve its relations with the U.S. As a result, the Cheonan incident may deepen the Kim Jung-il regime’s dependence on China. It may also end up putting a limit on the South’s influence on the North by invalidating the Lee Myung-bak Administration’s efforts to cause a fundamental change in the North. This is why the South should consider the need for a resumption of the Six-Party Talks before it is too late.  In the period following the UNSC’s July 9 statement, any desirable course of action taken by the South concerning the North should include the establishment of a comprehensive and multi-faceted policy, while paying greater attention to the need for effective management of the situation. The South Korean government needs to take a cool-headed stance, appraising changes in the international situation in the wake of the Cheonan incident, and review its policy toward the North. It should remember that unless it is in the driver’s seat and equipped with appropriate strategies, the U.S. and China will take the initiative. The South is in a more advantageous position than the North within the international community and the South should lead the way in finding a means to overcome the currently stalled situation. Squeezing the North alone cannot solve the problems involving the country. The series of punitive measures against the North announced by the South on May 24 can hardly bring about the desired results, with most of the leverage held by the South against the North exhausted. The South committed the folly of disclosing all the measures it could take against the North at the same time. The South’s referral of the Cheonan case to the UNSC while laying the blame on the North met a series of insurmountable stumbling blocks. The contents of the UNSC statement fell some way short of what the South had expected in line with the punitive measures it took on May 24.  Given the previously mentioned circumstances, the South needs to consider an exit strategy based on “direct dialogue and negotiation through the appropriate channels” as recommended by the UNSC statement, with the aim of reestablishing its policy on the North, although it is not an alternative that the South can take immediately. To that end, the South should take the following steps: First, it should consider a policy shift, i.e. making an approach to the North Korean issue within a grander framework and through a perspective focusing on Northeast Asia rather than on the North alone. Second, it should actively take part in the Six-Party Talks, suggest alternatives intended to make it a more productive process of dialogue, and fine-tune the policies adopted with the aim of using the progress made in the Six-Party Talks as leverage for the normalization of relations with the North. Third, it should reinforce its collaboration with China so that China can exert greater influence on the North with regard to its taking more positive steps toward the goal of denuclearizing the Korean Peninsula, along with efforts to ease the level of distrust formed between the two countries due to the Cheonan incident and to secure progress in the Six-Party Talks. Fourth, it should strive to ease tensions and prevent clashes along the NLL through direct dialogue with the North, using the momentum made in the Six-Party Talks.   The above recommendations may not be easy to put into practice however, progress made in these efforts will contribute to the South’s successful hosting of the G20 Summit in November 2010. The South needs to consider diverse alternatives in a spirit of open-mindedness, while bearing in mind that there are many variables in its relationship with the North despite the obvious difficulties.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RHEE Bong-joFormer Vice Unification Minister
  • 천안함 사태이후 한러관계의 전개와 핵심과제
    저자
    박종수(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그국립대학교)
    발간호
    2010-21
      지난 3월 26일 발생한 천안함 침몰사건은 전 세계의 이목을 한반도로 집중시켰다. 주변국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지정학적 특성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미국, 영국, 호주, 스웨덴, 인도네시아 등 6개국 국제합동조사단을 구성하여 객관적인 원인규명에 주력했다. 조사단에는 러시아와 중국이 포함되지 않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5월 24일 담화문 발표를 통해 천안함이 북한의 어뢰공격에 의해 침몰한 것임을 밝혔다. 국제사회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한 정부차원의 외교활동과 함께 러시아 대통령에게도 전화를 걸어 사건 전모를 직접 설명하고 조사단 파견을 요청했다. 이에 러시아 대표단은 6월 1일부터 약 1주일 간 별도조사 후 귀환했다. 우리 정부는 유엔 안보리 이사회에 대북 제재안 상정을 추진하면서 러시아로부터 긍정적 답변을 기대했다. 안보리는 천안함 공격을 규탄하는 의장성명을 채택했으나 러시아와 중국의 반대로 북한을 직접적으로 비난하는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다. 이러한 러시아 정부의 태도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이 적지 않게 실망했다는 후문이다. 우선 한러 수교 전부터 시베리아 벌판을 누비면서 대러 진출의 의지를 불태우며 애증을 쌓아왔다.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수차례 정상회담을 통해 양국 간 전략적 우의를 다져왔다.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러시아를 비난만 할 것인가. 국가 간 관계가 흔히 그렇듯이 갈등이 있으면 화해도 있는 법이다. 요체는 갈등의 원인을 보다 냉철하고 객관적이며 지극히 현실적으로 분석하는 것이다.  첫째로, 수교 후 20년간 협력관계를 지속하면서 흔히 간과해온 매우 초보단계의 고려사항이 있다. 러시아인들의 신중한 기질과 여유 있는 국민성이다. 구소련 말기에 빵 한 조각을 사기 위해 영하 20도의 추위에서도 장시간 줄을 서서 기다리는 국민들이다. 어쩌면 지정학적 특수성과 수난의 역사를 경험하는 과정에서 체득한 습관인지도 모른다. 반면 한국인들은 조급하고 역동적이다. 우리 정부는 대북 제재안을 유엔 안보리 이사회에 회부하는 로드맵을 설정해 놓고 러시아로부터 신속한 조사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단적으로 그러한 기대는 과욕이었다.  둘째로, 천안함 사태를 조율하는 절차상의 문제와 외교적 테크닉이다. 국제합동조사단에 러시아와 중국을 누락시킬 수밖에 없었다면, 그 불가피성을 사전에 납득시키는 외교적 노력이 필요했다. 또한 정상간 핫라인을 통해 직접 설명해 주는 배려까지도 좋았다. 그러나 국내언론들은 청와대 발표를 근거로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천안함 사태와 관련해 우리 정부와 긴밀하게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고 보도했다. 즉 러시아 대통령이 우리 대통령에게 저자세를 보였다는 뉘앙스로도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5월 25일자 크렘린 홈페이지에는 ‘разговор состоялся по инициативе южнокорейской стороны'(통화가 한국 측의 주도로 이루어졌다)라고 실려 있다. 대수롭지 않은 일로 간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더 나아가 우리 정부가 조사단 파견을 요청했고 러시아는 이에 응해 온 것이다. 물론 러시아는 천안함 사태를 비롯한 한반도 안보현안에 뒤늦게나마 초대받아 관여할 수 있는 실익을 얻었다. 조사결과를 빨리 통보해 달라는 우리 측의 조급성은 오히려 ‘천안함 사건 주범=북한’을 입증하는 본질을 퇴색시키고 북한을 자극하고 싶지 않은 러시아 측에게 구실을 주었다고나 할까. 유감스럽게도 신중하지 못한 외교적 접근방식으로 인해 내용마저 그르치는 상황을 연출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셋째로, 대(對)테러 문제는 러시아의 아픔 및 자존심과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 소련 붕괴이후 현재까지 수차례에 걸쳐 체첸 반군의 테러에 시달려 왔다.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모스크바 중심부에서 대규모 지하철 테러사건이 발생했다. 푸틴은 2000년 대통령 취임사에서 ’21세기는 테러와의 전쟁’임을 예고하며 국제사회의 공동대처를 호소했다. KGB 후신인 연방보안부(FSB)는 2002년부터 전 세계 정보기관을 초청하여 대규모 대(對)테러 국제회의를 매년 개최하고 있다.  희생도 큰 만큼 노하우도 적지 않다. 노하우가 많기에 자존심도 강하다. ‘북한 테러에 의한 천안함 침몰’에 쉽게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는 러시아 측의 신중함과 부담감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금번 천안함 사태는 한러 수교 20년의 현주소와 양국관계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로 볼 수 있다. 지나친 대미 동맹을 고집함으로써 20년간 맺어온 또 다른 주변 우방국들과의 관계에 흠집을 남겼다. 다니엘 벨이 ‘이데올로기의 종언’을 고한지도 수십 년이 지났다. 사회주의권의 연쇄 붕괴 및 1990년 한러 수교, 1992년 한중 수교와 함께 냉전은 오래전에 끝났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냉전적 사고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한반도에는 신 냉전의 도래를 스스로 자초하는 측면도 적지 않다. 21세기 디지털 시대에서 아날로그 방식으로는 생존할 수 없다. 강국으로 둘러싸인 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성에 비추어 힘의 균형을 상실하는 순간에 대한민국호는 천안함의 운명을 반복할지도 모른다. 구한말 서세동점의 소용돌이와 열강의 각축전 속에서 얻은 소중한 교훈을 결코 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다면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악화된 한러 관계를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 임시방편의 임기응변식 대처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 근본적 치유가 요망된다.   첫째로, 인적 자원을 확보해야 한다. 수교 후 20년이 지났지만 러시아 관련 인력이 절대 부족하다. 동일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만 해도 냉전당시 대만의 존재가 중국 전문가를 필요로 하는 요인이 되었고 한국어를 구사하는 조선족도 많았다. 그러나 러시아의 경우는 수교 전까지 전문가다운 전문가도 별무했고 수교 후에도 소련 붕괴에 따른 러시아 무시 경향이 전문 인력 배출에 부정적으로 작용했다. 게다가 한국어를 이해하는 고려인도 극소수에 불과했다. 외교는 대통령을 비롯한 소수 고위관료의 전유물이 아니다. 하부구조가 허약한 상태에서 최고 통치권자의 의지가 제대로 실현될 리 만무하다. 청와대를 비롯한 외교안보 라인에 러시아 전문가가 몇 명이나 포진되어 있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젠 국가 차원에서도 러시아 전문가에 대한 배려 및 관리에 소홀해서는 안 될 것이다. 시장경제 원리에만 맡겨 두기에는 국가의 백년대계가 위태롭다.  둘째로, 내재적 관점에서의 접근이다. 우리 입장에서만 더이상 러시아를 바라보지 말아야 한다. 구한말 당시의 아관파천처럼 좌충우돌의 역사적 시행착오를 반복해서는 안 될 것이다. 남북분단의 비극이 주변강국에 의해 강요당했듯이 한반도의 운명은 빈번히 외부의 입김에 좌우되어 왔다. 바로 한반도가 국제사회에서 차지하는 지정학적 이유 때문이다. 더욱이 레드콤플렉스의 구태로 인해 러시아 카드를 사장시키거나 악화시키지 말아야 한다. 천안함 사태의 안보리 회부를 앞두고 행여 우리 정부가 러시아의 조연을 기대했다면 안일한 판단이었다. 러시아는 지난세기말의 과도기적 혼란을 극복하고 21세기 진입과 함께 강국으로서의 국제적 위상을 꾸준히 회복해 가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다. 러시아 당국은 천안함 사태관련 국제사회의 제재가 북한 지도부에 통하지 않을 것이며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셋째로, 이젠 출구전략을 세워야 할 때다. 국제법상 영원한 미제로 남을 수도 있는 천안함 사태로 인해 한러 관계가 더 이상 악화 내지 답보상태에 놓여서는 안 된다. 1964년 8월 북베트남 통킹만에서 침몰했던 미국 해군함정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베트콩 어뢰정 공격을 받았다는 미국 측의 주장은 베트남전쟁의 구실이 되었고 수년간 지속된 소모전은 결국 미국의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2000년 8월 바렌츠해에서  침몰한 러시아 핵잠수함 쿠르스크호 사건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갓 출범한 푸틴 정권이 최대의 정치적 위기를 맞았으나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았다.  러시아 측의 조사결과가 우리 정부의 입장과 상반된다고 해서 언제까지 갑론을박할 수 없다. 지난 4월 2일 볼쇼이극장에서 개최된 수교 20주년 개막식은 천안함 사건으로 인해 축제분위기를 연출할 수 없었다. 그 후 7개월간 지속된 각종 수교기념 행사도  양국 국민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수교 20주년 폐막행사와 <한러 대화> 포럼이 오는 11월초 G-20정상회의 직전에 마지막 행사로 예정되어 있다. 특히 양국 정상의 참석 하에 출범할 <한러 대화> 포럼은 양국 간 신뢰 회복 및 관계 발전을 위한 모멘텀으로 활용할 수 있다. 천안함 사태로 인한 불협화음을 봉합하는 출구전략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박종수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그국립대학교
  • South Korea-Russia Relations: A Call for New Thinking
    저자
    KIM Doug-Joong(Kyonggi University)
    발간호
    2010-19
     On September 30th 1990 in New York, South Korea and the Soviet agreed to establish diplomatic relations. It was the opening of a new page in the history of South Korea. At the end of the 1980s, the world was going through epochal changes. It saw the end of the Cold War, the collapse of the Berlin Wall (1989), and the unification of Germany (1990).  The situation on the Korean Peninsula was also changing rapidly. The normalization of the relations between South Korea and the Soviet was decisive in the following events: the entry of the two Koreas into the UN (1991), the signing of the Inter-Korea Basic Agreement (1991) and the Joint Declaration of the Denuclearization of the Korean Peninsula (1991), and the establishment of diplomatic relations between South Korea and China (1992).  Historically, we can see how significant the influence of the Soviet was on the Korean Peninsula through its occupation of the northern part of the peninsula in 1945, following Japan’s surrender in the Pacific War, the establishment of the North Korean regime in 1948, and the start of the Korean War by the North in 1950. All of these lead us to expect that Russia will continue to play an important role in the efforts for the resolution of the problems concerning North Korea and the reunification of the two Koreas.  This year marks the 60th anniversary of the outbreak of the Korean War, which was started by the North’s attack with the support of the Soviet military. The Soviet Air Force helped the Chinese ground troops engaged in the war against the UN Forces in the winter of 1950. The daily combat journal that contains records of the activities of the Soviet 64th Independent Fighter Aviation Corps at that time is available in Seoul. Many relevant articles and a book by Doug Joong Kim, entitled The Soviet Military’s Participation in the Korean War have been published.  It is regretful that the South Korean government has not made sufficient efforts to set the record straight concerning the Korean War and the history of the relations between South Korea and Russia. On the occasion of the 60th anniversary of the Korean War, it is suggested that the records concerning the Soviet Union’s direct engagement in the Korean War should be made available based on the testimonies made by Soviet pilots who carried out military duties at that time. It would be a good idea to invite the pilots to South Korea so that they may have a first-hand look at how much the country has changed. Events carried out by the South Korean government on the occasion of the 60th anniversary of the Korean War in which the Soviet Air Force was directly engaged may serve for the beginning of new relations. In addition, efforts to keep an accurate record concerning the role of the Soviet troops that occupied the northern part of Korea at the end of the Pacific War, the role of the Soviet in the establishment of the North Korean regime, and the economic support provided to North Korea in the postwar period will help further establish relations between South Korea and Russia as well as the two Koreas based on a better understanding of the events of the time.  In order to prepare for the future, it is necessary to examine what has happened in past decades with a willingness to set right what went wrong. Only China and Russia borders the Korean Peninsula. Koreans should remember how significant an influence Russia has on the Korean Peninsula. South Korea and Russia are also connected with each other via the East Sea. As a researcher on South Korea-Russia relations, the author would like to make the following suggestions for the development of bilateral relations.  First, it is urgently necessary to increase the number of experts on Russia. It is embarrassing that there are insufficient numbers of experts on Russia in South Korea, with the potential Russia represents in natural resources, including petroleum and natural gas. Business people point out that they can hardly find capable Koreans to carry out activities related to Russia. They point to the unbalance between Russian language or literature majors and regional study majors specializing in Russia. This author believes that many Korean students should be encouraged to study in Russia for several years and return home in connection with the need to train experts on Russia.   Secondly, the quality of those studying in Russia should be enhanced substantially. There are limited Koreans who can write articles in specialized fields or discuss relevant subjects with Russian scholars in Russian, although there has been a sharp increase in the number of Koreans studying in Russia following the establishment of diplomatic relations in 1990. Efforts to maintain a personal network of Russian acquaintances appear to remain only at an initial phase. Relevant institutions, including the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 should provide positive support for experts in diverse areas and to those interested in Russia, so that they may stay in that country studying their fields of specialization and establish a personal network of collaboration with the Russian colleagues.   Thirdly, the knowledge and information concerning Russia accumulated over past decades should be compiled systematically. This author has attended many seminars held in Korea concerning the prospect of the Six-Party Talks on North Korea’s nuclear program, the security of the Korean Peninsula, and the four powers surrounding the country. In most cases, there was no scholar from Russia. Nor were there Korean experts on Russia able to analyze and explain the position of Russia in its relation with Korea. It was not easy to find those deeply interested in Russia among the audience. It shows that Russia remains distant to us after the 20 years of diplomatic relations between the two countries. Compared to other area studies, the numbers of associations specializing in Russia are limited. Under such circumstances, it will not make sense to expect to see opportunities for criticism or debate between those with diverse backgrounds and opposing views. Associations, such as the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 which provides support for those studying in Russia, should derive a way to collect diverse views on Russia to compensate for the disadvantageous position of the country. The author remembers that the Ministry of Foreign Affairs and Trade made such efforts in the late 1990s and experts on Russia (who usually remained low-key) expressed their views positively on meetings held to discuss how  to develop the bilateral relations between South Korea and Russia.  Fourthly, the importance of the Russian Embassy in South Korea should be emphasized. Since 2008, they have held parties and invited Korean scholars on Russian studies at the embassy in Seoul. The author has felt happy to witness such efforts made by the Russian embassy in order to get closer to Koreans. Here is an example. In the early 1970s, the United States Information Agency (USIA) in Seoul carried out programs for Korean students interested in enhancing their English conversation skills. Many students attending such programs developed into leaders with pro-American viewpoints in their areas of specialty. The USIA carried out such programs with a long-term view of expanding a network of pro-American people. It will be a worthwhile effort for the Russian Embassy to undertake similar actions, such as conducting programs for students studying Russian, providing texts, and audio-visual materials for them.  Lastly, it is urgently necessary to systematize exchanges and contacts between people of the two countries. The Russian President should be included in the list of heads of state that the Korean President visits at least once a year. Periodical meetings between the Korean President and the heads of state of the four powers surrounding the Korean Peninsula and regular summits between the leaders of the two Koreas will be an important way to maintain peace and stability on the Korean Peninsula. When Koreans refer to the four powers surrounding the peninsula (the U.S., Japan, China, and Russia), they put Russia last and regard it as the least important country in terms of influence. Diplomatic efforts should be made to build closer relations with Russia.  Towards the end of the 1990s, strategic partnerships were established between the U.S. and China, between the U.S. and Russia, between Japan and China, and between China and Russia. The level of exchanges and contacts between these countries is immense. South Korea needs to increase efforts get closer to Russia, as it will help the other three powers and Russia maintain balanced and stable relations in the region. For instance, in 2003, the Korean Association of Slavic Studies (in which the author served as Director of Research) decided to hold an international seminar at a university in Russia on a biennial basis. At the first meeting held in St. Petersburg, we found that it was necessary to hold such an event reciprocally among those sharing similar specialties.  After two decades of relations, we are looking back at what we have achieved. Many Russians ask Koreans not to regard their country as “an easy source of resources.” That means they are looking forward to the opportunities to build ties with Koreans on matters beyond economics. The vast land of the Russian Far East (where many ethnic Koreans live) will serve as a fine supply source of grains to the two Koreas.  There are no special safety concerns when travelling in Russia or on the Trans-Siberian Railroad. Please feel free to study the language and other subjects in Russia. More Koreans traveling and making friends with people in the region of the four powers will develop future opportunities for Korea.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KIM Doug Joong(Professor of Russian Studies, Kyonggi Univers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