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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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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화담론] 포스트 팬데믹 한반도 평화공존을 위한 접경 환경협력과 평화구축
    저자
    김태경(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
    발간호
    2021-08
    문제제기: 초경계, 비인간행위자, 그리고 평화구축 팬데믹 이후 세계는 개인이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적인 생명과 안전, 건강, 최소한의 사회경제적 안정에 대한 유례없는 초국경적 위협 앞에서 안보, 평화, 일상, 생태 환경 등 주요 개념 및 가치들에 대한 새로운 사고와 접근, 실천방안들을 탐색하게 되었다. 2020년 1월 20일 한국에서도 감염자가 발생한 신종코로나19바이러스감염증의 세계적 확산은 2021년 12월 현재 오미크론 변이에 이르며 심대한 경제사회적 침체와 불평등, 인종주의 등 혐오와 배제의 정치 동학의 격화를 낳고 있다. 팬데믹은 팬데믹 이전부터 존재했던 다양한 초경계적(transboundary) 위험, 인간 뿐 아니라 다양한 비인간행위자들의 상호작용과 네트워크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한반도 평화구축(peacebuilding)의 문제와 연관해 말한다면, 기후변화 적응과 완화, 감염병 방역, 재난재해 공동대응, 생태ㆍ환경 협력 등 기존에 관련 담론이 존재했지만 전통안보의 관점에서 주변화 혹은 병행되는 데 머물렀던 주제들이 비전통안보 이슈 영역의 돌출, 미시적 위험의 거시적 안보문제로의 전환 가능성에 대한 관심에 따라 새로운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 글은 포스트 팬데믹 한반도 평화공존을 준비하며 접경지역을 중심으로 한 초경계 환경협력을 통한 평화구축의 시각을 검토한다. 서두에서는 포스트 팬데믹 시대 환경협력을 통한 평화구축에 대한 문제제기로, 우선 한반도 동해의 오징어 잡이와 관련된 다양한 층위의 면면을 살펴본다. 2010년대 중후반 한국, 일본의 뉴스미디어들은 일본 해안, 그리고 동해안에 떠내려온 북한의 목선 보도로 떠들썩했다(김병규 2017; 조기원 2017; 김진우 2019). BBC가 ‘유령선’이라 보도하기도 한 북한의 목선들은 사람의 흔적이 없거나 혹은 시신을 싣고 떠내려온 경우들도 있었고(BBC 2015; 2017), 2012년 출범한 김정은 정권이 국가적 차원에서 생산량 증대에 힘을 쏟은 수산업 부문의 열악한 동원 현실을 방증하는 사례라는 관심을 받기도 했다. 2013년 연말 김정은 위원장은 2015년까지 세 차례 연속, 그리고 2017년에도 군 수산업 부문 공로자들에게 직접 표창을 수여하는 등 ‘사회주의 강국건설’의 주타격 전선으로 농업과 함께, 축산, 수산업 생산량 확대에 다양한 관심을 가졌다. 수산업 전선은 2014년 공식화된 김정은 정권의 새로운 경제관리개선조치(‘우리식 경제관리방법’)를 배경으로 기업체 자율성 및 인센티브 강화 맥락과 함께(이석기 외 2018), 실제로 사적 운용되는 어선들이 국가제도 등록, 자원 지원 정도에 따라 국가에 대한 배태성(embeddedness) 혹은 상대적 자율성이 다양하게 나타나는 현실을 가진다(Ward et al. 2019). 무엇보다 동해의 오징어 잡이 수역과 관련된 중요한 변화로는 2004년부터 중국 어선의 동해 수역 입어(入漁)에 따른 경쟁의 심화가 자리잡고 있어, 북한 어선들이 러시아 수역에 들어가 조업을 하면서 부실한 어선 설비의 파손과 일본 해안가로의 출현으로 이어진 배경이 있다(Park et al. 2020). 2006년 가족과 목선으로 서해안 DMZ를 건너온 탈북민 박명호에 따르면, 무게를 늘이기 위해 물에 살짝 적셔서 내놓는 낙지나 해안가에 흩어진 도루묵알을 볼펜으로 집어넣은 수컷 도루묵을 유통하는 북한 주민들 때문에 가까운 북한 해산물에 대한 수요가 높았던 중국은 아예 북한 수역에 대한 쿼터제를 요구했다(박명호 2018). 함경북도 김책 앞바다에서 시작해 연장을 거듭, 현재 강원도 바다까지 확장된 중국의 북한 해역 내 조업 실태, 특히 중국의 ‘어둠의 선단’들이 2016-2017년 유엔 대북제재 강화 이후에도 어느 정도 규모로 오징어잡이를 지속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최근 다양한 위성자료를 종합ㆍ분석한 박재윤 외의 연구가 밝혀낸 바 있다(Park et al. 2020). 연구는 2017-2018년 북한 해역에서 조업한 오징어잡이에 특화된 쌍끌이어선, 야간조업등 어선, 북한의 소형어선 등을 위성자료를 통해 특정해, 2017년 900여척, 2018년 700여척의 중국 어선들의 불법 조업을 밝히고, 이들이 어획량 약16만톤, 액수로는 약4억4천만달러(5천253억원)를 벌어들였음을 확인했다(Park et al. 2020, 2-3). 박재윤 외의 연구는 그 자체로 인간-비인간행위자의 상호작용, 역내 지정학, 학계ㆍ전문가들의 초국경적 과학기술협력이라는, 초경계 환경 협력의 중요 주제들을 확인해준다. 연구가 지적한바, 동해에서 잡히는 살오징어(Todarodes pacificus)는 한국의 생산가치로 최대 수산 수출품목, 일본에서 5위에 드는 수산 소비품목, 북한에서 3위에 드는 수출품목을 차지하며 해수 온도상승을 포함해 2003년부터 한국ㆍ일본의 오징어 수확량 감소의 원인이 관심사가 되어왔다. 연구는 한국과 일본 연구소, 국제기구 등 다양한 과학기술 전문가들의 통합 연구를 통해 이러한 수확량 감소의 원인으로, 그간 공적 모니터링 체계에서 잡히지 않아 검증할 수 없었던 중국 ‘검은 선단’들의 정체와 그들의 어로 활동 규모를 파악했다. 이를 통해 북한 수산물 수출제재에 대한 유엔 대북제재 이행 상황에 대한 유의미한 정보 제공과 함께, 중국 어선들의 불법 조업 결과 북한 어선들의 러시아 해역 불법 조업 및 난파(일본 해역 출몰)라는 동북아시아 차원에서 주목된 인간안보 이슈에 대한 배경을 설명해냈다. 이들의 통합 연구는 살오징어 조업을 둘러싼 지정학과 어민들 및 사회공동체의 일상, 안전에 이르는 문제들을 다룬, 일종의 초국경적 ‘인식공동체’ 구성을 가늠하게 하는 하나의 사례로 읽을 수 있다 최근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소개한 동해의 오징어잡이를 둘러싼 환경-정치적 맥락은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시아의 공통의 바다라는 공간의 활용과 갈등, 이와 밀접히 연관된 지정학적 문제와 평화구축으로의 전환에 대해 새로운 관심을 환기한다. 살오징어와 같이 인간의 정치적 경계와는 다른 생태 환경적 경계에 놓인 돼지, 혹은 아프리카돼지열병, 신종코로나19바이러스와 같은 병원체 등 다양한 비인간행위자들의 월경성, 초경계성은 이러한 비인간적/미시적 요인들과 관련된 위험이 정치적 의제로 전환, ‘안보화’(securitization)되면서 국가안보적 차원으로 떠오르는 신흥안보 이슈에 대한 인식과 대응을 촉발한다(황진태 외 2019; 주윤정 2020; 민병원 2012; 김상배 2016; 김상배ㆍ신범식 2017; 2019). 신흥안보의 시각은 미시-거시, 인간-비인간 행위자 등을 가르는 전통안보적 관점을 넘어 어떤 조건, 기제를 통해 이러한 경계를 넘어서는 집단의 주요 안보 이슈들이 구성되는가에 관심을 가지는 점에서(김상배ㆍ신범식 2017; 윤정현 2020), 기존에 고착화된 경계에 대한 유연한 이해와 다층적 대응을 가능하게 한다. 이 글은 이러한 초경계, 비인간행위자를 포함해 지역, 민간 시민사회 다양한 이해와 행위자들을 포괄하는 환경적 평화구축(environmental peacebuilding)의 관점에서 포스트 팬데믹 한반도 평화공존을 위한 한반도 ‘생명공동체’ 담론을 검토하고 접경 환경협력의 대안적 방향을 살펴본다.         2. 환경-평화 넥서스와 ‘공간’, ‘맥락’의 중요성 여기서는 평화구축의 전환적 프레임워크로서 환경-평화 넥서스(nexus)에 대한 국내외 연구를 검토하고 최근 환경적 평화구축 담론이 강조하는 맥락, 공간의 중요성에 초점을 맞춘다. 한반도 평화구축에 대한 기존 연구들은 탈냉전 이후 평화협정, 평화체제에 대한 연구 관심의 증대로부터, 최근에는 비교 평화과정의 사례연구 및 평화구축, 갈등전환 이론적 논의의 한반도적 적용 시도(김동진 2013; 구갑우 2013; 정주진 2013), 기존에 분리되어 다뤄진 통일-평화의 문제를 분리/통합과 같은 보다 보편적 개념에서 이해하거나 평화구축 문제와 통일 문제를 결합, 지속가능한 평화와 통합을 연속선상에서 이해하려는 이론적 시도 등이 이어져왔다(분리통합연구회 2014; 김학노 2019; 김종법 외 2020; 이옥연 2015; 구갑우 외 2019; 이무철 외 2019; 2020; 김일기 외 2019; 김학재 2020). 평화과정의 비교적 관점에서 한반도의 평화과정을 보다 보편적 틀에서 이해하거나 통합의 문제를 연방주의, 협의주의 등 이론적 바탕 위에서 복수의 정치 단위들의 만남의 방식, 깊이에 대한 문제로 접근하는 등의 이러한 연구들은 한반도 통일, 평화의 문제를 한반도 특수의 구체적 맥락에 집중해 논의한 기존 연구의 한계를 극복하는 데 기여했다. 글로벌 규범의 한반도적 적용이라는 문제의식은 최근에는 특히 남북한의 유엔 지속가능개발목표(SDGs) 이행에 대한 평가와 전망과 관련해 세계적 규범의 동형화(isomorphism), 자국 맥락에 맞는 토착화에 주목하는 개발협력을 통한 평화구축 연구들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김태균 2019; 2020; 박지연ㆍ손혁상 편 2020, 최규빈 2020). 탈냉전 이후 국제정치학에서 전통안보 개념을 넘어선 인간안보(human security) 개념에 대한 다양한 논의는 한반도 평화과정의 맥락에서는 최근 북한의 발전과 인권, 평화의 ‘트리플 연계’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이어졌다(인도협력연구실 편 2019; 홍석훈 외 2019; 문경연 2019). 인간안보의 다양한 측면 중 ‘공포로부터의 자유’로 대표되는 시민적ㆍ정치적 권리와 ‘궁핍으로부터의 자유’로 대표되는 경제적 권리, 발전권과 관련해, 핵개발과 권위주의 체제를 지속하는 저개발국 북한의 맥락에 대한 논쟁이 지속되고 있으나 장기적이고 점진적 프로세스로서 평화구축 이행 과정에서 발전, 인권 논의를 병행해야 할 중요성은 주지되고 있다. 인간안보 이슈는 팬데믹 국면에서 개인의 일상, 안전에 대한 위험 자체에 대한 공동 대응을 위한 프레임으로 더욱 관심이 제고되었다(이신화 2006; 이혜정ㆍ정지범 2013). 팬데믹 이후 초국경적 바이러스의 위험은 월경하는 비인간행위자에 대한 관심과 초경계성을 가지는 비인간행위자, 인간행위자 간 상호작용의 네트워크, 이들이 위치한 공간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켰다. 한반도 평화구축의 맥락에서는 남북한 접경 지역에 확산된 말라리아, 아프리카돼지열병 사례와 같이 비인간행위자와 인간행위자 간 상호작용, 전염병 이해와 관리의 정치적 역학 등에 대한 관심과, 파주 등 접경지역의 에드벌룬, 전단 살포과 연관된 다양한 지역 주민, 지역 및 중앙 정부, 국내외 비정부 행위자 등 다양한 이해와 가치의 다층적 행위자들의 공존, 대결이 이뤄지는 공간으로서 접경 지역의 지정학에 대한 주목 등이 이뤄졌다(김준서 2019; 이승욱 2018; 박배균ㆍ백일순 2019). 2018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진전은 정치ㆍ군사적 문제 뿐 아니라 다양한 부문, 영역의 화해와 교류협력, 평화구축의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고조시켰다. 2019년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이후 현재에 이르는 교착은 다시 정치ㆍ군사적 문제 해결의 선차성과 기능주의적 접근의 한계를 확인했으나, 팬데믹 이후 다양한 미시적 위험의 양적ㆍ질적 전화 가능성, 다층적 행위자들의 개입과 상호작용에 따라 전통안보/비전통안보의 경계가 불분명해지는 전망은 새로운 안보에 대한 개념적 이해와 접근, 평화구축 대안 창출의 필요성을 증대시키고 있다. 평화구축의 이론적 논의 중 환경적 평화구축(environmental peacebuilding, 이하 EPB) 담론은 비정치적 이슈인 환경 영역의 협력으로부터 갈등당사자들의 상호작용, 대화와 협상 증대, 협의 공간의 제도화, 공유 가치와 정체성의 형성, 나아가 공공재 관리의 집합행동을 통한 지속가능한 발전을 지향하는 평화구축의 조건과 메커니즘에 대한 분석 및 대안을 제공한다(Dresse et al. 2019; Ide 2017). 최근 드레세 외 연구는 초기조건, 메커니즘, 결과의 세 가지 측면에서 기술적(technical), 복원적(restorative), 지속가능한(sustainable) 환경적 평화구축의 세 가지 유형화를 통해 환경적 평화구축의 이론화를 시도했다. 드레세 외가 제시한 1)자원 부족과 상호이익의 초기조건에서 기술적 협력, 행동 조율 기제를 통해 환경문제 완화와 접촉 증대 결과를 낳는 기술적 EPB, 2)상호의존, 공유 가치를 바탕으로 상호작용의 중립적 공간, 대화와 협상 메커니즘을 거쳐 신뢰 구축, 공유된 정체성을 형성하는 결과로 이어지는 복원적 EPB, 3)환경적 지속가능성 결핍 문제와 함께 수평적 권력관계를 바탕으로 공공재 관리, 집합행동을 통해 자원배분의 불평등을 개선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도모하는 지속가능한 EPB의 유형은, 한반도 평화구축의 맥락에서는 예컨대 오징어잡이와 같이 남북한 상호이익이 존재하는 문제에서 첫째 기술적 EPB의 초기 조건을 어떻게 확보하고 이를 통해 복원적 EPB, 지속가능한 EPB로 진화하는 경로를 만들어낼 것인가를 탐색하는 데 가이드를 제공한다. 남북한 간 자원보호와 상호이익이 접합되는 환경협력의 공간으로부터 접촉의 증대, 상호의존, 공유 가치와 정체성의 형성, 공유재 관리의 제도화 창출을 통해 평화구축을 만들어가는 아이디어와 연관해, 국내에서도 ‘그린 데탕트’에 대한 일부 논의들이 존재했으나(이재승 외 2014; 고상두 2014),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와 맞물려 정책적 동력이 제한된 측면도 크다. 그럼에도 팬데믹 이후 다양한 초경계적 인간-비인간 행위자 상호작용, 네트워크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대응과정에서 환경적 평화구축의 문제의식과 대안적 모색은 한반도 평화구축에 있어서도 중요하게 부각될 것이라 예측할 수 있다.   한반도 ‘생명공동체’ 담론과 접경 환경협력 코로나19 팬데믹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대한 함의는 팬데믹이 야기한 새로운 안보에 대한 접근의 절박성과 설득력, 새로운 평화 담론과 대응에 대한 요구 및 시도들에서 찾을 수 있다. 여기서는 팬데믹 이후 한국 정부가 강조한 한반도 ‘생명공동체’, ‘평화공동체’, ‘보건의료공동체’ 및 ‘동북아 방역-보건협력체’ 논의를 검토하고, 환경적 평화구축 및 평화구축의 최근 ‘지역적 전회’(local turn), ‘공간적 전회’(spatial turn)의 관점에서 접경 환경협력의 대안적 방향을 논한다. 2020년 9월 유엔 총회 비디오 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한반도의 방역 및 보건협력과 연계된 동북아 방역-보건의료 협력체 아이디어를 제시했다(청와대 2020a). 연초부터 한국 정부는 인간안보, 한반도 생명공동체 개념을 팬데믹 하 남북관계의 진전과 협력을 위한 키워드로 제기했다(청와대 2020b). 인간안보, 이와 연동된 한반도 생명공동체 개념은 기존의 충분한 학술적, 정책적 논쟁을 기반으로 제시되었다기보다 글로벌 비상국면에 대응한 ‘한국판’ 평화 담론으로 위로부터 도입된 측면이 크다. 그럼에도, 한반도 생명공동체 개념은 팬데믹 상황에서 한국 사회에 안보 환경 변화에 대응하면서 평화프로세스를 지속하는 시각으로서 모호하지만 미래지향적 비전을 제공했다. 팬데믹 이전에 이미 교착된 남북관계와 함께, 팬데믹 하 변화된 상황에서 직면한 새로운 인간안보 상의 이슈들에 대한 공동의 대응의 조건, 쟁점, 정책 방향에 대한 논의들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정부의 한반도 생명공동체 레토릭과 함께 주목할 사회적 문제제기, 담론들을 살펴보면, 팬데믹 하 북한의 식량안보, 에너지안보에 대한 국내외 우려와 함께 국제사회 및 한국의 인도주의적 협력의 필요성, 그리고 유엔 대북제재 레짐 완화에 대한 요구를 들 수 있다. 재미 한국인 의사협회를 중심으로 2000년대부터 방북 활동을 통해 북한 보건의료 인력들과 교류, 협력지원을 지속하는 박기범(Kee B. Park)은 대표적으로 미국 한인사회에서 북한에 대한 인도주의적 협력, 보건의료협력을 통한 건강안보, 식량안보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원을 주장했다(Park and Kim 2020). 특히 박기범은 대북 의료지원 활동 및 네트워크 경험에 입각해, 팬데믹 하 유엔 국제기구 및 국제 NGO들의 대북 인도주의 사업이 현재의 유엔 대북제재 레짐 하에서 거의 제 기능을 할 수 없으며 최악의 상황으로는 철수를 선택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며 대북제재 레짐의 수정을 주장했다(Park and Kim 2020). 팬데믹 상황에서 2016-2017년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에 따라 새롭게 채택된 유엔 대북제재 레짐은 미국, 일본, 중국, 한국 등 개별 제재와 함께 농업생산을 필두로 북한 민생 경제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했고 대북 인도주의 사업 전망을 불투명하게 만들었다(Smith 2020a; 2020b; Zadeh-Cummings and Harris 2020; White 2020). 코로나19는 이미 2018년부터 대북제재 레짐의 강화에 따른 북한 무역수치의 감소 국면에서 지속되었던 북중 무역마저 거의 단절에 가까운 급감을 초래했다(최장호 2020; 홍제환 2020). ‘물샐 틈 없는 방역’을 위한 강력한 국경봉쇄는 보건의료 설비와 의약품이 미비한 북한의 합리적 선택이지만 장기화된 봉쇄의 부정적 효과는 특히 글로벌 남반부 저개발국가들의 경제침체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건강안보, 식량안보 등 인간안보 측면의 현실적 우려가 제기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World Economic Forum 2020; Park 2020). 강력한 대북제재 레짐과 팬데믹에 대항하는 북한의 ‘비상방역체계’가 겹쳐 인간으로서 존엄하게 살 자유와 직결된 최소한의 건강안보, 식량안보를 보장할 수 있는 인도주의적 지원 및 협력이 가로막힌 상황은 신종코로나바이러스의 초국경적 위협 앞에서 한국과 국제사회의 인도주의적 책임에 대해서 근본적인 성찰을 제기한다. 스미스(Hazel Smith)는 특히 팬데믹 하 유엔 대북제재가 갖는 윤리성, 효과성, 비례성을 비판하면서 이를 철폐할 데 대한 국제 NGO, 인도주의 공동체 차원의 관심을 환기했다(Smith 2020a; 2020b). 제재 문제에 대해서는 특히 팬데믹 하 대북제재 결과 어린이와 여성 등 취약 인구 및 젠더적 영향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Park and Kim 2020; Korea Peace Now 2019). 한국 내에서는 인도주의적 협력과 관련해 2018년 판문점 선언에서 합의된 남북한 간 보건의료, 산림, 재난 대비 관련 협력 의제를 바탕으로 팬데믹 상황에서 한반도의 초국경적 방역 및 보건협력을 진행할 데 대한 다양한 제안들이 지속되었다(신영전 2020a; 신영전2020b; 전우택 2018). 포스트 팬데믹 한반도 평화공존을 위한 다양한 제언은 한편으로 김정은 시대 북한이 재난위험경감, 산림화, 보건의료, 생태ㆍ환경 보호, 기후변화 적응 및 완화 등 다양한 비전통적 의제와 관련된 역량 강화, 법제도 개선 등의 노력을 보인 변화와도 연관된다(Cho and Kim 2021; 강택구 외 2016; 임예준ㆍ이예창 2017; 오삼언 외 2018; 오삼언ㆍ김은희 2020; 최현아 2019; 최현아 2018; Habib 2015; 2010). 2021년 7월 유엔 지속가능개발목표 이행 상황에 대한 첫 자발적 국가리뷰(Voluntary National Review)을 제출한 북한은 김정은 시대에 들어 다양한 국제사회 플랫폼을 통해 기후변화, 농업 및 식량안보, 재난위험경감 등과 관련된 자국의 의무 이행 노력을 알리는 동시에 국제기구, NGO의 지원ㆍ협력에서도 적극적 양상을 보였다. 한반도 평화구축에서 인도주의적 지원, 개발협력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최근의 논의는 남북관계 교착 상태에서 실질적 진전으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으나, 지속가능한 한반도 평화구축을 위한 한국의 국내정치적 합의, 국제사회적 지지를 확보하는 중장기적 과정에 중요한 담론으로 의미가 있다. 여기서는 평화프로세스의 교착 국면에서 한반도 평화 문제에 있어 공간, 스케일에 따라 분단, 비평화의 지정학, 지경학에 대한 이해, 구성이 다르게 형성될 수 있다는 관점에서, ‘생명공동체’, 인도주의적 협력 관련 다양한 담론을 실현하는 공간, 시작점으로서 접경 지역을 중심으로 한 환경협력 방향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최근의 평화구축 연구의 ‘지역적 전회’, ‘공간적 전회’에 따르면(Brigg and George 2020; Ide 2017; Mac Ginty and Richmond 2013), 갈등, 분쟁 상황에서 로컬-글로벌 스케일의 다양한 조우 과정에서 갈등, 분쟁이 펼쳐지는 공간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담론적으로 끊임없이 구성되는 것이다. 갈등과 평화의 동학에서 행위자, 아이디어가 어떻게 스케일을 넘나들며 변화하는지, 인간-비인간 행위자, 정체성이 어떻게 공간에 따라 구성되고 또 구성하는지에 주목하는 연구들은 왜, 어떻게 어떤 공간, 지역이 갈등 상황을 다르게 인지, 대응하고 평화구축의 지속가능성에 기여하는가를 탐색한다. 한반도 평화구축과 관련해서는 파주 전단살포를 둘러싼 지역 주민, 경기도, 파주시 등 지방정부와 의회, 중앙정부와 국회, 지역시민사회단체 및 해외 NGO의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지정학ㆍ지경학을 통해 이러한 공간적 차이, 지역적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이승욱 2018). 공간에 따른 유동성/확정성, 스케일적 구성 자체가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재구성됨을 강조하는 ‘스케일의 정치’의 관점에서, 우리는 파주를 포함해 경기도 강원도 DMZ 접경 지역의 사람들, 다양한 민간 행위자들이 분단과 비평화 상태, 평화구축의 문제를 어떻게 다르게 인식, 구성해왔고 이 과정에서 국가 혹은 글로벌 스케일과 경쟁해왔는지 파악하고 다시 이들 접경지역으로부터 새로운 평화구축의 아이디어와 대안들을 도출해낼 수 있다. 특히 DMZ 생태평화공원 조성을 포함한 접경지역의 환경협력은 지역주민, 지방정부, 학계ㆍ전문가ㆍ시민사회, 국제기구 등 다층적 행위자들의 거버넌스를 통해 해당 공간, 지역에 대한 다양한 정의와 평화구축의 접근법을 조율하고 합의하는 과정으로서 지속가능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형성에 기여할 것이다(이기영 외 2019; 박은진 외 2012).   결론: 포스트 팬데믹 한반도 평화공존을 위한 접경 환경협력 다시 북한 목선의 출몰과 그 배경이 된 동해의 오징어잡이 문제로 돌아가보자. 드레세 외(Dresse et al. 2019)의 유형화에서 제시한 대로 환경적 평화구축(environmental peacebuilding)이 기술적 유형에서 복원적 유형을 지나 지속가능한 환경적 평화구축의 유형으로 진화하기 위해서는 한반도 및 동북아에서 어떤 평화구축 노력을 전개해야 할까. 환경적 평화구축의 이론적 논의와 최근 평화구축 연구의 ‘지역적 전회’(local turn), ‘공간적 전회’(spatial turn)을 유념하면, 동해의 오징어잡이에 연관된 다국적, 다층적 행위자들과 비인간행위자들의 상호작용과 갈등에서 선차되어야 할 것은 이들이 위치한 두 가지 맥락(context)으로서 환경 및 정치적 맥락의 특성에 대한 이해이다. 지속가능한 환경적 평화구축에 이르기 위해서는 북한의 동해수역을 포함한 해양 생태계 공간과 중국의 ‘검은 선단’, 북한의 소형어선, 그리고 한국, 일본의 오징어잡이어선들과 남북, 일, 중의 해경이 위치한 정치적 경계의 공간이 일치하는 단계, 예컨대 오징어 개체가 감소하는 환경적 도전에 대해 동해를 일종의 공유재 관리의 공간으로 접근하는 도약이 필요하다. 이러한 지속가능한 환경적 평화구축의 목표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교착의 현 단계에서는 장기적 목표로 존재한다고 할 때, 초기 단계의 기술적 협력, 혹은 이를 가능하게 하기 위한 조건 조성의 차원에서 필수적인 것은 박재윤 외(Park et al. 2020)의 연구에서 확인되는 과학기술 연구자, 전문가, 관련 시민사회의 ‘인식공동체’ 차원의 노력을 통해 환경적 맥락의 변화, 인간-비인간 행위자의 상호작용, 연계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이다. 동시에 동해 공간을 둘러싼 지정학적 경쟁이 어떻게 구성되고 있는지 다양한 층위에서 벌어지는 서사, 동원, 정치를 파악하고 이를 변화시키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한반도 평화구축의 관점에서 해당 정치적 공간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는 평화프로세스의 상대방인 북한과 동북아에 대한 맥락화된 이해를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 미중 전략적 경쟁 국면을 배경으로 유엔 대북제재와 팬데믹 장기화에 따른 북한 경제상황 악화 조건에서 최근 가시화된 북중 간 전략적 밀착은 중국 어선들의 북한 해역 쿼터제와 북한 오징어잡이 소형 어선들의 러시아 해역으로의 항해에 중요한 배경이 될 것이다. 또한 한국 정부로서는 환경적 평화구축의 주요 상대방으로서 북한과의 지속적 협의 채널을 통한 신뢰 구축과 함께 역내 정치군사적 대결 완화를 위한 평화프로세스 지속을 병행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평화의 제도화와 환경적 평화구축의 노력이 함께 축적되는 과정에 지속가능한 평화구축의 경로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다층적 스케일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특히 접경 지역공간을 중심으로 환경적 평화구축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 접경지역, 민간 행위자들의 고질적 갈등에 대한 축적된 이해와 해결 담론은 국가 차원의 전략과는 다른 경험과 가치, 대안적 아이디어를 가질 수 있다. 한반도 접경지역, 즉 경기도, 강원도 등 내륙과 해상의 DMZ 일대의 다양한 행위자들을 포괄하는 한편, 학계ㆍ전문가ㆍ시민사회 참여를 활성화함으로써 한국은 지속가능한 환경적 평화구축을 위한 역량 구축과 제도화에 기여할 수 있다. 환경적 평화구축을 통한 ‘그린 데탕트’는 갈등 당사자들의 위치한 공간에 대한 맥락적 이해와 더불어 다층적 행위자들을 포괄하는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과정을 통해서 실현 가능할 것이다.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기획: 유기은 박사후연구원  저자소개 김태경은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이다.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에서 북한의 체제형성기 사회주의 문예건설,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조선화’(Koreanization)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연구관심분야로는 북한정치, 남북관계, 한반도 평화구축, 동아시아 냉전사 및 냉전문화 등이 있다.
  • [평화담론] 기후변화와 한반도 평화
    저자
    이경희(한국수출입은행 책임연구원)
    발간호
    2021-07
    들어가며 1만3000년 전 아프리카 수단에서 발생한 인류 최초의 전쟁은 기후변화로 발발했다는 연구가 있다. ‘마지막 빙하기’로 인한 급격한 기후변화는 물과 자원에 대한 인류의 생존 경쟁이 심화시켜 ‘삶의 터전’이었던 나일강이 ‘전쟁터’가 되었다는 것이다(Isabelle Crevecoeur et al, 2021). 수단의 다르푸르 사태는 21세기 최초의 ‘기후전쟁’으로 불린다. 2003년부터 2010년까지 20만명이 넘는 사망자와 250만명 이상의 난민을 발생시킨 이 비극적인 사건은 종교와 인종 문제가 기후악화와 중첩되며 발생한 무력 분쟁이다. 기후위기가 초래한 수많은 비극들은 기후변화가 인류에게 직접적이고 근본적이며 광범위한 위협이 될 수 있음을 인지하게 했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국제사회는 기후변화 담론을 진화시켜 오고 있다. 이 과정에서 기후변화는 환경·생태적 범주에게 나아가 인권과 평화로 확장된다. 기후변화가 평화를 얘기하는 방식은 전통적 범주의 인권과 안보 개념을 넘어서는 신사고적 전환에 가깝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는 인류 평화에 악영향을 주는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한 공로로 2007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다. 기후변화가 평화의 범주에 포괄되는 의제라는 점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기후변화가 인권이고 평화라는 인식은 한반도의 평화를 상상하는데 중요한 함의를 준다. 남북한 모두 세계평균 보다 높은 속도의 기후온난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지금의 탄소배출량 추세가 지속되는 경우 21세기 후반에는 파리협정 1.5도 목표를 훨씬 상회하는 수준으로 온도가 상승하여 더욱 빈번한 자연재해가 발생할 것으로 예측된다. 기후변화가 분쟁을 촉발시킨다는 연구결과와 목도된 비극들은, 기후변화로 인해 한반도의 분쟁 가능성도 높아질 수 있다는 함의를 준다. 특히 북한은 기후변화 대응 취약국으로 기후위기는 국가발전과 주민의 생명에 중대한 위협이 되고 있으며 내부 갈등도 심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북한의 기후 취약성은 한반도뿐 아니라 동아시아, 국제정치 전반에 안보 위협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남한은 북한과 지리적으로 접경한다는 점에서 기후변화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분쟁의 직접적 이해당사자이기도 한다. 따라서 기후변화는 한반도 평화만들기 작업에 핵심적인 의제로 논의될 필요가 있다.   기후변화 담론의 진화 국제적 수준에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노력은 1992년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에서 개최된 유엔환경개발회의(United Nations Conference on Environment & Development, UNCED)에서 유엔기후변화협약(United Nations Framework Convention on Climate Change, UNFCCC)을 채택하면서 본격화되었다. UNFCCC는 기후변화에 대한 국제협약으로 지구온난화를 줄이기 위해 전 지구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선언적 합의가 이루어졌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 독일 베를린에서 제1차 당사국총회(COP1)가 개최된 이후 1997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COP3에서 2000년 이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담은 교토의정서(Kyoto Protocol)가 채택되었고 COP6에서 교토 메커니즘에 대한 합의가 이뤄졌다. 2020년 만료되는 교토의정서를 대체하여 2020년 이후의 기후변화 대응을 다루고 있는 파리협약(Paris Agreement)은 2015년 열린 COP21에서 채택되었다. 2021년부터 발효되는 파리협정 메커니즘은 교토의정서와 달리 ‘공통의 그러나 차별화된 책임(Common But Different Responsibility, CBDR)’ 이라는 구호 아래 선진국만이 아니라 개도국까지 참여를 확장하고 국가가 자발적으로 목표를 수립하는 신기후체제이다. ‘CBRD’의 정책적 기조는 기후변화 대응은 공동의 책임이나 책임의 정도는 달라야 한다는 기후정의(Climate Justice)의 개념이 본격적으로 공론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기후정의는 책임의 당사자가 평등하게 책임을 지고 모두가 공평하게 보호받아야 한다는 기후불평등(Climate Inequality) 논의로 이어진다. 기후변화 의제가 환경·생태적 범주를 넘어 인권과 평화로까지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기후변화는 인권의 문제이다. 유엔은 기후변화는 인권의제화를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2021년 10월, 유엔인권이사회(United Nations Human Right, UNHCR)는 ‘깨끗하고 건강하며 지속 가능한 환경에 대한 인권’(결의안 48/1)을 통과시키며 생물 다양성 및 생태계 보호를 위한 정책 마련을 촉구했다. 또한 결의안 48/14에서는 기후위기 전담 특별 보고관의 임명을 명시하며 기후변화 대응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환경을 기본 인권으로 선언하는 행위는 기후변화가 인권 위기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음을 공식화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기후변화는 인간의 생존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2°C의 기후상승 상황에서는 1억~4억의 사람들이 기아의 위험에 처할 수 있으며 10억~20억 명 이상의 사람들이 물을 구할 수 없게 된다. 4°C가 오르게 되면 전례 없는 열파로 인해 식량 생산의 70%가 감소하게 된다(세계은행, 2014). 기후변화 적응 조치를 동원해도 2080년까지 전 세계 작물 수확량이 30% 감소할 수 있으며(세계은행, 2010), 2030년에서 2050년 사이에는 말라리아, 설사, 더위 스트레스, 영양실조로 연간 250,000명이 추가로 사망할 것으로 예측된다. 기후위기가 파생하는 불평등과 불공정 문제 역시 인권을 침해하는 중대한 위협이다. 기후변화는 매년 1억 명을 빈곤에 빠뜨리고 있으며(세계은행, 2016), 빈곤층의 보험 가입률은 매우 낮다는 점에서 기후변화는 건강의 양극화를 심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또한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주요 당사자는 소수의 부유한 국가와 부유계층이지만 더 큰 비용과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대상은 개발도상국과 빈곤층이라는 점에서 ‘위험’이 불평등하게 분배된다. 전 세계 가장 부유한 인구의 10%가 배출하는 탄소배출량은 전체 배출량의 50%에 달하지만, 가장 가난한 인구의 절반인 35억 명이 배출되는 탄소배출량은 10%에 불과하다. 또한 가장 부유한 1%에 포함되는 사람은 하위 10%에 속하는 사람보다 175배나 더 많은 탄소를 사용한다. 기후변화의 비용도 탄소배출량이 높은 선진국이 아닌 개발도상국이 약 75-80%를 부담해야 한다(WHO, 2014). 하지만 기후변화의 부정적 여파는 가난한 나라, 지역, 사람에게 더욱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2050년 내, 기후변화로 인해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 남아시아 및 라틴아메리카에서만 1억 4천만 명의 사람들이 이주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World Bank, 2018). 2017년 135개국에서 1,88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으며 이는 분쟁으로 발생한 이재민 수의 거의 두 배이다(IDMC and NRC, 2018). 기후변화가 인권이라면 기후변화는 평화의제이기도 하다. 인권과 평화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점에서 기후변화가 인권에 미치는 영향은 평화와 연결된다. 세계인권선언(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 전문에서 “모든 인류 구성원의 천부의 존엄성과 동등하고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 세계의 자유, 정의 및 평화의 기초”라고 천명하고 있다. 인권이 평화를 만들어 내는 기본 토대라는 것을 명시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상 많은 국가들과 국제기구들은 기후변화가 평화에 위협이 되는 안보 위험으로 인식하고 있다. 미국은 국가안보전략(National Security Strategy, NSS) 보고서에서 기후변화가 자연재해 증가, 난민 유입 그리고 물과 식량과 같은 기본 자원에 대한 갈등을 촉발한다는 점에서 국가안보에 긴급하고도 중대한 위협이라고 규정하고 있다(NSS, 2015). 전 세계의 평화와 안전유지를 주요하게 다루고 있는 UN 안정보장이사회(안보리)는 기후변화를 안보의제화 하기 위한 논의를 지속적으로 해오고 있다. 국제평화와 안전의 수호를 책임지는 안보리가 기후변화 대응을 주요 임무로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엔의 핵심기구인 안보리에서 기후변화를 주요 의제화하는 시도는 기후변화를 전 지구적 위협으로 인지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메시지를 준다. 안보리는 2007년 처음으로 기후변화와 안보의 상관관계를 논의하기 시작했으며 2009년 두 번째로 개최된 총회에서 기후변화의 안보와 기후변화를 연계시킨 최초의 공식적 유엔 결의안(A/RES/63/281)을 채택하기도 했다. 중국을 비롯한 일부 국가들의 반대가 있지만 기후변화의 안보의제화 추진은 적극적으로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기후변화가 평화의 관계는 기후변화와 무력갈등의 상관관계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세기에 발생한 무력 분쟁의 최대 20%(3%~20%)가 기후변화로 인해 발생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본 연구는 기후변화는 기후가 분쟁에 미치는 영향을 ‘상당한 감소(substantial decrease)’부터 ‘상당한 증가(substantial increase)’까지 5가지 단계로 설정하여 보여주고 있다<그림 1>. 현재까지 기후는 분쟁의 5%에 걸쳐 위험을 상당히 증가시켰다. 미래의 분쟁을 예측한 결과 산업화 이전 평균기온 상승 2도를 유지하는 시나리오의 경우 13%의 확률로, 4도를 유지하는 시나리오의 경우는 26%로 기후온난화의 정도에 따라 기후가 분쟁에 미치는 위험의 정도는 2배 이상 차이가 나는 것으로 분석된다(Mach K.J. et al, 2019). <그림 1> 시나리오별 기후변화가 발생하는 분쟁 위험의 증가확률 예측 자료: Mach K.J. et al., 2019   북한과 기후변화 북한은 기후변화가 미치는 부정적 파급력을 인지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한 자체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김정은은 2019년 9월 개최된 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3차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세계적으로 재해성 기상현상이 우심해지고 있고 우리 나라에도 그 위험이 닥쳐들고 있는 상황”임을 지적했다. 특히 모든 시·군이 그 어떤 자연재해에도 끄덕없게, 안전하게 관리해 나가는 것이 정치국 확대회의의 “핵심 사상”이자 당의 경제정책 집행에서 “제일 우선적인 중심과제“라고 강조했다는 점에서 기후변화 사안을 정책적 우선순위로 두고 엄중하게 인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로동신문, 2021). 대외적으로는 1994년 12월 유엔기후변화협약(the United Nations Framework Convention on Climate Change, UNFCCC)의 비준을 시작으로 2005년 4월 교토의정서(the Kyoto Protocol), 2016년 8월 파리협정(the Paris Agreement) 비준했다. 파리협약 당사국으로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2016년과 2019년 제출하여 2030년까지 온실가스배출량을 16.4%(BAU기준) 줄이고 국제사회의 지원이 있는 경우 36% 추가 감축계획을 밝히는 등 파리협정 1.5도 목표 달성을 위한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내부적으로 기후변화로 인한 재난재해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필요한 제도를 수정·보완하고 통일적 위기관리체계를 구축하여 이행해 오고 있다. 국제사회 재난위험 경감 기본전략인 센다이프레임워크(Sendai Framework for Disaster Risk Reduction)를 반영한 북한식 ‘2019-2030 국가재해위험감소전략’을 수립하여 국가의 재난관리를 위한 중장기적 정책을 마련했다. 국가재해위험감소전략(2019-2030)은 “국가의 통일적인 지휘 밑에 재해 위험을 미리 막고 재해 대응력과 회복력을 높여 사회경제 발전을 담보하며 생명·재산과 재부의 피해를 최대한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세부적인 이행 방안으로 “2022년까지 도·시·군 인민위원회에서 지역재해위험감소계획을 수립”과 “자연재해경보체계의 구축” 등이 있다(조선중앙통신, 2020). 또한 통일적인 국가위기관리체계 확립하여 이행해 오고 있다. 재해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2014년 6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 제76호로 「재해방지 및 구조, 복구법」을 채택하여 통합적인 법을 마련하였다. 동 법은 과거 현지 지도나 교시 혹은 개별법에서 사안별로 다루던 관리체계를 하나의 법으로 통합하여 재해관리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책임소재를 명확히 하는 등의 통일적인 지도체계를 수립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법제처, 2020). 예로 들면 북한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그림 2 >와 같이 국가비상재해위원회를 중심으로 국가적 수준에서 세부 단위까지 통일적 지휘체계로 대응해나가고 있다. <그림 2> 북한의 재난재해 대응 체계  자료: 연구자 작성  그럼에도, 북한은 기후변화 대응 취약국으로 평가받고 있다. 2021년 경제평화연구소(Institute for Economic and Peace, IEP)가 발표한 ‘생태위협보고서(Ecological Threat Report, ETR)’에 의하면 북한은 전체 178개 중 가장 큰 생태학적 위협에 처한 30개국 중 한 국가이다. 특히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의 위험성은 매우 심각한 수준(5점 만점에 5점)으로 평가받았다(IEP, 2021). 실제 자연재해로 인한 북한의 피해 규모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7.4%에 해당하며(1998~2017년 누적), 인적 피해도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1995년부터 2007년까지 북한의 연평균 자연재해 피해규모는 총 8,544억원으로 인명피해는 346억원, 농업부문 피해는 8.209억원으로 추정된다(이우민 외, 2007). 특히 최근에는 자연재해로 인한 기상이변이 더욱 빈번해지며 그 피해도 커지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되고 있다. 2007년부터 2018년까지 북한에서 발생한 자연재해를 살펴보면 홍수(42.8%), 태풍(38.1%), 가뭄(14.3%) 순이다(오성남, 2019). 북한은 지난 25년 동안 북한에서 발생한 대규모 홍수 10건 중에 절반에 해당하는 5건이 2000년대에 발생했다. 2012년 발생한 태풍과 홍수로 인해 전 인구의 12.8%가 피해를 입었으며 인구 당 피해자 비율로 따지면 세계 10위권에 해당한다. 2016년 8월 발생한 홍수로 사망한 인원수는 538명으로, 같은 해 세계 10대 호우재해로 사망한 통계수치에서 세 번째로 큰 희생 규모이다(CRED,2017). 북한에서 홍수 피해가 특히 심각한 것은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 심각한 경제 위기를 겪으며 식량난과 에너지난을 해결하기 위해 다락밭, 뙈기밭을 조성하고 무분별한 벌목이 이루어지는 등 심각한 산림훼손이 감행되었기 때문이다. 북한은 산림전투복구 사업 등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자체적인 노력을 이행해 오고 있지만 내부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자원과 역량, 기술의 부족 등이 한계로 작용하고 있다.   기후변화와 한반도 평화 1981년부터 2010년까지 측정된 연평균 기온은 남한과 북한 각각 12.5℃와 8.5℃이며 한반도의 연평균 기온은 11℃이다. 연평균 온도 상승의 경우 남한은 1.1℃로 북한이 1.4℃보다 더 낮았지만 1880년부터 2012년 동안 전 세계의 평균 상승온도인 0.85℃보다 약 2배 높은 속도로 기후온난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남한과 북한 그리고 한반도 전역의 미래 온도를 대표농도경로(Representative Concentration Pathway, RCP) 기법을 사용하여 분석한 결과 시나리오별로 증가 추세의 정도는 있지만 모든 시나리오에서 온도가 상승하며 이에 따른 자연재해도 더욱 빈번하게 발생할 것으로 예측되었다. RCP 기법은 2100년까지 온실가스 농도의 배출량의 정도에 따른 네 가지 시나리오로 가장 저배출 시나리오인 RCP2.6에서 가장 고배출 시나리오인 RCP8.5까지 모두 네 가지 시나리오(RCP2.6, RCP4.5, RCP6.0, RCP8.5)로 이루어져 있다. 현재의 온실가스배출량이 지속되어 2100년 이산화탄소 농도가 940ppm이 되는 고배출 시나리오(RCP8.5)에 의하면 북한의 연평균 기온은 15.3도 이산화탄소 농도가 540ppm 정도로 유지되는 저배출 시나리오(RCP 4.5)일 경우 예측되는 온도 11.8도에 비해 훨씬 높을 것으로 예측된다. 한반도 수준에서 RCP8.5의 경우 21세기 후반(2071년~2100년) 평균기온은 16.7도로 현재 기후값(1981년~2010년)의 평균기온 11도에 비해 5.7도나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RCP8.5와 RCP4.5 시나리오를 비교했을 때 21세기 중반 이후 온도의 증가추세가 상이하게 전개된다. RCP 4.5도 시나리오의 경우 21세기 중반부터 온도 추이가 점진적으로 완화되는 것이 반해, RCP8.5의 경우 급격하게 증가하는 추세를 보여주고 있다(정회성 외, 2012). <그림 3> 21세기 한반도 평균기온 예측 자료: 정회성 외(2012) 정부간 협의체(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IPCC)는 지구가 회복 불가능할 정도의 급격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티핑포인트로 지구 평균 기온 상승폭을 1.5°C 이내로 제시하고 있다. 지금의 추세가 지속될 경우 한반도 전역의 기온상승 정도는 파리협정 1.5도를 훨씬 상회할 것으로 예측되며 기후온난화로 인한 자연재해는 훨씬 빈번하게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기후변화가 심화될수록 분쟁 발발의 확률이 높아진다는 점에서 한반도의 분쟁 발발 가능성도 상승한다. 임진강은 군사분계선을 가로질러 북한과 남한이 상·하류지역에 위치한다는 점에서 수자원관리를 두고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임진강은 지구온난화로 인한 강력한 태풍을 포함한 집중호우와 상류지역의 산림황폐화로 인한 홍수의 피해가 큰 곳이다. 임진강 지역의 산림상태는 상류와 하류간에 극명한 차이가 나는데 상류는 산림황폐화와 녹지 손실이 심각하여 홍수가 발생했을 때 침수 위험이 크다. 임진강 수역의 관리를 두고 남북은 2000년부터 논의를 해왔으며 당시 협의된 구체적인 사업내용들로는 홍수예보시설 설치, 기상수문자료 통보, 임진강 유역 및 한강 하류 현지조사, 임진강 상류의 녹화사업 등이 있다. 하지만 일부 사안들만 진행되었고 남북관계 악화로 실질적인 진전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실제 임진강 유역에 설치된 댐들의 방류 문제로 남북간에 갈등이 발생했었다. 북한의 사전 통보 없는 무단 방류로 2005년 연천군 일대 주민들의 재산피해가 발생했으며 2009년 9월에는 임진강 남한쪽 강변 일대에 있던 6명의 피서객이 사망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접경지역은 특히 군사적 대치지역이라는 특수한 상황과 결부되어 자연재해로 인한 갈등이 대규모 군사적 충돌로 비화될 수 있다. 2021년 200명의 사상자를 발생시킨 키르기르스탄과 탄지키스탄의 무력충돌도 양국의 국경 지역에서 발생한 물 분쟁으로 촉발했다. 공동 저수시설을 사용하는 양측 주민간에 발생한 갈등이 총격전으로 번지며 군사 충돌로 확대된 것이다. 중앙아시아도 기후변화로 인해 심화되고 있는 아랄해 고갈과 광범위한 황폐화 문제는 농업과 식량안보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 특히 중앙아시아는 온대성 사막 및 반사막 지역이 많고 1990년 초 구소련 붕괴 이후 경제 및 제도적 변화를 겪은 개발도상국으로 이루어져 있어 기후변화 대응에 취약하다. 키르기르스탄과 탄지키스탄은 수십년 동안 지속된 수자원 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국경협력사업을 이행하며 상호 신뢰를 구축해 왔음에도 무력 충돌이 발생했다는 점은 기후변화가 미치는 파급력의 중대성을 잘 보여준다.        5. 마치며 지금의 온실가스배출량이 지속된다면 미래 한반도 전역의 기온상승은 변화에 관한 IPCC에서 경고하는 티핑포인트(Tipping Point)를 넘어서는 수준으로 기후온난화가 진행될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북한은 기후변화 대응 취약국으로 기후위기는 국가발전과 인민의 생존에 중대한 피해를 주고 있다. 미래의 온도를 예측한 결과 한반도 전역에서 온도가 상승하여 기후변화로 인한 가뭄, 홍수 등 자연재해가 더욱 빈번하게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기후변화가 무력분쟁을 촉발한다는 전제를 수용했을 때, 기후변화는 한반도 평화에 직접적이고 근본적이며 광범위한 위협이 될 수 있다. 지금도 목도되고 있는 기후변화가 초래한 실증적인 비극의 사례들은 한반도의 평화를 상상할 때 기후변화를 핵심의제로 두고 논의해야 한다는 함의를 준다. 기상이변은 직접적으로 사람들의 목숨에 위협이 되며 이상고온, 물 부족 등으로 전염병, 각종 질병을 초래한다. 홍수, 가뭄과 같은 기상이변은 농지에 피해를 주어 식량안보를 위협하고 삶의 터전을 잃어 생계권을 침해한다. 특히 남한에 비해 후진국형 재난재해 피해유형의 특성을 보이는 북한의 인명피해는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남북이 공동으로 자연재해에 대응할 수 있는 기상협력을 추진하는 경우 인명 및 농작물 피해(약 2,090억원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현저하게 감소시킬 수 있다(이우성 외, 2009). 평화의 관점에서 기후변화 대응 취약국인 북한은 기후위기로 내부 갈등이 심화될 수 있으며 이는 한반도를 넘어 동아시아 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다. 북한은 산림복구사업의 성과를 위해 법의 강화를 통해 산림보호를 강조해오고 있지만, 식량난이 심각한 경우 고난의 행군 시기처럼 주민들의 산림훼손을 통제하기 어렵다. 최근 벌목을 두고 북한 주민간, 주민과 통제당국간의 갈등이 첨예화되고 있다. 또한 남북간 지리적 접경지에서 해수면 상승, 홍수 등으로 인한 갈등이 무장폭력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높다. 기후변화가 분쟁을 촉발시킨다는 연구결과와 실증적인 사례들은, 기후변화가 향후 한반도에 분쟁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함의를 준다. 미국의 국가정보국(DNI)은 ‘기후변화에 대한 국가정보평가(National Intelligence Estimate on Climate Change)’를 통해 북한을 비롯한 11개 국가를 ‘기후변화 대응 취약 우려국(highly vulnerable countries of concern)’으로 지정했다. 본 보고서는 기후변화 취약국에 기후위기 대응 능력을 구축하도록 지원하는 것이 향후 미국의 안보위협을 줄이는데 이익이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해석하면, 우선적으로 남북협력을 통해 북한의 기후변화 대응 능력을 제고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장기적 관점에서 한반도 통합재난재해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의 협력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2021년 11월 영국 글래스고에서 개최된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은 기존의 2030 NDC 목표를 14% 상향 조정한 2018년 대비 40%이상 감축 목표를 선언했다. 동시에 ‘산림 및 토지이용에 관한 글래스고 정상선언(Glasgow Leaders Declaration on Forests and Land Use)’의 지지를 표명하며 “남북한 산림협력을 통해 한반도 전체의 온실가스를 감축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COP26 연설, 2021). 같은 날 한국의 환경부 장관은 내년 개최되는 ‘세계산림총회’에서 남북한 산림협력 문제를 의제화할 것이며 북한과 산림협력에 대한 소망을 피력했다. 기후변화 대응을 매개로 남북이 만들어 갈 수 있는 협력은 궁극적으로 한반도의 지속가능한 평화를 구축하는데 중요한 모멘텀이 될 수 있다.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기획: 유기은 박사후연구원 저자소개 이 경 희  한국수출입은행 책임연구원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북한의 물 협력을 오스트롬의 SES 분석틀의 적용한 연구로 북한학 박사학위(2019) 를 취득. 북한의 물, 환경 문제 등을 통해 지속가능한 협력을 연구해 왔음. WWF에서 기후에너지 프로그램 오피서로 근무했던 경험을 계기로 최근에는 기후변화를 매개로 한 남북협력 방안을 주요하게 연구하고 있음. 주요 연구로는 "북한의 물 거버넌스 변화 연구: 북한과 유니세프의 물 협력 실증 분석을 중심으로," 국제정치 논청 제59집 제3호, "북한의 식수 문제를 통해 고찰한 남북 물 협력의 중요성", 북한연구학회 제23권 제1권, "북한과 유엔의 진화하는 협력 게임: 유엔의 대북 개발협력 유형의 변화 분석을 중심으로" 현대북한연구 제 22권 제2호 등이 있음메노나이트 대학교(Eastern Mennonite University) 교수로 정치학과 평화학을 가르치고 있다.
  • [평화담론] 정치적 화해의 관점에서 본 제주 4.3 사건
    저자
    김지은(Eastern Mennonite University)
    발간호
    2021-06
    역사가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이 ‘극단의 시대’라 명명하기도 했던 지난 20세기는 세계 곳곳에 참혹한 전쟁과 학살, 독재와 인권 유린의 상처를 남겼다. 이와 같은 비극을 경험한 국가와 사회가 평화와 민주화의 시대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과거의 폭력과 불의를 어떻게 마주하고 훼손된 정의를 회복할 것인가의 문제는 20세기 후반부터 전환기 정의(transitional justice)라는 주제로 국제 인권 및 평화 담론의 핵심 이슈 중 하나로 부각되었다(김헌준 2017). 가혹한 폭력과 인권유린을 자행한 국가 권력과 가해자들은 그들의 행동에 대해 어떤 책임을 어떻게 져야 하는가? 피해자와 생존자들의 상처, 피해, 훼손된 명예는 어떻게 회복되고 보상받아야 하는가? 폭력과 파괴를 경험한 사회가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진정한 공존과 평화에 이르기 위해서는 어떤 조치들이 취해져야 하는가? 개인·사회·국가 간 화해를 다루는 이 같은 핵심 질문은 갈등의 단순한 종식과 예방을 넘어 적극적 평화(positive peace)를 이룩하기 위해 반드시 다뤄져야 할 문제들이었으며, 전쟁과 갈등, 독재 통치를 경험한 세계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형태의 대답과 정책들이 시도되었다. 20세기 냉전의 최전선에서 권위주의 독재 통치 하에 다양한 형태의 인권 유린을 경험한 한국 사회 역시 그 예외는 아니었다. 오랜 독재와 냉전이 종식된 이후 시민사회와 학계, 정치권에서는 과거의 어두운 역사를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논의가 활발히 전개되었으며, 이는 한국 사회의 인권 및 평화 담론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이 글은 정치적 화해의 윤리적 지침이 되는 다양한 정의(justice)의 개념을 살펴보고 민주화 이후 과거의 인권유린을 극복하고 정치적 화해를 이룩하기 위해 이루어진 노력의 대표적 사례로서 제주 4.3 사건의 진상규명 노력과 정부사과, 그리고 그 후속조치를 살펴본다. 제주 4.3 사건은 1947년에서 1954년에 걸쳐 제주도에서 벌어진 소요 사태 진압 과정에서 있었던 무차별적 국가 폭력으로 인해 수많은 무고한 인명이 희생당하고 지역 공동체가 파괴된 사건이었다. 사건의 진실은 독재 정권의 억압 하에 철저히 은폐·왜곡 되었으며 생존자와 피해자 가족들은 수십 년에 걸쳐 사회적 낙인과 연좌제로 고통 받았다. 제주 4.3 사건의 진상규명은 가혹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오랜 기간 제주 4.3 사건의 진실을 밝히고자 애썼던 시민사회의 노력이 있었기에 시작될 수 있었다. 이렇게 지속된 시민사회의 움직임에 민주화 이후 정치권이 합류하면서 제주 4.3 사건의 진실규명 노력은 1990년대 말부터 보다 구체적인 형태를 띠기 시작했다. 김대중 정부에서는 제주 4.3 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대한 특별법 통과와 함께 한국판 ‘진실과 화해 위원회’라 할 수 있는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 위원회’가 공식 기관으로 발족되어 정치적 화해의 첫 번째 단계라 할 수 있는 체계적인 진실 규명 및 명예회복 노력이 이루어졌다. 이어 노무현 정부에서 있었던 최초의 국가수반에 의한 정부 책임 인정과 사과는 진상조사보고서 결론에 기반을 둔 4.3 위원회의 건의안을 이행하고 피해자들의 불명예를 씻어준 중요한 의미를 갖는 성취라 평가된다. 이 같은 제주 4.3 사건에 관한 담론과 정책은 문재인 정부 시기 제주 4.3 특별법 개정안 통과 및 피해자에 대한 배보상 논의 구체화와 함께 현재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정치적 화해에 있어 정의의 중요성 제노사이드, 전쟁범죄, 민간인 학살, 체제차원의 인권유린 등과 같은 잔학행위가 발생한 이후 우리는 흔히 복수와 용서, 그리고 그 양극 사이에 존재하는 다양한 대응방식을 놓고 고민하게 된다(Minow 1998). 전쟁, 내전, 식민통치, 독재통치 등이 종식된 후 새로운 시대로 이행하는 사회는 과거 자행된 과오를 어떻게 다루고 또 기억해야 하는가? 현재의 분쟁과 갈등이 종식되는 것을 뜻하는 소극적 평화 (negative peace)가 아니라 보다 지속가능한 적극적 평화(positive peace)를 추구하는 데 있어 정의에 기반을 둔 화해의 정치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분쟁과 갈등으로부터 갓 벗어난 사회는 흔히 다음과 같은 다양한 정책 옵션들을 검토하게 되는데, 이는 어떠한 형태의 정의가 구현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각기 다른 관점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 첫 번째는 가해자 처벌에 초점을 둔 형사기소의 방식으로, 과거의 국가 폭력이나 범죄행위에 대한 법적 조사와 처벌을 통해 제노사이드, 학살 및 기타 중대한 인권침해를 자행한 개개인에게 책임을 지우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가해자의 직접적 처벌을 목적으로 하지는 않되 피해자와 생존자들이 자신에게 벌어진 인권침해의 실태와 그 맥락을 알 권리가 있다는 원칙에 바탕을 두고 진실규명에 초점을 두는 진실위원회(truth commission)가 있다. 이와 더불어 세 번째로는 과거의 불의로 인해 발생한 물질적·정신적 피해를 수복하기 위한 재정적 보상 혹은 정부 차원의 공식사과나 추념일 지정, 추념사업 진행 등과 같은 상징적 노력을 수반하는 배보상(reparation) 정책이 있다. 네 번째 방식은 과거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경찰, 군, 사법제도 등 제도 일반을 재검토하고 재구축하는 제도 개혁(institutional reform)이다. 이처럼 이행기 사회의 정의 추구는 다양한 방식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 정치적 화해는 과거의 불의로 인해 야기된 심대한 인권유린과 파괴된 사회적 관계를 묵과하지 않고 바로 세우고자 하는 것이며, 이는 과거의 잘못된 정책으로 인해 개인, 사회 및 국가 구성원에게 끼친 다양한 상처를 회복시키고자 하는 다방면의 노력을 가리키는 개념이기도 하다(Philpott 2012). 이 과정에서 중요한 윤리적 지침이 되는 것이 바로 정의의 개념인데, 이는 종교적 교리, 지역사회 문화, 공동체 정체성, 국제인권 규범 등과 같은 다양한 가치와 원칙에 바탕을 두게 되며 그런 점에서 시대와 장소, 사안의 성격에 따라 다른 접근법과 전략을 갖게 된다(Boesenecker and Vinjamuri 2014). 정의에 대한 여러 접근법 중 가장 대표적이고 또 대비되는 것이 응보적 정의(retributive justice)와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이다. 먼저 응보적 정의는 과거 발생한 불의에 대한 처벌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잘못이 있는 자를 징벌함으로써 피해자와 생존자의 존엄성을 회복하고 새로운 정치질서의 정당성을 확립하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가해자 역시 온당한 처벌을 받고 죗값을 치른 후 동등한 주체로서 공동체 구성원으로 사회에 재합류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정치적 화해에도 중요한 의미를 부여한다 (Philpott 2010; 2012). 응보적 정의의 대표적 적용 방식으로는 앞서 언급한 형사기소를 들 수 있다. 사법절차를 통한 형사기소와 처벌은 과거의 정치적 폭력과 반인권 범죄를 공식 기록으로 남길 뿐만 아니라 개인에게 법적 책임을 명확히 물음으로써 불특정 다수에게 무분별한 비난이 가해지는 것을 방지한다는 면에서 의미를 가진다. 하지만 기소와 형사재판 같은 방식의 응보적 정의에는 여러 한계와 문제점 또한 존재한다. 명확한 책임규명이라는 이점이 있기는 하지만 개개인의 형사 처분은 궁극적으로 책임을 개인화하는 것이며 모든 가해자를 처벌하지 못하는 현실여건상 결국 일부 개인만을 선택하여 징벌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처벌 대상 선별의 문제는 가해자 집단을 필연적으로 축소시키게 되며, 기소가 이루어지지 않은 사건은 진실이 밝혀지지 않고 묵인된다는 문제점 또한 존재한다. 또한 응보적 정의에 기초한 처벌은 많은 경우 해당 시점의 권력관계를 반영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 공정한 재판이 아닌 ‘승자의 정의(victor’s justice)’가 될 가능성을 내포한다. 또한 정의에 따른 처벌이 아니라 마녀사냥이 될 위험이 있으며, 처벌받는 이들이 불만이나 원한을 품게 됨으로써 정치적 화해가 저해될 수 있다는 우려 역시 수반한다(Minow 1998). 이 같은 응보적 정의의 한계를 보완하고 개선하기 위한 접근법으로 제시된 것이 바로 회복적 정의의 개념이다. 응보적 정의가 개개인의 책임 규명과 처벌에 집중하는 반면, 회복적 정의는 피해자의 상처 치유와 공동체 차원의 신뢰회복 및 화해를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둘은 크게 대비된다. 응보적 정의가 개인 차원에 초점을 둔 정의구현 방식이라면, 회복적 정의는 과거 불의로 인해 파괴된 개인 간 관계 그리고 개인과 사회의 관계 회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관계적 차원에 초점을 둔 정의 구현 방식이라 할 수 있다(Llewellyn and Philpott 2014). 회복적 정의의 보다 구체적인 특징은 다음과 같다. 먼저 검사와 피고인이 중심이 되는 형사재판과 달리 과거 범죄관련 행위자와 피해자, 목격자 및 공동체 구성원 모두를 포괄한다. 진실위원회의 공청회와 같은 절차를 통해 평범한 사람들에게 권한을 주고 힘을 실어주는(empower) 것이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며, 가능한 다수의 사람을 포함하는 정책결정과정을 추구한다. 또한 피해자의 알 권리 및 이들이 입은 피해와 상처에 큰 관심을 두고 그 회복을 포함한 공동체 구성원 전반의 관계회복을 강조한다. 또한 회복적 정의는 피해자들의 신체적, 정신적, 경제적 피해에 대한 물질적·상징적 보상을 수반하기도 하는데 이는 개개인의 법적 배보상 권리(entitlement)를 넘어 피해자들과 사회의 회복에 보다 중점을 둔다는 점에서 자유주의 전통에 입각한 배상적 정의(restitutive justice)와 구별된다(Philpott 2012). 회복적 정의를 실제 적용한 대표적 사례로 들 수 있는 것이 데즈먼드 투투 성공회 대주교(Archbishop Desmond Tutu)가 이끈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진실과 화해 위원회(Truth and Reconciliation Commission)’이다. 진실과 화해 위원회는 1990년대 초 인종분리정책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의 종식과 함께 민주적 선거에 의한 흑백연합정부가 수립되면서 도입되었다. 이는 과거 자행된 인권유린의 실태를 조사하고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구미 법학계에서 논의되던 회복적정의 개념에 주목하여 이를 정치적 화해를 위한 실천 전략으로서 선택된 것이었다. 남아공의 경우 특이하게도 무엇보다 진실을 밝히는 데 주안점을 두어 가해자의 자백을 받고자 필요에 따라 사면을 제공하기도 했다. 나아가 피해자의 개념을 폭넓게 규정하여 직접피해자를 넘어 간접적 피해를 입은 이들까지 지원을 제공하고자 했으며, 전체 사회 공동체를 진실규명 과정의 참여자이자 증인으로 포함시켜 과거 원한의 해소를 넘어선 미래지향적 공동체 건설을 목표로 제시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Llwellyn 2007). 이처럼 관계의 회복에 초점을 둔 남아공의 정의 추구 방식은 남아공의 민주화에도 긍정적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된다(Gutmann and Thompson 2000).   제주 4.3의 진상규명과 정치적 화해를 위한 노력 한국 사회에서도 민주화 이후 과거 독재통치와 냉전의 영향 하에 벌어진 심각한 인권유린의 진실을 밝히고 진정한 정치적 화해를 통해 사회통합을 이루려는 시도는 여러 부문과 사안에 걸쳐 이루어졌다. 그 중에서도 제주 4.3 사건의 진상규명과 피해자의 명예회복 노력, 정부 사과는 정치적 화해를 위한 한국 사회의 노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이고도 중요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제주 4.3 사건은 1947년에서 1954년 사이 제주도에서 벌어진 소요 사태 진압 과정에서 나타난 무력 충돌과 국가 폭력으로 인해 다수의 제주도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다. 남로당 제주도당의 봉기일인 1948년 4월 3일에서 그 이름을 따 ‘4.3 사건’이라 불리지만, 폭력의 시발점은 1947년 3월 1일의 3.1절 제주도대회에서 있었던 군중에 대한 경찰의 발포 사건이었다. 이후 어지러워진 민심을 바탕으로 남로당 제주도당이 총파업을 일으키자 미군정과 경찰은 이를 공산세력의 준동으로 간주하고 무차별적 폭력과 테러로 악명 높았던 극우단체 서북청년단까지 동원하며 대대적 진압작전을 개시했다. 1948년 4월 3일의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봉기, 5월 10일의 제주 지역 총선 무산 후 이승만 정권은 군 병력을 증파하며 제주도 전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한층 더 무자비한 토벌 작전을 전개하였다. 11월부터 약 4개월에 걸쳐 진행된 무장대 토벌 및 초토화 작전으로 인해 제주도 중산간지대 95% 이상의 마을이 불타거나 파괴되었고, 중산간 지역은 물론 여타 지역에서 수만 명의 무고한 주민들이 군과 경찰, 서북청년단에 의해 감금·고문·살해되었다. 1949년 한라산 일대의 무장대가 사실상 궤멸된 후에도 가혹한 탄압은 지속되었다. 귀순하면 용서하겠다는 군경의 약속을 믿고 산에서 숨어있다 내려온 수많은 무고한 민간인들이 전국 각지의 형무소에 수감되었고, 한국전쟁 발발 직후 이들 수감자는 물론 제주도 내 보도연맹 가입자, 4.3 사건 관련 요시찰자, 입산자 가족 수천 명이 소위 예비검속의 명목 하에 집단 처형되었다. 4.3 사건의 공식적인 종식 시점은 한라산 금족령이 해제된 1954년 9월로, 소요가 시작된 1947년 3월부터 이 시점까지 7년 7개월에 걸쳐 약 2만 5천에서 3만 명이 살해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제주 4.3 사건은 폭력과 억압으로 점철된 한국 현대사에서도 가장 비극적인 참사 중 하나로, 당시 제주도 인구의 10분의 1 가량이 사망했고 수십 개의 마을이 사라졌으며, 생존자와 피해자 가족들은 이후로도 오랫동안 연좌제로 인한 제도적 불이익과 사회적 낙인으로 인해 고통 받았다. 이와 같은 제주 4.3 사건의 비극은 이승만 정권 이후로도 오랜 기간에 걸쳐 철저히 은폐되고 왜곡되었다. 1960년 4.19 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끝난 직후 국회 양민학살사건 조사단이 다른 지역과 함께 제주도에서의 학살에 대한 진상 조사를 개시하였지만 부실한 조사로 인해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1961년 5월 16일 군부 쿠데타 발생과 함께 정부 차원의 진상규명 노력은 중단되었다(김종민 2021). 이후로도 정부 공식 문서에서 제주 4.3 사건은 ‘공산 폭동’으로 통칭되었으며, 이는 제주도에서 벌어진 파괴와 학살을 은폐·축소하고 무고한 민간인의 희생을 공산주의 확산 방지를 위한 노력 과정에서 벌어진 부수적 피해로 간주하는 독재 정권의 시각을 반영한 것이었다. 반공법과 국가보안법을 통한 언론 및 학술 자유 통제 정책은 4.3의 진실이 세상에 드러나는 것을 막았으며, 4.3 사건 이후 지속된 억압적 사회 분위기와 연좌제는 국가 폭력의 피해자와 그 가족들을 ‘빨갱이’로 낙인찍음으로써 이들을 침묵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 같은 억압과 통제 하에서도 4.3 사건의 진실을 알리고자 하는 노력은 국내외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계속되었다. 재일 한인 작가 김석범은 1957년 소설 『까마귀의 죽음』을 통해 4.3 사건의 참상을 처음으로 다루었고, 제주도에서 벌어진 비극은 1960년대부터 1990년대에 걸쳐 그가 집필한 대하소설 『화산도』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묘사되었다. 국내에서는 1978년 현기영의 소설 『순이 삼촌』이 4.3 사건 당시 발생한 제주 북촌리 학살을 정면으로 묘사하여 반향을 일으켰다. 군부 정권은 이를 곧 금지도서로 지정했으나 『순이 삼촌』은 지하 활동가들에 의해 은밀히 유통되며 4.3의 진실을 알리는 데 기여했다. 1980년대 후반 민주화의 물결 속에서 4.3 사건의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시민사회와 제주도민들의 노력은 더욱 본격화되었다. 1987년 제주대학교 총학생회가 처음으로 4.3 사건의 희생자들을 위한 위령제를 치렀고, 1988년 4.3 사건 40주년을 맞아 본격적인 진상규명운동이 시작되었다. 이듬해인 1989년에는 제주지역 시민사회단체와 서울 제주사회문제협의회의 주도로 제주시민회관에서 처음으로 지역 차원의 공개 추모행사가 치러졌다. 또한 4.3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제주 4.3 연구소가 창립되어 사건을 경험한 이들의 생생한 증언을 채록한 『이제사 말햄수다』1, 2권을 발간하였으며, 제주신문과 제민일보 역시 4.3 사건 생존자 및 목격자들의 증언을 담은 기사를 연재하기 시작했다(고경민 2012). 제주 4.3의 진실과 정의를 찾기 원하는 시민사회의 노력은 1990년대 지역 사회 및 중앙의 정치권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였다. 1993년 제주도의회 산하에 첫 공공기구로서 제주 4.3 특별위원회가 설립되었고, 특별위원회는 1995년 5월 처음으로 14,125명의 희생자 명단을 담은 『4.3 희생자 피해 조사 1차 보고서』를 발간하였다. 이와 같은 제주도에서의 노력을 바탕으로 국가 차원에서 진상 조사 및 피해 실태 규명에 나설 것을 요구하는 국회 청원 운동이 개시되었으며, 4.3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공약으로 내세운 김대중 후보가 1997년 대선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제주도를 넘어 국가 차원에서의 변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1998년 김대중 정부의 출범과 함께 여당은 같은 해 3월 당내에 ‘제주도 4.3사태 진상조사 특별위원회’를 구성하는 한편, 5월과 9월, 각각 제주도와 국회에서 4.3 사건에 대한 공청회를 개최했다. 생존자, 피해자 유족 및 제주도 내 시민사회 단체들은 ‘제주 4.3 특별법 쟁취를 위한 연대회의’를 조직하여 제주 4.3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요구했으며, 국내 184개 시민사회 단체가 이에 함께 연대함으로써 국회에서 특별법 제정을 위한 노력은 더욱 탄력을 얻게 되었다((4.3 위원회 2003; 양조훈 2015). 이와 같은 노력의 결과 국회는 여야 합의를 통해 ‘제주 4.3 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을 1999년 12월 통과시켰고, 김대중 대통령은 2000년 1월 유족 및 시민단체 대표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특별법에 서명했다. 통과된 특별법은 (1) 제주 4.3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2) 관련 희생자와 유족들의 명예를 회복시킨다는 두 가지 핵심 목적을 제 1조에 명기하였다. 또한 특별법 통과와 함께 총리실 산하에 신설된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약칭 4.3위원회),’ 제주도지사 산하의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 실무위원회(약칭 실무위원회),’ 그리고 제주도 부지사, 유족 대표 및 관련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진상조사보고서 작성기획단’이 핵심 기구로서 활동하게 되었다(4.3 위원회 2008). 특별법 통과로 인해 발족된 4.3위원회는 정치적 화해 메커니즘 중 진실위원회 모델을 따른 것이라 할 수 있다. 출범 이후 4.3위원회의 우선 과제는 제주 4.3사건에서 누구에 의해 어떤 일이 벌어졌고 누가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 밝히는 일이었다. 2001년 1월 발족한 4.3위원회 산하 진상조사보고서 작성기획단은 전문위원 5명 및 조사요원 15명 등 20명의 상근 진상조사팀을 두고 같은 해 9월 조사에 착수, 2년 6개월에 걸쳐 국내외 자료 수집과 증언 채록에 나섰다. 작성기획단은 조사권한의 제약에도 불구하고 군경을 비롯한 19개 국내 정부 기관에 자료를 요구해 제출받는 한편, 2001년 7월부터 약 1년 4개월에 걸쳐 503명의 국내 사건 체험자들의 증언을 녹취했다. 또한 조사팀은 미국, 러시아, 일본에 소장된 관련 문서를 입수하는 동시에 미국 및 일본 체류 중인 관련자들의 증언 또한 확보하였다(4.3 위원회 2003). 사건 발생 후 50여년이 지난 후에야 시작된 뒤늦은 조사 개시 시점, 군경의 관련 문서 폐기, 일부 관계자의 증언 거부 등으로 인해 진실을 완전히 밝히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으나, 4.3 위원회는 당시 사건이 당시 제주도에서 약 2만 5천에서 3만 명의 인명피해를 발생시켰음을 밝히고 불법적 공권력 행사를 통한 민간인 살상에 대해 정부 책임이 존재한다고 결론지었다(4.3 위원회 2003). 이상과 같은 조사 내용을 바탕으로 4.3 위원회는 2003년 2월 보고서 초안과 함께 (1) 희생자 및 유족들에 대한 정부 사과, (2) 4.3 추념일 지정, (3) 최종보고서의 교육자료 활용, (4) 제주 4.3 평화공원 건립 적극 지원, (5)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유족을 위한 생계비 지원, (6) 집단 매장지 및 유적지 발굴 지원, (7) 추가 진상조사 및 기념사업에 대한 지속적 지원을 그 내용으로 하는 7대 건의안을 총리실에 제출했다(양조훈 2015). 정부 차원의 진상조사 및 공식 보고서 발간이 제주 4.3의 정의 회복을 위한 중요한 첫 걸음이었다면, 2003년 10월 진상조사보고서 공식 발간 직후 있었던 노무현 대통령의 사과는 또 다른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10월 16일 진상조사보고서의 공식 확정 이후 노무현 대통령은 31일 제주도 라마다 호텔에서 4.3 사건 생존자 및 유가족이 함께한 자리에서 “[제주 4.3]위원회의 건의를 받아들여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으로서 과거 국가권력의 잘못에 대해 유족과 제주도민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라고 공식 사과하였다(대통령비서실 2004, 478-9). 대통령의 제주 방문에 앞서 청와대 비서진이 유족회 및 관련 시민단체 대표들을 만나 이들의 의견을 취합할 때까지만 해도 많은 피해자 및 유가족들은 대통령이 이렇게 분명하고 직접적으로 사과할 것으로 예상하지는 못했으며 모호한 형태의 유감 표명 정도가 될 것으로 예상한 이들이 많았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피해자 및 유족에 대한 사과와 위로를 건네는 것은 물론, “과거 국가권력의 잘못”이라는 명시적 표현을 통해 국가 책임을 명확히 확인하고 인정함으로써 피해자 및 유가족들의 긍정적 반응을 이끌어냈다. 2003년의 대통령 사과는 과거의 인권 유린에 대한 대한민국 정부 수반 최초의 공식 사과로서, 4.3 사건의 정의 회복은 물론 한국 현대사에 있어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 사건이라 평가된다(Kim 2018). 그 이후에도 4.3 사건의 진상조사와 피해자 명예회복을 위한 노력은 계속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6년 국가수반으로서는 최초로 제주 4.3 위령제에 참석하여 참배하고 다시 한 번 제주도민들에게 사과하였고, 2007년에는 특별법 개정을 통해 처음의 4.3 특별법에는 포함되지 않았던 불법 군법회의 피해자들이 ‘수형자’로서 특별법이 인정하는 4.3 사건의 희생자로 포함되었다. 또한 법 개정과 함께 4.3 평화재단이 설립되어 추가 진상조사, 기념관 및 4.3 평화공원의 운영과 관리를 담당하게 되었다. 또한 4.3위원회가 건의한 국가 공식 추념일 지정은 2014년 박근해 정부 시기 대통령령을 통해 4월 3일이 4.3희생자 추정일로 공식 지정됨으로써 성취되었다.   앞으로의 여정 : 배보상 논의와 후속조치 이후 제주 4.3 사건에 대한 우리 사회와 정부의 노력은 진상규명과 정부 사과를 넘어 피해자와 유족에 대한 배·보상의 영역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사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 제주 4.3 사건과 관련한 희생자, 유가족 및 시민단체 활동의 우선순위는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에 있었다. 물론 이 시기에도 배·보상을 원하는 이들이 있기는 했으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조치조차 쉽지 않았던 당시 상황 상 배상과 보상의 문제는 이차적 순위의 목표로 여겨졌다(Kim 2014). 기존의 4.3 특별법은 4.3 평화재단이나 평화공원처럼 집단 차원의 간접 지원 방안만이 담겼고, 4.3 피해자 개개인에 대해서는 의료 및 생계비 보조 정도의 간접적 소규모 지원만이 시행되었다. 국가수반에 의한 정부 책임 인정이 공식화되었던 2003년 노무현 대통령 사과에서도 피해자 및 유족에 대한 배상과 보상은 언급되지 않았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부터 이 같은 흐름은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2005년 발족되어 5년여 간 활동한 정부 산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의 진상규명 내용을 바탕으로 한국전쟁 시기 민간인 집단 희생 사건에 대한 유족의 국가배상소송이 이어졌고, 2009년 울산보도연맹사건 희생자 유족의 승소는 중요한 선례를 남겼다. 제주도에서도 2014년과 2015년 예비검속 희생자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한 집단손해배상 소송에서 승리하면서, 제주 4.3 사건의 다른 피해자들에 대해서도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소모하는 개별적 소송이 아니라 특별법 개정을 통한 국가 배상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이재승 2020; 양조훈 2020).이 같은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4.3 유족회와 4.3범국민위원회, 그리고 제주 출신의 국회위원들은 배보상 문제를 포함하는 4.3 특별법 개정을 요구하였고 이에 따라 2019년 12월 특별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되었으나, 심각한 여야 정쟁으로 인해 법안 통과는 좌초되었다(제주도인터넷신문기자협회 2020). 배보상 문제는 정부차원에서도 중요한 의제로 부각되었다. 2018년 4월 3일 제주 4.3 사건 70주기 추념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은 제주 4.3 사건의 비극과 정부 책임을 다시 한 번 인정하며, “유족들과 생존희생자들의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조치에 최선을 다하는 한편, 보상과 국가트라우마센터 건립 등 입법이 필요한 사항은 국회와 적극 협의”할 것임을 밝힘으로써 제주 4.3 사건의 피해자 및 유족에 대한 치유와 정부의 배·보상 추진 의지를 공식화했다(청와대 2018, 387-8). 문 대통령의 2020년 제주 4.3 추념식 연설은 배·보상 문제를 보다 직접적으로 다루었는데, 그는 “제주 4.3은 개별 소송으로 일부 배상을 받거나 정부의 의료지원금과 생활지원금을 지급받는 것에 머물고 있을 뿐 법에 의한 배·보상은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더딘 발걸음에 대통령으로서 마음이 무겁습니다”라고 유감을 표하는 한편, “기본적 정의로서의 실질적인 배상과 보상이 실현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해 나가겠습니다”라고 선언하고 국회에 조속한 4.3 특별법 개정을 촉구했다(청와대 2021, 338-9). 이러한 노력을 통해 마침내 2021년 2월 26일 국회는 추가 진상조사, 희생자 특별 재심 신설과 함께 위자료 등 특별 지원 방안 강구 조치를 담은 4.3 특별법 전면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된 특별법은 “국가는 희생자에 대하여 위자료 등의 특별한 지원을 강구하며, 필요한 기준을 마련한다”라는 조항(제 16조 희생자에 대한 위자료 등)을 포함하게 되었는데,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오영훈 의원은 이에 대해 “위자료 개념상 배상의 용어가 담겨 있고 배상의 용어를 정부가 수용했다는 것은 의미가 크다”라고 설명하였다(고성식 2021). “배상”이나 “보상”이라는 명시적 표현이 담기지 않고 “위자료”라는 표현이 사용된 데 대해 여러 유가족 및 관련 시민단체, 지역 언론들이 유감을 표명하기는 하였으나, 개정된 특별법은 처음으로 4.3 피해자 개개인에 대한 직접적 국가 배보상의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변화로 보는 시각 또한 존재한다(박정섭 2021). 이후 구체적 희생자 피해 보상 기준 마련을 위한 한국법제연구원의 연구 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2021년 10월 4.3특별법의 보완입법을 위한 일부개정안이 발의되었다(이정민 2021). 발의된 일부개정안은 기존에 논란이 되었던 “위자료”라는 용어 대신 적법행위 뿐 아니라 위법행위로 인한 손해전보를 포함하는 개념으로서 “보상금”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되었다. 또한 구체적 보상금액으로는 제주 4.3 사건 시기 통상임금을 기초로 한 일실 이익, 보상 지연,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 등을 포함하여 희생자 유형별로 최고 9천만 원을 상정하고 있다(최환용 2021). 다만 이 개정안에 대해서도 “배상”이 아닌 “보상”이라는 포괄적 용어의 사용, 보상금의 지급 대상, 보상금액의 산출 방식 및 적정선, 재산상 피해 보상 누락 문제 등에 대해 논란이 존재하며 관련 논의가 계속 진행 중이다(조수진 2021). 맺으며 제주 4.3사건은 비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현대사의 비극이었지만 민주화 이후 우리 사회가 정의의 회복을 통한 정치적 화해를 학습할 중요한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4.3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은 냉전과 독재정권 시기 변방의 위치에 있던 제주 지역 및 시민사회 단체의 지속적인 노력을 통해 그 동력이 마련될 수 있었으며, 4.3위원회를 통한 진상규명 노력과 국가수반의 사과, 그리고 최근 진행되고 있는 배보상 문제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와 정치권 역시 정치적·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데 있어 느리지만 꾸준한 진전을 보여 왔다. 이제 제주 4.3 사건은 금서를 돌려보며 남 몰래 분노하는 숨겨진 과거가 아니며, 국가지정 추념일을 통해 우리 사회 모두가 기억하고 정규 교육과정 반영을 통해 우리나라 학생 모두가 그 참혹함과 불의함을 배우는, 우리 모두의 역사가 되었다. 이상과 같은 회복적 정의를 위한 노력을 통해 제주 4.3의 피해자와 가족들은 그들을 상처 입히고 탄압했던 우리 사회 및 국가와의 정치적 화해에 나설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아직 우리 사회 일각에선 제주 4.3의 진실을 외면하고 피해자와 유족들의 명예를 폄훼하는 목소리가 여전히 나오고 있으며 이는 유사한 사건에 대해 수많은 나라가 겪었거나 현재도 겪고 있는 일로, 어두운 과거에 대한 정치적 화해가 결코 쉽지 않은 일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정의의 회복과 진정한 화해는 과거의 불의와 상처를 단순히 한 두 번의 정치적·사회적 프로젝트를 통해 완결짓고 '졸업'하는 과정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제주 4.3에 대한 우리 사회의 정의 회복과 화해는 앞으로도 오랜 시간에 걸친 노력과 변화를 요구할 것이나, 그 과정을 통해 우리 사회는 한층 더 성숙한 평화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기획: 유기은 박사후연구원 저자소개 김지은 가톨릭대학교와 서울대학교에서 학사 및 석사를 받았고 미국 노트르담대학(University of Notre Dame)에서 정치학/평화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핵심 연구분야는 국제 규범, 인권, 정치적 폭력과 화해이며 현재 미국 이스턴메노나이트 대학교(Eastern Mennonite University) 교수로 정치학과 평화학을 가르치고 있다.
  • [평화담론] 선평화·후통일 원칙의 현재적 의미와 발전 방향
    저자
    정대진(한평정책연구소 평화센터장)
    발간호
    2021-05
    문제제기 우리는 정말 ‘평화’ 너머의 ‘통일’까지 원하고 있는가?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통일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응답은 지난 30년간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2021년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통일의식조사에서는 통일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급기야 50% 아래로 나타났다. 통일이 “매우 필요하다”와 “약간 필요하다”를 모두 합쳐 44.6%였다. 2007년 조사를 시작한 이래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이 조사에서 통일의 이유와 관련하여 “같은 민족이니까”라고 응답한 비중은 2019년 34.6%에서 2020년 37.3%, 2021년 45.7%로 최근 다소 상승하는 추세이나 2008년 최고치인 57.9%에 비하면 10% 이상 낮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다음으로 “남북한 간 전쟁 위협을 없애기 위해”서라고 응답한 비중은 2021년 28.1%로 2019년 32.6%, 2020년의 37.9%에 비해 다소 하락하였으나 2009년의 14.5%에 비해서는 두 배 이상 높은 수준을 보였다. 2021년 결과에서는 민족적 당위 차원에서 통일이 필요하다고 인식하는 경향이 다소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지만 전체적인 경향에서는 당위로서의 ‘민족’보다 현실로서의 ‘평화’를 통일의 이유로 택한 사람들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2020년의 경우에는 통일의 이유로 전쟁 위협 제거라는 현실로서의 평화를 선택한 응답(37.9%)이 같은 민족이기 때문이라는 당위적 이유를 선택한 응답(37.3%)보다 매우 근소하지만 높게 나타난 적도 있다. 통일과 평화에 대한 인식의 지각변동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2000년대 남북한 평화공존에 대한 논의가 확산되면서 통일과 평화의 관계에 대한 연구와 담론은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왔다.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은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한다고 하면서 통일을 궁극적인 지향점으로 분명히 밝혔다. 하지만 그 이후 남북한의 공식적인 통일방안에 대한 논의보다는 남북교류가 확대되면서 ‘사실상의 통일’이나 ‘과정으로서의 통일’ 담론이 전면화 되는 양상이 펼쳐졌다. 이어서 심화된 북한 핵위기로 인해 평화적인 상황관리의 중요성이 점차 강조되면서 ‘사실’이나 ‘과정’으로서의 통일은 평화의 일부분이거나 우선순위에서 평화보다는 후순위로 밀리는 듯한 현상이 나타났다. 남북한이 공히 민족공동체통일방안과 고려민주연방공화국통일방안을 내세우고 있지만 이 공식 통일방안에 대해 건설적이고 발전적으로 논의하는 남북회담은 2000년대 이후에는 특별히 없었다. 우리 사회 내에서도 통일방안에 대한 공감대나 사회적 합의는 현재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 현 상황을 미래의 통일과 당면현실인 평화 중에서 우선 평화를 선택하고 상황을 발전시키며 통일을 지향하고 있는 단계라고 이해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평화공존론이 분단을 고착화시키자는 취지에서 제기된 것이 아니라고 이해하고 접근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보고 있는 현실은 전통적인 통일국가상과 관념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글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선평화·후통일 원칙의 현재적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현재는 평화번영이라는 담론이 점차 주류를 이루어 가고 있는 듯하지만 공식적으로 통일을 지양하거나 폐기한 적이 없는 상태에서 통일과 평화의 선순환과 발전을 어떻게 이룰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미래지향적인 논의의 출발점 제시를 목표로 한다.   선평화·후통일 원칙과 남북한의 통일방안 가. 선평화·후통일 원칙과 남한의 통일방안 우리 정부는 1974년 1월 18일 북한에게 ‘남북불가침협정’을 체결하자고 제의하고, 1974년 8월 15일에는 남북 간 평화공존 및 평화통일을 주요내용으로 하는 ‘평화통일 3대 기본원칙’도 제안했다. 이 원칙은 첫째, 평화통일을 위해 한반도 평화정착 및 남북 사이의 대화 및 교류가 필수적인 과정이라는 점, 둘째, 남북 총선거 실시를 위해 남북의 신뢰조성 및 동질화 촉진이 중요하다는 점, 셋째, 총선거 실시 관련 우리 정부가 지속적으로 주장해 온 ‘유엔 감시’ 조건을 ‘공정한 선거관리 및 감시’로 수정 제안했다. ‘평화통일 3대 기본원칙’은 그 이전의 ‘선 건설, 후 통일’기조를 ‘선 평화, 후 통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이 기조는 1970년대 이후 역대 우리 정부의 통일정책 기본 기조가 되고 있다. 1970년대 이전까지 우리 정부는 북한 지역에 대한 자유총선거론, 남북한 자유총선거론, 국토통일을 목표로 한 실력배양론, 선 건설 후 통일론 등을 기초로 북한의 존재를 부정하고 당위적인 차원에서만 통일을 강조하는 방안들을 제기했다. 1970년 들어 미중 데탕트, 중일 수교 등 국제정세의 변화 속에 북한과 분단상황에 대해 현실적으로 인식하고 새로운 통일정책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전개되었다. 요약하자면 1970년을 기점으로 그 이전에는 북한의 존재를 부정하고 구체적 대안보다는 통일의 당위론을 내세우며 대립하는 구도의 ‘대화 없는 대결’의 시대라면, 그 이후는 선 평화, 후 통일을 기조로 본격적으로 남북 당국 대화도 시작하고 점진적인 통일을 지향하는 ‘대화 있는 대결’의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1969년에 발표된 닉슨 독트린과 이어진 미중 데탕트, 중일 수교와 같은 일련의 국제정세 변화 가운데 우리 정부는 북한에 대해 현실적 인식을 토대로 통일정책을 펼쳐야 하는 새로운 과제를 안게 되었다. 이에 따라 정부는 1970년 8월 15일에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평화통일구상 선언’을 발표하고, 북한 정권의 실체인정, 대화와 협상, 교류협력을 통한 평화통일의 여건조성을 공식화했다. ‘평화통일구상 선언’ 이후에 남북 이산가족을 찾기 위한 남북대화가 열렸다. 당시 우리 정부는 ‘인도적 문제, 비정치적 문제, 정치적 문제의 해결’로 지칭되는 남북문제 해결의 3단계론을 제시했다. 이 3단계론은 1970년대 이후 우리 정부의 통일 접근에 대한 주요관점이자 시각으로 정립되었다. 당시 남북적십자회담과 병행해서 남북 당국은 비밀접촉을 통해 남북분단 이후 최초의 남북 당국 간 공식 합의서라 볼 수 있는 「7.4 남북공동성명」을 1972년 발표했다. 이 공동성명에는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이라는 지금도 인용되는 통일의 3대 원칙이 담겨있다. 하지만 「7·4 남북공동성명」 발표 이후 남한에는 10월 유신헌법이, 북한에는 12월 사회주의헌법이 나타나면서 남북한 공히 일인독재체제가 공고화되고, 북한이 1973년 8월에 우리 정부의 평화통일 의지를 표명한 「평화통일 외교정책에 관한 특별선언(6·23 선언)」 등을 비판하며 당시 남북간의 대화 기구였던 남북조절위원회를 일방적으로 중단함으로써 남북관계는 단절 국면으로 접어들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 정부는 이듬해인 1974년 1월의 남북불가침협정 제안, 8월의 선평화·후통일 원칙이 반영된 ‘평화통일 3대 기본원칙’을 발표한 것이다. 1970년대 이전까지의 당위적이고 북한에 비해 다소 수세적인 통일방안을 벗어나 적극적으로 평화를 실현하고 이 바탕 위에서 통일을 주도해나간다는 공세적인 방향으로 전환된 입장을 보이기 시작했다. 1980년대에 들어서 우리 정부는 북한에게 남북 당국 최고책임자 회담을 개최하자고 촉구하고, 1982년에 ‘민족화합 민주통일방안’을 제시했다. 이 통일방안은 “통일은 민족자결의 원칙에 의거해 겨레 전체의 의사가 골고루 반영되는 민주적 절차와 평화적 방법으로 성취되어야 한다”는 기본원칙 하에서 통일헌법의 제정에서부터 남북 총선거를 실시해서 통일 민주공화국을 완성하는 과정을 제시하는 것이 주요 골자였다. 이어 1987년 헌법 개정 당시에는 우리 헌정사 최초로 헌법 전문에 통일 관련 내용을 명문화하였다. 헌법전문에서 ‘조국의 평화통일 사명’을 규정하고, 제4조에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 수립 및 추진을 명시했다. 제66조 제3항에서는 대통령의 의무로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추가했다. 이어서 새로운 남북관계 정립을 위해 1988년 7월 7일 「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특별선언(7·7 선언)」을 발표하고, 1989년 9월 11일에는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발표했다. 「7·7 선언」은 남북이 함께 번영을 이루는 민족공동체를 구성·발전시키는 것이 통일을 향한 첩경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한 정책선언이었다.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은 남북의 교류와 협력을 통해 민족공동체를 발전시키고, 이를 기초로 해서 정치적 통일을 이룰 수 있는 상태를 조성해 간다는 본격적이고도 구체적인 통일방안이었다.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은 1994년도에 ‘민족공동체통일방안’(한민족공동체 건설을 위한 3단계 통일방안)’이라는 명칭으로 계승 발전되었다. 이 통일방안은 우리 정부의 공식적인 통일방안이며, 점진적·단계적으로 남북이 하나의 민족공동체를 건설하면서 통일을 이루어 나간다는 선평화·후통일 원칙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의 요체는 민족공동체 건설을 통한 과정으로서의 통일을 완성해 간다는 것이다. 1단계로 남북한의 화해 및 교류협력을 통해 민족공동체 건설의 기초를 다지고, 2단계로 남북연합을 거쳐 3단계에서 최종적으로 1민족 1국가 1체제 1정부 형태의 통일국가를 완성해 간다는 접근방법이 민족공동체통일방안에서 제시하고 있는 단계적 통일방안이다. 화해협력 단계는 남북이 상호 적대와 불신을 줄이고 협력의 장을 열어가는 단계로 설정할 수 있다. 교류와 협력을 활성화하면서 남북이 각자 현존하는 두 개의 체제와 정부를 유지하면서 지금의 분단상태를 평화적으로 관리하는 단계이다. 남북연합 단계는 화해협력 단계의 상호 신뢰 구축을 기초로 해서 남북 간의 교류협력이 더욱 활성화되고 제도화되는 단계를 의미한다. 이 단계에서는 통일로 가는 중간과정에서 남북이 상호 신뢰를 구축하면서 평화정착 및 민족의 동질화를 촉진해 나가는 동시에 남북한 합의에 근거하여 법적·제도적 장치를 체계화하는 것이 골자이다. 이 단계에서는 남북이 공동으로 남북정상회의, 남북각료회의, 남북평의회, 공동사무처 등을 구성한다. 이 기구들에서 통일국가를 구성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안 및 정책은 물론 통일을 위한 중간단계에서 서로 다른 남북 체제와 정부가 함께 협력관계를 구축해나간다는 것이다. 1민족 1국가 통일국가는 남북연합 단계에서 제정한 통일헌법에 따라서 남북 자유총선거를 실시하고 여기서 통일국회 및 통일정부를 수립하고 1민족 1국가 1체제 1정부의 형태로 완성된다. 통일국가 완성단계에서는 민족통일 및 국가통일이 동시에 달성되는 상태를 목표로 한다. 통일국가는 민족구성원 모두에게 정치적·경제적 자유는 물론 인간 존엄성과 복지를 보장하는 새로운 민족공동체 국가를 의미한다. 분단 이후 남북관계의 발전 양상을 살펴볼 때 한반도의 평화정착은 남북한의 상호 신뢰 구축이 그 핵심이다. 그리고 통일은 단순히 영토와 제도의 통일만이 아니라 민족구성원 모두가 정체성과 문화, 의식 면에서 공동의 가치관을 가질 때 완성할 수 있다. 이는 일회성의 사건으로 달성되는 것이 아닌 단계적이고 점진적으로 만들어져 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을 반영하여 선 평화·후 통일의 입장을 체계화한 민족공동체 통일방안(1994)이 공식화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나. 북한의 통일방안 북한의 대남전략은 남조선혁명의 기치 아래 해방 직후인 1945년에는 ‘민주기지론’이라는 명칭으로 나타났다. 북한 언술에 따르면 미군의 남한 점령으로 인해 한반도의 전국적 범위에서 혁명을 완수할 수 없는 상태에서 북한 지역 혁명역량을 우선 강화해 나가고, 그 역량을 기초로 해서 전 한반도의 공산혁명을 완수한다는 것이다. 북한이 ‘민주기지론’을 내세운 것은 해방 직후 정국 환경이나 남한 지역과의 우위 경쟁에서 우세했던 유리한 조건에 기초하고 있다. 이 시기 북한의 통일방안은 ‘민주기지론’에 기초한 무력통일 방안이었다. 김일성은 1945년 12월 17일에 “북조선을 통일된 민주국가를 위한 강력한 민주기지로 전변시킬 것”을 선언하고 실제 전쟁을 일으키는 등 무력통일을 시도했다. 북한은 1960년대에 들어와 ‘민주기지론’ 입장을 유지하면서 평화통일 제안과 남조선혁명이라는 이중목표를 추구했다. 이때 남조선혁명의 수단이자 통일방안으로 제기된 것이 ‘남북연방제’이다. 북한의 연방제안은 김일성이 제안했다. 김일성은 1960년 8월 14일에 8.15 광복 15주년 기념연설을 하면서 연방제안을 구체적으로 처음 제안했다. 김일성은“어떠한 외국의 간섭도 없이 민주주의적 기초 위에서 자유로운 남북 총선거를 실시하는 것이 평화적 조국통일의 가장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방편”이라면서 “만일 그래도 남조선 당국이… 아직은 자유로운 남북 총선거를 받아들일 수 없다면… 과도적인 대책으로서 남북 조선의 련방제를 제의한다”고 했다. 연방제의 내용은 남북의 현재 정치제도를 당분간 그대로 유지하면서 “… 두 정부의 대표들로 구성되는 최고민족위원회를 조직해 남북 조선의 경제·문화발전을 통일적으로 조절하는 방법으로 실시하자”는 것이었다. 연방제를 표방하고 있었으나 남북이 각자의 정치제도를 그대로 유지한다는 점에서 실제로는 국가연합에 보다 가까운 내용이었다. 북한은 1970년대 초에 남조선의 혁명세력이 주체가 되어 남조선혁명을 실시해야 한다는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혁명’ 전략을 채택했다. 남과 북에 서로 다른 체제가 자리잡고 분단이 고착화되는 과정에서 북한이 주도하겠다는 이전의 공산화통일이 사실상 어려워지자, 남한 지역에서 혁명세력들이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혁명을 수행하고 지속적으로 사회주의 혁명을 진행해 간다는 단계적 혁명론을 설정했다. 20세기의 ‘민주기지론’,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혁명’ 전략을 지나 북한은 2001년 1월의 ‘우리민족끼리 통일의 문을 여는 2001년 대회’에서 “외세와의 공조를 배격하고 민족공조로 통일문제를 우리 민족 자체의 힘에 의해 해결해 나가자”고 제의하면서 ‘민족공조’, ‘우리 민족끼리’를 내세우기 시작했다. 1990년대 탈냉전 이후 대외적 고립과 경제위기가 심화되어 체제존속이 최우선 과제가 된 북한이 ‘민족공조론’을 제시하며 한국사회의 대북인식 전환기에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여론조성을 시도하는 동시에 우리나라의 대북 지원이 민족의 상부상조 전통이라는 대내 선전논리를 펴기도 했다. 북한은 1980년 10월 10일에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을 제시한다. 노동당 제6차 당대회에서 김일성은 사업 총화보고를 하면서 기존의 통일방안과 제안을 정리하여‘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을 제시했다. 고려민주연방제로 약칭할 수 있는 통일방안의 특징은 ‘과도적 대책’ 혹은 ‘당분간’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아서 연방국가를 통일의 완성태 형태로 제시했다는 점, 우리나라에 대해 실현불가능한 안보상 무장해제에 가까운 선결조건을 제시하고 있는 점을 들 수 있다. 북한이 제안한 연방제의 구성 원칙은 남과 북이 서로의 사상과 제도를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 동등한 권한과 의무를 가진 각각의 지역자치를 구현하는 연방공화국 창립, 남북 동수 대표로 연방 국가를 대표하는 최고 민족연방회의를 구성하고 그 상임기구로 연방 상설위원회를 두고 이 위원회가 남과 북 각각의 지역 정부를 지도하는 것이다. 북한은 고려민주연방제 실현의 전제조건으로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한 선결조건’이라는 이름으로 남한의 반공법·국가보안법 폐지, 모든 정당·사회단체 합법화 및 모든 정당 사회단체 개별인사의 정치활동 보장, 민주인사·애국인사 석방을 제안했다. 그리고 긴장상태 완화 및 전쟁위험 제거를 목표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 주한미군 철수, 미국의 불간섭 등을 요구했다. 이 요구는 근본적으로 ‘남조선혁명론’에 기초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남북의 사상과 제도를 유지한 상태에서 연방제를 하자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제안으로 평가된다. ‘고려민주연방제’ 안은 국호나 국가형태, 대외정책의 노선을 일방적으로 제안하고 있으며 실제로 연방의 형성을 위한 연방헌법 등 구체적 근거나 절차는 설명이 없는 맹점이 있다. 1990년대에 들어와 북한의 연방제안은 전술적 변화를 보였다. 구소련 해체 및 동유럽 사회주의권 붕괴로 말미암아 외교적 고립과 동시에 경제난을 맞아서 북한은 1991년 신년사를 통해 김일성이 ‘1민족 1국가 2제도 2정부’ 방안의 연방제안을 제기했다. 북한이 실질적으로 남북의 각 지역자치정부가 외교권, 군사권, 내치권을 행사하는 제안을 한 것은 통일보다는 체제 보전에 더 역점을 둔 행보로 보인다. 이런 점에서 ‘1민족 1국가 2제도 2정부’ 연방제안은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보다는 상대적으로 수세적이고 방어적인 성격을 띤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은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을 통해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제안했다.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1민족, 1국가, 2제도, 2정부의 원칙에 기초하되 남북의 현 정부가 정치, 군사, 외교권을 비롯한 현재의 기능과 권한을 그대로 보유한 채 그 위에 민족통일기구를 구성하는 것”이라고 했다. 북한은 2002년 5월 30일 노동신문 보도에서 「6·15남북공동선언」은 연방제 방식의 통일을 지향하는 것이며,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북과 남이 통일방안에 대해 완전히 합의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서로의 통일방안의 공통점을 인식한 데 기초해 그것을 적극 살려 통일을 지향해 나가기로 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김정은 집권 이후에도 북한의 대남전략 및 통일전선전략 기조를 유지했다. 김정은은 2016년 신년사와 제7차 당대회 연설을 통해서 선대인 김일성과 김정일의 통일 전략 계승을 천명했다. 김정은은 통일문제를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의 ‘조국통일 3대 원칙’ 및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연방제), ‘전민족대단결 10대 강령’ 의 조국통일 3대 헌장을 중심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2021년 8차 당대회에서 당 규약개정을 통해 남조선 혁명론에 기초한 통일 기조는 삭제한 것으로 관측된다. 북한은 전통적인 혁명론에 입각한 통일보다도 강위력한 국방력을 기초로 한 조국통일의 역사적 위업을 강조하고 있어 힘의 균형을 통한 분단상황 관리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불확실한 평화 타파와 확실한 통일목표의 조화 필요성 가. 불확실한 평화 위의 남북관계 남북한은 모두 통일방안을 주창하고 있지만 현재는 당장의 통일보다는 현실의 평화공존을 택하고 있는 형국이다. 통일을 장기적 모색의 과정이자 결과로 상정하고 우선은 분단상태를 각자 유리한 국면으로 주도하기 위한 정책에 집중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은 공식적인 통일방안으로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으나 실제로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발표한 김영삼 정부 이후 역대 정권은 북한 핵문제의 출현 등으로 인해 구체적인 통일방안의 실시와 추진보다 대북 상황관리와 한반도 리스크 관리에 치중된 대북정책이 주를 이루고 있다. 김대중 정부는 남북관계 개선을 당면한 현안 목표로 정하고 대북 화해협력 정책을 추진했다. 화해협력정책은 우리 정부가 먼저 전향적인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북한이 스스로 변화의 길로 나오도록 한다는 정책이었다. 이런 입장에서 김대중 정부는 2000년 6월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해 남북관계 개선방향 및 실천과제 5개를 담은 「6·15남북공동선언」을 채택하기에 이른다. 이후에 남북관계는 분야별 남북회담 추진을 병행해가면서 인적·물적 교류를 증대시켜 한반도 평화와 화해협력을 심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해갔다. 노무현 정부는 한반도 평화증진, 남북한 공동번영, 동북아 공동번영을 주요목표로 하는 평화번영정책을 추진했다. 2007년 10월에는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여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10·4 선언)」을 채택했다. 이 선언에는 정치·군사·경제·사회문화·인도주의·외교 등의 제반 영역에서 평화와 통일을 위한 남북의 공동 사업 추진을 합의했다. 이명박 정부는 ‘상생·공영의 대북정책’을 내세우고 이를 추진하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과 정책으로 비핵·개방·3000’을 제시했다. 이명박 정부는 ‘상생·공영의 대북정책’ 및 ‘비핵·개방·3000’ 구상을 통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는 북한 핵문제 해결을 국제사회와 긴밀히 협조하여 우선적으로 추진하면서, 북한의 무력도발에는 단호히 대응하고 남북관계 재정립 및 실질적인 관계발전을 통해서 통일의 기반을 마련한다는 정책이었다. 박근혜 정부는 남북 간의 신뢰 형성을 중심으로 하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및 그 실행계획으로서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구상’과 더불어 ‘3대 통로’를 제시한 바 있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안보를 튼튼히 하고 이를 바탕으로 해서 남북 신뢰 형성을 통해서 남북관계를 발전시켜 나가고, 한반도 평화를 정착시켜 통일의 기반을 구축한다는 구상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에서의 항구적인 평화정착을 목표로 ‘평화’를 최우선으로 하고, ‘상호 존중’의 정신에 입각하여, ‘일관성과 지속성’을 유지하고, 정책의 영역을 동북아와 국제 사회로 확장하여 평화와 번영을 추구하는 ‘문재인의 한반도정책’을 추진중이다. 우리나라 역대 정부들은 이같이 선평화·후통일 원칙에서 평화정착과 안정적인 상황관리에 역점을 두고 있는 상황이다. 북한은 2017년 제6차 핵실험과 화성-15형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시험으로 핵능력 고도화를 입증한 후 2018년부터 경제력 건설을 위한 우호적인 대외환경 조성을 위해 남북대화와 북미대화에 나섰다. 내부적으로 경제·핵 병진노선을 사회주의경제건설총력집중노선으로 변경하고 국방력 건설의 자신감을 바탕으로 경제력 건설을 위한 외교적 장정에 나섰다. 하지만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합의 결렬 이후 대북 제재 장기화, 자연재해, 코로나19 등의 악조건으로 인해 계획에 차질을 빚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2021년 제8차 당대회에서 규약 개정을 통해 통일 관련 부문에서는 “강력한 국방력으로 근원적인 군사적 위협들을 제압하여 조선반도의 안정과 평화적 환경을 수호한다는데 대하여 명백히 밝혔다”고 하면서 “이것은 강위력한 국방력에 의거하여 조선반도의 영원한 평화적 안정을 보장하고 조국통일의 역사적 위업을 앞당기려는 우리 당의 확고부동한 입장의 반영으로 된다” 고 하여 기존의 조국 통일 3대 원칙(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과 미제 침략군, 일본군국주의 재침 그리고 남조선 인민들의 투쟁지지, 전 조선의 애국적 역량과의 통일전선 강화 등의 ‘남조선 혁명’과 관련된 내용을 모두 삭제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는 사문화된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 노선을 정리하고 ‘국방력에 기초한 평화와 안정’을 우선시하며 남과 북의 공존 속에서 무력에 입각한 우위를 점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당장의 통일보다는 핵무장을 바탕으로 한 공포의 균형 속에서 남북관계의 주도권을 행사해가겠다는 인식이 반영된 분단관리 정책이 최우선 과제로 반영된 결과로 해석된다. 남북한은 이런 상황 하에서 적어도 일촉즉발의 전면전 공포에 시달리고 있지는 않지만 법적으로는 여전히 전쟁상태에 놓여있는 불확실한 평화상태에 놓여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분단 70여 년 동안 평화가 상당 부분 정착되고 발전되기는 했지만 완전하고 만족스러운 상태 또한 아닌 것이다. 이를 타파하기 위한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한 때이다.   나. 선평화·후통일 원칙 발전과 새로운 통일국가상(像) 남북한은 분단 70여 년간 각자 통일방안을 발표하고 2021년 현재까지 총667회의 남북회담을 개최하고 258건의 남북합의서를 채택했다. 하지만 긴장과 갈등을 반복하며 통일에 이르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남북한의 교류와 협력이 전면적으로 확대된 2000년대에도 북한의 핵실험과 북미관계 악화와 같은 변수로 인해 평화는 자주 동결되었고 이러한 상황은 현재도 반복되고 있다. 이런 조건에서 현재 한반도의 당면과제는 평화를 저해하는 핵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최우선으로 꼽히고 있다. 하지만 완전한 비핵화가 가능한지, 비핵화가 되면 평화와 통일이 저절로 따라오는 것인지, 그리고 비핵화 이후에는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보다 면밀한 검토와 준비가 필요하다. 미국이나 국제사회에는 북한 비핵화가 중요한 최종목표일 수 있지만 우리에게는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정착과 통일이라는 또 다른 과제가 있다. 이 과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선평화’가 ‘후통일’로 연결되는 전략과 구상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두 가지 차원에서의 준비가 선행되어야 한다. 우선 ‘선평화’를 위해 현 단계에서는 대외적으로 남북관계 개선과 북미관계의 촉진자 역할 증대 그리고 한반도 평화체제 구상의 국제적 전파 및 공감대 확산, 대내적으로는 평화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과 기반 강화 노력 등을 기울여야 한다. 이런 ‘선평화’의 기반 위에서 ‘후통일’이 자연스럽게 연결되기 위해서는 특히 한반도 통일국가상에 대한 재구성과 평화번영의 미래에 대한 재설계가 이루어져야 한다. 한반도 통일국가상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의 1민족 1국가 1체제 1정부의 단일국가나. 북한의 1민족 1국가 2체제 2정부의 연방국가 중 택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다양한 선택지를 구성할 수 있다. 2021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통일의식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64.3%가 통일을 “남북이 하나의 국가로 합쳐지는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2018년 58.1%, 2019년 60.6%, 2020년 62.9%에 이어 응답자 중 대다수가 통일을 단일국가로의 통일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를 넘어서는 것이 새로운 통일국가상과 평화번영의 미래를 구상하는데 출발점이 될 것이다. 남한의 연합제 통일방안과 북한의 연방제 통일방안을 개방적으로 점검하여 다양한 통일과정과 통일국가의 미래상이 존재할 수 있음을 열어둘 필요가 있다. 우리의 연합제안 및 북한의 연방제안을 기초로 해서 남북한의 통일과정과 통일국가상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이 다섯 가지 기본유형을 도출할 수 있다. 국제법상 자결권(self-determination rights)을 행사한다는 측면에서 보아도 남북한 주민들이 단일국가 외에도 연합국가나 연방국가를 통일국가의 완성된 형태로 결정지을 수 있다는 주장도 가능하다.남북한 관계를 ‘선평화’의 원칙에서 사실상 이웃국가의 평화지향 관계로, ‘후통일’의 입장에서 한 민족 출신 국가들의 특수관계로 규정해서 장기간 남북교류와 협력을 확대해 나가다가 일정한 미래 시점에서 남북한 주민이 결정하여 단일국가, 연합국가, 연방국가 등의 형태로 통일을 선언할 수도 있다고 상상할 수 있다.이런 상상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위해서는 20세기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의 재편과 전환이 필요하며, 북한 핵문제로 인해 남북한 당사자주의로만 해결할 수 없는 한반도 문제의 국제주의적 측면을 고려하여 통일과정도 남북관계 특수성에만 입각한 것이 아닌 국제관계 보편성에도 기반한 새로운 동북아 질서 창출 과정도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선평화·후통일 원칙에 입각한 20세기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은 ‘화해협력→남북연합→통일국가’의 3단계를 전제하고 있다. 21세기 새로운 통일방안은 이를 기초로 하되 통일국가형태의 다양성 인정, 북한 비핵화, 한반도평화체제 구축을 더해서 ‘화해협력→평화체제→통일평화공동체와 동북아협력체’를 지향하는 식으로 새로운 과정과 단계를 설정해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는 남북한의 화해협력 단계에서부터 한반도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 과정에서 논의에 참여할 동북아 주변국들이 남북-북미 간의 양자안보는 물론이고 과거 6자회담 참가국들을 포함한 지역 내 다자안보도 교차 보장하며 그 기초를 형성할 수 있다. 이런 구상은 이미 기존의 6자회담이나 비핵화 협상과정에서 제기된 바 있기에 관련국들의 이해도는 충분하다고 보인다. 다만 현실적 동력을 찾지 못해 공전 중인 것이라 판단된다. 이 동력을 찾기 위해 남북관계에서부터 새로운 통일국가상을 지향하며 유연하고 탄력적인 관계설정을 해나갈 필요가 있다. 통일과 평화의 상대방인 북한도 흡수와 붕괴로 오해할 수 있는 당장의 통일을 내세우기보다는 우리 대통령도 6·25전쟁 70주년 기념사에서 밝힌 것처럼 남북한이 사이좋은 이웃으로 지내며 공존과 항구적 평화의 새로운 역사를 진지하게 모색해야 할 때이다. 하나의 국가로 통일하기 위해 남북한 중 어느 한쪽이 흡수되거나 희생하는 것이 아닌 공존과 평화를 기본으로 다양한 방식의 통일을 항구적 평화정착의 방편으로 열어두고 접근을 해야 한다. 미국과 캐나다처럼 서로를 닮았지만 또 다른 두 나라처럼,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웨일즈, 북아일랜드처럼 한 나라인 듯 두 나라인 듯 살아가는 과정도 평화와 통일의 한 여정으로 보고 새로운 우리만의 모델을 찾아나가야 한다.    맺음말 남북한이 1991년 유엔에 동시 가입한 지 30년이 지났다. 유엔에 동시 가입한 1991년 12월에 남북한은 남북기본합의서를 체결하며 서로의 관계를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관계로 규정했다. 남북한은 유엔 동시 가입으로 체제와 이념이 다른 두 개의 나라라는 점을 서로 인정하면서도 이것이 결코 분단을 영속하기 위한 것도 아님을 동시에 천명했다.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할 때 교류와 화해협력, 항구적 평화정착과 통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대원칙을 확인한 점에서 의의가 크다. 분단 이후 남북한은 여전히 불확실한 평화 상태를 지속하고 있지만 수많은 회담과 합의를 하며 관계를 발전시킨 점 또한 부인할 수 없다. 이제는 이를 더 발전시켜 시대의 변화에 맞는 통일방안의 개선과 새로운 통일국가상의 마련 등 적극적인 구상이 필요하다. 남북한 관계를 ‘선평화’의 원칙에서 사실상 이웃국가의 평화지향 관계로, ‘후통일’의 입장에서 한 민족 출신국가들의 특수관계로 규정해서 장기간 남북교류와 협력을 확대하도록 새로운 디자인이 필요하다. 우리의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 상정하고 있는 단일국가 통일을 상대방인 북한이 흡수통일로 인식하고 있는 한 남북관계의 발전을 보장할 수 없다. 우리 국민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에서도 통일의 필요성에 대한 응답이 갈수록 낮게 나오는 상태에서는 지금의 통일방안을 계속 고집하기도 점점 어려워질 것이다. 남북한이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해 가면서 미래에 남북한 주민이 단일국가, 연합국가, 연방국가 등의 다양한 형태로 그 당시의 필요에 따라 통일을 선언할 수도 있다는 상상이 필요하다. 이런 상상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20세기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의 재편과 전환이 필요하다. 이러한 시도가 북한의 대남전술에 말려 들어갈 수 있다거나, 비핵화의 진전 없이는 절대로 시작될 수 없는 논의라고 반대할 수도 있다. 또한 북한이 연방제 통일방안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데 연방제를 통일의 한 과정이나 형태로 인정할 수 없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체제경쟁은 이미 오래전 끝났고 남북한의 국력 격차는 이제 뒤집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북한의 주장을 일부 수용한다고 해서 체제전복이 될 일도, 남조선혁명이 일어날 일도 없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우리는 이를 억지할 수 있는 한미연합방위체계와 첨단 전력을 갖추고 있다. 북한은 여기에 문제제기를 하며 비대칭 전력인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고 추가적으로 최신 전술 무기 확보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이 상태를 심화시켜서 어느 순간 우리도 독자 핵무장에 나서고 20세기 동서 냉전의 핵 대결처럼 상호 확증 파괴 단계에 가서야 군축 논의를 시작하고 다시 평화를 운운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4차산업혁명과 디지털 대전환, 글로벌공급망 재편, 기후위기와 에너지 대전환 등 산적한 문명사적 과제에 힘을 쏟기에도 모자란 판에 20세기 냉전의 유물을 답습해서는 안된다. 비생산적이고 파괴적인 경쟁에 이제는 우리 스스로를 묶어둘 필요가 없다.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기획: 유기은 박사후연구원  저자소개 정대진 한평정책연구소 평화센터장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 경기도 평화정책자문위원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정책위원 법무부 인권정책자문위원 연세대 통일학 박사
  • [평화담론] 한반도 평화구축을 위한 전략적 평화담론 모색
    저자
    황수환(통일연구원 부연구위원)
    발간호
    2021-04
    문제제기   최근 국제정치에서 나타나는 갈등과 위협은 지역, 이슈, 범위의 측면에서 복합적인 형태를 보인다. 미중 경쟁이 심화되면서 파생되는 국가차원의 국제 갈등적 상황과 함께 코로나19로 대표되는 초국적 위협 상황이 복합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보건, 환경, 기후변화, 난민 등 복합적이면서 비정형화된 위협과 갈등이 중요한 이슈로 부각되면서 평화를 주제로 하는 이슈와 범위에서도 초국적으로 발생하는 새로운 갈등과 위협을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주요 관심대상이 되고 있다. 이런 복합적 갈등과 위협의 특성은 국가별 파편적 대응이 효과적이지 못하다는 점에 있으며 복합적 갈등의 국제정치로의 전환은 과거 전통적 안보개념과 그에 따른 대응 방식을 넘어 새로운 평화 패러다임으로 접근할 필요성을 증대시키고 있다. 한반도 및 동북아 지역은 새로운 평화담론과 패러다임이 쉽사리 적용되지 못하는 특수한 지역으로 여겨진다. 한반도 및 동북아 지역에서는 북핵문제뿐만 아니라 미·중 전략경쟁의 열전의 장으로 부상하면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2020년 초부터 불어닥친 코로나19를 비롯하여 미·중 전략경쟁의 심화로 한반도 및 동북아 지역의 정세는 더욱 불확실해지고 있다. 코로나19와 같은 비전통안보적 위기 상황이 정치, 외교, 군사 등 전통적 안보과 결합하여 복합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미·중 전략경쟁 구도가 코로나19와 맞물리며 미국이 ‘신냉전’ 구도를 노골화하는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19에 대한 ‘중국책임론’ 공세뿐만 아니라 남중국해, 대만 및 홍콩문제, 쿼드 및 오커스 등 외교적 대치와 군사적 긴장 등 전략적 대립각이 형성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새로운 평화담론보다는 전통적 평화의 담론 즉 소극적 평화의 달성여부가 우선시 되고있는 한반도 및 동북아 지역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남북 간에도 긴장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북한은 2020년 단거리급 신종 무기 및 대공미사일 개발 공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개발 과정 공개를 비롯하여 2021년 9월에만 4차례 새로운 미사일을 시험발사하며 전략무기의 개발을 지속하며 군사력 증강에 집중하고 있다. 한국 역시 2021년 9월 독자 개발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의 수중 발사 시험을 진행하면서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의 미사일 전력 증강이야말로 북한의 도발에 대한 확실한 억지력이 될 수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에 북한은 김여정 부부장이 SLBM 수정 발사 시험에 비난하는 담화를 발표하며 남북관계가 완전히 파괴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남한이나 북한과 같은 약소국의 입장에는 스스로 안보를 지키지 못하는 평화담론은 언제나 불안전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강하게 작용하는 것이다. 침략을 억지하는 문제는 곧 안보를 지키는 문제와 같기 때문에 평화학의 핵심은 안보로 간주되는 경향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결국 한반도 및 동북아를 둘러싼 여러 긴장요소들로 인해 한반도 정세 불확실성의 ‘안전망’이 없는 상태가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정세는 한반도의 평화를 구축하는 데 불확실성을 증폭시키면서 기존 평화담론이 자리잡기 어려운 환경을 만들고 있다. 이에 기존의 전통적 평화담론이 아닌 새로운 방식과 내용을 적용하여 한반도에서 평화구축을 시도할 필요성이 존재한다.   평화담론과 평화구축   평화를 어떻게 정의하고 인식하느냐에 따라 이를 실천하는 방법과 수단에서 차이를 보이기에 개념적 범위는 매우 넓다고 할 수 있다. 고전적 의미에서 평화는 전쟁의 대비되는 개념으로 사용되어 전쟁이 발생하지 않으면 평화가 달성되었다고 인식하였는데 이는 마치 질병에 걸리지 않은 상태를 건강이라 정의하는 것과 비슷하다. 단순히 전쟁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평화를 정의 내린다면 상당히 협소한 의미만 지니게 된다. 현대사회에서는 전쟁의 부재뿐만 아니라 인간사회를 위협하는 다양한 모든 폭력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광범위하게 평화의 개념이 확장되고 있다. 따라서 평화가 목표인지 아니면 국가의 이익을 위한 수단인지를 분명하게 구분하기는 어려우며 어떠한 상태가 평화인지, 평화구축의 상태를 어떻게 달성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일반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평화의 개념과 상태를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입장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평화를 달성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이성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지만 완벽한 평화는 존재하고 있지 않기에 현실적으로는 명확하게 평화를 개념화하기가 어렵다. 전통적인 평화개념과 담론은 주로 국가 간 분쟁해결, 국제관계와 국제질서의 관리 및 유지라는 측면에서 다뤄졌다. 아론(Raymond Aron)은 국제관계학을 ‘평화의 학문이자 전쟁의 학문’으로 규정했다. 이는 평화학이 전쟁연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거나 혹은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됨을 의미한다. 당시 국가 간의 무력충돌이 평화의 가장 큰 위협요소라 인식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20세기의 평화학은 개별국가의 주권보호, 영토보전을 중심으로 하는 안보학과 밀접하게 상호작용하면서 발전했다. 전통적인 평화의 개념은 국가성을 강조한 전쟁의 반대 개념으로 인식할 수 있지만, 탈냉전 이후 발생한 학살, 인종문제, 난민, 전염병, 기후변화 등 초국적이고 다양한 위협상황을 해결하는 개인적인 문제와도 연관지을 수 있다. 정의, 행복, 자유 등 인간의 가치와 이상을 표현하는 개념들과 접목하여 어떻게 평화의 상황을 인식해야 하는지, 어떠한 방식으로 실현해나가는지에 따라 평화의 개념을 다양하게 정의할 수 있다. 분명한 사실은 평화연구와 평화담론에서 폭력을 근절하거나 예방하고, 평화를 조성하고 확립하려는 일련의 논의 체계와 내용을 학문적으로 탐구하는 것에서 평화의 개념이 사용된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평화담론이 국제정치학에서는 전쟁방지와 분쟁해결을, 인문학에서는 평화교육과 평화운동을 중심으로 연구하는 부분과 서로 교차점을 지닌 영역으로 파악되어 평화의 개념의 다변화와 확장이 나타나고 있다. 평화개념의 모호성에도 불구하고 평화구축(peace building)이라는 개념을 통해 평화를 실질적으로 달성하기 위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평화구축이란 용어는 갈퉁(Johan Galtung)이 1975년 전쟁과 분쟁 등으로 나타난 폭력적 상황이 끝나고 평화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단순히 전쟁이 종식된 소극적 평화(negative peace) 차원이 아닌 적극적 평화(positive peace)로의 이행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용어로 알려진다. 갈퉁은 평화구축의 개념을 기존에 사용되던 평화유지(peace keeping), 평화조성(peace making)과는 구분되는 개념으로 제시했다. 평화구축은 폭력적이고 갈등적 상황이 만들어지는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갈등의 원인을 파악하고 이를 해결하여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구조와 관계를 만드는 과정으로 정의내린다. 평화유지의 개념이 전쟁 이후 휴전을 보장하고 무력충돌의 재발방지를 관리감독하는 조치에 초점을 맞춘 활동이라 보았다. 평화조성은 중재와 협상을 통해 관련 당사자들을 이해시켜 화해를 도모하기 위한 활동으로 파악했다. 즉 폭력적 상황을 중지시키고 외교적 노력을 통해 비폭력적인 대화를 하도록 하고 궁극적으로는 평화협정을 체결하여 평화를 만들어 나가도록 하는 행위로 보았다. 갈퉁은 평화구축의 개념에 대해 평화유지와 평화조성의 개념과 구별하여, 분쟁이 발생한 사회 내에서 존재하는 구조적인 모순과 갈등을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해결하려는 노력을 시도하여 사회경제적 재건과 발전을 통해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평화의 상태로 전환시키는 포괄적인 활동으로 파악했다. 평화유지, 평화조성이 단기적이고 폭력적인 분쟁상황을 해결하려는 소극적 평화를 강조하였다면, 평화구축은 중장기적인 목적으로 갈등의 완전한 해결을 통해 적극적 평화를 실현시키기 위한 의미로 볼 수 있다. 평화구축은 평화유지와 평화조성을 통해 폭력적 상황이 해결되더라도 그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진행되는 평화의 실천적 노력과 행동들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파악했다. 2000년대 이후 평화구축 개념은 분쟁과 갈등 사회의 복원을 넘어 사회 전반에 퍼져있는 폭력적 구조를 해결하여 정의롭고 지속가능한 평화 달성하기 위한 과정과 그 과정 속에서 발생한 다양한 문제들을 해소하고 해결하려는 접근방식과 활동까지 포함시키고 있다. 즉 평화구축에 대해 단순히 평화를 조성하는 차원을 넘어 분쟁 이후의 국가 및 사회 재건 등을 통한 갈등전환적 차원으로 확대시켜 파악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평화구축은 “지속가능한 평화롭다 지대의 형성을 위해 요구되는 모든 노력”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모든 폭력을 예방하고 감소 및 전환하여 모든 사람들이 모든 형태의 폭력에서 벗어나 삶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에 최근 사용되고 있는 평화구축의 개념에서는 갈등의 구조적 전환을 통한 평화적 환경과 상황을 형성하여 변화된 평화적 환경이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개인과 사회차원에서 역량을 강화하는 제반활동을 포함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즉 평화구축은 갈등이 발생하고 해결된 상황에서 나타난 관계의 구조를 분석하여 해당 상황의 문제점과 극복방안을 마련하는 종합적인 해결방식으로 제시하는 분석역량까지도 요구하고 있다. 평화구축이 단순히 평화를 형성하고 만드는 것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평화적 상황을 지속, 유지시키는 종합적인 방안을 강구하는 차원으로 이해할 수 있다.   새로운 평화담론: 전략적 평화   (1) 전략적 평화의 개념   새로운 평화담론은 변화하고 있는 평화의 개념, 확장되고 있는 평화의 개념에 맞춰 국가중심, 국가안보적 중심에서 벗어나 인간 개개인의 삶과 보편적 가치를 실현하는 가치지향적인 방향으로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여전히 남북 대치로 인한 분단체제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한반도 평화의 개념이 변화, 확장하는 것이 어렵지만 지속가능하고 안정적인 평화의 상황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변화는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21세기의 평화연구에는 민주적 평화, 자유주의적 평화, 안정적 평화, 사회주의적 평화, 지속가능한 평화, 정의로운 평화, 시민의 평화, 초합리적 평화 등 다양한 의미에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복합적, 혼종성을 기초로 평화를 효과적으로 구축하기 위한 대안적 평화학 전급법이 나타나고 있다. 국제사회에서는 기존 좁은 의미의 평화개념을 넓은 의미로 확장하여 혼합적이고 혼종적인 의미로 전환하기 위한 포괄적 접근이 새롭게 나타나게 된 것이다. 대표적으로 댄 스미스(Dan Smith)는 평화를 형성하고 유지시키기 위한 방안에 대해 안보(security), 정치구조(political framework), 사회경제적 기반(socio-economic foundations), 화해와 정의(reconciliation and justice) 등 4가지 부문으로 구분하여 제시한 평화구축 방안을 보면 알 수 있다. 해당 4가지 각각의 부문들이 어떻게 조합하여 성과를 도출하느냐에 따라 평화구축의 정도와 역량이 결정될 수 있다고 파악했다.   <그림 1> 평화구축의 요소들  출처: Dan Smith, Towards a Strategic Framework for Peacebuilding: Getting their Act Together (Oslo: PRIO–International Peace Research Institute, 2004), p.28.  댄은 4가지 부문의 활동들의 역량들을 어떻게 조합하여 실행되느냐에 따라 평화구축의 정도와 내용이 다양하게 나타난다고 보았다. 평화구축의 정도는 각각의 분쟁사례와 상황에 따라 다른 결과를 보일 수 있으며, 각각의 부문들 간 조합되는 방식에 따라 평화구축의 강화정도가 달리 나타날 수 있다고 보았다. 4가지 부문이 각기 다른 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각 부문들이 서로 조화하고 조합되는 정도의 차이에 따라 평화구축의 평가가 달리 나타난다고 보았다. 예를 들어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여러 물감을 팔레트에 놓은 뒤, 섞어서 다양한 색감을 나타내는 것과 같이 해당 부문들이 조화를 이룰 때 진정한 평화구축이 실현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평화구축은 특정 어느 한 영역과 부문에서만 강화하고 추진해서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부문에서 광범위하게 평화구축을 위한 역량을 향상시킬 때 가능하다고 보았다. 이러한 총체적이고 복합적인 접근방식을 모색하려는 새로운 평화연구의 기본적 인식에서 전략적 평화의 개념이 도출될 수 있다. 전략적 평화는 분쟁 이후 평화구축을 위하여 가용가능한 행위자와 영역, 수준을 통합적으로 관리하여 평화의 형성을 전략적이고 효율적으로 도모하기 위한 방안에서 강구된 것이다. 전략적 평화는 기존의 민주평화, 자유주의적 평화, 소극적 평화, 적극적 평화 등 이분법적이고 단편적인 평화의 개념을 통합하여 전략적인 관점에서 총체적으로 파악하려는 데 기본적 인식을 지니고 있다. 분쟁 이후 평화구축을 위하여 단기적으로 투입되는 인도적 지원과 중장기적으로 투입되는 국제개발협력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통합성 차원이 전략적 평화가 추구하는 방향이라 할 수 있다. 노트르담 대학교의 Kroc 국제평화연구소에서 제시한 전략적 평화의 개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략적 평화에 대해 폭력이나 심각한 불의의 상태에서 벗어나 정의가 실현되는 평화적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일련의 보완적 실천으로 파악했다. 전략적 평화는 지역 문제, 즉 주어진 갈등 상황에서 현장에 있는 사람들과 소통하고, 이를 국내, 국제 행위자 및 기관들과 연결하여 갈등을 해결하려고 시도한다. 전략적 평화는 인권, 경제적 번영, 지속가능한 환경, 폭력 문제 등 다양한 분야를 다루면서 평화협정의 모니터링, 무장 세력의 해산, 인권 침해자에 대한 책임 처벌, 경제개발, 화해, 난민 재정착 등 다양한 문제에 대해 지속가능한 평화와 정의를 형성하기 위한 노력들이 포함된다. 전략적 평화는 인종, 종교, 계급 등의 구분적 요소를 넘어 보다 건설적인 관계를 형성할 것을 요구한다. 전략적 평화를 통한 평화구축은 분쟁국가 내부의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고 치명적인 갈등과 분열을 야기했던 구조적 조건을 변화시키려는 노력들이 포함된다. 전략적 평화를 위한 노력들에는 갈등예방, 갈등관리, 갈등해결, 갈등전환, 갈등 후 화해 등 폭력과 갈등에서 벗어나기 위한 다양한 정책적 사안들이 포함된다.   <그림 2> 전략적 평화의 구성요소  출처: 노트르담 대학교 ‘KROC 국제평화연구소’ <https://kroc.nd.edu/about-us/what-is-peace-studies/what-is-strategic-peacebuilding/>(검색일: 2021.9.30.).   (2) 전략적 평화의 특징   전략적 평화의 기본적 관점에서는 평화구축은 결코 분절적이거나 일방향적이지 않다는 점을 공유한다. 평화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며 각 구성요소들이 국제적, 국내적 상황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갈등의 복합적 양상으로 회귀하며 순환한다고 본다. 갈등의 복합화, 다원화, 다변화에 따라 평화를 구축하는 과정에서도 어떤 특정 공동체의 관점에 기초해 고립된 채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현실적 시각에서 문제를 접근해야 한다. 이러한 접근법의 기본적 인식에서 전략적 평화의 개념이 도출되는 것이다. 따라서 전략적 평화는 단번에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과정이 반복되면서 형성된다. 평화는 단지 배타적으로 혹은 우선적으로 어떤 성과를 유지하려는 상황에서 구축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의 변화와 과정에 대한 흐름 속에서 평화를 추구하고 지속시키는 것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평화는 전쟁과 폭력에 의해 무너진 사회를 재건하는 과정 속에서 이를 유지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을 찾아내는 것으로 파악해야 한다. 따라서 평화를 구축하는 작업은 정적인 것이 아니라 역동적인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평화를 구축하는 과정은 다양한 관점과 수준에 걸친 변화를 요구하며, 장기적인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비전과 설계를 요구한다. 변화의 과정에 관한 비전과 설계는 평화가 구축되는 방법과 조건을 파악하는 데 쉽게 이해하도록 도움을 줄 수 있다. 지속적으로 평화를 형성하기 위한 과정의 반복을 통해 갈등전환(conflict transformation)이 나타나게 된다. 전략적 평화를 통한 평화구축과 갈등전환은 지속가능한 평화를 추구한다. 갈등전환이 단순히 갈등이 해결, 해소된 상태를 넘어 갈등상태가 평화상태로 전환되어 지속가능한 평화구축의 상태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갈등전환은 갈등해결(conflict resolution)보다 넓은 개념을 인식하면서 평화구축과정에서 갈등해결적 측면보다 전환적 측면을 강조한다. 갈등전환적 측면에서 본 전략적 평화는 결국 특정한 시대와 공간으로 분절되거나 구획될 수 없는 인간적 삶의 문제라고 인식하게 된다. 평화는 단기적으로 전쟁과 폭력에 의해 무너진 일상적 삶의 다양한 차원을 엮어내고 회복하는데 기여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략적 평화는 이에 그치지 않고 장기적으로 서로 다른 존재들 간의 갈등과 충돌 속에서도 최선의 안정과 조화의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새로운 삶의 방식과 문화의 형성을 시도한다. 따라서 전략적 평화를 실현하는 작업은 다양한 평화의 실천들을 발굴하고 연결하는 역동적인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전략적 평화는 분절적인 것이 아니라 평화의 구성요소들 간에 연결 가능성을 추구한다. 각 구성요소들 간 연결은 평화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고립된 평화의 실천은 아무리 정당하고 강력하더라도 홀로 고립되어 진행되는 것은 취약하고 결국 쉽게 사그라지기 마련이다. 역사적으로 분쟁과 폭력은 국제적, 국내적 요소들이 구조적으로 복잡하게 엉켜 서로 상충할 때 증폭되었다. 따라서 평화의 달성 또한 이미 상존하고 있는 갈등의 복합적 요소들을 인지하는 동시에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는 작은 평화의 노력들을 연결하려는 노력 속에서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기존의 군축, 평화협정 등 전통적 타결책에 매몰되지 않고 보다 인간적이고 문화적 관점에서 일상 속 다양한 평화의 실천사항들을 발굴하고 연결 짓는 노력을 통해 지속적으로 평화가 형성될 수 있다. 전략적 평화를 통한 지속가능한 평화는 ‘평화’를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서 연속되는 과정과 지향으로 바라보며 기존의 평화담론, 평화구상, 평화실천들을 연결해 지속가능한 평화를 위한 연결 패러다임을 구축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지속가능한 평화구축의 본격적인 출발점은 연결에 있다. 지속가능한 평화구상은 이미 존재했지만 가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평화구상과 실천들을 현재 상황에 맞게 연결시켜 기존 평화구상과 정책 및 실천들 간의 공통성과 관계성을 추구한다. 기존의 평화연구가 단순히 평화를 달성하기 위한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조건들을 만들고, 실행하며, 유지하는 방법, 그리고 그와 관련된 주제들을 연구하는 것이라면, 전략적 평화는 지속가능한 평화를 구축하기 위한 기존의 논의들과 실천들의 어울림에 주목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한반도 및 동북아 차원에서 국제질서의 불확실성의 증대에 따른 새로운 안보위협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평화실천 구상을 마련하기 위한 의미 있는 시도라 할 수 있다. 평화구축을 위한 연결성은 전략적 평화의 개념의 핵심적 요소라 할 수 있다. 평화구축은 장기적으로 사회의 모든 수준에서 지역 및 세계 사람들 간의 관계가 연결되어 그 관계가 유지될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전략적 평화는 현장에서 활동하는 사람과 단체, 정책 입안자 및 정부, 국제기구 관계자들과 연결을 통해 구축된다. 전략적 평화는 갈등해결을 목표로 분쟁지역에서 평화와 정의가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사회, 제도, 정책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정상적 관계가 유지되는 것을 추구한다. 따라서 전략적 평화는 각 요소들간의 연결을 통해 평화의 질이 향상, 유지되는 양질의 평화(quality peace)를 추구한다. 전략적 평화가 바라보는 인식적, 실천적 다양성 속에서 조화를 이루며 이들 간의 관계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국제질서의 불확실성이 만들어내는 복합적 갈등과 안보위협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한국의 미래에 대한 사회과학적 대응체계를 구축하는 데 있어서 이론적, 정책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평화담론 및 연구에서는 평화가 부재한 상황을 전제로 새로운 평화의 형태를 구축하는 데 주목한다면, 전략적 평화에서는 기존 평화담론, 평화구상, 평화실천을 연결하여 새로운 평화모델을 논의하고 찾아가는 데 초점을 둔다.   한반도 평화담론 형성을 위한 제언   전략적 평화를 통한 지속성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기존 한반도 평화담론과 실천들에 대한 한계점을 극복해야 한다. 대표적인 한계는 분단이라는 특수성을 지나치게 고려한 결과 ‘평화’라는 본질적 측면을 소홀히 다루거나 논의의 범위가 협소하다는 측면이다. 그리고 한반도 평화구축의 과정을 단선적으로 이해하는 한계도 있다. 역사가 증명하듯 평화의 과정 속에서 체결되는 협정은 정치적 협상의 결과물로서 그 자체가 실질적 평화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며 신뢰, 용서, 화해 등의 인식의 변화가 수반돼야만 진정한 평화담론이 형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제질서 및 동북아 환경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새로운 남북협력 체계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한반도 평화구상과 실천들 간 조응하는 지점을 발굴하는 시도가 필요하다. 전략적 평화라는 개념을 통해 한반도에서 새로운 평화담론이 자리잡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사항에 고려할 필요가 있다. 첫째, 한반도에서 현재의 정전상태를 평화상태로 전환시키기 위해서는 평화조성(Peace-making), 평화유지(Peace-keeping), 평화구축(Peace-building) 등 3가지로 구분하여 평화를 창출하는 능동적 과정이 필요하다. 평화조성은 갈등의 전환을 의미하는 데 남북 간 정치・군사적 신뢰구축 조치를 위해 군사분야의 협상, 대화 등을 진행하여 군사적 긴장의 상태를 평화공존의 상태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평화유지란 남북 간의 무력충돌이 발생하지 않는 것으로 우발적 무력충돌 방지조치나 공격적 무기의 배치를 제한하고, 나아가 군비축소와 같은 적극적 조치를 취하여 평화의 상황을 유지시키기 위한 노력을 의미한다. 평화구축은 지속가능한 평화상태를 위해 평화협정과 같은 제도적 장치를 통해 항구적 평화체제를 구축하고 이를 정착시키기 위한 것을 의미한다.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는 전쟁의 원인이 구조적으로 제거된 상태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이는 결국 하나의 통일국가를 만들어 전쟁의 위협을 구조적으로 제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통일 역시 평화적 상태를 실현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통일로 인해 또 다른 갈등과 폭력이 발생한다면 이는 진정한 통일이 아니며 평화가 아니라는 점이다. 평화학적 관점에서 본다면 통일은 남북대립과 폭력으로 파괴된 사회를 정상적 상태로 만드는 평화조성, 평화유지, 평화구축의 장기적 과정으로 파악해야 한다. 둘째, 한반도의 새로운 평화담론은 인간다운 삶이 실현될 때 가능하다. 21세기 평화학에서는 국가안보의 개념에 대한 변화를 요구한다. 즉 국가안보의 궁극적 목적에 대한 인식부터 수단에 대한 논의까지 광범위한 변화를 요구하며, 그 중심에는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한 기반으로서 평화에 대한 소망을 요구한다. 따라서 평화학적 관점에서 한반도 평화체제란 과거 정치・군사적 대결과 갈등의 시기에서 벗어나 다양한 범위와 영역에서 안전하게 인간다운 일상적인 삶이 보장되는 상황이라 할 수 있다. 국가안보는 국민의 생명보전의 측면만을 강조할 뿐 실질적인 인간의 삶의 모습이나 행동에는 덜 관심을 가지기 때문에 평화학적 관점에서 국가안보의 형성이 평화라고 할 수 없다. 평화체제는 단순히 국가안보를 해결하는 군사적 긴장해소의 차원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인간다운 삶이란 인간안보를 실현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경제안보, 식량안보, 보건안보, 환경안보, 개인안보, 공동체안보, 정치안보 등 UNDP가 1994년 인간개발보고서를 통해 제시한 7가지의 인간안보를 구성하는 요소들을 실천하는 것이다. 단지 종전선언 혹은 평화협정을 통해 전쟁이 종식된 상황이 평화라고 불리는 소극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남한사람이든 북한사람이든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되어야 진정한 평화가 실현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평화의 과정에서 전쟁과 테러로부터의 위협 못지않게 빈곤과 기아, 질병, 불평등, 차별 등으로부터의 위협도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과제라는 점이다. 셋째, 한반도의 새로운 평화담론은 분단체제가 극복될 때만이 가능하다. 분단이 만들어낸 폭력적 활동과 구조, 담론에 따라 발생된 분단폭력을 해결해야 한다. 분단체제 하에 자행되던 각종 인권탄압 행동을 해결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분단으로 인해 발생된 폭력적 상황이 우리 사회에 구조화되어 있기에 쉽게 해결될 수 없는 문제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분단구조를 타파하고 통합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강제적인 힘을 사용하는 것은 또 다른 폭력을 불러일으키기에 평화학적 입장에서는 바람직한 방법이 아니다. 분단폭력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갈등과 대립하고 있는 문제들을 중재하고 트라우마를 치유할 수 있는 통합적 리더십이 요구된다. 즉 분단체제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용서와 화해 등 관념적 차원의 해결을 통해 지속가능한 평화를 구축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넷째, 한반도의 새로운 평화담론은 일상적 평화를 형성할 때 가능하다. 2018년 이후 한반도를 둘러싼 국가 간의 긴장완화로 전쟁위험이 줄어든 상황이 존재하지만, 평화학적 관점에서는 더 근본적인 것은 평화의 조건을 전쟁의 부재에서 찾기보다는 일상적 삶에서 찾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즉 인류역사에서 지금까지의 평화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평화가 아니라 구체적 전투행위가 잠시 멈춘 정전(停戰) 상태를 의미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전쟁의 부재상태는 인류역사에서 아직 존재한 적이 없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전쟁의 부재가 평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일상화가 평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갈등은 인간이 사회적인 생황을 영위하는 동안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이를 해결하는 형태에서 전쟁이나 폭력이 사용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갈등과 분쟁의 해결방식으로서 전쟁의 가능성과 필요성을 우리 인간의 머리속에서 지우고 갈등과 분쟁에 대한 평화적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전향적 사고가 평화학적 관점에서 요구된다. 즉 한반도의 평화는 기존체제의 현상유지와 동일시하는 것이 아니라, 분쟁과 갈등의 근원이 되거나 위협하는 구조적 요소를 없애고 해결할 때 가능해진다. 갈퉁에 의하면 구조적 폭력은 부정의한 사회적 조건 속으로 발생하는 데, 이로 인해 인간 개인의 잠재력이 실현될 수 있는 기회가 상실되는 상황을 제거시킬 때 평화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구조적 폭력이 개인마다 다르기에 어느 하나로 규정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이를 해결하여 평화를 실현하는 것은 난해한 작업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에서 국가안보를 위해 개인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는 점을 규정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할 때, 평화를 위한 국가안보가 그 평화의 목적인 국민의 자유를 제한하고 규제할 수 있게 되어 버린 매우 역설적 상황에 대한 해결까지도 평화학적 관점에서는 요구한다. 한반도와 같이 갈등의 내용이 역사적이고 구조적으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지역에서는 어떻게 하면 갈등을 잘 관리하고 풀어나가느냐의 문제가 중요하다. 중요한 것은 평화를 단순히 결과가 아닌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반도 평화의 기대감에 대한 굴곡이 존재하듯이 평화를 지향하고 실천하는 과정 속에서 실패와 성공이 나타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상호신뢰, 모든 당사자 포함, 핵심 문제의 논의 및 해결노력, 평화적 수단과 방법 사용 등을 모두 고려하여 전략적 평화의 관점에서 평화를 달성하는 노력이 진행되어야 하겠다. 결국 전략적 평화가 내포하는 연결성, 지속가능성은 평화란 끝없이 지속적으로 추구해야 할 부단히 어려운 작업의 연속이라는 것을 함의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하겠다.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기획: 유기은 박사후연구원 편집: 김인서 연구조교  저자소개 황수환은 통일연구원 부연구위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한국외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고려대 일민국제관계연구원 연구교수, 강원대 통일강원연구원 선임연구원, 경남연구원 남북교류협력연구센터 팀장, 평화나눔연구소 연구위원을 역임했다. 주요 연구분야는 남북한 관계, 한반도 통일, 평화연구이다. 주요 연구로는 『12개 렌즈로 보는 남북관계』(공저), 『분쟁의 평화적 전환과 한반도』(공저), 『DMZ 평화와 가치』(공저), 『평화공감대 확산 추진전략과 정책과제』(공저) 등이 있다.
  • [평화담론] 지구촌의 실존적 위기와 평화
    저자
    김유철 (덕성여자대학교 조교수)
    발간호
    2021-03
    15년여 전 한 여성 목회자로부터 선물 받은 책을 이제 꺼내 읽는다. 신학자 샐리 맥페이그(Sallie McFague)가 1987년 쓴 『어머니, 연인, 친구』(번역서명)라는 책이다. 저자는 그 책에서 인류의 절박한 위기에 부응하는 신학의 역할을 제안하기 위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맥페이그가 말하는 인류의 절박한 위기란 ‘생태학적 핵(위기) 시대’를 말한다. 그는 이원론에 기초한 위계적이고 배타적인 기존의 신학 패러다임은 이런 위기 극복에 알맞지 않다고 진단하고, 어머니, 연인, 친구라는 하나님 모델을 제시하며 일원론에 기초한 수평적이고 포용적인 패러다임을 제안한다. 35년여 전에 쓰인 책이 지금에도 적절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코로나19 사태로 지구촌이 하나의 운명공동체인 것처럼 보인다. 코로나19 사태의 세계적 유행, 일명 팬데믹(pandemic)으로 인류와 지구촌은 위기에 빠진 것이 분명하다. 그 미래를 낙관하기 어려운 점도 위기의식을 증폭시킨다. 그러나 지구촌 위기의 원인이 이 하나의 전염병으로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크다. 기후위기가 더 큰 원인일 수 있고, 거기에는 성장주의와 소비주의, 나아가 인간이 인간 이외의 존재에 대한 지배의식이 작용하고 있다. 다양한 형태의 분쟁, 특히 핵전쟁 위험이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기후·보건위기가 겹친 오늘날 지구촌이 ‘실존적 위기(existential crisis)’에 직면했다고 말하는 것이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인식에 인류가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적절히 대응하고 있는가? 이런 문제의식에서 평화를 다시 생각해보고자 한다.   지구촌의 실존적 위기 1) 분쟁 및 군비 증강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매년 세계 분쟁 및 평화 동향을 SIPRI YEAR란 책으로 묶어낸다. 2020년 상황을 담은 2021년판 보고서에 따르면 국제분쟁은 39개국에서 발생했다. 대부분의 분쟁은 내전이고 단지 두 분쟁(인도-파키스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이 국가간 국경분쟁이다. 나머지 두 분쟁은 이스라엘-팔레스틴, 터키-쿠르드 간 장기분쟁이다. 전해보다 5개가 늘었고,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20개 분쟁이 일어났다. 그 20개 분쟁 중 18개에서는 2019년보다 사상자가 더 늘었고, 전체적으로는 전년 대비 41% 늘었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는 중동 및 북아프리카(MENA)보다 사상자가 많은 고질적인 분쟁지역이다. 2020년 사상자는 12만 명으로서 2018년에 비해 30% 감소했는데, 아시아대양주와 중동 및 북아프리카에서 분쟁이 감소한 데 기인한다. 이 보고서는 분쟁을 사망자 수로 분류하는데, 1만 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한 분쟁으로 두 개의 내전(아프가니스탄과 예멘)을 꼽고 있고, 1천 명-9,999명이 사망한 고강도분쟁은 16개 사례를 들고 있다. 또 2020년 평화 프로세스가 진행되었지만 난항과 도전에 직면하였다고 보는데, 아프가니스탄에서의 평화협상은 결국 미군 철수와 탈레반 집권으로 귀결되었다. 리비아와 시리아에서 정전이 제안되어 협상이 진행 중이다. 러시아가 중재한 나고르노-카라바흐 분쟁은 일단 포성이 멈췄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는 유일하게 수단에서 평화 프로세스가 진척을 보이고 있다. SIPRI YEAR 2021은 코로나19 사태가 국제분쟁에 미친 영향을 간략히 언급하고 있는데, 그 영향이 단순하지 않다고 보았다. 일부 분쟁이 일시적으로 중단된 곳도 있지만, 폭력의 강도가 유지되거나 증가한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다만, 국제 평화유지활동(PKO)에 코로나19의 영향이 일정하게 작용했다고 평가한다. 평화유지활동은 전 세계에서 62곳에서 진행되었는데 적대행위로 인한 사상자는 줄어들었지만, 코로나19로 인한 일반 사망자는 늘어났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는 세계 무기거래 추세를 5년 단위로 분석해왔다. SIPRI YEAR 2021은 2016-20년 세계 무기거래량이 2011-15년과 거의 비슷하고 그 수준은 냉전 해체 이후 최고치를 유지하고 있다고 평가한다.(그림1) 물론 이 수치는 냉전이 격화하던 1981-85년 거래량보다 35% 낮은 것이다. 무기거래 규모에 코로나19와 경제침체가 미친 영향은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6-20년 최대의 무기 수출국은 미국으로 수출량의 37%를 차지했고, 최대 수입국은 사우디아라비아로 수입 규모의 11%를 차지한다. 한국은 무기 수출국 9위, 수입국 7위를 기록하고 있다. 한편, 핵무기는 2021년 세계에서 9개국이 약 13,080개를 보유하고 있고, 그중 3825개는 실전 배치되었고, 그 중 약 2천 개는 고도의 작전경계 상태에 있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냉전이 해체되던 1991년 1월 미국과 소련이 보유한 핵탄두가 약 23,000기였던 것에 비해 최근 핵무기 보유 규모는 대폭 감소했지만, 핵보유국은 4개국이 늘어났다. 북한을 포함한 늘어난 핵보유국들이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에 가입하지 않은 나라라는 점에서 핵확산의 위험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그림1. 세계 무기거래 추세(1950~2020년)  * 출처: SIPRI, SIPRI Yearbook 2021 (Summaries, English version), p. 14.    위 사실들로 볼 때 소극적 평화의 관점에서 오늘날 지구촌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물론 1980년대 전반기와 같은 군사적 긴장, 국가 간 전쟁은 크게 감소하였다. 그럼에도 고질적 분쟁 추세, 무기거래, 그리고 핵확산 동향 등을 고려할 때 만족스럽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의 다수의 고질적 분쟁은 정치, 경제, 역사적인 이유들이 작용하고 있어 소극적 평화의 관점에만 평화를 다루기 어려움을 암시한다. 또 무기거래 규모의 증대와 핵확산 위험도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현상적으로 소극적 평화의 문제로 보이는 것도 다른 요소들-민주주의, 발전, 화해, 공존, 다문화 등-이 작용함을 알 수 있는데, 평화를 깊고 넓게 생각한다면 구조적·문화적 평화를 함께 다루어야 함을 암시한다. 그런데 코로나19 사태의 세계화와 장기화 추세를 고려할 때 평화를 분쟁집단들 사이의 전쟁 부재의 상태로 한정해온 통념에 한계가 드러난다. 소극적 평화가 그 이상의 평화를 추구하는 전제이자 출발인 점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평화를 그렇게만 규정한다면 평화의 궁극적 지향에 소홀하고 전쟁 부재 상태를 만들기 위해 물리력 확충을 정당화하는 모순에 빠질 수 있다. 군비경쟁의 안보 딜레마가 그것이다. 평화가 각양의 폭력을 예방·중단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는 것을 말한다면 평화가 지양하는 폭력의 양상을 유연하고 다양하게 인식할 필요가 크다. 오늘날 겪고 있는 보건·기후위기 등 소위 인간안보(human security) 위협에 맞서는 노력은 평화 개념의 확장을 동반한다. 안토니오 구테레스(Antonio Guterres) 유엔 사무총장은 코로나19가 어렵게 달성한 발전과 평화구축의 성과를 위협할 뿐만 아니라, “분쟁을 악화시키고 새로 조장할 위험”을 지적했다. 구테레스 총장은 2020년 8월 한 회의에서 “지속가능한 평화 개념은 필수적으로 적극적 평화에 관하 것으로서, 이는 단순히 전쟁 종식과 다른 개념이다. 달리 말해, 그 개념은 국제사회가 총을 내린 상태를 넘어 대중이 보호받고 대표되는 상황까지 이른 나라를 포함한다”고 말했다. 여기서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평화가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한정된 문제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이상을 배경 지식으로 삼아 코로나19 사태가 인류의 삶에 주는 영향을 살펴보자.   2) 코로나19의 전방위 충격 코로나19 사태가 국제사회에 미친 충격을 인권의 시각에서 알아보자. 코로나19 사태가 진행된 지 1년이 지나는 시점에서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가 제출한 보고서는 코로나19의 충격이 건강, 생활, 교육 등 대중의 전반에 걸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고 말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1월 1일 현재 81백만 명 이상이 코로나19에 확진(1.8백만 명 사망)되었다. 혼란에 빠진 공공보건체계로 인해 여성을 포함한 대중의 신체적, 정신적인 피해가 큰데 코로나19에 대한 보건체계에 대한 접근이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도 정신건강 증진, 예방 및 의료 등에 대한 투자 부족으로 팬데믹이 초래한 정신건강에 대한 대응이 부적절했다. 공공보건의료에 대한 접근 부족으로 재정 형편이 부족한 대중의 치료 기회가 축소됨으로써 감염률이 높아졌다. 위 보고서는 또 코로나19와 부대 경제적 위기로 88백만 명에서 1억 15백만 명이 극심한 가난에 처해졌다고 말한다. 또 2020년 4-6월 사이 4억 95백만 개의 정규직업이 없어졌고, 전 세계 노동자의 절반이 직장을 잃을 위기에 빠졌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2020년에 코로나19 팬데믹으로 2019년 약 6억 9천만명의 영양부족 인구에 83백만~1억 32백만 명을 추가했다고 밝혔다. 낙후한 주거환경과 생활조건으로 감염 위기와 바이러스 확산을 증가시켜 전 세계 약 18억 명의 인구가 집을 잃고 부적절한 주거환경에 처해졌다. 30억여 명이 가정에서 식수 및 비누 이용이 미흡해 기본적인 위생문제를 초래했다. 또 약 10억 명 이상의 비공식 정착지에 있는 대중은 생활환경이 특히 열악하다. 그 결과 그런 대중이 코로나19로부터 보호할 능력은 심각하게 열악하다. 전 세계 인구의 71%의 인구(아동의 2/3 포함)는 사회보장을 적용받지 못하거나 부분적으로만 보호받고 있다. 비공식경제에 종사하는 여성들도 사회보장에 취약하다. 190여 국가에서 대규모 학교 폐쇄로 16억 명의 학생들이 영향을 받았다. 인터넷을 포함한 양질의 가정교육을 받지 못하는 학생들이 받는 충격은 인생에 영향을 줄 정도이다. 많은 아동들은 팬데믹이 초래한 교육 격차를 줄일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코로나19 확산을 통제하려는 국가 대책이 인권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은 뚜렷하다. 이동의 자유에 관한 봉쇄 및 제한 조치로 노인과 장애인 등 취약계층을 고립시킬 위험이 높아졌다. 가정에서 일어나는 젠더에 기반한 폭력이 봉쇄조치로 증가한다는 보고도 있다. 한편, 유엔개발프로그램(UNDP) 등 관련 기구는 위와 같은 코로나19의 광범위한 충격을 보다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위해 가난, 영양, 건강, 교육, 물과 위생시설에의 접근 등 7개 영역에 걸쳐 ① 코로나 없는 상황, ② 최악의 손실, ③ 지속가능발전목표(SGD) 적극 추진 등과 같은 시나리오를 설정해 코로나19의 충격을 비교 분석하였다. 코로나19가 가한 충격에 대해 보고서는 코로나 없는 상황에 비해 2030년 안에 48백만 명이 더 가난해지고, SDG 목표1(가난 퇴치)을 달성할 나라는 3개국을 넘지 않은 것으로 평가됐다. 또 12백만 명이 더 영양실조에 빠지고, 산모, 신생아, 아동 사망률은 줄어드는 대신 교육, 물과 위생 접근이 위축된다. 2030년 213백만 명이 코로나 없는 시나리오보다 더 가난에 처할 것이라고 한다. 코로나19의 이런 충격이 국가 내에서, 그리고 국가 간에 격차가 존재하는 것도 문제이다. 위 인권최고대표사무소의 보고서는 국가 내 집단 간 격차를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보고서는 코로나19의 충격이 고르지 않고, 취약집단에 더 큰 충격을 가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들은 아동, 원주민과 소수민족, 성소수자, 죄수, 장애인, 이동 중인 사람, 노령자, 여성 및 소녀 등이다. 예를 들어 팬데믹이 국내 실향민은 물론 이주민, 난민, 피난민에 미친 영향은 대단하다. 국경 봉쇄로 수백만 명의 이주민들과 고국으로 되돌아가려는 사람들이 방황하고 있다. 이동 중인 대중은 식수와 위생, 거처 혹은 충분한 영양 등 기본적인 서비스에 대한 접근에 취약하다. 또 여성은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될 위기에 다른 집단보다 더 많이 노출당해 있다. 88%의 개인 돌봄 노동자와 69%의 의료종사자들이 여성이다. 코로나19의 충격이 국가 간에 차이가 있는 점은 방역과 백신 접종 기회에서의 격차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최근 보고에 따르면 67개국에서 90%의 인구가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접근이 불가능했는데, 그에 비해 부자 나라에서는 2021년 말까지 세 번에 걸친 백신 접종이 이루어질 전망이다. WHO는 올 연말까지 세계 각국이 전체 인구의 40%가 코로나 백신 접종을 완료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아프리카에서는 전 세계에서 접종된 코로나 백신 접종의 2%에 불과한 수준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관련 국제기구와 일부 국가에서 노력하고 있지만 ‘백신 국가주의’는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그래서 코로나19가 인간발전지수(HDI)가 중하위로 평가되는 국가들에 미친 영향이 주목을 끈다. 2020년 인간발전지수는 평가를 시작한 지 30년 만에 처음으로 “가파르고 전례 없는 하락”을 보였다. 인간발전보고국의 2020년 분석에 따르면, 팬데믹이 초래한 학교 폐쇄 혹은 효과적이 않은 거리두기 학습으로 중하위 인간발전국가들에서 보통교육에서 학교수업 중단 비율은 86%(하위국가), 74%(중위국가)로, 이는 고위국가들에서의 20%에 비해 훨씬 높다. 2030년까지 중하위 국가에서 극심한 빈곤에 처한 대중은 626백만 명(코로나 영향 지속시) 또는 753백만 명(최악의 시나리오시)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다. 2030년까지 가난에 처한 대중의 86%가 중하위 국가에서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79%의 대중은 최악의 시나리오에 직면할 것이다. 41백만 명에서 169백만 명은 코로나 영향 지속시와 최악의 시나리오시에 직접 가난에 직면할 것이고, 그 중 20백만~83백만 명은 여성과 소녀들이다. 2030년까지 코로나19 사태로 영양실조에 직면할 인구는 코로나19의 영향이 없는 경우와 비교해 12.8백만 명으로 증가할 수있다.(그림2) 결국 코로나19 사태는 기존의 불평등 추세를 촉진하고 가장 취약한 계층이 겪는 곤경을 악화시켜왔다. 국가 내 불평등은 물론 코로나19로 국가 간 불평등도 커질 것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예측할 수 없어 그 사회경제적 충격을 완전히 파악하는 데 수년이 더 걸릴 것으로 이 보고는 예측한다.   그림2. 인간발전지수 중하위 국가의 극빈층 비율  * 출처: B. Abodoye et al, “Leaving No One Behind: Impact of COVID-19 on the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SDGs),” UNDP and Frederick S. Pardee Center for International Futures (2021) p. 8.    식량 위기와 관련해 세계식량계획(WFP)과 세계농업기구(FAO)는 23개 국가 혹은 상황에서 심각한 식량 불안이 2021년 8-11월 사이에 더 악화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들 국가는 대부분 아프리카와 중동, 서남아시아와 카리브해에 위치한 중저위국들이다. 이들 23개 사례에서 생명과 삶을 구조하기 위한 표적화된 인도주의적 행동이 긴급하게 요청된다. 그중 5개 사례는 기아와 사망 예방을 위해 대단히 중요하다고 평가됐다.   지구촌의 복합 대응 1) 기후·보건위기의 안보리 습격 코로나19 사태의 충격이 사상 유례가 없고 그 종식이 아직 기약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인류는 혼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서도 인류는 지혜와 경험을 모아 대응을 시작하고 있다. 코로나19에 맞서는 지구촌의 대응에서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국제사회의 분쟁 종식 합의와 평화 인식의 확대이다. 코로나19 사태의 세계적인 대처를 위해 2020년 7월 1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국제 분쟁집단을 향해 분쟁 종식을 촉구하는 결의 2532호를 채택하였다. 안보리의 이 결의는 보건위기가 국제 평화 및 안보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안보와 평화 개념의 확장이 불가피해진 것이다. 이어 안보리는 2021년 2월 26일에도 전 세계 모든 분쟁 당사자들에게 “지속적으로 인도주의에 기여하는 분쟁종식”을 촉구하는 결의 2286호를 통과시켰다. 안보리는 이 결의로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원활하게 전개되길 기대하였다. 결의 2286호를 환영하면서 테로스 게브레이수스(Tedros A. Ghebreyesus) 세계보건기구 국장은 백신 생산을 늘리기 위해 관련 지적재산권 포기를 촉구했다. 그는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인질로 잡고 있다”고 지적하고, 이 바이러스의 조기 퇴치를 위해서는 “유엔 안보리가 정치적 의지가 있다면 그것(백신에 대한 지적재산권 포기: 필자 주)를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보건위기와 함께 기후위기도 안보리의 의제로 부상하였다. 2019년 1월 25일 안보리는 기후위기가 평화안보에 미치는 영향과 그 대책을 논의하는 회의를 열었다. 이 회의에 70여개 국가들에서 고위 정치인들과 과학자들이 참여했다. 그 자리에서 로즈마리 디카를로(Rosemary DiCarlo) 정치‧평화 담당 유엔 사무차장은 “기후 관련 위기와 평화의 관계는 복잡하고 종종 정치, 사회, 경제, 그리고 지형적 요소들과 상호 작용한다”고 말했다. 2015년 파리기후협정 이행 방안에 동의한 지 2개월 후 197개국에서 모인 이 자리에서 기후변화는 ‘복합 위협’으로 규정되었다. 세계은행은 기후변화에 즉각 대응하지 않으면 해수면 상승, 물 부족, 농작물 생산성 저하 등으로 2050년까지 2억 1,600만 명의 사람들이 이주를 강제당할 것이라고 경고할 정도이다. 이런 위험 징후와 경고를 감지하고 유엔 안보리는 새 천년 들어 기후변화를 국제안보문제로 다루기 시작했다. 그 중 최근의 한 예로 2017년 3월에는 기후 관련 위기를 다뤄 아프리카 차드호 유역에서의 분쟁 해결을 촉구하는 결의 2349를 채택하기도 했다. 그 자리에는 아킴 스타이너(Achim Steiner) UNDP 행정관, 파블 캐뱃(Pavel Kabat) 세계기상기구(WMO) 수석과학자, 그리고 청년대표로 린제이 겟첼(Lindsay Getschel) 환경안보 연구원이 참석해 기후위기 징후들이 국가 및 국제안보 위협임을 강조하고 그 해결책으로 재생에너지 사용 확대를 비롯한 기후 적응 및 위기 감소에 투자할 것을 내놓았다. 기후·보건위기의 동반 부상으로 지구촌의 존립이 위태롭게 되면서 이들 문제들이 안보리의 테이블에 오르는 것은 자연스럽고,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 구테레스 유엔 사무총장은 2020년 8월 한 회의에서 안보리의 국제분쟁 종식 촉구 결의를 평가하면서도, 40여 건 이상의 선거 연기를 지적하면서 코로나19가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핑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포용(inclusion)이 인도주의와 발전 문제 대응, 특히 공동체와 소외집단에 “대단히 중요하다”고 지적하면서, 왜냐하면 그렇게 함으로써 “신뢰를 다시 만들고 사회적 결속을 증진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쿠테레스 사무총장은 인도주의, 발전, 그리고 평화 행위자들에 걸쳐 지속하는 평화는 통합되고 일관된 접근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유엔 안보리의 분쟁 중단 결의로 대부분의 분쟁이 중단된 것은 고무할 만한 일이다. 이 결의를 계속해서 준수하고 분쟁 요인들을 대화와 협상을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노력을 계속해나가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유엔과 지역기구, 그리고 유관 국가들의 중재 및 촉진 역할이 더욱 요청된다. 필요시 분쟁지역에 적절한 방식의 평화유지활동을 전개하고 분쟁 당사자 집단의 협상을 격려하는 방안을 적극 개발할 바이다. 그러나 전쟁 중단과 분쟁의 평화적 해결 노력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평화를 달성하는 평화적 수단이다. 모든 역량을 투입해 코로나19를 퇴치하고 모두가 안전하고 평온한 세계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목적과 수단 양 측면에서 평화의 확장이 불가피해진 것이다. 그러면 코로나19의 충격이 말하는 깊은 메시지는 무엇인가? 2020년 9월 유엔 총회에서는 유엔 체계와 관련 지역 및 국제 조직과 금융기구들이 협력해 코로나19가 초래한 사회, 경제, 인도주의, 재정적 충격에 적절하고 비차별적인 방식으로 대응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결의(A/RES/74/307)를 채택한 바 있다. 이 결의에는 단기적, 구조적 대응과 일국적, 국제적 대응, 그리고 취약계층 보호 등을 다루고 있는데, 그 구체적인 대응 방안이 앞에서 언급한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의 2021년 1월 보고서이다. 아래는 그 보고서를 통해 국제사회가 코로나19에 대응하는 현 상황을 조감해볼 수 있다.   2)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넘어 국제사회가 코로나19에 대응하는 방향은 크게 넷이다. 하나는 불평등 및 차별에의 대응이다. 취약계층이 코로나19로 사망 가능성이 더욱 높고 사회경제적 타격을 가장 심하게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이 겪는 충격을 완화하는데 집중하는 것이다. 이는 도덕적인 측면만이 아니라 실용적 측면에서도 중요한 과제인데 현재 그렇게 진행되는지는 의문이다. 둘째는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과 대중의 안전하고 포용적이고 효과적인 참여이다. 팬데믹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더 나은 회복은 모든 사람들이 대책활동에 참여하느냐에 달려있다. 여기에 효율을 선호하고 비민주적 의사결정을 해온 관행이 이를 제약할 수 있다. 특히, 언론인, 인권옹호자, 의료종사자들이 자유롭게 발언할 공간을 보장하는 것이 코로나19 대응에 관건이다. 세 번째 방향은 새로운 사회계약 실행과 경제 전환이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는 정부, 대중, 시민사회, 사적 영역, 국제금융기구 등이 새 사회계약을 맺어 동등한 권리와 기회에 기반해 고용, 지속가능한 발전, 보편적 의료체계, 사회보호를 보장할 것을 권고한다. 이와 관련해 최우선 과제는 보편적이고 강력한 건강체계 발전, 모든 계층이 양질의 교육에 접근하는 것이다. 아직 코로나 대응에 전력하는 나머지 이런 구조적 전환은 서서히 일어날 것이다. 네번째 방향이 세계적 대응이다. 팬데믹 사태는 상호연관된 오늘날의 세계와 우리 각자의 안전과 안보가 모두의 안전과 안보에 의존하는 정도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더 강하고 더 회복가능한 미래를 향한 길은 새로운 수준의 세계 협력과 국제 연대를 필요로 한다. 각종 이기주의와 배타주의는 그것을 추구하는 집단의 생존을 보장하지 않고 지구촌의 모든 존재와 지구의 공멸을 촉진할 뿐임을 인식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러면 코로나19 백신을 세계적 공공재로 다루어 백신 분배를 골고루 한다면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의 백신 접종이 불가능한 목표는 아닐 것이다. 이상과 같은 코로나 대응은 여전히 인간의 생존에 초점을 두고 인간과 인간의 관계 개선을 대안으로 삼고 있다. 과연 지구촌의 위기를 이렇게 인식하고 접근하면 평화로운 지구를 만들어갈 수 있는가? 여기서 기후위기와 보건위기가 어떻게 발생하고 이제는 통제불가능해 보이는지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매우 흥미롭지만 우울한 보고서가 주목을 받고 있다. 2020~21년 전 세계 각지에서 발생한 10개의 재난이 서로 연관되어 있음이 밝혀졌다. 유엔대학 등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인간의 행동이 기온 상승을 전례 없이 높여놓았다. 한 곳의 재난이 다른 곳의 재난과 연관성이 뚜렷하고 그 범위가 광범위하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코로나19의 세계적 유행, 미국 텍사스주의 때아닌 추위, 아마존 숲 5백만 에이커를 파괴한 화재, 그리고 9개의 폭우가 7주 간 연속해서 발생한 베트남이 서로 연관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들 재난은 각각 수천 마일 떨어져 발생했지만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다. 예를 들어 북극지방의 기후 상승으로 극소용돌이가 파괴돼 찬 공기가 남쪽으로 내려가 텍사스주에 찬 공기가 엄습해 전력망이 얼어붙고 210명이 사망했다. 또 다른 우울한 예는 코로나19와 사이클론의 연관성이다. 사이클론 암판이 인도와 방글라데시를 덮쳤는데, 피해 지역 주민의 50% 이상이 빈민층이었다. 코로나19의 발생과 그에 따른 봉쇄조치로 이주노동자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강제로 파괴된 집으로 되돌아갔는데, 곧장 이들은 격리상태에 처해졌다. 주민들은 사회적 거리두기, 위생 그리고 사생활을 걱정하며 불안정한 곳에서 폭풍을 견뎌내기로 했는데, 곧이어 코로나19에 직면한 것이다. 주민들 가운데 사이클론으로 100명이 목숨을 잃었고 490만여 명이 집을 잃었고 130억 달러의 피해를 보았다. 이 보고서는 일련의 재난 사건들의 근본 원인도 거론하고 있는데, 그것은 인간이 유발한 온실가스 배출, 불충분한 재난위기 관리, 환경문제의 영향을 저평가해온 정책결정 관행 사이의 상호연관성이다. 인간이 유발한 온실가스 배출은 텍사스주가 경험한 때아닌 추위의 원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세계 반대편의 사이클론의 형성에도 영향을 미쳤다. 불충분한 재난위기 관리도 텍사스주가 경험한 많은 인명 손실과 인프라 피해, 그리고 베트남 중부지역의 홍수로 초래한 많은 손실에 영향을 미쳤다. 아마존의 산림 파괴는 인간의 세계적인 육류 수요와 연관이 있는데, 이는 동물 사육을 위한 콩 재배지의 증가를 동반하였다. 그 결과 아마존의 숲이 더 많이 파괴되는 것이다. “우리가 세계에서 목도하고 있는 재난은 상상 이상으로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다. 그 재난들은 개인의 행동과도 연관되어 있다.”고 이 연구에 참여한 유엔대학 잭 오코너(Jack O'Connor) 박사가 평가했다. 기후·보건위기가 겹쳐 명확해진 지구촌의 실존적 위기는 인간과 세계를 운명공동체와 같이 상호의존적으로 묶어내고 있다. 그래서 발상의 전환은 불가피할 뿐만 아니라 필연적이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 변화만이 아니라 인간과 세계, 특히 생태계와의 관계 전환이 있어야 함을 위와 같은 복합 재난이 말해주고 있다. 인류는 새천년 들어 지속가능한 발전 목표(MDG, SDG)를 설정하고 노력하고 있지만, 코로나19가 없는 상황이라도 세계는 SDG 2020년 목표치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거기에 코로나19 사태는 세계경제 위축을 초래함으로써 SDG 목표 달성에 상당한 도전을 추가하고 있다.(그림3) 심지어는 SDG를 적극 추진하는 시나리오조차도 우리가 원하는 세계를 완전하고 보편적으로 달성하는 것을 약속할 수 없다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그림3. 시나리오별 SDG 목표 달성 가능치(2030)  * 출처: Hughes et al., “Pursuing the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in a World Reshaped by COVID-19,” p. 9.    동질이형의 평화 위와 같은 우울한 전망 속에서 세계평화의 길은 실종되어 버리는가? 기존의 평화관은 사라지고 대안적 평화관은 감도 잡기 어려워지는가? 코로나19 극복 이전에 다른 모든 것은 뒤로 미뤄놓을 수밖에 없는가? 여기서 평화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본다. 세계적인 기후·보건위기는 인류의 삶은 물론 소극적 평화에 익숙한 기존의 평화 인식에도 큰 충격을 주고 있다. 표현 때문에 오해를 줄 수도 있겠으나 소극적 평화와 적극적 평화는 경중과 우열의 관계가 아니다. 서로 의존하고 강화하는 관계이다. 소극적 평화 없이 적극적 평화가 가능할까? 내전이 계속되고 있는 예멘과 시리아 등지에서는 코로나19 대응은 물론 식량, 물과 위생, 치료 등 생존의 필수조건들에 접근하기조차 어렵다. 또 적극적 평화를 무시하는 소극적 평화는 기만적이다. 평화를 위해 인권과 민주주의를 희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괴변에 불과하다. 현재 아프가니스탄과 미얀마 집권세력은 이런 비난에 직면해있다. 이렇게 차이나 보이는 사례들에서 보이는 공통점은 평화들 사이의 불가분성을 무시한 채 평화를 권력의 수단으로 다루는 행태이다. 지구촌의 실존적 위기는 인류 전체의 대오각성과 공동 대응을 요청한다. 그 전제는 세계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이 조화를 이루며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통전적인 시각(holistic perspective)이다. 인간이 자신과 다른 집단-학연·지연·계층·직급 등으로 구별되는 집단, 다른 민족, 국가, 인종 등-과 조화를 이루며 공존할 수 있는지는 단정하기 어려운 논쟁적인 주제이다. 그럼에도 전쟁을 비롯한 물리적 폭력의 종식을 힘의 억제나 균형에만 의존한다면 그것은 일시적인 효과에 그친다는 사실이 뚜렷해지고 있다. 억압과 차별, 불평등과 혐오를 합리화하고 정당화해 온 구조적·문화적 폭력의 종식에서만 평화가 온전하게 도래한다. 요컨대 소극적 평화는 적극적 평화에 의해서만 확실하게 보장될 수 있다. 그렇게 하려면 인간사회 내 다양한 집단과 가치들 사이의 상호 존중과 협력 외에 묘안이 없다. 그런 움직임은 세계를 서로 연결된 하나의 총체로 바라보는 시각에 의해 지지받는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권력과 지배의 시각에서 인정와 공존의 시각으로 전환하지 않는 한 전쟁과 그 수많은 원인들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코로나19의 세계적 유행으로 분쟁이 일시 중단된 것은 고무적이지만, 만약 코로나19가 진정되고 다시 분쟁이 격화된다면 인류는 마지막 생존의 기회를 스스로 버리는 셈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분쟁을 중단한 터에 (핵)무기를 보습으로, 적대에서 공존으로 전환해버리면(!) 좋을 것이다. 이것을 규범이나 용기로 요구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인류와 그 터전의 생존을 위한 최후의 필수적인 선택인 것이다. 그럴 경우 지구촌의 실존적 위기는 일부 개선될 것이다. 그것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 개선으로 만든 평화라는 점에서 성과이지만, 같은 이유로 이 실존적 위기를 해소하는 수준은 아니라는 점에서 불충분한 평화이다. 이런 불만스러운 전망은 무엇이 문제인가, 그것이 평화 논의와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여기까지 와서도 지구촌의 위기가 실존적 차원이라는 인식에 공감하지 못하다면, 앞에서 말한 2020~21년 복합 재난이 지구촌의 생존을 위협하는 전조라는 평가에 귀 기울이면 좋을 것이다. 2021년 세계 기상이변은 산업화 이전 대비 1.09도 상승한 기온에서 발생했다. 그런데 과학계가 지구 생존의 분수령이 될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상승할 가능성이 20년 안으로 더 가까워졌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렇게 기온이 상승할 때 발생할 기상변화는 인간의 손을 넘어 지구촌의 존립 자체를 위협할 것이다.(그림4) 그때는 전쟁할 조건과 의지가 사라질 것이다. 왜냐하면 전쟁의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이는 평화를 인간과 인간의 관계 전환으로 접근하는 기존 관행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음을 말해준다. 생태위기가 주도하는 지구촌의 실존적 위기 시대에 말이다.   그림4.  * 출처: 『한겨레』, 2021년 8월 9일.  그럼 그런 위기의 심연에서 기회의 빛을 볼 수 있을까? 아니 그에 앞서 생존의 빛을 볼 길을 인류는 알고 있는가? 그것은 복합적이고 무서운 재난의 사슬 사이에 있는 건 아닐까? 오코너 박사는 대담하게도 문제가 상호연관되어 있다면 그 해결책도 그럴 것이라고 단서를 잡는다. 그는 온실가스 배출 감축은 다양한 재난의 영향을 감소시키고, 재난의 빈도와 심각성을 완화시키고, 생물 다양성과 생태계를 보호할 수 있다고 말한다. 여기서 상기할 바는 결자해지(結者解之) 아닐까? 오코너 박사의 제안도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왜곡한 측에서 먼저 행동해야 함을 말해주고 있다. 생태계를 파괴해온 인간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것이 인간과 자연의 관계 회복을 통해 조화롭고 지속가능한 삶을 형성하는 출발이다. 성장 및 소비 지상주의, 그것을 영원히 추구하기 위한 경쟁과 지배의 패러다임은 그 스스로 만들어낸 결과에 의해 부정당하는 셈이다. 인류 삶의 터전이 존립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MDG, SDG 같은 거대 프로젝트도 인간와 세계의 관계 전환을 중심으로 재조정할 필요가 크다. 복합 재난의 극복을 위해 인간이 유발한 온실가스 배출 완화가 출발점이라고 해도 그 방법에 국제사회가 동감하고 동참하지 않으면 허망한 일이다. 숲 복원과 토양 중성화가 그 주요 방법이다. 일종의 “자연에 기반한 인간발전”의 길이다. 그 방법은 지구적으로는 동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해당 국가와 이해당사자 집단이 반대할 수 있다. 온실가스 배출로 많은 이익을 보았거나 기대하는 집단들(국가 포함)은 권력이 많은 반면, 원주민과 지역사회는 그렇지 않다. 자연친화적인 발전으로 나아가도록 규제와 인센티브를 동시에 고안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오늘의 지구촌이 이대로는 존립할 수 없고 대전환에 나서야 한다는 절박한 현실의식을 공유하는 일이다. 그 밑바탕에는 인간과 세계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고 인간은 세계의 (지배자가 아니라) 일부에 불과하다는 세계관이 자리하고 있다. 오늘날 인류의 삶이 위험사회에서 위험세계로 악화되어 버린 상황에 부응하여 삶의 목표와 방식을 전환시켜야 한다. 35년여 전 맥페이그 교수가 직면한 세계가 개선되기는커녕 더 악화되었다. 그녀가 말한 세 가지 하나님 모델은 지구촌의 실존적 위기 시대에 더 알맞고 더 절실하다. 지구를 어머니로, 지구를 구성하는 인간 외 다른 생명을 연인과 친구로 대하면 어떨까! 지구촌의 실존적 위기 상황에서 평화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머물러 있지 않고 인간과 세계의 관계를 적극 끌어안고 그 문제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평화 인식도 인간 간의 관계를 중심으로 다뤄온 관행에서 벗어날 때이다. 인간과 세계의 관계, 세계 속에서 인간의 위상과 역할이 평화의 주요 관심사로 들어서는 것이다. 오늘날 평화는 그 대상과 관심사가 확대되어 그 유형이 다양해지는 양상인데, 그럼에도 그 자세(이해와 공존)와 접근방법(대화와 협력)에는 변함이 없다. 평화도 존재 조건의 변화에 부응하고 변화할 때 그 존재의의를 재발견할 수 있다. 지구촌의 실존적 위기 시대에 평화는 전쟁 부재를 전제로 조화로운 관계 맺기로 재정의할 수 있다. 한반도는 자체의 평화 프로세스를 전개해나가면서 이상과 같은 지구촌의 실존적 위기 극복에 동참해 나가야 할 입장이다.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저자소개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외교부 자문위원, 통일부 남북회담본부 자문위원. 최근 저작으로 『한국 평화학의 탐구』, 『12개 렌즈로 보는 남북관계』, 『분쟁의 평화적 전환과 한반도』 등이 있다.
  • [평화담론] 방공식별구역 이슈와 동아시아 평화
    저자
    서보혁(통일연구원 연구위원)
    발간호
    2021-02
    동아시아 국가 간 상당한 수준의 경제적 상호의존과 해소되지 않는 역내 정치·안보적 경쟁구조의 기묘한 공존은 흔히 ‘동아시아 패러독스’ 라 불린다. 사실, 이 용어만큼 협력과 갈등이 교차하는 동아시아 지역질서의 특징을 가장 압축적으로 표상하는 용어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Goldstein and Mansfiled 2012). 문제는 최근 동아시아 질서는 협력의 축이 약화하는 반면,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중·일 3국의 역내 교역 비중은 1990년 12.3%에서 2011년 21.3%로 확대되는 경향을 보이다가 최근 다시 둔화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는 중국의 역외무역 증가, 사드 배치 이후 중국의 보복조치 및 한국의 대중 헤징전략, 일본의 대한(對韓) 수출규제, 미·중 간 전략적 경쟁의 심화와 경제블록화 현상 등 정치적 갈등의 영향 때문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처럼 최근 동아시아 역내관계는 정치·안보적 갈등이 경제·사회적 협력마저 위협하는 상황에 이르고 있다. 혹자는 동아시아 지역에서 정치·안보적 갈등이 전면전의 양상으로 번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위기 안정성(crisis stability)’ 이 존재한다고 보기도 한다 (Choi 2016). 동북아 삼국의 군사력은 일국의 기습공격에 대해 충분한 보복을 단행할 수 있을 정도로 비교적 균등한 상황이며, 이러한 긴장 상황에 대한 인지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위기가 격화되지 않는 억제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보다 구조론적 설명으로는 역외국가인 미국이 군사적 우위를 바탕으로 한국과 일본에 주둔군과 전략자산을 배치하고, 중국의 공세적 군사전략과 일본의 군국주의화를 막는 ‘이중의 억제(dual containment)’에 초점을 맞추는 접근이 있다. 즉, 미국은 ‘바퀴축과 바퀴살 (hub-and-spoke)’과 같이 한·일 양국의 공동의 동맹국으로서 중국의 잠재적 위협에 대처할 수 있는 안보 공공재를 제공하고, 한일 양국 간에 비공식적 ‘준동맹(quasi-alliance)’과 유사한 안보협력 관계를 구축함으로써 갈등의 격화를 관리한다는 해석이다 (Ikenberry 2004). 문제의 소재는 이러한 군사적 상호억제에 기반한 안정성은 항구적인 것이 되기 힘들다는 데에 있다. ‘위기 안정성’ 이라는 형용모순에 가까운 용어가 표상하듯 군사적 상호억제에 의한 균형은 사실 여러 ‘촉발요인(triggering event)’에 의해 깨지기 쉬운 불안한 것이다. 배타적 동맹체제에 의해 나름 세력균형에 의한 불안정한 평화기를 유지하던 유럽에서 사라예보 사건이라는 촉발요인이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제1차 세계대전의 참화로 번진 과정은 이러한 불안정성을 잘 보여 준다. 현재 동아시아 지역에서도 다양한 분쟁의 촉발요인이 존재한다. 독도 영유권을 둘러싼 한-일간 갈등, 센카쿠/다오위다오를 둘러싼 중-일 간 영토분쟁은 대표적 갈등요인으로 지적되어 왔다. 또한, 미·중 간 전략적 경쟁이 격화로 인해 구조적 안정성이 위협받는 현 정세에서 대만해협 및 남중국해 등에서 전개되는 미국의 ‘항행의 자유의 작전(FONOPS: Freedom of Navigation Operations)’과 이에 대한 중국의 대응은 구조적 변동과 연계된 위험성 있는 촉발요인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반길주 2021). 학술적·이론적 관심도가 그리 높지는 않으나, 잠재적 분쟁 격화의 속도면에서 예의 주시해야 하는 갈등요인으로는 ‘방공식별구역(ADIZ: Air Defense Identification Zone)’의 경쟁적 선언과 침범에 관한 문제를 들 수 있다. 방공식별구역 문제는 군용항공기의 항속 속도에 기인하는 분쟁 격화의 긴박성, 각국 안보에 대한 민감성, 미중경쟁과의 연관성, 한국 관여 정도의 직접성 등 요소를 고려하면,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잠재적 위험성을 가진 이슈이다.   방공식별구역의 정의와 쟁점, 그리고 관련 분쟁 방공식별구역은 “영공방위 및 항공기 식별을 목적으로 통상 영공 외곽 지역에 일방적으로 설정된 공중구역”을 의미한다. 방공식별구역에 진입하는 외국 국적의 항공기는 관계 당국에 사전에 비행계획서의 제출이 요구되며, 비행 중 쌍방교신 유지의 의무를 지닌다. 방공식별구역은 비행정보구역(FIR: Flight Information Region), 작전구역(AO: Areas of Operations), 비행금지구역(NFL: No-fly Zone)등의 개념과 구분되는데, 우선 비행정보구역은 항공기구(ICAO)에서 분할ㆍ설정한 공역으로, 비행 중에 있는 항공기에 안전하고 효율적인 운항에 필요한 각종 정보를 제공하고, 항공기 사고의 발생 시 수색 및 구조업무를 책임지고 제공할 목적으로 구획된 영역을 의미한다. 즉, 설정 주체가 국제기구인 ICAO라는 점, 그 목적이 단순 항공교통의 안전 담보라는 점에서 방공식별구역과 구별된다. 작전구역은 평시 아군의 해상 및 공중 전력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합참의장이 설정한 구역을 의미하며, 방공식별구역과 달리 대외적으로 공표되지 않으며, 적용 대상도 자국군 구성원 및 전력에 국한된다. 비행금지구역은 안보적 목적으로 항공기의 비행을 불허하는 지역으로 공중에서의 비무장지대와 같은 성격을 지니며, 침범 시 격추될 수 있다 (김한택 2015, 72-75). 방공식별구역의 역사적 연원은 냉전기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미국이 점증하는 소련의 위협, 특히 고속 전폭기로부터의 위협을 효과적으로 방어하기 위해 자국 영공의 바깥에 5개의 방공식별구역을 설정한 것이 그 시초이다. 현재 미국이 설정한 방공식별구역은 대서양, 태평양, 하와이, 괌 등 여러 지역을 포괄하며, 남 캘리포니아 지역에 설정된 방공식별구역의 경우 연안에서 400해리에 이르는 지역에까지 뻗어 있다. 미국의 관행을 좇아 상당수 국가가 자국의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하였는데, 한국, 영국, 중국, 일본 등 약 28개 국가가 이에 해당한다. 방공식별구역 설정을 가능 혹은 금지하는 명확한 국제법 규정은 없으며, 이를 선포한 여러 국가들의 관행 및 운용 세칙 역시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어떤 국가들은 통과 통행(in transit) 중인 항공기를 적용 대상으로 포함하는 반면, 이를 적용 대상에 제외하는 국가들도 있다. 다만, '국제민간항공조약(Convention on International Civil Aviation, 일명 시카고협약)' 제12조에 규정된 영공 및 공해상에서 설정되는 규칙에 대한 일반규정을 방공식별구역 설치의 근거로 삼기도 한다. 동 조항은 “각 체약국은 그 영역의 상공을 비행 또는 동 영역 내에서 작동하는 모든 항공기와 그 소재의 여하를 불문하고 그 국적표지를 게시하는 모든 항공기가 당해지에 시행되고 있는 항공기의 비행 또는 작동에 관한 법규와 규칙에 따르는 것을 보장하는 조치를 취하는 것을 약속한다. 각 체약국은 이에 관한 자국의 규칙을 가능한 한 광범위하게 본 협약에 의하여 수시 설정되는 규칙에 일치하게 하는 것을 약속한다. 공해의 상공에서 시행되는 법규는 본 협약에 의하여 설정된 것으로 한다. 각 체약국은 적용되는 규칙에 위반한 모든 자의 소추를 보증하는 것을 약속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을 따름이다. 이처럼 방공식별구역은 본질상 영토주권이 미치는 영공과 구별되며, 여러 국가가 안보 및 항행의 안전을 위해 일방적으로 선언한 임의의 영역에 불과하다. 만일 각 국가의 방공식별구역에 중첩이 없고, 그로부터 파생되는 권리·의무에 대한 다툼이 없으며, 각기 선포한 방공식별구역을 상호 존중하는 관행이 생성된다면 국제 항공질서의 안정적 운용에 기여 할 수 있는 하나의 관습법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이론상 가정에 불과하며, 여러 국가의 경쟁적 방공식별구역 선포 및 이에 대한 상이한 해석으로 인해 국가 간 안보불안이 심화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방공식별구역과 관련된 가장 오랜 법적 쟁점 중 하나는 통상 ‘배타적 경제수역(EEZ: Exclusive Economic Zone)’ 혹은 공해 상공에 설정되는 방공식별구역 내에서 타국 군용기의 정찰 활동이 허용되는가의 여부이다. 이미 냉전기 미·소 간에 이와 관련된 상당한 안보적 긴장이 있었는데, 1960년 7월, 바렌츠해(Barents Sea) 공해지역에서 정찰활동을 하던 RB-47H기가 소련의 미그-19기에 의해 격추된 사건이 대표적 예이다. 이 사건 약 두 달 전에 발생한 U-2 정찰기가 소련 영공에서 피격되어 미국 측이 별다른 법적 대응 논리를 마련하지 못한 반면, RB-47H기 격추 사건에서 미국은 소련 영해에서 30해리 이상 떨어진 공해의 상공에서 작전이 수행된 점과 설령 정찰활동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연안국이 이를 격추할 권리는 없음을 지적하고 소련의 공격에 대해 강력하게 항의하였다. 공해상의 자유항행 원칙을 더욱 강조한 영국의 경우 직접적 당사국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발 더 나아가 공해상에서 정찰 활동을 포함한 일체의 군사활동을 전개할 수 있는 권리는 모든 국가가 향유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Dutton 2009, 702). 1982년 유엔해양법협약(UNCLOS: United Nations Convention on the Laws of Sea)의 채택에 따라 관련 분쟁의 양상은 더욱 복잡하게 전개되어 갔다. 동 협약에서 공해의 범위는 영해, 접속수역, 배타적 경제수역이 아닌 지역으로 보다 좁게 설정된 반면, 기존 배타적 경제수역에서 연안국의 일정한 경제적 권리를 제외한 공해 자유의 원칙은 그대로 고수되었기 때문이다. 동 협약 제56조는 배타적경제수역에서의 연안국의 권리 및 관할권 및 의무를 규정하고 있는데, (a) 해저의 상부수역, 해저 및 그 하층토의 생물이나 무생물등 천연자원의 탐사, 개발, 보존 및 관리를 목적으로하는 주권적 권리와 해수ㆍ해류 및 해풍을 이용한 에너지생산과 같은 이 수역의 경제적 개발과 탐사를 위한 그 밖의 활동에 관한 주권적 권리, (b) 이 협약의 관련규정에 규정된 (i) 인공섬, 시설 및 구조물의 설치와 사용, (ii) 해양과학조사, (iii) 해양환경의 보호와 보전에 관한 관할권, (c) 이 협약에 규정된 그 밖의 권리와 의무를 갖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동 협약상 배타적 경제수역에서의 권리행사와 의무이행에 있어서, 연안국은 다른 국가의 권리와 의무를 적절히 고려하고, 이 협약의 규정에 따르는 방식으로 행동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김한택 2015). 동 협약은 동시에 타국 EEZ상에서 항행의 자유를 행사하는 회원국에 대해서는 원칙적 의무를 부과하고 있는데, “해양의 평화적 이용에 관하여 이 협약에 따른 권리행사와 의무이행에 있어서 당사국은 다른 국가의 영토보전 또는 정치적 독립에 해가 되거나 또는 국제연합헌장에 구현된 국제법의 원칙에 부합되지 아니하는 방식에 의한 무력의 위협이나 행사를 삼가야 한다.”고 규정하는 제301조가 그것이다. 유엔해양법상 연안국에 인정된 ‘배타적’ 경제권리는 해당 지역에 대한 안정적 접근의 중요성을 더욱 높이며, 기존 공해 지역에서 향유되는 항행의 자유와 관련된 일체의 권리를 수호하려는 해양국과 이해충돌 가능성을 높인 것도 사실이다. 1986년 3월에 발생한 미국과 리비아 사이의 교전은 이러한 점을 여실히 보여주는데, 양국 간 갈등의 연원은 리비아가 일방적으로 시드라만(Gulf of Sidra)을 절대적 주권이 미치는 영해 및 영공을 선포한 시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을 위시한 여러 서방국가들은 당시 리비아가 설정한 영해·영공 범위가 과도한 것이라고 규탄하였으며, 리비아가 1981년 미 해군 소속 전투기가 자국 영공을 침범하였다는 이유로 공격하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미국은 유엔해양법협약이 체결된 82년경부터 시드라만이 리비아의 배타적 경제수역에 해당할 수는 있으며, 따라서 리비아가 자원과 관련된 법의 제정 및 집행을 할 수는 있으나, 다른 국가는 그 상공에서 일체의 자유를 향유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이후, 미국은 이러한 법적 해석을 강제하기 위하여 1986년 3월 전함 및 세 척의 항모를 시드라만에 투입한 항행의 자유 작전을 감행하였다. 이에, 리비아가 미 전투기에 지대공 미사일을 발사하자, 미국이 공대지 및 지대지 미사일로 응사하면서 리비아 측 4척의 전함과 미사일 기지를 격침하였다 (Dutton 2009, 701). 탈냉전기에는 러시아 전투기·정찰기가 타국 EEZ 상공에서 활발한 군사활동을 전개하며, 안보적 긴장을 유발하고 있다. 2007년 7월, 노르웨이 영공에 매우 인접한 EEZ 상공에서 러시아 전폭기·정찰기 출격의 빈도 증가가 관찰되었고, 노르웨이 공군편대가 출격, 이를 저지하여 긴장이 형성된 적이 있었다. 러시아 측은 이것이 통상적 훈련의 일환이었다고 해명하였는데, 노르웨이는 미국-영국 등과 함께 EEZ 상공에서 군사 활동을 포함한 일체의 자유를 지지하는 입장이었으므로 러시아의 해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같은 해 9월에는 영국 영공에 접한 EEZ 상공에서 같은 방식의 비행이 관측되었고, 영국 공군이 대응하며 긴장이 조성되기도 하였다. 이처럼 방공식별구역 문제는 단순히 안전 및 편의를 위한 국제관습 혹은 일국의 선언의 의미를 넘어 유엔해양법 체결 시 노정된 연안 국가군-해양 국가군 사이의 근본적 갈등의 연장 선상에 놓여 있다. 또한, 세계 여러 지역에 군사적 힘을 자유롭게 투사(military projection)하기 위해 EEZ 및 공해상에서 자유로운 군사활동 원칙을 고수함과 동시에 이에 저촉되지 않는 선에서 방공식별구역을 본토방위의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미국의 군사전략과도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문제이다. 이러한 점에서 방공식별구역을 둘러싼 국가 간 갈등은 결코 법적문제만으로 치환될 수 없으며, 이를 힘의 행사 수단의 한 수단으로 접근하는 전략적·정치적 시각과 연동하여 이해될 필요가 있다.   동아시아 지역에서 방공식별 선포의 확장 및 쟁점 아래 <그림 1>과 같이, 현재 동아시아 지역 주요국은 각기 방공식별구역을 선포·운용하고 있으며, 상당지역이 중첩하여 갈등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동아시아 지역에서 방공식별구역의 기원은 6·25전쟁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미 태평양 공군은 1951년 3월 22일 한국, 일본, 필리핀 등 동맹국들을 혹시 있을지 모를 소련·중국 등의 영공 침범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방공식별구역을 설정하였으나, 6·25 전쟁 휴전 이후 그 설정 및 운용에 관한 권한을 각 국가에 이양한 바 있다. <그림 1. 동아시아 각국의 방공식별구역 현황> 출처: Mercedes Trent, "Over the Line: The Implications of China’s ADIZ Intrusions in Northeast Asia," Federation of American Scientists, 2020. p. 9.  동아시아 국가 간 방공식별구역과 관련한 뚜렷한 갈등은 2010년 이전에는 관측되지 않다가 2013년 11월 23일 중국의 일방적 방공식별구역 선언 및 주변국들의 대응에 따라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중국의 방공식별구역은 일본과 영유권 분쟁상황에 있는 센카쿠-다오위다오와 한국의 배타적 경제수역 내에 있는 이어도 해양과학 기지를 포함하는 것이어서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들은 이를 매우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중국은 50년대부터 일종의 군사경제수역, 군사항행수역, 군사작전수역 및 그 상공에서 비행제한을 실시하고는 있었으나, 이러한 영역은 대외적으로 명확히 공표된 것은 아니었다. 동중국해·남중국해 여러 도서를 둘러싸고 중국과 주변국 간 영유권 분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선포는 그 동기에 관한 여러 해석을 낳았다. 우선 주변국, 특히 일본의 센카쿠 열도 국유화 조치 직후 중일 간 갈등이 고조되는 과정에서 중국이 취한 대일 억제책(deterrence)라고 보는 해석이 있다. 이보다 중국의 공세성을 더 강조하는 견해는 센카쿠/다오위다오 영유권을 둘러싼 일본과의 경쟁에서 전략적 우위를 점하기 위한 선제적 조치로 보거나 '반(反)접근 · 지역거부 전략(A2/AD: Anti-access/Area Denial)’의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상기하였듯이 방공식별구역의 법적 성격은 영토 및 영해 영유권과 관련이 없다는 점, 방공식별구역 획정·선언 과정에서 인민 해방군과 외무성 간 뚜렷한 공조가 없었으며 방공식별구역의 집행 계획과 관련하여 비일관성을 보였다는 점, 시진핑 주석은 방공식별구역 선언 직후 오히려 주변국과의 우호적 관계를 강조하였다는 점 등을 고러하면 이러한 해석이 전적으로 설득력을 가지기는 어렵다 (Hsu and Hsu, 2017). 중국 내부 의사결정과정의 불투명성으로 인해 확정할 수는 없으나,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선포는 상기한 요인들과 더불어 미국이 전개하는 정찰활동이 야기하는 갈등을 예방하기 위한 동기가 복잡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보는 시각이 타당해 보인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연안국이 배타적 경제수역에서 타국의 군사활동에 일정 정도 제약을 가할 수 있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이러한 입장은 상기한 미국이 견지한 자유항행의 원칙 및 작전과 충돌하며, 상당한 갈등을 빚어온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갈등이 가장 가시적으로 나타난 것이 미국의 EP-3 정찰기와 중국의 F-8 전투기가 2001년 4월 중국의 하이난섬 상공에서 충돌한 사건이다. 사건 직후, 미국은 배타적경제수역 상공에서 정찰기에 의한 정보수집활동은 합법이라는 기존의 입장을 되풀이했고, 중국은 그러한 정찰활동은 유엔 해양법협약에 의해 인정되는 상공비행의 자유의 한계를 넘는 것이라며 미국을 비난하였다. 유엔해양법협약의 해석을 둘러싼 양국의 입장대립은 2001년 3월 황해에서 발생한 미군 해양조사건 바우디치(USNS Bowditch)호의 군사정보수집에 대한 갈등과 2009년 3월 남중국해에서 발생한 미군의 해양조사선 임페커블(USNSImpeccable)호의 군사정보수집에 대한 대립에서 반복되었다(이창위 2014). 이러한 반복된 충돌은 유엔해양법협약의 해석만으로는 배타적 경제수역내 미국의 정찰 활동을 현실적으로 막을 수 없다는 자성론으로 이어졌고, 방공식별구역의 선포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 그 선포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방공식별구역 선포 시, 해당 구역 진입 이전 반드시 자국 기관에 비행정보를 제공하게 하고, 항공기의 기종과 목적지를 통보함으로써 민감정보의 수집 시도 및 이에 따른 갈등을 예방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이러한 시각은 실제 여러 중국 문헌에서도 확인되는 점이다 (신창훈 2014). 이처럼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선포는 단순히 한·중·일 세 국가 간 항공교통 관리를 둘러싼 단순 분쟁을 넘어, 미국과 중국 간 글로벌 거버넌스의 핵심원칙의 해석에 관한 갈등으로 해석될 여지도 존재한다. 그 의도에 관한 해석 여부는 차치하고,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선포가 동아시아 지역의 주요 안보 이슈 중 하나로 전화(轉化)한 것은 주변국인 한국과 일본의 위협 인식 및 대응이었다. 한국 정부는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선포 약 2주 후인 2013년 12월 8일,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 조정안을 공표하였다. 이러한 배경하에서 제정·개정된 현행 ‘대한민국 군용항공기 운용 등에 관한 법률’ 제2조 3항은 방공식별구역을 “국가안전보장 목적상 항공기의 용이한 식별, 위치 확인 및 통제가 요구되는 지상 및 해상의 일정 공역(空域)”으로 정의하며, 그 범위는 위의 <그림-1>과 같이 독도, 이어도 상공 지역을 포괄하는 것이다. 사실 미국이 51년 임의로 설정해 놓은 한국방공식별구역의 경우, 이어도는 물론 일본의 방공식별구역(JADIZ)이 설정된 홍도와 마라도 남방 영공을 포함하고 있지 않아 오랫동안 그 개정의 필요성이 제기된 상황이었다. 이어도 탐사가 미국의 KADIZ 설정 이듬해인 52년에 이루어지고 이승만 대통령이 일본과의 조업 문제로 이어도를 포함하는 평화선을 선포하면서, KADIZ 재획정 문제가 대두된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반복된 협상거부 및 한일관계 악화 우려로 인해 관련 논의는 수면 아래에 있다가 중국의 일방적 선언을 하나의 기회의 창으로 삼아 확장된 KADIZ를 선포하기에 이른 것이다 (권혁철 2015). 일본은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선포에 대해 직접적으로 강한 불만을 표시한바, 2013년 11월 28일 외무성 성명은 이를 “동아시아 지역에서 현상유지를 일방적으로 깨는 매우 위험한 행위(profoundly dangerous acts that unilaterally change the status quo in the East China Sea)”라고 비난하였다 (Mission of Japan to ASEAN, 2013). 사실, 일본의 경우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선포 이전, 이미 두 차례에 걸쳐 미국이 설정한 일본방공식별구역을 확장한 상황이었다. 첫 번째 확장 결정은 오키나와의 일본 반환 직후 동 지역을 포함시키기 위한 1972년의 결정이었으며, 두 번째 확장 결정은 일본 서남단에 위치한 요나구니섬(与那国島)을 포함시키기 위한 2010년의 결정이었다. 요나구니가 대만으로부터 약108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으며, 일본의 확장 결정으로 대만의 방공식별 구역과 중첩되는 영역이 발생하였으나 대만이 이에 대해 뚜렷한 반발을 한 것은 아니다 (Trent 2020). 이처럼 방공식별구역은 냉전기 미국이 본토방위의 특수 목적을 위해 스스로 형성한 제도이자 한국과 일본에 이식한 국제관행이기도 하였다. 따라서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선포 자체를 비난할 만한 국제법적 근거는 없으며, 타국의 방공식별구역 및 센카쿠-다오위다오를 포함한 분쟁영토를 포함한 ‘확장성’ 및 이를 명확한 사전 협의 없이 선포한 외교적 소통 부족만을 정치적 견지에서 비판할 수 있을 뿐이다. 한국의 주요 언론은 이어도 해상기지를 포함한 중국 방공식별구역의 확장성 및 중국 대외정책의 공세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으나, 갈등에는 매우 오랜 기간동안 전개된 공해 및 배타적경제수역에서 군사활동의 허용여부에 관한 법적 논쟁 및 미-중 간 견해 불일치의 문제가 기저해 있다.   동아시아 지역에서 타국 방공식별구역 진입 증가에 따른 갈등 상기한 방공식별구역의 경쟁적 선포·확장이 단순히 외교적 갈등을 넘어 군사·안보적 분쟁의 촉발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는 위험성은 그 집행과정에 있다.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한 국가들은 그 이행을 담보하기 위해 자국의 군용항공기를 긴급발진(scramble)시켜, 사전 공지 없이 진입한 타국 항공기에 대한 감시(surveillance)·식별(identification)·요격(intercept)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다. 물론 영공과 구별되는 방공식별구역의 성격상 타국 군용기의 진입 에 대해 곧바로 격추를 위한 공격이 허용되지는 않으므로 곧바로 군사적 충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것은 아니다. 문제는 사전통고 없는 방공식별구역 진입 건수가 너무나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으며, 특히 중국은 이를 일종의 ‘전략적 신호발송(strategic signaling)’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는 듯한 정황이 포착된다는 점이다. 아래 <표 1>은 중국 항공기가 사전 허가 없이 방공식별구역에 진입한 건수의 연간 추이를 나타낸 것인데, 특히 일본 방공식별구역에 대한 진입 건수가 센카쿠-다오위다오 분쟁 격화와 자국 방공식별구역 선포가 있었던 2010년-2016 기간에 약 9배가량 증가하는 추이를 보였다. 한국방공식별구역에 대해서는 확장선언 직후인 2014년, 2015년에는 뚜렷한 진입 상황이 관찰되지 않다가 사드배치 관련 갈등이 본격화된 2016년 이후 급증하고 있는 추이를 보이고 있다. 대만의 방공식별구역에 대해서도 차이잉원 총통 집권 이후, 중국과의 분리정책 강화 및 최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Comprehensive and Progressive Agreement for Trans-Pacific)가입 등 하나의 중국원칙에 반하는 행보를 보이자 사전통고 없는 진입 건수의 증가가 관측되고 있다. 이러한 추세를 고려하면, 중국이 핵심이익으로 간주하는 이슈에 반하는 주변국의 행보를 견제하기 위한 경고의 의미로 전략적 진입을 시도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표 1. 중국 항공기가 사전 허가 없이 방공식별구역에 진입한 연간 건수> 연도 일본 한국 대만 201096--2011156--2012306--2013415--2014464--2015571--201685150-201750080-2018638140-201967525>>20 <출처: Mercedes Trent, “Over the Line: The Implications of China’s ADIZ Intrusions in Northeast Asia,” Federation of American Scientists, 2020. p. 15.>  또 다른 각도에서 미국이 감행하는 항행의 자유작전에 대한 전략적 대응이라는 해석 역시 가능하다. 미국은 공해상 및 그 상공에서 무해통항의 원칙을 수호하기 위해 냉전기부터 세계 각지에서 항행의 자유 작전을 전개하고 있으며, 이러한 활동은 때로 일부 연안국과 충돌을 빚기도 하였다. 미국은 남중국해·동중국해 지역에서도 이러한 항행의 자유 작전을 주기적으로 실시해 왔으며, 이러한 활동은 분쟁상태에 있는 여러 도서에 대한 중국의 접근을 차단하여 영유권 주장을 약화 시키기 위한 것으로 중국은 인식한다. 예를 들어, 2016년 미 전함 커티스호가 남중국해 트리톤 섬(Triton Island, 中建岛)에서 단행한 항행의 자유 작전은 베트남의 영유권 주장을 지원하기 위한 것으로 중국측은 인식하였다 (You 2016, 642). 또한, 미국은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선포 직후, 이를 무력화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전투기를 발진·진입시키기도 하였다. 이처럼 분쟁지역에서 자국의 영유권 주장 및 방공식별구역이 존중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렇다면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동맹국 한국과 일본의 방공식별구역을 우리 역시 존중하지 않겠다.”라는 것이 중국이 보내는 전략적 메시지일 수 있다. 즉, 자국의 방공식별구역에 진입하는 미 군용항공기를 저지하여 감당하기 힘든 갈등 상황을 야기하기보다는 한·일 양국의 방공식별구역에 진입하는 방식으로 대응하는 것일 수 있다. 필자가 인터뷰한 복수의 중국 전문가는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단행하는 대규모 군사훈련과 중국의 KADIZ 진입 사이에 상당한 연관성이 있음을 확인해 주기도 하였다. 이는 상대방이 하는 대로 되갚아 주되 그 강도와 대상을 다소 달리하는 일종의 ‘확장된 팃-포-탯(tit-for-tat) 전략’으로 볼 수 있다. 물론 러시아가 원칙적으로 방공식별구역을 국제관행으로 인정하지 않고 스스로 자국 영공 주변에 이를 설정하지 않는 나름의 일관성을 가지는 반면, 중국의 경우 이를 설정하면서 카디즈에 반복적으로 진입하는 것은 국제법의 관점에서 모순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당사국 간 협의를 위한 외교 플랫폼 구축의 필요성 방공식별구역을 둘러싼 갈등은 단순히 한국·중국·일본·대만 간 항공교통 안전을 위한 규칙 설정의 문제만은 아니다. 유엔해양법체제의 등장 이후 다소 축소된 공해의 범위 및 무해통항의 권리와 배타적경제수역에서 군사활동의 허용여부와 같은 법률해석을 둘러싼 세계적 차원의 규칙설정과 관련된 문제이기도 하다. 또한 주변 분쟁지역에 대한 접근확보를 시도하는 중국과 항행의 자유 작전을 통해 이를 무력화 하려는 미국의 시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미중갈등의 주요 이슈이기도 하다. 현재 미중 간 전략적 경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남중국해에서 항행의 자유작전 이상으로 미국과 중국의 실제 군사전력이 물리적 충돌에 다가가 있는 상황을 찾기 쉽지 않다. 이 갈등의 연장 선상에서 한국 카디즈에 대한 반복적 진입이 일종의 전략적 신호발송으로 기능하는 현 상황은 미중경쟁에의 연루를 최대한 회피해야 하는 한국에 대단히 곤혹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방공식별구역에 대한 ‘진입’은 영공에 대한 침범과 엄밀히 구별되어야 하지만, 중국·러시아의 군용항공기에 대응하여 우리 군용항공기가 긴급발진하는 상황의 반복은 국민들에게 안보 불안감을 안겨 줄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할 때, 우리 정부는 관련 당사국이 방공식별구역 조정 및 조화로운 운영을 위한 규칙 마련을 위한 외교적 플랫폼 구축에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각국 간 첨예한 이해관계의 대립을 고려할 때, 이러한 플랫폼은 정부 간 공식 협의체보다는 1.5트랙 등의 형식으로 발족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특히, 제주도는 이어도 해양과학기지에 근접해 있다는 점과 제주포럼 등의 개최를 통해 구축된 ‘평화의 섬’으로서의 상징성을 고려할 때, 이러한 플랫폼의 물리적 공간으로서 최적의 후보지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외교적 플랫폼 구축 노력에 제주도의 역할이 특히 기대되는 이유이다.   참고문헌 김한택,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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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 You. 2016. “The Sino-US ‘Cat-and-Mouse’ Game Concerning Freedom of Navigation and Flights: An Analysis of Chinese Perspectives,” Journal of Strategic Studies 39(5): 637-661.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저자소개  김유철은 2016년 12월 뉴욕 주립대학교(올버니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현재 덕성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통일연구원 부연구위원, 연세대학교·고려대학교 연구교수, 외교부 국립외교원 전문경력관 등을 거쳤다. 전공분야는 국제정치이며 다자조약, 미국외교정책, 미중관계등이 주요 연구분야이다. 주요논문으로는 "Is China Spoiling the Rules-Based Liberal International Order? Examining China’s Rising Institutional Power in a Multiplex World Through Competing Theories," Issues&Studies Vol. 56, No. 1 외 15여 편이 있다.
  • [평화담론] FTA 논의를 통한 아·태 지역 평화 구축과 한국의 역할
    저자
    최영미(전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발간호
    2021-01
    I. 서론 세계무역기구(World Trade Organization: WTO) 중심의 다자주의를 기반으로 한 통상 질서를 선호했던 동아시아 역내 국가들은 1997-98년 아시아 금융 위기를 계기로 자유무역협정(Free Trade Agreement: FTA)과 같은 양자적 관계를 기본으로 한 지역경제협력체 형성 논의에 집중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동아시아 지역에는 서구 유럽과 북미 지역의 유럽연합(European Union: EU) 및 북미자유무역협정(North American Free Trade Agreement: NAFTA)과 같이 다자적 논의의 형태가 아닌, 중첩적인 양자 FTA를 중심으로 지역경제협력 논의가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형태의 지역경제협력 논의는 ‘스파게티 볼 효과(spaghetti Bowl effect)’와 같은 부작용로 인해 더 높은 그리고 더 넓은 형태의 지역경제협력체 논의의 초석으로 작동하지 못하였다. 이러한 문제의 주요 원인 중 하나는 냉전의 요소가 잔존하고 있는 동아시아 지역의 역내 국가들이 FTA를 경제적 최적(economic optimality)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과 동시에, 더욱 광범위한 수준에서 외교정책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은 동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급속히 성장한 경제적 리더십을 바탕으로 자국 중심의 통상 질서 수립을 위해 역내 다양한 FTA 논의를 이끌고 있다. 중-한, 중-호주 FTA와 같은 역내 양자적 FTA를 체결함과 동시에, 한·중·일 FTA(China-Japan-Korea FTA: CJK FTA), 동아시아 FTA(East Asia FTA: EA FTA),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nership: RCEP) 등의 다자적 FTA 체결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왔다. 그러나 오랜 기간에도 불구하고 속도를 내지 못하던 이러한 논의들은, 최근 가장 큰 규모의 RCEP이 타결됨으로써 동아시아 지역주의 발전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자국 중심의 통상 질서 수립을 위한 중국의 움직임은 역외 국가로서 아·태 지역에서 오랜 기간 리더십을 유지해온 미국의 역할을 축소시켜 결국 경제·정치적으로 배제될 수 있다는 미국의 불안요인으로 작동하였다. 이에 오바마 행정부는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를 선언하며 아·태 지역에서 미국 중심의 통상 질서를 이끌고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을 견제 및 봉쇄하기 위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rans-Pacific Partnership: TPP) 논의를 발전시켜, 미국 주도의 TPP vs. 중국 주도의 RCEP으로 가시화된 미·중 FTA 경쟁 구도가 아·태 지역에서 형성되었다. 그러나 2017년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내세우며 등장한 트럼프 행정부는 TPP와 같은 자유무역을 기반으로 한 다자협력은 미국의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TPP 탈퇴를 선언하였다. 그리고 미국의 대중(對中) 무역 적자는 중국의 불공정한 거래에 의해 야기되었다 주장하며 중국 수입품에 고율 관세 부과와 함께 미·중 무역 분쟁을 시작하였다. 이러한 미·중 무역 분쟁은 통상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환율 분쟁을 넘어 기술 영역까지 확대되며 결국 가치전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예상들이 제기되었다. 정리하자면, 중국과 미국은 경제-안보 연계(economic-security nexus)를 기반으로 자국 중심의 정치·경제적 영향권의 구축을 위해 아·태 지역에서 경제적 패권 경쟁을 전개하고 있으며, 이러한 강대국 간 경쟁은 세계 경제 질서를 위협하며 아·태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고 있다. 대표적 무역 의존국인 한국은 FTA를 경제적 이익뿐만 아니라 다양한 외교 정책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그 결과 동아시아에서 싱가포르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국가와 FTA를 체결하고 있다. 이러한 한국에게 미·중 FTA 경쟁은 다양한 선택의 문제를 안겨주고 있다. 미·중 경쟁 사이 균형적 관계를 유지해온 한국은 위험회피 즉 헤징(hedging) 전략을 기반으로 양국 모두와 양자 FTA를 체결함과 동시에, 양국이 주도해온 메가 FTA 논의에도 적극적 태도를 견지해왔다. 그러나 미국의 새로운 바이든 행정부가 강조하고 있는 동맹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중국 때리기(China-bashing)’ 전략 등은 한국에게 다양한 선택의 문제를 안겨주며 한국의 전략적 모호성 및 헤징 전략의 유지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코로나 위기가 야기한 국내 문제 해결에 방점을 찍고 있는 바이든 행정부가 구체적으로 어떠한 대외 통상 정책을 수립할 것인가에 대한 전 세계의 귀추가 주목되고 있는 상황 아래,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아·태 지역을 넘어 국제 사회의 정치·경제적 안정과 평화는 미·중 경쟁의 부침(浮沈)에 좌우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미·중 FTA 경쟁 하, 대표적 중견국인 한국은 국익 및 아·태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어떠한 FTA 대응 전략을 전개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고자 아래에서는 먼저 미·중 FTA 전개 양상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II. 미·중 FTA 경쟁의 전개 양상 동아시아는 그 오랜 열망에도 불구하고 가장 낮은 수준의 지역주의 논의가 발전된 지역이다. 그러나 1997-98년 동아시아 금융 위기 이후, 동아시아 역내 국가들은 지역경제 협력의 필요성을 절감하며 역외 국가들과의 양자적 FTA(e.g., 한-칠레 FTA, 일-멕시코 FTA 등) 체결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역외·양자 FTA는 동아시아 역내 국가를 아우르는 지역주의 발전의 초석으로 작동하지 않았다. 이후 동아시아 국가들은 경제-안보 연계를 기반으로 역내 국가들과의 다자적 FTA 논의를 추진하기 시작했고 그 중심에는 중국이 있었다. 아세안과의 FTA를 시작으로 중국은 싱가포르, 한국 등의 역내 국가와의 양자적 FTA를 체결함과 동시에, CJK FTA, EA FTA, RCEP 등 다양한 역내 다자 FTA 논의를 주도해왔다. <그림1> 아·태지역 경제협의체  중국 주도의 지역경제통합 논의는 역외국가인 미국에 있어 그동안 지역에서 유지해온 리더십의 쇠퇴 혹은 상실이라는 위협요인으로 다가왔다. 당시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는 ‘아시아로의 회귀’를 아·태지역의 주요 외교 전략으로 내세우며 중국이 제외된 TPP 가입을 일본, 호주, 한국과 같은 동아시아 주요 동맹국에게 제안함으로써, 중국의 경제적 리더십을 봉쇄하고 아·태지역에서 미국 중심의 통상 질서를 수립하고자 하였다. 미국의 리더십을 바탕으로 2015년 10월 타결된 이후 국내 비준을 기다리던 TPP는 2017년 ‘미국 우선주의’를 주창한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과 함께 전환을 맞이하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TPP가 미국인의 일자리를 빼앗고 미국의 이익에 반한다고 주장하며 같은 해 1월 TPP에서 탈퇴하였다. 미국이 떠난 자리를 일본과 호주가 이끌며 TPP는 현재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omprehensive and progressive Trans-Pacific Partnership: CPTPP)’으로 새롭게 출범하여 2018년 발효되었다. 트럼프의 TPP 탈퇴 및 2018년 본격적으로 가시화된 미·중 무역 분쟁 등 미·중 간 양자적 형태를 중심으로 전개된 미·중 경제적 패권 경쟁은 바이든 대통령의 당선으로 다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기존 정권의 소위 ‘중국 때리기’로 대표되는 공세적 대중 정책은 지속될 것이나, 일방주의(unilateralism)를 기반으로 동맹 및 비동맹의 구분이 없는 공세적 접근보다는 다자적·배타적 성격의 동맹 네트워크를 통한 중국 압박 정책이 예상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의 당선이 유력시 되던 지난 2020년 11월 15일 RCEP은 9년간의 오랜 논의에 종지부를 찍으며 인도를 제외하고 최종적으로 타결되었다. 본래 RCEP는 2011년 아세안 의장국이었던 인도네시아를 중심으로 한 아세안의 주도에 의해 제안되었으나, 실제 협상 과정에서 중국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중국은 지난 3월 국내 비준 절차도 마무리 지으며 현재 발효 준비를 마친 상태이다. RCEP은 현재 중국, 일본, 싱가포르, 태국 등의 4개국이 비준 절차를 마친 상태로, 앞으로 남은 아세안 4개국과 비아세안 1개국이 비준을 통과하면 RCEP은 발효될 예정이다. <그림2> RCEP vs. CPTPP  TPP 체결 당시 부통령으로서 핵심적 역할을 했던 바이든 대통령이 CPTPP로의 복귀할 것인지에 대한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현재까지는 미국의 국내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그 전망이 밝지 않은 상황이다. 팬데믹 위기 상황 관리와 같은 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할 국내정치적 문제들에 밀려 아·태지역에서의 구체적인 통상 정책 수립 계획은 정책의 후순위에 놓여 있다. 또한 2022 중간 선거를 고려하여 다자주의를 근간으로 한 자유무역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RCEP의 타결은 2021년 1월 정부 출범 이후 ‘코로나 위기 극복’이라는 국내 문제에 방점을 찍고 있는 바이든 행정부에 전 미국 무역대표부(USTR) 부대표 웬디 커틀러(Wendy Cutler)의 언급대로 경고음(Wake-up call)을 울리고 있다(Cutler 2020). 미국의 TPP 탈퇴로 인한 아·태 통상 질서 리더십의 빈자리를 중국이 RCEP 체결을 통해 메우고, 교역 및 투자의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로 성장할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화된 것이라는 목소리들이 미국 내부 및 세계 각지에서 제기되고 있다(Haass 2017; Heydarian 2017).<그림2>에서 볼 수 있듯이, RCEP은 발효 시 전 세계 GDP와 인구의 측면에서 30%를 차지하는 가장 큰 규모의 경제블록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RCEP이 세계 경제 성장을 견인하고 세계 경제의 중심을 아시아로 이끌어 낼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지역 통합적 의미에서도 RCEP은 한·중·일 삼국이 낮은 수준의 FTA를 체결한 효과를 지닌다. 물론 RCEP을 중심으로 아·태 지역의 통상 질서를 주도하기에는 낮은 수준의 시장 자유화라는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 예를 들어 CPTPP와 달리 RCEP은 노동 및 환경 표준 등을 다루지 않고 있으며 서비스 및 투자에 대한 제한도 크다. 그러나 ‘미국이 돌아왔다(America is back)’는 바이든의 정치적 선언을 기반으로 고려했을 때, 그리고 중국 주도의 RCEP이 체결된 상황을 감안했을 때,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아·태 지역의 통상 질서 수립을 위한 장으로 복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것이 CPTPP로의 복귀, 한국 등의 우방 국가를 포함한 G7의 확대 버전, 혹은 트럼프 행정부가 강조한 경제번영네트워크(Economic Prosperity Network: EPN)의 유사 버전, 혹은 미국-멕시코-캐나다(U.S.-Mexico-Canada: USMCA) 자유무역협정을 기반으로 인도를 포함한 바이든 행정부의 새로운 버전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이 경제협력 논의체들의 공통점은 중국 경제와의 디커플링(decoupling)을 목적으로 인권, 환경, 노동 문제 등에 있어 높은 기준을 요하여 중국의 참여가 현실적으로 힘든 경제통합 논의의 형태를 띨 것으로 기대된다. 결국 아·태 지역에서의 미·중 경제 패권 경쟁은 미국의 새로운 행정부 하에서도 지속될 것이며, 트럼프 행정부의 미·중 무역전쟁과 같은 양자적 형태에서 동맹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한 다자적 경제 통합 논의의 형태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과거 상품과 서비스 중심의 통상 질서 형성을 위한 경쟁이었다면, 새로운 시대의 미·중 경제 패권 전쟁은 디지털 경제 전환과 더불어 자국 중심의 국제 디지털 통상 질서 개편을 위한 경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 영역과 범위를 확장시키고 있는 미·중 FTA 경쟁이 세계 경제 질서 및 안정을 위협하고 있는 상황 아래, 대표적인 중견국으로서 한국이 어떠한 전략적 대응으로 아·태 지역의 평화와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지에 대해 알아보자. III. 미·중 FTA 경쟁 하 아·태 지역 평화 구축을 위한 한국의 역할 G2로 대표되는 세계 양대 경제의 FTA 경쟁 아래, 한국과 같은 중견국 및 약소국은 선택의 딜레마에 빠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한국의 오랜 동맹국으로 군사·안보적 측면에서 중요한 국가인 미국과, 1992년 수교 이후 꾸준히 증가한 무역량으로 경제적 중요성과 동시에 북 핵 위기 이후 한반도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을 증가시키고 있는 중국 간 경쟁은 한국에게 다양한 선택의 문제를 부여해왔다. 일반적으로 중견국은 국제 사회에서 차지하는 그들의 중간적인 능력과 의지를 기반으로 특정 외교 정책을 전개하는데, 강대국간 긴장이 고조되는 경우 주로 위험회피전략 즉 헤징 전략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강대국간 패권 경쟁이 유발하는 역동 아래, 중견국은 강성(hard), 연성(soft), 이중(double) 등 다양한 헤징 전략을 전개하는데, 경쟁을 벌이는 양국 모두와 호의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양국 모두에게 그 중견국이 중요 행위자가 될 정도의 충분한 능력을 보유한 경우. 그 중견국은 이중헤징 전략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미·중 FTA 경쟁 하, 한국은 양국 모두와 양자적 FTA를 체결함과 동시에 양국이 주도하는 다자적 FTA 논의에 참여함으로써 미·중 FTA 경쟁이 가져올 수 있는 위험을 회피하거나 축소시키기 위한 이중 헤징 전략을 전개해왔다. 다시 말해, 한국은 한미 FTA 체결 후, 중국의 제안 아래 한중 FTA 역시 체결하였으며, 중국 주도의 EA FTA 및 RCEP 논의에 초기 단계부터 적극적으로 참여함과 동시에 미국 주도의 TPP에 꾸준한 관심을 보여 왔다. 예를 들어, 한국은 2004년 부시-노무현 정부 아래 상대적으로 소원해진 한·미 관계의 복원을 위해 한미 FTA 체결 논의를 시작하였다. 8차례의 공식 협상 이후, 2007년 4월 한미 FTA는 최종적으로 타결되었다. 그러나 타결 직후, 한·미 양국 내 피해가 예상되는 산업(e.g., 한국의 농산업, 미국의 자동차 산업 등)을 중심으로 격렬한 반대 운동이 일어났다. 특히, 광우병 문제 등 특정 이슈들은 국내적으로 정치화되면서 비준 과정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한국 FTA 역사 상 가장 오랜 기간인 4년간의 국내 비준 과정을 거쳐 2012년 마침내 한미 FTA가 발효되었다. 한미 FTA 논의가 시작된 직후, 중국은 한미 FTA를 통한 역내 예상되는 미국의 영향력을 상쇄하기 위한 방법으로 한국에게 한중 FTA 체결을 제안하였다. 이에 한국은 현재 집중하고 있는 한미 FTA 체결을 마무리 지은 후, 한중 FTA를 추진하겠다는 공식 입장을 표명하였다. 그 후 한미 FTA가 체결된 약 5개월 후인 2007년 9월 한중 FTA 체결을 위한 민간공동연구를 시작하였다. 14차례의 공식 협상을 거쳐 마침내 2015년 정식 체결 후, 10개월이란 짧은 국내 비준 과정을 거쳐 같은 해 12월 한중 FTA 역시 발효되었다. 이러한 미·중 양국 모두와의 양자적 FTA 체결과 동시에, 한국은 미·중이 주도하는 다자적 FTA 논의에 전략적으로 참여해왔다. 예를 들어, 한국은 동아시아 지역주의 발전에 깊은 관심을 보이며 주로 중국이 주도해온 동아시아 지역주의의 발전을 위한 CJK FTA, EA FTA, 및 RCEP 논의에 적극적 태도를 견지해왔다. 특히 동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지역경제협력의 필요성을 절감한 한국은 아세안+3(e.g., 한·중·일) 형태의 지역경제협력체의 형성을 위해 김대중 정부의 동아시아비전그룹(East Asia Vision Group: EAVG) 및 동아시아연구그룹(East  Asia  Study  Group: EASG) 창설 제안 등, 동아시아 지역주의 발전에 기여하고자 다양한 노력들을 기울여왔다. 그러나 문제는 2010년 미국이 TPP 참여를 결정하고 동아시아의 가장 중요한 동맹국인 일본과 한국에 참여를 제안했을 때, 한국이 선택의 딜레마에 빠지며 발생하였다. 당시 한국은 한중 FTA 협상에 집중하고 있었기에, 일본과는 달리 미국의 제안에 적극적으로 응답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당시 일본은 동아시아포괄적경제파트너십(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in East Asia: CEPEA)을 주도적으로 이끌며, 중국 주도의 지역경제 질서를 견제하고자 했던 상황 아래, 미국의 TPP 참여 제안은 반가운 소식이었으며 2013년 TPP 참여를 공식으로 선언하였다. 2014년 한중 FTA 타결 직후, 한국은 TPP 참여를 위해 양자 예비협상을 시작하는 등 TPP 참여에 적극적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미국은 한국의 TPP에 대한 관심 표명을 환영하는 바이나, 새 참가국의 합류는 TPP 협상이 결론이 난 이후에 가능하다고 입장을 밝히며 한국의 참여를 제한하였다(USTR 2019). 결국 2015년 10월 한국을 제외하고 미국, 일본을 포함한 12개국 간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되었다. 당시 미국과 일본의 국내 산업 보호 문제(e.g., 미국의 자동차 산업 vs. 일본의 농업)의 극복이 어려울 것이라는 예측들이 제기되었으나, 결국 TPP 타결은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로의 회귀’와 아베노믹스(Abenomics)의 ‘세번째 화살(third arrow)’로 대표되는 다양한 국내 및 국제 정치적 이익에 대한 합의점을 찾으며 성사되었다. TPP 타결로 미·중 FTA 경쟁의 승기는 미국 측으로 기우는 듯하였다. 그러나 2017년 트럼프 행정부의 TPP 탈퇴와 2020년 RCEP의 타결은 다시 세계 통상 질서의 판도를 변화시키고 있다. RCEP의 서명 후, 현재 국내 비준을 준비하고 있는 한국은 외교적 시험대에 다시 놓였다. 한국의 FTA 정책을 둘러싼 국내·외적 상황은 과거에 비해 더욱 어려운 조건들로 가득하다. 팬데믹으로 인한 세계적 경기 침제와 더불어, 2019년 미니딜(mini deal) 이후 휴전 국면으로 접어든 미·중 무역 분쟁 및 기술 전쟁의 재발 가능성, 그리고 바이든 행정부 하 더욱 강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한미일 삼각 공조체제로 인한 한·미·일 vs. 북·중·러 등의 신냉전 체제의 형성 가능성 등 미·중 경쟁의 평화적 해결보다 미·중 간 긴장을 고조시킬 수 있는 다수의 요인이 산재해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들은 한국이 견지해온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함으로써 위험을 회피하는 헤징 전략을 전개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위협 요인과 동시에 기회 요인도 존재한다. 먼저 과거 첨예하게 대립했던 ‘TPP vs. RCEP’의 대결구도가 어느 정도 희석된 상황이다. 예를 들어, CPTPP와 RCEP에 모두 가입한 나라만 해도 <그림1>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싱가포르, 브루나이, 베트남, 말레이시아,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 7개국에 달한다. 이 중 가장 눈에 띄는 사례는 바로 일본의 동시 가입이다. 게다가 일본은 예상과 달리, 국내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지난 4월 RCEP의 국내 비준 절차를 빠르게 마무리하였다. 이러한 상황 아래, 한국은 바이든 행정부가 CPTPP로의 복귀를 확답하지 않은 현재 선제적으로 CPTPP에 가입을 준비하는 것이 전략적으로 유리하다. 향후, 바이든 행정부가 아·태지역의 통상 질서 주도 논의로 복귀하는 방법에는 CPTPP로의 복귀, G7의 확대 버전, 혹은 EPN의 유사 버전 등 다양한 형태와 방법들이 예상되고 있는 상황 아래,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그 어떤 형태이든 미국은 한국, 일본, 호주 등의 기존의 오래된 동맹국들과의 경제적 연대를 요구할 것이라는 점이다. 미국의 TPP 가입 제안을 망설이다 가입 시기를 놓쳤던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이 선제적으로 CPTPP에 가입함으로써 향후의 미·중 간 선택의 문제가 가져올 수 있는 위험 요인을 부분적으로 낮출 수 있다. 경제적 측면에서도 CPTPP의 가입은 RCEP에 비해 이미 발효된 상태이기에 빠르고, 한미 FTA와 유사한 수준의 시장 개방도를 요구하기에 일본 시장 접근 측면에서 기대되는 반사 이익이 RCEP에 비해 크고, 이미 가입국 다수와 양자 FTA를 체결하고 있기에 한국이 CPTPP 가입에 주저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들이 제기되고 있다(Schott 2021). 그러나 일각에서는 1998년 시작된 한일 양자 FTA 논의가 2005년 이후 중단된 이유 등을 바탕으로 한국이 CPTPP에 참여할 경우 비관세 장벽(Non-tariff Barriers: NTBs)이 높은 일본과의 시장개방효과는 더욱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다는 주장과 동시에, CPTPP가 한국이 체결한 FTA 중 가장 높은 수준의 자유화 범위와 규범을 요구하기에 국영기업, 환경, 지적재산권 등 신통상규범에 대한 더욱 세부적인 검토를 위해 아직은 충분한 필요하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무역의존도가 높은 한국에게 CPTPP 그리고 RCEP과 같은 메가 통상 네트워크에 가입하는 것은 미·중 선택의 문제가 아닌 경제적 최적을 달성하는데 있어 긍정적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 시점에서 더욱 중요한 문제는 한국이 향후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통상 질서 아래 더욱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환경, 노동 등의 통상 규범을 준수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냐는 것이다. 미·중 FTA 경쟁 아래에서의 위협요인을 최소화하고 기회요인을 최대화하기 위해서 한국은 미국과 중국의 주요 동반국으로서 양국이 주도하는 경제 협력체 논의에 협력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음을 강하게 어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미·중이 추진하고 있는 메가 FTA에 대한 한국의 참여가 반미 그리고 반중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통상 목표 및 방향성을 기준으로 내린 결정임을 명확히 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바이든 행정부 하, 그 강도가 심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미·중 FTA 경쟁 아래 한국은 자국의 이익 추구를 넘어 대표적 중견국으로서 공동체의 이익을 위한 아·태 지역의 평화와 발전에 기여하기 위한 외교 정책을 전개해야 한다. 문제는 한국이 이러한 중견국 외교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를 보유하고 있는지에 대한 여부인데 한국은 미·중을 비롯하여 아세안, 인도, 뉴질랜드, 호주 등 아·태 지역의 주요 경제 및 역외의 EU 등 세계 주요 경제권들과의 FTA를 체결하여 FTA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경제 권력을 보유하고 있다. 중견국 외교 수행을 위한 의지 측면에서도 한국은 EAVG, EASG 창설 및 믹타(Mexico, Indonesia, South Korea, Turkey, Australia: MIKTA), P4G(artnering for Green Growth and the Global Goals 2030) 등의 협의체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아·태 지역 및 글로벌 수준의 평화·발전을 위해 구체적인 노력들을 기울여왔다. 한국이 오랫동안 주장해온 FTA 허브(hub) 혹은 FTA 린치핀(linchpin)으로서 동북아시아 평화와 번영을 위해 기울인 노력들이 한국의 차기 정부 아래 어떠한 가시적인 성과를 가져올지에 대한 기대가 크다.  IV. 결론 전 세계의 기대와 달리 미국 우선주의를 기반으로 한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는 바이든 행정부의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 정책 아래 일정 기간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 위기로 인해 국내 경기 부양책에 방점을 찍고 있는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 기조는 경제적 자국우선주의와 국가안보를 연결시켰던 트럼프 행정부의 방향성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트럼프 행정부가 설계했던 반덤핑상계관세 등의 각종 보호무역조치도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Anderson 2021). 바이든 행정부의 보호무역 조치는 트럼프 행정부의 양자주의와 달리 미국 보호무역주의의 핵심인 중국 제재에 다자주의적 접근법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미국의 중국 압박 형태가 국제규범 혹은 국제기구를 통해서가 아닌, 주로 미국 국내법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을 기반으로 했을 때, 바이든 행정부가 강조하는 다자간 무역협상은 중국이 포함된 WTO 중심이 아니라, 경제 및 통상을 넘어 인권, 환경 등의 문제까지 포함된 전방위 분야에서의 동맹 강화를 통한 다자적 접근일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한국은 트럼프 행정부에 비해 더욱 강도 높은 선택의 문제와 마주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2016년 한국의 사드 배치 결정으로 인한 중국의 ‘한한령(限韓令)’으로 대표되는 경제 보복 조치와 같은 상황에 또 다시 놓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경제 및 통상 영역에서뿐만 아니라, 안보 영역에서의 쿼드(Quad), 그리고 기술 영역에서의 클린네트워크(clean network) 등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계승될 확률이 높은 다양한 영역에서의 문제들로 가시화될 확률이 높다. 2021년 임기를 시작한 바이든 행정부는 보호무역주의를 큰 틀에서 유지하기에 앞서 과연 트럼프 행정부의 그것이 2020년 대선 결과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또한 국제질서의 설계자이자 수호자임을 자청했던 미국의 국제사회에서의 이미지가 트럼프 행정부 하에서 어떻게 변화했으며 이러한 변화가 미국의 패권 유지 및 국익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는지에 대한 숙고를 선행해야 한다.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전 세계 보건위기에 효율적 글로벌 공공재를 제시하지 못함과 동시에 서로 책임을 전가하려는 미중 경쟁을 통해 한국을 포함한 세계는 이제 ‘투키디데스 함정(Tuchididdes Trap)’이 아닌 ‘킨들버거 함정(kindleberger trap)’을 맞이했음이 여실히 드러났다. 세계 패권이 되기 위한 조건은 단순히 ‘통상 질서’라는 글로벌 공공재를 제공하기 위해 경쟁하는 것이 아닌 더욱 많은 국가들이 참여할 수 있는 ‘안정적 통상 질서’의 형성 및 제공이라는 점을 미·중은 잊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미·중 경쟁이 가져오는 국제 정세의 불안정성 아래 한국은 더욱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존 미·중·일·러의 4강 중심의 외교정책을 넘어 아세안 및 인도 등의 신남방국가 및 중앙아시아 국가 등 신북방국가와의 관계 강화를 통해 한국 경제 및 외교의 지평을 넓히고, 능력을 기반으로 그에 걸맞은 자국 중심이 아닌 공동체 중심의 중견국 외교의 강화를 위해 노력해야한다. 그 경우 한국이 숙원해온 해양세력과 대륙세력, 그리고 선진국과 개도국을 연결하여 아·태 지역을 넘어 국제사회의 평화와 발전을 주도하는 진정한 교량국가(bridging state)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끝>   참고문헌 Anderson, S. 2021. “Biden Continues Trump’s Misguided Trade Policies.” Forbes May 5, 2021. Retrieved from https://www.forbes.com/sites/stuartanderson/2021/05/05/biden-continues-trumps-misguided-trade-policies/?sh=20346df24385 Cutler, W. 2020. “RCEP Agreement: Another Wake-up Call for the United States on Trade.” Asia Society Policy Institute. Retrieved from https://asiasociety.org/policy-institute/rcep-agreement-another-wake-call-united-states-trade. Haass, R. 2017. “Trump’s Biggest Mistake in Asia: Rejecting Trade,” Axios November 14, 2017. Retrieved from https://www.axios.com/trumps-biggest-mistake-in-asiarejecting-trade-2509089488.html. Heydarian. R. 2017. “This is How a Superpower Commits Suicide,” Washington Post November 13, 2017. Retrieved from https://www.washingtonpost.com/news/theworldpost/wp/2017/11/13/trump-china/. Schott, J. 2021. “RCEP Is Not Enough: South Korea Also Needs to Joint the CPTPP.” Policy Brief Peterson Institute for International Economics. Retrieved from https://www.piie.com/sites/default/files/documents/pb21-17.pdf. United States Trade Representative (USTR). 2019. “Statement by U.S. Trade Representative Michael Froman on Korea’s Announcement Regarding the Trans-Pacific Partnership” Retrieved from https://ustr.gov/about-us/policy-offices/press-office/press-releases/2013/November/Froman-statement-TPP-Korea.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저자소개  최영미 | 現 전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부교수. 인하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학·석사 졸업 후, University of Wisconsin-Milwaukee에서 정치학 박사를 취득하였음. 국제정치경제를 전공으로 하여 통상정책에 대한 계량분석을 주로 연구하고 있음. 주요 연구로는 “Constituency, Ideology, and Economic Interests in U.S. Congressional Voting: The Case of the U.S.–Korea Free Trade Agreement,” Political Research Quarterly 68(2); “Political economy of free trade agreements in China, Japan, and South Korea: sectoral politics of the FTA wave, 1998–2016” Japanese Journal of Political Science 21(3) 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