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I PeaceNet

전체 630

  • 중국의 일대일로 유럽진출 시도와 유럽의 대응
    저자
    안상욱 (부경대학교 교수)
    발간호
    2019-12
      1. 서론 2. 미-중 무역분쟁에서 중국의 EU와의 연대시도와 EU의 냉정한 반응 3. EU의 중국에 대한 ‘체제경쟁자(Systemic Rival)’규정과 시진핑 주석의 유럽방문 4. 2019년 3월 시진핑의 유럽방문과 이탈리아의 일대일로 사업 참여 결정 5. 결론   1. 서론 미국과 중국 간의 무역분쟁이 심화되면서, 중국은 미국-중국 무역분쟁에서 EU의 지원1)을 확보하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EU와 연대를 적극적으로 시도하는 중국과 달리 EU는 중국과 연대해서 미국에 대항하는 것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거부하였다. 한편 화웨이(Huawei) 장비의 보안문제를 이유로 화웨이 장비의 사용금지를 요청하는 미국측의 요구도 거부하였다. 이와 같이 EU는 중국과 EU의 연대요구에 대해서 최대한 냉정함을 유지하며 대응하고 있다.   2. 미-중 무역분쟁에서 중국의 EU와의 연대시도와 EU의 냉정한 반응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세르지오 마타렐라 이탈리아 대통령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알베르 2세 모나코 국왕의 초청으로 3월 21일부터 26일까지 이탈리아, 모나코, 프랑스를 순방하였다. 시진핑 주석은 2019년 첫 순방지역으로 유럽을 선택하였다. 시진핑의 유럽방문의 목적은 이탈리아와 일대일로 협력을 강화하는 등 미-중 무역분쟁에서 EU의 지원을 확보하는데 목적이 있었다. 실제로 미국에서 촉발된 보호무역주의 장벽 강화에 중국은 EU와 연대를 시도했었다. 중국은 2018년 7월 16-17일 베이징에서 개최된 EU-중국 정상회의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무역정책에 반대하는 강력한 공동성명을 발표하도록 EU를 압박했다. 유로뉴스도 인용한 로이터 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류허(劉鶴) 중국 부총리, 왕이(王毅) 외교부장 등 중국 고위 관리들이 EU-중국 정상회담 전에 벨기에, 독일, 중국에서 열린 EU-중국 간 회동에서 두 경제 대국 간 ‘연대(alliance)’를 제안했다. 특히 중국은 EU가 WTO에서 미국에 맞서 공동행동을 하는 것을 원했다. 그러나 EU는 미국에 대항해 EU와 중국이 연대한다는 구상을 거부했다. 대신에 EU-중국 정상은 WTO개혁에서 협력하기로 합의하였다. 그러나 EU통상담당 집행위원인 세실리아 말스트롬은 다음과 같은 언사로 당시 EU의 입장을 드러냈다. “중국은 시장개방을 유지하고 보호무역주의와 싸우기 위한 강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세실리아 말스트롬이 덧붙이기를 “나는 이와 같은 나의 중국에 대한 격려가 중국이 시장개방을 위해서 보다 더 많은 구체적인 조치들이 이루어지기를 희망한다는 것으로 해석되기를 원한다.”라고 하였다.2) 이는 중국에 대한 EU의 입장을 요약하고 있다. EU는 전 세계 차원의 보호무역주의 강화를 저지하기 위해서 중국과 협력을 할 수는 있지만, 중국도 시장개방을 위해서 노력할 점이 많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EU의 입장은 EU정상들을 통해서도 다시 반복되었다. 융커 EU집행위원장은 2018년 7월 EU-중국 정상회담 기간 중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투스크 유럽이사회 상임의장, 리커창 중국 총리와 함께한 공동 기자회견에서 “중국이 시장개방을 원한다면 그렇게 할 수 있으며, 중국은 시장개방을 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고 언급하였다. 이는 중국이 기술이전을 강요하거나 외국자본이 단독으로 중국에서 투자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을 막는 등 실제로 자유무역과는 거리가 먼 행동을 보였기 때문이다. 또한 융커 EU집행위원장은 2018년 7월 EU-중국 정상회담 기간 중 개최된 비즈니스 포럼에서 “EU는 공정한 다자간 무역규칙을 원한다. EU는 개방되어 있지만 세상물정을 모르지는 않는다.(We need just and fair multilateral rules. The EU is open but it is not naive.)”라고 언급하였다. 실제로 중국은 해외기업들에 대한 보호무역주의적인 사업환경으로 악명이 높고, 해외기업의 대규모 단독투자를 중국이 승인하는 과정에서 무역분쟁으로 격화되기도 하였다. 중국은 주요산업분야에서 해외기업의 중국시장 진출조건으로 중국기업3)과의 합작투자를 조건으로 요구하였고, 이 과정에서 끊임없는 기술유출 문제가 발생했었다.4) 2018년 12월 20일에 EU는 중국정부가 현지 EU기업에서 기술이전을 강요했다는 이유로 WTO에 제소하였다. EU는 중국 전기자동차와 바이오산업 분야에서 투자승인 문제를 거론하였다. 전기자동차와 바이오산업은 중국의 “메이드인 차이나 2025 플랜(Made in China 2025 plan) 중 전략 분야에 속하는 산업이다. 또한 EU는 전 산업 분야에서 합작투자의 승인 문제또한 거론하였다. 이와 같이, EU는 중국과 협력할 사항에는 협력하지만 중국의 시장개방에 대한 약속을 액면 그대로 믿지는 않았고, 끊임없이 중국을 압박하였다.   3. EU의 중국에 대한 ‘체제경쟁자(Systemic Rival)’규정과 시진핑 주석의 유럽방문 2003년 EU와 중국은 ‘전면적 전략적 동반자관계(Comprehensive Strategic Partnership)를 맺고 광범위한 영역에서 협력관계를 발전시켜 왔다. EU-중국은 2013년에 “EU-중국 2020 전략적 협력 아젠다(EU-China 2020 Strategic Agenda for Cooperation)”5)를 채택하였다. EU-중국 2020 전략적 협력 아젠다에서 EU-중국은 안보분야, 무역 및 투자분야, 산업 및 IT분야, 농업분야, 운송 및 인프라 분야, 항공우주분야, 에너지분야, 도시분야, 기후변화 및 환경보호분야, 해양분야, 문화-교육협력 분야 등에서의 협력강화를 표명하였다. 그런데 중국에 대한 EU의 시각에서 변화가 발생하였다. 중국의 시진핑 주석의 유럽방문을 앞둔 2019년 3월 12일 EU집행위원회는 “EU-중국: 전략적 개관”이라는 제목으로 유럽의회와 유럽이사회 및 이사회에 보내는 공동전달문6)을 발표하면서 중국에 대한 EU의 입장을 다시 정리하였다. 본 공동전달문에서 EU는 중국이 미국 다음의 EU 제 2의 교역상대국이고 EU는 중국의 최대 교역상대국이라는 점을 언급하면서 양측의 협력의 중요성을 언급하였다. 그와 동시에 EU집행위원회는 본 공동전달문에서 “중국은 더 이상 개발도상국으로 간주 될 수 없다. 중국은 세계현안에서 핵심 행위자이자 핵심 기술을 가진 국가이다. 중국은 세계에서 그 존재감이 증대됨에 따라서 규범을 기반으로 한 국제 질서를 유지하고, 상호주의, 비-차별성, 중국 시스템의 개방성 문제에서 더 큰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 중국의 공식적으로 개혁에 대한 의지를 표명했지만, 이는 그 역할과 책임에 비례하는 정책이나 행동으로 전환되어야한다.”고 언급하였다. 이와 같은 언급은 중국은 그 동안 담론으로 다자주의와 개방을 표명해 왔지만, 실제로 중국의 시스템과 제도가 외국기업에 대해 차별적으로 이루어진 것을 EU가 지적한 것이다. 그동안 EU는 중국과 전면적 동반자 관계임을 강조했지만, 본 공동전달문에서 EU는 “중국은, 여러 정책 분야에서, EU와 목표가 밀접하게 조화 된 협력 파트너, EU와 이해 관계의 균형을 추구하는 협상 파트너, 기술 리더십을 추구하는 경제적 경쟁자임과 동시에 서로 다른 형태의 정치체제를 추구하는 체제경쟁자이다.(China is, simultaneously, in different policy areas, a cooperation partner with whom the EU has closely aligned objectives, a negotiating partner with whom the EU needs to find a balance of interests, an economic competitor in the pursuit of technological leadership, and a systemic rival promoting alternative models of governance.)”라고 언급하면서 중국이 EU의 체제경쟁자임을 공식적으로 표명하였다. 이와 같은 EU의 입장은 더 이상 EU가 중국에 대해서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임을 의미하기도 하는 것이다.   4. 2019년 3월 시진핑의 유럽방문과 이탈리아의 일대일로 사업 참여 결정 이와 같은 상황에서 이탈리아의 일대일로 참여가 발생하자 EU는 민감하게 반응하였다. 3월 23일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일대일로 양해각서(MOU)에 서명하였다. 이로서 이탈리아의 중국 일대일로 사업참여가 공식화되었다.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우려한 미국, 프랑스, 독일은 이탈리아의 일대일로 사업참여에 부정적 입장을 표명했지만, 이탈리아는 일대일로 사업 참여를 통한 경제적 이익을 선택하였다. 이탈리아의 일대일로 사업참여는 G7국가로서는 최초로 일대일로에 참여한 것이라는 점에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탈리아-중국 일대일로 MOU에는 에너지, 항만, 관광, 농업, 문화재, 교육, 항공우주 등 총 29개 분야에서 양국이 상호 협력하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또한 시진핑 주석과 함께 이탈리아를 방문한 중국의 경제사절단은 이탈리아 기업의 제품을 구매하였다. 이탈리아 에너지기업 안살도는 2500만유로 규모의 가스발전 설비를 중국기업에 납품계약을 하였다. 중국사절단이 이탈리아 기업과 체결한 계약의 경제적 가치는 모두 25억유로에 달하였다. 루이지 디 마이오 부총리 겸 노동산업장관은 서명식 후 기자회견에서 “‘메이드 인 이탈리아’로 통칭되는 이탈리아 상품과 이탈리아 회사, 이탈리아 전체가 승리한 날”이라고 강조하였다. 이탈리아 정부가 일대일로 사업에 참여한 것은 이탈리아가 최근 경기침체 국면에 들어섰고 이를 타개하기 위한 해결책으로 중국자본의 이탈리아 투자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탈리아의 일대일로 사업 참여를 이탈리아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모든 정당이 지지했던 것은 아니었다. 이탈리아 중도우파 연합의 지도자인 마테오 살비니 부총리는 이탈리아 시장을 중국이 “식민지화”할 수 있는 위험성에 대해서 경고하였다. 이에 따라 살비니 부총리는 시진핑 주석의 이탈리아 방문기간 동안 시진핑 주석을 만나지 않았고 시진핑 주석을 환대하기 위한 국빈만찬에도 참석하는 것을 거부하였다. 이탈리아의 또 다른 부총리이자 이탈리아 5성운동의 지도자인 루이지 디 마이오는 이러한 우려에 대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였고, 이에 대한 근거로 이탈리아의 중국에 대한 수출이 이탈리아의 독일 혹은 프랑스에 대한 수출규모 보다 작음을 지적하였다.7) 이탈리아와 중국의 일대일로 MOU에 대해서 EU내에서 부정적인 반응이 속출하였다. 귄터 외팅거(Günther Oettinger) EU 예산·인사담당 집행위원은 이탈리아와 중국의 일대일로 MOU에 대한 EU의 거부권을 요청하였다. 귄터 외팅거는 유럽과 아시아의 운송망 확장은 좋은 일이지만, 이탈리아가 EU의 이익을 고려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하이코 마스 독일 외무장관은 중국, 러시아, 미국과 같은 대국과의 관계에서 EU로 단결해야만 EU회원국이 생존할 수 있다고 지적하였다. 마크롱 대통령도 중국과의 관계는 단지 무역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고 언급하였다.   5. 결론 마크롱 대통령은 2019년 3월 시진핑 주석의 프랑스 방문기간에 독일의 메르켈 총리와 장-클로드 융커 EU집행위원장을 초대하여 함께 정상회담을 가졌다. 시진핑 주석은 정삼회담 이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중국과 유럽사이에 차이점과 경쟁도 있겠지만 그것은 긍정적인 경쟁”이라며 언급하면서 “우리는 함께 나아가고 있다. 우리는 불신 때문에 뒤를 돌아봐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메르켈 총리는 공동기자회견에서 무역과 투자 등의 측면에서 중국과 EU의 관계가 상호 호혜성이 확립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같이 미국과의 갈등이 증대하는 가운데 중국은 끊임없이 EU지도자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지만, EU지도자는 중국과의 협력의 필요성은 공감하면서 중국정부의 정치적 수사에 대한 신뢰성에는 끊임없이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EU는 보안문제를 근거로 미국정부가 중국 화웨이 제품 사용금지를 요청한 것에 대해서는 응하지 않았다. EU는 5G네트워크에서 사이버안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회원국 간 데이터 공유를 요청했지만, 미국의 화웨이 제품사용금지에 대한 요청은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이와 같이 EU는 미국과 중국의 갈등 구도 속에서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냉철하게 EU-미국관계 그리고 EU-중국관계를 발전시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과 중국은 EU의 회원국 간 결속력 약화를 통한 유럽 내의 우군 확보를 시도할 것이고, EU는 회원국 간 단결력 유지를 강화하려 할 것이다. 유럽통합이 시작된 이후 유럽통합은 끊임없는 도전을 받았고 그 도전을 극복해 오면서 현재의 EU를 일구어냈다. 변화하는 국제질서에 EU는 또 새롭게 대응하고 있다.   1) Euronews, “China presses Europe for anti-U.S. alliance on trade”, (2018년 7월 3일 기사) https://www.euronews.com/2018/07/03/exclusive-china-presses-europe-for-anti-us-alliance-on-trade 2) Euronews, “EU and China agree to work together on WTO reforms”, (2018년 7월 17일 기사) https://www.euronews.com/2018/07/16/eu-and-china-agree-to-work-together-on-wto-reforms 3) Permanent Mission of the European Union to the WTO, “EU steps up WTO action against China's forced technology transfers, 20 December 2018”, https://eeas.europa.eu/delegations/world-trade-organization-wto/55837/eu-steps-wto-action-against-chinas-forced-technology-transfers-20-december-2018_en 4) Reuters, “EU pushes China on trade, saying it could open up if it wanted”, (2018년 7월 16일 기사) https://www.reuters.com/article/us-china-eu/eu-pushes-china-on-trade-saying-it-could-open-up-if-it-wanted-idUSKBN1K514O 5) EU-China 2020 Strategic Agenda for Cooperation, 2013. 6) European Commission, Joint Communication to the European Parliament, the European Council and the Council, JOIN(2019)5 final, 2019. 7) Euronews, “China's Belt and Road plan: Why did Italy sign it and why is Brussels worried?”, (2019년 3월 24일 기사) https://www.euronews.com/2019/03/24/china-and-italy-sign-silk-road-project   現 부경대학교 국제지역학부 교수. 파리 3대학교에서 경제학 (EU지역학) 박사학위 취득. 주요 논문으로 "유럽자동차 산업의 생산기지 이전 - 르노 자동차 사례를 중심으로(2018)", "EU 내 LCC 발전과 주변부 공항의 활성화(2018)", "EU기후변화정책과 회원국 간 차별성(2018)" 등이 있음
  • 2019년 아베정부의 외교: 한국, 한반도, 동아시아
    저자
    최운도 (동북아역사재단)
    발간호
    2019-11
      최근 진행되고 있는 한일갈등에 대해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 그 원인을 찾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양국 관계는 왜 지경에 이르렀으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 글은 렌즈의 초점을 한일관계에서 동아시아로 넓혀 봄으로써 아베의 동아시아 외교정책에 있어서 한일 관계의 위치를 살펴보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한일관계는 2015년 12월 28일 체결된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와 그에 대한 반대 입장 표명에서 시작하였다. 정권의 출범과 함께 역사와 외교를 분리하는 투트랙 외교를 천명하였으나 양국 관계는 살얼음판을 걷는 것과 같이 조심스러웠을 뿐 활발한 외교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과 함께 고조되던 북한의 위협은 북미대화의 국면으로 전환되었고 강력한 경제제재를 주장해 온 일본의 아베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개인적 친밀감의 과시에도 불구하고 일본 내에서 ‘일본 패싱’의 우려와 비판을 낳았다. 2018년 하반기 들어서면서 10월에 있을 제주국제관함식에 참가하는 해상자위대 군함의 욱일기 게양 여부가 논란이 되기 시작했고 일본은 관함식 참가를 거부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어서 10월말 우리나라 대법원은 강제징용피해자에 대한 일본 기업의 배상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수년전부터 우려해온 바가 판결로 드러나자 예상했던 대로 일본은 ‘한일간 법적 기반이 근본적으로 손상되었다’는 입장을 밝히며 반발했다. 그 결과 11월에 있었던 아세안+3 정상회의는 양국 정상간 만남도 없이 지나갔다. 일주일 뒤인 11월 22일 우리 정부는 한일 일본군 ‘위안부’합의에 따라 설립된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자민당은 주한일본 대사의 일시귀국을 요구하는 등 강력한 비판으로 대응했다. 12월 13일과 14일 서울에서는 한일의원연맹 합동총회가 열렸다. 그러나 아베 총리는 관례로 되어 있던 총리 축사도 보내지 않았으며, 총리 친서도 없었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 관계자는 “양국 관계가 냉각된 가운데 아무 것도 말할 게 없다”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그리고 12월 20일 한일 레이더 갈등이 발생하면서, 아베 총리가 나서서 양국 정부 간 군사, 안보 분야의 갈등을 부추기는 상황으로까지 나아갔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를 두고 국내 언론에서는 아베 정권의 ‘우경화’ 혹은 ‘더욱 심해진 우경화’라 부르고 있다. 아베 총리는 2012년 12월 재집권기를 시작하면서부터 ‘전후체제로부터의 탈각‘을 정권의 캐치프레이즈로 설정하였다. 이는 달리 말하면 오늘날 일본의 국가와 사회 체제 중에서 패전국으로서 감내할 수밖에 없었던 부분들은 모두 떨쳐버리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대표적인 것이 평화헌법의 개정이다. 헌법 9조의 개정에 대한 일본국민들의 저항을 줄이기 위해 미리 달성한 것이 2014년의 평화안보법제의 성립이다. 그 다음 분야가 일본이 패전으로 인해 상실했거나 도전받고 있다고 여기는 영토주권의 회복이다. 독도, 센카쿠열도(중국어 댜오위다오), 쿠릴4도를 둘러싼 끊임없는 도발과 협상이 바로 여기에 속한다. 세 번째 분야가 바로 역사문제다. 일본 우익은 자신들이 끊임없이 부당한 역사적 비난과 보상 요구를 겪어야 하는 이유가 패전 때문이라고 여긴다. 이 세 가지 분야에서의 정책 목표 달성은 국내 여론의 지지를 통한 정권의 유지와 최상의 미일관계를 기축으로 한 외교안보 분야에서의 안정을 필요로 한다. 국내 분야에서는 아베노믹스를 통한 일본 경제의 활성화이며, 대외적으로는 ’지구의를 부감하는 외교‘가 바로 그 수단들이다. 현재 헌법 개정 달성 가능성이 불투명하다. 헌법 개정에 대한 일본인들의 수용 의사는 확대되고 있으나 아베 총리가 목표로 하는 2020년 도쿄 올림픽 직후 혹은 자신의 3연임 자민당 총재 임기가 끝나는 2021년 9월이라는 목표는 어려워 보인다. 요미우리신문의 2018년 12월 여론조사에 따르면 개정 찬성이 51%, 반대가 46%로 이전 연도와 변화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2020년 개헌을 달성하겠다는 아베 총리의 방침에 대해서는 찬성 36%로 과반에 미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반대가 47%로 찬성 비율을 압도하고 있다. 거기다 2018년 9월에는 오키나와 도지사 선거에서 자민당이 후원하는 후보가 8만표차(당선 후보의 득표는 39만여 표)로 패배함으로써 오는 7월말에 있을 참의원 선거에서의 개헌발의에 필요한 2/3 의원 수 확보에 빨간불이 켜진 상황이다. 특히 오키나와 선거에서 자민당과 공명당은 스가 관방장관을 파견하고 창가학회를 동원하는 등 국정선거를 치루는 듯 했음에도 패배한 만큼 그 여파는 쉬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오는 6월 7일이 되면 아베의 총리 재직일수는 이토 히로부미를 제치고 3위에 오를 것이며 8월 23일이면 사토 에이사쿠 보다 많은 전후 총리 중 최장에 이른다. 그리고 11월 20일이 되면 카츠라 타로를 제치고 헌정사상 최장 재임총리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인 성과가 없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아베 총리에게 개헌은 최대의 목표가 될 수밖에 없다. 재집권 이후 아베 총리의 최대 외교과제는 미일관계의 복원을 넘어 최상의 미일관계였다. 그리고 많은 부분 달성되었다. 오바마 대통령 시기, 종전 70주년 담화를 통해 진주만 공격에 대한 사과를 표명하였고 (동아시아에 대한 사과가 아니라), 2016년 5월에는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을 이끌어 냈으며, 12월에는 두 정상이 하와이 진주만에서 역사화해를 연출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자 아베 총리는 끈끈한 스킨십을 통한 양자우호를 과시하였다. 그러나 안보와 경제 분야에서의 트럼프 리스크는 떨치지 못했다. 트럼프는 방위비 분담과 미국산 무기의 수입 요구를 언급하는가 하면, 2012년 이후 어렵게 달성한 TPP협상에서 탈퇴를 선언함으로써 일본의 처지를 곤란하게 만들었고, 미국산 자동차 수입 확대 등을 통한 무역 수지 개선을 위한 협상의 가능성을 열어 둠으로서 불안감을 조성해 오고 있다. 또한 아베 총리는 북핵과 관련된 북미대화 국면에서 일본이 논의의 장에서 배제됨으로써 일본 국내에서 ‘일본 패싱’이라는 우려와 비판을 받아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베 총리는 미일관계 유지와 강화를 위해 2019년에만 3회의 정상회담을 계획하고 있다. 4월 23일부터 일주일간 아베 총리가 미국을 방문하고, 5월 26일부터 사흘간은 트럼프가 일본을 국빈 방문할 계획이며, 6월28일부터 일본에서 열리는 G20 회의에도 트럼프가 참석할 예정이다. 2012년 센카쿠열도 국유화 문제와 2013년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이후 차갑게 식었던 중일관계에 훈풍이 불고 있다. 작년 10월 아베 총리는 1972년 체결한 일·중 평화우호조약 40주년을 계기로 500여명의 기업인을 이끌고 중국을 공식 방문 하였고, 시진핑 주석은 양국 관계의 정상화를 선언하였다. 이는 일본 총리로서는 7년만의 공식방문이었다. 2013년 중단되었던 통화스와프 협정은 10배 커진 규모로 재개되었으며, 양국은 제3국에서 경쟁보다는 협력할 것을 약속하고 대표적인 공동개발 사업에 서명하기도 했다. 양국은 경제뿐 아니라 군사안보 분야에서도 협력을 약속했다. 지난 10년간 없었던 일본 통합막료장(우리나라의 합참의장에 해당)의 중국 방문이 추진되고 있으며, 설치 약속만 있었던 해·공군 간 핫라인도 본격 운영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2019년에만 두 번의 양국 정상회담을 계획하고 있다. 6월의 G20회의 이외에도 가을쯤 시진핑 주석의 2차 방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 같은 양국의 접근은 2017년 중반부터 일본이 일대일로에 관심을 표명하면서 시작되었고 중국도 이를 환영하였다. 2016년 12월 트럼프가 취임 이후 처음으로 실행에 옮긴 것은 TPP 탈퇴에 서명한 것이었다. ‘갈라파고스화’해 가던 일본의 경제상황에서 국내 농업계의 반대를 무릎 쓰고 어렵사리 얻어낸 것이 TPP 가입 비준이었다. 재집권한 아베내각의 대표정책이었던 미일관계 회복의 상징이 TPP 가입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미국의 탈퇴는 아베 총리에게 날벼락과 같은 것이었다. 거기다 중국의 경제는 2009년의 금융위기 이후 최저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었다. 경제와 안보 분야에서의 트럼프 리스크에 대한 헤징의 필요성이 양국관계의 개선을 촉구한 셈이다. 중국에서 귀국한 아베 총리는 바로 다음날 인도의 모디 총리를 자신의 별장으로 초청하여 IT 분야와 군사 분야 협력을 약속하는 동반자 협정을 체결하였다. 아베 총리의 외교활동 중 가장 주목을 끄는 것 중 하나가 러·일 영토협상이다. 두 지도자 모두 2012년 재집권하게 되면서 10여 년간 소강상태에 있던 양국협상이 재개되었으며 지난 1월의 모스크바 정상회담은 두 사람의 24회째 만남이었다. 2012년 대통령직 복귀 직전 있었던 기자회견에서 푸틴은 일본과의 영토문제는 ‘무승부’로 해결할 수 있다고 함으로써 협상 의사를 내비쳤다. 그 이후 우크라이나 사태로 서방세계의 대러시아 제재가 진행되는 동안 아베는 ‘박쥐외교’라는 비난을 무릅쓰고 소치에서 푸틴과 회담하면서 ‘새로운 접근’으로 해결할 것을 발표하였다. 1956년 공동선언 이후 일본 정부가 공식입장으로 견지해 온 ‘4도반환’론에서 벗어나 ‘2도(하보마이, 시코탄)+⍺‘의 가능성이 제기되기 시작한 것이다. 작년 11월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1956년 일소공동선언을 기초로 평화조약 교섭을 가속화한다는데 합의함으로써 일본은 사실상 ’2도 선행반환‘론으로 전환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올해 1월에 있었던 외무장관 회담에서 라브로프 외무장관은 고노 외상에게 ’북방영토‘라는 표현도 쓰지 말라면서 4도에 대해서는 러시아의 주권이 확립되어 있음을 강조했다. 일본은 1855년의 시모다 조약에서 확립된 4개 섬에 대한 주권이 90년간 유지된 반면, 소련과 러시아의 점령이 1945년 이후 70여 년간 지속되어온 것에 비추어, 해가 갈수록 주권주장의 명분이 약해지는 것에 대해 초조해 하고 있다. 카메라의 렌즈를 동아시아 지역에 맞추어 보면 일본은 미국, 중국, 러시아, 인도, 아세안 국가들과는 우호를 강화하거나 유지, 개선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에 비해 유독 한반도에서는 최근 북한과의 대화 움직임 이외에는 관계 개선의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는 1월 28일 있었던 아베총리의 2019년 새해 시정연설에도 잘 나타나고 있다. 최근의 한일갈등의 원인에 대해, 일본 내 우익의 집결과 그를 통해 헌법 개정을 실현하려는 아베 정권의 노림수라는 설명과, 한국의 국력이 일본을 추월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일본인들의 과잉반응 때문이라는 해석, 그리고 우리 정부의 반일정책 탓이라는 분석이 있다. 어느 것이 더 설득력이 있는지 좀 더 지켜볼 일이다.   現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후, 1997년 University of Colorado, Boulder에서 “일본 방위비의 정치경제학” 이라는 논문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음. 일본 외교정책과 국제정치 전공. 일본 나가사키 대학과 미국 George Washington 대학에서 방문교수 경력.
  • The Next Stage of the Korean Peace Process
    저자
    Chung-in Moon (Special Adviser to President Moon Jae-in Distinguished University Professor, Yonsei University)
    발간호
    2019-10
    When the U.S.–North Korean summit in Hanoi ended early, with no agreement whatsoever, many South Koreans were shocked. The disappointing conclusion shook the public’s faith in summit diplomacy and undermined Seoul’s efforts to foster parallel processes: for denuclearizing North Korea, building a peace regime on the Korean Peninsula, and fostering inter-Korean economic cooperation. In short, South Korean President Moon Jae-in’s strategy for bettering relations among Seoul, Washington, and Pyongyang after the summit was shattered.     The summit may have failed, but Seoul observed several encouraging signs. There was neither acrimony nor mutual recrimination at the summit, nor a sudden escalation of military tension in its wake. Considering Pyongyang’s past behavior, North Korean leader Kim Jong Un’s restraint was unusual. U.S. President Donald Trump’s response was also encouraging. He did not tweet anything inflammatory about Pyongyang in the summit’s wake. Nor did he suggest new sanctions or the renewal of U.S.–South Korean joint military exercises. On the contrary, he expressed his unwavering trust in Kim and his commitment to continuing the dialogue even though the summit didn’t end as he had hoped.     Moreover, if the Singapore declaration could be criticized as producing nothing more than a joint shopping list of hopes, the Hanoi summit at least made clear each side’s concrete and specific demands. For Washington, it was the final, fully verified denuclearization (FFVD) by Pyongyang. North Korea was also specific in its demands. As Foreign Minister Ri Yong Ho elaborated at a midnight press conference after the summit was over, Pyongyang offered to dismantle the nuclear facilities in Yongbyon under the observation and verification of the United States in exchange for partial lifting of five UN Security Council sanction resolutions imposed since 2016. It was rare for North Korea to put forth such a specific proposal.     The Moon government sees such moves by both parties as positive signs. It believes that the Hanoi summit was only a temporary setback on the long, treacherous odyssey toward denuclearization and peace in Korea, and that talks between Pyongyang and Washington will resume soon. Nonetheless, the way things concluded in Hanoi left Seoul anxious about a number of potential ways in which future negotiations could derail.       POTENTIAL PERILS     The United States and North Korea went into the Hanoi summit with conflicting ideas of what would constitute a good deal. Seoul now fears that this gap between Washington and Pyongyang’s demands will stall further progress. The Moon government initially thought that the United States could reasonably request that Pyongyang completely and verifiably dismantle nuclear facilities in Yongbyon now, while committing to dismantle additional nuclear facilities and ballistic missiles later; in return, Washington could offer the opening of liaison offices, a declaration ending the Korean War, and partial sanctions relief such that inter-Korean economic exchange and cooperation could resume. Seoul would stand ready to reopen the Kaesong Industrial Complex and the Mount Kumgang tourist project, two major inter-Korean economic projects in the North that were kept closed as a result of both international and South Korean sanctions.     Such an agreement would have set a firm foundation for the next phase of diplomacy. But when the two parties met in Hanoi, the mismatch between U.S. demands, which were overly ambitious, and the North Korean offer, which was excessively cautious, led to failure. South Korea will not easily find a halfway point between these two extremes as negotiations continue.     Indeed, not just the demands themselves but the timeline for implementing them have led to division and anxiety for Seoul. The United States has traditionally called for an all-or-nothing, “dismantle first, reward later” model, whereas North Korea has pushed for incremental steps in exchange for U.S. concessions. Seoul has made diplomatic efforts to narrow the gap, which until Hanoi it thought had been somewhat successful. U.S. Special Envoy for North Korea Stephen Biegun’s January speech at Stanford University, for example, emphasized a step-by-step approach and the parallel pursuit of denuclearization, a peace regime, and the easing of economic sanctions.     South Korea had been urging the North to take decisive steps toward the irreversible stage of denuclearization, as evidenced by Article 5 of the Pyongyang Declaration, which underscores the imperative of dismantling the missile engine test site and launching pad in Dongchang-ri under the observation of U.S. experts and the permanent removal of nuclear facilities in Yongbyon and the like. The small deal package that Kim offered in Hanoi was a kind of response to Seoul’s efforts. After the summit, however, Washington seemed to have changed its mind about the incremental approach. Speaking anonymously, a senior State Department official now claimed that “nobody in the administration advocates a step-by-step approach. In all cases, the expectation is a complete denuclearization of North Korea as a condition for . . . all the other steps being taken.” The Moon government’s ability to make a deal between the parties, and to advance parallel processes, will be critically hampered if the Trump administration now rejects a step-by-step process out of hand.     The administration’s renewed hard-line stance in Hanoi may have been partly rooted in domestic political concerns, and the politicization of nuclear negotiations is yet another possibility that South Korea greatly fears. A new political landscape in light of the 2020 U.S. presidential election could divert Trump’s attention away from the North Korean nuclear issue. Trump tweeted that his former attorney Michael Cohen’s testimony before Congress affected the outcome of the summit. Trump may have felt that he could only pacify Democrats, along with the news media critical of his negotiations with the North, if he came back with a bold all-or-nothing deal, no matter how premature. Otherwise, he would return to face political fallout from the Cohen hearing and an uproar over a deal perceived as too conciliatory.     North Korea’s leader exercises absolute power and authority at home—but he, too, could face negative domestic political repercussions should negotiations falter. Conservative hard-line forces in the military and security services, who do not benefit from rapprochement, may start to grumble about Kim’s emphasis on peace-building and economic development. Kim has taken some precautionary measures in Hanoi’s wake. At his first public appearance after the summit, he reiterated that “No revolutionary tasks stand before us other than the improvement of the economy and people’s daily lives.” This declaration is likely a well-calculated political move to warn the military and other hard-line elements that negotiations will proceed. But if talks with Washington continue to stall, Kim, who currently touts an economy-first policy, could be forced to shift to the old military-first politics, thereby raising the risk of hard confrontation.     The Moon government, too, fears the political repercussions of Hanoi at home. At a time of protracted economic hardship in South Korea, Moon has bet on the peace initiative to bring him political gains. But without a diplomatic breakthrough, and with a general election scheduled for April 2020, Moon could face a daunting and uncertain future.       THE PATH TO A BREAKTHROUGH     Despite recent setbacks, Seoul remains optimistic about the peace process because the negotiation track is still open, and Pyongyang and Washington can be brought back to the table. Both sides should sustain their hard-won dialogue and build on the momentum toward reconciliation, making every effort to prevent the negotiations from derailing. Destroying the negotiation track is easy, but restoring it is damn hard.     Given the fragility of the relationship, provocative rhetoric and actions, no matter how trivial they may seem, can bring about catastrophic consequences. Policymakers should learn a lesson from the exchange of harsh rhetoric between U.S. Vice President Mike Pence and Vice Foreign Minister Choe Son-hui in May 2018, an exchange that almost aborted the Singapore summit that June. Mutual restraint in word and deed is essential for the resuscitation of negotiation. The surest way to derail the negotiations and precipitate a potential catastrophe would be for North Korea to engage in any nuclear or missile tests.     Both sides need to be prudent and realistic. North Korea is highly unlikely to accept the all-or-nothing deal that the Trump administration proposed in Hanoi. If Washington continues to balk at an incremental approach, an exit from the current stalemate seems inconceivable. Nor does the North Korean proposal at Hanoi seem workable. The United States will not exchange the permanent dismantling of the Yongbyon nuclear facilities and of nuclear and missile activities for the lifting of major portions of the UN economic sanctions. Pyongyang should offer more—perhaps a commitment to dismantle additional uranium enrichment facilities—while expecting less, such as inter-Korean economic exchange and cooperation instead of sweeping sanctions relief. Otherwise, a win-win compromise will be unreachable.     South Korea has a pivotal role to play in the process’s coming phase. On his way home after the Hanoi summit, Trump called Moon from the plane and urged him to take an active role in persuading Kim to accept a big deal settlement. But Kim perceives Washington and Seoul as working together, which means that Moon will have a hard time acting as a facilitator. To help Moon succeed, Washington should allow Seoul some leverage, such as greater flexibility in managing inter-Korean economic exchange and cooperation. North and South Korean leaders adopted the Panmunjom and Pyongyang Declarations in 2018 to promote precisely these initiatives, and Moon is obliged to implement them in tandem with the denuclearization of North Korea. Otherwise, his role will be fundamentally limited.     Seoul does not see the setback of the Hanoi summit as insurmountable. Prudence, mutual restraint, innovative ideas, and, most important, resumption of dialogue and negotiation can help overcome the current impasse. A compromise such as a comprehensive agreement on the exchange of FFVD for what Pyongyang wants, one that is implemented incrementally based on a mutually acceptable road map, is the surest way to achieve a breakthrough toward complete denuclearization and peace in Korea. CHUNG-IN MOON is Special Adviser for Foreign Affairs and National Security to South Korean President Moon Jae-in and a Distinguished University Professor at Yonsei University.
  • 유럽연합(EU)은 하노이 북미정상 회담에 대해 왜 침묵하였을까?
    저자
    도종윤 (제주평화연구원 지역통합연구부장)
    발간호
    2019-09
         1. 머리말 2. 유럽 언론의 반응: 관심은 있었지만... 3. 허무한 반전 외교: 그러나 침묵은 반전이 아니다 4. 마무리: 침묵이 만든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한 노력   1. 머리말​    우리의 주목을 끌었던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끝난 지 어느덧 두 주일이 지났다. 시간이 흐른 만큼 회담에 대한 분석도 비교적 냉정해지고 있다. 그런데 한 가지 재미있는 일은 이 회담에 대해 EU가 아무런 성명(statement)도 내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른 주요국들이 즉각적인 반응을 내놓은 것과는 대비되는 모습이다.    회담이 끝난 2월 28일, 중국은 외교부 대변인을 통해 “북미가 대화를 유지하면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추진하기를 희망한다”1)고 입장을 밝혔다. 러시아는 외무성 대변인 브리핑에서, “중-러가 제안한 구상에 따라 정치적·외교적 진행이 긍정적인 흐름으로 이어지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며, “러시아는 한반도의 포괄적 안정을 위해 다른 파트너들과 다자적 협력을 강화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논평하였다.2) 일본 역시 외무성 발표를 통해 미·일 정상 간 전화회담이 있었음을 공개하고, “한반도의 비핵화 실현을 위한 굳건한 결의와 더불어, 북한의 구체적인 행동을 요구한 트럼프 대통령의 결단을 지지한다”3)고 언급하였다. 일본은 가나수기 겐지(金杉憲治) 외무성 국장을 하노이에 파견해 회담 관련 정보를 수집 할 만큼 이번 정상회담에 큰 관심을 보였다. 이처럼 한반도 주변국들이 회담에 대한 자국의 입장을 공식적으로 발표하였다. 그런데 유럽연합은 달랐다. 회담 기간은 물론이고 이후에도 유럽 대외 관계청(EEA)이나 각료이사회(the Council of European Union)에서는 별다른 성명이나 논평을 내지 않았다. 이는 지난해 있었던 6.12 북미 회담 때와는 사뭇 다른 태도다. 비록 EU가 한반도 주변 4강은 아니지만, 한반도에서 큰 변동이 있을 때마다 성명이나 논평을 내면서 국제사회의 주의를 환기시킨 바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달라진 걸까? 이번에는 왜 아무런 반응을 드러내지 않았을까? 북미 정상회담은 그들에게 무엇이었을까? 그들은 향후 무엇을 기대할까? 그리고 우리는 여기서 유럽연합의 무엇을 읽어야 할까? 2. 유럽 언론의 반응: 관심은 있었지만...    EU의 ‘공식적인 무반응’과 마찬가지로 유럽 소식을 전하는 많은 주요 언론들- Euobserver, EUbusiness, EurActiv 등-도 북미 정상회담을 다루지 않았다. 이들은 지난 6.12 정상회담 때에는 짧게나마 관련 내용을 다룬 바 있다. 유럽을 전반적으로 아우르는 언론 중 오로지 POLITICO(유럽판)만이 하노이에 특파원을 파견하여 회담 소식은 물론 회담이 성과 없이 끝낸 이유를 비교적 비중 있게 다루었다.4)    비록 EU가 무반응으로 북미 정상회담을 흘려보냈지만, 회원국 언론들은 관련 내용을 비교적 자세히 보도하였다. 프랑스의 르몽드는 회담이 결렬된 후 속보를 내보내며, “김정은을 만난 트럼프 외교가 헛된 일(en vain)”5)이 되었으며, “트럼프는 자신의 순진함 때문에 희생당했다”고 보도하였다.6)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설에서는 비교적 희망적인 면을 지적하였다. “회담을 준비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고, 미국과 북한이 비핵화에 대해 서로 다른 정의를 내리고 있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비교적 겸손한 태도를 보였으며 미국과 북한이 여전히 대화의 채널을 가동할 여지를 남겨두었다”고 평가하였다.7) 독일 일간지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자이퉁은 회담에 대해 “마지막 날까지도 양측이 서명 테이블을 준비한 이유가 불분명하다. 아마도 폼페오는 김정은만이 중요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았던 듯하다. 북한 측 협상 대표는 영변에서 핵시설의 어떤 부분을 제거할 수 있는지 (자기 결정으로) 사전에 미리 합의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하였다.8) 또한 영국의 가디언은 “베트남 정상회담은 실패이며 두 정상은 (실패이유에 대해) 서로 다른 설명을 내놓고 있다”고 전하면서, “회담의 중단은 제재 해제를 통해 남북 간 무역과 투자를 추진하려던 문재인 대통령에게 정치적 수난(disaster)이 되었다”고 평가하였다.9) 3. 허무한 반전 외교: 그러나 침묵은 반전이 아니다    일부 유럽 언론에서 하노이 정상회담을 다루었으나 유럽 각국의 외무성은 이번 회담에 대해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이는 EU의 반응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EU가 성명을 내지 않은 이유를 전략, 외부 환경, 역할 측면에서 추정해 보면 다음과 같이 구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① 전략의 부재: 먼 곳에서 친구가 왔으나 왜 왔는지 알 수가 없다    하노이 회담에 앞서 미국과 유럽이 한반도 전략에 대해 얼마나 교감을 가졌는지 의문이다. 6.12 정상회담의 경우, 그보다 사흘 앞서 열린 G7 회담에서 유럽은 북미 정상회담에 상당한 관심을 표시하였다. 때문에 유럽이 중심이 된 G7 정상들-이때 트럼프는 회담장을 박차고 나가서 유럽이 매우 불쾌해 했음에도 불구하고-은 북미 회담에 대한 기대감을 성명서로 표시하기도 하였다. 또한 유럽-미국관계가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경색되어 있지만 폼페오와 유럽은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작년 4월 의회 인준이 끝나자마자 폼페오 장관이 곧 달려간 곳이 브뤼셀이었다(이후 중동 순방이 이어졌다). 작년 가을 브뤼셀에서 열린 ASEM 정상회담에도 달려가서 비공식적이나마 정상들을 만나기도 하였다.    이번에도 하노이 정상회담에 앞서 미국은 유럽에 회담 전략을 설명했을 가능성이 높다. 2월 15일, 폼페오 장관은 브뤼셀을 방문하여 모게리니 EU외교 대표와 만남을 가졌다. 당시 안건은 베네수엘라 사태, 우크라이나 문제, 그리고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었다.10) 또한 2월 15-17일까지 뮌헨 안보 회담에서는 유럽과 미국의 안보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미국에서는 펜스 부통령이 참가하였고 유럽은 주요 정상들이 모두 모였다. 충분한 교감의 기회가 있었다. 더 나아가 폼페오 장관은 10-14일까지 동유럽(헝가리, 슬로바키아, 폴란드)을 순방했으며 대한민국의 강경화 외교장관을 바르샤바에서 만나기도 하였다. 이처럼 폼페오를 비롯한 미국의 대외 전략 담당자들은 하노이 회담에 앞서 그들의 전략을 유럽과 충분히 공유할 시간이 있었다.    그렇다면 EU는 왜 하노이 정상회담에 대해 관심이 없었던 것일까? 한 가지 추정은 EU가 미국으로부터 하노이 정상 회담에 대해 인상적인 전략을 듣지 못했다는 것이다. 즉 회담을 두 주일 앞둔 시점까지도 미국 국무장관은 하노이 회담에 대해 어떤 구체적인 전략을 EU에 설명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EU로 하여금 북미 회담이 가져올 결과에 대해 어떤 평가도 내릴만한 여지를 주지 못했다. 회담이 끝난 후 미국은 북한의 핵 능력을 기준으로, 북한은 핵시설이 설치된 장소를 기준으로 의견이 불일치했다고 서로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EU입장에서는 사전에 알려진 구체적인 전략도 없었고 사후에도 합의된 서명이 도출되지 않았던 회담에 어떤 평가도 내리기 어려웠을 것이다. 즉 없었던 일과 같았던 허전한 반전 외교에 어떤 반응도 필요치 않았던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EU는 향후 미국의 대북 전략에 지속적인 의문을 품을 것이다. EU는 여전히 CVID와 인권을 북한의 제재완화 조치와 연계된 주요 목표로 보고 있다. 그리고 미국의 전략에 이러한 원칙이 제대로 투영이 되었는지를 평가의 핵심으로 삼을 것이다. ② 나비는 카슈미르에서 날아왔다: 인도-파키스탄 분쟁    하노이에 혼돈을 일으킨 나비는 미국 의회의 마이클 코언(Michael Dean Cohen) 청문회에서 날아 온 듯하지만, 유럽에 무관심을 일으킨 나비는 뜻밖에도 서남아시아의 카슈미르에서 온 것이었다. 국내에는 크게 보도되지 않았지만 적어도 유럽에서는 하노이보다 카슈미르가 큰 관심사였다.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기 직전인 26일, 인도 공군은 미라주2000 12대를 동원하여 파키스탄 령 카슈미르주의 테러리스트 단체 ‘자이시 에 무함마드(Jaish-e-Mohammed)’ 캠프에 1,000kg 상당의 폭격을 가하였다.11) 이로 인해 수백 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도의 공습은 같은 달 14일 인도의 잠무-카슈미르 지방 풀와마(Pulwama)에서 있었던 테러로 인도 경찰 40여 명이 사망한 것에 대한 보복이었다.12) 공습 후 파키스탄 역시 인도의 공격이 재발될 시 응수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긴장이 높아졌다.13) 이는 1971년 양국이 설정한 정전선(停戰線)을 넘어간 첫 대규모 공격이자 핵보유국 간 벌어진 공방이었기에 유럽을 비롯한 주변국들이 크게 긴장하였다.    EU의 모게리니 외교 대표가 내놓은 27일 자 성명은 하노이가 아닌 카슈미르에 대한 것이었다. “테러리즘은 정당화될 수 없다는 점을 파키스탄 총리에게 분명히 언급”하였다고 밝히면서, 또한 “이 지역의 긴장이 고조되지 않도록 양측이 신속한 정치적 대화를 할 것”을 촉구하였다.14) 사실 26-28일 사이, 유럽 언론의 외신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였던 것은 하노이 정상회담이 아니라 카슈미르 폭격이었다. 매년 수천 명의 파키스탄 난민이 유럽으로 넘어오는 상황에서 양국 간의 긴장은 유럽에게는 초미의 관심거리일 수밖에 없었다. ③ 역할 없는 곳에 존재도 없다: 한반도 주변 4강과의 차이    애초부터 하노이 정상회담은 1차 북미 정상회담만큼 관심을 끌지 못했다. 회담의 주된 의제로 예측되었던 비핵화 프로그램, 종전(終戰) 선언, 제재 완화(혹은 해제), 인권, 남북관계 개선 등은 국제사회를 지배하는 거버넌스에 별다른 새 이슈를 창출하지 못한 것이다. 오히려 피로감이 컸다. 유럽의 어느 언론도 어떤 의제가 토론될지, 무슨 시나리오가 펼쳐질지를 싱가포르 정상회담만큼 활기차게 보도하지 않았다. 이는 정보 부족뿐 아니라 양측으로부터 새로운 전략이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EU 입장에서는 어떤 새로운 논점도 발견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논점이 없으면 실천이 없고 실천이 없으면 역할도 없다.    EU는 한반도 주변 4강과 다른 맥락에 있다. 일본, 중국, 러시아는 한반도 문제에서 차지하고 있던 기존의 역할에 어떤 변화가 필요 없다. 주변 4대 강국으로서의 존재의 유지는 사태의 지속 혹은 변화와 관계없는 지정학적 상수다. 이들은 회담의 성과에 관계없이 입장이 유지 된다. 간여자(干與者)의 지위가 늘 확보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EU는 그렇지 않다. 유럽은 한반도 문제에 부여된 존재감이 매우 약하다. 오로지 실천과 역할을 통해서 한반도 문제에 간여하고자 한다. 그런 의지는 이미 지난 6월 1차 정상회담 이후 드러낸 바 있다. 그들이 가진 한반도 안보의 궁극적 목표는 북한의 CVID이고, IAEA와 CTBT 등의 비확산 레짐을 통해 간여할 것이며, 핵무기 없는 한반도를 위한 후속 협상 및 조치를 지원할 준비가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인권도 주요 의제로 본다.15) 이는 유럽이 존재에 따른 상수가 아니라 역할에 따른 변수임을 의미한다. 유럽의 이 같은 인식은 문재인 대통령이 작년에 유럽을 순방했을 때도 변함없이 유지되었다. 따라서 하노이 회담에서 실천과 활동이 제시되지 않은 이상, 유럽의 판단은 기존 입장의 고수였고 발현 형태는 침묵일 수밖에 없었다. 제재 완화든 비핵화 조치든 아무런 행위가 전제되지 않으면 새로운 역할 부여의 공간이 없다. 더 나아가 유럽은 하노이 정상회담이 한 것도 안 한 것도 아니라는 그들의 평가를 침묵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때때로 침묵은 전략이 되기도 한다. 18세기 유럽의 논객 디누아르(Dinouart)는 “정치적 침묵은, 스스로를 절제하며 좀처럼 속을 드러내지 않는 것”16)이라고 하였다. 한반도 주변 4강의 논평은 그들의 입장을 대변하였다. 지정학적 존재의 입장을 담다 보니 경직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침묵은 포괄성을 의미한다. 빈 공간이므로 향후 한반도 비핵화 과정에서 어떤 역할도 부여받을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이다. EU는 이번 하노이 정상회담이 가져온 허무한 반전 속에서 아무런 역할도 맡을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들의 침묵은 이번 회담에 대한 EU의 평가이자 향후 기회를 포착하기 위한 자리를 비워둔 것이기도 하다. 4. 마무리: 침묵이 만든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한 노력    하노이 회담이 열리기 두 주일 전 모게리니 EU 외교 대표는 ‘뮌헨 안보 회담’에서 주된 안보이슈로, ‘대량살상무기, 신 군비경쟁, 테리리스트, 기후변화, AI’ 등을, 관심지역으로는 ‘리비아, 동 우크라이나, 시리아, 예멘’ 등을 거론하였다. 그리고 의미 있는 발언을 하였다. 안보역량을 구축하기 위해 유럽적인 방법(European way)을 추진하겠다는 것이었다. 구체적으로 그것은 “동반자국가들에 대한 투자와 다자주의 노력에 매진하는 것”이라고 밝혔다.17)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한반도 문제는, 이슈로는 대량살상무기 차원에서 방법으로는 다자주의가 유럽의 관심이 될 것이다.    모게리니가 언급한 유럽의 안보 이슈는 그들만의 것이 아니라 세계적 차원에서 안보 거버넌스가 어느 방향으로 구축되어야 할지 방향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은 여전히 EU에 적절하고 타당한 역할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유럽이 특히 관심을 갖고 있는 UN등 다자적 기구를 통한 접근은 보이지 않는다. 양자관계로서 미국의 중요성을 유지하되, 지구적 차원의 안보의 방향을 읽을 필요가 있다. 하노이 정상회담은 결과적으로 유럽에게는 침묵을 가져왔다. 그들이 볼 때 무엇인가 세계적 흐름에 맞지 않았던 것이다. 유럽이 한반도 평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입을 열게 하는 것이 대한민국 외교의 또 하나 과제가 되었다. ---- 1) “...事实上,朝鲜半岛形势过去几十年的发展变化和曲折经历告诉我们,坚持对话协商才是唯一出路,相向而行方能行稳致远。我们非常希望朝美双方继续保持和开展对话,继续互释诚意,切实尊重和照顾彼此合理关切,共同致力于推进朝鲜半岛无核化和构建朝鲜半岛和平机制。中方将继续为此发挥自己建设性的作用...” 2019年2月28日外交部发言人陆慷主持例行记者会. 2) “...Считаем чрезвычайно важным сохранять положительную динамику политико-дипломатических процессов в субрегионе в русле известных российско-китайских инициатив. В этом контексте подтверждаем нацеленность России на укрепление многостороннего взаимодействия со всеми вовлеченными сторонами и сопряжение совместных усилий в интересах всеобъемлющего урегулирования ситуации на Корейском полуострове...”, Брифинг официального представителя МИД России М.В.Захаровой, Москва, 28 февраля 2019 года. 3)  “...冒頭,トランプ大統領から第2回米朝首脳会談について説明があった。これに対し,安倍総理から,朝鮮半島の非核化を実現するとの強い決意のもとに,安易な譲歩を行うことなく,同時に,建設的な議論を継続し,北朝鮮の具体的な行動を促していくとのトランプ大統領の決断を,我が国は全面的に支持する旨述べた...”, 日米首脳電話会談, 平成31年2月28日. 4)  외와 관련해서는, Politico, “Trump leaves North Korea summit without deal”, 2, 28. 2019; “‘Sometimes you have to walk’: Why Trump bailed on North Korea”, 2.28.2019; “Trump’s ticking clock on North Korea”, 3.1.2019 참조. 5)  Le Monde, “Face à Kim Jong-un, la diplomatie de Trump en échec”, le 28 février 2019. 6)  Le Monde, “Face à la Corée du Nord, la diplomatie de Trump victime de sa naïveté”, le 01 mars 2019. 7)  Le Monde, “L’échec du sommet Etats-Unis - Corée du Nord : un mal pour un bien”,le 01 mars 2019. 8)  Frankfurter Allgemeine Zeitung, “Warum Kim und Trump scheiterten”, 04.03.2019. 9)  The guardian, “Vietnam summit: North Korea and US offer differing reasons for failure of talks”, 1, Mar. 2019. 10)  Office of the Spokesperson, US Department of State, “Secretary Pompeo's Meeting With European Union High Representative for Foreign Affairs and Security Policy Federica Mogherini”, Feb.15 2019. 11)  India Today, “Mirage jets destroy Pakistan terror camp with 1,000 kg bombs in pre-dawn strike: Sources”, February 26, 2019. 12)  BBC News, “Kashmir attack: Bomb kills 40 Indian paramilitary police in convoy”, 14 February 2019. 13)  The Guardian, “'Get ready for our surprise': Pakistan warns India it will respond to airstrikes”,  27 Feb 2019. 14)  Statement by the High Representative/Vice-President Federica Mogherini on the recent escalation of tensions between India and Pakistan, 27, Feb. 2019. 15)  Statement by High Representative/Vice-President Federica Mogherini on the outcome of the summit between the United States and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12/06/2018. 16)  조제프 앙투안 투생 디누아르(저), 성귀수(역), 『침묵의 기술』,아르테, 2016. p.52. 17)  Speech by High Representative/Vice-President Federica Mogherini at the Munich Security Conference, Munich, 15/02/2019.  現 제주평화연구원 지역통합연구부장. 브뤼셀 자유대학교에서 정치사회학 박사학위 취득. 주요 논문으로 "국제정치학에서 주체물음(2013)", "유럽연합의 개발협력전략(2013)" 등이 있음
  • 하노이 회담에 대한 미국 내 반응: 공통성과 다양성
    저자
    김연호 (한미경제연구소(KEI))
    발간호
    2019-08
      하노이 회담에 대한 미국 내 반응의 공통성 1. ‘흥행’에 실패한 2차 북미 정상회담 발표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은 처음부터 미국 내에서 ‘흥행’을 일으키지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열린 역사적인 1차 정상회담만큼 세기의 관심을 끌 수 없었던 것은 2차 회담의 내재적 한계였다. 여기에 더해 미국 조야와 주류 언론은 연방정부 부분폐쇄의 정치적 후폭풍, 트럼프 대통령의 미-멕시코 장벽 건설을 위한 국가비상사태 선포, 하원을 장악한 민주당의 대여 공세와 관련 청문회 등 숨돌릴 틈 없이 이어지는 국내 현안들 때문에 눈길을 돌릴 여유가 별로 없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올해 국정연설에서 2차 북미 정상회담의 날짜와 장소를 발표하는 이벤트를 준비했지만, 여당인 공화당 의원들조차 무덤덤한 반응을 보인 장면은 이런 분위기를 극적으로 보여줬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국정연설에서 초당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는 키워드를 골라내 대통령으로서 자신의 입지를 대내외에 과시하는 데 초점을 맞췄고, 초대손님으로 나온 오토 웜비어의 부모와 탈북자 지성호 씨는 이 같은 메시지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하며 기립박수를 받았다. 반면 올해 국정연설에서 북한 문제는 트럼프 행정부의 ‘새롭고 과감한 외교’ 가운데 하나로 언급되는 데 그쳤다. 동맹의 중요성을 폄훼하고 독단적으로 시리아와 아프가니스탄 철군을 결정하는 트럼프의 ‘새롭고 과감한 외교’는 공화당 내에서조차 비판을 받는 상황이었다. 하노이 회담 날짜가 다가올수록 미국 주류 언론과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담판에서 스몰딜의 대가로 무리한 양보를 내줄 것이라는 우려를 지속해서 제기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스탠퍼드대학 연설을 통해 협상 타결의 문턱을 상당히 낮추겠다는 신호를 확실히 보낸 만큼, 관심은 트럼프 대통령이 과연 무엇을 양보할 것인가에 모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에 대한 욕심을 숨기지 않았고, 자신의 개인 변호사였던 마이클 코언이 하원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폭탄 발언을 하는 상황에서 국내 여론의 관심을 돌릴 만한 이벤트에 집착하지 않겠냐는 지적이었다. 민주당은 하원 외교·군사·정보위원장의 공동명의로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공개서한에서 트럼프 행정부 대북정책의 투명성 결여를 지적하고 회담 직후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결과 보고를 요구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통 큰 양보’에 대한 비판을 준비하고 있었다. 2. 워싱턴의 컨센서스: “No Deal이 Bad Deal보다 낫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주류사회의 이 같은 우려와 기대(?)를 저버리고 ‘노딜’을 선택했다. 예측 불가능성을 무기로 ‘협상의 달인’을 자처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모두가 예상하던 스몰딜에 합의할 것이라는 전망은 처음부터 무리였는지 모른다. ‘김정은과의 햄버거 담판’에서 ‘코피 전략’을 오갈 만큼 정책 옵션의 진폭이 컸던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빅딜과 노딜 모두 카드에 들어 있었다. 오히려 스몰딜을 갖고 귀국할 경우 배드딜이라는 비판에 직면할 것임을 트럼프 대통령 본인이 잘 알고 있었고, 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이런 계산을 여과 없이 거듭 드러냈다. 미국 주류 언론은 협상 결렬·실패, 빈손 귀국, 협상 결렬 이유에 대한 북미 양측의 상반된 설명 등을 헤드라인으로 뽑으면서 2차 정상회담에 대해 냉정한 평가를 했다. 그러나 워싱턴의 컨센서스는 “배드딜보다는 노딜이 낫다”로 모이고 있다. 낸시 펠로시 하원 의장과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 역시 이 같은 평가에는 동의하고 있다. 미국의 국익을 손상할 수 있는 거래를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올바른 판단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김정은 위원장이 하노이에서 보여준 카드는 미국 정치권에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의심케 하기에 충분했다. 북한은 하노이 담판에서 영변 핵시설을 검증할 수 있게 폐기하는 대가로 유엔의 핵심 경제제재 해제를 요구했다. 미국으로서는 대북 지렛대를 사실상 포기하라는 요구인 만큼 받아들일 수 없었다. 펠로시 하원의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 두 번이나 만난 만큼, 이제는 북한이 비핵화에 진정성이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공화당의 대표적인 강경론자인 코리 가드너 상원 외교위원회 동아태 소위원장도 북한이 국제법상의 의무를 완전히 이행하기 전까지 제재의 고삐를 늦춰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반면 여당으로써 트럼프 대통령을 옹호해야 하는 미치 맥 코넬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의 경우 북한의 비핵화와 관련해 이번 회담에서 ‘충분한 진전’이 없는 만큼 협상 결렬은 잘된 일이라고 밝혔다. 케빈 매카시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도 김정은 위원장이 입장을 재고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거래를 성사시킬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공화당 지도부는 트럼프 대통령과 보조를 맞추며 북한과의 재협상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3. 간과할 수 없는 북한 인권 하노이 회담의 결과와 관련해 민주, 공화 양당이 초당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을 성토하는 이슈가 하나 있다. 북한에 억류됐다가 식물인간 상태로 풀려난 뒤 사망한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에 대한 기자회견 발언이 그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과 만나 웜비어 사망 사건에 대해 논의했냐는 질문에 대해, 김 위원장은 웜비어의 상태가 그렇게까지 된 줄 몰랐다고 해명했고 자신은 김 위원장의 말을 믿는다고 대답했다. 미국 정치권과 언론은 북한 독재자가 대미 협상 칩인 미국 시민의 상태를 몰랐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미 정보기관의 북한 핵 위협 평가는 무시하면서 독재자의 말을 믿는 트럼프 대통령을 강력히 비난했다. 웜비어 가족까지 트럼프 대통령을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공화당 의원들조차 이에 가세하자 백악관이 해명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북한 인권 문제는 미국 정치권에서 초당적인 합의가 가능한 몇 안 되는 사안 가운데 하나인 데다, 웜비어 사망 사건을 계기로 미국 국내정치 문제가 돼 버렸다. 특히 웜비어의 고향인 오하이오주를 지역구로 둔 의원들은 여야를 불문하고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하고 있다. 미국 내에서 북한 인권 문제는 대북제재와 압박에 강력한 명분을 제공하고 대북협상의 도덕성에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는 핵심 요소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향후 대처 방식에 놓고 다양한  시각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양측은 상대방의 협상 카드를 정확하게 확인했고, 협상 결렬 이후에도 외교적으로 상황을 관리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대북협상 회의론자들도 인정하고 있는 부분이다. 충분한 사전준비 없는 하향식의 정상회담 무용론도 공통으로 제기되고 있다. 미국은 국제법, 핵연료 주기, 미사일, 경제제재 등의 분야별 전문가들로 실무협상팀을 꾸려 하노이 현지에서 북한과 사전조율을 시도했다. 그러나 북한은 영변 핵시설의 폐기 범위를 명확하게 밝히지 않다가, 협상이 결렬된 다음에야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영변 핵시설 ‘전체’를 폐기하겠다고 미국 측에 확인해 준 것으로 알려졌다. 정상회담 전날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과 만나 담판을 지으려던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노력도 허사였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타결 가능성이 없다는 참모들의 조언을 무시하고 북한의 대량살상무기까지 포함한 빅딜을 김 위원장에게 요구했다. 양측 정상들이 자신의 협상력만 믿고 상대방의 입장을 오판했으며, 처음부터 성공할 수 없는 협상 구조였다는 지적에는 이론이 없다. 그러나 향후 대처 방식에서는 시각이 현격히 갈리고 있다. 대북 관여와 단계적 해법을 지지하는 그룹은 하노이 회담을 계기로 북미 양측이 실질적인 협상에 들어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고 평가하고, 실무레벨에 권한을 대폭 이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전통적인 대북협상 방식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의견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란 핵 합의와 같이 검증 가능한 비핵화 조치와 상응 조치를 구체적으로 나열해 서로 가격표를 맞추고, 북한의 합의 위반에 대한 벌칙도 마련하는 기술적 협상이 먼저 타결돼야 하며, 그전까지 3차 북미 정상회담은 무리라는 지적이다. 또한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고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라는 궁극적 목표를 유지하되, 미국이 완전한 승리를 추구하기보다는 중간 단계의 현실적인 타협안을 목표로 설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그 동안 주류사회의 회의론에 밀려 있던 현실론자들은 지난 1월 말 비건 특별대표의 스탠퍼드대학 연설을 계기로 언론과 공개행사에서 자주 등장하면서 이런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이들은 하노이 회담에서의 노딜이 오히려 현실적인 단계적 북핵 해법의 유용성을 입증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현실론자들은 상대적으로 구체적인 협상재개 방안을 논의하고 있지만, 회의론자들은 매우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 이번 회담에서 북한은 상응 조치 가운데 제재 해제에 최우선 순위를 두고 있음을 드러냈고 이는 대북제재가 상당히 효과를 발휘하고 있음을 방증한다는 데는 미국 조야에서 이견이 없다. 현실론자들은 시간이 갈수록 북한의 선택지가 제한될 수밖에 없는 만큼 이를 활용해 협상을 추동해야 한다는 의견인 반면, 회의론자들은 경제제재가 미국의 강력한 대북 지렛대로 확인된 만큼 북한에 숨돌릴 틈을 주지 말고 제재의 고삐를 더 바짝 조여야 한다는 의견이다. 전통적인 단계적 대북협상으로 돌아갈 경우 또다시 북한의 협상 전술에 말려들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의 최근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 복구 움직임은 이 같은 회의론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북한이 하노이회담 직전부터 동창리 발사장 복구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지면서 대북협상 무용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풍계리 핵실험장의 관제센터와 부대시설이 여전히 건재하다는 사실도 북한의 진정성을 의심케 하는 또 다른 증거로 지적되고 있다. 오히려 북한은 핵, 미사일 관련 시설의 새로운 움직임을 드러내면서 미국을 압박하는 전술로 돌아갈 것으로 회의론자들은 믿고 있다. 이와 관련된 정보기관들의 보고를 무시하고 북한의 실제 위협을 저평가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비난의 화살이 향하고 있다. 하노이 회담 이후 트럼프 행정부는 단계적 접근방식을 포기하고 포괄적 핵 합의 추구로 회귀하겠다는 의지를 공개적으로 천명하고 있다. 북한의 모든 대량살상무기를 대상으로 하는 빅딜이 이뤄지기 전까지 대북제재 해제도 없다는 강경론을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과 국무부 고위 당국자가 한목소리로 강조하고 나섰다. 비건 특별대표의 스탠퍼드대학 연설과는 전혀 다른 접근 방식이지만, 북한과의 협상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는 점에서는 회의론과 결이 다른 모습이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북한의 호응을 기대하기 어려운 만큼 현실성이 별로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실론과 회의론 모두 향후 비핵화 협상에 별다른 진전 없이 동결 대 동결 (북한의 핵 및 미사일 시험 중단과 대규모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이 지속하는 현상 유지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이 경우 중국과 러시아의 비협조로 대북제재의 공동전선이 지속해서 약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한국이 비핵화에 진전이 없는 상태에서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 등 남북경협을 추진할 경우 한미관계에 마찰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한미 양국의 대북 군사 준비태세 약화 가능성에 대해서도 우려하는 분위기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민주당의 거센 정치적 공세와 2020년 대선을 앞두고 과연 북미 핵 협상에 지금과 같은 정도의 관심을 둘지도 핵심 변수로 꼽힌다.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만 태도를 바꾼다면 대선 전까지 빅딜을 타결해 비핵화를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이지만, 과연 협상 동력이 유지될지 의문이다. 러시아 게이트, 미-멕시코 국경장벽, 트럼프 대통령 본인과 가족의 세금과 회계 처리 문제 등 대선정국을 강타할 국내 현안들이 산적해 있기 때문에, 북핵 문제가 유권자들의 표심에 미칠 영향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국내 현안으로부터 여론의 관심을 돌리고 2차 북미 정상회담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계산도 희망에 그치고 말았던 게 사실이다. 3차 정상회담이 성사되기 위해서는 외교적 치적을 쌓으려는 트럼프 대통령이 흡족할 만큼의 중대한 진전이 필요하다. 그러나 미국 대선정국까지는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다. 現 한미경제연구소(KEI) 비상근 연구위원.
  •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베트남인의 인식
    저자
    Nguyen Thi Thuy Hang (Diplomatic Academy of Vietnam)
    발간호
    2019-07
      어떻게 하면 한국과 베트남 간의 정치 및 사회경제 분야 그리고 인적 유대 관계를 강화시킬 수 있을지는 외교관과 정치인들의 초미의 관심사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한국의 적극적인 대베트남 투자, 양국간의 문화 교류 그리고 지정학적 유사성 등의 요인을 바탕으로 한-베트남 관계에 대한 다양한 관점이 존재한다. 이들이 중요한 요인들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이보다 더 실질적임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는 간과되고 있는 요인이 있다. 바로,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베트남인의 견해가 분명 정책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글을 통해 한국과 베트남이 양국 관계를 심화 및 확대 시키고자 공동의 노력을 기울이는 가운데 한국 및 한국인에 대한 베트남인의 인식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우선, 한국과 베트남이1992년 12월 22일에 수교를 맺은 이후 양국 관계 발전 상황을 개괄적으로 소개할 것이다. 이어서 한국 및 한국인에 대한 베트남 국민의 긍정적인 인식과 부정적 인식에 대해 분석한다. 결론에서는 일부 베트남인들이 베트남 전쟁의 경험, 한국인과 결혼한 베트남 여성들의 한국에서의 삶, 한국인 고용주들이 베트남 근로자에 대한 태도 등으로 인해 한국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점 더 많은 베트남인, 그 중에서도 특히 베트남 젊은이들이 한국의 상품, 관광, 문화 그리고 한국인에 대해 점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결론을 맺는다. 보다 긴밀한 한-베트남 관계 지난 26년간 한-베트남 관계는 그 범위와 내용적 측면에서 발전해왔다. 한국과 베트남이 양국의 상호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역사적 문제에 대한 평가를 뒤로한채 이념적 차이와 사회 시스템을 극복을 했다는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한국은 냉전시대에 베트남의 적국이었으나 이제는 베트남의 친구이자 동반자로 자리매김했다. 한-베트남 교류의 역사는 리 왕조(Ly Dynasty)가 쩐 왕조(Tran Dynaty)로 교체 되던 13세기(1226년 )로 거슬러 올라간다. 리 왕조의 왕자 이용상(Ly Long Tuong)은 바다를 건너 고려로 망명했으며, 고려는 이용상을 환대했다.1) 고려는 이용상에게 화산군으로 봉했고, 이용상은 고려를 침략한 몽골군과의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데 기여했다.2) 중화주의에 기반한 유교적 역사 및 문화적 배경을 가진 한국과 베트남은 문화적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베트남인이 한류에 열광하는 것은 놀라운 일도 아니다. 한류 상품은 두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하나는 영화, 대중음악, 온라인 게임, 만화와 같은 컨텐츠 중심의 상품이고, 또 하나는 패션, 화장품, 요리, 스마트폰, 전자제품 관광 등의 서비스 및 하드웨어이다. 한류를 통해 베트남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후 한국은 지속적으로 베트남 시장을 침투하고있다. 2018년 11월 말 양국의 교역량은 626억 달러였으며, 한국은 베트남의 주요 교역국이다.3) 현재 한국은 베트남의 4위 투자유치국이며, 베트남은 한국 개발원조의 최대 수혜국이다.4) 베트남과 한국 정부는 양국간의 교역이 2020년까지 1000억불에 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난 26여 년간 한-베트남 관계는 사실상 새로운 역학구도를 형성해 왔다. 외교, 사회경제, 문화, 인적교류 등 다양한 분야에의 교류가 확대됨에 따라 양 국민들의 서로에 대한 감정과 인식이 개선되었다. 본 글은 한국 및 한국인에 대한 베트남인의 관점에 대해 중점적으로 다루고자 한다. 놀라운 한국과 한국인 본 섹션에서는 베트남 국민이 대체적으로 한국인에 대해 긍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다는 점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베트남에서 개최되는 포럼이나 SNS을 보면 대부분의 베트남인은 한국을 아주 높이 평가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다수의 베트남인은 한국인들도 자신들처럼 열심히 일하고 친절하며 의지가 강한 민족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많은 베트남인은 또한 한국 드라마를 즐겨 시청하면서 드라마 주인공들을 통해 한국인에 대한 특별한 감정을 갖게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대장금, 겨울 소나타, 주몽과 같은 드라마는 한국인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었고, 한국 사람들에 대한 그들만의 관점을 형성하는데 일조하기도 했다. 베트남인의 눈에 한국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서로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는 민족으로 비춰진다. 예를 들어 베트남사람인 Phu씨는 대부분의 한국사람들은 “매우 친절하다”고 말했다.5) 한국 사람들은 사려 깊으며 예의 바르게 행동하며, 한국 남성들은 강인하며 신뢰할만하다고 평가되고 있다. 베트남인은 한국 여성이 가족 중심적이며 헌신적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6) 이와 같은 맥락에서 베트남 작가 Tran Thi Thu Luong씨는 한국 문화의 주된 양상은 사랑에 기초한 정신이며,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최고의 덕목으로 여겨지는 사랑은 가족 사랑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Luong 씨는 또한 가족을 향한 사랑은 행복으로 이어지며, 가족 중심적이지 않은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살면서 어려움을 겪는다고도 했다.7) 그 이유는 가족은 사회의 구성 요인일 뿐만 아니라 한국 문화의 가장 중요한 요인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양상은 사회 속에서의 가족의 역할을 강조하는 베트남 문화와도 유사하다. 한국인에 대해 이와 같은 인식을 갖게 된 베트남인들은 급속도로 한국의 관광지나 베트남인에게 호의적이고 도움을 주는 한국인들을 향해 특별한 감정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베트남 사람들은 아름다운 자연과 헌신적인 국민들의 나라인 한국과 사랑에 빠지기 시작했다. 한-베트남 수교 2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호치민시에서 주관한 “Little Korea” 행사에서 한국 문화, 상품, 음식 및 사람들에 대한 견해를 물었을 때 베트남인은 한국인을 향한 애정 어린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답했다. 아울러 한-베트남 관계가 보다 긍정적으로 진전되기를 기원한다고도 했다.8) 베트남에서는 양국의 문화 및 교역 증진을 위해 다양한 행사 및 프로그램이 개최되고 있다. 그 예로, 베트남 계획투자부와 한-아세안 센터가 공동 주관한 한-베트남 투자 포럼(2015년 7월), 주 베트남 한국 대사관, 농업개발부, 문화체육관광부, 한인회,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해외농업연구개발센터, 한국관광공사, 주 베트남 한국문화원이 공동 주관한 한-베 음식 문화 축제(2017년 10월) 그리고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공동 주관한 K-Food Fair(2018년 6월)가 있다. 이러한 행사들은 궁극적으로 보다 많은 베트남인이 한국과 동아시아 국가에 대해 더 잘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특히 최근에는 한국인 박항서 감독이 이끈 베트남 축구대표팀이 놀라운 성과를 이루면서 베트남에서 한국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졌다. 베트남 국민들은 베트남 축구대표팀의 실력을 놀랍게 향상시킨 박항서 감독의 뛰어난 지도력과 전략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베트남 국민들이 박항서 감독은 물론 한국과 한국인에 대해 갖는 애정 또한 점점 더 커지고 있는 것 같다. 이와 같은 긍정적이고 놀랄만한 요인들이 베트남 국민의 한국에 대한 태도에 커다란 영향을 주고 있다. 요약하자면, 베트남 국민들이 지난 26년간 한국에 대해 더 잘 이해하게 되면서 한국과 한국인을 향한 깊은 애정의 마음이 자라나게 되었다. 베트남인은 한국인들이 마음이 따뜻하고 근면 성실하며, 가족 친화적이고 의지가 강하며 열정적인 국민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으며, 베트남 사람들이 소중히 여기는 가치를 지닌 국민이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베트남인들은 한국을 좋아하고 한국인들을 매우 높게 평가하지만, 일부 한국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한국군의 잔학행위9), 한국에서 한국인 남편에게 학대 당한 베트남 여성들10) 그리고 한국 공장 고용주의 베트남 근로자 착취 문제11)는 양국민의 상호 이해를 증진하는데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 이러한 요인들은 베트남인의 한국에 대한 인식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 세가지 요인 중 한가지 요인만으로도 어려움을 겪은 베트남 사람들은 이를 용납하기 어려운 심정이며, 보상이나 사과를 원하고 있다. 이들의 사연은 지역사회, 마을 또는 신문에 소개되고, 그 결과 한국사람들에 대한 편견을 가진 베트남인도 있을 수 있다. 점점 더 많은 한국인 기업이 한-베트남 양국민의 번영을 목표로 베트남에 진출하는 등 양국 정부가 과거를 청산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려는 공동의 노력을 통해 한국에 대한 베트남인의 부정적 태도나 고정관념이 줄어들거나 사라지기를 기대한다. 결론적으로,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베트남인의 인식은 긍정적이라고 볼 수 있다. 30년도 안 되어 양국의 인적유대관계가 크게 강화되었다. 대부분의 베트남인은 한국과 외교적, 경제적 그리고 사회 문화적 관계를 돈독히 하기에 지금이 시의 적절하다고 여기고 있다. 다수의 베트남인은 한국이 성취한 기적적인 경제 발전모델을 자신들이 따라 배우고 싶은 훌륭한 모범사례로 평가하고 있다. 또한 한국은 베트남인이 고등 교육을 받기에 좋은 나라라고 생각한다. 아울러 한국인들이 베트남인 자신들과 비슷한 성향을 기지고 있으며, 한국이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보다 많은 한국 기업과 비즈니스가 베트남에 진출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베트남인들은 불확실성이 만연한 세계정세 속에서 발전과 번영을 도모하기 위해서 서로의 차이점을 포용하고 외국인과 함께 협력하며 일하는 방법을 배워야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한국군과 관련한 슬픈 역사, 베트남 여성과 결혼한 한국인 남성들의 태도, 한국인 고용주의 베트남 근로자에 대한 태도에 대한 사연은 베트남 내에서 소개되거나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베트남전쟁은 약 44년 전에 종식되었으며, 베트남은 당시 적국인 미국과 우호적 관계를 구축하고자 하고 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아울러 한국인 남성과 결혼한 베트남 여성들이 한국 문화에 잘 융화되어 남편과 함께 만족스러운 삶을 사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뿐만 아니라 베트남은 경제 발전을 위해 보다 많은 투자유치가 필요하며, 한국은 중요한 투자국이자 교역국이라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러한 역학구도 속에서 베트남과 한국이 지속적으로 난관을 극복하고 함께 목표 달성을 위해 협력할 것이라는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보다 중요한 사실은 앞으로 베트남인은 한국과 한국인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한 기회를 보다 더 많이 갖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 1)The Vocie of Vietnam. 20110. Ly Kings’ Descendants Receive Vietnamese Citizenship. Viewed on 22 January 2019, https://english.vov.vn/culture/ly-kings-descendants-receive-vietnamese-citizenship-117028.vov 2)VUSTA. 2007. There were Two Vietnamese Princes Becoming Famous in Korea. Viewed 11 January, 2019, http://vusta.vn/en/news/Vusta-Head-quarter/There-were-two-Vietnamese-Princes-becoming-famous-in-Korea-19477.html 3)Vietnam News. 2018. Vietnam - the Republic of Korea’s Fourth Largest Trading Partner This Year. Viewed on 11 January, 2019, https://vietnamnews.vn/economy/482480/viet-nam-the-republic-of-koreas-fourth-largest-trading-partner-this-year.html#gOToHEZ3kOYYA5M3.97 4)The People. 2018. Cementing Vietnam-Republic of Korea Strategic Cooperative Partnership. Viewed on 12 January, 2019, http://en.nhandan.com.vn/politics/editorial/item/5954302-cementing-vietnam-republic-of-korea-strategic-cooperative-partnership.html 5)Reddit. 2018. Korean View towards Vietnamese. Viewed on 12 January, 2019, https://www.reddit.com/r/korea/comments/93e3uf/korean_view_towards_vietnamese/ , and Trung Rwo. 2014. Things Shock Me When Travelling in South Korea [Những Điều Gây Sốc Khi Tôi Du Lịch Hàn Quốc]. Viewed on 11 January, 2019, https://news.zing.vn/nhung-dieu-gay-soc-khi-toi-du-lich-han-quoc-post468355.html 6)Live in Korea. 2018. Văn Hóa và Đời Sống Ở Hàn Quốc [Culture and Life in South Korea]. Viewed on 12 January, 2019, https://www.liveinkorea.kr/portal/VNM/page/contents.do?menuSeq=5312&pageSeq=12 7)Tran Thi Thu Luong. 2011. Korean Cultural Characteristics Now and Then, Ho Chi Minh City Publishing House. 8)Ariang News. 2018. “Little Korea” in Vietnam – Festival in Ho Chi Minh City Celebrates S. Korea-Vietnam Ties. Viewed on 12 January 2019, https://www.youtube.com/watch?v=uS5W5mOnECQ 9)Jo Griffin. 2019. Women Raped by Korean Soldiers during Vietnam War still Awaiting Apology. Viewed on 21 January 2019, https://www.theguardian.com/global-development/2019/jan/19/women-raped-by-korean-soldiers-during-vietnam-war-still-awaiting-apology ; and Change. 2015. Apologize for the Systemic Rape of Vietnamese Women during the Vietnam War. Viewed on 12 January 2019, https://www.facebook.com/change.org/posts/i-represent-the-thousands-of-vietnamese-women-raped-and-brutalized-by-south-kore/10154338601548079 10)Robert. 2017. Vietnamese Bride Killed by South Korean Father-in-Law in Seoul. Talk Vietnam. Viewed on 11 January, 2019, https://www.talkvietnam.org/2017/06/vietnamese-bride-killed-by-south-korean-father-in-law-in-seoul/ , Monica Suk. 2010. ABC News. Viewed on 12 January, 2019 https://abcnews.go.com/International/mentally-ill-korean-grooms-apply/story?id=11177251 11)Korea Herald. 2015. Korean Companies Accused of Exploiting Workers in Vietnam. Viewed on 11 January, 2019, http://www.koreaherald.com/view.php?ud=20150601000912 , and Phuoc Tuan. 2018. Vietnamese Workers Abandoned by S. Korean Employer Promised New Jobs. VnExpress. Viewed on 11 January, 2019, https://e.vnexpress.net/news/news/vietnamese-workers-abandoned-by-s-korean-employer-promised-new-jobs-3718830.html 現 베트남 외교 아카데미 국제정치외교학과에서 강의. 호주 로열 멜버른 공과대학(RMIT University)에서 국제관계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아시아-태평양, 아시아-태평양 안보 및 외교정책분석 분야에서 국제관계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음.
  • 2019 트럼프 대통령의 의회연설에 비춰본 한반도 비핵화 전망
    저자
    이성우 (제주평화연구원 분쟁해결연구부장)
    발간호
    2019-06
      2018년 11월 미국의 중간선거가 끝나고 새로 구성된 미국의 상하양원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2019년 새해의 국정전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이에 대한 여야의 협력을 요청하는 의회연설이 있었다. 연설은 2차 대전 참전용사를 소개하면서 자유를 수호한 미국이 짊어져야할 국제적 책임에 대한 언급으로 시작하였다. 이후, 경제적으로 자신의 업적을 나열하는 시간이 연설 초반의 절반을 차지하였는데, 무역적자 해소, 고용증진, 재정상황 개선 등을 언급하였다. 트럼프의 핵심적인 주장은 국제무역에서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아 미국의 이익을 다시 찾아오고, 이를 통해 초강대국 미국의 지위를 강화하며, 미국이 다시 세계질서의 중심에 서게 되는 과정에 미국의 중산층을 보호함으로써 트럼프가 후보시절부터 강조해온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maker America Great Again)”라는 가치를 실현했다고 하는 선언이었다. 연두교서가 계속되는 동안 두 가지 인상적인 모습이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서 정책적으로 의미가 있다고 판단된다. 첫째는 미국의 민주주의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온전한 이해와 이를 미국의 정치지도자들과 공유하려는 여유가 드러난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연설하는 동안 흰색 정장을 입은 민주당 소속 초선의 여성하원의원이 모여 앉아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군사력, 경제력, 중산층의 증가, 실업의 감소와 같은 자신의 치적을 소리 높여 말할 때 이 여성의원들을 꿈쩍도 하지 않았다. 민주당 출신의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여성의원들의 항의의 목소리와 몸짓을 제지해야할 만큼 순간적으로 긴장감이 흐르기도 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취업을 포함한 여성의 기회를 확대를 언급할 때는 민주당 초선 여성의원들도 전원이 기립박수를 보내주었다. 이들이 앉으려고 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장난기가 발동했는지 “당신들을 그러면 안되지 않나요”라고 하더니 “아직 앉지 마시라”고 내가 기립박수를 받아야할 게 더 있다고 농담을 했다. 그리고는 트럼프 대통령은 역사상 가장 많은 수의 여성 하원의원이 하원에 진출했다고 말을 하자 이들은 기립박수와 함께 U.S.A를 연호하였다. 미국 민주주의에서 우리가 배워야할 가장 극단적인 단면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국내정치적 역학관계를 이해하고 자신의 정책에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념적, 정치적 그리고 사회경제적 측면에서 민주당 여성의원과 트럼프 대통령은 정확하게 대척점에 서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주당 여성의원의 시각에서 보면 “우리들은 국정 의제의 상당부분에 대통령의 정책에 동의할 수 없지만,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을 대통령이 지지하는 한에는 우리가 서로 이념적 대척점에 있더라도 나는 대통령의 정책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에서 보면 “나는 당신들이 지지하지 않는 정책을 밀어 붙이고 있다는 이유로 당신들이 나를 싫어하는 것을 알지만, 당신이 지지하는 정책 중에도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정책이 있다면 내가 더 적극적으로 추진함으로써 당신들의 지지를 얻어 내겠다”는 선언이다. 둘째는 트럼프가 바라보는 국제질서이다. 미국에 대한 적대세력에 대한 위협을 다루는데 있어서 뿐만 아니라 정상국가 및 우방국가와의 관계를 정상적으로 바로잡는데도 동일한 원칙이 적용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국제관계를 해결하는데 잘못된 문제를 바로잡기 위한 강력한 국력(opportunity)과 정책을 추진하는 의지(willingness)를 바탕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이를 수정하려는 노력을 했기 때문에 극단적인 수단이 아닌 대화와 협상이라는 평화적 수단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ISIS가 잠식했던 이라크와 시리아의 영토를 거의 100%가까이 탈환했고, 이란과의 잘못된 핵협상을 바로잡았고,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과 좋은 관계를 만들어 냈고 2월 28일 베트남에서 정상회담을 통한 한반도 비핵화를 추진하는 과정에 이러한 원칙이 관철되었다. 북미자유무역협정을 대체한 USMCA, 중국과 지적재산권 도용을 포함한 대미 무역적자의 개선, 동맹국과의 방위비 분담에도 동일한 원칙을 적용하여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 운영철학은 미국의 정치가 만들어온 민주주의의 틀 안에서 초당적 협력(bipartisanship)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미국을 다시 강대국으로 만들기 위한 자신만의 철학이 담긴 대외정책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멕시코 국경에 설치할 장벽에 대해서도 콘크리트가 아닌 디자인이 멋진 장벽을 설치할 것이라는 설명이나 예루살렘으로 미국 대사관을 이전한 정책적 배경을 설명하는 과정에 자신만의 강력한 정책적 의지를 드러냈다. 문제는 한반도의 비핵화와 관련해서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과 관계가 좋고, 핵실험도 15개월째 중단된 상태라는 점을 언급하면서 미북관계에 대해서 긍정적인 평가를 제시하지만 비핵화를 추진하는 정책방향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이 없었다. 지금까지 한반도 비핵화의 문제는 북한이 비핵화에 앞서 평화협정 체결과 같은 체제보장을 요구하는 단계적 보상을 요구한 반면, 미국은 여전히 CVID의 검증 가능한 비핵화를 요구하면서 제재를 이어가겠다고 서로 상반된 입장을 고수해 왔던 것이다. 이번 2월 28일 베트남에서 열릴 예정인 미북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힘은 보여주었으니 이제 대화와 타협을 통한 문제해결이 가능하다는 판단을 하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미국의 초당적 지지를 얻어서 한반도 비핵화의 전환점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은 체제안전이 보장되면 주한미군철수를 요구하지 않으면서 비핵화를 추진하겠다고 하고 있고 미국도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확실하다면 평화협정 체결이나 미북수교를 우선 고려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메시지가 나오고 있다. 現 제주평화연구원 분쟁해결연구부장. 단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후 2004년 미국 University of North Texas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음. 단국대학교 분쟁해결연구센터에서 연구위원으로 활동하며 “한국의 공공분쟁 사례연구”를 주제로 대한민국 학술진흥재단 중점연구소 연구과제를 수행하였음. 학술활동으로는 미국국제정치학회가 주관하는 International Studies Quarterly의 Referee로 활동한 바 있음. 저서로는 『2011 한국인의 평화관: 통일정책과 여론 』 및 『2010 한국인의 평화관: 외교정책과 여론』 등이 있음.
  • Vietnamese Perceptions of South Korea and South Koreans
    저자
    Nguyen Thi Thuy Hang (Diplomatic Academy of Vietnam)
    발간호
    2019-05
    Diplomats and politicians are preoccupied with how to deepen relations between Vietnam and South Korea in political and socio-economic areas and people-to-people ties. They point to factors such as South Korea’s substantial investment in Vietnam, the cultural exchange between South Korea and Vietnam, and their geopolitical similarity, to reach conclusions about the prospects for a different South Korea-Vietnam relationship. All of these factors are no doubt significant. Generally neglected, however, is a far more tangible factor; the opinions of the Vietnamese public on South Korea and its people that will have clear policy implications. As Hanoi and Seoul are making concerted efforts to broaden and deepen their relationship, this article seeks to examine how Vietnamese people perceive South Korea and South Korean people. The article begins with a brief description of how both countries have built up their links since the establishment of diplomatic relations on December 22, 1992. Then, it will explore both the positive and negative impressions that the Vietnamese have about South Korea and South Koreans. The article will show that an increasing number of Vietnamese people, particularly the youth, have developed an interest in South Korean commodities, tourism, culture and people; however, some Vietnamese people remain uncomfortable with South Korea for specific reasons, including the Vietnam War, the life stories of Vietnamese brides in South Korea, and the treatment of Vietnamese workers by South Korean employers. Vietnam-South Korea: A Closer Relationship Relations between Vietnam and South Korea have developed in both scope and content over the last 26 years. It is something of a miracle that South Korea and Vietnam have been able to shelve the historical legacy and overcome their ideological differences and social systems for the sake of mutual benefits. South Korea was Vietnam’s adversary during the Cold War but has now become a friend and partner of Vietnam. Contact between Vietnam and South Korea can be traced back to the 13th Century; the Ly Dynasty was replaced by the Tran Dynasty in 1226, and Prince Ly Long Tuong of the Ly Dynasty crossed the sea and arrived in Korea seeking asylum.1) He was warmly welcomed by the Koryo Dynasty; he became a general under the dynasty and helped to defeat two Mongolian invasions.2) Sharing a historical and cultural background in Sino-centric Confucianism, Vietnam and South Korea have many cultural similarities; therefore, it is not surprising that the Korean Wave (or Hallyu) has been received with such enthusiasm in Vietnam. Korean products relating to Hallyu can be divided into two main groups: (i) content-based products including movies, pop music, online games and comics; and (ii) hardware and services including fashion, cosmetics, cuisine, mobile phones, electronic parts and tourism. After capturing the hearts of Vietnamese people, South Korea continued to penetrate the Vietnamese market. By the end of November 2018, bilateral trade between the two countries was US$62.6 billion, and South Korea is one of Vietnam’s key trading partners.3) Vietnam is presently the fourth largest recipient of South Korean investment and the largest recipient of South Korean development assistance.4) The Vietnamese and South Korean governments expect that the two-way trade will reach $100 billion by 2020. Indeed, the last 26 years have witnessed a new dynamic in South Korea-Vietnam relations. With increasing interaction in various fields, from diplomatic and socio-economic to cultural and people-to-people ties, the public in the two countries have developed ideas and thoughts about each other. The following section will focus on Vietnamese perceptions of South Korea and its people. South Korea: Impressive Country and People It will be shown in this section that Vietnamese people generally hold a positive perception of South Korea. A thorough look at Vietnam’s forums and social networks demonstrates that most Vietnamese people have a very high opinion of South Koreans. Many Vietnamese believe that, like the Vietnamese, South Koreans are hardworking, kind and determined. Many Vietnamese people enjoy watching South Korean drama series and have a special feeling towards South Korean people through the main characters in those dramas. For instance, drama series such as Dae Jang Gum, Winter Sonata and Jumong have left a very good impression on Vietnamese people and partly shaped the views of the Vietnamese towards South Korean people. In the eyes of Vietnamese people, South Koreans care and share with people around them. For example, Phu, a Vietnamese national, commented that most South Koreans “are very nice”,5) that they are well-behaved and considerate, and that South Korean men are strong and reliable. Also, that South Korean women are family-oriented and devoted.6) In a similar vein, Vietnamese writer, Tran Thi Thu Luong, emphasized that one of the main features of South Korean culture is a love-based spirit, which is manifested first and foremost in the love for family. The writer shows that love for family will lead to happiness, and that those who are not family-oriented will generally suffer in life.7) This is because, in South Korean culture, family is only a part of society but it is also the most significant factor. This outlook is similar to the Vietnamese culture, which places great emphasis on the role of family in society. From now on, Vietnamese people will quickly be able to develop special feelings towards South Korean tourist attractions and South Korean people, who are hospitable and helpful. The Vietnamese have fallen in love with South Korea; a country of exquisite natural surroundings and devoted people. During an event called “Little Korea”, organized in Ho Chi Minh City on the occasion of the 25th anniversary of Vietnam-South Korea relations, the Vietnamese who were asked about their feelings towards South Korea, expressed their love for South Korean culture, products, cuisine and people. They also added that they wanted to see continuing positive development in Vietnam and South Korean relations.8) Now, various events and programs are organized in Vietnam each year to promote trade and cultural exchanges between the two countries. Among these were the Vietnam-Korea Investment Forum co-organized by the Ministry of Planning and Investment and the ASEAN-Korea Centre in July 2015. There was also the Vietnam-South Korea Culture and Food Festival in October 2017, jointly organized by the Embassy of South Korea in Vietnam, the Ministry of Agriculture and Rural Development, the Ministry of Culture, Sports and Tourism, the Korean Association, the Korea Agro-Fisheries Trade Corporation, the Korea Project on International Agriculture, the Korea Tourism Organization, and the Korean Cultural Center in Hanoi. Held very recently, in June 2018, was the K-FOOD FAIR, co-organized by South Korea’s Ministry of Agriculture, Food and Rural Affairs and the Korea Agro-Fisheries & Food Trade Corporation. These activities will eventually enable more Vietnamese people to know about South Korea, and to have a deeper understanding of this East Asian country. For instance, with the recent great successes of the Vietnam national football team under the supervision of head coach Park Hang-seo, a South Korean citizen, South Korea has become much more widely known in Vietnam. Vietnamese people are very grateful to Park Hang-seo for his excellent guidance and strategy that has actively fostered the performance of the Vietnam national football players. Along with their admiration for Park Hang-seo, the Vietnamese now seem to like South Korea and its people much more; indeed, this very positive and surprising factor has had a valuable impact on the attitude of Vietnamese people towards South Korea. In summary, during the course of 26 years, Vietnamese people have learned about South Korea and developed a real love for the country and its people. They see in South Korean people many characteristics that they value in themselves; warm-hearted, hard-working, family-friendly, determined and energetic. Although the Vietnamese public in general likes South Korea and holds a high opinion of South Koreans, in reality a number of Vietnamese still hold a negative view towards South Korea. The legacy of what South Korean soldiers did during the Vietnam War,9) the abuse of Vietnamese brides in South Korea,10) and the exploitation of Vietnamese workers in South Korean factories11) somehow remain barriers to an increased mutual understanding between the people of Vietnam and South Korea. These experiences have all negatively impacted the thinking of Vietnamese people. For the Vietnamese, especially those who suffered from one of these three events, they are not prepared to accept what happened and want an apology or compensation. Their life stories are told in their communities, villages, and in newspapers. Consequently, there may be prejudice in Vietnam about South Koreans; however, efforts are being made by both the Vietnamese and South Korean governments to park the past and look forward to the future. With the increasing presence of South Korean businesses in Vietnam, creating prosperity for both Vietnamese and South Koreans, it is hoped that negative attitudes and stereotypical beliefs about South Koreans will be reduced or even eliminated. In conclusion; the perceptions of Vietnamese people towards South Korea and its people are positive. In less than three decades, the people-to-people ties between the two countries have developed well. Most Vietnamese people can see that now is a good time for both sides to build diplomatic, economic and socio-cultural relations with South Korea. Vietnamese people see South Korea’s economic miracle as an excellent example for Vietnam to follow, and many Vietnamese consider South Korea to be a good destination to pursue their higher education ambitions. The Vietnamese see in South Korea a people with personalities and characteristics like their own. They see opportunity to learn new knowledge and skills, and also wish to see more South Korean firms and businesses establish themselves in Vietnam. They also know that to develop and prosper in a world full of uncertainty, they need to learn how to tolerate differences and how to cooperate and work with people from foreign countries. Sad stories about the activities of South Korean soldiers during the Vietnam War, South Korean husbands toward their Vietnamese wives, and South Korean employers to Vietnamese employees are told or retold in many parts of Vietnam; however, it is a fact that the Vietnam War ended almost 44 years ago, and Vietnam is now seeking to build a good relationship with its former foe, the United States. It is also a fact that many Vietnamese brides have integrated well in South Korean culture and have had good lives with their South Korean husbands. Another significant fact is that Vietnam needs a greater flow of investment in order to develop its economy, and South Korea is an important investor and trade partner. With all these different dynamics, there are high hopes that Vietnam and South Korea will continue to overcome their difficulties and work together to achieve common goals. And, most importantly, that Vietnamese people will have a greater opportunity to properly understand South Korea and the South Korean people. - 1)The Vocie of Vietnam. 20110. Ly Kings’ Descendants Receive Vietnamese Citizenship. Viewed on 22 January 2019, https://english.vov.vn/culture/ly-kings-descendants-receive-vietnamese-citizenship-117028.vov 2)VUSTA. 2007. There were Two Vietnamese Princes Becoming Famous in Korea. Viewed 11 January, 2019, http://vusta.vn/en/news/Vusta-Head-quarter/There-were-two-Vietnamese-Princes-becoming-famous-in-Korea-19477.html 3)Vietnam News. 2018. Vietnam - the Republic of Korea’s Fourth Largest Trading Partner This Year. Viewed on 11 January, 2019, https://vietnamnews.vn/economy/482480/viet-nam-the-republic-of-koreas-fourth-largest-trading-partner-this-year.html#gOToHEZ3kOYYA5M3.97 4)The People. 2018. Cementing Vietnam-Republic of Korea Strategic Cooperative Partnership. Viewed on 12 January, 2019, http://en.nhandan.com.vn/politics/editorial/item/5954302-cementing-vietnam-republic-of-korea-strategic-cooperative-partnership.html 5)Reddit. 2018. Korean View towards Vietnamese. Viewed on 12 January, 2019, https://www.reddit.com/r/korea/comments/93e3uf/korean_view_towards_vietnamese/ , and Trung Rwo. 2014. Things Shock Me When Travelling in South Korea [Những Điều Gây Sốc Khi Tôi Du Lịch Hàn Quốc]. Viewed on 11 January, 2019, https://news.zing.vn/nhung-dieu-gay-soc-khi-toi-du-lich-han-quoc-post468355.html 6)Live in Korea. 2018. Văn Hóa và Đời Sống Ở Hàn Quốc [Culture and Life in South Korea]. Viewed on 12 January, 2019, https://www.liveinkorea.kr/portal/VNM/page/contents.do?menuSeq=5312&pageSeq=12 7)Tran Thi Thu Luong. 2011. Korean Cultural Characteristics Now and Then, Ho Chi Minh City Publishing House. 8)Ariang News. 2018. “Little Korea” in Vietnam – Festival in Ho Chi Minh City Celebrates S. Korea-Vietnam Ties. Viewed on 12 January 2019, https://www.youtube.com/watch?v=uS5W5mOnECQ 9)Jo Griffin. 2019. Women Raped by Korean Soldiers during Vietnam War still Awaiting Apology. Viewed on 21 January 2019, https://www.theguardian.com/global-development/2019/jan/19/women-raped-by-korean-soldiers-during-vietnam-war-still-awaiting-apology ; and Change. 2015. Apologize for the Systemic Rape of Vietnamese Women during the Vietnam War. Viewed on 12 January 2019, https://www.facebook.com/change.org/posts/i-represent-the-thousands-of-vietnamese-women-raped-and-brutalized-by-south-kore/10154338601548079 10)Robert. 2017. Vietnamese Bride Killed by South Korean Father-in-Law in Seoul. Talk Vietnam. Viewed on 11 January, 2019, https://www.talkvietnam.org/2017/06/vietnamese-bride-killed-by-south-korean-father-in-law-in-seoul/ , Monica Suk. 2010. ABC News. Viewed on 12 January, 2019 https://abcnews.go.com/International/mentally-ill-korean-grooms-apply/story?id=11177251 11)Korea Herald. 2015. Korean Companies Accused of Exploiting Workers in Vietnam. Viewed on 11 January, 2019, http://www.koreaherald.com/view.php?ud=20150601000912 , and Phuoc Tuan. 2018. Vietnamese Workers Abandoned by S. Korean Employer Promised New Jobs. VnExpress. Viewed on 11 January, 2019, https://e.vnexpress.net/news/news/vietnamese-workers-abandoned-by-s-korean-employer-promised-new-jobs-3718830.html Nguyen Thi Thuy Hang is a lecturer at the Faculty of International Politics and Diplomacy at the Diplomatic Academy of Vietnam. Her research centers on US-Asia relations, Asia-Pacific security, and foreign policy analysis. She holds a doctorate in International Relations from the Royal Melbourne Institute of Technology University (The RMIT University), Australia.
  • 아시아 회복탄력적 평화를 향하여: 협력과 통합
    저자
    이성우 (제주평화연구원 분쟁해결연구부장)
    발간호
    2019-04
      올해로 14회를 맞는 ‘제주포럼’은 “아시아 회복탄력적 평화를 향하여: 협력과 통합(Asia Towards Resilient Peace: Cooperation and Integration)”이라는 주제로 2019년 5월 29일부터 31일까지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개최 된다. 세계질서에서 아시아의 역할과 비중이 높아짐에 따라, 21세기 동아시아 국가들이 중심이 된 다자협력체를 통한 국제사회의 평화와 번영은 국제관계의 주요의제이며 제주포럼이 추구하는 핵심 가치이다. 세계 10위의 경제력을 보유한 대한민국이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국제공동체의 논의를 주도하는 것은 외교적 위상에 부합하는 공동체 비전의 협의와 공유의 과정이다. 제주포럼은 국제사회의 필요와 시대적 사명에 부합하여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공론의 장으로 역내 전문가들 사이에 인식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확대해 왔다. 동아시아는 2018년 안보와 경제 그리고 지역질서에 있어 급격한 변화를 경험했고 2019년에도 여전히 불확실성이 남아있다. 첫째,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로 고조된 군사적 긴장을 대화와 협력을 통한 평화공존으로 전환시킨 대한민국 정부의 노력으로 남북 및 미북정상회담 개최의 결실을 맺었다. 회담을 통해 정상들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번영에 대한 큰 틀에 합의를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한 많은 과제가 남겨져 있다. 둘째, 미중의 무역분쟁은 세계경제의 위협요인으로 2019년 부정적 전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난 2018년 11월 아르헨티나에서 개최된 G20회의에서 미중 정상은 공동번영의 시대를 위한 제도정비를 준비하기로 합의하였지만, 경제적 번영의 공유를 위해서는 많은 정책적 타협과 조율의 과정이 남아있다. 셋째, 남중국해에서 미중패권 경쟁과 동중국해의 한·중·일 영유권 분쟁은 역내 평화와 번영의 최대 위협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서는 한·중·일을 포함한 다자적 협력체가 필요하며 이러한 다자협력체가 분쟁관리를 위한 제도적 장치로서 작동되어야 한다. 동아시아의 공동의 목표인 ‘평화로운 아시아’ 그리고 ‘번영의 아시아’는 공동체의 협력과 통합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은 전후 서구선진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가 경험한 역사적 사실이다. 따라서 역내 국가들의 목표와 문제의식에 대한 공유에도 불구하고 협력의 제도화가 상대적으로 미흡한 동아시아에서 평화와 번영을 위한 공동체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하여 2019 제주포럼은 “아시아 회복탄력적 평화를 향하여: 협력과 통합”을 대주제로 역내 국가들의 평화와 번영의 공유를 위해 안보의 위협요인을 해소하는 것은 물론 경제적 발전을 정착시키고, 나아가서 분쟁재발을 방지하는 제도적 장치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기 위한 공동노력의 장이 되고자 한다. 이러한 점에서 동북아지역, 나아가 아태지역 내 ‘회복탄력적 평화’의 정착을 위해 제주포럼을 시작으로 역내 주요 국가들이 공동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시점이다. 회복탄력적 평화는 분쟁 발생위험이 높은 지역에서 안전과 안정을 확보하는 것에 추가하여 평화의 정착과 지속성을 위해 경제발전은 물론 분쟁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 정착을 포함하는 평화 회복성의 공고화를 지향한다.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불확실성이 증대되는 상황에서 평화와 번영의 지속적 공유에 부합하는 ‘회복탄력적 평화’를 논의하는 시도를 통해 높은 수준의 평화의 담론을 만들고 제주포럼의 위상을 제고하고자 한다. 2019 제주포럼은 한국이 중심이 되어 한반도의 비핵화, 동아시아의 번영, 분쟁해결 메커니즘의 제도화, 평화정착을 위한 문화교류 네트워크 확산 등의 주제하에 공론의 장을 마련함으로써 세계평화의 섬 제주가 추구해온 염원인 평화담론과 교류협력의 거점으로 위상을 확고히 다지는 전기로 활용해야할 것이다. 現 제주평화연구원 분쟁해결연구부장. 단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후 2004년 미국 University of North Texas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음. 단국대학교 분쟁해결연구센터에서 연구위원으로 활동하며 “한국의 공공분쟁 사례연구”를 주제로 대한민국 학술진흥재단 중점연구소 연구과제를 수행하였음. 학술활동으로는 미국국제정치학회가 주관하는 International Studies Quarterly의 Referee로 활동한 바 있음. 저서로는 『2011 한국인의 평화관: 통일정책과 여론 』 및 『2010 한국인의 평화관: 외교정책과 여론』 등이 있음.
  • 헬싱키 프로세스와 북핵 및 인권
    저자
    홍기준 (경희대학교 교수)
    발간호
    2019-03
    1. 서론 북한의 핵과 인권은 동북아지역 뿐만 아니라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핵심적 안보이슈로 간주되어 왔다. 이 두 이슈는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딜레마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북핵 선결을 위해 인권이슈를 유보해야 된다고 보는 관점과 북핵이슈와는 별개로 북한의 인권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상반된 시각이 존재해 왔으며 여전히 논란의 중심에 있다. 2018년 4월 27일, 극적으로 이루어진 남북 정상 간의 판문점 선언과 6월 12일,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을 통해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지난한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도 이 두 이슈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국제적 합의가 부재한 상태이다. 본고에서는 헬싱키 프로세스의 교훈을 통해 한반도에서 항구적 평화구조를 정착시키기 위해 북핵과 인권을 어떻게 연계할 수 있을지에 대해 모색해 보고자 한다. 2. 헬싱키 프로세스의 배경 헬싱키 프로세스는 1972년 동서 블록 간 다자간 협상을 통해 1975년 ‘헬싱키 최종협약’을 도출한 이후 1989년 동구권이 붕괴되고 냉전체제가 극복되었던 일련의 과정을 의미한다. 헬싱키 프로세스가 시작되었던 배경에는 1970년대 초반에 조성된 동서 간 데탕트가 중요한 결정요인으로 작용하였다. 1972년 5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닉슨과 브레즈네프 정상회담을 통해 전략무기감축협상(SALT)이 이루어졌고 거의 같은 시기에 베를린에 관한 4자 합의가 이루어졌으며 서독과 소련 및 폴란드와의 조약이 체결되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 시기에 유럽에서 일어났던 일련의 사건과 현재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사건이 유사하다는 점이다. 당시 유럽에서 가장 핵심적인 안보이슈가 독일문제였다면 동북아에서 가장 핵심적인 안보이슈는 한반도문제이다. 요컨대 유럽에서 독일문제 해결의 단초가 마련되면서 ‘유럽안보협력회의(CSCE)’라는 범유럽 다자간 안보협력이 가능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독일문제 해결의 시작은 빌리 브란트의 동방정책에서 출발하였다. 이 정책의 핵심적 요체는 ‘현 상황에 대한 인정(recognition of the status quo)’이었다. 동구권 국가들을 적대국이 아닌 대화와 협력의 상대로 인정한 것과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야기된 국경선에 대한 인정이 그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남한과 미국이 북한을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고 북핵의 실체를 전제로 협상을 통해 북핵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미국의 접근방식과 유사점이 있다. 현재 한반도에서 전개되고 있는 평화프로세스가 동북아 다자안보협력으로 이어질 것인가에 대한 실마리는 바로 북핵과 인권이 어떻게 연계될 것인가에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3. 헬싱키 프로세스와 안보와 인권의 연계 유럽안보협력회의 내에서 안보이슈와 인권의 연계는 유럽의 국제관계를 규정하는 10개의 원칙을 규정하는 과정에서 우선 이루어졌다. 즉 ‘국경선 불가침 원칙’과 ‘인권존중의 원칙’ 및 ‘민족자결의 원칙’이 동서 양진영의 핵심적 협상목표가 되면서 두 원칙 간에 연계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동구권측은 다자간 준비협상과정(1972년 11월 22일-1973년 6월 8일)에서 ‘국경선 불가침 원칙’을 타협불가능한 원칙으로 고수하였고 서구측은 인권을 국제관계를 규정하는 중요한 원칙으로 요구하였다. 동서독 통일을 염두에 둔 서독의 입장에서 ‘국경 불가침의 원칙’은 수용 가능하지 않은 원칙이었으나 입장을 선회하여 수용하였고, 소련은 국경이 국제법과 평화적 수단, 합의에 의해 변경 가능함을 인정하였다. 이러한 타협의 결과로 소련은 인권과 민족자결의 원칙을 수용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대 타협의 결과로 인권은 10개의 원칙 중 제 7원칙 ‘인권과 사상, 양심, 종교 혹은 신념을 포함하는 근본적 자유의 존중’과 회원국 간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는 인도주의적 조항이 제3바스켓으로 헬싱키 최종협약에 포함될 수 있었던 것이다. 헬싱키 최종협약이 1975년 헬싱키 정상회의를 통해 체결됨으로써 헬싱키 프로세스는 시작되었다. 이 헬싱키 프로세스는 약 14년 후에 소위 ‘의도되지 않은 결과(unintended consequences)’를 야기하게 된다. 의도되지 않은 결과라 함은 헬싱키 최종협약 체결 당시 어느 누구도 이 협약이 가져올 효과에 대해 예상치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헬싱키 최종협약에 내포된 인권관련 규범은 동구권 반체제 인권단체에게 즉각 전파되었고 동구권 공산정부에 헬싱키 최종협약을 준수할 것을 요구하기 시작하였다. 서방측 인권단체들은 동구권 국가들의 인권침해 사례를 모니터링하고 동구권 인권단체들과 연대를 모색하기 시작하였다. 당시에 헬싱키 인권 규범과 관련된 단체들이 동서 양 진영에서 우후죽순처럼 설립되면서 초국가적 헬싱키 네트워크가 구축되었다. 헬싱키 최종협약이라는 국제규범은 이른바 ‘네트워크 공명(network resonance)’의 단초를 제공하였으며 인권이라는 규범적 가치는 초국가적 헬싱키 네트워크를 통해 확산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초국가적 헬싱키 네트워크는 ‘부메랑 효과(boomerang effects)’를 야기하였다. 즉 동구권 개별국가 내의 인권단체들은 국제적 연대를 모색하였고 이 결과 구축된 초국가적 네트워크는 역으로 동구권의 공산정권에 대해 헬싱키 최종협약을 준수하도록 강한 압박을 행사하였던 것이다. 이렇듯이 국제규범은 때때로 사회정치적 변화를 일으키는 동인이 될 수 있음을 헬싱키 프로세스를 통하여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특정한 계기와 맞물릴 때 일어나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공명이 확산되는 특정한 계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1989년에 동구권에서 일어났던 민주화 혁명은 비엔나 재검토회의(1986년 11월 4일-1989년 1월 19일)를 계기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비엔나 회의에서 헬싱키 인권메커니즘은 더욱 강화된 형태로 채택되었고 소련은 1991년에 모스크바에서 인권회의를 개최하는 것에 합의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은 물론 당시 소련의 지도자 고르바초프(Gorbachev)의 ‘글라스노스트(glasnost)’, ‘페레스트로이카(perestroika)’ 정책에 힘입은 바 크다. 이와 같은 소련의 전향적 입장 변화는 동구권 인권단체를 고무시켰고 공산정권에 대한 개혁요구로 이어지게 되었다. 소련 외상 셰바르드나제(Shevardnadze)가 인정하였듯이 1989년 비엔나 회의가 끝날 즈음에 이미 철의 장막은 무너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와 같이 비엔나 회의로 촉발된 ‘임계효과(threshold effects)’는 동구권 국가들의 연쇄적인 민주혁명으로 귀결되었던 것이다. 4.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와 북핵과 인권의 연계 가능성 헬싱키 프로세스에 의해 야기되었던 이른바 ‘헬싱키 효과(Helsinki effects)’가 한반도 더 나아가 동북아지역에서 재현될 수 있을 것인가는 매우 중요한 연구주제였다. 미국은 2004년에 ‘북한인권법(North Korean Human Rights Act)’을 발효하면서 헬싱키 효과가 북한에서 일어나도록 의도한 바가 있다. 북한인권법은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6자회담에서 북한의 인권을 거론하게 되면 핵협상에 지장을 초래할 것을 우려한 미국의 전략적 선택이었다. 그러나 북한인권법이 북한의 인권을 개선하는데 기여하였다는 경험적 증거는 발견되지 않는다. 이것은 헬싱키 효과를 학습한 북한이 북한인권법에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는 측면과 북한인권법이 미국의 일방적 대 북한 인권 규범이라는 한계에서 기인한다. 북한인권법이 헬싱키 최종협약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바로 북한인권법이 북한이 동의한 공동규범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이와 같은 맥락에 2016년 오랜 진통 끝에 한국 국회가 채택한 북한인권법도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현재 존재하고 있는 유엔차원의 각종 인권 규범과 메커니즘도 북한 인권을 개선하는 데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2014년 북한이 아동의 권리와 관련된 국제규범(Optional Protocol to the Convention on the Rights of the Child)과 장애인 인권 규범(Convention on the Rights of the Persons with Disabilities)을 비준하고 유엔의 권고를 일부 수용한 바가 있으나 이것이 북한의 국내법에 반영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것은 북한이 북한의 인권상황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박을 일시적으로 모면해 보려는 전략에 불과할 뿐이다. 그동안 북한은 국제사회의 지속적인 인권압박을 외면하거나 무시하여 왔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인권제기를 내정간섭이자 국가주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간주하여 왔다. 이것은 국제사회의 보편적 인권 규범과 북한 내부의 인권 기준 사이에 현격한 간극이 존재함을 의미한다. 북한은 마르크시즘과 주체사상에 입각한 북한 스타일의 인권 기준을 고수하고 있다. 이와 같은 이유로 헬싱키 프로세스와 유사한 안보/인권 연계가 유사한 효과를 유발할 것이라 기대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헬싱키 프로세스는 여전히 북한의 핵과 인권연계를 통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구조 정착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1970년대 초반에 유럽에서 일어났던 상황과 2018년 이후 한반도 및 동북아에서 전개되는 상황이 매우 유사하다. 2019년 초반에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북미 간 정상회담이 북핵협상의 진전을 가져오고 이어서 김정은의 서울 답방이 이루어진다면 예기치 않은 상황의 진전도 기대해 볼 수 있다. 수많은 변수가 개입하는 복잡한 북핵협상이 미래에 어떻게 전개될 것이라 예측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 아니다. 다만 개연성을 전제로 헬싱키 프로세스의 경험에 비추어 바람직한 로드맵을 제시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북한은 신년사에서 2018년을 한반도의 대립과 분열에서 평화와 협력으로 국면이 전환된 역사적 전환점으로 규정하고 2019년에도 군사적 긴장완화와 남북교류협력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겠다고 선언하였다. 여기서 북한은 남한을 교류와 협력의 상대로 미국을 비핵화의 상대로 규정하였고 비핵화를 위해서는 단계적 제제완화가 전제되어야 함을 분명히 강조하고 있다. 또한 북한은 비핵화를 “더 이상 핵무기를 만들지도, 시험하지도, 사용하지도, 전파하지도 않을 것”임을 분명히 천명하였다. 북한은 신년사에서 핵과 경제발전의 병진노선을 완성하였음을 천명하였고 미래핵을 포기하겠다는 의지를 보였으나 과거핵을 폐기하겠다는 언급을 생략하여 미국이 지향하는 핵협상이 쉽지 않을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이것은 북한이 핵국가의 위상을 고수하겠다는 입장의 표명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나 북한이 연초에 미국에 김정은의 친서를 전달하여 북미대화를 계속할 의지를 표명한 점으로 미루어 협상의 여지를 남겨 놓았다고 볼 수도 있다. 현 상황에서 북핵협상 타결의 시점을 예단할 수는 없으나 북미정상회담을 통해 북핵협상이 진전을 이룬다면 점진적 대북 경제제제 완화가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이러한 국면으로 전개된다면 어느 시점에서 북한 체제인정 및 보장과 북핵폐기 두 이슈간의 대타협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미 간 양자회담을 통해 북핵문제가 해결된다면 남북 간의 경제협력은 급속도로 진행될 것이며 동북아 6개국을 중심으로 한 다자간 협력의 필요성이 부각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의 진전을 전제로 할 때 1972년 유럽에서 시작되었던 ‘유럽안보협력회의’의 경험은 동북아지역에 큰 시사점을 던져 준다. 유럽안보협력회의는 포괄적 안보레짐으로 안보와 인권 이슈연계를 통해 유럽에서 냉전체제를 극복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동북아에서도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대가로 제공되는 북정권안보 보장과 경제적 지원제공이 북한의 인권개선과 연계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간과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북핵협상의 진전 상황에 따라 동북아에서 이른바 ‘동북아 평화번영 협력회의(Conference on Peace and Prosperity in Northeast Asia: CPPNA)’의 창설을 제안하는 바이다. ‘동북아 평화번영 협력회의’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평화와 경제적 번영의 선순환을 통해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구조 정착과 장기적으로 평화적 통일 달성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인 것이다. 미중 패권이 가속화 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남북한이 평화적 통일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역내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안보·경제적 갈등을 건설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올해에 북미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김정은의 서울 답방이 이루어진다면 한반도에서 화해협력의 무드가 조성될 것이며 바로 이 시점이 한국이 ‘동북아 평화협력 협력회의’를 제안할 절호의 시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동북아 평화번영 협력회의’는 동북아 6개국뿐만 아니라 유럽안보협력회의를 통해서 경험을 축적한 EU 국가들의 참여도 요구된다. ‘동북아 평화번영 협력회의’를 통해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국제규범이 채택된다면 안보와 인권 간의 이슈연계가 성공적으로 제도화 될 것이다. 이러한 결과가 북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지는 미지수이다. 동구권에서와 같이 북한의 붕괴로 이어질지 아니면 북한체제의 점진적 개방·개혁으로 이루어질지 현재로서는 예단하기 어렵다. ----- 〈참고문헌〉 Goedde, Patricia. “Human Rights Diffusion in North Korea: The Impact of Transnational Legal Mobilization.” Asian Journal of Law and Society (2017): 1-29. Hong, Ki-Joon. “The unintended consequences of the Helsinki Final Act: A path emergence theory perspective.” International Political Science Review 34, no. 3 (2013): 310-325. Hong, Ki-Joon. “Dynamics of Network Resonance: The Case of the Transnational Helsinki Network.” Europe-Asia Studies 71 (2019 예정) Human Rights Council. “Report of the commission of inquiry on human rights in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Distr.: General, 2014. Hwang, Jaeho and Jasper Kim. “Defining the Limits of the North Korean Human Rights Act: A Security and Legal Perspective.” East Asia 23, no. 4 (2006): 45-60. Keck, Margart E. and Kathryn Sikkink. “Transnational Advocacy Networks in International and Regional Politics.” International Social Science Journal 51 (1999): 159. Korey, William. The Promises We Keep: Human Rights, the Helsinki Process, and American Foreign Policy. New York: St. Martin’s Press, 2004. Kwak, Tae-Hwan. “The Six-Party Nuclear Talks: An Evaluation and Policy Recommendation.” Pacific Focus XIX, no. 2 (2004): 1-55. Maresca, John J. To Helsinki: The Conference on Security and Cooperation in Europe, 1973-1975. Durham and London: Duke University Press, 1985. Risse, Thomas, Stephen C. Ropp, and Kathryn Sikkink. The Persistent Power of Human Rights: From Commitment to Compliance.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3. Snyder, Sarah B. Human Rights Activism and the End of the Cold War: A Transnational History of the Helsinki Network.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1. The Commission on Security and Cooperation in Europe. Annual Report for the Period Covering January 1 through December 31, 1985. First Section, 99thCongress,U.S.GovernmentPrintingOffice,Washington,1986. Thomas, Daniel C. The Helsinki Effect: International Norms, Human Rights, and the Demise of Communism. Princeton and Oxford: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01. Weatherley, Robert and Jiyoung Song. (2008) “The Evolution of Human Rights Thinking in North Korea.” Journal of Communist Studies and Transition Politics 24 (2008): 272-296. 1. 서론 2. 헬싱키 프로세스의 배경 3. 헬싱키 프로세스와 안보와 인권의 연계 4.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와 북핵과 인권의 연계 가능성 現 경희대학교 평화복지대학원 교수, 경희대학교 평화복지대학원 동북아학 석사, 루벤대학교 유럽학 석사, 국제관계학 박사를 취득하였음. 대통령자문 동북아시대위원회 평화분과 전문위원 (2004-2008), 국회 외교통상통일정책위원회 자문위원 (2009), 한국지방정치학회 회장 (2010-2011), 한국유엔체제학회 사무총장 (2011-2013), 국회 윤리심사자문위원회 위원 (2018-현재), 한국유럽학회 회장 (2019) 등을 역임. 주요 연구분야는 유럽/동북아 안보협력, 갈등관리와 협상, 사회변동 등이며, 최근에는 경로창발성 (Path Emergence)이론을 개발하여 SSCI 저널에 다수 출판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