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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he Role of Chinese Influence in the Second Trump-Kim Summit
    저자
    Lee Seong-hyon (Director of Center for Chinese Studies at the Sejong Institute)
    발간호
    2019-02
      There is a debate going on about whether China will play the role of “spoiler” – again – in the widely expected summit between U.S. President Donald Trump and North Korean leader Kim Jong-un. Trump has already openly complained, at least three times, that “China was behind” North Korea's defiant attitude that led to the negotiations stalling last year. Will the same thing happen again? To answer this question, we need to examine the Xi-Kim meeting that took place very recently in Beijing. Even for many Chinese analysts of North Korea, Kim’s visit to China this time was somewhat “unexpected”. Kim visited China three times last year; therefore, it was widely expected that it would be Chinese leader Xi Jinping's turn to visit North Korea. Xi himself said he would do so, during his meeting in November last year with President Moon Jae-in. It is also notable that Kim visited China on his 35th birthday. This inevitably suggests a sense of “urgency”, otherwise, why would the North Korean leader “skip” his birthday party at home to make a journey all the way to China, unless there was a pressing need that compelled him to do so? Interestingly, Kim took a train as his means of transportation. Kim's immediate two previous trips to China were by air. When Kim's train passed through the Chinese city of Dandong that borders North Korea, it served as an automatic trigger for the watchful international media to react and write headlines. If Kim had traveled by air, his visit would have been less visible to the media. In addition, compared to air travel, a train trip offered the media more time to cover his journey. It is then reasonable to believe that Kim staged his trip to China to be noticed. The “train” was also a major symbolic icon for the Sino-North Korea “traditional friendship” (chuantong youhao guanxi) during the Cold War era. His father and grandfather all used trains to visit China. Kim was following in their footsteps. But for what purpose? Kim's decision to travel to China on the day of his birthday, and his choice of the nostalgic mode of transportation, create the impression that there is something “special” about the China-North Korea relationship. It establishes an appearance of a strong bond between Xi and Kim. Since last year, North Korea’s relationship with China has changed dramatically – for the better. Since last year, China's relationship with the United States has also changed dramatically – for the worse. Currently, Kim is negotiating with Trump on nuclear weapons. Xi is negotiating with Trump on trade. Kim Jong-un’s visit to China took place against this background. There is a complexity in the strategic calculus that is intertwined among the different players in Pyongyang, Washington, and Beijing. The visit also happened alongside Trump's public statement that a second summit with Kim would be held soon. Regarding Kim, it is reasonable to believe that his trip is “preparation” for his upcoming summit with Trump, who has sent out mixed messages. Trump said he would meet with Kim, but made it clear that the economic sanctions currently imposed on North Korea would remain in place, going against Kim’s wishes. For Xi, North Korea’s denuclearization is not necessarily his most important policy priority. China’s immediate and paramount priority is to “soft land” the ongoing trade war with Washington. China is seen as the country with the largest influence over North Korea, successfully reaffirming its influence by withholding information about Kim’s whereabouts once he arrived in Beijing. This kept Washington in an anxious guessing game about how Xi might have advised Kim on the upcoming U.S.-DPRK summit. Against the backdrop of the summit, China will be tempted to think about how to “utilize” Kim’s visit to serve China’s interests. If China’s priority is to steer the trade war towards an amicable compromise, it is likely that it would, this time, help Washington’s outreach to Pyongyang instead of undermining it. It is possible that China may have used the Xi-Kim meeting to nudge Kim to be more forthcoming in denuclearization measures, as a sign of “goodwill” in China's cooperation with the United States. Washington maintains that the trade war (between the U.S. and China) and denuclearization (between the U.S. and North Korea) are “separate” matters; however, we should remember that Trump, upon inauguration, proposed to China that he would be willing to be soft on trade if China cooperated on the North Korean issue. It is therefore perhaps unreasonable to conclude that Xi will again turn out to be a spoiler. There is a possibility that China, this time, may turn out to be a positive force in mediating between Pyongyang and Washington. During Kim’s New Year speech, he said he would closely consult “parties to the Korean War armistice” to transform the armistice state to the peace state. Without naming China, this statement implies China. It is Kim's invitation for China to play a more active role in North Korea’s stalemate in its negotiations with the United States. Taken together, depending on how Xi envisions China’s relationship with the U.S., the outcome of Xi’s talks with Kim will have ramifications for the second summit between Trump and Kim, aimed at the denuclearization of North Korea.   Lee Seong-hyon, Ph.D., is Director, Center for Chinese Studies at the Sejong Institute.
  • 2019년 북한 신년사 분석과 한반도 정세전망
    저자
    이성우 (제주평화연구원 분쟁해결연구부장)
    발간호
    2019-01
      2019년 신년사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한반도에서 기존의 군사적 대결을 중지하고 평화공존으로 국면이 전환되는 과정에 북한과 자신의 주도적 역할이 핵심이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를 통해서 2019년에 진행될 것으로 기대되는 한반도의 비핵화를 위한 미북관계에 있어서도 미국에 끌려가지 않고 대등한 입장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공존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내용 면에서 ‘비핵화에 대한 언급’이나 ‘경제에 대한 강조’가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신년사와 달리 국내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기대에서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평화와 번영에 대한 내용 면에서 뿐 아니라 집무실에서 발표하는 형식은 통상적인 국가 비전의 제시에 가깝다는 점에서 정상국가의 면모를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평가된다. 북한의 신년사가 매년 경제 분야에 대한 언급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지만 2019년 신년사의 특징은 군사안보보다 경제발전에 대한 강조가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한반도의 군사적 대결의 종식과 평화협력이 북한의 경제발전을 달성하기 위한 선행조건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대결과 도발에 대한 위협보다 평화와 협력에 대한 의지를 우회적인 방법으로 더 강하게 표현하려 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경제의 여러 분야에 대한 세부적인 지침을 논의하는 과정에는 식량생산과 소비재 생산을 통한 인민생활의 질의 향상을 강조함으로써 이른바 애민사상을 통해 정상국가의 지도자로서 이미지를 부각시키려하고 있다. 경제발전 전략에 있어서도 전력을 중심으로 한 에너지 수급이 경제성장의 핵심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군수공업분야도 군사장비의 생산이 아니라 농기계와 건설기계에 중점을 둘 것을 강조하면서 군사적인 대립과 군비증강에 중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자립경제, 경제건설, 사회주의 건설을 내세우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국가의 경제발전을 위해서 경영의 합리화, 인재육성, 과학기술을 위한 교육개혁과 산학협력을 구체적으로 논의하는 것은 정상국가로 나아가기 위한 제도정비와 체제개혁을 준비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국가의 비전에 있어서도 우리식 사회주의 건설, 국가제일주의, 자립경제, 자위적 국방력과 같은 국가중심의 정책목표를 언급하지만 흥미로운 것은 북한 최고의 정치기관인 당은 물론 정부조직이 정책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 ‘인민의 이익을 최우선시 및 절대시’라는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다른 문맥에서도 당 정책을 관철하는데 주인은 인민대중이며 인민대중이 정책의 판단과 평가의 궁극적인 기준임을 재차 강조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을 중심으로 한 북한이라는 ‘인격체로서 국가’가 추구하는 목표는 ‘물리적인 국가’인 북한을 세상에 내세울 만한 ‘소중한 사회주의 국가’로 만들겠다는 것이며 이를 통해 자신의 정통성을 확보하려 하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 당국은 신년사를 통해 2018년을 한반도의 대립과 분열에서 평화와 협력으로 국면이 전환된 역사적 전환점으로 규정하고 2019년에도 군사적 긴장완화와 남북교류협력 사업을 지속적으로 확대하여 남북관계를 평화번영과 통일로 이끌어가겠다고 선언함으로써 평화협력기조를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에 대한 방법에 있어서는 남한은 교류와 협력의 상대방이라는 점을 그리고 비핵화의 상대방은 미국이라는 점과 비핵화를 위해서는 단계적 제제완화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을 분리하여 강조하고 있다. 교류협력에 관한 남한에 대한 요구조건은 두 가지로 명확하게 요약된다. 하나는 남북한의 적대관계를 해소하고 평화분위기를 고착하기 위해서는 한미군사훈련의 중단과 미군의 전략자산의 한반도 유입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를 통해 북한에게 현실적인 안보위협을 제거하고 궁극적으로 한반도의 불완전한 정전체제를 항구적인 평화체제로 전환할 것을 제안한다. 나머지는 북한의 경제적 발전을 위해서 요구되는 남한의 지원을 얻어내야 한다는 목표가 있지만 북한의 입장에서는 체면을 차리면서 실리를 얻을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남북협력의 상징으로 알려져 온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의 재개를 아무런 조건 없이 재개할 것을 밝히고 있다. 북한은 완전한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강조하면서, 한반도의 비핵화의 협상 당사자는 미국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비핵화를 “더 이상 핵무기를 만들지도, 시험하지도, 사용하지도, 전파하지도 않을 것”으로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 한반도 비핵화는 미국과 양자관계의 문제로 규정하고 “미국이 신뢰성 있는 조치를 취하면 북한은 이에 상응한 실천적 행동으로 화답하는” 단계적 접근을 주장하면서 미북 양자관계에 달려있음을 명시적으로 제안하고 있다. 북한은 한걸음 더 나가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서 미국이 고질적인 주장에서 대범하게 벗어나 상호인정하고 존중하는 협상자세를 주문하고 있다. 북한 김정은 신년사에 담겨있는 의도에 대한 정책적 해석과 함께 우리의 대응은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북한은 신년사 서두에서 핵과 경제발전의 병진노선은 완성된 것으로 선언함으로써 국내적으로 체제의 정통성을 확보하고 대외적으로도 자주국가의 면모를 과시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보다 구체적으로 김정은 위원장은 병진노선의 완성 위에 평화와 번영을 향한 국가운영의 목표를 제시함으로써 선대의 유훈인 병진노선이 바람직한 비전의 제시였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3대 세습을 정당화하는 동시에 병진노선의 완성자로서 자신의 정통성을 확보하였다. 이와 함께 비핵화와 경제적 번영을 동시에 추구하는 자신의 새로운 통치방식을 차별화함으로써 상이하고 충돌할 수 있는 정치적 목표를 효과적으로 절충시켰다. 대외적으로도 최빈국, 불량국가(rogue state) 그리고 인권억압 국가의 오명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발전방향을 평화와 번영으로 전환하면서 통치의 자신감을 표명하고 정상국가의 면모를 대내외에 선언하는 효과를 거두었다. 둘째, 김정일 정권 시기에는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와 고난의 행군으로 주민에 대한 감시와 억압을 통해서 정권의 생존을 확보했다면, 김정은 정권에서는 경제발전을 통해서 주민들의 삶의 질을 개선함으로써 국내적 체제안전을 추구하겠다는 정책전환을 의도하고 있다. 정확히는 김정은 위원장은 국가안보를 확보한 가운데 주민들의 삶의 질을 보장함으로써 주민들의 지지와 존경을 받았던 김일성 정권의 통치 패러다임을 다시 추진하겠다는 정책적 의도를 분명히 하고 있다. 주민에 대한 통제와 삶의 질 개선이 어느 수준에서 균형점을 이룰지는 알 수 없지만 김정은 정권은 적어도 주민에 대한 통제와 함께 자발적 지지를 동원하기 위한 경제발전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북한이 필요로 하는 경제발전을 위한 통풍구가 한국과 미국에게 주어진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의 기회요인이다. 셋째, 대외적으로는 북한의 체제생존을 위해서 한반도 비핵화는 국가생존이 담보되는 바탕 위에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는 방향에서 추진하겠다는 정책방향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문제는 북한은 비핵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의사가 분명하다고 밝히고 있지만 한국과 미국의 입장에서 북한의 체제생존이 확실히 보장될 수 없는 상황에서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조치를 취할 가능성에 대해서 회의적인 평가도 존재한다. 북한 문제에 대한 강온 또는 신뢰여부에 따라 친북좌파나 수구우파로 서로 비난에 가까운 비판을 통해 남남갈등의 발화점이 된다. 한반도 비핵화를 포함한 북한 문제에 대하여 평화와 번영을 목표로 하는 논의가 아니라 선거에서 이념구도의 틀로 지지자를 결집하고 반대자를 걸러내는 정책이슈로 악용될 가능성을 차단한다면 한반도 비핵화는 가시적 성과를 거둘 수 있다. 끝으로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남북과 미북 사이에 존재하는 불신의 현실적 괴리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 모색되어야 한반도의 비핵화를 통한 평화와 번영은 가능해진다. 한반도 비핵화는 한 번의 합의로 모든 것이 보장되는 만병통치약이기보다는 관리와 노력이 필요한 만성질환에 가깝다. 미국은 비핵화 이후에 제재완화를 주장하고 있는 반면에 북한은 단계적으로 비핵화와 제재완화의 보조를 맞추어 나갈 것을 주장하는 불안정한 상황이다. 미국과 북한의 상호신뢰가 부족한 상황에서 안보조건의 미세한 변화에도 협상의 한쪽이 신뢰의 의지를 거두면 비핵화로의 정상궤도에서 벗어나게 된다. 불안정한 비핵화 과정에 대한 해법은 비무장지역 내 초소의 철수, 공동유해발굴 그리고 철도협력과 같이, 불확실한 미래에도 불구하고 유엔의 제제의 범위를 소극적 또는 적극적으로 극복하려는 노력을 통해 상호교류와 협력을 지속적으로 확대함으로써 신뢰구축의 노력을 통해서 관리될 수 있다.   現 제주평화연구원 분쟁해결연구부장. 단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후 2004년 미국 University of North Texas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음. 단국대학교 분쟁해결연구센터에서 연구위원으로 활동하며 “한국의 공공분쟁 사례연구”를 주제로 대한민국 학술진흥재단 중점연구소 연구과제를 수행하였음. 학술활동으로는 미국국제정치학회가 주관하는 International Studies Quarterly의 Referee로 활동한 바 있음. 저서로는 『2011 한국인의 평화관: 통일정책과 여론 』 및 『2010 한국인의 평화관: 외교정책과 여론』 등이 있음.
  • [JPI PeaceNet] 미중 갈등과 EU의 선택: 다자주의의 보루인가 일방주의로의 편승인가
    저자
    김시홍 (한국외대 장모네 EU센터 소장)
    발간호
    2020-06
    I. 서론 2019년 치러진 유럽의회 선거에서 전통적인 중도우파와 좌파 세력의 득표율이 감소되고 포퓰리즘 세력들이 신장되면서 우려가 제기 되었으나, 결과적으로 안정적인 집행위원회 및 지도부가 출범할 수 있었다. 유럽연합(EU)은 또한 영국의 공식적인 탈퇴로 인해 불확실성을 경험하고 있으며, 통합의 구심력과 원심력 사이에서 앞으로의 전개가 주목받고 있다. EU는 2016년 글로벌 전략(EUGS)을 마련하면서 대내외적인 위기를 인지하고 원칙화된 실용주의(Principled Pragmatism)를 표방하면서 전략적 자율성의 제고를 도모한 바 있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의 등장과 중국의 강성대국 전략으로 인한 미중 갈등에서 적지 않은 혼돈과 전략의 부재를 노정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을 고려하면서 유럽의 상황인식과 그 대책을 살펴보는 작업은 우리에게도 적지 않은 시사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되는데, 미국의 일방주의와 보호무역주의 그리고 중국의 권위주의적 국가자본주의로 인해 규칙에 기반한 국제질서를 당연시해온 국가들이 상당한 혼돈을 경험하고 있으며, 한국도 예외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우선 미중 갈등의 양상을 간략히 살피고, 이어서 EU와 그 회원국들이 전개하는 외교정책의 흐름을 파악하면서 결론에서는 미래전망을 살피고자 한다. 2. 미중 갈등의 양상 미국과 중국의 주도권 다툼(tug-of-war)은 경제와 무역, 외교와 안보 그리고 지정학적 양상을 포괄하는 대전략(grand strategy) 간의 경쟁으로 파악된다. 기본적으로 미국 정부의 입장은 그간 세계 안보의 파수꾼 역할을 해왔지만, 경제적으로는 무역적자에 시달리고 있으며, 이로 인해 미국 경제 주체들의 불만이 제고되어왔다는 인식이다. 중국과 일본 그리고 유럽은 미국이 무역적자를 구조적으로 경험하는 나라들이므로 이를 개선하는 것이 최우선적 정책(America First)으로 부상한 바 있다. 한편으로 중국과의 관계에서 이를 시정하기 위한 조건들을 제시하였는데, 중국의 입장에서 온전하게 이행할 수 있는 범위를 넘는다고 판단되어 무역 및 관세전쟁의 양상으로 치달은바 있다. 결과적으로 1차적인 봉합(US-China Phase One Deal)이 이루어졌으나,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미래 전망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데, 지난 수십년간 상호공조적인 경제관계를 맺어온 미국과 중국이 단시일내에 완전한 분리(decoupling)를 시도하는 것은 무리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미국의 이상과 같은 일방주의(unilateralism)적 태도는 이차대전 이후 70여년을 지탱해온 자유주의적 국제질서에 반하며, 사실 이 질서를 만든 국가가 미국이므로, 관련 국가들에게 당혹스런 현실로 다가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던 바로 그날 밤 백악관의 기후변화 홈페이지를 삭제한 행태는 유럽인들에게 하나의 재앙으로 비춰졌으며, 그 이후의 양상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했는데, 기후변화를 하나의 과학적 사기라고까지 주장한 바 있다. 실제로 트럼프는 파리협정 탈퇴에 이어 UN에 대한 회의, WTO 무역질서에 대한 부정 그리고 유럽이 다자주의적 노력의 화신으로 간주해온 이란 핵협상(JCPOA)에서 탈퇴하고 갈등을 부추기는 행동을 보이고 있어, 유럽국들과 EU에게 커다란 도전이 되고 있다. 사실 트럼프 정부는 미국이 지원해온 EU 자체를 부정하고 있는 실정이기도 하다. 3. EU의 선택: 전략적 자율성의 제고 2019년 말 뒤늦게 출범한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폰데어 라이엔 위원장은 자신의 집행부가 지정학적(geopolitical Commission)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천명한 바 있다. 지정학적 집행위의 개념은 아직 구체화되고 있지는 않지만, 유럽이 현재 처한 현실에서 규범권력으로서의 역할에만 국한해서는 여러 파고를 헤쳐갈 수 없을 것이라는 인식에 기반하고 있다. 과연 EU가 미중 갈등의 상황에서 그간의 기조인 다자주의 원칙과 규칙에 기반한 국제질서의 수호자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새로운 환경에서 유럽도 규범보다는 근육을 강조하는 입장을 취할 것인가는 통합연구에서 흥미로운 가설이 아닐 수 없다. 일례로 폰데어 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첫 공식 해외 방문으로 아프리카를 선택하였는데, EU와 아프리카 관계의 재설정을 제시하면서 종합적인 정책조합을 주문하였다. 융커 집행위에서 불거진 이민문제에 관련하여 단기 중심의 대책이 마련되어 근원적 해결방안이 되지 못했다는 점을 의식한 듯, 아프리카 대륙이 유럽의 이웃으로서 장기적 시각의 정책들을 도입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바 있는데, 앞으로 지정학적 집행위를 표방한 현 지도부의 성공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좋은 리트머스라고 판단된다. 그러나 최근 세르비아를 방문한 집행위원장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여러 질문들을 받았는데, 자신이 천명한 정책 기조 대비 미흡하거나 대답을 회피하는 태도를 보였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중요 이슈는 회원국들의 소관이라는 의견을 표명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사례들은 기대 대비 능력의 측면에서 여전히 갭(capabilities-expectation gap)이 크다는 점을 환기시킨다. 이제 보다 본격적으로 미중 갈등 사이에서 EU의 선택은 무엇인가에 대한 분석이 요구된다. 지난 수년간 EU의 외교안보 정책의 기조는 등거리(equidistance) 외교였다. 즉 미국과 중국의 갈등에서 한편을 들기 곤란하므로 중립적 입장을 견지하되 사안별로 연대하는 방안이 견지되어왔다. 등거리 외교는 균형을 잡을 수 있는 최소한의 힘이 필요한데 유럽의 경우 적어도 경제분야에서는 그러한 능력이 지닌 것으로 평가받아왔다. 또한 이를 통해 유럽이 자랑하는 다자주의적 전망을 유지할 수 있다는 기대도 포함되었다. EU와 그 회원국들의 등거리 외교는 단기적으로 효과를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인 전망에서는 그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는데, 가장 큰 이유는 강대국인 미국과 중국이 지속적으로 유럽에게 지지를 호소하거나, 유럽을 이이제이(divide and rule) 방식으로 요리하려는 시도를 보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관건은 EU와 그 회원국들이 단합하여 하나의 대오를 갖춘다면 등거리 외교의 효과성이 유지될 수 있겠으나, 그렇지 못할 경우 강대국 정치의 수동적 대상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미중 경쟁관계 시대에 유럽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무엇인가?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는데, 첫째, 다자주의의 지속이다. 둘째는 양서대양 관계를 강화하고 그에 의존하는 정책이다. 마지막으로 셋째는 보다 중국에 친화적으로 다가가는 노선이다. 다자주의의 지속은 트럼프 하에서는 상당한 문제를 내포한다. 일방주의와 무역 및 관세전쟁의 상황에서 다자적 해결책은 점차 요원해지기 때문이다. 트럼프 정부는 최근 WTO의 상소기구(Appellate Body)에 미국측 신규위원의 선임을 하지 않으면서 사실상 무력화하는 정책을 채택하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으로 기우는 정책의 경우 안보에서는 유리하지만 무역 측면에서 실익이 없으며, 중국과 대립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 중국에 친화적인 정책의 선회는 당장에는 용이치 않고, 과거 중국의 행태로 보아 의구심이 들지만, 장기적으로는 중국의 태도 여부에 따라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안보와 국방에 국한시켜 이 문제를 살펴보면, 세 가지 측면이 고려될 수 있다. 의무전략(strategy as responsibility), 헤징 자율성(autonomy as hedging) 그리고 참여적 자율성(autonomy as emancipation) 등이다. 의무전략은 미국의 국방비 증대에 대한 압력에 대해 책임있게 대응하는 것으로 점차 국방예산을 늘리는 방식이다. 헤징자율성은 미국의 대유럽 군사적 보호가 느슨해지거나 약화된다는 전제하에 국방산업의 자율성을 제고하는 방식이다. 참여적 자율성은 미국과 중국 모두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전략으로 유럽이 단일대오를 갖추고 군사적 역량을 일정 정도 갖추었을 때를 전제로 한다. 이상의 세 길은 서로 배타적이지 않으며, 일련의 과정으로 이해되고, 상설안보협력체제(PESCO)나 유럽방위기금(EDF)이 강화되는 것을 전제로 하며, 프랑스의 마크롱이 주창하는 유럽군대의 개념까지 포함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유럽의 안보전문가들이 내다보는 것은 안보에 있어 미국과의 연대 지속 그리고 경제에서 중국과의 비즈니스 기회의 증대로 요약된다. 즉 양면(ambivalence)전략이다. 관건은 방법론일 것이다. 이러한 유럽의 의도를 미국과 중국이 모를리 없으며, 오히려 회원국간의 이해타산을 활용하여 통제하려 들 수 있기 때문이다. 2019년 3월 EU집행위는 대중국 전략보고서를 통해 이제 중국이 더 이상 경제파트너이자 경쟁자의 차원을 벗어나 체제를 놓고 다투는 라이벌(systemic rival)로 묘사한 바 있다. 이는 동년 1월 독일에 의해 제기된 개념으로 중국이 무차별적으로 유럽의 기업들을 사들이는 과정에서 핵심적 안보역량이 노출되고 결과적으로 위협이 된다는 인식에서였다. 실제로 중국은 동년 3월 이탈리아와의 정상회담에서 BRI의 양해각서를 교환하고 트리에스테와 제노바 항구시설의 개선에 대한 중국자본의 유입을 가능케함으로써 적지 않은 논란을 야기하였다. 즉 그리스나 포르투갈과 같은 군소국가가 아닌 G7의 일원인 이탈리아가 이러한 선택을 한 것에 대한 베를린, 브뤼셀 및 워싱턴의 심대한 우려가 표명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동년 3월 EU-중국 브뤼셀 정상회담에서 반전되었는데, 중국이 시장을 더욱 개방하고 글로벌 이슈에서 유럽의 입장을 지지하며, 자유무역을 주창하고 보호무역을 반대한다는 공동성명을 채택하면서 새로운 양상이 전개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중국의 태도는 미국과의 전선이 형성된 상태에서 유럽마저 등을 지게되면 곤란하게될 상황을 염두에 둔 처사였다. 그렇다면 미국과 중국이 각각 유럽을 대상으로 펴는 외교전에서 유럽의 대오가 흔들리지 않고 지속될 것인가가 중요하다. 적지 않은 이해관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회원국간에 근본적인 차이가 없다는 것이 전략분석가들의 중론이다. 즉 안보에서 미국 그리고 경제에서 중국이라는 공식을 선호한다는 점이다. 물론 회원국들간의 차이가 존재하기는 하다. 독일은 중국에 치우치는 전략을 세울 생각이 없는 것으로 이해된다(No pivot to China). 중국을 체제적 라이벌로 묘사한 첫 국가가 독일이었으며, 이러한 점에서 보다 미국친화적 태도를 견지한다. 다만 중국과의 경제협력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회원국간의 의견차이를 최소화하여 단일의 입장을 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프랑스의 경우, 다자주의를 지지하고 더욱 자율성이 제고된 유럽을 지향한다(Bolstering multilateralism and a more autonomous Europe). 프랑스는 미국과 중국 모두 핵심 파트너이므로, 미국의 일방주의와 중국의 굴기에 대해 민감한 전략적 선택을 기피하면서, 규칙에 기초한 다자질서를 지향하고 소생하기를 바라며, 점증하는 불확실성 하에서 더 강한 유럽의 응집과 자율성의 강화를 추구한다. 영국은 미국과의 동맹을 기본으로 하면서, 브렉시트 이후 경제면에서도 미국에 더욱 치우칠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그러나 Huawei와 같이 사안별로 차별적(issue dependent) 태도를 보일 것으로 전망되어 종합적 판단이 용이치 않다. 이탈리아는 냉전시기에도 워싱턴과 모스코바의 교량 역할을 자임한 바 있으며, 미중 갈등에서도 유사한 교량역을 희망하고 있다. 안보면에서 나토와 양서대양관계를 기본으로 하지만 중국자본의 유입과 Made in Italy의 중국 시장에의 진입을 희망하고 있다. 스페인은 미국을 동맹으로 간주하지만, 규칙에 기반한 국제질서의 강력한 옹호자를 자처하고 있다. 중국이 도전적이지만 매력적인 경제파트너이고 기후변화와 같은 글로벌 이슈에서도 핵심적 당사자로 인식한다. 미중 갈등 속에서 유럽통합과 전략적 자율성의 제고가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외교고위안보대표가 스페인 출신 조셉 보렐이라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회원국들의 그룹별 차원에서는, 포르투갈, 그리스와 이탈리아는 역사와 지정학적 위치에서 미중간의 교량역할을 희망하고 있으며, 헝가리는 미중의 갈등을 통해 이득을 취하려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고, 라트비아, 루마니아 및 슬로바키아는 낮은 자세로 기다려보자는 입장(wait-and-see)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프랑스, 독일, 스페인 및 EU는 전략적 자율성을 제고하고 경제주권을 강화해야한다는 입장이다. 최근 네덜란드와 오스트리아도 전략적 자율성에 동조하고 있다. 4. 전망 이상의 분석에서 유럽의 선택은 간단치 않아 보인다. 등거리 외교를 희망하지만 주어진 현실은 선택을 강요하는 분위기이다. 미국의 일방주의와 중국의 굴기전략은 유럽에게 분명 재앙으로 다가왔다. 트럼프 정부의 외교노선은 이후에도 장기적으로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경제규모면에서 유럽은 대국이므로 공동의 정책을 이끌어낼 수 있다면 나름의 자율성을 확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관건은 통합의 방향과 회원국간의 조정 및 공동의 대외정책을 수립하고 실현해 나갈 수 있는가에 있다. 결국 EU 지도부와 회원국 정상들의 리더십으로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유럽방위기금의 활성화 및 유럽연합 다년예산안의 확정을 통해 구체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유럽이 지향하는 다자주의의 전망은 어떠한가? 미중의 일방주의 내지 힘의 외교에서 유럽은 일차적으로 뜻을 같이하는 제3국들과의 연대가 긴요할 것이다. 전략적 동반자이기도 한 캐나다, 호주, 일본 및 한국이 최적의 파트너로 다가온다. 그러나 이들간의 연대만으로 양강의 파고를 넘지는 용이치 않으리라 본다. 결국 전략적 자율성의 문제는 EU와 그 회원국들이 풀어나가야할 숙제로 다가온다. 지지부진할 경우 유럽의 운명은 양강에 의해 좌우되는 부정적 미래상으로 다가올 것이다. 기획:도종윤(제주평화연구원 연구실장)​ 편집: 한유진(제주평화연구원 연구조교)​ ​ 現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유럽연합학과 교수이자 장모네 EU센터 소장. 한국외대를 졸업하고 로마 그레고리안대학교에서 사회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교육부 교육과정심의회 위원(2005.7~ 2007.7), 한국유럽학회 회장(2009), 노사정위원회 공익위원(2015.11~ 2017.11)을 역임하였다. 2013년 이탈리아 공화국대통령으로부터 기사작위훈장(Cavaliere)을 수여하였으며, 2016년 유럽연합으로부터 장모네 석좌교수에 선정되었다. 주요 저서로 『한-EU 관계론』 (HUINE, 2019), 『Promoting Security Cooperation and Trust Building in Northeast Asia. The Role of the EU』 (Nuova Cultura, 2017), 『Asian Countries' Strategies towards the EU in an Inter-regionalist Context』 (NTU Press, 2015), 『The Future of European Studies in Asia』 (ASEF, 2008), 등이 있다.
  • [JPI PeaceNet] 인도태평양 전략의 불투명한 미래
    저자
    한인택 (제주평화연구원 연구위원)
    발간호
    특별기획호: 2020년 정세전망-5호
    I. 서론 ‘인도태평양’ 이라는 새로운 지역 개념이 점차 자주 사용되고 있다. 인도태평양은 인도양 지역과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포함하는 광대한 공간으로, 2010년 이전에는 해양과학 분야를 제외하고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던 개념이다. 하지만 몇 년전부터 미국의 서해안에서 인도의 서해안, 심지어 아프리카의 동부해안까지 이르는 엄청난 공간을 하나의 지역이라고 보는 시각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인도태평양이라는 지역개념의 사용이 증가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해양과학 분야를 제외하고 ‘인도태평양’ 이라는 지역개념은 주로 인도, 호주, 일본, 인도네시아 등 일부 국가의 전략논의에서만 사용되었었다. 그러다가 트럼프 대통령의 집권 후에 미국에서도 인도태평양에 대한 전략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2017년 11월 트럼프 대통령은 베트남 다낭에서 열린 기업인들과 미팅에서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전략(Free and Open Indo-Pacific Strategy: FOIP)’을 미국의 아시아 전략으로 발표하였고, 그 다음 해인 2018년 7월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인도태평양 경제 비전(America’s Indo-Pacific Economic Vision)’을 발표하였다. 2019년 6월에는 패트릭 새너핸 미 국방장관 대행이 ‘인도태평양 전략(Indo-Pacific Strategy)’을 발표하였다. 트럼프 대통령, 폼페이오 국무장관, 새너핸 국방장관 대행의 연설, 그리고 인도-태평양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전략문서의 발간을 계기로 인도태평양의 사용이 증가하였고, 국내외의 많은 분석가들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대한 해석과 전망에 분주하다. 이 글도 그런 노력 중의 하나로서,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의 미래에 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계속 집권할 경우에 인도태평양 전략은 어떻게 될 것인가?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하지 못할 경우에는 인도태평양 전략이 어떻게 될 것인가? 2. 인도태평양 전략의 진화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 인도태평양이 국제적으로 본격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지만 앞서 말했듯이 인도태평양이라는 지역개념을 처음으로 사용한 국가는 미국이 아니다. 인도태평양이라는 표현은 2007년 인도에서 처음 제안되었으며, 같은 해에 아베 총리도 인도태평양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미국 정치인으로서는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2010년 하와이 연설에서 인도태평양을 처음 언급했었다. 인도태평양에 관한 트럼프 대통령의 첫 연설은 그로부터 7년 뒤인 2017년 11월에 있었는데, 선거에서 경합했던 정치적 라이벌이 먼저 사용한 개념을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연설에서 사용한 것은 아이러니이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관련하여 트럼프의 다낭 연설이 자주 언급되지만, 인도 태평양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이 다낭 연설에 명확히 나타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연설을 자세히 살펴보면 트럼프 대통령이 얼마나 인도태평양을 하나의 지역으로 인식하고 있고 인도태평양 지역에 대해 일관된 전략을 정립하고 있는지가 불분명하다. 트럼프 대통령의 다낭 연설은 트럼프가 대통령 선거기간 중 주장해온 공정무역과 상호성을 인도태평양 지역 국가와의 관계에서 추구하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하고 강조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법의 지배를-- 인권과 항행의 자유를--존중하겠다는 내용도 있으나 공정무역이나 상호성에 관한 언급과는 비교가 안 되게 간략하다. 즉, 트럼프 대통령의 베트남 다낭 연설은 무역에 관한 대선 공약의 재확인이 주된 내용으로, 인도태평양에 대한 미국의 국가전략을 밝힌 연설이라고 보기에는 빈 부분이 많다. 아울러 중요한 점은 다낭 연설로부터 2년이 넘게 경과하였지만 인도태평양 전략의 빈 부분을 트럼프는 채우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아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대부분 ‘인도태평양 비즈니스 포럼’에서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발표한 ‘인도-태평양 경제비전 (America’s Indo-Pacific Economic Vision)’ 과 새너핸 국방장관 대행이 ‘샹그릴라 대화’에서 발표한 ‘인도-태평양 전략’을 조합한 것이다. 폼페이오 장관은 2018년 여름 미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에 1억 3천만 달러를 투자할 것이라는 계획을 발표하였고, 미국 의회는 2018년 10월 인도태평양 지역국가에 대한 미국의 개발금융을 300억 달러에서 600억 달러로 증액하는 BUILD 법을 통과시켰다. (이와 비교하여 중국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을 통하여 무려 1조 달러 이상의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새너핸 국방장관 대행의 연설과 국방부의 ‘인도-태평양 전략’ 보고서는 인도태평양의 전략적 중요성과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라는 미국의 비전을 재확인하고, 중국, 러시아, 북한, 초국가적 도전과제들을 역내 위협요인이라 인식하고, 군사적 대비태세의 강화, 동맹국 및 각종 파트너 국가와의 협력, 역내 다자협의체의 활용을 통해서 미국이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의 비전을 추구하고 미국과 동맹국, 파트너 국가의 이익을 수호할 것임을 밝혔다. 트럼프의 다낭 연설에서 부족한 부분을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새너핸 국방장관 대행의 연설과 국무부와 국방부의 전략문서가 채워주자, 많은 분석가들이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이 ‘수사’에서 ‘정책’으로 진화중이라고 평가하고,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과 점차 정립되어 가고 있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사이에서 우리의 대응과 선택에 관하여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평가나 고민이 아직은 성급하거나 심지어 불필요하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3. 트럼프 vs. 인도태평양 전략 최근의 미국 외교는 트럼프 대통령이라는 비전형적인 최고정책결정자를 고려하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 외교의 특징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나, ‘목적’에 있어서는 미국 우선주의, ‘방법’에 있어서는 공격적 일방주의를 특징으로 한다고 정리하여도 과히 틀리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국가이익의 증대를 최우선시하며 그에 장애가 되는 것들은 과감하게 배척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존의 경제질서가 미국에게 불리하다고 생각하며 기존의 안보협력 관계도 미국에게 손해라고 생각하고 있다. 경제분야에서 WTO 를 무력화시키고, NAFTA 와 한미 FTA 를 재협상하고,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로부터 탈퇴하는 결정들, 안보분야에서 NATO를 비난하고, 동맹국들에게 방위비 분담액을 늘릴 것을 요구하며, 주한미군의 철수를 위협하는 행위들은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가 선거공약에 그치지 않고 실제정책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아울러 트럼프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추구하는 데에 있어서 다른 국가들과 협력하거나 협의하기보다는 일방적으로 행동하는 성향을 보이고 있다. 중국에 관세를 부과하고, 이란핵협정으로부터 탈퇴하고, 심지어는 미국 국무부와 국방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시리아로부터 미군을 철수시키는 결정들은 트럼프의 외교가 국제적으로뿐만 아니라 국내적으로도 얼마나 일방적으로 수행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의 다낭 연설의 주내용이 인도태평양 국가들과 공정하고 상호적인 무역관계를 추구하겠다는 선거공약의 재확인에 불과하였던 것은 우연으로 보이지 않는다. ‘인도태평양 경제 비전’을 통해서 폼페이오 국무장관이나 미 국무부는 인도태평양 지역에 대한 미국의 투자를 늘리고 인도태평양의 경제적 발전을 도모하려는지 모르겠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해외가 아니라 미국 내부에 투자와 일자리가 증가되기를 원하고 있다. 새너핸 국방장관 대행이나 미 국방부는 동맹과 파트너 국가, 그리고 다자협의체를 통하여 인도태평양 지역의 위협요인에 대처하기를 원하고 있지만, 트럼프에게는 동맹도 다자협의체도 중요하거나 유익하지 않고 상대가 중국이든 북한이든 단독적, 일방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즉, 인도태평양 전략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의 인식은 국무부나 국방부의 인식과 달라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공격적 일방주의는 미 국무부의 ‘인도태평양 경제비전’이나 미 국방부의 ‘인도태평양 전략’과는 심지어 모순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만약 이러한 분석이 맞는다면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이 인도태평양 전략의 발전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이다. 미 국무부나 국방부에서 주창하고 있는 인도태평양 전략에서는 다자협력이나 자유민주주의가 중요한데, 그런 요소는 트럼프가 아니라 민주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어야 더 잘 존중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4. 결론: 인도태평양 전략의 불투명한 미래 새로운 지역 개념이 등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0년을 전후로 아시아태평양 이라는, 당시로서는 새로운 지역개념이 등장하여 지금까지 쓰이고 있다. 아시아태평양이라는 지역 개념의 등장은, 한, 중, 일, 미, 카나다, 멕시코와 같은 환태평양 국가들 간 교류가 증가하고 관계가 심화되어서 아시아와 태평양 지역이 더 이상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공간이 되어 가고 있다는 당시의 인식을 반영하고 있다. 아울러 탈냉전 후 미국이 아시아로부터 이탈할지 (disengage) 모른다는 아시아의 우려, 그러한 아시아의 우려를 달래려는 미국의 의도도 반영되어 있었다. 인도태평양 개념의 등장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이번 주에 발표된 ISEAS-Yusof Ishak institute의 연례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동남아인들의 52.5%가 동남아지역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국가가 중국이라고 답하였고, 85.4%가 중국의 정치적 전략적 영향력에 대해서 우려를 표시했다. 한편 미국이 동남아 지역에 안보를 제공하거나 신뢰할 만한 전략적 파트너인가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47%가 미국에 대해 신뢰를 거의 또는 전혀 갖고 있지 않다고 대답하였다. 이런 조사결과에서 나타나듯이 인도에서부터 일본, 호주에 이르기까지 인도태평양 지역의 많은 국가들은 중국의 부상과 일대일로로 상징되는 서진(西進)을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미국이 중국의 부상이나 서진을 견제해줄 것이라고 확신을 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인도, 일본, 호주 등의 국가들은 미국이 중국의 부상과 서진을 견제해주도록 유도하기 위해서 그동안 미국에게 인도양 지역과 태평양 지역은 전략적으로 하나의 공간이며 미국이 인도태평양에 전략적으로 관여하여야 한다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발신해 왔다. 마침내 그러한 노력에 미국이 응답하여 인도태평양 전략을 발표하게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 집권 이후 인도태평양 지역개념의 확산은 인도, 일본, 호주가 추구한 대미 외교의 ‘거의 완전한’ 성공사례로도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거의 완전한’ 이라는 단서가 붙은 이유는 트럼프 대통령때문이다. 미 국무부나 국방부와는 달리 트럼프 대통령은 인도태평양 전략을 신봉하지 않으며,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나 공격적 일방주의는 인도태평양 전략과 모순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미 국무부나 국방부의 정책이 아니라 미국 대통령이 추진하는 국가적인 전략으로서의 인도태평양 전략의 탄생은 트럼프 대통령의 집권이 끝나야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기획: 한인택(제주평화연구원 연구위원)​ 편집: 한유진(제주평화연구원 연구조교)​ ​ 現 제주평화연구원 연구위원 겸 제주포럼 사무국장.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와 同 대학원 외교학과를 졸업한 후 UC, Berkeley 정치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 UC, Davis, University of Washington, 이화여자대학교, 제주대학교 등에서 강의. 핵전략, 안보협력, 공공외교가 주요 관심분야이며, “한국형 공공외교 모델의 모색: 정책네트워크를 활용한 맞춤형, 과학적 공공 외교”와 “핵폐기 사례연구: 남아프리카공화국 사례의 함의와 한계” 등의 저술이 있음.
  • [JPI PeaceNet] 점차 보수화되는 EU
    저자
    도종윤 (제주평화연구원 연구실장)
    발간호
    특별기획호: 2020년 정세전망-4호
    I. 서론  2018년 말, EU 정상회담 이후 그들이 내놓은 관심사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었다. 첫째, 외부 환경의 변화에 따라 EU의 경쟁력을 어떻게 유지하고 파편화되는 EU를 어떻게 단일하게 유지할 것인가, 둘째, 날로 증가하는 국제범죄 및 이민자 문제를 어떻게 예방할 것인가, 셋째, 근린 국가 및 동유럽국가에서 발생할지도 모르는 위기 상황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넷째, 방위 관련 구조 개혁을 어떻게 진행하고 EU-NATO 간 협력 관계는 어떻게 다룰 것인가, 다섯째 각종 선거를 앞두고 발생할 수 있는 허위 정보(disinformation) 유포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여섯째 다년간 재원 확보 전략은 무엇인가, 마지막으로 기후변화에 대응한 국제 공조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2019년도 EU의 정책 평가는 이러한 관심이 그들의 정책에 얼마나 반영되었느냐였다. 이 글은 EU의 관심이 2019년의 정책에 어떻게 투영되었는지, 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검토하고 이를 기반으로 2020년에는 어떤 방향으로 EU가 정책의 방향을 잡을 것인지 가늠하는 데 목적을 두고자 한다.   II. 본론 1, 브렉시트: 시간과 관계의 문제 2019년 3월 29일로 예정되었던 브렉시트는 결국 없었다. 이후 EU와 영국의 공통된 우려는 합의 없는(No-deal) 브렉시트의 현실화 여부였다. 협상의 핵심은 결국 ‘시간표’와 ‘EU-영국 간 미래 관계’다. 우선 시간표는 결코 영국 측에 유리하지 않다. 작년, EU와 영국은 3차례나 브렉시트를 연기하였다. 그리고 해를 넘겨 2020년 1월 31일로 날짜를 못 박았다. 그 사이 영국은, 보리스 존슨으로 총리가 바뀌었고(7월 24일) 총선이 있었다(12월 12일). 탈퇴 시간표가 꼬이면서 영국은 EU의회 선거에는 인원을 배정받았으나 집행위원은 그렇지 못했다. 이제 영국은 모든 EU 정책에서는 배제된 체 탈퇴의 날만 기다리고 있다. 둘째, 브렉시트 타결의 중요 열쇠 중 하나는 EU-북아일랜드-영국 간 국경선 문제이다(소위 backstop 문제). 크게 4가지 옵션이 있으나(EU와 영국의 EU 관세 동맹, EU와 북아일랜드 관세 동맹, 영국과 북아일랜드의 소프트 보더를 전제로 한 관세 동맹, 영국과 아일랜드의 하드 보더를 전제로 한 관세 동맹) 어느 것도 EU와 영국을 모두 만족 시키지는 못하고 있다. EU-아일랜드-북아일랜드-영국 간 국경선 문제는 EU 탈퇴 후 EU와 영국 간의 미래 관계 설정의 중요 기준이 된다. 보리스 존슨의 승리로 영국의 강경한 탈퇴 입장은 지지를 얻게 되었지만, 향후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의 관계, 스코틀랜드의 독립 등 주권의 갈등 양상은 풀어야할 숙제다. 더 나아가 다른 EU 회원국의 EU 잔류 문제, EU와 회원국 간의 관계 설정, 기타 민족 및 지역의 독립 문제 등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협상의 마감 시한인 1월 31일이 다가오는 가운데 여전히 양자 간 미래 관계는 불투명하다.   2. 일자리와 성장-구심력 강화-사회적 가치의 알고리즘 2019년은 보호무역주의 부활 등 세계 경제의 새로운 도전에 직면한 해였다. 이에 대응하여 EU는 작년 내내 공격적 산업 정책을 내놓았다. 구체적으로 언급하자면, 첫째 미래지향적인 (forward-looking) 디지털 정책, 둘째 데이터 경제의 등장과 디지털화 시대에 알맞은 각종 조치 강구, 셋째, 공정 경쟁과 상호 이익을 위한 탄탄한 무역정책 주도 등이다. 유럽정상들은 이를 토대로 작년 6월, ‘신전략 아젠다 2019-2024(New Strategic Agenda 2019-2024)’를 채택하고 미래 5개년을 기획하였는데 이는 미래의 EU를 내다 보는 척도다.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첫째, 시민 보호 및 자유 수호: i) 영토의 단일성을 유지하고 외국인(이민자)들의 출입관리를 위한 외부 국경 통제 ii) 효율적 송환 정책 및 이주·난민 정책 iii) 쉥겐 협정의 기능 조정 iv) 악성 사이버 행위, 국가/비국가 행위자의 허위정보(disinformation) 및 하이브리드 위협(hybrid threats) 대비. 둘째, 강력하고 활기찬 경제 기반 개발: i) 자본 시장 동맹 달성 및 국제사회에서 유로화의 역할 증대 ii) 디지털 혁명에 대응한 공정하고 효율적인 납세 iii) 디지털 세계에서 유럽의 자주성 확보 iv) 단일 유럽 차원의 교육 및 훈련 투자 v) 시장 접근, 불공정 관행, 제3국 혹은 역외지역으로 들어오는 안보 위협, 그리고 연쇄적 생산 공급 과정(supply chain)에 대한 전략 확보 셋째, 기후 중립화 추진: i) 기후변화는 EU가 녹색 경제의 글로벌 리더가 될 기회를 제공 ii) 효율적인 순환경제, 유럽 에너지 시장의 적절하고 안정적인 에너지 확보와 회원국의 에너지 주권 확보 동시 모색 iii) 재생에너지로의 전환 및 미래 이동수단 투자 강화 iv) 기후변화 이슈와 성(性) 평등, 권리와 기회의 동등한 보장 등 사회적 가치의 연계 넷째, 글로벌 무대에서 유럽의 이익과 가치 증진: i) 기후변화, 지속가능한 개발, 2030아젠다, 난민·이민 문제에서 선도적인 영향력 발휘 ii) 민주주의, 인권, 글로벌 평화와 안정 등 유럽의 가치를 다른 이들에게 전파하는 작업의 지속 iii) 대서양 동반자를 비롯한 신흥세력들과의 양자적 관계 유지 EU는 이러한 우선 작업을 추진하기 위하여 내부의 경제적 기반(일자리 창출과 경제성장)이 튼튼해야 함을 줄곧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단일시장(EU의 통합)이 경제성장의 토대라고 판단하는 한 파편화의 원심력보다는 통합의 구심력이 훨씬 클 것이며 2020년의 모든 정책의 지향은 일자리와 성장-구심력 강화-사회적 가치의 알고리즘 속에서 진행될 것으로 판단된다.   3. 자유주의 정파 목소리 강화와 ‘녹색 딜’(Green Deal) 그리고 ‘디지털 경쟁력’ 2019년 실시된 유럽의회 선거 결과 양대 정치 세력인 유럽인민당 그룹(EPP)과 사회민주당 그룹(Socialists and Democrats)은 상대적으로 많은 의석을 잃은 반면, 자유주의 그룹(RE), 녹색당 그룹(GREENS/EFA)과 극우 포퓰리스트 그룹(ID)은 의석이 대폭 늘어났다. 그러나 유럽의회 선거에서 극우 포퓰리스트 세력은 우려했던 것 보다는 인상적이지 못했다. 전반적으로 자유주의 정치 그룹인 RE의 선전하였고 보수적 색체의 EPP와 ECR는 패배했다고 보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었다. 한편 12월 1일에 출범한 집행위원회의 성향을 보면 정파별로는 유럽인민당 그룹(EPP) 10명, 사민당그룹(Socialists and Democrats) 9명, 자유주의 그룹(RE) 6명, 기타 2명 등으로 구분되었고 자유주의 그룹의 약진이 돋보였다.   2019년 유럽연합 집행위원 명단 출처: 저자 작성 주목되는 것은 업무 분야 중 ‘녹색 딜’(Green Deal), ‘디지털 시대 및 경쟁력’ (Digital Age / Competition), ‘경제 및 사회문제’, ‘가치 및 투명성’, ‘이주’(Migration) 담당 집행위원들이 모두 부위원장급으로 선임되었다는 것이다. ‘녹색 딜’과 ‘디지털 시대 및 경쟁력’이 미래를 향한 경제적 방향성을 보여주고 있다면 ‘경제 및 사회문제’, ‘가치 및 투명성’, ‘이주’ 등은 파편화된 유럽을 극복하고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한 전략과 관련되어 있다. 이는 향후 5년간 EU 집행위원회가 어느 방향으로 추진 동력을 둘 것인지 보여주는 지표가 될 것이다.   4. NATO와의 관계: 새로운 역할의 모색 NATO회원국(29개국) 중 EU 회원국(28개국)과 겹치는 국가는 22개국이다. 비(非) EU를 포함할 경우 유럽회원국은 26개국에 이르고 있다. 비록 EU와 NATO 제도적으로 구분은 되지만 구성원의 교집합이 크므로 양자의 관계는 매우 긴밀하다. 그러나 탈냉전 이후 EU의 NATO 의존도는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비용 대비 NATO의 역할이 걸맞는 지에 대한 논란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최근에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공정하게 예산을 분담하는 NATO 동맹국들에게만 도움을 줄 것”이라는 수차례 언급(The Guardian, 07. 28, 2016)으로 유럽회원국들은 미국과 불편한 관계에 놓이게 되었다. 2019년 기준 NATO 주요 회원국들의 GDP 대비 군사비 지출 비율은, 영국 2.13%, 독일 1.36%, 이탈리아 2.01 %, 프랑스 1.84% 등으로 미국의 3.42%보다 낮은 것이 사실이다(전체 GDP 대비 NATO 회원국의 평균부담 비율은 2.51%). 그러나 군사비 지출 분담과는 별개로 EU와 NATO는 여전히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2019년 6월 17일, EU와 NATO는 42개 이행 항목을 확인하는 보고서를 제출하였고 여기서 양자는 군사훈련의 중요성과 하이브리드 위협에 대한 공동 대응 등 5가지 핵심 요소를 강조하였다. 제도와 비용, 역할의 간극이 큰 현재의 NATO 구조 속에서 EU는 독자적인 방위군 운영에 모색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EU 28개 회원국 중 23개국이 2018년 11월 13일 브뤼셀에서 모여 공동 군대(European Army) 창설에 합의하고 2020년 이후 매년 50억 유로 이상을 투자하여 군대의 해외 훈련 허브를 구축하고 최첨단 무기 구입을 지원하기로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EU와 NATO의 관계가 금방 단절되지는 않을 것이다. EU는 리스본 조약에서는 NATO와의 협력을 명백하게 규정하고 있다, 또한 2017년, 모게리니 EU 외교대표의 언급을 비롯하여 수차례 EU는 NATO 회원국의 법적 의무, 군사비 지출에 관한 가이드라인 준수 등을 확인한 바 있다, 즉, 제도적, 정치적으로 NATO와의 연관성을 부인 할수 없는 것이다. 오히려 변화된 안보 위협에 NATO가 어떻게 대응할지 역할 조정을 강구하는 쪽으로 양측이 전략을 모색하면서 새로운 실천과제를 도출할 것으로 보인다.   5. 영원한 긴장 관계: 러시아  EU에게 러시아(구 소련 포함)는 역사적으로 긴장, 우려 그리고 갈등의 요소가 담긴 곳이다. 이런 관계는 러시아의 구 소련 지역에 대한 민족주의 지원 그리고 EU의 동유럽 확장 정책이 충돌하면서 보다 더 날카롭게 대립하게 되었다. 작년에는 2014년 러시아 미사일에 의해 격추된 MH17기의 추모 5주기를 맞이하여 러시아-유럽-우크라이나 간의 해소 되지 않은 외교문제들이 다시 부각되었다, 작년 4월 24일, 러시아 대통령령으로 공포된 우크라이나 령 도네츠 주(Donetsk)와 루한스크 주(Luhansk) 일부 지역에서의 여권 간소화 조치는 민스크 협정(Minsk agreement)에 반하는 것으로 우려를 표시하였다. 지난 7월 도널드 투스크 EU 상임의장은 제21차 EU-우크라이나 정상회담에서, 2014년 이후 러시아에 의한 공격으로 동우크라이나 지역에서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영토가 유린 된 것에 강력히 항의하고 러시아에 대한 제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계속될 것임을 천명하였다. 우크라이나 정부와 유럽은 러시아가 비밀리에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사건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New York Times, 2014. 08. 27). 그러나 한편으로는 EU-러시아-우크라이나의 관계를 조율하려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9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통화 한 후 EU 정상들이 러시아와 정상회담을 갖고 동우크라이나 문제의 긴장을 풀자고 제안하기도 하였다(일명 Normandy format). 동시에 EU는 우크라이나의 정치개혁도 요구하고 있다. 반부패 개혁, 행정의 분권화 등에 약 1억 2천만 유로를 지원하고 향후 5억 유로 이상을 재정 개혁에 지원하며 협력 국가로서의 대우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있었던 EU 확대에 대한 피로감, 러시아 민족주의의 반발 등으로 우크라이나를 EU회원국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6. 신종 위협: 허위정보(Disinformation)와 하이브리드 위협(Hybrid Threats) 작년에는 유럽의회 선거를 비롯하여 유럽 전역에서 20여 차례의 각종 선거가 치러지는 정치적 변화의 해였다. 2020년에는 폴란드 대선을 비롯하여 유럽에서 17개의 선거가 예정되어 있다. 따라서 EU는 선거 결과에 영향을 줄수 있는 여러 개입을 차단하겠다는 정책을 올해에도 유지 발전 시킬 것이다. 특히 허위 정보를 예방, 제거하고자 조기 경보 체제(Rapid Alert System: RAS)의 구축이 꾸준히 강조될 것이다. EU는 허위 정보가 유럽의 민주주의를 훼손하므로 즉각적이면서도 장기적인 관점의 대응 전략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더불어 허위정보는 유럽의 안보를 위태롭게 하는 하이브리드 위협의 한 축이며 이에 대응한 복원력(resilience)을 강화하기 위한 통합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European Council meeting (21 and 22 March 2019). RAS는 온라인 플랫폼과 사회적 관계망의 운영자들이 높은 수준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가지고 허위정보의 생성과 유통을 하지 못하도록 감시하고, 적절한 대응을 하기 위해 만든 체계이다. EU 각 기관과 28개 회원국은 접촉선을 확보하여 RAS 내에 정부 간 정보 공유 및 생성에 참여하고 최선의 관행을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한 유럽대외관계청과 집행위원회는 서로 협력하여 RAS의 운영이 원활하게 되도록 지원토록 하고있다(EEAS, RAS Factsheet March 2019). 구체적으로 문제가 있는 온라인 플랫폼을 RAS를 통하여 지정하고, 신뢰성 있는 공적 영역의 정보가 공유되도록 지원하며 민간의 인지 능력을 향상시켜 이들의 활동성을 높이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이를 통해 연구자, 팩트 체크자 그리고 시민 사회에 활력을 주고 허위정보에 대한 대응과 역할 분할을 공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편, 유럽 대외관계청은 2017년 6월 19일, ‘사이버 외교 도구 박스(cyber diplomacy toolbox)’를 도입하여 사이버 공격을 통한 위협을 줄이고 잠재적인 공격 가능성을 억제하고자 전략을 세운 바 있다. 이어서 유럽각료이사회는 작년 5월 17일 EU 역외의 행위자들이 EU의 기관, 회원국, 제3국, 국제기구 등에게 사이버 공격을 가해 왔을 때 취할 수 있는 외교적 조치의 틀을 제시하였다. 사이버 공격 대한 대응 조치는, 우선 사이버 공격의 당사자(개인 혹은 단체)에 제재를 가하되 당사자의 범위는 기술적 지원뿐 아니라 금융지원을 하거나 이와 관련된 어떤 방법이라도 제공한 모든 이들을 포함한다(2019.06.03 EEAS EU Cyber Diplomacy Toolbox). 그러나 사이버 외교 도구 박스가 실재에서 적용되어 신뢰성 있는 조치를 취하기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사이버 공격의 당사자가 누구인지, 어떻게 공격했는지 등을 가려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Erica Moret and Patryk Pawlak, “The EU Cyber Diplomacy Toolbox: towards a cyber sanctions regime?”, EUISS, 2017).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비국가 행위자의 사이버 공격과 허위정보 유포는 정치와 사회 안정에 큰 위협이 되므로 새로운 대응 전략을 끊임없이 모색하고자 할 것이다.   7. 기후변화와 환경 EU는 작년 초부터 파리 협약(Paris Agreement)의 이행을 전폭적으로 지지한다고 반복하여 선언 하였다(European Council meeting 21 and 22 March 2019). 또한 지구 온도 상승을 1.5°C 이내로 제한하자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 보고서’ 역시 전폭적으로 지지(European Council meeting 21 and 22 March 2019, European Council meeting 20 June 2019)하고 UN에서의 노력을 높이 평가하였다. EU는 파리 협약의 규정 내에서 기후-중립화(climate neutral) 노력을 지속하되 정의와 사회적 균형을 맞추고 각 회원국이 그들의 환경과 에너지 문제 등을 복합적으로 고려하여 결정할 수 있도록 권리를 존중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국은 기존에 설정한 ‘2030년 목표’를 여전히 준수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EU는 또한 2020년 초까지 ‘기후변화에 관한 유엔 기본 협약’(UNFCC)에 기후변화에 관한 EU의 장기적인 전략을 제출하고 유럽투자은행(European Investment Bank)에 의뢰하여 기후변화 관련 활동을 지원할 수 있도록 조치하고자 하고 있다. 또한 EU와 회원국은 기후변화 기금(Green Climate Fund)의 모금, 집행, 활동 등 기금의 활성화를 위해 공적/민간 영역이 모두 지원할 수 있도록 독려하기로 하였다. 기후 변화에 관한 EU의 선도전략은 이제 단순히 글로벌 차원의 환경 문제가 아닌 EU 자체의 시그니처 글로벌 전략이 되었다. EU는 향후 모든 산업 정책, 정치 결정, 경제 전략에서 기후변화를 그들 전략의 근간으로 세울 것이다.   III. 결론: 2020년 유럽연합의 모습 1. 파편화된 유럽의 극복과 하이브리드 위협에 대응 2016년 6월 영국의 EU 탈퇴 선언 유럽은 파편화되는 경향을 보여 왔다. 구심력 확보를 위해 이후 EU는 ‘EU 시민 보호’를 그 어느 때보다 강조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브렉시트의 성공적인 마무리는 유럽인으로서 27개 회원국의 정체성을 어떻게 규정하느냐 하는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 따라서 온정적, 임시적, 편의적 해결 모색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유럽의 안보 영역에서 주변국으로부터의 재래식 군사 위협은 더 이상 중요한 고려 대상이 아니다, NATO와의 관계는 당장 위태롭지는 않겠지만 새로운 이익의 영역을 EU-미국이 공유하지 않는 한 장기적으로 완만한 갈등이 드러날 것이다. 오히려 하이브리드 위협으로부터 안전이 보다 민감한 목표가 되고 있다. 이는 자체적인 안보 역량을 강화의 방향과도 관련되어 있다. 다만, 러시아에 대한 불안은 여전히 중요하며 그 형태는 하이브리드 위협의 전형적인 원인으로 판단할 것이다. 향후 EU는 군사 안보뿐 아니라 생활 전반에 걸친 안보 위협의 가시적 대상으로 러시아를 계속 주목할 것이다.   2. 유럽의 보수화 국제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자국 우선주의, 극우주의의 발호, 테러리즘, (불법)이민자 문제 등으로 인해 국내 수준에서 주로 언급되던 보수적 가치는 ‘유럽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한 가치로 변형될 것이다(회원국 문제의 유럽화). 이를테면 지난 6월, EU 정상회담에서 채택된 ‘신전략 아젠다 2019-2024’에서 언급한, ‘영토의 단일성을 유지하고 외국인(이민자)들의 출입을 관리하기 위해 외부 국경을 통제’하겠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이민자를 외부의 위협 중 하나로 특정하고 안보 차원에서 해석한 것으로 판단된다. 외부 세력을 배타적으로 규정하는 일부 국가의 국내 정치 논리를 유럽화한 하나의 사례이기도 하다. EU는 몇 년 전과는 달리 최근에는 이민자 정책을 크게 이슈화하지 않고 있으며 이민자 정책의 포괄적 접근의 필요성을 강조하고있다. 또한 이민자를 불법 이민 및 인신매매와의 싸움의 대상으로 간주하여 통제 정책을 정당화시키고 있다. 지원과 보호보다는 송환과 입국 금지에 주안점을 둘 것(illegal migration and human trafficking and to ensure effective returns)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도 주목된다. 향후 유럽의 보수화는 ‘단일한 목소리를 내는 유럽(One voice Europe)’이라는 목표와 함께 매우 천천히, 그리고 새로운 방식으로 전개될 것이다. 그 이유는 작년에 치러진 유럽의회 선거, 각종 국내 선거, 집행위원회 구성을 보았을 때 중도 보수와 중도 좌파의 기존 구조가 크게 훼손되지 않았고 브렉시트의 교훈을 통해 통합이 질적인 공고함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 선거는 극단주의 세력의 거대 제도권으로의 이동을 우려하던 당초의 예상과는 달랐지만 그들이 주장하는 기대와 목표가 EU의 각종 정책에 어느 정도 담겨질 것이라고 판단된다. 이런 가운데 보수적 자유주의 정파의 부상이 주목할 만하다. 이는 분리·독립주의, 외부인 배척 등으로는 유럽의 위기가 풀리지 않았음을 유럽인들이 조금씩 자각한 데도 원인이 있다. 따라서 새로운 대안을 경제적 자유주의 속에서 찾아보려는 시도와 보수화되는 EU의 각종 정책이 어떤 형태로 맞물릴지 주시해야 한다.   3. 유럽의 시그니쳐 전략: 기후 중립화, 녹색딜 그리고 공정성 통합이 진행되는 동안 EU는 내부통합의 속도와 범위에 주로 집중하였으나 리스본 조약 이후부터는 통합의 가치와 성과를 대외적인 부분에서 찾으려는 시도가 부쩍 늘어나고 있다. EU는 그들이 내세우는 가치-민주주의, 법치, 평등, 투명성 등-를 토대로 기존의 강대국들이 했던 글로벌 리더의 역할과는 다른 차원의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신전략 아젠다 2019-2024’에서 드러난 것처럼 경제적 토대를 글로벌 리더로서의 가장 기초적인 토대로 인식하고 이 위에 유럽의 가치가 투영된 새로운 분야를 쌓는 것이 리더 역할의 핵심 실천과제로 전제한다. 그 중에서도 EU는 ‘기후 중립화’, ‘녹색 딜’, ‘공정하며 투명한 기준’, ‘사회화가 된 세계(유럽)’ 등은 선도적인 역할을 할 유럽의 독자적인 영역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향후 대외관계에서도 타협이나 양보 없는 핵심 아젠다로 이러한 가치를 주장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혁신, 교육, 기술 개발 등은 스스로 부족한 부분이라고 여기고 있다. 향후 이 분야에서 협력과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국제적 동반자를 구하는데 적극적일 것으로 파단된다. 기획: 도종윤(제주평화연구원 연구실장)​ 편집: 한유진(제주평화연구원 연구조교)​ ​ 現 제주평화연구원 연구실장. 브뤼셀 자유대학교에서 정치사회학 박사학위 취득. 주요 논문으로 "국제정치학에서 주체물음(2013)", "유럽연합의 개발협력전략(2013)" 등이 있음
  • 세계 불평등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저자
    손정욱 (제주평화연구원 연구위원)
    발간호
    특별기획호: 2020년 정세전망-3호
    1. 서론: 쿠즈네츠 가설과 피케티의 반론 일반적으로 경제구조의 전환기에 새롭게 등장하는 사회경제 집단은 저숙련·저임금 노동자들로 구성된 경우가 많고, 이에 따라 전환기에는 일자리가 늘어날수록 경제적 불평등이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전환기 불평등 증가와 관련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쿠즈네츠(Simon Kuznets)는 소득 수준이 낮을 때는 심하지 않던 불평등이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증가하다가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 다시 감소한다고 주장했다 (Kuznets 1955). 1980년대까지 많은 경험적 자료를 기반으로 쿠즈네츠의 주장은 하나의 ‘법칙’으로 간주되기까지 했다 (Bourguignon and Morrisson 2002). 하지만 쿠즈네츠 가설은 1980년대 이후 나타난 선진국들의 불평등 증가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며 한계에 봉착했다 (Milanovic 2016). 영국과 미국과 같은 영미권 국가들뿐만 아니라 독일, 프랑스 등과 같은 유럽 대륙 국가들을 비롯해 심지어 스웨덴과 같은 북유럽 국가들에서조차 1980년대 이후 불평등 증가가 관찰되면서 쿠즈네츠 가설에 대한 비판이 높아진 것이다. 최근 폭발적인 관심을 받은 바 있는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의 저서 『21세기 자본(Capital in the Twenty-First Century)』 역시 쿠즈네츠 가설을 반박하며 등장한 것이다. 피케티의 주장에 따르면, 기본적으로 자본주의는 불평등 증가를 유발하는 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1차 대전 이후부터 1980년까지 고소득국가에서 소득 불평등이 감소한 것은 전체 자본주의 역사에서 매우 예외적인 사건으로 봐야 한다. 다시 말해서 이 시기 불평등 감소는 전쟁으로 인한 자본계급의 붕괴, 전쟁자금 마련을 위한 강력한 조세, 사회주의 이념과 운동의 상승 등이 맞물려 작동한 특수한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피케티의 주장과 달리, 자본주의가 필연적으로 불평등의 심화로 귀결하는지에 대해서는 이론적 측면뿐만 아니라 경험적 측면에서도 여전히 치열한 논쟁이 진행 중이다 (Milanovic 2016; Boushey, DeLong, and Steinbaum et al. 2017). 하지만 분명한 것은 레이건-대처리즘이 본격화된 1980년대부터 전 세계에 걸쳐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본 글에서 최근 세계 불평등의 변화 과정을 세계, 지역, 국가 차원에서 추적하고 이러한 불평등 양상이 향후 어떤 추세를 보일지를 전망한 후에 불평등 감소를 위한 정책 대안을 제시한다.   2. 세계 불평등 현황 권위 있는 세계 불평등 데이터베이스로는 세계은행의 포브칼넷(PovcalNet), 룩셈부르크소득연구소(LIS), OECD의 소득데이터베이스(IDD) 등이 있지만, 본 연구는 최근 전 대륙에 걸쳐 100명이 넘는 연구자들이 참여해 작성한 세계자산·소득데이터베이스(World Wealth and Income Database: WID)를 활용한다. 기존의 불평등 자료는 주로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작성되고 가계동향조사에만 의존하는 반면, WID 자료는 신흥국과 개발도상국들을 대거 포함했을 뿐만 아니라 가계동향조사와 함께 각 정부의 과세 자료를 종합적으로 분석해 소득 최하위 집단부터 최상위 집단을 모두 포함하는 일관된 자료를 제공하고 있어 보다 입체적이고 정확한 불평등 분석이 가능하다 (Alvaredo, Chancel, Piketty, and Suez et al. 2018). 글로벌 소득 하위 50퍼센트와 상위 1퍼센트의 몫 (1980-2016) 출처: Alvaredo, Chancel, Piketty, Saez, and Zucman eds. 2018 은 1980년부터 2016년까지 구매력평가 환율을 고려해 세계 소득 상위 1퍼센트와 하위 50퍼센트가 전 세계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보여준다. 소득 상위 1퍼센트가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980년 약 16퍼센트에서 2007년 22퍼센트까지 상승했다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조금 감소해 2016년에는 20.4퍼센트를 기록했다. 한편, 하위 50퍼센트의 비율은 1980년부터 2016년까지 10퍼센트를 넘지 않으며 사실상 정체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이 그래프를 통해서 크게 세 가지를 알 수 있다. 첫째, 상위 1퍼센트 소득 집단은 하위 50퍼센트 소득 집단보다 두 배 이상의 소득을 차지하면서 지난 30여 년간 세계 불평등 구조가 고착화되었다. 둘째, 2000년 이후 중국을 중심으로 신흥국과 개발도상국들의 높은 성장세는 세계 불평등을 완화시킬 만큼 강력하지 않았다. 셋째, 2008년 이후 관찰되는 세계 불평등 감소는 하위 50퍼센트의 소득이 증가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금융위기로 인한 상위 소득 계층의 소득 감소와 유럽을 중심으로 하는 선진국들의 성장 둔화로 인한 것이다. 글로벌 소득 분위별 증가율 (1980-2016) 출처: 출처: Alvaredo, Chancel, Piketty, Saez, and Zucman eds. 2018 는 흥미로운 결과를 보여준다. 가로축은 세계 인구를 소득 분포에 따라 100개의 집단으로 구분한 것이다. 왼쪽으로 갈수록 소득 하위 집단이며, 오른쪽으로 갈수록 소득 상위 집단이다. 이 때 상위 소득 집단의 분포를 좀 더 입체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최상위 1퍼센트 집단을 10개 집단으로 나누고, 그 중 최상위인 0.1퍼센트 집단을 다시 10개 집단으로 나누고, 또 다시 그 중 최상위인 0.01퍼센트 집단을 다시 10개 집단으로 나눴다. 세로축은 1980년에서 2016년 사이에 각 집단에 속한 개인들의 평균 소득 증가율을 나타낸다. 를 통해 발견할 수 있는 사실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하위 50퍼센트는 전체 소득 증가 증가의 12퍼센트를 차지한 반면, 상위 1퍼센트는 27퍼센트를 차지했다. 둘째, 소득 하위 20퍼센트와 30퍼센트 집단의 소득 증가율이 비교적 높게 형성된 것은 이 시기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들의 경제성장 덕분이다. 셋째, 소득 상위 30퍼센트와 20퍼센트, 그리고 10퍼센트 집단의 소득 증가율은 전체 집단 중 가장 낮았다. 이는 미국과 서유럽 등 주요 선진국들의 중산층 집단의 경제활동이 위축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넷째, 상위 1퍼센트 이상 집단들은 지난 30여 년간 소득 증가 측면에서 가장 큰 혜택을 봤다. 와 를 통해 세계 불평등 전반에 대한 분석을 요약해보면,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들의 부상에도 불구하고 극단적인 세계 불평등 구조를 해소할 수 없었으며, 주요 선진국을 중심으로 중산층이 붕괴되는 현상이 목격된다. 다시 말해서 신흥국들의 부상으로 국가 간 불평등은 감소하고 있으나, 국가 내의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세계 불평등이 해소되지 못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음 장에서는 세계 불평등을 좀 더 세분화해 대륙별·국가별 불평등 양상을 살펴보도록 하자.   3. 지역별·국가별 불평등 현황
  • 위기의 중국경제: 중국은 과연 중진국 함정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저자
    한동균 (제주평화연구원 박사후 연구위원)
    발간호
    특별기획호: 2020년 정세전망-2호
    1. 서론 세계경제의 핫이슈는 말할 것도 없이 중국이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글로벌 금융위기가 예상보다 심각했음에도 불구하고 표면적으로 불과 몇 년 만에 극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중국이라는 나라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최근 주요 금융기관 및 여러 학자들에 의해 경제위기론이 수차례 제기되고 있는데, 과거 경제위기가 금융위기라면 최근에는 ‘공황(depression)’이라는 새로운 위기의 봉착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미국과 중국이 양적완화 정책을 취함에 따라 ‘인플레이션(inflation)’이 발생할 것인가 아니면 시중에 자금을 많이 공급하더라도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해 유동성 함정에 빠져 ‘디플레이션(deflation)’ 위기가 올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 일었다면 최근에는 오히려 각국 정부들이 긴축정책을 시행하고 있고, 그에 따른 정부지출 및 민간소비 등 유효수요가 창출되지 않고 있음에 따라 세계적으로 ‘디플레이션’과 더불어 공황에 대한 우려가 매우 커지고 있다. 이처럼 정부긴축 및 유효수요 창출 문제에 따른 공급과잉과 공황의 우려가 대두됨에 따라 최근 세계경제에서 가장 떠오르는 화두는 ‘전 세계의 일본화’이다.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쫓아가는 건 아닌지가 학자들 간의 논쟁의 대상이 되었고, 세계 주요국들이 일본의 ‘잃어버린 20년’과 같은 장기적 불황을 피하기 위해 중국이라는 변수에 주목하고 있다. 즉, 작금의 세계경제 위기를 돌파해 나가기 위해 중국이 지난 글로벌 금융위기 때처럼 다시 구원투수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가가 화두인 것이다. 시진핑(习近平) 주석 집권 이후 중국경제는 생산과 소비, 투자 증가세가 둔화되고 부동산 시장 부진이 지속되는 등 성장세가 약화되는 동시에 경제구조나 성장의 내용 등에서 과거와는 다른 양상이 나타나면서 고속성장 시대를 마감하고, 중고속성장으로 성장속도가 변화하는 이른 바 ‘신창타이(新常态: New Normal)’ 시대에 진입하였다. 이는 과거 투자와 수출, 노동력을 앞세운 경제성장 전략이 초래한 사회경제적 불평등 확대 및 소비와 투자 간 불균형, 환경오염, 자원사용량 급증 등의 구조적 문제가 심화되면서 공평한 분배와 친환경 성장 등을 중시하는 질적 성장으로의 변화를 꾀하고 것으로 중국경제의 비효율성을 극복하고, 혁신이 성장의 견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산업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중국의 혁신전략과 구조개혁 추진에도 불구하고 세계 주요 금융기관 및 글로벌 싱크탱크들은 중국경제에 대해 비관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다.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중국이 외부충격에 대응하기 위해 무려 4조 위안, 한화 약 653조 원의 대규모 재정투입 및 은행대출의 급격한 증가가 초래한 제조업 부문 과잉생산과 지방정부 부채 급증, 부동산 거품 등이 오히려 중국경제의 잠재적 위험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고, 경제와 부채 규모, 방대한 국제금융 연결망 등을 고려했을 때, 글로벌 경제위기가 중국의 부채 문제로부터 촉발한다면 세계 각국으로 빠르게 전이될 수 있어 오히려 다음 글로벌 경제위기의 진원지가 중국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미중 무역분쟁 또한 중국경제 둔화세를 가속화시키는 원인으로 꼽히고 있지만 더욱 주목할 만한 것은 상술한 중국경제의 구조적 문제 속에서 중국이 과연 중진국 함정을 벗어날 수 있는지에 대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본고는 시진핑 주석 취임 이후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인 2021년까지 중산층 육성의 일환으로 모든 국민들이 풍족한 생활을 누리는 단계를 의미하는 ‘사오캉(小康)’ 사회 건설을 미래비전으로 제시하였고, 『중화인민공화국 국민경제 사회발전 제13차 5개년 규획(中华人民共和国国民经济和社会发展十三个五年规划)』이 종료되는 2020년이 중국경제에 새로운 기점이 될 것으로 판단됨에 따라 2020년을 맞이하여 과연 중국이 현재 직면하고 있는 중진국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논의해보고자 한다.   2. 중국과 중진국 함정의 상관관계 중진국 함정이란 개발도상국이 경제발전 초기에는 순조롭게 성장하다가 중간소득국가(Middle income country) 단계에서 성장력을 상실하여 고소득국가(High income country)에 이르지 못하고 중진국 수준에서 장기간 침체되는 현상을 말한다. 중진국 함정의 기준은 기관마다 다소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세계은행(WB)은 중간소득국가를 1인당 국민총소득(GNI) 기준 1,000-12,000달러로 보고 있다. 중진국 함정에 빠진 대표적인 국가는 아르헨티나와 멕시코, 브라질, 칠레 등 중남미 국가와 터키와 포르투갈, 헝가리 등 유럽국가, 태국과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국가들이 이에 해당하며, 중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은 2018년 기준 약 9,776달러로 지난 10년 간 약 25%씩 상승하며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반면, 제2차 세계대적 종전 이후 중진국 함정에 빠지지 않고 개발도상국가에서 선진국 수준의 국민소득을 달성한 유일한 국가는 한국과 일본, 대만, 싱가포르, 홍콩으로 이들 국가들 중 홍콩과 싱가포르는 인구가 적고, 대만은 중소기업 위주의 경제구조로 인해 중국이 추구하는 경제발전모델과 상이한 점이 많아 중국이 벤치마킹을 할 수 있는 국가는 한국과 일본이 유일하다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한 국가의 경제성장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먼저, 노동 및 자본 등 생산요소의 투입을 증가시키는 방법과 기술혁신 및 노동의 질을 높이는 등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방법이 있다. 보통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경제성장률을 비교하면 개발도상국이 월등히 높은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개발도상국의 경우 위 2가지 경제성장 방식인 생산요소 투입과 생산성 향상 모두 사용할 수 있는 반면, 선진국은 이미 도시화율이 90%가 넘어 경제성장 첫 번째 방식인 생산요소 투입을 더 이상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과 영국, 독일 등 선진국들이 중진국 함정에 빠지지 않았던 원인은 경제개발 초기에 생산요소 투입의 증가로 경제성장을 이루면서 자연스럽게 생산성 향상으로 넘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며, 개발도상국이 중진국 함정에 빠지는 원인은 경제개발 초기 생산요소 투입의 증가로 경제성장을 이루어 왔지만 생산성 향상으로 넘어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독일이 성냥-제철-반도체 공장 등 부가가치가 낮은 산업에서부터 높은 산업으로의 생산요소 투입을 통해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그 당시 해당 산업의 경쟁상대국이 없거나 경쟁이 치열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산성 향상으로 자연스레 넘어갔지만 개발도상국은 생산요소 투입 증가로 경제성장을 이어오다가 부가가치가 높은 반도체 공장으로 넘어가려면 이미 반도체 경쟁력이 선진국이 훨씬 앞서므로 생산성 향상에 의해 경제발전을 이어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중국 또한 과거 노동과 자본 등 생산요소 투입을 증가시키는 방법으로 경제성장을 이루면서 지난 40여 년간 고속성장 속에 저물가를 유지하였지만 더 이상 이와 같은 방법으로 고속성장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중국경제를 이루는 GDP, 즉, 소비와 투자, 정부지출, 순수출의 최근 추이를 살펴보면 높은 저축률로 인해 소비는 적고, 투자와 정부지출을 통한 순수출로 경제성장을 이루어왔지만 더 이상의 정부지출은 물가와 자산거품을 초래할 수 있어 한계가 있고, 높은 고정자산투자율과 달리 경제성장률이 하락하고 있는 것은 투자를 지속하더라도 경제성장을 이끌어 낼 수 없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이는 결국 생산성 향상으로 넘어갈 수 없음을 반증하는 것이며, 투자를 통해 공장을 짓는데도 불구하고 경제성장률의 하락은 낮은 소비로 인한 재고증가율이 높아지면서 공급과잉이 나타나는 것으로 공황의 우려 또한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중국의 산업화로 인한 도시화율이 1978년 17.9%에서 2018년 59.6%로 크게 증가함에 따라 출산율이 떨어지고 평균 수명이 길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곧 인구감소와 부양율이 높아지는 등 생산가능인구의 감소로 이어지게 되는데, 이미 중국의 생산가능인구는 2010년 74.5%로 변곡점에 도달하였으며, 부양비율 또한 2010년을 기준으로 상승세로 전환되었다. 결국 중진국 함정은 생산요소 투입을 통한 경제성장 전략이 생산성 향상으로 넘어가지 못함과 생산가능인구 비율의 감소가 동시에 발생하면 빠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중국의 이러한 추세가 지속된다면 2030년경에는 그동안 중국경제의 주춧돌 역할을 해왔던 인구보너스가 소멸될 것으로 전망된다는 점에 우리에게 큰 시사점을 제시한다고 할 수 있다.   3. 중진국 함정을 벗어나기 위한 중국의 경제정책 그렇다면 중국정부는 이러한 상황에 대비해 어떠한 경제정책을 추진하고 있을까? 우선, 2000년대 중반부터 시행하고 있는 ‘중부굴기(中部崛起)’와 ‘서부대개발(西部大开发)’ 정책을 들 수 있다. 중국경제는 개혁개방 이후 연해지역인 동부지역을 중심으로 발전함에 따라 상대적으로 중·서부지역 간 경제격차가 클 수밖에 없었고, 소득격차 또한 확대되면서 지역 간 불균형이 지속적으로 지적되어 왔다. 이미 상대적으로 투자가 포화상태에 달한 동부지역의 산업을 중·서부지역으로 이전시키면서 그 효과는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두었다고 평가받고 있지만 시안(西安)과 충칭(重庆) 등 중·서부 주요 몇 개의 지역을 중심으로 인프라 구축 개선에만 치우친다는 비판도 없지 않다. 하지만 중국의 산업과 시대적 흐름에 맞춰 5년마다 발표하는 『중화인민공화국 국민경제 사회발전 5개년 규획』에 따라 지역경제 발전을 위한 정책 업그레이드를 가속화하고 있어 상황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두 번째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인 ‘중국몽(中国梦)’을 실현하기 위해 2013년 9월 처음으로 제기한 ‘일대일로(一带一路: Belt and Road Initiative)’ 전략을 들 수 있다. ‘일대일로’로 연결되는 지역은 대략 60여 개 국, 세계 인구 63%에 이르는 44억 명, 세계 GDP 30%에 달하는 21조 달러 규모의 경제권으로 이는 세계 제 2위의 경제대국으로써 국제적 영향력을 한층 더 높여가기 위한 중국의 행보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더욱이 ‘신창타이’ 시대에 진입한 중국경제에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할 뿐만 아니라 ‘일대일로’를 통해 도농 및 지역 간 격차를 축소하고, 소득분배 개선 등을 추진하여 양극화와 중국 국내 과잉생산을 해소함과 동시에 에너지 안보 및 위안화 국제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미 2017년 5월과 2019년 4월 두 차례의 ‘일대일로 국제협력 고위급 포럼’을 통해 126개 국가와 29개 국제기구가 ‘일대일로’ 협력문서에 서명하였고, 중국국가통계국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일대일로 연선국으로 분류된 국가와의 무역액은 전년 대비 13.5% 증가한 8조 3,657억 위안, 한화 약 1,423조 원으로 집계되는 등 중국 전체 무역액의 27.4%를 차지하며 계속 팽창하고 있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비록 ‘일대일로’가 미국이 주도하는 서방 세계의 중국 포위망을 돌파하기 위한 계획만이 아닌 새로운 성장동력을 외부에서 찾아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면서 추진되었다고는 하나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참여한 연선국가들의 천문학적인 ‘부채의 늪’에 빠뜨린다는 비판을 받고 있고, 사업과정의 투명성 문제가 줄곧 제기됨에 따라 중국경제 발전을 위한 주변국의 약탈적 희생에 대해 심각하게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세 번째로 시진핑 주석 집권 이후 경제성장 동력 약화에 따른 해법으로 2015년 12월 ‘중앙경제공작회의(中央经济工作会议)’에서 제시한 ‘공급측개혁(供给侧改革)’의 추진이다. 중국경제의 안정적 성장을 위해 공급과잉 문제 해결과 중국산 제품의 품질 혁신을 주요 골자로 하는 ‘공급측개혁’은 기존의 투자와 소비, 수출 등 수요 진작 정책에만 의존하지 않고, 노동력, 토지, 자본, 제도, 기술 등 공급측요소의 개혁을 통해 중국경제의 질적 성장을 도모하면서 공급이 수요 변화에 따라 유연하게 조정될 수 있도록 공급측면의 효율성을 제고하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중국정부가 과거 부동산과 인프라 투자 등 대규모 투자에 의존한 양적 팽창 및 고속성장 모델이 더 이상 중국경제와 사회의 지속적인 발전으로 이어질 수 없음을 인식하여 추진하는 것으로 △과잉생산 해소(去产能) △기업 원가절감(降成本) △부동산 재고 해소(去库存) △부채 축소(去杠杆) △유효공급 확대(补短板) 등을 통해 중국의 산업고도화 실현 및 신(新)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공급측개혁’을 경제정책의 핵심 기조로 삼고 있다. ‘공급측개혁’ 기존의 경제학 이론이나 경제정책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중국경제의 특수성에 기반한 창의적인 거시경제 발전전략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그 결과 철강과 석탄, 시멘트 등 전통산업 분야에서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함께 인수합병을 통한 과잉생산 해소는 빠른 성과를 보이고 있지만 기업 원가절감 및 부채 축소 등을 통한 질적 발전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인 성과가 보이지 않아 중장기적으로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네 번째로 4차 산업혁명시대 도래에 따른 글로벌 경제에 대응하기 위해 2015년 5월 『중국제조 2025에 관한 통지(国务院印发《中国制造 2025》的通知)』를 발표하면서 산업구조 고도화 작업을 본격적으로 착수하고 있다. 1990년 중반 이후 비약적인 발전을 실현한 중국의 제조업은 현재 세계 최대 제조대국의 반열에 올랐으나 질적 성장 측면에서는 선진국에 비해 크게 뒤처져 있으며, 핵심기술 및 첨단설비 분야의 높은 대외의존도로 인한 혁신역량 부족, 낮은 에너지 효율과 심각한 환경오염, 노동임금 등 요소비용의 상승으로 성장의 난관에 봉착한 상황이다. 따라서 이 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고 제조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기존 제조업과 IT의 융합을 통한 제조업 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차세대 정보기술 △수치제어 및 로봇 △항공우주장비 △선진 궤도교통설비 △신에너지 자동차 △전력설비 등 10대 핵심 산업을 선정해 향후 30년 간 10년 단위로 3단계에 걸쳐 산업고도화를 실현하고자 하고 있다. 하지만 산업구조와 정보화 수준, 품질 등에서 자주적 혁신이 부족한 중국이 ‘중국제조 2025’를 앞세워 첨단기술을 갖고 있는 외국기업들을 인수하고, 지적재산권 및 기술이전을 강요하는 방식으로 추진됨에 따라 첨단산업 분야에서 중국정부가 개입하여 불공정한 방식으로 첨단기술을 획득해 나간다면 중국의 산업 능력은 급속히 제고될 수밖에 없어 미국의 대(對)중국 관세 압력, 즉, 미중 무역분쟁을 통해 통제하고 있는 실정에 이르고 있다. 결국 미중 무역분쟁이 미중 간 무역수지 불균형도 있지만 ‘중국제조 2025’가 궁극적 원인으로 드러나면서 중국이 불공정한 기술획득 관행을 저지하기 위해 첨단기술과 관련 지재권 보호 등 실효적인 조치가 마련될 때까지 미중 무역분쟁을 지속할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향후 추이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4. 결론 살펴본 바와 같이 중국정부의 다양하고 적극적인 경제정책 추진에도 불구하고 현재 중국경제는 부문별 개혁의 성과가 나타나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봤을 때, 안팎으로 많은 도전에 직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경제개혁이 단기간에 성과를 거둘 수 있는 사안이 아니지만 지난 30여 년간 중국경제 성장모델이었던 요소투입형 양적 성장 방식에서 벗어나 질적 성장 방식으로의 경제성장 패러다임을 전환함에 있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특히, 경제성장률 측면에서 2017년부터 6%대를 목표로 하는 ‘바오류(保六)’를 지속했으나 대내외 경제 변화가 가속됨에 따라 2020년부터 6%대 성장 궤적을 이탈하는 이른바 ‘바오우(保五)’ 시대에 돌입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2005년부터 2011년 간 ‘바오빠(保八)’ 시대에는 전반적으로 경제성장률이 잠재성장률을 상회하였으나 이후 경제성장률이 잠재성장률에 근접하는 양상을 보이면서 중국경제가 전반적인 하락세를 보임에 따라 ‘구조적 장기 침체(Secular Stagnation)’ 가능성 또한 상존하고 있다. 더욱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무역 환경이 지속적으로 약화됨과 동시에 중국이 내수중심의 성장방식으로 전환하면서 수출 동력 또한 약화되고 있다. 중국의 무역의존도를 나타내는 GDP 대비 수출입 비중은 2000년 39%에서 2006년 63.5%로 최고치를 기록하였으나 2018년에는 35%로 떨어지면서 빠르게 하락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설상가상으로 최근까지 지속되고 있는 미중 무역분쟁의 여파로 향후 중국이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Global Value Chain)’에서 다소 소외될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수출 강국으로써의 입지가 더욱 약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높은 투자율과 수출에 의존한 고도성장의 시기를 마감하고 내수주도형 성장방식으로 전환한 중국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인구고령화 및 소득분배 문제, 아직도 개선되지 않고 있는 투자효율성 등이 향후 중국경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며, 중국이 과연 중진국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중진국 함정에 빠진 국가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여러 문제점 중에서 중국은 고급인력 육성과 자체적인 혁신능력 배양이라는 측면에서는 큰 진전을 이룬 것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심각한 소득분배 불균형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어 중산층 육성을 위해서라도 GDP 대비 소비비율을 제고시켜야 하는 등의 소득분배 개선과 가계소비 위축 및 민간경제 부진으로 이어진 실업률 해소, 부동산 버블과 심각한 수준의 기업부채 문제는 중장기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과제로 지적되고 있다. 시진핑 주석은 취임 이후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인 2021년까지 ‘샤오캉(小康)’ 사회 건설 및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100주년인 2049년까지 조화로운 현대 사회주의국가로 변화시키겠다는 ‘두 개의 백년(两个一百年)’ 목표를 제시했다. 따라서 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중국정부가 인내심을 갖고 일련의 고비들을 잘 넘겨 중진국 함정에서 벗어난다면 결국 세계경제의 위기도 중국을 기폭제로서 돌파해나갈 수도 있지 않을까 판단되지만 중진국 함정에서 중국마저 무너져 버린다면 세계경제는 일본과 같이 저성장의 늪에 빠질 것으로 우려되며, 특히, 우리로써는 대(對)중국 경제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향후 중국경제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대외리스크 조기 경보 시스템의 실행 능력을 다시금 점검하여 대비할 필요가 있다. 기획: 한동균(제주평화연구원 박사후 연구위원)​ 편집: 한유진(제주평화연구원 연구조교)​ 現 제주평화연구원 박사후 연구위원. 제주대학교 중어중문학과, 무역학과를 졸업한 후 2013년 난카이(南开) 대학에서 국제경영학 석사, 2019년 중국인민(人民)대학에서 정치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음.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북경사무소 연구원 및 베이징(北京) 소재 중앙민족(民族)대학교 강사로 활동함. 주요 논문은 『한국의 대(對)중국 직접투자가 중국경제 성장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실증분석 연구』 및 『중국과 베트남 개방정책이 북한에 주는 함의와 당위성 연구』 등이 있음.
  • 북핵문제와 북한의 대외전략
    저자
    황지환 (서울시립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발간호
    특별기획호: 2020년 정세전망-1호
    I. 서론: 조선로동당 중앙위 전원회의와 북한의 전략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집권 이후 처음으로 올해 신년사를 발표하지 않았다. 2013년부터 발표하던 신년사가 발표되지는 않았지만, 지난해 12월 28일부터 31일까지 진행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의 보도가 이를 대체한 것으로 이해된다.1) 1월 1일 공개된 전원회의 보도내용은 내용구성적인 측면에서나 분량 면에서 신년사와 유사한 형태를 띠고 있다. 바로 직전 전원회의인 2019년 4월의 제4차 전원회의 보도의 경우 6200자 정도였던데 비해, 이번 전원회의는 2019년의 신년사 분량(12,000자)을 훨씬 넘는 18,000자의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이번 전원회의는 상당히 이례적으로 연말에 나흘간 개최되어 현재 북한이 직면한 상황의 엄중성과 위기의식을 반영하고 논의한 중요한 행사였다. 전원회의 보도 내내 북미관계에 대해 상당한 위기의식을 보여주며 자력갱생을 강조하고 있다. 대외관계의 핵심적인 방향은 ‘미국과의 장기적인 대립을 정면돌파하기 위해 자력갱생’하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II. 정면돌파전과 자력갱생의 국가전략 1. 기본전략: 정면돌파전 전원회의에 나타난 북한의 기본전략은 “정면돌파전”이다. 조선중앙통신의 전원회의 보도 전면에는 “우리의 전진을 저애하는 모든 난관을 정면돌파전으로 뚫고나가자”를 투쟁구호로 선언하고 있다. 대미관계와 핵문제가 주요한 이슈였던 이번 전원회의에서 “정면돌파전”을 강조한 것은 현재의 위기상황을 말 그대로 정면으로 돌파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판단된다. 전원회의는 “정면돌파전”의 필요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전원회의의 기본사상, 기본정신은 정세가 좋아지기를 앉아서 기다릴 것이 아니라 정면돌파전을 벌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여 미국과 적대세력들이 우리가 편하게 살도록 가만두리라는 꿈은 꾸지도 말아야 하며 사회주의건설의 전진도상에 가로놓인 난관을 오직 자력갱생의 힘으로 정면돌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적대세력들의 제재압박을 무력화시키고 사회주의건설의 새로운 활로를 열기 위한 정면돌파전을 강행해야 합니다. 정면돌파전은 우리 혁명의 당면임무로 보나 전망적인 요구로 보나 반드시 수행해야 할 시대적과제입니다.” 전원회의 결정서의 넷째 항목에서도 “넷째, 강력한 정치외교적, 군사적공세로 정면돌파전의 승리를 담보할 것이다”라고 정치외교적, 군사적 차원에서 정면돌파전을 추진할 것임을 명확히 했다. 이는 북한의 향후 대외전략과 군사전략이 상당히 공세적인 모습이 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2. 대미정책: 자력갱생과 제재의 대결 북한은 미국과의 장기적 대립을 준비하며 북미대결에서 제재를 극복하기 위해 “자력갱생”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미국과의 단기적인 위기고조보다는 장기적인 대립을 준비하며 자력갱생을 통해 제재를 돌파하겠다는 의지로 이해된다. 지난해 2월과 6월 베트남 하노이와 판문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국제사회의 대북 경제제재 해제를 위해 노력했으나 여의치 않자 이제 제재를 우회하고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세기를 이어온 조미대결은 오늘에 와서 자력갱생과 제재와의 대결로 압축되여 명백한 대결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핵문제가 아니고라도 미국은 우리에게 또 다른 그 무엇을 표적으로 정하고 접어들 것이고 미국의 군사정치적 위협은 끝이 나지 않을 것입니다. 미국과의 장기적 대립을 예고하는 조성된 현 정세는 우리가 앞으로도 적대세력들의 제재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각 방면에서 내부적 힘을 보다 강화할 것을 절박하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정상회담까지 진행하며 영변 핵시설 포기를 제안했음에도 경제제재가 쉽게 해제되지 않았음을 직시하고 미국과의 장기적인 대립을 준비하는 모습이다.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이 단기간내에 철폐되지 않을 것이라고 인식하는 한 북한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자력갱생뿐이다. 미국의 제재해제에 매달리는 순간 북한의 자주권과 안보를 훼손시킬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자력갱생을 통한 정면돌파전을 선택하게 만든 북한의 인식이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조성된 정세는 우리가 이미 천명한 바와 같이 적대세력들이 우리의 자주권과 안전을 감히 범접할 수 없도록 우리의 힘을 필요한 만큼 키워 우리자신을 지키는 길만이 우리가 힘겨워도 중단 없이 그리고 주저 없이 걸어야 할 길이라는 것을 실증하여 주고 있다고 하시면서 우리 당의 대미정책적 립장을 천명하시였다.” III. 북한의 핵전략 1. 미국의 핵협상 정책 전환 요구 북한은 핵 협상 관련 미국의 결단과 정책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북한은 지난 2년간 진행한 미국과의 핵협상에 대해 매우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미국이 협상은 하지만, 북한을 압박하여 내심 내부로부터의 붕괴를 꾀하고 있다는 의심이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조성된 현정세의 추이를 분석하시면서 미국의 본심은 대화와 협상의 간판을 걸어놓고 흡진갑진하면서 저들의 정치외교적 리속을 차리는 동시에 제재를 계속 유지하여 우리의 힘을 점차 소모약화시키자는 것이라고 락인하시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미국이 우리 국가의 근본리익과 배치되는 요구를 내대고 강도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하여 조미간의 교착상태는 불가피하게 장기성을 띠게 되어 있다고 하시면서 근간에 미국이 또다시 대화재개 문제를 여기저기 들고 다니면서 지속적인 대화타령을 횡설수설하고 있는데 이것은 애당초 대조선적대시정책을 철회하고 관계를 개선하며 문제를 풀 용의가 있어서가 아니라 사면초가의 처지에서 우리가 정한 년말시한부를 무난히 넘겨 치명적인 타격을 피할 수 있는 시간벌이를 해보자는 것일뿐이라고, 대화타령을 하면서 도 우리 공화국을 완전히 질식시키고 압살하기 위한 도발적인 정치군사적, 경제적 흉계를 더욱 로골화하고 있는 것이 날강도 미국의 이중적 행태라고 못박으시였다.” 이에 따라 북한은 미국과의 핵협상 교착이 장기화될 수밖에 없음을 인식하고 미국이 원하는 방식의 협상에 임할 생각은 없음을 명확히 했다. 또한, 미국이 핵협상 전략을 바꾸지 않을 경우 북한이 아닌 미국이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보여주고 있다. 2. 핵/미사일 시험 중단 재고 및 군사적 행동 경고 이번 전원회의 결정 내용 중 국제사회가 가장 커다란 관심을 가진 부분은 북한이 핵과 미사일 시험 중단 약속을 폐기하고 향후 군사적 행동을 보일 것인지의 여부였다. 실제 김정은 위원장은 전원회의 보도 내내 자력갱생을 강조했지만, “충격적인 실제행동”을 경고하면서 국제사회를 놀라게 했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우리는 결코 파렴치한 미국이 조미대화를 불순한 목적 실현에 악용하는 것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을 것이며 이제껏 우리 인민이 당한 고통과 억제된 발전의 대가를 깨끗이 다 받아내기 위한 충격적인 실제행동에로 넘어갈 것이라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계속하시였다. 우리에게 있어서 경제건설에 유리한 대외적환경이 절실히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결코 화려한 변신을 바라며 지금껏 목숨처럼 지켜온 존엄을 팔수는 없습니다.” 이에 따라 김정은 위원장은 정면돌파전을 위한 정치외교적, 군사적 담보를 위한 다양한 방안을 제시했음을 강조했다. 이는 대북 경제제재를 돌파하고 미국과의 장기적인 대립을 준비하기 위해 대중, 대러 외교 강화 등 북한의 대외환경을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을 할 것을 예고했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전대미문의 혹독한 도전과 난관을 뚫고나가는 정면돌파전에서 반드시 승리하자면 강력한 정치외교적, 군사적 담보가 있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조성된 형세에 대처하여 외교전선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방략들을 제기하시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조선반도에 조성된 준엄한 정세와 복잡다단한 현 국제관계 구도를 전면적으로 깊이 분석하신데 기초하여 우리 국가의 자주권과 안전을 믿음직하게 보장하기 위한 공세적인 조치들을 취할 데 대한 강령적인 과업들을 제시하시였다.” 다른 한편, 김정은 위원장은 미국이 약속(싱가포르 회담)과 달리 한미연합 군사훈련을 중단하지 않았음을 비판하며 핵실험과 ICBM 실험 중단을 재고할 것임을 암시하였다. 2018년의 6월의 싱가포르 북미공동성명 4개항에는 한미 연합훈련 중단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기자회견에서 한미 연합훈련 중단 및 축소를 언급하기는 했지만, 이는 자신의 생각을 언급한 것이지 김정은 위원장과의 합의를 의미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북한은 싱가포르 북미정상 회담 이후 지속적으로 훈련 중단이 북미간의 약속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김정은 위원장은 핵/미사일 시험 중단 약속을 재고할 수 있음을 경고하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우리가 조미사이의 신뢰구축을 위하여 핵시험과 대륙간 탄도로케트 시험발사를 중지하고 핵시험장을 페기하는 선제적인 중대조치들을 취한 지난 2년 사이에만도 미국은 이에 응당한 조치로 화답하기는커녕 대통령이 직접 중지를 공약한 크고 작은 합동군사연습들을 수십 차례나 벌려놓고 첨단전쟁장비들을 남조선에 반입하여 우리를 군사적으로 위협하였으며 십여 차례의 단독제재 조치들을 취하는 것으로써 우리 제도를 압살하려는 야망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을 다시금 세계 앞에 증명해 보이였다고 말씀하시였다. 이러한 조건에서 지켜주는 대방도 없는 공약에 우리가 더 이상 일방적으로 매여 있을 근거가 없어졌으며 이것은 세계적인 핵군축과 전파방지를 위한 우리의 노력에도 찬물을 끼얹고 있다는데 대하여 언급하시였다.” 이에 따라 김정은 위원장은 전략무기 개발사업의 지속적 추진과 새로운 전략무기 공개를 예고했다. 북한의 새로운 전략무기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분명하지 않지만, 2017년의 6차 핵실험이나 화성 15형 로켓발사보다 기술적으로 더 진전된 무기를 공개할 것으로 예상된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전략무기개발사업도 더 활기차게 밀고 나가야 한다고 하시며 미국의 강도적인 행위들로 하여 우리의 외부환경이 병진의 길을 걸을 때에나 경제건설에 총력을 집중하기 위한 투쟁을 벌리고 있는 지금이나 전혀 달라진 것이 없고 여전히 적대적 행위와 핵위협공갈이 증대되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는 가시적 경제성과와 복락만을 보고 미래의 안전을 포기할 수 없다고 단언하시면서 이제 세상은 곧 멀지 않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보유하게 될 새로운 전략무기를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확언하시였다.” 물론 북한의 새로운 전략무기 공개가 7차 핵실험이나 또 다른 ICBM급 미사일 발사로 이루어진다면 국제사회의 추가적인 대북제재가 취해질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북한이 전원회의에서 예고한 미국과의 장기적인 대립보다는 단기적인 위기고조의 가능성이 높다. 김정은 위원장이 핵실험이나 장거리 탄도미사일 발사 실험을 재개할 것인지에 대해 분명하게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북한이 미국과의 핵협상에 적극적으로 임할 가능성은 더 낮아 졌다고 평가된다. 북한은 미국의 대북 전략과 핵협상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미국의 본심을 파헤쳐본 지금에 와서까지 미국에 제재해제 따위에 목이 매여 그 어떤 기대같은 것을 가지고 주저할 필요가 하나도 없으며 미국이 대조선적대시정책을 끝까지 추구한다면 조선반도비핵화는 영원히 없을 것이라는 것, 미국의 대조선적대시가 철회되고 조선반도에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가 구축될 때까지 국가안전을 위한 필수적이고 선결적인 전략무기개발을 중단없이 계속 줄기차게 진행해 나갈 것임을 단호히 선언하시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미국의 핵위협을 제압하고 우리의 장기적인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강력한 핵억제력의 경상적 동원태세를 항시적으로 믿음직하게 유지할 것이며 우리의 억제력강화의 폭과 심도는 미국의 금후 대 조선립장에 따라 상향조정될 것이라는데 대하여 언급하시였다.” IV. 결론: 2020년 북한 정세전망 이번 북한 조선로동당 중앙위 전원회의 결과 보도는 2020년의 북한문제에 대해 비교적 비관적인 예측을 하게 하는 것이 사실이다. 북한의 전원회의 결정 내용이 극단적으로 공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지만, 2018-19년과 비교하면 상당히 공세적인 측면이 있는 점은 분명하다. 특히 최근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 내용과 비교하면 연말의 전원회의 결정내용이 2020년 북한 정세 전망을 낙관적으로 예상하기는 어렵게 한다. 2018년 신년사는 2017년의 핵위기 이후 북한의 대외정책이 관여정책으로 변화하는 시기에 발표된 것으로 2017년의 위기를 마무리하고 정책 변화를 꾀하려는 북한의 의지가 반영되어 있었다. 2019년의 신년사는 1차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과 2차 하노이 정상회담의 중간시기로 북미관계와 핵협상에 대한 일정한 기대와 우려가 교차되던 시기였다. 하지만, 이번 전원회의 결정 내용은 핵위기가 고조되던 2017년의 신년사 내용을 더 닮아 있다. 북한의 최근 인식이 6차 핵실험과 ICBM급 화성 15형 로켓을 발사를 준비하던 시기의 신년사 인식과 비슷하다면 2020년 북한 문제는 이전에 비해 낙관적으로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미국과의 장기적인 대립을 정면돌파하기 위해 자력갱생’을 계획하는 북한의 인식이 우려했던 것만큼 최악의 시나리오는 아니다. 이는 단기적인 차원에서 군사적 충돌을 통해 위기를 고조시키는 전략으로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향후 북미관계 및 남북한 관계의 갈등은 불가피해 보이지만, 북한의 시계(time horizon)가 단기적인 것은 아님을 전원회의 보도가 잘 보여주었다. 이는 김정은 위원장이 지속적으로 경제건설 총력을 국가전략의 최우선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도 잘 나타난다. 일부에서는 이번 전원회의 결정 내용이 실질적인 ‘경제핵 병진노선 회귀’라고 평가하고 있는데 이것은 무리한 해석이라고 판단된다. 북한은 2017년 11월 29일 화성 15형 로켓발사에 성공하고 대미 핵억지력 완성을 선언한 뒤 열린 2018년 4월 20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에서 사회주의 경제발전 중심의 ‘당의 새로운 전략적로선’을 제시했다. 당시 핵무력 병진노선의 한 축인 ‘국가핵무력 완성’을 선언했으며, 다른 한 축인 사회주의 경제발전에 집중할 것을 언급한 것이다. 이는 “미국의 강도적인 행위들로 하여 우리의 외부환경이 병진의 길을 걸을 때에나 경제건설에 총력을 집중하기 위한 투쟁을 벌리고 있는 지금이나 전혀 달라진 것이 없고”라는 이번 전원회의 보도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 이후의 북한 국가전략이 ‘핵경제 병진노선’의 회귀가 아닌 핵능력을 유지한 상태에서 자력갱생을 통해 국제사회의 제재를 극복하는 ‘정면돌파전’이라고 해석되는 이유이다. 1)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에 관한 보도,” 조선중앙통신, 2020년 1월 1일. 기획: 손정욱(제주평화연구원​ 연구위원)​ 편집: 한유진(제주평화연구원 연구조교)​   황지환 교수는 현재 서울시립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 명지대 북한학과 교수, The George Washington University 정치학과 강사 및 The Catholic University of America 정치학과 방문학자를 역임하였다. 통일준비위원회 전문위원, 국무총리실 및 외교부 평가위원, 통일부 및 육군 자문위원을 역임하였다.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였으며, 미국 University of Colorado, Boulder에서 국제정치학 전공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주요논문으로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의 귀환: 미국우선평화 대 병진평화”(2019), “Will Trump and Kim Make History?”(2018), “월츠(Kenneth N. Waltz)의 핵확산 안정론과 북한 핵 문제”(2018), “북한은 핵실험이후 더 공격적인가?: 현상타파 대외전략과 현상유지 대외정책의 결합”(2018) 등이 있다.
  • 첩보 정치(Intelligence Politics)의 부활?: 샤를리 에브도 테러 이후
    저자
    도종윤 (제주평화연구원)
    발간호
    2015-02
    1962년, 로베르타 월스테터(Roberta Wohlstetter)는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었던 미국 정책 실패의 원인을 첩보의 부재와 정보의 혼란에 있었다고 보았다(Pearl Harbor: Warning and Decision). 2004년, 미국 콜럼비아대학교의 리차트 베츠(Richard K. Betts)는, 9.11테러 발생과 이라크에서 대량살상무기 존재 입증 실패의 원인을 첩보의 미비에서 찾았다(Foreign Affairs May/June).   정확한 첩보는 정책 결정자에게 내밀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서 상대와의 전략 싸움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해 준다. 그러나 탈냉전 후 첩보는 더 이상 정치가 아닌 ‘액션’으로 격하되었다. 냉전 시대, 007시리즈에서 제임스 본드는 자신이 영국 정부의 스파이라는 것을 굳이 부인하지 않았다. 그는 종종 총리와 면담도 한다. 반면, IMF(Impossible Mission Force) 요원인 에단 헌트는 더 이상 정부 고위 관료들을 그들의 안락한 사무실 의자에 앉아서 만나지 못한다. 공중전화를 통해 비밀 지령을 받을 뿐이다. 에단은 조국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과 자신의 조직을 위해서 활동한다. 첩보가 정치에서 멀어진 데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확산, 생활 속에 침투된 인권 개념, 정책 결정 과정의 투명성 등이 첩보의 본질과는 충돌한다는 생각이 퍼졌기 때문이다. 지금, 첩보는 ‘현실’에서 사라졌거나, 또는 과거보다 아예 더 은밀해졌다. 첩보의 위기는 크게 두 가지 차원에서 심화된다. 먼저, 탈냉전 이후 대중은 첩보를 불필요한 것으로 인식한다. 냉전의 종결은 확실히 첩보 활동의 양을 줄였다. 갈등이 고조되었을 때 정보는 첩보 활동을 통해 수집된다. 정보를 보유하고 있는 쪽이나 탈취하는 쪽 모두 비밀스럽다. 그러나 이제 정보는 첩보를 통해서가 아니라 대화와 공개를 통해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첩보는 오히려 스노든(Snowden) 사태에서 보듯, 내 정보를 대중에게 폭로되지 않게 지키는 것에 더 집중해야할 처지가 되었다. 이제 첩보를 통해 확보해야 할 정보는 훨씬 제한적이고 애매해졌다. 둘째, 정치화(politicization)는 첩보 내용의 분석에 심각한 영향을 준다. 첩보 내용은 대부분 불분명하다. 따라서 정치적 신념에 편향되어 분석될 여지가 많다. 첩보의 정치화가 민주주의 파괴와 인권 침해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주었는지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목격된 바 있다. 정치화된 첩보는 국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개인을 위해 봉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테러 방지와 첩보   최근 이탈리아의 마테오 렌치(Matteo Renzi) 총리는 유럽 차원의 ‘첩보국’을 신설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는 지난 1월 7일, 이슬람주의자 두 명이 프랑스 주간지 ‘사를리 에브도(Charlie Hebdo)’에 난입하여 12명의 직원을 살해하는 테러가 발생한 후에 나온 반응이었다. 페데리카 모게리니(Federica Mogherini) EU 외교대표도 테러리즘 방지 차원에서 터키, 북아프리카, 아시아 등과 첩보 교류가 강화되어야 함을 시사하였다. 더 나아가 그녀는 각국에 파견된 EU 대표부에 ‘안보담당역(security attache)’을 설치할 필요가 있다고도 밝혔다. 이른바 첩보 정치의 부활이다. 이런 요구는 프랑스에서 발생한 테러가 첩보의 부재에 일정 부분 원인이 있다는 비난에서 비롯된다. 사건을 일으킨 범인 중 한명인 사이드 쿠아시(Said Kouachi)가 이미 몇 년 전에 예멘을 방문하여 알카에다 소속대원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당국이 이것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지 못했다는 것이다. 여러 나라를 경유하는 테러리스트를 감시하기 위해서는 보다 촘촘한 정보 공유와 강력한 첩보활동이 요청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첩보의 정치화? 첩보 정치의 부활?   유럽연합은 2004년 마드리드 테러, 2005년 런던 테러 등을 계기로 테러 방지 활동의 하나로 첩보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EU 공동상황센터(SITCEN)’를 설치한 것을 모태로 2009년 이후부터는 유럽대외관계청(EEAS)에 ‘EU첩보분석센터(EU IntCen)’을 두고 국제사회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들에 대해 정보 분석을 하고 있다. 그러나 IntCen은 자체적인 정보 획득 메카니즘을 갖고 있지 못하다. 오로지 소극적인 정보 분석에만 의존하고 있다. 때문에 2013년, 비비안 레딩(Viviane Reding) 사법담당집행위원은 2020년까지 해외 첩보 역량을 강화한 첩보국을 둘 것을 제안한 바 있다.   유럽연합이 미국의 CIA와 같은 형태의 ‘첩보국’을 신설할 것인지는 아직 알수 없다. 우선, 주요회원국들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프랑스, 영국, 독일 등 자국의 정보국을 활발히 가동하고 있는 국가들은 유럽차원에서 첩보 활동을 통합시키려는 노력에 미온적이다. 첩보 활동은 통합공동체보다는 주권국가 단위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유럽연합도 공식적으로는 스파이 활동이 부여된 첩보국의 신설은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밝힌 바 있다. 그보다는 인터폴, 유로폴(Europol) 등 다른 사법기관들과 공조하면서 정보 공유의 폭을 확대하고 분석역량을 높이는 데 더 중점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한다. 첩보국 창설의 근본적 문제는 첩보가 정책 결정에 기여한다는 것은 비교적 분명한 반면, 본질상 정책 결정 과정에는 공헌이 거의 없다는 점에 있다. 나아가 첩보의 오류로 인한 인권 침해나 비밀주의는 민주주의 원칙에 위배된다. 이점은 유럽연합의 거버넌스가 가진 현실과도 밀접하게 연관된 문제다. IntCen의 일카 살미(Ilka Salmi) 국장은 그 점을 정확히 지적한바 있다. “첩보활동을 할 경우 (유럽연합에서) 그 활동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명령은 누가 내릴 것인가?”  샤를리 에도브 사건을 계기로 유럽에서 첩보 활동 강화 논의가 부활하는 것이 적절한 것인지도 짚어 볼 필요가 있다. 종교 지도자에 대한 풍자가 어느 민족에게 모욕을 주었다면 그것은 테러의 본질과는 구분될 문제다. 테러의 원인이 무엇인지 보다 면밀히 살피지 않으면 첩보의 정치화가 우려될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분간 테러리즘에 대한 하나의 대응책으로 첩보에 대한 논의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보듯 주변국의 불안 요인을 미리 감시하고 안보 역량을 높이기 위해 첩보의 부활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또한 정보 네트워크 분야는 첩보가 집중해야 할 새로운 분야로 거론되기도 한다. 회원국 간 정보 공유나 전략 분석 수준을 넘어, 유럽이 추구하는 기본 가치를 훼손시키지 않으면서, 얼마나, 어떻게 첩보를 정치 안으로 끌어안을 것인지 주의 깊게 살펴볼 일이다. 이른바 '첩보의 정치화'와 '첩보정치'는 구분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제임스 본드나 에단 헌트가 아닌, 첩보정치를 실현시킬 제3의 모델이 출현할 것인가? 現 제주평화연구원 연구위원. 브뤼셀 자유대학교에서 정치사회학 박사 학위취득. 주요 논문으로 "국제정치학에서 주체물음(2013)", "유럽연합의 개발협력전략(2013)" 등이 있음.
  • 2015 북한 신년사를 통해 본 남북관계 전망과 우리의 정책 방향
    저자
    이성우 (제주평화연구원)
    발간호
    2015-01
    문제의 제기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밝힌 “분위기와 환경이 마련되는 데 따라 최고위급 회담도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라는 메시지에 남북관계에 대한 긍정적 전망이 줄을 잇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정상회담이 통일대박론을 완성하는 데 필요하고도 충분한 조건이라는 주장이 나오면서 정상회담에 도달하는 방안으로 실무회담에서 시작하여 단계적으로 고위급 그리고 최고위의 정상회담으로 발전하는 방법과 일괄타결을 전제로 측근의 막후접촉을 통해 직접적으로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방안을 논의하는 등 상당히 고무된 분위기이다.   어떤 형태로든 남북대화의 가능성이 높아진 가운데 남한의 대북 인도적 지원이 시작되고 있는데 2014년 말, 한 민간 단체가 북한에 고구마 20t을 북한에 전달하였고 이 밖에도 어린이의 영양식과 의약품 등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통일부의 승인을 통해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이를 곡물지원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지만 인도적 지원은 남북관계의 개선에 긍정적으로 기여를 하고 있다. 평화적 남북관계의 진전은 남북한 국민 모두에게 긍정적인 현상으로 적극 환영해야할 상황임에 틀림없지만 한 번의 정상회담으로 이것이 가능할지의 여부와 정상회담이 아무 일 없듯이 열릴 것이라는 기대가 과연 현재의 남북관계를 평화적으로 유도하는 데 바람직한 방법인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2008년 이명박 정권의 출범으로 시작된 비핵개방 3000 그리고 그 뒤를 잇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통해 단절된 남북한관계를 복원하고 한반도 관계가 평화, 화해, 그리고 협력으로 나가기 위한 조건과 전망에 대해서 논의해보고자 한다. 남북관계의 현실 현재의 남북관계를 진단하면, 남북한 모두 형식적 양보를 제시하면서 상대방의 통 큰 양보를 남북관계 개선의 잣대로 제시하고 있는 형국이다. 남한은 북한에 대해서 소규모 인도적 지원을 계기로 북한과의 정상회담을 기대하고 그 과정에 북한의 비핵화에 의미 있는 진전, 북한인권문제 개선을 위한 유엔 북한인권결의안을 통한 압박과 같은 굵직한 양보를 통해 한반도 통일대박론을 추구하겠다는 기대를 보이고 있다. 이에 반해 북한은 공식매체에서 남한에 대한 비방을 중단하는 작은 양보를 통해서 남한 정부에 대해 북한을 상대로 한 한미 군사훈련의 중단, 대북전단 살포 중단, 5.24조치의 해제와 금강산 관광재개와 같은 굵직한 양보를 요구하면서 남한의 통일대박론을 “흡수통일”의 음모라고 비난하고 있다.   북한이 한반도 주변 정세를 포함한 대외관계에 있어서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인식하는 근거는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통과, 북중관계의 악화에 따른 북러관계의 새로운 모색이 이를 반증한다. 북한은 대외관계의 위기 속에서 대남평화 공세를 강화하는 한편 핵 억제력을 핵심으로 국방력 강화와 선군정치 및 병진노선을 지속적으로 추구한다는 점에서 북한의 대남정책의 본질에는 변화가 없다.   북한은 경제정책에 있어서 인민의 생활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경공업 진흥, 기간산업의 발전을 이야기하지만 원료, 자재, 설비의 국산화, 산림복구 정책, 그리고 우리식 경제관리방법은 인민의 삶의 질을 개선하려는 실질적인 노력이 아니라 고답적인 구호성 발언에 그치고 있다. 북한은 대외경제관계를 다각적으로 발전시키는 과정에 원산-금강산 국제관광지들을 비롯한 경제개발구 개발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이유는 인민의 삶의 질 향상보다는 외화획득을 위한 수단으로서 의미가 더 큰 것으로 판단된다.   남한은 한반도 주변 정세를 포함한 대외관계가 북한을 압박하는 구도로 전개하고 있다는 점에서 적절한 수준에서 북한에 대한 유화정책을 통해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유도하는 정책을 추진하는 강온양면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북한인권위원회의 서울 사무소 설치와 함께 북한 삐라살포는 단속할 수 있을 것이라는 신호를 통해 북한을 대화로 유도하려는 이중 시그널이다. 본질적으로 한국은 정상회담의 전제 조건으로 비핵화의 의미 있는 전진을 이야기하면서 북한이 주장하는 한미군사훈련 중지에 대해서는 전제 조건 없는 회담을 주장하고 있다.   남한의 인식은 남북관계를 무정부 상태에서 상호 불신하는 정상적인 국가가 상호협력을 통해 공동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전제에서 북한과의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죄수의 딜레마게임 상황에서 TFT의 유도). 북한의 인식은 남북관계를 무정부 상태에서 상호 불신하는 자본주의 국가인 남한이 상호협력이라는 전략을 통해 북한을 흡수통일하려는 북한의 억압 및 말상 책동으로 판단하고 있다(남한이 협력을 유도하면 상황에 따라 조응하지만 결국은 체제유지를 위해 상호협력을 지속할 수 없다.). 전망과 우리의 대응 2015년 신년사에 나타난 남북한의 평화공세가 위에서 설명하는 남북한관계의 본질적 변화를 나타내는 내용은 아무것도 없다. 미국과 중국으로 요약되는 주변국의 대한반도 정책에 중요한 정책적 전환의 가능성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한반도에서 조심스럽게 시작되는 평화의 불씨를 살리기 위한 적절한 방법으로는 믿을 만한 측근의 접촉을 통한 전격적인 정상회담 합의가 현 상황에 더 가능성이 높으며 한반도 상황의 고착을 타개할 가능성이 높다. 現 제주평화연구원 연구위원. 미국 University of North Texas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미국국제정치학회가 주관하는 International Studies Quarterly의 Referee로 활동한 바 있음. 저서로는 『2011 한국인의 평화관: 통일정책과 여론』 및 『2010 한국인의 평화관: 외교정책과 여론』 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