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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공적 핵무기 폐기 협상의 사례와 함의: 1987년 워싱턴 정상회담
    저자
    한인택 (제주평화연구원 연구위원)
    발간호
    2018-18
      북핵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동북아에서 ‘정상회담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당초에는 4월 말 남북 정상회담, 5월 초 한중일 정상회담과 한일 정상회담, 5월 중 한미 정상회담, 5월 말 북미 정상회담의 순서로 정상회담이 개최될 것이라고 기대되었으나, 예상치 못하게 북중 정상회담이 먼저 개최되었고 북일 정상회담, 남북미 정상회담의 가능성도 언급되고 있다. 앞으로 상황의 전개에 따라서는 양자, 다자 정상회담이 더 많이 개최될 수 있을 것이다. 연이어 개최될 정상회담에 대비하고 최선의 결과를 낳기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워싱턴 정상회담: 성과 없던 정상회담과 실패한 정상회담이 만들어낸 성공작 역사적으로 정상회담은 위기에 대처하고 평화를 이루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대표적인 예가 1987년 12월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과 소련의 고르바초프 서기장의 워싱턴 정상회담이다. 이 회담에서 미소 정상은 그다음 해에 있을 서울 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한 한반도 긴장완화를 포함한 다양한 의제를 논의하였다. 워싱턴 정상회담의 가장 큰 직접적 성과는 중거리 핵무기를 폐기하는 중거리 핵전력 조약(INF: Intermediate-Range Nuclear Forces Treaty)의 조인이었다. 이 조약을 통해서 미소는 퍼싱-2나 SS-20와 같은 중거리 핵미사일을 폐기하기로 합의하였다. 퍼싱-2나 SS-20는 고체연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신속발사가 가능해서 상대방을 선제타격하는 데 이상적이었다. 따라서 중거리 핵전력 조약은 바로 미소 양국이 보유하고 있는 핵선제타격용 미사일을 폐기하는 것을 의미하였다. 이러한 합의는 지금의 시점에서도 쉽지 않겠지만 미소 간의 핵경쟁과 냉전이 한창이던 당시의 시점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결정이었다. 나아가 워싱턴 정상회담은 1991년에 미소가,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크고 복합적인 군비통제조약인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 Strategic Arms Reduction Treaty)을 체결하는 데 기여하였다. START의 결과로 2001년 기준 미국과 러시아가 보유한 전략핵무기의 80%가 폐기되었다. 이러한 결과를 보고 역사가들은 워싱턴 정상회담이 냉전의 종식을 낳았다고 평가하고 있다. 따라서 한반도의 비핵화와 냉전의 종식을 과제로 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워싱턴 정상회담의 성공요인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1991년 전략무기감축협정의 체결이 1987년 중거리 핵전력 조약의 체결을 바탕으로 한 것처럼, 워싱턴 정상회담의 성공은 그 이전에 열렸던 2회의 레이건-고르바초프 정상회담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레이건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1985년 11월 제네바에서 첫 정상회담을 가졌고, 1986년 10월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에서 두 번째 정상회담을 가졌다. 흥미로운 사실은 제네바 정상회담과 레이캬비크 정상회담이 각기 성과가 없었던 회담(제네바 정상회담의 경우)이나 실패한 회담(레이캬비크 정상회담)으로 당시에 평가 받았다는 점이다.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취임하고 채 1년도 되기 전에 개최된 제네바 정상회담에서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미국이 소련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비난하였고 레이건은 이에 대응해 소련이 공격적으로 행동한다고 비난하였다. 레이건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또한 인권문제, 특히 전략방위구상(SDI: Strategic Defense Initiative)을 놓고 팽팽히 대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네바 정상회담이 끝나고 공동성명은 발표되었지만 구체적인 성과가 있었던 회담은 아니었다. 1986년 레이캬비크 정상회담의 결과는 더 암울하였다. 레이캬비크 정상회담은 회담이 끝나고 공동선언문조차 발표할 수 없었던 실패한 회담이었다. 회의가 끝나고 미소 양국은 서로에게 회담 결렬의 책임을 떠넘기려고 했으며, 회담 결렬로 인해 촉발된 것은 아니었지만 레이캬비크 회담이 끝나고 며칠 뒤부터는 미소 양국이 자국에 주재 중인 상대국의 외교관들을 추방하는 등 관계가 악화되었다. 워싱턴 정상회담의 성공요인 성과가 없었던 제네바 정상회담과 결렬되었던 레이캬비크 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워싱턴 정상회담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일까? 이에 대한 해답은 우선 고르바초프 서기장의 집권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중거리 미사일뿐만 아니라 모든 핵무기를 폐기할 용의가 있었다. 고르바초프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된 배경에는 핵으로 인한 인류공멸의 위험성을 깊이 인식하였다는 점도 있지만, 그가 추구했던 개혁개방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자원과 평화가 필요하였기 때문이다. 경제를 회생시키기 위해서는 국방비를 축소할 필요가 있었고 평화, 특히 미국과의 원만한 관계가 필요하였다. 하지만 고르바초프의 집권은 이미 1985년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집권 후 레이건과 가진 3번의 정상회담 중에서 처음 2번의 회담은 성과가 없었고 왜 마지막 회담만 성공하였는지를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마지막 정상회담의 성공은 고르바초프의 인식과 진심을 레이건이 직접 확인하고 신뢰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제네바 정상회담과 레이캬비크 정상회담은 표면적으로는 성과가 없고 실패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두 차례의 만남을 통해서 레이건은 고르바초프의 인식과 진심을 개인적 차원에서 확인하였고 신뢰할 수 있었다. 워터게이트 사건을 보도해 유명해진 밥 우드워드가 저술한 Shadow: Five Presidents and the Legacy of Watergate에 따르면 레이건은 치매로 인해서 그의 대통령 재임기에 대한 거의 모든 기억이 지워졌으나 유일하게 어느 아늑한 방에서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한 세계적인 지도자와 함께 화롯가 옆에서 대화를 하였던 것을 기억하였다고 한다. 레이건이 말하는 이 대화는 제네바 정상회담 때 고르바초프와 가졌던 대화이다. 치매로 인해 대부분의 기억이 지워진 후에도 생각이 날 정도라면 제네바 정상회담이 고르바초프에 대한 레이건의 인식을 얼마나 변화시켰는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변화한 것은 레이건만이 아니었다. 제네바 정상회담이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레이캬비크 정상회담이 결렬된 데에는 미국의 전략방위구상(SDI) 에 대한 미소 간의 이견이 중요한 원인이었다. 고르바초프는 어떠한 경우에도 SDI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러던 고르바초프가 나중에는 SDI에 대한 입장을 바꾸었다. SDI에 대한 고르바초프의 인식이 바뀌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SDI의 현실적 무용성에 대한 과학자들의 견해를 접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르바초프의 이러한 인식변화는 엄격히 말하면 정상회담을 통하여 발생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고르바초프가 정상회담을 통해서 레이건과 미국도 평화를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체감하지 못하고 미국을 계속 위협으로만 인식하였다면 과학자들의 객관적인 견해라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레이건에 대해 갖게 된 이해와 신뢰가 고르바초프가 갖고 있던 SDI에 대한 불필요한 공포를 잠재웠던 것이다. 인식을 변화시키고 신뢰를 구축하는 정상회담을 위하여 정상회담을 통해서 각국이 기존에 가지고 있는 입장만을 되풀이 한다면 굳이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의의가 없을 것이다. 레이건-고르바초프 정상회담이 우리에게 주는 함의가 있다면, 성공적인 정상회담이란 인식의 변화와 신뢰구축을 수반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에는 고르바초프 같은 전향적 지도자의 존재라는 커다란 전제조건이 있다.) 비핵화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인식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 북한은 진정한 평화가 핵무기를 개발하여 상대방을 핵전쟁의 공포에 떨게 할 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과 함께 협력할 때 찾아온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한편 다른 나라들은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게 된 동기를 이해하고 북한의 우려를 완화하기 위해서 노력하여야 한다. 유럽이나 동남아에서는 일찍이 협력적 안보로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졌으나 동북아에서는 그 단계까지 인식의 발전이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인식의 변화는 단시간 내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공동합의문 등을 통하여 문서화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너무 조급한 마음으로 정상회담에 임하는 자세는 바람직하지 않다. 표면적인 성과가 없더라도 심지어 결렬이 되더라도 정상회담을 통해서 상대방의 인식과 의사를 확인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서 커다란 성과이다. 정상회담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인식변화와 신뢰구축이 가능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한 여건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한 단초는 다른 이 아닌 고르바초프에게서 찾을 수 있어 보인다. 고르바초프는 2번째 미소 정상회담을 앞두고 레이건 대통령에게 “런던 혹은 아이슬란드 정도의 중간 지역에서 만나 형식에 치우치지 말고 비공개로 군비 통제 문제를 솔직하게 논의하자”는 제안을 하였다(김연철 저, 『협상의 전략』 281 페이지에서 재인용). 그 결과 제2차 레이건-고르바초프 정상회담은 인구 10만 명 남짓한 조용한 도시인 레이캬비크에서, 그것도 작고 외진 2층 건물에서 개최되었다. 고르바초프의 제안은 그가 젊었을 때 흑해 연안의 휴양지에서 근무했던 경험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모스크바와 달리 휴양지가 주는 자유로움과 여유는 인식의 전환을 촉진하고 신뢰의 구축을 돕는다는 사실을 고르바초프는 경험을 통해서 알았던 것이다. 한국은 그동안 G20 정상회의, 핵안보 정상회의 등을 성공적으로 개최하여 국제사회에 기여하고, 국가적으로도 위상을 제고하고 영향력도 강화한 바 있다. 이러한 경험을 살려서, 앞으로 개최될 정상회담 중의 일부는 한국에서 개최되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 한국이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한반도에서 냉전 종식의 물꼬를 튼 노태우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서기장 간 한소 정상회담은 북한을 의식한 고르바초프 서기장의 제안으로 한반도 남단의 섬인 제주도에서 개최되었다. 만약 다시 제주도에서 정상회담이 개최된다면, 한소 정상회담이 개최되면서 시작된 한반도 냉전 종식의 모멘텀이 바로 그 발상지인 제주도에서 결실을 보는 의의가 있을 것이며, 각국의 정상들이 제주도에서 고르바초프가 제안한 것처럼 형식에 치우치지 않고 허심탄회하게 논의한다면 한반도의 비핵화에도 한 걸음 더 가까이 갈 수도 있을 것이다. 現 제주평화연구원 연구위원(연구실장).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와 同 대학원 외교학과를 졸업한 후 UC, Berkeley 정치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 UC, Davis, University of Washington, 이화여자대학교, 제주대학교 등에서 강의. 핵전략, 안보협력, 공공외교가 주요 관심분야이며, “한국형 공공외교 모델의 모색: 정책네트워크를 활용한 맞춤형, 과학적 공공 외교”와 “핵폐기 사례연구: 남아프리카공화국 사례의 함의와 한계” 등의 저술이 있음.
  • 대선 이후 러시아 대외정책 전망: 대미, 대한반도 정책을 중심으로
    저자
    제성훈 (한국외국어대학교 노어과 교수)
    발간호
    2018-17
      지난 3월 1일 크렘린궁 인근에 위치한 마네쥐(Manege)홀에서 푸틴 대통령은 자신의 열네 번째 연례교서를 발표했다. 오는 3월 18일에 치러질 대통령선거에서 푸틴 대통령의 4선이 확실시되기 때문에 이번에 발표된 연례교서는 사실상 차기 정부, 다시 말해 4기 푸틴 정부의 청사진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푸틴 대통령은 먼저 복지·삶의 질 제고, 도시·지역개발, 주택, 교통·통신 인프라, 의료·보건체계, 환경, 문화·교육, 과학기술 혁신, 재정 확보, 비즈니스 환경 개선 등 다양한 국내문제를 언급하고 나서, 러시아가 개발한 최신무기체계를 이례적으로 영상까지 활용하여 소개하는데 상당히 긴 시간(약 45분)을 할애했다. 이 과정에서 이러한 최신무기체계가 미국의 군사력에 맞서기 위해 개발되었다는 사실도 숨기지 않았다. 푸틴 대통령은 2002년 미국의 일방적인 탄도요격미사일제한조약(ABM 조약) 탈퇴 이후 지난 15년간 계속된 글로벌 MD 체계 구축으로 인해 이를 극복하는 첨단전략무기를 개발할 수밖에 없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3기 푸틴 정부 시기(2012~18)를 거치면서 미·러 관계는 심각하게 악화되었다. 현재 미·러 관계의 악화는 시리아 내전, 우크라이나 위기 등과 함께 국제안보질서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으며,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 진전과 맞물려 한반도 정세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글에서는 3월 18일 대선 이후 러시아의 대외정책을 대미, 대한반도 정책에 한정하여 전망해보고자 한다. 미국과의 ‘제한적 협력관계’ 설정 2012년 3기 푸틴 정부 출범 이후 계속 심화되던 미·러 갈등은 지난해 미국의 대러 제재 확대와 ‘제재의 법제화’로 인해 사실상 ‘신냉전’의 단계로 접어들었다. 미국과 러시아는 이미 2012년 상대국의 인권 문제를 제기하며 각각 ‘마그니츠키 법’과 ‘디마 야코블레프 법’을 제정하여 제재명단에 인사들을 추가해왔고, 2014년부터는 ‘우크라이나 위기’와 관련한 상호 경제제재를 계속해왔는데, 최근에는 외교, 군사 분야까지 갈등이 확대되고 있다. 2016년 말 미국이 자국 대선 개입을 이유로 러시아 외교관 35명을 추방하고 외교공관 2곳을 폐쇄하자, 2017년 7월 러시아도 자국 주재 미국 외교관 및 기술직 직원 수 감축을 요구하고, 8월에는 미국 대사관이 사용하던 창고와 별장 사용을 중단시켰다. 이에 맞서 다시 미국은 8월 23일부터 러시아 전역에서 비이민 비자 발급을 중단하고 9월 1일부터 대사관에서만 이를 재개했으며, 샌프란시스코 주재 러시아 총영사관과 워싱턴 및 뉴욕 소재 무역대표부 건물 2곳을 폐쇄했다. 또한, 2017년 3월 셀바 미국 합동참모차장이 러시아가 지상발사형 순항미사일을 배치하면서 중거리핵전력협정(INF)을 위반했다고 주장하자, 러시아는 이를 부인하고 오히려 미국이 루마니아와 폴란드에 토마호크 미사일 발사 시설을 배치하면서 해당 조약이 금지한 순항미사일 개발 착수 의지를 보인다며 비난했다. 더 나아가 11월에는 클린체비치 러시아 상원 국방안보위원회 제1부위원장은 MD 배치 등 미국과 NATO의 비우호적 조치들에 맞서기 위해 쿠바 군사기지를 부활하자고 주장했다. 양국의 갈등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전망은 미국 의회에 의한 ‘제재의 법제화’ 때문에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2017년 7월 미국 의회가 러시아 석유·가스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 제한, 사이버 공격, 부패, 인권 탄압 관련 인사에 대한 제재 등을 가능하게 하는 ‘제재를 통한 미국의 적 대응법(Countering America’s Adversaries Through Sanctions)’을 통과시키면서 약 40개 러시아 방위산업체와 정부기관이 제재대상으로 지정되었는데, 사실 이 법의 가장 큰 독소조항은 대통령이 의회의 허가 없이 대러 제재를 해제할 수 없게 만든 데에 있다. 따라서 이 법은 향후 양국 관계 개선을 가로막는 가장 큰 법적 걸림돌이 될 전망이다. 이처럼 적어도 트럼프 정부 임기 내에 양국 관계 개선 가능성은 사실상 사라지고, ‘신냉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신냉전’은 냉전 시절처럼 이념적 대립의 수준에서 전개되고 있지는 않지만, 서로 다른 지정학적 구상의 대립으로 나타난다는 점에서 냉전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러시아는, 얄타 체제의 산물이자 냉전 시절 형성된 글로벌 안보 레짐은 유지하고 싶어 하지만, 몰타 체제의 산물이자 탈냉전의 결과로 형성된 미국의 패권에 더는 순응하려 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몰타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모스크바의 전략가들과 얄타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워싱턴의 전략가들 간 서로 다른 지정학적 구상의 대립이자 투쟁이 미·러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는 것이다. 연례교서를 발표하면서 푸틴 대통령은 첨단전략무기 개발 성과를 과시하는 동시에, 미국과 “협상 테이블에 앉아서”, “혁신적이고 유망한 국제안보체계”에 대해 논의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언급했다. 모스크바의 전략가들은 과거 냉전시절과 마찬가지로 주요 국제문제를 관리하고 국제안보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미국과의 상호협조가 필수적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푸틴 대통령이 계속 권좌에 앉아있는 한 트럼프 정부가 대러 관계를 전면적으로 개선할 명분을 찾기 어렵다는 데 있다. 따라서 대선 이후 러시아의 대미 정책은 국제안보와 관련하여 미국과 ‘제한적 협력관계’를 설정하는 데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북한 체제에 대한 안전보장 공약과 남·북·러 3자 경제협력 추진 지난해 북한의 핵·미사일 시험으로 인한 한반도 위기상황에서 러시아는 다음과 같은 입장을 유지했다. 첫째, 핵보유국 지위를 획득하려는 북한의 열망은 글로벌 비확산 레짐을 침식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수용·승인될 수 없고, 따라서 이를 저지하려는 유엔의 대북제재에 찬성한다. 둘째, 대북 협상의 궁극적 목표는 한반도 비핵화이지만, 북한에 대한 ‘극심한 압력’은 인도적 재난을 야기할 것이기 때문에 반대한다. 셋째, 북한과 미국, 그리고 유관국들은 긴장을 고조시킬 수 있는 조치를 자제하면서 협상에 의해 문제를 해결하는데 집중해야 한다. 이러한 입장을 견지하면서 러시아는 한반도 위기 해결을 위한 중재자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했다. UN 안보리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하면서도 북한에 대한 ‘과도한 제재’를 막기 위해 노력했으며, 중국과 함께 한반도 위기의 단계적 해결방안을 담은 ‘중·러 로드맵’을 마련하여 북한과 미국 간 입장 조율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러한 배경에서 지난해 12월 페스코프 대통령 공보비서는 러시아는 기꺼이 미국과 북한 간 중재자로 나설 준비가 되어 있지만, 이를 위해서는 양측의 의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러시아는 적어도 1990년대 중반부터 동북아, 특히 한반도 문제에서 중국의 주도권을 인정했기 때문에, 한반도 위기와 관련하여 중국과 보조를 맞추면서도 한 발짝 뒤에서 따라가는 모습을 보여 왔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러시아는 북한, 미국 측과 지속적으로 접촉하면서 보다 적극적으로 중재자 역할을 수행하고자 했다. 이는 첫째, 북한이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진전시켜 명실상부한 핵보유국이 되면서 냉전 시절에 형성된 글로벌 안보 레짐이 침식되고 있고, 둘째, 한국 영토 내 사드 배치가 미국의 글로벌 MD 체계 구축 차원에서 확고해진다면 이는 냉전 시절처럼 미국의 대러 포위 전략이 본격화되는 것을 의미하며, 셋째, ‘신냉전’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한반도 위기가 시리아 내전과 함께 러시아가 미국과 협의 채널을 계속 가동할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국제문제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2018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관계 개선의 전기(轉機)가 마련되고, 이어서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 개최가 합의되면서 러시아의 한반도 정책에도 변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북미 간에 한반도 위기를 해소할 수 있는 합의가 이루어질 경우, 북한 핵·미사일 프로그램 진전이 야기한 글로벌 비확산 레짐 침식이 중단되고, 한국 영토 내 사드 배치도 명분을 상실하게 될 것인데, 이는 러시아의 전략적 이익에 정확히 부합한다. 더불어 러시아는 극동·시베리아 개발에 활력을 불어넣으면서 한반도에서 자국의 입지를 강화할 수 있는 남·북·러 3자 경제협력 실현을 위한 기반도 확보하게 된다. 따라서 이 경우 러시아는 첫째, UN 안보리에서 대북제재 완화 또는 철회를 주도하면서 향후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시 북한체제에 대한 안전보장 제공을 공약하고, 둘째, 한반도 위기 해소를 불가역적으로 만들려는 목적에서 남·북·러 3자 경제협력 추진을 가속화할 것이다. 반대로 북미 간에 합의 도출이 실패할 경우, 러시아는 중국, 한국과 긴밀히 협조하면서 북한과 미국의 입장 조율을 위한 중재자로 다시 나서게 될 것이다. ‘한반도의 봄’과 ‘신북방정책’ 2017년 9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개최된 3차 동방경제포럼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러시아를 비롯한 탈소비에트 국가들과의 협력을 강화하려는 목적의 ‘신북방정책’을 공식화했다. 하지만 미·러 갈등으로 인한 미국의 대러 경제제재와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 진전으로 인한 한반도 위기는 ‘신북방정책’ 수행을 가로막는 큰 장애물이었다. 물론 미·러 갈등은 조기에 해결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지만,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 개최 합의는 ‘신북방정책’의 실질적 성과와 한·러 경제협력 확대에 대한 기대를 고조시키고 있다. 일촉즉발의 전쟁위기에서 극적으로 찾아온 ‘한반도의 봄’이 한반도의 지정학적 운명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기회를 주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위기가 아닌 새로운 희망으로 한반도 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現 한국외국어대학교 노어과 교수, 대통령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전문위원. 2002년 한국외국어대학교 노어과를 졸업하고, 2004년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반대학원 정치외교학과에서 정치학 석사학위, 2009년 모스크바 국립대학교 철학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음. 이후 한국외국어대학교 러시아연구소 HK연구교수,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러시아·유라시아팀장을 역임했음.
  • 강력한 지도자(strongman)를 바라는 강대국 국내정치의 위험성
    저자
    이성우 (제주평화연구원 분쟁해결연구부장)
    발간호
    2018-16
      우리나라의 경우,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에 따른 선거민주주의가 정착하고 30년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선거가 끝나면 그 결과를 두고 예외 없이 언론에서는 “유권자들의 뜻은 현명했다” 또는 “민심은 지혜로운 선택을 했다”는 식의 평가를 내놓았다. 민주주의 자체가 다수유권자의 결정에 따라서 정부를 구성하는 정치원리인 만큼 여론의 결정에 승복하는 모습이 다음 선거에서 승리의 기대를 높이는 합리적 선택이다. 민주주의에서 선거의 결과가 국민의 선택이라고 해서 항상 최선이 아니고, 대부분의 경우 한 국가의 국민이라는 정체성에 근거한 집단적인 의사결정과정인 투표를 통해 위험한 선택으로 나아갈 수 있다. 위험한 선택은 위험한 결과로 이어지고 이러한 오류를 바로잡는 데는 많은 정치적, 경제적 비용이 따른다는 점에서 엘리트 민주주의의 비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보통선거제도에 기초한 대중민주주의에서 여론의 정서적 비논리성, 비일관성, 비도덕성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 무비판적인 동조와 같은 중우정치와 선동정치의 위험성이 있지만 이를 바로 잡는 것도 결국 유권자의 몫이다. 한국의 주변국관계에 긴밀한 영향을 미치는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에서 유권자들의 - 그들의 지도자에 대한 - 정치적 선택이 중우정치의 위기에 빠져들고 있다. 미국이 민주주의적 정치체제라는 점에는 의심이 없지만 국민의 자유로운 선거에서 선출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주류를 이루는 백인 중산층의 욕심을 반영하는 비도덕적이고 정서적인 선택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 당시 러시아의 선거개입과 관련된 스캔들에 대한 수사를 피하려는 사법방해 혐의를 받고 있다. 최근의 미국 발 무역전쟁은 올 11월에 예정된 중간선거와 2년 후의 재선을 염두에 두고 전통적 지지세력인 러스트 벨트지역의 블루칼라 중산층 유권자를 위한 국내정치용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국제정치학계의 관심전환이론이 주장하듯이 국내정치에서 여론의 비판을 회피하고 지지세력을 동원하려는 분쟁유발행위다. 군사적 분쟁이 부담이 큰 만큼 무역분쟁을 통해 국내 유권자를 단합시키고 정치적 지지를 이끌어내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은 공산당이 집권한 이래 공산당 일당독재체제를 유지해왔지만 1인 우상화나 세습이 아닌 지도부의 정치권력에 교체가 주기적으로 가능했다는 점에서 개혁개방 이후 장쩌민과 후진타오, 그리고 시진핑으로 이어지는 권력교체가 로마시대의 귀족정(aristocracy) 또는 과두정(oligarchy)의 형태였다. 새 지도자가 차기 지도부를 구성할 때 차차기 지도자까지 자동적으로 포함시킴으로써 차기 정권의 실세들이 독주할 수 없도록 견제장치를 갖추는 나름대로의 엘리트 민주주의가 작동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최근 중국의 국가권력은 19기 2중 전회에서 헌법 개정안 논의를 거쳐 2018년 3월 전인대에서 '국가주석 2연임 이상 제한' 조항을 삭제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장기 집권을 사실상 가능하게 하는 중국 헌법 개정안을 내놨다. 중국 주요 관영언론 매체들은 사회주의 현대화 대국이라는 중국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중앙 집중적이고 통합된 리더십이 필요하며 분권화된 리더십은 위대한 목표 실현에 부정적이라는 이유를 들어 시진핑 장기집권의 제도화를 지지하고 나섰다. 중국의 정치 엘리트들은 강대국의 명분 아래 장기집권과 국가주의의 정당화를 위해 위험한 선택을 했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의 사례는 강대국에 대한 러시아 국민들의 역사적 회한을 보여주는 노골적인 사례다. 푸틴 대통령은 2000년부터 2008년까지 2대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후임으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가 대통령을 4년간 수행하는 동안 총리직을 맡았다가 2012년 4대 대통령에 당선되고 이제 다시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다. 러시아 국영 여론조사기관 브치옴(VTSIOM)이 3월 1일 공개한 설문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69%는 3월 18일 대선에서 푸틴 대통령을 뽑겠다고 답했다고 타스통신이 보도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푸틴 대통령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뒤집고 싶은 역사’로 소련 붕괴를 언급하면서 러시아 국민들 사이에 남아있는 세계 초강대국으로서 소련의 향수를 자극하는 애국심 마케팅에 주력하고 있다. 외신들은 푸틴의 선거 전략이 제국주의적 야욕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다고 비판하지만 그럴수록 러시아 내 여론의 지지는 확대되고 있다. 이와 때를 같이해 푸틴은 의회 국정연설을 통해 러시아는 차세대 대륙간 탄도탄인 ICBM RS28 사르마트, 핵추진 엔진을 장착한 순항 핵미사일, 무인 수중드론과 같은 첨단무기를 언급하면서 다시 미국에 필적하는 강대국의 면모를 갖춘 러시아를 언급하고 있다. 러시아는 이제 예전의 러시아가 아니며 “그동안 아무도 러시아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들어야 할 때입니다”라고 러시아의 복권을 선언했다. 푸틴 대통령의 이러한 신무기 개발 선언으로 시리아와 크림반도 등의 분쟁에서 러시아의 목소리를 제대로 낼 수 있는 근거가 된다는 점에서 적어도 러시아 유권자들 사이에는 장기집권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정치적 자산으로 작용하고 있다. 일본의 아베 수상도 일본 유권자들의 애국심을 자극하는 우경화를 통해 장기집권을 위한 정치적 지지를 동원하고 있다. 일본의 집권 자민당은 2017년 3월 총재 임기를 현행 ‘2기 연속 6년’에서 ‘3기 연속 9년’으로 연장하는 당칙 개정을 결정하여 아베 총리의 9년 장기집권을 위한 기초를 마련했다. 아베 총리는 중의원과 참의원 내 헌법 개정을 위한 국회 발의에 필요한 3분의 2 이상 의석을 확보한 현 시점을 헌법 개정의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하고 있다. 전쟁 포기를 담고 있는 헌법 9조 개정엔 일본 국민 절반 이상이 반대하지만 높은 지지율과 의석수를 기반으로 국민을 설득해간다는 것이다. 아베 수상은 방위비를 국내총생산의 1% 이내로 억제할 생각이 없다며 2017년 방위예산도 사상최대인 5조 1251억 엔을 편성하여 군비확장을 통한 군사대국화를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아베의 군사대국화와 보통국가화라는 우경화에 대한 여론의 지지는, 아베가 잘해서가 아니라 아베 총리 이외에 아무도 나오지 않기 때문에 아베가 총리가 계속 총리직을 수행하게 된다는, 일본의 유권자들의 설명에 잘 나타난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지도자는 대중의 정치적 지지를 얻기 위해서 대외적인 분쟁에 참여함으로써 국내정치적 지지를 동원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관심전환이론이 더욱 설득력을 얻는다. 같은 논리적 연장선에서 민주적으로 선출된 지도자는 다른 민주주의 국가와 전쟁을 수행할 가능성이 높지 않는다는 민주주의 평화이론에 중대한 수정이 필요하다. 현재 국제관계의 전개에 대한 이론적 해석은 민주주의 국가의 지도자는 정치권력의 연장을 위해서 국가주의에 기초한 정치적 지지를 동원하는 과정에 군비경쟁, 보호무역, 국수주의와 같은 폐쇄적 대외정책을 활용하려는 경향이 일반화 되고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4강의 국내정치는 국가주의(nationalism)를 앞세우는 강력한 지도자가 여론의 지지를 얻고 이를 통해 장기집권을 이어가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은 모두 강대국의 영광을 위해 강력한 군사력, 국부 유출을 방지하는 보호무역, 타민족과 국가에 대한 배타적 폐쇄주의와 대결과 갈등을 부추기면서 신뢰와 협력의 기반을 축소하고 있다. 미국의 압도적 우위의 국력으로 유지되던 기존의 국제질서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경쟁국으로 간주되었던 중국과 러시아는 새로운 질서와 새로운 역할을 모색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미국이 군비경쟁과 보호무역을 시작하면 중국과 러시아가 이에 대한 대응으로 군비현대화와 무역전쟁을 추진하고 일본은 다시 여기 대응하는 형식으로 동아시아의 위험한 군사화와 보호무역의 경주가 지속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에서 국내정치의 흐름을 전환할만한 동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이러한 위기상황을 해결할 열쇠는 미국 유권자의 선택에 달려있다. 미국이 폐쇄주의, 민족주의, 보호무역주의라는 낡은 가치를 버리고 국제주의, 개방주의, 자유무역, 평화주의를 지지하는 정치적 선택을 통해 인류보편의 가치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정치적 전환이 일어나야 한다. 대량살상무기는 더 이상의 기술혁신 없이도 지구를 완전히 파괴하고도 남을 정도이고 보호무역은 결국 누구의 이익도 없는 무의미한 소모전이라는 사실은 쉽게 추론할 수 있다. 강대국의 정치적 결정과정에 강력한 지도자를 원하는 여론의 이기적 동기를 차단하고 인류보편의 가치로 돌아가는 노력에 미국의 유권자들이 앞장서야 한다.   現 제주평화연구원 분쟁해결연구부장. 단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후 2004년 미국 University of North Texas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음. 단국대학교 분쟁해결연구센터에서 연구위원으로 활동하며 “한국의 공공분쟁 사례연구”를 주제로 대한민국 학술진흥재단 중점연구소 연구과제를 수행하였음. 학술활동으로는 미국국제정치학회가 주관하는 International Studies Quarterly의 Referee로 활동한 바 있음. 저서로는 『2011 한국인의 평화관: 통일정책과 여론 』 및 『2010 한국인의 평화관: 외교정책과 여론』 등이 있음.
  • 평창 동계올림픽을 통한 남북한 교류협력과 이후 전망
    저자
    정영태 (북한연구소 소장)
    발간호
    2018-15
      전쟁발발 우려에서 평화로 바뀐 평창 동계올림픽 2017년 평창 동계올림픽은 남북관계에서 많은 것을 변화시켜 주는 계기로 작용했다. 본래 올림픽은 세계평화의 제전으로 불리기도 한다. 스포츠로 세계평화에 기여하기 위한 것이 바로 올림픽 정신이기 때문이다. 올림픽의 평화적 역할과 기능이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십분 발휘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동안 남과 북은 한차례의 전쟁도 겪었고 각종 심각한 군사적 충돌들을 경험하기도 했다. 지구상에서 마지막 남은 분단국가가 바로 남북한이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은 국제적 제재와 압박으로 인해 전쟁의 먹구름까지 몰아오고 있다는 우려를 낳았다. 북한이 비핵화로 나오게 하기 위해 미국이 군사적 옵션으로 압박할 가능성이 있다는 추정들이 나왔고 한반도 전쟁 발발 위험성이 국제적으로 부각되면서 성공적인 평창 동계올림픽을 기대하기 어렵게 되는 듯했다. 실제로 일부국가에서는 노골적으로 불참을 시사하는 발언이 나오기도 하였다. 프랑스 스포츠 장관이 “한반도의 위기상황으로 선수단의 안전을 확신할 수 없게 된다면 우리 올림픽팀은 프랑스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 언급한 바 있어 우리를 놀라게 하였다. 프랑스에 이어 독일, 오스트리아에서도 평창올림픽 불참 가능성이 전해지기도 하였다. 이에 더해 작년 12월에 “우리 선수들이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는가는 미해결 사항”이라는 유엔주재 미국대사의 발언이 나오면서 평창 동계올림픽은 개최 자체도 불투명해질 수 있다는 과도한 추정이 나올 정도로 위기에 봉착하는 상황까지 치닫는 듯하였다. 그러나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 결정으로 이러한 먹구름은 말끔히 걷혔다.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 의사는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에서 처음으로 확인되었다. 북한은 ‘민족, 자주, 우리 민족끼리’를 강조하면서 평창올림픽 참여에도 긍정적 반응을 보인 것이 바로 그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남북관계를 개선해 “사변적인 해로 빛내야"한다고 하는 등, 남북대화 재개에 보다 적극적인 태도를 과시하였다. ‘민족, 자주, 우리 민족끼리’를 내세우면서 정세를 격화시키는 일을 하지 않도록 하자고 촉구하였고 남북한이 시급히 만나야할 필요성도 강조하였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적 환경마련을 위해 공동 노력을 이행하자고도 했다. 김정은 위원장의 남북관계 개선 의지 표명은 거의 해마다 반복되는 것이지만 당장 우리의 관심을 끈 것은 평창올림픽에 대표단 파견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할 용의가 있다고 한 그의 언명이었다. 정부의 발 빠른 대응으로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를 이끌어 내다 이에 우리 정부가 매우 발 빠르게 대응한 것이 주효했음인지 남북대화가 재개되어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가 실현되기에 이르렀다.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 발표 다음날 바로 대한민국 통일부는 장관 명의로 남북 고위급 회담을 제의하는 민첩성을 보였다. 이어 오랫동안 불통이었던 판문점 연락채널이 재가동(1월 3일)되었고 다음날 한미정상은 올림픽 기간 중 한미연합 훈련을 연기하는 데 합의함으로써 남북대화가 순조롭게 재개되어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 수순을 용이하게 하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이후 남북대화는 매우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북측의 남북 고위급 회담 제의 수용(5일)에 이어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남북 고위급 회담이 개최(9일)되었다. 동 회담에서 남북 양측은 첫째, 북측 선수단, 응원단, 고위급 대표단, 예술단, 태권도단, 참관단 파견, 둘째 고위급 및 군사당국 회담 개최, 셋째 한반도 문제 남북 당사자 해결에 합의하였다. 이어 북측 예술단 파견을 위한 남북실무접촉(15일)을 시작으로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 절차가 본격적으로 이행되어 나갔다. 북측 예술단 사전점검단 7명 방남(21일)에 이어 마식령 스키장 남북선수 공동훈련 진행(31일), 북한 선수단 32명 방남(2월 1일), 북한예술단 선발대 23명 방남(5일) 및 북한 예술단 114명 방남(6일), 북한 대표단, 태권도 시범단, 응원단, 기자단 260명 방남 그리고 김영남 최고인민위원회 상임의장,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을 비롯한 북측 고위급 대표단 22명의 방남 등이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남북이 공동 입장하는 개회식도 진행되었고 북한 예술단 공연과 태권도 시범도 예정대로 성황리에 끝났다. 평창 동계올림픽, 남북교류협력의 새 장을 열어주다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는 남북한의 교류협력 발전 측면에서 여러 가지 의미를 더한 것으로 판단된다. 먼저 지적될 수 있는 것은 평창 동계올림픽이 명실상부한 평화 올림픽으로 자리 잡아 가면서 향후 교류협력을 통한 남북관계 개선의 청신호가 켜진 점이다. 최소한 올림픽 기간 동안에는 북한의 군사적 도발로 한반도의 평화가 위협받는 상황은 연출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한반도 평화 분위기는 올림픽 이후에도 지속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놓기도 하였다. KAL기 폭파나 서해해상에서의 군사충돌로 군사적 긴장이 심화되었던 88올림픽 때나 2002년 한일 월드컵 때와는 판이한 상황이다.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은 남북교류협력 활성화를 위한 남북관계 복원과 평화정착을 논할 수 있는 북한의 고위급 대표단의 방남 기회를 제공해 주어서다. 북한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인 김영남과 김정은의 친 여동생이자 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인 김여정을 보내어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그들의 진의를 전달하고자 노력한 것처럼 보인다. 특히 김여정은 오빠 김정은의 친서와 문재인 대통령 방북 초청 의사를 전하기까지 하여 남북한 관계 개선 가능성을 한층 높여 놓았다. 이에 더해 북한은 대남관계 관련 실무총책으로 알려진 통일전선부장 김영철을 평창 동계올림픽 폐막식 사절로 보낸 것이다. 김영철 부장은 문재인 대통령을 접견하여 약 1시간 동안 깊은 대화의 시간을 가졌고 남측 고위급 인사들을 잇따라 만나 남북관계 개선 및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실무적 대화를 교환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통일부 당국자들이 밝힌 바에 따르면, 김영철 부장과 이들 남측 고위 당국자들 간에는 “지속 가능한 남북관계와 한반도 평화정착, 국제사회와의 협력, 이런 부분들을 어떻게 잘 조율해서 나갈지에 대해 전반적인 의견교환이 있었다”고 하였다. 북한 대표단의 방남으로 한반도에는 “상시적으로 (남북대화가) 이뤄질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고, 한 청와대 고위 관계자의 자평도 있었다. 결국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 동안 이뤄진 남북 고위 당국 간 밀접한 접촉은 우리 특별사절단의 평양 답방으로 이어지도록 하였고 이는 남북관계의 획기적 발전 가능성을 예고해 주고 있기도 한다. 나아가 평창 동계올림픽은 체육교류를 통한 비정치적 분야의 실질적인 남북 교류협력 활성화를 위한 창을 열어놓기도 하였다. 평창올림픽에 임박해 북한이 참가를 결정했고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이 성사되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도 북한 주요 종목 선수들에게 와일드카드를 부여하며 평창 동계올림픽이 평화 올림픽이 되도록 적극 지원하였다. 개회식에서 남북 선수단이 한반도기 아래 공동 입장하는 것을 관철하게 되어 ‘남북은 하나다’는 이미지를 만방에 과시했다. 북한 응원단의 응원은 평화올림픽의 의미를 더해 줬다. 북한 예술단의 한국 공연도 또 다른 남북 문화교류의 장을 열어 놓았다. 서울과 강릉에서 북한 삼지연 관현악단의 공연이 화려하게 펼쳐졌다. 2002년 8월 서울에서 열린 8.15 민족통일대회 이후 16년 만에 열린 북한 예술단 공연이다. 향후 전망은?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 동안 우리 정부가 이루지 못한 것이 하나 있다. 미북 접촉의 불발이 그것이다. 만약 미국 고위급 대표단과 북한 고위급 대표단의 접촉이 성사되었다면 핵문제 해결을 위한 미북 대화의 실마리라도 마련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부는 미북 대화를 중재하는 데 실패했고 비핵화 관련 미국의 입장과 북한의 입장이 그만큼 간격이 크다는 사실만을 확인하였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핵 관련 미북 대화를 이끌어 내는 우리의 노력은 지속되고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 북한 참가에 대한 답방으로 우리의 특별사절단이 평양을 찾았다. 여기에서 미북 대화를 이끌어 내는 노력은 계속될 것이다. 미북 대화를 통한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없이 남북관계 개선 노력에 한계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북 양측이 남북대화의 끈을 놓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문재인 정부는 미북 대화가 성사되어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과정을 걸을 때까지 남북대화의 불씨를 살려가고자 할 것이다. 대북제재와 압박으로 남북한의 본격적인 경제교류와 협력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최소한의 남북교류협력을 발전시켜 나가고자 할 것으로 예상된다.   現 북한연구소 소장. 파리1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센터 소장과 동양대 통일군사연구소장 등을 역임.
  • 지역간협의체 아셈(ASEM)의 유용성에 대하여
    저자
    박선희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EU센터 연구위원)
    발간호
    2018-14
    지역통합연구부: 동북아의 미래 전략과 ‘지역 간 주의(Inter-regionalism)’ 시리즈 3 (제도 및 사회·문화)   2017년 9월과 11월에 ASEM 교육장관회의와 경제장관회의가 우리나라에서 개최되었다. 2016년에는 제7차 아셈문화장관회의를 우리가 주최한 바도 있다. 일련의 아셈 장관급회담 개최를 계기로 2016년 출범 20주년을 기념한 지역간협의체인 아셈의 현주소를 점검하고자 한다. 1. 아셈의 새 틀? 새로운 운영방식? 지난 2016년 울란바토르(Ulaanbaatar) 아셈 정상회담은 출범 20주년을 기념했다. 아셈 정상회담은 1996년 출범 이래 매 2년마다 개최되어왔으며 20주년 회담은 「ASEM 20주년 : 연계성을 통한 미래 파트너십(20 years of ASEM: Partnership for the Future through Connectivity)」이란 주제로 열렸다. 지난 20여 년간 아셈은 아시아-유럽 간 대화와 협력을 위한 지역간협의체(inter-regional forum)로 성장해 왔다. 이는 1996년부터 2017년까지 총 11번의 아셈정상회담, 73번의 장관급회담, 107번의 고위급 회의(Senior Official’s Meeting), 135번의 국장급(DG Officials)회의, 301회의 아셈 관련회의 그리고 36회의 아셈포럼을 개최하였음을 의미한다.1) 연계가 취약했던 아시아와 유럽 간 협력을 도모하자는 취지에서 개최되기 시작한 본 지역협의체는 정치, 경제, 교육·문화 분야 등 이른바 3대 기둥(three pillars)이라 부르는 다양한 분야를 놓고 협력하는 아시아와 유럽 간 지역협의체로서 자리매김해왔다. 그뿐만 아니라 아셈 지역간협의체의 운영상 특성으로 아시아와 유럽 간의 상호협력뿐만 아니라 아시아 국가 간 상호협력 강화를 기대할 수도 있다. 아셈은 지역 대 지역(region to region)의 접근 방법으로 운영되며 EU라는 강력한 지역단위체가 유럽 파트너의 역할을 수행함으로 아셈 속의 아시아 파트너는 하나의 지역처럼 기능하도록 요청받고 있기 때문이다. 아셈의 운영방식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사무국을 갖고 있지 않은 아셈은 정례화 된 정상회담, 외무장관회의 및 고위관리회의 준비를 위해 조정국(coordinator)체재로 운영되고 있다. 조정국은 2년 임기로 지역별로 의견을 수렴하는 연락관 역할을 수행하며, 아시아 지역에서는 동북아 및 아세안에서 각각 한 나라씩 그리고 유럽에서는 EU 의장국과 EU 대외관계청(EEAS)이 조정국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조정국을 통해서 먼저 지역별 사전의견 수렴 작업을 거치는 이 운영방식은 아셈의 주요 회의에 앞서 지역별 협력 및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게 하여 아셈 속에서 아시아 지역주의의 활성화를 기대할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설립 당시 25개국(+EU 집행위원회)이었던 아셈은 현재 EU 대외관계청과 ASEAN 사무국을 포함하여 총 53 회원(회원국과 사무국 포함)으로 확장되었다. 아펙(APEC)과 달리 아셈은 EU와 ASEAN지역기구의 확장된 회원국을 단계적으로 모두 받아들였다. 2008년 제7차 정상회의부터 ASEAN+3의 틀과 EU 회원국 이외의 국가까지도 가입을 승인하여서 인도, 몽고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스위스, 노르웨이 그리고 아시아와 유럽 두 지역 어디로도 분류가 모호한 러시아, 호주, 뉴질랜드로 외연이 대폭 확대되었다(아래 표 1 참조). 1·2·5차의 확장이 EU나 ASEAN의 자체 회원국 확대에 의한 아셈 회원국 확대 성격이 있다면2) 3·4차 확장은 이와는 성격이 다르다. 특히 3차 확장은 아시아나 유럽으로의 분류가 사실상 어려운 국가들을 포함하고 있다(호주, 뉴질랜드, 러시아). 이 세 국가는 가입 당시 임시 제3 부류(Temporary Third Category)로 분류되었는데 이는 지금까지 지역 대 지역 접근방식으로 운영되어온 아셈의 운영방식(modus operandi)에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 하지만 2012년 EU 측 자체 분류법에 의해 EU가 대양주 및 유라시아 국가를 아시아로 묶는 북동남 아시아(North East and South Asia: NESA)3) 를 고안하였으며 여기에 임시 제3 부류에 속하는 국가들을 아시아 지역으로 분류하여 아시아 대 유럽의 지역 대 지역 접근법을 고수할 수 있게 되었다. 이로서 아셈의 조정국체제는 여전히 유효하여 2017년 12월 아시아 국가로 조정국을 담당하는 나라는 필리핀(ASEAN 국가)과 파키스탄(비ASEAN 국가)이며 EU 측은 대외관계청과 2017년 하반기 의장국인 에스토니아이다. 회원국이 53개국으로 확대된 이후 조정국의 역할은 회원국 간 사전 의사조율 필요성이 증대되어 그 중요성이 갈수록 더해지고 있다. 이를 위해 조정국 회의를 수시로 개최하여 협력사업 추진 상황에 대한 검토와 보고의 역할이 한층 더 요구되어지고 있다. 하지만 ASEM 초창기보다 회원국이 크게 늘어나면서 정체성과 결속감 저하가 훨씬 심해지고 있어 조정국체제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ASEM의 존재 의의와 다양한 회원국 간의 협력 의지를 확인하려면 최소한의 제도화가 필요하지만 현재 유럽 측은 EU가 조정국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사무국 설치 필요성을 공감하지 않으며 관련 사안에 대해서는 아시아 측에서만 제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2. 아셈의 연계성(connectivity) 강화 계획: ASEAN과 중국의 영향력 강화 2014년 밀라노에서 개최된 제10차 아셈정상회의는 아시아와 유럽 간의 연계성 강화를 강조하였으며 아셈 발족 20주년을 기념하는 제11차 정상회의(ASEM 20주년: 연계성을 통한 미래 파트너십)에서도 연계성을 강조한 바 있다. 여기서 연계성이란 인적교류를 포함하여, 무역 및 투자, 복합수송망과 같은 인프라 구축 등 다양한 차원에서의 연계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ASEAN이 강조하는 연계성 추진 전략과 맞닿아 있다. 2010년 제17차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아세안 연계성 종합계획(MPAC: Master Plan on ASEAN Connectivity) 2010' 채택을 계기로 연계성이 ASEAN 역내 통합의 주요 의제로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3대 부문별 사업으로 구성되는 MPAC 2010 연계성 사업은 인적연계성을 포함하여 아세안 고속도로네트워크 등과 같은 물리적 연계성과 무역장벽 해소를 통한 상품서비스 이동 자유화 등을 포함하는 제도적 연계성을 포함한다. 아셈 설립에 있어 중추적 역할을 한 ASEAN은 ASEAN 특유의 방식인 ‘아세안 방식(ASEAN Way)’을 아셈의 운영법칙으로 삼을 수 있게 할 만큼의 영향력이 있었다면 아세안적인 이니셔티브가 지금도 여전히 아셈회의에 영향을 주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더욱이 ASEAN의 MPAC 연계성 사업 이행은 아셈의 의제에만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라 APEC, ASEAN+3, 동아시아정상회의(EAS) 그리고 아시아협력대화(Asian Cooperation Dialogue: ACD)등과 같은 범아시아 차원의 회의로도 연계성 개념이 전파되어 활용되고 있어 이를 통해 아세안의 역량을 새삼 확인할 수 있게 한다. 이처럼 ASEM 속에서 여전히 ASEAN적 방식이 유효하지만 중국의 영향력 강화도 동시에 관찰된다. 중국의 신국가전략으로 2013년 시진핑 주석이 발표한 일대일로 구상은 중국과 인접한 국가들을 해로와 육로로 연결하여 유라시아 지역에 대한 연계를 강화하는 목적을 갖고 있다. 중국은 일대일로 구상 추진을 위해 아셈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한다. 일대일로 구상이 중국이 유럽 및 중앙아시아 즉 유라시아의 연계 및 상호의존 강화를 통해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전략에 의한 중국 압박과 포위망을 우회하려는 시도라면 중국은 미국이 참여하지 않고 있는 아셈협의체를 중국의 영향력 확대 전략을 펼칠 수 있는 장으로 유용하려 하고 있다. 아셈의 설립 이후 20년 사이에 초강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은 아셈 내에서 영향력이 증가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아셈 내의 중국의 역할에 대한 기대와 불안이 공존하고 있다. 3. 세 번째 기둥의 중요성 아셈은 3대 협력분야인 정치·경제·문화/교육에 걸친 포괄적인 영역을 다루는 지역협의체다. 아셈이 말잔치(talk shop)에 불과하다고 폄하되는 이유 중에는 아셈 설립의 직접적 이유가 되는 경제협력분야에 있어서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아시아와 유럽 간 경제협력강화 필요성에 의해 출범한 아셈이 지난 12년 동안 경제장관회의를 개최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2005년 로테르담 경제장관회의가 고위급회의로 축소되어 개최된 이후 12년만인 2017년에 서울에서 재개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셈에 대한 평가가 균형 있게 이뤄지기 위해서는 아셈이 세 가지 기둥으로 구성된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지역간협의체로서 아셈의 틀이 공고해지기 위해서는 양 지역 간의 상호이해와 문화 차이에 대한 이해를 증진할 수 있는 세 번째 기둥(문화, 교육)의 중요성을 간과할 수 없다. 세 번째 기둥이 아셈 형성 초기에는 정치· 경제 영역의 협력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부차적 영역으로 인식되었다면, 세 번째 기둥은 아셈 사업의 가시성 제고와 아셈 틀의 유용성을 드러내는 중심 영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 기둥의 구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기관으로는 아시아 유럽재단(ASEF)4)을 꼽을 수 있다. 이 재단은 양 지역 간의 학술교류, 문화교류 및 인적교류 촉진을 통해 상호이해를 증진하는 것을 목적으로 프랑스와 싱가포르의 제안으로 1997년도에 만들어졌다. 사무국이 없는 아셈이 ASEF를 제도화한 것은 세 번째 기둥에서 다루는 영역이야말로 아시아와 유럽 간 협력 강화를 위해 필수적임을 의미한다. ASEF는 청년 기업가(Young Entrepreneur)지원사업, 아시아-유럽 젊은 지도자회의, 모의 ASEM정상회의 등을 통해 양 지역 청년의 인적 교류확대사업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셈의 유일한 지침서인 ‘아시아 유럽협력 기본 지침서(AECF)'는 ASEF의 중요성을 재확인 시켜주고 있는데 이는 우리가 앞으로도 ASEF의 활동을 주목해야 할 이유다. 아셈의 세 번째 기둥의 중요성이 한층 부각되기 시작한 데에는 2001년 9ㆍ11사태와도 관련이 있다. 종교적 가치를 표방한 테러리즘과 극단주의라는 현대 사회의 복합적인 위협에 맞서 아셈은 세 번째 기둥을 중심으로 상이한 문화 간의 이해를 증진하는데 필요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 2003년에 첫 문화장관회의가 개최된 것은 9ㆍ11사태가 가장 직접적인 동인이었다. 하지만 ‘다양성 속의 통일'이라는 제목으로 베이징에서 2003년도 12월에 개최된 첫 번째 문화장관회의는 아시아와 유럽의 상이한 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자 하는 의도뿐만 아니라 더 구체적으로는 당시 유네스코를 중심으로 추진중이였던 문화다양성 협약 채택에 직접적인 힘을 실어주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ASEM회담은 아시아와 유럽 파트너가 자신들의 문화가 미국의 거대자본이 생산하는 문화로 인해 획일화되어가는 압력에 저항하려는 공동의 관심사를 위해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장으로 유용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세 번째 기둥은 점차적으로 지역협력체로서의 아셈의 무게에 더 한층 힘을 실어줄 수 있게 되었다. 제7차 문화장관회의는 우리나라 광주에서 ‘문화와 창조경제’라는 주제로 2016년 6월에 개최되었다. 아시아와 유럽 국가들이 창조산업을 육성해 부가가치 창출과 지속 가능한 경제성장을 위해 상호협력 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아셈문화장관회의는 양 지역 간 협력을 모색하는 자리로만 기능한 것이 아니라 한·중(2017년 한중수교 25주년 기념하여 문화교류주간 운영 방안 의견 교환)과 한·일간의 문화협력방안에 대해서도 논의하는 자리로서 기능할 수 있었다. 한편 지난 2017년 11월에는 제6차 ASEM 교육장관회의가 서울에서 개최되었다. 2008년 독일에서 처음 개최되어 올해 10주년을 맞이하는 본 장관회의에서는 10년 후의 양 지역 간 교육협력 비전을 제시하였다. 서울회의는 청년고용증진, 아시아-유럽 간 인적교류 확대, 온라인 교육(MOOC) 적극적 활용 등을 내용으로 하는 ‘서울 선언’을 채택하기도 했다. 서울선언 제6조에서 아셈 듀오(ASEM DUO)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에라스무스 플러스(Erasmus Plus)와 같은 학술 교류 프로그램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아시아와 유럽 간 인적교류를 활성화하기 위해 고등교육 자격 및 학점 인정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이미 유럽연합 회원국 간 학술교류 프로그램인 에라스무스 프로그램이 한·중·일 학술교류 프로그램인 캠퍼스 아시아 발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듯이 한·중·일을 넘어선 아시아 국가 간 교류 활성화 방안도 아셈을 통해 추진력을 얻을 수 있으리라 본다. 2012년 동아시아정상회담(EAS)에서 한-아세안 대학생 교류프로그램, 한-아세안 사이버 대학, 아세안 과학기술영재센터 운영 등 교육투자촉진 분야 등에 대한 논의가 진행된 바 있는데, 동아시아정상회담뿐만 아니라 아셈을 통해서 이와 같은 학술 교류 사업이 추진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이처럼 우리는 지역간협의체인 아셈 속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두 가지 지역주의를 기대할 수 있다. 아셈을 통해서 한편으로 아시아와 유럽 간의 연계성 및 협력 강화를 기대하게 된다면 다른 한편으로는 아세안 국가를 포함하는 아시아 파트너 국가 간의 협력 방안을 모색할 수 있다. 이는 아셈이 회원국의 확장으로 훨씬 더 다양한 국가들을 포함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아셈 내 아시아 국가 간 교류 강화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로서 동북아를 넘어서는 남방, 북방 지역을 번영의 축으로 삼는 현 정부의 신남방정책 및 신북방정책 추진의 발판으로 아셈 가용방안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1) ASEMinfoBoard http://www.aseminfoboard.org/events/0/1?field_upcoming=All 2) 인도, 몽골, 파키스탄의 참여는 EU회원국에 비해 회원국 수의 규모가 작은 아시아 회원국의 확장 필요성에 의해 추진된 부분도 있다. 3) NESA는 EU 측 분류법으로 현재 한국, 중국, 일본, 인도, 몽골, 파키스탄, 호주, 뉴질랜드, 러시아 그리고 방글라데시가 포함되어 있다. 4) ASEF는 아셈 공식 페이지인 ASEM Infoboard의 운영을 담당하고 있기도 하다(http://www.aseminforboard.org). 상설사무국이 없는 상황에서 ASEM 정보게시판은 가상의 사무국 기능을 담당한다.   1. 아셈의 새 틀? 새로운 운영방식? 2. 아셈의 연계성(connectivity) 강화 계획: ASEAN과 중국의 영향력 강화 3. 세 번째 기둥의 중요성 現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EU센터 연구위원.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학 유럽학고등연구소(IHEE)의 유럽현대사 박사준비과정(D.E.A)을 마치고 Paris 8대학 유럽학 연구소(IEE)에서 정치학 박사학위 취득.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HK연구교수 및 동대학원 국제학연구소 선임연구원 역임. 박사학위 연구주제는 아세안(ASEAN)을 중심으로 본 아셈(ASEM)으로 유럽연합의 지역간 협력, 이민 정책, 문화정책 등 유럽연합의 제반 정책에 대한 논문을 집필하였음.
  • What If There Is A False Alarm In North Korea?
    저자
    Han In-Taek (Jeju Peace Institute)
    발간호
    2018-13
      Last year, on December 1st, Hawaii received attention both domestically and abroad for being the first and only one of the 50 states in the United States to conduct resident evacuation drills to prepare for North Korea's nuclear missile attacks. Last weekend, a false warning that a ballistic missile was approaching Hawaii left residents and tourists in fear and confusion, attracting worldwide media attention again. Meanwhile, this week Japanese public broadcaster NHK also issued a false report that North Korea fired a missile. The issuance of false alarms in Hawaii proved to be a mistake committed by a state employee during a duty shift, and the false alarms of NHK in Japan were promptly confirmed to have been caused by improper manipulation of the equipment. Military response measures were not followed because the U.S. military and the Self Defense Forces knew that the missile launches were not a real situation. Following these incidents, improvements in the system and procedures are expected to prevent false alarms in Hawaii and Japan. A false alarm is not a mistake that only the state government or the press make. Stanislav Petrov, who passed away recently, was the real life person of the documentary "The Man Who Saved the World". During the Cold War in 1983, Petrov was a lieutenant colonel of the Soviet Union Forces and worked at the nuclear war control center. On September 26, 1983, while Petrov was on duty, an alarm was issued warning that the United States had launched five intercontinental ballistic missiles to the Soviet Union. Petrov, however, judged that it was a false alarm caused by an error in the satellite alarm system and did not report to the head office. Had Petrov judged the false alarm to be a real situation and reported to the head office, nuclear war would have broken out between the United States and the Soviet Union. During the Cold War, the United States and the Soviet Union had adopted the strategy of "launch on warning", which required all ground-based nuclear missiles to be fired when the radar signaled an alarm. It is for this reason that the documentary based on his story was titled "The Man Who Saved the World". Petrov prevented the outbreak of an accidental nuclear war, but was discharged early after being held responsible for failing to record the daily log that day. Petrov later recalled that his judgment that day was based on intuition, and that he thought the probability of being right was 50 percent. This incident was not known until the end of the Cold War. Such information is classified, and so there is way to confirm whether there were more false alarms - and if so how many - in the Soviet Union and modern day Russia. False alarms are not limited to the Soviet Forces. In his autobiography, William Perry, the Secretary of Defense under the United States Clinton administration, told an anecdote from when he served as Deputy Secretary of Defense. On November 9, 1979, Perry woke up to a call from the North American Aerospace Defense Command. The duty officer reported that the computer showed two hundred Soviet ICBMs flying to the United States. He further reported that he determined that it was a false alarm. In the end, it turned out that the duty officer was right. It was later revealed that false alarms were caused by an accidental installment of a training tape on the computer. Recalling this incident, Perry questioned what would have happened if the duty officer had not make the right decision that day, and pointed out that there were serious deficiencies in the nuclear alert decision process in the past and even today. At the time, the United States, like the Soviet Union, was adopting a strategy of "launching on warning". Missile attacks can take as short as a few tens of minutes from launch to reaching the target, so there is no time to examine if the alarm is true or false. Whether the information is correct or faulty, a decision must be instantly made. In the aforementioned cases, the reason that nuclear war did not occur despite the false alarm was that both Lieutenant Petrov and the U.S. duty officer intuitively determined that the alarms were false and did not report to the head office. If they had immediately reported to the top, Soviet Union General Secretary Yuri Andropov and United States President Jimmy Carter would have had to decide whether to launch a counter-attack missile in less than 10 minutes. As seen from the case of the North American Aerospace Defense Command in 1979, the case of the Soviet nuclear war control center in 1983, and the recent cases of Hawaii and Japan, false alarms can occur in any country anytime. Therefore, it can be inferred that false alarms can also occur in North Korea. What would happen if a false alarm occurred in North Korea? If a false alarm shows that an attack is imminent, can North Korean duty officers discreetly judge and postpone reporting to the top, just as past U.S. and Soviet officers did? If a false alarm were immediately reported to the North Korean leadership without being verified, what decision would the North Korean leadership make? Unless North Korea's warning system is perfect, this is a perfectly possible scenario. Thus, it is necessary to ask these questions and contemplate. While personal factors such as an officer’s intuition were one of the reasons the United States and the Soviet Union did not immediately initiate a counterattack and observed carefully, there was also a structural factor: the “balance of terror” between the United States and the Soviet Union. Both countries had enough nuclear capacity (second strike capability) to destroy the other country even after a preemptive strike. Thus, even if a country succeeded in a preemptive strike, it could not avoid its own destruction. The same is still true for the United States and Russia. While the balance of terror implies the extinction of humankind if nuclear war breaks out, it also creates a situation in which a preemptive attack will inevitably result in the attacker’s own demise. Thus, the balance of terror is seen to have paradoxically reduced the incentive for preemptive attacks, preventing the outbreak of a nuclear war between the United States and the Soviet Union. This structure is not irrelevant to the aforementioned cases, where the officers’ judgments of a false alarm prevented the precarious situation of having Soviet General Secretary Andropov and U.S. President Carter from deciding a counter missile attack in 10 minutes. Under the balance of terror, there is virtually no or very little incentive for either the United States of the Soviet Union to launch a preemptive strike. Therefore if an alarm is issued, it is logical to determine that the alarm was more likely caused by a device malfunction than an actual preemptive attack. The current situation on the Korean peninsula is very different from that of United States-Soviet Union or United States-Russia North Korea has relatively fewer nuclear weapons, and SLBM technology and SLBM submarines have not yet reached the completion stage. Therefore, it is reasonable to assume that North Korea has a weak nuclear capability, or its ability to retaliate after a preemptive strike. On the other hand, while the Republic of Korea is under the U.S. nuclear umbrella, it does not independently deploy or possess nuclear weapons. Hence, if an attack from North Korean were imminent, rather than become helpless victims of nuclear weapons, the Republic of Korea’s strategy is to strike first to destroy North Korea’s nuclear weapons and neutralize leadership before the nuclear weapons are launched. While North Korea is vulnerable to preemptive attacks and the Republic of Korea is in a situation where it must strike first in the event of an emergency, U.S. hard-liners against North Korea and some Republic of Korea citizens have argued that the Republic of Korea must preemptively attack before North Korea perfects its nuclear weapons and capacity. These claims may not be limited to assertions. In 1994, the United States had as a matter of fact planned a surgical strike on North Korea's nuclear facilities. If President Carter had not resolved the first North Korean nuclear crisis by visiting North Korea, the plan to attack North Korea might have been carried out. Under these circumstances, North Korea may recognize that there is a high possibility of a preemptive attack on North Korea regardless of the actual intentions of the Republic of Korea or the United States. Therefore, in the case of a false alarm, it is likely that North Korea will not see the alarm as a human or device mistake but as a real attack and respond to a military manner. Especially as the development of stealth weapons makes it difficult to detect attacks, there may be more mistakes, such as radar misdiagnosing a bird or clouds for a stealth weapon. North Korea's leadership may have strategically adopted ‘launch on warning’ like the United States and the Soviet Union did in the past, rather than risk losing their nuclear weapons or becoming removed. Of course, it is not possible to accurately grasp North Korea's nuclear strategy from the outside. But the possibility that North Korea followed U.S. and Soviet precedent and adopted the same strategy cannot be dismissed. If such analysis is accurate, the North Korean leadership will order the total mobilization of nuclear weapons and counterattack upon receiving a report. The balance of terror between the United States and the Soviet Union contributed to preventing accidental warfare. However, it is neither possible nor desirable to reproduce the balance of terror on the Korean peninsula in order to prevent an accidental war with North Korea. Therefore, new approaches and ideas are needed to prevent accidental warfare on the Korean peninsula by false alarms. Dialogue between the North Korea and the Republic of Korea has resumed this year. Although the discussion is currently focused on the success of the Pyeongchang Olympic Games, it is worth suggesting as future agenda a joint research on ways to prevent accidental warfare by false alarms. Unlike the incidents in Hawaii last week or that in Japan this week, if there is a false alarm in North Korea, there could be serious consequences. Preventing accidental warfare is a common interest to both Koreas. Therefore, dialogue between the two Koreas is necessary and may be feasible.   Han In-Taek is Director of Research at the Jeju Peace Institute. He has done research on nuclear strategy, security cooperation, and public diplomacy. He received his Ph.D. in political science from the 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 and his M.A. in political science and B.A. in economics from Seoul National University.
  • 평창 이후 남북 교류협력 찾기: 협력안보와 평화공영으로
    저자
    양길현 (제주대학교 교수)
    발간호
    2018-12
      평창이 뜨겁다. 추위도 아랑곳없다. 사실상의 권력 2인자로 알려져 있는 김여정 제1부부장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 북한의 주요 인사가 평창을 찾았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도 왔고 펜스 미국 부통령도 왔지만, 관심은 온통 북한 인사들에 집중되었다. 특사 자격으로 방한한 김여정을 통해, 김정은 위원장의 방북 요청을 받은 문재인 대통령은 “여건을 만들어서 성사시키자”고 화답했다. 남북한 정상회담은 시간문제로 되었다. 이른바 ’코피전략‘으로 제한전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위기가 일정 부분 잠재워졌다. 한국전쟁 이후 한반도에서 전면전은 없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무력시위와 전쟁위협으로 한반도는 세계에서 평화롭지 않은 대표적 지역 가운데 하나이다. 지난 70여 년 세월 동안 한반도의 남과 북이 전쟁위협과 안보문제로 시달리게 된 데에는, 단일국가를 염원하는 민족통일론도 일조하고 있다. 그래서 남과 북은 가능하면 통일을 운운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도 해 본다. 통일부도 이름을 화해협력부로 하든가 평화부로 바꾸는 건 어떤지 하는 제언을 해 본다. 왜냐하면 ‘1민족 1국가’라는 민족주의적 열정과 욕망 그리고 별 현실적이지도 않은 환상이 남과 북을 피곤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남과 북 모두 어느 한쪽으로 흡수되거나 굴복되는 것을 거부하면서도, 때때마다 단일민족국가로의 통일 가능성을 한 시도 잊지 않고 살아가는 이율배반이, 바로 분단된 한반도 국민들의 일상이 되고 있다. 남과 북이 각자 절대안보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남은 주한미군에 기대고 있고, 북은 핵개발에 목숨을 걸고 있다. 왜냐하면 지구상에서 혹 사라질 수 있는 대표적 나라가 바로 남과 북인 한, 각자의 절대안보 추구는 필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절대안보가 아니라 협력안보(cooperative security)로의 전환이 요청된다. 절대안보 추구는 결국 ‘안보딜레마’로 귀착될 수밖에 없음은 널리 알려진 공식이다. 그래서 절대안보를 추구하는 한, 남과 북 모두 안보딜레마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남과 북이 과잉 군사비로 인해 낭비와 비효율을 겪게 되는 것도 필연이다. 그런데도 남과 북은 절대안보를 추구하는 데 비용을 아끼지 않고 있다. 어떻게든 절대안보를 유지해 나가고 있노라면, 언젠가 운이 좋거나 아니면 북에서 예기치 않은 불상사가 생겨 통일대박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안보-통일정책이었다. 정권의 안보를 국가의 안보와 동일시하는 김정은 정권은, 핵개발을 더 진전시키고 있을 뿐이다. 이미 북은 2012년 헌법을 개정하면서 핵보유국을 명시할 정도로 핵개발을 고수해 오고 있다. 한반도 비핵화는 단기 목표가 아니라 장기 목표로 바꾸는 게 현실적이라는 생각이다. 북 핵 동결로 시작하여 비핵화로 가자는, 이른바 ‘북 핵 출구론’이 더 설득력이 있고 현실적인 것 같아 보인다. 북에 대한 정밀타격(surgical strike)도 허용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는, 이미 북 핵으로 인해 어떤 형태의 전쟁도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상황으로 한반도가 변화되었기 때문이다. 북이 핵을 보유하는 한, 세계 최강의 미국 힘을 빌린다고 하더라도, 무력에 의한 남북한 통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북 핵에 대한 윤리적-정치적-군사적 비판과는 별도로, 북이 핵을 보유하고 있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전쟁을 통해서 통일을 달성하는 건 이미 실현 불가능한 것이 되어버린 마당에, 막연한 통일대박론에 들떠서는 안 될 것이다. 남과 북은 군사적 시각과 접근방식으로 긴장관계를 갖고 갈 것이 아니라 분단된 국가들로서 사이좋게 살아갈 방법을 강구하는 게 더 유용하다는 생각이다. 남과 북이 상대를 굴복시키려고 하지 말고 서로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교류협력의 길을 찾아보자는 것이, 현 문재인 정부의 평화통일 정책이라고 본다. 김여정 특사를 거치면서 평창이 바로 남북한 교류협력에서 또 한 번의 시발점이 되길 기대하는 마음이 크다. 2018년 현 시점에서 통일국가를 운운하는 것은 정치적 수사에 다름 아니다. 통일을 운운하기 보다는 한반도에서의 전쟁 발발은 그 규모에 상관없이 어떤 수를 쓰더라도 막아야 한다는 절대평화가 요청된다. 북한보다 전쟁으로 잃을 것이 많은 남한은 더욱 절대평화를 염원해야 한다. 물론 절대평화를 추구하는 것은 반통일이 되기 쉽다. 외형적으로는 분단고착화이자 현상추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분단된 두 개의 국가가 사이좋게 살아가는 상황을 두고, 이를 ‘사실상의 통일’이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그러나 전쟁위협 속에서 살아가는 통일지향보다는 평화로운 분단체제 하에서 남과 북 두 개의 국가 간에 교류협력을 증진해 나가는 것이 더 유용하고 바람직해 보인다. 평창 이후 남과 북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는 자명하다. 평화공영으로 나아가는 것이 그것이다. 그것은 남과 북 모두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해 주는 데서 시작될 것이다. 2018년 2월 평창을 통해 이미 남과 북은 지난 10년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남과 북이 1990년에 이미 두 개의 국가로 유엔에 동시 가입되어 있는 마당에, 굳이 하나의 통일국가 만능론을 고집하고 추구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한반도에 사실상 존립하는 남과 북 두 개의 국가가 수교를 함으로써 평화공영의 길로 나아가는 게 더 합당해 보인다. 남과 북이 대사를 주고받는 수교야말로 국제사회에서 가장 널리 활용되는 상호존중과 인정의 절차이자 방식이다. 평창에 김영남과 김여정이 오는 건 허용하면서, 북한 대사가 서울에 와 지내는 건 왜 안 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만남이 성사되어야 할 이유는 많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10년이 지난만큼 강산이 크게 변했다. 북의 핵보유가 기정사실화되고 있다는 것만이 아니다. 평창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구성에 대한 여론의 반발에서 보듯이, 과거와 같은 국가주의적 방식의 대북접근으로는 더 이상 국내 여론의 지지를 얻어내기가 쉽지 않다. 남의 국민들이 변한 만큼이나 북의 국민들도 장마당의 삶을 영위하면서 과거와는 달리 내적으로 개인주의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남북관계에서 고려해야 할 점은, 이제는 국가의 시대가 가고 국민의 시대가 왔다는 것이다. 또 그렇게 되어야 한다. 남과 북이 자국의 국민들을 과거와 같은 국가주의 방식과 절대안보 논리에 가두어두려 한다면 결국 국가와 국민 간의 엇박자가 필연적이다. 지난날은 국가의 시대라서 국민들이 절대안보를 강요하는 국가의 논리를 따랐다. 남과 북 모두 일제의 조선합병과 한국전쟁의 경험을 잊을 수 없는 만큼이나 국가에 의존했다. 그러나 세상이 변했다. 이제는 국가가 국민의 요구에 따르는 시대가 된 것이다. 절대안보가 아니라 협력안보가 대안으로 떠올라 있으며, 통일 만능론보다 평화공영이 더 절실하면서도 합당한 요청이 되고 있다. 전쟁이 일어나면 모든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설사 전쟁에서 이긴다 한들, 그것은 폐허 속의 승리일 뿐이다.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위해서, 혹은 얼마 만큼의 통일대박이기에, 왜 국민들이 국가를 위해서 전쟁의 참혹한 피해를 감당해야 하는지, 그런 의구심을 제기하는 국민들의 목소리에 이제는 국가가 귀를 기울여야 하는 시대이다. 단일국가 우선 논리는 이미 유럽연합의 실험을 거치면서 크게 허물어졌다. 절대주권이 아니라 주권공유가 새 시대의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남과 북도 국가연합 가능성도 찾아보아야지, 하나의 단일국가화만을 고집할 게 아니다. 국민이 원하면 두 개의 국가로 존립해야 하는 게, 21세기 방식이라고 볼 것이다. 통일은 다음 세대의 과제로 남겨두고, 지금은 남과 북이 서로 사이좋게 살아갈 궁리를 하는 것이 오히려 7천만 한겨레의 국민적 요구라고 볼 것이다. 한반도에서 남과 북이 과거와 같은 적대적 공존에서 벗어나, 우선은 사이좋게 지내는 평화로운 분단체제로 전환한 연후에, 미래의 어느 때가서 남과 북 다음 세대들이 새로운 인식과 이해 그리고 새로운 방식으로 남북관계의 창의적 지평을 열어가는 게 더 합당해 보이는 그런 시대가 21세기이다. 평창 이후 남과 북은 20세기적 승자독식 논리와 경쟁방식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남한은 이미 국력에서 북한을 압도하고 있고, 북한은 핵을 보유하고 있음을, 남과 북은 서로 인정해야 한다. 평창에서 보듯, 남북한 간에 신뢰 쌓기에 매진해야 함은 기본이다. 앞으로 평창에 이어 제주에서든 개성에서든 백두산에서든 남과 북이 자주 만나 서로를 알아가야 한다. 당연히 남과 북 정상들의 만남도 정례화 할 필요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만나서 통일을 한다고 서로 으르렁대던 시대를 마감하기로 다짐하자. 서로 군비증강에 몰두할수록 군수산업체만 이득을 본다는 점을 정확히 인식하고 밝히자. 절대안보 추구에 들어가는 돈을 남북 교류협력에 쓰면, 그만큼 한반도의 평화가 증진되고, 남과 북 7천만 국민들이 더 살기 좋은 한반도가 될 것임을 적극 재확인하자. 분단론자라고 비판받는 걸 두려워하지 말고, 남과 북 7천만 국민들의 행복한 삶에 기여하는 통일이 21세기 남과 북의 공동 과제임을 천명하자. 평화공영의 한반도를 향해 교류하고 협력해 나가자고 공동 발표하자.   現,제주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 정치학과에서 정치학박사 취득.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에서 연구위원, 제주대학교 평화연구소 소장과 민주평통 자문위원, 동북아시대위원회 전문위원, 제주지역통일교육센터 소장 등을 역임. 북한 및 통일 관련 연구업적으로, "재중 북한이탈주민을 둘러싼 쟁점과 한국의 정책방향," (제19권 1호, 2013년 봄), “오바마-이명박 정부의 북핵 정책에 대한 비판적 평가: 반주변의 시각,”『국제정치논총』(제52집 2호, 2012), “다시 보는 연합제-낮은 단계의 연방제,” 『북한연구학회보』(제11권 2호, 2007) 등 다수임.
  • 미국-대만 합동군사훈련의 정책적 함의: 한-미 합동군사훈련과의 비교적 시각에서
    저자
    Yu Max Tsung-Chi (대만 국방대학교 정치작전대학 학장)
    발간호
    2018-11
      대만은 한국과 달리 미국과 합동 군사훈련을 실시할 군사조약이나 어떠한 공식적 기제도 없다. 중국의 점증하는 위협에 직면하여, 대만은 미국과 군사적 관계를 강화하고 독자적 국방능력을 키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어떻게 미국-대만의 합동 군사훈련을 실현시킬 수 있을지 여부는 긴급한 문제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대만과의 방위 동반자 관계를 강화하는 조항을 담고 있는 국방수권법(NADD)에 최근 서명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이 법안은 대만 방위지원에 대한 미국의 약속을 재확인하는 것뿐만 아니라, 대만을 군사훈련에 초청하는 내용을 포함한 미 의회 결의안(Sense of Congress)을 명시하고 있다. 군사훈련은 두 우방 군대의 공동 긴급작전 조율 및 절차, 계획, 장비 및 체계를 평가하고 개선하기 위한 것이다. 군사훈련은 실제적 측면에서는 시설 공동이용을 증진시키고, 여러 긴급상황에 대비한 시나리오를 점검하는데 도움을 준다. 정치적 측면에서 군사훈련은 국내 및 잠재적 경쟁상대에 대한 일종의 신호가 된다. 대만이 중국의 위협에 공포심을 가지지 않고, 국가적 생존에 필요한 자신감을 갖도록 돕는 것은 미국의 이익에 부합한다. 대만은 오로지 미국이 지원하는 강력한 군대를 보유할 수 있어야 그러한 자신감을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미국과 대만 간 합동 군사훈련의 실시는 필수적이다. 전쟁의 상황에서는 대만과 미국 병사들은 합동 군사훈련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밀접한 협력이 없는 상태에서 적을 상대해야 할 수도 있다. 결국, 대만은 제안된 합동 군사훈련에 따른 모든 대가를 치러야 한다. 대만이 일련의 언론 공세와 군사 억제력을 과시한 후, 특히 중국의 제트기와 항공모함 랴오닝호가 대만 주변을 순회하고, 항의의 표시로 대만 상공의 M503 항공로를 일방적으로 변경한 후, 중-대만 해협의 긴장은 고조되었다. 한 고위급 중국 외교관은 심지어, “미국 해군전함이 [대만 항구]에 기착하는 날은 인민해방군이 군사력으로 대만을 통일하는 날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합동 군사훈련과 미국의 대응조치를 이유로 들어, 중국은 육상, 해상, 항공에서의 판도를 바꾸기 위한 도발적 행위를 정당화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이 위세를 부리는 그러한 전략적 행동은 중국이 대만해협의 현 구도를 무력화시키려고 하면 할수록 미국과 역내 국가들이 중국의 실제 위협에 균형을 이루기 위해 대만을 돕게 될 것이므로 효과가 없거나 반작용을 불러올 수 있다. 위에서 도출되는 정책적 함의는 다음과 같다: 한편으로 합동 군사훈련에 참가하는 것은 대만에게는 군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중요한 목적에 부합할 수 있다. 대만의 군대가 미군과의 접촉과 교류를 통해 얻는 훈련은 장교의 경험축적뿐만 아니라 사기를 진작시키는데 매우 귀중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는 미국의 동맹국들뿐만 아니라 중국에게 미국이 협조할 수 있는 부분에서는 중국과 협조하면서도, 미국의 동맹국과 우방국을 지원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분명한 신호가 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 대결구도에서 가장 취약한 당사국인 대만의 가장 큰 악몽은 미국으로부터 버림을 받거나 중국이 미국의 확장억제력을 파괴하는 것이다. 그러한 결과를 피하기 위해, 대만은 동맹실패의 위험을 분산시키기 위해 한 가지 이상의 확장억제력을 구축할 수 있다. 중국의 억압 때문에, 대만은 어떠한 세계열강이나 역내 강대국과도 공식적 동맹을 맺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대만이 미국이나 심지어 인도, 베트남, 호주, 일본, 남한과의 적극적 관계를 구축하게 되면 중국이 무력을 사용하기에는 불확실한 상황을 만들 것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한반도의 현재 상황은 여러 측면에서 대만의 상황과 비견된다. 북한도 마찬가지로 “외부의 힘을 이용하여 공격 (punching with nudging)”하고 있는데 한-미 합동 군사훈련이 안보를 가져오는데 일조하지 못하고 전쟁 가능성만을 증가시킨다고 주장하면서, 핵무기 개발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합동 군사훈련과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을 이용하고 있다. 북한은 진심이든 아니든 합동 군사훈련을 미국이 북한을 핵무기로 선제공격하기 위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므로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 및 시험을 자위권의 문제이자 주권국의 권리에 속하는 것으로 정당화함으로써 한-미 합동 군사훈련이 한반도의 긴장과 불안만을 조장하는 것처럼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 게다가, 국제제재에 의해 궁지에 몰린 북한은, 미국의 개입을 저지하는 것과 체제보장의 조건에서 최소의 대가로 남한으로부터 최대의 이익을 얻어내는 것에 전념할 수 밖에 없다. 미국의 확장억제력에 맞선 상황에서, 남한을 공격하는 것은 결코 북한에 도움이 될 수 없고, 남한을 미국으로부터 떼어내어 남북 양자관계로 끌어들이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 될 것이다. 또 다른 대안으로 미국을 제외하는 것이 너무 힘들다면, 미국의 개입을 무력화시키는 것이 현 단계에서 북한에 그 다음으로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위의 주장은 김정은이 최근 남한에서 열리는 동계올림픽에 참여하기로 한 동기의 상당 부분을 설명할 수 있다. 신중을 기하기 위해서, 남한은 북한이 남북관계의 해빙기를 단순히 핵과 미사일 개발을 위해 그리고 미국이 또 다른 강경조치를 취하기 전까지 시간을 버는 수단으로 이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마찬가지의 맥락에서, 한-미 간 연례 합동 군사훈련은 북한과의 협상에서 주요한 요소가 될 수 있지만, 군사적 준비태세와 정치적 안정에 기여하는 점을 고려한다면, 합동 군사훈련을 중단할 이유는 전혀 없다. 물론, 이 최소한의 조치는 연례 합동 군사훈련이 중단되기를 바라는 북한의 바람에는 배치되는 것이다. 결국 중국은 자국을 대상으로 한 역내 거의 모든 양자 및 다자 간 군사동맹에 반대하기 때문에, 미국은 명백히 방어적 성격을 띤 합동 군사훈련을 위협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남한 및 대만과 따로따로 실시해야 한다. 결국 중국이 이런 문제를 형식적으로 좌지우지 할 수 있을지 여부는 한반도와 대만 해협에서 전쟁과 평화의 문제가 된다.   現, 대만 국방대학교 정치작전대학(Political Warfare College, National Defense University) 학장. 주요연구분야는 국제전쟁과 평화, 중국과 인민해방군 연구, 전략적 커뮤니케이션, 전면적 방위교육, 인민해방군의 법률전,여론전,심리전, 미국-중국-대만의삼자관계;방법론과 R 통계분석 등임.
  • The US-Taiwan Joint Military Exercise and its Policy Implication: A Comparative Perspective with ROK-US Joint Military Exercise
    저자
    Yu Max Tsung-Chi (Dean, Political Warfare College, National Defense University)
    발간호
    2018-10
      Unlike South Korea, Taiwan has neither any formal mechanism nor mutual defense treaty in place to conduct joint military excises with the US. Facing a growing Chinese threat, Taiwan can only endeavor to strengthen its military relations with the US and increase its own defense capability. Above all, the question of how the US-Taiwan joint military exercise can be fulfilled is a matter of urgency. It is noteworthy that President Trump recently signed the National Defense Authorization Act (NDAA) which has clauses on strengthening the US defense partnership with Taiwan. The act not only reinforces commitments to support Taiwan’s defense but also lists the Sense of Congress which includes inviting Taiwan to participate in military exercises. Military exercises are designed to evaluate and improve combined and joint coordination, procedures, plans, equipment, and systems for holding contingency operations between allied militaries. On a practical level, they help to increase interoperability and to examine scenarios for different contingencies. On a political level, they are a form of intimation to domestic and potential rivals. It is in America’s interest to ensure that Taiwan has the confidence needed to pursue national survival without fear of Chinese intimidation. For Taiwan, such confidence can only come from having a strong military, vouchsafed by the US. Therefore it is essential to have joint military exercises between the US and Taiwan. In case of war, Taiwanese and American soldiers may need to face the enemy together, but without close cooperation between them that can be achieved only through the joint military exercise. Consequently, Taiwan is obligated to bear any cost attached to the proposed joint exercise. After a series of media campaign and arms deterrent, tensions across the Strait have risen particularly following an incident in which Chinese jets and a Liaoning aircraft carrier executed "island encirclement patrols" around Taiwan, and China unilaterally changed aviation corridors M503 over Taiwan in protest. A senior Chinese diplomat even threateningly said: “The day that a U.S. Navy vessel arrives in [a Taiwanese port], is the day that the People’s Liberation Army unites Taiwan with military force.” Apparently China is leveraging the joint exercise and the US’s countermove as a means of justifying Beijing’s game-changing provocative acts on land, at sea, and in air. But the domineering manner of China’s strategic moves may prove unfavorable and have a counterproductive effect where the more China attempts to sabotage the status quo across the Taiwan Strait, the more likely the US and other countries in the region would come to Taiwan’s aid to balance the real China threat. The policy implications derived from above are as follows: on the one hand, participating in joint exercises could serve both important military and political purposes for Taiwan. The training that Taiwan’s military would receive from exposure and coordination with American armed forces would be invaluable not only for the officers’ experiences, but also for boosting morale. Furthermore, it would send a clear signal to Beijing as well as to US allies and partners that, while the US seeks to work with China where it can, it will stand by its alliances and its partnerships. On the other, as the weakest player in the scenario, Taiwan’s biggest nightmare is being abandoned by the US or China’s breaking through the US’s extended deterrence. To avoid such outcomes, Taiwan can attempt to build more than one set of extended deterrence to disperse the risk of failed alliance. Being suppressed by China, Taiwan has not been able to form formal alliances with any global or regional powers; therefore, active engagement with the US or even India, Vietnam, Australia, Japan, and South Korea would create uncertainty for China in terms of using force. In contrast, the current situation on the Korean peninsula in many respects parallels the situation that confronts Taiwan. North Korea likewise is “punching with nudging,” using the ROK-US joint military exercise and US antagonism as a means of justifying Pyongyang’s nuclear weapons programs hinting that joint military exercises can do little to bring about greater security and they only increase the probability of war. North Korea, whether faithfully or not, continues to perceive the joint exercises as designed to prepare preemptive US nuclear attack on Pyongyang; therefore justifies that “the DPRK’s development and testing of its own nuclear bomb and missiles are a matter of self-defense and are within their prerogative as a sovereign nation,” thereby misleading public opinion to believe that the joint exercises can only serve to increase tension and insecurity on the Peninsula. In addition, backed into a corner by international sanctions, Pyongyang can only devote itself to thwart the US’s intervention and to acquire the most interest from Seoul at the lowest cost under the precondition of regime survival. While faced with the US’s extended deterrence, invading Seoul is definitely not beneficial; instead, drawing Seoul away from Washington and back to a bilateral scenario may be the best option. Alternatively, if excluding the US proves too arduous, neutralizing its intervention may be the second most beneficial for Pyongyang at this stage. The argument above may explain to great extent the motivations behind Kim Jong Un’s recent game in joining Winter Olympics in South Korea. For the sake of prudence, Seoul cannot rule out the possibility that Pyongyang is merely using the thaw in inter-Korean relations to buy time to further improve its nuclear and missile capabilities and discourage the United States from taking new hardline actions. In the same vein, it is likely that the annual joint military exercises between the US and South Korea could be a major element in future negotiations with North Korea, but given their contribution to military readiness and political stability, there is no reason to terminate them. Of course this bottom-line would be contrary to North Korea’s wishes of seeing the annual joint exercises dissolved. In the end, because China is against almost every other military alliance in the region, whether it is bilateral or multilateral, targeted at China or not, it is imperative for the US to conduct the joint exercises with South Korea and Taiwan separately in ways that are clearly visible to Beijing and Pyongyang as defensive in nature and as unthreatening a manner as possible. After all, whether China will dictate the terms regarding such problems is a matter of peace and war on the Peninsula and across the Taiwan Strait.   Yu Max Tsung-Chi (余宗基) is Dean of Political Warfare College, National Defense University. His research focuses on: International War and Peace; China and PLA Study; Strategic Communication; All-Out Defense Education; PLA’s Legal Warfare, Media Warfare and Psychological Warfare; US-China-Taiwan Trilateral Relations; Methodology and R Statistics.
  • 한반도 방정식: 미중관계와 한반도 평화
    저자
    김태완 (동의대학교 교수)
    발간호
    2018-09
      한반도의 지정학적 한계 지정학에서 공간과 위치는 중요하다. 위치적으로 강대국에 이웃한 국가는 종속의 위협에 노출된다. 공간적으로 협소한 국가는 광대한 국가의 영향권에 놓이게 된다. 지정학적으로 보면, 위치와 공간 모두 한국의 국가이익에 장애요인이다. 종합국력으로 볼 때, 세계 1, 2, 3, 4위의 국가와 모두 이웃하고 있는 유일한 국가가 한국이다. 국토는 이웃한 강대국에 비해 매우 협소한데, 그나마 분단되어 있다. 한국이 지정학적 한계를 극복하고 오히려 디딤돌 삼아 통일과 동북아 평화의 방향으로 전진하려면 지식보다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성(합리)에 근거한 국제관계의 다양한 이론과 수단을 활용해 본들 숙명적 지정학의 장애를 떨쳐버리기 힘들다. 비용과 이익만을 합리적으로 계산하는 것만 가지고는 지정학적으로 주어진 위치와 공간의 취약성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성을 넘어서는 역발상이 필요하다. 역발상은 비효율적일 수 있고, 감성적일 수 있고, 단기적으로 손실일 수도 있다. 이는 인내와 고통을 요구할 수도 있다. 통일과 평화를 향한 비전이 없이는 그러한 인내와 고통을 감내할 수 없다. 공동체의 합의를 통해서 그러한 비전에 제시되고 공유될 수 있다.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냉엄한 국제관계의 현실에 두 발을 굳건히 딛고 있을 때, 비로소 그 역발상이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역발상이 그리 비합리적이지도 않은 이유이다. 이제 한반도 방정식을 소개함으로써, 한반도의 지정학적 한계를 극복하고 한국이 통일과 동북아 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고 토론하는데 계기를 제공하고자 한다. 한반도 방정식1)    방정식이라면서 등호(=)를 사용하지 않고 방향성(→)만으로 제시한 것은, 양변이 절대적 인과관계에 있지 않음을 표현하기 위함이다. 결국 한반도 방정식은 지정학적 한계를 극복하고 ‘통일과 역내의 평화(D)’를 이루기 위해서는 비용과 이익(costs and benefits)을 계산하는 합리성을 넘어선, ‘무모한 도전’이 필요함을 표현하는 방정식이다. 기존의 (신)현실주의 국제관계 이론의 시각에서는 무모한 역발상이지만, 현실 강대국관계(미중관계)에 얼마만큼 철저히 발을 딛고 있느냐에 따라 D는 더욱 분명해 질 것이다. 미국(H)과 중국(C)은 D(통일과 역내평화)에 영향을 미치는 매우 중요한 독립변수이다. 따라서 한국(K)은 두 강대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활용하느냐에 외교력을 기울여야 한다. 21세기 내내 여전히 미국이 초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하겠느냐 아니면 중국이 대신할 것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모두와 우호관계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K에게 절대권력을 가진 H는 너무 멀리 있고, C는 너무 가까이 있기 때문에, H를 믿고 상대적 약자인 C와의 관계를 포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감성적으로야 멀리 있는 H가 살갑고, 가까이 있는 C는 두려울 수도 있지만, 이성적으로는 C와 우호관계를 포기할 수 없다. 한 교실의 급우들과 화목하지 않으면 교무실에 있는 선생님이 아무리 나를 편애한들 학교생활이 편할 수 없는 이치와 같다. 미중 사이에서 양자택일의 상황을 가정하는 것은 백해무익하다. 그런 상황은 K에게는 최악이고 퇴보이기에, 미국(H)과 중국(C)이 전쟁을 하지 않는 한, 양자택일은 가장 어리석다. 무엇보다 H와 C는 전쟁을 하지 않는다. 이론적으론 그럴듯하게 전쟁을 예측할 수 있겠지만, 필자가 그런 예측에 동의하지 않는 이유는 상대를 서로 파멸시킬 핵을 가진 국가가 전쟁한 사례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중대한 이익을 공유하는 어른들은 서로 목소리 높여도 결국 애들처럼 주먹다짐은 하지 못한다. 한국의 자주적 역량이 가장 중요 한반도 방정식을 보면, H(미국)와 C(중국)가 중요하지만, 결국 K(한국)가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이다. K는 다른 변수들과 곱셈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 방정식에서 K가 작아지면 결국 전체에 치명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K가 H와 C와의 관계를 잘 유지하고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스스로의 국력을 키우는데 실패하면 모두 허사가 된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K는 스스로의 역량을 키우는데 실패했기 때문에 당시의 강대국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주권을 보존하고자 했던 노력이 허사가 되었다. 이웃국가가 관심을 갖고 존중해 줄 만한, 매력과 역량을 스스로 갖추지 못하면 이리저리 이용만 당하다가 버림받는 것은 동서고금의 국가 간 관계에서 변하지 않는 진리이다. 종합적 개념인 국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력과 군사력이다. 경제력이 뒷받침 되지 않는 군사력은 지속가능하지 않기에 유명무실하고, 현대 군사력의 근간인 첨단군사기술은 결국 경제력과 불가분의 관계이다. 경제력 성장에 중요한 첨단 기술들은 군사기술로 그대로 응용 및 전용되는 경우가 많다. 외교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부국강병에 실패함으로써 주권을 잃었던 20세기 초와 비교하면, 2018년의 한국의 국제적 위상은 비교가 무색하다. 소위 5030클럽이라 일컫는 인구 5천만 이상의 국가 중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이상을 달성한 소수 선진국들의 반열에 특별한 이변이 없는 한 올해는 동참할 것이 확실하다. 이런 경제력이 뒷받침 되는 한국의 위상은 과거와 사뭇 다르다. 작년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방한하여 문재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을 때, 통일을 꼭 해야 하냐고 물었고 문 대통령은 그렇다고 대답했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필자는 그 일화를 매우 큰 의미로 인식한다. 왜냐하면, 주권유린의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도움을 청하는 한국을 미국이 외면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일본제국이 대한제국을 보호국으로 삼으려 했을 때, 조미통상조약을 근거로 일본으로부터 한국을 지켜주기를 절박하게 호소했지만, 태프트-가쓰라 밀약을 맺은 미국은 대한제국을 외면했었다. 그러던 미국이 한국에 통일을 꼭 해야 하냐고 의향을 물었다는 사실은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단순화하여 표현하자면, 미국이 의견을 경청하고 존중해 주어야 할 만큼, 한국의 국력이 성장했다는 것이다. 통계에 의하면, 2015년 한국의 GDP 순위는 11위로 호주와 러시아를 앞섰다. 이런 한국이기에 이제는 주변 강대국들이 한국의 의견에 경청하는 자세를 취하는 경우가 낯설지 않다. 2018년 벽두를 장식하는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 소식과 남북단일팀 구성 등, 북한의 올림픽 평화공세에 적극 호응하고 오히려 이끌어가고자 하는 문재인 정부의 행보에 대해서, 국제사회와 북핵문제 관련 강대국들은 - 그들의 호불호와 계산이 저마다 일 것이지만 - 일단은 한국의 행동을 존중하고 지켜보고 지지해 주고 있다. 특히 완강했던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문대통령에게 지지의 모습을 보이는 것은 한반도 방정식에서 K가 생각보다 상당히 커졌기 때문이라고 봐도 큰 잘못이 아니다. 다만, 평창올림픽 이후에도 대화의 분위기가 이어지고 궁극적으로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를 해결해 가는 데까지 이르려면, 앞서 언급한 냉엄한 국제정치의 현실에서 발을 떼지 않는 균형과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국력에 걸맞은 외교적 역량과 통일 및 역내평화를 공고히 하면서도, 공감할 수 있는 비전과 청사진을 국제사회와 주변 강대국들에게 제시해야 한다. 평창올림픽이 한창인 동안에도 청와대와 정부의 사무실들은 이를 위해 불을 켜둘 것으로 소망해 본다. 한반도 통일: 지정학적 한계를 극복하는 길 남북한이 통일되어 한반도에 강대한 독립변수 K가 등장하는 것이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확보하는 길이다. 화산과 같이 국가도, 내부의 힘이 충분히 축적되었을 때 외부로 힘이 분출된다. 대륙과 해양세력이 정치·경제·군사적인 힘이 축적된 후에는, 서로를 향하여 영향력을 확대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충돌을 겪는 역사가 대체로 반복되었다. 대륙세력과 해양세력 사이에 위치한 한반도는 양대 세력 사이에서 분단되기도 하고 존재가 사라지는 고통을 당하기도 해 왔다. 하지만, 한반도의 정치세력이 강력할 때는 오히려 대륙과 해양 사이에서 완충 및 방파제 역할을 함으로써 오랜 평화에 기여하기도 했다. 이런 시기는 역사에서 강력한 조선이 건국되어 한반도에 버티고 있었던 임진왜란 이전의 15~16세기였다. 강력한 한반도는 대륙과 해양세력이 부딪히지 못하도록 강력한 방파제 역할을 하였다. 고려 말과 조선 초기를 통해 한반도의 정치주체가 강력하게 발전하였기에, 몽골을 몰아내고 대륙세력의 새로운 패자가 된 명(明)이 만주의 여진을 완충으로 하여 조선과 우호관계를 유지하였다. 고려 말부터 창궐하였던 해양세력인 왜구도 조선이라는 방파제로 인해 대륙을 근본적으로 유린하지 못했다. 이러한 역사에서 교훈을 찾는다면, 일본을 앞세우기도 하는 미국의 해양세력과 날로 뻗어나는 중국이라는 대륙세력이, 남북한이 통일되어 한반도에 강력한 국가(정치주체)가 버티고 있을 때 서로의 충돌 가능성을 낮추고 경제적 번영을 구가할 환경이 조성될 수 있음을 인식할 수 있기를 바란다.   1) 김태완, “미국과 중국 사이의 한국: 역사의 교훈 서설,” 『국제정치연구』 제16집 제1호 (2013).   現 동의대학교 공공인재학부 교수이자 국제협력센터 센터장, 아시아개발연구소 소장. University of Colorado at Boulder 정치학 박사(국제관계)취득. 2005년 American University, DC에서 Professional Lecturer로 강의하면서 Center for Asian Studies에서 한국 코디네이터로 봉직했으며, 2012 가을학기와 2013년 봄학기에 방문교수로서 [China, Japan, and the U.S.], [Civilizations of Asia] 과목을 강의하였음. 2008년에는 아시아연구기금(Asia Research Fund)의 지원을 받아 “UNCLOS 하에서의 동아시아 해양분쟁”에 관하여 연구하였음. 중국 칭화대학교의 국제관계연구원 방문학자(2004)로 있었으며 전 동아시아국제정치학회 회장(2016)을 역임. 연구관심분야는 미중관계, 국제협력, 국제안보, 동아시아 해양분쟁이며, 주요 연구로 “Hardly Changed: Beijing-Pyongyang-Seoul Trilateral Game”(2015), “Beijing’s Dilemma and Preference on the Korean Peninsula: Responses to the 2010 Korean Crises”(2013), “남북한사이의 중국: 대 한반도정책 딜레마” (2011), “중국 국가정체성의 변화: 공산주의에서 민족주의로”(2010), 『올림픽 이후, 중국의 대 한반도정책과 한국의 대응방안 연구』(2009) 등 다수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