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간호: 2022-28
허재철(대외경제정책연구원)

[기획자 註] 미중 전략 경쟁과 공급망 재편에 따라, 최근 국제 질서에서 경제 문제는 국제 안보와 밀접한 관계를 갖게 되었다. 과거 동북아 지역은 국가 간 정치적 갈등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으로는 자유롭고 협력적인 관계를 구가했다. 경제와 안보 문제의 분리였다. 그러나 2018년 미중 전략 경쟁 이후 동북아 지역은 ‘경제 안보’라는 국가 간 갈등에 직면했다. 동북아에서 전개되는 경제 안보 문제를 진단하고, 동북아에서의 평화와 협력 질서를 모색하고자 한다. (이재준 연구위원 junlee@jpi.or.kr)


1. 미중 전략경쟁이 초래한 경제안보의 부활

최근 미중 전략경쟁의 심화와 코로나19 감염 확산, 그리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인해 글로벌 공급망이 교란되고 세계경제의 불안정성이 증폭되고 있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반도체와 의약품, 식량, 에너지 등의 공급 불안은 경기침체로 이어지고 있으며, 여기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 중국, 일본, 유럽연합(EU) 등은 경제 안보를 강화하기 위한 전략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안보가 중요하지 않은 적은 없었다. 냉전 시대 미국은 소련을 봉쇄하기 위해 자본주의 진영 국가를 대상으로는 통상과 원조를, 그리고 사회주의 진영 국가들에는 제재와 통제를 시행했다. 다만 1980년대 이후 시장 메커니즘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가 유행했고, 1990년대 소련의 해체 이후 사회주의 경제가 자본주의 경제로 이행하면서, 경제-안보 연계가 다소 완화되기는 했다. 하지만 2017년 취임한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과 무역전쟁을 일으킨 이후 경제안보는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했는데, 미중 전략경쟁이 경제안보를 다시 부활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최근 경제안보의 핵심은 미중 전략경쟁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경제적 부상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은 탈냉전기에 느슨해졌던 경제-안보 연계를 다시 조이고 있는 것이다.

한편, 냉전기와 탈냉전기의 차이점은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의 비중과 영향력에 있다고 할 수 있다. 1970년대 말 개혁개방을 통해 산업화를 가속화한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이후 세계의 공장으로 성장했는데, 그 결과 세계경제 및 글로벌 공급망에서 차지하는 중국의 비중과 영향력이 크게 높아졌다. 아직 첨단산업에서는 미국과 큰 격차가 남아 있지만, 비첨단산업에서 중국은 세계시장에 대한 장악력을 높여가고 있다. 또한 미중 전략경쟁의 영역이 실물 공간이 아니라 사이버·디지털 공간으로 확대되고 있는 추세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중국은 미국과 구분되는 독자적인 생태계를 빠른 속도로 발전시켜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의 강도와 범위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전통적 의미의 경제적 통치술로는 미국이 중국에 대응할 수 없는 상황에 봉착한 것이다. 이 때문에 미국은 새로운 경제적 통치술을 고민하고 있다. 미국은 자국이 가진 장점을 극대화하면서도 자국이 받는 피해를 극소화하기 위해 상호의존에 따른 취약성을 적극 활용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더 나아가 규범과 가치를 활용한 경제적 통치술을 전개하고 있다. 하지만 그 동안 경제적 통치술이 미국과 EU, 일본 등 경제적으로 발전한 선진국이 주로 사용해 왔던 것과 달리, 최근 중국과 러시아도 반제재(counter-sanction)를 통해 서방에 맞대응하고 있으며, 그 수단도 네거티브(negative) 제재와 포지티브(positive) 제재를 모두 구사하고, 네트워크에 기반을 둔 수단을 결합하는 등 보다 다양해지고 있다.

2. 경제안보의 개념

이와 같은 경제안보의 내용을 좀 더 체계적으로 정리해 보면, 경제안보는 크게 경제적 통치술(economic statecraft)과 경제회복력(economy resilience), 그리고 상호신뢰(mutual trust) 구축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경제적 통치술은 자국의 국가이익을 달성하기 위해서, 또는 상대국가의 행동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무역과 투자, 금융 등 분야의 경제적 수단을 힘의 원천으로 사용하는 행위를 뜻한다. 그리고 경제회복력은 경제영역과 관련한 국가이익이 외부로부터 위협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방안으로, 설령 물리적 위협을 받더라도 곧 회복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이러한 경제회복력은 민감성(sensitivity)과 취약성(vulnerability)에 대한 대응력이라고 할 수 있으며, 상대방에 대한 의존성을 낮춰 민감성을 줄이고, 유사시에 대비한 대안을 마련하여 취약성을 낮출 때 경제회복력이 확보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상호신뢰는 경제안보의 심리적 측면을 설명한 것으로, 국가 간 신뢰 구축 없이는 안정적인 경제안보 환경을 조성할 수 없음을 나타낸다.

이렇게 경제안보의 개념을 간략하게 정리해 봤지만, 경제안보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학계에서 합의된 정의는 아직 존재하지 않으며, 주요 국가들의 경제안보 전략 및 정책도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3. 한·중·일의 경제안보 전략

2021년 10월에 출범한 일본의 기시다 내각은 경제안전보장(경제안보)의 추진을 최우선 정책과제의 하나로 설정했다. 일본의 경제안보 전략의 목표는 크게 외부 위협에 따른 리스크 관리(안보 측면)와 경제성장(경제 측면)의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즉, 일본은 외국과의 상호의존관계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에 대응하는 등 방어적인 대응(수비)을 하면서도, 안보와 성장의 두 측면에서 동시에 중요성을 가지고 있는 전략적 산업 특히,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적극적인 정책 대응을 하고 있다.

경제안보를 추진하는 일본의 법적 기반은 크게 외환법과 ‘경제안정보장추진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일본 정부는 외환법 개정을 통해 ‘간주수출’ 규제를 강화하여 기술유출과 관련한 문제에 대응하고 있다. 또한 ‘경제안전보장추진법’의 공급망 강화, 인프라 안전성 확보, 첨단기술관민협력, 특허비공개 등을 통해 리스크 관리를 강화하면서, 경제성장에 대한 고려 속에서 ‘새로운 산업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와 함께 일본은 반도체를 경제안보의 핵심적인 대상기술로 간주하며 안보와 경제성장의 두 가지 측면에서 관련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한편, 중국의 경우, 시진핑 체제에 들어서 경제안보와 관련한 정책 및 전략이 보다 체계적으로 수립, 시행되고 있다. 특히 2018년 무역마찰을 계기로 미중 전략경쟁이 심화되면서 중국의 경제안보 전략 및 정책은 보다 체계적이고 공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먼저 중국은 급격히 성장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보다 적극적으로 경제적 통치술을 구사하고 있다. 경제력을 상대에 대한 압박 수단으로 사용하는 전통적인 네거티브 경제제재뿐만이 아니라 상대에게 다양한 경제적 혜택을 제공함으로써 자신의 뜻대로 상대를 유인하는 포지티브 경제제재를 적극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네커티브 제재와 포지티브 제재를 혼합하여 사용하는 하이브리드 경제적 통치술을 전개하고 있기도 하다.

또한 중국은 경제안보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데 있어 필요한 경제회복력을 위해 공급망과 산업경쟁력의 강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 미국의 각종 제재에 대응하기 위해서 무역을 다변화하고 에너지와 자원 등에 대한 안정적인 공급망을 확보하고자 한다. 동시에 자국의 거대한 내수시장을 적극 활용하여 공급망의 내부화를 모색하는 등 쌍순환 정책을 적극 추진하고 있고, 국가급 대외협력 이니셔티브인 일대일로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그리고 정부가 주도적으로 첨단 산업과 미래 전략기술에 대한 육성 및 보호 정책을 추진함으로써 산업경쟁력 강화를 모색하고 있다.

한편, 한국의 신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경제안보 전략은 신정부가 제시한 4대 경제정책 방향 중에서 ‘미래대비 선도경제’ 부분의 ‘과학기술·R&D 혁신’과 ‘첨단 전략산업 육성’ 부분에 주로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신기술 확보·신산업 개발에 중점을 둔 과학기술·R&D 정책 수립 △신산업 육성 전략을 마련하고 첨단산업의 초격차 확보 지원 △인공지능 등 유망 신산업 전략적 육성 및 원전 경쟁력 강화 지원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한국 정부는 이를 위해 대외경제장관회의를 중심으로 경제안보 대응 컨트롤 타워 역할을 강화하고 상시 위기경보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그리고 조속히 해결해야 할 경제안보 현안으로 △(관리·지원 기반) 공급망 3법 제·개정을 통해 공급망 관리‧지원기반 구축 △(국제협력) 경제안보와 안정적 공급망 구축을 위한 다자 협력체계 강화(IPEF, CPTPP 등) △(해외자원확보) 민간 해외진출에 대한 융자 및 공공기관 지원 확대 △(식량안보 강화) 기초 식량 중심으로 국내 자급기반 확충 및 해외 공급망 확보를 추진 △유턴기업 인정요건을 완화, 공급망 교란 가능성이 큰 첨단산업·신기술 중심의 유턴 유인 확대 △(외투) 산업경쟁력 제고, 공급망 강화 등 경제적 기여도가 큰 외국인투자유치 확대를 위한 현금지원 강화 등을 상정하고 있다.

4. 동북아 평화에 대한 시사점

경제와 안보의 관계는 역사적으로 끊임없이 변화해 왔는데, 최근의 미중 전략경쟁이 다시금 경제와 안보를 긴밀하게 연계시키면서 경제안보 이슈가 부각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경제안보는 경제적 통치술과 경제회복력, 그리고 상호신뢰의 요소를 포함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으나, 경제안보에 대한 합의된 정의는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가운데 동북아의 주요 구성원인 한·중·일은 경제안보 이슈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과 보조를 맞추며 각자 나름의 경제안보 전략 및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경제안보 전략(정책)은 대부분 경제제재에 대한 대응, 공급망 안전, 수출입 다변화를 통한 비대칭적 상호의존성 감소, 반도체와 같은 전략산업에 대한 경쟁력 확보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문제는 경제안보의 중요한 요소인 상호신뢰 회복을 위한 노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이다. 아무리 물리적, 제도적으로 경제안보를 위한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이 언제 자신의 경제안보를 위협할지 모른다는 불안 속에서 산다면 안정적인 경제안보 환경을 구축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안정적인 경제안보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지금 우리가 놓치고 있는 상호신뢰 회복에 좀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결국 동북아의 평화와도 연결될 수 있다. 경제안보와 동북아 평화는 일면 모순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결국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일 수 있다.

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편집 : 김서연 인턴

허재철(대외경제정책연구원)

허재철 박사는 현재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중국지역전략팀(경제안보팀 겸직)의 부연구위원으로 재직 중이며, 한양대학교 국제학부에서 겸임교수로서 강의를 하고 있다. 2008년 일본 도시샤(同志社)대학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고, 2013년 중국인민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후, 국회의원 비서관과 원광대 한중관계연구원 연구교수, 일본 리츠메이칸(立命館)대학 JSPS 박사후 연구원 등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