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간호: 2023-10
반길주 (고려대 일민국제관계연구원 국제기구센터장)

[기획자 註] 오늘날 미중 간 전략 경쟁은 나날이 치열해지는 듯 보인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신냉전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고 일컫기도 하고 한편에서는 미중 두 강대국 간 대립과 갈등이 있기는 하지만 이들은 경쟁자일뿐 국제정세를 신냉전 구도로 바라보는 것은 지나치다는 입장도 존재한다. 그렇다면 과연 국제정세가 어떠한 모습을 보일 때 우리는 이를 신냉전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과연 신냉전 구도는 앞으로 강해질 것인가. 과연 신냉전 구도하에서 미중 간 디리스킹은 가능할 것인가. 신냉전 구도하에서 한국은 국익을 위해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제주평화연구원은 반길주 고려대 일민국제관계연구원 국제기구센터장님의 JPI PeaceNet 기고를 통해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얻고자 한다. [기획: 정승철 연구실장(scchung@jpi.or.kr)]


Ⅰ. 서론 : 복잡한 신냉전 방정식

다자무대는 불편한 관계에 있는 두 국가가 회담을 이어가지 못하는 교착상태에 빠졌을 때 교두보를 마련해주는 기제로 작동하기도 한다. 따라서 대결구도가 강해지고 있는 미국과 중국에게 다자무대는 양자관계를 발전시키는 동력으로 작용할 수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양자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발판이 될 수도 있다. 특히 미국은 디리스킹(De-risking) 담론을 주도하며 중국과 완전히 단절하는 디커플링(Decoupling)과는 분명히 선을 긋는 행보를 보인 상황에서 다자무대 계기 디리스킹 기조를 이어가는 외교적 행보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2023년 9월 아세안 관련 정상회의와 G20 정상회의가 열렸지만 미중 정상회담은 열리지 못했다. 미국측은 아세안 관련 회의에는 해리슨 부통령이 참가하고 G20 정상회의에는 바이든 대통령이 참가했지만 중국측은 이 두 차례에서 다자외교 무대에 시진핑 주석 대신 리창 총리가 참가했기 때문이다. 작년에는 동계기에 시진핑 주석이 참가하여 미중 정상회담이 성사되었지만 이번에는 이런 구도가 펼쳐지지 못했다. 나아가 이어서 개최된 유엔총회 고위급 회기에서도 시진핑 주석은 참가하지 않음에 따라 미중 정상회담의 기회도 갖지 못하게 되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복잡한 신냉전 방정식에 기인한다. 신냉전 특징 중 하나는 냉전처럼 ‘블록화’는 아니더라도 ‘진영화’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것이다.1) 자유민주주의 진영과 권위주의 진영이 양분화되면서 모든 이슈에서 대결이 펼쳐지는 구도가 강해지는 것이다. 따라서 상대방 진영의 결속력이 강화되면 이를 강하게 견제하고 심지어 자기 진영에 대한 위협으로까지 인식하는 수준으로 격화되는 양상이 도드라지고 있다.

이러한 구도는 다자무대에 정상이 직접 참여할지를 따져보는 판단에도 일정부분 영향을 미치고 있다. 2023년 8월 18일 한미일 정상은 캠프 데이비드에 모여 강도 높은 정상 간 협력을 진행한 후 “캠프 데이비드 정신”이라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자유민주주의 진영을 이끄는 핵심 3개국이 이러한 결속력을 보인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시점에 시진핑 주석이 아세안 관련 정상회의나 G20에 참여하고 이 계기에 한중 정상회담까지 하는 것은 한미일 협력체를 축하해주는 것처럼 의도치 않은 신호를 발신할 수 있다는 우려가 일부 작용했을 수 있다. 이 단적인 예가 복잡한 신냉전 방정식의 작동을 보여준다. 물론 이는 단지 한미일 협력체만의 사안이라기보다는 미중 전략적 경쟁의 연장선상에서 작용한 판단이라는 해석이 합리적이다.

미국이 디리스킹 담론을 정책화하면서 중국과 소통을 시도하고 있지만 중국은 이에 단호한 거부의사를 표명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적극적이지도 않은 모습이 지속되는 양상이다. 그러면서 미중 간 소통의 계기가 좀처럼 조성되지 않고 있다. 2023년 9월 유엔총회에 중국측 대표로 시진핑 주석이 오지 않은 것을 넘어 왕이 외교부장도 아니고 한정 국가부주석이 참가하면서 미국으로서는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 시진핑 주석이 참가하여 미중 정상회담이 성사되는 것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고개를 들고 있다.2) 이는 외교무대에서 미중 간 기싸움이 치열해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런 어려움을 잘 풀어내고 APEC 계기에 미중 정상회담이 이루어진다면 디리스킹 기조에 탄력이 붙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신냉전 구도는 강해지기만 할 것인가? 과연 신냉전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해야 할까? 미중 전략적 경쟁 구도하에서 디리스킹이 가능한 것이기는 할까? 이러한 퍼즐을 해결하는 것이 국제정치의 중요한 숙제가 되고 있다.

Ⅱ. 신냉전, 어디까지 왔나?

신냉전을 한마디로 정의하는 것은 어렵다. 그렇지만 신냉전의 대표적인 모습으로 미중 전략적 경쟁을 제일 먼저 꼽는 것은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다. 신냉전은 본질적으로 국제체제를 규정하는 모습이고 국제체제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강대국 간 상호작용과 무관치 않기 때문이다. 미중 전략적 경쟁을 추동시킨 구조적 요인은 중국의 성장으로 국제무대에서 세력 재배분 기제가 창출되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한 국가의 능력 성장만으로 경쟁구도가 바로 심화되지 않는다. 한 국가의 힘이 성장하면 되레 책임 있는 역할에 나서며 협력구도가 조성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중 전략적 경쟁 구도 창출은 구조적 요인이라는 심지에 불을 붙인 촉발적 요인도 살펴보아야 한다.

중국의 힘의 성장이 ‘구조적’ 요인이라면 중국의 행태변화는 ‘촉발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시진핑이 정치권력을 장악하게 된 2012년부터 중국은 중국몽, 일대일로, 신형대국관계 요구, 신형국제관계 강압 등 일련의 현상변경정책을 쏟아내었다.3) 따라서 신냉전 부상의 기점이자 모멘텀은 2012년이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신냉전 구도 조성은 중국의 성장이라는 구조적 요인에 현상변경 시도라는 촉발적 요인이 결합된 결과였다. 그런데 2022년 신냉전 구도가 강해지는 또 다른 촉발요인이 발생하게 된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힘으로 상대국의 주권과 자유를 강탈하려는 행태가 나타난 것이다. 이는 2차 세계대전 후 지속되어온 자유주의적 국제질서와 규칙기반 질서에 대한 심대한 도전이었다. 따라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기점으로 신냉전 구도가 ‘1.0’에서 ‘2.0’으로 심화되는 양상이다.4)

이처럼 중국뿐 아니라 러시아도 신냉전 구도를 강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지만 미국의 입장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여전히 중국이기에 지정학적 중심 1지대는 여전히 인도-태평양지역이고, 유라시아는 지정학적 중심 2지대로 가동되고 있다. 한편 미중 전략적 경쟁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새로운 분위기가 감지된다는 담론도 형성되고 있다. 중국이 이제 성장의 정점을 찍었다는 ‘피크 차이나(Peak China)’가 바로 그 중심에 있다.5) 피크 차이나는 중국이 과거 냉전시절 소련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인지 여부와 관련되는 사안이기도 하다. 냉전기 소련은 미국의 경제력에 최대 57%까지 추격했으나 그 이후 정점을 지난 쇠락기에 접어들었음에도 무리하게 군사력 신장과 팽창을 이어가 내부 폭발로 붕괴했다는 시각과 연계지어 중국도 그렇게 될 것인지 전망하는 측면에서 판단할 수 있는 요소다.6)

하지만 피크 차이나 담론이 어느 정도 적실성을 가지게 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소련과 달리 중국은 2022년에 이미 GDP 기준으로 미국의 80%에 도달하며 격차를 좁힌 상태다.7) 지속되는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중국은 항공모함 프로그램을 추진하는 등 군사력 현대화 동력을 이어가고 있다. 종합적으로 보면 신냉전은 이제 이미 10년 차를 넘어서는 가운데 심화되고 있으며 이러한 추세라면 신냉전이 냉전보다 지속가능성이 높을 수 있다는 조심스러운 예상도 가능하다. 따라서 신냉전 그 자체는 우발적 군사충돌의 개연성을 점점 높이고 있다고 볼 수 있으며 이는 이러한 기제를 완화시키는 노력도, 필요한 숙제도 던지고 있다. 이런 틈새에서 디리스킹 담론이 제시되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Ⅲ. 경쟁과 디리스킹의 딜레마란?

주지하다시피 미중 전략적 경쟁은 신냉전을 규정하는 대표적인 속성이다. 소위 경쟁에 방점을 두고 있지만 여기서 경쟁은 대결의 순화된 표현일뿐 선의의 경쟁과는 거리가 있다. 남중국해, 동중국해, 대만해협 등 핵심영역에서 대리전이 펼쳐지는 상황이 이러한 경쟁의 성격을 방증한다. 한편 미국이 주도하고 서방진영에 합류한 디리스킹 담론은 중국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국익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인식하에 중국발 위기를 관리하되 중국과 단절되지 않는 절충점을 찾겠다는 인식에 기초한다. ‘경쟁’은 국제정치의 현실이고, ‘디리스킹’은 이 현실에 대한 대응이자 해법인 셈이다.

그런데 경쟁 심화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 디리스킹 정책화가 공허할 수 있다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부당한 경제적 강압을 시도하는 국가를 대상으로 집단적 경제안보로 대응하겠다는 해법이 미국 등 서방진영을 중심으로 정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디리스킹이 실행가능하기 어렵다는 충돌의 지점이 있는 것이다. 경쟁을 강조하면 디리스킹이 요원해지고, 디리스킹을 강조하면 경쟁의 주도권을 놓치게 되는 딜레마에 직면하는 것이다. 디리스킹 담론이 정책화되려면 미국과 중국이 다양한 외교를 통해 최소한의 협력분야를 찾아내고 이를 계기로 우발적 충돌을 차단하는 기제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경쟁이 강화되는 구도 속에서는 디리스킹 정책화가 이상주의적 해법으로 전락될 수 있는 딜레마가 있는 것이다.

미중이 ‘경쟁-디리스킹 딜레마’를 푸는 데 공동의 노력을 하는 것은 국제정치 전반에 의미 있는 시사점을 제공할 것이다. 미국이 디리스킹 담론을 제시한 것은 중국과의 대화와 소통에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중국은 이러한 평가를 외면하면서 이마저도 대중국견제라는 사고와 주장만을 반복하고 이러한 태도를 일관하는 것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이런 측면에서 시진핑 주석이 오는 11월 APEC 정상회의에 참가한다면 신냉전 구도 완화와 미중관계 개선에 매우 유의미한 발걸음이 될 것이다.

Ⅳ. 신냉전 구도에서 한국이 국익을 담보하는 지략은?

집권 2년 차 한국 정부의 대외전략도 바로 이 디리스킹 담론을 냉철하게 판단하고 이 담론과 기조를 한국의 입장에서 주도할 방법을 찾아내는 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전략적 명확성’ 기조에 따라 정부는 혁신과 변화를 추동하는 역대급 문서들을 쏟아내었다. 2022년 12월 『자유, 평화, 번영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발간했고, 2023년 6월에는 『윤석열 정부의 국가안보전략: 자유, 평화, 번영의 글로벌 중추국가』 공개본을 내놓았다. 나아가 한국은 동아시아 국가로 구성된 최초의 정상 소다자 기구인 한미일 협력체를 설계하고 출범시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윤석열 정부의 이러한 방향성은 국제사회의 도움으로 자유를 지키고 번영을 이룩한 한국이 이제는 이에 보답하는 기여외교를 추진한다는 목표하에 일관적인 방향성을 갖고 정책화되고 있다. 즉 한국의 국가이익뿐 아니라 전 세계의 자유 확산과 번영을 위해 한국이 역할과 책임을 다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철학은 상대이익으로 점철된 신냉전의 국제정치에서 절대이익에도 일부 공간을 마련해준다는 측면에서 중요하다. 한국은 대외전략에서 신냉전 ‘조장’이 아니라 신냉전 ‘완화’라는 선순환을 주도한다는 메시지를 천명할 필요가 있다. 한미일 협력체도 국제정치에서 대중국견제 등 진영 대결의 주도권을 잡는 문제가 아니라 북핵이라는 절박한 위협에 대응하고 나아가 본질적으로는 인류 모두가 직면한 글로벌 도전에 대처하는 플랫폼이라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한국은 한미일뿐 아니라 한일중 정상회담을 정교하게 추진하면서 새로운 소다자 협력체 설계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한국이 외교적 레버리지를 높이고 장기적인 국익도 담보하는 결과로 이어지는 해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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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반길주, “냉전과 신냉전 역학비교 : 미·중 패권경쟁의 내재적 역학에 대한 고찰을 중심으로,” 『국가안보와 전략』 제21권 제1호(2021), p. 34.

2) 이지헌, ““이달 유엔총회에 中 왕이 불참…11월 미중 정상회담 불투명”,” 『연합뉴스』, 2023.9.10., https://www.yna.co.kr/view/AKR20230910000400072?input=1195m(검색일: 2023.9.10.).

3) 반길주, “미중 패권전쟁의 충분조건 분석 : 결정론적 구조주의 한계 보완을 위한 행위적 촉발요인 추적,” 『국제정치논총』, 제60집 제2호(2020), pp. 17-20.

4) 반길주, “다윗과 골리앗의 신안보딜레마: 강대국 정치 시대에 급부상한 게릴라 전술의 정치·군사 역학 분석,” 『동북아연구』, 제38권 제2호(2023), p. 27.

5) William A. Galston, “Is China Past Its Peak?” WSJ, 15 August 2023, https://www.wsj.com/articles/china-past-peak-demographic-bomb-aging-youth-unemployment-grad-recession-taiwan-34fda75f(검색일: 2023.9.10.).

6) 반길주, “냉전과 신냉전 역학비교 : 미·중 패권경쟁의 내재적 역학에 대한 고찰을 중심으로,” 『국가안보와 전략』 제21권 제1호(2021), p. 15.

7) 류지영, “중국 GDP, 미국의 80%까지 추격… 1년 만에 격차 10% 줄였다,” 『서울신문』, 2022.1.20.,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20120012022(검색일: 2023.9.10.).

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편집 : 김수연 연구원

반길주 (고려대 일민국제관계연구원 국제기구센터장)

반길주 교수는 현재 고려대학교 일민국제관계연구원 연구교수이자 국제기구센터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애리조나주립대학교(ASU)에서 정치학 박사를 취득하였고, 해군사관학교 국제관계학과장, 인하대학교 국제관계연구소 안보연구센터장을 역임한 바 있다. 유엔사·합참 등 안보 관련 정책부서에 근무한 경력이 있고,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에서 외교 관련 업무를 수행하기도 했다. 연구분야는 국제안보, 미중경쟁, 외교전략, 군사전략, 북핵, 동맹, 해양안보 등이다. 단행본(단독)으로는 『거역 : 정의붕괴시대 거역 프로젝트』 (2021) 등 4권이 있으며, 최근(2020∼현재) 학술논문으로는 SSCI급 6편, SCOPUS 6편, 등재(후보)지 33편 등 45편을 집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