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간호: 2020-11
도종윤(제주평화연구원 연구실장)

1. 지금 유럽은…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아시아의 먼 곳에서 일어난 에피소드라고 생각하던 유럽도 코로나 19(COVID-19) 문제를 이제는 심각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2020년 3월 23일(CET 6:00-10:00)기준으로, 유럽(EU, EEA, 영국)의 확진자는 160,233명에 달하고 있고 사망자는 8,622명에 이른다. 같은 날 기준 전 세계 확진자 338,307명의 47%, 전 세계 사망자 14,602명의 60%를 차지하고 있다.1)

그렇다면 지금 유럽의 모습은 어떨까? 벨기에의 브뤼셀 자유대학(ULB)은 3월 18일부터 4월 5일까지 모든 학생과 교직원이 원격 수업 혹은 원격 업무(l’enseignement à distance et le télétravail)를 하도록 조치하였다. 그리고 필요한 경우 구성원들에게 전화 또는 화상으로 심리 상담을 해주도록 지원해주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대형 서점 프낙(Fnac)이 저명한 바이러스 전문가의 손을 빌어 『코로나 바이러스 어떻게 예방할 것인가?-50개의 문답-』(CORONAVIRUS Comment Se Protéger?, 50 Questions-Réponses)을 신간으로 내놓았다.

확진자와 사망자가 가장 많은 이탈리아는 초강수 대책을 내놓고 있다. 약국, 은행, 소형 식료품점을 제외한 모든 학교, 박물관, 극장, 유흥업소, 식당이 문을 닫았다. 이탈리아 남성들의 최고 인기 스포츠인 프로축구도 멈췄다. 업무상 이유가 아니면 모든 개인이 집 밖을 나서서는 안 된다. 확진자가 많이 나온 롬바르디아의 경우 어느새 부고(訃告)란에 이름 올리기도 어렵게 되었다. 이탈리아 출신의 조르지오 파루(Giorgio Palù) 전 유럽바이러스학회장은 이탈리아 방역의 실패 원인 중 하나가 병원에서의 바이러스 감염 가능성을 간과한 것이라고 꼬집는다. 그는, “(다른 나라에 충고하자면) 확진자라 하더라도 증상이 없거나 경증일 경우면 (병원에 가기보다) 되도록 집에 있는 것이 낫다”고 조언한다. 그는 덧붙여 “병원에서조차 마스크와 산소 호흡기가 부족하다”라고 말한다. 말하자면 병원이 오히려 확산의 근원지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이탈리아 정부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두 개의 야전병원을 만들어서 군 의료진이 진료를 돕도록 하겠다고 발표하였다.2)

사회적으로 어수선한 틈을 타 힘을 늘리는 정치인도 있다. 10년 이상 총리직(이전 총리직 까지 합치면 14년)을 지키고 있는 빅토르 오르반(Viktor Orbán) 헝가리 총리는 3월 20일, 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하기 위하여 무기한 지속 가능한 특수 법령 입법안을 국회에 제출하였다. 이번 법령안에 담긴 특수 권한을 살펴보면, “특정 법률의 적용을 제한할 수 있고, 일부 법률의 효력을 중지시킬 수 있으며 더 나아가 경제 안정을 위해서, 그리고 시민들의 생활, 보건, 사적, 물리적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 특수 조치들을 취할 수 있도록”하고 있다.3) 구체적으로 이번 법안에 따르자면, ‘공중위생의 성공적인 방어’와 관련된 사실을 왜곡하여 보도하거나 퍼뜨리면 3-5년에 이르는 징역을 살수도 있다. 또한 선거와 국민투표(referendums)도 무기한 연기하도록 하였다. 극단적인 경우 코로나19로 국회의원이 사망하더라도 보궐선거 등은 언제 열릴 지 알 수가 없다. 또한 이 법안은 국가의 비상사태가 무기한 지속되어도 의원들의 승인이 필요 없어서 오르반 총리의 권한을 보다 확대시킬 것으로 보인다. 이 법안이 주목을 끄는 이유는 그가 유럽에서는 베를루스코니 전 이탈리아 총리, 마린 르펜 국민연합 총재, 에르도간 터키 대통령, 푸틴 러시아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비슷한 이미지로 그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그는 민족주의자(nationalist)이자 유럽회의주의자( Euroscepticism), 그리고 포퓰리스트로 의심받고 있다. 2011년, 그는 총리직에 오른 지 얼마 안 되어 언론 보도를 제한하고, 사법권과 중앙은행의 독립을 저해하는 헌법 개정으로 이미 국제사회에서 많은 지탄을 받으바 있다. 그래서 이번 조치를 더 의심하게한다.

2. 녹색 월경지대(Green Lane Borders Crossings)

이런 가운데 EU의 각 기관(institutions)도 비상이 걸렸다. 지난 4일 브뤼셀에 있는 EU 각료 이사회 사무국의 공무원이 코로나19의 첫 확진자로 확인된 후, 23일에는 유럽의회의 40대 기술직 직원이 첫 사망자로 기록되었다.4) 그 사이 EU의 각 기관은 각종 회의와 만남을 축소하거나 취소하고 있다. 3월 둘째 주, 스트라스부르그의 유럽의회 총회에는 705명의 유럽의회 의원을 비롯하여 수백 명의 보좌관들이 북적거릴 예정이었지만 핵심인사만 참여하는 회의로 크게 축소되었다. 또한 6-7천 명 정도의 참여가 예상된 130여 건의 각종 의회 행사가 모두 취소되었다, 집행위원회는 지난 17일, 의료진 같은 바이러스 전문가들을 제외하고, 외부에서 들어오는 단체 관광객의 역내 진입을 향후 30일간 금지하기로 하였다. 이로 인해 EU 기구가 포진한 브뤼셀의 관광 수입도 막대한 타격을 입고 있다. 브뤼셀 호텔 연합의 추산에 따르면 지난 한 달간 예약 취소 등으로 입은 손해는 1천만 유로(약 135억 원)에 달한다고 한다.

한편, 집행위원회는 물류의 이동이 제한되면서 경제 침체가 빠르게 가속화되고 있음을 주목하여 국경지대에서의 물류 이동 관리 대책을 내놓았다. 이 지침에 따르면 먼저 회원국들은 ‘환 유럽 이동망(Trans-European Transport Network: TEN-T)’이 닿는 역내의 한 지점에 국경 검문소를 설치하고 이곳에 ‘녹색 월경지대(green lane borders crossings)’를 두어야 한다. 녹색 월경지대는 어떤 종류의 화물을 실었건 상관없이 모든 종류의 화물차가 이용할 수 있으며 각종 서류 및 위생 검사에 15분을 넘길 수 없다. 따라서 이곳을 통해 국경을 넘는 절차는 최소한으로 간소화된다. 화물기사는 화물차에서 내릴 필요가 없고 ID카드와 운전면허, 경우에 따라 고용인의 간단한 서신만 있으면 국경을 통과할 수 있다. 전자 단말기에 서류를 담아 제시해도 된다. 이는 화물기사의 국적이나 차고지, 화물의 출발지와 목적지에 상관없이 모두 적용된다. 더불어 회원국들은 의료진, 관련 종사자 등을 태운 일반 운전자나 동승한 승객들이 목적지가 어디든 TEN-T망을 따라 이동할 수 있도록 안전 통로를 설치해야 한다. 또한 회원국은 본국 송환자들과 국제 구호 항공기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적어도 하나의 공항은 확보해두고 있어야 한다.

3. 사생활 보호의 문제

코로나19 사태와 더불어 간과되어서 안 되는 것이 있다. 바로 개인의 사생활과 관련된 문제다. 디지털권(Digital Rights)이 어느 곳보다 잘 정비되어 있는 유럽의 옹호론자들은 코로나 19의 확산에 따라 정부가 응급상황을 이유로 개인 정보를 함부로 다룰까 걱정하고 있다. 특히 개인의 움직임을 고스란히 담아두고 있는 스마트폰 위치 추적 데이터가 문제다. 지금과 같은 감염병의 대유행기에 보건 위생이라는 이름으로 개인 정보가 남용될 수도 있다. EU 차원에서는 디지털 보호 규정이 비교적 잘 정비되어 있지만, 회원국도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독일의 경우 3월 초 이미 감염병의 창궐기에 개인데이터를 어떻게 이용할 것인지에 관한 정비 법안을 발빠르게 추가하였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나라들이 더 많다. 폴란드는 자가 격리 앱을 개발하여 자가 격리된 사람들이 주변인들에게 자신의 위치를 알려주도록 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6개월 동안 통화내역을 보관할 수 있도록 하는 청원이 진행되고 있다. 독일의 도이치 텔레콤, 이탈리아에서는 보다 폰 등이 특정지역에서 인구의 이동을 보다 쉽게 파악하기 위한 자료를 정부에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들이 반드시 옳은지는 아직 판단하기 이르다. 유럽사법법원이 국가안보를 빙자한 이 같은 빅 브라더 식 정보 수집이 타당한지 심리 중이기 때문이다. 유럽의 전문가들은 데이터 수집의 목적이 분명하고 일시적이며 임박한 위협이 있을 때만 정당하다고 보고 있지만, 적용과 검증이 문제다.5)

4. 우리가 얻을 함의

한편, 아직 아주 작긴하지만, 희망적인 소식도 들린다. 이탈리아 북부의 도시 보(Vò)는 코로나19 발발의 주범이었다. 인구 3천여 명의 이 작은 도시에서 2월 21일 처음 두 명의 확진자가 나온 것이 출발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튿날 그 중 한 사람(78세)이 사망하였다. 이는 이탈리아에서 코로나19로 사망자가 나온 첫 사례였다. 그러자 이탈리아 보건부 장관은 보를 격리지역으로 지정하였고 어느 누구도 특별허가가 없으면 보를 떠나거나 들어갈 수 없었다. 이곳의 대책은 오로지 ‘격리와 검사’였고 인구의 97%가 진단검사를 받았다. 그러나 일주일 새 인구의 3%가 양성으로 – 이곳을 아우르는 베니토(Veneto) 전 지역에서 151명이 확진자로 판명- 로 확인되었다. 확진자 중 미증상자는 자가격리, 증상자는 지정된 보건소로 직접 방문하였다. 그러자 3월초 확진자의 수는 1%로 떨어졌고 3월 23일에는 드디어 신규 확진자가 한명도 발생하지 않았다.6) 지금 보는 이탈리아에서 모범 사례-그들은 이를 Vò Model로 부른다-로 연구되고 있다.

유럽의 코로나19 사태는 여전히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몇 가지 우리가 얻을 함의는 있다. 첫째, 격리와 검사는 우리나라나 유럽이나 똑같이 가장 중요한 대처법으로 이용하고 있다. 치료제가 아직 개발되지 않은 감염병의 특성상 지금 인류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조치이다. 보가 코로나19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던 것은 엄격한 격리였다. 둘째, 그러나 격리는 사회적인 부작용을 낳는다. 경제가 침체되고 인간은 소외된다. 사회적으로 외톨이가 된다. 주목할 것은 유럽이 경제 부양 못지않게 격리된 자(혹은 확진자)에 대한 심리적 도움과 사회적 연대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이다. 물리적 격리 못지않게 환자들과 그 가족들을 어루만져줄 심리적 도움이 필요하다. 뜻하지 않게 생이별을 해야 하는 가족들에 대한 도움도 꼭 필요하다. 셋째, 감염병이니 만큼 위험 전파를 예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개인의 사생활을 어디까지 보호해줘야 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 필요하다. 이 문제는 개인-사회-기업(데이터 수집업체)-국가 등이 모두 연결고리로 묶여 있다. 여럿이 연계된 이런 묶음에서 오로지 국가가 독점적으로 개인의 사생활 공개의 범위를 결정해도 되는 지 의문을 낳는다. 보다 더 큰 범주의 협의가 필요하다. 앞으로 코로나19 사태가 잠잠해지면 유럽에서는 사회적, 정치적, 법률적 차원에서 이에 관한 보다 면밀한 검토가 이루어질 것이다. 넷째, 응급상황이고 위기가 임박한 만큼 수많은 정책과 법령이 쏟아지고 있다. 기술적 능률과 정치적 독재가 혼동될 수도 있는 시기이다. 헝가리의 오르반 총리의 합법화된 독재는 바로 이런 논리 속에서 점차 확장되어 왔다. 경계할 부분이다.

5. 단절과 차단이 아닌 점과 선으로 이어진 녹색 지대로

이제 우리에게도 희망을 볼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 물류이동의 단절과 생산 차질로 경제는 마비되었다. 감염의 책임 소재를 두고 인종차별과 이웃 간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격리는 지금 최선의 예방책이지만 이로 인해 개인이 겪는 심리적 고통은 사회를 전반적으로 우울하게 만든다. 77억의 지구인이 확진자 46만 7천명(3월 37일 기준)- 약 0.006%-으로 인해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확진자가 퍼진 붉은 지대에 겁먹지 말고 아직도 건강한 녹색 지대를 넓히는 전략이 필요하다. 유럽은 ‘녹색 월경지대’를 마련하여 국가 간 물류의 순환이 멈추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우리 역시 이웃 국가들과 연계하여 녹색 월경지대를 만들면 어떨까? 지금까지는 무조건 차단과 단절을 최선의 방책으로 삼았다. 이는 격리와는 다른 것이다. 타의에 의한 차단과 단절은 결국 모든 이동을 불가능하게 한다. 오히려 엄격하게 관리되는 청정지대를 만들어 점과 선으로 확장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예컨대 우리나라의 공항 중 한 곳을 바이러스 없는 청정 지대로 만들어 외국의 같은 환경을 가진 청정 공항과 최소한의 물류라도 빠르고 쉽게 주고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작더라도 코로나19 확진자가 없는 작은 구역을 엄격하게 통제하여 그곳만이라도 감염되지 않은 사람이 자유롭게 다니도록 하는 것도 방법이다. 정부에서는 일부 안심 존을 공지하고 있지만 이는 확진자가 다녀가지 않은 곳을 표시하는 수세적인 시각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을 좀더 발전시켜 보자. 사람에게는 따뜻한 태양 밑에서 봄꽃 향기를 느낄 자유가 있다. 녹색지역이 점과 선으로 점차 늘어날 때 우리는 희망을 보게 될 것이다. 물리적 격리는 여전히 중요하지만 그것이 차단이나 단절이 되어 모든 흐름을 끊어서는 안되지 않을까?

1) 유럽 질병 예방 통제센터(European Centre for Disease Prevention and Control), https://www.ecdc.europa.eu/en/novel-coronavirus-china
2) “Coronavirus: Lessons from Italy”, EUobserver, 17 March, 2020
3) “Hungary’s Orban seeks indefinite power in virus bill”, EUobserver, 20 March, 2020
https://euobserver.com/coronavirus/147834
4) “First coronavirus cases hit EU institutions”, EUobserver, 05 March, 2020
5) “Privacy issues arise as governments track virus”. EUobserver, 23 March, 2020,
https://euobserver.com/coronavirus/147828
6) “Vò – the Italian town that defeated coronavirus”, EUobserver, 23 March, 2020,
https://euobserver.com/coronavirus/147848?utm_source=euobs&;;;;;;utm_medium=email

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기획: 도종윤(제주평화연구원 연구실장)
편집: 한유진(제주평화연구원 연구조교)​

現 제주평화연구원 연구실장. 브뤼셀 자유대학교에서 정치사회학 박사학위 취득. 주요 논문으로 “국제정치학에서 주체물음(2013)”, “유럽연합의 개발협력전략(2013)” 등이 있음/vc_column_t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