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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우즈베키스탄 정상회담에 바란다
    저자
    오은경 (동덕여대 교양교직학부 교수 / 유라시아투르크연구소장)
    발간호
    2017-65
    새 시대를 여는 두 대통령의 만남 ‘신정부 출범’은 국민들에게 ‘더 나은 세상’에 대한 꿈과 기대를 선물한다. 우즈베키스탄에서도 작년 12월 미르지요예프(MIRZIYOEV) 대통령을 중심으로 신정부가 출범했다. 초대 이슬람 카리모프에 이어 2대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으로 취임한 미르지요예프 대통령이 11월 22~25일 한국을 방문한다. 미국, 중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주요국 정상들과의 회담이 이어지는 가운데 새롭게 출범한 한국 정부가 우즈베키스탄 정상과는 어떤 미래 구상을 논의할지 기대된다. 멀리 있어도 가까운 나라, 우즈베키스탄 우즈베키스탄은 1991년 구소련이 해체된 후 독립한 신생국가이자 중앙아시아의 중심 국가이다. 한국과는 1992년 수교를 맺었으며 2006년 양국 간 ‘전략적 동반자’ 관계가 수립되었다. 양국은 길지 않은 시간에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호혜적인 협력관계를 강화시켜 나가고 있다. 짧은 수교의 역사지만 급속도로 관계 진전과 상호신뢰 구축이 가능했던 것은, 이미 수천여 년 실크로드 이전 상고시대부터 시작된 교류를 통해 문화와 소통의 장을 함께 일구어 나갔던 경험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 흔적은 고도(古都) 사마르칸트에 있는 아프라시압 벽화 속 고구려 사신의 모습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우즈벡인들이 쓰는 언어 또한 우리와 같은 알타이어군에 속한다. 더구나 우즈베키스탄에는 유라시아 대륙에서 가장 많은 고려인들이 살고 있다. 작년에 세상을 떠난 이슬람 카리모프 전 대통령은 “우즈베키스탄이 독립하자 수많은 민족들이 떠났지만 고려인만이 떠나지 않고 이 땅을 지키고 있다”며 고려인들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신뢰를 드러냈다고 한다. 80여 년 전 연해주에서 강제이주를 당해 우즈베키스탄 땅에 버려지듯 정착해야 했던 고려인들은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이 공식적으로 수교를 맺기 전부터 한민족의 우수성과 근면함을 그들에게 알려주며, 공동체의 주역이 되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황무지를 농장으로 일구어 탁월한 식량생산성으로 공로를 인정받은 김병화 농업영웅이다. 우즈베키스탄에만 약 18만 명이 살고 있는 고려인들은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을 끈끈하게 이어주는 가교(架橋)가 되어주고 있다. 고려인들의 ‘짐치(김치)’는 우즈벡인들의 입맛까지도 바꾸어 놓았을 정도로 우즈벡 문화에 깊숙이 침투하였다. 우즈베키스탄에는 한류가 있기 전에 고려인들이 있었다. K-pop, 드라마, 영화와 같은 한류의 흐름을 타고 한국어 열풍도 대단하다. 아마도 지구 상에서 한국 사람이 우즈베키스탄에서만큼 대접을 받을 수 있는 나라도 많지 않을 것이다. 타쉬켄트에서 생활하다 보면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우즈벡인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그만큼 양국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다. 양국은 이미 경제 분야에서도 상호 윈-윈 원칙하에 경제협력과 대규모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수르길 가스전 프로젝트(39억 달러)가 대표적이다. 이외에도 가스액화사업, 칸딤 가스전 개발, 탈리마잔 발전소 현대화 사업, 고속도로 건설, 전기검침 현대화 사업 등 주요 협력 사업이 이어지고 있다. 산업 다변화 및 인프라 구축에 주력하고 있는 우즈베키스탄은 첨단기술과 경제발전 경험을 보유한 대한민국을 가장 강력한 협력 파트너로 주목하고 있다. 수교 이래 13차례에 걸쳐 이루어진 양국 정상 간 상호방문과 이슬람 카리모프 초대 대통령이 한국 정상들과 가졌던 정상회담을 통해 에너지, 인프라 분야 협력은 물론 ICT, 보건의료, 방산 등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협력을 확대하는 것이 지속적으로 논의된 바 있다. 더불어 지금까지 한국 정부는 우즈베키스탄과 전략적 동반자 관계의 심화 확대를 위한 법적·제도적 기반 강화와 한반도 평화통일 구축 및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구현을 위한 지지 확보에 주력하여 왔다. 우즈베키스탄에 부는 새로운 바람 그렇다면 우즈베키스탄은 독립 25년 만에 새 대통령을 맞이하여 어떠한 변화를 겪고 있을까. 작년 12월 출범한 미르지요예프 대통령은 우즈베키스탄은 공화국 발전을 위한 5개년(2017~2021) 개발계획의 전략과 방향을 발표하였다. 그중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다음과 같은 내용일 것이다: 우선, 상호호혜적인 외교 정책하에 국제사회의 원칙과 질서를 수호할 것임을 강조했다. 타국의 주권과 영토를 존중하면서 평화적인 국제질서를 조성하는 데 협조하는 모범적 국가가 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인다. 최근 우즈베키스탄은 북한 핵 도발에 대한 규탄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북핵 문제 위기에 직면한 한국 정부에게 우즈베키스탄과 같이 위기상황에서 지지해 줄 수 있는 우방이 있다는 것은 큰 위안이 아닐 수 없다. 두 번째는 새로운 지역정책으로써, 우즈베키스탄이 중앙아시아에서 평화를 주도하는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우즈베키스탄은 ‘중앙아시아: 하나의 과거와 공통의 미래, 지속 가능한 개발과 번영을 위한 협력’이라는 슬로건을 발표하였다. 우즈베키스탄 인구는 3천2백만 명으로 중앙아시아의 절반을 차지하며, 지정학적으로도 중앙아시아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역할과 비중이 매우 큰 나라이다. 미르지요예브 대통령은 지난 9월 키르기스스탄을 국빈방문(9.5~6)하고, 국경지역 지방정부 주지사 협의회의 창설을 제안했다. 더불어 수자원 문제, 안디잔-오쉬-카쉬가르 자동차 도로 건설, 중국-키르기스스탄-우즈베키스탄 연결 철도 가속화 등을 협의하였다. 오랫동안 국경을 공유하고 있지만 먼 나라로 존재했던 타지키스탄의 두샨베와 우즈베키스탄의 타쉬켄트 두 도시 사이에 올해부터 직항이 재개된 것도 매우 고무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오랜 시간 동안 국경 문제로 갈등의 소지가 되었던 키르기스스탄 및 타지키스탄과의 긴장 완화와 화해 분위기 조성을 통해 주변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비즈니스 협력 관계를 굳건히 하겠다는 미르지요예브 대통령의 의지는 우즈베키스탄에 진출해 있는 여러 한국기업에게도 유리하게 작용하는 지점이다. 지정학적으로 중앙아시아 심장부에 있기 때문에 패쇄적인 정책을 쓸 때에는 많은 한국기업이 물류와 유통에 있어 어려움을 겪어 왔다. 그러나 바다와 항구로 연결되는 육로가 확보되면 그만큼 물류 비용도 절감되기 때문에 우즈베키스탄-한국 혹은 우즈베키스탄 현지 공장에서 유럽이나 중국, 러시아, 동남아시아 등으로의 수출이 상대적으로 유리해지는 효과가 있다. 세 번째는 최상의 기업환경을 조성하겠다는 약속이다. 과거 우즈베키스탄은 패쇄적인 국가 주도형 경제체제를 고수함으로 인해 기업인들이 애를 먹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개방과 자유 경쟁 경제시스템을 만들고, 주요산업의 현대화와 다양화를 추진하며, 외국 기업인들의 경제활동을 확대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한 것이다. 미르지요예브 대통령은 이러한 전략적 국가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발 빠른 행보로 다양한 외교채널 확보와 투자 유치에 주력하고 있다. 지난달 과거 수십 년간 다소 긴장관계에 있던 터키를 국빈방문(10.25~26)하고 에너지 시설, 도로, 섬유 공장, 건자재 공장, 식료품 공장, 건설 등의 분야에서 35억 달러에 상당하는 35개 대형 프로젝트 문건을 체결하고, 비자 간소화를 약속하였다. 이러한 우즈베키스탄의 변화는 한국 정부와 기업에게 있어 희소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정상회담을 준비하는 한국 정부에게 바란다 우즈베키스탄 신정부의 새로운 방향성 제시나 움직임에 발맞추어 한국 정부는 어떤 논의를 이끌어갈지가 주목된다. 우즈베키스탄을 비롯한 중앙아시아에 대한 새로운 전략과 그림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이전 정부가 한반도가 나아갈 미래 청사진으로 제시했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리셋이 절실하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중국 시진핑 지도부의 “일대일로(一帶一路)”와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신동방정책과 맞물려 시대적 흐름을 반영한 요청이기도 했다. 그러나 작년 북한의 4차 핵실험 감행 이후 나진-하산 프로젝트가 중단된 것을 계기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사실상 중단되었고, 방향을 잃었다. 이제 이 시점에서 유라시아를 터키에서 중앙아시아를 지나 대한민국까지 연결하는 “투르크 벨트”로 재설정할 필요가 있다. 전략적으로 “투르크 벨트” 라인을 가동시켜 정치, 경제, 외교 등 모든 분야에서 상생하는 협력체로 나아갈 수 있도록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터키에서 중앙아시아에 이르는 여러 투르크 국가들은 중국과는 오랜 역사를 통해 실크로드 주도권을 두고 다투어 오던 경쟁국들이다. 러시아와도 구소련체제하에 오랜 시간 지배를 경험한 관계이다. 정치, 경제적으로는 협력과 갈등을 반복해왔다고 하더라도, 이들 국가들과 러시아, 중국과의 민족적 정서는 그리 정겹지 않다. 반면에 한국과는 역사적으로 한 번도 갈등을 겪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깊은 친연성을 가지고 있다. 미국과 중국 등 강대국에 치여 다양한 외교적 채널 확보가 시급한 현실에서 한국은 역사적인 오랜 우방과 협력관계를 공고히 할 수 있는 외교 인프라와 상설협력기구를 만드는 데 주력해야 할 필요가 있다. 투르크 벨트 국가들은 러시아와 중국과의 긴장 속에서 대한민국에게 중요한 한 표를 던질 수 있는 우방이 될 수 있으며, UN 등과 같은 국제기구와 국제무대에서 한결같은 협력관계가 되어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나라들이다. 우즈베키스탄 미르지요예브 정부가 북핵 문제에 대해서 국제사회에서 목소리를 내고 한국 정부 “편들기”에 나섰던 것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우즈베키스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중국의 “일대일로”를 중앙아시아 육로로 연결해서 해상으로 끌어내겠다는 구상은 한국 정부가 동참할 수 있는 좋은 프로젝트이다. 올해 5월 14일 중국 베이징에서 있었던 ‘일대일로 국제회의’에는 러시아, 터키, 중앙아시아 국가들을 포함해 28개국 정상이 참석했다. 그러나 한국은 배제되었다. 북방진출의 꿈이 거의 좌절되다시피 한 현재 한국의 현실을 고려한다면, 전 세계적으로 ‘일대일로’와 북방물류체계가 본격화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우즈베키스탄 정부가 제안한 도로건설은 한국에게도 출구를 제공하는 중요한 사업이라고 생각된다. 상생과 협력이라는 우즈베키스탄과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확대한다면 북핵 위기에 직면한 한국이 북방 유라시아 진출의 활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하여 ‘한-중앙아시아 협력 포럼(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 및 사무국’을 투르크 벨트 국가로 확대하여 ‘한-투르크 벨트 협력 포럼’으로 재편성하는 것도 고려해봄직하다. 그런데 양국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의 인재가 적재적소에 배치되어야 하고, 관련 인력 양성과 인적 자원 활성화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한국에는 투르크 벨트 국가 진출을 위한 전문가 양성 노력이 미흡하여 관련 전문가의 수가 극소수에 불과하다. 현재 한국에는 전문적인 투르크 관련 학과를 설치한 대학교가 한국외대뿐이다. 세계에서 경제 10위권인 한국의 위상을 생각한다면 투르크 관련 전문가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라고 볼 수 있다. 인적 자원 활성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양국 간 교육협정이 체결되어야 한다. 많은 우즈베키스탄 학생들이 수준 높은 교육 콘텐츠와 테크놀로지를 제공받고자 한국 유학을 희망한다. 이런 학생들을 한국에 적극적으로 유치하는 것도 좋지만, 한국 대학의 우즈베키스탄 진출과 분교 설립을 허가 및 지원한다면 양국 모두에게 더욱 유리한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인구절벽으로 존폐 위기에 처한 한국 사립대학으로서는 교육서비스를 국제화하고 해외로 수출할 수 있는 출구를 얻게 될 것이고, 우즈베키스탄 학생들에게는 유학을 하지 않아도 한국 대학교에서 수학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니 윈-윈 전략이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우즈베키스탄 정부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하다. 관료주의의 높은 벽을 넘고 한국의 사립대학이 우즈베키스탄에 진출하여 교육 사업을 벌이기는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북핵 문제, 중국의 사드 보복 등 어려운 난국 속에서 외교 채널 다양화의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멀리 있지만 가까운 우방 우즈베키스탄과 더불어 새 시대, 새 역사를 함께 쓰기를 기대해본다. 現, 동덕여대 교양교직학부 교수이자 유라시아투르크 연구소장. 한국외국어대학교를 졸업하고, 터키 정부 장학생으로 초청받아 국립 하제테페 대학교에서 터키문학과 비교문학으로 문학박사(Ph.D) 학위 취득, 한국학 중앙 연구원에서 박사후과정(Post-doc), 우즈베키스탄 국립학술원에서 우즈베크 구비문학과 민속학, 비교문학으로 우즈베키스탄 최초로 인문학 국가 박사학위(Doctor of Science,professorship)를 취득. 주요경력으로, 문화방송 MBC 터키 통신원, 터키 국립 앙카라 대학교 외국인 전임교수, 우즈베키스탄 니자미 사범대학교 한국학 교수를 역임하고, UNESCO Category 2기관인 아태무형문화센터 자문위원, 한국연구재단 학술지 평가위원 등을 맡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터키·우즈베크 문학·이슬람여성·비교문학·중앙아시아 투르크 민족의 구비문학·정신분석학이며, 주요 저서로, 『터키 문학 속의 한국 전쟁』, 『20세기 페미니즘 비평: 터키와 한국 소설속의 여성』(터키어), 『주몽과 알퍼므쉬의 비교연구』(우즈베크어), 우리말로 『베일 속의 여성 그리고 이슬람』, 『이슬람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 정신분석으로 보는 여성, 전쟁, 테러, 이슬람』을 썼으며, 주요 역서로 야샤르 케말의 『독사를 죽여야 했는데』 『바람 부족의 연대기』 , 『의적 메메드 1,2』, 무라트 툰젤의 『이난나: 사랑의 여신』, 하칸 귄다이의 『데르다』가 있으며 『고은의 만인보』 『고은 시선』을 터키어로 옮겼다. 계간 《아시아》의 , 를 공동 기획하는 등 투르크 국가들의 문학작품과 문화를국내에 소개하고 있다.
  • 미국에서 본 한미 정상회담
    저자
    김연호 (존스홉킨스 국제대학원(SAIS) 한미연구소 선임연구원)
    발간호
    2017-64
    [편집자 註] JPI PeaceNet은 한미 정상회담에 대한 이수훈 고려대학교 일민국제연구원 연구교수의 기고문과 김연호 존스홉킨스 국제대학원(SAIS) 한미연구소 선임연구원의 기고문을 차례로 발행한다. 북핵위기가 심화되고 있고 한미FTA 의 재협상이 논의되는 시점에서 25년 만에 이루어진 미국 대통령의 국빈방문이 주는 의의와 성과에 대한 한국과 미국의 시각을 알아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1. 미국의 우려: 예방타격 가능성과 대통령의 전쟁권한 2. 대북 초강경 수사 자제, 안보공약 재확인 3. 누그러진 공세적 통상 관련 발언 4. 중국 변수 1. 미국의 우려: 예방타격 가능성과 대통령의 전쟁권한 미국 조야는 지난 6월말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첫 정상회담을 문 대통령의 ‘대북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로 여겼다. 문 대통령이 무리하게 햇볕정책을 부활시키려 한다면 한미 대북 공동전선에 균열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에서 풀려난 미국인 청년 오토 웜비어가 정상회담을 앞두고 사망하면서 제재 보다는 관여에 방점을 둔 문 대통령의 대북 정책에 대해 미국 내에서 부정적인 여론이 높아졌다. 그러나 한미 양국 정상은 비핵화를 위한 대화의 조건을 긴밀히 협의하기로 하는 등 공고한 대북 공조체제를 재확인함으로써 한국 새 정부에 대한 미국 조야의 우려를 불식시켰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이번 2차 정상회담을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군사행동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미국 조야의 주된 관심사로 떠올랐다. 사실 한국에서 ‘4월 한반도 위기설’이 비등할 당시만 해도 미국 전문가들의 반응은 상당히 냉소적이었다. 아무리 예측불허의 트럼프 대통령이라도 전면전으로 이어질 수 있는 대북 선제공격은 정책 옵션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북한이 지난 7월 ICBM급 미사일인 화성-14형을 시험발사하면서 미국 조야에서는 선제타격을 넘어 ‘예방타격’에 대한 논의가 고개를 들기 시작됐다. 미국 본토가 실질적으로 위협받는 상황에서 북한의 핵능력 고도화 과정을 언제까지 지켜만 보고 있어야 하는가? 북한이 오늘밤 ICBM능력을 증명한다면 미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이같은 질문들이 워싱턴 정책서클에서 제기되면서 이른바 ‘레드 라인’에 대한 해묵은 논쟁이 재연됐다. 여기에 더해 ‘화염과 분노’ ‘군사적 옵션 준비완료’ ‘북한 완전파괴’ 등 트럼프 대통령의 강경발언과 ‘괌 타격’ 등 북한의 호전적 발언이 이어지면서 대북 강경론자들 사이에서조차 트럼프 대통령의 전쟁 권한을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오판으로 인한 미북간 확전과 핵전쟁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전쟁권한법(War Powers Act)을 개정해서라도 대통령 개인의 충동적 결정을 막아야 한다는 논리였다. 공화당 소속 밥 코커 상원 외교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무모한 위협을 남발해 미국의 안보가 위협받고 있다고 비판한데 그치지 않고,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과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을 청문회에 출석시켜 트럼프 행정부의 전쟁 수행 권한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다. 이런 가운데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이 트럼프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 직전 언론브리핑에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과 동맹국을 방어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조치도 취할 것이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방한 중 과연 어느 정도 수위의 대북 (돌출) 발언을 하고, 이에 대한 한국인들의 반응은 어떻게 나타날지에 대해 미국 조야의 궁금증을 자아내는 대목이었다. 2. 대북 초강경 수사 자제, 안보공약 재확인 지난 6월 한미 정상회담 때와 마찬가지로 미국 언론과 조야의 관심은 양국이 공동으로 채택한 문건보다는 트럼프의 ‘입’에 집중됐다. 이번 회담에 대한 평가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트럼프가 대통령답게 행동했다’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 초강경 발언을 남발해 ‘8월 위기설’이 제기되고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유화정책’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원색적으로 비난하기까지 했지만, 이번 한국 방문에서는 발언을 극도로 신중하게 하고 연설문 원고에 충실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날선 비판을 가하던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CNN 등도 북한과 김정은에 대한 자극적이고 조롱섞인 발언이 없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특히 아직도 대북 직접 협상을 ‘시간 낭비’로 여기냐는 공동 기자회견에서의 질문에, 평소 트럼프답지 않게 절제된 태도로 무력사용을 원치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고 북한의 협상 복귀 가능성마저 시사한 사실이 큰 주목을 받았다. ‘4월 위기’ 직후 “김정은은 꽤 영리한 친구” “김정은과 만난다면 영광”이란 다소 엉뚱한 말로 북한과의 빅딜을 희망한다는 속내를 드러냈던 트럼프를 상기시킨 대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동맹과 안보공약을 어떤 식으로 재확인할지도 미국 조야의 관심사였다. 대선 캠페인 과정에서 동맹의 중요성을 인정하지 않는듯한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고, 지난 5월 NATO 정상회담에서는 집단안보 공약을 재확인하지 않아 큰 파문이 일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미 국무국방장관이 동맹국들을 상대로 ‘재확인 순방(reassurance tour)’을 하면서 뒷수습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다행히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이전 미국 대통령들과 마찬가지로 진중하면서도 강력한 안보공약 재확인이 이뤄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동 기자회견에서 “군사행동을 제외한 모든 가용한 수단을 동원해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도 “미국은 필요하다면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군사력을 총동원해 미국과 동맹국들을 방어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 직전까지 거론되던 예방타격의 우려는 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상당히 불식됐지만, 대북 선제타격의 가능성마저 사라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회 연설에서 “우리를 과소평가하지 말고 시험하지도 말라”면서 “미국과 동맹국들이 공격당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겠다. 미국 도시들이 파괴 위협받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과연 ‘레드 라인’을 어디에 두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이 같은 경고는 잠재적인 무력충돌의 위험을 여전히 시사하고 있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한국 방문에서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과 제재를 강조하면서도 대북 협상의 가능성을 내비쳤지만, 본격적인 대북 관여의 문턱이 상당히 높을 것임을 시사한 것도 사실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회 연설에서 북한이 보다 나은 미래로 나아가도록 돕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면서, 미사일 개발 중단과 완전하고 검증가능한 비핵화를 그 출발점으로 못박았다. 트럼프 대통령의 국회 연설에서 북한인권이 언급된 사실도 주목을 끌었다. 북한 인권문제는 여전히 미국 조야의 주요 관심사이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상대적으로 이 문제를 소홀히 다루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특히 국무부 북한인권특사(상근직, 대사급)가 지난 1월이후 공석으로 남아 있는데다 틸러슨 국무장관은 민간안보민주주의인권 담당 차관이 북한인권특사를 겸임할 것이라고 의회에 통보해 공화민주 양당으로부터 강력한 반발을 샀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국회 연설에서 북한 정권을 ‘불량정권’으로 규정하고 독재와 우상숭배, 노동자 착취, 정치범 수용소, 종교탄압, 외국인 납치, 외부정보 차단 등 북한인권 문제를 비교적 상세히 열거하면서 강력하게 비판한 사실은 미국 조야의 보수인사들에게 고무적인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미국 언론들도 트럼프 대통령이 사실에 기초해 북한인권 문제를 지적한 만큼 김정은을 직접 겨냥한 이전의 자극적인 발언들과는 성격이 다르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3. 누그러진 공세적 통상 관련 발언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지난 6월 회담과 마찬가지로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 불균형’ 발언이 이어졌다. 지난 6월에는 한미 FTA 재협상을 일방적으로 선언하고 자동차와 철강 부문을 직접 언급하면서 한국의 ‘불공정 무역’을 여과없이 비난했다. 당시에는 북핵과 사드 배치 등 안보현안이 정상회담의 주요 어젠더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의 이같은 공세적 발언은 당초 예상을 벗어난 것이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아시아 순방은 북한과 통상이 키워드라는 데 미국 전문가들 사이에 이견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통상 관련 발언들은 지난 6월에 비해 상당히 순화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물론 이번 정상회담 모두 발언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통상 문제를 집중 거론했고, 캠프 험프리의 막대한 건설 비용은 한국의 안보를 위해 투입된 것이라는 입장을 나타냈다. 캠프 험프리 방문을 통해 한국의 막대한 방위비 분담 실상을 확인할 것이라는 미국 전문가들의 당초 기대를 벗어난 발언이었다. NPR과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에 이어 한국에서도 미국산 무기 구입을 강조하자 각각 ‘최고 무기상(Arms Merchant in Chief)’ ‘미 방위산업의 최고 세일즈맨(American defense industry’s chief salesman)’이라는 수식어를 달며 비판했다. 4. 중국 변수 통상 문제에 관한한 이번 트럼프 아시아 순방은 대체적으로 높은 점수를 받지 못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북핵 문제가 엄중한 시기에 여전히 안보와 통상을 연계함으로써 미국이 세계질서의 리더답지 못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중국에서도 2천5백억 달러 규모의 대미투자 약속을 받아냈지만 양해각서 성격인만큼 구속력이 없고 실제 이행시기도 불투명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다자통상협정을 기피하면서 미국의 리더십을 포기하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의 통상정책에 대해서는 실망스럽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른바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구상은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우며 양자 통상관계에 집중하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의 방향과는 전혀 맞지 않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 경제민족주의자들이 득세하는 한 이 구상이 실제로 이행되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다. 이 구상이 과연 중국 포위전략으로 이어질지는 계속 지켜볼 일이다. 미중 정상회담의 성과에 대해서도 비판론이 제기되고 있다. 대미 무역흑자의 원인을 중국의 불공정 무역관행보다는 과거 미 행정부의 실수로 치부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미국 언론의 집중 포화를 맞았다. 대북제재 협력에 대해서도 강력한 요구를 하지 못하고 중국의 눈치만 보고 왔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사드 추가배치, 미국 미사일방어 체제 편입, 한미일 군사동맹 등에 대한 한중간의 이른바 ‘3 NO’ 원칙에 대해서는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미국 조야에서 강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미 정상회담이후 한국이 세심하게 관찰해야 할 이슈들이다.
  • Can East Asian Regionalism Provide a Bulwark Against a “Post-Liberal” International Order?
    저자
    See Seng Tan (RSIS, Nanyang Technological University)
    발간호
    2017-58
      In his January 2017 address to the World Economic Forum in Davos, Switzerland, Chinese President Xi Jinping positioned himself - unusually for the leader of Communist China - as a defender of globalization and free trade. Without a doubt, Xi’s remarks were directed at incoming US President Donald Trump, whose campaign rhetoric stressed resistance to globalization and promised the likelihood of an increasingly nationalist, isolationist, and protectionist America. Trump is not alone in wanting to reverse the tide of globalization; the current pro-Brexit UK government has been singing a similar tune. This paper makes three interrelated points. First, the rising nationalist cum protectionist tide in the West is not a foregone conclusion due to mitigating factors that impel the great powers to cooperate, if only instrumentally and in the short term. Second, the history of East Asia from the Cold War to the present has been one where an emphasis on the preservation and protection of neutrality has given way in the post-Cold War period to so-called open regionalism, a broad-based preference for extensive and deep engagement with external powers and access to outside markets and resources. Third, East Asia’s shared commitment to open regionalism makes East Asian Regionalism, despite the present uncertainty surrounding regional trade deals like the Trans-Pacific Partnership (TPP) and the 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RCEP), an important counter-narrative and alternative model to the isolationist and protectionist zeitgeist. Is the World Turning Protectionist? Should Trump and other anti-globalists have their way, how might their behavior impact the liberal international economic order? According to a Brookings Institution report, despite holding the largest share of world trade and foreign capital, the US, relative to its size, is not as globally integrated as other countries.1) What could prove detrimental, however, is if other countries retaliate against US protectionist policies; this fact serves as the basis for concerns that Trump could precipitate a trade war. Yet while retaliatory trade behavior might only be a short-term issue, the more fundamental risk is if countries repudiate global norms and institutions that underpin the globalized economy. This is possible if they feel that the US is no longer committed to upholding the liberal economic order and shouldering its burden - a worry that predates the Trump presidency but has since been reinforced by it.2) Additionally, there is concern whether China, despite President Xi’s performance at Davos 2017, will honor the commitments it has made. These include accepting imported manufactured products and services as well as fully implementing TRIPS (the Agreement on Trade-Related Aspects of Intellectual Property Rights) as China promised to do when it joined the World Trade Organization (WTO) in 2001.3) Finally, there is also concern about various types of “covert” protectionism (i.e., the so-called behind-the-border barriers) rampant in China and other emerging markets that are challenging to address.4) Recent developments suggest that Trump has been forced by unanticipated events to delay or defer the pursuit of his anti-liberal agenda. The Trump administration has made a series of abrupt reversals in foreign policy, such as revising his earlier opinions about NATO, US involvement in Syria, burden sharing by US allies, the One China policy, US involvement in the South China Sea, and the US Export-Import Bank. It has also retreated from intended protectionist moves toward China because Chinese cooperation is sorely needed to manage a recalcitrant North Korea. Consequently, Trump has gone from accusing China of being the “grand champion” of currency manipulation to declaring they have not manipulated the China’s currency in months. Additionally, since initially proposing a 45 percent tariff on Chinese goods for allegedly hollowing out US manufacturing, the administration has gone quiet (whilst at the same time threatening to impose a 20 percent tariff on Canadian lumber). Crucially, Trump has also expressed strong support for bilateral free trade deals.5) Whether this retreat from protectionism and isolationism is a temporary or expedient move remains to be seen. After all, there is evidence to suggest that, despite these reversals toward what some observers see as a more traditional US foreign policy,6) Trump appears to persist in his preference for transactional approaches.7) This was apparent during the Trump-Xi summit, where both leaders reportedly deliberated with “a cold calculation of interests” as they mutually exacted concessions from one another while still acknowledging their interdependence.8) In other words, the reversals merely reflect the Trump administration's pragmatic response to evolving international conditions that require corresponding changes in reciprocity. These are the quid pro quos that embody transactional diplomacy. Still, by acknowledging mutual dependence, even if only on a transactional basis, a slide towards full-blown protectionism and unadulterated solipsism has been kept at bay.9) East Asia: From “Neutrality” to “Open Regionalism” It is worth noting that the emergence and evolution of East Asian Regionalism (EAR) did not occur outside the liberal international order but within it. If anything, EAR has sought to complement rather than compete against liberalism. When former Malaysian Premier Mahathir bin Mohamad’s idea of an East Asian Economic Grouping (EAEG) - later amended to an East Asian Economic Caucus (EAEC) - was proposed in 1990, the assumption then was that the EAEG/EAEC would form a Japan-led regional bloc that could serve as a counterweight to emerging - and potentially rival - regionalisms in Europe (such as the European Union, or EU) and North America (such as the North American Free Trade Area, or NAFTA). However, EAR would take a back seat to Asia-Pacific regionalism with the formation of the ASEAN Regional Forum (ARF) in 1994. Together with the earlier formation of the 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APEC) trade forum, the emergence of ARF - with ASEAN as first its midwife and subsequently its anointed custodian - marked a strategic shift in the way ASEAN viewed the involvement of great and regional powers within Southeast Asia. For the ASEAN countries, the Cold War perspective of the great powers as outsiders seeking to intervene, exploit, and divide the region and who therefore must be checked - as embodied in the 1971 ASEAN declaration of the Zone of Peace, Freedom and Neutrality (ZOPFAN) - was gradually replaced by a post-Cold War perspective of those same powers as external actors with whom Southeast Asians ought to actively engage through multilateral diplomacy, among other means. Far from exclusivist, the new regionalism that emerged in the early post-Cold War years in the Asia-Pacific is what some have termed open regionalism. This concept argues for cooperation across national borders in a region to reduce transaction costs through the collective involvement of governments in “trade facilitation,” or the expansion of open trade.10) Second, open regionalism is meant to be inclusive in that it seeks to incorporate outside powers such as the US and other eastern Pacific Rim countries into APEC and ARF.11) Belief in such inclusivism - coupled with the perceived need to construct a stable regional balance of power by including outside groups to counter possible hegemonic ambitions - led to a push to enlarge the membership of the East Asia Summit (EAS) to include countries beyond the 10+3 of ASEAN plus Three (APT).12) Third, open regionalism encourages groups to make their enterprises compatible with institutional arrangements and practices in other parts of the world, including world bodies. For example, the architects of ARF made it clear that the forum is not meant to replace the San Francisco system of military alliances. Instead, it serves as a supplementary mechanism for dialogue and consultation. Likewise with the Chiang Mai Initiative (CMI) reserve currency pool, an institutional expression of EAR and APT, was launched against the backdrop of the crippling Asian financial crisis of the late 1990s. Speculations that the CMI - along with its multilateral component, the CMI Multilateralization (CMIM) - would surpass the International Monetary Fund (IMF) as the region's first port of call for financial assistance in times of crisis were put to rest when it became clear that regional countries either prefer IMF assistance or bilateral swap agreements that had no IMF links.13) This is also evident in how ASEAN and its suite of regional offshoots have avoided asserting themselves as the region's savior organizations when troubles hit by limiting their aim and remit. As in the case of the CMI/CMIM, Asian countries involved in territorial disputes have looked to world bodies such as the Hague-based 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 (ICJ) - as in the cases of the Indonesia-Malaysia dispute over Sipadan and Ligitan, the Malaysia-Singapore dispute over Pedra Branca, and the Cambodia-Thailand disputes over Preah Vihear and its promontory - the Hamburg-based International Tribunal for the Law of the Sea (ITLOS), or the Hague-based Permanent Court of Arbitration (PCA) for UNCLOS Annex VII arbitrations - activated recently in the case of the China-Philippines dispute over the South China Sea (SCS). Alternatively, they rely on bilateral means of dispute settlement rather than ASEAN-based dispute settlement mechanisms.14) Reinforcing the Liberal Message Though EAR Since the knee-jerk reactions in the immediate aftermath of the US withdrawal from the TPP - in particular, Japan’s insistence that a TPP without the US would be “meaningless” - Australia and Japan have emerged as the loudest voices in favor of an 11-member TPP trade deal sans the US, without ruling out the possibility of the latter’s return to the fold.15) Meanwhile some are hoping that RCEP will launch by the end of 2017, though the best possible outcome is likely to be a framework agreement.16) Much was made at the RCEP Kobe meeting in February 2017 about an inclusive agreement that ensures roles for all stakeholders. The argument by RCEP Trade Negotiating Committee Chief Iman Pambagyo, for example, that RCEP balance the needs of both developed and developing nations implies that progress is likely to be slow and by no means guaranteed.17) APEC supports a third trade pact, the Free Trade Area of the Asia-Pacific (FTAAP), but it remains at the consultative stage despite receiving strong support from China when it chaired the 2014 APEC summit.18) Open regionalism inherently and intuitively liberalizes trade and refutes protectionism. Or it tries to. Despite the uncertainty surrounding TPP-11 and RCEP, they remain key reference points for any defense of trade liberalization. There is a longstanding debate over whether regional trade agreements compete with the world trade system.19) But, as we have seen, the ways in which open regionalism has hitherto been conceptualized and practiced in both the economic and security domains in East Asia render EAR a key political counterpoint to the anti-globalization fever that has seized the geo-economic cum geopolitical imaginations of the West. This is perhaps the most important role that EAR can and hopefully will play in the future, namely, as a bulwark against the anti-globalization tide through reinforcement of a liberal message. - 1) Brina Seideland Laurence Chandy, “Donald Trump and the future of globalization”, Brookings, 18 November 2016, https://www.brookings.edu/blog/up-front/2016/11/18/donald-trump-and-the-future-of-globalization/ 2) Kati Suominen, Peerless and Periled: The Paradox of American Leadership in the World Economic Order (Stanford, CA: Stanford University Press, 2012), p. 243. 3) Douglas Bulloch, “Protectionism May Be Rising Around The World, But In China It Never Went Away”, Forbes, 12 October 2016, https://www.forbes.com/sites/douglasbulloch/2016/10/12/protectionism-may-be-rising-around-the-world-but-in-china-it-never-went-away/#359ae9bc73da 4) “Protectionism: The Hidden Persuaders”, The Economist, 12 October 2013, http://www.economist.com/news/special-report/21587381-protectionism-can-take-many-forms-not-all-them-obvious-hidden-persuaders 5) Geoffrey Gertz, “What will Trump‟s embrace of bilateralism mean for America‟s trade partners?” Brookings, 8 February 2017, https://www.brookings.edu/blog/future-development/2017/02/08/what-will-trumps-embrace-of-bilateralism-mean-for-americas-trade-partners/ 6) David Ignatius, “Trump moves slightly toward pillars of traditional foreign policy”, USA Today, 13 April 2017, https://www.usatoday.com/story/opinion/columnists/2017/04/13/trump-moves-slightly-toward-pillars-traditional-foreign-policy/100413776/ 7) Greg Jaffe and Joshua Partlow, “Trump phone calls signal a new transactional approach to allies and neighbors”, The Washington Post, 2 February 2017, https://www.washingtonpost.com/world/national-security/trump-phone-calls-signals-a-new-transactional-approach-to-allies-and-neighbors/2017/02/02/dcb797fa-e989-11e6-b82f-687d6e6a3e7c_story.html?utm_term=.97755b835303 8) Lexington, “A coldly transactional China policy: Donald Trump‟s first meeting with Xi Jinping was all about business”, The Economist, 8 April 2017, http://www.economist.com/blogs/democracyinamerica/2017/04/coldly-transactional-china-policy 9) Robert Kagan, “Trump marks the end of America as world’s ‘indispensable nation’”, The Financial Times, 20 November 2016, https://www.ft.com/content/782381b6-ad91-11e6-ba7d-76378e4fef24 10) Ross Garnaut, Open Regionalism and Trade Liberalization: An Asia-Pacific Contribution to the World Trade System (Singapore: ISEAS Yusof Ishak, 1996). 11) Amitav Acharya, “Ideas, Identity, and Institution-building: From the „ASEAN Way‟ to the „Asia-Pacific Way‟?”, The Pacific Review, Vol. 10, No. 3 (1997), pp. 319-346. 12) Malcolm Cook and Nick Bisley, “Contested Asia and the East Asia Summit”, ISEAS Perspective, No. 46, 18 August 2016. 13) Hal Hill and Jayant Menon, “Asia‟s new financial safety net: Is the Chiang Mai Initiative designed not to be used?”, Vox, 25 July 2012, http://voxeu.org/article/chiang-mai-initiative-designed-not-be-used 14) See Seng Tan, “The Institutionalisation of Dispute Settlements in Southeast Asia: The Legitimacy of the 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s in De-securitising Trade and Territorial Disputes”, in Hitoshi Nasu and Kim Rubenstein, eds., Legal Perspectives on Security Institutions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5), pp. 248-266. 15) Walter Sim, “Australia, Japan lobby for TPP-11”, The Straits Times, 21 April 2017, http://www.straitstimes.com/asia/east-asia/australia-japan-lobby-for-tpp-11 “'TPP 11' to Washington: We'll keep your seat warm”, Nikkei Review, 16 May 2017, http://asia.nikkei.com/Politics-Economy/International-Relations/TPP-11-to-Washington-We-ll-keep-your-seat-warm 16) Shefali Rekhi, “Will RCEP be a reality by the end of 2017?” The Straits Times, 23 April 2017, http://www.straitstimes.com/asia/se-asia/will-rcep-be-a-reality-by-the-end-of-2017 17) Eric Johnston, “16-nation RCEP talks resume in wake of TPP‟s demise”, The Japan Times, 27 February 2017, http://www.japantimes.co.jp/news/2017/02/27/business/16-nation-rcep-talks-resume-wake-tpps-demise/#.WR1RaU21v3g 18) Mireya Solís, “China flexes its muscles at APEC with the revival of FTAAP”, East Asia Forum, 24 November 2014. 19) Parthapratim Pal, “Regional Trade Agreements in a Multilateral Trade Regime: A Survey of Recent Issues”, Foreign Trade Review, Vol. 40, No. 1 (2005), pp. 27-48. See Seng Tan is Professor of International Relations at the S. Rajaratnam School of International Studies (RSIS), Nanyang Technological University, and concurrently Deputy Director and Head of Research of the Institute of Defence and Strategic Studies at RSIS. He can be reached at: issstan@ntu.edu.sg.
  • Proposing Membership of South Korea in ASEAN
    저자
    Shin Yoon-hwan (Korean 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Studies)
    발간호
    2017-43
      Can the Republic of Korea and ASEAN indeed set up a special relationship for sharing their fate and prosperity in the future? Over the last 30 years, Korea and ASEAN have rapidly developed and deepened their relationship through several stages. The establishment of a dialogue partnership on specific matters in November, 1989 was the starting point for the institutionalization of their ties. Amid growing investments overseas following the democratization of Korea, South Korean companies started to invest in labor-intensive markets, mostly in Southeast Asian countries. The year 1997 brought a dramatic turning point in ROK-ASEAN relations with the ASEAN Plus Three (China, Japan and ROK) summit, which sought a wider range of regional cooperation and integration in East Asia. Along with the ASEAN Plus Three, they started to operate the ASEAN Plus One (Korea) process, in which the heads of South Korea held direct talks with their counterparts in ASEAN countries, further developing bilateral ties. For the following 20 years, their relationship developed substantially and continually to deserve the slogan, “Partnership for Real, Friendship for Good,” that I proposed for the first Korea-ASEAN Commemorative Summit in 2009. Korea and ASEAN now have an official relationship called “strategic partnership.” The value and importance of Korea-ASEAN ties are recognized by all of those in business, experts and the government in South Korea, but the diplomacy and foreign policies of Seoul still seem to remain fettered by conventional frameworks and thinking, with no efforts made to break this. Koreans are preoccupied with the outdated notion of security and foreign policies based on the old belief that Korea has nothing more to do with ASEAN than economic cooperation; it cannot build a “regional community” with ASEAN belonging to a different civilization; and the alliance with the U.S. in security and military affairs is the “only determinant” of its security. Since the establishment of the ROK (Republic of Korea) government, administrations have tried everything, ranging from inter-Korean summits and diplomacy with their four neighboring powers to the six-party talks, the solicitation of U.S. intervention in inter-Korean affairs and Chinese pressure on North Korea; but inter-Korean relations are now just headed for a catastrophe amid the growing risk of nuclear war, to say nothing of a lack in improvement of ties. The unification of the two Koreas and a peace regime on the Korean peninsula undoubtedly remain as national tasks, but while successive Korean governments worked hard to solve the inter-Korean problem with just the answer sheet for Northeast Asia for decades, the sheet now has few blanks to fill in the answer. It is now time to think about alternatives. Would it be really impossible to find an answer with ASEAN? At this point, I would like to apply the concept of “complementarity” in Korea-ASEAN economic cooperation to non-economic fields. Complementarity can be sought not only in economic affairs but also in cooperation in the socio-cultural, and political and security domains. Korea and ASEAN can sympathize with each other as they have both experienced colonial rule by world powers, have been victimized by the East-West Cold War, and share distrust in China and Japan as well as feeling threats from these two countries. Except for the Second World War and the Vietnam War, which Korea and ASEAN countries joined under pressure from the U.S. and Japan, they have never been involved in armed conflicts, and have no reason to harbor animosity toward each other, either. As the East China Sea, Taiwan and South China Sea stand between them, there is no possibility of a territorial dispute or armed clash. The fact that Korea and ASEAN countries have never suffered serious conflict nor tension between them brightens the prospects for cooperation in military and security affairs. They can build a friendship for good, based on an equal, friendly partnership, not tribute, patronage relations, or any form of unequal ties. Based on this shared sentiment of solidarity, Korea and ASEAN can develop a more institutionalized or a higher level of cooperation in such sensitive affairs as politics, military security and international politics. These kinds of cooperative ties would have so many advantages that it may require more research on them. What is certain about the ties with ASEAN is that they would bring more influence and negotiating powers to each other, rather than that which the mere sum of one-plus-one or one-plus-11 could bring, as the complementarity would produce synergy effects. First, new ties with ASEAN are expected to bring more benefits to Korea than to ASEAN. Now dwarfed by the four major powers of China, Japan, the U.S. and Russia, Korea cannot balance the regional order but could emerge as an undeniable power, at least, if it is supported by the 10 ASEAN countries. The ROK-ASEAN cooperative body would contribute to stabilizing the East Asian region by forming a tripod along with China and Japan. In addition, if the founding principles of ASEAN to pursue peace, freedom, neutrality and denuclearization are accommodated in ROK-ASEAN ties, they may provide a clue to solving Korea’s national division and the nuclear issue. However, it should be noted that substantial obstacles stand in the way of upgrading and institutionalizing ROK-ASEAN ties. First of all, both sides should recognize the need for solidarity and form a consensus among their people. The geographical division into Northeast and Southeast Asia, the Northeast Asia-centrism among Koreans and the Southeast Asian identity built for half a century may make it difficult for them to sympathize or identify with each other. There should be a turning point for Korean leaders, decision-makers and intellectuals to break away from the old framework involving the ROK-U.S. alliance, the reliance upon superpowers or a balancing role in order to explore new strategies for future. Even if Koreans agree with solidarity with ASEAN in a change of their perceptions, it would be a daunting task for Korea to persuade ASEAN and Southeast Asians. Because of its formidable military forces and alliance with the U.S., Korea may be required to meet harsh preconditions to be accepted by ASEAN which pursues peace and neutrality. Another task to be studied is about the level and form of the cooperative ties to be newly sought. If Korea seeks a higher level of cooperation than the current strategic partnership based on economic cooperation, it would be one of the following three: an “upgraded” or “special” partnership; a “community of practice” or “peace league” almost emulating an alliance; and becoming a “member of ASEAN.” A special partnership would mean the establishment of a cooperative system over a comprehensive range, including international political disputes and military security issues, which might lead to a friendly peace league with the agreement on the principles of peace, freedom, neutrality and denuclearization and the ASEAN charter. If Korea seeks to solve the most challenging issue of how to guarantee peace on the peninsula all at once, it may consider “joining ASEAN.” It is an outdated, wrongful notion that only Southeast Asian countries can join ASEAN. The Southeast Asian region is an “artificial” concept subject to change, and ASEAN as such an organization, may also redefine the requirements for membership at any time. The time has come for us to seriously discuss Korean membership of ASEAN. Shin Yoon-hwan has taught comparative politics, Southeast Asian politics, and political anthropology at Sogang University, Seoul, for twenty-seven years. He obtained his Ph.D. from Yale in 1989 with a study on the origin and formation of big business in Indonesia. He has served as Director of the Institute for East Asian Studies (SIEAS) at the university since 2001 until now. He is a founding co-chairperson in the editorial board of TRaNS: Trans-Regional and -National Studies of Southeast Asia published by the Cambridge University Press. He is also a founding member of the Korean 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Studies (KASEAS), where he is currently serving as President, as well as the Korean Institute of Southeast Asian Studies (KISEAS), the two most important associations of scholars specializing on Southeast Asian Studies.
  • AIIB총회와 한중관계 전망
    저자
    이호철 (인천대학교 중국연구소 소장)
    발간호
    2017-44
      지난 6월 16일 제주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2차 연차총회가 77개 회원국의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 국제기구 대표, 국내외 금융·기업인 등 2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되었다. AIIB는 중국의 주도로 아시아 역내 국가들간 인프라 투자를 통해 ‘연결성’을 강화하고 경제성장을 촉진시킨다는 목표로 2015년 설립되었고, 우리나라는 중국, 인도, 러시아, 독일에 이어 5위의 지분율로 창립 회원국으로 참여하고 있다 (아래의 그림 참조). AIIB는 무엇보다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일대일로’ 전략을 추진하기 위한 투자금융기관으로 출범하였다. 일대일로는 중국에서 출발하여 중앙아시아, 중동, 러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연결되는 운송 및 생산 인프라를 구축하여 경제성장을 촉진한다는 ‘실크로드 경제벨트’와 중국, 동남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유럽과 태평양으로 진출하는 해상교역로에 항만 등 인프라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공동발전을 이룬다는 ‘해상실크로드’로 추진되고 있는 야심찬 경제성장 프로젝트이자 지정학적 전략이다. 아래의 그림에서 보듯이 우리나라는 대륙으로 한반도와 중국의 동북지방으로 중국의 일대일로와 연결하고, 이를 일본을 통해 아시아·태평양으로 확장하는 지경학적 전략을 구상할 수 있다. 우리가 중국의 AIIB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동기이기도 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연차총회 개막식에서 "남과 북이 철도로 연결될 때 새로운 육상·해상 실크로드의 완전한 완성이 이뤄질 것"이라고 언급한 것도 이러한 전략적 구상의 의지였을 것이다. 해방 이후 70년이 지나도록 남북분단을 해소하지 못하고 섬 아닌 섬나라로 살아야 하는 우리로서는 중국과 러시아를 통한 육상 실크로드와 일본, 동남아, 미국으로 연결하는 해상 실크로드를 구축하여 우리의 경제 영역을 확장하는 일은 절실한 시대적 과제일 수밖에 없다.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가 진전을 이루고 남북관계가 개선되어 우리나라가 대륙강국, 해양대국으로 거듭나야 하고, 우리의 대외전략과 외교안보는 이러한 시대적 과제를 실현하는 데에 맞춰져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외교안보가 추진해야 할 上策이다. 그러나 이러한 上策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에 진전이 있어야 하고, 거기에 따라서 남북관계가 개선되어야 한다. 또한 한중관계와 한미관계가 협력적이고 상호보완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불행히도 지금의 현실은 이러한 낙관적 전제들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제안했던 ‘베를린 구상’이나 남북간 군사회담, 적십자회담에 김정은 정권은 무응답으로 나오고 있다. 북한의 ICBM 기술은 급기야 미국 전역을 타격할 수 있을 정도로 진전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우리로서는 사드 배치를 앞당기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한중관계는 다시 냉각되고 있다. 당분간 우리의 외교안보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는 下策에 매진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북한의 대칭적, 비대칭적 전략자산에 대한 군사적 균형을 복원시켜야 한다. 사드 배치, 한미동맹의 핵전략 재배치를 포함하는 남북간 군사적 균형을 회복하는 下策에 우선할 수밖에 없다. 한미일 전략적 공조도 강화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하책은 당연히 한중관계를 더욱 경색시킬 것이 자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안보를 한중관계와 맞바꿀 수는 없는 것이다. 달리 보면, 이러한 下策이 갖춰져야 上策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로마의 전략가 베게티우스는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고 하지 않았던가. 우리가 하책을 추진하는 동안 한중관계는 더욱 긴장되고 경색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이러한 사태의 핵심이라는 점을 우리는 중국에 이해시켜야 한다. 중국이 북한의 핵보유에도 불구하고 북한체제의 존속을 더 중시한다면 우리는 하책을 더욱 강하게 추진할 수밖에 없다는 점도 이해시켜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하책이 결코 그 자체로서 외교안보의 최종목표가 아니라는 점도 분명하게 인식시켜야 한다. 한반도 비핵화와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한반도의 평화가 아시아 전체의 평화번영에 기여하는 상책이 우리 외교안보의 궁극적 목표여야 하고, 중국이 이러한 우리의 상책을 공유한다면 한중관계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건강한 관계로 회복될 수 있을 것이다. 現 인천대학교 정치외교학과교수와 중국연구소 소장으로 재직. 2013년한국국제정치학회 제57대 회장을 역임하였고, 현재 학회 편집위원장, 한국국제교류재단 운영자문위원장을 맡고 있다. 연구교육분야는 중국정치와 동아시아 국제정치이고, Journal of Contemporary China 등 국제학술지에 “Political Institutionalization as Political Development in China” “China in North Korean Nuclear Crisis”를 포함하는 중국과 동아시아관련 연구들을 발표하였다.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뉴저지 럿거스대학에서 정치학 석사와 박사를 취득하였고, 북경대 국제관계학원, 콜럼비아대학 동아시아연구원에서 초빙교수, 객원교수를 역임하였다.
  • 미국의 대중국 세컨더리 보이콧이 한반도 비핵화에 가지는 함의
    저자
    이성우 (제주평화연구원 분쟁해결연구부장)
    발간호
    2017-55
      체제안보 때문에 북한이 핵개발을 절대로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은 한반도와 동아시아 불안요인으로 변수가 아니라 상수가 되었다. 중국의 입장에서 미국에 대한 북한의 도발이 한반도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확대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전략적으로 유용한 측면이 있다. 북한의 김정은 정권의 입장에서 핵개발은 국내정치적 정당성 확보, 동맹국인 대중국 압박, 경제성장을 위한 자원 확보 등 다양한 차원에서 유용한 전략적 선택이다. 신형 대국 관계의 설정과 G2 시대를 바라보는 중국의 입장에서는, 남중국해에서 수세에 몰리는 상황에, 동북아시아에서의 미국에 대해서 가지고 있었던 전략적 장점을 포기할 수 없다. 최근 국내에서는 한반도 핵문제에 대한 강경한 대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북 핵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한국이 핵개발을 선택하거나 미국의 전술핵무기를 도입하는 방안이 구체적으로 언급되고 있다. 다른 극단에서는 북한 핵을 현재 수준에서 동결하는 조건에 한반도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선택이 논의되고 있다. 양쪽 모두 극단적인 대안으로 반대 방향에서 대안을 제시하지만 - 공통적인 것은 북한 핵을 사실상 받아들인다는 것인데 - 이것은 동의하기 어렵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를 위해서 현실적인 대안의 고려가 필요하다. 북한의 비핵화는 동북아시아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 명목상 바람직한 결과라고 할 수 있지만 이를 달성하는 과정에 발생할 수 있는 북한의 붕괴는 중국과 러시아에 있어서는 한반도에서 영향력의 상실과 미국의 위협이라는 상황이 현실화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된다는 점에서 실현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중국이나 러시아는 친미적인 남한이 한반도 전체를 장악하는 것 보다는 핵을 가진 불한당 북한이 상존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북한의 붕괴에 대해서 북한, 중국, 러시아는 반대하는 것으로, 그리고 한국은 찬성하지만 미국, 일본은 가변적이고 비공식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한반도에 통일된 하나의 강한 국가가 출현하는 것보다는 분단으로 국력이 분산되어 다루기 쉬운 약한 두 개의 한국이 존재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미국의 입장에서도 한반도에 주둔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존재가 필요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북 핵 폐기와 평화협정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 남북한이 당사자가 되는 평화협정에 대해서 문재인 정부는 선호하는 것이 명확하지만 북한은 반대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한국의 입장에서 핵 없는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과 경제협력을 못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핵 폐기와 평화협정은 장기적으로 남북교류협력의 실마리가 되고, 이는 결국 북한 김정은 세습체제의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북한은 이러한 위험성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은 핵 포기의 전제조건으로 평화협정의 체결과 북미국교정상화, 그리고 한반도에서 미군철수 등을 제시해왔다. 북한은 이런 전제조건이 달성된다고 해도 북한 레짐의 안전은 보장되지 않는다고 판단한다. 북한은 미국이 들어주지 않을 사항을 비핵화의 전제조건으로 내걸고 미국과의 대결구도를 국내정치 안정화에 이용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북한은 미국과 한국이 미군철수와 같은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 평가하고 미국은 평화협정체결이나 북미 국교정상화에 앞서 북한이 비핵화에 대한 성실한 태도를 먼저 보여야한다며, 서로 상충하는 주장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과 북한의 적대적 상호의존이 유지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으로 인해 미국이 북한 핵에 대해 전략적 인내라는 모호한 태도를 취하는 동안 북한은 체제생존을 위해 주변국의 애매한 입장을 최대한 활용하여 핵무기의 소형화와 기술발전 그리고 발사체의 개발에 성공했다. 한국은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중국과 러시아를 설득해 실효성 있는 대북제재조치를 추구했지만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북한이 미국의 본토를 공격하겠다는 위협을 공공연히 표방하는 지금에 와서는 미국은 더 이상 상황을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오바마 시기의 전략적 인내와 같은 사실상의 방치를 마무리 하고 적극적인 대응으로 나서고 있다. 미국은 북한과 거래하는 중국의 기업과 은행을 대상으로 세컨더리 보이콧을 실행하고 있다. 이제까지 북한의 입장을 지지하는 차원에서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주장하던 중국도 이제는 더 이상 전략적 모호성으로 미국의 요구를 회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중국은 물론 러시아도 한반도에서 북한을 통해서 확보하고 있는 전략적 영향력의 유지라는 차원에서 기회주의적 현상유지를 최소한의 이익 확보라고 판단해 왔지만 이제는 본토 공격위협에 처한 미국의 요구를 외면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북한과 거래하는 중국의 기업과 은행에 대한 세컨더리 보이콧은 전례가 없는 압박이다. 이와 보조를 같이하여 중동 등지에 파견되어 북한 외화의 주요 조달통로 역할을 했던 근로자들이 북한으로 돌아가고 있다. 중국의 미온적 대북압박에 대한 미국의 강경한 정책선회가 효과를 보일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의 대북정책에 실질적인 변화가 나타나 중국에 대한 직접 압박이라는 전례가 없던 길을 간다는 점에서 북한의 핵 포기에 적어도 장기적으로는 어느 정도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유례없는 조치가 취해진다는 점에서 북한 핵을 인정하고 북한의 요구를 수용하는 ‘평화협정’이나 북한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전술핵 도입’이 아니라 북한의 핵을 제거하는 장기적인 정책목표를 달성하는 단초가 마련된 것으로 판단된다. 이제까지는 북한의 비핵화와 붕괴가능성에 대한 중국과 러시아의 평가 때문에 대북제재의 효과에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이제 중국에 대한 미국의 압박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전략적 인내가 아닌, 전략적 제재의 효과가 시간은 걸리지만 나타날 것이다. 한반도에 핵을 제거한 후에는 전술핵 도입이나 독자적 핵개발이 필요 없으며,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 될 것이다. 現 제주평화연구원 분쟁해결연구부장. 단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후 2004년 미국 University of North Texas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음. 단국대학교 분쟁해결연구센터에서 연구위원으로 활동하며 “한국의 공공분쟁 사례연구”를 주제로 대한민국 학술진흥재단 중점연구소 연구과제를 수행하였음. 학술활동으로는 미국국제정치학회가 주관하는 International Studies Quarterly의 Referee로 활동한 바 있음. 저서로는 『2011 한국인의 평화관: 통일정책과 여론 』 및 『2010 한국인의 평화관: 외교정책과 여론』 등이 있음.
  • 한-미얀마 관계에 잠재적인 위험 요소
    저자
    안드레이 아브라하미안 (제주평화연구원)
    발간호
    2017-56
      미얀마는, 북한을 제외하고는, 아시아에서 가장 최근에 경제개방을 한 큰 시장이다. 그리고 한국은 미얀마의 경제개방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이 미얀마 시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데에는 위험이 따른다. 한국은 미얀마로의 무기 수출이 문제를 야기하거나, 미얀마 주재 한국인들이 문제를 일으켰을 때를 대비해 공식적, 직접적인 외교활동에 착수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한국은 미얀마와의 무역 및 투자에 있어 중국이나 태국의 영향력을 따라갈 수는 없지만, 첨단기술, 고도의 공학기술, 기반시설 구축 프로젝트에서는 일본과 경쟁하고 있다. 회계연도 2016-2017년을 기준으로, 한국은 싱가포르, 중국, 태국, 베트남에 이어 미얀마에 다섯 번째로 많은 투자를 한 나라이다.1) 일본과 달리, 한국은 또한 다른 경제 분야에 더 깊숙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인들은 미얀마 전역에 퍼져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반적으로 중국 사업체는 미얀마에서 훨씬 큰 영향력을 갖고 있지만, 미얀마 현지 중국인들과 마찬가지로 겉으로 드러난 활동을 벌이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양곤에서는 새로 연 레스토랑, 분식점 그리고 한국식 커피숍을 포함하여 어디서나 한국말을 들을 수 있다. 한국 드라마는 미얀마의 여러 TV채널에서 황금시간대에 방영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음료, 식료품 회사와 같은 소규모의 한국 기업들이 존재하는 것과 동시에, 법적으로 문제가 있는 선교활동을 은폐하기 위한 사회적 기업도 존재한다. 전 세계의 섬유제조업체와 수출업체들은 미얀마 섬유제품 수입을 금지한 미국의 제재조치가 풀림에 따라 미얀마로 돌아오고 있다. 그러나 한국 업체들은 미얀마를 떠난 적이 없기 때문에 이 성장 부문에서 경쟁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의 ㈜팬코는 2016년 8월, 500 에이커에 달하는 본선인도조건(FOB)의 섬유생산기지를 만들기 위해 한 미얀마 업체와 50 대 50으로 투자한 합작회사를 설립했다. (이 사업은 그 이후로 잠잠한데, 추진이 미뤄진 것으로 보인다. 이는 미얀마의 신뢰하기 힘들고 윤리적 기준을 알 수 없는 관료제가 개입될 때마다 흔히 발생하는 일이다) 어떤 면에서 이는 부와 일자리 그리고 한국과 미얀마의 공통된 이해관계를 창출하는 중요한 초대형 사업이다. 그리고 한국은 이 분야에 경쟁력을 가지고 있지만, 미얀마의 관료제와 마찬가지로 한국 업체의 이러한 경쟁력의 바탕도 윤리적 측면에서는 문제가 있다. 2000년대 초, 대우인터내셔널, 포항제철, 그리고 다른 한국 대기업들이 한국의 법규와 국제규범을 위반해가며 무기와 관련기술을 미얀마 군부에 제공하고 있다는 소문과 비난에 한동안 휩싸였었다. 결국 2006년 12월, 대우인터내셔널의 대표는 다른 7개 회사의 임원 14명과 함께 군사용품 불법 수출로 기소되었다.2) 그는 유죄판결을 받았고 5천만 원 (미화 약 5만 달러)의 벌금을 선고받았다. 그 이후, 대우인터네셔널은 대표의 사임과 최소한의 비용 지출로써 값을 치뤄냈다. 포항제철은 2010년 대우인터내셔널을 인수했고, 2016년 새롭게 포항제철-대우로 명명된 이 법인은 2016년 미얀마 쉐타옹(Shwetaung)에 수백만 달러 규모의 발전소 건설 사업을 단독으로 따냈다. 미얀마의 열악한 발전기반 시설을 지원하기 위한 사업체로 선정된 것 이외에도, 포항제철-대우는 양곤 시와의 첫 번째 장기 토지사용 계약의 일환으로, 9월 1일 양곤 시에 대규모 호숫가 호텔단지를 개설할 예정이다. (이 회사는 70년간 토지 이용권을 보유하고 있다) 포항제철-대우는 또한 벵갈만에서 중요한 가스채굴 및 생산 권한을 부여받았다. 이 회사는 2013년 두 구역에서 가스를 생산하기 시작했고 지난해에는 세 번째 구역에서 가스채굴을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이 회사는 양곤에 1000만 불 규모의 버스 생산 공장을 건설하고, 트완테(Twante)에 미얀마의 쌀을 가공, 수출하기 위한 쌀 가공 단지 건설허가를 얻어냈다. 한국은 이제 어떤 기준에서는 세계 10대 무기수출국이고, 무기분야는 한국이 가장 최근 공략하고 있는 부문인 것으로 보인다. 일부 전문가들은 한국이 향후 몇 년 뒤 중국을 따라잡아 아시아 최대의 무기수출국이 될 것으로 예측한다.3) 공개된 자료는 없지만, 어떤 이들은 미얀마가 여전히 한국의 무기와 기술을 받아들이고 있다고 주장한다. 한국은 2007년 대외무역법을 개정하여 수출 통제를 강화했으나 투명성 부족이 여전히 문제가 되고 있다.4) 게다가,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와 같은 비영리기구는 미얀마 무기거래의 상당수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SIPRI는 한국과 미얀마 간 무기와 기술이전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 알려졌던 2000년대 초에도 관련 자료를 얻지 못했다) 샨 주와 카친 주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분쟁뿐 아니라 라카인 주에서의 지난 12개월간 미얀마 군의 더 거세진 공세를 고려해보면, 한국은 무기 수출이 밝혀지거나 공개되면 국제여론의 심각한 반발에 직면할 수 있다. 한국은 선진 민주국가의 규범과 기준을 준수하는 무기수출국으로 인정받기를 원하고 있으나, 유럽연합과 미국은 다른 제재조치는 철회했지만, 미얀마에 대한 무기수출 금지조치는 유지하고 있다. 한국이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할 또 다른 부분은 미얀마 시민들의 여론이다. 미얀마는 종교적 개종을 제한하는 법률을 가지고 있고 불경스런 행위에 대하여 법을 폭 넓게 적용한다. 최근 미얀마의 민족주의적 감정은 뚜렷한 목적 하에 지배적인 불교신앙과 연계되어 있고, 무슬림에 대한 비난과 폭력이 자행되고 있어, 기독교인들도 이로부터 안전하지 못하다. 미얀마에 있는 한국인 선교사, 유사 선교사 숫자를 고려해보면, 어떤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쌍방 간에 불쾌한 사건이 발생하는 것을 배제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민족주의적인 미얀마 인들은 현재 어느 때보다도 더 한국인을 시범사례로 만들 기회를 엿보고 있을 수도 있다. 지난달에는 미얀 코레 (Myan Kore)라는 한인잡지에 실린 글에서 미얀마 인들을 게으르고,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개와 같다고 표현한 것 때문에 한국의 이미지는 타격을 입었다. 이 글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스캔들로 발전했고, 심지어 미얀마에서 전국적으로 배포되는 잡지에서도 다루어졌다. 한국인들은 또한 직물공장에서 극히 난폭한 상사의 이미지를 심어왔다. 이들 공장에서는 임금이나 노동조건에 대한 항의와 노동쟁의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현재로는 한국기업과 미얀마 시민들 간에 주요한 문제가 없지만, 향후 걸림돌이 나타날 수 있다. - 1) 투자 및 기업관리청 (DICA). 다수의 제삼자들이 미얀마에 투자하기 위해 싱가포르 국적을 이용한다는 사실과 DICA가 “완료된” 투자가 아니라 “승인된” 투자에 기반한 통계를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이들 통계는 복잡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http://www.dica.gov.mm/sites/dica.gov.mm/files/document-files/fdi_yearly_by_country_0.pdf). 2)http://www.exportlawblog.com/archives/68. 3)브라이언 해리스 (Harris, Bryan), “세계의 불안정성이 한국 전쟁산업의 동력이 되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 2016년 12월 4일(http://www.ft.com/content/69724520-b85f-11e6-ba85-95d1533d9a62). 4)이재원, “한국의 수출통제체계, 스톡홀름 평화연구소 배경보고서.” 2013년 11월. 16 페이지 (https://www.sipri.org/sites/default/files/files/misc/SIPRIBP1311.pdf). 안드레이 아브라하미안(Andray Abrahamian)은 제주평화연구원 객원연구위원이다. 울산대에서 강의를 했고, 북한 사람들에게 기업가 정신과 경제 정책을 교육하는 비영리회사 ‘조선익스체인지(Choson Exchange)’의 전무이사를 역임했다. 집필 중인 북한과 미얀마를 비교한 책을 곧 출간할 예정이다.
  • 인도적 대북 지원의 실태와 논란, 그리고 세 가지 고려 사항
    저자
    한준성 (한양대학교 평화연구소 연구교수)
    발간호
    2017-57
                                        1. 북한 주민의 식량난과 취약한 보건의료 2. 국제사회와 한국의 인도적 대북 지원 실태 3. 인도적 대북 지원에 대한 논란 4. 인도적 대북 지원의 기대효과 1. 북한 주민의 식량난과 취약한 보건의료 몇 해 전 필자는 북한 보건의료 분야에서 종사한 이력을 가진 한 탈북민이 자신의 강연에서 북한의 대다수 노인들이 심각한 식량난이 이어져 오면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크지 않다고 설명한 것을 기억한다. 머리로는 이해하더라도 죽음에 대한 공포를 무색하게 만드는 현실적 고통을 다 헤아리기는 어려웠고 그럴 수도 없었다. 다만 몇 가지 추정치들은 그 깊이를 어느 정도 가늠하게 해준다. 물론 이러한 수치들이 그 이면에 놓인 물질적 결핍과 정신적 황폐화의 실상을 온전히 말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북한은 2016년 세계기아지수(Global Hunger Index) 평가에서 28.6점을 받아 주민의 기아 상태가 ‘심각한(serious)’ 수준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1) 북한에서는 상층 계급이나 당 간부 등을 제외하고 대다수 주민들이 식량부족과 영양결핍 등 건강권과 생명권에 있어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으며 특히 북한 영유아에 대한 지원이 매우 시급한 실정이다.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에 의하면 2,510만 명으로 추정되는 북한 인구 가운데 약 70%가 식량부족을 겪고 있으며 아동의 25%가량은 발육부진 상태에 있다.2) 특히 영유아 사망률은 2015년 기준으로 1,000명당 22명으로 심각한 상황이며, 5세 미만 아동의 28%가량이 영양실조 상태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렇다면 북한 주민의 건강권과 생명권을 이처럼 심각하게 침해하는 요인들은 무엇일까? 복합적인 요인들을 단순화해 본다면 크게 세 가지 요인들이 결합된 탓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자연재해에 대한 취약성이다. 북한에서는 해마다 태풍, 해일, 홍수, 가뭄 등 자연재해가 발생했다. 그런 가운데 2015년에는 16년 만에 최악의 가뭄이 발생해 북한 주민들의 고통을 배가시켰다. 둘째, 북한의 농업 생산성은 매우 낮은 편이다. 경작지 부족, 지나친 경작, 비료와 살충제 부족, 낮은 기계화 수준, 낙후된 관개시설 등 농업 생산 기반이 부실하고, 이는 북한의 농업 시스템을 자연재해에 더욱 취약하게 만들었다. 마지막 요인은 북한 정권의 통치 방식이다. 연이은 핵과 미사일 실험과 도발 등 정권 생존을 최우선시하는 북한 정권의 정책 접근으로 인해 북한사회는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되어 왔다. 그런 가운데 앞서 설명한 자연재해 취약성과 낮은 생산성 문제는 지속되었고, 내부 분배체계는 부실화·왜곡화되었다. 북한 정권의 벼랑 끝 대외전술이 대내적으로는 북한 주민까지 벼랑 끝으로 내몬 셈이다. 이처럼 대다수 북한 주민들은 식량 배급과 보건의료에 있어서 구조적인 취약성을 안고 그 끝을 알 수 없는 “고난의 행군”을 하며 버텨왔다. 이러한 북한 주민들의 심각한 실상이 한국과 국제사회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95년이었다. 그해 8월, 북한 유엔대표부는 유엔의 인도주의사무국(Department of Humanitarian Affairs, DHA)에 긴급 구호 요청을 했다. 국제사회는 세계식량계획의 북한 원조 캠페인 실시를 신호탄으로 하여 본격적인 대북 지원을 시작했고, 한국 정부와 시민사회도 이때를 기점으로 북한 주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본격화했다. 인도적 대북 지원은 북한 주민들에게 식량과 생명유지에 필요한 물자를 직접적으로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역대 정부는 상황에 따라서 이산가족 상봉,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건설 등 남북 간의 교류 및 경제 협력을 인도적 대북 지원의 일환으로 추진하면서 그 외연을 넓혀 왔다.3) 2. 국제사회와 한국의 인도적 대북 지원 실태 인도적 대북 지원의 역사를 국제사회와 한국으로 구분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국제사회는 2013년까지 총 18억 9,361만 달러를 북한에 지원했다.4) 국제사회의 대북 지원은 2000년대 초반까지는 물자 지원이 대부분이었으나 차츰 사회 인프라, 경제 인프라, 생산 지원 등 다양한 분야로 확대되어 왔다. 국제사회 지원의 거의 대부분이 무상지원 형태로 공여되었고, 양자 지원(65%) 비중이 다자 지원(35%)보다 두 배 가까이 높았다. OECD 개발원조위원회(DAC) 회원국들 가운데 공여액 기준으로 상위 5개 국가는 미국, 독일, 스위스, 스웨덴, 노르웨이로 나타났고, 미국의 지원은 양자와 다자를 포괄한 전체 지원액에서 약 35%를 차지했다. 또한 OECD DAC에 등록된 공여기구 가운데 유럽연합의 공여액은 국제기구를 통한 공여액의 71%를 차지했으며, 유럽연합의 대북 지원은 양자와 다자를 포괄한 전체 지원액에서 약 24%를 차지했다. 보다 최근에 국제사회의 대북 지원 규모는 배분의 불투명성, 지원에 대한 피로감, 핵과 미사일 문제에 따른 대북 제재, 그리고 세계경제위기의 여파 등으로 인해 감소하는 추세를 보여 왔다.5) 한국의 인도적 대북 지원 규모를 보면 1995년부터 2017년 8월 현재까지 민간 차원에서는 8,970억 원(전액 무상)에 이르렀고 정부 차원에서는 2조 3,898억 원에 이르렀다. 한국 정부는 남북관계가 특수관계라는 점에서 대북 지원을 여타 국가에 대한 원조와 구분하여 국제사회에 보고하지 않은 채 정부 차원의 지원(국제기구 경유 지원 포함)과 민간 차원의 지원(대한적십자사 경유 지원 포함)으로 구분하여 파악해 왔다. 김영삼 정부 시기에는 1995년 쌀 15만 톤 무상지원을 시작으로 1997년에는 대북 지원의 창구 단일화가 폐지되면서 지원단체들이 독자적으로 지원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6) 이후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기를 거치면서 대북 지원이 크게 활성화되었으며 인도적 지원에 한정되지 않고 개발협력 지원으로 형태가 다양화되었다. 이명박 정부는 ‘비핵 개방 3000 구상’하에 북한의 핵포기를 대북 지원의 전제 조건으로 하였고, 2010년 5.24 조치 이후로는 사회 인프라 분야 지원과 방북이 전면 중단되었다. 당국 차원의 지원은 2010년 북한의 대홍수 사태에 따른 쌀과 컵라면 등 지원을 제외하면 일체 없었고 민간 차원의 지원은 위 〈표〉에서 보듯이 급격하게 축소되면서 명맥이 유지되는 수준에 머물렀다. 이어진 박근혜 정부 시기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북한은 2014년 박근혜 대통령의 ‘드레스덴 선언’에 강력 반발하면서 민간단체의 인도적 지원 중단을 선언했다. 이후 2016년 초 개성공단 폐쇄 조치로 그나마 어렵게 유지되어 온 민간 대북 지원 사업들이 종료 수순을 밟았다. 그렇지만 두 보수 정부 모두 공통적으로 인도적 지원을 정치적 상황과 구분하여 지속한다는 입장을 취하였다. 박근혜 정부는 영유아 및 산모 등 취약 계층에 대한 지원을 5.24 조치의 예외 대상으로 규정하기도 했다.8) 이러한 입장은 문재인 정부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이처럼 북한의 취약계층에 대한 인도적 지원은 정치적 이념과 무관하게 한국 정부의 일관된 방침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정부의 모든 정책의 중심에 ‘사람’이 있음을 강조하면서 보건·의료 분야에 대한 인도적 대북 지원을 정치적 상황과 연계하지 않아야 한다는 입장을 다시 한 번 명확히 했다. 통일부 내 인도협력국 설치는 그러한 의지를 구체화하려는 모습으로 볼 수 있고, 정부는 지난달 국제기구(유니세프와 세계식량계획)를 통한 800만 달러의 인도적 대북 지원을 결정하였다. 3. 인도적 대북 지원에 대한 논란 하지만 시기적 요인이 결부되면서 800만 달러 지원을 둘러싼 논쟁이 촉발되었다. 북한 정권이 연이어 핵 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감행해온 상황에서 지원에 대한 회의론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이에 대해서 정부와 여당은 직접 현금 지원이 아닌 국제기구에 기금을 지원하는 형식이라는 점, UN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안(resolution 2375)이 “대화를 통한 평화적이고 포괄적인 해법”을 적시하고 있고 인도적 지원이 그러한 해법과 모순되지 않는다는 점, 지원 결정이 집행에 이르기까지 시간이 소요되고 그 사이에 구체적인 지원 내용과 방식에 대한 협의가 가능하다는 점, 미국과 일본 등 관련국들에 사전 설명을 했다는 점 등을 들며 회의론에 대처하고 있다. 그렇지만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인도적 대북 지원이 본격화된 이후로도 이러한 회의론과 논란이 끊임없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선 과도한 회의론을 억제하기 위한 논리적·경험적 근거를 확보해 나가야 한다. 회의론은 크게 두 갈래로 정리할 수 있다. 우선 인도적 대북 지원이 ‘무턱대고 퍼주기’이자 ‘묻지마 지원’이라는 것이다. 이는 지원 물품 등이 북한 주민에게 제대로 전달될 리 없을 것이고, 군사적 목적으로 전용될 수 있다는 우려를 반영한다. 한마디로 인도적 대북 지원은 실제로 북한 정권을 유지·강화하는 부정적 효과를 갖고, 그렇기에 북한의 체제 변화에 장애 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이는 인도적 대북 지원이 예산 집행에 관한 정부 책임성을 훼손시키고 자칫 한미일 공조에 균열을 낼 수 있다는 주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 다음으로 인도적 대북 지원은 북한 주민의 인권에 반한다는 것이다. ‘북한 주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과 ‘북한 주민의 인권 문제’를 엄밀하게 구분하지 않은 채 북한 주민의 인권 개선을 북한 정권의 체제 전환 내지는 붕괴와 직결시킬 경우 인도적 대북 지원은 애초부터 고려 대상에서 제외되거나 주변화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럴 경우 북한체제 민주화 요구 아래 인도적 대북 지원의 요청은 쉽사리 고개를 들지 못한다. 둘 중에 보다 심각하게 고려해야 하는 것은 첫 번째 주장이다. 두 번째 주장과 관련해서는 우선 남북관계의 정치적 상황과 인도적 대북 지원을 연계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있어서는 이전 정부와 현 정부가 동의했다는 점, 그리고 북한 정권을 비난, 압박만 하면서 단기간에 현실화되기 어려운 북한체제의 민주화를 마냥 기다리기에는 북한 주민이 겪는 현실적 고통이 너무나도 크다는 사실 앞에서 인도적 대북 지원의 시급성을 반박하기는 어렵다. 설령 북한 정치체제가 민주화가 된다고 하더라도 민주화가 곧장 인도적 위기의 극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상황에 따라서는 오히려 그 반대일 수도 있다. 또한 인도적 지원이 북한 주민의 인권에 해로운 영향을 미칠 가능성 자체가 곧장 인도적 지원의 중단 필요성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중단을 정당화하려면 인도적 지원의 부정적 효과가 긍정적 효과를 압도한다는 것과 만일 부정적 효과가 크다면 그것이 지원 방식의 개선으로도 극복하기 힘들 정도로 내재적인 효과라는 것에 대해 설득력 있는 논리 내지는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보다 심각한 문제는 첫 번째 주장과 관련된다. 즉, 인도적 대북 지원의 투명성에 대한 보장이 일정 수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달리 말해 배분, 전달, 평가 과정에서 북한 정부의 협조가 수긍할 만한 정도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인도적 대북 지원의 본격 재개와 지속은 어렵다. 이는 정부 책임성 문제와 직결되어 예상 집행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4. 인도적 대북 지원의 기대효과 다음으로, 인도적 대북 지원에 대한 회의론과 과도한 논란을 생산적인 논의로 전환시키기 위해서는 그것의 의미 구성과 효용성에 대한 이해를 풍성화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인도적 대북 지원의 다층적 의미 내지는 기대 효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북한 주민의 실생활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둘째, 다양한 루트의 인도적 대북 지원 사업들을 통해 영양상태 평가, 식량 및 농작물 평가 등 북한의 인도주의적 위기의 실상을 구체적인 사례나 수치로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북한 주민이 처한 곤경의 실상을 보다 정확히 파악해 대국민 설득의 근거로 활용할 수 있다. 셋째, 분단체제의 가장 잔혹한 폭력 현상들 가운데 하나인 이산가족 문제를 푸는 단초가 될 수 있다. 즉, 이산가족의 상봉, 교신, 교류를 가능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넷째,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난민 발생, 가족 이산과 해체, 인신매매 등의 인권 침해의 상황들과 그에 따른 폭력과 트라우마 발생을 예방하거나 최소화하는 데 기여한다. 다섯째, 다양한 주체들의 관여와 참여를 통해 굳이 ‘통일’의 구호를 전면에 내걸지 않더라도 사실상의 통일운동의 저변을 확대해나갈 수 있다. 또한 인도적 대북 지원은 그 수준이 일정 수준에 이르게 되면 이른바 ‘인도적 대북 지원의 생태계’를 형성하게 됨으로써 쉽게 중단할 수 없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여섯째, 북한과의 신뢰형성의 중요한 고리가 될 수 있다. 즉, 인도적 지원을 통해 북한과의 접촉면을 넓히고 접촉 지점을 다원화함으로써 남북 간 신뢰형성을 다진다면 이를 기반으로 정치군사적인 차원에서의 남북 간 긴장과 갈등을 관리하거나 개선시켜 나갈 수 있다. 이는 대북 정책을 둘러싼 소모적인 ‘남남 갈등’의 완화, 남북 개발 협력과 대북 해외투자 촉진의 차원에서 보더라도 중요하다. 일곱째, 박명규(前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원장)의 설명처럼 인도적 대북 지원은 한국사회의 인권 문화와 국가의 품격을 높일 수 있는 “공동체적 무형자산”으로서의 의미도 갖는다.9)그런 점에서 인도적 대북 지원은 만일 그것이 북한의 낮은 계층에까지 제대로 전달된다면 대한민국이, 충성심과 애국심보다는 통제에 의해 유지되고 있는 북한 주민들의 민심을 얻게 만드는, 즉 도덕적 정당성 수준을 높이는 효과를 갖는다. 여덟째, 북한의 대남 의존도를 높임으로써 북한이 중국이나 러시아 등에 의존하는 것을 일정 정도 방지하는 효과를 갖는다.10) 특히 적극적인 인도적 대북 지원은 설령 북한사회에 정치 변동이 발생하더라도 국제사회에 북한 지역이 대한민국의 우선적 관할하에 있다고 설득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미온적이거나 지나치게 조건부적인 인도적 지원 정책은 오히려 북한 정권이 북한 주민의 참상의 원인을 한국 정부로 돌리는 빌미가 될 수 있다.11) 그런 점에서 적극적인 인도적 지원 정책은 북한의 그러한 의도를 무력화하기 위한 선제 전략이기도 하다. 5. 인도적 대북 지원에서 고려되어야 할 세 가지 그렇다면 인도적 대북 지원에 대한 과도한 논란이나 회의주의를 평화사적 차원에서 건설적인 담론과 실천으로 전환시키기 위해서, 그리고 앞서 제시한 인도적 대북 지원의 다층적 가능성들을 구체화하기 위해서 어떠한 노력이 필요한가? 보다 많은, 그러면서 보다 다양한 제안들이 제시될 수 있겠으나 여기에서는 크게 세 가지 점을 제안하고자 한다. 우선 어떠한 경우에도 인도적 대북 지원의 흔들릴 수 없는 최우선적 목적이 북한 정치체제의 변화가 아닌 북한 주민의 생존권 확보와 실생활 개선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즉, 인도적 대북 지원이 남북관계와 관련해 갖는 정치적 효과에 대한 셈법에 앞서 우선 그것이 헌법적 책무와 인도주의의 관점에 기초한 것임을 명확히 함으로써 상황 논리가 아닌 일관된 원칙에 따른 주체적 정책 의지와 역량을 보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 상황 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사려 깊고 결단력 있는, 자신들의 평화사적 책무를 깊게 자각한 정치가와 행정가의 역할이 긴요하다. 특히 이들이 규모와 방식의 변화가 있더라도 인도주의적 지원을 중단(이라는 표현을 공식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인도적 대북 지원의 외연이 상황적 요인에 따라 어느 정도 조정될 수는 있겠지만, 그 핵심(긴급 구호 등)이 기각될 수는 없다는 원칙에 따라야 한다. 이것은 일관성의 관점에서도 중요하다. 일관성은 경직성과 다르며 유연성과 모순되지 않는다. 인도적 대북 지원 정책의 일관성은 잠재적 협상 파트너인 북한당국과의 신뢰형성에도 도움을 줄 것이다. 또한 이러한 신뢰형성을 바탕으로 그 외연과 규모를 확대해 나간다면 이는 한국의 인도적 지원에 대한 북한의 의존성을 높임으로써 우리가 대북 협상 과정에서 보다 유리한 지점을 확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다음으로, 인도적 대북 지원은 사회 담론에서 ‘정당성’의 이슈가 되기에 그 정당성에 대한 동의와 합의의 사회적 기반을 넓혀가는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정부는 먼저 대북 지원의 제 주체들과 협조하여 시민들과 국제사회에 북한 주민이 처한 인도적 위기에 대한 보다 정확한 정보를 알기 쉬운 형태로 제시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 통일부 내에 인도협력국이 주도하는, 국내외 지원단체가 참여하는 부처 간 태스크 포스를 구성하여 북한 주민의 실상에 대한 치밀한 현상학적 분석 작업을 시작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 정당성 확보 차원에서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하는 또 다른 차원은 지원 배분 및 전달체계의 투명성이다. 이는 북한 주민의 실생활 개선과 직결되는 문제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이를테면 지원 수혜 지역을 ‘군’ 등 기초 단위로 하여 신뢰할 만한 조사체계와 인력으로 배분 상황을 지원이 시급한 지역을 중심으로 무작위 감시할 수 있다면, 인도적 대북 지원 사업은 소모적 논란을 어느 정도 잠재우면서 적극적으로 전개될 수 있다. 그렇지만 당장에 분배 투명성을 높이기는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그런 점에서 영유아 영양 지원과 모자보건 지원과 같이 분배 투명성 논란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부문들을 중심으로 지원 사업을 본격적으로 재개할 필요가 있다.12) 마지막으로, 인도적 대북 지원과 관련하여 동포사회 내지는 한인 네트워크의 역할을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현실적으로 정부 차원의 인도적 대북 지원이 정치적·군사적 상황과 독립적으로 이루어지기는 어렵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이러한 상황 변수로부터 비교적 독립적인 외국적 동포들의 의지와 열정, 그리고 이들의 트랜스내셔널 자산과 역량을 잘 조직화하여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면 지속적이고 일관된 인도적 대북 지원이라는 정책 목표 달성과 국제사회의 보다 적극적인 대북 지원 참여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물론 이들의 북한 억류나 추방 등 리스크 관리의 중요성도 잊지 않아야 한다). 인도적 대북 지원은 민족 공동체의 관점에서 볼 때 절실하다. 분단체제의 비평화와 폭력을 극복하기 위한 자원으로서 민족 관념은 여전히 중요하다. 그렇지만 그 추진 방식이 방법론적 민족주의의 틀에 갇혀서는 안 된다. 북한 주민의 고통은 민족의 문제인 동시에 인류사회의 보편 과제이기도 하다. 우리는 민족 공동체와 분단체제의 특수한 조건하에서 바로 그 보편 과제를 풀어 나가야 한다는 민족사적·평화사적 책임을 함께 안고 있다. 물론 현실 상황의 엄중함을 고려할 때 인도적 대북 지원은 그 추진 과정에서 타협적 균형(modus vivendi)을 찾기 위한 노력을 수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러한 노력이 한반도의 특수성과 인류사회의 보편성이 융합된 의미 지평 위에서 일관된 원칙하에 추진되는 것이 중요하다. - 1) 세계기아지수 홈페이지(http://ghi.ifpri.org). 2) 세계식량계획 홈페이지(http://www1.wfp.org/countries/democratic-peoples-republic-korea). 3) 민태은, “남남갈등과 인도적 대북지원,” 『의정연구』 제22권 제3호(2006), 206쪽. 4) 박지연, “국제사회의 대북지원 분석(1945~2014),” 『수은북한경제』 봄호(2015), 59-62쪽. 5) 정영철, “대북 인도적 지원의 추이와 과제,” 『통일경제』 제1호(2016), 28쪽. 6) 문경연・이우영・정소민, “대북지원 20년(1995~2015): 민간단체의 대북지원 성과와 과제,” 『국제관계연구』 제22권 제1호(2017), 54쪽. 7) 통일부 홈페이지(http://www.unikorea.go.kr/unikorea/business/statistics). 8) 문경연 외(2017), 54쪽. 9) 『연합뉴스』(2013/12/11), “법륜, 朴 대통령에 ‘대북인도적 지원 결단’ 촉구.” 10) 『조선일보』 한승주 칼럼, “대북 지원의 대상은 북한 주민이다”(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8/29/2011082902465.html). 11) 『조선일보』 한승주 칼럼. 12) 송영훈, “북한국제화와 인권 및 대북인도지원,” 박명규 외, 『북한국제화 2017』(서울: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2013), 93쪽. 現 한양대학교 평화연구소의 연구교수.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과를 거쳐 서울대학교 정치학과에서 석·박사학위를 취득. 2017년 4월부터 한양대학교 평화연구소에서 연구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주요 연구분야는 이주노동정치, 이민정책 등임. 주요 논문 및 저서로, "1995년 이주노동자 명동성당 농성과 이주노동정치 지형의 변화", "민주화 이후의 이주노동정치사: 초기(1987~1993)", "‘박정희가 만든집’: 초기 복지정치의 유산", "다문화주의 논쟁: 브라이언 배리와 윌 킴리카의 비교를 중심으로"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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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郑继永(复旦大学 朝鲜韩国研究中心)
    발간호
    2015-18
     [편집자 註] 사드를 둘러싼 논의가 객관적인 사실과 상호이해를 바탕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JPI PeaceNet은 사드를 보는 한중 양국의 시각을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독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 첫 시도로서 우정엽 박사의 "사드(THAAD)가 중국에게 위협이 되는가?"를 국문과 중문으로 발행하였으며, 그에 대한 중국 아태학회 조선반도연구회 조세공 위원의 반론도  배포하였다. 상해 복단대 조선한국연구소 정계영 소장의 기고문도 국문과 중문으로 발행되어 한중 양국의 독자들에게 배포될 예정이다.  많은 관심을 부탁드리며 독자들의 기고도 환영한다. 편집: 한인택 연구위원(ihan@jpi.or.kr) 사드를 둘러싼 한국 내의 논의가 중국 각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중국이 사드의 배치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은 사드에 대한 중국 나름의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I. 지역 정세와 관련된 정치적 우려 정치적 차원에서 보면 중국은 사드의 배치가 동북아 정치에 예측 불가능한 혼란을 유발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국제정치 차원에서 볼 때 한반도에 사드가 배치된다면 동북아 지역의 안정과 평화를 위협하게 될 것이다. 국제적 정세가 극히 불안정한 상황에서 동북아 지역은 그동안 어렵게 안정과 평화를 유지해 왔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큰 충돌이 발생하지는 않았다. 동북아 지역은 군비경쟁이 가장 심각한 지역 중의 하나로서 역사 문제, 영토분쟁, 해상충돌 등의 문제로 인해 나선형(spiral)의 안보딜레마가 심화되는 국면에 위치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드의 도입은 설상가상으로 동북아의 취약한 평화와 안정을 파괴하고 우크라이나 식의 혼란상태를 초래할 것임에 의심할 여지가 없다. 중국과 한국에게 있어서 동북아의 안정과 평화는 가장 큰 이익이면서도 궁극적인 목적으로,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는 행위는 중국을 비롯한 각국의 거센 반대를 받을 것이다. 한반도 차원에서 봐도 사드는 한반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최적의 방안은 아니다. 논리적으로 방패의 발전은 창의 진화에 달려 있으면서 뒤떨어진다. 한반도의 평화, 안정, 비핵화의 방향은 군축, 반핵, 화해에 있지 무력으로써 무력에 대항하는 것을 반복하거나 안보 딜레마를 악화시키는 투쟁, 또는 냉전적 사고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 사드는 북한이 한 단계 더 첨단적인 반격무기를 개발하도록 자극할 수도 있고, 어렵게 이루어진 화해의 분위기를 파괴할 수도 있다.  따라서 사드는 순수한 의미에서의 방어성 무기보다는 지역 안정과 평화를 뒤흔드는 ‘공격성’ 무기로 진화할 가능성이 더 크다. 중국과 한국의 국내정치 차원에서도, 사드는 한국의 국내정치를 분열시켰을 뿐만 아니라 한중 간 우호관계 발전의 속도를 늦췄다. 사드 문제가 정치적 의제로 된 이후 한국 국내에서 심각한 대립이 나타났고 반대자들과 지지자들은 서로 거친 표현으로 비난하면서 정치적?사회적 분쟁을 낳았다. 이에 따라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던 한중관계도 많은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어, 사드 문제는 한중 우호관계의 발전에 장애가 되었다. 러시아도 사드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아주 단순해 보이는 사드 문제는 미?중?러 3대국을 동시에 뒤흔들고 있다. 따라서 한국의 미중러 외교도 준엄한 시련에 직면하고 있다.   II. 사드에 관한 현실적 우려 필자는 무기 전문가는 아니지만 국제정치 학자이자 일반인으로서의 시각에서 볼 때, 사드는 현실적 측면에서 여러 가지 문제를 유발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사드의 실제 역할은 아주 제한적이기 때문에 북한의 핵무기와 포탄를 요격할 수 없다. 비록 사드의 배치가 중, 러를 상대로 한 것이 아니라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이 그 대상이라고 계속 표명하고 있고 기술적으로도 그와 같이 해석하고 있지만 사실 이러한 주장은 일종의 자기 환상으로 자신을 무섭게 한다. 북한이 전술적 핵무기와 탑재수단을 보유하고 있다는 가정하에 한반도의 전술적 지형을 보면 발사로부터 목표물 공격까지 아주 짧은 시간이 소요된다. 사드가 목표물을 성공적으로 격추시킬 수 있더라도 핵무기의 폭발범위를 감안하면 한반도 남부지역이 피격이나 오염을 피할 수 있으리라고 보장할 수 없다. 핵탄두를 격추했어도 핵탄두가 공중에서 폭발하면 남과 북의 오염이나 공격이 될 수 있다. 한편, 필자 개인의 관찰에 따르면 북한에게 있어서 핵무기는 자신의 가치를 증대하는 수단일 뿐 북한이 아직 실전에서 핵무기를 사용할 능력과 의도는 없다. 동북아에서 핵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은 예상보다 훨씬 작다. 저공비행 항공기와 대포야말로 한국이 실제로 대응해야 할 위협이다. 그러나 저공비행 항공기와 대포는 사드의 대상이 될 수 없다. 핵무기와 대포에 대응할 수 없는 사드는 일종의 심리적 위안일 수밖에 없다. 또한 사드 배치 그 자체가 적의의 표시와 위협으로 간주될 수 있다. 일부 학자는 사드 레이더의 출력을 낮추거나 방향을 조절함으로써 중국과의 불필요한 마찰을 피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일본과 대만에 이미 이러한 레이더가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중국은 우려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중국에게 보내는 호의적인 메시지이지만, 논리적으로 확실하지 않다. 중국과 마찰을 피하게 레이더의 출력을 낮추거나 방향을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은 나중에 필요하다면 출력을 다시 높이거나 방향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이는 안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무서운 일이다. 둘째, 이러한 방법에 동의하더라도 첨단 무기들이 중국을 겨냥하는지 아닌지 누가 통제하고 확인할 것인가? 셋째, 중국 주변에 이러한 무기들이 이미 배치되어 있는 상태라고 하더라도 중국은 자신의 주변 지역에 이러한 무기들이 더 많아지길 원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에게 적의를 품고 있는 국가가 많다고 해서 한국까지도 중국에게 적의를 품는 것이 문제가 없다라는 논리는 당연히 성립될 수 없다. 대만 지역은 중국의 통일 대상이고 ‘반분열국가법’ 대상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일본은 역사, 영토 문제에서 지속적으로 중국을 도발하고 중일 군비경쟁도 확대해나가고 있다. 한중관계가 중일관계처럼 뒷걸음질 치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 꼭 사드가 북한의 핵무기에 대응한 것이라고 주장하고자 한다면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에 대해 정확한 평가를 내려야 한다. 만약 북한의 핵무기가 확실히 한?미에게 큰 위협이 될 수 있다면 사드 배치를 통해 북한을 자극하는 것보다는 적극적으로 핵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더욱 필요할 것이다. 그것은 핵무기 발전과정의 가역성이 낮고 사드의 배치는 단지 시간과 장소의 문제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핵 문제 회담의 재개에 대해 한미 양국을 포함한 각 국의 태도는 소극적으로 보인다. 북핵 문제가 그렇게 절박하지 않다면 이처럼 값 비싸고 큰 논란을 일으키는 무기체계를 배치하기 위해 급히 서두를 필요가 없다. 북한의 ‘위협’을 해결하는 첫걸음은 사드의 배치가 아니라 협상에 복귀하는 것이다. 협상 테이블이야말로 평화의 시발점이며, 그 반대로 무기는 전쟁을 가져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능력과 전쟁 수행능력에 대한 커다란 인식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한국에게 있어서 가장 큰 위협은 북한의 대규모 특공부대원과 재래식무기 및 WMD 등 군사력과 북한의 붕괴로 인한 한반도 혼란이다. 현재 한반도 정세를 통제하는 데에 있어서 한국군과 주한미군은 이미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더욱 거시적인 한반도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한국과 동아시아 국가들이 정치적 지혜를 바탕으로 전략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III. 만약 사드가 배치되면 야기될 수 있는 우려 사드의 배치가 이루어졌다고 가정할 때 한반도는 여러 가지 도전에 놓이게 될 것이다. 우선 강대국 간의 군사력 전략균형이 깨질 것이다. 현대의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정보이며, 정보는 전장의 각종 정보를 수집하는 레이더 등의 ‘눈과 귀’에 의지한다. 동시에 전쟁에서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목표가 바로 이러한 ‘눈과 귀’들이다. 분석에 의하면 사드는 극히 짧은 시간 내(0~3분)에 조기 경보를 제공해 줄 수 있다. 따라서 중국 동부, 동북부지역 및 러시아 극동지역은 전략적 선제우위를 잃게 된다. 반대로 대규모 국지전이나 강대국 간 전면전이 펼쳐지면 가장 먼저 공격을 받을 대상이 바로 일본, 대만, 하와이에 배치된 전략적 경보시스템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한반도에 배치된 사드에 대해 중국은 사드가 미국의 ‘아시아 복귀’에서의 선두로서 중국의 안보적 마지노선(bottom line)을 탐측하기 위한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한반도 핵 문제는 이로써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심연 속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안정, 평화 그리고 통일은 한반도에 사는 모든 이들의 소원이다. 핵 문제의 해결에는 첨단무기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한반도 자체의 안정이 필요하다. 사드의 배치는 여러 부분에서 북한의 반발과 국가 간의 연쇄효과를 초래할 것이다. 따라서 핵폐기 문제에서 타협이 이루어지기 더욱 어려워질 것이고 간신히 안정궤도에 오른 한반도에 파장을 미칠 것이다. 사드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대응하기는커녕 남북 간의 상호교류를 더 어렵게 할 것이다. 북한은 핵능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명확히 밝혔으며 한반도 분단 영구화의 추세는 한 단계 더 심화될 것이다. 한중관계도 사드 문제로 인해 변화를 겪게 될 가능성이 높다. 사드 문제는 중국의 한반도에서의 레드라인과 부딪치고 있다.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것은 중국의 핵심이익으로서 중국은 절대로 그 어떤 국가라도 중국의 문전에서 전쟁을 일으키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60년 전에도 허용하지 않았고, 오늘날에는 더욱 허용하지 않는다. 한중 양국은 이러한 마지노선에 대한 공동인식과 최대의 이익을 갖고 있다. 중국은 북핵 문제와 한반도 안보 문제에 있어서 한국과 일치하는 입장을 더 많이 취하고 있으며 정치적 발전과 안보 교류를 통해 남북의 균형을 도모하고 불안요인들은 억제시키려고 시도해 왔다. 바꿔 말하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면 중국은 한미 군사훈련을 비롯한 행동까지도 묵인해왔다. 한반도 정세에 변화가 나타날 때 중국은 심지어 “중국의 문전에서 말썽을 일으키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경고까지 보냈다. 정치와 안보에서 한반도 평화에 힘을 기울인 중국은 “과거의 적인 한국을 좋은 친구로 발전시키려 하고” 이것을 중국이 추진하는 선한 외교의 모범으로 삼고 있다. 한중관계의 후퇴라는 결과를 보고 싶지 않기 때문에 시진핑 주석을 비롯한 각급 관료, 당정군 각계 인사들은 반복적으로 한국이 사드 배치를 포기하도록 설득하고 있다. 한반도의 안보에 대한 관심이 지금 과도하게 확대되어 있다. 마르크스는 “이가 아플 때 당신의 세계에는 그 충치만 남게 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지금은 과도한 언론보도로 한중관계, 한미관계의 중심은 모두 사드에 놓여 있고 마치 뛰어넘을 수 없는 난관처럼 만들어서 다른 문제들의 중요성이 가려졌다. 근본적으로 사드 논란의 시작점은 북핵 문제에 있고 종착점도 북핵 문제에서 착안해야 한다. 성경에서 “가이샤의 것은 가이샤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라고 하듯이 사드 문제는 북핵 문제가 유발한 하위 문제로서 단순하게 처리해야 하고 다른 문제와 연결시켜서는 안 된다. 이와 동시에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고려해야 하고 특히 한중 언론은 자제해야 한다. 침묵의 방식으로 처리하면 더욱 이성적인 답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정세하에서는 위협에 대응하고자 하는 한국의 요구를 해결하면서도 한반도 혼란을 억제시킬 수 있는 해결책이 필요하다. 사드 문제의 해결은 북핵 문제의 진전에 달려 있다. 다른 문제를 야기해서 북핵 문제의 진전을 압력을 가하는 등 행동으로 사드를 거론할 수는 없다. 중국은 기세등등한 태도를 취하지 말아야 하고, 한국도 어떤 사태도 사드 배치를 정당화하는 계기로 간주하지 말아야 하며, 중국은 한반도의 사실을 직시해야 하고 안보에 대한 한국의 요구와 인식을 인정해야 한다. 또한 미국은 부채질하여 한반도에 압력을 가하지 말아야 하며, 각국의 협력을 통해 문제를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하여야 한다.   IV. 건의사항 사드 문제는 이미 동북아 각국 간에 놓인 위태로운 돌담이 되었다. 춘추말기의 “삼가분진(三家分晋)”, 두 차례 세계대전에서의 폴란드, 그리고 지금의 우크라이나의 경험은 모두 우리에게 참혹한 교훈을 남겨줬다. 이들은 강제나 자국의 의지에 따라 어느 한 쪽으로 속했지만 결국 분할과 약탈의 대상으로 되어 버렸다. 편을 가르는 선택을 한 국가나 개인은 흔히 비극적으로 된다. 한반도의 기억도 아직 생생하게 남아 있다. 이조 말기에 각 세력이 각각 중국, 러시아, 일본 세력들을 끌어들여 결국 한반도는 36년간의 식민지 지배를 당했고 광복시기에 소련과 미국 세력의 개입으로 인해 한반도는 지금까지 분단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천명을 아는 사람은 돌 담 밑에 서지 않는다 (知命者不立乎巖墻之下: A true man won't stand beside a collapsing wall)”는 말이 있다. 한국은 사드 사태의 발전을 경계해야 하고 다시 예전처럼 편 가르기를 할 수는 없다. 현대 한국은 우크라이나도 아니고 폴란드도 아니다. 그래서 이러한 정치적 비극을 되풀이 할 수는 없다. 한국이 이러한 논쟁의 중심이 되어서는 안된다. 문제 자체에 빠지면 문제의 전반을 바라볼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은 더욱 높은 전략적 차원에서 이 문제를 살펴보아야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말한 것처럼 자신의 힘으로 동북아에서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시대를 열어 가야 하고 소녀 한 명에게 4명의 청년이 청혼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야 한다. [손자병법 모공편]에서 이른바 “싸우지 않고서 적군을 굴복시키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고로 최상의 병법은 적의 책모를 벌초하여 적의 의도를 봉쇄하는 것이다. 차선은 적의 외교를 봉쇄하는 것이다. 그 다음 차선은 적의 군대를 직접 공격하여 봉쇄하는 것이다. 최하의 방법은 적의 성을 공격하는 것이다(不?而屈人之兵,善之善者也。故上兵伐?,其次伐交,其次伐兵,其下攻城).”는 말이 있다. 사드를 둘러싼 경쟁은 하책 중의 “군대를 공격(伐兵)”하거나 “성을 공격(攻城)”하는 것에 해당한다. 한반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보다 나은 방법은 대국관계의 “모략(?)”과 한중관계 및 남북관계의 “외교(交)”를 개선하는 것이다. 한국이 이러한 논쟁을 잘 활용할 수 있다면 “성을 공격하는 방법(攻城之?)”을 “책모의 공략(伐?)”과 “외교의 봉쇄(伐交)”로 향상시키고, 미중 양국을 공략하며 미중 양국에서 이득을 얻으면서 각자의 상생을 실현시킬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최선의 선택이다. 현재 한반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안정이다. 안정한 정세를 유지해야 한국의 경제발전도 보장되고 미중 게임의 압력이 한반도에 집중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한국도 한반도 문제에서 더욱 많은 발언권을 가질 수 있게 되고, 통일게임에서 더욱 많은 카드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사드는 한국의 이러한 전략적 이익을 파괴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중국, 러시아 등 동북아 국가들의 강력한 반대를 받고 있다. 사드 문제는 이미 미사일 방어, 한반도 문제 등 중요한 과제 그 자체를 초월하여 강대국 정치경쟁 중 하나의 전쟁터가 되었고, 심지어 동북아 정치를 좌우하는 정치적 “핵무기”가 되어 버렸다. 이것은 북핵 문제, 남북관계뿐만 아니라 중국, 미국, 러시아, 한국을 포함한 여러 쌍의 양자관계를 손상시켰다. 이것은 “무기로써 안보를 지키는” 일방적인 현실주의 사고방식을 보여줬다. 한국에게 있어서 가장 시급한 것은 중국이 사드 배치를 받아들이도록 중국을 설득하는 것보다 상상의 공간을 펼치는 것이다. 사드를 둘러싼 논쟁이 없어진 이후를 상상하면, 안정된 국내?국제환경, 한반도와 지역 평화에 대한 진심, 진정한 의미에서의 대국관계 중재자로서의 한국, 의제 지도자로서의 한국, 국제적 영향력 등 선의의 보람과 찬양들로 가득할 것이다. 물론 그 속에 한국의 선의의 노력에 대한 중국의 더 많은 보답과 선의도 있을 것이다. 現 상해 복단대 북한한국연구센터 소장
  • Middle Power Leadership for Multilateral Cooperation
    저자
    Joe CLARK(Former Prime Minister of Canada)
    발간호
    2015-23
     Let me reflect on one lesson which Canada and Korea learned by working together. In 1990 Canada initiated the North Pacific Cooperative Security Dialogue ? a track-two process to encourage a common approach to the tensions in North East Asia. I was Canada’s Foreign Minister at the time, and recall, in particular, the leadership in that process of the late, and far-sighted, Dr. Kim Kyung Won. That modest but important initiative encouraged and allowed a frankness and discussion among parties in North-East Asia who had rarely had the chance for broad dialogue. It was an early spark which helped facilitate the Korean Peninsula Energy Development Organization, and the Six-Party Talks.  What is noteworthy is that this dialogue was the sort of initiative which only middle-powers could take, because larger powers were imbedded in, and protective of, their own security arrangements.  Much of the world’s focus today is on countries which have the capacity to be dominant powers ? specifically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and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There is absolutely no doubt that their inherent ambition and power, the interests they share, and the tensions between them, are of paramount importance. But other actors matter too, including the growing capacity of the growing number of significant “middle powers” countries here like Korea, and Canada, and Indonesia, and Australia, and Malaysia and others.  In fact, middle powers matter more than we once did, because the tensions between dominant powers can lead them to narrow their focus, and often, therefore, to limit their capacity to lead or stimulate change. Middle powers, by contrast, often have much more flexibility in opening new dialogues, reaching across existing boundaries, and encouraging the skeptical or the constrained to explore new options.  There is a long list of essential work in international relations for which middle powers are often better suited than stronger powers: * mediation in cases where stronger powers are mistrusted * moderation on issues which might be unpopular or contentious in Washington or Beijing * compromises which are often easier for smaller powers to initiate * simply being in the “middle” and not in the lead. Often, in a superpower age, leadership had to come from the top.  In this era, where several nation-states have significant power, and some non-state actors have increasing influence, there is a need for more leadership from beside. What is central is not who sits at the head of the table, but rather what the various members at that table can accomplish together.  That is unusually important in a period where the challenge is not to provide new pews for those who think alike, but to build opportunities, and alliances, where there is a chance to express, and reconcile, the significant differences which mark modern times. In significant cases, that broader process can also take account of the rising power of forces that are not nation-states ? such as non-governmental organizations, foundations like the Gates Foundation, environmentalists, and socially-responsible corporations which have acquired new prominence and influence in an era where information moves instantly and everywhere.  Being “in the middle” is familiar to both Korea and Canada.  We are “middle powers” in both our capacity, and our geography.  We each live beside a dominant power. - - - Each contemporary middle power has its specific interests and strengths. However, we also have a strong shared interest, and that is to make the multilateral system work, because that contributes to an international order based on agreement, not simply power, or force and smaller powers, and middle powers, have a greater need for rules and order.  Advancing that shared interest is never easy, but it is particularly important here and now now in a period of increasing internal and international conflict, and here, in the broad Asia-Pacific, where there has always been potential turbulence.  The pertinent question for us, right now, is: how might multilateral approaches and institutions help stabilize the Asia-Pacific region during this period of a dramatic shift in the balance of power, China’s ascent, and new challenges to American primacy? Joe CLARK(Former Prime Minister of Canad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