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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립화에 관한 질의응답
    저자
    윤태룡(건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조교수)
    발간호
    2015-39
    [편집자 註] 오스트리아 비엔나 대학교 Heinz Gaertner 교수는 JPI PeaceNet 기고를 통해서 오스트리아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중국과 러시아가 통일을 지지하기 위해서는 통일한국이 중립화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남북은 충돌과 대치를 거듭하고 있고, 특히 북한은 핵무장까지 한 가운데 중립화가 과연 우리에게 가능한 선택일까? 이러한 궁금증과 우려를 풀고자 건국대학교 윤태룡 교수를 서면 인터뷰하였다. 윤태룡 교수는 최근 남북한 동시중립화가 힘들면 남한만이라도 먼저 중립화할 것을 주장한 바 있다. 편집자: 한인택 연구위원( ihan@jpi.or.kr )     1. 중립화를 추진하다가 자칫 우리의 평화와 안보가 위태롭게 되는 것은 아닌가?   현재의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지금 당장 중립화를 추진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남북한이 무력통일이나 일방의 체제붕괴로 인한 흡수통일이 아닌 쌍방합의에 의한 평화통일을 진실로 원한다면 중립화통일이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기 때문에 성공적 중립화를 위해 요구되는 여건을 갖출 때까지 스스로를 단계적으로 변화시켜 나가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2. 중립화에 대해 미국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미국의 지지 가능성은 중립화가 추진되는 시간적, 공간적, 국내외 정치적 맥락에 따라 달라질 것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가부를 말할 수 없다. 만일 지금 당장 한국이 뜬금없이 ‘남북한 동시중립화’ 혹은 ‘남한만의 중립화’를 추진할 것이니 미국은 한반도에서 철수하라고 주장한다면 이를 누가 합리적 제안이라고 보고 지지하겠는가? 이러한 주장은 6.25전쟁에서 북한의 무력통일 시도를 좌절시키고 그 후 북한의 재침을 억지하는데 큰 역할을 해온 동맹국으로서의 미국에 대한 매우 모욕적인 정책으로 비추어질 것이다. 그런 식의 중립화라면 우선 ‘남한만의 중립화’를 주장하는 본인도 절대 반대할 것이다.   하지만 한민족 스스로 먼저 변화되어 중립화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갖게 된다면, 미국이 무조건 반대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다시 말해, 미국은 조건을 따져보고 상황을 판단해가며 찬성, 반대 여부를 결정할 것이지, 무조건 반대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미국은 6.25전쟁 휴전을 전후하여 1953년 후반기에 한반도 중립화를 추진했었다. 한국의 반대에 부딪혀 결국 철회되었지만, 7월 초에 아이젠하워 대통령, 닉슨 부통령, 덜레스 국무장관, 국방장관, CIA국장, 합참의장을 포함하는 요인들이 모여 국가안보회의(NSC)를 몇 차례 거듭하여 한반도 중립화를 공식적으로 확정지었다. 또한, 한미동맹조약 공식서명 1주일쯤 전인 9월 24~26일에 걸쳐 뉴욕타임즈에 대서특필된 보도에 따르면, UN 총회가 열리는 기회에 미국 주도의 한반도중립화 방안이 UN 주재 소련, 영국, 캐나다, 프랑스, 인도 대사들에게도 전해졌다. 이는 남북한의 분단이 주변 강대국을 연루시킨 국제적 전쟁으로까지 비화하자, 미국이 한반도 문제의 영구적 해결을 위해 새로운 대안을 심각하게 모색했음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반대로 중립화가 무산되었다는 것은 한민족 자체의 태도가 성공 여부를 좌우함을 뜻한다.   최근 본인이 한 중립화 주장은 사실상 한반도 문제의 영구적 해결을 위해 미국이 이미 과거에 공식적으로 제안했던 한반도 중립화구상을 우리가 뒤늦게나마 수용하되, 지난 70년 동안 남북한이 더욱 이질화된 것을 감안하여 ‘남한만의 중립화’로 돌파구를 마련하자고 한 것뿐이다.   물론 한민족의 생각과 행동을 먼저 변화시킨다는 것은 지난한 일이지만, 우선 생각이 바뀌어야 행동(정책)도 변할 수 있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남북한의 긴장을 완화하고 통일국가를 형성하기 위한 국가대전략(grand strategy)에 관한 ‘인식공동체(epistemic community)’의 형성을 위해 힘을 쏟고 있다. 한반도 중립화방안이 보수와 진보, 여당과 야당을 불문하고 초당적 국가전략으로서 채택되어야만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이성적, 논리적으로 정치지도자들을 설득해야 한다고 본다. 정치지도자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선동이 아니라 이성적 논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런 논의에 학자, 지식인, 전문가들께서 먼저 동참하여 찬성론이든 반대론이든,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대토론(great debate)이 일어나길 희망한다. 어떤 통일방안이든 그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3. 중립화에 앞서서 강대국으로부터 불가침 약속을 받을 것이라고 하는데, 강대국이 우리에게 그런 약속을 해 줄 유인이 있는가? 만약 불가침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강대국이 우리에게 군사적 위협을 가하거나 침공하는 경우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역사적으로 강대국이 불가침조약이나 안전보장공약을 지키지 않은 경우들이 발견되기 때문에 이는 무시할 수 없는 가능성이다.    중립화되는 국가와 중립을 보장하는 주변 강대국이 공식적으로 조약을 맺는 “중립화조약이 언제나 지켜진다는 보장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당연히 "아니다(No)"일 수밖에 없다. 국제정치에서 전쟁의 가능성(possibility)은 언제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전쟁의 개연성(probability)은 구체적인 전략적 상황에 따라서 다르다. 따라서, 본인은 당연히 코스타리카의 경우와 같은 비무장 중립화를 주장하지 않는다. ‘남한만의 중립화’든 ‘남북한 동시중립화’든 스위스나 오스트리아의 경우처럼 강력한 군사력을 유지할 것을 상정한다. 오히려, 필요에 따라서는 중립화 후에 군사력은 현재의 수준보다 더욱 강화될 수도 있다. 주변 강대국의 세력균형이 현저하게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 강력한 패권국이 등장한다면 당연히 중립화의 지위는 훼손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국내정치에서도 법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범법자는 있게 마련이라는 사실이 법이 아무런 효과도 없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 것처럼, 중립화조약이 수반하는 불가침조약, 안전보장공약 등이 훼손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 자체가 조약, 공약 등이 모두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중립화조약도 일종의 안보레짐으로서 일정하게 국가들의 행위를 규율하는 효과가 있다. 국제정치에서 자국을 지키는 최후의 수단은 군사력이고, 그 밖에 타국의 자국에 대한 안보공약, 혹은 다자간 안보레짐의 형성, 국제법 등은 보조적 수단이라고 볼 수 있다. 2가지 이상의 수단을 모두 갖는 것이 군사력 하나만 갖는 것 보다는 나은 것 아닌가?   4. 만약 남한이 먼저 중립화를 선택한다고 가정할 경우, 중립화된 남한을 어떻게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가?     우선 ‘남한만의 중립화’를 남한의 무장해제로 오해하지 말 것을 강조하고 싶다. 중립화 후에 남한이 지금보다도 더 강력한 방어적 군사력을 갖추는 것에 대해 본인은 반대하지 않는다. 미군이 철수하더라도 보장국(guarantor)으로 참여하는 미국, 중국, 러시아는 만일 북한이 남한에 대해 핵공격을 포함한 군사적 공격을 할 경우, 이러한 선제공격에 대해 보복공격을 할 조약상의 정당한 권리를 갖게 된다.   본인이 ‘남한만의 중립화’를 주장하는 것은 그 자체를 궁극적 목표로 삼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1단계에서의 그러한 중립화가 남북관계에 있어 긴장완화 효과를 유발하여 2단계의 ‘북한만의 중립화’를 유도할 가능성을 증가시킬 것이고, 더 나아가 최종 3단계의 ‘남북한 동시중립화통일’로 귀착할 가능성을 늘릴 것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로드맵: (준비단계)남북대화/긴장완화 → (1단계)남한만의 중립화 → (2단계)북한만의 중립화 → (3단계)남북한 동시중립화].   현재의 북한은 늘 남한과 미국이 북한 정권을 무너뜨리려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실제로, 김일성 사후에 남한과 미국은 그런 모습을 자주 보여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니 북한은 고양이에게 몰리는 쥐와 같은 신세에서 극단적인 핵정책을 펴온 것이다. 기존과는 달리, 남한만의 중립화로 시작하는 통일을 위한 로드맵구상은 긴장완화 효과를 가질 것으로 희망한다.   남한의 중립화는 장기적으로 북한에게 남한으로부터의 위협을 크게 낮추는 효과가 있을 것이고, 그로 인해 꽤 시간이 걸리겠지만 궁극적으로 북한의 민주화로까지 연결될 공산이 크다. 외부위협을 빙자하여 독재체제를 강화해온 북한이 핑계로 삼을 외부위협이 크게 줄어든다면, 3대 세습의 독재체제는 최소한 중국식의 집단지도체제로 변경될 것이다. 북한이 외부의 위협을 덜 느끼게 되면, 좀 더 경제발전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고 북한 주민들의 생활수준이 높아지고, 북한과 미국 혹은 일본과의 관계도 정상화되어 “불량국가”에서 “정상국가”로 변한다면 북한은 결국 민주화될 것이다. 우리는 북한에게 통일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남북한관계가 통일이 되든 말든 별 차이가 없을 정도로 될 때까지 꾸준히 기다려야 한다. 통일 이후에 정치적으로 매우 불안한 ‘나쁜 통일’이 되는 것보다는 아무리 길더라도 ‘좋은 분단’ 상태를 유지하는 게 낫다.   5. 남한이 단독으로 중립화를 시도할 수 있을 정도로 남북한 관계가 개선되면 남한의 안전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과 관련하여, 어떻게 하면 그럴 정도로 남북관계가 개선될 수 있는가? 북한의 비핵화는 어떻게 달성할 것인가?   지금처럼 북한에 대해서 양보적 조치를 먼저 취하라고만 계속 주장하기보다는 우리가 먼저 궁극적으로 북한을 집어삼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명시적으로 보여주는 효과가 있는 단계적 중립화통일론 추진 자체가 긴장완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사실, 단계적으로 “나쁜 분단 → 좋은 분단 → 좋은 통일”로 가야할 텐데, ‘남한만의 중립화’ 추진은 "좋은 분단"으로 가는 길이라는 게 제 생각이다. 현재의 “나쁜 분단” 상태를 변화시키는데 도움이 된다면 ‘남한만의 중립화’를 추진할 이유는 충분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남한만의 중립화’와 ‘남북한 관계의 개선’은 일방향적이 아니라, 쌍방향적 인과관계를 혹은 서로를 강화하는(mutually reinforcing) 관계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사실 굳이 통일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관계가 개선되었을 때 통일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일 것이다.   북한이 이미 사실상 핵국가인 상태에서 비핵화는 그 어떠한  제재에 의해서도 실현되기 힘들 것이다. 북한이 안보상의 위협을 느끼는 한 핵무기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므로 북핵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도 크게 긴장완화 효과를 갖게 될 ‘남한만의 중립화’를 먼저 추진하자는 것이 저의 핵심 주장이다. 최근에, 미국이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THAAD) 배치와 관련하여 우리를 중국과의 대결상태로 몰아가는 것에 대해 깊은 생각 없이 한미관계의 강화라는 측면에서 말려들어가는 것은 우리의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 우리는 미국과 중국이 화해, 타협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우리의 독자적 목소리를 이제는 내야한다. 물론 미국을 배신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고, 남북관계 개선을 향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할 뿐만이 아니라, 미중관계의 개선을 위해서도 노력해야 한다.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임시방편적 정책이 아니라, 좀 더 일관성 있는 우리 나름의 외교정책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 주변에서 서로 싸우는 자들이 있으면, 누구  편인지 모호하게 행동할 것이 아니라, 누구 편도 들지 않을 것임을 명시적으로 밝히고, 화해하도록 돕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다. 그러기 위해서도, 한민족(남북한) 스스로 먼저 화해하는 방향을 취해야한다. 그게 가장 기본이다. 남북한이 자신들끼리도 스스로 화해하지 못하면서, 남더러 화해하라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그래서, 제가 제일 먼저 강조한 것이 준비단계로서 남북한의 대화 시작과 화해이다. 그게 모든 논의의 시초이고, 그게 안 되면 모든 게 공염불이라는 걸 인식해야 한다. 동시에, 남한이 북한의 붕괴나 흡수통일을 추진하지 않음을 명백히 보여줄 수 있는 평화통일의 확실한 비전을 제시하고 꾸준히 실천해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자체가 남북한 대화시작과 화해의 물꼬를 트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본인은 한국 정부가 인권 문제와 관련하여 북한을 국제사회에서 공공연히 몰아붙이고 유엔인권사무소를 한국에 유치한 것이 한민족의 장기적 이익에 배치하는 정책이라고 본다. 덧붙여, 그동안 너무 미국에 의존하는 것이 일상화되다 보니 (심지어 주권의 핵심중의 핵심인 전시작전통제권까지 내어줄 정도가 되다 보니) 미국이 한국의 주권을 대놓고 무시하는 (탄저균의 불법적 한국반입과 같은) 현상이 종종 발생하는 것이다. 미중 간의 경쟁구도가 그 누구에게도 이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양국이 다 잘 알고 있다고 본다. 문제는 양국이 전형적인 안보딜레마(security dilemma)에 빠져서 벗어나지 못하고 군비경쟁에 몰입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악순환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사드논쟁에서 볼 수 있듯이 미국 내 군산복합체의 막강한 세력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한국이 거기에 휩쓸리는 것은 우리를 위해서도, 동북아의 평화를 위해서도, 그 누구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한국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미중 간의 군사적 대결구도에 대해서 만큼은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고, 중재 역할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현재 핵무기를 제외한 한국의 화력(firepower)은 세계7위에 달한다. 경제력도 G20에 들어갈 만큼 커졌다. 이제 한국은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약소국이 아니다. 중견국으로서 좀 더 적극적으로 동북아의 평화체제가 정착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외교정책을 구사할 때가 되었다. 한국은 미국의 눈치를 보며 질질 끌려다니는 패턴에서 벗어나야 한다. 무엇보다도 한국은 한반도의 중립화가 미국의 이익에도 부합한다는 것을 설득해야한다. 우선 학계에서 이런 방향의 논의가 있어야 한다.   6. 마지막으로 추가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하나 지적하고 싶은 것은, 중립화에 대한 소극적, 부정적, 수동적 이미지에 관한 것이다. 그동안 중립화는 대개 지정학적으로 강대국들의 세력 다툼의 중심에 놓여있는 약소국에 대해서 강대국들이 일종의 완충지대 설정의 필요성을 인정하여 일방적으로 강제하는 성격이 짙었다. 하지만, 좀 더 상상력을 발휘하여 과거의 경험을 뛰어넘는 역발상의 가능성을 타진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한국과 같은 중견국은 최근 미중 간의 갈등 사이에서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명칭의 애매모호하고 양쪽으로부터 오해받기 쉬운 정책 보다는 보다 적극적, 긍정적, 능동적 정책으로서의 ‘남한만의 중립화’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사실 국제정치에서 중립화(neutralization)란 국제법적으로 영세중립(permanent neutrality)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그 중립국의 국민들 다수가 원한다면 국민투표나 국회의 의결 등을 통해서 그 지위를 해소하고 일반국가로 돌아갈 수도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강을 건넌 후에는 배를 버릴 수도 있고, 금방 또 다른 강을 만날 것으로 판단한다면 그 배를 들어 운반하며 상비수단으로 늘 갖고 다닐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 우리에게 있어서 중립화라는 수단은 한반도가 또 다시 강대국들의 세력다툼에 의해 원치 않는 전쟁터가 되는 것을 막고, 분단을 극복하려는 민족적 염원을 달성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될 때 사용될 수 있는 수단인 것이지 중립화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다. 본인은 중립화가 매우 세련된 방식으로 잘 이용되면 그런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물론 주도면밀한 계획이 없이 오용하면 역효과가 날 수도 있지만, 구더기 무서워서 장조차 담그지 못해서야 되겠느냐는 입장이다. 구더기가 생기지 않도록 잘 관리하며 장을 담가야할 것 아닌가!   제한된 지면에서 상세히 논할 수 없었으므로, 관심 있으신 분들은 다음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Tae-Ryong Yoon, "Neutralize or Die: Reshuffling South Korea's Grand Strategy Cards and the Neutralization of South Korea Alone," Pacific Focus, Vol.30, No.2 (August 2015) 윤태룡, “국내외 한반도중립화 논쟁의 비교분석: 찬반논쟁을 넘어서,” , 14권 3호(2013). 現 건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조교수. 고려대 영어영문학과(학사)/정치외교학과 대학원(석사)을 졸업하고, 美컬럼비아대 정치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 제주평화연구원 연구위원,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HK연구교수를 역임함. 주요 연구분야는 동맹이론, 한미일 관계, 동아시아 국제관계, 영토분쟁 등이며, 최근 연구로는 “Balance-of-Fear Theory and Korea-Japan-U.S. Relations, 1945-1953", "국내외 한반도 중립화논쟁의 비교분석”등이 있음.
  • 유럽 난민 위기, 어떻게 다룰 것인가?
    저자
    도종윤(제주평화연구원 지역통합연구부장)
    발간호
    2015-41
    난민(refugee) 유입으로 유럽이 곤경에 빠져 있다(유럽 언론들은 ‘난민’이라는 표현 대신 [불법]이민자(migrants)라는 표현을 주로 쓰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그리스 위기에 이어 난민처리 문제가 올 하반기 유럽의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2015년 들어 지난 9개월 동안 시리아, 리비아, 에리트레아 등에서 유럽에 유입된 난민의 숫자는 대략 50만 명에 이른다. 독일은 2016년 기준 난민 관련 예산으로 60억 유로를 긴급 편성하였고 다른 회원국들도 잇달아 난민 수용안을 제출하고 있다. 그러나 집행위원회와 회원국 간, 각 회원국 간, 그리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각종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만족할 만한 해법은 아직 제시되지 않고 있다.   난민 방지를 위한 구조적 처방   유럽이 난민을 다루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구조적 관점으로, 난민 방지를 위해 원천적으로 주변국의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번영을 지원하는 것이다. 유럽연합은 2003년 유럽근린정책(ENP)를 내놓으면서 유럽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국가들-일명 ‘친구들의 고리(Ring of Friends)’-의 번영과 안정이 유럽의 안정을 위한 중요 조건이라고 보았다. 난민은 전쟁과 압제로부터 탈출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 때문에 발생한다. 유럽에 국경을 접하고 있는 동부·남부 지역 국가들의 안정과 번영은 무역을 촉진하고 외교적 우호관계를 지속시켜 줄 뿐 아니라 불법 난민의 유입을 방지해준다. 따라서 유럽연합은 시리아를 비롯하여 리비아, 팔레스타인, 우크라이나, 이집트, 아르메니아 등 16개 취약 국가의 분쟁예방과 위기관리를 위해 공동행동계획을 수립하여 이들에게 민주주의, 법치, 건전한 통치 체제, 시장경제 옹호 등이 뿌리내리도록 꾸준히 원조하고 있다. 유럽집행위원회가 2014년 내놓은 실행보고서에 따르면, 2007-2013년 동안 유럽연합이 이 같은 근린정책에 쏟아 부은 금액은 130억 유로(한화로 약 2조 원)에 달한다.   난민 유입 관리 처방   다른 하나는 문제해결적 관점에서 난민 유입 과정과 유입 이후 그들을 관리하는 것이다. 집행위원회는 2014년 초, 불법이민과 난민을 관리하기 위한 다섯 가지 정책을 추진하기로 한 바 있다. 이는 기존의 더블린 규약(난민을 최초 입국 지점으로 되돌리는 정책) 이상으로 보다 적극적인 관리 정책을 취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다섯 정책 중 첫째는, ‘유럽 공동의 난민 시스템’의 구축이다. 이는 난민 신청자가 어느 한 국가에 몰리는 것을 방지하겠다는 것이다. 난민 사유가 같더라도 국가별로 신청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입국의 조건을 일관되게 처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골자다. 둘째, ‘유럽난민사무국’의 확대 개편이다. 이는 난민들의 지속적인 삶을 위해 보다 체계적인 훈련과 지원을 수행하는 일이다. 셋째, 불법이민자 발생국가와의 긴밀한 협력이다 이는 근린정책과 접점을 이루는 부분으로, 상시적으로 불법이민자가 발생하는 북아프리카 국가들- 예컨대, 이집트, 요르단, 모로코, 튀니지-에게 유럽부흥개발은행(EBRD)의 자금을 투입하여 그들의 안정적인 경제 성장을 도모한다는 것이다. 넷째, 합법적인 이민을 수용하기 위한 정치적 결단이다. 2060년을 기준으로 유럽의 경제 활동 인구는 현재보다 10%이상, 숫자로는 5천만 명 이상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반면 은퇴한 인구의 비율은 현재 17.1%에서 30%로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때문에 재능 있고 숙련된 기술을 가진 외국인은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이러한 필요성이 있기에, 국내 문제로 이민자들을 거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마지막은 유럽 대륙의 국경통제를 강화하는 정책이다. 난민 사태를 확대시키는 것은 불법 이민브로커들이 활개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들을 일소하기 위해서는 국경통제통제청(FRONTEX)의 역할이 보다 강화되어야 한다는 견해가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또 하나의 목소리: "언젠가는 당신이 난민이 될 수도 있다!"   최근 들어 유럽 지도자들로부터 들려오는 또 하나의 목소리는 인도주의적 처방이다. 이는 구조적 처방 및 문제해결적 처방과 같은 제도적 처방이 가진 한계를 유럽인 내부의 가치적 측면에서 찾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이 본격화된 것은 터키 해안에서 발견된 시리아 출신 어린 난민 아일란 쿠르디(Aylan Kurdi)의 죽음-최근 그의 아버지가 불법 이민 중개업자라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이 사진의 의미는 많이 퇴색되었다-이 전 세계 언론을 통해서 알려지고부터이다. 장-클로드 융커 집행위원장은 9월 9일 유럽의회에서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종교적, 정치적 박해로 인해 (유럽인들도) 한 번 정도는 난민이 되었던 적이 있었다”라고 언급하면서, 난민을 대하는 유럽인들의 태도를 스스로 돌아볼 것을 촉구하였다. 실제로 유럽인들이 난민이 되어 지구 이곳저곳을 떠돌아 다녔던 역사는 매우 깊다. 프랑스의 위그노(huguenot)은 17세기 말 루이 14세 치하에서 낭트칙령이 폐기되면서 범죄자로 내몰렸다. 약 30만 명으로 추정되던 신교도들이 네덜란드, 미국, 스위스 등으로 떠돌이 생활을 해야만 했다. 20세기 초 나치의 등장으로 소위 ‘집시’라고 불리는 로마니(Romani people)- 신타이(Sinti), 마누쉬(Manush), 카일(Kale) 등-가 학살당하거나 유럽 대륙을 전전했다. 이들은 유대인과 달리 전쟁 이후에도 인정받지 못하였다. 스페인 내전(1936-39)에서 프랑코 반란군에 패한 뒤 프랑스로 망명한 공화파 난민의 숫자는 50만 명에 달했다.   이처럼 지난 200여년 간 지구 어느 곳보다 더 많은 전쟁과 내전을 치렀던 유럽 대륙은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난민이 되어 떠돌아 다녔던 경험이 있다. 그리고 그들은 때때로 비범한 업적을 남기기도 한다. 1956년 헝가리 혁명이 실패한 후 오스트리아로 탈출한 수많은 헝가리인 중에는 임레 라카토스(Imre Lakatos)도 있었다. 훗날 ‘과학적 연구 프로그램 방법론’으로 포퍼와 쿤을 합리적으로 종합한 그는 영국에 정착한 이후에도 평생 무국적자로 남았다. 사후 그의 영국인 동료와 제자들은 ‘라카토스 상’을 제정하여 그의 과학철학 업적을 기리고 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저술한 밀란 쿤데라(Milan Kundera)는 1968년 프라하의 봄 이후 서유럽으로 탈출한 체코슬로바키아인들 중 한 사람이었다. 1975년 프랑스에 정착한 이후 그는 자신의 모든 작품을 프랑스어로 출간하여 프랑스 문단의 중요한 거장이 되었다. 이민자가 아닌 난민   프랑스 언론인 장 카트르메르는 자신의 칼럼에서 유럽의 언론매체는 현재의 사태를 ‘이민자(migrants)’에 관한 문제가 아닌 ‘난민(refugies)’에 관한 문제로 바꿔 표현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아일란 같은 어린이의 죽음을 단지 엘도라도(eldorado)를 찾아 떠난 불법이민자와 같은 것으로 묘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민자’라는 말뜻 속에는 고향을 떠나 숨을 곳을 찾아 변방을 떠도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숨어있는 반면, ‘난민’은 마지못해 고향을 떠나야 했던 존중받지 못한 인간의 존엄성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프랑스인들의 56%는 ‘이민자’를 받아들이는데 반대하지만 독일인들의 66%는 ‘난민’을 받아들이는데 긍정적이라고 한다. 그런 면에서 융커 집행위원장이 언급한, “행복한 조국을 떠나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다”는 주장은 새겨들을 만하다. 조국에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이들은 결코 난민이 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삶의 가치를 존중하는 유럽이 ‘난민’들을 따뜻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現 제주평화연구원 연구위원. 브뤼셀 자유대학교에서 정치사회학 박사 학위취득. 주요 논문으로 "국제정치학에서 주체물음(2013)", "유럽연합의 개발협력전략(2013)" 등이 있음.
  • 일본의 방위산업은 부활하는가?: 무기수출금지 기조의 수정과 일본 평화주의의 미래
    저자
    조비연(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박사과정)
    발간호
    2015-42
    [편집자 註] '차세대의 목소리'는 젊은 세대들의 신선한 시각을 통해 평화와 안보문제를 살펴보고, 갈등해소와 평화정착을 위한 새로운 방안을 논의하는 JPI PeaceNet의 기획 시리즈입니다.   2014년 4월 1일, 일본 아베정부는 ‘방위장비이전 3원칙’을 제정하였다. 이번 ‘새로운 3원칙’은 간략히 말해 1967년 사토 내각 당시 전후 평화주의의 표상으로 일본의 무기수출을 억제하기 위해 제정된 ‘무기수출 3원칙’을 수정한 것이다. 이는 ‘무기수출 3원칙’ 제정 이후 처음으로 2011년 노다 내각에서 일본의 무기수출금지 기조에 예외적 조치를 취한 ‘방위장비이전을 위한 가이드라인’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다.   국내에서는 ‘방위장비이전 3원칙’을 두고 일본 군수산업의 ‘부활’, ‘빗장’풀린 일본의 무기수출(서정환 2014), 방위산업에 ‘날개’(YTN 2014), ‘신호탄’(조기원 2014), 무엇보다 일본의 재무장 또는 군사대국화를 향한 ‘음모’라고 표현하고 있으며, 국외에서도 유사하게 일본의 ‘평화주의를 역행하는 것’(Japan Press Weekly 2013 Fackler 2014 Kallender-Umezu 2014), ‘위험한 징조’(Global Times 2014)라고 비판하고 있다. 무엇보다 현재 국제적 우려를 사고 있는 아베정부의 역사수정주의와 집단자위권 행사를 위한 안보법안 처리 등과 맞물리면서, 일본의 방위산업 활성화에 대한 주변국들의 우려는 타당해 보인다. 또한 이러한 2010년대 일본의 무기수출정책의 변화과정은 좁은 내수시장과 정부의 들쑥날쑥한 재정 지원을 바탕으로 방산활동을 유지해오던 일본 기업들의 수출규제 완화 요청이 현실화된 것으로 해석되기도 하면서, 2014년의 ‘새로운 3원칙’을 기점으로 이들의 국제무기시장 진출은 당연시되고 있다.     ‘새로운 3원칙’에 대한 전망이 실제 일본의 방산업계의 모습과 일치하는가?   기존의 국내외 연구들과 언론보도들은 일본의 방산기업들의 실제 변화 추이보다는 이번 정책 변화에 대한 국내외적 배경과 함의 분석에 국한되고, 정책 변화의 당사자인 방산기업들의 행태 변화를 체계적으로 분석하지 못하고 있다. ‘기업 중심적’ 시각을 통해 알 수 있는 이번 정책 변화의 함의는 무엇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일본의 방산기업들에게 무기수출에 대한 ‘빗장’이 열리고, 이러한 ‘신호탄’에 따라 방산기업들이 국제시장에 진출할 것이라는 획일적인 평가와 다르게, 이들은 매우 다양한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일본의 주요 방산기업들을 면밀히 살펴보면, ‘새로운 3원칙’과는 별개로 여전히 ‘이익 창출’이라는 기업적 마인드, ‘합리성(rationality)’을 중심으로 세계무기시장 진출에 대해 ‘위험 기피적’이고, 이를 ‘주저’하고 있으며, 오히려 무기수출을 위한 조직개편이나 R&D투자집중, 기술특화보다는 무기기술의 상업화 방안에 집중하는 양상도 나타난다. 특히 아베정부의 무기기술개발에 대한 재정 지원의 불투명성이라는 국내적 요인과 국제무기시장의 높은 진입장벽이라는 국외적 위험요인을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따라 일본 방산기업들의 전략은 다각화되어 나타난다(Jo 2015).   지면의 제약으로 모든 연구 결과를 상세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일례로 일본의 최대 방산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의 경우, 정부의 재정 지원 요인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2011년 노다내각의 ‘방위장비이전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기점으로 미쓰비시중공업의 2010-2012년 연례보고서들을 보면, 군수생산 활성화에 대한 높은 기대감이 나타난다. 2012년 연례보고서의 경우 이전까지 여러 산업분야에 분산되어 있었던 군수품들을 ‘방위와 항공우주 산업’이라는 독립된 항목으로 재편한 것을 보여주는 것과 동시에, ‘앞으로 예상되는 일본의 무기수출금지 규제의 완화에 대비할 것’이란 기대 섞인 어조를 드러낸다. 그러나 2013-2014년 일본 정부가 구체적인 전방위적인 재정 지원보다는 특정 기업들을 선정하여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전략을 선호하고, 기업들에게는 스스로 ‘군수품의 민수적 활용’을 여전히 요구한다는 점에서(일본방위백서 2013, 2014), 2014년 미쓰비시중공업의 연례보고서는 이례적으로 이러한 일본 정부의 애매모호한 입장에 대하여 ‘느릿느릿 또는 부진’하다는 비판적인 표현을 명시하고 있다. 또한 2010년대 초반의 기대감과 달리 2014년 연례보고서는 국제무기시장에서의 낮은 비교우위를 강조하며 적극적인 진출방안을 내놓고 있지 않다.   보다 구체적인 사례로 일본이 항공자위대에 도입할 차세대 전투기 F-35를 들 수 있다. 미쓰비시중공업은 미쓰비시전기, IHI와 공동으로 2013년부터 국제공동 생산체제에 참여하겠다고 밝혔지만, 보조금에 대한 의견 불일치로 난항을 겪고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일본 정부가 미쓰비시중공업에게 약 640억 엔의 보조금을 제안했으나, 공동개발에 대한 경험부족에 따른 부담으로 미쓰비시중공업이 재차 약 100억엔의 추가 보조금을 요청했고, 이를 일본 정부가 거절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쓰비시중공업이 BAE에 2015년까지 생산·이전하기로 한 F-35의 기체생산은 지연되고 있다. 미쓰비시중공업 회장 히데아키 오미야는 2014년 10월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우선 정부가 먼저 원하는 바를 구체적으로 결정해야 하며, 미쓰비시중공업이 먼저 자발적으로 군수산업을 육성하거나 적극적으로 해외시장 진출에 나서지는 않을 것이라 밝혔다(International Business Times 2014). 미쓰비시중공업이 카와사키중공업과 합작·생산하기로 한 소류급(Soryu-class) 잠수함도 유사한 사례이다. 현재 호주, 태국, 인도, 필리핀 등 여러 국가들이 일본의 소류급 잠수함 도입에 적극적인 관심을 표명한 가운데, 카와사키중공업의 관계자는 이런 국제사업의 위험요인을 강조한다. 특히 이러한 대형장비의 수출에 따른 해외 관련 위험부담이 크다고 지적한다. 일본의 기존 잠수함들이 주로 20년까지의 생명주기로 운영되어 온 것과 달리 해외의 경우, 보다 긴 운항수명을 요구하는데 이러한 과정에 필요한 부품 수리 및 교체에 소요되는 국제적 활동에 대한 우려가 현저히 크다(East Asia Forum 2015). 궁극적으로 R&D에 대한 정부의 재정 지원, 보조금 여부와 국제시장에서의 성공여부에 대한 판단이 이 두 일본 방산기업들에게 국제시장 진출에 대한 적극성보다는 조건부적이고, 상당히 주저하며 신중한 태도를 견지하게 하고 있다. 육해상로에서 이착륙이 가능한 US-2 Amphibian Aircraft의 제조업체 ShinMaywa는 인도 등 여러 국가들에게 주목받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군수산업으로의 대대적인 전향보다는 오히려 기존 군수품의 민수상업화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유의미한 사례이다. 특히 ShinMaywa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재해현장에서 구조활동에 적극 활용된 US-2 Amphibian Aircraft에 대한 군민양용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주력하고 있다. 차세대 전투기 F-35 공동생산의 주요 참여기업인 IHI는 미쓰비시중공업과 유사하게 2010년도 초반에 뛰어난 항공엔진 기술을 바탕으로 군수시장에 주력하기 위해 ‘항공 엔진, 우주, 방위산업’이란 독립된 산업분야를 마련했다(IHI 2013, 4). 하지만 이후 2014년 연례보고서가 기술하듯 국제무기시장에서의 매출을 확보하는 것을 ‘가장 큰 도전적 과제 중 하나’로 보고 있으며, 초기의 기대감에 비해 훨씬 머뭇거리는 모습이 나타난다(IHI 2014, 4). 역시 IHI에게도 국제무기시장이라는 환경요인이 군수산업분야를 확대하는 데 주요 결정요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평화를 위한 현실 검토   이 글은 일본 방산기업들의 변화 추이를 면밀히 살펴보고 일본 방위산업의 부활, 재무장의 일로라는 전망을 구체적으로 검토해보고자 했다. 위의 결과들이 보여주듯, 일본 방산기업들의 변화 추이는 기존의 매체나 전문가들이 전망하고 있는 변화의 폭보다는 좁고, 그 변화의 속도 또한 덜 급진적이란 것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내수시장에만 의존해오던 일본의 방산기업들의 주요 매출은 방산이 아닌 민수품 생산에서 발생하여 민수중심 구조를 갖고 있다는 점을 다시 상기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일본의 최대 무기제조사인 미쓰비시중공업 조차도 그 비중이 총 매출의 9.4%에 불과하다).   물론 전전 일본 군수산업의 역사와, 현재 아베정부의 역사수정주의 및 안보법안 처리라는 맥락에서, 이번 '새로운 3원칙'의 제정이 주변국들의 우려를 증폭시키고 동북아시아의 군비경쟁을 촉진시킬 수밖에 없다는 점은 명확하다. 이 글은 이러한 전망에 대해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과는 별개로 현재 일본 방산기업들의 행태분석을 통해 일본 내부에는 이러한 주변국들의 우려에 대한 경각심을 제고하도록 하는 한편, 주변국들에게는 일본의 군사대국화에 대한 객관적인 진단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궁극적으로 일본의 우경화 행보에 대한 경로 수정과 협력의 여지를 모색하고자 하였다. * 이 글에서 언급된 연구나 기사에 대한 자세한 서지정보는  2015년 5월 발간된 필자의 논문에 포함되어 있다. Jo, Bee Yun(2015). Japan Inc.’s remilitarization? A firm-centric analysis on Mitsubishi Heavy Industries and Japan’s defense industry in the new-TPAE regime. International Relations of the Asia-Pacific. (doi:10.1093/irap/lcv011).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박사과정
  • Memory Wars in East Asia: Pluralistic Memories in Japan
    저자
    Kenneth J. RUOFF(Portland State University)
    발간호
    2015-43
      It is silly to think that the 127,341,000 citizens of Japan maintain the same memory of the past. There is a tremendous plurality of memories about the dark chapters of modern Japan’s history, ranging from outright contrition (which is far more common than most people outside Japan seem to understand) to far rightist claims that Japan never did anything wrong. This plurality is reflected in how museums in Japan portray the past. Curiously, Japan has no national museum, in other words a museum funded by the central government, devoted to telling the full sweep of Japan’s modern history. This is significant, and it is probably fair to say that the lack of such a national museum results from intense domestic contention about how that modern history should be told. The lack of such a museum also hints at the fact that the government of Japan, since 1945, arguably failed to reconcile with much of its own citizenry about the Asia-Pacific War, not to mention failed to reconcile with its neighbors about the imperial era.   The lack of a national museum about modern history in the Tokyo area (or anywhere else in Japan) lends undue significance to the far rightist Y?sh?kan Museum that is part of the privately operated Yasukuni Shrine. But there are many additional museums throughout Japan that present competing contrite versions of the past, and it is important to contextualize Y?sh?kan within a broader “museum landscape.”   Let me introduce here two museums whose exhibits symbolize the pluralistic ways that Japanese remember the past. First, the Hiroshima Peace Memorial Museum established and operated by the City of Hiroshima presents what could be termed the pacifistic viewpoint. Although the pacifistic line can at times be faulted for its unwillingness to assign clear responsibility for which country perpetrated the Asia Pacific War that caused so much suffering, it draws a vehemently anti-war stance from the lessons of the past, and in that sense tends to be very anti-Imperial Japan.   Second, the Ritsumeikan Kyoto Museum for Peace unambiguously presents the “Japan was Wrong” narrative of the past. The exhibit holds that the actions of Imperial Japan, including those towards its neighbors, were wrong, and that Japan bears a special responsibility for the errors of its past. Here is a description of the Kyoto Museum for Peace written by one of its staff members:   “In 1992, the Kyoto Museum for Peace opened as the first peace museum run by a university. It was established as a facility to realize the university’s educational principles. A permanent exhibition was developed to reflect both the common academic understanding and Ritsumeikan’s own perspective on Japanese history. Like other peace museums in Japan, it documents the horrors of war to induce the sentiment ‘never again.’ But the museum focuses not only on the perspective of the victim, but also on the perpetrator’s side of Japanese history. One display includes images that are often targeted by historical revisionists, such as those of sex slaves (often from occupied areas) of Japanese soldiers and bodies of Nanjing Massacre victims. The museum believes that only through exploring all facets of history, can one learn the lessons for peace. The university’s own past as a collaborator [in the militaristic era] is also on display.”?1?   In fact, there are museums in Japan that provide an even harsher verdict on modern Japan’s history. For example, I think that the Osaka Human Rights Museum provides one of the most biting anti-government interpretations of history that I have ever come across anywhere.   Although that at the moment that I write in 2015, Prime Minister Abe’s backsliding on the issue of Japan’s responsibility for the imperial era seems to be overshadowing the plurality of memories in Japan, I would still urge people to be very careful when making observations about how the Japanese (as in 127 million of them) remember the past. Please be wary of accepting uncritically inflammatory claims that Japanese collectively do not remember the bad things that Imperial Japan did.   Japan’s far right is very loud and their views tend to be given far greater weight, especially outside of Japan, than they deserve. My personal working thesis is that among the Japanese people, the “Japan was wrong” interpretation is more prevalent than the far right one. But the most common view of the past of all among the Japanese people is a tremendously strong pacificistic line that holds that “War is bad and must be avoided at all costs in the future.”   Some versions of this pacifistic line unquestionably focus more on Japanese suffering as the result of the war than on the suffering that Imperial Japan dished out to its neighbors. Nonetheless, the pacifistic line is also highly critical of Imperial Japan. In fact, Imperial Japan is typically held up precisely as the model of what must be avoided in the future. In that sense, the Japanese do reject Imperial Japan. Reference Kanekiyo, Junko. 2011. “Japanese Peace Museums and the Challenges and Perspectives of the Kyoto Museum for World Peace” in Gabriel Bix, (ed.). Museums of Ideas: Commitment and Conflict. Edinburgh: MuseumsEtc. Kenneth J. RUOFF is professor of the modern history of Japan and East Asia and director of the Center for Japanese Studies at Portland State University.
  • Nuclear Safety and Russia-South Korea Partnership
    저자
    Intaek HAN(Research Fellow, JPI)
    발간호
    2015-32
    I. South Korea’s Middle Power Activism and Nuclear Cooperation South Korea considers itself a middle power and sees promotion of peace and stability in Northeast Asia as one of its roles. Its middle power activism is pronounced in its pursuit of the Northeast Asia Peace and Cooperation Initiative. In particular, it has demonstrated strong interest in promoting nuclear cooperation in the region. There are three broad areas of cooperation concerning nuclear issues. First is nuclear safety, which is about safe operation of nuclear power plants. Secondly, there are nuclear safeguards. Aimed at non-proliferation, these are the measures to ensure that nuclear materials are used only for peaceful purposes. Recently, nuclear security has gained significance, as evidenced by the successive Nuclear Security Summits. Nuclear security is about the physical protection of nuclear material and installations against intentional malicious acts such terrorism. South Korea has been committed to the promotion of cooperation in each and every one of these areas. It was the host of the Nuclear Security Summit in 2012, for instance. Also, it has been a strong advocate and exemplary model of nuclear non-proliferation despite or because of North Korea’s nuclear programs. Currently, however, nuclear safety seems to be the main focus of South Korea’s efforts to promote nuclear cooperation. Its focus on nuclear safety makes sense on several grounds. First is accidental but is no less important - the Fukushima Daiichi nuclear disaster. A disaster rated as the highest on the International Nuclear and Radiological Event Scale (INES), it occurred after a series of tsunamis struck the Japanese nuclear energy facility following earthquakes, disabling systems needed to cool the nuclear fuel. The gravity of the disaster is equaled only by the Chernobyl accident, the only other INES rating 7 disaster in history. As a country geographically and historically close to Japan, South Korea naturally has a strong interest in developments in Japan, as accidents like Fukushima can affect South Korea in various ways. 2. Growing Threats to Nuclear Safety in Northeast Asia While the Fukushima nuclear disaster has certainly made nuclear safety the highest policy priority in countries in and out of Northeast Asia, it is only one of the factors that have made nuclear safety a most impending issue. Earthquakes and in particular tsunamis are not only infrequent but also uncommon in many parts of Northeast Asia. As such, a Fukushima-like nuclear disaster is a rare event by many standards.  If Fukushima has raised the importance of nuclear safety, its effect is likely to be one-time and short-lasting.   Nuclear Power Plants in Northeast Asia (as of 2014) Source: http://nautilus.org/napsnet/napsnet-special-reports/securing-nuclear-safety-in-northeast-asia-rok-proposal-on-northeast-asia-nuclear-safety-mechanism/attachment/fig-1-2/ Even before Fukushima, there were structural changes that made nuclear safety increasingly important. According to one account, eighty-eight nuclear power plants were in operation in China, Japan, and South Korea before Fukushima. Not only that, these three Northeast Asian countries were building thirty-seven new nuclear power plants and were planning to add two hundred four nuclear power plants in the coming years! If everything goes as planned, there will be over three hundred nuclear power plants in Northeast Asia, making the region number one in terms of operating nuclear power plants. While few like nuclear power plants - and fewer like them in their neighborhoods - nuclear power plants are, and will be, a fact of life in Northeast Asia. Deprived of other cost-effective means to produce electricity to support huge populations and operate industrial facilities, these countries have no other viable option than nuclear power plants. As Northeast Asia becomes the engine of growth for the world economy, its dependence on nuclear power generation is accordingly deepening, and with it increases the risk of nuclear accidents. The rising risk of nuclear accidents in the region is a challenge that one cannot deny. It is a challenge that has to be dealt with. Spread of Radioactive Material from Fukushima (Predicted by the Japanese Meteorological Agency) Source: http://media.daum.net/foreign/others/cluster_list.html?newsid=20110406183308247&clusterid=317079&clusternewsid=20110410162120879&p=mbnSpread of Radioactive Material from Haiyang Nuclear Power Plant Accident (Simulation)  Source: 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1/0322/IE001288792_STD.jpg   3. Comparing Responses to Fukushima and Chernobyl Countries can respond to the rising risk of nuclear accidents individually or collectively. South Korea’s call for increased nuclear safety cooperation between Northeast Asian countries is based on the belief that cooperative approach towards dealing with nuclear risk is desirable, or not harmful at the least. While we can discuss how desirable this cooperative approach is, what is clear from the Fukushima disaster is that countries in Northeast Asia have hardly embraced cooperative approach. There was not much cooperation between China, Japan, and South Korea in dealing with the nuclear disaster both during the accident and afterwards. By one account, Japan did not share information with its neighboring countries in time to say the least. It sometimes gave false information only to correct it later. Pointing this out is not to simply blame the Japanese government for lack of cooperation, for Japan’s neighbors showed similarly limited interest in nuclear cooperation. South Korea, for instance, is said to have sent only one person to Japan to monitor developments in Japan! Despite the paucity of cooperation, Japan responded to the crisis better than the Soviet had during the Chernobyl accident. The following excerpts from a Fact Sheet comparing Fukushima and Chernobyl produced by the Nuclear Energy Institute demonstrate this point. - The Japanese government moved rapidly to implement protective measures, evacuating people and halting food shipments from the area. The government also distributed potassium iodide to residents near the facility to prevent their thyroid glands from absorbing radiation. These actions limited any adverse health effects from the accident. - Authorities in the former Soviet were slow to take action to protect the supply of food and milk, which led to a spike in thyroid cancers among children and adolescents from consuming contaminated foodstuffs. - No deaths from radiation exposure have been attributed to the accident in Japan. Separate studies published in 2013 by the United Nations (UN) and the World Health Organization concluded that health risks from radiation released during the Fukushima accident are minimal, even for those “most affected,” and there are essentially no health effects outside Japan. - At Chernobyl, 28 highly exposed workers died within four months of the accident. Experts say there is “some evidence” of an increased risk of leukemia and cataracts among workers who received higher doses when engaged in recovery efforts. Long-term health monitoring of these workers is ongoing. As of 2005, about 15 children had died from thyroid cancer. Improved monitoring has been implemented to help ensure that thyroid cancer is detected early, when it is highly treatable. However, countermeasures taken over the next few years after the accident kept radiation doses relatively low. The resulting doses “should not lead to substantial health effects in the general population,” according to a 2011 report from the United Nations. Source: http://www.nei.org/Master-Document-Folder/Backgrounders/Fact-Sheets/Japan- Comparing-Chernobyl-and-Fukushima While Japan did a better job than the Soviet as an individual country, Northeast Asia as a region did not do as well as Europe as a region or Russia and Europe as partners in terms of working together to deal with nuclear risks. The following developments after the Chernobyl accident show then that the Soviet and Europe worked together to promote nuclear safety. (1) Convention on Early Notification of a Nuclear Accident This convention is a 1986 International Atomic Energy Agency (IAEA) treaty whereby states have agreed to provide notification of any nuclear accident that occurs within their jurisdiction that could affect other states. It was adopted in direct response to the Chernobyl disaster. By agreeing to the Convention, a state agrees that when any nuclear or radiation accident occurs within its territory that has the potential of affecting another state, it will promptly notify the IAEA and the other states that could be affected. The information to be reported includes the incident’s time, location, and the suspected amount of radioactivity release. The Convention was concluded and signed at a special session of the IAEA general conference on 26 September 1986. It was signed by 69 states, including the Soviet Union, and the Convention entered into force on 27 October 1986 after the third ratification. As of 2013, there are 116 state parties to the Convention. (2) Convention on Assistance in the Case of a Nuclear Accident or Radiological Emergency This is a 1986 treaty of the International Atomic Energy Agency (IAEA) whereby states have agreed to provide notification to the IAEA of any assistance that they can provide in the case of a nuclear accident that occurs in another state that has ratified the treaty. Along with the Convention on Early Notification of a Nuclear Accident, it was adopted in direct response to the April 1986 Chernobyl disaster. The Convention was concluded and signed at a special session of the IAEA general conference on 26 September 1986. It was signed by 68 states, including the Soviet Union, and the Convention entered into force on 26 February 1987 after the third ratification. As of 2013, there are 111 state parties to the Convention. (3) Association of Regulators of Western Europe (WENRA) Though not as a direct response to the Chernobyl disaster, nuclear countries in Western Europe created an association of nuclear agencies or regulatory agencies in 1999. The Association of Regulators of Western Europe (WENRA) is a regional network of chief regulators of EU countries with nuclear power plants to improve nuclear safety. Specifically, it aims to: - develop a European approach to nuclear safety - provide an independent capability to examine nuclear safety in applicant countries - serve as a network of chief nuclear safety regulators in Europe and - be a place for exchanging experiences and discussing significant safety issues for regulators. Source: https://en.wikipedia.org/wiki/Western_European_Nuclear_Regulators'_Association   WENRA consists of the representatives of authorities or nuclear regulators from 10 countries (in 1999 at the time of creation) as of 2003, WENRA has 17 state members. 4. The Case for Russia-South Korea Partnership for Nuclear Safety Note that little comparable cooperative development in Northeast Asia followed after the Fukushima nuclear disaster. While Northeast Asia does have a framework for cooperation among regulators similar to WENRA since 2008, the framework, Top Regulators’ Meeting or TRM, has been largely a talk shop, not a robust platform for regional cooperation. South Korea’s recent efforts to expand and empower TRM are noteworthy and commendable in this regard but they are far from sufficient.  There is a limit to what a middle power can do. And the limit is even more constraining if it has to persuade major powers to share sensitive information and reveal weaknesses. Not only that, but relations between China, Japan, and South Korea are at best sour in recent years, due to questions over history and territory. This author believes that Russia has an important role to play in enhancing nuclear safety for Northeast Asia. From the ashes of Hiroshima and Nagasaki, Japan emerged as a world leader for anti-nuclear movement. Similarly, from the ruins of Chernobyl, Russia can emerge as a world leader for nuclear safety. Also, as an out-of-region country, Russia can be accepted as an impartial partner and leader for nuclear safety cooperation in Northeast Asia. This author thinks that a lot of great things can happen if South Korea’s middle power activism can be combined with Russia’s leadership for nuclear safety.   -   * Paper delivered at the JPI-FEFU-SNUAC-MOFA Joint Conference “Northeast Asia Peace and Cooperation Initiative between Russia and South Korea" in Vladivostok, Russia on July 15, 2015. 편집: Heejo KANG (JPI Global Intern) Intaek HAN is Research Fellow and Chair of the Peace and Cooperation Program at the Jeju Peace Institute, an independent think tank located in Jeju, South Korea.
  • '동북아시아 지역주의(Northeast Asian Regionalism)' 형성과 통일외교
    저자
    도종윤(제주평화연구원 지역통합연구부장)
    발간호
    2015-30
      지정학에서 지역주의로   동북아시아의 국제정치는 오랫동안 ‘지정학(geopolitics)’적 관점에서 논의되어왔다. 분단국이 자리 잡은 한반도를 중심으로 중국, 러시아, 일본이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슈퍼파워 미국은 한국과 일본에 대규모 군사 기지를 배치해 두고 있다. 탈냉전 이후 국제질서는 ‘유럽연합(EU)’, ‘남미공동시장(MERCOSUR)’,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유라시아경제공동체(EAEC)’ 등 지역(region)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지만, 동북아시아는 상대적으로 ‘지역주의(regionalism)’ 경향이 매우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아세안+3’는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치앙마이 이니셔티브’를 도출하는 가시적 성과를 내놓았으나 제도화가 미흡하고 지속적으로 공동의 목소리를 내는 데 성공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2005년 말레이시아에서 시작된 ‘동아시아 정상회의(East Asia Summit)’는 한국을 비롯한 동북아지역 국가들이 참여하는 지역정상회의이지만 동아시아 공동체에 대한 개념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미국, 호주, 인도 등 문화적, 지리적으로 이질적인 국가들이 참여하면서 지역주의로 발전할지는 의문이다. 동북아의 중심축인 한·중·일 3국 협력은 2011년 사무국을 상설화함으로써 일보 전진하는 듯했으나 국경 문제와 역사 문제로 긴장관계가 쉽게 풀리지 않고 있다. 동북아시아의 지역주의가 더딘 주요 이유로는 역내보다는 외부에 대한 의존이 여전히 크고, 지리적으로 분절화 되어있으며, 공동의 가치와 규범이 민족주의와 국가 이익에 가려서 활성화되지 못했다는 점 등이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지역주의의 조건   그러나 최근 동북아시아는 제도적 차원에서 지역주의의 생성 조짐이 급격히 나타나고 있다. 중국이 주도하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협정(RCEP)’과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의 창설 움직임, 미국이 주도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협정(TPP)’ 창설 계획 등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향후 ‘지역화(regionalization)’를 넘어 ‘지역주의’로 심화될 것인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즉, ‘지역화’는 반영되지 않은 지역기구의 과잉창설에 그칠 수도 있다.  2001년 마리오 텔로 교수가 내놓은 한 저작에 따르면, 지역주의는 대체로 ‘지역화’, ‘지역포럼’, ‘국가주도 지역협력’, ‘관세동맹 및 공동무역정책’, ‘경제통합’, 그리고 ‘지역결합’등의 단계로 결집, 공고화된다. 비록 그리스의 채무불이행으로 여러 비판에 직면해 있지만, 유럽연합은 ‘경제통합’을 넘어 ‘지역결합’의 형태로 진입하고 있는 가장 앞선 지역주의 세력이다. 내적으로는 유럽시민(European Citizen) 개념이 적용되기 시작하였고, 외적으로는 유럽화(Europeanization)를 통해 인권, 평등, 민주주의, 법치 등을 인류공동의 가치로 전파하고 있다. 유럽연합이 지역주의를 정착하게 된 제도적 요인은 거버넌스로서 ‘다자주의’를 그들의 공동의 가치 속에 체화시켰던 점이 컸다. 다자주의 공동체에 참여하는 구성원들은 지리적, 기능적으로 강력한 상호연관성을 갖고 있으며, 이익과 책임에서 ‘상호성의 확산’에 대한 기대를 갖는다. 또한 강제적이지 않은 일반화된 규범(소위, 행위의 일반원칙)을 받아들이는 ‘조직화의 원리’를 공유한다. 반면, 동남아시아 국가연합의 경우, 많은 기대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으로 역내 자기충족요건을 갖추고 있지 못하며, 내륙국과 해양국들 사이의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있으며, 남중국해에서는 미국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 동남아시아에서 ‘행위의 일반원칙’과 ‘상호성의 확산’에 대한 기대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통해 증명해내야 할 것이다.   동북아시아의 지역주의 형성의 조건   동북아시아 지역은 초보단계인 ‘지역화’ 수준에는 접어든 것으로 판단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동북아 국가들은 공적·사적 실체가 사회적·경제적 협력을 무리 없이 구현하고 있으며 ‘동북아시아’라는 지역 관념에 대한 관심도가 점차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한국은 남북 통일과 동북아시아의 평화·번영 그리고 국제사회에 일정한 참여를 통해 범지구적 이슈에 기여해야 하는 중견국으로서의 책임도 지고 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정부는 한반도 차원에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동북아시아 차원에서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을, 범대륙적 차원에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등을 잇달아 발표하면서 통일전략과 외교과제를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에서, 민생 인프라 구축을 위하여, 나진-하산 물류 산업과 남북러 협력사업, 남북중 3각 협력 등 국제사회를 포괄하는 공동번영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한 기존의 아시아·태평양지역의 협력체- 아세안+3, 한중일 3국협력, EAS, ARF, APEC 등에서 미비한 다자협력체를 보다 활성화시키고 미개척 분야에서는 새로운 메카니즘을 창출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는 것은 지역주의의 세 번째 단계인 ‘국가주도 지역협력’까지 기대케 한다. 그러나 ‘지역화’가 원숙해지고 ‘지역포럼’이 정착되어 ‘국가주도 지역협력’까지 자연스럽게 심화되지 않는 한 동북아시아의 진정한 지역주의가 형성될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통일외교와 동북아시아 지역주의   그런 면에서 북한 핵문제를 다루기 위해 열렸던 과거의 ‘6자회담’은 의제가 폐쇄적이고 단순하기는 했지만, 지역의 국가들이 일정 주제에 대해 상호작용하는 ‘시험적 지역포럼’의 형태를 띠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다만, 상호작용이 지속적이지 못하였고 역사적, 문화적 지역화가 명시적, 묵시적으로 관행화되지 못한 것은 한계였다. 남북관계를 떠나, 한·중·일 간 공식·비공식적인 다자적 정부 간 교류가 여전히 긴장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동북아시아에 지역화를 넘어 지역포럼이 정착되는 데 방해가 된다.   정부의 통일·외교정책에서 ‘지역주의’ 형성은 한반도의 통일이 지역의 평화와 번영에 이바지한다는 물질적, 심리적 공감대를 주변에 확산하고, 이를 통해 범지구적 과제를 능동적으로 수행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또한 미국, 중국 등 동북아시아의 거대 행위자들이 구상하는 ‘지역주의’ 전략에 한반도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한 토대를 형성한다는 점에서도 가치가 있다. 이런 맥락에서 정부의 통일·외교정책이 동북아시아의 지역주의 형성에 이바지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조건이 우선되어야 한다. 첫째, 지정학적으로 민감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라는 전제가 국제사회 공동의 규범이 되어 동북아시아 지역주의의 근간이 될 필요가 있다. 둘째, 실천의 영역에서는 한반도가 선도하는 지역화 사업에 집착하기보다는 동북아시아를 아우르는 이익과 가치를 통일정책 속에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셋째, 미·중의 주도 속에 펼쳐지는 동북아의 각종 지역기구의 창설 경쟁 속에서 정부의 통일정책을 동북아 외교정책과 연계할 전략을 도출할 필요가 있다. 現 제주평화연구원 연구위원. 브뤼셀 자유대학교에서 정치사회학 박사 학위취득. 주요 논문으로 "국제정치학에서 주체물음(2013)", "유럽연합의 개발협력전략(2013)" 등이 있음.
  • 사드관련 논란: 루머에 의한 피해사례의 하나일 뿐
    저자
    박휘락(국민대학교 정치대학장)
    발간호
    2015-31
    [편집자 註] JPI PeaceNet은 사드를 보는 한중 양국의 시각을 있는 그대로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 첫 시도로서 우정엽 박사의 "사드(THAAD)가 중국에게 위협이 되는가?"를 국문과 중문으로 발행하였으며, 그에 대한 중국 아태학회 조선반도연구회 조세공 위원의 반론과 상해 복단대 조선한국연구소 정계영 소장의 반론을 국문과 중문으로 발행하여 한중 양국의 독자들에게 배포하였다. 오늘 배포하는 기고문에서 박휘락 교수는 그동안 사드를 둘러싼 '논란'이 모두 부정확한 사실에 근거한 루머에 기인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정확한 사실에 근거하여 사드에 관한 논의가 이루어지기를 한중 양국에 촉구하고 있다.  JPI PeaceNet을 통한 주장과 반론, 그리고 그에 대한 재반론을 통해서 사드를 둘러싼 한중 양국의 논의가 객관적인 사실과 상호이해를 바탕으로 이루어질 수 있기를 기대하며, 독자들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편집자: 한인택 연구위원(ihan@jpi.or.kr)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제, THAAD: Terminal High Altitude Area Defense)와 관련하여 누구도 시비하지 않을 팩트는 "Terminal"이라는 첫 글자에서 보듯이 표적지역에서 공격해오는 탄도미사일을 방어하는 무기이고, 요격고도는 150km, 사거리는 200km 정도라는 것이다. 미 육군이 7개 포대 정도를 구매하였고, 현재 그 중 5개 포대를 전력화한 상태이다. 2014년 6월 주한미군 사령관 겸 한미연합 사령관인 스캐퍼로티(Curtis Scaparrotti) 미군 대장이 사드의 한반도 배치를 본국에 건의했다고 언급한 이래 한국 사회에서는 격렬한 논의가 전개되어 왔다. 사드는 중국과 미국의 전략적 대결을 좌우할 수 있는 결정적 무기이고, 이의 한반도 배치는 한국의 명운을 좌우할 수도 있는 사안이라는 것이다. 최첨단의 전투기, 공격용 미사일도 아닌 육군의 단일 무기가 어떻게 동북아시아의 정세를 좌우하는 전략적 비중을 갖게 되었을까?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놓여 있는 한국의 입장에서 하나의 방어무기라도 추가되면 좋은 것 아닌가?     토양: 루머에 취약한 한국사회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사드에 관한 논란을 살펴보기 이전에 한국 사회에서 일어났던 몇 가지 루머(Rumor) 또는 유언비어(流言蜚語) 사례를 회고해 볼 필요가 있다. 2008년 6월, 한국에서는 새로 출범한 이명박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의 범위를 확대하는 조치를 발표하자 그렇게 되면 다수의 국민들이 광우병에 걸리고, 특히 어린이들의 머리에 구멍이 송송 뚫릴 것이라는 괴담이 난무하면서 삽시간에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이명박 정부 반대의 촛불시위가 한국을 흔들었다. 한국 사회는 수개월동안 마비되었고, 이명박 대통령은 국정의 자신감을 상실하고 말았다. 그러나 지금까지 한국에서 광우병은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았고, 미국산이 수입쇠고기 중 1위를 차지하고 있다. 2010년 3월 북한의 잠수정이 한국의 군함인 천안함을 공격하여 침몰시키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사건발생 직후 인터넷 공간을 통하여 “천안함이 낡아서 좌초되었다”거나 “한국 정부가 고의로 격침시켰다”거나 “훈련 중이던 미 핵잠수함에 의하여 오폭 또는 충돌되었다”라는 루머가 급속히 확산되었다. 이 또한 상당한 기간동안 한국 사회를 어지럽게 만들고, 유엔까지 전달되어 국격을 떨어뜨리기도 하였다. 이 외에도 한국 사회에서는 괴담, 루어, 유언비어 등이 쉽게 확산된다. 이로 인하여 2008년 9월 최진실이라는 최고의 여배우가 자살한 적도 있고, 타블로라는 가수의 인생이 바뀌기도 하였다. 루머가 한국 사회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국가에 비해서 쉽게 발생 및 전파되고, 또한 반복되는 것은 사실 아닌가? 국가안보에 관한 중대한 사안이라 그럴 리 없다고 하겠지만,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사드도 루머 차원에서 한번 분석해보자.     사드 논쟁의 경과 한국에서 사드 논쟁이 본격화된 출발점은 2014년 6월 3일 스캐퍼로티 사령관이 웨스틴조선 호텔에서 한국국방연구원 주최로 열린 조찬강연 시 "미측에서 추진을 하는 부분이고 제가 또 개인적으로 (미국 군 당국에) 사드의 전개(배치)에 대한 요청을 한 바 있다...언론에선 현재 사전 조사 연구가 이뤄진다는 식으로 묘사했지만 그 정도라기보다는 한국에 사드를 전개하기 위한 초기 검토가 이뤄지는 수준"이라고 언급한 것이었다. 이에 대하여 한국 언론은 “미국 정부나 군 고위 관계자가 사드의 한반도 배치 추진을 공식 확인한 것은 처음”이라면서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보도하게 되었다. 2014년 9월 30일 미국외교협회(CFR) 간담회에서 로버트 워크(Rober Work) 미 국방부 부장관이 사드의 배치방안을 한국 정부와 협의 중(working out)이라고 밝힘으로써 또 한 번 사드 문제가 한국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게 되었다. 그는 "괌에 배치된 미국의 사드 미사일 포대를 한국에 배치하는 방안을 조심스럽게 고려하고 있고...사드 배치가 맞는지를 결정하기 위해 한국 정부와 협의하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한국 언론에서는 한국과 미국이 사드 배치에 관하여 협의해 놓고도 공개하지 않았다면서 정부를 공격하였다. 사드를 둘러싼 국내의 논란에 중국도 가담하였다. 다양한 경로를 통하여 중국의 학자들은 미군 사드의 한반도 배치에 관한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하기 시작하였고, 추궈홍(邱國洪) 주한 중국대사도 2014년 11월 26일 국회 남북관계 및 교류협력발전 특별위원회(남북관계발전특위)와의 간담회에서 “한국에 배치되는 사드의 사정거리가 2,000㎞라서...”는 이유로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하였다. 또한 2015년 2월 4일 서울에서 열린 한중 국방장관 회담에서 창완취안(常萬全) 중국 국방부장(장관)은 의제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던 사드의 한반도 배치 문제를 제기하였고, 2015년 3월 한국을 방문한 류젠차오(劉建超) 중국 외교부 부장조리(차관보급) 역시 16일 개최된 한·중 차관보 협의에서 사드 문제에 관한 자신의 우려를 적극적으로 언론에 공개하였다. 그는 "사드 문제에 관해 아주 솔직하고 자유로운 대화를 나눴고...중국 측 생각을 한국에 알려줬으며...중국 측의 관심과 우려를 중시하면 고맙겠다"고 언급하였다. 3월 17일자 조선일보에서는 중국의 관리들이 이와 같이 언급한 것은 2014년 7월 “한·중 정상회담 때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언급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2015년 3월 하순 뎀프시(Martin E. Dempsey) 미 합참의장, 4월 중순 카터(Asheton Carter) 미 국방장관, 5월 중순 케리(John Kerry) 미 국무장관 등이 차례로 한국을 방문하였다. 그때마다 한국의 언론에서는 사드 문제가 거론될 것으로 전망하면서  관련 의혹을 보도하였다. 그러나 사드 문제는 한번도 논의되지 않았고, 관련된 성명이나 입장발표는 없었다. 다만, 케리 국무장관의 경우 주한미군 장병을 방문한 자리에서 "(북한 위협과 관련) 우리는 모든 결과에 대비해야 하고...이것이 바로 우리가 사드와 (병력·함정 배치 등) 다른 것들에 관해 말하는 이유"라고 언급하였다. 그러자 한국 언론에서는 그가 사드의 한반도 배치 필요성을 언급한 것으로 보도하였다. 이렇게 볼 때 사드 배치에 관한 논란은 어떤 공식적 계기가 아니라 어떤 인사의 발언에 의하여 촉발되는 양상을 보였고, 대부분 일방적인 추측과 우려를 근거로 한 내용이었다. 추측과 우려에 근거하여 팩트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내용의 진위를 판가름하기 어려웠고, 따라서 한국 사회가 1년 여 동안 사드를 둘러싸고 논란을 벌였지만, 결정된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결과가 되었다.     사드 논란의 쟁점 지금까지 한국 언론에서 제기되어 온 사드에 관한 논란의 핵심은 크게는 두 가지, 두 번째를 구분하여 분석하면 세 가지이다. 첫째, 한반도에 사드가 배치되면 중국의 핵억제전략이 크게 훼손되고, 따라서 중국은 이를 용인하지 않을 것이며, 결국 한국은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희생자가 된다는 주장이다. “미국이 한국 내 배치를 검토 중인 사드가 ‘북한뿐만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와 같은 인접국까지 커버’할 수 있고...중국은 미국의 한국 내 MD 배치를 동북아의 화약고인 한반도에 미국이 위험한 인화물질을 갖다놓는 것으로 여긴다....한국이 미일동맹의 MD에 편입되면 '한국이 도자기 가게 안에서 칼을 들고 쿵후를 하는 것'으로 간주한다.”1)라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은 사드의 성능이 충분히 알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국민들에게 설득력을 가졌고, 대부분의 언론도 그러한 방향으로 보도하였으며, 특히 이들은 중국 학자들이나 관리들의 의견을 인용함으로써 신뢰성을 과시하였다. 한국 사회에서 논란이 지속되면서 사드가 중국의 대륙간탄도탄(ICBM)을 요격할 수 없다는 점이 밝혀지자, 이번에는 레이더의 위험성이 강조되었다. “사드와 한 묶음으로 움직이는 X-밴드 레이더는 유효 탐지 반경이 1,000km에 달해 오산공군기지에 배치되면 중국 동부의 군사 활동까지 들여다볼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2). “사드의 탐지장비인 X밴드레이더는 반경 4,000~5,000㎞ 밖의 작은 물체도 식별하는 것으로 알려져 중국의 대부분 군사시설을 들여다보게 돼 중국이 경계하고 있다”라고 보도한 언론도 있었다3). 두 번째, 사드에 관한 비용문제로까지 연결되는 내용으로서 일부 인사들은 주한미군의 사드배치와 한국군의 사드구매를 혼동시켰다. 2014년 6월 스캐퍼로티 연합사령관의 언급은 물론이고 한국 국방부가 수차례 설명했듯이 이 사안은 미 육군의 사드를 주한미군 보호를 위하여 재배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드배치에 대한 찬반 논쟁이 격화되면서 이 부분이 모호해졌고, 집권여당에서조차 2015년 4월 1일 의원총회를 열어서 사드의 “도입” 문제를 논의하였고, 유승민 원내대표는 3개 포대 정도 도입해야할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하였다. 급기야 주요일간지의 사설에서조차 “현재의 사드 논의는 1차적으로 주한미군에 들여오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다. 한국군의 사드 도입 여부는 별개 사안이다.”는 점을 강조해야 했다4). 셋째, 아직도 사드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사드에 관련한 비용문제로서, “2조 원짜리 고고도 머니게임”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유포되었다. 국방부 대변인이 2015년 3월 17일 라디오 인터뷰를 통하여 주한미군의 무기를 배치하는 것이기 때문에 주한미군이 부담한다고 하였지만, 의혹은 진정되지 않고 있다. 심지어 최다 부수의 신문에서도 “한·미 간에는 보통 얘기를 먼저 꺼내는 쪽이 비용을 부담토록 돼 있어 우리 측은 먼저 사드 배치 얘기를 꺼내지 않고 미측의 공식 요청이 오면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미국은 사드 1개 포대를 주한미군에 배치할 것으로 알려졌는데 1개 포대의 비용은 1조 5,000억~2조 원에 달한다. 사드를 우리가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미측이 주한미군에 배치할 경우 구매 비용 자체를 우리 측에 요구할 수는 없지만 운용 비용은 방위비 분담금 형태로 우리 측에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 군 당국은 사드의 주한미군 배치는 내심 환영하지만 비용 부담 문제는 미측에 양보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겠다는 입장이다”5)라고 보도하고 있다.     사드 논란에 대한 진실: 루머 이 글을 읽은 사람들 누구도 믿고 싶지 않겠지만, 정말 어이없게도 위 세 가지가 모두 다 진실이 아니다. 첫째, 사드가 미국을 공격하는 중국의 ICBM을 요격할 수 있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사드는 글자 그대로 “종말단계”(終末段階)에서 타격하는 요격미사일이기 때문에 자신을 공격해오는 상대의 탄도미사일만 요격할 수 있고, 다른 목표를 향하여 비행해나가는 탄도미사일은 요격할 수 없다. 또한 사드의 사거리는 200km이고, 고도는 150km 정도로서, 대부분 1,000km 이상 비행하는 미국 공격용 중국의 ICBM까지 다다를 수가 없다. 현재 중국 내륙에 배치되어 있는 ICBM이 미국을 공격할 경우 시베리아 상공과 알래스카를 경유하고 한반도 상공은 지나가지를 않는다. 사드가 사용하고 있는 AN/TPY-2 X-Band 레이더의 경우에도 실제 탐지거리는 1,000-2,000km 정도이고, 인공위성 등으로부터 발사에 대한 정보를 전달받으면 그것을 요격할 수 있도록 ‘추적’하는 기능을 수행하도록 되어 있으며, 탐지 기능으로 전환하는 것이 쉽지 않다. 설령, 탐지한다고 해도 지구곡률(地球曲率)로 인하여 1,000km 거리에서는 60km 이상 고도의 물체만 탐지할 수 있고, 1,800km 거리일 경우 190km 이상에 있는 표적만 가능하다. 그리고 레이더는 CCTV처럼 영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점으로만 보기 때문에 일반적인 군사정보는 획득하기 어렵다6). 2014년 11월 21일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주최로 개최된 토론회에서 중국 북경대학의 후아한 교수는 “사드 자체는 중국의 억제태세에 위협이 아니다.”(THAAD per se is not a threat to China’s deterrence)”라는 내용을 발표하기도 하였다7). 둘째,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미군 사드의 한반도 배치이지 한국의 사드 도입이 아니다. 이 사안 자체가 스캐피로티 주한미군/한미연합 사령관이 본국에 사드의 한반도 배치를 요구하겠다는 말에서 시작되었고, 시진핑 국가주석을 비롯한 중국의 관리들도 한국이 주권국가이기 때문에 미국의 사드 배치를 허용하지 말라는 요구였다. 한국이 사드 구매를 미국에 요구하거나 국방부가 계획하고 있는 바는 전혀 없다. 『2014년 국방백서』에 그려진 한국군 탄도미사일 방어의 체계도에는 분명히 사드가 포함되어 있지 않고, 자체 장거리 요격미사일을 2020년대 중반까지 개발하겠다고 명시하고 있다8). 셋째, 미군의 사드배치를 허용할 경우 한국이 그에 따른 비용을 부담하는 것은 사실도 아니고, 전례도 없다. 지금까지 미군이 한국에 배치하는 무기를 한국이 대신 비용을 지불한 적이 없다. 미군이 현재 PAC-3 2개 대대를 한반도에 배치하고 있지만 그 비용을 요구받거나 지불하지 않았다. 미군의 무기를 대신 구입하여 배치해주는 전례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2014년 4월 새로운 “미일방위협력지침”을 체결하면서 미군의 글로벌 호크, P-8 대잠초계기, F-35 스텔스 항공기, 양륙함, 이지스함 등 다수의 첨단 무기를 일본에 배치하기로 하였는데, 이의 비용을 일본이 지불하지 않는다. 일부에서는 방위비분담이 증대될 것이라고 추측하지만, 지금까지 미군의 특정 무기배치를 계기로 방위비분담이 늘어난 적이 없다. 방위비분담은 5년 마다 협상되는데, 현재 한국은 2014년에는 9,200억 원을 지불하고, 2015년에서 2018년까지는 전전년도 물가상승률을 적용하여 증대시키기로 되어 있다. 그 금액도 멋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주한미군 기지에 근무하는 한국인 노동자 인건이 40%, 미군 및 한미연합 군사시설 건설 40%, 그리고 수송 등의 군수비용 20% 정도로 정해진 항목별로 사용하고 있어 어떤 장비의 도입이나 운영비용으로 전용할 수 없다. 한국에서는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연기 등을 미측에 요청할 때마다 방위비분담이 증대될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었지만, 그의 연기가 결정된 2010년이나 2014년을 전후하여 방위비분담은 전혀 증대되지 않았다. 또한 방위비분담금은 국회의 비준을 받도록 되어 있어서 정부가 지불하고 싶다고 하여 멋대로 지불할 수 없다. 그리고 한국이 먼저 요청하면 한국이 지불하고, 미국이 먼저 요청하면 미국이 지불한다는 것은 전혀 근거가 없는 말이다.     사드를 둘러싼 루머와 확산 그렇다면 반대주장이 이와 같이 근거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사드에 관한 논란이 그렇게 격렬하게 벌어졌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이유는 왜일까? 루머가 아니고 이해할 수 있는 논리가 있을까? 결국 사드에 관련 논란은 루머에 의하여 시작 및 확산되었고, 한국 나아가 중국까지도 그 피해를 본 셈이다. 루머에는 유포자(spreader)가 있고, 그의 대상인 무지자(ignorant)가 있으며, 시간이 흐르면서 차단자(stifler)가 증대되면 루머는 약화되고 그렇지 않으면 강화될 것인데9), 이 사안의 경우 차단자가 적어서 계속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사드 관련 루머의 최초 유포자는 한국 정부가 미사일 위협에 대한 방어책을 강구할 때마다 “미 MD 참여”라면서 반대했던 사람들이다. 이들이 인터넷 매체 등을 통하여 기고한 글은 언론을 통하여 보도 및 확산되었다. 『싸드』라는 소설, 대부분의 언론들도 이들의 논리를 전달함으로써 유포에 기여한 셈이 되었다. 이번 사드에 관한 한국 사회의 논란에서 특이한 점은 중국의 개입이다. 한국의 논란에 의하여 영향을 받은 것으로 판단되지만, 중국의 학자와 관리들은 한반도에 사드가 배치되면 중국의 핵 억제태세를 근본적으로 위협한다는 인식을 적극적으로 표명하였고, 이것이 한국의 루머를 더욱 강화하는 식으로 반영되었다. 중국의 최고 지도자, 주한 중국대사, 중국의 국방부장 등이 우려를 표명하자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한국 내 논리들은 힘을 얻었고, 논란을 더욱 강화되었다. 사드를 둘러싼 한국의 분란을 부추기고자 하는 의도가 있다고 의심될 정도로 내정간섭에 해당되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그래서 2015년 3월 17일 한국을 방문한 러셀(Daniel R. Russel) 미국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아직 배치되지도 않은 안보시스템에 대해 제3국이 강한 불만을 표시한다는 사실이 흥미롭다."고 말하기도 했던 것이다. 둘째, 사드의 논란이 확산된 데는 다수의 국민들이 유포자들의 논리를 수용하였고, 그 결과로 차단자로보다는 유포자로 변모한 사람이 더욱 많았기 때문이다. 반미지향의 내용이나 음모론적 내용을 선호하는 심리도 포함되어 있고, 정부에 대한 불신과 불만도 작용하였으며, 사드가 생소한 내용이라서 루머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광우병 사태 등에서 보듯이 한국 국민들의 성격이나 특성 자체가 루머를 쉽게 믿어버리는 경향일 수도 있다. 어떤 이유에서든 대부분의 국민들은 또 다시 루머 유포자들에게 활용당한 결과가 되었다. 셋째, 이번 사드 관련 논란에서는 중추적인 루머 차단자가 되어야 할 정부가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인 점도 있다. 정부는 사드의 필요성이나 정책에 관하여 명확한 입장을 밝히기보다는 사드배치에 관한 “(미국의) 요청, 협의, 결정이 없었다.”는 소위 “3 No”라는 입장만 견지하였고, 미국이 요청해오면 국익의 관점에서 주도적으로 결정하겠다는 추상적인 입장만 반복하였다. 선진국에서는 루머의 차단자 역할을 수행하는 언론도 이번 사드 관련 논란에서는 오히려 유포자가 되었고, 학자들도 유포자의 논리에 동조하거나 침묵하는 사람들이 않았다. 특히 학자들은 미국의 의도나 중국의 입장, 동북아시아의 세력경쟁의 실상 등을 언급하면서 사드의 전략적 의미를 강조하였고, 중국학자들과의 인맥을 통하여 그들의 의견을 물었으며, 그들의 의견을 한국에 전달함으로써 자신도 모르게 유포자의 대열에 합류하였다. 이렇게 볼 때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사드에 관한 한국사회의 논란은 광우병사태나 천안함 폭침을 둘러싼 루머와 성격이 크게 다르지 않다. 일부 이념적이거나 반미지향적인 인사들의 왜곡된 논리를 언론, 학자, 국민들이 수용하거나 차단하지 못하여 확산된 경우이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은 동의하고 싶지 않겠지만, 우리 모두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 일단 어떤 주장을 하게 되면 그렇지 않다는 증거가 드러나도 원래의 주장을 바꾸지 않으려는 경향 속에 있는 것은 아닌지?     한국의 과제 이제 한국은 주한미군의 사드에 관한 제반 사항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팩트에 의하여 논의 및 판단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이를 위해서는 지식인, 특히 사회과학자들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드 문제, 넓게는 탄도미사일 방어문제, 더욱 넓게는 북한의 핵위협에 대한 해결책 및 대비책을 적극적으로 연구하여 제시하고, 이로써 국민들이 정확한 지식을 갖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언론의 노력도 필요하다. 양측 주장을 함께 전달하면 공정하다는 편의적 발상에서 벗어나 팩트를 정확하게 판별하여 보도하고자 노력할 필요가 있다. 사드를 둘러싼 루머 해소와 관련하여 더욱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할 주체는 정부, 특히 국방부이다. 국방부가 사드, 탄도미사일 방어, 핵대응에 대하여 분명하면서도 일관성 있는 정책을 수립하여 시행해야 루머가 기승을 부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군은 "북한이 핵미사일로 공격해올 경우 어떻게 국가와 국민을 보호할 것이냐?“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는 데 모든 노력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핵위협에 관하여 일본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루머가 안보정책 결정에 개입되는 것을 방지하는 데 유용할 수 있다. 한국과 일본은 북한의 핵위협에 공통적으로 노출되어 있고, 미국과의 동맹을 통하여 국가안보를 유지한다는 점에서도 유사하기 때문이다. 현재 일본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하여 PAC-3 17개 포대, SM-3 미사일을 장착한 구축함 4척, 자체 개발한 FPS-3와 FPS-5 레이더와 미국의 X-밴드 레이더도 2식(式, 시스템의 단위)을 보유하고 있고, 앞으로 SM-3 미사일을 장착한 이지스함 4척을 추가하며, 미국과 공동으로 개발하여온 요격고도 500km의 SM-3 Block IIA도 2017년까지 완성하여 2018년경에는 군부대가 인계받도록 되어있다. 사드와 지상용 SM-3 중에서 하나를 구입하여 방어망을 한층 더 보강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이 기회에 한국은 한중관계의 본질에 대하여 성찰해보지 않을 수 없다. 공식적으로 한국과 중국은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이지만, 한국이 심각한 위협으로 생각하고 있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하여 중국이 협력해주고 있는 것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중국은 동북공정을 실시하고 있고, 일방적으로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하였으며,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보유를 묵인하고 있다. 경제, 사회, 문화적 협력은 가능하지만, 결국 안보적으로 중국은 북한의 동맹국이다. 사드가 안보문제라면 한국도 중국의 태도에 연연하지 말고, 국가와 국민들을 보호하는 데 필요한 지 아닌지 만을 집중적으로 토론해야할 것이다.     사족: 중국에 자기 나라의 일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서 중국에 대하여 말한다는 것은 주제넘은 일이다. 그래서 사족(蛇足)이라는 소제목을 붙였다. 그러나 중국은 역사적 및 문화적으로 친밀감이 너무나 큰 국가이고, 무역거래와 인적교환도 활발하다. 서울 시내에 중국인이 활보하더라도 금방 알아볼 수 없고, 북경 시내에서 한국인이 쇼핑해도 말을 하기 전에는 알 수 없을 것이다.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한국 국민 중에서 중국, 한국, 일본이 서로 협력하여 잘 살아야한다는 생각을 지지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우선 일부 한국 내 인사들이 사드에 관한 루머를 유포하여 중국의 판단을 혼란스럽게 만든 점에 대하여 유감을 표명하고 싶다. 그들은 중국 내의 지식인들이 그렇게 쉽게 그들의 논리를 수용할 것으로는 생각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한국 정부에게 내정간섭에 해당되는 압력을 행사할 정도까지는 기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되었고, 이로써 한국 국민의 친중국 정서가 상당부분 훼손된 점이 있다. 사드에 관한 세부적인 팩트에 관하여 다시 한번 재점검하고, 오해가 있으면 해소하고, 한국 정부가 유념할 사항이 있으면 서로 진지하게 협의해 나가는 풍토가 양국 학자와 관리들 간에 정립되어야 할 것이다.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혹여 중국 내에서 한국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드 관련 논란을 부추기거나 이용하려는 움직임이 있어서는 곤란할 것이다. 한국과 중국은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서 서로의 부국강병을 지원해주기로 약속한 상태이다. 일부 사드의 성능을 잘 아는 중국 군인들은 한국에서 벌어지는 현 논란을 재미있어 한다는 풍문도 들리고 있다. 한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 각자의 다양한 의견을 거리낌없이 발표할 수 있어 시끄럽기는 하지만, 결국 건전한 방향으로 의견을 정해 나갈 것이다. 오히려 한국을 방문한 모든 중국학자와 관리들의 의견이 동일하다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한국인들이 적지 않다. 중국에도 한국처럼 언론의 자유가 충분히 보장되어 있다고 하는데, 과연 그러한가라고. 중국이 한국이나 주한미군을 탄도미사일로 공격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경우 중국이 사드의 주한미군 배치를 반대할 합리적인 이유를 생각하기는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우정엽 박사가 말한 바처럼 한미동맹의 강화를 우려해서 그러한 것으로 해석하는 한국 학자들이 적지 않다. 정말 중국이 한미동맹 강화를 우려한다면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포기시키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고 유일한 방법이다. 위협이 강해지면 동맹도 강해지는 것이 원리인데, 북한의 핵무기가 증강되는 상황에서 한미동맹이 강화되지 않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중국에 비해 한국이 갖는 일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더욱 클 수 있지만, 북한의 핵위협이 강해지면 한국은 일본과의 안보협력도 진전시키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이 미일동맹의 강화를 우려한다면 북한의 핵위협을 제대로 처리해야 할 것이다. 한국, 중국, 일본은 모두 한자를 사용하고 있듯이 문화적 공통성도 크고, 협력할 수 있는 바탕이나 협력해야 할 이슈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SEAN + 3"이라는 명칭에서 보듯이 3국 간에는 직접적인 안보협력회의체가 없어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회의에 끼여 대화하고 있다. “한중일 정상회의”도 개점휴업 상태이다. 여기에는 당연히 한국과 일본의 책임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이 이 지역에서 지도국이라면 가장 큰 책임은 중국이 느껴야 하는 것 아닌가? 중국의 학자나 관리들은 지금까지 사드의 한반도 배치에 반대하면서 그 구체적인 근거를 거의 밝히지 않고 있다. 사드의 어떤 성능으로 인하여 어떤 지역이나 어떤 군사태세가 어느 정도로 위협받는 다는 점을 설명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것은 합리적인 태도가 아니고, 설득력도 클 수 없다. 논쟁은 팩트와 자료를 통하여 진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비단 사드 문제뿐만 아니라 세계의 제반 이슈를 다루는 데도 중국이 이와 같이 한다면, 미국 중심의 서구 합리주의를 이길 수 있겠는가? 그리고 주변국가들이 중국을 신뢰하고 따르겠는가??   1) 정욱식, “한국의 MD 편입은 ‘도자기 가게에서 쿵후 하는 격’,” 『프레시안』(2014년 6월 2일), at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17661 (검색일: 2015년 6월 14일). 2) 정욱식, “주한미군 사드는 괜찮다고? 제정신인가?”『프레시안』(2014년 6월 20일). 3) 인터넷『경향신문』(2014년 9월 6일).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9061109231&code=910302(검색일: 2015년 6월 14일). 4) 『조선일보』(2014년 5월 20일), p. A31. 5) 유용원?윤정호, “美 "한반도에 사드 영구배치 고려"… 公論化 임박 美, 사드 비용 부담 압박… 한국 정부는 '3 NO(美요청·협의·배치계획 없다)'『조선일보』(2015년 5월 21일), p. A1. 6)  신영순, “THAAD 레이더 논쟁의 허구,” 『국가안보전략』, 16권 6호(2015년 6월), pp. 28-30. 7)  2014년 11월 21일 ‘한반도 통일과 동북아 공동발전을 위한 한중협력 과제와 방향’(서울, 플라자 호텔)에서 배포된 별도의 슬라이드 자료. 8) 국방부, 『2014 국방백서』(서울: 국방부, 2014), p. 59. 9)  M. Nekovee, et al, "Theory of rumor spreading in complex social networks," Phisica A (July 9, 2008), p. 2. http://www.researchgate.net/publication/222819843_Theory_of_rumour_spreading_in_complex_social_networks (검색일: 2015년 6월 14일). 現 국민대학교 정치대학장. 前 국방대학교 교수. 육사 34기. 육군대학/합동참모대학을 수석 졸업하고, 미 National War College 와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석사학위를,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 신간으로 『핵전쟁에서도 살아야 한다: 생존상식 10단계』 (서울: 21세기 군사연구소, 2015) 가 있음.
  • 오스트리아의 중립화 통일 경험과 한국에의 함의
    저자
    Heinz Gaertner (University of Vienna)
    발간호
    2015-35
    [편집자 註]  어느 때부터 우리 사회에서는 독일의 통일경험 속에서 남북통일을 위한 교훈을 찾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하지만 Heinz Gaertner 교수는 한반도에서는 아직 냉전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냉전이 종식되면서 통일이 된 독일의 경험보다는 2차 대전후 중립화를 통해서 통일이 된 오스트리아의 경험이 더 유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최근 타결된 이란핵협상이 오스트리아의 비엔나에서 열렸던 사실에서도 볼 수 있듯이 중립화 통일 이후 오스트리아는 국제무대에서 중요한 중재자, 조정자로 등장하였다. Gaertner 교수는 중립화된 통일한국도 아시아에서 중요한 중재자와 조정자로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주변 강대국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고 북한이 핵무장까지 한 상황에서 과연 중립화가 우리에게 가능한 선택일까? 혹시 이상주의를 앞세우다 우리의 평화와 안보를 위태롭게 하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의문과 우려에 대한 답을 찾고자 JPI PeaceNet은  Gaertner 교수의 기고문에 이어서 중립화에 대한 건국대 윤태룡 교수의 서면 인터뷰를 게재할 계획이다. 독자들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편집자:한인택 연구위원( ihan@jpi.or.kr )     No analogy works perfect. No models of other countries fit for the Korean peninsula entirely. Nevertheless, analogies help to understand experiences of other countries. Lessons can be learned from success and failure of other countries in similar situations. Usually, the German unification of 1989/1990 serves as a model for a potential unification of the Korean peninsula. Obviously, there are parallels: decades of separation, two diverse economic and political systems with different ideologies. However, the geopolitical situations between Germany and Korea are very different. The unification of Germany became possible only because the Soviet that controlled East-Germany disappeared. The geopolitical context in North East Asia by and large stayed the same since the end of the Korean War. Here the Austrian experience could help.    The principles of the EU’s North Korean policy, non-proliferation, regional stability and peace, and human rights are essential. Nevertheless, a solution without China and Russia will not be possible. Such priorities will do little to soothe especially China. To address this geopolitical difficulties the Austrian model can give some answers. A guarantee based on international law that a united Korea will not join a military alliance with the US might be acceptable for China and Russia. In addition, in Austrian State Treaty certain capabilities of Austria’s military were limited. The State Treaty also guaranteed that Austria would not join a new with Germany (Anschlussverbot), as it had happened in 1938. In the case of Korea, such a State Treaty could expressly prohibit territorial claims of any external power, whereby the unity of Korea should be guaranteed. In this way, a united peninsula could serve as buffer zone among neighboring countries. No foreign troops would be necessary on Korean soil. For a transition period US-troops could remain deployed in the South of Korea. A phased out withdrawal has to be negotiated among the new Korean government, the US, China and Russia. US presence will stay in Japan and on sea just like NATO-troops in Europe after the Second World War. After all, one of their roles was to keep Germany under control.    Here is the difference! Austria was only divided for ten years mainly in military terms. It goes without saying that there was no such a deep separation of two very different systems as in Korea. In a reunified Korea the two different systems might coexist for some time to come, politically but in particular economically and psychologically. If this appears to be necessary, a united Korea with two different systems is all the more only feasible on the basis of neutrality, on the one hand. Otherwise the conflict lines in the region will be transferred into the new Korean state. A neutral state as a buffer state will reduce the confrontational structure in North East Asia, on the other hand.    European and American economic aid packages, similar to the post-World War II Marshall-Plan, would be essential for a reunified Korea. The combination of neutrality and the Marshall-Plan was a definite success for Austria. Moreover, one could argue that Austria’s neutrality law was the beginning of the detente policy between East and West.    Last but not least, thanks to this policy of neutrality, Vienna was chosen as the third UN-capital and seat of the International Atomic Energy Agency (IEAE), UN specialized agencies (e.g. UNIDO) and the secretariats of OPEC and OSCE (formerly CSCE). During the Cold War neutral states offered mediation and good offices and advocated that the policy of detente not faltered. Furthermore, the PrepCom (an administration committee for the surveillance of the comprehensive test ban agreement) of the Comprehensive Nuclear Test Ban Treaty (CTBT), the secretariat of the Wassenaar Arrangement (about the transfer of conventional weapons), the United Nations Office on Drugs and Crime (ODC), the Vienna Center for Disarmament and Non-Proliferation (VCDNP) and the World Institute for Nuclear Security (WINS) were also settled in Vienna. Vienna became the central place for the negotiations of the talks on Iran’s nuclear program 2014-2015. In 2015 an Austrian diplomat was appointed as special representative of the OSCE in the Ukraine.    These would all be options for united Korea in Asia. Participation and mediation are considerable potential areas of influence for neutral states in the realm of multilateral cooperation. The directions outlined above advocate that the Austrian model delivers a long-term diplomatic solution that should be taken into consideration. Heinz Gaertner is Professor at the University of Vienna and the Academic Director of the Austrian Institute for International Affairs (oiip). He is editor (together with Akbulut and Honig) of the book Peace, Democracy, and Security (Lexington: New York), 2015.
  • Mutual Cooperation in the East Sea Rim Area: Energy, Transportation, Investment, and Tourism
    저자
    Dennis PATTERSON(Texas Tech University)
    발간호
    2015-33
      The East Sea Rim Area is one of the two sub-regions of Northeast Asia that consists of nearly 1 million square kilometers (378,000 sq. miles) and is bordered by the Russian Far East, the back side of Japan, and the eastern coasts of North and South Korea. While China does not actually have a border on the East Sea Rim Area, it does share borders with Russia and North Korea and is an important actor in the region’s economic and political affairs. Economic interactions in the East Sea Rim Area have been increasing, especially since the holding of the Asian games in 1990, and all indicators are that these interactions will continue to grow, particularly in the areas of trade and investment and tourism. Although interactions may grow at slower rates, they will include numerous bilateral and multilateral cooperative efforts that the nations have made and will continue to make. Cooperation among the East Sea Rim Area’s powers is most notable in the area of trade and investment. Consider South Korea, which by itself was responsible for over $200 billion in exports to China, Japan, and Russia and a somewhat smaller amount in imports. These amounts would be even higher if we were to include the total amount of economic interactions that occur today between North and South Korea. The same is true for tourism, even though it is difficult to single out the East Sea Rim Area because travel and tourism data are either measured bilaterally or aggregated by the Northeast Asian region. Nonetheless, we see that tourism has not only grown steadily since 1990, its growth has accelerated in the last five years. This growth is being driven to a significant degree by the rise the numbers of Chinese traveling to nations in the East Sea Rim Area. The Financial Times of London reported that Chinese tourism in South Korea grew by 58% in the last year, even though it has been high for some time. The same report also noted that, despite chilly relations between Beijing and Tokyo, Chinese tourism in Japan was up 160% from last year. Finally, the Financial Times reported that that Chinese tourism in Russia was increasing at high rates. In addition to the increases in Chinese traveling to other nations in the East Sea Rim Area, travel between pairs of nations on the East Sea has also increased. While this is true as more South Koreans travel to China and Japan, and elsewhere throughout the world for that matter, notable increases have also occurred between South Korea and the Russian Far East. Travel and tourism as well as trade and investment all presuppose a certain level and quality of transportation infrastructure. For increases to continue, cooperation among the region’s powers will be necessary and evidence of this continuing cooperation on transportation infrastructure is witnessed in the number of airports serving destinations in the East Sea Rim Area. Specifically, there have been expansions of existing airports, like that which occurred at Tokyo’s two international airports, or the recent creation of entirely new airports like that of Seoul Incheon, which has become one of the busiest airports in the world. Other examples Japan’s Niigata International Airport, which in 2012, expanded its carrier service with the addition of China East Airlines, Fuji Dream Airlines, and expanded flights to China provided by All Nippon Airways. The same can be said for the airport in Vladivostok, which went through expansions and improvements in 2005-06 and again in 2012. The growth in tourism and international trade and investment that has characterized this dynamic region in the last two and a half decades is not just the result of simple growth in this Rim Area’s economies. It is also the product of planning and cooperation on the part this region’s governments. Such cooperative efforts to expand and the region’s transportation infrastructure sometimes involve some very ambitious projects. One of these has been between South Korea and Russia and involves connecting the Trans-Korean Railway to the Trans-Siberian Railway. This ambitious and expensive project will allow the movement of travelers and freight to occur with much more ease between Europe and South Korea than at the present time. However, its success depends on cooperation from North Korea, which is a concern to both Russia and South Korea. To protect the investments it has already made, Russia forgave a significant portion of North Korean debt. Unfortunately, this has guaranteed North Korea’s cooperation as it has recently indicated that it will not allow the rail line to move through its territory. Despite the fact that this project makes a great deal of economic sense, it is now on hold. Another potential challenge not only to this project but also to the expansion of other cooperative efforts involves the participation of China. China is not directly involved in this railway project and, as a result, has little incentive to support it. While not a deal breaker in and of itself, the non-participation of China gives it little incentive to persuade North Korea to participate. A greater challenge to the expansion of cooperation in this region will be the problem of energy and how securing energy for future development overlaps with territorial disputes and misunderstandings. Korea and Japan are involved in a significant misunderstanding over Dokto and Japan and Russia are divided over the Northern Territories. These territorial issues are significant enough to challenge ongoing efforts at cooperation. Unfortunately, they have the potential to become even more challenging as the prospect for energy development in the East Sea Rim Area grows. Russia, South Korea, and Japan must all continue to supply their current and future energy needs, but doing so could render current territorial issues more difficult to solve if they we learn that such territories also have the potential to supply energy. What this means is that to continue cooperation in this vital region will require sincere and consistent effort on the part of governments to resolve these territorial issues in a way that satisfies all parties. Dennis Patterson is a Professor of Political Science and Department Chair at Texas Tech University. He is the co-author of The Japan that Never Was (SUNY Press, 2004) and has published articles on Asian politics and security in such journals as International Studies Quarterly, World Politics, the British Journal of Political Science, Electoral Studies, Comparative Political Studies, Legislative Studies Quarterly, and Women and Politics.
  • 스포츠 외교와 공공외교: FIFA 사태를 통해 본 한국의 대응
    저자
    정기웅(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연구센터)
    발간호
    2015-34
    FIFA 스캔들과 블래터   2015년 6월 2일, 외신은 블래터(Joseph Sepp Blatter) FIFA 회장의 사임을 보도하였다. 그러나 6월 26일, 블래터가 “나는 사임한 바 없다.”라고 주장함으로써 부패 조사에서 시작되어 회장의 사임으로 끝나는 것 같던 FIFA 사태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는 듯하다. 이번 사태의 종결이 어떠한 모습일지 사뭇 궁금하기조차 하지만, 국제 스포츠계를 오랫동안 주의 깊게 지켜본 이들에게는 매우 씁쓸한 기시감을 선사할지도 모른다.   IOC와 FIFA로 대변되는 국제 스포츠조직이 이러한 스캔들에 휩싸인 것은 처음이 아니다. 근래의 대표적인 예로서 2002년 동계올림픽 개최지 선정을 둘러싼 IOC의 스캔들을 들 수 있을 것이며, 이번 FIFA 사태의 원인(遠因)이라고도 볼 수 있는 ISL 파산 사태에 관해 영국 언론인 제닝스(Andrew Jennings)는 Foul!: The Secret World of FIFA: Bribes, Vote Rigging and Ticket Scandals 라는 책을 통해 FIFA의 부패와 타락을 신랄하게 비판한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스캔들과 사방에서 쏟아지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IOC와 FIFA의 위상이 약화되거나 감소될 것이라고 전망하는 이들은 드물다. 오히려 많은 이들이 이처럼 끊임없는 악재에도 불구하고 20여 년 가까이 축구제국의 황제로서 자리하고 있는 블래터의 힘과 FIFA, IOC라는 거대 스포츠조직의 철옹성 같은 모습에 경탄하기까지 한다. 名士(celebrity)에 투자할 것인가, 조직에 투자할 것인가?   다른 한편으로 작금의 FIFA 사태는 현실의 스포츠 외교와 관련하여 오래도록 논의되어 온 두 상반된 입장에 대해 다시금 점검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즉 스포츠 외교의 강화와 영향력 확보를 위해 국제적 명망을 갖춘 어느 한 개인의 역량과 그를 통한 후속 세대 양성에 집중 투자할 것인지, 아니면 조직의 장악을 위한 다양한 전문가 양성에 집중할 것인지의 문제이다. 어느 한 쪽도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지만, 이보다 먼저 언급되어져야 할 것은 오늘날의 국제스포츠기구는 이미 그 규모나 수준에 있어 국가의 통제가 가능한 범위를 넘어서 있다는 것이다.   현재 IOC나 FIFA에 참여하고 있는 회원국들의 숫자는 국제연합의 회원국 수보다 많다. 이는 세계화를 통한 스포츠 시장의 확대와 메가 스포츠 이벤트에 대한 관심의 증가, 이와 결합한 상업주의가 가져온 결과이다. 그 규모나 조직을 감안할 때 IOC나 FIFA와 같은 국제 스포츠기구들은 국가의 통제에서 벗어나 ‘자율적’ 권위를 갖는 ‘국제체제’로 파악되어져야 한다는 주장은 이러한 배경에서 등장한다. 이들은 IOC나 FIFA를 IMF나 WTO와 같은 대표적인 국제체제와 같은 선상에서 다루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 기구들은 자체의 조직의 이해와 목적을 위해 활동하며, 이미 국가의 통제로부터 벗어나 작동하고 있다. 국제스포츠기구가 이와 같은 국제체제로서 작동할 수 있는 힘은 막대한 회원국의 숫자와 함께 소수에 권한이 집중된 피라미드식 조직, 그리고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메가 스포츠 이벤트의 개최에 대한 독점적 권한에서 발생한다. 지구상의 많은 국가들이 때로는 정치적인 이유로, 때로는 경제적인 이유로 이와 같은 메가 스포츠 이벤트의 개최를 희망하는 까닭에 개최국 선정에는 항상 치열한 경쟁이 뒤따르며, 각종 로비가 판을 치기도 한다. 이들 국제스포츠기구들은 개최국 선정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뿐만 아니라, 개최국이 선정된 이후에도 대회의 개최에 따르는 중요한 재정적 사항, 예를 들면 TV 방영권이라든지 공식후원업체의 선정 등에 대해서 개최국과는 무관하게 독점적인 권한을 행사한다. 대회의 개최와 관련하여 개최국이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란 유명무실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며,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이들 국제스포츠기구들은 국가와 국경을 초월하는 정치·경제적 권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역설적이게도 국제스포츠기구의 강대화를 가져온 세계화와 상업화, 스포츠 경기와 거대자본의 결합은 동시에 이와 같은 국제스포츠기구의 권력을 약화시키는 역할 또한 하고 있다. 왜냐하면 국제스포츠기구 또한 조직의 존속과 팽창을 위해서는 거대자본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이들 기구나 기구를 장악하고 있는 회장들의 권력이란 스포츠 부문에 한정되어 있는 특수하고 전문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매우 다양한 기관에 의해 선정되는 ‘스포츠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사’ 목록의 상위에는 그 절대 다수를 언론계와 산업계의 인물들이 차지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스포츠와 외교   스포츠 외교에 대한 다양한 정의가 있다. “만약 전통적 외교가 국가의 외교정책적 목표를 위한 수단이라면, 스포츠 외교는 그와 같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들을 위한 수단들 중의 하나”라든지 “국익달성을 위한, 스포츠를 전면에 내세운 대외정책 혹은 스포츠를 통한 대외관계의 처리”라고 정의된다. 이러한 정의들은 스포츠의 외교적 도구성에 주목하고 있다. 스포츠가 외교적 도구로서 동원되어지는 이유는 매우 명확하다. 그것은 스포츠 외교가 다른 외교적 방법들과 비교할 때 “위험 부담이 적고, 비용이 적게 들면서도, 놀라운 효과를 가져 오기 때문”이다.   스포츠 외교가 외교의 여러 방법들 중 하나로 받아들여지고 있음에서 알 수 있듯이, 현실에 있어 스포츠의 정치적 상징성과 도구적 유용성은 스포츠가 세계정치의 무대에서 외교적 도구로서 ‘동원’되는 것을 가능케 하였으며, 20세기 이후의 외교사를 되돌아볼 때 스포츠가 경직된 국가 간의 대화를 촉진시키거나 우호의 증진을 위해 매개체로 사용된 많은 예들을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사례들 중 가장 성공적 실례들 중의 하나로 자주 인용되는 것은 1970년대 냉전이 한창이던 시절 미·중간의 외교적 관계수립을 위해 동원되었던 탁구와 농구의 경우이다. 소위 ‘핑퐁외교’로 불리는 이 역사적 사건은 스포츠가 국가 간 외교적 교착(deadlock)의 상태를 전환시키는데 얼마나 효과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핑퐁외교’의 성공 이후 세계정치의 무대에서 스포츠의 도구적 유용성은 일면 매우 부풀려 선전되었고, 국가에 의해 쉽사리 동원될 수 있는 비정치적 도구라는 스포츠의 유용성은 국가를 필두로 한 다양한 행위자들의 정치적 의도와 결합함으로써 스포츠 외교 성공의 신화를 탄생시켰다.   21세기에 들어 스포츠 외교 성공의 신화는 소프트 파워(soft power) 개념의 등장 및 공공외교(public diplomacy)의 확산과 함께 결합하여 스포츠의 도구적 유용성에 대한 긍정적 측면을 부각시켰다. 국가의 힘이라는 것이 하드 파워(hard power)만이 아닌 소프트 파워에 의해서도 영향 받으며, 이와 같은 소프트 파워의 증진은 국가이미지 고양, 정체성의 변화 등을 통해 이루어지고 스포츠는 이와 같은 목적 달성을 위한 훌륭한 도구라는 주장이 각광받게 된 것이다. 박세리와 박찬호, 김연아와 박지성, 박인비와 류현진으로 대표되는 스포츠 셀레브리티(celebrity)들이 대한민국 이미지 고양에 미친 긍정적 역할에 대한 찬사를 반복하는 것은 새삼 진부하기까지 하다. 한국형 스포츠 공공외교의 추구   나이(Joseph S. Nye)는 국가의 소프트 파워는 크게 세 가지 요소로 만들어진다고 주장한다. ‘문화, 정치적 가치, 그리고 대외정책’이다. 다른 나라들에게 호감을 주는 문화를 보유해야 하고, 국내외적으로 표방하는 가치가 호소력이 있어야 하며, 또한 대외정책 면에서 정당하고, 도덕적으로 다른 나라들로부터 인정받을 만한 정책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작금의 FIFA 사태는 스포츠 외교, 혹은 스포츠 공공외교는 절대적으로 도덕적일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형 스포츠 공공외교가 추구해할 모습은 ‘다른 나라들에게 호감을 줄 뿐만 아니라 그 추구하는 가치가 호소력 있으며 정당한’ 것이어야 한다고 정리할 수 있다. 평창 드림 프로그램은 이러한 한국형 스포츠 공공외교의 한 모델로서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평창 동계올림픽과 한국 스포츠 외교: 방향성의 모색을 위한 제언”(『JPI 정책포럼』, 2011-26)을 통해 태권도와 평창의 드림 프로그램을 예시하면서 한국 스포츠 외교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 제언한 바 있다. 이때 한국 스포츠 외교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 “스포츠 외교 전문 기구 설립, 민간부문과 정부부문으로 나뉘어 있는 스포츠 관련 업무의 통합 및 단일화, 메가 스포츠 이벤트 개최에 있어 지역과 중앙의 균형 추구 및 중앙정부에 의한 조정” 등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2018년 평창 올림픽 개최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지금 우리의 스포츠 외교가 그 동안 얼마나 많은 발전을 이루었는가에 대해 높이 평가하기는 힘들 것 같다.   조직의 구축 및 확립과 함께 스포츠 외교 인력 양성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양질의 하드웨어를 확보했다고 할지라도 이를 작동시킬 수 있는 양질의 소프트웨어 없이는 무용지물일 뿐이다. FIFA와 블래터 사태, 그리고 나이의 언급을 감안할 때 우리가 추구해야 할 스포츠 외교 인력의 모습은 명확해지며, 필수적인 몇 가지 조건을 제시할 수 있다. ‘국제적 명성을 갖고 있을 것, 비리로부터 자유로우며 도덕적 정당성을 확보할 것, 국제무대에서의 의사소통 능력을 갖고 있을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꺼이 봉사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을 것’ 등이다.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 우리 국가가 보유하고 있던 몇 안 되는 영향력 있는 인사들이 본인의 실수, 국내외적인 정치상황, 혹은 예기치 못한 사건 등으로 그 영향력의 상당 부분을 손실하고 국제 스포츠 외교의 중심에서 밀려난 것은 무척 안타까운 일이다.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누구나 납득할 만한 영향력과 명성을 갖춘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 한국을 대표할 인사이다. 현재로서는 정몽준 FIFA 명예부회장 정도가 있으나, 그 혼자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IOC 내에서 우리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강력한 우군이 절실히 필요하다.   결국 한국형 스포츠 공공외교의 발전과 성숙은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국가차원의 정책적 지원과 조직의 구축, 외교인력 양성이라는 조건들이 충족된 이후에야 가능할 것이다. 드림 프로그램이라는 매우 탁월한 시작을 보인 한국의 스포츠 공공외교가 그 맹아(萌芽)적 단계를 벗어나 발전의 대로에 들어서길 기대한다. 現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연구센터 책임연구원. 2002년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함. 전공분야는 국제정치이고, 연구 관심분야는 국제협력/협상, 스포츠 정치/외교, 공공외교/ODA, 통일/남북관계 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