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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be’s Calculation in Japan’s Right-wing Shift
    저자
    HEO Uk(University of Wisconsin-Milwaukee)
    발간호
    2014-26
      In the recent past, Japan has shown right-wing shift, employing aggressive policies in territorial and historical disputes and strengthening its forces through collective self-defense. Since Abe Shinzo came to office, Japan’s right-wing shift is escalating further. Why is Abe Shinzo pushing for the right-wing shift? There may be two reasons. First, Abe Shinzo wants to stay in power for long by following the footstep of Koizumi Junichiro. Since 1992 when the Japanese economy started experiencing slow growth, there have been fifteen prime ministers. During that time period, the Liberal Democratic Party (LDP) lost power for the first time since 1955 and the average tenure of the prime minister was shorter than 1.5 years. However, the Japan New Party, the Japan Renewal Party, and the Social Democratic Party, which were in power from 1993 to1996, failed to rejuvenate the economy, resulting in the LDP’s return to power.   Koizumi Junichiro came to office in 2001. Due to the so-called “lost decade”, the Japanese people were tired of economic difficulties.  As no economic policies were working effectively, Koizumi appealed to nationalism by adopting right-wing shift. He repeatedly visited the Yasukuni War Shrine, although South Korea and China enraged. He did not value Japan’s relationship with other Asian neighbors. Instead, he focused on the US-Japan alliance. To support US military efforts, Koizumi dispatched the Self Defense Force (SDF) to Iraq. By doing so, he intended to boost Japan’s national pride. This policy move was well received and Koizumi stayed in power for five and a half years, which was the longest since 1987.   Abe Shinzo became Japan’s prime minister after Koizumi, but he had to step down after only a year later.  When he came to office again in 2012, he must have studied why he did not last long and what made Koizumi stay in power for a long time. His conclusion seems to be following Koizumi’s footsteps as the economy is still struggling with low growth and high unemployment. Just like Koizumi, Abe emphasizes the relationship with the US and does not seem to value Japan’s relationship with South Korea and China. For example, in the recent 2 + 2 meeting (defense and state secretaries) in October 2013, Washington and Tokyo agreed to revise the 1997 Guidelines for the US-Japan Defense Cooperation. With the new agreement, the US and Japan enhanced their military alliance through Japan’s collective self-defense. As Washington wants to reduce its military burden, the US supports Japan’s increased military role in Asia.  Conservatives in Japan has wanted to expand the SDF’s capabilities and roles to become a “normal” country. With the agreement, Japan reinterpreted its constitution concerning the SDF. This change has raised significant concerns in South Korea and China as Japan is strengthening its military force.   The Abe administration has also signaled potential change in Japan’s position in some historical issues, such as comfort women or enforced sex slavery. With the Kono statement in 1993, Japan publicly admitted its involvement in enforced sex slavery during World War II and extended a public apology, which made a significant contribution to the improvement in Japan’s relationship with South Korea. However, Abe argues that the announcement was not based on the evidence of coercion and thus it needs to be revisited. The Abe administration has also employed aggressive policies in territorial disputes (e.g. Dokdo/Takeshima and Senkaku/Diaoyu disputes). In sum, his foreign policy is very similar to Koizumi’s, meaning he wants to stay in power for long. Thus, his foreign policies target domestic audience.   Another reason for Abe’s right-wing shift is boosting national pride. Abe Shinzo is the first Japanese prime minister who was born after WW II and many of his cabinet members were also born after WW II. They grew up with high national pride as the Japanese economy rose to the second largest in the world. Yet, the sluggish economy significantly lowered their national pride and this new generation of conservative political leaders has had a hard time accepting the change. To boost Japan’s national pride and bring back the glory of their country in international arena, Abe wants to enhance its military role in international arena as the economy is not recovering quickly. The Wall Street Journal nicely summarized Abe Shinzo’s move to the right as follows, “Abe’s policies focused on denying the history of a war of aggression shifting from economic recovery and this change would reflect Japan’s intention to strengthen their military power.”* As no opposition party can constrain the LDP and Abe’s right-wing shift is largely appealing to the public, Japan’s right-wing shift is likely to continue. _____ * Yuka Hayashi, "Japan Leader Charts Path for Military's Rise," The Wall Street Journal (April 24, 2013) http://online.wsj.com/news/articles/SB10001424127887323551004578438253084917008 Uk Heo is Professor of Political Science at the University of Wisconsin and international scholar at Kyung Hee University. He is a co-author of South Korea's Rise: Economic Development, Power, and Foreign Relations (Cambridege University Press 2014) and South Korea since 1980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0).
  • 그린데탕트의 개념과 추진 방향
    저자
    이성우(제주평화연구원)
    발간호
    2014-25
    그린데탕트(Green Detente)의 개념 그린데탕트라는 용어는 2012년 녹색기후기금(GCF) 사무국의 국내 유치 및 18대 대통령선거 공약에 처음으로 공식화되어 나타났다. 그러나 그린데탕트에 대한 논의는 탈냉전시기부터 비무장지대(DMZ) 생태계 보전과 관련한 남북한의 공동사업 추진을 핵심 주제로 국내의 학계를 중심으로 논의되고 북한 측에 제안해오다가 최근 생태 및 환경에 대한 일반의 관심이 증대되면서 남북한 문제 및 통일문제와 결합되어 본격적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린데탕트라는 용어에서 알 수 있듯이 군사적 긴장과 대치가 상존하는 남북한 관계에 환경 분야의 협력을 통해서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평화공존을 구현하고 나아가 남북한의 상생과 공영을 통해 통일의 기초를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남북한 관계에서 상호불신과 군사적 대치중인 정치군사관계를 화해와 협력으로 전환하기 위한 정책적 수단으로서 환경분야에서 협력을 활용하자는 의도에서 출발했다. 환경분야에서 남북한의 상호협력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갈등적인 요소에 대한 협력으로의 기대와 가능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하는데 이런 점에서 남북한의 환경분야 협력은 가능성이 있다. 에너지난으로 인한 산림자원의 황폐화는 물론 풍수해와 같은 자연재해에도 취약해졌다는 점에서 북한 당국은 시급하게 산림자원을 복구해야 한다. 구체적인 예로는 병충해 방제 협력, 시범농장 운영 등 남북 간 농업협력, 한반도 생물종 및 생태공동조사 등 환경 인프라 구축사업 등이 있다. 이론적으로 논의하면 환경과 안보 이슈의 상호관계에 있어서 환경분야는 독립변수(independent variable)이며 안보분야는 종속변수(dependent variable)로 고정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환경분야에서의 협력이 군사안보분야의 냉전을 데탕트로 전환시키는 정책적 지렛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군사안보분야에서 데탕트를 통해서 환경분야의 갈등을 협력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가능성은 고려되지 않거나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본다. 일반적으로 사회과학에서 중심주제가 되는 개념이 종속변수가 되고 이를 설명하는 다양한 요인들을 논의하는 것이 상례인데 그린데탕트는 이와 반대로 관계가 설정되어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하여 그린데탕트를 가능하게 하는 요인들을 고찰할 필요가 있다. 환경을 이용한 low politics는 안보 문제인 high politics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low politics에서 협력을 가능하게 하는 기본적인 high politics의 조건에 대해서 분석적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DMZ에서 생태관련 협력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남북한의 신뢰구축이 우선되어야 한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환경분야의 협력이 가능한 안보조건, 군사적 신뢰의 수준, 경제분야의 교류협력 수준 등과 종합적으로 논의하고 이해해야 한다. 그린데탕트의 추진방안 평화통일의 주체인 남북한을 중심으로 그린데탕트가 추구하는 과제는 몇 가지 단계별 및 사안별로 정리된다.  (1) 한반도와 동아시아 역내의 환경문제와 자연재해에 공동으로 대응하고, (2) 세계적 차원의 기후변화로 인한 새로운 환경문제에 지역차원의 협력체제를 구축하는 것은 물론, (3) 통일 시대에 대비하여 북한경제를 위한 환경친화적인 개발정책을 추진 및 지원, (4) 한반도 환경공동체를 건설함으로써 남북한의 대결과 긴장을 완화하고 (5) 궁극적으로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추구하는 통일정책 및 안보정책으로 정리될 수 있다. 그린데탕트의 추진을 위한 구체적 사업으로는 (1) 북한의 산림복구 등 한반도 국토환경 복원, (2) 한반도 차원의 기후변화 공동대응을 위한 제도마련, (3) 한반도 환경자원의 공동 관리 및 이용과 같은 비전통적 안보문제인 환경분야의 협력과 공동대응으로 안보·통일정책과 환경정책의 융합을 통해서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체제 확립과 한민족 공동체 복원의 기반 조성이라는 정치적 목표를 달성한다는 점에서 대목표, 하위목표, 추진사업으로 구체적이고 세분된 계획을 제시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그린데탕트도 기능주의적 접근의 일환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대한민국은 1989년 노태우 정부 시기에 발표한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 그리고 김영삼 정부가 발표한 민족공동체 통일방안 모두 상호교류와 협력을 추진하는 화해협력을 통해 신뢰가 구축되면 이를 통해서 남북한이 연합하고 궁극적으로 통일국가의 단계로 간다는 계획이다. 한반도의 평화 정착과 통일국가를 위한 첫 단계로 남북한관계의 신뢰회복을 위해서 기능주의적 접근을 선택해왔는데 남북관계 개선에 기능주의가 적절하게 작용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북한에게 기능주의적 협력은 북한당국이 주민에 대한 통제력을 포기하는 것이며 주민에 대한 통제력의 상실은 북한이라는 국가 체제의 생존에 중대한 위협이다. 환경분야뿐 아니라 비정치적인 low politics에서 협력을 확산하여 high politics인 한반도에 평화와 통일의 시대를 당겨오기 위해서는 다음의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첫째, 남북한 상호관계에서 남한은 북한을 흡수통일의 대상으로 상정하지 않고 북한은 남한을 적화통일의 대상으로 상정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하게 한다. 둘째, 북한의 입장에서 환경분야에의 협력을 통해서 북한에 적절하고 정당한 경제적 이익을 보장한다. 셋째, 남한의 입장에서 북한이 가지는 경제적 이익에 상응하는 비경제적 이익을 남한에게 보장하는 형태로 협력을 확대한다. 넷째, 북한과 협력을 통해 발생하는 이익은 남북한이 공유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나간다. 現 제주평화연구원 연구위원. 미국 University of North Texas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미국국제정치학회가 주관하는 International Studies Quarterly의 Referee로 활동한 바 있음. 저서로는 『2011 한국인의 평화관: 통일정책과 여론』 및 『2010 한국인의 평화관: 외교정책과 여론』 등이 있음.
  • 한중 정상회담에 대한 미국의 시각
    저자
    우정엽(아산정책연구원)
    발간호
    2014-24
      한중 정상회담을 마치고 각계에서는 이번 회담이 갖는 의미를 분석하는 데에 노력하고 있다. 특히 한중 회담이 단순한 양자 간의 정상회담이 아닌 동북아의 세력 균형을 흔들 수 있는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데 주목하며, 이번 회담이 기존 한국 외교의 근간인 한미 동맹에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해 많은 기대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한중 정상회담 이후 국내 언론을 중심으로 한중 간의 급격한 관계 개선이 한미일 안보 공조를 저해하는 방향으로 진행될 뿐 아니라 미국과의 동맹을 약화시키는 계기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가 제기된 것이 사실이고, 정부에서도 이번 회담의 내용을 미국 측에 설명하겠다고 이야기 한 바 있다.   과연 미국의 전문가 그룹에서는 이번 한중 정상회담에 대하여 어떠한 평가를 내리고 있을까?     첫째, 미국 측에서는 한중 정상회담 공동 성명과 기자회견에서 한국이 견지한 입장이 미국은 물론 일본에서도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이라 보고 그에 대한 한국의 노력을 대체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분위기이다. 정상 간에 어떠한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정상회담에서 공식적인 결과물로서의 공동 성명에서 어떠한 내용이 어떠한 표현을 통하여 담겨있는가를 중요하게 보고 분석하고 있다. 양국 정상이 발표한 공동 성명에서는 일본의 역사 왜곡과 우경화 움직임에 대해 전혀 언급을 안했을 뿐 아니라, 부속서에서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와 관련하여 자료의 공동연구 등에서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는 선에서 멈춤으로써 한국이 한미동맹의 틀 안에서 한중 관계를 이끌어 가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또한 시 주석이 제안한 광복 70주년 기념식 공동 개최안에 대해서도 유보적인 입장을 제시한 것 또한 한국이 대일 관계 개선에 대해 완전히 손을 놓은 것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이번 방한에서 중국의 의도가 중국이 최근 연이어 주장한 아시아 주도의 아시아 안보 질서의 적용 가능성을 시험해보는 무대였다는 점에서 우리 정부가 적절한 외교력을 발휘하여 중국으로 하여금 한미 동맹 관계를 현실적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관계로 인식하게끔 했다고 보고 있다. 중국으로서는 예민할 수밖에 없는 한미합동 훈련이나 미사일 방어체제 문제에 있어서도 무난히 미국이 수용할 수 있는 정도의 수준에서 한중 간의 의견이 모아졌다고 보고 있다.   이러한 공동 성명의 내용을 통해 나타난 한국의 입장에 대해 미국 측이 충분히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한편, 시진핑 주석이 떠나기 전 주철기 외교안보수석이 브리핑을 통해 두 정상 간에 일본의 역사수정주의적 태도가 계속되고 있으며 자위권 확대까지 추진하는 데에 우려하고 있고 일본이 고노담화를 계승한다고 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이를 지속적으로 폄훼하는 시도를 보이는 데 유감을 표명했다고 전한 것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주철기 수석의 브리핑이 한중 정상회담의 공동 성명에 일본 문제가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한 중국 측의 불만을 수용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인지, 중국이 강하게 일본을 비판하는 것에 반해 우리 측의 대일 입장이 약한 것은 아니냐는 국내의 불만 여론을 의식한 것인지 해석이 분분하나, 결과적으로 공동 성명에 중국의 요구를 포함하지 않음으로써 나타난 우리의 입장을 훼손했다고 평가하는 데에는 큰 이견이 없는 듯하다.   둘째, 미국 측에서는 한중 정상회담에서 나타난 내용이 과연 중국의 대한반도 정책에 근본적 변화를 시사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우선 우리가 중국 측에 큰 기대를 걸고 있는 북핵 문제 해결에 관하여 이번에도 역시 한반도에서의 핵무기 개발에 확고히 반대한다는 표현에 머물게 됨으로써 중국이 그동안 견지해온 한반도 비핵화 입장에 그친 것일 뿐 북한의 핵 문제 해결에 중국이 보다 발전된 입장을 낸 것이라고 평가하기에는 부정적인 입장이다.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한반도 핵무기 반대라는 것이 공동 성명에 들어간 것으로 중국의 북한 핵문제에 대한 진일보한 입장을 확인할 수 있다고 평가하고 있는 듯하나, 미국 입장에서는 이번 한중 정상회담의 공식적 결과물을 통해서 보면 그렇게까지 판단하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 중론이다. 또한 한반도 통일과 관련하여서도 남북이 대화를 통해 관계를 개선하고 화해와 협력을 해나가는 것을 지지한다고 하는 기존의 입장에서 벗어나지 않음으로써 한중 간에 겉으로 보이는 관계의 진전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정책 방향의 공조에는 아직도 갈 길이 요원하다고 보는 평가가 주를 이루고 있다. 북한과 관련된 부분에 있어서는 북한을 특정하지 않고 한반도 비핵화를 주장하거나 한반도 통일에 있어서도 기존의 주장과 다를 바 없는 입장을 견지함으로써 국내 일부 언론에서 이야기하듯 중국이 북한보다 한국을 더 중시한다고 평가하는 것은 어렵다는 것이다.   셋째, 과연 중국은 북한에 무엇을 해줄 것인가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우리로서는 중국 주석이 순방이 아닌 단독 방문으로 우리나라에 왔다는 점, 그리고 북한의 새로운 지도자를 만나기 전에 우리와 먼저 정상회담을 했다는 점, 그리고 아직까지 시진핑 주석과 김정은 사이의 만남이 전혀 예정되어 있지 않아 보인다는 점을 들어 이번 시진핑 주석의 방한이 역사적으로 보아 굉장히 예외적이고 그것이 북한에 대해 큰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그러한 사실이 역사적으로 예외적인 경우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너무 큰 의미는 두지 않는다는 방향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과거 이명박 대통령 시절에는 중국이 남북의 정상을 만나는 데 시차가 일주일도 걸리지 않았다. 특히 2011년 5월에는 상하이 엑스포 참석차 중국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과 한중 정상회담을 가진지 3일 만에 김정일을 중국으로 불렀으며, 이 과정에서 이명박 대통령에게는 김정일의 방중 예정 사실조차 알려주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 당시에는 중국이 북한을 일방적으로 편을 들어준다는 비판을 희석시키기 위해 한국과 정상회담을 한 것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이러한 가까운 선례들로 판단해보면, 중국이 북한을 완전히 도외시한 채 한국과의 관계 개선만을 목표로 행동하고 있다고 보는 것은 어렵다는 것이다. 중국이 북한에게 어떠한 선물을 줄 것인가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되는 것도 당연하다. 또한 북한이 중국의 선물을 받기 위해 어떠한 답례품을 준비할 것인지, 아니면 중국의 대한반도 정책에 대한 불만으로 또 다른 도발을 감행할 것인지 알아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번 한중 정상회담을 보는 미국의 반응은 미국과 일본이 받아들일 수 있는 선에서 한중 정상회담이 이루어졌다고 보는 것이 중론인듯하다. 국내 일부 언론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번 한중 정상회담이 한미일 간의 공조는 물론 한미동맹에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은 지나친 확대 해석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북한의 비핵화와 같은 실질적인 정책의 내용과 관련된 부분에 있어서는 중국의 입장이 그간의 입장에서 변화하여 한국의 정책 방향에 동조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라는 예측을 하기에는 아직 아무런 실질적인 단서가 없다는 판단이다. 또한 미국 측에서 지적하는 것은 보다 장기적으로 보아 한중 간의 관계가 개선되려고 한다면 양국 간에 보다 투명한 관계가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가 어쩔 수 없이 감추는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외교상 아직 한중간에 불투명한 부분이 많아서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보고 있다. 특히 시진핑 주석의 서울대 강연과 같은 부분에 있어서 양국간에 조율된 부분이 있는지를 지적하는 부분에서는 우리가 앞으로 유념해야할 것이 무엇인지 말해준다. 결국 중국은 중국의 국가적 이익에 가장 부합하는 방향으로 대한반도 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하고 있고, 그들이 구현하고자 하는 새로운 질서에 주변국인 한국을 포함시키려 노력하고 있는 형국이며 우리는 그에 대해 우리의 이익을 지키는 방향으로 강대국 사이에서 끊임없이 외교안보의 정책 방향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바탕에는 한미동맹의 안정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기획: 편집: 우정엽 現 아산정책연구원 워싱턴 사무소 소장.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Georgetown대학교에서 정책학 석사학위, 미국 University of Wisconsin at Milwaukee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한국학연구소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재직. 주요 연구분야는 정책결정 과정에서의 여론문제, 제3국의 내전 무력개입에 관한 국제분쟁 등.
  •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와 평화: 평화의 2030 아젠다 포함 과정에서의 논쟁과 그 의미
    저자
    손혁상 (경희대학교 공공대학원장 / 국제개발협력센터장)
    발간호
    2016-45
      2015년 9월 UN총회에서 193개국이 합의한 2030 개발의제인 ‘지속가능발전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SDGs)’는 2030년까지 15년간 국제사회가 지향하는 발전이정표라고 할 수 있다. 지속가능발전목표는 사람, 번영, 지구, 평화, 파트너십의 5P(peace, prosperity, planet, peace, partnership) 구성요소에 기반을 두어 17개의 목표와 169개의 세부목표를 제시하였다. SDGs는 2001년부터 2015년까지 개발과 관련된 글로벌 규범의 기준이 되었던 새천년개발목표(Millennium Development Goals, MDGs)를 대체하는 과정에서 아직 달성되지 않은 MDGs 목표를 계속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과 새로운 대안적 목표를 제시해야 한다는 주장 간의 차이를 넘어 결국 사회개발 중심의 MDGs를 계승하면서 새롭게 경제발전, 불평등, 지속가능한 환경과 평화 아젠다 등을 포함하였다. SDGs의 목표가 포괄적이고 변혁적임에도 불구하고, 일부에서는 목표와 세부시행과제가 지나치게 많고 230개의 측정지표까지 고려하면 개별 국가가 이 모두를 이행하기에는 비현실적이라는 비판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개도국과 선진국, 시민사회, 국제기구 등의 개발주체들은 현재 인류가 당면하고 있는 복합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포괄적 접근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평화가 독립적인 목표(SDGs의 16번째)의 범분야 이슈로 포함되었다는 점이다. SDGs의 16번째 목표는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평화롭고 포용적인 사회를 증진하고 모두가 정의에 접근할 수 있게 하며, 효과적, 책무적, 포용적 제도를 구축한다”이다. Post 2015 개발아젠다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2012년에만 해도 UN의 정치적 현실을 고려할 때 평화가 글로벌 발전 아젠다에 포함될 거라고 예상하기 어려웠고, 이후의 협상과정에서도 가장 논쟁적인 이슈이기도 했다. 평화의 2030 개발 아젠다 포함에 대한 논쟁 평화, 거버넌스, 정의를 post-2015 아젠다에 포함할 것인가, 포함한다면 어떠한 비중과 방법으로 할 것이냐는 문제는 드래프트 작성을 담당한 공개작업반(Open Working Group)의 논의과정에서 가장 논쟁적인 이슈였다. 평화와 관련된 핵심 쟁점은 많았지만 일부 국가가 제기한 내용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평화를 포함하면 개발아젠다가 ‘안보화’할 우려가 있다. 둘째, 평화는 post-2015 논의과정에서 범주를 제시한 ‘Rio+20 아젠다’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셋째, 개발은 평화를 가져오지만, 평화는 개발을 가져올 수 없다. 이와 더불어 해결해야 할 과제 중의 하나는 불법자금흐름이나 무기거래와 같은 초국가적 분쟁요인을 과연 선진국들이 논의할 준비가 되어 있느냐 하는 점이다. 공개적으로는 평화가 포함되는 것을 찬성하면서도 개별 국가의 국익을 포기할 의향이 있는가 하는 점은 불투명하였다. 브라질과 니카라과를 비롯한 일부 국가들은 만약 post-2015 아젠다에 평화조항이 들어간다면, 개발 프레임워크가 전반적으로 ‘안보화’할 위험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 주장에 따르면 개발원조가 사람들의 복지와 발전에 쓰이기보다는 특정 국가의 안보 아젠다를 실현하는데 사용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 대해 평화이슈 옹호 측은 목표의 성격을 사람들의 안전에 초점을 두면서 반대 측을 설득하였다. 즉 개발 아젠다나 개발원조의 ‘안보화’ 우려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빈곤감소와 지속가능발전을 위해서는 평화와 안정유지가 불가결한 요소라는 점을 강조하였던 것이다. 구체적으로 국가안보나 국제평화나 안보 이슈는 의도적으로 다루지 않고, 평화 관련 세부목표의 성격을 사람들로 하여금 폭력과 불안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방향으로 제한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평화 관련 목표가 주권침해의 가능성을 가질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는 post-2015 아젠다가 강제성이 없는 국제규범이니만큼 이를 통해 군사개입에 대한 어떠한 법적 기반을 제공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Post-2015 개발 아젠다에 대해 UN논의의 출발점이 되는 ‘Rio+20’이 사회, 경제 발전 및 환경보호를 세 축으로 하고 있으므로 평화를 포함할 의무가 없다는 주장에 대해서 평화옹호자들은 평화증진이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Rio+20’ 아젠다에 기초하면서 동시에 더욱 강화될 것이라는 대응논리를 전개했다. 실제로 1992년 리오선언 제22원칙은 “평화, 개발, 환경보호는 상호의존적이고 불가분의의 관계”라고 밝히고 있다. 또한 ‘Rio+20’이 2030 개발 아젠다 논의의 중요한 출발점인 것은 사실이지만 어느 조항에도 사회, 경제 발전 및 환경보호 아젠다만을 다뤄야 한다는 지침은 없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국제사회의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는 점을 주장했다. 결국 ‘Rio+20’ 아젠다 역시 폭력적 갈등과 불안정을 감소시키지 않고는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는 점을 담고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게 되었다. 평화 이슈 배제를 주장하는 측은 평화와 개발이 일방적 관계를 가진다는 입장이었다. 즉 평화, 안보와 개발이 상호연관성을 가지고 있지만, 분쟁과 불안정의 주원인은 빈곤과 불평등이며, 저개발, 빈곤과 불평등을 post-2015 아젠다의 우선순위에 두고 이행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분쟁이 감소하고 평화가 확보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평화 이슈 포함을 주장하는 측은 불안정과 부패가 있고 또 비포용적 사회에서도 경제발전이 가능한 건 사실이지만, 동시에 이러한 발전은 장기간 지속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또한 내부 갈등요인을 도외시하는 개발프로그램은 실제로 갈등요인을 악화시킬 수 있으며, 폭력이 통제되지 않는 사회에서는 개발목표를 달성하기가 훨씬 어렵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개발과 평화의 관계는 역사적 사실에 입각해서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개발과 평화의 상관관계 개발과 평화의 관계는 현재 전 세계적 폭력과 분쟁 현황을 살펴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통계적으로 절대빈곤은 분쟁의 위험이 높은 지역에 더욱 집중되어 있다. 2005년에는 절대빈곤 상태에 있는 세계인구의 20%가 분쟁지역이나 취약국가에 살고 있었다. 그러나 2015년에는 이 비율이 43%까지 증가했으며, 최상의 시나리오를 가정하더라도 2030년에는 63%까지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 절대빈곤상태가 집중된 지역에서는 분쟁과 불안정이 절대빈곤을 탈출하기 어렵게 할 것이라는 것은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최근에는 전쟁을 포함한 군사적 분쟁이 급격하게 증가하였다. 특히 2014년은 1989년 이래 분쟁으로 인한 사상자가 가장 많은 해였다. 이 중 시리아 내전의 사상자가 가장 많지만, 다른 지역에서도 무력분쟁으로 인한 사상자 수가 늘어났다. ‘웁살라 갈등데이터 프로그램(Uppsala Conflict Data Program)’은 “2013년에 가장 사상자가 많았던 10개의 분쟁사례 중에 8개가 2014년 더욱 폭력화”되었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또한, 세계인구 중 122명 당 한 명은 난민, 강제이주자, 또는 망명을 신청하였는데 이는 분쟁과 폭력문제 해결 없이는 개발의 성과를 성취하기 어렵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평화가 SDGs에 포함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리는 단순하지 않다. 절대빈곤인구를 반으로 감소시키자는 MDGs의 첫 번째 목표는 중국과 인도의 경제성장에 힘입어 목표연도인 2015년에 달성되었다. 그러나 2030년까지 절대빈곤을 포함한 모든 형태의 빈곤을 지구상에서 종식시키자는 SDGs의 첫 번째 목표는 분쟁문제 해결 없이는 불가능하므로 SDGs에서 개발과 평화는 불가분의 관계를 가진다고 보는 것이다. 이는 2030년까지 전 세계 절대빈곤인구의 75%가 분쟁이 심한 국가에 거주할 것으로 예측한 연구결과에서도 뒷받침된다. 또한, 무력분쟁과 불안정이 MDGs 달성의 장애 요인으로 작용한 경험도 평화가 개발 아젠다에 있어 우선순위를 가지게 하는 이유가 되었다. 1981년부터 2005년까지 심각한 폭력사태를 경험한 국가는 폭력사태를 경험하지 않은 국가보다 빈곤율이 21% 높다는 연구가 있으며, 2015년에 MDGs 8개 목표 중 단 한 개도 달성하지 못한 일곱 개 국가는 모두 심각한 폭력사태에 영향을 받았다. 개발에서 평화의 중요성은 자원의 효과적 사용 측면에서도 강조된다. 2012년에만 폭력사태에 대응하는 비용이 미화로 약 9조 5천억 달러에 달했다. 2014년에는 전 세계적으로 보면, 공적개발원조(ODA)로 미화 1달러가 사용될 때 국방비는 13달러가 지출되었다. 더불어 폭력에 따른 비용은 단지 개도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선진국에도 해당되며 전 세계적으로 50만 명이 넘는 인구가 매년 폭력에 희생되어 사망하고 있다. 예컨대, 2011년에는 영국에서 일어난 폭동으로 약 3억 파운드에 달하는 손실과 복구비용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이는 평화와 개발의 연계목표가 더 이상 개도국만의 과제가 아니라 모든 개별국가들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된다는 점을 시사한다. 나가며 SDGs는 그동안 개발과 평화의 관계에서 경제적 성장과 불평등 해소가 비폭력과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주류적 개발담론에 대하여, 그 반대의 인과관계도 가능할 뿐만 아니라 평화 없이는 경제발전과 사회발전, 지속가능한 환경이 유지될 수 없다는 점을 국제사회가 합의한 전환적 계기였다. SDGs가 지나치게 많은 목표와 세부이행과제로 실현가능성이 낮거나 개별 국가들이 선택적으로 목표를 우선순위화해서 실행할 것이라고 비판받고 있지만, 향후 15년간 지구적 빈곤과 사회, 경제, 환경 문제해결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는 없다. 특히 거버넌스 및 정의와 연계하여 평화이슈가 포함된 것은 한국사회가 가지고 있는 민주주의 심화 과제 같은 국내 정책과도 연결된다. 향후 비폭력, 안정과 평화를 위한 노력이 지구적 빈곤문제 해결에 효과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국내 차원의 심층연구를 기대해 본다. 現 경희대 공공대학원 원장 및 국제개발협력연구센터 센터장. 현재 한국국제개발협력학회장과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외교부 정책자문위원과 한국국제협력단 비상근이사 및 총리실 국제개발협력위원회 민간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음.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미 펜실베이니아대학 정치학과 석사 졸업 및 박사과정 수료 후 경희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음. 주요 연구분야는 국제개발 분야를 중심으로 ODA 정책, 개발 파트너십, 개발 NGO 등 임. 주요 저서와 역서로는 『시민사회와 국제개발협력(2015)』(저서), 『구성주의 이론과 국제관계 연구 전략(2011)』(공역) 등이 있음.
  • 유럽연합의 새 지도부 선출과 의미
    저자
    도종윤(제주평화연구원 연구위원)
    발간호
    2014-30
      유럽연합 새 지도부가 완성되었다. 지난 5월 22~25일 치러진 유럽의회 선거가 끝난 후 유럽  정상들은 향후 유럽연합을 이끌 지도부 TOP 4(유럽의회 의장, 집행위원장, 상임의장, 외교대표)를 선출하기 위해 긴 협상을 벌였다. 이미 선출된 유럽의회 의장과 집행위원장에 이어, 8월의 마지막 토요일 브뤼셀에서 열린 특별유럽정상회담에서 상임의장과 외교대표가 결정되었다. 짧게는 2.5년, 길게는 5년 후까지 유럽연합을 이끌 지도부의 윤곽이 그려진 것이다.   정파별, 국가별 배분과 성향: 조화와 안배   이번 지도부 선출에서 관심을 끌었던 것은 2009년 11월 리스본 조약 발효 후, 처음으로 조약에 근거해서 집행위원장을 선출했다는 점이었다. 유럽연합의 거버넌스가 ‘민주주의 결핍’에 빠져있다는 지적에 따라, 리스본 조약은 집행위원장 선출에서 유럽의회 선거 결과를 고려할 것을 명시하였다(TEU 7조 17항). 그리고 비록 조약에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비슷한 비중을 가진 나머지 TOP3 자리도 여러가지 정치적 안배가 필요하였다. 올 유럽의회 선거에서 유럽회의주의(Euroscepticism) 정파의 약진에도 불구하고, 양대 정파인 온건보수 계열의 ‘유럽인민 정파(EPP)’와 사회주의 계열의 ‘사회민주 정파(S&D)’가 무난히 1,2위를 유지함으로써 집행위원장과 의회 의장도 양 정파가 하나씩 나누어 가지게 되었다.   2009년의 지도부 선출에서는 리스본조약이 발효되기 전 이미 선출된 기존의 집행위원장과 의회 의장은 제외하고 새롭게 요청된 상임의장과 외교대표 두 자리를 누가 차지할 것인가에 대한 관심에만 집중되었다. 관심의 폭도 정파별, 국가별 배분보다는 인물의 중량감으로 모아졌다. 이후 5년 남짓 제도적 기반이 어느정도 갖춰진 상태에서 TOP4의 자리가 동시에 바뀌게 되었기 때문에, 이번 선출에서는 인물보다는 정파별, 국가별, 성별, 지역별 변수가 어떻게 작용할 것인가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지도부 구성의 고려 사항은 좌/우 균형, 여성과 동유럽 배려였다. 이런 구도 속에서 장-클로드 융커 집행위원장(중도우파, 남성, 서유럽), 마틴 슐츠 의회 의장(중도좌파, 남성, 서유럽)이 먼저 그림의 한쪽을 채웠다. 그렇기 때문에 나머지 두 자리도 정파별로 역시 좌·우가 균형을 이룬 가운데 여성과 동유럽 배려가 있을 것으로 점쳐졌다. 더 나아가 현재 캐서린 애쉬턴 외교대표가 여성이므로, 차기 상임의장 후보로는 여성인 덴마크의 헬레 토닝-슈미트(중도좌파) 총리가, 외교대표로는 남성인 폴란드의 라덱 시코르스키(중도우파) 외교 장관 등이 유력하게 거론되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도널드 투스크(폴란드) 상임의장, 페데리카 모게리니(이탈리아) 외교대표로 배열이 맞춰졌다.   모게리니 외교대표: 신데렐라 또는 억척스런 그녀   지난 7월 임시 정상 회담에서만 해도 토닝-슈미트 상임의장, 시코르스키 외교대표 체제가 강력한 지지를 받았다. 그런데 왜 갑자기 선출에 변화가 생긴 것일까? 투스크-모게리니 체제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우선, 투스크 총리가 강력한 후보로 떠오르게 된 데에는 역설적으로 모게리니가 외교대표 후보로 갑자기 떠올랐기 때문이다. 차기 EU외교 대표로 내정된 모게리니 현 이탈리아 외무장관은 올 2월에 입각하기 전까지만 해도 무명에 가까운 정치 신인이었다. 외교대표 지명에 앞서 그녀에 대한 평가도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 7월 유럽정상 회담에서 그녀의 이름이 거명되기는 했지만 1순위는 아니었다. 그녀에 대한 부정적인 두 가지 이미지 때문이었다.   첫째, 그녀가 지나치게 친 러시아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크라이나-러시아 긴장관계가 한창이던 지난 7월 9일 열린 러시아-이탈리아 외무장관 회담은 하나의 예이다. 여기서 모게리니 장관은,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유럽의 러시아에 제재는 ‘목적’이 아니라 ‘도구’일 뿐”이며, “그것도 효과가 분명할 때만 사용되어야 한다”며 러시아에 대한 유럽의 제재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더욱이 7월부터 이탈리아가 유럽이사회의 순회의장국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이탈리아 외무장관의 태도는 유럽연합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었다. 모게리니의 친 러시아적 태도는 동유럽 회원국들로부터 여전히 불식되지 않고 있다. 리투아니아의 그리바우스카이트 대통령은 30일 유럽정상회담에서 모게리니 후보 선출 때 기권표를 던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러시아-이탈리아 회담의 주된 목적이 러시아-이탈리아 간 가스파이프라인의 건설에 관한 것이었고, 이탈리아의 에너지 정책의 중요한 국면과 맞닿아 있었기 때문에 모게리니의 대러시아 태도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둘째, 그녀가 너무 젊고 경력도 일천하다는 점이다. 그녀가 상대해야 할 주요국 외교대표들은 올드 보이들이다(존 케리 71세, 왕이 61세, 세르게이 라브로브 64세, 기시다 후미오 57세).  정치 경력도 짧아 유럽 28개국을 대변할 외교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우려를 낳았다. 그러나 정치인들의 나이가 젊어지고 있다는 것은 늙은 유럽의 요즘 추세다. 플로렌스 시장으로 일하다 중앙무대를 거치지 않은 채 일약 총리에 오른 마테오 렌지 현 이탈리아 총리는 겨우 39세이다. 에스토니아의 타비 로이바스 총리는 그보다 어린 35살이다. 또한 오스트리아의 세바스티안 쿠르츠 외무장관은 겨우 28세다(게다가 그는 잘 생기기까지 하였다). 그에 비하면 모게리니는 우려할 정도로 젊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모게리니는 모국어 외에 영어, 불어를 자유롭게 구사하고 스페인어도 할 줄 알기 때문에 영어 밖에 할 줄 모르던 애쉬턴에 비해 열린 귀를 가지고 있다. 친 러시아적 성향으로 알려졌지만 사실 그녀는 이슬람 종교를 주제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또한 엄청나게 활동적이다. 지난 2월에 이탈리아 외무장관이 된 이후 크로아티아, 요르단, 이집트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칠레, 콜롬비아, 몰도바 등을 방문하였고, 7~8월에만 스트라스부르그, 브뤼셀, 파리, 키에프 등을 방문하였다. 모게리니가 외교대표로 내정된 데에는 현재 유럽이사회의 순회의장국이 이탈리아였다는 점과 이탈리아 정부가 전폭 지원했다는 점도 크게 작용하였다. 7월 이후 모게리니가 외교대표 후보로 거론되기 시작하자, 마테오 렌지 이탈리아 총리는 모스크바에 대한 경제 제재를 강화하였다. 8월 29일 정상회담 시작 전날, 파리에서 열린 중도좌파 유럽지도자회합에서는 마침내 외교대표로 모게리니를 밀 것을 합의하기에 이르렀다.   투스크 상임의장: 보이지 않는 독일의 손   중도 좌파이자 서유럽 출신 여성인 모게리니가 외교대표로 부상하자 상임의장은 자연스레, 우파이자 동유럽 출신으로 굳어졌다. 이에 근접한 후보로는 안드루스 안십 전 에스토니아 총리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우파이지만 유럽 정치 지형의 주요 정파인 유럽인민정파(EPP)가 아닌 자유와민주연대(ALDE)에 속한 정치인이었다. 따라서 유럽인민정파 내의 동유럽지도자가 급히 물색되었다. 그리고 그 적임자로 도널드 투스크 현 폴란드 총리가 부상하게 되었다.   원래 투스크 총리는 유럽연합으로 진출보다는 국내 정치를 계속 할 뜻을 내비쳤다. 경제위기와 재정문제로 압박을 받고 있는 프랑스도 유로존 국가가 아닌 폴란드가 상임의장 자리를 맡는 데 부담을 느꼈다. 또한 그가 외국어에 능숙하지 않은 것도 걸림돌이었다. 상임의장 내정 후 가진 기자 회견에서 외국어 능력에 대한 어느 기자의 질문에 대해 그는, “취임하는 12월 1일 이전까지 영어 실력을 더욱 갈고 닦겠다(polish my English).”라고 받아넘겼지만, 여전히 우려는 가시지 않고 있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투스크 총리가 선출된 데에는 표면적으로는 그가 친유럽통합주의자이자, 시장주의자라는 이유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보다 복합적인 면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는 외교 면에서 대 러시아 정책의 강경파로 꼽힌다.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서도 높은 톤으로 비난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기때문에 오히려 모게리니 외교 대표를 견제하며 조화를 이루기에 좋은 조합이다. 유럽연합 탈퇴 압박을 넣고 있는 영국의 카메론 총리조차 투스크 총리의 인선에 대하여 ‘기쁘게 받아들인다’고 표현하였다. ‘EU옵저버저’ 지(紙)는 한 정치 평론가의 말을 인용하여, “투스크의 상임의장 선출은 유럽이 러시아에 보내는 신호이다.”라고 평하기도 하였다.   무엇보다 의미심장한 것은 유럽연합의 이번 지도부 선출에서 보이지 않는 손을 현란하게 놀린 것이 독일이었다는 점이다. 유럽정치에 별 뜻이 없던 투스크 총리를 강력히 밀어준 것은  메르켈 독일 총리였다. 장-클로드 융커 집행위원장 내정자를 후원한 데 이어, 투스크 상임의장까지 TOP 4 중 두 자리가 메르켈 총리의 영향력에 의해 지명되었다. 정파는 다르지만 마틴 슐츠 유럽의회 의장이 독일인인 것을 감안하면 유럽연합에서 독일의 영향력은 보다 확대된 셈이다. 독일과 쌍두마차로 유럽연합을 이끌던 프랑스의 영향력은 눈에 띄게 줄었다. 과도한 정부 재정 적자로 유럽연합의 견제를 받고 있는 프랑스는 ‘유로존 정상회담’ 개최를 추진하고 있지만, 비유로권 국가인 투스크의 내정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집행위원회의 경제담당 집행위원으로 자국의 인사를 추천할 것을 타진하였지만, 유럽연합이 규정하고 있는 재정적자 한계를 넘어선 프랑스에게 경제 관련 자리를 보장해 줄 수 없다는 독일의 경고만 받았을 뿐이다.   과제와 의미: 경제, 동쪽의 위기, 영국 그리고 신세대   유럽연합의 새 지도부가 당면한 과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제도적으로 리스본조약의 본격적인 적용이다. 조약은 2009년부터 발효되었지만 주요 규정들이 올해 11월부터 적용되기 때문에(예컨대 집행위원 수는 전체 회원국 수의 2/3를 넘지 못한다) 유럽위원회의 집행위원도 회원국 안배에 따라 선임해야 한다. 장-클로드 융커 집행위원장 내정자는 “여성 집행위원 10명을 무조건 할당하겠다”고 공헌하였는데, 회원국들이 정파별, 성별, 안배를 국내 정치 사정에 따라 과연 얼마나 따라줄지는 의문이다.   둘째, 현안을 타개할 프로그램 마련이다. 헤르만 반 롬푸이 현 상임의장은 정상회담 자리에서 신임 지도부가 풀어야 할 과제를 크게 세 가지로 제시하였다. 첫째 유럽의 저성장 경제, 둘째 우크라이나 사태를 비롯한 안보위기, 셋째 유럽연합 내에서 영국의 입지 확인 등이다. 유럽의 저성장은 프랑스를 비롯한 몇몇 국가의 재정 정책 조율 기조와 맞물려 향후 끝없는 논란거리가 될 것이다. 유로존 정상회담의 개최여부도 중요한 이슈다. 또한 향후 유럽의 안보 환경은 동쪽을 중심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유럽과 러시아 사이의 완충지역 국가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숙제를 던져주었다. 마지막으로 영국은 이번 지도부 인선에서 큰 역할을 하지 못함으로써 유럽연합 내에서 그들의 공백은 더욱 커지게 되었다. 애쉬톤이라는 강력한 연결고리가 떨어져 나감으로서 영국의 물리적 입지는 더욱 약화되었다. TOP 4 중에 영국 문제를 중요하게 인식할 지도자가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은 우려할 만한 부분이다.   이번 지도부 선출에서 가장 의미심장한 것은 페데리카 모게리니의 등장이다. 그녀는 ‘에라스무스 문두스 프로그램(EU차원에서 유럽 학생들이 역외 국가에서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이수하는 것)’ 세대의 첫 주자로 꼽힌다. ‘주권국가’ 개념보다 ‘유럽공동체’ 개념에 익숙한 세대가 정치 무대에 처음 등장한 것이다. 따라서 규범세력(Normative Power), 민간세력(Civilian Power)에 익숙한 세대가 엮어내는 정치적 선택은 무엇일지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現 제주평화연구원 연구위원. 브뤼셀 자유대학교에서 정치사회학 박사 학위취득. 주요 논문으로 "국제정치학에서 주체물음(2013)", "유럽연합의 개발협력전략(2013)" 등이 있음.
  • The Terrex Incident: Is an Asian Melian Dialogue in the Offing?
    저자
    Bernard Fook Weng Loo (Nanyang Technological University)
    발간호
    2016-46
      On 23 November 2016, Hong Kong’s Customs authorities at Kwai Chung Container Terminal impounded nine Singapore Armed Forces (SAF) Terrex infantry carrier vehicles (ICV), after what appears to have been a routine inspection. The Terrex ICVs were being shipped from the southern Taiwan city of Kaohsiung to Singapore, having taken part in routine training exercises that the SAF conducts in Taiwan. This incident occurred against a backdrop of frosty relations between China and Singapore. This dip in the China-Singapore relationship started with Singapore’s response to the 12 July 2016 ruling by the Arbitral Tribunal constituted under Annex VII to the 1982 United Nations Convention on the Law of the Sea on the South China Sea dispute; China interpreted Singapore’s response as an anti-China stance. It did not help that the United States has conducted a number of freedom of navigation operations (FONOP), in some cases involving P-8 aircraft that had taken off from SAF air bases. The relationship further soured in September, when Singapore’s Ambassador to China, Stanley Loh, issued an open letter on 26 September to the editors of China’s Global Times newspapers, rebutting a Global Times report alleging that the Singapore delegation to the Non-Aligned Movement Summit meeting earlier that month had raised the issues of the South China Sea and the Arbitral Tribunal’s ruling. An underlying issue is also Singapore’s unofficial relationship with Taiwan, and the SAF’s maintenance of training facilities in Taiwan. In the past, China had maintained a studied silence with regard to this unofficial relationship. That did not stop China from attempting to “wean” Singapore off this relationship, such as an offer to Singapore of access to training facilities in Hainan, which Singapore had refused. Singapore’s Response Singapore’s responses have been restrained. No mention has been made about the cooling in China-Singapore relations. Foreign Minister Vivian Balakrishnan asserted that “Singapore will not allow any single issue to hijack its longstanding, multifaceted relationship with China.” At the Straits Times Global Outlook Forum on 29 November, he further stated, “It’s not a strategic incident; I don’t lose any sleep over it.” Defence Minister Ng Eng Hen reiterated Singapore’s commitment to the One China policy; he was also careful to not speculate, at least publicly, on the reasons for Hong Kong’s Customs authorities to inspect the cargo. Nevertheless, his response can be seen as somewhat more muscular, when he stated that Singapore will “exercise our full rights in recovering our assets.” Is China Becoming More Muscular? It is certainly tempting to see this incident as further evidence of China adopting a more muscular stance with regards to East Asia. However, there are, as always, at least two sides to this. Writing for The Straits Times on 6 December, Angela Poh and Chang Jun Yan have advocated caution against inferring too much into China’s motives. After all, as they argue, it could have been a simple administrative error that led to the SAF vehicles being impounded by Hong Kong’s Customs authorities. In his initial reaction to the incident, Defence Minister Ng also counselled against speculating as to the reasons for this incident. Furthermore, the impoundment of the Terrex ICVs is not unprecedented. In 2010, Hong Kong Customs impounded a South Korean K-21 light tank that was being shipped back to South Korea after being part of a defence exhibition in Saudi Arabia; apparently, the shipping company had failed to file the proper import and export licenses for strategic materials. In 2000, five Soviet-made armoured personnel carriers ordered by China Aviation Industry Supply and Marketing and bound for Tianjin were impounded. However, such a cautious interpretation of China’s intentions, however politically and strategically admirable, may be counter-intuitive. To begin with, this is not the first time Singapore had shipped military cargo from Taiwan to Singapore through Hong Kong. Up to this point, there had been no prior incident. The conjunction between this event and the backdrop of souring China-Singapore relations might plausibly be mere coincidence; however, the two could also be connected. Furthermore, at the point of writing, no explicit reasons for the impoundment have been forwarded by either China’s Foreign Ministry or Hong Kong Customs. If it was indeed an administrative error, this could have been quickly and clearly communicated, the shipping company could have taken the necessary steps to correct the error, and the cargo could have been on its way to Singapore. The fact that no explicit reasons have been forwarded thus far therefore undermines the “administrative error” argument. Seen in the light of Chinese behaviour in East Asia in 2016 – its angry responses to the South Korean deployment of THAAD, its construction of artificial islands in the South China Sea, amongst others – it is indeed difficult to escape the conclusion that China is becoming more muscular in regional affairs. Options for East Asia If this is indeed true, is East Asia on the cusp of a Melian Dialogue? If so, then what options do other countries in East Asia have? A widespread concern in East Asia is the prospect, however likely, of the United States becoming less involved in regional security, with the looming inauguration of Donald Trump as the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 Trump, after all, had on occasions alleged that the United States’ allies in Europe and Asia had been enjoying a free ride, that the United States had underwritten security in Europe and Asia without its regional allies committing sufficient resources to ensure their own security. If the United States does disengage from East Asia, this then creates a potential vacuum into which an increasingly powerful China will surely step. For some countries – such as the Philippines under the Duterte administration – this is a potentially welcome development. However, for the United States’ traditional allies in Asia – Japan and South Korea in particular – an East Asia dominated by China without the countervailing influence of the United States is surely a potentially negative development. For countries who believe that East Asian security is best guaranteed by an infrastructure that includes both the United States and China – and Singapore is paramount amongst such countries – a China-dominant East Asia is also not a positive development. But what can such countries do? Donald Trump had suggested – whether serious or otherwise – that Japan might become a nuclear weapon state. For Japan and the rest of East Asia, this is an unpalatable option. But if the United States disengages, Japan may have no choice but to transform its existing peaceful nuclear energy programme into a weapons programme. If nothing else, Japan – and South Korea, for that matter – will have to demonstrate to the Trump administration that it bears a concomitant burden to regional security efforts. This may be sufficient in persuading Trump to remain engaged in Asian security efforts. For countries like Singapore, however, the options are rather more limited. Singapore, specifically, has always adopted a posture that emphasizes international law; this was precisely its response to the South China Sea ruling, that all states involved had to respect international law on the issue. International law, however, provides scant comfort in the event that China exercises an Asian Melian Dialogue, where China will do what it wants, and the rest of East Asia will suffer what it must. Bernard F.W. Loo is an Associate Professor at the S. Rajaratnam School of International Studies, Nanyang Technological University, Singapore. He is concurrently the Coordinator of the Master of Science (Strategic Studies) degree programme. Tag
  • 한국과 동남아시아의 사회·문화 교류와 협력 활성화를 위한 제언: ‘2014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개최를 맞이하여
    저자
    홍석준(한국동남아연구소장 / 목포대)
    발간호
    2014-34
      오는 2014년 12월 11일부터 12일까지 이틀에 걸쳐 부산에서 ‘2014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가 열린다. 현 정부의 첫 다자(多者) 정상회의인 이번 ‘2014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서는 정치·외교·안보, 경제·투자, 사회·문화 등, 글로벌 이슈에 대한 교류와 협력 강화 등을 주요 분야로 해서 분야별 주요 항목들이 중점적으로 논의되고 추진될 전망이다.   이번 ‘2014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는 한국과 아세안(ASEAN)의 대화관계 수립 25주년을 기념하여, 한-아세안 전략적 동반자 관계의 심화 발전 및 아세안 관계의 향후 25년의 미래 비전을 구상하기 위해 열리는 것이다. 이 회의에는 한국과 아세안 10개 회원국(라오스, 말레이시아, 미얀마, 베트남, 브루나이,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 캄보디아 등 10개국, 가나다 순)의 정상들, 아세안 사무총장, 각료, 기업인, 기자단 등 3500여 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한국에서는 2009년 제주 특별정상회의에 이어 두 번째로 개최되는 이번 정상회의는 ‘신뢰구축과 행복구현(Building Trust, Bringing Happiness)’이라는 슬로건 하에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양자 정상회담, CEO정상회의, 각종 문화행사 등이 열릴 예정이다.   이 회의의 개최는 한국과 동남아시아 사이의 정치·외교·안보와 경제·투자 측면에서의 교류와 협력뿐만 아니라 양자 간의 사회·문화 교류와 협력의 측면에서도 매우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아직도 미미하고 일방적인 한국-동남아시아 사회·문화 교류   동남아시아는 한국의 전통적인 우방이자 주요 통상 파트너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그 전략적인 중요성이 더욱 더 강화되어 왔다. 특히 최근의 고도 경제성장과 동아시아 역내 통합의 주도권 확보로 인해 전략적 가치가 빠르게 확대되어 왔다.   또한 동남아시아는 한국과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걸쳐 ‘따뜻한 이웃, 번영의 동반자’로서 긴밀하게 관계를 발전시켜왔으며, 특히 사회·문화 교류를 심화시켜 왔다. 매우 높은 발전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는 동남아시아는 최근에는 중국에 이어 한국의 제2대 교역 파트너 지역으로 부상했으며, 두 번째로 해외직접투자가 많이 투여된 지역으로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큰 지역이다. 외교 부문에서도 전략적 동반자 관계, 한-아세안 외교장관회의, 주(駐)아세안대표부 개설 등으로 그 범위와 수준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는 추세이다.   나아가 국제결혼 이민과 노동 이주, 한류 등을 통해 문화적으로 한국과 매우 가까워지고 있는 등 동남아시아의 전략적인 중요성이 날로 증대되고 있지만, 한국의 대 동남아시아 교류는 주로 교역, 투자, ODA 등 경제협력 부문에 지나치게 집중되어 왔으며, 사회문화 부문에 대한 교류와 협력은 극히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또한 현재까지 한국과 동남아시아 사이의 사회·문화교류가 쌍방향이 아니라 일방향으로 진행되어왔다는 우려와 함께 향후에 지속적으로 사회·문화교류가 제대로 이루어질지에 대해서도 일부에서는 회의적인 의견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이유로 아직까지 한국 국민들의 동남아시아에 대한 이해 수준은 낮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무엇보다도 한국 국민들이 동남아시아 문화 전반에 대해 폭넓고 심도 있는 이해를 갖고 있어야 대(對) 동남아시아 외교와 경제협력 등 다방면에서 교류와 협력이 진정성을 확보할 수 있고, 동남아시아에 대한 한국의 관심과 이해 수준 역시 제고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 한국에게 동남아시아가 진정으로 ‘따뜻한 이웃, 번영의 동반자’가 될 수 있으며, 양자 간에 진정한 의미의 ‘신뢰구축, 행복구현’이 가능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문화 시대에 맞게 사회·문화 교류협력의 활성화, 쌍방향화가 필요   동남아시아는 예로부터 다양한 문화와 복합적인 민족 또는 종족(種族) 구성으로, 문화다양성과 천혜의 자연환경을 포함한 생물문화다양성의 보고(寶庫)로 여겨졌던 지역이다. 이는 동남아시아가 외래문화의 포용과 관용의 열린 지역임을 보여준다. 동남아시아는 대내외적으로 쌍방향의 사회·문화교류를 이미 오래전부터 진행해 왔다. 동남아시아는 다문화, 다민족, 다종교, 다언어 등을 특징으로 하는 다문화사회를 형성, 변모해 온 지 이미 오래되었으며, 다문화사회의 오랜 역사와 전통을 보유해 왔다.   한국에서도 이미 다문화사회가 전개되고 있다. 한국과 동남아시아는 다문화사회의 공통점과 차이점으로 인해 쌍방향의 문화교류와 협력이 가능한 각각의 독립적인 문화 주체가 될 수 있다.   이번 ‘2014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를 계기로 한국과 동남아시아는 한국문화와 동남아시아 문화를 전 세계에 널리 알릴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한국과 동남아시아 문화의 고유성과 독자성을 글로벌한 차원에서 널리 홍보할 수 있는 호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 기회를 잘 살려 한국과 동남아시아 사이의 교류와 협력을 활성화할 수 있는 좋은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바야흐로 한국과 동남아시아 문화를 중계자로 삼아 한국과 동남아시아 사이의 정치·외교·안보, 경제·투자, 사회·문화 교류와 협력을 활성화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한국을 동남아시아와 동북아시아를 잇는 중계 거점국가로 발돋움시킬 수 있는 전기(轉機)로 삼아야 할 것이다.   오는 12월 아세안 정상들이 한국을 찾는다. 한국의 아세안에 대한 관심과 아세안의 한국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질 전망이다. 그동안 한국과 동남아시아 국가들과의 긴밀한 협력관계 발전과 한류를 비롯한 한국문화의 현지 확산을 통해 동남아시아에서 한국에 대한 인기가 날로 높아지고 있는 반면, 한국에서는 동남아시아에 대한 체계적인 관심과 이해 수준이 낮은 편이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아직 동남아시아에 대한 이해 수준이 낮은 편이고, 동남아시아 관련 문화콘텐츠가 턱없이 부족한 현 한국 사회의 현실을 고려할 때, 이번 ‘2014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는 한-아세안 사회·문화 교류와 협력의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면서도 특별한 의미가 있다.     특별정상회의에 거는 "특별한" 기대   이번 ‘2014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개최를 계기로, 이제는 한국이 아세안을 포함한 동남아시아의 사회·문화 교류와 협력에 보다 적극적인 관심을 보여야 할 때이다. 한국이 동남아시아의 문화, 역사, 사회에 보다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이고 이를 지원할 때 비로소, 한국의 동남아시아에 대한 이해 수준 역시 그에 따라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한국이 동남아시아 문화와 역사, 사회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시점이다. 지금 이 순간, 동남아시아의 정치와 경제를 넘어 문화, 역사, 사회에 더욱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 동남아시아에 대한 이해 수준을 한층 더 제고해야 할 것이다. 이번 ‘2014 한-아세안특별정상회의’는 한국에서 동남아시아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더욱 확장되고 심화될 수 있는 호기(好機)가 될 것이다.   동남아시아가 한국을 향하고 있고, 한국이 동남아시아를 주목하고 있다. 이번 ‘2014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를 계기로 한국의 동남아시아에 대한 관심과 이해 수준이 높아져, 한국에서 동남아시아 문화콘텐츠의 확충과 심화가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現 한국동남아연구소 소장, 목포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서울대학교에서 말레이시아 농촌 마을의 이슬람화와 문화 변동에 관한 논문으로 인류학 박사 학위를 취득. 『동아시아의 문화와 문화적 정체성』(2009, 공저), 『동남아의 한국에 대한 인식』(2010, 공저), 「東亞的海洋世界與港口城市的歷史和文化」(2008), 「말레이시아의 전통예술과 이슬람 부흥의 문화적 의미 」(2010), 「중국과 말레이시아 사이의 역사적, 문화적 교류의 문화적 의미」(2010), 「말레이인들의 일생의례의 문화적 의미」(2010) 등의 다수의 저작이 있음.
  • 스코틀랜드 주민투표가 남긴 의미와 과제
    저자
    도종윤(제주평화연구원 연구위원)
    발간호
    2014-33
    9월 18일 스코틀랜드 독립 주민투표는 찬성 55%, 반대 45%로 부결되고 말았다. 정치적 운명이 걸렸던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무사히 집무실로 돌아갈 수 있었다. 브뤼셀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투표 결과가 나온 직후 헤르만 반 롬푸이 유럽연합 상임의장은, “스코틀랜드인들의 선택을 환영한다.”는 메시지와 함께, “영국은 유럽연합 회원국의 하나로 중요한 나라”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요란했던 대결은 이제 겨우 스코틀랜드에서만 잠시 멈추었을 뿐이다. 유럽의 다른 나라, 다른 민족 그리고 전 세계 각국에서 비슷한 갈등을 겪고 있는 사람들은 이제 새로운 도전에 나설 가능성을 갖게 되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우리는 이제 다양한 문제를 고민해 볼 시점에 놓이게 되었다. 주민투표와 크림 반도의 분리·독립 유럽만 놓고 볼 때 현재 분리·독립 운동이 크고 작게 거론되는 곳은 대략 105개 지역에 달한다(러시아 제외). 우리에게도 낯익은 카탈루냐(스페인), 바스크(스페인, 프랑스), 플랑드르(벨기에), 코르시카(프랑스), 페로(덴마크) 등은 물론이고, 이스트리아(크로아티아), 모라비아(체크), 알자스, 사보이(이상 프랑스), 아프카지아(그루지야), 남티롤(이탈리아), 트란스니스트리아(몰도바) 등은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주민들의 분리·독립 요구가 끊임없이 제기되는 곳들이다. 이들은, 전후 국경선 획정에 의해 원치 않게 소수 민족이 된 경우(구소련국가들), 역사적으로 정복에 의해 합병된 경우(스페인, 영국, 이탈리아), 왕실령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지위를 얻고자 하는 경우(영국의 맨섬, 채널 제도) 등, 저마다 조금씩 다른 이유에서 분리·독립 운동의 근원을 가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번 스코틀랜드의 주민투표는 분리·독립 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지역의 주민들에게 주민자치에 의해 분리·독립이 ‘선택’ 가능함을 보여준 사례가 되었다. 한편, 이번 주민투표는 지난 3월, 주민투표에 의한 크림반도의 분리·독립과 우크라이나 친러 세력들의 정당성 문제와도 연관된다. 유럽연합과 미국은 크림반도의 분리·독립과 우크라이나 동부지역 일부 친러 세력의 분리·탈퇴 움직임에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여전히 러시아의 개입 여부가 논란 중이지만, 적어도 형식 면에서 분리·독립이 주민투표에 의한 것일 경우 그 정당성에 대한 평가는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설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올 봄, 주민투표에 의한 크림 반도의 분리·독립이 투표에 의한 코소보의 분리·독립과 다른 차원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 바 있다. 분리·독립 운동을 펼치는 쪽의 입장은 여전히 확고하다. 우크라이나의 친러 분리·독립 운동 지도자인 미로슬라브 루덴코는 “영국 정부의 선거 결과 위조가 의심된다.”(워싱턴 포스트 2014년 9월 19일 자)며 이번 스코틀랜드의 ‘반대’ 결과를 불신하고 있다. 스코틀랜드의 살몬 총리도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움직임을 지켜보며 2016년 이후 재투표를 시도하겠다.”는 입장을 내보인 바 있다. 이는 민족주의에 기반한 분리·독립 운동이 타협이나 양보가 아닌 절대성에 기반하고 있으며, 주민투표는 그러한 절대성을 정당성으로 보완해줄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과제로 남겨주었다. ‘민주주의의 결핍’: 대의제 대 직접민주주의 좀 더 거시적으로 보자면, 이번 투표는 ‘대의제 대 직접민주주의의 대결’이라는 측면에서 또 다른 숙제를 남겨 주었다. 지난 10여 년간 유럽연합의 확대에 따른 부작용 중 하나는 ‘민주주의 위기’였다. 유럽연합의 주요 기관 중 ‘유럽인들’의 손에 의해 선출된 정치인이 ‘유럽문제’를 다루는 기관은 유럽의회뿐이다. 통합 과정에서 드러난 유럽인들의 갈등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결단은 ‘유럽인’이 아닌 ‘각 회원국을 대표하는 정치인들’의 몫이었다. 따라서 유럽인들은 유럽연합의 민주적 거버넌스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대의제에 대한 새로운 발상(representative turn)’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의미에서 직접민주제에 기반한 새로운 접근들이 더욱 많아지고 있다. 리스본 조약은, 비록 주민투표제도를 도입하고 있지는 않지만, 회원국 시민 100만 명이 요청할 경우 집행위원회에 주요 사안에 대한 이니셔티브를 제안(주민발안)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TEU 11조 4항). 비단 민주주의 결핍 문제는 유럽연합 같은 특수한 조직만의 문제는 아니다. 정치적 결단을 내리는 대표자의 자질 부족, 부정부패, 비능률 등은 대의제가 가진 일반적 한계이자 민주주의 결핍을 가져오는 주요한 이유이다. 지난 5월 유럽의회 선거를 통해 드러난 회의론자들의 주장 중 하나는 바로 직접민주제의 도입이었다. 스코틀랜드를 비롯하여 분리·독립을 꿈꾸는 지역의 경우, 그들의 이익과 정서가 중앙 정부의 대의제를 통해 충분히 실현되지 않을 때, 반발의 임계점은 매우 빠르게 다가올 수 있다. ‘국민주권’의 한계 다른 맥락에서 보면 이번 주민 투표는 국민주권 개념의 서구식 전통에 도전한 계기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스코틀랜드는 1707년 영국의회와 스코틀랜드 의회가 조약에 의하여 영국과 합병한 경우였다. 따라서 이번 주민투표가 분리·독립 찬성으로 결론 났을 경우, 스코틀랜드는 역사상 드물게 합병과 분리가 국민 또는 그들의 대표자에 의해 결정되는 사례가 되었을 것이다. 즉 국가의 존립이 국민주권에 의해 결정되는 사례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분리·독립 문제는 여전히 주권국가의 틀 안에서 불가능한 사안이거나 정치적으로 결정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따라서 홉즈식 사회계약이 주민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철회될 수 있는 것인지, 더 나아가 그들이 별도의 주권 국가로 독립해 나갈 수 있는지에 대해 국가, 주권, 민주주의의 등의 원리를 연계하여 보다 깊은 논의가 필요하게 되었다. 민주주의의 실천에 관한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한 때 이번 스코틀랜드 주민 투표는 세 가지 갈림길에 대한 선택이었다. 즉, 독립 여부에 대한 ‘찬성’이냐, ‘현상태 유지’냐, 또는 ‘독립하지 않되 자치권 확대’냐에 대한 것이었다. 스코틀랜드 주민들은 마지막 것을 선택하였다. 여지껏 정치적 선택이란 항상 ‘찬성’이냐 ‘반대’냐의 흑백 논리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었으나, 이번 투표는 그 사이에서 양보와 타협안이 제시되었다는 점에서 보다 나은 미래를 기대케 한다. 서구식 민주주의가 보통사람에게 권력을 돌려준 것은 바람직하나 그것이 오로지 ‘선거’와 ‘투표’에 의한 것일 경우 그에 따른 부작용은 더욱 클 수도 있다. 21세기의 새로운 민주주의의 관념은 ‘투표’라는 형식을 넘어, ‘관용(寬容)’, ‘총의(總意)’, ‘숙고(熟考)’와 같은 보다 점진적인 과정을 통해서 긍정적인 변화가 가능할지도 모른다. 現 제주평화연구원 연구위원. 브뤼셀 자유대학교에서 정치사회학 박사 학위취득. 주요 논문으로 "국제정치학에서 주체물음(2013)", "유럽연합의 개발협력전략(2013)" 등이 있음.
  • The Peace Process in Myanmar: Challenges and Prospects
    저자
    Brian McCartan(S. Rajaratnam School of International Studies)
    발간호
    2014-32
      Myanmar’s three-year-old peace process is nearing a critical moment. Agreement on a nationwide ceasefire is expected at a summit in Kachin State in late September. Yet, issues that have plagued ethnic organizations throughout the ceasefire process promise to make the follow-on political dialogue phase problematic and protracted. These issues include eliminating confusion between what a ceasefire and a political dialogue entail, establishing a clear ethnic leadership for the process, settling conflicts within ethnic organizations, and improving trust between the government and the ethnic groups.   A central problem is confusion which issues to include in the National Ceasefire Agreement (NCA) which should be covered in the political dialogue. Ethnic leaders insist on a number of political issues be included in the ceasefire draft that would be better raised in the dialogue process. Rather than negotiate a strictly military agreement to suspend fighting until a political settlement is reached, ethnic leaders are pushing political guarantees from the government. In addition to issues such as the demarcation of territory, status of forces, and a code of conduct for military forces, ethnic organizations have raised central political issues such as a federal system and revision of the constitution. While important issues that need working out, their inclusion has clouded the discussion and significantly slowed down the process.   Still, this attitude among ethnic leadership is understandable given the historical background of their struggles. In the late 1980’s and early 1990’s a number of ceasefires were agreed to, particularly in northern Myanmar. However, despite assurances of political dialogue, the military government refused to discuss political issues, moving instead to pacify ethnic leaders with economic concessions.   A need for an executive body to coordinate the actions of the National Ceasefire Coordination Team (NCCT) was recognized at the recent Laiza Summit in July, there is debate over who should be included. The NCCT envisions leaders from each of its constituent ethnic armed organizations. However, the United Nationalities Federal Council (UNFC) believes it should act as the executive body.   The UNFC, originally a military alliance and largely controlled by the Kachin Independence Organization (KIO), does not include all of the members of the NCCT. Most notably, two of the largest the Shan State Army-South (SSA-S) and the United Wa State Army (UWSA) ? remain outside the grouping.   The main concern is that members of the NCCT do not believe UNFC’s interests are synonymous with their own. A number of groups in the NCCT disagree with the UNFC’s stance of not recognizing the 2008 Constitution, thus challenging the legality of the government to negotiate. There is also much concern over the strong leadership role taken by the KIO. In late August, the Karen National (KNU) walked out of a high level UNFC meeting over this issue and the direction the KIO was pushing the UNFC. The dominance of the KIO, which is still in engaged in active fighting with the government, has led to accusations that it is pushing its own agenda over that of the collective group. It has become clear that the KIO intends to lead the UNFC to usurp the powers of the NCCT leadership in negotiating terms at the upcoming September summit with the government.   Disputes over the terms of the ceasefire have deepened factional cleavages in some organizations. Rather than presenting a united front at discussions, the leaderships of some organizations remain divided internally over the terms of the ceasefire, or even whether they should enter into a ceasefire at all. Within the KNU leadership, for example, a shift from a more hard-line element to one more accommodating to ceasefire terms and a political dialogue has created serious divisions in the organization.   Decades of civil war created deep distrust in the government and military one and the same for most of the period among many ethnic groups. The KNU, for example, has been fighting for over sixty years, participating in several rounds of failed ceasefire negotiations. A ceasefire agreed in 2004 fell apart when the military government launched an offensive two years later. As far back as 1962, apparently productive talks were terminated by the military after seizing power in a coup that year.   The New Mon State Party (NMSP) and the KIO both of which had ceasefires with the government for much of the 1990s and 2000s are particularly distrustful of the current government. This attitude is due in great part to a refusal by the previous military government to take ethnic demands seriously, particularly during the National Convention that drafted the current constitution.   Historical mistrust has in some cases been reinforced by Myanmar Army to continue to strengthen its hold over ethnic territory and reinforce existing positions. Ironically, these moves are facilitated by the delays involved in finalizing a nationwide ceasefire agreement.   The delays brought on by confusion over the role of a ceasefire, leadership of the ethnic side of the process, factional infighting, and mistrust of the government have served to not only hinder ethnic aspirations, but also to diminish the reputation of the government. The inability of government negotiators to bring a swift end to conflict has earned them criticism domestically and internationally. It may have also somewhat weakened the position of government vis-a-vis the military through the army’s ability to consolidate its hold over ethnic areas and gain more territory.   The difficulties encountered in the ceasefire process can only be amplified when the political dialogue process begins. The diversity of political issues to be discussed has the potential to amplify confusion over what was already decided in the ceasefire, ownership disputes of the dialogue, factional infighting, and mistrust. If ethnic organizations want to avoid a prolonged peace process, they will need to work through these issues and form a more unified approach. Mr. Brian McCartan has worked on political issues and ethnic conflict in Myanmar for over fifteen years. He is currently a PhD candidate at the S. Rajaratnam School of International Studies at Nanyang Technological University in Singapore.
  • Some 21st Century Opportunities and Threats in East Asia
    저자
    Chris LARSEN(Hankook University of Foreign Studies)
    발간호
    2014-31
      The “dynamic transformation of regional order” in East Asia is not a particularly new phenomenon: the region has long been well known for ideological, political, cultural, and military conflicts: albeit perhaps on different scales. However, global movements from underdevelopment toward development in the current anarchic international environment is setting the stage for many opportunities and threats to arise. Such situations may be numerous and arise from internal or external condition, but, from the international relations point of view, there are only a handful of central issues. Balances of Power and Regional Security   As history has so clearly demonstrated, no population size, economic model, ideological predisposition, or military prowess, provides an absolute guarantee of predictable outcomes. Furthermore, none of these factors, as well as any country or region, has a “rightful place” in any century. The simple thing to say is that no matter how large or small, states can only surely be predicted to do one thing: engage in struggles for power. This is mainly because security is the primary concern for all states (although of course not the only concern). In other words, existence trumps all else. There is no modern indicator that this past and present truth is still not the best predictor of a future reality. Each country in East Asia will move through the 21st century, balancing internal and external realities to cultivate and expand power opportunities and security while hedging against the myriad threats based on the unique situation of each.   The difficult part is determining how power struggles will unfold to opportunities and threats since there are numerous domestic and international factors in East Asia. The important thing to remember is that one state’s threat can be another state’s opportunity and occasionally threats are opportunities in disguise. For example, Japan may seize the opportunity to militarize to balance against perceived threats from China and North Korea yet coincidentally, it is also engaged in territorial disputes with Russia, South Korea and China. Another case is China, which despite the ‘peaceful rise’ rhetoric, has had double-digit percent increases in military spending almost every year for the past twenty years (this year’s increase was 12%, bringing the amount to more than double what Russia spends) which includes a navy that will be bigger than that of the United States by 2020. Is this to balance against the United States in the “Pacific Focus” Or perhaps to continue to redraw international boundaries in ways to best seize opportunities to move South and East as they did to the west in 1950? It is difficult to say, but if China’s domestic civil rights abuses and human rights infringements against its own citizens are any indicator, then neighboring countries should probably “hope for the best, but expect the worse”. After all, there is a new precedent now with Russia (another Security Council veto power state) deeply infringing on the sovereignty of a neighbor: there is little reason not to expect that China will do the same.   As for South and North Korea, they are both regionally significant for various reasons, but not militarily, so they regularly engage in buck-passing strategies to the US and China respectively for security and breathing room. South Korea has been cultivating its soft power with the Korean Wave and developing complex interdependency with neighbors while North Korea has been developing hard power security in the form of nuclear weapons and ballistic missiles. The 21st century opportunities and threats in East Asia concerning the Korean peninsula will therefore surely depend on the normalization of these relations. Not doing so could result in catastrophic consequences that would impact the entire region, the US, as well as the EU and Russia. In this way, although the Korean peninsula has often been considered “the shrimp between whales,” it might also be considered “the pin in the grenade”. Any number of significant incidences could “pull the pin” and transform the region for a hundred years or more. Chris LARSEN is a professsor at Hankuk University of Foreign Studies(HUF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