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I PeaceNet

전체 630

  • 한-이란 관계의 새로운 장
    저자
    Ziba FARZINNIA (이란 정치국제문제연구소 동아시아 연구부장)
    발간호
    2016-26
    [편집자 註] 이란 핵협상의 타결과 경제제재의 해제를 계기로 제주평화연구원은 이란 외교부 산하 정치국제문제연구소(IPIS)와 공동으로 "새로운 발전과 새로운 기회"를 주제로 한 전문가 회의를 개최하였다. 주 이란 대한민국 대사관의 후원 아래 2016년 5월 31일 테헤란 현지에서 열린 이번 회의에는 아산정책연구원,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제주평화연구원과 함께 공동주최기관으로 참여하였다. 이날 회의에서 발표된 IPIS의 Ziba FARZINNIA 동아시아 연구부장의 발제 요지문을 국문으로 번역하여 JPI PeaceNet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이란의 시각에서 한-이란 협력을 어떻게 보고, 어떤 기대를 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한인택, 제주평화연구원 연구위원).     아시아 발전의 흐름과 향후 전망은 최근 수 년간 국제정치 논의에서 중요한 주제로 다루어져 왔다. 오늘날 아시아는 세계에서 특별한 중요성을 지니며, 앞으로도 확대될 전망이다.   이와 같은 환경에서, 이란은 자국의 역량과 경제계획을 고려해 볼 때, 아시아 국가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란은 일부 아시아 국가와 공유하고 있는 문화적 공통성이 상당하기에, 이를 바탕으로 유대 관계를 확대할 수 있다. 남아시아의 인도를 포함하여, 중국∙일본∙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은 에너지 수요가 높으며, 이들은 에너지 수요의 일부를 충당하고자 이란의 원유를 수입하고 있다. 또한 특수한 지리적 입지 덕택에 이란은 중앙아시아와 남아시아, 그리고 서아시아를 중동과 이어주는 연결고리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러한 2차 지역 국가들은 저마다 주목할 만한 경제적 우선순위가 있기 때문에 모든 아시아 국가 간 협력 확대에 필요한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 이러한 구조적 틀 안에서 이란은 아시아 개발의 근간 중 하나인 에너지 안보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이란은 페르시아 만 및 카스피 해와 인접하여 지리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을 뿐만 아니라, 막대한 원유 및 가스 매장량을 보유하며, 에너지 부문에서 오랜 기간 경험을 쌓았다. 그리고 중앙아시아와 맞닿아 있기 때문에 남부, 동부 및 북동부에 위치한 유전을 파이프라인을 통해 아시아 소비자들에게 보낼 수 있다. 올해 초 국제 제재조치가 해제된 후 세계 각지의 기업들이 앞다투어 이란 시장에 뛰어들었고, 이것은 동아시아 기업들도 마찬가지였다.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1월에 이란을 방문하였고, 일본은 제재조치 해제 한 달 뒤 이란과 투자 조약을 체결하였다. 이란은 경제성장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다른 국가들과 협력해야 하며, 이러한 관점에서 한국은 상당한 역량을 보유하고 있기에 이란을 지원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한편, 한국 또한 이란과의 관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한국 경제는 대미 및 대중 의존도가 커서 새로운 경쟁 환경에서 뒤처질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어 박 대통령은 한국은 급속히 변화하는 글로벌 교역 환경에서 새로운 시장을 모색해야 하며, 지역경제를 촉진할 수 있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언급하였다. 박 대통령은 또한 한국이 수출품목을 다양화하고 국내시장을 지향하는 중소기업들이 해외시장 개척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수출과 경제를 재건하기 위해 해당 기업들이 해외시장을 공격적으로 개척하도록 정부 차원의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이날 논의에서는 한국에 가장 많은 편익이 돌아갈 수 있는 부문으로 건설, 자동차, 석유화학 및 인프라 부문이 언급되었으며, 이란과의 관계 강화로 약 68,000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전망되었다.1) 이란은 에너지 외에도 다양하고도 특별한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따라서 상호 필요를 바탕으로 양국관계를 구축하는 것은 아시아 안보에도 기여할 뿐만 아니라 경제적 측면에서도 호혜적 작용을 할 것이다. 박 대통령의 이란 방문   2016년 5월, 박 대통령은 이란과 한국의 유대 강화를 위해 이란에 방문하였고, 양국 대통령들은 1962년 외교관계 수립 이후 최초의 공동성명을 채택하였다.2)   이번 성명은 국제 제재조치가 단행된 기간 동안 다소 소원해진 양자관계를 회복함과 동시에 경제와 문화∙교육∙관광을 포함한 다양한 영역에서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목표와 로드맵의 틀을 만들었기 때문에, 한-이란 협력 촉진에 있어서 중요한 이정표로 평가된다.   양국 대통령은 핵 없는 세상을 구축한다는 목표에 합의하고 핵확산금지조약과 비핵화 이행을 약속하였으며, 이를 위한 노력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또한 양국은 핵개발이 안보를 보장할 수 없다는 데 의견을 같이 하였으며,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 유지되어 함을 강조하였다. 한국 국민들의 한반도 평화통일 염원에 대한 이란의 지지   이외에도, 공동성명에는 연례 외무장관회의와 경제위원회 합동회의 개최, 양국 교역 확대를 위한 공동 노력, 금융 협력 촉진, 2017년 ‘한-이란 상호 문화교류의 해’ 지정 및 사법 공조 등이 포함되어 있다.3) 이번 포괄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공동성명의 세부사항은 아래와 같다. 1. 정치 문제에 관한 협력 2. 경제 협력 3. 문화 협력 4. 교육과 관광 협력 5. 한반도와 중동에서의 지역적 협력 6. 사법 공조 및 안보 협력​   교역 규모와 관련하여, 로하니 대통령은 양국이 5년 내에 교역 규모를 300억 달러 이상으로 확대하기 위해 협력할 것을 제안했다. 박 대통령은 이란의 합작 인프라 프로젝트를 위해 250억 달러 상당의 금융지원 패키지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으며, 이는 다른 국가에 제공한 지원 패키지 중 최대 규모이다.4)   또한 박 대통령은 다양한 부문의 관계 확대를 위해, 의료∙정보통신기술(ICT)∙신에너지산업도 아우를 수 있도록 협력을 확대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로하니 대통령은 양국이 전기자동차, 농업 기계, 쓰레기 처리 및 오수 처리 시스템과 같은 영역에서 협력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바람을 표했다. 특히 박 대통령은 양국이 전기 자동차에 더하여 친환경에너지타운과 해수 담수화에서도 적극 협력해 나가자고 제안했다.   이번 국빈 방문에는 이란 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초석을 다지기 위해 236명의 재계 지도자들로 구성된 경제사절단이 동행하였으며, 경제 부문에서 42조 원, 즉 371억 달러에 상당하는 계약을 유발할 수 있는 MOU를 포함해 총 66건의 MOU를 체결하여 최대 규모의 경제 외교 성과를 거두었다.5) 결론   박 대통령은 1962년 양국 외교관계 수립 이후 이란을 방문한 최초의 대통령이다. 이번 박 대통령의 방문은 세계 경제 침체로 악영향을 받고 있는 한국 경제에 전환점이 될 것이며, 이란 내 개발 프로젝트에 있어서도 좋은 기회이다. 박 대통령은 귀국회견에서 "이란이 여러 한국 기업에게 기회의 땅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제2의 중동 붐을 조성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6)   이란은 세계 4위의 원유 매장량과 1위의 천연가스 매장량을 자랑한다. 한편, 오늘날에는 이란이 다양한 산업에서 새로운 역량을 확보하였기에, 과거에 비해 다양한 부문의 한국 기업이 이란 시장에 진출하게 되었다. 따라서 한국 기업들은 과거 석유 부문에 적용된 낡은 방식으로는 사업 활동을 수행할 수 없다. 지금은 이란이 여러 부문에서 자급을 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 기업들이 이란을 더 이상 상품의 최종 소비자로만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점에 주목하여 박 대통령의 언급을 고려해 볼 때, 한국은 이란의 새로운 정책에 동조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며, 또한 이에 맞게 행동할 것이다.7)   이란은 나노 기술 및 바이오 기술과 같은 과학 부문에서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루었고, 양국은 이 부문에서도 경험을 공유할 수 있다. 이란은 국제 제재조치로 타격을 입은 경제를 재건하기 위해 대규모 인프라 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또한, 현재 이란은 투자 및 마케팅을 비롯한 여러 부문에서 한국과 새로운 협력의 장을 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란에서 한국은 애플을 앞지르고 있는 삼성, 그리고 일본 토요타와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는 현대∙기아와 같은 브랜드들을 통해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한국 기업들은 이전의 이란과의 교역 경험에 더하여 일본과의 경쟁 때문에 이란과의 무역 및 경제관계를 발전시키는 데 큰 관심을 두고 있다.   한국 기업들은 이란의 석유산업을 비롯한 다양한 부문에서 많은 활동을 펼쳤다. 특히, 이란의 다운스트림 및 업스트림 석유 산업에서 한국 기업이 구가한 성과는 괄목할 만한 것으로서, 한국이 유지∙발전시킬 위대한 사회자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송웅엽 전(前) 주 이란 대사의 최근 발언에 비추어 볼 때, 새로운 대이란 개방의 중요 측면은 금융 부문에 있다. 송 대사는 "양국 간의 금융 상호작용은 원활히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양국의 경제교류가 확대되었다"고 언급하였다.8)   다시 말해, 이러한 관계는 양국의 입장에서 보면 윈윈게임(win-win game)이라고 할 수 있다. 1) "Iran Deals Will Spur Economy: Park," The Korea Times, May 11, 2016. 2) "Korea-Iran Relations: 1974 and 2016," The Korea Times, May 6, 2016. 3) Tehran Times, May 5, 2016. 4) "S. Korea to invest $25b in Iran," Tehran Times, May 2, 2016. 5) IRNA, May 1-2, 2016. 6) 박 대통령은 한국 경제의 급성장을 위한 발판이 된 1970년대 및 1980년대에 한국 기업들이 따낸 대규모 건설 수주를 언급했다. 상세내용은 다음을 참조: "Iran is Land of Opportunity: Park," The Korea Times, May 4, 2016. 7)  IRNA, May 4, 2016. 8) "South Korea’s New Opening To Iran," Iran Review, May 2, 2016. 이란 정치국제문제연구소(Institute for Political and International Studies) 동아시아 연구부장
  • 트럼프의 경제적 국수주의와 한미관계의 미래
    저자
    우정엽(아산정책연구원 워싱턴 사무소장)
    발간호
    2016-17
      미국 현지시각으로 5월 3일 저녁, 인디애나 주의 공화당 경선이 트럼프의 승리로 끝나면서 그동안 트럼프의 유일한 상대로 여겨졌던 크루즈 상원의원이 경선 포기를 선언했다. 케이식 오하이오 주지사와 한국식의 후보 단일화까지 시도했던 인디애나 주에서 트럼프가 60%에 가까운 표를 얻으며 승리하자, 더 이상 경선을 이끌어갈 동력을 상실한 것이다. 동시에 트럼프는 공화당 경선의 승리를 선언했으며, 그동안 많은 논란을 빚었던 공화당 내부도 트럼프를 후보로 인정하는 모양새다. 그동안 트럼프에 대한 말을 아끼고, 소위 중재 전당대회를 염두에 두던 공화당 전국위원회도 인디애나 경선이 끝나면서 트럼프를 공화당 후보로 인정하면서, 그에게 단결하자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트럼프가 올해 초까지의 예상을 깨고 공화당 경선의 선두주자로 떠오르자 많은 전문가들은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가 될 수는 있겠지만, 본선에서는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대통령에 당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의 여론조사를 보면 그러한 예측을 하던 사람들이 언급한 바를 번복해야 할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적어도 트럼프가 후보가 되면 당연히 클린턴이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말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번 미국 대통령 후보 경선은 초반부터 상당한 흥미를 유발하면서 한국의 선거 못지않게 한국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 충격적인 재미의 선두에는 트럼프가 있었다. 각종 TV 프로그램에 등장하며 유명세를 쌓은 트럼프의 경이로운 언행은 일반 대중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러던 그가 다른 후보들을 멀찌감치 따돌리고 선두에 서면서 그가 가진 외교관이 우리로 하여금 흥미의 수준을 넘어 관심을 갖게 하였다. 많은 언론 보도를 통하여 소개된 그의 외교안보관은 많은 이들을 놀라게 하였다. 한미동맹을 비롯한 미국의 동맹체계에 대한 그의 발언은 미국의 주류 외교안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외교안보 분야에 대한 그의 견해는 그의 선거전략 전체를 관통하는 흐름인 경제적 국수주의의 관점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한마디로 미국이 대차대조표 상 현금의 흐름에서 이익을 봐야만 한다는 것이다. 비용의 관점에서 현재의 동맹체계가 미국에 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트럼프의 핵심주장이다. 그러나 트럼프식 대차대조표는 단기적으로 나타나는 현금의 흐름만을 중시한다. 왜 동맹이 형성되었는지, 동맹관계를 통하여 미국이 획득하고 있는 전략적 이익은 무엇인지 고려하지 않고 있다. 미국이 현재의 국제질서가 유지되면서 얻고 있는 이익이 무엇인지, 그 질서가 불안정해질 경우 미국이 감수해야 할 비용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려가 없는 것이다. 이에 대한 비판은 그동안 많은 글들을 통해서 소개된 바 있다. 그러나, 미시적으로 한국의 방위 무임승차론에만 우리의 논의를 한정하다 보면 이번 미국의 선거과정이 우리에게 미치게 될 영향을 분석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트럼프는 11월 선거에서 최종적으로 승리를 거두지 못하더라도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미칠 토대를 이미 만들어 놓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 글에서 트럼프의 이러한 정책관이 압도하고 있는 미국의 선거과정이 우리에게 미칠 영향을 장, 단기적으로 분석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트럼프가 이러한 경제적 국수주의에 기초한 정책을 표방하게 된 배경에 대한 분석, 향후 민주당 후보로 확실시되는 클린턴과의 본선 선거과정이 진행될 방향에 대한 분석, 마지막으로 이 과정이 우리에게 미칠 영향에 대한 분석을 하도록 한다. 트럼프의 정책 배경 정치권의 주류에서 전혀 고려되지 않던 트럼프가 후보에 가까워지면서 그의 정책관에 대한 비판이 미국 내외를 막론하고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였다. 이민자들에 대한 언급으로 시작된 그의 정책들은 미국 사회의 주된 기조와는 다른 것으로 받아들여졌고, 특히 그의 외교안보에 대한 기본 방향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세계전략과는 동떨어진 것으로 평가되었다. 그만큼 그의 언행은 '기이'하게 여겨졌다. 그러나 철저히 표를 획득하여 승리하기 위한 과정으로 선거에 접근하면 다른 분석이 가능하다. 그동안 미국의 여론조사를 보면 트럼프의 정책들은 옳고 그르냐의 문제를 떠나서 미국 대중의 여론이 이미 그가 그러한 정책을 표방하기 이전부터 그와 같은 방향을 지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14년 4월 퓨리서치(Pew Research)1)의 보고서를 보면 미국의 여론은 2013년에 이미 미국의 해외 개입에 대해 50% 이상이 부정적 의견을 나타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미국이 베트남 전쟁과 이라크 전쟁 당시의 수치를 상회하는 것으로, 같은 항목의 조사가 시행된 1964년 이래 최고의 수치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여론의 기초 위에 경제상황에 대한 불만을 선거전략으로 삼으면서 그 불만에 대한 책임을 해외 동맹국, 무역, 그리고 이민자들에게 전가하는 것으로 표심 확보의 방향을 설정한 것이 그의 성공요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단순히 트럼프 개인의 문제라고만 볼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잇겠지만 향후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고 안 되고를 떠나서 미국 여론이 트럼프의 외교안보관과 유사한 방향으로의 정책을 위해 압박을 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향후 선거과정의 방향 예전 미국의 선거과정을 살펴보면, 당내 경선과정에서는 선명성 경쟁을 하면서 중도에서 벗어난 정책들이 제시되었고, 이 정책들은 본선과 당선을 거치면서 중도로 많이 가까워졌다. 그러나, 이번 선거 과정은 크게 두 가지 점에서 과거의 정책방향 이동과 다를 가능성이 높다. 첫째, 트럼프가 경선에서 승리하는 과정에서 유권자들의 공화당 경선 참여율은 역사상 가장 높은 기록을 달성할 정도였다. 그동안 트럼프가 강조해 온 것처럼 트럼프를 통한 투표율 증가가 본선에서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트럼프로 하여금 현재의 정책방향을 유지하게 할 것이다. 둘째, 미국의 선거과정이 점점 유권자 설득보다는 자신들을 지지하는 유권자를 실제로 투표하게 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다시 말해, 중도 혹은 부동층을 공략하는 선거전략을 구사하는 것보다, 자신들의 고정 지지층을 투표장에 나오게 하는 것이 선거에서 더 유리하다는 것이다. 이 경우, 정책방향을 중도로 옮기는 것보다 선명한 정책방향을 유지하는 것이 표 계산에서 효과적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트럼프의 정책방향은 본선까지 현재의 방향을 유지하게 될 것이며, 11월 선거까지 미국 국민들은 트럼프의 정책에 대해 학습하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 미칠 영향 트럼프가 11월 대선에서 승리하여 대통령이 될 경우, 우리에게 골치 아픈 많은 일들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그가 선거과정에서 이렇게 경제적 국수주의에 기초한 정책들을 표방하더라도 실제로 정책화될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을 수 있다. 미국 정치의 견제와 균형, 미국의 관료제, 그리고 국제정치의 엄연한 현실적 상황이 그의 말과 같은 극단적 선택을 어렵게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트럼프의 주장과 관련된 걱정을 지울 수 없다. 우선, 무역에 관한 부분이다. 전통적으로 선거과정에서 공화당은 자유무역을 옹호해 왔고, 민주당이 보호무역에 가까운 주장을 해 왔다. 그런데 트럼프가 민주당의 영역에 가까운 반 자유무역 정책을 표방함으로써 민주당의 클린턴은 그에 상응하거나 그보다 강한 무역정책을 들고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민주당의 지지 기반인 노동조합과 그들의 반자유무역적 성향보다 훨씬 강한 트럼프의 정책에 맞서기 위해서는 클린턴 역시 그에 못지않은 정책을 내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크게 공격받을 가능성이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트럼프와 상관없이 현재도 미국의 불만이 큰 상황이다. 환율, 반기업적 환경, 관세 등의 문제에 있어서 미국은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강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선거과정에서 나오는 논의들과 맞물리게 되면, 자연히 미국 대중들이 우리에게 부정적 인식을 갖게 될 가능성이 크다. 향후의 방위 분담금 협상, 미국의 대(對)한국 투자 및 사업환경, 그리고 환율 등에 관한 문제들이 우리에게 압박으로 다가올 것이다. 복잡한 국제정치의 현실보다 트럼프가 던진 "왜 미국에 많은 수출을 하는 한국을 우리가 보호해야 하느냐" 하는 말만이 대중에게 기억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________ 1) http://www.pewresearch.org/fact-tank/2014/04/01/americans-disengaged-feeling-less-respected-but-still-see-u-s-as-worlds-military-superpower/ ​ 現 아산정책연구원 워싱턴 사무소장.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Georgetown University에서 정책학 석사학위, 미국 University of Wisconsin at Milwaukee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한국학연구소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재직. 주요 연구분야는 정책결정과정에서의 여론문제, 제3국의 내전 무력개입에 관한 국제분쟁 등.
  • 남북관계의 변화와 한반도 외교의 과제
    저자
    허태회(선문대학교 교수/제주평화연구원 객원연구위원)
    발간호
    2016-18
    남북관계의 변화양상 일제 강점으로부터 해방된 지 70여 년이 지났다. 독립 이후 한국사회는 분단과 전쟁, 독재와 탄압의 어두운 시기를 거치면서 빠른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었다.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보기 드문 성공의 역사를 쓰면서 한국은 세계사에서 발전의 귀감이 되었다. 그러나 또 다른 반쪽인 북한의 낙후된 경제와 군사모험주의로 인하여 남·북은 지난 70년 간 분단의 벽을 넘지 못한 채 적대적 대치 상태로 남아 있다. 돌이켜보면 1950년대 동서냉전이 시작하였을 때 냉전의 첨병 역할을 하던 양측은 전면전을 불사하면서 한반도에서 정통성 시비와 투쟁의 시기를 거쳤다. 이후 1960년대에는 직접적인 남북대화 없이 반목과 대립이 심화되는 갈등의 시기를 거쳤으며, 70년대 초반 국제적인 데탕트 조류에 편승하여 잠시나마 대화와 협상을 시도하였다. 1980년대에 신냉전이 도래하면서 양측은 다시 갈등과 반목의 시기를 겪게 되었지만 90년대 초반 세계적인 탈냉전 조류에 떠밀려 본격적인 대화와 협상에 나섰다. 그러나 남북기본합의서 체결과 같은 가시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냉전 해체를 위한 천금과 같은 기회를 잃어버린 채, 2000년대 초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인 관계 정상화를 모색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진보정권의 등장으로 1, 2차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면서 남북관계의 개선에 상당한 진전을 보이기도 했지만 북한의 핵개발과 미사일 발사문제로 남북관계는 다시 진통을 겪고 현재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다. 분단 70년과 한반도 외교의 과제   남북관계의 변천과정 70년을 기록해 보면서 느낀 소회 중의 하나는 한반도 분단사를 조명하는 데 있어서 그동안 우리 한국학자들의 시선이 외부적 요인에 의해 경도되어 있지 않는가 하는 것이었다. 사실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함께 분단을 겪은 많은 국가들도 우리보다 더 외압적이고 거친 국제정치 현실을 극복하고 통일국가를 이루었다. 해외 세미나에서 외국학자들이 종종 지적하듯이 해방 이후 한반도의 분단이 고착화되고 구조화된 현실을 우리는 스스로 외부적 요인에 주목하면서 자기합리화식의 해석으로 일관하지 않았는가 싶다.   분단 70년은 결코 짧지 않은 역사이다. 이 긴 과정을 큰 역사적 틀에서 통시적으로 바라보고 통찰력이 있는 통일비전을 형성하려면 이제 우리의 남북관계를 바라보는 시선도 좀 더 미래지향적이고 자기성찰적일 필요가 있다. 필자는 해방 이후 지난 70여 년의 남북분단 역사를 시기별로 나누어 역사적 맥락에서 함께 뒤돌아보고 남·북 간에 전개되어 온 상호작용을 한반도 외교의 시각에서 기술하면서 남북관계 변천이 주는 성찰적인 의미를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었다. 역사적으로 한반도는 지정학적 요충지에 위치하여 주변 강대국들의 관심대상이었으며 핵심이익이 걸린 지역이었다. 한반도는 오랫동안 중국인들에게 “용의 머리를 내려치는 망치(a hammer ready to strike at the dragon's head)”라는 식으로 인식되었으며, 일본인들에게는 “일본의 심장을 겨누는 단도(a dagger pointed at the heart of Japan)”라고 인식되었다. 주변국의 이런 아전인수 격인 해석이 한반도에게는 좋은 결과로 나타나지 않았지만, 이러한 표현은 그들에게 한반도가 중요한 전략지역으로 인식된 것이 틀림없음을 보여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최강국으로 부상한 미국마저 한반도가 소련의 공산주의 팽창을 제어하는 데 사활적 이익이 걸린 지역이 되자 한국전쟁이라는 대규모 전쟁을 불사하였다. 지금은 러시아로 위축되었지만 공산주의 진영을 이끌던 구소련 또한 자국의 동북지역 안보와 공산세력의 확산을 위해 한반도 북쪽에 사회주의 체제가 수립되도록 전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한반도의 지전략적인 상황(geo-strategic conditions)에서 한반도를 양분한 한국과 북한이 강대국들의 개입을 극복하면서 독자적으로 남북관계를 발전시키고 통합으로 나가는 것이 그처럼 어려웠을까? 해방 이후 남북관계의 70년 변천과정은 한반도 정치상황과 주변환경에 남과 북이 나름대로 반응하면서 겪었던 갈등의 역사이자, 지난한 적응의 과정이었다. 남북관계의 발전과 관련하여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거나 한반도 안정을 위해 상호협력을 제도화하는 데 있어서 대북강경책의 효용성이 기대만큼 크지 않다는 것이다. 이것이 물론 대북포용정책을 옹호하려는 것은 아니다. 제 1공화국에서부터 제3, 제5공화국에 이어 문민정부와 이명박 정부에 이르기까지 대북강경정책의 배경이나 의도는 이해할 수 있지만, 그 효과는 결코 기대한 것만큼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반면에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과 그 후 진보정권 10년 동안 추진된 대북포용정책들은 그 나름대로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남북관계 발전과 한반도 긴장 완화에 더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남북관계의 발전과 관련하여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은 우리 정치지도자들의 외교적 경륜과 전략적 사고이다. 역사적으로도 그러했지만 최근의 한반도가 처한 지전략적 상황은 그 어느 때보다 지도자들의 탁월한 외교적 감각과 전략적 판단을 요구한다. 한국이 처한 군사안보적 상황과 국제정치적 역학관계의 관점에서 본다면 복잡·미묘한 외교문제를 타결해나갈 수 있는 전략적 혜안을 가진 지도자의 등장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서독의 통일외교 공간을 확장시킨 동방정책의 빌리 브란트 그리고, 저렴한 봉쇄정책(Containment in Cheap)의 구상으로 미·중·소의 전략적 삼각관계 구축에 성공했던 헨리 키신저와 같은 전략가의 등장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책결정의 타이밍 또한 남북관계의 발전에 중요한 요소이다. 남과 북 모두 주변환경의 변화에 나름대로 민감하게 반응하려고 하였지만 결정적으로 중요한 기회를 놓치고 나중에 후회한 순간이 많았다. 특히 한반도 주변환경이 남북관계의 발전에 유리하거나 우호적일 때는 남과 북이 머뭇거림이 없이 속도를 내거나 더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 1990년대 초반 세계적인 탈냉전이 진행되고 있었을 때 남과 북이 상호 인정과 수용의 단계를 넘어 제도화하는 데까지 나갔더라면 2000년대의 남북관계는 더 높은 차원으로 진전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것은 문민정부와 이명박 정부 당시 남과 북에게 똑같이 적용된다. 문민정부 시절 김영삼 대통령이나 북한의 카운터 파트인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남북관계 개선의 의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주변 정세의 변화나 상대방 입장에 대한 전략적인 판단 없이 행동하여 남북관계 발전에 천금과 같은 기회를 잃어버렸다. 이명박 정부 역시 집권 초기, 새로 강화된 한·미 동맹관계를 이용하여 남북관계를 한층 더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가 있었으나 잘못된 판단으로 이를 실기하였다. 남북관계의 발전에 대하여 남과 북의 리더쉽이 구상해낸 정책내용 이상으로 정책의지와 타이밍이 중요하다. 역대 한국 정부는 각자 다양한 대북정책을 추진하였으며 북한의 3대 리더쉽 체제도 남북문제와 관련하여 여러 노력을 기울였지만, 정책내용이 미흡해서라기보다 타이밍을 놓쳐서 천금과 같은 기회를 잃어버린 경우가 많았다. 남북관계는 표면적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단순한 남과 북의 양자관계에서 진행되지 않는다. 남북관계는 남과 북의 당사자뿐만이 아니라 한반도 주변환경과 한미관계, 북미관계, 북중관계 등 여러 변수가 작용하는 복잡한 고차방정식이다. 최근에는 북핵문제까지 가세하여 남북관계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북핵문제가 여하히 해결되지 않으면 남북관계는 물론 한미관계와 한일관계에도 장애요인으로 작용하여 각국의 발목을 잡고 한반도 긴장 고조 및 동북아 불안정을 초래할 것이다. 북핵문제의 조기해결을 위한 전향적 조치를 서둘러 마련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이다. 남북관계의 새로운 지평을 열기 위해 2015년 8월 말, 남북 간의 군사적 긴장이 최고로 달한 ‘준전시’의 상태에서 남과 북이 전격적으로 합의를 하고 군사긴장을 완화시켰던 협상 타결의 과정을 보면 그동안 남과 북이 교류하고 협상했던 지난 분단 70여년의 과정이 그다지 헛된 것은 아닌 것 같다. 70여 년의 남북관계 역사는 협상하다가 싸우고, 싸우다가 협상하면서 서로를 겪게 된 지난한 갈등과 적응의 과정이었다. 당시 남북 고위급회담의 합의가 현 정부의 대북정책은 물론, 남북관계의 새로운 분수령이 되고 역사적 전환점이 될 수 있을지 확신할 수는 없다. 2016년 새해 벽두에 터진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이에 대한 미국과 국제사회의 제재조치로 인하여 한반도에는 다시 긴장이 고조되었고, 남북관계는 경색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작년 8월 말에 어렵게 타협된 남북합의를 기초로 남북관계의 개선을 본격적으로 시도하려고 한 현 정부는 물론 미국과 중국, 일본의 대북제재조치가 그 어느 때 보다도 강경하기 때문에 북핵문제와 남북관계의 해결에 돌파구가 열리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다만 중요한 것은 지난 70여 년의 남북분단사가 웅변하듯이 이러한 사건들이 남·북 간에 한두 번 있었던 것이 아니며 최고조의 남·북 긴장상황에서 극적인 타결을 시도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 것이다. 남과 북은 그동안 많은 분쟁과 갈등을 겪었지만 분단 70여 년을 거치면서 수많은 협상을 통해 서로에게 적응해 왔다. 이번의 상황 역시 어려운 과정을 겪겠지만 지금까지 그러해 왔듯이 남과 북이 나름대로 어렵고 험난한 위기를 지혜롭게 헤쳐 나가길 기대한다. 남북관계가 순항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넘어야할 산도 많고, 건너야 할 강도 많다. 남북분단 70여 년간 서로가 상대방에게 갖고 있었던 불신의 벽이 높고, 갈등의 골은 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남북분단 70년의 과정을 자성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때다. 남과 북 양측이 외부적 요인보다 자율적인 의지와 노력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갖고, 남북관계의 진전에 새 지평을 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現 선문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 건국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후에 미국 워싱턴 주립대 정치학 석사, 덴버대학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함. 한국정치사회연구소 연구위원과 국가정보원 전문위원을 역임함. 이후 선문대 입학홍보처장과 대외협력처장, 중앙도서관장, 국제평화대학 학장 및 동북아역사재단 자문위원, 대통령 직속 사회통합위원회 이념분과 위원 등을 역임함. 주요 연구분야는 미국 외교정책과 동아시아 정치 및 통일문제 등이며, 최근 연구로는 "전략정보의 실패와 정보 분석", "정보환경의 변화와 국가정보의 개혁" 등이 있음.
  • 대북 ‘포괄적 제재’ 이후의 조건
    저자
    도종윤(제주평화연구원 지역통합연구부장)
    발간호
    2016-19
    규범 위반국에 대한 ‘제재’   미국 정치 매거진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의 편집인 유리 프리드만(Uri Friedman)은 적국에 대한 봉쇄로 그들의 행위를 바꿀 수 있다는 신념을 제재의 개념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제재를 ‘포괄적 제재(comprehensive sanction)’와 ‘스마트 제재(smart sanction), 또는 목적 제재(targeted sanction)’로 구분한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다. 국제무대에서 어느 한 국가가 다른 국가에 ‘제재(sanction)’를 취한 역사는 의외로 깊다. 과거의 제재는 거의 ‘포괄적 제재’의 성격을 지녔다. 고대 도시국가 아테네는 기원전 432년에 이웃 국가 메가라에 무역금지조치(embargo)를 취한 적이 있다.1) 그러나 이 조치는 이후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도화선이 되어 아테네가 스파르타에게 패하는 시발점이 되었다. 대륙을 통일한 나폴레옹은 1806년 11월, 베를린에서 대륙봉쇄령(continental system)을 선포하였다. 이는 무차별적인 조치로, 정치적으로 영국을 고립시키고 산업면에서 프랑스가 대륙의 영향력을 장악하기 위한 시도였지만, 결국은 실패하고 말았다. 영국의 경제 불황이 프랑스의 동맹국들에게 큰 이득이 되지 못했고, 스웨덴, 포르투갈, 러시아 등의 국가들이 속속 이탈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우, 1510년 조선조 중종 5년, 삼포왜란을 겪은 후 왜와 교역을 중단했다가 2년 뒤 임신약조로 제한적 교역을 재개했는데, 이 역시 왜에 대한 포괄적 제재의 성격을 띠었다. 즉, 왜인들이 삼포에 거주하는 것을 금지하고 조선이 대마도주에게 허락해주던 세견선 수를 50척에서 25척으로, 세사미두의 양은 쌀과 콩 200석에서 100석으로 줄인 것이다.2) 다만, 이 조치가 성공을 거두었다고 보기는 어려운데 이후 사량진왜변(1544년), 을묘왜변(1555년) 등 왜의 침략은 줄어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UN의 대북(對北) 포괄적 제재   2016년 3월 2일(뉴욕 시간), UN 안전보장이사회는 만장일치로 결의안 2270호를 채택하였다. 이는 북한이 1월 6일 감행한 제4차 핵실험과 2월 7일의 장거리미사일 발사 실험에 따른 조치이자 UN헌장 7장 41조의 비군사적 제재 규정에 근거한 결과이다. UN은 이미 핵실험 및 장거리미사일 발사와 관련하여 결의안 1718호(2006), 2874호(2009), 2087호(2013), 2094호(2013) 등을 내놓은 바 있다. 대한민국 외교부는 이번 조치에 대하여 “...70년 유엔 역사상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비군사적 조치로는 가장 강력하고 실효적인 제재 결의이며, 거의 모든 조항이 의무화되어 있는 역사적인 결의”라고 평가하였다. 또한, “기존의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는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 개발에 집중적으로 초점이 맞춰져 있었으나, 금번 안보리 결의는 북한의 WMD 개발에 대응하는 것은 물론, WMD 차원을 넘어서 북한 관련 제반 측면에 심대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제재 조치들이 포괄적으로 망라되어 있다”3)고 설명하였다.4)   외교부가 평하였듯이 UN의 결의안은 매우 광범위할 뿐 아니라 세밀한 내용을 언급하고 있다. 결의안 2270호는 서문 외에 52개 조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조항의 머리 구(句)에는 동사(動詞)를 사용하여 UN의 행동을 정의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규탄한다(condemn)’, ‘확인/재확인한다(affirm/reaffirm)’, ‘상기한다(recall)’, ‘강조한다(underscore/underline/ emphasize)’, ‘주지한다(note)’ 및 ‘결정한다(decide)’ 등을 언급하고 있다. 이 가운데 ‘결정한다’에 해당하는 조항은 거의 절반에 가까운 25개에 달한다. 몇몇 조항은 2006년의 결의안 1718호에서 언급된 내용을 개인 및 기관(entity)으로 확대한 것이기는 하지만, ‘결정을 내린’ 제재 조치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확대·심화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이는 이란의 핵무기 개발 의심에 따라 2008년 3월에 채택된 UN안보리 결의 1803호와 비교해 볼 때 더욱 분명하다. 1803호에서는 조문이 20개, 결정이 6개였으며, 그 후속 조치였던 2010년의 UN안보리 결의 1929호는 조문이 38개, 결정이 15개였다. 이에 비하면, 북한에 대한 이번 UN 결의는 훨씬 광범위하며 강경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더구나 2010년의 대 이란 결의안은 찬성 12, 반대 2, 기권 1 등 국제사회의 목소리가 다소 분산된 모습을 보였으나, 이번 대북 결의안은 만장일치였을 뿐만 아니라 회원국의 제재 이행을 요청하는 조항이 늘었다. 이는 북한에 대한 태도에 국제사회의 공감대가 일관되게 형성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한편, 결의안 2270호에서 제재와 관련된 결정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어떤 형태든 무기와 관련된 모든 물질, 금융거래, 기술훈련, 서비스 등이 북한으로 이전되는 것의 금지(6조), 회원국의 영토를 통한(특히 선박) 무기 관련 품목의 거래 금지(10,11조), 의심되는 화물에 대한 검문(18조), 북한에 대한 선박의 리스(lease), 수리, 선적, 취업, 연료 제공의 금지(19, 20, 22, 31조), 의심되는 북한 항공기의 이착륙 및 비행 금지(21조), 북한산 천연자원 판매 금지(29, 30조), 북한 해외 자산동결의 확대 및 북한과의 금융거래 금지(32, 33, 34, 35, 36조) 등이며 이들은 모두 주목할 만한 것들이다. 일부는 2006년 결의안 1718호의 적용 범위를 보다 넓힌 것이고, 또 다른 일부는 세밀한 항목까지 열거하며 적용하고 있다. 결정이 늘어났고, 세부사항이 자세히 열거되었다는 것은 이번 결의가 설득과 촉구보다는 집행과 징벌적 측면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 하나, 간과해서는 안 될 점은 민간인 또는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미묘하게 영향을 받을 수도 있는 사안들에 대한 조치가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회원국의 북한 민간인 추방(14조), 핵개발과 관련된 전산·GPS·우주과학 등에 관한 훈련을 제공하지 못하게 한 조치(17조), 의심되는 화물을 소지한 개인에 대한 검문(18조) 등이 그러한 예이다. 물론 결의안은 이러한 조치들이 개별 회원국의 사법적 절차에 따라야 하고, 의료나 안전, 그리고 다른 인도주의적 목표에 미치는 영향력이 최소한에 그칠 것을 요망하고 있다. 대 이란 결의안 1803호(2008년)의 경우, 이란인의 UN 회원국 입국을 금지하는 규정을 두고 있으나 핵확산과 관련된 활동에 관련된 자들로 매우 좁게 규정하고 있고(5조), 그나마 인도주의적 활동과 관련된 경우에는 예외로 두도록(6조) 하였다. 1929호(2010년)는 선박의 검문과 수색, 금융을 관리하는 분점의 개설 등을 회원국이 판단할 권고사항으로 두었다(15, 23조). 이란에 대한 제재 결의안은 회원국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쪽에 무게 중심이 놓였고, 범위는 핵·미사일과 관련된 사안에 한정되었다. 물론 북한에 대한 제재가 이란에 대한 제재와 같은 수준일 수는 없다. 북한은 이란과 달리 네 차례에 걸쳐 지하핵실험을 실시했고, IAEA 탈퇴를 언급하며 핵 보유국임을 공공연히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포괄적 제재’ 이후의 조건을 고민할 때 여기서 잠시 생각해 볼 것은 이번 UN안보리 결의안 2270호가 한반도 평화를 이루기 위해 어떤 의미 부여가 가능한가 하는 것이다. 이란에 대한 제재는 ‘스마트 제재’ 또는 ‘목적 제재’의 성격을 띤 반면, 북한에 대한 제재는 이보다 가혹한 ‘포괄적 제재’이기 때문이다.5) 최근 미국의 봉쇄가 풀린 쿠바, 이란을 비롯하여 아직도 지속되는 시리아, 러시아, 라이베리아, 수단, 코트디부아르 등에 대한 제재는 모두 ‘스마트 제재’, 혹은 ‘목적 제재’에 가깝다. 이러한 느슨한 제재는 비록 강도와 범위가 제한적이라 할 지라도, 규범 위반국에 대한 응징을 상징화하고 국제사회의 규범 수호의 의지를 보여주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는 제재가 문제를 풀기 위한 과정일 뿐, 그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포괄적 제재’는 ‘스마트 제재’와는 달리, 규범 수호를 위한 상징화를 넘어 대상국을 실천적으로 굴복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북한에 대한 제재가 전례 없이 강력한 것이라면 이를 벗어날 출구가 지나치게 경직되고 좁아서는 안 될 것이다. 설령 제재 대상국이 언젠가는 국제사회에 굴복하고, 변화된 모습을 보일지라도, 그것이 그 국가의 주민 복지를 심각하게 훼손한 뒤에 오는 것이라면 이는 성공의 의미를 반감시킬 뿐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의 과제는 제재 대상국 정치지도자들의 신념과 행동을 바꾸는 데, 혹은 버티는 데 ‘포괄적 제재’가 어떤 변곡점인지를 그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포괄적 제재는 스마트 제재보다 사태 해결의 조건을 보다 단순화하고, 그 이후의 국면을 보다 정교하게 제시할 필요가 있다. 강력한 제재일수록 그 이후의 기대와 보상이 보다 크다는 것이 인식될 때, 행동의 변화를 유인하는 매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1) Uri Friedman, “Smart Sanctions: A Short History,”, Foreign Policy, April 23, 2012. 2) 『중종실록』, 7년 8월 20일 3) 외교부 군축비확산 담당관실 보도자료, 2016년 3월 3일. 4) 2006년에 UN이 김정일 등 북한 최고 지도자들이 선호하는 사치품의 거래를 금지한 제재는 논란의 여지없는 ‘스마트 제재(smart sanction) 또는 목표 제재(targeted sanction)에 해당할 것이다. 5) 어떤 전문가들은 이란에 대한 제재가 ‘포괄적 제재’라고 보기도 한다. 한편, 미국 재무성은 ‘스마트 제재’와 ‘포괄적 제재’를 따로 구분하고 있지 않다. 現 제주평화연구원 지역통합연구부장. 브뤼셀 자유대학교에서 정치사회학 박사학위 취득. 주요 논문으로 "국제정치학에서 주체물음(2013)", "유럽연합의 개발협력전략(2013)" 등이 있음.
  • Towards Peace through Dialogue: The 11th Jeju Forum for Peace and Prosperity
    저자
    Intaek HAN(Jeju Peace Institute)
    발간호
    2016-20
     The beauty of Jeju Island needs no explanation. Every year over 10 million tourists visit Jeju from home and abroad. Jeju is designated as a world natural heritage, a global geopark, and a biosphere by UNESCO. Recently, it was also voted as one of the new Seven Wonders of the World. Perhaps a lesser known but no less important fact is that it is also an “island of world peace,” and every spring, thousands of people gather to talk about peace and prosperity. This annual gathering, the Jeju Forum for Peace and Prosperity, is attended by some of the biggest names in Asia and around the world, including former and current heads of state, CEOs of global conglomerates, and renowned scholars. But it is also a gathering for everyone and anyone who cares about peace. Almost 30 years ago, when the Cold War was drawing to a close, then newly elected President of South Korea Roh Tae-woo introduced “Nordpolitik.” Under the new doctrine, South Korea would reach out to countries it had previously considered enemies. It would seek to normalize diplomatic relations with the Soviet and China. The ultimate target was, of course, North Korea. South Korea’s efforts paid off. In September 1990, South Korea and the Soviet normalized their relations. The following year, then Soviet President Mikhail Gorbachev was mindful of North Korea, and suggested that the summit be held away from Seoul and away from North Korea. As a result, Jeju was chosen. The Roh-Gorbachev summit not only contributed to ending the Cold War, it also started a community-wide movement to turn Jeju into an “island of peace.” In April 1996, former President Kim Young-sam and former U.S. President Bill Clinton had a summit in Jeju, followed by a summit between former President Kim and then Japanese Prime Minister Ryutaro Hashimoto. China’s former President Jiang Zemin also visited Jeju and famously played the piano there. The Jeju Forum for Peace and Prosperity, which began in 2001, aims to promote peace through dialogue and achieve prosperity through cooperation. In essence, the Jeju Forum continues and expands the tradition of summit meetings to discuss peace among friends and former adversaries. In 2005, the Korean government officially designated Jeju as an “Island of World Peace.” In this time of heightened tensions in the region, one may argue that “peace through dialogue” is too idealistic. But existing “realist” mechanisms in Northeast Asia are becoming increasingly costly and irrelevant. For instance, the ROK-US alliance is becoming irrelevant in deterring the North from cyber or nuclear attacks on the South or even on the United States. The North has already launched successful cyber attacks on South Korean and U.S. targets. A capable North Korean intercontinental ballistic missile or submarine-launched ballistic missile that can reach a U.S. mainland target will cast doubt on the credibility of the U.S. nuclear umbrella and the essence of the alliance. Not only that, even an effective ROK-U.S. alliance is unable to force the North to denuclearize or provide an incentive to implement a regime change. On the contrary, past behavior by the North indicates that a stronger alliance is likely to harden its stance. In addition, efforts by the ROK-U.S. alliance against the North agitate China and deepen the security dilemma for the South. Indeed, it is time for fresh new approaches. This is where the Jeju Forum can come in. From its very origin as a regional, multilateral security dialogue, the forum has been serving as a venue where new ideas for peace and prosperity have been proposed, discussed, and shared. This year’s forum will also do just that. Thousands of participants from over 60 countries will gather and discuss Asia’s new order and disorder and explore ways to develop a cooperative leadership. May is a great month to visit Jeju. Come to Jeju for its beauty and also to find peace. Intaek HAN is Director of Research at the Jeju Peace Institute, which organizes the Jeju Forum for Peace and Prosperity.
  • 아시아의 새로운 질서와 협력적 리더십
    저자
    무라야마 도미이치 (前 일본 총리)
    발간호
    2016-21
      우리가 동아시아와 동북아시아에서 서로 평화롭게 협력하며 지내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과거의 전쟁과 식민지 지배의 역사를 청산하고 화해하는 것입니다. 일본은 1945년 패전을 통해서 전쟁 국가에서 평화 국가로 다시 태어났지만, 그에 걸맞은 역사 인식을 확립하는 데에 충분한 시간을 갖지는 못했습니다. 전후 50년이 되던 해에 저는 내각 총리대신으로서 ‘무라야마 담화’로 알려진 총리 담화를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담화의 내용 중에서 “우리나라는 멀지 않은 과거의 한 시기, 국책을 잘못 펼쳐 전쟁의 길로 나아가 국민을 존망의 위기에 빠뜨렸으며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많은 국가들, 특히 아시아 여러 국가의 사람들에게 막대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습니다”라는 역사 인식을 표명하였습니다. 일본이 대만을 청나라에서 빼앗은 것은 1894년부터 1895년까지 벌어진 청일전쟁의 결과이며, 한국을 점령하고 강제적으로 병합한 것은 1904-1905년 러일전쟁의 결과이기 때문에, 무라야마 담화의 반성은 이 두 전쟁으로부터 시작되는 50년간의 일본의 전쟁 시대 전체를 포괄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무라야마 담화는 제가 총리를 사임한 후 일본의 국시(國是)로서 자유민주당의 역대 총리들에 의해 계승되었습니다. 그리고 2010년에는 민주당의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가 한국 병합 100년의 총리 담화를 발표하여 식민지 지배 반성을 한층 더 깊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2012년 말 총리가 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무라야마 담화의 재검토 목표를 표방하며 등장하여 국내외에 큰 파문을 불러일으켰고, 이는 매우 우려스러웠습니다. 최종적으로는 아베 총리도 무라야마 담화 계승을 표명하기에 이르러, 작년 8월에 전후 70년 아베 담화를 발표하였습니다. 아베 담화는 무라야마 담화보다 훨씬 길며 복잡합니다. 아베 담화는 “세계 대공황 이후에 세계의 대세를 따라잡지 못한 일본은 만주 사변 이후 새로운 국제 질서에 대한 ‘도전자’가 되어 갔다. 진로를 잘못 잡고 전쟁에의 길로 나아갔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만주사변 이후의 15년 전쟁에 대한 반성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러나 아베 담화는 러일전쟁이 아시아나 아프리카 사람들의 용기를 북돋웠다고 평가하는 한편, 청일전쟁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하여 이 두 전쟁에 대한 반성을 거부한 것이므로, 대만, 한국에 대한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반성, 사죄가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아베 담화는 무라야마 담화의 내용을 절반 정도 확인했다고 말할 수 있으며, 한국 및 한반도 사람들에 대한 배려 부족은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물론 아베 담화가 무라야마 담화를 대신하는 것은 아닙니다. 무라야마 담화는 계속해서 일본의 국시로서 그 생명력을 이어나갈 것이므로 이에 대해 염려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역사에 대한 반성은 원칙적인 인식에 머무르지 않고, 침략이나 식민지 지배 피해자에 대한 사죄와 속죄 노력을 통해서 나타나야만 합니다. 이러한 점에 있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는 지난 25년간 사람들의 관심이 모아져 해결이 촉구되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도 아베 총리는 2012년 총재선거 때 “강제성이 있다고 하는 오해를 풀 수 있도록 고노 담화를 대신할 새로운 담화를 낼 필요가 있다”고 밝히며 출마했습니다. 이 때문에 아베 총리의 의도에 대한 경계심이 높아져 미국과 한국으로부터의 강한 비판을 받았으며, 한일관계가 붕괴위기에 처하는 심각한 대립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의 지속적인 노력에 힘입어 마침내 아베 총리가 위안부 피해자에 대해서 사죄하고 10억 엔을 한국 정부에 기탁하는 것으로 하여, 작년 12월 말의 한일 외무장관 합의 발표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베 총리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고 모든 위안부 피해자에게 사죄하는 것을 환영하는 바입니다. 이 합의가 확실히 실행되어 한국의 피해자 및 운동 단체에 받아 들여져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고, 양국의 화해를 위해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12월 28일 외무장관 회담 합의 발표로 표현된 아베 총리의 사죄 의지를 편지로 작성하여, 위안부 피해자에게 직접 전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총리였던 시절 내각에서 마련했으나 유감스럽게도 한국 피해자 대부분이 거부한 아시아여성기금에서도 하시모토(橋本), 오부치(小渕), 모리(森), 고이즈미(小泉) 총리가 자필로 서명한 ‘사과의 편지’를 피해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보낸 바 있습니다. 이번에는 총리의 사죄 의지를 표현한 편지를 주한대사를 통해 보내어 고령으로 상당수 병상에 계신 피해자 분들의 가슴을 울리는 사죄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랍니다. 일전에 저는 키시다(岸田) 외무대신을 방문하여 이러한 취지를 이야기하고 왔습니다. 문제 해결을 위해 한국 내에서의 논의와 양국 정부 협의가 진행되기를 희망하는 바입니다. 우리가 평화롭게 서로 도우며 살기 위해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은 새로운 전쟁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일본의 50년 전쟁이 심각한 상흔을 남긴 이 지역에서는 그 후에도 약 30년간 중국 내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이 계속되었습니다. 베트남전쟁이 끝나고 40년이 지난 지금 동북아시아에서는 북한의 움직임을 둘러싸고 긴장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북한이 핵실험과 인공위성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미국과 일본이 중심이 된 UN 안보리의 제재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북한의 입장은 자꾸 악화되고 있으며 국제사회의 제재는 더더욱 강해지고 있으나, 사태는 계속 악화되고 북한의 핵병기는 늘고 있습니다. 북한의 젊은 지도자가 판단 착오를 범할 경우 군사적 충돌이 일어날 수도 있는 상태입니다. 만약 한반도에서 충돌이 일어나면 일본에도 미사일이 날아오게 되어 있어 자동적으로 일본도 전쟁에 참가하게 됩니다. 이 경우, 한국·북한·일본이 치명적인 파국을 맞게 될 수 있기 때문에 군사적인 충돌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며, 북한의 도발적인 행동도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북한은 미국 및 일본과 국교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미국과 일본에게 있어서 북한은 국교가 없는 유일한 나라입니다. 일본은 북한과 식민지 지배 청산을 해야 할 것입니다. 미국과는 무관하게, 일본은 이웃나라와 대립한 채로 있을 수 없습니다. 어떻게든 지혜를 내어 북한과의 관계를 바꾸는 것을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북한이 장래 핵개발을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우선 국교를 맺고 선린(善隣)관계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은 북·일 간 무역이 완전히 차단되어 선박의 왕래도 허용되지 않습니다. 이는 실로 적대관계에 있는 것과도 같습니다. 반면, 이를 극복하여 일본과 북한이 관계를 강화하게 된다면 남·북의 진정한 교섭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동북아시아 지역의 또 하나의 문제는 동중국해의 센카쿠 열도 문제입니다. 최근에는 진정된 상태이지만, 중국과 일본은 이 섬 주위에서 상당한 긴장 상태를 경험했습니다. 일본 자위대에는 도서(島嶼)방위라는 방침이 주어져 아베 정부는 유사시에 미군의 협조 약속을 얻어 내고자 노력 중입니다. 이 섬에 대해서는 서로의 주장이 정면으로 맞서고 있습니다. 서로가 각각 할 말이 있는 만큼 영토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일본은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이 평화 국가가 되었을 때에 일본이 행한 것은 일중부전(日中不戰)의 서약이었습니다. 그것을 생각한다면 센카쿠 열도 문제로 중국과의 무력 충돌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 저는 양국이 센카쿠 열도를 공동 개발하여 평화의 섬으로 만드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상으로 동아시아와 동북아시아의 문제를 중심으로 제가 평소 생각하고 있는 소감을 말씀 드렸습니다. 이러한 방침과 생각은 일본 헌법이 가리키는 방침이라고 생각합니다. 전후 70년 동안 일본은 전쟁을 지양하는 길을 걸어 왔습니다. 지금이야말로 평화의 길을 관철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일본에서는 아베 정권의 헌법 개정 발언을 둘러싸고 심한 대립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평화의 길은 용이한 길, 평탄한 길이 아닙니다. 각국의 이해와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저는 작년 말에 북경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었습니다. 그 때 천안문 회당에서 시진핑 주석은 저에게 중국은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로 패권을 원하지는 않으며, 할 수 있다면 일본과 협력하여 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노력하고 싶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저는 이에 매우 강력하게 공감하였으며, 이 포럼에 참가하신 여러분과 힘을 합쳐 평화를 위해 나아가고자 합니다. 무라야마 도미이치(前 일본 총리), 2016 제주포럼 기조연설 발췌문
  • 아시아의 새로운 질서와 협력적 리더십
    저자
    Enrico LETTA (前 이탈리아 총리)
    발간호
    2016-22
      이탈리아인이자 유럽인으로서 제가 가진 ‘유럽연합의 성장과 통합의 과정’이라는 관점에서, 그리고 지난 수십 년간 평화와 안정의 시대를 가져온 과정을 지켜보고 경험한 이의 관점에서 ‘새로운 세계질서 속의 협력적 리더십’이라는 주제를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지난 10년간 유럽을 뒤흔든 세 가지 중대 위기의 영향을 살펴보는 데 초점을 맞추겠습니다. 그 세 가지 사건이란 바로 금융경제위기, 난민위기, 그리고 IS와의 전쟁을 배경으로 한 테러위기입니다. 이 세 가지 위기가 국제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또 소위 말하는 “아시아의 세기”에 거는 기대와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에 대한 답을 구하는 데에 있어서, 저는 한 가지를 명확히 하고자 합니다. 그것은 저의 시각과 여러분의 시각 사이에 거리가 있다면 그것은 단지 지리적 거리에서 비롯된 것일 뿐이라는 점입니다. 유럽문명과 아시아문명은 모두 1000여 년간의 진화의 산물이자 고귀한 철학적·문화적 전통의 산물이며, 두 문명 사이에는 국가 간 평화와 대화라는 공동의 목표가 존재합니다. 이 목표는 반기문 UN 사무총장이 국제문제의 지속가능한 공동 관리 방안을 구하기 위해 끈기있게 추구해 온 목표와 같은 것입니다. 이 목표 자체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변화와 혁신을 통해 사람들 간의 불평등을 줄이는 것으로, 이 포럼의 주최국이자 세계적 기술혁명의 선두에 있는 대한민국의 성공사례가 이를 입증하고 있습니다. ‘암흑 시대’의 3대 위기: 유럽연합은 왜 협력적 지도력을 필요로 하는가 이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어두운 시기였던 지난 10년간 유럽에서 벌어진 일들을 살펴봅시다. 첫째, 심각한 경제위기는 무엇보다도 먼저 국가부채를 가져왔고, 이어 유로화와 기업, 그리고 고용환경에 충격을 가했습니다. 경제위기는 우리사회를 심각하게 뒤흔들어 놓았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부의 창출 모델과 사회보장 모델을 파괴했습니다. 대부분의 국가 지도부는 이러한 광풍에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했습니다. 처음으로 권위 있는 대응책이 나온 것은 2012년입니다. 그 해에 마리오 드라기(Mario Draghi) 유럽중앙은행 총재는 “(유로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것”이라고 말했고, 그 발언을 기점으로 금융 시스템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일련의 양적완화 프로그램이 쏟아져 나와 유럽의 경제 회복에 있어 가장 취약한 부문에 대한 보호가 이루어졌습니다. 요컨대, 협력적 리더십으로 그 정당성을 인정받은 초국가 기관이자, 가장 실질적 권한을 갖춘 유럽중앙은행만이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극적인 난민위기입니다. 매일, 그리고 일 년 중 몇 달간은 매시간, 여성과 아이들이 지중해에서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그들은 시리아, 리비아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전쟁과 기아로부터 탈출하고 있습니다. 이는 유럽의 변방뿐 아니라 유럽 전역에 불어 닥친 멈출 수 없는, 전례 없는 현상입니다. 그러나 유럽 전체는 단일한 지도력의 부재로 지금까지도 무력함만을 노출하거나, 이민 행렬에 대하여 형식적인 타협의 자세만 보여왔습니다. 유럽연합 국가 간 상호연대의 요구는 최소한에 그쳤고, 유럽연합 차원에서 시대적 긴급사태에 대처하기보다는 확신에 찬 민족주의나, 기회주의적 민족주의에 굴복하여 장벽을 세우려는 유혹은 강해졌습니다. 이러한 경우, 지시적 지도력은 효용성이 없을뿐더러 인도적 차원에서 비극적 결과를 가져옵니다. 마지막은 테러와 IS와의 전쟁으로 촉발된 위기입니다. 이는 유럽에서 폭탄공격으로 폐허화된 파리의 바타클랑 극장에서의 살육 행위로 상징될 수 있습니다. 주로 유럽 태생의 젊은이들이 또 다른 유럽 젊은이들에 의해 희생되었습니다. 이슬람 성전주의자들의 살인이라는 행위를 통한 강렬한 메시지는 유럽의 사회통합 상태가 매우 취약하고 개혁이 필요한 상태라는 점을 노출시켰습니다. 또한 이 위기상황에서 유럽의 국가지도자들은 안보·정보·외교문제 및 유럽연합 자체의 정체성 재조정 문제에 대한 책임 공유와 의사결정에 있어서 공동의 목표를 설정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테러를 물리치기 위해 유럽연합은 스스로의 영혼을 되찾아야 할 필요성을 절박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이는 무엇보다 각국이 주권을 더욱 양보하고 정치를 공유할 수 있는 ‘협력적 지도력’이 마련되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유럽연합은 ‘공동의’ 장기적 비전을 찾지 못하고 무너져 내릴 것입니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문제는 이러한 심각한 퇴보를 정확히 표현하고 있습니다. 파편화에 대한 세 가지 대응방안: 다자주의와 참여, 그리고 교육 세계가 유럽연합의 내파를 견뎌낼 수 있을까요? 그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며, 파편화와 무질서만을 초래할 것입니다. 국제관계가 중심이 되는 오늘날,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공동의 책임의식, 토론과 교류의 장, 그리고 가능한 한 폭넓은 다자간 의사결정의 형식을 필요로 합니다. 구체적 결과가 있었던 초기 상태로 회귀해야 하는 G20의 현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보다 현실적인 문제로 국제무대에 새롭게 등장한 배우의 중심 역할을 주목해 보십시오. 최근의 다자간, 양자간 무역협정을 생각해 보십시오. 마지막으로, 환경적 지속가능성과 인간에 의한 파괴행위로부터의 자연보호 문제에 대한 아시아와 유럽 국가들의 적극적 대응으로 만들어진 파리 기후변화회의의 훌륭한 성과를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모범사례를 계속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정해진 규율 내에서의 합의를 통해서만 영향력을 지닌 규율이 극단적으로 파편화되어 국제적 무질서로 이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이는 또한 참여의 확대로 이해될 수 있는 과정입니다. 이는 국가 간의 관계에도 적용되고, 우리 사회의 내부문제에도 더욱 확실히 적용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교류의 장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사람들의 삶에 혁명을 불러온 인터넷입니다. 그리고 인터넷은 지금 모든 대륙의 지도자들에게 공동체의 원리에 부합하는 권위와 능력을 증명하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진화를 두려워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은 아이디어의 전파, 경험의 공유, 그리고 참여의 요구가 지닌 엄청난 힘을 평가절하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현재의 변화를 진정한 기회로 인식하는 이들은 개방이 지닌 가능성과 국가 발전의 가능성을 인식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두 번째 부류에 속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유럽연합 창설국의 하나인 이탈리아의 전임 수상으로서, 저는 여기서 ‘유럽의 희망’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그것은 새로운 장벽과 다양한 난점에도 불구하고 진정으로 공유되는 통일적 비전만이 구대륙 국가들을 과거로부터 구원하고, 심지어 아시아의 역사와 운명에도 수많은 부정적 영향을 끼쳤던 과거의 분열과 갈등으로부터 구할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이 가지고 있는 희망입니다. 한편, 저는 파리의 시앙스포(Sciences Po) 국제관계대학 학장으로서, 전 세계의 대학 및 대학원과 매일 협력하는 입장에서 말씀을 드리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들 대학과 대학원은 지배층이 형성되고 지도력이 길러지는 장소입니다. 이 중 최고 기관은 협동의 정신, 타인의 생각에 대한 이해와 개방과 변화의 자세를 증진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므로 결론은 '교육'입니다. 저는 최근 전 세계 각국에서 온 2천여 명의 젊은이들이 참여한 모의 UN총회에서 이 점을 재확인할 기회를 가진 바 있습니다. 저는 여기에서 다시 반복하여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는 지도력을 논의하고 지도력이 발휘되는 방법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교육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유럽과 아시아 어느 사회에서나 발전은 주로 문화와 학업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공유하는 가치 중 가장 우선시되는 것입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협력적 지도력의 핵심은 교육입니다.​ Enrico LETTA(前 이탈리아 총리), 2016 제주포럼 기조연설 발췌문
  • 아시아의 새로운 질서와 협력적 리더십
    저자
    Jim BOLGER (前 뉴질랜드 총리)
    발간호
    2016-23
      뉴질랜드 토착민 마오리족의 말 중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바로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사람이다. 그것은 사람이다. 그것은 사람이다.”라는 말입니다. 제가 마오리족의 속담을 소개한 이유는 우리 논의의 초점을 부각시키고, 이 자리가 최신 기술이나 외계의 장엄하고 신비로운 현상을 논의하기 위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상기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 그리고 평화와 안보가 보장된 삶에 대한 염원을 이야기하고자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마오리족은 지난 수 세기 동안 거의 1000년에 걸쳐 거대한 태평양을 건너 뉴질랜드에 도착했고, 폴리네시아인들은 대만 원주민의 먼 후손들입니다. 대한민국을 방문할 때마다 저는 이 나라와 한국인들의 역동성에 감동을 느낍니다. 하지만 저는 제2차 세계대전 후 72년간 이어진 이 나라의 고통스런 분단 현실을 알고 있습니다. 제 부모님이 아일랜드 출신이기 때문에 저 역시 분단 상태가 초래하는 고통에 공감합니다. 아일랜드의 경우 분단의 원인은 식민지화와 종교였고, 한국의 경우는 세계정치를 좌우하는 이념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어떠한 상황도 서로 같은 것은 없고, 아일랜드와 한반도의 역사는 매우 다르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38선 이북의 한국인들도 지금의 대한민국과 같은 개방되고 번영된 사회를 원하리라고 확신합니다. 제가 북한의 정책을 규탄하는 것은 쉬운 일이고 기존의 규탄 목소리에 당연히 동조할 것이라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회의의 주제인 ‘아시아의 새로운 질서와 협력적 리더십’에 따라 과거에 여러 번 논의된 문제를 되풀이하기보다는, 대안과 해결책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북한의 핵개발과 비핵화: 뉴질랜드의 사례 저는 1998년 아일랜드에서 협상을 통해 이루어진 ‘성금요일 협정(Good Friday Agreement)’과 같은 해결책을 추구하는 것이 지나치게 이상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깊이 경색된 교착상태를 벗어나 전진하는 길을 찾는 것은 결코 쉽지 않지만 궁극적으로 협상이야말로 진전을 이루는 길입니다. 이것을 받아들인다면 한반도문제의 관련 당사자들 모두 평화적 협력이라는 목표의 달성을 위해 전력을 다할 수 있고, 이는 한반도의 통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것은 결국 71년 전인 1945년 UN이 설정한 목표와 같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비교하자면, 1921년 아일랜드의 분단에서 1998년의 협정까지는 77년이 걸렸습니다. 북한의 핵개발 프로그램으로 인한 심각한 위협이 해결되기 위해서는 협력적 접근방법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저는 북한의 핵개발로 인한 위협에 대한 해결책을 보다 폭넓은 비핵화의 맥락에서 찾아보고자 합니다. 독일과 함께 UN의 5개 상임이사국들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이란의 핵무기 폐기 협정이 나타내듯이, 또 다른 접근방법의 하나인 협상을 통해 진전을 이룰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이란에서 이루어낸 진전에 고무되어, 북한과도 유사한 결과를 이루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뉴질랜드는 오랫동안 핵무기 반대 입장을 취해왔고, 이는 때로는 전통적 우방국들과의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미국과 러시아가 냉전 시기에 축적해 온 핵무기의 감축을 환영했습니다. 그러나 이 두 나라는 여전히 전 세계 핵무기의 95%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뉴질랜드의 핵무기 반대 역사를 고려한다면, 제가 현재의 모든 핵무기 보유국들이 더 빠르게 비핵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전혀 놀라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실제로는 그와 반대의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미국과 러시아는 각자의 핵무기 성능과 추진장치를 향상시키는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본 어느 보고서에 따르면 이러한 성능 개발 비용은 미국의 경우 1조 달러를 상회하고, 러시아도 비슷한 규모의 비용을 지출할 것으로 예측됩니다. 저는 이것이 전 세계에 던지는 의미가 무엇인지 묻고 싶습니다. 이제는 "세계가 안전할 수 있는 유일한 핵무기의 숫자는 0"이라는 또 다른 주장에 동의하는 것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입니다. 현재 세계는 핵의 위협에 놓여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단 한 명이 수백만, 수천만 명의 무고한 사람들을 살상할 수 있는 핵무기의 발사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세계는 이 냉엄한 사실을 고찰해야 합니다. 이 포럼의 목표인 평화와 번영을 달성하기 위해, 전 세계 75억 인구는 핵무기 보유국들이 협력하여 핵무기를 남김없이 제거하는 계획을 만들어내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협력은 또한 일촉즉발의 화약고가 되어가고 있는 남중국해를 둘러싼 복합적 문제를 예방하는데도 필수적입니다. 단순하고 실용적인 이유에서도, 무기에 국가재정을 투입하는 것과 비교해보면 대화와 협상을 통한 문제해결은 매우 적은 비용으로도 가능합니다. 경제협력의 조건 경제협력은 균형 있는 자유무역협정(FTA)에서 이루어집니다. 저는 대한민국과 아시아가 이 협정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고, 많은 자유무역협정들이 아시아 경제권을 세계와 연결시키고 있음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진전을 환영합니다. 뉴질랜드도 그와 같은 수많은 협정을 체결했으며, 그 혜택을 보고 있습니다. 한 예로, 뉴질랜드는 중국과 자유무역협정을 맺은 최초의 선진국입니다. 아시아와 세계의 협력은 국제사회의 번영을 이끌고 2008-2009년의 금융 붕괴 이후 경제동력을 회복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저는 평화와 안보가 보장된 세계에 대한 바람을 말해왔지만 우리는 또한 모두가 의미 있는 활동을 하고 희망찬 미래를 기대할 수 있는 세상을 바라고 있습니다. 지난 수년간의 경제정책을 살펴보면, 기업 활동의 조정을 위해 시장의 힘에 의존하는 것과 기업 활동이 국가에 대한 책무에 부합하도록 적절한 규제를 시행하는 것 사이에서 올바른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 수 있습니다. 최근 유출된 파나마 페이퍼는 각국 정부에 대기업과 부유층의 탈세문제를 해결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해당 국가에서 세금을 회피하기 위해 전 세계의 세법을 악용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일이기에, 각국은 세법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국제 세법이 정직하게 시행될 수 있게 하는 데에도 국가 간 협조는 필수적입니다. 난민과 기후변화 정치적 관점에서 보면, 사람들이 불공평한 경제정책에 질려있다는 점은 영국의 제레미 코빈(Jeremy Corbyn)이나 미국의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와 같은 비주류 정치인들이 가진 호소력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불공평한 정책으로 인한 대다수의 희생으로 소수가 이득을 보고 있기 때문에 전 세계의 많은 이들이 분노하고 있습니다. 아시아의 새로운 질서는 매우 역동적이지만 그러한 역동성조차도 금융 붕괴의 충격을 피해 갈 수는 없었습니다. 사람들의 다양한 창의성은 사회가 어려움을 극복하도록 도움을 주지만 그것 역시 한 국가의 사회구조와 법률이 조건을 마련해주어야 가능해집니다. 용기 있는 지도력은 그러한 기회를 제공할 수 있고, 또 제공해야만 합니다. 소수 세력은 공포의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세계 공동체 내의 다양성과 신념의 차이를 악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정당화되어서는 안 되고, 또한 결코 정당화 될 수 없는 일입니다. 세계를 괴롭히는 인종 간, 종교 간 분쟁이 야기하는 공포는 우리가 매일 목격하는 난민대열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세계가 20세기 중반 서구문명을 갈가리 찢어놓은 인종적 편견과 유사한 사태에 또 다시 직면해야 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비극입니다. 인종주의적 시각이 21세기의 세계에도 떠돌고 있고, 몇몇 예외적 사례를 제외하면 세계는 이러한 사태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많은 국가들이 난민의 수용을 거부하고 있고 상대적으로 적은 숫자의 난민만을 받아들이는 현실로 인해 비극은 심화되고 있습니다. 인종 간 갈등은 그것이 종교 때문이든 아니든 간에, 공동체를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망쳐 놓았습니다, 또 문제가 거기서 끝나는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기후변화가 방치될 경우 해수면의 상승으로 인하여 새로운 주거지를 찾아야 하는 수백만 명의 난민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2015년의 파리 기후변화회의는 전 세계의 국가들을 불러 모아 긴급 행동을 취하기로 합의했다는 점에서 매우 성공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모든 국가들이 기온 상승을 섭씨 2도 범위 이내로 억제하는 데 필요한 행동을 취할까요? 섭씨 2도의 상승만으로도 전 세계 인구의 대다수가 살고 있는 해안지역의 침수로 엄청난 피해를 가져올 것이며, 그 효과는 궤멸적일 것입니다. 이는 인구의 대량 이주를 의미하며, 오늘날 난민사태에서 경험한 것처럼 수많은 인구를 이주시키는 것은 매우 힘든 과제입니다. 따라서 모든 국가들이 탄소배출 감소를 위한 행동을 취하는 것은 시급한 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25년 이후 석유, 디젤 자동차 구매를 불법화하는 법률을 통과시킨 네덜란드나 가격 경쟁력을 위해 하이브리드차와 전기자동차에 부과되는 세금을 감면한 노르웨이처럼 몇몇 나라들은 과감한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 뉴질랜드 또한 전기자동차를 대중화하기 위한 조치를 취했습니다. 또 다른 조치로 중국과 몇몇 나라들처럼 오염이 심한 석탄 발전의 수요를 제한하기 위해 태양열에 투자하는 나라들도 있습니다. 요점은 모든 국가가 기후변화가 초래하는 위협에 대응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행동은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이며, 이는 미래의 어느 날로 미뤄둘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지난 역사에서 많은 분야에서 선도적 역할을 한 아시아는 이제 탄소배출을 억제할 수 있는 새롭고, 혁신적인 접근방법을 앞장서 개발할 수 있는 기회를 지니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현재 우리가 직면한 중차대한 도전과제를 살펴보았습니다. 반면, 이와 대조적인 다른 측면에서 보면, 세계는 지식의 급속한 성장을 통해 보기 드문 가능성의 문턱에 와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더 많은 지식을 필요로 하고, 인종, 피부색, 종교를 뛰어넘어 모든 개인을 고유한 존재로 인정하고 모두가 평화롭게 살 권리가 있다는 인식 역시 확산시켜야 합니다. 이러한 목표를 성취한다면, 가능성은 무한합니다.​ Jim BOLGER(前 뉴질랜드 총리), 2016 제주포럼 기조연설 발췌문
  • 위안부 문제 합의에 대한 일본 보수세력의 반발과 한일관계의 과제
    저자
    고선규(선거연수원 교수)
    발간호
    2016-11
      지난 2015년 12월 28일, 한국과 일본은 양국의 최대 현안으로 존재해 온 종군위안부 문제 해결에 전격적으로 합의하였다.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인 2015년을 넘기지 않고 위안부 문제에 합의한 것은 한일관계만이 아니라 동북아지역 안보체제와 관련해서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위안부 문제 합의 이후, 양국관계는 정상궤도로 돌아오고 있다. 북한의 핵실험, 장거리미사일 발사와 관련해서 양국 정상은 두 번에 걸쳐 전화회담 형태로 현안을 협의하였다. 그리고 지난 3.1절 경축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기존과는 다른 대일 메시지를 발표하였다. 아베 수상도 지난 1월 22일 중의원 시정연설에서 한국은 “전략적 이해를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이웃나라”라고 강조하였다.   한편,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위안부 문제 합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뿐만 아니라 일본 국내에서도 위안부 문제 합의에 반하는 정치가의 발언이나 우익세력의 반발도 심심치 않게 나타나고 있다. 심지어 지난 2월 16일에는 일본 외무성 심의관이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에서 “정부가 조사한 자료에서 군과 관헌에 의한 강제연행을 확인할 수 없었다”고 발언함으로써 위안부 문제 합의에 대한 일본 정부의 진의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이 글은 위안부 문제 합의를 둘러싼 일본의 국내정치적 상황을 보수세력의 인식과 반발에 주목하여 고찰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번 합의를 계기로 향후 한일관계가 미래 지향적인 관계로 나아가기 위한 대응방안을 살펴보기로 한다.   한국 정부는 그간 위안부 문제 해결과정에서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과 수용 가능하고 납득할 수 있는 조치를 요구하였다. 이번 합의에서 일본 정부는 당시 군의 관여 하에 다수의 여성이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받았다는 점을 인정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고 사죄하였다. 따라서 위안부 할머니들의 심신을 치료하고 추모하기 위한 사업비로 정부 예산 10억 엔을 거출할 것을 약속하였다. 그리고 이번 합의로 위안부 문제는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된 것임을 확인하였다.   이러한 합의는 한국과 일본 양쪽이 만족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기존 논의과정에서 제기된 어떠한 합의안보다도 진전된 것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일본 보수세력에게 당시 군의 위안부 문제 관여, 정부의 책임 인정과 배상은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마지노선이었다. 정부의 배상과 사과는 1965년 한일기본조약에서 모두 해결되었다는 입장을 고수하여 왔기 때문이다. 결국 지난해 12월, 위안부 문제 합의과정에서 아베 수상은 이러한 보수세력을 의식하여 간접적이고 우회적인 방법으로 정부의 책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위안부 문제 합의 이후, 자민당 내부에서도 불만이 표출되었다. 지난 1월 14일, 자민당 외교·경제연대본부 합동회의에서 문부성 부대신을 역임한 사쿠라다(桜田) 의원이 위안부를 “직업 매춘부”로 폄하하는 망언을 했으며, 뒤를 이어 1월 26일에는 자민당 외교부회에서 소녀상의 조기 철거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하여 아베 수상에게 전달하였다. 이 결의안이 채택된 배경은 이번 합의안에 대한 불만과 한국 정부를 압박하기 위한 의도라고 볼 수밖에 없다. 한편, 자민당 내 보수세력이 이번 합의안에 대하여 부정적인 의견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사쿠라다 의원의 발언에 대해 스가(菅) 관방장관은 기자 브리핑에서 대답할 가치도 없다고 일축하면서 양국 간 합의에 노력할 뿐이라고 망언이 미칠 파장을 우려하였다. 또한, 자민당은 소녀상 조기 철거 요구 결의안에서 아베 수상이 성사시킨 위안부 합의안을 강력하게 지지한다고 표현하고 있다. 반면, 일본 내 극단적인 우익세력은 아베 수상에게 실망을 표출하고 지지 철회를 주장하고 있다. 일본의 우익보수세력이 2012년 아베 수상의 재등판을 용인한 이유는 일본 국내뿐만 아니라 아시아의 역사관을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바로잡겠다는 의도에서였기 때문이다. 이들은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 합의에서 ‘군의 관여’를 인정한 점을 도저히 수용하기 어렵다며 반발하고 있다.   이러한 반발에 대하여 아베 수상은 일정한 범위 내에서 수용하면서 보수세력을 달래기 위한 정치적인 설득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 우선, 이번 합의안이 역대 정권에서 제시된 어떤 합의안보다도 진전된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1995년 무라야마(村山) 정권, 2009년 이후 민주당 정권에서도 성사시키지 못한 문제를 해결했다는 역사적 의의를 강조하면서 보수세력을 설득하고 있다. 이번 합의에는 일본 정부가 국회의 동의가 필요한 예산의 형태로 10억 엔을 지급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지금까지 일본의 입장은 식민지 청산과 관련된 배상 문제는 1965년 한일기본조약 체결을 계기로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되었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한편, 이번 합의로 일본 정부가 제공하는 10억 엔이 정치적으로는 큰 의미를 가지는 반면, 배상금 또는 식민지 청산 관련 비용으로는 그 규모가 크지 않다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 예를 들면, 1989년 한일 양국의 합의로 진행된 사할린 동포 영주귀국사업에 소용된 예산은 82조 엔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본 정부는 사할린 동포들이 한국에 영주, 귀국할 경우 거처를 마련하기 위하여 32억 엔을 들여 안산시에 아파트를 건축했고, 사할린 현지의 기념관 건설 비용을 부담하였다.   이번 합의가 가능하게 된 일본 내부 상황으로는 아베 수상의 강력한 정치적 지지기반이 존재함을 들 수 있다. 현재 자민당 내에 아베 수상을 대체할만한 유력한 정치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위안부 합의 이후, 아베 수상의 지지율은 오히려 상승하였다. 여·야관계를 살펴보아도 자민당이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 1월 NHK 여론조사에서 자민당과 민주당의 지지율을 각각 40%, 8%로 나타났다.   일본은 2016년 7월 참의원선거가 예정되어 있다. 현재 연립여당을 구성하고 있는 자민당과 공명당은 중의원에서 68.4%의 의석을 차지하고 있다. 지난 3월 2일, 아베 수상은 올해 참의원선거에서 자민당이나 연립여당이 3분의 2 이상 의석을 확보하게 된다면, 자신의 임기 중에 개헌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하였다. 현재 상황으로는 참의원선거에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가 아베 수상에게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 같지는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베 수상은 위안부 합의가 보수세력이 요구하는 전후체제의 종결과 식민지 지배의 부정적인 유산을 청산하기 위한 시도임을 강조하고 있다. 동시에 2015년 9월 안보법제 성립 이후, 본격화되고 있는 미일 안보협력을 통한 대중 견제전략에 걸림돌로 작용해 온 한일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보수세력을 설득하고 있다.   향후 한일관계나 동북아안보협력 관련 대응방안을 생각해 보면 위안부 문제 합의를 둘러싸고 일본에서는 구심력이 작용하고 있지만, 반대로 한국에서는 원심력이 작용하고 있다. 한국에서 위안부 문제 합의에 대한 반대여론이 줄어들지 않고 있다. 특히, 이번 합의에서 양국이 합의한 ‘최종적이고 불가역적 해결’이 아직까지도 논쟁점으로 남아 있다. ‘최종적이고 불가역적 해결’이라는 수사는 일반국민들에게 매우 생소한 표현이다. 이 표현은 이번 합의가 최종적인 해결임을 강조하기 위하여 일본 측의 요청으로 명기되었다. 그러나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50년의 한일관계를 살펴볼 때, ‘최종적이고 불가역적 해결’이라는 표현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65년 한일기본조약 체결문에도 명시되어 있다. 1993년 고노 담화, 1995년 무라야마 담화가 발표될 당시에도 양국 정부가 상대방의 조치를 적극적으로 수용한다는 입장을 취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일 간에는 과거사와 관련된 새로운 문제들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었고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새로운 합의가 이루어져 왔다. 결국 최종적 해결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이번 합의에도 불구하고 위안부 문제가 다시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여론이 일본에서도 적지 않다. 향후 국제사회의 여론이나 가치관의 변화, 일본에서 정권 교체 가능성 등의 상황 변화에 따라 새로운 형태의 ‘최종적이고 불가역적 해결’은 반복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최종적이고 불가역적 해결’은 일본이 약속한 사항을 성실하게 수행할 경우만 해당되는 것이다. 지금처럼 정치인들이 망언을 주기적으로 반복하는 한 어떠한 구속적인 의미도 갖지 못할 것이다. 한국 정부는 일본의 정치가들이 과거사를 부정하는 망언을 되풀이하거나 위안부 문제 합의 내용을 번복하는 일이 없도록 한국 정부는 이 합의를 정치적, 법적 구속력이 강한 공동선언이나 조약의 형태로 발전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동북아지역의 안보협력과 관련하여 이번 위안부 문제 합의가 가지는 의의가 결코 적지 않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미사일 발사와 같은 긴급사태에 공동 대응할 수 있는 한일, 한미일 공동안보협력체제 구축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동북아지역에서 지속 가능한 안보협력체제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한일 간 현안 해결에 대한 ‘실패’를 반복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번 위안부 문제는 1995년 아시아여성기금의 실패로 2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합의가 이루어졌다. 현재 위안부 할머니들은 평균연령이 89세이며, 생존자도 44명에 불과하다. 이제 더 이상 현안에 대한 실패의 반복으로 그분들의 명예 회복과 치유가 지연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더구나 최근과 같이 동북아지역에서 군사안보적 불안정성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더 그러하다. 現 선거연수원 교수. 2000년 일본 토호쿠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함. 전공분야는 일본 국내정치이며, 관심분야는 주로 선거, 정당, 시민사회 등 정치과정. 최근 논문으로는 “일본자민당 파벌의 정책성향과 대한정책의 우경화 배경”(『일본평론』 2015. 12)과 대표 저서로서는『韓日政治制度比較』 (동경: 게이오대학출판회, 2015)등이 있음.
  • 미얀마의 지체된 민주화와 섭정통치
    저자
    신재혁(고려대학교 교수)
    발간호
    2016-14
      지난 2016년 3월 15일 미얀마 의회는 틴쪼(Htin Kyaw)를 대통령으로 선출하였다. 그는 1962년 군사쿠데타 이후의 첫 민선 대통령으로 오는 4월 1일에 취임할 예정이다. 한편, 오랫동안 미얀마의 민주화 운동을 이끌어 온 아웅산수찌(Aung San Suu Kyi)는 자신이 실질적인 국가 지도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틴쪼는 자신이 내세운 허수아비 대통령에 불과하고 자신이 섭정을 할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50년 넘게 기다려온 미얀마 민선 정부에서 왜 섭정통치가 이루어지는지 설명하고 앞으로의 전망을 제시하고자 한다. 역사적 배경   미얀마의 군사독재 하에서 야당이 참여하는 첫 총선은 1990년에 치러졌다. 수도 양곤에서는 1988년 초부터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학생들의 시위가 격렬하게 일어났고, 급기야 쿠데타 이후 20년 넘게 집권해 온 독재자 네윈(Ne Win)이 그 해 7월 23일 물러났다. 이 과정에서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아웅산의 딸 아웅산수찌가 민주화운동의 지도자로 부상하였고, 그녀는 1988년 9월 27일 민주주의민족동맹(National League for Democracy, 이하 NLD)을 결성하였다. 그러나 군부는 시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다. 군부는 시위를 폭력적으로 진압하였으며 이듬해에는 아웅산수찌를 가택연금에 처했다. 야당 지도자를 감금한 상황에서 군부는 국민통합당(National Unity Party, 이하 NUP)을 만들어 1990년 총선을 실시하였는데, 결과는 집권 여당의 참담한 패배였다. 총 492개의 의석 가운데 NLD가 392석을 획득한 반면 NUP은 불과 10석을 획득한 것이다. 이러한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은 군부는 수많은 NLD 지지자를 감금하고 고문하였으며, 아웅산수찌의 가택연금을 연장하였다.   아웅산수찌는 2012년 4월 보궐선거에서 당선되어 원내 야당 대표가 되었다. 2000년대에 들어 미얀마 군부는 오랜 고립으로 낙후된 경제를 성장시키기 위하여 개혁개방을 추진하였다. 이들은 2003년에 민주주의로의 로드맵을 발표하였고 2008년에는 헌법을 개정하였다. 이에 따라 2010년 11월에 총선이 실시되었는데 NLD는 이 선거에 불참하였고, 군부가 새롭게 만든 통합연대개발당(Solidarity and Development Party, 이하 USDP)이 상·하원 의석을 석권하였다. 그 직후 아웅산수찌는 가택연금에서 해제되었고 NLD를 다시 이끌게 되었다. 2012년, 상원의 6개 의석과 하원의 37개 의석을 채우는 보궐선거에 참여한 NLD는 상원 4석과 하원 37석을 전체를 획득하였다. 아웅산수찌와 NLD에 대한 높은 지지도가 다시 한 번 확인된 것이다. 2008년 헌법과 섭정통치   NLD는 2015년 11월 8일에 실시된 총선에서 승리하여 상원과 하원에서 모두 과반 의석을 확보하였다. 상원 224석 중 135석, 하원 440석 중 255석을 획득한 것이다. 미얀마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은 의회가 선출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따라서 NLD의 대표 아웅산수찌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것이 자명해 보였다. 그러나 군부는 2008년 헌법을 개정할 때 그 부모나 배우자, 또는 자녀나 자녀의 배우자가 외국 국적을 가진 사람은 대통령이나 부통령이 될 수 없다는 규정(59조 f항)을 삽입하였다. 아웅산수찌는 영국인 남편 사이에서 영국 국적의 아들 둘을 두고 있는데, 바로 이 헌법 조항 때문에 대통령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아웅산수찌가 행정부의 수반이 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군부의 의지가 반영된 조항이라 할 수 있다. 총선 직후 아웅산수찌는 헌법을 개정하여 자신이 대통령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다짐하였다. 그러나 군부의 안전장치는 결코 느슨하지 않았다. 2008년 헌법에 따르면, 헌법 개정을 위해서는 상·하원 의원 전체의 75퍼센트 이상으로부터 동의가 필요하다. 그런데 상원과 하원 의석 중 각각 25퍼센트는 군부가 임명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군부의 동의를 얻지 않고서는 헌법을 개정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처럼 헌법 개정도 어려운 상황에서 아웅산수찌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자신에게 충성스러운 사람을 대통령으로 내세워 섭정을 하는 것이었다. 헌법에 따르면 의회는 상원과 하원, 군부 임명 의원들이 각각 하나씩 총 3개의 위원회를 구성하여 대통령을 후보를 한 명씩 추천한다. 그 후 전체 투표를 거쳐 1위 득표자가 대통령으로 선출되고 나머지 두 명은 부통령이 된다. NLD가 상·하원의 다수 의석을 확보한 상황에서 아웅산수찌가 선택한 후보가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아웅산수찌는 자신의 오랜 친구이자 핵심 조력자인 틴쪼를 선택했고, NLD가 장악한 하원은 그를 대통령 후보로 추천하였다. 한편 상원은 소수종족 친(Chin)족 출신 헨리 반띠오(Henry Van Thio)를 추천하였고, 군부는 강경파 퇴역장교 민스웨(Myint Swe)를 추천하였다. 투표 결과 예상대로 틴쪼가 1등을 차지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고, 민스웨가 2등으로 제1부통령, 헨리 반띠오가 제2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대통령 당선자 틴쪼는 아웅산수찌와 고등학교(Yangon’s Methodist English High School)를 같이 다녔고, 런던대학교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였다고 알려졌다. 그는 1970년대 중반부터 군사정부에서 관료 생활을 했으나, 군부가 1990년 총선 결과를 수용하지 않자 1992년 사퇴한 후 지금까지 아웅산수찌를 돕고 있다. 틴쪼는 2000년에 아웅산수찌가 여행하는 것을 돕다가 4개월간 구금되기도 하였다. 전망     유권자 절대 다수의 지지를 받아 의회 다수파 대표가 된 아웅산수찌가 공식적으로 대통령이 되지 못한다는 것은 미얀마에서 민주주의로의 전환이 여전히 지체되었음을 의미한다. 민주주의의 요건 중 하나는 유권자가 직접, 또는 유권자가 선출한 대표가 실질적인 행정부 수반을 선출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실질적인 국가 지도자인 아웅산수찌가 섭정을 하는데 머물러야 한다는 사실은 민주주의의 이러한 요건을 결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헌법 개정을 통해 아웅산수찌가 대통령이 되는 것은 군부의 반대로 인하여 어려워 보인다. 군부는 비록 의회 소수파에 머물고 있으나 여전히 막강한 권한을 보유하고 있다. 그들은 군 최고사령관을 임명할 수 있으며, 국방안보위원회(National Defence and Security Council, 이하 NDSC)의 11개 의석 가운데 과반인 6개 의석을 차지하고 있다. NDSC는 대통령과 두 명의 부통령, 상원과 하원 의장, 최고사령관, 부사령관, 국방장관, 외무장관, 내무장관, 국경업무(border affairs)장관으로 구성되는데, 한 명의 부통령은 군부의 인사이고, 최고사령관에게 국방장관, 내무장관, 국경업무장관 임명권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군부가 장악한 NDSC는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할 수 있으며, 이 경우 입법·사법·행정권은 NDSC로 넘어간다. 사실상 군부는 필요하면 언제든 정치에 개입할 수 있을 것이다.   아웅산수찌와 틴쪼 대통령 당선자 간의 협력이 순조롭게 유지될지도 의문이다. 가장 효과적으로 섭정을 하려면 아웅산수찌가 장관으로 입각하여 틴쪼가 주재하는 각료회의와 NDSC에 참석하여 직접 의견을 개진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 아웅산수찌는 국회의원직을 상실하게 되므로 원내 다수당 대표직을 포기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국회에 머문다면 대통령이 각료회의 중 사안마다 의견을 구하는 것이 어려워서 아웅산수찌가 바라지 않는 결정을 내리는 경우도 생길 가능성이 있다.   미얀마는 지난 총선을 통하여 민주주의를 향하여 한 걸음 다가갔다. 더욱 발전된 민주주의로 나아갈지 다시 후퇴할지는 향후 아웅산수찌의 섭정통치체제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작동하느냐에 달려있다. 미얀마의 새 정부는 빈곤을 퇴치하고 종족갈등을 해소해야 하는 등 많은 난제들에 직면해 있다. 아웅산수찌와 틴쪼가 협력하여 이러한 문제들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다면 군부는 또다시 전면에 나설 수 있다. 現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조교수.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미국 UCLA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함. 2011년부터 2012년까지 미국 듀크대 정치학과 객원 조교수와 Rhodes College 국제학과 조교수를 역임한 후, 2013년부터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조교수로 재직 중. 주요 연구 분야는 정치제도, 신생민주국가의 선거와 정당, 국회 등이며, 최근 연구로 “Voter Demands, Access to Resources, and Party Switching: Evidence from the South Korean National Assembly, 1988-2008”, “Cabinet Duration in Presidential Democracies”, “Electoral System Choice and Parties in New Democracies: Lessons from the Philippines and Indonesia” 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