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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독 사례에 비추어 본 북한 급변 사태 발생 가능성
    저자
    염돈재(성균관대학교 국가전략대학원 초빙교수)
    발간호
    2016-1
     김정은 정권 출범과 장성택 처형 이후 북한 급변 사태에 대한 논의가 더욱 자주 대두되고 있다. 북한 급변 사태에 큰 관심을 가지는 것은 과거 동독주민의 대규모 탈출과 시위 확산이 동독 공산정권의 붕괴와 독일통일의 계기가 됐다는 점도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제까지 우리 사회에서의 북한 급변 사태 관련 논의를 보면 급변 사태 대비책 강구에 초점을 두고 있어 급변 사태 발생 가능성에 대한 연구는 매우 소홀한 것 같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동독 사례에 비추어 북한에서의 급변 사태 발생 가능성을 검토해 보고자 한다.   북한 급변 사태의 정의와 유형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논의들이 있으나 이 글에서는 경제악화 등으로 대규모 탈북자가 발생하는 경우와 군부 쿠데타나 대규모 주민봉기로 북한지역이 무정부적 혼란 상태에 빠지는 경우에 대해서만 논의하고자 한다. 이 두 가지 유형이 가장 발생 가능성이 높을 뿐 아니라 다른 사태들도 대부분 이 둘과 연결되어 발생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동독에서의 급변 사태: 동독주민의 대규모 탈출과 시위 열풍     1989년 7월 이후 시작된 동독주민의 대규모 탈출 및 시위 열풍은 동독 공산정권의 붕괴와 독일통일의 계기가 되었다. 먼저 동독주민의 대규모 탈출 사태의 경우, 1989년 5월 헝가리 개혁정부가 개혁 의지를 표출하기 위해 오스트리아와의 국경 철조망을 제거하자 매일 2,000여 명의 동독주민이 오스트리아를 거쳐 서독으로 탈출함으로써 동독주민의 대규모 탈출이 시작됐다. 이어 11월 9일 여행 규제 완화 계획을 발표하던 공보 담당 정치국원 샤보프스키가 실수로 “지금부터 국경을 개방한다” 발표함으로써 베를린장벽이 붕괴되자 대규모 탈출이 본격화되었으며, 1989년 7월부터 이듬해 6월 말까지 서독으로 탈출한 동독주민이 58만여 명에 달했다. 이렇게 하여 동독사회는 마비되기 시작했고, 주민들은 시위 열풍에 휩싸여 결국 동독 공산정권의 붕괴와 독일통일을 촉발하게 되었다.   탈출 열풍은 시위 열풍으로 이어졌다. 떠나지 않고 남은 사람들이 개혁을 요구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시위 열풍은 1989년 9월 4일 라이프치히 니콜라이 교회에서 월요예배 후 시작된 촛불시위가 계기가 됐다. 소규모로 시작된 촛불혁명은 9월 10일 동독 첫 번째 민권 단체인 ‘신광장’이 출범한 이후 여러 민권 단체들이 결성되고 이들이 시위를 주도함에 따라 전국 규모로 급속도로 확대되었다. 10월 16일 라이프치히 시위에 12만 명이 참여하는 등 대규모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되자 10월 18일, 19년간 동독을 통치해 온 호네커 서기장이 물러나고 개혁파로 알려진 에곤 크렌츠가 서기장으로 취임했다. 크렌츠는 정치국 보수세력들을 제거하는 등 일련의 개혁조치를 취했으나, 시위는 더욱 확산되어 11월 4일 동베를린 시위에는 동독 역사상 최대 규모인 100만 명이 참여했다.   그 와중 11월 9일 베를린장벽이 붕괴되자 동독 전체가 탈출과 시위 열풍에 휩싸이게 되었고, 12월 3일에는 크렌츠 서기장, 정치국원 및 당 중앙위원이 전원 사퇴했다. 12월 8일에는 사회주의통일당(SED)이 특별전당대회를 개최, 스탈린주의와 일당 지배체제의 포기를 선언하고 당명을 ‘사회주의통일당-민주사회당(SED-PDS)’으로 개칭함으로써 40년을 지탱해 온 동독 공산정권이 일시에 붕괴되었다. 사회주의통일당을 대신해 국정 운영을 담당하게 된 ‘원탁회의’가 사태 수습을 위해 다음 해 5월 6일 자유선거를 하기로 약속함으로써 동독의 ‘평화혁명’이 이루어질 수 있었고, 1990년 1월에는 시위군중이 비밀경찰(Stasi) 본부에 난입하는 등 무정부 상태가 지속되어 동독정부는 사실상 와해되었으며 동·서독은 평화통일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동독주민의 대규모 탈출이 가능해진 배경     동독주민의 대규모 탈출이 가능했던 배경은 다음 다섯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동독주민이 대규모로 탈출할 수 있는 ‘탈출로’가 있었다는 점이다. 동독주민의 동유럽 여행이 자유로웠던 데다 헝가리, 폴란드, 체코에 개혁정부가 들어서 탈출에 협조적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1989년 8월 서독 콜 총리가 비밀교섭을 통해 10억 마르크의 차관 지원을 약속한 후 헝가리정부가 동독과의 여행협정을 파기하고, 동독주민의 탈출을 허용토록 함으로써 헝가리를 통해 매일 2,000여 명의 탈출이 가능해졌다.   둘째, 서독이 동독주민들에게 동경의 대상이 됐다는 점이다. 서독은 선진적 민주제도, 풍요로운 경제, 평등한 분배로 평소 동독주민들이 서독을 동경하게 된 데다 동·서독 간의 빈번한 교류로 동독주민들이 서독사회 정착에 두려움을 갖지 않았다는 점도 탈출 욕구를 자극하는 요인이 되었다.   셋째, 탈출 사태 초기 동독정부가 안이하게 대처했다는 점도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당초 동독 공산정권은 동독주민들이 ‘사회주의 최고의 복지국가’인 동독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 데다 대규모 탈출 사태가 지속되면 서독정부가 이들의 입국을 제한하거나 동독에 대규모의 경제지원을 하여 탈출 사태를 진정시킬 것이라고 생각했다. 더욱이 호네커 서기장이 10월 7일 동독정권 수립 40주년 기념식을 성대히 개최하기 위해 폴란드, 체코 주재 서독대사관에 피신해 있던 동독주민 수천 명의 서독 행을 허가함으로써 탈출 열풍을 더욱 부추기는 결과가 되었다.   넷째, 동독주민들이 소련의 정책이 다시 강경노선으로 바뀌어 소련이 동독 사태에 적극 개입할 가능성을 우려했다는 점이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동독주민의 탈출 사태에 개입할 의사가 없었고, 내부적으로는 보수세력의 반발로 집권기반이 몹시 흔들리고 있었다. 따라서 동독주민들은 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 정책이 추진되는 동안 빨리 서독으로 탈출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다섯째, 서독정부가 큰 어려움에도 불구, 동독 탈출민을 전원 수용했다는 점이다. 1989년 8월 이후 동독주민의 대규모 탈출이 본격화되자 동독과의 화해·협력체제 손상을 우려한 사민당(SPD)과 동독주민의 수용 책임을 맡게 된 서독 각 주들이 동독 탈출자의 수용 제한을 강력하게 요구했으나 콜 총리가 동독 탈출자 전원 수용 방침을 고수함으로써 동독주민의 대규모 탈출이 가능하게 되었다.   동독주민의 시위확산과 공산체제의 붕괴 배경     첫째, 서독 TV의 촉매역할로 시위 확산의 급속한 확산이 가능해졌다는 점이다. 시위 초기 동독주민들은 소련의 개입이 두려워 시위 참여를 주저했으나, 서독 TV를 통해 소련이 무력개입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한, 서독 TV 보도를 통해 각 지역에서의 시위 상황을 생생하게 목격하게 되자 적극적으로 시위에 나서게 되었다.   둘째, 소련의 반대로 시위의 유혈진압이 불가능했다는 점이다.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동독시위의 유혈진압이 미·소간의 화해체제를 손상시키고 동독주민의 소련군 기지에 대한 공격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하여 시위 초기부터 동독정부에 시위의 무력진압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명확히 전달했다. 더욱이 동독군은 바르샤바조약군의 일원으로 소련군의 통제 하에 있어 소련의 반대를 무릅쓰고 병력 동원을 하기 어려웠다. 결국 동독 공산정권의 중요한 버팀목이 돼 온 소련이 지원을 철회하자 동독 공산정권은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셋째, 동독정부의 시위 대책이 매우 미흡했다는 점이다. 1953년 동베를린 노동자 봉기가 200여 명의 사망자를 내면서 소련 탱크에 의해 무참히 진압된 후 동독에서는 주민시위가 거의 없었다. 더욱이 1989년 10월 대규모 시위 사태 발생 후에도 대부분의 동독지도자들은 소련이 버티고 있는 한 동독 공산정권이 붕괴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시위 대비 태세가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 따라서 9월 초 소규모로 시작된 촛불시위가 급속히 전국 규모의 시위로 확산되자 동독정부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넷째, 교회라는 구심점이 있어 시위가 급속히 확산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독일은 기독교 전통이 강해 평소 동독정부는 교회활동에 관대했다. 따라서 교회와 종교지도자들이 민권운동을 주도할 수 있었고, 시위 시 교회가 집결장소가 되고 전국적인 연결망의 역할을 했기 때문에 시위의 급속한 확산이 가능했다.   다섯째, 동독 공산정권에 강력한 체제수호 의지를 가진 지도자가 없었다는 점이다. 당시 동독지도부는 개혁문제로 분열되어 있었고, 공산간부들도 개혁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정치국원들은 모든 책임을 19년간 집권한 호네커가 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소련이 시위의 무력진압에 반대하자 목숨을 걸고 체제를 수호하겠다는 의지를 가진 지도자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여섯째, 동독주민들이 자유에의 갈망과 민주의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프랑스혁명 이후 유럽인들의 의식 속에는 자유, 평등, 박애 사상이 뿌리내리고 있었고 동독혁명이 일어난 1989년은 프랑스혁명 200주년이 되는 해이다. 더욱이 많은 동독주민들은 14년 간 바이마르공화국에서 민주제도를 경험한 바 있고 인접국인 폴란드, 헝가리, 체코, 루마니아에서는 이미 탈공산혁명에 성공해 동독주민들에게 큰 자극이 되었다. 따라서 소련의 통제가 완화되자 자유를 향한 열망이 폭발적으로 분출될 수 있었다.   일곱째, 동독경제가 파탄 상태에 있어 누구도 동독을 유지해 나갈 자신이 없었다는 점이다. 1972년 호네커정부 출범 이후 동독정부가 서독과 과도한 복지 경쟁을 하다가 성장 잠재력이 대폭 잠식된 데다 1980년대 전자산업 투자가 실패해 1980년대 말에는 심각한 경제위기에 봉착했다. 외채가 200억 달러에 달해 매년 외화수입의 62%를 외채원리금 상환에 사용해야 했고, 매년 서독으로부터 150억 마르크를 지원 받지 못하면 주민의 생활수준을 30% 이상 낮추어야 할 상태였다. 따라서 동독 공산정권 지도부는 물론, 시위를 주도한 민권세력들도 동독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북한주민의 대규모 탈출이 가능한가?     동독과는 달리 북한은 주민의 대규모 탈출을 위한 탈출로가 없고, 대규모 탈출을 감당할 유인이 없다. 또한, 탈출 동기가 미약한 반면, 탈출을 억제하는 요인은 상당하다. 마지막으로, 한국정부의 북한주민 수용능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북한주민의 대규모 탈출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은 희박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를 보다 상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북한주민의 대규모 탈출이 가능한 통로가 없다. 북한주민의 탈출로는 중국, 러시아 및 해상 탈출 등 세 가지 통로로 제한되어 있는데, 북한주민의 중국 및 러시아 여행은 어렵다. 중국의 경우 국경경비 강화로 소규모 탈출이 어렵고, 러시아는 국경 접근로가 협소해 접근이 어려우며, 해상 탈출로는 선박이 부족으로 활용하기 어렵다.   둘째, 북한주민이 일시에 대규모 탈북을 감행해야 할 유인이 없다. 중국이 헝가리처럼 국경 개방을 할 가능성도 없고, 소위 ‘고난의 행군’ 시기의 경험에 비추어 경제난이 대규모 탈출 동기가 될 가능성이 적으며, 남한이 북한주민의 강력한 동경 대상이 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 동독주민들에 비해 북한주민들의 탈출 동기는 미약한 반면, 탈출 억제 요인은 훨씬 강하다. 북한과 중국의 경비 강화로 북한 주민들은 북한 탈출 성공을 확신하기 어렵고, 실패 시 가혹한 처벌을 감수해야 한다. 또한, 성공해도 잔류 가족과 한국으로 탈출한 이후의 생계도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넷째, 한국정부가 대규모로 탈출한 북한주민을 모두 수용하기는 어렵다. 북한주민의 탈출이 북한정권에 치명적 타격을 주기 위해서는 연간 탈출자의 규모가 수만 명 수준은 돼야 하나 우리의 수용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더욱이 위기에 처한 북한정권이 탈북자들 틈에 공작요원을 투입하여 대규모의 테러, 폭파, 소란 행위 등을 획책할 경우 상황은 더욱 어려워지게 된다.   북한에서의 무정부적 소요 사태 발생이 가능한가?     동독과는 달리 북한은 주민들의 민주주의 경험이 전혀 없는 데다 오랫동안 억압통치에 순치되어 있어 저항의식이 매우 낮다. 그리고 교회와 같은 반체제활동의 구심점이 없을 뿐만 아니라 교통·통신·방송망의 미비로 시위 확산이 어렵고, 과거 소련과 같이 시위의 유혈진압을 할 억제할 수 있는 외부세력이 없다. 더욱이 북한 내에 강력한 체제수호 세력이 존재하고 있고, 경제적 궁핍이 민중봉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적다는 점 등에 비추어 동독에서와 같은 대규모 시위 사태나 무정부 상태가 야기될 가능성은 희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상술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북한주민은 민주주의 경험이 없어 민주의식이나 체제저항 욕구를 가지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북한주민들은 프랑스혁명과 바이마르공화국을 경험한 동독주민들과는 사고가 전혀 다르다고 볼 수 있다. 더욱이 북한주민은 외부 정보에 철저히 차단되어있고, 오랜 세뇌교육과 가혹한 억압통치로 김일성일가의 세습체제에 순치되어 있다. 그로 인해 탄압정치, 집권층의 부패 및 경제적 궁핍이 체제저항 의식을 촉발할 가능성은 희박할 것으로 생각된다.   둘째, 북한에는 반체제활동을 주도할 구심점이 없다는 점이다. 북한정권이 김일성 세습체제 반대세력이나 잠재적 도전세력을 철저히 제거하여 반체제세력의 형성 자체가 어렵다. 또한, 어느 누구도 체제저항 운동의 성공 가능성을 확신하기가 어렵고, 동독과는 달리 전국 규모의 종교조직도 부재하다. 그리고 대학생 등 영향력 있는 젊은 세대 역시 대부분 수혜계층 출신이어서 대규모 시위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셋째, 북한은 폭발적 시위 확산이 매우 어려운 여건이다. 교통·통신 시설의 불비와 북한정권의 철저한 정보통제로 어느 한 곳에서 시위나 소요 사태가 발생하더라도 타 지역으로의 확산 없이 단발성으로 끝날 가능성이 많다. 동독 시위 시에는 서독 TV가 확산의 촉매역할을 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북한에서 시위 확산이 어렵다는 점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넷째, 북한정권이 유혈진압을 포기토록 강제할 수 있는 외부세력이 없다는 점이다. 중국의 영향력도 매우 제한적인 데다, 천안문 사태에 비추어 시위의 유혈진압 방지를 위해 노력할 가능성이 적다. 또한, 북한경제의 대외 의존도가 낮아 외국이나 국제기구가 영향을 미치기도 어렵다. 따라서 일부 지역에서 소요사태가 발생하더라도 초기에 무자비하게 진압될 가능성이 많다.   다섯째, 동독과는 달리 북한에는 강력한 체제수호 의지를 가진 집단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만경대학원 출신, 북한정권의 수혜계층 50만 명과 그 가족 등 총 200여만 명의 적극적 체제수호 세력이 있어 동독처럼 쉽게 무너질 가능성이 적다. 군부 반란이나 김정은 사망이 급변 사태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할 수도 있으나, 북한 집권층이 과거 동독 고위층의 몰락과정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고, 남한의 흡수통일을 두려워하고 있어 북한 내부에 정변이 발생해도 정권교체만 이루어질 뿐 무정부 상태로 발전할 가능성은 희박할 것으로 생각된다.   차후 정책 방향     1993년 김영삼정부가 김일성 건강 악화설을 계기로 북한 급변 사태 대비책 논의를 시작한 이후 북한 급변 사태 문제는 오랫동안 우리의 중요한 관심사가 되어 왔다. 특히 최근에는 북한 급변 사태에 대한 연구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북한 급변 사태 논의의 배경을 보면 북한 급변 사태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는 절박한 필요성 보다는 북한 급변 사태 발생으로 통일의 기회가 의외로 빨리 도래할 수 있다는 낙관론이 짙게 깔려 있음을 느끼게 된다. 더군다나 최근 “통일의 기회는 도둑고양이처럼 찾아올 수 있다”는 이야기는 통일대박론과 맞물려 낙관적인 통일론을 부추기는 요인이 되고 있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북한주민의 대규모 탈출이나 북한 내부의 정변 발생으로 우리가 기대하는 급변 사태가 발생하거나 통일의 기회가 도래할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북한 급변 사태에 대비는 하되, 급변 사태가 통일의 길을 열어줄 것이라는 헛된 기대를 버리고, 통일에 도움이 될 일은 하나라도 더 보태고 통일에 장애가 될 일은 하나라도 더 줄여나가도록 노력하는 것이 더욱 중요할 것이다. 특히 이를 위해서는 김일성 일가 세습체제의 변화 및 붕괴 촉진, 북한주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인도적 지원의 강화, 북한주민에 대한 외부정보의 전파 확대, 북한 장마당의 확산 등을 꾸준히 추진하는 것이 통일을 위한 올바른 접근법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現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 초빙교수.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 및 박사 학위를 취득. 청와대 정책비서관, 주독일대사관 공사, 국제문제조사연구소 부소장, 국가정보원 1차장,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장을 역임함. 주요 연구분야는 안보 및 통일정책, 국가정보, 독일통일 등이며 저서로는 "독일통일의 과정과 교훈"이 있음.
  •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저자
    우정엽(아산정책연구원 워싱턴 사무소장)
    발간호
    2015-44
      한 차례 연기되었던 한미 정상회담이 내일로 다가왔다. 미국의 대선 일정상 이번 한미 정상회담이 두 정상 간 단독으로 갖는 마지막 회담이 될 가능성이 크다. 6월 정상회담이 연기된 이후, 많은 전문가들은 6개월 안에 정상회담 개최 일정을 조율하는 것이 매우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한국과 미국 정부는 정상회담 개최를 위해 양국 대통령의 빡빡한 일정을 조율하는 데 성공했다. 사실, 양국 정부가 정상회담 일정에 이토록 주의를 기울일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신속한 정상회담 일정 조율 여부가 동맹의 견고함을 나타내는 지표라고 보는 대중 여론을 의식했던 양국 정부는 이로부터 오는 불필요한 압박감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예상보다 일찍 정상회담 일정을 조율함으로써 양국 정부는 여론의 부담에서 자유로워졌다. 무엇을 논의할 것인가?   이번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이 무엇을 논의하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방향을 잘 못 잡게 되면 정상회담의 주요 결과물이 작은 현안들에 묻혀버릴 수 있다. 지난 6월에는 양국이 상호 긴박하게 다루어야 할 이슈가 없었기 때문에, 무엇을 놓고 의논할 것인가가 주요한 질문이었다. 즉, 특별히 정상회담을 통해 어떠한 정책적 성과가 도출될 것이란 기대가 없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당시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 방문을 두고 지난 4월에 있었던 일본 아베 총리의 미국 방문과 어떤 차이를 갖는지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이 기울여졌다. 그렇다면 4개월이 지난 지금은 어떠한가? 곧 개최될 정상회담과 관련하여 두 가지를 언급하고 싶다. 첫째, 우리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무엇이 강조되어야 하는지와 양국 정상 간 무엇이 논의될 수 있는지를 구분해야 한다. 현 시점에서 양국 정부가 대답해야 할 주요 문제는 무엇인가? 언론에서는 다음과 같은 현안들이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TP)에 참여하는 12개국에 포함되지 않았던 한국의 TPP 가입 가능성, 록히드마틴사의 F-35 40대 도입과 한국형 전투기 개발에 필요한 4개 핵심기술 이전 문제, 그리고 일 년 이상 꾸준히 논의되고 있는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한국 도입 가능성 등이 지금 논의될 수 있는 현안들이다. 물론 북한문제도 한미 정상 간 논의되어야 할 의제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북한이 미사일실험(인공위성 발사)과 같은 또 다른 무력 도발을 감행할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정상회담이 단지 정책적 합의 도출이나 양국의 문제 해결만을 위한 자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둘째, 제3국의 역할이 한미 정상회담을 지배해서는 안 된다. 지난 6월에는 4월에 있었던 아베 총리의 워싱턴 DC 방문이 거의 비교 기준처럼 여겨졌다. 아베 총리의 방문기간 동안 행적, 발언, 그리고 오바마 대통령과 함께 했던 일들과 박근혜 대통령이 6월에 정상회담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비교하는 논의가 지배적이었다. 4개월이 지난 지금의 비교대상은 중국이다. 한미 양국에서 한국이 중국의 영향권에 흡수되고 있는 것이 아닌지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어 왔다. 9월 초에 열렸던 중국 열병식에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한 것에 대해 미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워싱턴의 많은 전문가들이 눈살을 찌푸린 것은 사실이다. 이와 같은 워싱턴의 분위기를 인지하고 있는 한국의 많은 이들은 한국 정부가 미국의 선입견을 바꾸기 위해서 무언가를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해명이 이번 정상회담의 주요 사안이 되면 한미 정상회담의 의미가 상당히 퇴색될 수 있다. 중국이 경제적으로도, 안보적으로도 동북아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국가라고 할지라도 한국 입장에서는 어떻게 한미동맹을 진화시킬지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한미동맹의 비전 제시에 집중해야   이와 같은 배경을 전제로 필자는 이번 정상회담이 당면한 현안을 풀기 위한 장이 되어서는 안 되며 양국 정상이 어떻게 한미동맹을 끌고 나갈지에 대한 비전 제시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이야말로 한국이 동맹 관리 차원에서 직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제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지금 논의되는 현안들은 대통령 간의 담판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적인 이유에서라도 그러한 현안에 대한 협상 여부가 이번 정상회담의 성공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 보다 중요한 것은 두 정상이 앞으로의 동맹관계를 어떻게 이끌어 갈 것인가에 대해 다시 한 번 서로에게 확신을 주는 것이다. 미국의 대아시아정책에서 한국정책이 우선순위가 될 수 없다는 것은 틀린 말이 아니다. 미국의 대아시아정책에 있어서 중국은 변함 없이 최우선순위이다. 또한 미국이 한국을 볼 때 미중관계의 틀 안에서 보고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와 같은 분위기가 내일 열릴 정상회담을 맞이하는 워싱턴을 뒤덮고 있다.   매우 냉소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워싱턴에서 한국은 미국과 중국 모두를 만족시키거나 아니면 최소한 갈등을 피하기 위해서 수동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이러한 한국의 수동적 접근을 보여주는 한 예가 한국이 이번 정상회담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열병식 참석으로 불거진 미국의 부정적인 선입견을 떨쳐내려는 데 집중하는 모습이다. 우리가 해명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닌지에 집중하다 보면, 문제의 초점은 한국이 어떻게 미국 정부를 기쁘게 할 것인지로 연결되고, 이것은 다시 한국의 이런 태도가 중국을 자극하는 것은 아닌가에 대한 새로운 논의로 이어질 것이다. 사드 도입 관련 논의가 한국 안보 상황에 있어서의 필요성보다 오히려 미중 양국의 반응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이 이에 대한 단적인 예로 볼 수 있다. 우리는 미국, 그리고 국제사회에 한국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확실하게 보여주지 못한 상황이며, 이는 아마도 한국이 미국과 중국의 반응에 지나치게 중점을 두어 왔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어떤 지향점을 가지고 있는지 분명히 알릴 필요가 있다. 수동적인 상황 접근이 아니라 우리의 어젠다를 적극적으로 알리고 그러한 방향이 미국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설파해야 한다. 중국경사론과 관련해서 한국 정부는 우리의 대외정책이 어떠한 방향으로 가는지 설명함으로써 그 부담을 덜 수 있다. 소위 한국의 중국경사론은 중국이 절대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는 가정에 기반을 두고 있다. 따라서 원하든, 원하지 않든 한국과 같은 작은 배는 중국과 같은 큰 배를 움직일 수 없고, 반대로 큰 배에 의해 끌려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책적으로 한국이 중국에 의해 좌지우지 되지는 않았고, 또한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열병식 참석이 친중정책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동시에 중국의 한반도정책에도 실질적으로 큰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방문이 중국 여론의 남북한 인식에 대한 변화의 기회를 창출했다는 점은 강조될 필요가 있다. 동맹국인 한국과 미국은 한국의 대중국정책이 장기적으로 중국의 한반도정책 변화를 위해 구상되었다는 것을 이해하고 동의해야 한다.  가까운 미래에 중국의 정책 변화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한국은 미국이 한국의 대중국정책을 보다 큰 관점에서 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한미동맹의 미래 비전   이를 위해서 한국 정부는 한미동맹이 한국과 미국이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미국이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 시점에서 한국은 미국에게 한미동맹이 굳건한 국제적 동반자관계임을 재확인시킬 필요가 있다. 미국을 말로써 설득하려는 것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정책을 내보임으로써 한미동맹의 가치가 견고함을 입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필자는 한국이 수동적인 접근에 머물러 있을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정책을 담은 전략적 비전을 미국과 공유함으로써 목표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한다. 첫째, 한국은 한미동맹이 전통적인 양자 간의 안보영역을 넘어 사이버안보와 우주안보와 같은 영역으로 계속하여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 위에 언급한 두 가지 안보영역은 단순한 양자관계를 뛰어넘는 범위이고, 국제적 규범 및 규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중국의 반응에 대한 우려도 크지 않다. 즉, 이 이슈들은 중국에 관한 것이 아니고 국제규범의 문제이다. 한국과 미국 양국 지도자 간 합의를 바탕으로 국제규범을 제정하고 준수하는 것이다. 얼마 전 한국의 에볼라 바이러스 퇴치를 위한 적극적 참여는 한국이 국제보건분야에서 이슈를 선점하여 나아가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 정부는 국내외적으로 한국이 국제적 문제 해결에 주도적인 역할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   둘째, 한국은 일본과 지역안보를 위해 과감하게 협력할 수 있다. 워싱턴의 많은 전문가들은 한국이 역사문제에 대한 일본의 접근방식을 못마땅하게 여길 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그들은 늘 한국이 역사문제와 다른 문제를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역사문제를 보는 일본 지도자들의 수정주의적 시각은 정치적으로 해결이 필요한 부분이지만, 한국과 일본의 안보협력영역은 이 문제와 구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미국이 한국과 일본이 지역안보를 위해 협력할 수 있다고 인지한다면 한국의 중국경사론은 워싱턴에서 약해질 것이다. 현재 일본의 입장은 안보협력과 역사문제는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향후 한국이 과감하게 일본과 지역 협력을 추구한다면, 일본은 정치문제와 역사문제에 대한 반응을 보여야 하는 압박감을 느낄 것이다. 주도적 방향설정과 정책제시가 바람직 만약 한국의 입장을 수동적인 태도로 수사적으로 설명하고 규명하려고 한다면, 한국의 입지는 고래 싸움에 낀 새우와 같은 외교적 틀에 갇히게 것이다. 한국은 주도적인 방향을 설정하고 그 방향에 걸맞은 정책을 요구해야 한다. 양국의 지도자들이 한미동맹의 가치를 나누고 동맹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상호 이해한다면 양국 간의 많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다.? 現 아산정책연구원 워싱턴 사무소장.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Georgetown University에서 정책학 석사학위, 미국 University of Wisconsin at Milwaukee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한국학연구소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재직. 주요 연구분야는 정책결정 과정에서의 여론문제, 제3국의 내전 무력개입에 관한 국제분쟁 등.
  • 미래학의 논의를 통해 본 세계정부의 출현과 국제질서 전망
    저자
    이성우(제주평화연구원 분쟁해결연구부장)
    발간호
    2015-45
     최근 『유엔 미래보고서』와 함께 미래학을 포함한 여러 학문 분야에서 주를 이루는 논의는 ‘세상의 빠른 변화’와 그로 인한 사회적 파장이다. 고대부터 사람들은 항상 자신의 시대가 급속한 변화를 경험하고 있어 적응이 어렵다고 해 왔지만 현대로 올수록 과학기술뿐 아니라 사회의 변화에도 가속도가 붙는 것은 사실이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국내적 변화의 주요 주제는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경제, 사회, 그리고 정치 전반에 급격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국제적 변화로는 패권적 미국에 도전하는 중국의 부상으로 형성되는 새로운 국제질서, 산업화에 따른 온난화 및 기후변화와 같은 초국경적인 문제의 등장, 그리고 이에 따른 세계정부의 출현도 논의되고 있다. 총론의 차원에서 이러한 미래에 대한 설명은 설득력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용에 문제가 있다. 다시 말해서, 불안한 현재는 미래에 대한 전망을 더욱 필요하게 하는 한편, 그 절실한 만큼 미래에 대한 일관적이지 않은 진단을 촉발할 수 있다. 따라서 오진 및 잘못된 처방을 내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미래와 관련된 논의의 문제점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미래에 대한 전망이 엇갈린다. 다양한 미래예측은 기술의 발달로 사라지게 될, 그리고 새롭게 부상할 직업과 산업에 대한 설명과 함께 자원의 고갈로 경제체제가 붕괴할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을 제시하고 있다. 반면 경제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과 달리 과학기술 분야는 인간의 생명이 연장되고 장애가 없는 세상이 가능하게 될 것이라는 희망적인 전망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과학기술의 발달이 경제적인 풍요를 가능하게 할 것이라는 또 다른 전망은 경제체제의 붕괴라는 어두운 미래예측과 비교해 볼 때 일관성이 없다. 둘째, 정치 분야에 대한 미래의 전망 역시 국내정치적으로도 국제정치적으로도 일관된 설명이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 우선, 국내정치적으로는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불신이 확대되어 의회와 정당제도가 기능을 못하면서 대의민주주의가 위축되고 소셜네트워크를 이용한 주민참여제도와 같은 직접민주주의가 확대될 것이라는 예측이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올바른 정책결정을 위해 국회의원에게 좀 더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임기를 보장해 정치엘리트의 전문성에 기초한 집단지성을 활용하는 것이 미래의 정치제도로서 바람직할 것이라는 대안을 제시하기도 한다. 셋째, 국제정치에 대한 예측도 현실주의와 자유주의가 충돌하고 있다. 미래에는 국내정치와 국제정치가 접점을 이루면서 세계 각국의 국민들 사이에 민주주의에 대한 기대가 확대되어 세계정부의 출현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는 국제주의가 바람직한 대안으로 제시된다. 이 관점에서는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국제기구의 설립을 세계민주주의 실현의 구체적인 선결요건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와 같은 국제주의에 대한 신뢰는 국제정치에서 자유주의·제도주의의 점진적 진보를 전제로 한 설명이다. 이에 반해 중국의 미국 추월 가능성에 대한 논의는 세계적 차원의 국력 경쟁 과정에서 미국의 패권과 중국의 도전을 염두에 두고 있는 현실주의적 시각에서 전개되고 있다. 문제는 어떤 경로를 통해 세계정부가 출현하고 패권경쟁이 결정될지 등 과정에 대한 일관된 관점에서의 설명은 부족하고 최종 결과에 대한 예측만 나열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미래에 대한 논의가 일관성이 없으며 지나치게 다양하여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앞에서 제시한 대표적인 논의들을 정치학의 일관된 이론의 틀에 접목하여 국내정치의 변화에서부터 시작하여 미래의 국제질서를 논의하고자 한다. 첫째, 개인 삶의 질을 결정하는 기본 조건인 경제적 빈곤은 과학의 발달로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물론 자원의 고갈은 개인의 삶에 부정적인 요인이지만 과학기술의 발달이 인간의 생존과 삶의 질을 확보하는데 필요한 에너지, 재화, 그리고 용역 등의 공급을 용이하게 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전통적인 자원이 고갈되더라도 과학기술이 이를 대체할 새로운 자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미래의 정부가 선거를 통해 결정된다면, 과학기술을 시민의 삶의 질을 위해 효과적·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에 따라 국정의 책임자가 결정되어야 될 것이다. 낙관론일 수도 있겠지만 대중이 자신의 선호를 선거에 정확하게 반영할 수 있다면, 새로운 역량을 갖춘 정치체제가 출현하여 현재의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와는 다른 제도를 만들 것이다. 즉, 정의로운 분배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정치권력이 경제권력과 협조하여 국가제도를 운영할 것이다. 한편, 이러한 개인의 삶에 필요한 희소한 자원이 시장이 아닌 다른 형태의 제도를 통해서 배분이 이루어지는 새로운 역량을 갖춘 정치체제는 직접민주주의에서도 대의제민주주의에서도 가능하다. 셋째, 새로운 정치제제가 출현해도 국내정치에서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 그리고 국제관계에서는 국가이기주의가 행동의 원칙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으로 제시되는 것이 세계정부의 출현인데, 사실 이는 대안으로 보기 어렵다. 교통과 통신의 발달에 따라 자동적으로 세계정부가 출현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이기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이 출현해야 단일통화와 세계경찰에 기초한 세계정부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세계정부는 평화적 국제제도의 확보를 전제로 하는데 이는 한 국가가 경제적, 군사적, 환경적으로 다른 국가의 생존을 위협하면서 자신의 이익을 얻는 방식으로 국가의 발전을 추구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더 구체적으로, 세계정부는 국내정치적으로 시장에 기초한 경쟁적 분배에서 벗어나 과학과 기술의 힘으로 분배의 정의가 확보되는 정치경제제도가 현재의 국제질서에서 중요시되는 국가, 국경, 그리고 군사력과 관련된 안보의 중요성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넷째, 국제체제와 관련하여 세계정부의 출현이라는 긍정적인 미래 시나리오도 가능한 측면이 있다. 국제사회에서 다른 국가를 능가하는 경성국력(hard power)을 가진 국가는 경제적으로 부강하고 과학기술을 확보한 선진국이다. 경성국력을 확보한 국가가 재화와 용역을 도덕적으로 분배하는 경제제도까지 확보하고 있다면, 그 국가는 연성국력(soft power)에서도 선진적인 지도국가이다. 이와 같이 경성국력과 연성국력 모두 선진적인 국가들이 국제질서를 평화적인 세계정부의 출현으로 인도하려는 합의가 이루어진다면 세계정부의 출현은 결코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선진국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국가이기주의를 바탕으로 세계평화를 교란하는 잠재적 위협국가들을 응징할 수 있는, 이를 테면 다국적 상비군과 같은 집단안전보장을 위한 제도를 갖추는 것이다. 현재의 국제제도에 기초해 볼 때, 미국과 중국이 세계정부 출현에 공정한 선의의 안내자의 역할을 수행한다면 세계정부를 위한 세계적 움직임은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로서 미국과 중국이 국가이기주의를 포기하고 공동의 선을 위해 협력할 것이라는 현실적 근거는 없다. 다섯째, 세계정부가 실제로 구성되고, 적절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 해결되어야 하는 세부적·정책적인 문제가 산적해 있다. 이는 국제관계가 아니라 국내정치의 문제이다. 새로운 정치제도에서 정치적 권력을 가진 개인들이 합의를 효과적으로 유도하는 민주주의정부를 가진 국가가 국제정치에서도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가난한 국가와 부유한 국가의 경제적 격차가 가져오는 노동력의 이동, 개별국가의 재정정책과 통화정책, 단일화폐의 출현, 환율 문제 등은 현재 유럽의 통합에서도 쉽게 관찰할 수 있는 심각한 장애물들이다.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도덕적이고 민주적인 정치제도가 확보된다고 하더라도 개인이 국제적 공공질서를 위해 국내적 개별이익을 희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집단행동의 문제(collective action problems)’는 여전히 남아있다.   마지막으로 인간의 이기주의에서 발생하는 집단행동의 문제는 과학기술의 발전이나 정치제도의 변화와 무관하게 사회적인 문제의 원인으로 남아있게 될 것이다. 통칭하여 문화로 대변되는 언어, 종교, 인종, 관습, 제도, 그리고 신념의 차이와 같은 다양한 차이가 통합에 장애가 될 것이다. 결국 차이 그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차이를 이용하는 정치적 편가르기가 고용, 환경, 주택, 교육, 복지, 보건 등과 같이 일상생활에서 정책의 편익과 문화가 접점을 이루는 부분에서 통합을 저해할 것이다. 결국 인간의 이기심과 문화적 차이는 지방, 국가, 지역, 인종, 문화 등 다양한 차원의 편가르기로 나타나고 궁극적으로 세계정부의 통합에 있어서 제도나 법적인 측면의 발전을 상쇄하여 극복하기 어려운 부정적 요인으로 남을 것이다. 現 제주평화연구원 연구위원. 미국 University of North Texas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미국국제정치학회가 주관하는 International Studies Quarterly의 Referee로 활동한 바 있음. 저서로는 『2011 한국인의 평화관: 통일정책과 여론』 및 『2010 한국인의 평화관: 외교정책과 여론』 등이 있음.
  • 평화, 번영과 사람을 위한 파트너십
    저자
    윤병세(외교부장관)
    발간호
    2015-46
      지난 해를 되돌아보면, 중동의 상황은 여전히 불확실성과 유동성이 지배하는 가운데, 오래되고 새로운 문제들이 혼재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산적한 엄중한 도전들에 직면하고 있는 한편, 일각에서는 희망의 빛줄기를 보기도 합니다. 중동의 동향에 큰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이 지역 현장의 상황을 긴밀히 주시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은 여전히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몇 주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충돌은 다시금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시리아의 난제는 더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듯 하며, 여전히 터널 끝의 빛이 보이지 않습니다. 또한, ISIL과 같은 폭력적 극단주의의 확산은 사태를 더욱 복잡하게 하고 있습니다. 확산일로에 있는 외국인테러전투원 현상 또한 문제의 복잡성을 더하고 있습니다. 어린 아일란 쿠르디 군의 비극적 죽음에서 보듯이, 시리아로부터의 대규모 난민은, 이웃 국가들과 유럽, 그리고 그 너머로 심각한 안보위협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UNHCR에 따르면 이러한 시리아 난민의 급증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6천만명의 난민이라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의 인도적 위기를 초래하고 있습니다. 리비아, 이라크와 예멘과 같이 전환 과정에 있는 국가에서 장기간 지속되고 있는 불안정은 중동 전역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제가 악천후를 예보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힘든 상황 속에서도 어디든 희망은 있다는 오래된 격언을 상기해 보고자 합니다. 이런 점에서 세계 지도자들은 시리아 분쟁에 대한 종합적 해법을 모색하기 위한 정치적 의지를 결집하고 있습니다. 수년에 걸친 협상 끝에 P5+1과 이란 간 이란 핵 문제에 관한 기념비적인 합의가 이루어졌습니다. 동 협상을 두고 다양한 시각이 존재하지만, 이는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을 위해 긴밀한 국제공조와 집요한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 주었습니다. 한국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란 핵 협상은 북한 핵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제고하였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미 양국 정상은 최근 북핵 문제를 최고의 시급성과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다루어 나가기로 합의했습니다. 난민 위기에서부터 폭력적 극단주의까지, 국내적 불안정에서 사회·경제적 저개발까지, 우리가 중동 일부 지역에서 목격하고 있는 현상들은 세계 여타 지역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처럼 고도로 상호 연계된 세계에서 누구도 그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강화되고 있는 한-중동 간 관계에 비추어, 한국 또한 중동에서 전개되는 일들의 영향을 즉시 느낄 수 있습니다. 최근의 메르스(MERS) 사태는 그러한 좋은 사례입니다. 금년 초의 전국적인 메르스 사태는 한국이 일찍이 경험한 적 없는 보건안보 위기였습니다. 다행히 우리는 WHO, 미국 및 사우디 보건당국과의 긴밀한 공조를 통해 이러한 위기를 신속하게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의 MERS 극복 경험은 성공 사례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한국은 이런 경험을 토대로 지난 달 서울에서 열린 글로벌보건안보구상 제2차 고위급회의 계기에“모두를 위한 안전한 삶(Safe Life for All)”구상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개발도상국들의 보건안보 분야 역량 배양을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  .  . 약 1년 전, 저는 요르단에서 개최된 이 포럼에서 기조연설을 한 바 있습니다. 당시 저는 한-중동 간 보다 강한 파트너십을 위해 다섯 가지 요소를 제시한 바 있습니다. 첫째, 포스트-오일 시대를 위한 맞춤형 경제 동반자 관계 구축 둘째, 중동의 평화를 위한 기여 확대 셋째, 인적·문화적 교류에 중점을 둔 마음과 마음을 연결하는 외교 넷째, 지역기구들과의 강화된 협력 그리고 다섯째, 다양한 방식을 통한 전략적 소통의 강화입니다. 이러한 정책을 행동으로 옮기는 노력의 일환으로,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이후 처음으로 지난 3월 중동을 순방하셨습니다. 우리가 구축하고자 하는 파트너십은 세 가지 'I', 즉 '관여(Involved),' '혁신(Innovative),' '상호작용(Interactive)' 으로 특징지울 수 있습니다. 첫째, 보다 강화된 ‘관여(involvement)’를 위한 우리의 노력입니다. 지난 몇 년간 한국은 중동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기여를 확대해 오고 있습니다. 한국의 청해(靑海)부대는 아덴만의 국제 해적퇴치 작전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2014년 리비아에서 불안정이 고조되었을 때 우리 해군선박은 민간인 철수 작전을 지원한 바 있습니다. 동명부대는 레바논의 재건작업을 수행하고 있고, 아크부대는 UAE의 국방 역량강화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주요 지역기구와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 또한 전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9월 유엔총회 계기 제1차 한-GCC 장관급 전략대화를 개최하였습니다. 또한 한-아랍연맹 장관급 회담도 개최하였습니다. 인도주의 외교는 우리 중동 정책에 있어 더 큰 역할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지난 수년간 우리 정부는 이라크, 시리아, 팔레스타인 및 예멘을 돕기 위해 약 4천만불을 제공했습니다. 작년 12월 제가 자타리 난민캠프를 방문한 직후, 우리 정부는 시리아 난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 차원에서 1천만불 지원을 공약하였습니다. 이는 현재까지 우리가 지원한 단일 인도적 지원 사업 중 최대 규모입니다. 지난 몇 년간 한국은 620여명의 시리아 난민들에게 한국 체류를 위한 인도적 지위를 부여하였습니다. 그들은 2013년 한국이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제정한 난민법의 수혜자들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안정화실무그룹과 외국인전투원실무그룹을 포함한 반ISIL연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안정화실무그룹에 1백만불 지원을 공약하였습니다. 둘째, “혁신적(innovative)” 파트너십의 확대입니다. 40여년 전 한국 건설회사들은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국가의 인프라 구축에 처음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후 부르즈 알 아랍(Burj Al Arab)에서 보듯이, 중동의 모습은 한국 건설회사들에 의해 변화되었습니다. 중동의 건설 붐은 1970년대 초반‘한강의 기적’의 원동력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완공되면 세계 최장이 될 쿠웨이트의 셰이크 자베르(Sheik Jaber) 연륙교도 현재 한국 기업에 의해 건설되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님은 건설현장 방문 당시 이 연륙교가 한국과 중동을 연결하는 협력의 상징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중동지역이 포스트 오일 저탄소 경제로 전환하면서 한국은 윈-윈 협력을 위한 최적의 파트너가 될 수 있습니다. 제가 작년 포럼에서 말씀드렸듯이 한국은 우리의 경험을 공유하고자 하는 국가들과 기꺼이 협력하고자 합니다. 보건과 의료, 원자로와 IT 분야에서의 협력은 신성장동력을 제공할 것입니다. 서울대병원이 운영하고 있는 칼리파 병원은 지난 2월 개원했습니다. 이 병원은 첨단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역내 허브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한국에 의해 건설된 바라카 원전은 걸프 지역에서는 최초입니다. 또한, 중동국가들에게 우리의 전자정부시스템을 수출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마음과 마음 간의 ‘상호작용’입니다. 중동에서 한류(韓流)가 계속해서 인기를 얻고 있으며, K-pop 페스티벌도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습니다. 실크로드의 이슬람 상인들로부터 영감을 받은 한-아랍 친선 카라반은 이제 중동과 한국 상호간에 문화를 실어나르고 있습니다. 한-중동 간 인적교류 또한 증가하고 있습니다. 여권(旅券)파워지수(Passport Power Index)에 따르면 한국은 세계에서 미국, 영국에 이어 외국 무비자 여행이 가능한 나라 2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인기 TV 드라마가 요르단에서 촬영되어 중동지역에 대한 한국 대중의 관심을 제고시켰습니다. 이집트의 아인샴스대학과 요르단대학의 한국어과 개설은 환영할 만한 일입니다. 그리고 한국 고등학생 중 5분의 1이 제2외국어로 쿠란의 언어인 아랍어를 배운다는 사실은 제게 신선한 기쁨을 주었습니다. 우리는 중동의 한국문화에 대한 이해 증진을 위해 현재 카이로에 있는 문화원과 UAE에 설치될 문화원에 더해 추가적인 한국 문화원 개설을 지속해 나갈 것입니다. 이는 우리 두 지역 간 교량 역할을 할 것입니다. .  .  . 일부 전문가들은 중동 안보 문제의 핵심은 비전의 충돌(clash of visions)에 있으며, 중동 지역 전체가 새로운 균형(new equilibrium)을 모색하는 과정에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이러한 견해에 동의하건 그렇지 않건 간에 해답은 궁극적으로 인류애와 인간 존엄에 있다고 믿습니다. 제70차 유엔총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인류애를 향한 지속적 파트너십에 대한 우리의 비전을 제시하셨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인간 존엄은 한국과 중동을 더욱 강력하게 연결하는 고리로서 작용할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한국과 중동은 많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중동은 수천년간 지성의 횃불이었고 창조의 요람이었습니다. 한국 또한 고대에 실크로드를 통해 중동과 연결된 찬란한 문화를 키워 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지역의 근대사는 지정학적 도전으로 점철되어 왔습니다. 이와 같은 역경을 극복해 나가는 가운데 한국과 중동은 연대하여 함께 협력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힘들 때건 좋을 때건 “어려울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입니다. 한국과 중동은 신뢰하는 라피크, 즉 동반자로서 우리의 더 밝은 미래를 향해 새로운 여정을 펼쳐나갈 것입니다.   *제12차 한-중동 협력포럼 기조연설  비공식 국문번역 발췌문. * 제12차 한중동 협력포럼은 제주평화연구원(JPI), 한국-아랍 소사이어티(KAS), 아랍사상포럼(ATF)의 공동주최로 10월 25-26일 서울에서 개최됨.
  • Partnership for Peace, Prosperity and People
    저자
    H.E. Yun Byung-se(Minister of Foreign Affairs)
    발간호
    2015-47
      Looking back on the past year, the situation in the Middle East is still uncertain and fluid, fraught with a mix of old and new problems. As we are witnessing a daunting array of challenges, we are also seeing rays of hope in certain areas. As a country that has a large stake in the developments in the Middle East, Korea is keeping a close eye on the situation on the ground. The Palestinian-Israeli conflict remains as intractable and elusive as ever. Over the last few weeks, the clash between Israel and Palestine is making headlines again. The Syrian conundrum seems to enter into a deeper quagmire and we still do not see the light at the end of the tunnel. Moreover, the spread of violent extremism like ISIL has further complicated the situation. The expanding phenomenon of “foreign terrorist fighters” adds a new dimension to the complexity. The mass exodus of refugees from Syria, as exemplified by the tragic death of the young child Aylan Kurdi, is posing a serious security threat to neighboring countries, Europe and beyond. This surge of Syrian refugees has pushed the number of global refugees to 60 million, making it the greatest humanitarian refugee crisis since World War II, according to the UNHCR. Protracted instability in those countries in transition, such as Libya, Iraq and Yemen, are having far-reaching impacts throughout the region. I do not want to be a forecaster of stormy weather, so I will repeat the time-honored adage that there is a silver lining in every cloud. Tunisia, the epicenter of the Arab Spring, was the success story in peaceful political transformation. I hope the Nobel Peace Prize awarded to the National Dialogue Quartet will inspire other countries in transition. As I said just now, the current refugee crisis is no doubt of unprecedented scale and urgency. However, the international community can turn this challenge into an opportunity. UNHCR High Commissioner Guterres has said, quote, “[The Syrian refugee problem] is not a crisis of numbers. Instead it is a crisis of responsibility, and more fundamentally, a crisis of values,” unquote. As there is no one-size-fits-all solution, we should take a comprehensive and holistic approach to resolve this urgent global challenge. In this regard, world leaders are mustering their political will to find a comprehensive solution to the Syrian conflict. A Landmark agreement on the Iranian nuclear issue was reached after many years of negotiations between the P5+1 and Iran. While there are diverse views about the deal, this demonstrated the importance of close international cooperation and persistent efforts to reach a negotiated settlement. From our stand point, the Iranian nuclear deal has raised international attention towards the North Korean nuclear issue. It was in this context that the leaders of Korea and the United States recently agreed to address the North Korean nuclear problem with utmost urgency and determination. From refugee crisis to violent extremism, from domestic instability to socio-economic underdevelopment, what we are seeing in some parts of the Middle East is affecting other corners of the globe. In such a highly-connected world, no one is free from their impacts. Given the growing ties between our two regions, Korea also immediately feels the heat of unfolding events in the Middle East. One good example is the recent case of MERS. Earlier this year, the nation-wide outbreak of MERS was an untold health security threat to Korea. Fortunately, we were able to quickly overcome this crisis in close coordination with the WHO, U.S. and Saudi Arabian health authorities. Korea's experience of overcoming MERS received the spotlight as a success story. This experience led Korea to announce the "Safe Life for All" Initiative at the Second High-level Meeting of the Global Health Security Agenda held in Seoul last month. This project aims at assisting capacity building in health security for developing countries. .  .  . Almost one year ago, I spoke at this Forum in Jordan. At that time, I suggested five points for stronger partnership between Korea and the Middle East. First, new economic partnership tailor-made for the post-oil age second, increased contribution to Middle East peace third, heart-to-heart diplomacy with particular focus on people-to-people and cultural exchanges fourth, strengthened cooperation with regional mechanisms and fifth, promotion of strategic communication through diverse means. As part of our endeavors to translate these policies into action, President Park Geun-hye toured the Middle East last March for the first time since her inauguration. The partnership that we wish to build can be characterized by three “I”s : “Involved”, “Innovative” and “Interactive.” First are our efforts for stronger “Involvement.” Over the last few years, Korea has been expanding its contributions for peace and stability in the Middle East. Korea's Cheong-hae (“Blue Sea”) naval unit is participating in international anti-piracy operations in the Gulf of Aden. During the height of instability in Libya in 2014, our naval vessel assisted in evacuation operations of civilians. Our Dong-myung unit is conducting reconstruction activities in Lebanon and the Akh Unit is assisting the UAE in building its capacity for national defense. Korea is also investing in building stronger ties with major regional organizations. We held the first Ministerial level Korea-GCC Strategic Dialogue on the margins of the UN General Assembly in late September. We also held the Korea-Arab League Foreign Minister Meeting. Humanitarian diplomacy is taking a larger role in our Middle East policy. For the last couple of years, my government has provided about 40 million U.S. dollars to help Iraq, Syria, Palestine and Yemen. Immediately following my visit to Za’atari Refugee Camp in December last year, my government pledged 10 million U.S. dollars for humanitarian assistance for Syrian refugees. This was our single largest humanitarian project to date. In the past few years, Korea has granted humanitarian status to 620 Syrian refugees to reside in Korea. They are beneficiaries of our refugee law enacted in 2013, the first in Asia. ? Furthermore, we are actively taking part in the anti-ISIL coalition, including two Working Groups, for Stabilization and Foreign Terrorist Fighters (FTFs). Korea has pledged one million U.S. dollars to the Stabilization Working Group. Second is expanding our “innovative” partnership. Four decades ago, Korean construction companies started their first participation in building the infrastructure of Middle East countries such as Saudi Arabia. Since that time, the landscape of the Middle East has been transformed by Korean construction companies, as in the case of Burj Al Arab. The construction boom in the Middle East was one of the driving forces of the “Miracle on the Han River” since the early 70s. Currently, the Sheik Jaber Bridge in Kuwait, which will become the world’s longest bridge upon completion, is being built by a Korean firm. During her visit to the construction site, President Park stated that this bridge will be a symbol of cooperation linking our two regions. As the Middle East transforms itself into a post-oil low-carbon economy, Korea can be an optimal partner for win-win cooperation. As I stated at last year’s Forum, Korea is willing to work with those countries who wish to share our experiences. Cooperation in health and medical services, nuclear reactors and IT will provide new engines for growth. The Khalifa Hospital, which is operated by Seoul National University Hospital, was opened last February. This hospital is hailed as a regional hub for high-tech medical service. The Baraka Nuclear Plant being built by Korea is the first in the Gulf region. We are discussing the export of our E-government system to Middle Eastern countries. The last is heart-to-heart “interaction.” The Korean Wave continues to gain popularity and K-pop festivals are hot tickets in the region. The Korea-Arab Friendship Caravan, inspired by the Muslim merchants of the Silk Road, now carries Korean culture to the Middle East and vice-versa. Peple-to-people exchanges between our regions are on the rise. According to the Passport Power Index, Korea is ranked second in the world, following the U.S. and UK, for having the largest number of visa-free destinations. Last year, a popular Korean TV drama filmed in Jordan raised the Korean public's interest towards the region. ? The opening of Korean Language Departments in Ain Shams University in Egypt and the University of Jordan are welcome developments. And for me it was a pleasant surprise to learn that one out of five Korean high school students learn Arabic, the language of the Quran, as their second foreign language. To enhance the understanding of Korean culture in the Middle East, we will continue to open cultural centers, in addition to the one in Cairo and the one planned in UAE, to serve as bridges between our regions. .  .  . Some pundits say that at the heart of the region’s security dilemma is a clash of visions and that the Middle East region as a whole is now in the middle of searching for a new equilibrium. Whether we agree with this or not, we believe the answer ultimately lies in humanity and human dignity. At the 70th UN General Assembly, President Park presented our vision for an enduring partnership towards humanity. In this regard, human dignity can serve as the bond that will bind us, Korea and the Middle East, stronger together. Throughout our history, Korea and the Middle East have had a lot in common. For millennia, the Middle East region was a beacon of knowledge and a cradle of invention. Korea has also nurtured a flourishing culture that was connected to the Middle East by the Silk Road in ancient times.. Yet, the modern history of both regions has been rife with geopolitical challenges. As we both continue to overcome these hardships, Korea and the Middle East should work together in solidarity. Rain or shine, “A friend in need is a friend indeed.” Korea and the Middle East will embark on a new journey as trusted Rafiq, or companion, towards our better future. * This paper was presented at the keynote address escerpts, Partnership for Peace, Presperity and People in 12th Korea-Middle East Cooperation Forum. H.E. Yun Byung-se(Minister of Foreign Affairs)
  • 핵무기에 대한 간략한 고찰
    저자
    이성원(북한대학원대학교 석사과정)
    발간호
    2015-48
    [편집자 註] '차세대의 목소리'는 젊은 세대들의 신선한 시각을 통해 평화와 안보문제를 살펴보고, 갈등해소와 평화정착을 위한 새로운 방안을 논의하는 JPI PeaceNet의 기획 시리즈입니다.     물질과 에너지의 등가성이 밝혀진 이래 과학의 발전은 놀라운 가속도를 얻게 되었다. 그 학문적 업적에 발맞추어 인류 문명을 송두리째 지울 수 있는 단 하나의 무기가 빛을 보았고,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잔혹한 데뷔를 마쳤다. ‘상대성’에 입각한 재래전의 종말이 가까워졌으며, 어쩌면 인류의 멸종도 머지않았을지 모른다는 불안함에 방점을 찍은 핵무기가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핵무기의 등장으로 기존의 전쟁 양상은 송두리째 뒤집혔다. 손자에서 클라우제비츠, 그리고 실전에서 스타크래프트(Starcraft)까지 전장에서의 갑은 항상 힘이 강한 쪽이었다. 우세를 달성하기 위한 다양한 군사사상과 전략이론들이 요구되고, 또 가치를 얻을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한편, 핵무기가 보여준 전대미문의 위력 앞에서 기존의 사상과 이론, 탱크와 전투기 등의 재래식 무기들은 상대적으로 사소해 보이게 된 것이 사실이다. 핵보유국이라는 지위만 획득하면 제아무리 강한 군사력을 지닌 적이라도 머리를 조아리게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결국 2차세계대전 이후 많은 국가들이 핵폭탄을 보유하기 위해 혈안이 되었고, 그렇게 사이좋게 멸망을 향한 행진에 동참하게 되었다. 핵무기에 대한 환상   사실 히로시마 원폭 투하 이후, 핵무기는 이름만 무기일 뿐 무기가 아니게 되었다. 무기란 “전쟁에 사용되는 기구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지구를 수백 번이고 초토화시킬 수 있을 만큼의 핵무기가 지상에 존재하는 현 상황에서 핵무기를 선제적으로 사용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우리는 그동안 경험해 온 폭력의 역사를 통해 어디선가 날아온 핵탄두는 두 배가 되어 돌아가고, 이는 다시 네 배로 되돌아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핵무기 사용은 곧 인류 멸망의 동의어로, 인류가 멸망하면 승리도, 패배도, 그리고 전쟁도 없다. 따라서 핵무기는 무기로써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다.   더 나아가 무기라는 것은 그 수에 비례해 전력이 배가되기 마련인데, 핵무기의 경우, 절대량보다는 보유 여부에 따라서 영향력이 좌우되는 경향이 크다. 소형핵탄두 한 기만으로도 웬만한 나라를 패망으로 몰아넣을 수 있으니 갖느냐 안 갖느냐의 양자택일(All or Nothing) 게임이 되는 것이다. 사용할 수도 없고 열 개나 백 개나 비슷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무기를 과연 무기로 볼 수 있을까? 핵무기 그 자체는 무기가 아니다. 핵무기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 무기이다.   그 ‘사실’을 알아주길 바라는 우리네 이웃은 지금도 핵개발에 부단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고, 덕분에 우리는 발 뻗고 잘 수 없다. 한편으로는 그들의 마음도 이해가 되는 것이, 김정은 정권에게 핵은 생존을 위한 최후의 보루이자 전략적 방어수단이다. 그러한 핵을 버리라는 것은 인질범에게 총을 버리라는 것과 같다. 따라서, 실현 가능성이 적은 꿈을 꾸기 보다는 눈을 돌려 조금 더 먼 곳에서 그림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핵무기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이러한 관점에서, 어쩌면 모든 국가가 핵을 보유해 소모적인 군비경쟁을 끝내고 ‘만국의 만국에 대한 투쟁’을 종식시키는 것이 더 현실적인 방안으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에 등장하는 ‘둠스데이 머신(Doomsday Machine)’처럼 핵무기의 통제권을 컴퓨터에게 위임하여 핵위협을 억지하려는 시도도 존재했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다양한 변수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국제사회라는 복잡계에서 이러한 상호확증파괴(Mutually Assured Destruction) 시도는 최악의 결과로 비화될 수 있음을 이 영화는 보여준다. 모든 국가가 사이좋게 핵무기를 버릴 수도, 가질 수도 없다면 핵이 없는 국가, 특히 대한민국과 같이 적성국이 핵무기를 보유한 국가는 어떠한 핵전략을 구사해야 하는가? 필자는 가능한 수단을 조합하여 적의 핵능력을 최대한 상쇄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선, 외교 노력으로는 우방국의 핵우산 강화를 들 수 있다. 동맹 간 핵교리 동기화와 핵협정 정례화 등의 하드웨어 장착과 확장억제의지 천명 등의 소프트웨어 정착을 통해 핵우산을 ‘핵파라솔’로 강화해 나가야 한다. 방어 노력으로는 미사일방어체계를 한층 두텁게 구축할 필요가 있다. 다층적·다종적 방어체계로 적의 핵공격에 대한 최소한의 거부 능력이라도 갖춰야 한다. 마지막으로, 보복 노력으로는 핵피격 시 핵보복을 할 수 있도록 ‘핵능력은 있되 핵무기는 보유하지 않는’ 준핵보유국 지위를 달성하고, 이를 국제사회로부터 인정받을 필요가 있다. 물론 이러한 대안이 적국의 핵포기나 자국의 핵보유만큼 확실한 해결책은 아닐 것이다. 핵우산은 우방국의 의지에 따라 신뢰도가 변하며, 미사일방어체계 역시 기술적인 한계에 봉착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준핵보유국이라는 절제된 핵지위를 국제사회에서 어느 범위까지 용인할지도 미지수이다. 그러나 이처럼 불완전한 대안들이라도 조합되면 상호보완하여 실질적인 핵억지방안으로 작동할 여지도 있다. 뭐라도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는 낫다는 것이다. '핵중독'   핵무기는 인류의 담배이다. 일단 한 번 그 맛을 본 인류는 흡연과도 같이 핵무기에 계속하여 집착하거나 영원히 참는 두 선택지 중에 고를 수밖에 없다. 애연가가 금연 사흘 만에 폐암과 금연스트레스의 폐해를 심각하게 저울질하듯이, 인류도 언제 발현될지 모르는 핵전쟁이라는 암과 핵포기가 수반할 전략적 스트레스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다. 담배를 끊지 않으면 자신의 정서는 더 편안해질지 모르지만 본인의 폐와 주변의 비흡연자들은 불편해진다. 마찬가지로 핵보유국들이 핵을 유지하면 국가차원의 안보전략을 더 편하게 짤 수 있을지 모르지만 삶의 터전인 지구와 비핵보유국들은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불안감에 떨게 된다.   아인슈타인은 4차세계대전이 돌과 막대기의 전쟁일 것이라고 예언했다. 3차대전은 핵전쟁이 될 것이 자명하기 때문에 문명이 거세된 인류가 다시 원시로 회귀하리라는 섬뜩한 경고이다. 북핵문제가 다시금 고개를 들고 있는 지금, 핵폭탄의 이론적 근거를 마련한 이 과학자의 암시가 더욱 무겁게 다가온다. 인류는 한층 더 대승적인 차원으로 진화하여 국가와 세계의 생존을 모색해야 한다.
  • 미얀마 총선과 한국의 對 미얀마 전략
    저자
    장준영(한국외대 벵골만연구센터 연구교수)
    발간호
    2015-49
      지난 11월 8일, 미얀마에서는 1990년 이래 25년 만에 공정하고 자유로운 총선이 실시됐다. 2010년 총선과 달리 이번 선거에는 광활한 부정선거도 없었고, 야당의 참여로 인해 총선 자체의 정통성이 확보되었다. 또한 80% 이상의 투표율은 정치 참여에 대한 국민적 열의를 대변한다. 필자는 10월 초 미얀마를 방문하여 출마자들의 유세를 직접 관람했고, 출마자도 면접했으며 민심의 향배도 관찰했다. 개표가 완전히 끝난 상황은 아니지만 필자가 조사한 것 이상의 압도적인 지지로 아웅산수찌(Aung San Suu Kyi)가 이끄는 국민민주주의연합(National League for Democracy)이 승리했다. 까친주 일부 의석(상원 1석, 하원 2석, 지방의회 8석)을 제외하고 NLD가 총 의석의 76.7%를 차지한 것이다. 국민들은 환호했고, 집권 여당의 테우(U Htay Oo) 공동 대표는 선거 다음 날 패배를 공식 인정했다. 민아웅흘라잉(Min Aung Hlaing) 군총사령관 선거 결과를 존중한다는 애초의 약속을 확언했다. 한편, 아웅산수찌는 11월 10일, 대통령, 하원의장, 군총사령관 등 3명에게 공개서한을 보내 정국 현안과 관련한 회동을 제의했고, 18일 하원의장과 평화적인 정권 이양에 합의했다. 1990년 총선에 승리했을 때 NLD 당원이 뉘른베르그 재판이나 군부 통치의 종식 등을 주장하며 군부를 자극했던 것과 달리 아웅산수찌의 다소 유화적인 행동은 그녀의 정치관이 변화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현재로서 군부나 여당이 총선 결과를 무효화 할 그 어떤 명분도 보이지 않는다. 이번 선거에서 NLD의 승리 배경은 50년 이상 지속된 군부정권에 대한 증폭된 피로감의 해소와 반사효과, 아웅산수찌의 대중적 인기로 설명될 수 있다. NLD는 이번 총선에서 “변화의 시간이 왔다.”라는 구호를 통해 국민의 가슴 속 응어리를 단번에 해소했다. 이에 반해 여당 연방단결발전당(Solidarity and Development Party)은 “지속적인 개혁을 위해”를 선거 구호로 정하여 현 정부의 업적을 계승하고자 했다. 사실 국민들은 현 정부의 개혁개방을 높게 평가하지만, 준민간정권보다 아웅산수찌가 이끄는 새로운 정치질서를 갈망해 왔다. 선거는 끝났으나 미얀마의 과제는 산재해 있다. 첫째, 아웅산수찌의 리더십과 NLD의 수권 능력을 실험할 본격적인 시험대가 펼쳐질 것이다. 이번 선거는 아웅산수찌 혼자서 일궈낸 승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녀에 대한 국민적 신망은 높은 편이다. 국민들은 “어메 쑤”(Ame Su), 즉 “어머니 수찌”라고 부른다. 국민들은 아웅산수찌가 이끄는 NLD가 집권하게 되면 지금까지 군부정권과 달리, 국민의 복지를 증진시키고 경제적으로 윤택한 삶을 살게 해 줄 것이라는 이상주의적 발상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아웅산수찌는 어머니와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 않다. NLD는 정치와 행정 경험이 전무하고 이번 총선에서는 변변한 공략집도 내 놓지 못했다. 우리가 행해야 할 모든 것이 변화라는 NLD의 입장과 나(아웅산수찌)와 우리 당(NLD)만을 보고 투표해 달라는 아웅산수찌의 연설은 NLD 내부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노출시키는 대목이다. 또한 차기 정부에서 권력 갈등이 발생한다면 그것은 바로 NLD 내부에서 시작될 수 있다. 헌법 제 59조 f조항에 따라 아웅산수찌는 대통령이 될 수 없고, 의석 획득 수를 감안할 때 군부의 협조 없이는 대선 전 100일 이내 헌법 개정도 불가능해 보인다. 그래서 아웅산수찌는 “대통령 위의 존재”가 될 것이라고 공공연히 언급해 왔는데, 과연 ‘명목상’ 대통령이 아웅산수찌의 의중을 그대로 이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NLD 내 대통령 후보는 당 중앙위원회 15인 내에서 배출될 가능성이 크지만, 이들도 대부분 70세 이상의 고령이다. 당 내 후속세대는 없으며, 국정 전반을 운영할 각 분야의 전문가도 없다. 무엇보다도 “대통령 위의 존재”는 군부정권만의 ‘막후권력’이라는 정치문화를 아웅산수찌가 도입하려는 것으로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선거는 준민간정권에서 민간정권으로 전환하는 계기이면서 동시에 민주주의로의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민간권위주의가 등장할 것인가 하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 둘째, NLD의 역량과 관련하여 미얀마가 당면한 급선무 과제인 국민화해와 국가통합을 어떻게 달성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이다. 미얀마는 1948년 독립 이래 아직까지 국민국가를 완성하지 못했다. 현 정부는 2011년부터 무장 반군단체와 대화를 원칙으로 하는 정전협상을 벌였고 지난 10월, 17개 단체 가운데 8개 단체와 전국적인 정전협정을 완료했다. 총선 이후 협상 중에 있는 무장단체들은 NLD에게 축하 전문을 발송하는 등 우호적 관계 구축을 시도하고 있다. 향후 NLD가 주축이 되는 정전협상에서 이들 단체들은 지금보다 한 단계 높은 수준의 자치권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민주정권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재정적인 자율성을 보장받으려는 움직임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NLD는 국민화해와 국가통합을 국정의 최대 과제로 설정하고 추진할 것으로 관측되지만, 방법은 아직 미지수이다. 그렇기 때문에 차기 정부에서 군부는 반군 문제를 빌미로 국방과 치안에서 배타적인 자율권과 정전협상 과정에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즉, 국민화해가 완료되지 않을 경우 군부의 정치개입 명분은 상존할 수밖에 없다. 또한 이번 총선에서도 나타났듯이 NLD는 버마족(Burman) 중심의 정당이라는 사실이 입증됐다. 소수종족으로 구성된 자치주(State)에서 NLD는 의석수의 절반도 획득하지 못한 반면, 버마족 중심의 행정주(Region)에서는 모든 의석을 싹쓸이 하다시피 했다. 특히 로힝자족(Rohingya) 문제가 쟁점화되는 여카잉주(Rakhine)에서는 지역 정당의 기세에 크게 눌렸다. 이를 바탕으로 볼 때, NLD에게는 종교분쟁으로 비화되고 있는 소수종족 문제를 단독으로 해결할 역량이 없어 보이며, 이를 위한 전략도 부재하다. 셋째, 군부와의 협력 방법과 그 폭이다. 총선 이후부터 내년 3월 말로 예정된 차기 정부 출범까지의 시기는 정치적 과도기, 또는 위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승리에 도태되어 과거사 청산, 급진적인 군부의 정치적 영향력 축소, 군부의 경제활동 봉쇄 등 군부를 자극하는 정책이 나올 경우 군부의 반발이 예상되며, 최악의 경우 군부의 쿠데타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행히 아웅산수찌는 과거사 문제를 언급하지 않고, 군부와 협력하는 방안으로 국정을 운영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1962년부터 군부가 집권한 이유로 군부의 대체세력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차기 정부는 어떤 형태로든 군부의 협조와 참여를 필요로 한다. 마지막으로 대통령 선출 건이다. 대통령은 상원과 하원에서 각각 1명 후보와 군부 출신 1명 등 총 3명을 선출하여 최종적으로 상하원 합동선거인단이 선출한다. 현 정부의 사례를 볼 때 2015년 1월 말 국회 개회와 함께 대통령 선출에 착수할 것으로 보이며, 2월 내로 대통령이 선출될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후보는 국회의원으로 국한되지만 군부 출신 후보를 제외하고 각 의회에서 원외 인사를 추대할 수 있다. 선거 결과에 따라 하원에서는 NLD 출신 의원(당원)이 대통령 후보가 될 수 있으나, 상원은 통상 소수종족을 후보로 선출한다. 그러므로 반드시 NLD 출신 후보가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이론이 적중하지 않을 수도 있다.   향후 정치질서가 어떻게 전개되든 미얀마는 분명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것이다. 베트남 변호사 응웬 반 다이(Nguyen Van Dai)를 비롯하여 베트남 내 민주화운동가들은 미얀마 총선이 베트남의 민주화에 기여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자국의 영향력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했던 중국도 미얀마와의 우호적 관계를 과시하는 데 주력하고, 미국도 미얀마 헌법 개정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등 미얀마 총선은 국제사회에 적지 않은 시사점을 준다. 이에 한국도 미얀마의 변화에 대응하는 새로운 전략을 필요로 한다. 먼저 미얀마의 지정학적 가치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 1990년대부터 중국은 원조 확대로 동남아에게 ‘중국기회론’을 제공했지만, 최근에는 ‘중국위협론’이 부상하고 있다. 소위 말라카 딜레마, 남사군도를 둔 강대국의 갈등 등은 이해 당사자가 소속된 아세안의 문제이기도 하다. 또한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 진주목걸이 전략 등은 미얀마의 협조 없이 불가능하다. 중국의 대 동남아 정책에 있어서 미얀마가 한 축을 담당할 것이라는 사실은 자명하다. 미국 또한 미얀마 내 마약 퇴치, 소수종족 문제 해결을 위해 군사협력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되는 바, 미얀마를 둔 양국의 경쟁과 갈등은 새로운 긴장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이에 반해 미얀마는 전통적인 외교전략인 중립노선을 유지하면서 현 정부의 헤징(hedging)전략을 계승할 것 같다. 당분간 미얀마 내 반중정서를 감안하여 중국과 등거리 외교를 고수할 것으로 보이지만, 외교정책의 우선 국가는 중국이며 이러한 명제는 변화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는 차원에서 대 미얀마 제재를 완전히 해제할 가능성은 낮고, 재무부에 등재된 '블랙리스트(Specially Designated Nationals List: SDN)' 명단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아웅산수찌는 친미주의자가 아니라 서방과의 관계 정상화를 통해 중국에 종속됐던 외교의 추를 균형으로 돌려놓을 것이다. 미얀마는 북한과 함께 지구 상에서 가장 폐쇄적인 국가였고, 지난 5년간 역사에 남을 변화를 선택했다. 그렇다면 북한의 변화 가능성을 고려하여 미얀마의 개혁을 지속적으로 관찰할 필요가 있겠다. 미얀마의 변화가 집권층의 개혁 의지, 장외세력의 출현, 외부의 지속적인 회유와 압력, 지정학적 측면 등으로 설명되기 때문에 북한과 미얀마를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이다. 그러나 현 상황에서 북한의 변화를 예상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는 ‘위로부터의 변화’이고, 이런 점에서 미얀마의 개혁 노선이 북한을 위한 이정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부분적 개방에서부터 시작된 미얀마의 변화가 국민의 힘으로 새로운 시대를 개척한 것처럼 북한도 변화의 서막이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을 고립시키기보다 외부와 대화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궁극적으로 지도층의 변화를 자극해야 할 것이다. 점진적인 개혁과 개방을 통한 국민의 참여를 보장할 수 있는 단계적 접근 방안이 필요해 보인다. 現 한국외대 벵골만연구센터 연구교수. 한국외대에서 미얀마 군부의 정권유지 전략을 연구하여 국제관계학 박사를 취득함. 미얀마 정치변동과 국가-사회관계, 동남아 국제관계 등 다수의 논문과 저서를 출판하였음.
  • 남북한 심리 통합으로 가는 길
    저자
    정혜진(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석사)
    발간호
    2015-40
    [편집자 註] '차세대의 목소리'는 젊은 세대들의 신선한 시각을 통해 평화와 안보문제를 살펴보고, 갈등해소와 평화정착을 위한 새로운 방안을 논의하는 JPI PeaceNet의 기획 시리즈입니다. 긴박했던 43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남북 고위급 접촉이 지난 8월 25일 극적으로 타결되었다. 무박 4일이라는 긴 마라톤협상은 여전히 남북 간의 의견 차가 존재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남북 고위급 접촉 합의 이후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협력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이러한 차이를 극복한 남북한 통합 준비가 필요하다. 독일의 역사를 돌아봤을 때 정치나 경제 통합보다는 멘탈리티 즉, 내적 통합에서 가장 큰 어려움이 있었다. 동서독 간의 다른 역사, 다른 성장과정 등이 있었고, 문화적 편견 등이 존재했기 때문에 이러한 것이 사라지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린 것이다. 독일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남북한 통합 문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바로 ‘심리 통합’ 문제이다. 통일 후 남북한 주민들은 서로 상대방의 마음을 어떻게 이해하고 사로잡을 것인가? 우리는 서로 다른 성격의 두 문화가 오랜 시간 접촉함으로써 변하는 ‘문화접변’ 현상을 접할 수 있다. 미국 인디언들이 자신들의 고유한 문화를 잃어버리고, 백인문화에 흡수한 ‘문화동화’ 사례나, 멕시코의 토착 인디언들의 전통과 에스파냐 정복자들의 문화가 혼합되어 나타난 메스티소라는 독특한 ‘문화 융합’의 사례 등 문화접변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렇다면 통일한국의 문화접변 현상은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날까? 북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문화를 잃어버리고 남한의 문화에 흡수될까? 아니면 남한의 문화와 북한의 문화가 혼합되어 새로운 ‘문화융합’ 사례를 창출할까? 이러한 문화접변으로 인한 남북한 주민들의 심리적 갈등은 통일 이후 가장 중요한 문제로서 자리 잡을 것이다.   영화 ‘코리아’를 통해 본 남북한 정서적 갈등 영화 ‘코리아’는 1991년 41회 세계선수권대회 남북 단일팀 결성이라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이다. ‘코리아’라는 이름으로 한 팀이 된 선수들은 생활방식, 연습방식, 언어 등 서로 다른 이질감으로 인해 사사건건 갈등이 발생한다. 통일 이후, 남북한 주민들 간의 어떠한 심리적 갈등이 발생할 것인가를 영화 ‘코리아’를 통해 예상할 수 있다. 영화 ‘코리아’에서는 남북한 선수들 간의 문화적 차이, 정치사상 교육의 차이 등으로 인한 심리적 갈등이 잘 나타난다. 예컨대 남한 선수들의 가벼운 농담을 북한 선수들이 희롱으로 받아들인다거나, 김일성 부자에 대한 우상화 교육이 지나치게 심해 이로 인한 갈등이 생긴다거나, 사회주의 이념과 체제의 강조로 인해 남한이 아무리 잘 산다고 하더라도 남한에서 살고 싶지 않다는 언급 등을 통해서 우리는 통일 후 남북 주민들 간의 심리적 갈등이 통합의 걸림돌이 될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통일 후 남북 주민들 간의 어떠한 심리적 갈등을 예상할 수 있을까? 첫째, 북한 주민들은 명분을 중시하고 집단의식, 책임감, 의무감이 강조되는 사회에서 성장하였다. 따라서 통일 이후 그들은 남한 주민들보다 자신들이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믿으면서 자아정체성을 유지하려 할 것이다. 둘째, 영화 속에서도 나타났듯이 남한 주민들의 북한체제에 대한 비판은 북한 주민들의 강한 심리적 저항을 불러일으킬 것이라 예상된다. 셋째, 문화적 차이로 인한 심리적 갈등을 예상할 수 있다. 예컨대 북한 청소년들은 남한 학생들의 자유분방한 모습, 학교에서 학생들이 선생님과 너무 거침없는 농담을 하는 모습 등을 보면서 사고방식에서의 차이를 경험할 가능성이 높고, 그래서 서로를 이해하기 힘들다고 생각하면서 심리적 갈등을 겪을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넷째, 법과 현실의 괴리로 인한 북한 사람들의 심리적 혼란을 예상할 수 있다. 예컨대 북한 헌법 제89조에 일반·직접·평등·비밀선거 규정이 있으나, 실제 비밀선거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점, 1991년에 제정된 가족법에 양성평등을 위한 남녀평등권 법령이 존재하나, 실제로는 양성평등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점 등 북한에서는 법과 현실의 괴리가 심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통일 후, 북한 사람들은 남한의 준법정신을 이해하기 어려워 할 것이고, 이로 인한 심리적 갈등이 발생할 것이다. 그렇다면 독일은 이러한 심리적 갈등을 어떻게 극복하고 있을까?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이다. 동서포럼은 매월 1회, 2박 3일간 진행되는 동서독인 대화 모임으로 1998년부터 현재까지 약 2천명 이상의 동서독인들 참여하고 있다. 동서포럼 외에도, 독일 정부는 심리적인 측면에서의 통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에서는 여전히 마음의 장벽 문제가 존재하고 있다. 따라서 독일의 교훈을 바탕으로 남북 심리 통합의 장애요소와 극복해야 할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단기적으로 ‘인식적 차원의 준비와 대비’가 필요하고, 중장기적으로는 ‘현실적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며 장기적으로는 ‘목표 지향적 정책’과 ‘이러한 정책을 제도적으로 확립’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인식적 차원의 준비와 대비’는 통일 전에 심리 통합을 위해 이루어져야 하는 작업이며, ‘현실적 차원의 노력’은 통일 전후의 시기를 고려하여, 마지막으로 ‘제도 확립의 노력’은 통일 후를 상상하며 준비해야 할 것이다.   통합은 교육에서 시작하여 교육으로 완료되어야 구체적으로 통합은 교육에서 시작하여 교육으로 완료된다는 신념으로 실행되어야 한다. 따라서 통일 전의 ‘심리 통합’을 위한 ‘교육’ 분야에서의 준비과정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초등학교 6학년 도덕교과서(5단원, 통일한국을 향하여)를 분석해본 결과, 통일의 필요성과 바람직한 통일의 과정에 대해서는 교과서에 잘 정리되어 있지만, 남북한이 어느 분야에서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서는 “북한에서는 개인보다 전체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남한 사람들은 개인의 능력과 일의 효율성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등 굉장히 추상적으로 설명되어 있었다. 어느 분야에서 어떻게 다른지를 각 교과목 별로 다루어 학생들이 유기적인 사고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더불어 초중고교 교과서의 ‘통일’교육 내용을 전반적으로 분석해 본 결과 초등학교의 경우 도덕과 사회 교과목에, 중학교의 경우 도덕, 생활국어, 사회, 국사 교과목에, 고등학교의 경우 생활과 윤리, 한국지리, 한국사, 법과 정치 등의 교과목에 통일교육이 편성되어 있었다. ‘심리 통합’ 문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분야를 가리지 않고 상대방의 가치 및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도덕이나 사회교과목에 편중되어 있는 통일 교육을 전교과로 확대할 필요성이 있다. 예컨대 음악, 미술 교과에서의 통일교육은 남북한의 미술 작품이나 음악을 직접 감상해봄으로써 동질성과 이질성을 정서적으로 느끼고 이해할 수 있도록 이루어져야 하며, 이는 마음의 통합에 상당한 도움을 줄 것이라 생각된다.   남북한 심리갈등 축소를 위한 미디어콘텐츠 활용 통일 후, 남북 주민 간에 어떠한 심리적 갈등이 발생할 것인지를 미디어콘텐츠를 활용하여 보급하는 것도 남북 주민들 간의 심리 통합에 도움이 될 것이다. 예컨대 앞서 분석한 영화 ‘코리아’를 통해서 남북 주민들 간의 심리갈등을 예상할 수 있듯이 드라마나 예능, 영화를 통해 서로의 문화 및 가치관을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미디어를 통해 마련할 필요가 있다. ‘남북의 창’이나 ‘통일전망대’와 같은 프로그램도 물론 북한의 문화를 이해하는데 상당한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이지만 상대적으로 시청자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독립적인 통일프로그램도 중요하지만 기존의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남북한의 현실 및 문화, 가치관 등을 이해할 수 있도록 콘텐츠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물론 ‘애정통일 남남북녀’, ‘이제 만나러 갑니다’ 등의 종편 프로그램에서 탈북자들의 생생한 증언을 다루거나, 가상결혼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지만 국민적 관심을 위해서는 기존의 지상파 프로그램에 북한을 이해하고 통일의 필요성을 강조할 수 있는 미디어콘텐츠를 녹여낼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성이 있다. 올해는 분단된 지 70년이 된 해이다. 이제 우리 대한민국은 한반도 통일을 위한 준비뿐만 아니라 통일 이후의 갈등도 미리 준비해야 한다. 특히 마음을 화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많은 문제가 생길 것이다. 그만큼 심리 통합은 통일한국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다. 심리 통합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은 남북 간의 의사소통 및 대화가 대등한 관계에서 출발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즉 갑을 관계가 되는 순간, 심리 통합은 더 어렵고 장기적인 과제가 될 것이다. 남북한의 통일 및 통합은 ‘1+1=2’가 아닌, 그보다 훨씬 더 큰 +α 만큼의 긍정적인 영향을 가져올 것이라 생각한다. 특히 정치, 행정, 교육, 사법 통합이 ‘2+α’의 영향력을 가져온다면, 심리 통합은 ‘2+∞’의 영향력을 가져올 것이다. 심리 통합이 그만큼 어렵기는 하지만 잘 이루어진다면 보다 강한 통일한국을 예상해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남북한 간의 교류를 강조해왔다. 즉, 교류가 이루어져야 통합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줄곧 주장하였다. 남북 간의 교류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귀납적 방법이 아닌 연역적 방법으로 심리 통합을 위한 예상시나리오 및 대안을 먼저 제시하고, 심리 통합을 이루기 위한 여러 학계 간의 유기적인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독일은 통일 20년이 지났지만 ‘마음의 통합’, ‘심리 통합’이 아직도 진행 중이다. 통일 전 편지 교환 등 ‘교류’가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심리 통합’이 아직도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독일의 사례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남겨준다. 남북한 심리 통합에 있어서 남한은 나와 다른 것을 포용 할 줄 아는 열린 사회가 되어야 하며, 북한은 세계를 향한 보다 넓은 마음가짐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베를린 장벽에 이런 글귀가 적혀있다고 한다. “작은 마을의 작은 사람들이 세기를 바꿀 수 있다.” 통합은 거창한 것이 아닌 작은 것에서부터, 즉 사람의 마음에서 시작됨을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다.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석사
  • 2+2 남북고위급회담: 우린 정말 협상을 잘했을까?
    저자
    이성우(제주평화연구원 분쟁해결연구부장)
    발간호
    2015-37
      이번에 진행된 이른바 2+2 남북고위급회담을 협상론의 측면에서 분석함으로써 국익을 제고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번 회담의 결과에 대한 이해를 위해 하나의 에피소드가 필요하다. 초등학교 4학년인 아들이 아빠에게 무언가를 해 달라는 요구조건이 관철되지 않자 아빠의 팔을 뒤로 비틀면서 이른바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아빠의 팔이 뒤로 꺾이고 “아!”하고 비명을 지르면 부자 간에는 일종의 묵언의 합의가 이루어진다. 아들은 “아빠가 고통받고 있구나”하고 생각하고 아빠는 “내가 고통받고 있는 한 아들은 다른 요구를 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생각하게 된다. 아빠의 엄살(fraggle) 전략이 아들의 협상 전략을 효과적으로 제약하는 것이다. 이는 자신에게 손실이 발생한다는 착각을 상대방에게 신뢰하게 함으로써 협상에서 불리한 의제를 선제적으로 회피하고 협상 비용을 줄이는 일종의 기만술(deception)이다.   북한의 ‘목함지뢰 공격’에 우리는 ‘확성기 방송’으로 대응했다. 이에 북한은 “확성기를 타격하겠다.”고 위협했고 우리는 “원점타격과 선조치 후보고”로 맞받아쳤다. 그 사이에 남북한은 서로 포 사격을 교환했지만 이는 양쪽 모두 구체적인 목표물을 타격하지 않는 위협사격이었다. 위협사격을 제외하면 앞의 ‘맞대응 전략(Tit-for-Tat)’은 실제 행동(action)이고 그 다음의 맞대응은 구두 협박(verbal threat)이다. 문제는 북한이 남한의 대북 확성기 방송이 북한의 정권에 타격이 큰 것처럼 우리에게 알렸고 우리는 그 엄살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우리는 북한의 ‘벼랑 끝 전술(brinkmanship)’이나 과장된 위협(bluffing)에 익숙한 나머지 북한의 엄살을 간과했다. 그 결과, 한반도 평화에 정작 중요한 전략적 이슈와 정책 현안이라고 할 수 있는 북한의 핵개발, 미사일 실험을 포함한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개발, 박왕자 피격,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에 대한 사과와 재발 방지에 대한 논의가 협상 테이블에서 제외되었다.   북한의 도발을 우리 국익의 손실과 관련해 비유하자면, 우리에게 천안함 피격과 연평도 포격이 중상이었다면 목함지뢰는 비교적 경미한 상처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이번 고위급회담이 있기 전까지 우리 정부는 천안함 피격과 연평도 포격과 같은 도발에 대해 북한의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남북화해협력의 전제조건으로 요구해왔다. 확성기공격에 대한 북한의 엄살로 2+2 남북고위급회담의 프레임은 목함지뢰에 대한 사과 문제에 매몰되어 정작 한반도 평화에 전략적으로 중요한 문제는 의제로 언급조차 못했다. 북한은 남한의 확성기 방송을 통한 대북심리전이 북한에게 치명적인 것처럼 고통을 과장해 남한 당국자에게 믿게 함으로써 북한의 비핵화와 천안함 같은 주요 현안을 의제 목록에서 선제적으로 제거하는 효과를 거두었다. 북한은 천안함 피격과 연평도 포격에 대한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 없이 합의문 6조의 “다양한 분야에서 민간교류의 활성화”를 얻어냈다.   북한은 3대가 권좌를 세습하는 공산주의 왕조체제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구 상에 유래가 없는 전체주의 국가로, 주민들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다. 한편, 최근 주민에 대한 북한 당국의 통제력 이완 가능성이 논의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방에 배치되어 있는 북한군 병사들이 남한의 대북 확성기 방송에 설득될 만큼 북한 당국의 통제력이 취약할 것이라는 기대는 환상에 가깝다. 북한군 초병들이 우리의 확성기 방송으로 정신전력이 무너지고 급변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면, 역설적으로 우리는 북한과 심각한 협상을 할 필요 없이 김정은의 몰락을 기다리면 될 것이다.   합의문의 더욱 심각한 취약점은 3조 “남측은 비정상적인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한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모든 확성기 방송을 중단한다”는 부분이다. 북한에 의해서 발생하는 비정상적인 사태는 ‘군사적 도발’이거나 ‘대량살상무기의 개발 혹은 실험’인데 북한의 도발에 대한 우리는 대응은 확성기 방송, 다시 말해 ‘구두 경고’에 그치겠다고 우리 스스로 대응 수준의 한계를 정해 버린 것이다. 남북 간 대화와 협상의 역사를 돌이켜 볼 때 협상 결과가 북한에게 유리하게 이용될 여지가 크다는 우려를 자아내는 대목이다.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을 피하고 평화와 번영을 공동으로 추구하는 남북관계가 바람직하다는 것은 우리 정부와 국민 모두의 여망이다. 궁극적으로 한반도 평화통일이라는 목표는 대화와 타협이라는 평화적 방법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하지만 협상 과정에서 우리가 북한에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 한반도에 조성된 군사적 긴장으로 우리의 주식, 외환, 무역에 악영향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남북한의 고위급회담은 시의적절했다. 하지만 ‘비핵·개방·3000’과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목표로 설정한 북한의 비핵화와 군사적 도발에 대한 사과 및 재발 방지 약속은 달성되지 않은 상태로 결국 화해협력 정책을 답습하는 길로 들어서고 있다. 이번 고위급 접촉의 결과인 공동합의문에 분명 긍정적인 측면이 존재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권의 교체에 따라 변화되지 않는 ‘대북정책의 원칙’ 마련이다. 現 제주평화연구원 연구위원. 미국 University of North Texas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미국국제정치학회가 주관하는 International Studies Quarterly의 Referee로 활동한 바 있음. 저서로는 『2011 한국인의 평화관: 통일정책과 여론』 및 『2010 한국인의 평화관: 외교정책과 여론』 등이 있음.
  • 아시아 패러독스(Asia Paradox)와 한일 간 국가정체성
    저자
    박범준(서울대학교 석사과정)
    발간호
    2015-38
    [편집자 註] '차세대의 목소리'는 젊은 세대의 신선한 시각을 통해 평화와 안보문제를 살펴보고, 갈등해소와 평화정착을 위한 새로운 방안을 논의하는 JPI PeaceNet의 기획 시리즈입니다. '차세대의 목소리' 기획 시리즈의 발간을 계기로 평화와 협력을 위한 진지한 대화가 차세대와 기성세대 사이에서 시작되기를 기대합니다. 편집자:한인택 연구위원( ihan@jpi.or.kr )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에 관한 논의는 안보적 차원에서의 군사적 균형이나 경제협력, 통합을 통한 분쟁 억제에 관한 논의가 주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최근 동아시아에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역사문제에 대해 ‘아시아 패러독스’라는 표현이 사용되고 있는데 이는 이론적으로 관계 호조 요소로 간주되는 동아시아 각국 간 경제협력의 심화에도 불구하고, 역사인식의 차이로부터 오는 갈등을 의미한다. 물론 현실주의적 관점에서 국가 간 힘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기본적인 것이며, 경제협력을 통해 공통이익을 증진해 가는 것 또한 중요하다. 그러나 아시아 패러독스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이러한 조치들만으로는 상이한 역사인식의 충돌로 인한 불신은 계속될 것이며, 비록 이것이 심각한 군사적 분쟁으로 이어지지는 않을지라도 동아시아 국가들 간의 협력 증진은 어렵다.   많은 이들이 이러한 동아시아 정세를 바라보면서 유럽이 정치적·경제적 통합을 통해 회원국들 간의 전쟁 가능성을 희석시키고 지역평화를 이룩한 점을 언급하며, 동아시아가 추구해야 할 하나의 모델로 유럽연합의 지역통합 조치를 든다. 물론 유럽연합은 나름의 문제들을 직면하고 있으며, 유럽연합 형성 시기에 유럽 각국이 처해 있던 환경과 현재의 동아시아의 환경이 다르므로, 이를 단순히 비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하지만, 반드시 유럽연합 방식의 통합이 아닐지라도 보다 심화되고 제도화된 동아시아의 정치적·경제적 통합이 모든 동아시아 국가들의 이익에 부합하며, 지역정세 안정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는 이들이 많다. 한편, 지역통합 노력이 동아시아에서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나, 역사문제로 인해 각국 간 관계가 악화되어 협의가 어려웠다. 이렇듯 지역통합 등 다양한 이슈들은, 잘 알려져 있지만 잘 이해되고 있지는 않은 ‘역사문제’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문제의 해결은 매우 어렵다. 따라서 이를 ‘관리’하며 국가 간의 관계를 증진하려 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이는 임시방편으로, 항상 문제가 불거질 여지를 남겨놓는 것에 불과하다. ‘역사문제’는 흔히 한일이나 중일 간의 역사인식 차이로부터 생기는 문제로, 국가정체성의 충돌로 발생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관련국들의 국가정체성에 관한 고려 없이는 이 문제의 해결은커녕 제대로 된 이해조차 불가능하다. 동아시아의 국제관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국력이나 경제관계만이 아닌, 독립요소로서 ‘역사인식’이 각국, 그리고 이들의 국가정체성에 있어서 무엇이기에 이처럼 중요시되고 국가 간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국가정체성 분석에 있어 어려운 것은 ‘국가정체성’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 것인가이다. 이에 관해서는 다양한 접근법이 있지만, 이 글에서 필자는 국가정체성을 '일국이 추구하는 국가적 이상과 그 이상이 설득력 있고 논리적으로 타당하기 위한 구성요소들' 이라고 정의하겠다. 물론, 국가적 이상이라는 것은 한 사회에 다양하게 존재하며, 사회의 변화와 각 시기의 정치구도에 의해 각 이상들 간의 중요도 및 우선순위가 변할 수 있다. 또한, 국제정세 등 외부적 요인들에 따라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구성요소들 역시 변형 혹은 타협될 수도 있다. 따라서 국가정체성을 고려하기 위해서는 각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국가적 이상, 그 이상들을 추구하는 정치세력들 간의 역학구도, 그리고 국제정세에 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이 모든 것을 논하기보다는 한국과 일본의 국가정체성을 중점적으로 역사갈등과 지역통합의 가능성을 다루고자 한다. 한국에서 가장 강력하게 인식되는 국가적 이상은 ‘통일’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통일’이라는 이상은 단지 기술적으로 남한과 북한이 정치적 통일을 이루는 것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발생될 것으로 기대되는 안보상황 개선, 경제성장 기회, 아시아 대륙과의 진정한 연결, 국력증강 등의 다양한 이상을 포함한 개념이다. 통일이라는 이상을 유지하는 데는 여러 요소들이 있지만, 이 중 한일 간 역사문제와 관련되는 것은 ‘미완의 광복’으로서의 통일이다. 한국에서는 8월 15일을 광복절, 즉 일제로부터 독립을 기념하는 날로 의미를 부여하는 반면, 일본은 이 날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종전기념일로 여긴다. 뿐만 아니라, 일본 정부는 한국인들의 식민지 경험이 부정적이었다는 것을 인정한 적은 있어도, 단 한 번도 일제가 조선을 식민지화한 행위의 정당성을 부정한 적이 없다. 조선의 식민지화가 부당한 것이 아니라면, 광복절이 갖는 의미는 퇴색된다. 한국의 독립은 본래 있어야 할 정당한 ‘빛’이 복원된 것이 아니라, 단순히 강대국들 간 힘의 논리에 인해 부수적으로 생산된 ‘우연’일 뿐이게 되는 것이다. 만약 독립에 국가적 의미가 없고 단지 우연일 뿐이라면, ‘미완의 광복’은 없으며, 한국은 굳이 애써서 통일을 지향할 의미가 없어진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은 이미 한일합병 당시에 독자적인 국민국가(nation state)이기를 포기하여 정당하게 일본의 일부가 되었던 것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결국 대한민국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통일이라는 이상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광복’의 의미가 참이어야 하며, 한일합병이 부당했던 것으로 인정되어야 한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의 경우 현재 대중적으로는 헌법 9조에 기초한 “평화국가”로서의 국가정체성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지만, 아베 총리를 위시한 정치지도층의 일본의 명예를 중시하는 이상이 점차 평화국가 정체성을 개조하려 한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자랑스러운 일본’을 국가적 이상으로 인식하고 있는 현재 일본의 정치지도자들에게 있어 한일합병의 부당성을 인정한다든가 위안부 문제 등의 만행을 인정하는 것은 그들의 ‘자랑스러운 일본’을 모독 내지 부정하게 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와 같이, 현재 한일 간의 갈등은 국가정체성 충돌의 결과로 볼 수 있다. 한국에게 있어 과거의 일본제국을 부정하는 것은 현재 구축된 국가정체성을 유지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 반면, 일본에게 한국의 국가정체성을 인정하는 것은 일본이 추구하고자 하는 ‘자랑스러운 일본’이라는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으로 인식된다. 또한, 이러한 한국과 일본의 국가정체성은 상당히 폐쇄적인 성격을 보인다. 양국 모두 자국의 이상만을 추구하며, 그러한 이상 추구가 다른 국가들에게 미칠 영향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 다양한 국가들로 이루어진 동아시아 지역에 대한 이상을 찾아보기 힘든 것이다. 이는 ‘국가’는 단순히 영토로 지정된 하나의 공간이 아니라 국민(nation)의 운명공동체라는 유기적 인식이 있는 반면, 동아시아지역의 경우, 이러한 유기체들이 존재하는 무기체적 공간으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국민국가(nation state) 중심적 인식이 폐쇄적인 국가정체성의 근원이며, 나아가 역사문제, 그리고 여타 국가 간 갈등의 요인이라면 이를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한편, 이러한 인식의 대안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운명공동체로서 동아시아라는 지역을 인식하여 지역이상, 나아가 지역정체성을 형성해, 이를 각국의 국가정체성을 견제하는 요소가 될 수 있게끔 하는 것이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한·일을 포함한 동아시아 각국의 국민들이 자국의 국가정체성에 대해 건전한 의심을 품어보고, 타국의 국가정체성을 이해하는 한편, 운명공동체로서 동아시아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한 시도로, 한국의 ‘진정한 광복’ 추구와 일본의 ‘자랑스러운 일본’이라는 이상을 조화시키는 방법을 탐구해보는 것을 들 수 있다. 각국의 국가정체성에 대한 고려 없이는 지역평화와 협력을 위한 그 어떤 조치도 또 다른 충돌이 발생하기 전까지의 미봉책에 불과할 수밖에 없다.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석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