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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한국인의 평화관
    저자
    이성우(제주평화연구원)
    발간호
    2012-15
      한국인의 평화관 연구는 2010년에는 여론과 외교정책의 상관관계에 중점을 두어 연구를 진행하였고, 2011년에는 여론과 통일정책의 상관관계를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하였다. 2011 한국인의 평화관 연구에 사용된 여론조사자료는 전년과 달리 제주평화연구원 내에 데이터센터를 설립하여 2011년 6월 22일부터 6월 28일까지 1주일의 기간 동안 전국의 만 19세 이상 성인남녀를 대상으로 전화조사를 통해 자료를 수집하였다. 이 밖에 자료의 신뢰도를 보완하기 위해서 서울대학교 통일연구소가 한국갤럽에 의뢰하여 작성한 통일의식 관련 여론조사자료를 활용하였다. 통일의식 여론조사는 2007년부터 2010년까지 4년 연속 시행되었으며 2007년의 여론조사자료의 경우 표본오차는 95%의 신뢰도 수준에서 ±2.8%이내 이다.   평화관에 여론의 유형화를 시도하였는데 군사적 국제주의와 경제적 국제주의를 두 축으로 양 측면에 모두 찬성하는 국제주의(internationalist), 군사적 국제주의에는 적극적이지만 경제적 국제주의에 소극적인 강경주의(hard-liner), 반대로 경제적 국제주의에는 적극적이지만 군사적 국제주의에는 소극적인 절충주의(accommodationist), 그리고 두 가지 모두에 소극적인 고립주의(isolationist)로 분류하였다.   군사적 국제주의와 경제적 국제주의를 반영하는 지표로 군사비 지출의 증액에 대한 입장과 저개발국가에 대한 경제원조를 선택하여 분석하였다. 분석결과에 따르면 국제주의가 51%, 군사적 국제주의에 반대하고 경제적 국제주의에 찬성하는 절충주의가 2.8%, 경제적 국제주의에 반대하고 군사적 국제주의에 찬성하는 강경주의는 0%, 그리고 두 가지 측면에 모두 반대하는 고립주의는 1.4%로 나타났다. 대외정책에 대한 국내여론의 유형은 국제주의가 다수를 점하고 있고 그 다음으로 절충주의와 고립주의 순이며 군사적 국제주의를 선호하고 경제적 국제주의에 반대하는 강경주의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일한 분석틀을 대북 경제지원의 증액과 북한의 핵개발에 대한 강경한 대응이라는 두 가지 기준을 선정하여 북한에 대한 여론의 유형을 분석했다. 일반적인 국제관계에서는 국제주의적 성향이 다수를 보여 주었으나 북한에 대해서는 군사적으로 적극적인 대응에 찬성하고 경제적 협력에 반대하는 강경주의 성향이 10.9%로 나타난 반면 이와 반대되는 유형인 절충주의 성향은 1.9%로 가장 적은 분포를 보여주고 있다. 북한에 대한 국제주의적 성향은 2010년도와 비교해서 15.8%로 증가한 반면 북한에 대한 군사적 대응과 경제적 협력 모두에 반대하는 고립주의적 성향은 19.8%로 상당히 증가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결과는 북한과의 관계를 다른 외국과의 대외관계와는 다른 특수한 것으로 파악하지만 특수성의 양상은 상당히 부정적으로 표출되는 경향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는 여론 조사 직전에 발생한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의 영향을 반영하는 결과로 해석된다.   다양한 외교정책에 대한 여론의 중요도의 순서에 있어서 변화가 나타났다. 기후변화에 대한 적극적 역할 수행에 대한 높은 지지는 환경문제에 여론의 관심이 높다는 것을 반영하는 결과이다. 이러한 결과는 2010년에 83.2%의 지지에 이어 2011년에도 82.6%로 가장 높은 관심이 계속되었다. 개발도상국에 대한 원조의 확대에 대해서는 2010년 71.1%의 지지에서 2011년에는 69.8%로 약간의 감소가 있었지만 순위는 동일하게 유지되었다. 이에 반해서 평화유지군 파견과 국제기구에 대한 분담금 지원은 순위가 바뀌었다. 2010년 기준으로 평화유지군 파견에는 65.1% 그리고 국제기구 분담금지원에는 63.5%가 지지한 반면 2011년에는 국제기구 분담금 지원에 65% 그리고 평화유지군 파견에 64.6%로 오차의 한계 범위 내에서 순위에 변화가 있었지만 이 두 사안에 대한 순위의 변화가 통계적으로 의미가 있는 것으로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중요한 변화가 있는 것으로 판단되는 부분은 자원확보를 위한 적극적 외교에 있어서 2010년의 54.2%의 지지에 반해서 2011년에는 42.7%로 11%이상이 감소했다는 점이다. 자원외교 부분에서 적극적 활동에 대한 지지의 감소는 카메룬 다이아몬드 광산개발과 이라크 크루드족 지역 내 유전개발에서 성과를 이루지 못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부정적인 여론이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자원개발은 특성상 자원 탐사의 성공률이 30% 정도를 성공으로 평가하는 실정이며 결과를 확인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특성이 있지만 여론은 단기적이고 가시적인 결과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명박 정부에 들어서 광물자원확보와 관련하여 해외자원개발 관련 30여 건의 사업이 추진됐으나 2011년 하반기까지 구체적으로 확보된 자원은 없으며, 석유와 가스도 투자비용만 늘었지 이렇다 할 성과가 없는 실정으로 밝혀졌다(중앙일보 2011년 9월 19일).   북한의 핵무기 개발에 대응한 핵무기 개발이라는 정책이슈에 대한 여론의 지지는 2010년과 2011년 53.5%의 동일한 지지도를 보여주었으나 2011년에는 상대적으로 높은 순위를 나타내는 결과이다. 2010년 3월 26일 발생한 천안함 피격 사건과 연이어 2010년 11월 23일 북한군이 연평도의 민간지역을 포함해 무차별 포격을 감행한 연평도 포격 사건은 국내 여론에 북한의 군사적 모험주의의 현실을 체감케 했던 사건으로 평가된다. 이미 사건이 발생한지는 1년 이상 지났지만 북한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강화하는 계기였던 것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하는 여론조사로는 미국으로부터 전시작전권을 즉시 전환하는 문제에 대한 여론의 반응이다.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0년에는 응답자의 43.7%가 전시작전권의 즉시 전환에 찬성한 반면 2011년에는 5%이상 증가한 49.1%가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상반되는 것처럼 보이는 여론조사 결과는 북한에 대한 경제지원의 확대이다. 2010년에는 29.4%가 지지의사를 밝힌 반면 2011년에는 32.2%가 지지하는 것으로 북한에 대한 온건한 접근에 있어서 순위는 여전히 가장 낮게 나타났지만 지지는 소폭 증가했다. 이러한 결과는 북한의 군사적 도발에 대응하는 방법과 예방하는 방안을 동시에 생각하는 결과로 평가된다. 다시 말해서 북한의 군사적 도발을 예방하는 방법으로 북한이 필요로 하는 경제적 지원을 제공하는 방안을 선호하는 여론이 증가하는 한편 북한이 군사적 도발을 하는 경우 이에 대한 대응수단의 확보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반영된 결과라 평가된다.  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現 제주평화연구원 연구실장. University of North Texas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 귀국 후, 단국대학교 분쟁해결연구센터에서 연구위원으로 활동하며 한국의 공공분쟁 사례연구를 주제로 대한민국 학술진흥재단 중점연구소 연구과제를 수행하였음. 미국 국제정치학회가 주관하는 International Studies Quarterly의 Referee로 활동한 바 있으며, 저서로는『2011 한국인의 평화관: 통일정책과 여론』(2011) 『2010 한국인의 평화관: 외교정책과 여론』(2010) 및 『세계평화지수 연구』(공저, 2009) 등이 있음.
  • Six-plus-One Party Talks?The EU and the Denuclearization of North Korea
    저자
    Philip WORRE(ISIS Europe), HAN In-taek(Jeju Peace Institute)
    발간호
    2012-14
      The Six Party Talks are currently stalled with no clear signs of when they may resume in addition, critics argue that the talks have achieved little in terms of denuclearizing North Korea. Such criticism has valid points since the talks did not prevent North Korea from conducting nuclear tests or launching long-range missiles. Still, the Six Party Talks are the only vehicle currently available to resolve the North Korean nuclear crisis through diplomacy. So, while not immediately delivering results, interest in and momentum for the Six Party Talks are likely to continue.   The European has recently demonstrated a keen interest in deepening its involvement in East Asia. The EU participates in multilateral sanctions against North Korea however, it is currently not a member of the Six Party Talks and there is no compelling reason why the EU should not be a party to the talks to denuclearize North Korea. Observer status in the Six Party Talks will allow the EU to be an objective, helpful, and acceptable broker active in avoiding the difficulties and frustrations encountered.   This would not be the first time the EU participated in regional efforts to denuclearize North Korea. The EU was a board member of the now-defunct Korean Peninsula Energy Development Organization (KEDO) in addition, it has engaged in regular political dialogue with the DPRK since 2001 when it established formal diplomatic ties. A majority of EU Member States have diplomatic relations with the DPRK.   The EU is a political and economic that has values shared by member states with the common goal of achieving a lasting peace. As such, in the realm of security and defense, the EU has developed expertise in promoting democratic processes, reforming the security sector, and developing inclusive solutions to long-standing problems.   The EU has a long history of promoting diplomatic efforts to solve major issues its striving to promote negotiation and its reputation for “soft power” would make the EU an acceptable honest broker for the Six Party Talks. By joining the talks as an observer, the EU would provide an additional voice that may be a negotiation buffer between the other six parties.   France, Germany, and the United Kingdom are currently involved in the “5+1” negotiations with Iran (also sometimes referred to as the “E3+3”), some even adopting “hawkish” attitudes. However, the EU joining the negotiations with the DPRK would not mirror that arrangement, as other EU Member States also have a history of involvement in DPRK-related negotiations. Sweden, for example, currently has five representatives stationed at Panmunjom (along the DMZ) as members of the Neutral Nations Supervisory Commission (NNSC) Poland also sometimes attends NNSC meetings, through the Republic of Korea.   The current situation in East Asia presents unique challenges for the EU. The ongoing China US struggle for regional hegemony is one such example. The complexity of the relationships between the involved parties and the repercussions on the North Korea debate may make it difficult for the EU to maintain a strong level of credibility in negotiations and the region in general. Furthermore, the position of some EU member states regarding the “Five Plus One” talks with Iran may either prevent proper negotiations with the DPRK or highlight possible contradictions in stances.   The history of the EU in providing humanitarian and development aid to the DPRK (over 366 million euros since 1995), its know-how in developing multilateralism, its expertise in “soft power” (compared to NATO’s more “traditional power” negotiation tool) and the absence of an EU military force in East Asia provide a good case for the EU to join the Talks as an observer. In a deadlocked situation, where negotiations are difficult because of the deeply entrenched political positions of different parties, such an additional actor would be far from redundant and could facilitate new discussions.   Given its status as an impartial outsider, the European can play a uniquely constructive role in the multilateral talks for denuclearizing North Korea that no existing party can play. The “Six-plus-One” Talks is a proposition worth considering.  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 Philip WORRE is currently Executive Director of ISIS Europe. He previously worked for the Assembly of Western European and the Luxembourg Ministry of Foreign Affairs. His areas of expertise are European security and defence policy as well as disarmament and non-proliferation. Mr. Worre obtained a B.A. in Politics, Economics and Philosophy from the University of York, UK, and an M.A. in Diplomacy and International Relations from the Whitehead School of Diplomacy and International Relations at Seton Hall University, USA. * Intaek HAN is Associate Research Fellow at the Jeju Peace Institute. He also serves as Policy Advisor to the Ministry of Foreign Affairs and Trade. Originally trained as an international political economy specialist, Dr. Han has conducted research on nuclear strategy and public diplomacy. Dr. Han earned his Ph.D. in political science from the 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 and his M.A. in political science and B.A. in economics from Seoul National University
  • The Eurozone Crisis and Challenges to East Asia’s Growth and Integration
    저자
    LEE Jong-Wha(Office of the President, Republic of Korea)
    발간호
    2012-24
      The lingering problems of fiscal and financial weaknesses are devastating the Eurozone economies. Countries in the Euro region must take more decisive and comprehensive actions to address financial instability, weak growth and persistently high unemployment.   The Eurozone countries have sufficient resources and capacities to solve their own problems and to restore confidence and growth. The priority must be placed on adoption and implementation of growth-enhancing policies, structural reform and financial stability measures, while promoting fiscal responsibility.   Weak economies in southern Europe must implement structural reforms including financial restructuring and labor market reform. The timing and speed of fiscal consolidation is important. A country-specific, gradual fiscal adjustment in the short-term with a credible mid-term debt reduction plan is preferred. To facilitate intra-Euro area adjustment, reforms to strengthen competitiveness in deficit countries can go together with promotion of demand and growth in surplus countries.     An immediate resolution of the Eurozone crisis is unlikely due to continuing economic deterioration and institutional and structural limitations in the Euro area. Europe will likely continue to strive to muddle through existing risks. Political leaders know that the costs of breaking the Eurozone apart are very high and also maintaining the currency is important to Europe not only for economic but political reasons. The Eurozone will continue its efforts to move towards a more integrated financial and fiscal architecture for a well-functioning monetary union. In the long-term, this crisis can be an opportunity to strengthen European integration.  With deteriorating growth prospects in the Euro area, the world economy encounters significant uncertainties and downside risks. East Asian countries should be proud of the resilience of their economies. But, they cannot be complacent. The global financial crisis exposed weaknesses in emerging economies through financial and trade linkages. East Asian emerging economies still depend heavily on markets in North America and Europe, remaining vulnerable to external shocks.  The financial deleveraging and stagnation in the real sector of the Euro area are taking a toll on the emerging and developing economies in East Asia through negative spillovers from trade and financial transmission channels. China’s GDP growth rate in the second quarter of 2012 averaged 7.6%, reflecting a significant slowdown. The growth slowdown in China incurs significant repercussions on East Asian economies, given a close link through production and trade networks.   In the face of risks and uncertainties, East Asian economies must pursue the right policies to improve resilience and sustain growth. They should use a judicious mix of policies that improve financial system resilience, promote effective macroeconomic management, and continue reforms to rebalance sources of growth. With preemptive policies and improved capacity, East Asian countries can minimize the likelihood and adverse effects of crises.   Regional and global cooperation must be enhanced. At a time of great interdependence, the global community can benefit tremendously from close cooperation. Greater global integration requires closer policy cooperation at the global level, including those at the G20 and the IMF, to respond more effectively to shocks and crises in global markets.   Economic integration and cooperation within East Asia have deepened for the last 30 years. East Asia’s strong growth has been associated with increased trade and production linkages with regional markets. Intra-regional trade within East Asia now accounts for more than half of its total trade.     On the financial side, the degree of integration of financial markets of East Asian economies also increased substantially. Yet, the extent of regional financial integration remains limited, falling behind that of integration with global financial markets as well as that of real-side integration with regional trading partners.    Monetary cooperation in Asia remains weak as well. Formal regional institutions are underdeveloped in the region, especially when compared to those of Europe. A key regional initiative is the ASEAN plus three’s multilateralized reserve pool of USD 240 billion, which can provide short-term liquidity to members when needed.   Moving towards a pegged exchange rate system in East Asia is likely to require a lengthy period of preparation and negotiation for necessary institutional arrangements in the region. A currency in East Asia is quite unlikely in the immediate future. East Asia does not appear to have very favorable economic and political conditions for a currency union, especially when compared with the Eurozone.   But, the prospect for an East Asian currency will hinge on future developments of economic and political conditions, rather than current environments. However it develops, China?and the renminbi?will play a major role in any new East Asian currency arrangement.   Fortunately East Asia can learn from Europe. Europe’s integration process over half a century and the current crisis suggest that preconditions and institutional frameworks are important for a successful integration.   Korea will continue our contributions to promoting regional and international cooperation by actively participating in various regional, trans-regional and global institutions including the Korea-China-Japan summit, ASEAN+3, ASEM and the G20. The success of the G20 Seoul Summit implies that an emerging economy like Korea can play a global role as a rule-maker and bridge-builder in a new global governance system.  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Dr. LEE Jong-Wha is Senior Advisor to the President for International Economy and G-20 Sherpa in the Republic of Korea. He is also professor in the economics department of Korea University and currently on leave. He worked as Economist at the International Monetary Fund and taught at Harvard University and Australian National University. He has published numerous books and reviewed journal articles in English and Korean, especially on topics relating to human capital, growth, financial crisis, and economic integration. He obtained his Ph.D. and Master’s degree in Economics from Harvard University, and his Master’s and Bachelor degrees in Economics from Korea University in Seoul.
  • 중국의 민족주의, 과연 실재하는가?
    저자
    Neil J. DIAMANT(Dickinson College)
    발간호
    2012-23
      조어도를 둘러싸고, 중국어선 선장이 일본 해안경비대에 체포되어 터진 분규는 오랫동안 사용되어 온 각본에 따라 진행되었다. 중국에서는 국제적 사건들이 예컨대 일본의 교과서 편찬이나 중국대사관의 폭격, 또는 프랑스에서의 친티벳 시위나 축구경기를 둘러싼 논란은 빠르게 항의시위로 이어지며, 이들은 곧 ‘민족주의적’으로 규정된다.   국제 언론은 구호를 외치고 깃발을 흔들면서 감히 중국을 공격한 자들에게 불매와 복수를 다짐하는 격노한 시민들에 대하여 꼬박꼬박 보도한다. (2010년 9월 19일자 뉴욕타임즈 기사는 국기문신을 하고 가슴을 드러낸 호전적인 남자 사진을 게재하고 있다.) 정부 대변인들은 전 세계에 ‘중국인민의 감정’이 상처를 입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약 일주일 정도 지나면 시위자들은 사라지고, 이슬람 탁발수도승의 승무(whirling dervish)처럼 솟구치던 격노함을 초래했던 원인은 가벼운 미풍으로 바뀐다. 중국 ‘민족주의자’의 엄포에도 불구하고, 친티벳 시위 이후에 프랑스 제품과 상점은 불매되지 않았으며, 일제 자동차와 전자 제품은 여전히 선망되며, 미국의 정책과 행동에 대한 불만 때문에 미국 대학에 대한 지원이 줄지는 않았다. 이 시대 중국의 모습을 보면, 경제적 사욕이 당대의 모든 ‘이념’을 이긴다는 데에 도박사가 돈을 걸면 절대로 잃지 않을 것 같다.   필자가 이런 문제들을 제기한 이유는, 중국 내의 정서와 이념을?그것이 민족주의이건 마르크스주의이건?어떻게 경험적으로 평가해야 하는가라는 보다 큰 문제에 대하여 논의하기 위해서이다. 개혁기에는 ‘민족주의’가 중국의 지배적인 이념으로서 마르크시즘-레닌주의-모택동사상을 대체했다는 관념이 널리 수용되어 있다는 점을 볼 때, 지금이 바로 이에 관해 생각해볼 특히 적절한 때라고 할 것이다.     무엇을 증거로 보아야 하는가?   정부가 “애국 교육”을 촉진시켜온 것은 사실이지만, 우연치 않게 1989년 정당성 위기 이후에 시작된 이 캠페인이 효과가 있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달리 말하면 부패와 교육제도, 만연한 물질주의에 대하여 매우 냉소적인 사람들이 애국 교육을 통해서 그들의 불신을 유보하고 “애국자”가 된다는 것이 분명하지 않다. 그렇다면 현란한 길거리 시위를 벌이고 구호를 외치고, 웹에 감점을 분출하거나 해외 웹사이트를 해킹하던 그 모든 ‘민족주의자’들은 뭐란 말인가? 그들은 전체적으로는 중국인구의 극히 일부이며, 따라서 중국국민을 대표하지 않는다. 미국의 ‘티 파티’ 운동이 극적인 것을 보여주는 데는 특출하지만, ‘미국인들’이 정부에 대한 ‘티 파티’ 운동의 정서를 공유한다고 결론을 내릴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필자는 중국이건 다른 나라이건 애국주의에 대한 보다 정확한 척도로서 장기적 행태와 노력을 분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제안을 하고 싶다. 중국인들이 경제적 민족주의자인가? 만약 ‘X’국가?미국, 일본, 프랑스 중 선택하라?에 대한 불매 요구 및 분노의 성명을 척도로 본다면 그렇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희생을 요하는 불매운동의 지속을 척도로 본다면 꼭 그렇지는 않다. 중국에서 만들어졌다는 이유로 중국 소비자들이 “중국제” 상품을 선호하며 중국의 근로자들을 지지한다는 증거는 없다.   이 점은 과거나 현재의 군사적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한국전쟁동안 중국정부는 전쟁에 대한 지원을 동원하기 위하여 ‘항미원조’라는 선전 캠페인을 벌였다. 관영 언론은 당연히 항미원조 지지시위, 군대를 위해 총알을 구입할 돈을 기부하는 시민 등과 같이, ‘고양된 민족주의’의 증거를 제시했다. 서방의 많은 분석가들이 중국인들이 전쟁을 지원했다는 결론을 내렸으며, 따라서 전쟁이 높은 대가와 교착상태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정당성을 강화하였다고 분석하였다.   하지만 학생, 공무원, 언론처럼 쉽게 동원 가능한 인구로부터 다른 집단으로 시선을 돌리면 어떻게 될까? 신문이나 보도영상과는 달리 기록보관소의 자료들을 보면, 상하이의 많은 일반 시민들은 한국전쟁에 반대하고 전쟁의 목표를 혼동했으며 미국의 높은 생활수준에 감탄하였다. 또한 이들 자료들에 의하면, 많은 사람들이 기부를 안 할 때 따를 보복의 두려움 때문에 전쟁에 돈을 기부했으며, 농민들은 종종 강제징집 되었고 모병장교들은 거짓말로 병사를 모집했다. 지주들과 기타 “계급의 적”들이 중국공산당을 위한 전쟁의 최전선에 보내졌다. 병사들이 전쟁에서 돌아왔을 때, 그들의 고용주나 동료 시민으로부터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했다. 정부의 선전에 가장 노출이 많이 되었던 도시에 거주하는 고용주나 동료시민 들조차도 전쟁에서 돌아온 병사들을 홀대하였다.   똑같은 슬픈 이야기가 1979년 베트남과의 짧은 전쟁 이후에도 반복되었다. 베트남에 대한 언론의 야단법석과 격노의 표출이 있었지만, 기록보관소의 문서들을 보면 참전용사들이 더 나은 일자리를 찾을 때 애국자적 신분의 혜택을 받는 데에는 어려움을 겪었다. 군인의 부인들도 역시 그들의 신분을 쉽게 활용할 수 없었다. 도시 청년들이 군복을 입고 전국을 활보했던 문화혁명 시기에, 상하이 대법원의 조사를 보면 진짜 병사의 부인들이 강간을 당하고 이를 복수하기 위해 탈영한 병사들에 관한 사건이 수십 건 있다. 사실 중국 정치에 있어서 기록보관소 자료의 검증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는 일반적인 통념은 거의 없다.   민족주의는 서구의 분석가들이 사용하기에 편리한 개념이다. 민족주의는 서구인들이 자신의 역사를 이해하는 방식과 잘 ‘부합’하며, 다양한 시위를 잘 설명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민족주의 및 마르크시즘, 심지어는 일본에 대한 분노도 그것이 수백만의 농민들을 움직여서 중국공산당이 권력을 장악하는 것을 지원하게 만들었다는 기록상의 증거는 거의 없다. 민족주의는 문화혁명의 유혈을 막지 못했으며, 전시나 평화의 시기에 나라에 봉사한 사람들을 더 잘 대접하는 데에 기여하지도 않았다. 당분간, 그리고 더 많은 기록물이 공개될 때까지는, 우리는 얼마나 많은 작금의 ‘민족주의자’ 또는 ‘애국적 해커’들이 정부에 의해 고용되었는지, 혹은 당의 지휘를 받고 있는지를 알 수 없다.   당분간 장기적 관점을 택하여 질문을 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민족주의적 언설과 온라인 채팅이 유의미하고 장기적인 행동을 초래하는가? 그리고 그것들이 정말 진실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가? 실제 행위에 기반을 둔 증거가 기자들에게 들려준 연설과 논평에 기반을 둔 증거와 맞아 떨어지는가? 우리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모든 것에 있어서 그러하듯이, 입증을 하려면 자료가 있어야 한다. * 이 글의 원본 (“China’s Nationalism?”)은 East Asia Forum에 게재되었던 것으로, East Asia Forum과 제주평화연구원의 협약 하에 국문으로 번역하여 배포합니다.  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現 미국 펜실베니아 주 디킨슨 대학 아시아 법과 사회 전공 부교수.
  • APEC Summit in Vladivostok and Korea’s Opportunity
    저자
    KO Sang-Tu(Yonsei University)
    발간호
    2012-22
      Vladivostok means “Ruler of the East.” The city was built in 1856 as an outpost for exploiting Far Eastern Russia. In 1903, Vladivostok was connected with Moscow by a railway of 9,288 km. As a military port, where the Pacific Fleet is stationed, it was closed to foreigners during the Soviet era. It is now not only open but also linking Asia and Europe by both the trans-Siberian railway and the Arctic seaway, which is expected to be created soon due to global warming.  The opening of Vladivostok means opening of the Russian Far East to the Asia Pacific. The city with its population of 600,000 people has always been strategically important but economically underdeveloped. To transform the city from a military center to an economic one, the Russian government has invested 20 billion dollars preparing the APEC summit meeting.  The whole infrastructure has been renovated with new airport terminal, highways and buildings. A suspension bridge as high as the Eiffel Tower has been constructed to convert Rusky Island, a desert island offshore Vladivostok, into a world-class venue. There has been criticism among Moscow elites, however, that it was a waste to spend such a huge amount of money in the distant and sparsely populated city. But Russian President Putin willingly met the expenses to return to the Asia Pacific. Russia spent more money here than did most countries for their Olympic Games.  APEC was founded in 1989 and now has 21 member states, which account for almost half of world population, economic production and global trade. It may fairly be said that we are really living in the Pacific Era. Russia, which joined the forum in 1998, seeks to take advantage of the summit meeting as host country.  Russia’s national goal is modernization. Its modernization policy aims to upgrade all the economic and regional sectors in Russia, with the profits coming from the energy industry. But the Far Eastern region has remained beyond the benefits of the modernization policy. It has been the concern of the Moscow government to develop the Far East economically and provide a high level of living conditions. The emigration of the local population to the European part of the country has become not only an economic concern but also a security one, because the Russian Far East faces its densely populated neighbor China.  Russia seeks to construct an international environment advantageous for the economic development of the Far East. The motto of Vladivostok Summit meeting is “Integration for Development and Innovation for Prosperity.” The foremost interest, which the Russian government is pursuing, is economic cooperation with the Asia Pacific region. Especially because Russian energy export to Europe has drastically decreased since the economic crisis in Europe, Russia has enhanced interests in this region.  Russia stresses the liberalization of trade and investment in the Asia Pacific. This policy is closely related with the modernization project of its transportation system, which Russia envisions. Russia is in the best position to profit from the transportation of raw material and products for the rising Asia Pacific economy. For this purpose Russia promotes their vision of pipeline, railway, seaway projects. However, there are other transcontinental routes suggested by China and the ASEAN, so Russia is looking for good partners, who may expect the most benefits from a Russian network system. Russia’s second consideration is to enhance its influence and security interests in the Asia Pacific. Russia is bound to pursue multi-directional foreign policy due to its geographical location. It is located across the center of the Eurasian continent and spans its territory over both Europe and Asia. A Western choice or an Eastern choice is not the Russian concern, but because the eastern vector of its foreign policy has been relatively weak, Russia is starting to reinforce it. The fact is that 70% of Russian territory is located in Asia, so the Asia Pacific is economically and geopolitically significant for Russia.  Especially, Russia is losing its strategic influence in Europe due to the expansion of the EU and NATO. Therefore it tries to strengthen its strategic position in the Asia Pacific. Russia has also found new security interests in this region, because the US is returning to deter the emerging China. The United States is ready to withdraw from the war against terrorism in the Middle East. While the struggle between superpowers of the previous century took place in Eastern Europe, it is likely to revive in East Asia this century.  The changing regional economic order poses both challenge and opportunity to Korea. The liberalization of trade in this region is beneficial to Korea, which is a strongly export-oriented country. In the APEC summits even Russia, such a closed economy, advocates free trade. Countries in the Asia Pacific have more than fifty free trade agreements so far. The average tariff rate of the APEC member countries is now less than 6%. It was 17% in 1989 when it was founded, and they seek a free trade area today in this region.  There are, however, obstacles in the way to a free trade area. The United States promoted Trans-Pacific Partnership (TPP) at the last APEC Summit held in Hawaii. Eleven states participated in the negotiation of the agreement, but Russia and China oppose it because they are not included. Korea has to decide whether to join the TPP or suggest an alternative.  Another opportunity for Korea is a trans-continental transport network. Russia is modernizing or opening its network of pipeline, railway and seaway linking Europe and the Russian Far East. Korea can maximize its benefit simply by connecting with the Russian transport network. This means that Russia would be able to be used as bridge to Europe for Korean exports.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Dr. KO, Sangtu, Professor of Area Studies at Yonsei Univ. Graduate School, is Chair of Research Committee 42, IPSA (International Political Science Association) and President of Korean Association of Slavic Studies. He received his Ph.D in Political Science from Free University of Berlin, Germany in 1996. He is the author of numerous articles and books on Russian Studies.
  • TSR-TKR 연계사업의 전망과 한러협력의 전망
    저자
    이성우(제주평화연구원)
    발간호
    2012-21
      탈냉전의 전환점이던 1990년, 한국-러시아 국교정상화 이후 10년이 지난 2000년 남북한 정상회담을 통해 6?15 남북공동선언이 이루어졌다. 그 후 남북철도 연결사업이 시작되어 경의선이 연결되는 성과를 이루어내자 이를 기초로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의 연계를 구체화하는 논의가 시작되었다. 한국의 입장에서 남북철도의 연결을 통해 정치적인 섬으로 분리되어 있는 한계를 극복하고 TSR과의 연결은 정치 및 경제적 측면은 물론 문화적 측면에서 큰 의의를 가지는 것으로 판단하고 적극적으로 추진해왔다.   한반도의 남북한을 잇는 TKR을 확대하여 TSR과 연결하는 전략은 한반도에서 유럽까지 육로를 통한 경쟁력 있는 물류체계의 확보라는 점과 해상물류체계를 다변화하여 육상수송에 의존할 수 있다는 물류의 다변화 차원에서 시작되었다. 경제적 합리성이 출발점일 수는 있지만 TKR과 TSR을 연계하는 사업은 정치적인 선결과제가 있다. 즉 남북관계의 개선에 따라 시베리아횡단철도를 통한 한?러 경제협력은 북한을 포함하는 남?북?러 삼각협력의 틀 속에서 접근이 이루어져야 한다.   역사적으로 냉전기였던 1970~80년대는 TSR의 가교기로서 일본에서 유럽과 중동으로 수출하는 환승화물의 처리가 대부분이었다. 당시 소련 당국은 안전한 외화 수입을 확보하기 위해서 환승요금을 낮게 책정하였다. 낮은 비용은 강력한 유인요인이었지만 정시도착에는 문제가 있었다. 소련이 붕괴하고 체제 전환기를 맞이했던 1990년대는 TSR의 혼란기였다. 소련이 붕괴하자 철도를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주체가 사라졌고 이에 따라 서비스는 급격하게 악화되었으며 이는 경제적 측면에서 경쟁력도 상실하는 결과를 낳았다. 혼란기를 거치면서 러시아 경제가 서서히 회복단계에 들어선 2000년 이후로는 철도교통 서비스도 개선되면서 TSR의 부흥기를 맞게 되었다. 한국과 중국에서 러시아로 직접 운송되거나 핀란드로 가는 환승 수출물량의 증가가 부흥을 주도하는 주요원인이었다.   부산에서 핀란드의 하미나까지 행상운송의 경우 35일이 소요되는 반면 TSR을 이용할 경우 18~22일이 걸려 해상운송에 비해 약 13~17일이 단축되어 경쟁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0년대 들어서 물류량이 급격히 증가했고 2007년에는 26%의 성장세를 보여주었지만 전체적인 전망은 긍정적이지 않다. 전체 화물에서 30%가 공차로 운행되고, 극동방향으로 운행되는 열차의 경우 75%가 공차로 운행된다는 점에서 러시아 경제의 수출입 구조가 심각한 불균형을 나타내고 있다. 2000년 이후 TSR이 활성화되면서 러시아로 향하는 화물은 급격하게 증가한 반면 극동으로 운반되는 화물의 총량은 사실상 변화가 없는 상태로 지속되었다. 2007년을 기준으로 WB와 EB의 차이가 88:12로 급격하게 확대되어 나타났다.   이러한 제약을 극복하고 TSR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몇 가지 선결조건이 있다. 첫째, 러시아를 포함하는 CIS국가의 경제활성화를 통한 공차운행의 감소이다. 러시아는 1990년부터 1998년까지 1997년의 0.9% 성장률을 제외하면 마이너스 성장율을 기록했다. 이 기간 동안 TSR을 이용하는 물류총량이 지속적으로 감소했지만 2000년에 들어서면서 경제가 활성화되어 연 10%의 성장을 달성한 이래 꾸준히 연 5~7%대의 성장을 기록하면서 물류도 증가하는 양상을 보여준다.   둘째, 해상운송비가 적정 수준을 유지하여 TSR의 가격 경쟁력이 유지되어야 한다. 중국의 경제가 활성화되면서 동아시아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물류가 급증하게 되자 2000년부터 해상운송비용이 급격히 상승했다. 해상운송을 위한 선박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게 되었고 부두에서 물류를 처리할 수 있는 용량이 포화상태가 되자 한국과 중국의 수출업체와 운송업체는 대안으로 TSR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셋째, 한국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러시아로 진출하는 방안이 TSR의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 한국의 가전업체가 러시아와 유럽시장 확대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한국의 운송업체들도 적극적으로 대안을 모색하게 되었다.   넷째, 극동 러시아의 물류기지인 보스토치니항의 물류처리 능력의 한계를 해결해야 한다. 물류처리를 위한 기본적 인프라의 부족은 시간지연으로 이어져 경쟁력을 저하시키게 되었다. 러시아는 체제 전환 이후 경제발전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해왔다. TSR을 통한 물류사업의 활성화도 그 중 하나일 것이다. 러시아가 원하는 물류산업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물류의 증가에 상응하는 인프라의 확보가 우선되어야 한다.   이번 블라디보스톡 APEC 정상회담을 맞이하여 한?러 협력의 활성화 일환으로 TSR 협력을 추진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한국의 입장에서는 TSR을 통한 한?러 협력에 있어서 국제정치적 고려를 할 필요가 있다. TSR-TKR 연결은 한반도의 새로운 운송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아시아와 유럽의 철도를 연결하는 새로운 철의 실크로드에 한국이 접근하는 기회를 만드는 것이다. 한반도를 관통하여 연결되는 TSR-TKR 연결은 단순히 해상 항로를 대신하는 육상 운송로의 확보가 아니라 한국 경제의 돌파구가 되는 러시아를 포함한 CIS국가들과의 경제협력의 활성화를 추구하는 통로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남북한의 분단 상황으로 지리적 연계성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인 섬으로 남아있는 대한민국이 TSR-TKR의 연결을 통해 동아시아 또는 극동이라는 지역적 한계성을 극복하고 경제적 협력의 가능성을 확대하는 계기로 활용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선 북한을 협력의 파트너로 끌어 들여야 한다. 동해선과 경의선을 활용하여 남북한이 상생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TSR의 활성화를 통해 TKR의 연계사업에 북한을 자연스럽게 세계경제체제로 편입시키는 방안은 북한이 자력으로 경제발전을 추진할 수 있는 정치 및 경제적 인프라가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TSR-TKR 연결은 남북한의 호혜적 경제협력을 추진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북한은 김정일 사망으로 김정은 후계체제가 정치적으로 안정을 추구하려는 과정에서 경제적인 분야에서 자유화가 진행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 만큼 북한을 TSR-TKR 연결사업에 참여시킬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을 TSR을 통한 국제협력체제에 끌어들이는 것은 TSR의 경제성을 제고하면서, 동시에 북한의 경제적 성장까지 달성할 수 있는 참여자가 모두 상대적 이익이 아니라 절대적 이익을 확대할 수 있는 비제로섬의 협력이다. _____* 본 원고는 한국슬라브학회와 러시아 극동연방대학이 공동주최하고 동아일보 화정재단이 후원하는 블라디보스톡 APEC기념 국제학술회의에 참석하여 발표한 내용을 요약하였습니다.  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現 제주평화연구원 연구실장. University of North Texas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 귀국 후, 단국대학교 분쟁해결연구센터에서 연구위원으로 활동하며 한국의 공공분쟁 사례연구를 주제로 대한민국 학술진흥재단 중점연구소 연구과제를 수행하였음. 미국 국제정치학회가 주관하는 International Studies Quarterly의 Referee로 활동한 바 있으며, 저서로는『2011 한국인의 평화관: 통일정책과 여론』(2011) 『2010 한국인의 평화관: 외교정책과 여론』(2010) 및 『세계평화지수 연구』(공저, 2009) 등이 있음. 
  • 남중국해 분쟁과 ASEAN
    저자
    Dr. Don EMMERSON(Stanford University)
    발간호
    2012-20
      지난 45년간의 정기적 회합에서 ASEAN의 외교장관들은 그들 간의 협의내용을 요약하는 성명서를 채택하는 데에 한번도 실패한 적이 없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랬었다.    지난 달 프놈펜에서 끝난 ASEAN 외교장관 회의에서는 침묵만이 요란했다. 그 주된 이유는 외교장관들이 남중국해에 위치한 스카버러 암초(Scarborough Shoal)를 그들의 선언문에서 언급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합의도출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이곳은 지난 4월에 그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는 중국과 필리핀 사이에 팽팽한 대치가 있었던 곳이다. 필리핀은 선언문에서 이를 언급하기를 원했고, 캄보디아는 이를 거부하였다. 둘 다 양보하지 않았고, “ASEAN 방식”의 합의는 실패하였다.    외교장관들 간의 비공개로 진행된 회의에서 구체적으로 무엇이 논의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고, 그에 따른 반향도 무엇인지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지금의 결과가 중국의 입장에서 보면 장기적으로는 취약할 수 있지만 현 시점에서는 승리라고 추정하는 것이 속단이 아닐 것이다.     캄보디아와 중국    회담결렬의 근본원인은, 남중국해 거의 전역에 대해 배타적 주권적 권리를 갖고자 하는 중국과 중국의 노력에 깊이 관련되어 있다. 중국의 권리주장은 동남아시아의 해양 심장부에 깊게 들어간 기묘한 남해 구단선(九段線: nine-dash line)에 나타나 있다. 이 선은 이 지역에 대한 브루나이, 말레이시아, 필리핀, 베트남 4개국의 중첩된 주권을 부인하고 있다. 이들 4개국은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라오스, 미얀마, 싱가포르, 태국과 함께 ASEAN을 구성하고 있다.    캄보디아는 2012년 ASEAN 의장국으로서 프놈펜에서 외교장관회의를 주최했으며, 최종 성명이 나왔다면 이를 낭독했을 것이다. 캄보디아 훈센 총리는 중국의 남중국해 주장을 받아들인 적이 결코 없었지만, 다른 어느 ASEAN 지도자들보다도 중국의 입장과 요구에 민감하다. 스카버러 암초를 언급한 선언문의 낭독을 거부함으로써, 훈센 총리는 중국의 입장과 합치되는 태도를 취했다. 베이징의 관점에서 보면 ASEAN은 분쟁의 해결을 시도할 권리가 없으며, 이 분쟁은 중국과 당사국 4개국 사이에서 양자적으로만 해결될 수 있을 뿐이다.    중국은 캄보디아의 최대 투자국이다. 베이징은 ASEAN 장관회담이 열린 프놈펜의 평화궁전의 비용을 댄 것을 비롯해서 세간의 관심을 끄는 원조 프로젝트에 돈을 아끼지 않고 있다. 훈센 총리가 ASEAN 의장국의 지위를 이용하여 남중국해 문제를 회담의제에서 제외시키려고 한 것에 대하여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어떤 관찰자라도 중국이 실질적으로 캄보디아 정부를 고용하여 중국이 시키는 대로 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베이징과 프놈펜에게 공평하자면, 내분에 대한 책임이 필리핀에게 어느 정도 있는지를 알 수 없고, 앞으로도 알기 힘들지는 모른다. 필리핀은 성명에서 스카버러 암초에 대한 언급을 요구하였다. 왜 스카버러 암초가 간접적으로라도 언급되지 못했을까? 훈센 총리가 단지 화가 나서 타협대신에 성명을 무산시켰을까? 보다 중요한 불확실성은, 프놈펜에서의 균열이 남중국해에서 구속력 있는 행동수칙을 후원할 ASEAN의 능력을 얼마나 심각하게 훼손시켰을까라는 점이다.     남중국해 행동수칙    2002년에 중국과 ASEAN 국가들은 구속력이 없는 “남중국해 당사국 행동선언”에 서명하였다. 일부 ASEAN 지도자들은 선언문의 10주년을 기념하여, 그들 사이에 구속력 있는 행동수칙을 만들어 프놈펜 회의에서 초안을 발표하기를 원했다. 좋은 소식은 그러한 행동수칙의 초안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잘 다듬어진 문서는 분명히 아니다. 하지만 ASEAN의 집단적 판단으로 최종 문서가 지적해야 할 내용들을 분쟁해결 조항을 포함하여 나열하고 있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ASEAN이 통상적인 생각들을 뛰어넘으려는 의지나 능력이 있을까 의심했던 분석가들을 기쁘게 할 것이다.    강제집행을 가능하게 하는 행동수칙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니라 국가들이 2002년 문서의 희망적 조항들을 반복적으로 위반하면서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ASEAN이 프놈펜에서 중국에게 검토할 행동수칙의 초안을 주었다는 점에 조심스럽게 고무될 수도 있다.    만약 외교장관들의 성과를 언급하는 성명이 있었다면, 행동수칙 초안을 준비하는 데에 성공한 점을 언급했을 것이다. 이렇게 인정되지 않는다면, 초안은 잊혀지게 될 것이다. 외교장관 성명의 취소는 ASEAN이 공개적으로 그리고 명명백백하게 그 초안을 ASEAN의 공식적인 협상의 기반으로 확인하는 것을 막았다.    중국이 정말로 수칙에 의하여 구속되기를 피하려 한다면, 프놈펜에서 발생한 일은 중국의 특징을 가진 divide and rule 전략, 즉 ASEAN을 ‘분할’하여 해양을 ‘통치’하는 전략을 떠올린다. 그런데 베이징에게 공평하자면, 사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ASEAN 내부의 분열을 중국이 처음으로 만들어낸 것은 아니라는 점을 언급해야만 한다. 분쟁이 일어나는 4개국에게 자신들의 주장을 타협하도록 설득하거나 또는 그 중 일부의 도발적 행동들을 중단시키지 못한 ASEAN의 무능력에는 중국의 책임이 거의 없다. 4개국이 애초에 자신들의 갈등을 해결하였다면, ASEAN은 중국과의 협상에서 단합된 입장을 보여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행동수칙 초안에 대한 ASEAN과 중국의 협의가 9월에 예정되어 있다. 초안이 ASEAN의 작품이므로, 이 회담은 성격상 다국적일 것이다. 중국이 참여한다면, 중국은 종래의 양자주의적 선호를 내버려야 할 것이다. ASEAN의 계획은 올 11월에 있을 ASEAN이 관련된 정상회담에서 중국이 최종 문서에 서명할 때 ASEAN 국가들도 동참하는 것이다.    훈센 총리가 변덕스러운지라 상황은 다시 악화될 수도 있다. 그러나 중국은 ASEAN이 공개적으로 당혹스러워 하는 일에 특히 동아시아 정상회담에 모일 외국 지도자들 앞에서 다시 중국이 연루되는 것을 주저할 것이다. 그보다는, 지금부터 동아시아 정상회담까지의 기간에 중국은 초안의 완성을 연기시키거나, 이에 실패한다면 그 내용이 진부하게 되도록 노력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일이 생긴다면 ASEAN은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중국과 공동으로 문서를 작성하는 데 실패한 것을 인정하거나 아니면 이빨 빠진 문서를 발표해야 할 수도 있다. 향후 행동을 구상함에 있어서 중국은 2013년 1월 1일에는 분쟁 당사국이 아닌 캄보디아가 분쟁 당사국인 브루나이에게 ASEAN 의장국의 역할을 이양한다는 것을 알고 이를 고려할 것이다.    ASEAN의 초안은 오랫동안 감추어져 있지는 않을 것이다. 초안이 비밀로 남겨진다면, 중국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만들어진 타협을 포함한 모든 변경의 원인이 중국이라는 것을 직접적으로 관련된 정부들 외에는 아무도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초안이 현재의 형태대로 회람되고 중국이 변경을 요청한다면, 달라진 점들은 결국 누구나 다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ASEAN의 외교관들은 중국에게 굴복한 것에 대한 책임을 질 위험에 빠질 것이다.    중국이 행동수칙 제정을 방해하여 답보상태에 빠지게 한다면, ASEAN이 자체적으로 수칙을 만들고 그들 간에 체결할 수 있을까? 지금처럼 내부적인 비난의 분위기에서는 가능하지 않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지금의 상처는 치유되고, 동시에 ASEAN의 인내심이 줄어들면, 그런 일이 이론적으로 생길 수도 있을 것 같다. 중국이 생각을 바꿀 수도 있다. 중국은 ASEAN의 주도하에 남중국해 행동수칙을 마련하려는 다국적 노력을 수용하기로 결심할 수도 있다. 중국이 일종의 분쟁 해결 메카니즘에 동의하는 것도 가능하다. 2013년에, 예측대로 시진핑 대통령, 리커창 총리 콤비가 확실하게 베이징에서 자리를 잡는다면, 새 중국정부는 “눈살 찌푸리는 외교”를 미소 외교로 바꿀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자신감을 갖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반전에 큰 기대를 걸지는 말아야 한다.     대국의 저주    중국이 “나는 크고 너희들은 크지 않다”라는 식으로 중국의 지리적, 경제적, 지정학적 영향력을 노골적으로 행사한다면, 이는 동남아시아인들의 멸시와 함께 집단적 반발을 촉발할 것이다. 초고속 연계, 흐름, 혁신을 특징으로 하는 네트워크 세계에서 스마트파워란, 우월한 물리력을 사용하면 언제 역효과가 나는지를 아는 것이다. 크기도 중요하지만, 이것이 어떻게 사용되는가가 더 중요하다. 중국 외교를 보면, 이 교훈은 아직도 충분히 학습되지 않았다.    예컨대 중국은 올해 초에 중국인 5명, ASEAN인사 5명 도합 10명으로 구성된 비공식적인 EPEG(저명인사 및 전문가 그룹)를 구성하여 초안 수칙을 토론하자고 제안하였다. 이는 “우리는 대국이라 좌석의 반을 차지할 권리가 있다. 너희는 소국이므로 나머지 반을 나누어 가져야한다” 라는 식의 크기만을 근거로 한 제국주의적 태도를 노골적으로 보여주었다.    중국이 행동수칙을 연기하기 위해 EPEG라는 제안을 띄었을 수도 있다. EPEG가 작동된다면, 중국은 자문단이 보고서를 완성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결정을 늦출 수도 있을 것이다. 중국대표가 절반이므로, 보고서는 수년간 지체될 수도 있다. 나중에 중국이 5석을 유지하고 ASEAN이 10석을 차지하는데 중국이 동의했다고 알려져 있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중국이 자문단을 이용해 행동수칙협상을 연기하는 것을 제한하기 위해서 협상이 시작된 연후에 EPEG가 소집될 것을 주장해왔다. 프놈펜에서 성명이 발표되었다면, EPEG를 언급하였을 수도 있다. 성명이 없으므로, 중국 제안의 운명에 관하여는 단지 추측만이 가능하다.    EPEG의 절반을 통제하려는 중국의 시도는 시간이 지나면서 중국의 입장이 강화되고 있는 것을 보여준다.  ASEAN과 중국의 관계를 검토하고, 1국 1석의 원칙에 대한 개선점들을 제안하도록 2005년에 “ASEAN-중국 EPG(아세안중국 저명인사그룹)”이 구성되었다. 1국 1석의 원칙 하에서는 10명의 동남아국가 대표와 1명의 중국대표와 협상 테이블에 같이 앉는다. 만약 중국이 15석 중의 1/3을 차지하게 된다면, 특히 ASEAN 국가들 사이의 분열로 인해 ASEAN의 다수적 위치가 약화된다면, EPEG의 심의는 중국의 통제를 더 잘 따르게 될 것이다.    오일과 가스는 풍부하지만 국정운영이 부실한 나라들의 정치경제가 “자원의 저주”에 시달린다는 생각이 국가 행위에 관한 문헌에서 널리 알려져 있다. 중국이 그 막대한 영향력을 남용하게 만드는 “대국(amplitude)의 저주”라는 것이 존재할까? 동남아시아 사람들의 눈에 비춰진 중국의 “소프트파워 결핍”은 얼마만큼이나 중국의 권위주의적 정권으로 인해 만들어진 것일까? 민주화가 발생한다면, 중국은 좀 더 협력적으로 될 것인가? 아니면, 민주화는 그 동안 민주주의적 압력으로부터 절연되어 있었던 중국의 지도자들이 앞으로 외교정책에 대한 민족주의의 영향을 제한하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들어서 저주를 증폭시킬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무엇이든 두 가지는 분명하다. 중국은 남중국해에 대해 주권이 있다고 느끼며, 이러한 주권의식은 중국이 소프트파워를 투사하는 능력을 제한하고 있다. 중국의 권리에 대해 “분쟁의 소지가 없다”라고 하는 반복된 주장을 생각해보자. 이것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말인가를 인식하는 사람이 외무성에 한 명도 없을까? 다른 나라들이 찬성하지 않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당장 ASEAN 4개국이 이를 반박하고 있다. 필리핀은 남중국해를 분쟁지역과 분쟁대상이 아닌 지역으로 분리하자는 제안을 해왔다. 아마도 중국은, 남중국해 대부분 지역에 대한 중국의 권리주장에 대해 분쟁의 소지가 없다고 말하면서 중국이 단순히 자신의 입장을 방어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말”이 중요한 소프트파워의 영역에서 분쟁의 여지가 없다는 중국의 주장은 중국의 입장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프놈펜에서의 교착상태가 남중국해 행동수칙을 지체시킬지도 모른다. 하지만 프놈펜에서의 균열은 적어도 일부 ASEAN 국가들이 그들의 거대 이웃 중국에게 굴복하지 않으려는 의지를 가속화시키고, 동시에 그들 자신의 국가적이고 지역적인 독립을 위해 미국을 포함한 외부 국가들과 신중하게 협력하려는 동기를 강화시킬 것이다. 한편 ASEAN의 당사국들은 그들 자신도 문제의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며, 또한 해결의 한 부분이라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現 스탠포드대에서 동남아포럼을 담당. 프린스턴 대학에서 국제관계학 학사학위를 받고, 예일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 동남아, 이슬람, 민주주의, 미국 외교정책 등에 관련한 다수의 저작이 있음.
  • 시리아 사태의 현황과 전망
    저자
    인남식(국립외교원)
    발간호
    2012-19
      무서운 속도로 아랍 권위주의 정권의 정치변동을 이끌어내던 아랍의 봄은 시리아에서 교착상태에 빠져있다. 하마와 홈스 등 반군 거점에서 학살이 진행되고 있으며, 8월 초 현재, 2만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무고한 시민들의 죽음이 지속되자 국제사회 개입에 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유엔안보리 결의에 러시아와 중국의 강경한 거부권 행사로 인해 논의가 진척되지 못했다. 결국 국제사회의 개입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워진 바샤르 알 아사드 (Bashar al Assad) 정권은 더욱 가혹한 반군 탄압에 나서게 되었고 상황은 악화되고 있다.     시리아 분쟁의 원인: 종파분쟁   시리아의 분쟁은 종파분쟁의 성격을 지닌다. 아랍의 봄을 견인했던 이집트와 튀니지의 사례와는 완연히 다른 원인에서 기인했다. 무바라크와 벤 알리의 독재에 시민 전체가 하나되어 저항했던 이집트와 튀니지와는 달리 시리아는 소수 알라위파와 다수 수니파간의 저항 구도로 설명할 수 있다.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의 배경이 되는 알라위파는 일종의 변종 시아파로서 전체 시리아 인구의 약 12퍼센트를 점유하고 있다. 이들 알라위파 세력이 집권한 후 기독교 및 드루즈파와 연대하여 지배연합을 구성했고 이들이 전 인구의 70퍼센트를 점유하는 다수 수니파를 탄압해왔던 것이다.   사실상 지금까지는 알라위파인 아사드 정권에 대한 수니파의 조직적 저항은 그다지 많지 않았고, 오히려 수니파 내부에서도 현 정권을 지지하는 입장을 취한 부족들도 적지 않았다. 이는 아사드 정부의 오랜 통치 기법에 기인한다. 즉, 다수 수니파를 폭력적으로 억누르기보다는 일종의 연대를 맺으면서 나름대로의 지배연합을 존속시켜왔던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아사드 지배에 저항하는 세력에 대한 혹독한 탄압도 병행해왔다. 현 대통령의 아버지인 하피즈 알 아사드 대통령 시절 1982년 하마 대학살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인근 이집트와 튀니지 그리고 리비아를 거쳐 예멘의 정치변동을 가져온 아랍의 봄은 시리아의 다수 수니파를 자극했다. 사실상 처음부터 조직적인 저항이 시작되었던 것은 아니었다. 초기 한 중학생이 일으킨 장난에서 일어난 충돌이 급기야는 전국적 내전상황을 불러 일으켰고, 아랍 정치변동의 파도가 시리아를 직접 타격한 것이다.     분쟁의 국제화와 세력 경합   시리아의 문제는 종파분쟁적 (sectarian conflict)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시리아 내부의 정부-반정부 세력 간의 갈등구도로만 볼 수 없다. 훨씬 더 복잡한 국제정치의 역학이 작동하고 있다. 일단 중동지역 내에서 시리아 문제를 둘러싼 입장차이가 명확히 드러나고 있다. 특히 이란의 부상과 맞물려 시리아의 전략적 위치가 역내에서 매우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다. 아사드 정권을 지지하는 이란의 경우 여하한 경우에도 시리아 현정부의 존속이 중요한 과제이다. 시아파 벨트를  통한 이란 영향력의 확대 유지라는 점에서 이란-이라크-시리아-레바논 남부 헤즈볼라로 이어지는 이른바 ‘시아파 초생달 지대’ (Shiite crescent area)를 관통하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아사드 정권의 존속은 이란의 영향력이 지중해 연안까지 연결되고 있음을 의미하며 특히 레바논 남부 헤즈볼라와 육로로 연계되어 이스라엘 북부를 타격할 수 있는 전략적 군사라인으로서도 의미를 갖는다.   이란의 부상에 부담을 가진 수니파 왕정국가들은 어떻게 해서든 이러한 시리아의 입지에 타격을 가해야 하는 상황이다. 한편 아랍의 봄 이후 중동에서 급격히 소프트파워를 확대해가고 있는 터키 입장에서도 정치적으로 이란 견제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시리아의 정권 교체를 통한 수니파 집권은 향후 중동지역에서 이란을 약화시키고 수니파의 영향력을 유지하는 데에 매우 중요한 변수가 된다. 따라서 현재 사우디, 카타르 및 터키 등 인접 수니파 국가들이 시리아의 수니파 반군을 물리적으로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러한 시아-수니 구도는 단순히 역내문제로만 한정되지 않는다. 중동을 넘어서는 역학관계가 동시에 작동하고 있다. 이란의 부상과 시아파 벨트의 확산은 중국, 러시아와의 연대로 연결된다. 최근 시리아 문제를 둘러싸고 유엔안보리에서 국제사회의 개입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상정했으나 러시아와 중국의 거부권 행사로 무산되었다. 즉, 미국과 각을 세우는 중국과 러시아가 시아파 라인과 연대함으로써 소위 미국의 패권논쟁이 중동에서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과 유럽은 고전적 동맹국가인 터키 및 걸프왕정과 연대함으로써 시리아 정권 교체를 지지하고 있다. 아직 구체적인 군사행동까지 연계되어있지는 않으나 일단 아사드 정권의 퇴진을 기정사실화하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유엔 결의를 통한 국제사회의 무력개입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높지 않은 상황에서 반군 내부의 저항 강도 강화를 통한 아사드 정권 축출을 시도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과 노력이 많이 투입되어야 하는 형편이다.     국제사회의 개입 가능성   사실상 유엔 차원의 개입은 현재로서는 불가능해 보인다. 리비아의 카다피 정권을 붕괴시켰던 ‘보호책임’ (R2P, Responsibility to Protect)의 규범은 시리아에 적용되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 때문이다. 러시아에게 시리아는 중동 유일의 군사동맹국이다. 러시아는 푸틴의 귀환과 맞물려 영향력 확대라는 차원에서 고전적 동맹국가 시리아에 대해 일방적인 지원을 견지하고 있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거부권 행사는 보호책임 규범을 무력화시켰고, 이를 우회하는 국제사회 개입 방안을 놓고 미국과 수니파 아랍국가들은 고심하고 있다.   결국 현재로서 가능한 선택지는 유엔 대신 아랍연맹과 걸프 차원의 개입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 미국과 사우디 및 터키 등 3개 주요국들이 주도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있다. 현재 유관 국가들 간의 논의에서 일단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고 개입 수준을 높이는 방향을 택할 것으로 의견을 모으고 있다. 하지만 선거를 앞둔 미국이 전면적 개입을 시도하기에는 일정부분 정치적 부담이 있다. 따라서 개입이 진행되더라도 걸프 왕정이 주도하는 모양새를 띨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개입이 확실시 될 경우 러시아와 중국의 입장이 주목된다. 미국과 수니파 국가의 개입을 빌미로 오히려 시리아 정부군을 강화시키는 물리적 지원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시리아를 중심으로 매우 위중한 국제 갈등이 촉발될 수도 있다.     향후 전망   현 구도로 보아 아사드 정부의 붕괴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고 볼 수 있다. 2만명이 넘게 정부군에 의해 사망자가 발생했고, 최근 SNS 등의 미디어 영향력이 높아져 비극적 상황에 관한 소식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몇 가지 징후가 드러나는 바, 정부군의 거점인 다마스커스와 알레포에서 지속적으로 교전이 이루어지고 있고, 주요 인사들의 망명이 이어지고 있으며, 국내 난민이 폭증하면서 민심이 흉흉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리비아 사태처럼 국제사회의 결정적 개입이 수반되지 않을 경우 붕괴까지의 시간은 예상보다 길어질 수 있다.   관건은 아사드 이후 시리아의 미래이다. 최근 이집트와 튀니지에서 드러난 것처럼 이슬람 세력의 집권 내지는 제도권 진입은 미국 등 서방과 보수 수니파 국가들이 매우 우려하는 바이다. 실제로 최근 혼란 국면에서 알 카에다가 시리아 영내에 잠입, 암약하고 있고 이외에도 무슬림 형제단, 지하드 여단 등 강력한 이슬람 세력들이 아사드 정부와 싸우고 있다. 이들이 향후 논공행상 과정에서 정치적 지분을 요구하며 제도권에 진입할 경우 국제사회에는 아사드 정부 못지않은 부담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시리아의 미래는 정치변동을 겪고 이슬람의 발호를 목도하는 인근 아랍국가와는 다를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일단 시리아는 비교적 세속주의적 정치문화가 강한 곳이다. 1920년대부터 아랍에 뿌리내린 세속주의 아랍부흥운동인 바티즘의 근거지이다. 이집트에서 1928년부터 무슬림 형제단이 주도했던 반정운동과는 성격이 명확히 다르다. 이슬람이 생활양식임에는 틀림없으나 이슬람 세력이 정치화할 가능성은 이집트보다는 훨씬 낮다고 판단된다. 따라서 아사드 정부가 무너진 이후, 일정부분 과격세력의 정치진입을 견제해낼 수만 있다면, 오히려 시리아는 중동 민주주의의 새로운 경로를 창출해낼 가능성을 가진 나라임에는 틀림없다. 문제는 오히려 다른 곳에 있다. 아사드 정부가 붕괴한다면, 그 이후 새롭게 등장할 시리아 정부와 이란-러시아와의 관계 설정이 쟁점이 될 것이다. 즉, 향후 국제 갈등의 장으로서 여전히 시리아가 주목받을 수 있음을 의미하며, 이는 시리아를 둘러싼 불안 요소가 늘 상수처럼 존재할 가능성이 높음을 의미한다.  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現 국립외교원 교수.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더럼 대학교 (University of Durham)에서 이집트와 한국의 비교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 중동정치와 에너지에 관련한 다수의 연구저작과 언론기고문이 있음.
  • 최근 일본 정국의 변화와 노다 정권의 과제
    저자
    김숙현(도호쿠대학)
    발간호
    2012-18
      2009년 5월, 55년 만에 이루어진 민주당의 정권교체는 일본국민들의 불안과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출범하였다. 정권교체의 일등공신 중 한명인 하토야마 준총리를 선두로 만 3년이 채 지나지 않은 민주당은 제3차 민주당 내각이 노다 내각을 구성하고 있다.   자민당의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어왔던 탈관료주의, 정치가 중심의 국정운영, 재정개혁 등을 중심으로 한 매니페스트를 대대적으로 홍보하며 정권교체 이후의 민주당의 수행 공약을 제시하였고, 많은 국민들로부터 큰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올 6월 민주당의 큰 파벌세력을 형성하고 있던 오자와 이치로 전 민주당간사장을 지지하는 세력이, 소비세인상 및 관련 법안의 통과를 반대하고 나서며 결국 탈당을 하게 이르렀다. 민주당의 표결만으로는 법안통과가 어렵기 때문에, 노다 총리는 자민당, 공명당 등 야당과 합의를 통해 본인의 정치생명을 걸고 소비세 인상의 법안통과를 꾀하였다.   55년만의 정권교체, 3년 이내의 3번의 수상교체, 3/11동일본대지진, 원자력발전 가동에 대한 반대여론, 유럽발 경제악화 및 일본의 재정난 등, 현재 일본은 전후 가장 어려운 정치, 경제 상황을 겪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노다 정권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 지지율 상승이 절실한 과제로 여겨지고 있다.   과거 3년 동안 일본의 정국의 변화는 실로 롤러코스터와 같은 상황의 연속이라 할 수 있다. 민주당정권 이후의 일본의 정국의 변화와 현 노다 정권의 과제를 살펴보고, 향후 일본정세를 전망하고자 한다.     민주당 내 그룹과 권력투쟁   현 민주당은 2004년 민주당과 오자와의원이 당수로 있던 자유당과의 합당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하토야마 유키오, 간 나오토, 오자와 이치로 및 중견의원들로 구성된 거대 야당으로 출발하였다. 특히, 위 세 의원은 정권교체에 있어 일등 공신의 역할을 했으며, 하토야마 의원이 민주당 정권 초대 수상이 되었다.   민주당은 자민당과 같이 여러 그룹을 형성하고 있는데, 2007년 참의원 선거이후 오자와 그룹은 민주당 내에서 최다의 수를 확보하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후텐마 미군기지 이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하토야마 전 총리는 책임을 지고 사임하게 되고, 대표직선거에서 승리한 간 나오토가 두 번째 민주당 총리가 된다. 2010년 7월 하토야마 내각의 뒤를 이은 간 내각은 깨끗한 정치, 정치와 돈의 문제 해결이라는 공약을 내걸고 반오자와파를 중심으로 한 당내 차별적 성향이 강한 내각을 구성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민주당은 실질적으로 오자와파와 반오자와파로 양분화되는 현상을 보이기 시작하였고, 간 수상을 중심으로 한 중진 의원들은 오자와파를 노골적으로 견제하였다.     3/11 동일본대지진과 리더십의 부재   깨끗한 정치, 정치와 돈의 문제 해결 등, 오자와 의원을 견제하는 정책을 중심으로 펴온 간 정권에게 가장 큰 시련이 된 대지진이 발생하였다. 총 피해규모가 16조엔을 넘고 3만명 이상의 사상자를 기록한 일본 기상관측상 가장 큰 규모의 지진이었다. 가공할 만한 쓰나미의 피해도 큰 이슈였으나,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는 또 다른 재앙으로 세계를 주목시켰고, 동북지방의 평범한 농업중심의 현이 전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했을 때, 간 정권의 초동대응은 간 정권에 큰 타격을 주게 되었다. 우선 원전사고에 대한 대책이 사고발생 3개월이 지난 시점에서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동경전력과 정부가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시키는 기이한 모습까지도 보이면서 전 세계적으로 일본의 치부를 드러내는 상황이 계속되어 갔다. 이러한 과정에서 내각불신임안을 제출하려는 오자와파와 야당의 움직임 속에 간 수상은 8월까지만 총리직을 수행한다는 조건부 총리직을 몇 달 동안 연장하게 되었다.     노다 정권의 출범과 소비세 인상   간 수상의 뒤를 이어 노다 의원이 총리가 된다. 노다 요시히코 의원은 반오자와파의 전형적인 인물로 서민을 위한 정치를 공약으로 내세우며, 근소한 차이로 당대표로 선출되면서 총리가 되었다. 이미 노다 내각은 3/11 동일본대지진의 복구와 부흥, 그리고 이를 수행하기 위한 재정확보라는 커다란 과제를 안고 출범했다. 과거 새로운 내각이 등장할 때마다 그 내각의 지지율은 가장 높은 지지율을 보이는 것처럼 노다 내각도 발족 지지율은 역대 5위라는 65퍼센트의 지지율로 시작하였으나, 현재 지지율은 26퍼센트까지 하락하였다. 그 만큼 어려운 문제들이 많은 상황에서 시작하였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다지 비관적인 성적은 아닐런지 모른다.   노다 총리는 재정확보를 위해서는 소비세 인상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과제로 보고, 본인의 정치생명을 걸고 법안을 통과시키겠다고 선언한다. 민주당의 초기 매니페스트에는 소비세 인상 반대가 공약 중의 하나였고, 실질적으로도 민주당 내의 다수의 의원들이 소비세 인상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결국, 오자와 의원을 비롯한 소비세 인상을 반대하는 의원들은 민주당의 초기 공약에 반하는 소비세 등을 포함한 사회보장 및 조세일체개혁 관련 법안의 제출에 맹비난을 했다. 그리고 중의원 본회의에서 사회보장 및 조세일체개혁 관련 법안에 반대표를 던지게 되었다.   민주당 내의 소비세 인상 반대파로 인해 법안 통과가 어려울 것을 예상한 노다 총리는 자민당, 공명당 등 소비세 인상 및 조세일체개혁 관련 법안에 어느 정도 인식을 같이 하는 야당과 합세하면서 중의원에서 법안이 통과되었다.   아직 참의원에서의 법안 통과가 남아 있긴 하지만, 중의원 우선주의를 택하고 있는 일본으로서는 시간은 걸리겠지만 법안 통과는 사실상 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7월 2일, 노다 총리의 의견에 찬동하지 않은 의원들 37명이 당으로부터 제적처분을 받으면서, 탈당을 하여 신당을 창당하게 되었고, 결국 오자와파의 다수 의원들이 탈당을 하게 되었다.     향후 일본정국의 전망   결국, 현재의 민주당은 2004년 민주당과 당시 오자와 당수가 이끄는 자유당의 합당 이전의 상황으로 돌아갔다. 당시 합당을 할 때, 많은 매스컴들은 민주당과 자유당의 합당은 오래가지 않을 거라는 예상을 했는데, 정권교체라는 큰 성과는 이루어 냈으나, 결국은 분열되고 말았다.   현 민주당내의 의원들은 차기 총선을 겨냥해서 탈당을 할지 말지를 고민하는 양상이 두드러진다. 오자와 의원과 오자와파의 의원 37명이 탈당을 해서 창당하였는데, 당 이름을 거의 공약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가 엿보이는데, 당명이 지금까지 있었던 당 중에 가장 긴 ‘국민생활이 제일’이란다.   민주당의 가장 큰 과제는 2013년 총선에서의 승리이고, 현재로서는 승산이 불투명하다고 볼 수 있다. 후쿠시마원전에 대한 교훈으로서 모든 원전가동을 중지하고 재검토한다는 방침을 세웠으나, 얼마가지 못해 철회하였고, 초기 공약들은 거의 대부분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탈관료주의를 개혁과제 중의 하나로 여겼으나, 결국은 세제개혁 문제 등 카스미가세키의 관료들의 계획대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3/11 일본대지진의 복구는 마냥 더디기만 하다. 동북지방의 여름 날씨는 비교적 선선한데, 작년과 올 여름은 동경만큼이나 기온이 상승하고 있고, 많은 지진, 쓰나미 피해자 들은 아직도 가건물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매우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또한 부족한 재정을 확보하기 위해 인상하는 소비세 또한 많은 국민들의 반감을 사고 있다. 이미 일본의 경기는 침체되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소비를 하지 않아 문제가 되고 있는데, 소비세가 인상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소비하기를 꺼리게 될 것이다.   산적한 국내 문제만으로도 벅찬 노다 총리는 국제 문제나 외교 문제는 뒷전이다. 계속 검토되고 지연되어 왔던 TPP논의는 아예 거론도 되고 있지 않고, 북핵 문제나 미일 동맹, 헌법 개정에 관한 논의 또한 거의 이루어 지지 않고 있다.   2013년 총선에서 승리해야 하는 과제를 갖고 있는 민주당 정권으로서는 다시 한번 국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한 돌파구가 필요할 것이지만, 아쉽게도 이러다할 해결 방안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지금부터가 노다 총리의 정치생명을 건 신념과 진정한 리더십을 보여주어야 할 때가 아닐까 한다.  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現 도호쿠대학 법학과 준교수(동아시아국제정치 담당). 한국외국어대학 일본어과 및 동대학원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한 뒤, 동경대학에서 국제정치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함. 연구 관심분야로, 한중관계, 북일관계, 중일관계, 일본정치 등이 있음. 저서로는 한중국교정상화와 동아시아국제정치의 변용(2010, 일본어)이 있음.
  • Reopening a Puzzle: South Korea-Japan Security Relations and Domestic Politics
    저자
    Andrew YEO(Catholic University of America)
    발간호
    2012-17
      A few weeks ago, the breakdown of the South Korea-Japan General Security of Military Information Agreement (GSOMIA) generated a political firestorm in Seoul. Why did GSOMIA cause such an uproar in South Korea? After all, as U.S. and Japanese experts have argued, it is in South Korea’s own interest to have such an agreement. I offer three possible explanations, but before doing so, briefly highlight the context of the recent South Korea-Japan agreement.   Under most circumstances, GSOMIA is a fairly routine agreement which permits the sharing of classified military data and intelligence. The Republic of Korea (ROK) has signed such agreements with over two dozen countries.  However, in this instance, the agreement was negotiated in secret and only revealed to the public just days before the official signing. Once the deal went public, opposition party members assailed the current government for its lack of transparency on an issue sensitive to South Koreans due to Japan’s wartime past.   I present three possible reasons for the breakdown of GSOMIA and its implications for trilateral security cooperation between the United States, Japan, and South Korea. As already suggested, the first explanation is domestic politics. The ROK government bungled the deal by not making it transparent, thus turning the issue into political fodder.  Closely connected to domestic politics is the second explanation: lingering historical animosity. Koreans remain sensitive about strengthening military ties with Japan given Tokyo’s unwillingness to own up to its past role during the colonial period.  The third explanation is the China factor which relates to balance of power politics.  Paranoid about getting caught between great power rivalries, South Korea does not want to provoke China, or at least give China the impression that U.S.-Japan-South Korea relations are tightening at the expense of China.   Most media reports in South Korea initially cited domestic politics and historical animosity for the strong backlash. Since then, several foreign policy experts have attempted to look beyond such proximate explanations and honed in on South Korea-China relations as an underlying reason for Seoul’s last minute hesitation. The China factor may have had some role to play in GSOMIA’s breakdown, but several problems exist with this thesis.   On what grounds do ROK-China relations affect strengthened military ties between Japan and South Korea? Those supporting the China thesis state that ROK officials balked at signing GSOMIA because it might be perceived as part of the U.S.-led security architecture positioned against China. I disagree that this was the major reason for the political fall-out at the eleventh hour. First, the fact that the South Korean government was ready to sign GSOMIA until the uproar suggests that most ROK policy officials did not see the China factor as a major problem.  Second, implied here is the idea that the U.S. was somehow pushing its two allies to make this deal. It is true that Washington would like to see trilateral relations strengthened. But as one Pentagon insider mentioned, the U.S. remains a constant, not a variable in promoting trilateral relations. The U.S. position is to always encourage trilateral relations but it tends not to over push Japan and South Korea because it relates to historical issues.  Secretary of State Hillary Clinton’s recent comment on the comfort women issue notwithstanding, the U.S. tries not to stick its nose into tricky historical problems.   Third in the grand scheme of things, why would information sharing between Japan and Korea about intelligence regarding North Korea overly threaten China? South Korea has even signed a GSOMIA with Russia. Fourth, if South Koreans were really paranoid about irking China, they would not offer to strengthen trilateral relations with the United States two weeks later as they did at this year’s ASEAN Regional Forum.   Based on my conversations with ROK officials, it is true that South Korea does not want to aggravate or unnecessarily provoke China. However, there are other mechanisms that the ROK government uses to signal its willingness to cooperate with China even as it seeks to strengthen the US-Japan-ROK security ties. This includes the relatively new China-Japan-South Korea Trilateral Cooperation Secretariat (TCS) which was proposed by the current ROK administration.   ROK-Japan relations present one of the more interesting puzzles in international relations: given common threats and their geographic proximity, the inability of two democracies to form a true alliance defies the logic of the liberal peace and political realism. In one of the first studies to examine this puzzle, Victor Cha paradoxically pinpoints the inability of ROK-Japan relations to develop beyond a “quasi-alliance” to the United States: when U.S. commitment to both countries is strong, the incentive for Tokyo and Seoul to strength their own remains low.   In my view, however, domestic politics should be given more credit than is often given. From a realist standpoint, South Korea and Japan should want stronger ties in today’s security environment. But domestic politics makes this complicated. The ROK government must sell the security utility of such a pact to the public, but they cannot do this without support from Japan. South Korea must receive some concession from Japan which creates political space for the ROK government to promote security cooperation. Thus, if Japan truly wants greater security cooperation and strengthen ROK-Japan ties, it would make concessions on specific contentious historical issues.   But the dilemma for Japan is that its own domestic constituents would be upset if its government “caved” under South Korean pressure. Capitulation would be perceived as a sign of weakness, especially when the Japanese population believes Koreans are “emotional,” making outrageous demands for issues which occurred decades ago. Japanese civilians were also victims twice over: by the Japanese military government and U.S. air power. In sum, Japan and Korea both have their hands tied to domestic politics. Will we see a second push for GSOMIA anytime soon? Certainly not until after the Korean presidential elections at the end of the year, even as we see improvements in broader U.S.-Japan-South Korea trilateral relations.  이 글에 포함된 의견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제주평화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Andrew Yeo is Assistant Professor of Politics at the Catholic University of America in Washington DC. He is the author of Activists, Alliances, and Anti-U.S. Base Protests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1). His research and teaching interests include international relations theory, East Asian security, social movements, and North Korea. He received his Ph.D. from Cornell University in 2008.